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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在美 한국계 유망작가 ‘위안부소설’화제

    꼭 우리 문학이라고 할 수 없지만 격조높은 두 권의 책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미국 유망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계 소설가 이창래(Chang-rae Lee)의 99년작 장편 ‘제스처 라이프’(전2권·중앙M&B·정영목 옮김)는 뉴욕타임즈뉴스위크 등 미국 최고 권위지들로부터 주목받았다.지난 65년 서울에서 태어나 3세 때 미국으로 가족 이민간 작가는 95년 첫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로 미국 주요 언론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펜/헤밍웨이상 등 상을 6개나 받았다.또 뉴요커 지가 선정한 40세 이하 미 문단의 베스트작가 20명 중 한 명으로 뽑혔다. 이 신작 장편은 예의바른 행동으로 주위의 인정을 받아온 옛 일본군 장교출신의 노인이 주인공.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한국인 핏줄 사실과 태평양 전쟁당시의 위안부와 관련된 기억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이 ‘제스처’에 지나지 않았음을 성찰해가는 내용이다.이창래는 미국에서 한국 위안부와 관련된기사를 읽고 이와 관련된 소설을 쓰기 위해 한국에 와 위안부 할머니와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위안부가 아니라 ‘한국인 피의 일본군 장교’ 창작으로 만족해야만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민음사에서 나온 ‘치자꽃 향기 코끝에 스치더니’와 ‘이태백이 없으니 누구에게 술을 판다’ 등 2권은 유명한 한시 180수를 묶는 책.수록된 이백 두보 백거이 소식 등의 시들은 이병한 서울대 중문과 교수(엮은이)가 98년 정년퇴임 직전까지 근 6년에 걸쳐 서울대 인문대 교수들에게 소개하고 같이 즐겨온 명편으로 대부분 4행의 5언·7언절구로서 짧고 이해하기도 쉽다. 김재영기자
  • 張致赫 전경련 남북경협위원장 “경협은 숙명적 사업”

    “이제는 우리 민족을 위해 겸손한 마음으로 남북경협에 동참하겠습니다”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 전경련 남북경제협력위원장으로 수행했던 장치혁(張致赫·67) 고합 회장이 정상회담 수행 이후 처음 말문을 열었다.월남한 사업가로서 지난 10년간 중국을 비롯,북한과 꾸준한 경제교류를 추진해온 장 회장은 그동안 언론의 인터뷰 요구에 “그냥 묵묵히 일할테니 지켜봐달라”며거절했었다.장 회장은 또 최근 고합의 워크아웃 상황에 대해 “정부의 방침대로 기업개선작업 협약을 성실히 진행중”이라며 다소 착찹한 심정을 내비쳤다. ■전경련 남북경제협력위원장으로서 이번 방북의 성과는 남북 서로간의 경협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경협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물론, 앞으로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위해 모든 기업들이 관심을쏟게 됐다. ■방북기간 중 친척 상봉의 소감은 만나러 갈 때만도 서먹했지만 직접 대면 하니 과거는 사라지고 우리는 ‘한핏줄’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이산가족의 상봉이야 말로 평화통일을 위한 지름길이다.다음달 이뤄질 100쌍의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화해무드’가 한층 더 고조될 것으로 믿는다. ■방북 이후 남북경협의 전망은 경협은 정부와 재계가 힘을 합해 꼭 이뤄야하는 숙명적인 사업이다. 방북에 참여했던 경제 5단체를 중심으로 경협협의회를 구성,중복투자 및 과당경쟁을 막고 정보교류를 통해 구체적인 경협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특히 지난해 10여명의 월남 사업가들이 설립한 ‘고향투자협의회’의 활동이 활발해질 전망이다.최근 협의회는 서해안 남포와 동해안 신포를 시작으로투자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북한기업들의 자립을 돕고자 하는 사업가들을 중심으로 회원을 6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투자규모는 처음 1억달러씩2곳에 2억달러 목표를 세웠다. 대기업의 투자못지 않게 작은 회사들이 뭉쳐돕는 것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합의 워크아웃이 진행중인데,회생 가능성과 이사회 의장으로서 책임감은 재무개선협정에 따라 워크아웃을 착실히 진행중이다.2년전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약정에 따라 이행한다면 회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었고,지금도그렇다.현재는 이사회 의장일 뿐 경영일선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다만 현 경영진의 지원요청으로 중국 러시아의 시장개척 문제를 도와주고 있다.현재 전문경영인들이 기업개선을 위해 애쓰고 있어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 ■최근 현대사태 등 오너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데 워크아웃 뿐 아니라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도 정부의 방침대로 이행한다면 시장의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고합도 이사회 구성이나운영 등에서 전문경영인 중심의 선진기업화를 추구하고 있다. 장 회장은 “전경련 남북경협위원장 자리를 ‘봉사직’으로 생각한다”면서 “직책에 연연하지는 않겠다”고 덧붙였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인터뷰/ MBC ‘뜨거운 것이 좋아’만호役 유오성

    “지금까지 제가 맡은 배역 중에서 가장 성실해요.작품 들어갈 때 작가가이번에는 좀 멋있게 보여야 한다고 특별주문까지 했어요”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일명 ‘무대뽀’로 이름을 날린 유오성.어느 작품이건 겹치기 출연을 하지 않는 그가 이번에 선택한 배역은 지난 10일시작한 MBC ‘뜨거운 것이 좋아’의 강만호다.만호는 카드회사에 근무하다고향친구인 진상(김명민)의 계략에 말려 회사에서 쫓겨난다.그 뒤 벤처 아이디어로 진상에게 접근,그를 알거지로 만드는 등 통쾌한 복수를 한다. “배역이 참 맘에 들어요.열악한 환경에서도 기득권자들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잘될 수 있다는 생각이 실현되잖아요.제 스스로 반골성향이 있어서더욱 맘에 드는지도 모르죠.힘겹지만 좋은 것을 지키려 애쓰고 버티는 사람을 연기하고 싶어요.돈 받고 연기하면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노력해야죠” 그의 반골성향은 그동안의 연기경력을 보면 수긍이 간다.97년 영화 ‘비트’에서 조직의 배신으로 죽게 되는 깡패,98년 MBC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는 거대 음반사와 싸우는 연예인 매니저,97년 연극 ‘칠수와 만수’에서는사회에 대한 불만을 안고 사는 칠수 등 장르를 가르지 않고 출연하면서도 맡은 배역은 ‘기득권과 싸우는 한 인간’이었다. “어떤 장르에 출연하느냐보다 무엇을 연기하느냐가 더 소중해요.물론 장르마다 장단점이 있지요.연극은 모든 스태프들이 3∼4개월 동안 하나의 주제를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이 있어 좋아요.제 고향이기도 하고요.영화나 TV는 집요함은 없지만 속도감이 있어 좋아요”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인 유오성은 92년 연극 ‘핏줄’로 데뷔했다.그 뒤아르바이트 삼아 ‘닥터 봉’,‘테러리스트’등 영화에 간간이 출연하면서도 ‘늙은 도둑의 이야기’,‘러브레터’등 연극에서 꾸준히 연기경력을 쌓았다.“연기는 남의 이야기를 대신 하는 겁니다.진정한 연기자라면 자신이 아닌 그 사람의 모습이 전달되도록 해야 합니다.지금의 스타시스템에서는 스타가 어떤 배역을 하건 스타의 이미지는 그대로 갖고 가죠.그런데 40대 이후를 생각하는 연기자라면 그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체력이 닿는 한까지 연기자로 남고 싶은 게 유오성의 바람이다. 전경하기자 lark3@
  • 신간 엿보기

    ◆위대한 이인자들(데이빗 히넌·워렌 베니스 지음,최경규 옮김,좋은책만들기 펴냄) 1등을 위해 2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2등의 신화를 밟고서야 1등이 빛날 수 있었음을 역설하는 책. 일인자의 곁에서 묵묵히 협력정신을 발휘했던 2인자들을 무대 한가운데로 불러냈다. 로버트 이튼 회장을 도와 크라이슬러사의 회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로버츠 러츠,트루먼 대통령의 오른팔이 되어 대전후 황폐화된 유럽을 재건하는 마셜플랜을 창안한 조지 마셜,마이크로소프트사의 실질적인 전략가 스티브 발머 등의 숨은 면모가 공개된다.9,000원◆한국생활사 박물관(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지음,사계절 펴냄)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가 1년 8개월여 준비기간을 거쳐 내놓는 전체 15권짜리 시리즈.그중 1권 ‘선사 생활관’과 2권 ‘고조선 생활관’이 먼저 선보였다.산업사회의 급변하는 생활문화속에서 과거의 생활상들을 추상적으로밖에 접할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생활사를 통한 역사읽기는 가치가 크다.이시리즈는 그점을 간파했다.복원된 생활사를 뼈대로삼아 한반도 100만년 역사를 시대별로 재구성했다. 각권마다 40여점의 그림과 100여장의 사진들이 해당시대의 생활상을 이미지로 전달한다.전2권 각권 1만5,000원◆암자에는 물 흐르고 꽃이 피네(정찬주 지음,민음사 펴냄) 성철스님의 일대기를 담은 ‘산은 산 물은 물’,한용운의 삶을 그린 ‘만행’ 등의 소설로알려진 정찬주씨가 전국 심산에 흩어진 외딴 암자들의 정취를 책으로 엮었다. 책속에서 작가가 공을 들여 편답하고 있는 암자는 30곳.성철스님의 삼천 배가 화두로 살아있는 합천 가야산 백련암,일타스님이 손가락 열두 마디를 기름불에 태우며 수행정진한 봉화 태백산 도솔암 등 유서깊은 공간들을 엄선했다. 작가가 직접 찍은 천연색 사진 68장이 갈피갈피에서 고졸한 여운을 더해준다.찾아가는 길도 짤막하게 안내했다.1만2,000원◆21세기@고전에서 배운다(김윤식외 183명 지음,하늘연못 펴냄) 지혜가 담긴 고전은 인간의 삶에서 실핏줄 역할을 해왔다.한국의 대표문인 183명이 모래알같이 많은 고전들 중에서 친절히 옥석을 가려놓았다.그들의 진지한독서체험 끝에 걸러진 고전은 세계 지성계를 풍미한 278명의 노작 396권.한국의 문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고전 목록을 추천하고,그 가치와 효용성을 통해과거의 성찰과 미래의 전망을 시도하게 한다. 김시습,김소월,박경리,셰익스피어,도스토예프스키,프로이트,레비스트로스 등 책에서 조명되는 작가들은 동서양을 넘나든다.전2권 각권 1만2,000원
  • [대한시론] 민족통일 먼저 하자

    6·15 남북 공동선언은 한마디로 7·4 남북 공동선언에서 밝힌 통일의 3대원칙(자주,평화통일,민족 대단결)에 입각한 통일 선언이다.여기서 말하는 통일은 사회제도의 통일이 아니다.민족차원 통일을 의미한다.공동선언 내용은사회주의 또는 자본주의 등 계급주의를 초월한 민족 논리로 일관돼 있다. 특히 이번 공동선언의 5개항 중 제2항의 경우 통일의 방향으로 우리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에 접근했다는 것은 이념과 제도를 초월한 민족 논리의 집중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공동선언 제2항은 ‘남과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 제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되어 있다. 이처럼 통일 방안이 접근했다는 것은 통일을 민족 차원과 제도 차원으로 구분하고,민족 차원의 통일을 먼저 이룩하고 사회제도 통일은 훗날로,길게는다음 세대로 미루자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사회제도의 통일을 뒤로 미루고 민족 차원의 통일을 먼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한반도 분단의 성격과 남북간 사회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알다시피 한반도의 분단은 전적으로 외세에 의해 강제되었다.중국처럼 내전에 의한 것이 아니며 베트남과 같이 반식민지 투쟁 과정에서 갈라진 것도 아니다.전범국인 독일과도 다르다.한반도의 분단은 분단될 아무런 이유도 없었으며 일제 식민지였다는 것이 원인이다.38선을 경계선으로 미·소의 정치적 흥정 결과로 분단된 것이다. 결국 우리 민족은 남북으로 갈라져 냉전체제에 편입되고 반세기 이상 남북대결이라는 불행한 역사를 걷게 되었다.오늘날 남북이 상이한 이념과 사회제도를 이루고 있는 것은 분단이 원인이며 그 결과로 생긴 것이다.이처럼 한반도의 분단은 ‘강제된’ 민족의 분단이며 사회제도 차이로 인한 분단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분단 이후 남과 북은 반세기 이상 서로 다른길을 걸었기 때문에 이념과 사회제도 면에서 공통점은 거의 찾아 볼수 없으며 서로 이질적 관계에 있다. 흔히 통일이라고 할 때 제도상의통일을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다.다시 말해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제도를 하나의 사회제도로 단일화한다는 뜻이다.서로 이질적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 제도의 동질화를 통한 통일을 추구한다면 어느 일방이 타방을 전복,흡수하는 것으로 될 수밖에 없다.이는 냉전의 연장이요,현실성이 결여된 반통일론이다.우리 민족은 핏줄,언어,문화,영토의 공통성을 유구한 역사에서 공유해왔기 때문이다.민족 동질성이 어느 민족보다도 강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기도 했다.회담에 앞서 서울에 온 북한의 어린 소년예술단의 감동적인 공연,인체예술의 극치라고 평가받았던 평양교예단의 공연은 연 15만명에 이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우리는하나’라는 것을 확인케 했다.또 모두가 함께 어울려 눈시울을 적시며 통일의 노래를 열창했다.평양에서는 정상회담을 마치고 송별오찬에서 남북 정상이 함께 힘껏 ‘통일의 노래’를 불렀다.이는 민족의 동질성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처럼남과 북이 비록 이념과 제도상의 차이는 있다고 하더라도 민족 동질성을 바탕으로 한 통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다시 말해 제도의 통일은 뒤로 미루고 민족 차원의 통일을 먼저 하자는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양 제도가 공존공영하는 것을 전제로 한 통일의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그것이 연합제이든 연방제이든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그리고 상이한 양 제도가 공존하면서 점차 하나의 제도로 창조해나가면 된다.남북 정상이 통일 방안에서 접근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민족 통일이 먼 장래가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확신을,그를 하루속히 실현시켜야 겠다는 용기를 안겨준 계기가 됐다고 강조하고 싶다. [金 南 植 경실련 통일협회 고문]
  • [발언대] 이산가족 상봉 많이 이뤄졌으면

    온 국민들의 관심속에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로 ‘6·15공동선언’이 발표됐다.이후 그에 따른 후속조치가 각 부문에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남북 이산가족들의 상봉문제 역시 그 하나다.요즘 통일부에는 기족상봉신청을 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데 하루 평균 300∼400명이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8·15를 전후하여 100여명 가량 이산가족의 상봉을 추진한다는언론의 보도를 접했다.우리가족도 이산가족이다.살아있다면 일흔쯤 됐을 외삼촌과 상봉하기 위해 신청해놓은 터이지만 이런 상태로 올해 일흔 넷인 어머니께서 생전에 동생을 만날 수 있을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현재 통일부나대한적십자사 등 관계기관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한 가족들 가운데 고령자,부모형제 등 순으로 상봉인원을 확정할 것이라고 한다.이렇게 된다면일반 이산가족들의 만남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한달에 이 정도 규모로 한번정도 상봉이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면 상봉신청 접수된 이산가족들의 만남이이루어지려면 십수년이 걸려도 어렵다고 생각한다.1,000만 이산가족의 상봉욕구를 풀어주기에는 너무나 멀다. 따라서 보다 많은 이산가족들의 궁금증과 회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먼저모든 이산가족에 대한 생사여부부터 확인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리고 확인된 가족 가운데 경조사가 있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상봉하도록 주선했으면 한다.남과 북의 흩어진 가족들이 결혼식에 참석하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여 한민족 한핏줄임을 확인한다면 그 상봉효과는 더욱 진하고클 것이다. 다음으로 생사가 확인된 이산가족들은 먼저 서신부터 교환한 후 판문점 등일정한 장소에서 상봉을 추진했으면 한다.마지막으로 서로 사는 곳을 방문하여 이산의 회한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으로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추진해 나간다면 보다 많은 이산가족이 고루 혜택을 입을 수 있음은 물론 통일에의 분위기도 확산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동균[부산시 해운대
  • 남북 화해시대/ 金대통령 국무회의 발언-정상회담 뒷얘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에서 알려지지 않은 남북정상회담 뒷얘기를 공개했다. ◆국무회의 김 대통령은 남북간 이해와 신뢰가 높아진 사례를 털어놨다.“이제까지 적대 속에 살아왔고 사상을 달리해 원수처럼 대해 왔지만,속을 들여다 보면 북측이나 남측이나 같이 한 핏줄이고 서로 그리워하고 있었다”고전했다.또 “앞으로 남북이 대화로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됐다”면서“그 쪽도 전쟁을 원치않고 있다”고 강조했다.그 사례로 “목란관 만찬석상에 북한 국방위원들이 평복을 입고 나왔고,나에게 인사를 했는데 이것은 상징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북측에서 ‘통일’ 얘기를 많이 얘기했다”고 전하고 “그래서 내가 ‘28년전 7·4 공동성명을 발표했으나 그동안 한발짝도 더 나가지 못했다. 기본합의서도 마찬가지다.선언도 중요하지만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통일방안 합의경위에 대해서 김 대통령은 “내가 오랫동안 구상해온 3단계통일방안을 설명했더니,김 위원장이 배석한 김용순 대남비서와 한참 얘기끝에 낮은 수준의 연방제 얘기가 나왔다”며 “이것까지 논의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으나 회담과정에서 자연스레 얘기가 나와 하다보니 접점을 찾았고,합의문에 넣게 됐다”고 말했다. ◆추가 뒷얘기 2박3일간의 평양 일정에서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단독으로만난 시간은 어림잡아 6시간 20분에 이르는 것으로 청와대는 추산했다.13일평양 순안공항에 도착, 백화원 영빈관으로 이동하는 동안의 ‘리무진 회담’이 50분에 이른다.이어 백화원 영빈관에서 두 정상은 30분간 요담했다.14일에는 2차 정상회담을 통해 무려 3시간 50분간 회동했다.15일 오찬에앞서 단둘이서만 30분 가까이 회동이 이뤄졌다.사실상의 3차 정상회담이라는 설명이다.두 정상은 이어 순안공항으로 향하는 길에서 또다시 40분 간 ‘리무진 회담’을 가졌다. ◆김 위원장은 15일 대남비방 중단을 군부에 지시하면서 ‘솔선수범’을 유독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김 위원장은 “과거처럼 하면 합의문이 한낱 종이장이 돼버리고 만다”며 단호한 어조로 대남비방 중단을 지시했다는 것이다.주위의 군사위원들이 “남쪽에서는 계속 할텐데 우리만 중단하면 되느냐”고 반론을 제기하자 김 위원장은 “그렇더라도 북이 먼저 모범을 보이라. 합의가 이뤄진 뒤 남북이 과거 분위기로 돌아가면 안된다”고 못박았다.합의이행에 대한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는 것이 박 대변인의 설명이다. ◆15일 고별오찬에서는 성씨가 화제가 됐다.김 대통령이 “어디 김씨냐”고묻자 김 위원장이 “전주 김씨다”고 했다.그러자 김 대통령이 “나는 김해김씨니까 김위원장이 진짜 전라도”라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이희호(李姬鎬)여사가 “나는 전주 이씨”라고 거들자 김 위원장은 “우리 일가 만났다”고말해 웃음이 터졌다. 양승현 진경호기자 yangbak@
  • 金大中대통령 귀국 인사말

    역사적인 방북 임무를 대과 없이 마치고 지금 귀국했습니다.임무를 수행할수 있도록 밤잠을 자지 않고 성원한 국민들에게 충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민 여러분,우리에게 새날이 밝아 오고 있습니다.55년 적대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습니다.나의 방북이 한반도 평화,남북 교류협력,그리고 종국적으로 통일로 가는 길을 닦는데 보탬이 된다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남 자체가 중요합니다.평양도 우리 땅이고 평양시민들은 우리와 같은 핏줄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그들이 그동안 겉으로 뭐라고 이야기했든 남쪽에대한 그리움과 사랑,정이 깊이 배어 있었습니다. 1,300년간 이어온 통일민족이 55년의 분단 때문에 영원히 외면하고 정신적으로 남남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이번에 평양에서 우리가 미래에화해와 협력을 할 수 있고 통일도 할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북측(김정일 위원장)에 이야기했습니다.세계는 지금 인류역사상 혁명시대에들어갔고 무한경쟁시대에 같은 민족끼리 내부의 힘을탕진하면 결국 우리 민족이 근대화에 실패했던 과거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했습니다.한반도 주변4대국은 우리를 지배하는 제국주의가 아니라 우리의 시장으로 이용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더 이상 적화통일도,흡수통일도 안되고 남북이 서로 공존공영하면서 차츰 통일의 방향으로 나가자고 제의했습니다.우리 민족을 21세기 세계 일류의 한반도로 만들자고 했고,김위원장도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이제 가능성을 보고 왔다는 것 뿐입니다.시간이 걸리고 인내심이 필요합니다.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으로 상대방을 생각해야 합니다.대한민국의 주체성은 추호도 흔들림 없되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면서 쉬운것부터 하나하나 밟아가면서 통일의 길로 가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이번 방북동안 북측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문서로 만들어 전달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쟁 없이,적화통일이나 흡수통일 없이,함께 공존공영하면서 새로운 21세기를 헤쳐나가는 것입니다.하늘이 도와서 우리 민족의미래가열릴 것이고 후손들에 자랑스런 한반도,번영된 조국을 물려줄 것을확신합니다.
  • 남북 화해시대/ 수행원이 전하는 평양소식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역사적인 평양 방문을 수행한 130명의 공식·비공식 수행원들도 얘기 보따리를 한아름씩 들고 왔다.수행원들이 전해온 생생한평양 소식을 모았다. ◆만찬장서 자잣기 낭독 고은시인. 시인 고은씨(高銀·67·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고문)는 15일 “북한도 이제까지의 대결구도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각성을 보여준 것 같았다”고 2박3일 동안의 방북소감을 밝혔다.이날 저녁 서울에 도착,청와대 연무관 뒷뜰에서 북한을 함께 다녀온 특별수행원들과 기념촬영으로 해단식을 대신한 뒤 상기된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그동안 남북 사이에 몇차례 합의서 작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하나의‘언어’로만 남았지 진전이 없었지 않느냐”면서 “그러나 이번 방북에서채택한 남북공동선언은 공존의 인식을 새로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4일 밤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위해 만찬을 베푼 자리에서 ‘대동강 앞에서’라는 제목의 장시(전문32면)를 낭독하여 분위기를 숙연케 했었다.“시는 그날 아침에 쓴 것”이라면서 “당초에는 낭독할 계획이없었으나 시를 썼다는 사실을 강만길(姜萬吉)고려대 명예교수가 좌중에서 얘기하는 바람에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15일 동명왕릉을 방문했을 때 큰절을 올린데 대해서는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은 우리 시조”라며 자신이 동명왕과 같은 고씨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환히 웃었다.특히 북한에 머무는 동안 사회문화단체를 총괄하는 김영대 민화협위원장 겸 사회민주당 위원장과 만났다고 소개하고 “그에게 ‘통합문학독본’같은 것을 만들어 남북이 함께 공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는 ‘통합문학독본’을 만드는 공동작업의 가능성에는 “8·15 이산가족상호방문이 성과를 거두고 양쪽이 공명을 얻으면 쉽게 이루어지지 않겠느냐”고 낙관하는 표정이었다.김정일위원장의 인상은 “처음 만났지만 생각과는전혀 다른 느낌이었다”면서 “속에 있는 말을 결코 에두르지도,꾸미지도 않는 허심탄회하고 인간적인 풍모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지난 98년7월 보름 동안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고씨는 “그 때와 지금은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면서 “이번에는 민족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사적순간에 동참했다는 감격을 느꼈다”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최학래(崔鶴來) 한국신문협회 회장. 한마디로 엄청난 변화를 목격하고 왔다.두 정상의 만남은 오래 전부터 사귀어 온 사람들의 일처럼 여겨질 정도였다.지난 90·98년 방북 때 주민들이 ‘천편일률’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던 반면,이번에는 그들 모두가 남측 인사들에게 거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대했다는 점에서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개인적으로는 남북간 언론교류의 물꼬를 틀 계기를 마련한 것이 최대의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측 언론 3단체(신문협회,편집인협회,기자협회)가 계획한 남북간 언론교류 제안서를 북측 기자동맹에 전달했는데 곧 답변을 줄 것이라는 전언을 들었다. □이해찬(李海瓚) 민주당 정책위의장. 김영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만나 국회 회담 재개 문제를 요청했었다.그때는 남북회담 합의문이나오기 전이어서 회담 결과가 나오면 대답하겠다고 했었다. 양형섭 부위원장과도 같은 얘기를 했는데 노동당 쪽에서 협의해 회답을 주기로 약속했다.앞으로 의장단 선에서 서로 연락을 할 것이다.이번에 내가 방북한 것도 이만섭 국회의장의 남북 의회교류 당부 때문이기도 하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신문에 난 것처럼 활달하고 소탈했다.식량난 등 북쪽 사정이한결 나아짐을 느꼈으며 북 인사들의 태도가 진지하고 성실했다. □장상(張裳) 이화여대 총장. 남북한 여성이 갈라진 한반도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자고 다짐했다.또 삼천리 금수강산을 지키는 환경운동 협력 등 여성교류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북한의 탁아소시설은 남한에 비해 너무나 잘 돼 있었다.덕분에 여성의 49%가 직장에 다닌다고 했다.북한여성들이 너무나 활동적이고 일인다역을 당차게 해내는 모습이 참 인상깊었다. 여원구 최고인민회의 부의장,홍선옥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 전쟁 피해자 보상대책위원장,천연옥 여맹위원장은 자신의 힘으로 최고위치에 오른 유능한여성지도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장치혁(張致赫)고합 회장. 머리로만 생각하다가 직접 가서 보니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다.가슴과 가슴이 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평양을 떠나오기 하루 전날인 15일 자정 청룡호텔에서 친척 2명을 극적으로상봉했다. 사업차 북한을 몇차례 방문한 적은 있지만 가족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생각했던 것보다 잘 지내고 있더라. 방북일정이 빠듯해 고향땅(평북 영변)엔 못갔다. 이제 이산가족 만남이 테이프커팅된 거나 마찬가지다.북한 경제인 대여섯명과 한차례 경제인 회담을 가졌다.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등 제도적 장치 마련에 합의를 보았다. □김민하(金玟河)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머물렀던 2박3일은 감격과 영광의 연속이었다.북측 동포들을 만나보니 남북 통일에 대한 큰 희망과 우리 민족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졌다.회담은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 철학이 가져온 진효(眞效)다.남북한 7,000만 동포는 물론 전 세계인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북측의 지도자들이 김 대통령의 통일 철학에 신뢰를 가졌다는 확신이들었다.작심하고 회담에 나온 것 같았다.대화 의지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남북간에 서서히 화해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 □이완구(李完九)자민련 의원. 이번 평양 방문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내 생애 최대의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서독의 브란트 전 총리가 말했듯원래 하나였던 것이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다.순안 비행장에서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뜨겁게 악수를 나눴던 순간은 마치 정지된 활동사진을 보는 듯했다.회담의 명칭은 남북정상회담이라기보다 가족상봉회담이라고 불렀어야 맞다.한 민족이라는 강한 형제애를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북측 인사들은 우리를 따뜻하고 정성어린 진심으로 환대했다.통일을 바라는 의지였다.그동안 북측에 가졌던 이미지는 모두 잘못된 선입견이었다. □차범석(車凡錫) 예술원 회장. 55년을 기다려온 보람이 있었다.서로 머리맞대면 실마리가 풀릴 일을 왜 그렇게 오래 먼길을 돌아왔는지 돌이켜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이번 방북의 성과물은 ‘통일문학전집’ 발간이다.남북한 작가의 작품100권을 싣는 전집발간은 북측 민화협과 협의를 끝냈다.예정했던대로 2002년까지는 완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방북길에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면,그것은 환영·환송식에나온 시민들의 열광적인 표정들이다.우는 사람도 많이 봤다. 나는 그들의 눈물이 모두 진심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강만길(姜萬吉)고려대 명예교수. 분단 55년만에 남북정상이 만난 역사적 현장을 목격한 것은 한마디로 엄청난 감격이었다.이번 정상회담은 끊어진 국토와 민족의 핏줄을 잇는 초석이 된 사건이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어 파격적으로 환대했다.그동안 알려진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김 위원장은 대단히 이활하고 소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또 악수를 하는 손에 힘이 들어 있었다.평양시내는 차분하고 조용한 모습이었으며 궁핍해 보인다는 인상은 느끼지 못했다.출발전 북한 역사학자들과의 만남을 기대했으나 이번 일정이 너무 빡빡해 이뤄지지 못해 아쉽다. □김재철(金在哲)무역협회 회장.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경협의 확실한 물꼬를 튼 것 같아 경제단체장의 한사람으로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투자보장 및이중과제방지,분쟁조정절차 등 제도적 뒷받침만 된다면 경제단체든 기업이든협력할 준비가 다 돼있음을 함께 확인했다.북한 관계자들은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적 남북 경협을 통해 강대국으로 거듭나자”고 말했다.특히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의 정운업(鄭雲業)회장은 남북경제협력공동위를 통해경제협력을 구체화시키자고 강조해 인상적이었다.앞으로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진다면 구체적인 남북경협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
  • 남북 정상회담/ ‘합의 서명’각계 표정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15일 이산가족 상봉 등 5개항에 걸쳐 합의를 이끌어내고 합의서에 서명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다시 한번 놀라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시민들은 밤 늦게까지 TV를 통해 속속 전해지는 남북정상회담소식을 접하며 설렘으로 밤을 새웠다. 탈북자 정남(鄭男·28·연세대 신방과 1년)씨는 “TV를 통해 평양 거리와사람들을 보니 왈칵 울음이 쏟아져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면서 “김대중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것 자체만 해도 정상회담의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구체적인 성과까지 나와 감격스럽기 이를 데 없다”고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제일슈퍼 주인 김봉제(金鳳濟·58·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5개항 합의 소식을 들으니 앞으로 세금을 많이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하지만 통일만 된다면 세금을 더 내는 것은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김씨는 또“남북 정상이 5개항에서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통일의 기틀을 닦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흥분했다. 상지대 김정란(金正蘭·여·시인) 교수는 “남북이 합의한 5개항은 국민들의 바람을 잘 반영한 것으로 보이며 구체적인 실행에 들어가기까지는 조정해야 할 문제들이 많겠지만 원칙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데 큰 의미가 있다”고평가했다. 스포츠 칼럼니스트 고두현(高斗炫·65)씨는 “사상과 체제에 큰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도 정서적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사회·문화·스포츠 교류가 우선 확대돼야 한다”면서 “특히 축구·탁구 등의 종목에서 국제대회에 단일팀을 구성해 출전한다면 성적 향상은 물론,남북의 이질감을 해소하는데 큰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한출판문화협회장 나춘호(羅春浩)씨는 “남북한 사이에 놓여있던 큰 걸림돌이 해소된 듯한 느낌이며 앞으로 남북간 교류가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그러나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기보다는 긴 안목에서 추진해야하며, 특히 기술·농업을 비롯한 전문 분야 서적이나 공연 등 이념 문제가적은 부문부터 교류를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강원도 통천이 고향인 실향민 김덕환(金德煥·66·서울 동작구 신대방 1동)씨는 “남북 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민족화해를 논의하는 장면을 50여년 동안기다렸으며,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는 것을 보고 한핏줄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고 말했다.김씨는 이어이산가족 상봉 합의 소식에 “부모님들은 나이가 많으셔서 돌아가셨겠지만누이들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여한이 없다”면서 “지금이라도 당장 고향마을로 뛰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월드컵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이무용(李武容·33·서울 관악구 봉천동)씨는 “서울에 올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기다려진다”면서 “평양에서도 월드컵이 열려 체육 방면의 물꼬가 우선 트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씨는 이어 “중·고교생이나 대학생들의 교류도 통일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영우 이창구기자 ywchun@
  • [사설] 남북회담에 쏠린 세계의 눈

    남과 북의 두 정상이 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만나 뜨겁게 손을 마주 잡으면서 시작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은 7000만 한민족은 물론 세계의 감동과기대를 모으고 있다.지금 세계의 눈은 온통 한반도에 쏠려있다.서울 롯데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는 각국에서 몰려든 세계 유수한 언론매체 기자들의취재 열기로 뜨겁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세계 각국의 반응은 한결같이 환영과 회담성과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다.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이번 정상회담이 남·북한간의상호신뢰와 협력시대의 시작이 되기를 희망하며 남북한의 통일은 물론 한반도와 주변지역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향한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미국을 비롯한 중국과 러시아,일본 등 주변 4강과 유럽 각국들도 남북정상의 역사적인 첫 만남을 환영하며 남북관계의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고 있다.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인 남·북한이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오랜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가는 순간을 세계가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고있는 것이다. 남북정상의 역사적인 만남이 아무리 감동적이라 하더라도 한두번의 회담으로 반세기 이상 얽혀온 남북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만남에서 남·북한이 한 핏줄이며 양측 모두 전쟁과 대립보다는 평화와 협력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고,세계에 확실히 알리는 것만 해도 크나큰 성과라 할 것이다.이번 회담을 시작으로 이제부터 만남을 거듭하며 신뢰를 쌓아가고 교류와 협력을 넓혀나가면 민족의 염원인 통일도 머지않은 장래에 이룰 수 있을 것이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말처럼 큰 합의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부터 실천해나간다는 자세가 중요하다.한반도에 쏠린 세계의 관심에 답해야할 것이라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다짐도 이번 회담의 성과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 국제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도와야할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남북분단의 비극도 결국 우리의 의사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외세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한반도의 분단을 가져왔던 동서냉전체제가 무너진 지 이미 오래이고 이데올로기의 대립도막을 내렸다.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체제는 동북아는 물론 세계 평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국제사회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좋은 결실을 맺고 그성과가 통일로까지 이어지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아끼지말아야 할 것이다.
  • 기고/ 두 정상 만남을 보고

    만시지탄이 있다.남북의 정상이 나란히 서서 군대를 사열하는 저 모습을 보아라.남북이 만났다.오늘이 있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것은 바로 7,000만 민족이 가슴을 드러내놓고 화해와 신뢰를 회복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눈물이 나면서 참으로 내 자신부터민족 앞에,이 겨레 앞에 너무나 잘못한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뉘우친다. 왜 진작부터 우리가 좀 더 가까이서 믿고 사랑하며 서로 도와주는 그런 마음씨와 이를 실천하는 행동이 없었던가. 오늘의 이 장면은 남북의 모든 형제들이 지켜봤을 것이다.그리고 남과 북이바로 같은 형제라는 것을 가슴에 새겼을 것이다. 두 정상은 오늘 진실로 인간으로서, 같은 핏줄을 나눈 형제로서 우리가 공존하고 상호 왕래하며 함께살아가는 번영의 날을 기원했으리라고 믿는다. 이것은 바로 두 정상의 표정에서, 또 이를 반기는 북한 겨레들의 순수한 마음에서 읽을 수 있다. 앞으로 북녘 정상이 서울에 올 것이다.나는 몸이 좋지 않은 형편이지만 그때는 거리에 나서서 열렬히 환영하겠다. 북한에는 내 아우가 있고 누님이 계시다.내 아우와 누님들도 오늘 남에서간 우리의 지도자를 먼 발치에서나마 봤을 것으로 상상한다.누님들과 아우는마치 남쪽으로 나간 나 자신을 보는 것처럼 다시 한번 그리움에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 없다. 정상회담이 훌륭하게 진행될 것을 나는 믿는다.쌍방간에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7,000만이 한 민족으로서 온 세계에 존재를 드러내면서 번영을 누리는 그런 나라가 될 것을 두 분은 다같이 다짐할 것이다.또 앞으로 해나가야 할 많은 과제와 많은 구상을 서로 가다듬어 오늘의 이 만남을 길이 역사에 빛나는것으로 만들 굳은 결심을 할 것으로 나는 믿는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날이요,진실로 아름다운 하루였다.고마운 일이다. ◆ 김규동 시인.
  • 남북 정상회담/ 시민 표정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순안공항에서 직접 영접하고 북한 주민들이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을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지켜본 국민들은 감동과 놀라움에 휩싸였다. 대다수 국민들은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남과 북이한핏줄임을 새삼 확인하며 회담의 성공을 기대했다.일부 시민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편길석(片吉錫·67·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씨는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모습을 보니 너무 감격스럽다”면서 “나도 죽기 전에 평양에 한번 가보고싶다”고 활짝 웃었다. 순안공항에서 회담 장소인 백화원영빈관으로 가는 길목에 환영나온 평양시민들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본 황재환(黃在換·70·경기도 남양주시 오남면)씨는 “벌써 통일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면서 “남과 북이 한핏줄임을 확인했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주부 문은경(文銀景·25·서울 강남구 개포동)씨는 “두 정상이 오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말했다.김재우(金在雨·51·건축업·경기 용인 수지읍)씨는 “건축현장에서 일을 하다 정상회담이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근처 부동산소개소로 가서 텔레비전을 봤다”면서 “김 위원장이 직접 마중나온 것을 보고 북한이 생각보다 적극적인자세로 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정상회담의 성공을 낙관했다. 유창순(柳昌淳·71·황해민보사 편집국장)씨는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하는모습을 보니 50년 동안 가시지 않았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면서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통일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향민 2세인 조남일(趙南一·32·변리사)씨는 “두 분이 만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면서 “빨리 북한에 있는 친지들을 만날 날이 오면 좋겠다”고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대전시 동구 성남동 형제의 집 미전향 장기수인 김용수씨(68) 등 3명은 “남북의 정상이 만나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힘들었던 일이 눈녹듯 사라졌다”면서 “정상회담이 분단을 종식하고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근본문제부터 차근차근 해결할 원칙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향민 이성만(李成萬·64·평북 중앙도민회 총무부장)씨는 “김 위원장이공항에 나와 대통령을 영접하고 차에 함께 타는 모습을 보니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대통령이 우리를 대신해 고향 땅을 밟아주셔서 망향의 한이 풀리는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소설가 황석영(黃晳暎)씨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두 정상이 서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황씨는 이날 오전 인천 뉴스타호텔에서 ‘분단시대의 문학’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갖고 “북한이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것은 그들도 인정하는 사실인데 굳이 이를 들먹여 북측을자극하지 않는 것이 좋다”면서 “북측도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만을 상대하려는 접근방식을 버리고 남측을 협상의 상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남북 정상회담/ 서울서 평양까지(I)

    남북이 분단된 지 55년 만에 한반도의 하늘길이 활짝 열렸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7,000만 겨레의 통일 염원을 가슴에품고 13일 역사적인 평양 방문에 나섰다.평양 순안공항에서 김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간의 첫 상봉 장면은 감격 그 자체였다.남과북의 한 핏줄들은 뜨거운 동포애를 느꼈다. > 2000년 6월13일 오전 10시37분.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의 문이 열리고,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비행기 트랩의 위 아래에서 얼굴을 마주했다.남북을 가로막아 온 분단 55년의 역사가 새로운 장을 여는 순간이었다. 김 대통령을 태운 전용기는 서울공항을 이륙한 지 67분 만인 오전 10시25분평양 순안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순안공항을 감싼 창공 멀리 김 대통령의전용기가 모습을 드러내자 순안공항에 나와 있던 북한측 환영객 1,000여명은들고 있던 꽃다발을 흔들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전용기의 동체와 날개에 새겨진 국·영문 국호와 태극기는 이제 남북한이 새로운 역사로 접어들었음을 세계에 선명하게 알렸다. 김 대통령의 전용기가 활주로에서 벗어나 계류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순안공항은 또다른 환호성으로 뒤덮였다.10시33분.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항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환영객들은 ‘김정일,김정일’을 연호하며 열광하기 시작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환호하는 환영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큰 걸음으로김 대통령이 탄 특별기를 향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용순대남담당 비서 등 북한측 고위급 인사들이 그를 따랐다. 김 국방위원장은 붉은 카펫을 따라 김 대통령의 전용기 트랩 앞까지 걸어나갔다.이윽고 10시37분,전용기의 문이 열리고 김 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밖으로 모습을 나타냈다.일순간 순안공항은 환호의 물결로 뒤덮였다.김 대통령은 평양의 하늘과 바람,그리고 평양 사람들의 환호에 겨운 듯잠시 트랩 위에서 감격에 젖는 모습을 보였다. 김 국방위원장은 10여계단 트랩 아래에서 박수로 김 대통령을 환영했다.곧이어 김 대통령이 트랩을내려서면서 두 정상은 밝은 표정으로 손을 맞잡고인사를 나눴다.순안공항은 ‘김정일’과 ‘만세’를 연호하는 환영객들의 환호로 다시 한번 크게 출렁였다. 이날 김 대통령에 대한 기내 영접은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있는 금수산기념궁전 외사국장 전희정씨가 맡았다. 김 대통령은 김 국방위원장의 소개로 배석해 있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용순 당 대남담당 비서,조명록 군총정치국장,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 당·정 고위간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김 대통령도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 등 우리측 수행원들을 김 국방위원장에게 소개했다. 순안공항의 환영행사는 의장대 사열과 꽃다발 증정 등 간단한 형태로 10여분간 진행됐다.정상의 외국 방문때 흔히 있는 도착성명 발표나 방문연설은생략됐다.두 정상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북한 의장대를 사열하는 동안 순안공항에는 용진가(勇進歌)가 연주됐다.북측이 국빈방문때 연주하는 노래다.의장대 사열을 마친 뒤 두 정상은 잠시 연단에 올라 사진기자들에게 기념포즈를 취했다.연단을 내려온 김 대통령은 부인 이 여사와 함께 화동들로부터 꽃다발을 선물받았다. 두 정상이 행사장에서 리무진까지 걸어가는 동안 환영행사장 한편에 도열해있던 환영객들은 다시 한번 꽃다발을 흔들며 ‘김정일’과 ‘만세’를 열렬히 연호했고, 김 대통령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 이들에게 화답했다. 이날 환영행사에는 김 대통령 부인 이 여사의 카운터파트가 될 것으로 예상됐던 김 국방위원장의 부인 김영숙씨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 취재진과 수행원들을 태운 아시아나항공 1002편 특별기가 오전 10시16분쯤평양 순안공항에 내리자마자 북측 검색요원들이 일일이 명단을 확인하고 간단한 짐 검색을 실시했다. 북측은 김 대통령 환영행사가 열리고 있는 동안 5대의 X레이 투시기를 설치하고 20여분 동안 취재진 및 수행원의 소지품과 몸을 검색했다.검색은 까다롭지 않았다.북측 검색요원은 한 취재진의 사진기가 무비카메라 모양과 비슷하자 “셔터를 눌러봐도 되느냐”고 물은 뒤 셔터를 눌러 사진기임을 확인하고 되돌려 주었다. 검색대를 통과하자 북측 안내원들이 남측 취재진과 수행원을 맞았다.북측안내원들은 남측에서 보낸 얼굴사진을 사전에 본 때문인지 취재진과 수행원들을 바로 알아차렸다.한 안내원은 “○○신문 기자 아닙니까”라고 물은 뒤자기 이름과 신분을 밝혔다. 북측은 남측의 수행원에 대해서는 집단 안내를 했으나 수행기자 50명에 대해서는 1대 1로 안내했다.북측 안내원들은 수행기자들이 버스를 타고 프레스센터로 오는 동안 바로 옆자리에 앉아 주요 건물을 소개하고 연도 환영인파등을 설명했다.회담 전망 등을 시시콜콜하게 묻기도 했다. 숙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해 한 취재기자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라도 안내할 수 있느냐”고 묻자 북측 안내원은 “어디라도 얘기해 달라”면서도 “정상회담 취재가 목적인 이상 여러 곳을 가는 것은 방문 취지와 다른것 아니냐”고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 김 대통령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환영행사를 마친 뒤 10시50분 공항을 출발,연도에 늘어선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했다. 김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이 동승한 차량 행렬은 공항을 떠난 지 20분 만인 11시10분쯤 평양시 입구인 연못동에 도착,잠시 머물렀다.두 정상은 차에서 내려 환영나온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했으며,악수를 나누기도했다. 이곳 평양시 입구에서부터는 수많은 평양시민들이 나와 일행을 열렬히 환영했다.시민들은 연도에 줄지어 서서 진홍색과 분홍색 조화(꽃술) 등을 흔들었다.시민들은 조화를 흔드며 “만세”“김정일 결사 옹위(擁衛)”를 끊임없이외쳤다. 양영식(梁榮植) 통일부차관은 서울 브리핑에서 “60만명의 인파가 남측 대표단 일행을 환영했다”고 말했다. 북측의 한 안내원은 “평양시민들이 대부분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남측의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하기 위한 자발적인 인파”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다른 안내원들은 “어제 김 대통령이 오는 것으로 알고 공(허탕)을쳤다”고 말해 전날에도 사람들이 나왔다가 되돌아간 일이 있음을 실토했다. 또 다른 안내원은 “위대하신 장군님이 여러분을 따뜻하게 환영하기 위해조치를 취했다.소감이 어떠냐”“김정일 장군님이 광폭(廣幅)정치로 여러분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시는 것이다”“남측 통일사절들이 그런 기대에 보답하지 않으면 정말 안된다”“어제는 날씨가 흐렸는데 날씨도 (김대통령이오시는 것을) 알아 주는 것 같다”“몇 시간 전에만 동원령을 내리면 시민들이 모두 동원될 수 있다.서울에서 출발 할 때도 이처럼 시민들이 환영했느냐”고 묻는 등 관심을 표명했다. 시민들은 남자의 경우 양복을 입거나 셔츠에 넥타이를 맨 차림이었으며,여자들은 대개 한복을 입고 있었다.흰색 저고리와 검정색 치마를 입은 학생들의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 시민들은 꽃술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만세 만세”“김정일 김정일 결사옹위 결사옹위”라는 두 가지 구호를 일사불란하게,그리고 끊임없이 반복했다. 차량행렬은 연못동에서 4·25 문화회관까지의 ‘용거리’,전승기념관까지의‘비파거리’, 보통강 강안도로,보통문,만수대 의사당,옥류교,만수대 언덕,개선문 거리,종로거리,김일성 종합대학까지 평양의 주요거리를 10㎞ 정도 순회했는데 환영인파는 단 한 곳도 빠짐없이 연도를 메웠다. 차량행렬은 평균 시속 30㎞ 정도로 달렸는데 연도의 환영인파가 꽃술을 흔들며 함성을 지르는 장면은 11시40분까지 무려 30분 동안 이어졌다.연도 중간 중간에는 학생들로 구성된 악대가 나와 행진곡 등을 연주하며 분위기를돋웠다. 시민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은 편이었으며,행렬이 지나갈 때는 더욱 큰 소리로 함성을 질렀다.일부 시민들은 차도로 몸을 들이밀면서 반가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공식 차량 행렬이 끝나고 기자들이 탄 차량은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한 본대와 분리돼 기자들의 숙소인 고려호텔로 향했다. 고려호텔로 가는 동안에도 집이나 직장으로 되돌아가는 평양시민들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반가운 표정으로 꽃술과 손을 흔들었다.그러나 구호는 외치지않았다.
  • [사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반갑습니다.만나고 싶었습니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두손을 마주잡으며 인사말을 나눌 때 우리 모두 같은 말을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이토록아름다운 만남이 될 것을 그토록 먼 길을 돌아야 했던가.분단 55년 만에 이루어진 남북 정상의 첫 만남은 남과 북이 하나임을 새삼 다시 확인하게 해주었다.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대통령 전용기에서 김대통령이 천천히내려와 이례적으로 공항영접에 나선 북한의 김국방위원장과 두손을 맞잡고악수 하는 순간,우리는 한민족임을 절감하게 되었다.50대의 김위원장은 70대의 김대통령을 마치 혈육을 대하듯 극진히 맞았고 남북 평화통일을 위한 평생의 노력이 구체화한 현장에서 김대통령은 벅찬 감회에 젖은 듯 했다.두 정상이 담소를 나누며 다정한 모습으로 의장대를 사열하고,환영 나온 1,000여명의 인파가 ‘김정일’‘김대중’을 연호하는 가운데 나란히 승용차에 올라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하는 것을 TV를 통해 지켜본 국민들은 가슴 밑바닥에서 치미는 뜨거운 감격을 억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남북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우리 민족의 저력을 전세계에 보여주는 순간,살다 보면이런 날도 있구나 싶게 꿈 같던 일이 현실화 된 그 순간은 진정 남북이 한마음이 된 축복의 시간이었다. 남북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평양에 간 김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영접은 융숭함을 넘어선 파격적인 것이어서 회담이 좋은 성과를 거두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좀처럼 일반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북한의 김위원장이 직접공항에 나와 김대통령을 맞이하고 의장대 사열을 비롯한 공식행사를 가진 것은 사전에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이날 공항에는 김위원장 이외에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의 최고 수뇌부가 거의 모두 나왔다. 지난 70년 동서독의 첫 정상회담 당시 동독을 찾은 서독 총리에 대한 동독의공식적인 영접행사는 극히 사무적이었다. 지금까지 남북 관계는 묵시적으로‘특수관계’로 인정돼 왔고 따라서 순안공항과 평양 거리의 환영인파들도남북 국기 대신 꽃을 흔들어 반겼다. 그러나 김대통령을 남한의 국가 원수로 인정하고 최고 예우를 갖춘 이번 공항 의전행사를 통해 남북 관계는 새롭게 진전한 셈이다. 또 북한의 김위원장은 공항의전 행사가 끝난 후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향하는 김대통령을 그냥 배웅하지 않고 리무진 승용차에 함께 타고 숙소로향하는 파격을 연출했다.사실상의 첫 남북 정상회담이 승용차 안에서 극히자유스럽고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국제관례를 깨트린 이같은 파격은 바로 남과 북이 외국이 아닌 한나라요 한핏줄의 민족으로 이루어져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형식과 절차를 뛰어 넘어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7,000만 민족의 염원이 김위원장의 전격적이고파격적인 김대통령 공항영접과 승용차 동승의 형태로 표출된 것으로 보고 싶다.북한이 ‘기술적인 이유’를 들어 남북 정상회담을 하루 연기한 것 또한바로 이런 결과를 위한 준비가 아니었나 싶어 지난 하룻동안의 우려가 말끔히 씻어지는 느낌이다. 남북 두 정상은 상봉 첫날부터 승용차 안에서의 회담에 이어 본격적인 공식회담을 가졌다.이 자리에서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은 남북 화해 협력과 민족공존공영의 길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핫라인 설치에 의견을 모았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물론 금물이다.첫술에 배부를 수도 없다.우리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극진한 환영에 흥분해서 반세기 만에 맞은 역사적인 기회를 그르쳐서도 안될 것이다.다만 북한 역시 이번 정상회담에 걸고 있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상호 이해와 협력의 폭이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김대통령은 평양도착 성명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남과 북 우리 동포 모두가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모든 정성을 다하겠다”면서 “반세기 동안 쌓인 한을 한꺼번에 풀 수는 없지만 시작이 반이다.이번 평양방문으로 온 겨레가 화해와 협력,그리고 평화통일의 희망을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렇다.평양에서의 2박3일 공식일정 동안 남북 정상이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갈등과 대립과 분쟁으로 얼룩진 남북관계가 상생과 평화의 관계로 전환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이제 한반도 한민족의 새 역사가 시작됐다.외세에 의한 남북분단,그로 인한무수한 상처와 손실을 씻어내고, 자주적인 평화공존의 순결한 씨앗이 뿌려졌다.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로, 남북대화를 방해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돌출할지 모르는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평화통일의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남북 정상의 첫 상봉,좋은 시작이 김국방위원장의 남한 방문으로 이어져 정상회담이 계속되면서 좋은 결실을 맺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남북정상회담/ 각계 기대와 희망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난다.반세기 넘어 처음이다.때로는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저 밑바닥에는 언제나 민족이라는 핏줄 특유의 애틋함이 흐르고 있었다.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들을 대표해서 정상들이 만난다니 그냥 좋다.몇번이나기대에 부풀었다가 실망해버린 적이 있었다.일정이 하루 늦춰지면서 가슴이철렁하기도 했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예전과 다르다.무언가 이뤄질것 같은 예감이 든다.남북 정상들의 만남에 앞서 ‘사람들’의 얘기를 모아봤다. ■강동희(프로농구 기아 엔터프라이즈 선수)그동안 각종 국제대회에서 이명훈 등 북한 선수들과 경기를 하면서 우정을 나눠왔다. 그러면서 분단된 남북한이 하루빨리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것을 직접 피부로느꼈다. 특히 지난해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통일농구대회를 치르면서 통일의 물꼬가서서히 열리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런 스포츠 류가 농구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광범위하게 이뤄졌으면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의 스포츠 교류가 더 이상 뉴스가 되지않는 시대가 됐으면 좋겠다.더 나아가서는 한국프로농구(KBL)에 북한의 벼락팀이나 우뢰팀이 참가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또 축구,탁구에서와 같이 농구에서도 남북단일팀이 구성되기를 바란다. ■김은선(실향민·76·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51년 결혼한 아내와 함께 남한에 내려와 2남3녀를 두고 열쇠공 기술을 익혀 힘겹게 고생하며 산 지 50년째다.북에 두고온 아버지와 여동생의 생사 한번 확인하지 못하고 한달에 1∼2차례 임진각에 가서 고향땅을 바라보며 한스러운 마음을 달래고 있다. 우리같은 실향민의 마음만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단지생전에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땅을 한번 밟아봤으면 좋겠다. 김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다른 것보다도 북한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많이주고 식량이라도 많이 가져가 나눠줬으면 좋겠다. ■박종환(숭민원더스여자축구단 단장)90년 통일축구대회를 위해 대표팀을 이끌고 북한에 갔을 때의 감회가 새롭다.당시 15만명이 입장한 경기장에서 경기를 펼쳤는데 운동장 시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현지에서 느꼈던 것은 북한 사람들이 남쪽과 모든 것을 성사시키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또 칭찬해주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그러나 그들은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으면서도 1단계,2단계 하는 식으로 과정을 만들어 일을 미루곤한다. 그들과 무엇을 하고자 할 때 주의할 점은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조급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 때보다 세월이 10년이나 흘렀으니 북한 사람들도 생각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기대가 된다. ■신무성(미 8군사령부 병장·24) 남북한이 화해무드 속에서 성사된 회담이라 국민적인 기대감이 무척 큰 것 같다.회담 성사 사실을 발표하던 날을 생각하면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회담 성사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그러나 너무 갑작스런 평화·화해 무드에 도취돼 느슨한 생각으로 북한을 바라봐서는안된다고 생각한다.현역 군인으로서 돌발적인 사태에 대비,긴장감을 풀지 않고 국가방위에 충실하고 있다.다른 전우들도 마찬가지다.양측의 적대관계가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는 방안이 나왔으면 좋겠다.회담의 최우선 과제는 어떤 경우에도 서로 전쟁은 피한다는 국제적 선언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측은 경제위기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빗장을 연 것으로 여겨진다. ■신현균(서울 성민교회 목사)지난 부활절,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 봉수교회에서 열린 남북 합동연합예배에 남한 개신교를 대표해 참석했다.감회가 새로웠다.당시 북한 기독교계의 달라진 분위기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종교계는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적 교류가 많았지만 남북정상회담이후 보다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교류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지금 우리 종교계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목소리와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북한의 종교계에서도 남북 교류에 대한 기대가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지난 부활절의 남북 합동예배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직접 실감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종교계가 명실상부한 화합과 일치를 이룰 수있도록 회담이 튼실한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 ■유영례(주부·44·인천시 강화군 송해면) 내가 사는 강화는 북한과 밀접해있어서 집안까지 대남방송이 다 들린다.그래서 그런지 이번 회담을 접하는느낌은 되레 담담하다.다만 아들이 최근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북한이 갑자기이번 회담을 핑계삼아 무슨 도발이라도 할까봐 가슴이 뛸 때가 많다.남북한정상이 분단 이후 처음 만나는데 모든 일이 쉽게 풀리기는 어려울 것으로본다.김대통령께서는 너무 회담 성과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국민은 정부가 소신껏 대북정책을 펴는데 신뢰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물어봤으면 좋겠다.남한에서 쌀이나비료도 지원해주는데 왜 자꾸 딴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이산가족도 만나게해주고 아니면 전화통화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터놓고 상대하면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이남은(인천 부평구 부광여고 3학년·18) 우리 국민과 북한 동포들이 전쟁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이렇게 해서 서로 방위비를 줄이면 교육비에 더 많은 지원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불쌍한 북한의 어린이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사실 북한을 다른 나라처럼 여겨왔는데,정상회담이 잘 돼 교류가 늘면 한민족이라는 생각이 싹틀 것이다.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으로 곧 통일이 온다고는믿지 않는다.50여년 동안 다른 사상과 문화 속에서 살아왔는데 쉽게 동질감을 느낄수 있겠는가. 우선 평양교예단이나 학생예술단처럼 문화 방문단이 서로를 번갈아 찾으면좋겠다.우리나라 가수들의 공연을 보면 북한 학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사뭇 궁금하다.많은 일을 하시는 대통령께서는 다음 회담을 위해서라도 몸건강하길 빈다. ■최우영(납북자가족모임 총무·30·여) 납북자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와 설렘은 누구보다 크다.아버지는 지난 87년 1월 부산에서출발한 동진호를 타고 조업을 하다 납북되었다.올해 54세가 되었지만 생사조차 전혀 모르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두 정상이 만나 모든 것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했으면 한다.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북한에 억류돼 있는 우리 국민들에 대한 얘기를 꼭 전해주었으면 좋겠다.이번 회담의 성사는 지속적인 ‘햇볕정책’의 결과이듯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 납북자와 북송을 원하는 미전향 장기수에게도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살게 해줬으면 좋겠다.이번 회담에서는 이산가족과 함께 납북자 문제가주요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태진아(가수)지난해 12월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공연을 했던 나로서는 남북 정상의 만남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졌다는 데 대해 놀랍고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그때 만나 ‘형님’이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냈던 북한 분을 평양교예단 공연장에서 만나뵙고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평양 공연때 무릎을 꿇은 채 ‘사모곡’을 부르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김용순 아태평화위원장이 “왜 그렇게 울었냐”고 묻길래 “나보다 더 평양을 그리워했을 실향민들을 생각하느라 그랬다”고 대답했었다.이번 정상회담에서 그분들의 50년 숙원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나아가 정상회담 이후 남북의 문화교류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온 배달민족이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한필성(목축업·67·경기도 파주시 교하면)남북정상회담으로 꿈에 그리던고향방문길이 꼭열릴 것 같다.90년 2월 일본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 스케이트 코치로 참가한 여동생 필화(59)를 상봉한 뒤에도 기회가있을 때마다 어머니(최원화)와 여동생을 만나기 위해 준비해 왔지만 번번히무산됐다. 71년 일본 삿포로 동계올림픽에 북한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선수로 참가한필화와 전화통화만 하고 만나지 못했던 때를 돌이키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생전에 그렇게도 보고 싶던 어머니가 98년 4월19일 94세로 세상을 떠나셨다.고향방문길이 열리면 어머니와 아버지 묘소부터 찾아가 불효에 대한 용서를 빌겠다.이번에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 주었으면 좋겠다. ■현정화(한국마사회탁구단 코치·전 국가대표)91년 남북 탁구단일팀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을 당시엔 당장 통일이 될 것같은 분위기였다.벌써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통일무드가 조성되는 것 같아 너무 기쁘지만 사실 늦은감이 없지 않다.지난 10년간 남북이 서로 화해하고 협력했으면 탁구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훨씬 더 많은 발전이이루어졌을 것이다. 우승을 확인한 순간 같이 부둥켜안고 울던 북한의 이분희가 무척 그립다.팀동료 김성희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는데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끝나 탁구단일팀 구성은 물론 그리운 사람들도 마음껏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91년에 느꼈던 ‘작은통일’의 감격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 ■황석영(작가)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자고들 하지만 비전을 갖고 해야 할 것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우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꿔야 한다. 4강이 한반도를 통해 정치적 이익을 얻고 있는 만큼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이다.하지만 이미 91년에 합의한 남북합의서에 기본정신은 다 들어 있다고할 수 있다.그걸 실천하겠다는 두 정상의 선언이 공식화돼야 하겠다.한반도긴장 완화를 위해 평화선언이라도 해서 그 가능성을 열어둬야 할 것이다. 앞으로 문화교류가 물밀듯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문화인의 한 사람으로서교통정리가 되길 바란다.‘두루미와 여우’의 만남처럼 서로의 이질성만을부각시켜서는 안된다.통일문화를 형성한다는 의도된 목표 아래 공감할 수 있는 부분부터 교류할 수 있도록 문화교류기획위원회 같은 전담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 평양예술단 첫 서울 공연 이모저모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북한 새싹들의 화음이 서울 하늘을 가득 메웠다.분단이래 처음 서울을 찾은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은 방문 3일째인 26일 오후 7시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감동적인 첫 공연을 가졌다.이들이 신기에 가까운 기량을 펼쳐보인 70분동안 무대와 객석은 남북을 뛰어넘어 한핏줄 한민족임을 확인하는 뜨거운 감동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색동한복과 바지저고리 등 형형색색의 옷차림으로 무대에 선 평양예술단은우리에게도 알려진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를 우렁차게 합창하며 공연을시작했다.관객들은 일제히 박수로 장단을 맞추며 흥을 돋웠다.북한의 개량악기인 장새납독주와 손풍금중주,목금을 위한 경음악이 연주되자 관객들은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단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했다.특히 상모를 돌리며신들린 듯 장구를 연주하는 ‘승전고 울려라’와 여자 어린이의 독창 ‘김치깍뚜기의 노래’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쏟아냈다.프로그램 하나하나가 끝날 때마다 무대 바로앞 객석에 앉아있던 리틀엔젤스 단원들은우정의 꽃다발을 전달했다. 무용·합창·악기연주 등 17개의 프로그램이 끝나고 마지막곡 ‘다시 만납시다’가 불려질 때는 관객 모두가 박수로 장단을 맞추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오랜 기다림에 비해 너무 짧은 만남이 아쉬운듯 관객들은 막이 내린뒤에도 연신 앙코르를 외치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두번의 커튼콜 끝에도관객의 박수가 끊이지 않자 예술단은 무반주로 ‘통일의 노래’를 불렀고,관객들도 한마음으로 노래를 따라불렀다.무대위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적힌 네온사인이 환한 빛을 발했다.이날 공연에는 실향민 1,200명을 비롯해 영·호남 고교 교사·학생,각계인사,주한외교사절 등 초청관객 1,600명과 일반관객 600명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실향민들은 학생들이 흥겨운 춤과노래로 솜씨를 뽐낼 때마다 열띤 박수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 한편 ‘고향의봄’‘다시 만납시다’가 불려질 때는 두고온 고향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실향민 박찬경(69)씨는 “북쪽 어린이들이 온다는 소식에 며칠밤을 잠도 제대로 못잤다”며 “아이들이 기대 이상으로 공연을 너무 잘한다”고 흐뭇해했다. 한편 주최측인 평화자동차사와 예술의전당에는 표를 사지 못한 시민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이날 오전 예술의전당 홍보팀에는 “부모님이 연로해서그러니 꼭 공연을 보게 해달라”는 중년여성의 애원섞인 전화가 걸려오는가하면 대전에서 온 70대 할아버지는 표를 구하지 못하자 오페라극장을 배회하며 못내 서운해하기도 했다.공연은 하루 두 차례씩 28일까지 계속된다. 이순녀기자 coral@
  • [대한포럼] 母性의 눈으로 분단을 보자

    민족분단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이다.같은 난리를 겪으면서도 남성보다 여성이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은 여성의 모성(母性) 때문이다.여기 그단적인 일화가 있다. 1947년 초겨울,칠흑 같은 밤,일단의 무리가 북을 탈출하려고 임진강 나루에모였다. 뱃사공이 한 아낙의 등에 있는 아이를 강에 버리자고 했다.아이가울기라도 하는 날이면 일행 모두가 죽는다는 것이었다.아이 아버지는 여럿을위해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죽으면 죽었지 못한다’며당신들(남편을 포함해)이나 가라고 했다.일행은 그들을 남겨놓고 떠나버렸다.아이 아버지도 할 수 없이 남았다.둘은 망연히 서있다가 강 상류로 올라갔다.걸어서 강을 건너기로 한 것이다.초겨울이라 물은 차가웠다.아이 엄마는아이를 연신 치켜올렸지만 물은 가슴께까지 차 올랐다.하늘의 도움인지 아이는 그 난중에도 새근 새근 잠을 자 부부는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여럿을 위해 아이를 강에 던지자고 한 아버지의 판단은 합리적이다.그러나어머니는 아이를 안고 강물에 뛰어들망정아이를 버리지 못한다.그것은 비합리가 아니라 초월이다.그 모성의 힘이 유난히 울보였다는 아이를 초겨울 싸늘한 밤공기에도 잠들 수 있게 했다.. 분단의 극한상황에서 비일비재했을 이 슬픈 이야기 속에 담긴 기적,아이도살리고 강도 무사히 건넌 모성의 힘을 민족통일의 에너지로 동원할 수 없을까. 모성의 눈으로 분단을 보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이산가족 문제를 만약 여성들이 다뤘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진전됐을 것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모성은 조건부가 없다.그러므로 상호주의란 말도 없다.민족의 일원이 굶어 죽는데 더구나 성장기의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발육이 부진하다는 데 기브 앤드 테이크를 따질 수 있을까. 이번 정상회담이 과거와 다른 것은 북측이 ‘하겠다’는 의지가 확실해 보인다는 점이다.북측의 이같은 변화는 그동안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햇볕정책을 추진한 것이 결실을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있다.북한은 지난 몇년 동안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다.오죽하면 북한이자존심을 무릅쓰고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호소했겠는가.다행히 북한의 굶주림을 우리가 외면하지 않았다.민간단체들이 나서서 음으로 양으로 도왔다.이과정에서 북한의 생각이 달라진 것 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역시한핏줄이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만약 우리가 북한의 식량난을 외면했더라면? 일부 냉전론자들의 주장대로 군량미로 비축될지 모른다는둥 이유를 달아 민간단체의 구호손길을 정부가 나서서 막기라고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김일성(金日成) 사망후 남북관계가 급랭했던 것처럼 지금쯤 남북한은 냉전에 휩싸여 있을지도 모른다. 분단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패권주의 그리고 좌우파 정치세력간 권력투쟁의 산물이다.그것은 가부장적 권위주의 산물이기도 하다.이 패권주의가냉전을 부추겼다.그것은 죽임의 이데올로기였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부에서 여성의 주체적 참여를 모색하고 나선 데는 가부장적 패권문화의 극복은 ‘민족의 어머니’인 여성의 참여가 지름길이라는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단이 여성에게 더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으므로 통일은 누구보다도 여성특히 어머니들의 관심사라야 한다.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땅의 여성들은 통일을 정치적인 문제로 그리고 남성들의 일로만 치부해 왔다.그렇게 된 것은 역시 남성들의 냉전 이데올로기 세뇌 때문이다.이 땅의 절반인 여성들이 모성의 눈으로 통일문제를 바라볼 수 있으면 통일은 훨씬 앞당겨질 수 있으련만….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기고] 가슴을 열고

    지난 20 세기를 살아온 우리 민족은 역사 속에 많은 아픔을 안고 있다.국권의 침탈과 국토의 분열,동족간의 참혹한 전쟁과 적대관계는 아직도 아물지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5,000년의 민족사에서 가장 한 맺힌 이 고난의 역정은 나라의 안보를 소홀히 한 필연의 산물이었다.20세기,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이데올로기 싸움은 공산체제의 무너짐으로 종언을 고했으나,한반도는 21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인류의 역사는 귀족이 노예를 지배하고 독재자가 백성을 유린하며,심지어신(神)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던 국가·사회의 계층구조로부터 보통사람이 중심이 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오랜 세월을 딛고 그렇게 사람은 조금씩 인간다워진 것이다.그럼에도 우리와 가장 가까운 땅,북녘에는 한 핏줄을타고 난 2,200만의 동포가 독재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1,000만의 이산가족은 대책없이 50년을 목메어 했으며,10만의 탈북자는 만주와 중국,시베리아동토에서 난민 대우조차 받지 못한 채 강제송환의 불안 속에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남북은 애초에우리가 원해서 갈라선 게 아니다.동북아의 한 가엾은 식민지를 놓고,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은 강자의 논리에 따라 어느 날 지도의38도선 상에 줄을 그어놓음으로써 잘려진 강토요 통치권의 분할이었다.남들이 쪼개놓은 영토인데 이제는 우리끼리도 합치지 못하는 땅덩이가 되어 버렸다. 지난날의 아픈 상처를 들추는 것은 역사에서 배우고자 함이다.잘못된 역사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자각을 일깨우기 위함이다.나라를 지키는 일의 소중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기에,1,000년전 만주대륙을 지배하고 동북아를 호령하던 배달족은 좁은 나라 땅 마저 두 갈래로 나눠,서로가 먹느냐먹히느냐의 무시무시한 싸움판을 벌려놓고 잠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새 천년에는 다르다.역사가 변하고 정세가 바뀌고 있다.21세기에 한반도는 동방의 빛이 되는 세계의 중심에서 스스로의 명운을 열어갈 것이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되살리고 아시아의 용으로 다시 부상할 진운의 길에들어섰다.국가 부도위기를 2년만에 복원시켰으며,주변 강대국과 4강외교로한국이 주도적 입장에서 대북정책을 펴나가고 있다.정부는 남북 간에 평화공존을 실현하고 민족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포괄적이고 호혜적이며 포용성있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기본합의서를 바탕으로,남북경제 협력을정부차원에서 구체화하고,이산가족의 만남을 주선하며,북한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과,대북경수로사업을 약속대로 이행해야 할 것이다. 한편,포용정책은 무조건 주기만 하고 얻는 게 없는 정책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일이 중요하다.북측은 변하지 않았는데 우리만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면서 그들을 이롭게 해주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귀담아들으면서,온 국민이 장기적 비전을 이해하고 동참하는 대내적 결속을 다지는데도 큰 비중을두어야 한다.대북 포용은 안보와는 수레의 양 바퀴처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 공산주의의 담담타타(談談打打) 전술과,북한의 대남 무력적화 통일전략의불변성에 대해서는 철저한 안보태세만이 대응방법이라는 전제 하에 세워진정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군(軍) 은 포용정책의 가장 든든한 배경이다.포용은 가슴이 넓고 힘이 센 강자만이 할 수 있는 것.그래서 우리의 국군은 튼실한 거인의 모습이어야 한다.믿음직하고 강한 군대 말이다. 6월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분단 55년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 날이다.국민의 염원을 담아 국민의 정부가 노력한 결과요,세계의 진운이 우리를 돕고 있는 소치이며,민족적 자각이 움트기 시작했음이다.모처럼의 귀한기회다.조급하지 않고,변덕부리지 말며,지혜와 인내와 정성으로 가슴을 여는남북의 만남이길 빈다.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 예비역 육군 준장 정영휘
  • 남북스포츠교류 활짝/ (하)교류 약사

    남과 북은 정치성이 배제된 체육회담을 수차례 가졌지만 결국 정치 상황과궤를 같이해 스포츠를 교두보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바라던 국민들에게 기대와 좌절을 번갈아 안겨줬다. 최초의 체육교류는 1929년 서울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개최된 서울과 평양의 축구인들이 벌인 ‘경평축구’.도시대항전이었지만 일제에 대항하는 ‘민족혼의 단결장’이 된 스포츠 제전이었다.이 대회는 46년까지 이어오다 남북이분단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두절됐다. 분단 이후 남북 체육교류는 냉각기가 지속되다 63년 1월 제59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도쿄올림픽 남북 단일팀 권고안의 통과와 함께 스위스 로잔에서 역사적인 첫 남북회담을 가졌다.그러나 서로의 입장차이만 확인한 채 성과없이 끝났다.또 79년 2월 평양 세계탁구선수권 단일팀 파견,84년 10월 서울올림픽의 북한 분산 개최가 논의 됐으나 북한의 보이콧으로 역시 무산됐다. 그러나 남북은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공동응원단 구성을 계기로 스포츠교류에 급물살을 탔다.아시안게임 직후인 10월 11일과 23일 평양 5.1경기장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2차례 ‘통일축구’가 열려 분단이후 처음으로 한반도는 감동과 흥분에 휩싸였다.게다가 당시 고문자격으로 평양대회에 참가한 이회택 포철감독이 한국전쟁 때 헤어진 아버지 이용진씨를 만나 한맺힌 눈물을 쏟아냈고 아버지 용진씨도 아들 생일상을 차려준 뒤 울음을 터뜨려이산가족의 아품을 온 국민이 되새겼다. 이듬해 2월 남북체육회담에서는 일본 지바 탁구세계선수권대회(4월)와 포르투갈 세계 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5월)에 단일팀 ‘코리아’를 구성키로 합의,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을 부추겼다.분단 46년만에 큰 결실이었다.특히지바대회에서는 김희진 북측 탁구협회 서기장이 7세 때 헤어진 남쪽 누나 김화진씨와의 ‘눈물의 상봉’,여자복식 파트너였던 현정화와 북쪽 리분희의‘눈물의 이별’ 장면은 남북이 ‘한핏줄’임을 다시한번 일깨워 줬다. 하지만 그 해 7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북한의 유도선수 이창수가 한국으로 망명하자 북한은 곧바로 남북 체육교류를 전면중단했다. 이후 8년동안 단절된 체육 교류는 지난해 8월 평양에서 열린 민간차원의 노동자축구대회로 해빙 무드가 조성됐고 대북 경협사업과 연계해 지난해 9월와 12월 평양과 서울에서 번갈아 ‘통일농구대회’가 열림으로써 마침내 남북정상 회담으로 이어지는 디딤돌을 놓게 됐다. 김민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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