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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인천신공항시대 외국항공사 전략](2)캐세이패시픽 항공

    [토마스 오웬 한국지사 마케팅 이사] 홍콩에 본사를 둔 캐세이패시픽 항공(Cathay Pacific)은 세계적으로 가장알찬 경영을 하는 성공적인 항공사로 인정받고 있다.이 회사도 다른 아시아권 항공사들과 마찬가지로 97년 외환위기로 고전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여객기에 투자한 것이 힘을 발휘했다.기령이 2∼3년밖에 안된 여객기들이 많아 그만큼 수리와 유지비용 절감효과를 낸 것이다. 이와 함께 자신들이 상대적 우위에 있는 지역에서의 영업을 강화하고 전세계를 잇는 네트워크망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경기악화로 여행객 수는 줄었지만 다행히 교역량은 꾸준히 유지돼 화물수송으로 적자폭을 좁힐 수 있었습니다.” 2년째 한국지사 마케팅 이사로 일하고 있는 토마스 오웬씨(30)는 “우리 항공사는 홍콩과 대만지역에서의 여행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오웬이사는 캐세이패시픽의 강점으로 크게 네가지로 꼽았다. 홍콩과 대만 취항편수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이 지역의 관광,호텔업계 등과 연계가 잘 돼있어 여행객들,특히 캐세이패시픽을 이용하는 여행객들에게는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콩 신공항의 개항으로 공항시설을 확충해 보다 많은 승객과 여객기를 원활하게 연계할 수 있게 된 것도 강점이다. 상용승객에 대한 서비스 프로그램도 다양하다.‘아시아 마일즈’라는 마일리지 프로그램은 현재 10개 항공사,11개 호텔체인 및 3개 신용카드회사와 제휴해 무료여행과 무료 승급여행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오웬이사는 높은 품질의 서비스를 꼽았다. 그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는 가슴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것이 우리 항공사의 모토”라며 “승무원들에게 규격화된 서비스교육을 시키기 보다 있는그대로의 모습으로 고객들을 대할 것을 교육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캐세이패시픽에는 대고객서비스와 관련된 교육책자가 따로 없다.책에서 배워서 하는 식의 기계적인 서비스는 안하는 것 보다 못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웬이사는 캐세이패시픽항공은 가격보다는 부가적인 서비스를 제공,‘가치(value)’경영을 강조한다고 설명했다.가격을 무조건 내리기보다 항공료에호텔숙박권과 홍콩에서 쇼핑할 때 활용할 수 있는 할인쿠폰,공항까지 왕복하는 무료셔틀·고속철도이용권을 패키지로 묶은 상품을 판매한다.미화 25달러만 내면 홍콩에서 1박을 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오웬이사는 인천 국제신공항은 일본의 도쿄와 함께 극동아시아의 허브(HUB)공항으로서의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허브공항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합리적인 가격과 편리성,항공개방정책 등 법적인 문제가 선결돼야만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균미기자 kmkim@- 캐세이패시픽 항공, 다양한 서비스로 고객감동 캐세이패시픽항공의 자랑은 다양한 고객 서비스. 지난해 9월 세계적인 4개 항공사들과 제휴,‘세계는 하나(oneworld)’라는세계적인 네트워크망을 구축했다.아메리칸 에어라인,영국항공,캐나다항공,콴타스 호주항공과 전세계 632개 도시를 실핏줄처럼 연결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핀에어와 아이베리아항공이 가세,143국 682곳으로 운항도시가 늘어난다. 세계적인 네트워크망이 갖춰짐에 따라 이용승객들은 공항에서 연계편을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들게 돼 그만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세계 어느곳이든 접근이 가능진 셈이다. 상용고객 우대제도인 ‘마르코폴로 클럽’ 회원은 자동적으로 아시아 마일즈로 이어진다. 아시아 마일즈 마일리지 프로그램은 12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10개 항공사,11개 호텔 체인,3개 신용카드사,전화회사,렌트카사의 프로그램과 제휴해 운영하고 있다. 또 최근 새로 문을 연 홍콩 신공항에 전용 고객라운지 ‘날개(Wing)’를 운영하고 있다. 약 360억원을 들여 만든 고객라운지는 일등석 및 비즈니스석 라운지와 부대시설을 합해 총 4,000㎡로 세계 최대규모다.평화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부대 시설과 분위기를 갖췄다. 이밖에 항공표의 전자발권제도를 실시하고 있다.일일이 사무실에 나올 필요없이 간단한 전화 한통으로 예약과 발권까지 마칠 수 있다. 싱가포르,멜버른,시드니간 노선에서만 우선적으로 적용되고 있지만 향후 대상 노선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김균미기자
  • [金三雄칼럼] 이땅 어머니들에 헌사

    인간의 언어와 문자 그리고 대상 가운데 한가지만 고른다면 무엇일까. 자유·평등·박애·정의·진리·평화·인권·행복·종교·조국…? 모두 좋은언어이고 문자다.인류가 추구하는 이상이고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모르긴 해도 ‘어머니’란 말(문자)만큼 인간의 원초적이고 불변의사랑과 가치는 다시 없을 것이다.“인간의 출생에 있어서 지리적 장소가 고향이라면 생명적 정신적 고향은 어머니의 뱃속·젖가슴·그 품이라 할 수 있다.이곳은 모든 이의 영원한 고향일 뿐만 아니라 안식처요,낙원이다.”(김진섭·母頌論) 가정의 달 5월에 이 땅의 어머니들을 생각한다.고난의 역사와 함께 여성이란 이유로 겹고통을 겪으며 이 핏줄,이 겨레를 지켜온 어머니들이다.국난에처할 때마다 여성은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었다. 고려시대에는 원(元)나라의 침략으로 ‘사위국’이 되어 2,000여명의 여성이 공녀(貢女)로 끌려가고,조선시대에는 청(淸)나라에 굴복하면서 수천명 여성이 잡혀가고 귀환해서는 ‘화냥년’ 소리를 들어야 했다.일제시대 일본군강제위안부로 끌려가 성노리개가 된 우리 여성은 무릇 기하뇨. 보리도 익어야 거두지 어두운 밤에 처녀를 찾으니 나비도 잘 보는데 봉오리 앉기도 전에 나무가지 꺾네. 고려시대 몽고군이 어린 소녀들까지 공녀로 끌어간 데 대한 민요의 하나다. 조선조와 일제시대에도 비슷한 민요가 회자됐다.시대마다 굽이마다 이 땅의여성들은 그렇게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지키며 나라를 일궈 오늘에 이르렀다.지금은 또 IMF 환란으로 얼마나 많은 여성이,어머니들이고통을 겪고 있는가. 빈말이 아니다.단군의 어머니 웅녀,고구려 시조 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신라시조 박혁거세의 비 알영(閼英),가락국 시조 김수로왕비 허황옥(許黃玉) 등 개국시조에서부터 여성(어머니)은 이 땅을 열고 지키는 모태가 됐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모친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의 수의(壽衣)를 만들며 “우리 모자의 상면은 이승에서는 없기로 하자.네가 혹시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라고 ‘훈계’했다. 치하포에서 일본 중위 쓰치타를 죽이고 15년형을 선고받은 아들 김구를 서대문감옥으로 면회 간 곽낙원 여사는 “이야! 나는 네가 경기감사나 한 것보다 더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아들을 격려하며 옥바라지를 했다.어찌‘그어머니에 그 아들’이라 가벼운 한마디로 그치랴.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달라졌다.독립국가·민주화가 되면서 여권도 크게 신장됐다.가족법 개정으로 재산분할권이 인정되고 ‘성희롱’이 범죄로 다스려진다. 남편에 대한 가부장적 권위나 종속적 위치가 인정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와 가정’으로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도 용납되지 않는다. 사회적·경제적 능력을 갖춘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현격하다.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나 하며 사는 전통적 어머니가 아닌 직업인·사회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IMF시대를 맞아 많은 어머니들이 모성을 포기하는 극단의 행태를 보인다.가난을 견디지 못해서,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가정을 포기하거나 이혼과 가출이 급증한다.어린 자식,병든 남편을 버린 여성이 많으며 환락에 빠져 가정을 파탄시킨 어머니들도 적지 않다.‘맞고 사는 남편들의 모임’(맞사모)이 구성될 만큼 여권이 신장된 반면 성적타락·가정해체·모성상실이라는 ‘21세기 한국사회의 비극’적 현상이 급증하고 있다.물론 아직도 수많은 여성·어머니들이 남성들의 권위주의,폭력·생활고와 낡은 인습,범죄와 유혹에 시달린다.‘빗나간 자식사랑’‘일류병’‘과보호’ 현상도 뒤따른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라도 모성만은 포기하지 말았으면 한다.양처는 아니라도현모의 전통을 이으면서 ‘원초적이고 불변의 가치’인 영원한 고향 ‘어머니’라는 언어와 그 존재의 자리만은 지켰으면 한다.겹고통 속에서도 이 땅의 어머니들이 그랬듯이. 가정의 달에 드리는 헌사다.
  • 굄돌-사랑의 먹거리를 보냅시다

    꽃피는 4월에 어둡고 안타까운 소식이 북녘에서 들려온다.북한의 식량난이더욱 심해져 식량배급이 이 달중으로 중단될 것이라는 외국 신문들의 보도가있었다. 최근 2주동안 북한을 둘러본 유엔 인도적 조정관들은 북한 주민들이풀뿌리 같은 ‘대체식량’을 찾아 헤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심각한 식량난으로 교사와 병원 직원들까지 식량을 구하기 위해 4∼5명에 1명 꼴은 직장에 출근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자신과 가족이 먹을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농촌에 사는 친척에게 가는 등 식량을 얻으러 다녀야 하기때문이라고 한다. 나의 소년시절에도 해마다 ‘보릿고개’라는 춘궁기가 있었다.묵은 곡식은거의 다 떨어지고 햇보리는 아직 여물지 아니하여 먹거리가 곤궁한 시기를두고 일컫던 말이다.아침마다 어린 보리싹으로 끓인 보리국을 먹어야 했고한 끼 건너기는 보통이었다.배고픈 고통이 가장 무서운 서러움이었던 것을일깨워주던 1950년대 그 시절.지금도 내겐 묵은 상흔처럼 남아 있다. 얼마전 TV를 통해 북녘 시장바닥에서 흙 묻은 밥알을주워먹는 부랑아들을보았다.집없는 10대 부랑아들을 통틀어 ‘꽃제비’라고 한다.굶주리는 북녘동포들의 모습은 우리의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북한의 기근은 ‘20세기 마지막 대재앙’으로 기록될 수도 있는 엄청난재난이다.전세계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프랑스 등의 지식인들을중심으로 북한의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조직을 만들자는 캠페인을주도하고 있는 피에르 리굴로씨의 애틋한 절규이다. 4백만이 굶주림에 처참하게 시달리고있다는 우리 북녘 동포의 참상을 듣고외국 사람이 앞장서는 것을 보면서 나는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그 극심한 세기말적 재난을 보면서 이 시대 한 핏줄로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몇십년 뒤 후손들에게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나눌 때 가장 귀한 음식이 되는 사랑의 먹거리,북한의 기근 해결에 우리 모두가 하루 속히 나서야 할 때이다. [홍희표 시인 목원대교수]
  • 밀로셰비치의 對나토 전략

    수주째 거의 무방비상태로 나토의 공습을 당하고 있는 유고측이 마지막 탈출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탈출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하나는 주변 국가들에 군사도발을일으켜 전선을 확대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감정을 부추겨 슬라브민족대 서방의 대결구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전화가 이웃 알바니아,마케도니아 등지로 번지고 나토가 지상군을 파견하고 여기에다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불을 뿜을 경우 이번 사태는 제 3의 발칸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나토측의 우려다.바로 나토측이 상정하는최악의 시니리오중 하나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최근 러시아 벨루로시 유고연방으로 구성된 ‘슬라브 3국 연합안’을 내놓았다.친서방적인 몬테네그로와 마케도니아,알바니아및 나토의 강력한 목죄기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같은 핏줄인 러시아의 슬라브 민족주의에 대한 기대감을 담은 구상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침공에 맞서 세르비아가 러시아 등 연합국과 손잡았던 1차 대전때와 비슷한상황을 연출하려는 것으로도볼 수 있다. 경제난으로 서방의 힘을 빌어야 하는 러시아로서는 미국 주도의 나토를 견제할 필요성 때문에 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밀로셰비치도 이 점을 노렸을 수 있다. 1차대전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향해 쏜 한발의 총탄이 신호탄이 됐다.밀로셰비치도 지금 이 한발의 신호탄을 찾고 있을법하다.유고군은 지난 10일과 11일 알바니아 국경에서 코소보해방군(KLA)과교전한데 이어 13일에는 KLA소탕을 빌미로 알바니아 국경을 침범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코소보 사태가 발칸반도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물론 이번 사태가 밀로셰비치가 바라는 대로 발칸전쟁으로 비화될지는 미지수다. 나토의 군사력이 세르비아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하고 친유고적인 러시아도 서방으로부터 경제협력을 받아야 하는 현실적 필요 때문에 밀로셰비치가원하는대로 나토에 총구를 겨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 [金三雄칼럼]-금강산의 엷은 햇살

    국가보안법상의 ‘적’이면서 남북기본합의서상의 ‘특수관계’인 북한 금강산을 다녀오면서 남북관계의 양면성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금강산 자락에도 엷은 햇살이 비치면서 잔설이 녹아흐르고 있었다. 장전항에서 ‘입국’절차를 밟고 들어간 온정리는 남한의 여느 시골마을과별로 다르지 않는 예전 우리 모습이었다. 산이 발가벗고 무표정한 어른들의모습이었지만 철부지 아이들은 손을 흔들고 금강산 곳곳에 배치된 안전원들역시 애써 지은 무표정 속에서도 한 핏줄이란 속내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분단 이후 출생자가 남한 83%,북한 87%가 되는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돼야 한다. 군사비가 130억달러 대 40억달러의 비율로 우리쪽이 질과 양에서 훨씬 우세한 편이고,남측 우방인 미국이 세계유일 최강인 반면 북측 우방이었던 소련은 붕괴된 처지에서 그쪽의 입장을 이해하는아량도 보여야겠다. 모름지기 협상이나 거래는 역지사지(易之思之)의 자세가 필요하다. 남북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6,70년대 북쪽이 경제적으로 앞서고 소련과 중국이 지원하고,미국이 한국에서 1개사단을 철수하는 등 이른바 ‘닉슨 독트린’정책으로 안보가 위태로울때 박정희대통령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서둘러야했던 그 절박한 상황을 돌이켜보자. 지금 북한이 사면초가와 체제모순과 거듭되는 재해로 인한 굶주림 속에서 극단의 대처방법을 추구해온 ‘처지’를조금은 이해할 만도 하다. 결코 북한의 핵이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양해하고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서 협상하고 접근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침략전쟁을 잊지 못한다. 6·25와 냉전시대를 겪으면서 국민의 반공주의는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정서와 감정 공포 증오로 자리잡게 되었다. 역대 독재정권과 이에 기생한 언론·지식인들의 안보상업주의도한몫을 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민족문제이면서 국제문제의 이중성을 띠면서 남북문제는 이념대결과 열강들의 이해대립으로 굳어지게 되고 남북문제는 ‘골라디온의 매듭’처럼 되고말았다. 여러해 전 프랑스 몽블랑과 스위스 융프라우를 오르면서 우리 금강산에는언제쯤 가게 될까,기약없이 꿈꾸었는데 이처럼 실현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미 4만명 이상이 금강산을 다녀왔다. 연말까지 10만명 이상이 금강산 관광을 하게 된다. 큰 변화다. 1년 전에만 해도 금강산 뱃길이 열리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金大中정부의 햇볕정책이 마침내 동토의 문을 열었다. 분단사 또는 통일운동사의 쾌거라 하겠다. 시인·화백 100여명과 함께 오른 만물상과 구룡폭포는 우리가 느껴온 추상보다 훨씬 우람하고 기묘하고 신비하고 청결한 모습이었다. 북한이 금강산을 이렇게 ‘보존’한데 감사드려도 좋을 것이다. 비닐쪽지하나,빈병쪼각 하나도 널려 있지 않는 자연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창조주의손길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금강산 뱃길이 다시 막히지 않도록,아니 묘향산과 백두산의 육로가 뚫리도록 참고 이해하면서 화해와 공존의 길을 넓혀야 한다. 북한에 대한 지원과 이해가 꼭 일방적인 수혜는 아니다. 남북관계가 안전해야 외국의 투자가 가능하고 수출도 늘어난다. 그런 면에서 IMF체제 극복을위해 우리쪽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북한 역시 변화의 흐름을 수용해야 한다. 북한이 기아와 후진성 탈피를 위해서는 남한의 지원과 동포애보다 더 절실한 나라는 달리없다. 또한 지나친군사력 증강이 일본 재무장의 빌미를 주게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3박4일의 짧은 금강산행을 마치고 귀로 버스에서 일행은 노래와 시낭송으로 감격과 통일의 꿈을 새겼다. ‘음치’인 탓도 있지만 한편의 즉흥시로 ‘음책(音責)’을 면하고자 했다. 그렇게 어렵던 길이던가 그처럼 사무치던 곳이던가 꿈에도 그립던 길이길래 파도치는 동해뱃길 달려갔거니 당신 의연히 거기 있더이다 만물상 구룡폭포 신비의 모습하며 천고의 나래펴며 거기 있더이다 당신 거기있어 금수강산 이름받고 그대 거기있어 통일조국 소망이네 금강산 당신 품에 안길 때 때묻은 분단의 세월 부끄럽고 속세 티끌 떨친 그대 순수에 인간사 이욕과 갈등 수치였네 당신 보고 가는 서울행 찻길에서 대관령 자락 남은 잔설같은 냉전의 장벽 분단의 빙설 허물며 육로길에 다시 만날날 기약하네./주필
  • 외언내언-코리안 마마

    한 한국여인의 인종을 초월한 인간애가 진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미국 LA에 살던 한국교포 홍정복 여인의 얘기가 그것이다.대개 존경받는 삶이 그렇듯이 그의 얘기도 사후에 널리 평가받고 있다.그는 52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그렇지만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 같다.그는 사랑이라는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생활에서 실천한 사람이다. 그의 휴먼스토리는 마치 전설처럼 느껴진다.자신의 식료품 가게에서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흑인소년에게 ‘넘어질라’ 하고 걱정했다는 홍여인이다.불량배처럼 보이는 청소년에게도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보통사람들이 그러기 쉽지만 그는 그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일이 없다.돈이 없어 아이에게 먹일 우유와 기저귀를 못 사 망설이는 흑인여인에게 물건을 슬쩍 얹어주기도 했다.그러면서 ‘돈은 나중에 갚으라’고 말한단다.그런 홍여인을 흑인사회에서는 ‘코리안 마마’라고 불렀다.다정한 이웃이면서 때로는 아주머니,엄마,누나처럼 느껴졌었던 것 같다.왜 안 그랬겠는가.한국교포와 흑인간의 갈등은유명한 얘기다.지난 92년 흑인폭동때 대부분의 피해가 한인들에게 집중됐었다.그럼에도 홍여인의 가게만은 흑인들이 번갈아가며 지켜주었을정도였다고 한다.인간애에 갈등과 불화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있을 리 없다. 홍여인의 얘기가 이를 실증해주는 것만 같다. 이런 홍여인이 비명에 갔다는 소식은 우리를 너무 안타깝고 답답하게 한다. 그는 피부와 인종에 편견이 없었다.그런 사람이 소수 인종 히스패닉 노상강도 2인조의 총격에 세상을 떠나야 했다.범죄란 맹목성을 갖는다.성경구절대로 범인들은 필시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를 것이다.그들은 실로천사를 쏘았다.그의 죽음에 흑인들은 깊은 분노와 슬픔에 빠졌다고 한다.복수를 다짐하기도 한다는 것이다.흑인들 뿐이겠는가.그의 얘기를 알게된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심사를 가누기 어려울 듯하다. 어쨌든 홍여인의 죽음은 슬프지만 그가 남기고 간 삶의 스토리는 자랑스럽다.우리 핏줄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홍여인의 삶은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만한 휴머니즘을 충분히 간직하고 있는 민족임을 새삼 입증하고 있다.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우리네 생활이 각박하다.홍여인이 이국에서 보여준 사랑의 실천을 우리가 국내에서 승화시킬 수 있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은 같은 핏줄끼리의 사랑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아닌가.
  • 인터뷰/계간 ‘통일시론’ 창간 한학자 임창순옹

    “통일운동에 디딤돌 놓는 마음으로 발간” 계간 학술지 ‘통일시론’이 98년 겨울호로 창간됐다.발행처는 청명문화재단 .이 재단은 원로 한학자이자 금석학의 대가인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86 )옹이 지난해 6월 설립한 것이다.90을 바라보는 한학자가 통일관련 잡지를 창간한 것이 조금은 낯설기도 하지만 임옹은 일찌기 60년대에 통일운동과 인 연을 맺은 적이 있다.임옹이 도시의 속진(俗塵)을 털고 25년째 둥지를 튼 채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태동고전연구소(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지둔리 11의 1)를 찾아 그 인연과 근황을 들었다. ?같疵?이신데 건강은 어떠신지요. 재작년부터 기관지가 좋지않아 외출을 삼가고 있습니다.주 1∼2회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도 중단했습니다.건강이 좋아지면 다시 시작할까 합니다만 어떨 지 모르겠습니다. ?걋枋藪? 선생님의 아호를 딴 ‘청명문화재단’을 설립한 것으로 알고있습니 다.재단설립 목적이 궁금합니다. 우선 제가 해온 한문학 연구를 계승하고 아직 손길이 닿지 않은 고전(古典) 국역을 통한 민족문화 창달이 주목적입니다.하나 더 욕심이 있다면 통일운동 에 디딤돌 하나를 놓고 싶습니다.이번에 ‘통일시론’을 창간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한 겁니다. ?걋?으실 때 통일운동에 관여했다가 고생을 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4·19 직후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면서 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 습니다.젊은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독재타도와 조국통일을 외치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더군요.그래서 당시 각계각층의 진보적 인사들로 구성된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산하 통일방안 심사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했지요.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돼 5·16후 혁신교수로 몰려 강단에서 쫓겨났습니다. 반년 가량 교도소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걋譴貶? 창간하신 ‘통일시론’은 기존 통일관련 잡지와는 어떤 차별성이 있습니까? 정부나 관변단체의 통일관련 간행물 가운데는 보수적인 것들이 많습니다.대 부분 반공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것으로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고 남북간에 긴 장과 적대감만 심어준 감이 없지 않습니다.‘통일시론’은 다양한 목소리가 담긴 민간주도의 ‘통일토론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거育臼諍오? 첫걸음을 뭘로 보십니까? 우선 남북한이 한 민족임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미국이나 일본· 중국이 북한을 보는 것과 우리가 북한을 보는 것은 달라야 합니다.우리는 북 한의 통치체제 문제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북한동포들이 마치 우리 핏줄도 아닌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남북이 한 뿌리임을 절실히 인식 할 때 통일은 가깝게 다가온다고 봅니다. ?걀윷㏊옛? 한학을 공부해오셨는데 이 시대에도 되새길 만한 교훈을 한가지 소개해 주십시오. 사서(四書)의 하나인 ‘맹자(孟子)’에서는 ‘의(義)’를 강조하고 있는데 ‘의’의 반대는 ‘이(利)’라고 할 수 있습니다.요즘 사람들은 지나치게 이 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어서 이(利) 때문에 의(義)를 저버리는 경우가 많습니 다.그러나 크게보면 이(利)는 작은 것이고 의(義)가 사람사는 기본입니다. ?갚流옛? 배출하신 한학 제자들 자랑을 좀 해주십시오. 3년과정을 마친 제자가 140여명 정도 됩니다.그들중 박사가 60여명,대학의 전임 이상이 40명 가량 됩니다.초창기에는 인문분야 학생들이 주류를 이루다 가 요즘은 정치학·건축학·유전공학·미학 등 입소생들의 전공분야가 다양 해지고 있습니다.반가운 일이지요.앞으로 국악·한의학·서지학 분야에서도 입소자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태동고전연구소는 한림대 부설로 돼 있으며 입소생 전원에게 3년간 장학금( 월25만원)과 숙식을 제공하고 있다. ??1914년 충북 옥천출생.독학으로 한학 공부.해방후 대구사범·동양의약대학 (경희대 한의대 전신)에서 한문 강의.??55년 성균관대 국사학과 교수.61년 해직.??63년 태동고전연구소 설립.85년 소장 한적(漢籍) 1만여권 한림대에 기증, 연구소 한림대 이관.??89년 문화재위원장.?가?당시정해(唐詩精解)’‘ 한국의 서예’‘한국금석집성’ 등 저서 다수. 鄭雲鉉 jwh@ [李昌淳 jwh@]
  • 외국 허브공항 교통망(인천신공항 성공을 위해서:1­3)

    ◎홍콩도심∼첵랍콕 교통 ‘완벽’/고속도·철도 3종류 11억달러 투입/공항건설비 보다 20억달러 더들어/말련 세팡은 불편… 여행객 외면 “드나드는 길이 불편해서야 고대광실(高臺廣室)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콸라룸푸르에서 만난 대한항공 관계는가 말레이시아 세팡공항을 빗대어 한 말했다. “지난 8월초 퇴근시간 무렵에는 맹장이 터진 직원을 공항에서 시내의 암팡 푸에테리병원까지 옮기는데 2시간30분이나 걸린 적이 있습니다.공항안에 응급의료시설 하나 없는 것도 문제지만 수도 도심까지 이동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게 세팡공항의 아킬레스건이지요” 지난 6월30일 개항한 세팡공항은 말레이시아 경제성장의 상징이다. 지난 10년간 8% 이상의 고도성장을 기록한 이 나라는 현재 아시아의 대표적 허브공항인 싱가포르 창이공항을 제치고 물류·경제 중심지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세팡공항의 장래를 그다지 밝게 보지 않는다.도심과 공항간의 교통시설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창이공항 자리를 대신할수 없다는 지적이다. 세팡공항에서 콸라룸푸르 도심까지의 거리는 75㎞.승용차로 내달려도 1시간 이상 걸린다.출·퇴근때는 1시간30분을 훨씬 넘기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도 교통수단은 왕복 6차선의 고속도로가 전부다.원래는 도심까지 고속철도를 건설할 계획이었지만 경제난 때문에 공사를 연기했다. “도심과의 교통수단은 택시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개항 초기에는 공항과 시내를 오가는 버스조차 운행되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버스노선이 생겼지만 탑승장이 공항에서 떨어져 있어 무척 불편합니다” 영국계 항공사 직원 스티븐 윌리엄 포키씨(39)는 콸라룸푸르에서 세팡공항으로 출퇴근하는 일이 하루 일과 중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공항에서 도심까지 가는 교통요금도 물가수준에 비춰 무척 비싼 편이다.전용택시를 타면 3만1,000원,리무진버스를 이용하면 7,200원이 든다. 홍콩 첵랍콕공항의 접근교통망은 세팡공항과는 전혀 딴 판이다.비록 졸속 개항에 따른 후유증을 앓고 있긴 하지만 교통망만큼은 완벽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첵랍콕공항과 홍콩 도심은 고속도로,고속철도,일반철도의 3종류로 연결된다.홍콩 당국은 연계 수송망 구축에 공항 건설비보다 20억달러나 많은 110억달러를 쏟아 부었다. 빅토리아항구 앞바다에 제3터널을 뚫었고 란타우섬까지 가로지르는 2개의 현수교를 놓았다.또 도심과 공항을 잇는 6차선의 고속도로(34㎞)도 건설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시내 도심까지 정확히 40분이 걸린다. 고속철도를 타면 23분만에 갈 수 있다.고속철도는 여객터미널안의 도착장과 출국장으로 곧바로 연결된다.첵랍콕공항을 찾은 벨기에 건축설계사 팬 앤소니씨(37)는 “공항 접근교통망이 이용객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확연히 느껴진다”면서 “홍콩인들이 자동차를 갖지 않고서도 불편없이 살아가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홍콩공항공단 크리스토퍼 돈널리 대외협력단장(44)은 “공항을 찾는 목적이 도심에서 일을 보는 것이라면 접근교통망은 공항의 핏줄에 해당한다”면서 “접근로가 불편한 공항은 여행객으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첵랍콕∼도심 연계망/환상의 사통팔달/공항특급 열차 큰몫/환승 편의성 최고수준/70리길 23분이면 주파 첵랍콕공항과 홍콩도심을 연결하는 철도는 ‘환상의 연계망’을 자랑한다. 첵랍콕공항에서 홍콩 중심부인 센트럴(中還)까지 가는 길은 공항내 무인철­고속철­지하철의 ‘3철(鐵)’이 릴레이식으로 연결하고 있다. 우선 공항에 내려 출국 수속을 끝내면 여객터미널 지하에 있는 무인 고속철이 대기하고 있다.공항 출구의 고속철도 ‘공항특급(에어포트 익스프레스)’까지 운행시간은 2분 남짓. 첵랍콕공항 개항과 동시에 운행하고 있는 ‘공항특급’은 칭이(靑衣)역과 쿼룬(九龍)역을 거쳐 홍콩섬까지 70리길(28㎞)을 23분만에 주파한다.4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최고 시속은 135㎞다. 홍콩섬역과 칭이역,쿼룬역에는 모두 61개의 탑승수속 카운터가 설치돼 있어 중간에 탑승수속이 가능하다.수하물을 공항까지 들고 갈 필요없이 이들역에서 미리 부쳐버리고 손가방만 들고 가면 된다. ‘공항특급’이 내건 슬로건은 ‘유팔달통 천지관통(有八達通 天地貫通).‘공항특급’을 타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뜻이다.‘공항특급’은 2인석의 안락한 고급의자와 2층짜리 수하물 보관대를 갖추고 있다.바닥에는 고급카펫이 깔려 있다. 승객이 조그만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열차대사’란 이름을 가진 예쁜 도우미가 바로 달려온다. 모든 좌석 뒷면에는 각국의 증시정보,노선안내,날씨·기상정보를 동화상으로 알려주는 인터넷TV 스크린이 달려 있다.승객들의 무료함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가로와 세로가 10㎝,8㎝ 크기인 인터넷TV의 선명한 화면에 코미디물과 퀴즈물도 나온다. ‘공항특급’을 타고 홍콩섬역에 내리면 곳곳에 설치된 컨베이어벨트와 에스컬레이터가 홍콩 지하철역으로 안내해 준다. ‘홍콩특급’의 관리담당인 매니저 브리이언 선씨(47)는 “공항 접근철도망은 속도 못지 않게 환승의 편리함이 중요하다”며 “일반철도가 있는데도 고속철도를 신설한 것은 바로 환승의 편리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공항특급’ 열차 설계 데이비스씨 인터뷰/“교통편의 고려 백년대계”/2040년대 수요 토대로 첵랍콕공항과 홍콩섬을 최고 시속 134㎞로 달리는 홍콩의 명물 ‘공항특급’은 영국에 본부를 둔 ‘오브어랍사’가 설계를 맡았다.미국 벡텔사가 화공·플랜트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면 오브어랍사는 토목·건축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다.홍콩섬에 들어선 초고층빌딩의 70% 이상을 설계한 회사다. ‘공항특급’열차와 역사(驛舍)의 설계책임자로 일한 홍콩 오브어랍사의 존 데이비스전무(49)와 일문일답이다. ●공항 근처에서 도심을 연결하는 기존의 일반열차가 있는데 고속도로와 고속철도까지 건설한 이유는. 예상대로 교통량이 고루 분산되면서 현재는 노선마다 상당히 여유가 있는 편이다.그러나 21세기 초반에는 동남아지역의 항공수요가 급속히 늘어날 것이다.‘공항특급’은 앞으로 40여년 뒤인 2040년대의 교통수요를 토대로 설계했다.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닌 첵랍콕공항의 연장수단으로 보면 된다.앞으로 공항의 영역을 도심까지 넓혀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공항특급’을 설계하면서 가장 역점을 둔 부문은. 이용객이 얼마나 유쾌하고 편리하게 여객터미널을 오갈 수 있도록 만드냐는 것이었다.공항 접근교통망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느냐에 따라 공항의 수입은 크게 달라진다. ●말레이시아 세팡공항의 경우 6차선 고속도로만 개통하고 고속철도 건설은 연기한 상태인데. 안타까운 일이다.공항을 이용하는 사람중에는 열차를 타려는 사람도 있고 승용차로 오가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교통수단을 제한하면 그만큼 허브공항으로서의 매력을 잃게 된다. ●인천국제공항의 고속철도 건설에 대한 조언은. 인천국제공항과 첵랍콕공항은 여러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우선 바다를 매립하고 산을 깎아 공항을 지은 것이 그렇다.인천국제공항도 첵랍콕공항에서 홍콩섬에 이르는 길이만큼 철도를 깔아야 한다.현실에 급급하지 말고 몇십년 뒤를 내다보며 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 로버트 김을 구하자(사설)

    한국과 관련이 있는 미국의 군사기밀들을 한국측에 전해준 혐의로 미 연방교도소에 수감중인 미 해군정보국 전직무관 로버트김(한국명 金采坤)의 구명문제를 둘러싼 국감내용이 관심을 끈다. 5일 국감에서 국민회의 趙淳昇 의원은 “로버트김이 어떠한 대가를 받음 없이 순수한 애국심에서 우리측에 정보를 전달했다”며 그의 석방을 위한 관계당국의 노력을 촉구했다. 33년전 미국으로 유학갔던 올해 58세의 로버트김은 미 해군정보국에서 근무를 하는 동안 ‘약소국인 조국’을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한국대사관 관계자에게 넘겨준 혐의로 96년 체포돼 9년형의 선고를 받고 복역중이다. 주목되는 대목은 그가 우리정부로부터 어떤 부탁을 받았다거나 대가를 요구한 사실없이 티없는 애국심에서 자진해 그러한 행위를 했다는 점이다. 진술내용대로 그는 한국이 보낸 간첩이 아니며 영웅이 되려는 마음도 없었고 다만 약소국인 조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조국을 돕기 위해 기밀서류를 넘겨주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론 그가 저지른 죄상(罪狀)에 대한 미국정부의 판결에 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전혀 타당치 않다고 본다. 다만 그가 비록 미국인 신분이기는 하나 자신을 낳고 길러준 모국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보여준 충정(衷情)을 결코 외면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의 조건없는 민족애에 대해 범(汎)국민적 공감대를 넓혀나가고 성원을 아끼지 않는 등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석방기일을 앞당겨야 할 것임을 강조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전 정권시절 로버트김이 미국인이니까 한국정부는 관여치 않겠다는 자세를 취한 것은 너무 무책임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얼마전 로버트김 구명위원회가 뒤늦게나마 결성된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며 구명운동의 확산과 성과를 기대한다. 우리는 또 최근 중동평화협상때 이스라엘총리가 사형선고를 받은 유태계 미국인 간첩의 석방을 클린턴 대통령에게 강력히 요청,재고하겠다는 답변을 받아낸 사실을 기억한다. 로버트김의 행위로 그동안 한·미관계가 크게 훼손된 것도 아니므로 정부·정치권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석방시기를 앞당길 여지가 없지 않다고 본다. 해외동포는 국가발전의 중요한 외곽지원세력이다. 한 핏줄인 이들의 모국애가 진할수록 그 민족이 융성해지는 사실은 화교(華僑)나 유태인들의 예에서 잘 알수 있다. 조국을 위해 영어(囹圄)의 몸이 된 로버트김을 모른 체하는 것은 우리의 수치다. 그를 구하자.
  • 지속적 경제구조개혁 재다짐/金有培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기고)

    金大中 대통령은 28일 경제기자회견을 통해 작년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추진되어 오고 있는 4대부문의 개혁성과를 점검하고 빠른 시일내에 이를 완성하고 향후 경기진작을 통해 경제 되살리기에 나설 것임을 천명하였다. 이는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악습을 타파하여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라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4대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4대 개혁,즉 금융·기업·노동·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이 지속적으로 추진된다면 우리경제의 체질개선은 성공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회견이다. 금융과 기업의 구조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온 정부로선 경제의 핏줄인 금융부분의 구조조정을 빠른 시간 안에 마감하고 기업의 5대 구조조정 중 마지막으로 남은 빅딜을 완성함으로써 경제의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아울러 노동부문 개혁에 있어서도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를 추구하면서 비록 현재 많은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으나,금융 및 기업구조개혁이 완성되어 향후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면 다시 고용의 안정을 이룰수 있다는 인식이다.이를 바탕으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편 공공부문의 개혁도 20%의 인력구조조정을 목표로 그동안 비효율적 운영이나 경쟁력이 확보되지 않은 부문의 과감한 개혁을 통해 2000년 이후까지 꾸준히 추진할 것임을 다짐하였다. 이렇듯 정부가 추진해온 4대 구조개혁은 원칙을 통해 꾸준히 시행되고 시행될 것으로 다짐하고 있지만 개혁의 성과는 보기에 따라서는 그리 낙관적일 수만은 없는 요소가 있다. 우선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경기부양과 구조조정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즉 구조개혁을 경기부양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경기부양의 역효과로 나타날수 있는 수입증가라든지 기업부문의 구조개혁 후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면 정부가 이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면서 구조개혁의 이완감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일관성있게 지속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다면 구조개혁과 경기부양이 동시에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지난 외환위기 때 가지고 있던 외환보유고의 10배를 현재 갖고 있으며, 단기외채비율도 절반으로 줄어들었음을 강조하고는 있지만,제2의 환란 가능성도 계속 경계할 필요는 있다. 내년 초까지 우리가 상환해야 할 부채가 245억달러에 이르고, 수출은 감소세로 돌아섰고 내년 목표 성장률의 달성 여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金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 경제의 미래를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향후 정부가 추진해야 할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하반기부터 시행될 경기진작과 구조조정의 상충되는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회피로 인한 자금경색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 것인가. 또 정부의 막대한 적자재정 예산으로 충당되는 실업대책에 있어 문제가 되는 비효율성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나아가 경기부양을 위한 자금배분에 있어 운영의 묘를 어떻게 살릴 것이며,외국의 우리에 대한 신인도를 어떻게 고양시킬 방안은 무엇인가. 이 문제들은모두 향후 풀어야할 정책과제들이다. 모든 국민들은 이러한 과제들을 극복함에 있어 대통령의 합리적 정책선택과 추진력을 기대하고 있다.
  • 親日의 군상:5/시인 朱耀翰(정직한 역사 되찾기)

    ◎臨政 독립신문 편집국장서 ‘皇國臣民’ 변신/대표적 친일 행적­일 건국이념 八紘一宇서 따온 ‘松村紘一’로 개명.각종 잡지에 친일시 발표·친일단체 간부 역임.“천황 위해 목숨 바쳐라” 전국 순회 강연회 개최/해방후의 족적­전경련 부회장.국회의원 재선.부흥·상공장관.사망후 국민훈장 “아아 날이 저문다.西便하늘에,외로운 江물 우에,스러져가는 분홍빗 놀………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우는 밤이 또 오것마는,오늘은 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소리는 듯기만 하여도 흥셩시러운 거슬 웨 나만 혼자 가슴속에 눈물을 참을 수 업는고?……”(‘창조’ 창간호,1919년 2월) 4월 초파일 저녁 대동강변에서 벌어진 불놀이 장면을 보고 죽은 애인을 그리는 애상조의 이 시는 송아(頌兒) 朱耀翰(1900∼1979년)의 대표작 ‘불놀이’다.이 시는 종래 우리 시의 기본형식을 거부하고 상징적인 수법과 대담성 때문에 흔히 우리 문학사에서 ‘최초의 자유시’로 불려왔다.특히 일제하 우리민족의 아픔과 시대상황을 민족정서로 표현했다 하여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 왔다.우리 역사앞에 처음 등장한 ‘시인 주요한’의 첫출발은 이처럼 좋았다. 주요한은 20세기가 시작된 1900년 10월 평양 목사집안의 8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912년 숭덕소학교를 마치고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그는 메이지(明治)학원에서 중등과정 5년을 마치고 도쿄 제1고등학교에 진학했다.문학에 심취해 있던 그는 이 무렵 도쿄유학생이자 같은 문학청년 金東仁을 만나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문예 동인지 ‘창조(創造)’를 탄생시킨다.‘3·1만세의거’가 터지기 꼭 한 달 전의 일이다.그의 대표작 ‘불놀이’도 바로 여기서 선을 보였다. ‘창조’ 2집이 나올 무렵 고국에서 ‘3·1만세의거’가 일어나자 그는 서둘러 짐을 싸서 귀국했다.그러나 그의 부친은 다시 도쿄로 돌아갈 것을 강권하였다.동생 耀燮(작가·72년 작고)이 몰래 삐라를 복사하여 돌리다가 체포되자 장남인 그에게까지 화가 미칠 것을 우려하였다.결국 도쿄로 되돌아온 그는 한동안 방황하다가 한인(韓人)YMCA 총무 崔承萬을 만나 상하이(上海)로 가라는 권고를 받는다.시인이자 애국청년으로 보낸 그의 상하이시절 9년은 이렇게 시작됐다. 상하이는 그를 반겼다.당시 임시정부에서는 기관지 ‘독립신문(獨立新聞)’ 발간을 준비중이었는데 문사(文士)가 필요했었다.‘독립신문’은 그 해 8월21일 창간호를 냈다.춘원 李光洙가 사장겸 주필이었다.그는 춘원 밑에서 편집국장겸 기자로 있었다.상하이 임정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오랜 시절 동지로 지내는데 나중에 ‘동우회(同友會)사건’으로 변절,친일의 길로 들어서면서도 행동일치를 보이게 된다.상하이시절 그는 자신이 기자로 있던 ‘독립신문’에 ‘송아지’라는 필명으로 ‘조국(祖國)’등 수 편의 애국시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송아’라는 그의 아호는 필명 ‘송아지’에서 따온 것이다. 1927년 그는 9년간의 상하이생활을 청산하고 돌연 서울로 돌아왔다.귀국동기는 분명치 않다.다만 그는 귀국후 곧바로 ‘동아일보’에 둥지를 틀었다. 입사 2년만에 편집국장이 된 그는 그 해 광주학생의거 관련 민중대회 발기인으로 참여한 것이 말썽이 돼 일제로부터 곤욕을 치렀다.33년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겼으나 사주(社主)와의 갈등 끝에 李光洙에게 편집국장 자리를 물려주고는 얼마 뒤 퇴사하였다.그 해 그는 화신(和信) 사장 朴興植의 권유로 ‘화신산업’에 입사,언론인에서 회사 중역으로 일대 변신을 꾀한다. 그는 이 무렵 李光洙와 함께 도산 安昌浩가 1913년 미국에서 설립한 ‘흥사단(興士團)’의 국내단체인 ‘수양동우회’(1929년 11월 ‘동우회’로 개칭함)의 핵심간부(이사장)로 활약하고 있었다.이 단체는 친목단체로 위장한 민족단체였는데 당시로선 합법단체였다.회원들은 교육자·목사·변호사·의사 등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 주류였다.중일전쟁(中日戰爭)을 앞두고 이 단체가 일제의 표적으로 떠올랐다. 중일전쟁 발발(1937.7.7) 1개월전 일제는 동우회 해산명령과 함께 동우회원 일제검거에 나섰다.이는 민족주의 계열 인사에 대대적인 검거작전의 신호탄이었다.뒤이어 흥업구락부사건,천도교인사 탄압,조선어학회사건 등이 뒤따랐다.이 때 검거된 동우회 회원은 150여명.4년여에 걸친 재판기간 동안에 2명은 옥사하였고 그를 포함해 ‘화수분’의 작가 田榮澤,작곡가 玄濟明·洪蘭坡 등 18명이 ‘전향서’발표와 함께 친일단체인 대동민우회 가입을 선언하였다(1938년 6월29일). 경기도경찰부가 작성한 비밀문건(特秘제2494호,38년 11월5일)에 따르면,李光洙·朱耀翰 등 보석출소자 28명은 11월 3일 서울시내 효자동 소재 李光洙의 집에 모여 사상전향에 관한 회의를 열고는 충성서약의 표시로 11월 말까지 동우회 입회금 300원(현재 약000)을 포함,총 2,888원을 국방헌금으로 바치기로 결의하였다.헌금 전달자는 朱耀翰으로 결정되었다.상하이 임정에서 ‘독립신문’을 만들고 애국시를 쓰던 그는 어느새 이렇게 변해 있었다. 주요한의 친일성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중의 하나는 마쓰무라 고이치(松村紘一)라는 그의 유별난 창씨명이다.이름에 해당하는 ‘紘一’은 일본의 건국이념인 ‘팔굉일우(八紘一宇)’에서 따온 듯한데 실지로 그는 ‘팔굉일우’라는 시도 썼다.(‘삼천리’41.1) 철저한 일본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친일잡지 ‘삼천리’(40년 12월호)에 ‘동양해방(東洋解放)’ 기고를 시작으로 이후 각종 매체에 다수의 친일시·논설을 발표하였다.또 조선문인협회·문인보국회·조선임전보국단·언론보국회·대의당·대화당 등 대표적 친일단체에서 간부로도 활동하였다.그의 대표적인 친일문장 몇을 만나보자. ‘대동아전쟁’ 개전(1941년 12월8일) 직후인 41년 12월 14일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미영(美英)타도대강연회’에서 그는 ‘루즈벨트여 답하라’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총리를 ‘위대한 어릿광대’라고 지칭하고는 “반도의 2,400만은 혼연일체가 되어 대동아 성전(聖戰)의 용사 되기를 맹세하고 있다”고 포효했다.‘조선임전(朝鮮臨戰)’(‘신시대’,41년9월)이라는 글에서는 “지금 시국이 요구하는 것은 행동이요,희생이요,무조건의 헌신”으로 “동아의 성전이 조선에 구하는 것은 땀과 피와 살과 생명”이라며 “오직 우리는 (천황이)부르실 때 바칠 뿐”이라고 했다. 일제의 징병제 실시를 맞아서는 “오늘에야 우리를/부르시는 높은 뜻을/서로 전해 말하며/눈물 흘리는 것을…”(‘오늘에야’제1절)이라며 감격해 했다.또 조선인 지원병으로서 최초의 전사자 李仁錫군의 죽음을 두고는 “보아라,너들의 피가/내 핏줄을 통해/여기 뿜는다.2,300만의/뜨거운 피가/1억의 피로/한덩어리가 되는/처음의 피가/지금 내 핏줄에서/콸콸 솟는다…”(‘첫피’제3연,‘신시대’41년 3월)고 했다. ‘동의어(同意語)’라는 시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사는 것은 아니다…폐하를 위해 살고 또,죽는 것만이 즉 사는 것이다”라고 했다.이쯤되면 그를 조선사람으로 보기 힘들다.이 시들은 대부분 일본어로 번역돼 ‘손에 손을’이라는 그의 시집에 실렸는데 그는 이 시집출간으로 제4회 조선문예상 문학상을 수상했다.해방때까지 친일행각은 계속됐다. 해방후 반민특위에 불구속,기소됐다가 풀려난 후 그는 대한상공회의소 특별위원,대한무역협회장,국회의원(재선)을 거쳐 4·19후 張勉 정권에서 부흥·상공장관을,다시 5·16후에는 경제과학심의회 위원,대한일보 사장,대한해운공사 사장 등을 지냈다. 1979년 그가 사망하자 정부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주었다.지난 93년엔 서울의 한복판 세종로공원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다. 시비 뒷면 약력란에는 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체포된 이후 해방때까지의 친일경력에 대해서는 단 한줄도 언급이 없다.그에 대한 서훈과 시비건립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는 다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八紘一宇’ 무슨 뜻인가/‘온세계를 병합해 한집으로 한다’/일본서기서 인용… 1940년 처음 사용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면 일본의 제1대 천황인 신무천황(神武天皇)이 야마토(大和)에 도읍을 정하면서 ‘육합(六合)을 겸(兼)하여 도(都)를 개(開)하고 팔굉(八紘)을 병(倂)하여 우(宇)로 한다’(6대양 8대주를 병합하여 한 집으로 한다는 뜻임)는 내용의 조칙(詔勅)을 내렸는데 여기서 생겨난 말이 ‘팔굉위우(八紘爲宇)’다. 1940년 8월 제2차 고노에(近衛)내각이 기본국책 요강에서 대동아 신질서 건설을 위해 ‘황국(皇國)의 국시(國是)는 팔굉(八紘)을 일우(一宇)로 하는건국정신에 근거한다’고 밝혔는데 이 때 ‘팔굉일우’라는 용어가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됐다.그 후 이 용어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건설’의 기치를 내건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본토와 일제의 식민지국가에서 광범하게 사용되었으나 패망이후 지금은 거의 사어(死語)가 됐다. □주요한 연보 ▲1900년 평양 출생 ▲1918년 도쿄제일고교 입학 ▲1919년 상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편집국장 ▲1921년 상하이 호강대 화학과 입학 ▲1929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1933년 조선일보 편집국장,화신산업 입사 ▲1937년 ‘동우회사건’으로 체포 ▲1938년 보석출소후 친일로 전향,해방때까지 각종 친일단체에서 활동함. ▲1949년 반민특위에 불구속,기소 ▲1951년 조선민주당 사무국장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당선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당선 상공·부흥부 장관 ▲1964년 경제과학심의회 위원 ▲1968년 대한해운공사 사장,대한 일보 회장 ▲1975년 능률협회 회장 ▲1977년 전경련 부회장 ▲1979년 숙환으로 사망
  • 햇볕정책 是非(林春雄 칼럼)

    ○“북 도발 초래”잇단 비난 북한의 잠수정 사건이 또 일어나고 무장간첩 침투사건이 터지면서 새 정부의 이른바 햇볕정책이 도마위에 올라있다. 정부는 15일 이례적으로 국가안보회의 전체회의까지 열어 북한측에 사과등 우리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아울러 정부는 확고한 안보태세 위에 교류,협력추진이라는 병행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다행한 일이다.그러나 이번 사태로 새 정부의 햇볕정책에 얼마간 흠집이난 것만은 사실이다.사건이 터지자 한나라당은 즉각 정부의 햇볕정책이 북한의 연속적인 무장침투 도발을 초래했다고 비난하고 햇볕정책의 재검토를 촉구했다.자민련도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햇볕정책의 조정을 요구했다. 정부는 햇볕정책에 변함이 없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는 햇볕정책이 정부의 생각만큼 결코 순조롭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사태는 또한 우리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의도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는 개연성(蓋然性)을 떠올리게 한다.북한이 금강산 개발을 수용하면 햇볕정책이 되고 무장간첩을 보내면 강풍정책이 될 가능성이다. 국가정책에도 상대가 있을 것이다.하지만 한 국가의 정책에는 철학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더구나 우리의 통일 정책이 북한의 작위적(作爲的)공작에 놀아나는 것같은 모양세는 좋지 않다. ○정책과 공작은 구별돼야 정책과 공작은 구별돼야 한다.남북은한 핏줄이지만 군사적으로는 적대관계에 있다.따라서 남북간에는 적의 동태를 탐지하고 적의 작전을 교란하기위한 공작이 수없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안기부가 북한의 黃長燁을 끌어내는 공작을 하듯 북한도 남한의 군사동태를 살피고 민심을 교란하는 공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공작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국가정책이 정보기관의 공작에 끌려 다닌다거나 혼선을 빚어서는 곤란하다. 한나라당은 햇볕정책이 북한의 무장침투를 초래했다고 하나 그렇다면 강풍정책을 계속했던 지난 반세기 동안에는 무장간첩 침투사건이 없었는가. 햇볕정책이 못마땅한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정책을 쓰든 북한은 조금도 변화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북한이 변하지 않고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북한이 91년 한국과 함께 유엔에 동시 가입한 것도 큰 변화이고 4자회담을 수용한 것도,鄭周永씨가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통과한 것도 북한으로서는 엄청난 변화다. 우리는 북한이 어떻게 나오든 북한 스스로 문을 여는 날이 올때까지 지속적인 노력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관된 햇볕정책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대북정책의 혼선 경계 정부가 이번 사태에 예상보다 강경한 반응을 보인 것은 국내 보수파들의 반격을 의식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국내문제 때문에 햇볕정책 자체가 훼손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정부가 바로 전정권이 범했던 대북정책의 혼선을 되풀이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그러나 벌써부터 햇볕정책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간첩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과 햇볕정책과는 별개의 것이다.햇볕정책은 간첩사건 같은 미미한 군사적 문제로부터자유로워야 한다.그리고 무엇보다 햇볕정책이 성공을 거두려면 국내 수구세력들의 저항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 “戶主制 폐지 혈연부정 아니다”

    ◎호적제도 공부모임 산파역 고은광순씨/“호적은 일 잔재… 단지 공문서일뿐”/주민등록과 일원화 등 대안 제시 호적제도 폐지.가부장제가 온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선뜻 거론하기 민감한 문제다.‘호적제도 공부모임’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호적제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에 앞서 그 실체를 제대로 알아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모임.지난달 11일 하이텔 여성문제 동호회 ‘페미니스트들의 천국’에서 태어난 이래 매주 한번씩 꼬박꼬박 모임을 가져왔다. 모임의 산파역인 한의사 고은광순씨(43)는 이른바 ‘페미니즘’에 좀 관심을 가져봤다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다.진보적 지면들을 통해 여성문제를 다루는 이런저런 칼럼들을 발표해온 그는 여성단체에서 벌이는 ‘엄마성 함께쓰기’운동에도 앞장서 자기 이름에서부터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알고보면 호적이란 갑오경장때 일본이 주입한 잔재지,우리 문화도 아니예요.그 일본조차 40년대 벌써 폐지했고 우리만 세계유일의 호적 국가로 남아있는 셈이지요” 유림을 비롯,남성들의 호주제 폐지에 대한 맹목적 거부감은 다 오해에서 나왔다는게 그의 주장이다.“호주제 없이는 씨족사회,친족,혈연이 다 부정되는듯 여기는데 실제로 씨족유지 기능을 맡는 것은 족보지,호적이 아니거든요.호적은 국가가 국민을 파악하는 공문서일 뿐이지요” 막상 공부를 해보니 호적의 역기능이 주민등록으로 충분한 것을 중복기재하는데서 오는 행정 비효율성에 그치지 않고 우리사회에서 기승을 부리는 남아선호 역시 다분히 호적제도의 핵심인 호주제 탓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제도에선 손자가 처보다,미혼 딸이 엄마보다 호주 승계서열이 높습니다.남자 핏줄만이 씨를 이을 수 있다는 관념에서지요.때문에 대를 못 잇는데 무슨 소용이냐며 해마다 3만명의 딸들이 뱃속에서 죽어갑니다” 호주제 위헌가능성에 대해선 법조계 내부에서도 공감 분위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법개정이 가져올 오랜 가부장제 관념과의 충돌을 우려,주춤거리고 있다.따라서 ‘호적제도 공부모임’은 앞으로 호주제 폐지문제를 시민운동 차원으로 공론화해 간다는 계획이다.또 나름대로 대안도제시하고 있다. “호적을 부부와 미혼자녀의 기본 가족별로 구성하는 방법,1인 1호적을 갖도록 하는 방법,주민등록체계와 일원화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어떻든 호주제가 없어지지 않고는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남아선호,여아낙태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 복고 열풍과 뒷골목 문화/鄭址昶 영남대 교수·독문학(발언대)

    IMF 한파 속에 복고 열풍이 한창이라고 한다.현실이 각박하고 고달플수록 가난하지만 인정이 넘치는 그리운 그 시절에 대한 향수는 커진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이러한 복고 열풍은 잠시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고자 하는 심리적 도피일 뿐,근본적으로 현실을 과거로 되돌리려는 의지와 욕구의 표현은 아니다.가령 아무리 복고적 취향에 빠진 사람이라도 자가용과 비디오,컴퓨터,고속도로를 포기하고 자전거와 라디오,주판과 뒷골목을 선택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따라서 복고 열풍은 본질적으로 일종의 도피적 일탈심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달리 뒤집어 생각하면,자가용과 비디오,컴퓨터,고속도로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자전거와 라디오,주판,뒷골목을 살리는 길도 있을 것 같다.‘둘 중에 하나’ 보다 ‘둘 다’가 더 좋은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가령 넓고 시원한 고속도로의 편리함도 누리면서 구불구불하고 비좁은 뒷골목의 정취도 살리는 것은 어떨까.특히 다양성을 그 본질로 하는 문화에서는 사통팔달로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나 간선도로와 함께 산마루를 굽이굽이 에돌아가는 오솔길과 미로같이 얽힌 뒷골목도 필요한 법이다.아무리 편리하고 넓은 고속도로나 간선도로도 사람과 자동차가 밀리면 옴싹달싹할 수 없는 교통 체증으로 더 큰 불편을 낳는다.이럴 때 좁고 비좁은 뒷골목은 그러한 체증을 풀어 주는 우회도로와 이면도로의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그러므로 자동차가 다니는 간선도로와 함께 사람이 마음놓고 걸어다닐 수 있는 뒷골목도 마련해야 한다.대동맥과 대정맥도 필요하지만 소동맥과 소정맥,실핏줄도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획일적인 간선도로 문화는 결국 문화를 획일화하고 문화의 흐름을 정체시키는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대규모의 박물관과 공연장,전시장도 필요하지만,소규모의 문화시설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국제적인 비엔날레나 문화 엑스포에 못지 않게 마을축제나 거리의 아마추어 예술도 우리의 삶을 풍요하게 만들어 준다.
  • 리틀엔젤스/李世基 社賓 논설위원(외언내언)

    소파 방정환 선생은 ‘마른 잔디에 새풀이 나고 나뭇가지에 새 움이 돋는다고 제일 먼저 기뻐하는 것이 어린이요,봄이 왔다고 종달새와 함께 노래부르고 나비와 같이 춤추는 이도 어린이’이라고 했다.누군가 어린이를 ‘새싹’에 비유한 것은 무한한 미래의 희망이 그속에 담겨진 탓이다. 올해 어린이날을 앞두고 노래하고 춤추는 민간사절단 리틀엔젤스의 평양방문공연은 어느때보다 값진 의미를 지닌다.지난 85년 ‘고향방문예술단’공연이나 90년 국악인들의 범민족통일음악회와는 달리 어린이들로 이루어진 예술단체로는 최초의 평양방문이기 때문이다.더구나 분단후 처음으로 남북 어린이가 나란히 한무대에 서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른다는 것은 우리 어린이들에게 북한이 남이 아닌,한핏줄 한민족이라는 동질의식을 다시한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된다.여기에 북춤과 장고춤,신고산타령과 몽금포타령 등은 남북 모두에게 낯설지 않은 장단이며 가락이다.티없이 맑고 순수한 어린이들의 예술공연으로 남북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면서 통일의 가능성을점쳐보는 것은 여간 대견스럽지않다.이들은 지난 62년 5월5일에 창단되어 36년간 50여개국에서 5천회이상을 공연했다.90년과 91년에는 구소련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진 공연을 통해 한·러수교의 물꼬를 트는데 기여했다. 영국시인 워즈워스가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듯이 어른들이 나서는 것보다 어느 때는 어린이의 역할이 훨씬 부드럽고 자연스러울 수가 있다.어른들의 계산된 행동보다 때묻지 않은 동심이 긴 세월 얼어붙은 북한과의 경색(梗塞)을 쉽게 녹일 수도 있을 것이다.어린이는 ‘보고 듣고 느낀 그대로를 노래하는 시인’이라고 했듯이 이번 평양방문 공연에서도 종달새처럼 노래부르고 나비처럼 춤추면서 남북통일의 새싹을 틔우는 전초를 만들기를 기대해본다. 이번 평양의 학생소년궁전에서 남북어린이가 함께 부르는 ‘우리의 소원’이 통일의 새싹이 되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 되어 마침내 남북통일의 알차고 단단한 열매로 맺게 되기를 온겨레가 숙연히 기원해볼만 하다.
  • 그래도 대화는 계속해야/金容相 연구위원(남풍북풍)

    대화(對話)란 두 사람,두 집단 이상 간에 교통되는 이야기며 개인이나 집단 간의 관계를 만들어 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대화를 자주 하면 서로간에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만 대화가 단절되면 오해가 생기고 상호 비방이나 반목으로 번지기도 한다.한 핏줄을 이어 받아 생김새와 말과 글이 같고 생각도 비슷한 남북한이 반세기 동안이나 적대시하며 살아 온 것도 따지고 보면 대화 부족에서 비롯된 일이었다.이같은 시각에서 볼 때 그동안 민간차원의 대화만을 고집해 온 북한이 돌연 당국자간 회담을 제의,베이징 차관급 회담에 나타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비록 가시적인 성과없이 끝나긴 했지만 3년9개월 만에 남북의 당국자가 만나 상호관심사를 협의한 것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회담 전 “이번 회담도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비관적인 전망에도 불구,대다수는 일부라도 실천가능한 합의를 도출(導出),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해주기를 기원했었다.남측이 이산가족면회소 설치와 비료지원 문제를 병행처리하자고 제의한 것도 그동안 합의만 있고 실천은 없었던 과거의 비생산적인 남북관계를 청산하고 상호주의에 바탕을 둔 새로운 남북관계의 틀을 짜기 위해서였다.그러나 북측은 일단 비료만 확보한뒤 남북관계 개선문제는 구체적 합의없이 뒤로 미루려는 구태의연한 태도로 일관해 우리를 실망시켰다. 북측은 결국 회담 7일만에 일방적으로 회담 파기를 선언함으로써 ‘북한은 아직도 구태를 벗지 못했으며 남북간 인식의 격차는 여전하다’는 걸 명확히 보여 주었다.특히 북측이 “이번 회담에 응한 것이나 비료문제 외에 상호관심사를 논의키로 한 것 자체가 큰 양보”라는 흰소리에 이어 비료지원을 인도적 문제이며 경제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진짜 인도적 문제인 면회소 설치 운영을 포함한 이산가족 문제는 정치문제라고 강변한 대목에 이르러선 또 한번 아득한‘벽’을 느껴야 했다.그렇지만 반세기를 적대시하며 살아온 남과 북이 한두번 만나 산적한 난제들을 일거에 처리해내기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회담이 한차례 결렬됐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낙담할일은 아닌 것이다.그렇다고 북측에 대화를 강요하거나 구걸할 필요는 없다.그래서 될 일도 아니다.그러나 북측이 태도를 바꿔 다시 대화의 자리로 나오도록 적극적이고 끈질기게 유도해야 한다. 다시만나서 의견이 엇갈린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협의하고 설득을 계속해야 한다.한반도의 평화는 단절없는 남북대화로 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선 안될 것이다.
  • 꽃동네 교육/임영숙 논설위원(외언내언)

    충북 음성 꽃동네가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명소로 새롭게 떠 오르고 있다 한다.경기대,공주대,포항공대등 8개 대학이 올해 이곳에서 2박3일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가졌다는 것이다.뒤늦게 신청했다가 수용시설 부족으로 퇴짜를 맞은 대학들도 있다 한다.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꽃동네는 오웅진 신부가 설립한 사회복지 시설.한 늙은 거지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동냥을 다니며 얻어 먹을 힘도 없는 다른 거지들을 보살피는 것을보고 지난 76년 그들을 위한 보금자리로 마련한 것이다.“얻어 먹을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는 글귀가 새겨진 바위가 입구에 서있는 이곳에는 신생아에서 부터 지체부자유자,행려환자,무의탁 노인등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 2천2백여명이 지금 살고 있다. 꽃동네 부설 ‘사랑의 연수원’에서 이루어지는 대학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전공과정에 대한 설명,학사 행정,교육목표등 일반적인 내용은 물론 오신부의 참된 행복에 대한 강의,사랑과 봉사정신에 관한 영상교육,꽃동네 식구들을 위한 빨래·설겆이·목욕시키기등 봉사활동등으로 구성돼 있다.신입생오리엔테이션이 최근 동문 연예인을 동원한 화려한 쇼,스키장이나 콘도를 이용한 값비싼 행사로 바뀌어 가는 추세속에서 이런 오리엔테이션을 마련한 대학은 박수갈채를 받을 만 하다. 사랑의 결핍때문에 생긴 꽃동네에서 사랑의 삶으로 거듭 태어난 꽃동네 식구들을 보고,개인과 가족과 국가와 인류의 참된 행복을 생각하며,봉사 정신을 체험한 대학생이라면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를 거뜬히 이겨내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걸머질 수 있을 것이다.대학생활의 첫 출발을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함으로서 “그저 자신의 재산과 자신의 핏줄,기껏해 봐야 몇몇 친구들과 늘 지나다니는 길 한모퉁이가 관심의 전부인”(베르나르 쿠슈네 ‘국경없는 의사단’창설자) 무미건조한 보통사람들 대열에서 벗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연수원’은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과 교육관 및 생활관을 갖추고 있다.“꽃동네 오리엔테이션을 거친 대학생들이 멋진 대학생활을 보내고 그들이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사랑의 연결고리가 되기를 기대”하는 연수원 황종현 신부의 염원대로 앞으로 더 많은 대학신입생들이 이곳에서 뜻깊은 새출발을 하기 바란다.
  • “불우아동 돕고싶어 자선음악회 참가”/16세 기타리스트 이애미양

    ◎유니세프 기금 마련 ‘타악기 연주회’ 초청 연주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돕고 싶어 이번 자선음악회에 참가했어요” 소녀 기타리스트 이애미양(16·서울 외국인학교 10학년). 애미양은 지난달 31일 국제연합아동기금(유니세프) 후원으로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유니세프 자선기금 마련을 위한 카로스 타악기 앙상블 연주회’에 초청됐다. 이제 겨우 16살의 나이로 국내 최정상 타악기 연주단 ‘카로스 앙상불’과 협연한 것이다. 이날 자선 공연에서 애미양은 뛰어난 기타실력으로 지르 지말의 ‘바덴재즈’와 비제의 ‘카르멘’,카우프만의 ‘축제의 환호성’ 등을 연주해 1천여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이 음악회를 통해 얻어진 수익금 1천여만원은 세계 불우아동 돕기 성금으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전달됐다. 애미양은 “같은 핏줄인 북한 어린이 등 세계의 많은 어린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안타까웠다”면서 “연주회 기금이 가난한 어린이를 돕는 데 쓰여진다는 생각을 하면무척 기쁘다”고 밝혔다. 애미양은 아버지가 뉴욕주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던 지난 82년 미국에서 태어나 5살 때부터 클래식 기타를 만지기 시작했다.또 애미양은 피아노와 플롯,바이올린 등 음악에 다재다능한 재능을 지녔다.특히 지난 91년 한국기타연맹 주최 제1회 전국 어린이 클래식기타 콩쿠르초등학교 부문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 95년에는 중학생 부문에서 우승하는 등 기타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전쟁(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불 저널리스트 장 귀스넬/인터넷 역기능의 심각성 제기/실증 접근 방식 통해 21세기 정보전 예측/선전국의 통상·군사정보 ‘점령’ 폐해 기술 【파리=김병헌 특파원】 인터넷.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인터넷의 필요성과 중요성,장래성에 대해 서술한 책들도 홍수를 이루고 있다.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르다.부분적이기는 하나 역기능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사이버 스페이스에서의 전쟁’이다.비밀정보 시스분야에서의 ‘전쟁’를 집중적으로 다루고있다.부제도 ‘비밀정보서비스와 인터넷’. 저자 장 귀스넬은 학자가 아니다.저자는 프랑스의 유명 시사주간지 푸엥에서 기자생활을 한 저널리스트.국방문제전문가로 명성이 높다.어떤 면에서는 인터넷에 관한 한 전문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저자는 저널리스트답게 실증적인 접근방식을 통해 인터넷이 21세기의 정보전에 미칠 영향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비밀정보 서비스는 군사분야에서 비밀보장을 생명으로 하는 첩보 및 정보전의 핵심이다.그리고 점차 활발해지는 기업의 경제전쟁에서 비밀정보 서비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저자는 이책에서 과거 암호통신의 형태에서 새로운 통신 총아로 떠오른 인터넷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의 비밀정보 서비스를 둘러싼 세계의 새로운 전쟁을 예견하고 있다. 저자는 인터넷을 하나의 혁명이라고 정의한다.그는 인터넷은 지혜에 다가서는 최첨단 도구라는 설명도 곁들인다.그동안 인간이 몰랐던 것들에 완전히 새로운 지혜로 다가가는 ‘통로’라고 말한다.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인터넷의 순기능을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여기서 인터넷의 양면성을 도출해낸다.특히 ‘지혜의 통로’라는 점에서. 저자는 그래서 인터넷 혁명은 양립되어 있다고 말한다.통신혁명의 기수이지만 냉전종식과 함께 이미 전세계의 새로운 전략이 된 경제 및 군사 첩보전같은 정보전쟁도 인터넷의 세계인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한 투자를 촉진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따라서 이미 현재의 역사자체도 이같은 엄청난 전쟁과정속에 있다고 말한다. 즉,초능력적인 인터넷 연결체제의 도움으로 비밀정보 서비스는 인터넷 망과 망사이에 그들의 가지를 계속 치고 있다는 설명이다.이미 무역분야에 있어 전자상거래에 대한 논의가 최대의 이슈가 되고 있다는 대목에서도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지닌다.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컴퓨터에 정보를 주고 받고 이런 와중에 상대방의 정보를 가로채는 터전이 사이버 스페이스내에 빠른속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미 사이버 스페이스로의 거대한 전쟁에 말려들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그동안 인터넷에 비교적 소홀했던 유럽국가들이 미국의 사이버 스페이스 완전 점령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도 이를 반증한다.사이버 스페이스를 이미 무주공산의 영토개념으로 ‘제7의 대륙’,‘21세기의 신대륙’으로 보고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비밀정보 서비스로 대별되는 정보전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전쟁은 시작됐다.군대는 인터넷 통신망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또다른 새로운 군대는 새로운 무기인 정보기기를 들고 나서고 있다.그러나 여기에 필요한 군사전략은 아직 자신의 길을 닦지 못했다.또 자신들이 전쟁터에서 필요로 하는 군수품을 자기의 창고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길,그리고 지키는 길을 건설하지 못한 상태다” 눈앞에서 전개되는 인터넷 혁명의 전혀 새로운 면인 셈이다.지구상의 어느누구라도 정보의 목적이 되는 시장에 동분서주 하지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를 가질 수 있다면 물론 해커 등의 등장이 시작종은 울린 셈이지만 보다 체계적이고 대규모의 획득과 노획물을 지키기 위한 조치는 추진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이처럼 시작된 정보전이 인터넷의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을 가져다준다는 경고가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가장 큰 핵심이다.“인터넷의 발전이 세계민주주의를 새롭게 진전시키면서 예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한 지구상의 발전을 가져다 줄지는 모르지만 운명적 탄생을 거부할 수 없는 비밀 정보서비스는 그렇지 않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공존공영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강조한다.혼돈주의,중앙집중주의,자유로운 출발과 도착,통제없는 공권력들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인터넷을 통한 통신은 정보수집,구매 및 판매,오락 등의 정보를 제공하거나 전파하지만 비밀정보 서비스는 돈을 벌고 가치를 훔치는 수준을 결코 넘어설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미 모든 분야에 있어 비밀정보 서비스는 인터넷 상의 새로운 영역에서 굳게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그래서 저자는 세계가 자칫 인터넷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21세기의 신경이자 핏줄인 통신의 유일한 수단인 인터넷이 보다 빨라지고 힘세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달았다.단지 그것들은 상업적이거나 개인적인 통신에 영원성을 부여하려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예컨대 군사적인 분야에서는 공격적인 정보망으로 이용될 것이고 경제분야에 있어서는 세계무역의 철학과 전통에 반대되는 의미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그러면 인터넷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하는가.이러한 움직임을 거부할 수 있는가.저자는 거기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내놓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해답 대신 이렇게 말한다.“인터넷은 매우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유리한 존재다.변화의 요소로서 인터넷은 더욱 영광스러운 것이다.이 자체가 어떠한 연결방식보다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원제 Guerres dans le cyberespace.프랑스 라데쿠베르트 포쉬 출판사.310쪽.81프랑.
  • 추울땐 따뜻한 영화가 좋다/‘변검’‘콜리야’등 3편 잇달아 개봉

    ◎가족·부부간의 끈끈한 정 묘사 몸도 마음도 추울 때는 역시 ‘가슴 따뜻한’ 영화가 좋다? 네살바기 아이의 시선으로 삶과 죽음을 다룬 ‘뽀네뜨’가 지난달 개봉,큰인기를 얻은데 이어 인간애를 다양하게 묘사한 영화 ‘변검’ ‘콜리야’ ‘로잔나 포에버’ 등이 이달 중하순 잇따라 선보인다. 이 영화들은 핏줄에 상관없이 새 가족관계로 맺어지거나(‘변검’과 ‘콜리야’), 부부간의 끈끈한 애정(‘로잔나 포에버’)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을 훈훈한 감동에 젖게 하는 작품들.세편이 각각 중국.체코.이탈리아를 무대로 할리우드영화 문법과는 또다른 독특한 감성을 전달하는 것도 장점이다. ‘변검’은 대를 잇기 원하는 노인과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버림받은 소녀가 엮어가는 드라마. 집안에 전해내려온 가면극 ‘변검’의 일인자인 변검왕은 후손이 없음을 우려,구와를 양손자로 받아들인다.그러나 구와가 여자임이 밝혀지자 노인은 아이를 내쫓고 아이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되찾으려 애쓴다.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한 20세기 초 중국이라는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인간의 정과 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이 작품은 96년 도쿄영화제를 비롯 국제영화제 10여군데에서 각종 상을 받았다.오는 25일 서울 호암아트홀.뤼미에르 등지에 오른다. ‘콜리야’의 무대는 소련의 압제에 놓인 1988년의 체코.독신 첼리스트인 루카는 용돈을 벌고자 소련여자와 계약결혼을 했다가 곤경에 빠진다.여자가 5살난 아들 콜리야만 남기고 서독으로 도망간 것.어쩔수 없이 아이를 떠맡게된 50대 남자가 아이와 정들어 가는 과정이 영화의 줄거리. 올해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외국어영화상을 휩쓸었다.13일 서울 시네코아를 비롯,전국 40여 영화관에서 개봉. 이에 견줘 ‘로잔나 포에버’는 부부간의 짙은 애정을 유머러스하게 펼쳐낸 작품.지중해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마르첼로는 동네사람들이 혹시 죽을까봐 걱정이다.병약한 아내는 딸의 묘지 곁에 묻히고 싶어하는데 교구 공동묘지에 남은 자리는 셋뿐이기 때문.따라서 3명이 아내보다 먼저 죽으면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마르첼로는 동네사람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일일이 간섭한다. 지중해변의 풍광이 뛰어나지만 눈물겨운 아내사랑은 더욱 아름답다.‘레옹’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장 르노가 이번에는 정깊은 남편으로 변신했다. 13일서울 코아아트홀 등 개봉. 한편 ‘뽀네뜨’는 가족단위. 주부 등 폭넓은 층의 호응에 힘입어 한달이 채안되는 사이에 서울에서 7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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