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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광수의 섹스토리] (14) 하느님은 야한 휴머니스트다

    [마광수의 섹스토리] (14) 하느님은 야한 휴머니스트다

    나는 젊은 여자이다. 나는 어느날 대낮에 문득 정신이 혼미해지는가 싶었다. 그러다가 한참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있는 곳은 우리 집이 아니었다. 원색의 물방울이 통통 튀어오르는 이곳이 어딘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저 멀리서 까만 피부의 육감적인 여자가 나에게 다가온다. 키가 한 175㎝ 되어 보이는, 카펫처럼 뒤로 축 늘어진 여자의 머리카락은 투명한 것 같기도 하고 금빛 같기도 하고 은빛 같기도 해서,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햇빛에 비추어 뭔가 자꾸 반짝반짝거려서 얼굴은 통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대비되는 스판덱스 하얀색 탱크톱을 가슴 언저리에 걸친 그 여자는, 호피 무늬의 일본식 부르마를 입고 있어 귀여운 고등학교 학생의 이미지가 연상되었다. 저 호피무늬로 봐서는 정글의 왕자 타잔의 애인인 제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탱크톱과 부르마 안에 있는 가슴과 엉덩이는 바늘로 콕 찌르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가슴에서 배꼽으로, 배꼽에서 등 뒤로 연결된 ‘도롱뇽 문신’이 그녀의 피부를 더 탄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배꼽과 골반은 피어싱을 하여 직경 8㎝의 여러 고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배꼽과 짧은 옷들에 비해 신발은 무릎까지 올라오는 길이의 굽 높은 빨간색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부츠가 타이트하게 다리를 감싸쥐고 있어서 그녀가 내 앞으로 걸어올 때마다 다리 근육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감지될 정도였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를 보니, 반짝거리는 것이 목걸이와 귀걸이였음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백 개의 총천연색 비즈로 연결된 목걸이는 그 하나하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옆에 있는 비즈로 인한 빛이 충돌되어, 새로운 빛깔의 아름다운 색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귀걸이는 크리스털로 만들어져,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맞부딪치며 짜르르 하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보인다. 비즈 목걸이로 인해 얼굴에서 광채가 나고 있다. 완벽한 몸매만큼이나 얼굴도 그 자체가 예술이다. 그녀의 형광톤 연두색 속눈썹은 뜨거운 태양빛을 차단할 수 있는 차양 효과를 지닐 만큼 길고 풍성하다. 당장이라도 빨려들어갈 만한 커다란 눈은 한 쪽은 연보라색, 다른 한 쪽은 오렌지색인 ‘오드 아이’다. 눈 바로 아래에는 눈물점 같이 다이아몬드를 박아 놓아 청순한 매력까지 느껴진다. 높진 않지만 꽤 오똑한 코, 아무 것도 바르지 않은 크고 도톰한 입술이 관능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도대체 이 여자가 누구일까? 그녀가, 누워 있는 나에게 왼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끼워진 가지각색의 반지에는 금줄이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서 일어났다. “오우, 젊은 여인이여, 네가 바로 야한 여자로구나!” 나는 이 여자가 나를 ‘야한 야자’로 인정해줬다는 사실에 놀랐다. “당신이 어떻게 나를 알고 있죠?” “난 다름아닌 ‘하느님’이니라. 너는 나를 그저 보통 여자로만 생각하고 있었지?” 맙소사! 이렇게 관능적으로 생긴 여자가 하느님이라니! 지난 22년간 살면서, 그리고 19년간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하느님이 여자일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더군다나 마릴린 먼로보다 더 멋진 몸매와 얼굴을 가진 여자라니! 나는 그녀의 손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관능의 군침’을 삼켰다. 길디 긴 손톱들이 나의 레즈비어니즘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지간에, 일단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모두 천상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러고는 다시 환생을 할 것인지 아니면 천국 또는 지옥으로 갈 것인지 점수를 책정하는 적격심사를 받게 된다고 한다. 내가 있는 곳은 적격심사를 받으러 가기 전에 쉴 수 있는 쉼터 비슷한 곳인데, 여기서 최대한 이틀을 쉴 수 있다고 했다. 말을 듣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쓰러져 있던 풀밭은 이 평원에서 아득히 먼 곳까지 이어져 있었고, 주변에는 풀과 나무, 꽃들이 산재해 있었다. 공기도 어찌나 맑은지 지상세계에서 안구건조증으로 안약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던 나였지만 여기서는 안약은커녕 눈에 핏줄 하나 서지 않았다. 나는 하느님의 이야기가 끝난 후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러면 이곳에는 오고 가는 사람만 있겠네요? 저는 이렇게 푸른 나무와 꽃들이 있는 곳이 너무나 좋아요. 여기서 더 머물 수는 없을까요?” 그러자 ‘하느님’은 이렇게 대답했다.“얼마든지…. 이곳의 공식 명칭은 사실 ‘야하디야하라’일세. 그리고 이곳에는 잠시 휴식을 취하는 영혼들을 달래주고 적격심사장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두 명 있지. 그들의 이름은 지구상에서는 ‘아담’과 ‘이브’로 알려져 있지. 지구상에서 제일 많이 팔린다는 ‘성경’이란 책을 보면,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나와의 신뢰관계가 무너지고 내가 곧바로 응징을 내리는 것으로 쓰여 있지만 그것은 다 억측일 뿐일세. 자 나를 보게. 내 요염한 모습을…. 내가 그렇게 매몰차게 보이는가? 사람들은 날 존경하는 듯한 입에 발린 말을 할 대로 다 해놓고서, 아담과 이브에게 바로 죄값을 치르게 하는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내고 말았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성경’이라는 책에는 내가 이브에게 아이를 낳는 고통을 주고, 아담에게는 땀을 흘리고 일을 해야만 하는 고통을 주었다고 나와 있더군. 사실 그건 내가 준 벌이 아니라네. 특히 성욕은 다만 자연적인 욕구일 뿐이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욕구가 무엇인지 아는가?대부분 ‘식욕’이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식욕 이전에 ‘성욕’이라는 강한 욕구가 잠재해 있다네. 그럼 ‘배가 고파 죽겠는데 어떻게 성욕이 생길 수 있느냐.’는 반문이 곧 튀어나오겠지.…물론 인간의 생명활동을 일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식욕이네. 하지만 식욕의 대상, 즉 음식물은 어디서 오는가? 잘 생각해 보게. 우리가 먹는 음식물들은 육식이건 채식이건 모두 성욕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들이야. 즉, 생식욕구로 인해 동식물들이 생산해 놓은 씨앗, 열매, 고기들이 바로 우리가 먹는 음식물들인 걸세. 결국 우리의 생명활동에 일차적으로 중요한 식욕 역시 성욕의 도움을 받아야만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러니 이브가 아이를 낳는 고통을 갖게 된 것은 죄값으로 받게 된 것이 아니야. 그건 섹스에 부수되는 또 하나의 ‘즐거운 고통’일 뿐이지. 그리고 아담이 땀 흘리고 일을 한다는 의미는 지상 인간들이 해석한 직업적 개념의 ‘일’이 아니야. 아담의 진짜 ‘일’은, 여자와의 인터코스로 인해 땀을 흘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네.” 나는 하느님의 색다른 논리에 순간 당황했다. 아담과 이브의 잘못으로 우리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원초적 본능’으로 인한 즐거움이 그들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그러나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하느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생겨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할 땐 어쩌죠? 저는 혼자 있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요.” “내가 필요할 때는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큰 소리로 외치게. 내가 굳이 변명할 필요는 없지만, 이 말 역시 ‘주여, 왜 날 버리시나이까?’란 뜻이 아니라네. 진짜 뜻은 ‘주여, 감사함에 몸서리칩니다.’라는 의미일세. 내 원 참, 지상세계 인간들은 뭐든지 자기 스스로에게 편한 대로 해석을 해서 문제야. 내가 예수를 꼭 낳고 싶어서 지상에 내려가 예수를 낳았지. 어쨌든 예수는 나의 아이네. 아이 낳고 몸이 망가질까봐 천사에게 섹스하는 일을 대신 시켰지만 말이야. 이 세상 사람들을 모두 구원해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서…. 하느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지금까지 내가 속고 살아온 기분이 들었다.‘종교’라는 것을 만들어가지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기술한 사람들이 가증스럽고 우스워졌다. 무엇보다도 나는 하느님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유쾌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외쳤다. “페미니즘 만세!…여자 하느님 만세!” ■마광수는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열린세상] 서민금융산업 활성책 세워라/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IMF위기 이후 정부가 추진해 온 금융산업 구조개편작업의 결과, 한국의 금융산업이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금융당국의 홍보 논리대로 한국의 금융산업은 투명성과 안정성을 얻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금융회사의 지배권을 외국자본에 내주었다. 시중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은행까지 외국인 주주가 60%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은행업만 그런가. 증권, 보험 모두 외국자본의 먹잇감이 됐다. 결국 한국의 금융산업 개편은 외국자본의 국내 금융시장 장악을 위한 기반정비였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어졌다. 물론 오랜 악습과 타성에 젖어 있던 한국의 금융권이 자율적으로 투명성과 안정성을 모두 확보해간다는 기대는 무리였을 것이다. IMF 위기라는 외부충격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변화가 가능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투명성과 안정성이 강화돼 금융기관들이 한국경제의 돈줄 역할을 제대로 하고 또 금융의 국제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산업발전에 필수적인 기업대출은 축소되고 가계대출에 더 열을 올리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수익창출의 근거를 따져보면 여전히 제멋대로 올린 수수료와 예대마진, 독점적 지위 등에서 발생하고 있다. 금융권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외국자금의 투자와 수익확보를 위한 안전장치 이상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내외의 조건에서 금융당국은 저축은행, 신협, 새마을금고 등 주로 서민들이 이용하는 자본력이 취약한 서민금융기관의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 소매거래에 주된 관심을 갖고 있는 외국금융자본의 영업기반을 넓혀주기 위해 각 지역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고 있는 서민금융기관을 정비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1차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의 결과를 보면 전혀 터무니없는 기우는 아니다. 문제는 어떤 목표와 내용을 갖고 서민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당국은 금융기관의 건전성 기준에 못 미치는 서민금융기관을 퇴출시키는 데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의 규모를 축소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침은 1차 금융기관의 실패한 구조개편 작업을 되풀이할 뿐이다. 정부정책의 기본기조는 동반성장이고 양극화 해소다. 그런 정부의 금융당국이 금융기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조치만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금융서비스산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만들자는 발표도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부실이 심각한 서민금융기관을 방치하자는 것은 아니다. 법적 책임을 묻고 부실해소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부실서민금융기관을 정비한다는 관점만으로는 서민금융산업의 위축으로 귀결될 뿐이다. 서민금융산업의 위축은 서민경제의 위축을 불러오고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목표를 서민금융산업의 활성화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시중은행과의 수신금리차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취약한 공신력에 대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각종 교육훈련과 객관적인 평가, 부실방지를 위한 정기적인 외부감사와 투명성 공개 등의 조치를 통해서 한국경제의 실핏줄 같은 서민금융산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감독기능의 적극적 역할과 시스템도 획기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서민금융산업의 위축을 방지하고 활성화하려면 기존 금융기관의 잣대, 관점으로는 안 된다. 토착금융자본의 기초인 서민금융산업에 대한 금융당국의 태도변화가 시급하다. 이 공신력 확보에 제일 중요한 것은 시중은행처럼 자기앞수표발행 등의 업무를 보장하는 것이다. 서민 금융기관들이 금융결제원에 가입하면서 송금거래 등 상당 분야를 허용했으면서도 유독자기앞수표 발행을 금지하는 조치는 설득력이 없다. 신협·새마을금고 등의 연합회에서 자율적으로 통제하면 된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 아버지 김산 독립유공자 추대 꿈 이룬 고영광씨

    |베이징 연합|“자식된 도리로 아버님의 양대 염원을 이뤄 이제 한이 없습니다.” 미국의 여류작가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의 실제 주인공 김산(본명 張志樂ㆍ1905∼1938)의 유일한 혈육 고영광(69)씨는 3일 한국 정부로부터 부친이 독립유공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감격에 겨워했다. 고영광씨는 아버지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뒤 중국인 어머니 자오야핑(趙亞平)이 고씨 성을 가진 중국인에게 개가하면서 성이 고씨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난 1980년대 한족에서 조선족으로 신분을 되찾았다. 베이징(北京)의 아파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고씨는 파란만장했던 부친과 자신의 생애를 털어 놓았다. 중국 상무부의 전신인 대외무역경제합작부 과기국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공직 생활을 마감한 고씨는 2003년 한국 정부에 아버지 김산의 독립유공자 신청을 한 지 2년 만에 소원을 이루자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는 자부심으로 뿌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중국인 편모 슬하에서 중국인인 줄 알고 자라난 고씨가 아버지 김산의 이야기와 자신의 출생 내력을 안 것은 문화대혁명 기간인 1960년대 말로 서른이 넘어서였다. 태어난 지 일년 만에 아버지가 숨져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대한 독립운동가’ 김산의 핏줄임을 확인한 고씨는 아버지의 항일 및 독립투쟁에 긍지를 느끼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명예 회복에 나섰다. 김산은 중국 공산당원으로 항일투쟁에 한창이던 1938년 당시 공산당 본부가 있던 옌안(延安)에서 공산당 간부로 활동하던 캉성(康生)의 지시로 트로츠키주의자와 일본 스파이로 몰려 처형당했다. 고씨는 1978년 공산당 중앙 조직부에 김산의 명예회복 조사를 요청했고, 당 조직부는 1984년 공식적으로 김산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다. 중국 국가항천국(航天局) 위생처 관리 출신인 한족 부인 왕위룽(王玉榮ㆍ62)과의 사이에 34살과 32살의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매매가 가능한 자신 소유의 중산층 아파트에 살며 매일 수영과 조깅으로 건강을 다진다는 고씨는 15일 거행되는 독립유공자 표창식에 참석한다.
  • [‘性역’ 허문 딸들의 반란] 6년여 재판 끌고온 원고측 반응

    “딸이 셋이라고 육촌 오빠를 양자로 삼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재산이 모두 그 오빠에게 상속이 되더군요. 핏줄은 저였는데도 말입니다.” 6년이 넘게 마음고생을 겪은 뒤 종중 회원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은 용인 이씨 사맹공파 이원재(57)씨는 법정을 나서며 만세를 불렀다. 세월은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를 투사로 단련시켰다. 법정을 나서자마자 그는 “이번 판결은 가장 친밀해야 할 가족집단에서조차 구성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던 모든 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말했다. 종회회원 확인소송을 처음으로 제기한 청송 심씨 혜령공파의 심정숙(69)씨는 “이번 판결은 무너진 가족관계를 회복하고 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며 눈물을 비쳤다. 그는 “지난해 어머니가 돌아가셔 4남3녀가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도 오빠들은 소송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냉담했다.”면서 “모든 여성들의 숙원을 풀었으니 이제 오빠들과도 화해하고 싶다.”고 말했다. 심씨 자매는 “대법원의 판례가 확고해 변호사들조차 사건을 맡으려고 하지 않아 소송에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이번 판결로 과거 분배된 재산을 받을 수는 없지만 앞으로 종중 재산에 대해 분배를 받을 수 있으며 종중원으로 인정받은 것 자체가 말할 수 없이 기쁘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법정에서는 같은 소송을 하고 있거나 소송을 낼지 고민중인 다른 종중의 여성 10여명이 재판을 지켜봤다. 소송 당사자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이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인정해 달라고 종중에 요구할 것이며, 종중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이원재씨 등의 소송대리인인 황덕남 변호사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 달리 혈연집단에서 유독 폐쇄적인 여성의 지위는 문화와 관습이 변해야 개선될 수 있다.”면서 “대법원이 이에 대한 판결을 내려 문화적으로 실질적인 남녀평등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마광수의 섹스토리] (7)나는 탐미주의자

    [마광수의 섹스토리] (7)나는 탐미주의자

    나는 탐미주의자이고, 또한 성에 있어서는 미식가이다. 나는 성적 잡식가들을 혐오한다. 그들은 질보다 양을 더 따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혼(1990년) 후 한번도 여자와 육체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다. 이혼 후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1992년)이 터져 쓸데없는 시간의 ‘소모전’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나의 탐미적이고 페티시즘적인 취향에 맞지 않는 여자하고는 절대로 성관계를 갖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 나는 돈을 주고 여자를 사서 같이 자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런 나에게 최근 어떤 여성이 하나 다가왔다. 그래서 짧은 기간이나마 멋진 유미적 섹스 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녀를 나는 내가 20년째 단골로 다니고 있는 이대 앞의 카페 ‘볼 앤 체인(Ball and Chain)’에서 보게 되었다.‘볼 앤 체인’(이름이 얼마나 에로틱한가! 죄수가 차는 족쇄와 사슬을 가리키는 말인데, 사도마조히즘을 연상시켜 주어 무척이나 도착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에는 긴 바(bar)가 있어 혼자서 오는 손님들이 많은데, 어느날 거기에 혼자 갔다가 역시 혼자 와 술을 마시고 있던 그녀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정말 신비롭게 아름다웠다.170㎝쯤 되는 적당한 키에 전체적으로 약간 마른 듯이 보였지만 앙상하게 마른 것은 절대 아니었다. 왜…. 골격이 작은 여자들이 있지 않은가? 비교적 큰 키에도 불구하고 자그마한 골격에 적당히 살이 붙어서 부드러움을 더해주는 그런 ‘여성스러운’ 몸매를 가진 여자들 말이다. 그녀는 칠흑같이 숱 많은 머릿단을 등의 날개뼈까지 늘어뜨리고 있었다. 물론 요즘에는 블루블랙이니 하는 색깔을 인공적으로 넣는 여자들도 많지만, 그녀의 머리카락이 천연의 것인 것만은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얼굴은 정말로 조각만 했는데, 귀 아래서 턱으로 이어지는 선이 깨질 것처럼 너무도 가냘퍼서 그만 두 손으로 감싸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나는 한참동안 진을 빼야 했다. 너무나 투명해서 그 안이 다 비칠 것만 같이 새하얀 피부는 칠흑같은 머릿단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뺨 아랫부분은 싱그러운 청록빛을 띤 핏줄들이 관능적인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보통 아이섀도를 짙게 칠한 여자들을 ‘어색하다’고 보는 편이었는데, 그녀는 화장을 완벽하게 잘 해 화려한 아이섀도가 정말로 잘 어울렸다. 그녀의 눈은 앙증맞은 고양이의 그것 같았다. 눈동자는 흑옥(黑玉)처럼 까맣고, 흰자위는 푸른빛이 돌 정도로 하다. 눈 모양도 단순히 둥그렇기만 한 게 아니라 마치 송편 모양처럼 기묘한 곡선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또 그렇게 도발적으로 보일 수 없었다. 입술에는 간단히 누드 핑크빛이 도는 립그로스를 발랐을 뿐이었는데, 약간 작은 듯한 입술은 그대로도 완벽한 모양새를 이루고 있어 입술선을 교정하기 위해 립라이너를 할 필요가 없었을 터였다. 내가 그녀에게 온 정신을 다 빼앗기게 된 이유는 이렇게 신비롭고 이국적인 얼굴 탓도 있었지만, 역시 길고 가느다란 목과 자그마한 어깨가 보여주는 지극히 아름다운 곡선미 때문이었다. 물론 어두운 조명 때문에 확실히 볼 수는 없었지만, 옷 위로 드러난 어깨의 맵시하며 가끔씩 보이는 하얀 목선으로 미루어보아 내 상상은 틀림없었을 것 같았다. 그녀는 패션감각 또한 너무나 뛰어난 것 같았다. 그녀는 온통 보라색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었는데, 보라색이 이토록 사람을 매혹적으로 보이게 하는지는 여태껏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상의는 니트로 된 반코트쯤 되어 보였다. 목 주위의 여밈새와 손목 주위는 온통 보라색 깃털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었고, 풍만해 보이는 깃털 장식은 그녀의 정말로 가는 허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거지만, 그녀의 허리는 한 20인치쯤 되었나 보았다. 20인치만 돼도 이렇게 인간의 허리가 아닌 것처럼 가느다란데,‘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유명한 여배우 비비언 리의 허리가 17인치였다는 건 말짱 거짓말일 것이다. 그녀의 화려한 반코트 아래에는 발목까지 오는 긴 스커트를 입었는데…. 그게 또 몸에 몹시도 착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닌가. 살짝이 난 트임 사이로 살짝살짝 엿보이는 그녀의 날씬한 다리 또한 몹시도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신발에 신경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 본다면 그녀의 패션은 완벽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이 얇싹한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15㎝의 ‘울트라 하이힐’을 신은 여자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소위 명품이니 뭐니 해서 샤넬이나 구치, 겐조, 셀린 같은 옷으로 쫙 빼입고 다니는 여자들은 어디에나 널려 있다. 하지만 요즘 유행은 ‘울트라 하이힐’은 아닌 것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큼직한 리본이 달린 단화를 신고 다니는 게 보통이다. 하여튼 나는 말 그대로 그토록 높은 굽의 ‘뾰족구두’를 실제로는 처음 보았다. 그녀는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그래서 높은 하이힐이 오히려 그녀의 다리 전체에 위태위태함을 더해줘서 아이로니컬하게도 금세 부러질 것만 같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구두 앞모양도 너무나 뾰족해서 분명 안에 있는 발가락들이 짜부라들지 않고서는 걷지도 못할 구두였지만, 전체적으로 그 위태위태한 아름다움은 정말 사람을 오싹하게 할 만큼 치명적이었다. 구두 앞은 깊게 파여서 발가락만 간신히 가릴 정도였고, 그 발등 위를 가느다란 금색 메탈 줄이 사선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와인 잔을 질금거리면서 긴 시간 동안 숨을 멈추고서 그녀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서 그녀 바로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난 진짜로 ‘야한’ 여자 앞에서는 사족을 못 쓴다. 나는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어서 장(腸)이 다 꼬일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도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걸로 봐서 나한테 쬐끔은 관심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서로의 반응을 염탐하던 중에 다시 눈이 마주친 그녀는 내게 살짝 미소를 지어주었다. 기회는 이 때다 싶어 나는 그녀의 오른쪽 허벅지에 손을 갖다 댔다. 신기하게도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든가 하는 식의 촌스러운 반응을 나타내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손을 빼어 그녀의 두 가랑이 사이로 찔러 넣었다. 그래서 내 손바닥은 그녀의 사타구니 사이에 포근하게 갇혔다. 내 손에 전달돼 오는 맨살의 따스한 온기와 ‘노 팬티’로 인한 음모의 부드러운 감촉 때문에 나는 너무나 너무나 행복했다. 나는 더욱 용기를 내어 그녀의 귓바퀴에 혀를 갖다대 보았다. 그래도 그녀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의 귓바퀴와 귓불, 그리고 귓속을 철부덕 철부덕 핥았다. 그래도 그녀는 조용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그런 야한 매너에 진심으로 감복했다. 여느 여자 같으면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가만히 있다손쳐도 조금씩 폼을 잡거나 생색을 냈을 것이었다. 나는 그녀와의 ‘이심전심’이 가능하다는 것을 즉발적(卽發的)으로 느꼈다. 그래서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대 보았다. 퍼들거리는 그녀의 혀가 금세 내 입안으로 쳐들어왔다. 혓바닥과 혓바닥의 부딪침, 그리고 타액과 타액의 섞임. 나와 그녀는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않고 은밀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얼싸 안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몸과 내 몸을 밀착시켰다. 그녀의 몸뚱어리는 따스했다. 나는 몸이 차가운 소음인(少陰人)인지라 몸이 뜨거운 소양인(少陽人) 여성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바로 소양인인 것 같았다. 카페의 음악이 바뀌었다. 올리비어 뉴턴 존이 부르는 ‘Phisical’이었다. 그 노래 속의 가사인 ‘Let Me Hear Your Body Talk’가 우리 두 사람을 자리에서 일어서게 했다. 나와 그녀는 조용한 걸음걸이로 카페를 빠져나왔다. 역시 아주 높은 굽인지라 그녀의 걸음걸이는 우아하게 느렸다. 달리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자연스레 어느 장소로 이동했다. 멀리서 명멸하는 붉은 색 네온사인이 ‘장미호텔’을 표시해주고 있었다. ■마광수는 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마광수의 섹스토리](6)젊은 여인의 고백

    [마광수의 섹스토리](6)젊은 여인의 고백

    친구 Q에게, …다음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과연 남자와 결혼할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워질 거야. 나는 내가 탐미주의자라는 말을 여태까지 심심치 않게 들어왔어. 특히 동성(同性)인 여자를 대할 때 그런 점이 심해지는 것 같아. 내가 얼굴이 썩 예쁜 편이 아니라서, 항상 외모만 가지고 평가하는 인간들을 제일 혐오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글쎄 알고 보니까 내가 바로 그런 인간인 거 있지? 끔찍하게도 이기적이고 머리가 좀 나쁘더라도, 얼굴이 예쁘면 그만 용서가 되는 거야. 만약 그 사람과 긴 인간관계를 지속시킬 게 아니라면 말이지…. 아무래도 일상생활에서는 그런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면 좀 짜증날 것 같지 않니? 대학의 수업시간이나 길을 걷다가 내 이상형의 여자를 만나면 그 순간 내 주위에는 몽롱한 정적만이 감돌아. 그리고 내 시야에는 오로지 그 여자밖에 들어오질 않는 거야. 그러면 내 눈은 캠코더가 되어서 슬로 모션으로 그녀를 훑어내리기 시작하지. 나는 주로 ‘선(線)’을 눈여겨 보는 편이야. 먼저 귀 밑에서 턱으로 빠지는 선이 너무 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완곡하지도 않게 부드럽게 흘러내려야 하지. 왜 네가 미술을 좀 해봤다면 쉽게 알 수 있을 거야. 나는 고등학교 때, 석고 데생을 할 때마다 줄리앙의 턱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그 창백하리만치 싸늘한 하얀 눈과 사랑에 빠질 뻔도 했다니까. 오로지 그 턱선 때문에 말이야. 그 다음에 중요한 선은 목선에서 어깨를 지나 팔뚝으로 내려오는 선이야. 하얀 목이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듯하다가도 어깨를 만나는 지점에서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어깨뼈를 만나는 지점까지 약간의 경사를 주어 호흡을 조절하지. 여기서 어깨뼈가 여성의 몸의 곡선미에서 절정에 해당된다고 생각해. 어깨뼈는 여러 가지 뼈가 맞닿는 곳 아냐? 자그마하고 동그마한 어깨뼈가 중심을 이루고, 살그머니 솟은 견갑골이 맞닿는 부분의 뼈와 살이 어우러져 조화를 보여주는 선은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어느 것보다도 아름다워…. 여기서 그 여자가 고개를 90도 정도 옆으로 돌리고 있다면 더 금상첨화야. 나는 또 목과 견갑골 앞 부분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선의 조화를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야. 또 그 여자의 살결이 투명하리만치 하얗다면-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일이야. 나는 그녀의 투명한 살갗 아래로 살짝 내비치는 파리한 핏줄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의 절정 또한 넋놓고 바라볼 수 있을 테지…. 뼈와 살과 핏줄이 만들어내는 선의 미(美)는 이 세상 어느 예술작품도 따라올 수 없을 거야. 나는 흔히 여자의 나신 하면 생각나는 가슴이나 엉덩이에서는 별로 매력을 못 느끼는 편이지. 또 내가 관심 있는 부위는 목에서 등을 거쳐 엉덩이 바로 직전까지 내려오는 선의 아름다움이지. 왜 목뼈와 척추가 맞닿는 곳에 볼록하고 단단한 둥근 뼈가 솟아있지 않니? 거기서부터 시작이야. 자그마한 어깨는 살까지 안쪽으로 굽어져 있어야 해. 수줍은 듯 불룩 솟은 날개뼈를 양 옆으로 하고 척추뼈가 등 한가운데를 타고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거야. 여자의 허리선은 앞에서 봤을 때보다 뒤에서 봤을 때가 제격이야. 이 척추뼈의 묘미는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교태부리듯 허리에서 한껏 안으로 옴팍 패였다가 엉덩이 쪽에서 한껏 들린다는 점이야. 남자들이 흔히 탄력있게 솟아오른 여자의 엉덩이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내 장담하건대 그렇게 빵빵한 엉덩이도 직전에 옴팍 패인 허리가 없다면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할 걸.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여체의 백미는 고관절 윗부분에 있는, 척추를 중심으로 하고 양 옆으로 반뼘씩 떨어져 있는 곳에 앙증맞게 옴폭 파인 두 홈이 아닌가 해. 자­눈을 감고 내가 지금까지 얘기한 선을 따라 여자의 벌거벗은 몸매를 그려봐. 천상의 어떤 여신보다도 아름다운 그녀가 네 눈 앞에 그려질 테니 말야. 이만하면 대충 내가 어떤 취향을 가진 아인지 너도 알 만하지? ㅎㅎㅎ…. N이 떠나간 후로 나는 나보다 두 살이나 나이가 많은 K라는 룸메이트를 맞이하게 됐어.K는 옆방에서 혼자 살고 있던 N의 동아리 선배였지. 근데 N이 떠나자마자 외롭다며 내 방으로 부리나케 이사를 온 거야. 하숙생활이란 참으로 오묘해서, 아무리 같은 집에 살고 있다 해도 정작 같은 방에 살고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가 없어.K는 그런 의미에서 ‘내게 새로운 룸메이트’라는 신선감을 주는 동시에, 그래도 1년이나 오가며 마주친 같은 하숙집 사람이라는 친근감도 주었던 거야. 참 이상도 하지? N이 내 곁을 떠나가서 엄청나게 섭섭해했는데, 바로 K가 내 방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또 K에 대한 애정이 샘솟더라고…. 솔직히 말해서 K는 내 이상형과는 꽤 먼 쪽에 속했던 여자였어. 머릿결도 뻣뻣한 곱슬머리였고, 드라이가 안 된 곱슬머리는 이리저리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지. 하루는 왼쪽 머리 한 뭉터기가 일제히 바깥으로 쏴악 뻗쳐 있는 것을 보고는 도로 끌어앉혀서 직접 드라이를 해줄 생각까지 했다니깐. 그녀는 외모를 가꾸는 데는 절대로 돈을 쓰지 않는 정말로 ‘모범적인’ 학생이었어. 그래도 룸메이트가 선배니까 좋은 점이 많더라고. 저번엔 동급생인 N과 누가 걸레질을 더 많이 했니 안 했니, 누가 비누를 더 썼니 안 썼니 하는 치사한 일로 티격태격하는 일이 허다했는데,K는 선배니까 서로 배려가 되더라고. 나도 의지할 누군가가 생기니까 마음이 편해지더군. 자상하게 엄마처럼 보살펴주는 K가 너무너무 좋아지는 거야. 나는 K가 공부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오는 11시쯤부터 자기 전까지 TV나 라디오를 켜놓고 나른하게 K의 무릎 위에 웅크리고 누워서는 K의 무릎뼈를 어루만지는 습관이 들었지 뭐니. 마치 고양이처럼 잉잉거리면서 K의 무릎 속으로 파고들고 있노라면,K는 “에이구…”하면서 마치 엄마 같은 손길로 내 머리를 쓸어주곤 했지. 아, 얼마나 행복하고 나른한 시간이었는지 몰라.K는 상체에 비해서 하체가 굵은 불균형적인 몸매를 지니고 있었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정말로 예쁜 상체를 가지고 있었지.K의 어깨는 정말 자그마하고 가냘펐지만 비쩍 말라서 곡선미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어. 오히려 적당히, 정말로 적당히 살이 붙어 있어서 그 자그마한 어깨가 더 돋보였다니까. 내가 아늑한 눈길로 그녀의 어깨를 눈여겨 볼 때면,K는 무척이나 쑥스러워하면서 어깨를 움츠리는 거야. 나는 그녀의 그런 어깨 움직임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몰라. 그렇지만 우리의 이런 나른하고도 편안한 시간은 얼마 가지 못했어. 둘이 싸웠냐고? 아니면 또 K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느냐고? 아니 천만의 말씀이야. K에게 그만 남자친구가 생겨버린 거야. 야아…웃지마. 남은 심각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K의 남자친구는 동아리 선배였어.K는 몇달 전에 그 동아리 모임에 나갔는데 그날따라 뒤풀이 시간에 고(高)학번 선배들이 많이 왔었대. 그 오빠는 K와의 나이 차이가 일곱 살이나 났었지. 정말 도둑놈 아냐? 양심이 있으면 어떻게 K같이 어린 여자를 넘보나?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쳇! 어쨌든 그녀를 좋아하게 된 그 남자는 몇 달간 구애작전을 펼쳤었나봐. 그녀는 남자가 처음인데….K는 처음엔 그 남자가 자기의 이상형이 아니라고 하면서 철석같이 잡아뗐지만…. 뭐, 여자들은 다 그렇지. 열번 찍어봐라, 안 넘어가는 여자 있나. 그때쯤 K가 매일같이 얼굴이 상기되어 들어오더니…. 결!국! 남자친구가 생겨버린 거야. 나 참…. 세상에 믿을 년 한 명도 없다니까. 그렇게나 남자한테 관심이 없어하더니…. 내가 왜 이렇게 K와 그녀의 남자친구에 대해 삐딱하게 나오냐고? 그 후에 내가 겪은 시간들이 악몽 같았거든. K와 그녀의 남자친구는 매일같이 밤마다 1시간도 넘는 통화를 해댔어. 이제 더 이상 K의 무릎은 날 기다려주지 않았고, 수직으로 접어서 가슴팍에 댄 채 전화를 받치기에 바빴지. 예전엔 꿈결만 같았던 밤 11시부터 1시 사이의 시간에 나는 꿔다 논 보릿자루마냥 이불을 덮어쓰고는 하염없이 K와 남자친구의 전화를 추적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어…. ■ 마광수는 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인간시대] 향토사학자 박희씨

    “지구가 남아 있는 한 ‘핏줄’은 인간의 영원한 주제입니다.” ●“이명박 시장은 역대 2005대 서울 수장” 최근 이명박 시장이 역대 ‘서울 수장(首長)’으로는 꼭 2005대여서 올 연도와 똑같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던 향토사학자 박희(52)씨는 22일 이같이 주장했다. 이날 서울 강동구 길1동 396의10 강동우체국 건너편 한 건물 지하 1층에서 만난 그는 다짜고짜 출입구 쪽에 놓인 캐비닛을 열어 보여줬다. 지난 2003년 10월 당시에 쓰던 공간이 비좁아 새로 마련했다는 35평짜리 연구실은 자료로 가득했다. 사방을 빙 둘러싼 사람 키높이의 책꽂이로도 모자라 의자, 소파 등 발디딜 틈만 빼고는 죄다 논문·잡지 등이 수북이 쌓여 먼지가 펄펄 날릴 듯했다. “석보상절(釋譜詳節·조선 세종 때 수양대군이 왕명으로 편찬한 석가모니의 일대기) 영인본입니다.50권 한정본으로 찍은 것이어서 희귀하지요.” 박씨는 이어 조선시대 규장각본과 해인사 대장경 영인본 등 오래돼 노랗게 탈색한 서적들을 내놓았다. “우리나라에 대대로 내려온 서적들 가운데 오·탈자가 하나도 없는 것을 꼽으라면 이 두가지입니다. ●선조들이 해인사 대장경 엮을 때처럼 정성껏 박씨는 해인사 대장경의 경우 선조들이 ‘1자 3배’(목판에 한 글자 쓰거나, 새긴 뒤 세번 절하는 것)로 믿기 힘든 정성을 쏟았으니 호국정신이 얼마나 강했는지 엿보입니다. 그러니 오·탈자가 있을 리 만무하지요.” 한글학회가 발간한 자료집에 이르자 표정이 심각해졌다. 지명사전 18권을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6·25때 일입니다. 패잔병들이 흩어졌다가 작전지도로 보아 율곡리라는 마을에서 합류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군인들은 율곡리를 찾았지만 마을사람들이 ‘율곡이 아니라 밤실(율곡리의 우리말 지명)’이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발길을 돌렸고, 결국 전사자로 처리된 사례가 많았답니다.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난 것이죠. 보다 못한 유엔사령부가 지명사전 발간에 착수했어요.” 박씨가 소장한 서적 중에는 1953년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만수무강을 빈다는 뜻으로 전국의 한문 작가들이 써 올렸다는 글을 엮어낸 ‘헌수송’(獻壽頌)이라는 책도 있다. ●세태 변해도 문중에 대한 관심은 대단 그는 요즈음 서울의 역대 수장들이 남긴 문학 발자취를 더듬어 자료로 내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문헌에 나오는 얘기들을 다듬고, 그들의 문중을 찾아가 후손들과 만나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다. 아무리 세태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집안 이야기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600여년간 1417명인 서울 수장에 얽힌 신문기사가 나가자 전국에서 온갖 성씨(姓氏)들이 ‘우리 조상님도 그 벼슬을 지냈는데 얘기를 자세히 듣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다는 설명이다. 상고를 나와 회사원으로 일하다 대학과 대학원을 거친 그는 보기 드물게 목은 이색(李穡·1328∼1396)의 문학세계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땄다. 한문소설 종옥전(鍾玉傳) 번역판과 수학·과학 학술용어사전, 고사성어 사전 ‘동양의 향기’ 등의 저서를 펴냈다. 한문학 전문가로 수학·과학 용어사전을 낸 이유를 묻자 “과학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단어가 한자의 간단한 원리만 알면 깨우치기 쉬운데 학생이나 모두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에 안타까워서….”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25년 지나도 혼혈에 대한 편견 그대로네요”

    한국에서 혼혈인이자 신체장애인으로 힘든 성장기를 보내다 미국으로 이민간 한 혼혈 여성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던 국내 혼혈아동을 만나기 위해 25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21일 펄벅재단에 따르면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흑인계 혼혈인 정미정(미국명 브렌다 샌더스·43·여)씨는 3살 때 미군 트럭에 치여 오른쪽 다리마저 잃고 혼혈인이자 신체장애인으로 힘든 성장기를 보내야 했다. 미군이었던 아버지와 연락이 끊겨 가난 속에 살아야 했던 것보다 한국에서 혼혈인이자 신체장애인으로 겪은 냉대와 편견은 더 참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그러나 정씨는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에 전념했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한계와 장벽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던 정씨는 1980년인 18세 때 어렵게 아버지와 연락이 닿아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미국에서는 다시 회계학을 전공하고 교직 과목을 이수했으며 텍사스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마침내 꿈을 이뤘다. 정씨는 “미국에서는 신체장애를 갖고 있는 혼혈인이 교사가 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수십년 세월 동안 아직도 변하지 않는 한국의 혼혈인에 대한 편견과 냉대는 실망스럽다.”고 안타까워했다. 정씨는 지난해 뿌리깊은 핏줄의식에서 고통받고 있는 한 혼혈아동에 관한 한국의 신문기사를 통해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또다시 뼈저리게 느끼고 곧바로 자신이 한국에 있을 때 지원을 받았던 펄벅재단에 연락을 취했다. 어려운 혼혈 아동들을 소개받아 후원 아동들과 편지로 왕래하기 시작했고, 뜻을 같이 하는 교포 이웃들과 함께 정성을 모아 매월 5명의 혼혈아동에게 수백달러를 지원해왔다. 방학을 맞아 정씨는 자신이 후원하는 혼혈 아동을 직접 만나기 위해 자신의 반쪽의 나라 한국을 25년 만에 다시 찾은 것. 정씨는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본동 펄벅재단 사무실에서 자신이 후원하는 혼혈 아동을 만나기로 했다.연합
  • “지구촌 한핏줄 봉사하며 느꼈죠”

    “지구촌 한핏줄 봉사하며 느꼈죠”

    지난해 아프리카 베넹공화국의 코토누에서 봉사활동을 한 김주희(27·여·부산대 유아교육과 졸업)씨는 전갈에 물렸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청소를 하다 감전이라도 된 듯한 고통을 느껴 정신을 잃었었죠. 새끼 전갈이라 다행히 독은 없었지만, 인간이 작은 곤충 하나에도 힘없이 죽을 수도 있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정성민(22·한국외대 아프리어학과 3년)씨는 2003년 3월부터 열달 동안 아프리카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있었다. 그는 이민국 직원의 뇌물 요구를 거절했다가 쫓겨나서 버스를 타고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이제와 생각하면 인생에 영원히 남을 보물같은 경험들이다. 세계 각국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학생들이 자신들의 체험을 알리고 공유하는 만남의 장이 펼쳐진다. 국제청소년연합은 10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2005 세계 문화체험 박람회’를 연다. 청소년 선도와 문화교류사업을 벌이는 국제청소년연합은 매년 각국에 나가 1년간 봉사활동을 하는 현장체험 기회를 대학생들에게 제공해 왔다.2002년 13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81명이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올해에는 234명이 40여개국에 파견돼 있다. 박람회에서는 학생들이 현지에서 겪은 생생한 체험담이 소개된다. 지난해 2월부터 12월까지 아프리카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친 오은애(24·여·충북대 불문과 4년)씨는 남의 집에서 가정부 일을 하던 ‘아이샤’라는 동갑내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오씨는 “불쌍한 아이샤가 월급도 못 받고 쫓겨나게 됐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성경을 읽어주자 이슬람 교도이면서도 마음을 풀더라.”면서 “언어와 종교는 달라도 사람을 대하는 진실된 마음은 언제나 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부터 11개월 동안 옛 소련 키르기스스탄 브시켁에 다녀온 김태형(24·순천대 중어중문 3년)씨는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을 만나 그들의 깊은 한을 느꼈다.”면서 “외국인이지만 우리와 한 핏줄인 그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했다. 이번 행사는 50개국의 주한외국대사관과 문화관광부, 교육인적자원부, 청소년위원회가 후원하고 있으며 38개국 대사가 참석할 예정이다. 국제청소년연합은 내년에는 350여명을 파견할 계획이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마광수의 섹스토리] ① 어느 여대생의 ‘에덴동산’여행

    나는 어느날 대낮의 환몽(幻夢)중에 지상낙원이라는 에덴동산엘 가보았다. 그곳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신 더 야(野)한 곳이었다. 나는 에덴동산은 문명화되기 이전의 곳이라서 원시적인 모습을 상상했었다.‘성경’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처음에는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덴동산은 생각했던 것보다 ‘인공미’와 ‘섹시미’의 극치였다. 나는 처음엔 아담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잘생긴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계란형 얼굴에 쌍꺼풀 진 눈, 제대로 오똑 솟아있는 코, 잘 빠진 인중, 그리고 조금 아래 있는 빨간 입술. 그 아래 다듬은지 얼마 안되는 것 같은 2㎜ 정도 자라난 콧수염과 턱수염에서 난 페티시(fetish)를 느낄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아담의 속눈썹이 비정상적으로 길다는 점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인조 속눈썹 같아 보였다. 흡사 여장남성(transvestite)을 보는 듯했다. 하느님이 ‘야한 외모’ 중심주의자이시기 때문에 아담에게 속눈썹을 붙이라고 요구했든지, 아니면 아담 스스로가 나르시시즘에 겨워 긴 인조 속눈썹을 붙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의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이었다. 그 손가락은 Y대 M교수의 긴 손가락들을 연상시켰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 보이는 관절의 움직임조차 아름다웠다. 왼손 검지와 오른 손 검지에는 실 같이 가는 얇은 금사(金絲)가 둘둘 말려져 있었고, 왼쪽 새끼 손가락과 오른 손 약지, 새끼 손가락에는 큼지막한 메탈로 된 커다란 반지들이 끼워져 있었다. 물론 손톱들도 다 10㎝ 넘게 길러져 있었다. 그는 위에는 안이 훤히 비치는 메시로 된 파란색 저지를 입고 있었는데, 이게 바로 무화과 나뭇잎 그물 옷인 듯했다. 웃옷이 비치지 않는 것이었다면 나는 그의 가슴 근육과 배 근육을 볼 수 없어 무지 안타까웠을 것이다. 액세서리들로 온몸이 감싸인 그는 제대로 된 ‘힙합맨’이었다. 나는 평소에 힙합에 관심이 많아 ‘힙합 스타일’의 남자를 보면 눈을 떼지 못했는데 아담은 이 부분에 있어서도 완벽했다. 연한 베이지색 듀렛을 써서 머리를 깔끔하게 밀착시키고 그 위에는 앞이 가죽으로 된 메시캡을 옆으로 15도 정도 기울여서 썼다. 그리고 배꼽까지 내려오는 긴 메탈 목걸이를 두개나 걸고 팔에는 황금 암릿(armlet)과 팔찌를 하고 있었다. 특히 두 젖꼭지에 박혀 있는 커다란 피어싱(piercing) 고리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아담의 손가락을 유심히 쳐다보고 나서 그의 손을 잡았다. 부드럽고 살풋했다. 나는 그의 긴 손가락을 하나씩 살짝 잡아당겨 보았다. 그리고 긴 손톱 끝부분을 깨물어보기도 하였다. 재미있었다. 정말로 갖고 싶은 손이다. 나는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 내내 그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나에 대해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게 더 많다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심볼에 손을 갖다 대봐요. 그리고 내 신체 부위중 아무 곳이나 긁어보세요.” 그래서 나는 그의 심볼을 살며시 잡아 보았다. 그랬더니 그의 페니스 한 가운데 커다란 황금 링이 피어싱돼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저 심볼을 갖고서 인터코스를 하면 여자의 질(膣)에 얼마나 큰 오르가슴을 선사할까’하는 생각에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담은 자기도 역시 나의 치구(恥丘) 부근을 슬금슬금 쓰다듬어 주면서 또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은 ‘야한 사람’을 좋아하셔서 나같은 남자한테도 여자처럼 치장할 권리를 주었죠. 그래서 나는 어느새 ‘탐미적 평화주의자’가 된 것이랍니다. 손톱이 짧으면 오히려 남을 할퀴게 되지요. 그렇지만 손톱이 길면 손톱이 부러지는 게 아까워서라도 남을 할퀴지 않게 되거든요.” 아담의 얘기를 듣고나서 나는 어서 빨리 이브를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아담에게 이브를 소개해달라고 졸랐다. 아담이 내 곁에서 떠난 후 얼마 안 있어 이브를 데리고 나타났다. 이브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섹시하고 야(野)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적어도 3m는 될 것 같은 긴 머리는 하늘색으로 염색되어 중간중간에 흰색과 노란색으로 블리치가 되어 있었다. 이 긴 머리를 앞머리와 옆머리는 남긴 채 가체(假 )처럼 틀어올린 모습이 무척이나 관능적이었다. 가체 위에는 여러개의 나비장식을 하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을 보니 장식품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나비인 듯했다. 위 아래로 헐렁하게 붙어있는 연보라색 원피스는 속이 훤히 비치는 시폰 소재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가슴을 깊게 파 옷깃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여미게 되어 있었다. 허리에는 굵은 요대(腰帶) 비슷한 황금벨트 장식이 있고 모든 옷 끝마다에는 은빛 레이스가 연결돼 있어 여성스러움이 돋보였다. 손톱의 길이는 15㎝가 넘었고 손톱 끝에는 아주 가느다란 황금 체인들이 꿰어져 있었다. 특히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음부(淫部) 부분을 온통 뚫어놓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질구(膣口)에서는 두 개의 사파이어 사슬이 무릎 근처까지 늘어져 내려와 있었는데, 하나는 음순걸이였고 하나는 클리토리스걸이였다. 나는 이브의 섬뜩한 염정미(艶情美)에 놀라 어째서 이토록 야한 몸매를 갖게 됐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브는, “하느님이 워낙 야한 여자를 좋아하셔서 이렇게 차린 것이랍니다. 당신도 에덴동산으로 들어오고 싶으면 하루라도 빨리 야한 여자가 되어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이브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짙디짙은 화장이 무척이나 고혹적이었다. 옷색깔에 맞추어 연보라색 아이섀도우를 칠하고 아이 라인을 눈꼬리 바깥까지 길게 뻗어나가게 하여 더욱 신비감이 난다. 그리고 왼쪽 눈에는 하늘색 콘택트 렌즈를, 오른쪽 눈에는 노랑색 콘택트 렌즈를 끼고 있었다. 특히 숱이 많고 길이가 긴 황금색 인조 속눈썹이 인상적이었다. 립스틱 대신 파란색 글로스 틴트를 바른 입술은 두터운 입술 고리와 함께 더욱 음음(淫淫)한 빛을 자아내고 있었다. 내가 멍청한 모습을 하고 있자 이브는 매트릭스와 쿠션으로 사용할 수 있으리 만큼 크고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젖가슴 사이에서 뭔가를 꺼냈다(이브의 옷에는 주머니란 게 없다. 그녀의 두 가슴 사이가 주머니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스프레이식 파운데이션이었다. 그녀는 햇볕 때문에 화장이 번진다면서 스프레이를 자신의 얼굴에다 대고 뿌렸다. 스프레이에서 나오는 미세입자 하나하나가 그녀의 얼굴 표면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꺄약’하고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스프레이를 잡고 있는 오른 손에서 파아랗고 창백한 핏줄이 보였다. 이브의 가느다란 팔목에 있는 형광색 팔찌 세 개 아래로 힐끗힐끗 엿보이는 힘줄 두 개가 나를 이상하게도 흥분시켰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전혀 새로운 페티시였다. 또 이브는 남자같이 허스키한 목소리를 갖고 있어서 묘한 양성성(兩性性)을 느끼게 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한번 멋진 페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때 아담이 문득 끼어들었다. “우리는 생식을 위한 성관계를 갖지 않습니다. 모든 게 다 비생식적인 성희(性戱)뿐이지요. 남자든 여자든 ‘정력’보다 ‘정열’이 더 중요해요. 부디 이 말을 명심하세요.”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내 앞에서 한뻔 멋진 성희 장면을 보여달라고 청했다. 그랬더니 아담은, “그건 뭐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의 성희를 봐줄때 더 노출증적인 쾌감을 느끼니까요.”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두 사람의 페팅이 내 앞에서 시연되었다. 두 사람은 먼저 옷을 훨훨 벗어던지고 식스티 나인(sixty-nine) 형태로 포개졌다. 그러고는 서로가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펠라티오와 쿤닐링구스를 하는 것이었다. 이브는 길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이따금 아담의 페니스를 자극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아담은 자신의 수염을 이용하여 이브의 치구와 불두덩이 따끔거리도록 슬슬 비벼댔다. 두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구강성희를 즐기는 것을 보면서 나는 군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어느새 나의 음부 언저리는 애액(愛液)으로 흥건히 적셔졌다. “나도 빨리 애인을 구해 저런 페팅을 해봐야지. 그리고 먼저 손톱부터 길게 길러야겠다.”라고 나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약 력 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 [마니아] 그들은 ‘늙음’을 불사른다

    [마니아] 그들은 ‘늙음’을 불사른다

    “나이가 들면 키가 오히려 줄어들어요. 공 던지고 나면 어깨가 아파 병원에 가기도 하고…. 하지만 야구에 미쳐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할아버지 투수’ 장기원(75)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야구 사랑을 노래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슬로건 아래 50세 이상으로 똘똘 뭉친 노노(No老·늙지 않는다는 뜻) 야구단의 마운드를 책임지고 있다. 노인 야구단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야구단에서는 막내가 56세인 주광수(2루수)씨로, 평균 연령이 60세를 훌쩍 넘겼다. 선수들은 저마다 의욕이 넘친다. 40대만 돼도 ‘할아버지 선수’라는 소리를 듣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놀랄 만하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하기야 팀을 소개하는 노노 야구단 타이틀부터가 이를 잘 말해준다.“늙은이들이 주책이라는 소리도 듣지요.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우리를 얕보다간 큰 코 다칩니다.” ●운동 버릇만은 ‘청년’ 장씨는 “야구가 좋아 일제 때부터 유니폼을 입었는데, 인연을 끊은 뒤 40여년이 지나 다시 뛰게 돼 젊음을 되찾은 기분”이라면서 “아들 둘 가운데 한 명은 직업군인, 또 한 명은 목회자여서 야구를 할 기회는 없다.”고 웃는다. 얼핏 자녀들이 동참하지 못한 데 대한 서운함마저 느껴지는 그의 얼굴에 야구 사랑이 묻어나는 듯했다. “어르신, 연세에 비해 아주 건강해 보이십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장씨는 손끝으로 안경을 밀어올리며 “지금도 군데군데 아파 병원 신세를 진다.”면서도 “그러나 100세든,90세든 (볼을)던질 수 있을 때까지는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부인(72)도 “우리 할아버지는 잘 하는 편”이라고 거들었다. 아파트 베란다 한쪽에 놓인 아령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평소 어떤 운동을 하시는지요.”라는 물음에 그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경기에 나설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맞받았다. 매일 한 시간 이상 스트레칭을 한단다. 틈만 나면 아령 5㎏짜리 2개로 근육을 다지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무엇보다 달리기는 기본이라고 덧붙였다. 집에서 가까운 서강대교를 건너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돌아오는 5㎞코스를 매일 아침 뛰다가 최근 잠시 중단했다는 말로 얼마나 체력관리를 해오고 있는지를 그대로 내보였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최근 열린 프로야구 경기장면을 녹화해뒀던 비디오테이프에 눈길이 가고는 했다. 아마 손님을 두고 미안했던지 손녀를 돌보던 부인이 “텔레비전 끄고 얘기를 나눠야지, 나중에 봐도 되잖아요.”라고 핀잔(?)을 주자 실핏줄 굵은 손으로 리모컨을 눌렀다. 장씨는 1997년 3월 노노 야구단이 출범할 당시 엄연히 입단 테스트에 합격한 ‘원조 멤버’다. 광주시 광산동국민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 광주공고를 졸업하던 1952년 한국전쟁에 징집돼 야구를 그만둔 지 45년만의 일이었다. “라디오를 통해 50세 이상 노인들만을 위한 야구단을 창단한다는 소식을 듣고 쏜살같이 달려갔지요.” 한국전쟁이 끝나고 58년 서울에서 일자리를 잡은 장씨는 야구단이 있는 직장을 수소문했으나 접하기 힘들어 뜻을 접어야만 했다. 대신 조기축구로 몸을 다지다가 놓칠 수 없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여기에다 박규채(67·김천대 방송연극영화과 초빙교수) 당시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단장으로, 윤동균(56) 전 OB 베어스 감독과 최동원(47) 해설위원 등 내로라하는 스타 2명이 감독을 맡아 뛸 듯이 기뻤다. 초창기 동료 37명 가운데에는 장씨에게 인생선배인 선수도 2명이나 있었다. 그 무렵 장씨는 67세였는데 좌익수를 맡은 배용해(2003년 작고), 우익수 홍재룡(이상 당시 73세) 회원이 형뻘이었다. 지난해 들어서는 홍씨도 노노 야구단을 떠나 장씨는 이제 최고령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노노 야구단은 젊은이들에 뒤지지 않는 노익장을 뽐낸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한때 회원이 45명으로 불어났다가 지금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20명에 지나지 않아 정비작업 중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아요 장씨는 어린이 날인 지난 5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지하철 지축기지 쪽에 있는 구장에서 ‘피플’을 맞아 6회를 마무리짓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원진리그 AAA리그 소속인 팀은 1대5로 쓴맛을 봤다. 올 시즌 승리는 없고 4연속 패배의 성적이다. 그러나 그는 “사회인 야구라고는 해도 갈수록 기량이 쑥쑥 성장하는 20∼30대와 붙어 어쩔 수 없다.”며 웃었다. 그리고는 “하기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해마다 반타작, 최소한 5∼6승씩은 건졌는데….”라면서 “내 딴에는 최선을 다했는데, 아마추어는 실수 몇 차례로 죽을 쑤는 법”이라고 입맛을 다셨다.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뒷받침이 안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번엔 “그럴 때면 후배들이 야속하겠습니다.”라고 되물었다. 장씨는 “솔직히 져서 좋은 사람은 없지만 나이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라고 거듭 말했다. 타자 10명 가운데 1∼2명쯤은 삼진으로 돌려세운다는 그는 즐겨 사용하는 무기로 홈플레이트 앞에서 구부러져 들어가는 슬라이드를 들었다. 장씨는 “팀이 승리할 때의 기쁨은 더할 나위도 없지만 투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는, 삼진을 낚았을 때의 기분을 마운드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라며 활짝 웃어보였다. ●즐기는 야구, 재미 백배 고교시절 키가 162㎝로 장신 축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보통은 넘었다는 장씨는 얼마 전 160㎝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팀에서 뛰다가 5년 전 회원으로 가입한 고인환(57) 감독은 “선배님은 전체 경기의 40∼50%를 책임진다.”면서 “팀은 내리막길을 걷더라도 ‘오기 때문인지 갈수록 힘이 생긴다.’고 얘기하는 데 후배들이 깜짝 놀라고 있다.”고 알려줬다.” 정신력이 대단하다고 덧붙였다. 일화도 들려줬다. 한창 이기고 있는데, 교체한 선수 때문에 무릎을 꿇는 일이 이따금 나온단다. 어차피 회비를 거둬 팀을 운영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회원 모두에게 뛸 기회를 줘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원칙 때문이었다. 그런데 동료들이 거세게 항의해왔다. 그런 경우가 생길 때마다 “운동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인데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운동하자.”며 설득했으며, 노노 야구단 최고의 보람도 바로 이런 점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고 감독은 이어 “장 선배님 역시 아직도 기량이 녹슬기는 고사하고, 날로 힘이 솟아난다고 한 데에는 워낙 야구를 즐기기 때문 아니겠느냐.”면서 “선수들이 비가 쏟아져도 웬만하면 경기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등 잘 따라줘 고맙다.”고 말했다. ●일본도 무섭지 않은데… 장씨는 98년 6월19일 노노 야구단이 제주시 연동 신제주초등학교에서 열린 일본 실버팀과 친선경기 때로 옛날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양국 친선을 넓힌다는 취지에서 일본 아오모리(靑森) 히로카(弘前) ‘UFO 야구단’과 맞붙었다.77년 창단돼 노노 야구단으로서는 20년 선배인 UFO는 60세 이상 60여명으로 이뤄져 일본에서는 꽤 관록이 있는 팀이었다. 비록 친선경기이지만 노노는 10대 22로 매운맛을 봤다. 이 때의 인연으로 일본 UFO의 2루수 오무라 시로(大村耐郞·68)씨와 아직도 근황이 담긴 편지를 주고받게 됐다고 장씨는 말했다. 노노 야구단에서 선·후배로 운동을 통해 화목을 다졌던 고 배용해 회원과의 잊지 못할 인연도 있다. 일본 와세다대 출신이었던 배씨의 선배로 역시 야구를 통해 사귀었던 실버팀 지바(千葉) 마린스(Marines)의 곤도 에이지(近藤榮治·83)씨도 영원한 ‘야구 친구’로 남았다. 외국관광 등으로 만나 회포를 푼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엔 장씨가 초청을 받아 일본 지바를 방문했다. 마린스가 자신을 위해 마련한 자체 청백전에서 3회를 던졌는데, 자못 놀라워하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기자 양반, 내 얘기를 늘어놓는 것보다는 노노 야구단에 대해 잘 홍보해 나이 많다고 주저앉은 이들이 팀에 들어오도록 해주면 좋겠습니다.”장씨는 이웃나라인 일본만 해도 실버팀이 150개나 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노인 야구단 더 나와야 ‘50세 이상으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쌍수를 들어 환영’이라는 말도 되풀이했다. 그것도 50세 이상,60세 이상,70세 이상으로 나누어 리그를 벌이는 정도라고 귀띔했다. 우리나라 입장으로는 일본과 비교가 되지 않는 저변이라는 설명이다. “그나마 국내에서는 유일한 팀마저 사그라지는 현실”이라고 안타까운 나머지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고인환 감독은 “2003년 7월 강원도 속초에서 지바 팀과 친선경기를 가진 뒤 올해 세번째로 한·일전을 가지려 했으나 독도 영유권 문제가 터지는 통에 무산된 것은 또 한가지 아쉬운 대목”이라고 한수 거들었다. 장씨는 실버팀 창단이 이른 시일 안에 성사되기는 쉽지 않다는 현실 때문에 다른 대안도 내놓았다. “여성으로만 이뤄진 비밀리에(감독 안향미), 피치스(감독 정혜림) 등 이색 팀과의 경기는 하나의 이벤트로도 썩 괜찮은 작품이 될 것입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6년째 노인·이주노동자에 비빔밥 봉사 임영길씨

    6년째 노인·이주노동자에 비빔밥 봉사 임영길씨

    ‘양푼비빔밥에 사랑을 싣고’ 6년째 어르신들과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사랑이 담긴 양푼비빔밥을 제공하고 있는 임영길(63·송파구 석촌동)씨. 그는 언제부터인가 ‘양푼 사장’으로 불리고 있다. 임씨의 주 활동무대는 어르신들이 많이 모이는 마천동 마천복지관과 거여동 송파복지관. 임씨는 1주일에 2∼3회 큰 양푼에 400명이 먹을 수 있는 비빔밥을 마련해 찾아간다. 쇠고기와 계란은 물론, 도라지, 취나물 등이 들어간 양푼비빔밥은 인기 만점이다. 임씨의 사랑은 국경도 넘었다. 성남, 신도림, 안산 등의 외국인 노동자의 집도 임씨의 ‘단골무대’다.6년이 넘도록 한 달에 한 두번씩은 꼭 ‘순회 봉사’를 한다. 일부 노동자들은 피부색과 핏줄의 차이를 넘어 ‘친자식’이나 다름없다. 지난해부터는 전에 다니던 직장인 롯데호텔의 자원봉사단도 함께 하고 있다. 사실 그의 ‘이웃사랑’은 2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 당시 롯데호텔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임씨는 매달 세 명의 소년·소녀가장을 꾸준히 도왔다. 이후 임씨는 퇴직 뒤 잠실 롯데백화점 스낵코너에서 양푼비빔밥 가게를 냈다. 매장을 2개로 늘릴 정도로 성공도 했다. 그러나 그의 본업이 ‘봉사’인 탓에 재산은 연립주택 하나뿐이다. 임씨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특별한 행사도 준비했다. 6일과 9일 석촌동 식당을 빌려 꽃 하나 꽂아줄 자식이 없는 200여명의 독거노인들과 지역 어르신들에게 양푼비빔밥을 대접한다. 고기와 떡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송파구 민속예술단원 김응삼씨도 구성진 창으로 흥을 돋울 예정이다. 임씨는 “홀로 5남매를 키운 뒤 10여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맘 때면 그립지만 이젠 수백명의 부모님이 생겼다.”면서 “힘이 닿는 한 먹을거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生生인터뷰]소설 ‘유랑가족’·산문집 ‘사는게’ 펴낸 소설가 공선옥씨

    [生生인터뷰]소설 ‘유랑가족’·산문집 ‘사는게’ 펴낸 소설가 공선옥씨

    ●가난속 힘겹게 사는 가족들 그려 그의 소설은 늘 조금은 가난하고, 더러는 배가 고프다. 하지만 그를 아는 독자라면 이때의 ‘가난’이 땟국에 절은 남루함이 아니란 사실쯤은 눈치챌 것이다. 핍진한 현실을 흥분 없이 꼿꼿이 대면하고 보듬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 어느 작가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 돼 준 공선옥(42)이 새 소설을 냈다. 신작 ‘유랑가족’(실천문학사 펴냄)은 희망없이 부유하는 부초 같은 인간군상을 불러낸 연작소설이다. “산문집 ‘마흔에 길을 나서다’(2003년)를 쓰느라 돌아다닐 때 많은 사람들을 만났더랬어요. 그때 마주친 사연들이 상당부분 녹아들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결국 그 모든 것들이 작가인 나, 공선옥의 삶이겠지요만.” 7일 인사동에서 만난 그는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행위는 그 자체가 삶”“쓴 건 나였지만, 글들이 나에게로 와주었다.”는 등 선문답 같은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5편이 연작소설 얼개인 이번 책의 주인공은 어쩌면 현실을 힘겹게 부비며 사는 ‘가족’들이다. 글을 끌어가는 동력은 그 가족군상을 헤집고 실핏줄처럼 흐르는 ‘가난’일 것이다. ●‘가난 심술만큼 희망 힘도 세다’ 메시지 연작소설을 이어주는 거멀못 같은 인물은 프리랜서 사진작가 ‘한’. 그 역시 어렵사리 한 가정을 꾸려가는 힘없는 가장이다. 그의 눈을 빌려 시골에서 도시로 또는 도시에서 시골로 정처없이 떠도는 가족들이 지면으로 불려나온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피해 서울로 달아난 여자 용자, 시골에 초라하게 남겨진 아이들, 그리고 그녀를 찾아나선 남편 달곤은 반쪽짜리 가족(‘겨울의 정취’)의 자화상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출발한 이야기는 이리저리 흩어진 ‘가족의 파편’들이 궁핍을 매달고 떠도는 형상들을 줄곧 쫓아다닌다. 작가에게 맨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왜 이렇게 가난에 집착하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답은 간명했다.“내 눈에는 모든 인간들이 다 가난해 보여요. 우리 속에 마치 가난의 싹이 내장돼 있는 것처럼….” 도망쳐온 서울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전전하는 여자 용자, 그를 찾겠다며 서울바닥을 떠도는 남자 달곤, 돈을 좇아 한국 농촌으로 시집왔으나 결국 서울로 ‘탈출’한 조선족 여자 명화, 명화를 찾아 서울 공사판을 전전하는 남편 기석, 역시 명화를 찾아 입국한 조선족 전 남편 용철…. 만화경 같은 이들의 이야기는 메마른 무채색 풍경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작가가 보내는 애정의 눈길은 예사롭지 않다. “거덜난 인간들을 앞세운 이번 글들을 쓰면서 의외로 무척 경쾌했다.”는 그는 “뭔가 물질이 치덕치덕 발라진 인생을 쓰는 게 내겐 오히려 더 답답한 일”이라고 했다. 그에게 있어 가난이란,‘없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작가의 말마따나 “가족을 잃은 외로움으로 또 다른 가족을 일구고 사는 가족들”이 소설에 등장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의 아이를 거두는 또 다른 여자(‘그들의 웃음소리’), 고아가 된 조카딸이 유일한 혈육인 고모네에서 가족으로 엮이는 이야기(‘남쪽 바다, 푸른 나라’)가 그들이다. 검질긴 가난의 심술만큼이나 희망의 힘도 세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잊지 않은 셈이다. ●산문집엔 어린시절·독서일기 등 담아 그 자신 “가난한 유랑작가”라고 잘라 말했다. 초등학생 딸을 거두며 춘천에서 산 지 3년.“전주에 살고 있는 딸이 대학엘 들어갔으니 다시 그곳으로 이사한다.”는 그 삶도 꼭 ‘유랑’을 닮았다.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열여섯살 이후 광주, 여수, 서울, 춘천으로 어지간히도 자주 거처를 바꾸고 살았다. 새 소설이 베스트셀러로 뜨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손사래 치는 품이 영락없이 푼푼한 시골아줌마다.“내 책이 거그(베스트셀러 목록) 올라가믄 부끄러워 살간디요? 없는 데 워낙 익숙해놔서….” “출판사에서 계약금을 받아 썼으니 머지않아 동화책도 낼 것”이라며 또 한바탕 웃어제꼈다. 그는 이번에 어린시절, 독서일기 등 생활이야기를 묶은 산문집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당대 펴냄)도 함께 냈다. 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지금 지방에선] (1) 강원도 원주시

    [지금 지방에선] (1) 강원도 원주시

    지방이 급변하고 있다. 교통·자연자원·튀는 아이디어로 부자가 된 자치단체가 있는가 하면 수도권 집중화, 인구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도시도 적지 않다. 서울신문은 지방분권시대를 맞아 매주 한 차례 지방현장을 순회, 격변기에 있는 지역의 명암을 조망한다. 첫번째로 인구 50만명의 중견도시로 웅비하고 있는 강원도 원주시를 탐방한다. “CEO에게는 투자이익을, 임직원에게는 풍요로운 삶을, 새로운 기회의 도시 원주로 오십시오.” 강원 제1의 도시로 발돋움하려는 원주시가 기업체 유치를 위해 내세우고 있는 슬로건이다. 서울에서 1시간이면 닿는 지리적 이점이 있는 데다 우수한 산업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수도권 알짜 기업들이 해마다 큰 폭의 증가율로 찾아들고 있다. 편리한 교통, 깨끗한 자연, 국토 중심부의 지리적 위치, 우수한 산업 인프라 등이 유기적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원주시 발전의 기폭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사통팔달의 교통 수도권과 30분대 원주시가 뜨고 있는 밑바탕은 편리한 교통여건이다. 국토의 동∼서축을 잇는 영동고속도로와 남∼북을 가르는 중앙고속도로가 만나는 곳에 도심이 위치한 데다 2009년 말 제2영동고속도로(57.5㎞)가 완공되면 원주시는 수도권에서 30분대에 놓이게 된다. 제2영동고속도로가 건설되면 인천국제공항과 제2경인고속도로, 안양∼성남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등과 직선으로 연결되면서 유통·물류 중심지로도 각광을 받을 전망이다. 도심의 실핏줄 역할을 하는 간선도로망도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4∼6차선으로 시원스럽게 뚫려 미래도시에 대비하고 있다. 여기에다 2008년이 되면 청량리∼원주간 전철이 복선화된다. 원주공항에서는 제주도까지 직접 연계되는 항공노선이 개설돼 있다. 이같은 사통팔달의 도로여건은 수도권 소재 기업과 인구의 강원도 이전을 촉진시키고 특히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른 공공기관 이전 유치전에도 청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2014년 동계올림픽이 유치되면 철도청에서 원주∼평창∼강릉으로 연결되는 철도노선을 신설할 예정이어서 원주의 교통인프라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될 전망이다. ●공단 4곳 가동중 잘 갖춰진 산업인프라도 원주시 발전의 중요축이다. 수도권보다 월등히 싼 가격에 입주할 수 있는 풍부한 산업용지가 6곳이 조성됐거나 조성 중이다. 문막지방산업단지와 문막농공단지, 태장농공단지, 우산지방산업단지 등 4곳이 이미 가동되고 있다. 의료전문 동화농공단지가 분양에 들어갔으며 동화지방산업단지도 2006년 준공된다. 특히 원주권을 중심으로 지난 1998년 시작된 의료기기 산업은 연간 매출액이 200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전자의료기기분야는 전국수출 1위의 실적을 올리고 있을 정도로 모범적이다. 당초 열악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원주시가 독자적으로 의료기기 특화공단을 만들기로 하고 연세대 원주캠퍼스 의공학연구소와 뜻을 같이한 지 7년 만에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200평 규모의 흥업면 보건지소를 리모델링해 원주의료기기 창업보육센터를 만들어 10개 업체를 입주시킨 것이 시초였다. 이후 의료기기산업을 위한 인력양성과 기술개발, 인프라를 구축하는 의료기기테크노타운을 건립했다. 창업기업들의 생산을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도 구축했다.10만평 규모의 산업단지가 그것으로 성장기업의 생산기반이 되고 있다. 현재 66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4∼5년 뒤면 150개 이상이 입주할 것으로 기대된다. ●행정기관 기업유치 아이디어 톡톡 행정기관의 지원 시스템도 타 도시보다 적극적이다. 부지물색·공장설립 인·허가 대행 등 포괄적인 원스톱 서비스 지원과 각종 금융지원은 물론 해외시장 개척 등 판로개척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지방에 있으면서 기업정보에 어두운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민간과 기업 컨설턴트사의 전문가들을 영입, 기업유치자문위원을 구성한 것도 효과를 얻고 있다. 이들 자문위원들이 수도권 기업들의 이전동향을 살펴 원주시 기업유치계에 알려주면 곧바로 이전 희망 기업을 찾아 공략에 나서는 기민함을 보이고 있다. 국장을 포함해 원주시청 최고의 엘리트 5명으로 구성된 ‘기업유치계’는 휴일도 잊고 기업유치에 나서 지난해 63개의 기업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올해는 70개를 목표로 뛰고 있다. 유치 기업들 가운데 최근에는 ㈜삼아약품과 자동차 필터 제조업체인 ㈜동우만앤휴멜 등 종업원 300∼400명 안팎의 중견기업들이 강원 원주시 동화지방산업단지로 본사와 공장, 연구소 이전 협약을 체결하며 기업유치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2006년부터 가동되는 이들 2곳 공장에서만 한해 1000억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영재 기업유치계장은 “기업이 무엇을 원하는지 꼼꼼히 들여다보고 지원해 주려는 마인드가 효과를 얻고 있는 것 같다.”며 “원주 서남부지역의 개발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동부권에도 정부의 신도시 건설이 계획돼 있다.”고 말했다. ●미래 기대하며 땅값 폭등 부작용도 이처럼 교통여건과 기업여건이 좋아지면서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2000년까지만 해도 문막공단 도로변 땅이 한 평에 최고 15만원선 안팎이었지만 지금은 50만원을 웃돌고 있다. 평당 2만∼3만원씩 하던 도로가 없는 맹지도 지금은 7만 5000원을 웃돈다. 2001년부터 문막읍·무실동·흥업면 등 공단지역과 신흥도시지역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부동산 붐이 지금은 시내 전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최근에는 원주지역을 토지투기지역으로 고시해 놓았지만 땅을 개발해 되파는 대형 기획부동산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며 좀처럼 부동산가격이 안정되지 않고 있다. 부동산중개업소도 2000년에는 166곳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314개로 배로 늘어난 것만 봐도 활발한 부동산거래를 짐작할 수 있다. 문막읍사무소 직원들은 “최근 몇 년 동안 토지등기부등본 무인발급기 발급건수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이 땅 거래가 그만큼 활발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 김기열 원주시장 “미래형 기업도시인 원주시가 동북아 비즈니스의 새로운 길목에 서 있겠습니다.” 김기열 원주시장의 기업유치에 대한 열정과 포부는 남다르다. 최고의 인재를 기업유치팀에 배치하고 전국 최고의 인센티브와 기업지원 시스템을 구축해 직접 알짜기업을 유치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수도권처럼 가깝지만 수도권 규제가 없다.’는 슬로건 아래 전국 최고의 입지여건이 갖춰지면서 이제는 기업들 스스로가 원주를 찾아오기도 한다. 그는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은 인구가 줄어드는 판에 원주시는 한 해에 5000여명씩 인구가 늘고 신흥도시인 단계·단구동 일대는 유흥업소들이 늘면서 불야성을 이룬다.”고 귀띔한다. 실제로 충주나 제천으로 이어지는 6∼8차선 시내외곽도로를 달리다 보면 밤 늦은 시간까지 차량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김 시장은 이처럼 지역경제가 활발해지는 것을 기점으로 내친김에 유통·물류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비즈니스의 중심으로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복안도 세워놓고 있다. 그는 “인천공항, 인천, 충청, 대구, 춘천 등과 고속도로가 직접 연계되면서 수도권 어느 지역보다도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시장은 특히 “세계 최고의 의료기기 메카를 추구하는 ‘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의 첨단의료기기산업은 이제 원주의 얼굴이 됐다.”면서 “연내에 첨단의료건강산업특구로 지정을 받아 원주시를 의료·건강산업도시로 확대해 키워가겠다.”고 말했다. 다음달 결정되는 이번 특구지정은 상당한 진척을 보이며 원주시가 기업도시로 발돋움하는 또 하나의 기반이 될 전망이다. 전경련에서 추진중인 기업도시 후보지로 선정됐고 이와는 별도로 강원도와 함께 600만평 규모의 기업신도시 건설을 추진 중이다. 그는 “원주시는 수도권과 달리 쾌적한 자연환경과 뛰어난 교육여건, 다양한 레저시설, 싸고 고급스러운 주거시설 등 생활여건도 우수해 이전해 오는 기업체들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원주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서울에도 집성촌 10여곳 있다

    서울에도 집성촌 10여곳 있다

    특별시에 집성촌?서울 양원리등 10여곳 수십 가구씩 오순도순 유영규(42·대구시 남구 대명동)씨는 어려서 자신보다 나이는 적지만 항렬이 높아 아저씨뻘 되는 아이에게 ‘꿀밤’을 먹였다가 집안 어른들로부터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다. 이어 눈을 피해 이 아이를 또 혼냈다가 들통이 나는 바람에 더 큰 야단을 맞기도 했다. 유씨로서는 어린 마음에 억울한 일이 줄을 이었다. 시골지역의 집성촌(集姓村)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 아직도 ‘아랫집은 사촌 형님, 윗집은 숙부, 옆집은 조카, 앞집은 당숙’ 하는 식으로 친인척끼리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는 마을이 10여곳 있다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러한 집성촌들은 그린벨트로 묶이고, 세태의 변화에 밀려 점차 사라지고 있다. 서울 중랑구 망우1동 259 일대에는 서울이라고는 얼른 떠올려지지 않는 ‘양원리’라는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동래 정씨들이 38가구나 모여 산다. ●조선 태조가 하사한 땅 이 마을 정수선(71·새마을금고 운영)씨는 “조상님들이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으로 정한 1394년보다도 3년 전에 이곳에 터를 잡아 살기 시작했으니 벌써 610년을 넘겼다.”고 말했다. 정씨 말대로 이성계가 고려 말 역성혁명에 성공하자마자 일등공신인 정구(鄭)에게 이 일대의 토지를 하사한 인연으로 지금까지 24대째를 내려오고 있다. 마을 이름도 태조와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태조가 자신이 묻힐 무덤자리를 보러 가는 길에 고개를 넘으면서 모든 근심을 잊었다고 해서 망우(忘憂), 고갯마루에서 쉬다가 마신 우물물의 맛이 너무 좋았다고 해 양원리(養源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아무래도 개발제한이 풀리면 집성촌 유지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마을사람들이 내놓는 대답은 ‘천만에’였다. ●사라져가는 집성촌 정씨는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는 바람에 건물을 못 짓고, 땅값이 주변의 10분의1밖에 안되는 등 불이익(?)에 따른 불만도 불만이지만, 무엇보다 건물을 짓지 못하는 불편 때문에 후손들이 고향을 떠나고 있다.”고 허탈해했다. 개발이 늦어져 오래 모여 살아오기도 했지만, 똑같은 이유로 세월에 떠밀려 사라질 위기에 놓인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수선씨는 또한 “집을 팔고 이사하는 바람에 다른 성씨가 10가구 들어와 집성촌이라는 명맥은 이어가지만 이미 순수혈통 마을에서는 약간 벗어난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한 핏줄끼리 옹기종기 모여 산다는 자부심도 있긴 하지만….”이라며 씁쓸해했다. 정씨는 슬하에 7남매를 뒀다. 막내아들 민섭(28)씨를 빼면 모두 서울에 살고 있지만 집성촌에서 나와 사실상 ‘타향 살이’를 하고 있다. 민섭씨 또한 아버지의 마을금고 사업을 도와주려고 머무는 것이니 ‘동거’는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여기는 눈치다. ●“죄다 믿음이 간다오” 정씨의 집 앞에는 7촌 조카, 그리고 바로 옆에는 6촌 동생이 살고 있어 “이곳이 과연 집성촌이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망우동이 서울로 편입되기 전인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九里面)일때는 집성촌이 10개나 있었다. 현재 구리시로 한 단계 뛰어오른 구리면은 망우·상봉·중화·묵·신내·교문·토평·갈매·수택리 등 9개 마을로 이뤄졌는데, 바꿔 말하면 한 마을에 두 가지 성씨의 집성촌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 마을에서 북부간선도로를 가로질러 자동차로 10분쯤 가면 구릉산 아래로 신내1동 산6 일대에 경주 임(林)씨 30여가구가 모여 사는 능말(큰 능이 있다고 해서 붙은 능마을의 준말)이 나타난다. 임씨 집성촌이 처음으로 들어선 것은 선조 36년인 1603년쯤이라는 기록이 전해진다.400년 남짓한 전통으로 정씨네 집안에는 ‘한끗발’ 뒤지지만 결코 녹록하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대부분 직장인들인 양원 마을과는 달리 전체의 절반인 15가구가 아직도 이 지역의 특산물인 ‘먹골배’를 생산하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종친회 총무 임현만(59)씨는 “하루 온종일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조상들의 묘를 지키며 오랫동안 ‘모여 사는 정’에 익숙해져 좀처럼 외지로 나가기가 힘들었다.”고 귀띔했다. 함께 사는 임씨의 아들 준성(29)씨도 “아무래도 집안 어르신들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예의범절이 절로 몸에 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예의 범절 저절로 배워요” 강동구 강일동 ‘벌말’ 청송 심(沈)씨네는 50여가구가 모여 사는 서울에서 가장 큰 집성촌이다.410여년 전인 조선시대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중에 충청도 예산에서 피란온 선조들의 후손이다. 벌말이란 벌판에 마을이 섰다고 할 정도로 너른 땅을 말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어 지명에는 평촌(坪村)이 있다. 벌말에서는 나이는 어려도 항렬이 높은 이에게 존칭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함부로 호칭하다가 혼이 나는 일도 적지 않다. 서로 새해인사를 하는 경우 나이는 자녀뻘이지만 항렬이 높은 이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 강동구의회 의장을 지낸 25대손 심재풍(69)씨는 “10대 할아버지께서 정착한 이래, 마을 규범 때문에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성씨가 같아서인지 금방 화목을 되찾는다.”며 마을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이어 “최근 다른 성씨들이 마을로 들어오고 10촌 이상 촌수가 벌어지면서, 명절이면 친척들이 모두 모여 집집이 옮겨다니며 차례를 지내는 데만 하루 종일 걸리는 옛 풍습이 사라져 아쉽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무슨 사연·어떤 자랑거리 있나 서울 시내엔 10여가구가 모여 작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 모두 6곳이 있다. 도봉구 방학4동 ‘원당마을’에는 파평 윤(尹)씨, 강서구 외발산동 ‘광명마을’에는 경주 최(崔)씨, 강동구 강일동 ‘가래여울’(한강으로 흘러드는 두 여울이 갈라져 흐르는 곳이란 뜻)에는 남평 문(文)씨 집안이 있다. 또 창녕 조(曺)씨들이 대대로 일군 서초구 염곡동 ‘염통골’(마을 생김새가 염통 모양)과 경주 김씨의 내곡동 ‘능안마을’에다 아예 성씨를 따 ‘홍씨 마을’이라고 부르는 남양 홍씨 집성촌이 있다. 집성촌 속에는 깊은 역사만큼이나 자랑거리도 수두룩하다. 먼저 도봉구 방학동 원당마을에 있는 서울시의 보물덩어리가 된 830살짜리 은행나무가 손꼽힌다. 서울시 지정 보호수 1호다. 높이가 24m, 둘레는 9.6m나 된다. 관악구 신림동 산112의1에 있는 굴참나무(천연기념물 271호·수령 1010년)와 종로구 삼청동 106 총리공관 등나무(천연기념물 254호·수령 920년)에 이어 ‘수령’이 서울에서 세 번째다. 원당마을 은행나무는 옛날부터 스스로 몸에 불을 질러 나라의 큰 변고를 알리는 등 신통을 지녔다고 전해지고 있다. 예컨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 이 나무에 까닭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나 소방차가 출동, 진화했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해마다 2월 중순이면 이곳에 30여명씩 모여 떡과 술을 놓고 나라의 안녕을 비는 ‘행목대신제’(杏木大神祭)를 올리고 있다. 은행나무 옆에는 조선시대 비운의 임금인 연산군(1476∼1506년)의 묘가 있다. 이 무덤이 중종반정 이후 연산군의 유배지였던 강화도에서 옮겨오면서 파평 윤씨들이 뒤따라와 정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록으로 찾아볼 수 없어 언뜻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원당마을 윤주현(71)씨는 “정치적으로 억울하게 죽은 연산군의 경우 3족이 멸문지화를 당했고,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비(尹妃)에 대한 효성이 지극해 외척들이 돌봐야 한다고 여겨 이 곳으로 온 게 아니냐는 추측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곳엔 또 마을과 역사를 함께 해온 ‘원당천’이라는 우물이 있다. 태조가 물맛을 본 뒤 칭찬했다는 망우동 양원마을 우물과 비슷한 사례다. 피란민이 숨어들었을 정도로 외진 곳이어서 자연부락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 청송 심씨들의 마을에도 흥미 넘치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심재익(67)씨는 “옛날 한 백성이 산에서 도적을 만났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화를 면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앞 바위의 모양이 호랑이와 똑같이 생겨 그 사건 이후에 그 바위가 마을을 지켜주는 산신령이라고 믿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해마다 음력 7월 초하루에서 사흘 사이에 길일(吉日)을 가려 ‘큰말(벌말의 딴 이름으로, 큰 마을이란 뜻) 산신제’를 지낸다. 앞산 꼭대기에 올라 집집마다 추렴한 쌀로 떡과 술을 빚고 소머리를 제단에 올린다. 서울시내에서 행하는 유일한 산신제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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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개구리 만나보세요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는 ‘겨울잠을 자지않는’ 특별한 개구리들을 모아놓았다. 평생 물속에서만 사는 ‘아프리칸 클라우드’, 실핏줄이 보일 듯 투명한 살색 피부를 가진 ‘알비노 아프리칸 클라우드’, 입이 너무 커서 입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팩맨’ 등 다양한 개구리가 전시돼있다. 수조 안에 작은 수조를 만들어 봄과 함께 막 태어난 1㎝내외의 라이언 피시, 블루탱, 카우피시 등 새끼 물고기를 볼 수 있다. (02)6002-6200, ww w.coexaqua.co.kr ●전세계 개구리가 한자리에 63빌딩 수족관에서는 오는 4일부터 나뭇가지 위에서 살면서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 ‘자바 청개구리’, 황금색의 아프리카 ‘금빛 개구리’, 우리나라의 대표 개구리로 식용이나 사료로 흔히 쓰이는 ‘참개구리’, 뛰는 모습이 새처럼 보인다 하여 이름 붙여진 ‘날개구리’ 등 세계 각국의 10종 100여마리의 개구리를 전시한다.(02)789- 5663,www.63.co.kr ●상상초월 할인 패키지 판매 무주리조트는 오는 13일까지(토요일 숙박 제외) 숙박과 리프트, 렌털이 포함된 패키지를 최고 89%까지 할인해 주는 ‘상상초월 패키지’를 판매한다. 또한 폐장일까지 리프트와 렌털을 50% 할인해주며 정기 여행사 패키지를 이용할 경우 최대 65%까지 할인된다.(063)322-9000,www.mujuresort.com ●욘사마·지우히메 선발대회 사계절 종합 휴양지 용평리조트에서는 ‘겨울연가’의 주인공과 닮은 모델 선발대회를 오는 5일에 연다. 가수 유열의 사회로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윤석호PD가 심사위원장으로, 탤런트 박상원씨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최종 선발자에게는 총 1500만원의 상금과 부상은 물론 본인이 원할 경우 용평리조트와 겨울연가 홍보 요원으로 활동할 수있는 기회도 주어진다.www.yongpyong.co.kr ●봄꽃 테마열차 운행 한국철도공사는 오는 5일부터 4월22일까지 매화, 산수유꽃, 벚꽃 등 봄 꽃을 테마로 남도의 봄을 찾아가는 ‘봄 꽃 테마열차’를 운행한다. 오는 5일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섬진강 매화꽃 열차’는 광양 매화마을 12만평의 매화꽃과 드라마 ‘토지’ 촬영장을 찾아가고,3월 25일부터는 ‘지리산 산수유 꽃맞이 열차’를 10일간 운행한다.‘벚꽃열차’는 진해군항제기간인 3월26일부터 4월4일까지 서울역에서 매일 출발한다.www.korail.go.kr,1544-7788. ●새학기 캠퍼스 할인 행사 롯데월드는 새봄과 함께 신학기를 맞는 대학생들과 초·중·고 신입생들에게 자유이용권을 25% 할인해주며 캠퍼스송 페스티벌, 힙합춤을 배워 볼 수 있는 캠퍼스 아카데미, 새내기들을 위한 메이크업 시연회 등 대채로운 행사로 오는 31일까지 축제를 연다. 할인을 받으려면 학생증을 지참해야 한다.www.lotteworld.com,(02)411-2000.
  • 儒林(288)-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88)-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며느리의 갑사저고리는 소매끝부분인 끝동과 겨드랑이와 접촉이 되는 곁막음 부분과 옷고름과 깃부분은 노랑저고리의 빛깔과는 달리 분홍색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퇴계가 분홍빛깔의 깃을 직접 자름으로써 이이(離弛)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퇴계는 남의 눈을 피해서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낸다. 마지막으로 작별의 큰절을 올리는 며느리에게 퇴계는 다시 다음과 같이 당부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주 멀리 멀리 떠나거라. 그리고 아들딸 많이 낳고 행복하게 살거라.” 퇴계의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는 ‘퇴계언행록’에 기록된 다른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1554년, 퇴계가 예천에 들렀을 때 어느 먼 일가의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매우 딱한 사연을 호소해 온 적이 있었다. 퇴계는 평소에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었으므로 관청에 사사로운 일을 부탁하는 것을 금기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직접 군수에게 부탁하여 과부를 도와주었던 것이었다. 이때 퇴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언행록은 전하고 있다. “내게 있어서는 비록 먼 일가라고는 하지만 선조로 보면 똑같은 자손이니 내 어찌 길가는 사람 보듯 하겠는가.(彼之於牙 雖曰疎遠 以先祖之 一般子孫也 豈敢視若路人)” 먼 친척을 대하며 자기를 기준으로 보아 멀다고 여기지 않고 선조의 입장에서 보면 똑같은 자손이라는 의식은 퇴계가 지닌 위대한 휴머니즘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찮은 먼 일가의 과부 한사람까지도 ‘길가는 사람’으로 보지 아니하고 한 핏줄로 본 퇴계가 한순간 생과부가 되어버린 새 아기에 대해서 풍습을 타파하고 자유의 몸으로 풀어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퇴계의 에피소드는 여기에 그치지 아니한다. 그로부터 몇 년 뒤 퇴계가 선조의 부르심을 받고 어쩔 수 없이 한양으로 상경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종자 하나만을 데리고 한양길에 오른 퇴계는 도중에 날이 저물자 어쩔 수 없이 하루 묵을 집을 찾게 되었다. 다행히 작지만 깨끗한 인가를 발견하여 젊은 집주인에게 하룻밤 묵고 갈 것을 허락받게 되었는데, 퇴계의 신분을 확인한 집에서는 대접이 융숭하였다. 퇴계가 짐을 풀고 피곤한 몸을 쉬려고 할 때 밖에서 젊은 주인이 말하였다. “어르신, 비록 없는 반찬이지만 저녁식사를 준비하였습니다.” 퇴계가 방문을 열자 젊은 주인이 상을 들고 서 있었다. “집사람이 내외를 심히 하는 편이라 쇤네가 가지고 왔나이다.” 퇴계는 밥상을 보자 깜짝 놀랐다. 시골 한촌에서는 볼 수 없는 성찬이었던 것이었다. 퇴계는 육식보다는 가지나물과 산나물과 같은 채식들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상위에 오른 반찬들은 한결같이 퇴계가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들뿐이었다. 특히 나물국이 차려져 있었는데, 한 숟갈 떠먹은 퇴계는 간이 입에 딱 맞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니 어떻게 내 입맛에 이렇게 딱 맞을까. 꼭 우리 집 음식을 먹는 것과 같구나.” 다음날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 아침상이 들어온 것이었다. 민폐를 싫어하여 일찍 먼 길을 떠나려던 퇴계의 방으로 어젯밤과 같은 성찬의 밥상이 들어 온 것이었다.
  • [클릭 세상속으로] 보육원 내쫓기는 ‘18세 어른’

    [클릭 세상속으로] 보육원 내쫓기는 ‘18세 어른’

    “나라에서 올해 300만원씩 준다고 들었어요. 고시원이라도 들어갈 수 있게 ‘집’떠나는 날에 맞춰 돈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7살때부터 서울 A보육원에서 생활하다 다음달 퇴소를 앞두고 있는 천종현(18·가명)군은 요즘 하루하루가 답답하기만 하다.10여년간 지낸 보육원을 떠나면 당장 지낼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은 서울 B보육원을 나서게 되는 김오선(18·여·가명)양도 마찬가지다. 취업을 못해 다음달부터 간호조무사 양성학원을 다닐 작정인 김양은 “당분간 모델일을 하는 친구네 회사 매니저가 얻어준 원룸에 들어갈 작정”이라며 “전·월세방을 구할 돈도 없지만 어떻게 계약해야 하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며 한숨을 내쉰다. 지난 17일 서울시가 보육시설퇴소 예정자들을 위해 마련한 2박3일간의 동해안·경주 여행을 떠나는 천군과 김양의 발걸음은 불투명한 앞날 때문인지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집’ 떠나 어디서 살까 아동보육시설은 고아이거나 부모의 이혼 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맡기는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70%정도가 후자라고 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현재 278개의 시설에 1만 8670명이 수용돼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복지부는 비인가시설까지 합치면 아동보육시설 수용자는 더 많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 만 18세가 되어 아동보육시설을 떠나게 되는 청소년은 전국적으로 약 1200명으로 추산된다. 서울에서는 모두 161명이 그동안 지내던 보육원을 떠나야 한다. 대학에 진학하면 졸업 때까지 계속 보육원에서 지낼 수 있고, 취업이 되면 회사기숙사에서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단체생활을 한 때문인지 조그만 방이라도 마련해 시설을 벗어나려 한다. 한방에 3∼4명씩 함께 지내는 자립생활관에서도 공과금을 내면 3년간 지낼 수 있지만 진학이나 취직을 한 경우에만 입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설은 전국적으로 10여곳에 지나지 않고 수용인원도 적다. 사정이 좋은 편인 서울시의 경우 두 곳의 여자시설과 한 곳의 남자시설이 있지만 모두 70∼80명 정도를 수용할수 있을 뿐이다. 결국 시설을 떠나는 청소년들의 절반 이상은 전·월세 등을 통해 살집을 스스로 구해야 하는 현실이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다. ●돈 없어 헤맨다 방을 구할 때 이들이 쓸 수 있는 ‘종자돈’은 크게 국가에서 지원받는 정착금과 보육시설에서 생활하는 동안 개인후원자에게 개별적으로 받은 후원금이 전부다. 정부에서 주는 정착금은 보건복지부와 광역자치단체가 함께 부담하는데 지방자치단체의 여력에 따라 지원규모가 다르다. 올해는 200만∼400만원 정도 지급될 예정이지만 입금일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퇴소후 수개월이 지난 다음에야 지원금을 받는 실정이다. 개인별 후원금의 경우는 성적·외모 등에 따라 결정돼 개인별로 천차만별이지만 대개는 수백만원 수준이다. 한편, 서울의 경우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보육시설의 법인명의로 2인이 함께 쓰는 전세방을 구하면 2500만원까지 무이자로 4년간 대출받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30명 남짓 이용했을 뿐이다. 법인 명의로 계약과 융자가 이뤄지다 보니 시설에서 이를 꺼리는데다 주택 임대인들도 시설출신 임차인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방황하는 아이들 정작 사회를 나서더라도 이들 앞에 펼쳐진 현실은 가혹하다. 취업을 할 때도 어려움이 따르고, 자신의 ‘비밀’이 드러날까 노심초사하는 경우도 많다. 올 2월 전문대 졸업을 앞두고 서울 C보육원에서 퇴소해야 하는 정석우(21·가명)씨는 “보육시설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취직이 안되는 것 같아 계속 초조하다.”며 “직장없이 친구집을 전전하던 친구들이나 선배들의 모습이 곧 내모습이 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잊혀진 핏줄’을 찾다가 직장이나 학업을 소홀히 하는 경우도 많다. 김양은 “혼자 생활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어린 나이에 결혼하거나 동거를 하는 언니들도 많다.”고 전했다. 3년전 경기 D보육원을 나온 후 제과점에서 일하며 모은 돈을 가지고 올 9월 일본의 한 제과전문학교에 진학하려는 박재우(23·가명)씨는 “보육원을 나서면 월급이 많은 유흥업소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막노동판으로 전락하는 친구들이 많았다.”면서 “보통 사람보다 더 독하게 마음 먹어야 겨우 버틸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사회적응 프로그램 마련해야 시설퇴소 청소년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나 현황 통계자료 등이 미비한 실정이다. 박씨는 “퇴소 전후 구청이나 시청 등에서 어떻게 지내느냐는 전화 한 통 받은 적 없다.”며 당국의 무관심을 꼬집었다.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시설퇴소 청소년들에 대한 대안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상태”라고 답변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세자금 지원 등의 방법을 담당공무원이나 보육기관에 잘 알리고 있다.”면서 “퇴소예정자들이 그같은 사실을 잘 모르는 것은 시설에서 잘못한 일”이라며 책임을 시설에 떠넘겼다. 이에 대해 서울 상록보육원 부청하 원장은 “전세금 지원보다는 현재 운영되는 생활자립관 시설을 크게 늘리면서 다양한 사회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진실이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면 나는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천운영,‘포옹’ 천운영 소설에 대한 보다 정확히 말해,‘바늘’이 출간되고 난 후 이 작가의 첫 소설집을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엽기성’,‘동물성’,‘야생성’,‘야수성’,‘육식성’,‘파괴성’,‘공격성’,‘관능성’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천운영 소설에 이르러 우리 문학은 “가부장적 질서를 난도질하는 육체적 질감을 지닌 현장(김양선,‘기이하고 낯선 가족과 여성이야기’)”을 갖게 되었다는 식의, 지난 연대의 여성 소설과 천운영 소설을 구획짓고자 하는 시도가 여러 평문에서 발견되는 것은 그러므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불감증, 거식증, 불임, 도벽 등과 같은 히스테리적 징후로서만 즉, 부정으로서만 여성 소설의 위반성을 거론할 수 있었던 지난 연대와는 달리,“맹수의 이미지를 띤 여성인물들(황종연,‘탈승화의 리얼리즘’)”은 유례없이 “전복적이고 파괴적인(황도경,‘환상 속으로 탈주하라’)”힘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작가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신선한 살과 피를 원하는 이 짐승의 다음 먹잇감은 무엇이 될 것인가(남진우,‘늑대의 후예’)”쯤으로 표현되는 것이 지금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육체적 질감”,“신선한 살과 피” 등의 앞서 인용한 비평적 수사에서 은연 중 드러나듯, 천운영 소설이 보여 주는 이러한 특징은 무엇보다 그 생생한 현장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제는 잘 알려진 ‘발로 쓰는’ 이 작가의 스타일이나 그로 인한 생동감 넘치는 디테일의 창출에도 불구하고, 천운영이 정작 공들여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취재한 세계, 바로 그 곳으로부터 도출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직접 회를 뜨고, 야나기상의 문신을 보고, 소머리 가르는 접칼을 쥐어도, 작가의 시선은, 장어를 다루는 횟집 주방장의 손놀림에서 텅 빈 수족관 앞에 망연히 앉아 있는 그의 ‘아내’에게로, 남자의 육체에 수놓아진 화려한 거미 문신에서 문신사의 자살한 ‘어머니’에게로, 뼈와 살이 갈려진 소머리에서 우시장 노동자의 ‘할머니’와 ‘연인’에게로 이동한다. 한 세밀한 묘사가 담고 있는 내용이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좌우하는 데까지 미치지는 못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의 포커스 또한 이동할 때가 된 듯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질문들;천운영 소설의 세밀한 묘사와 이에 기반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가려 미처 드러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저토록 야수적이고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인물들 내면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 작가의 두 번째 창작집 ‘명랑’이 출간된 지금, 우리가 시도해야 할 작업은 엽기성과 파괴성의 이면 혹은, 공격성과 야수성의 연원을 추적해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그 그로테스크함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비평적 키워드들의 시발점의 하나가 되었던 천운영 소설 인물들의 ‘몸’으로부터 출발해 보자.“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신체를 보여(심진경,‘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로지르는 섹슈얼리티의 모험과 위반’)”주면서 “몸의 해부학적 묘사라 할 만큼 유난히 신체에 대한 묘사에 집착(황도경, 앞의글)”한다고 평가받는 이 작가의 소설에서, 몸, 그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주목하는 몸의 일부는 얼굴이 아니다. 바로 ‘등’이다. 우리 중 누군가 자신의 ‘등’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이 있을까. 등은 인간의 육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등의 실제 모습을 모르고 산다. 심지어 거울 앞에서도. 그 실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의식의 세계를 은유하고 있으며, 나조차 알지 못하는 이면을 타자는 볼 수 있다는 인식은 불안과 공포의 근원으로 자리한다. 만약 자신의 등이 “굽은 등”이고, 자신이 “곱사등이”이라면, 그 불안과 공포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포옹’의 ‘나(인경)’는 “평면만을 보여주는 거울의 기만성(1:213, 이하 괄호안의 표기는 수록소설집:페이지수)”을 충분히 알고 있다.“그렇게 화장을 하고 차려 입으니 너무 예쁘구나(1:213)”라는 거울 속 어머니의 말은 그러므로 거짓이라는 것도. 일찍이 멜라니 클라인이 말한 대로 거울의 드라마가 막을 내릴 때 더 이상 엄마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아이의 고통은 원초적인 것에 육박하지만, 거울이 제공하는 이 기만적인 나르시시즘은 자기정체성을 구성해 내고, 거울을 통과한 후에야 아이는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굽은 등을 보기를 두려워하는 인경은 여전히 엄마의 일부일 때에만 완전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엄마 품에 안겨 거울 속 나를 바라보(1:213)”며, 자신의 뒷모습이 “백지”로 남기를 바란다. 진실이 절망을 가져다준다면 그 진실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 그것은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믿는 그녀가 불우한 삶을 견뎌 내는 일종의 방법론이다. ‘포옹’에서 인경의 등은, 어머니를 제외한 그 누구도 손대기를 꺼려한다는 점에서는 나조차 어찌할 수조차 없는 내 안의 괴물―‘바늘’에서 곱추를 연상시키는 ‘나’의 등이나,‘숨’에서 육식동물을 연상시키는 할머니의 단단한 등뼈를 보라―이지만, 거꾸로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요구한다는 점에서 소통을 불러오는 몸의 유일한 창구가 된다.“어느 누구도 자신의 등을 쓰다듬을 수는 없는 법이며, 타인만이 그 등을 쓰다듬고 보듬어 줄 수 있”(‘등뼈’)다는 소설 속의 한 전언은 천운영 소설에서 타인과의 소통이란 것은 곧 위무의 다른 말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자신은 볼 수조차 없지만 타자는 볼 수 있으며, 자신은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없지만 타자는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있기 때문에,“아내의 굽은 등”“할멈의 굽은 등”(‘행복 고물상’)에서 번져 나오는 고독감은 남편과 이웃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지친 이를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편은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멍게 뒷맛’)이며, 위로받는 가장 좋은 방법 또한 “등을 내맡기는”(‘아버지의 엉덩이’) 것이다. 천운영 소설에서는 환상 속에 잠깐 이루어진 만남 또한 “등을 만졌던 것 만 같다”(‘월경’)라고 표현된다. 이런 식이라면 타인에 대한 분노나 타인으로부터의 외면은 등을 돌리거나, 등을 치는 것으로 그려질 성싶다. 마치 아버지를 경멸하는 아들이 제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보”고, 그 아버지의 “등짝을 후려”치고 싶어 하는 것(‘아버지의 엉덩이’)처럼, 친구들이 대항할 힘도 없는 ‘나’를 “등을 밀쳐 땅바닥에 넘어뜨리”던 것(‘세번째 유방’)처럼, 살인 장면의 마지막 기억이 “남자가 정말 당신 등을 밀었다”(‘멍게 뒷맛’)로 남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무엇보다 천운영 소설에서 등은 대부분 대상­타자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작중인물의 불안을 담고 있다. 등을 돌린 사람 혹은, 돌아선 사람의 등에 대한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사례들;“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남편 뒤에서 그의 아내는 “침묵하는 당신(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그 “등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왜소한 그 등을 보이고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당신의 바다’)며 견딜 수 없어 한다. 연인들의 연애의 끝은 또 어떠한가. 꿈 속에서 골목을 헤매던 여자는 길 모퉁이에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가지만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모퉁이만 계속해서 나타날 뿐이고(‘모퉁이’), 연인에게 입 맞추던 여인은 “등을 보이고 돌아”선 후 그로부터 “점점 멀어진”다(‘세번째 유방’). 이렇듯 도저한 상실감이 등의 이미지를 빌려 가장 성공적으로 형상화된 소설은 그 표제가 아예 ‘등뼈’이다. “여자가 떠났다”라는 간결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등뼈’는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집착하던 여성이 떠난 이후 전개되는 남성의 황폐한 내면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아무런 징후나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1:138)”라는 구절에서 강조되고 있듯이, 여자의 실종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남자에게 그것은 “떠난 것이 아니라 증발한 것(1:143)”에 가까우며, 남자는 당연히 여자의 그러한 증발에 대비할 수 있는 아무런 준비도 해 놓지 못한 채이다. 그러나 “그때 왜 여자의 등을 쓰다듬어주지 못했을까(1:148)”라는 소설 속의 한 구절을 제외한다면 남자가 여자의 사라짐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남자는 특이하게도 “여자가 떠난 뒤 살 속에 숨은 뼈에 집착하기 시작(1:150)”한다. 주위 사물들에서 뼈를 연상해 내고(1), 원인을 알 수 없는 요추디스크로 고통받다가(2), 급기야 뼈를 찍은 엑스레이 필름을 닥치는 대로 모으며(3), 결국 아무런 식욕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어 그의 몸엔 뼈만 두드러지게 된다(4). 여자가 떠난 후 이 남자가 보여주는 모든 증상((1)∼(4))은 그러니까 ‘뼈’에 대한 집착으로 수렴된다. 그런데 왜 하필 ‘뼈’일까? 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손을 돌려 등을 만졌다. 손끝에 등뼈 마디마디가 분명히 잡혔다. 남자는 욕조에서 기어 나와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서린 김을 걷어내자 남자의 퀭한 얼굴이 보였다. 광대뼈가 툭 튀어 나오고 눈이 쑥 들어간 낯선 사람이 거울 속에 들어 있었다. 남자는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거울에 등을 비추어보았다. 등골이 패고 뼈가 튀어나온 등이 어렴풋이 보였다.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었다.(1:158) ‘뼈’에 대한 남자의 집착은 그의 일상을 와해시키고 결국 그 자신을 말 그대로 뼈만 남게 만들어 버리는데, 사라진 여자가 등뼈는 말할 것도 없고 광대뼈, 턱뼈, 어깨뼈, 복사뼈까지 유난히 뼈가 도드라졌으며 식성도 특이해서 생선뼈, 닭갈비뼈, 조개껍데기와 같이 뼈에 붙은 살들만을 골라 먹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남자의 집착은 그녀에 대한 남자의 무의식적 동일시 즉, 사라진 대상을 불완전하게나마 보유하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동일시가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지면 누구나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유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현실적인 요구와 함께 대상에 투자되었던 리비도는 다시 회수된다(프로이트,‘애도와 우울’). 이것이 상실된 대상에 대한 상식적인 ‘애도’의 과정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에 대한 리비도가 너무나 강해서 현실에서 상실된 대상을 대체할 만한 다른 대상을 찾지 못할 때, 주체는 상실된 대상을 내면화(internalization) 혹은 합체(내적 동일화,incorporation)함으로써 계속 보유하고자 한다(J 버틀러,‘멜랑콜리적 젠더/거부된 동일시’).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상실된 대상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살아 있는 현재로 끊임없이 소환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자가 가까스로 거울에 비춰본 자신의 등에서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환상으로 처리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러한 맥락에서 음미해 볼 만하다.“뼈가 튀어나온 등”은 현재의 환상 속에서 과거의 상실된 대상과 남자가 조우하는 장소로 공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은 이처럼 상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저항이 지극히 위장된 형태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멜랑콜리적 주체의 성격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상실로 인한 슬픔이 애도로 승화되지 못한 원인은 무엇보다 이들이 도저한 상실감의 원인이 된 대상에 대해 ‘의식적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환상 속에서조차 대상과의 만남이 허락되지 않을 때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난폭한 짐승(2:119)”이 출몰하게 된다. 이 “난폭한 짐승” 혹은,“광포한 짐승” 혹은,“제 속에 든 짐승”은 인물들 특히, 여성인물들을 숨이 차도록 달리게 만들기도 하고, 그녀들에게 무서운 식욕을 부추기기도 한다. 다음을 보라:애도할 만한 죽음이 나타나면 여자 속에 숨은 짐승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슬픈 일이 일어나기를, 짐승을 다스릴 만한 제물이 나타나기를 여자는 빌었다(‘모퉁이’, 강조 인용자).“애도할 만한 죽음”이 여자 속 숨은 짐승을 사라지게 하고,“무언가 슬픈 일”이 그 짐승을 다스릴 것이라는 저 여자의 내면이 가리키는 것은, 자신의 상실감의 원인이 되는 대상이 앞에 있다면 그 상실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막한 기대이다. 통제 불가능한 내면은 분명 무언가의 상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된 대상이 눈 앞에 있어 이를 애도할 수 있다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내면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기억-내용은 이미 소실되었으되 기억-감정이 남아 있어 유사한 심리적 기제가 주어지면 어김없이 리비도가 투자된다. 그러나 그 대상이 상실된 바로 그 대상은 아니기에 상실의 흔적은 그녀들에게 애도해야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애초에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남자의 유골을 뿌리러 제주도로 향하는 여자(‘포옹’)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또한 바로 그것이다. 천운영의 소설들에서 누군가의 죽음 혹은 (갑작스러운) 사라짐은 서사를 이끌어 가는 가장 기본적인 모티프이다. 이 작가의 어느 작품을 들춰 보아도 이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명랑’‘아버지의 엉덩이’‘세번째 유방’에서는 할머니가,‘바늘’‘명랑’‘월경’‘당신의 바다’에서는 아버지가,‘바늘’‘멍게 뒷맛’‘월경’‘아버지의 엉덩이’에서는 어머니가,‘숨’‘그림자 상자’에서는 양친부모 모두가,‘등뼈’‘멍게 뒷맛’에서는 여자가,‘모퉁이’에서는 연인이,‘당신의 바다’에서는 남편이 죽거나, 실종되거나, 아무런 예고 없이 주인공 곁을 떠난다. 이러한 상실이 대개 가장 기본적인 삶의 단위인 가족 관계에서부터 발생한다는 것은 이렇게 열거한 목록에서도 금방 포착되는데,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할머니)의 빈자리이다. 천운영 소설이 가족관계 안에서의 갈등을 그 기본 축으로 하면서도 ‘모퉁이’‘그림자 상자’‘세번째 유방’을 제외하면 형제나 자매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소설들에서마저도 언니, 오빠, 동생은 화자를, 부모 특히 어머니 곁에 가까이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쟁자로서만 그 의미를 지닌다. 천운영 소설 속 주인공들의 어머니에 대한 집착 혹은 애증은 그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다. 최근 한 평론에서는 천운영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로 ‘부재하는 아버지’가 거론되었거니와(남진우, 앞의 글), 이 논자의 지적대로 무능하고 비루한 아버지의 초상은 이 시대 거세된 남성성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물론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부재하는 아버지’는 실로 오랫동안 우리 소설의 한 테마였고,‘아비-부재’,‘아비-찾기’,‘아비-되기’,‘아비-부정’의 기나긴 순환 속에서 우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 정체성의 근거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불안과 함께 지금껏 성장해 왔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운영 소설에서 아버지의 죽음, 그 부재의 효과는 말 그대로 그저 ‘없음’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특징적이다. 아버지의 위치가 지극히 주변화되어 있음에도, 이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들들에게서는 그에 대한 어떠한 연민도, 이를 복권하려는 의지도, 스스로 가부장으로 전신하고자 하는 충동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천운영 소설에서 강력한 입법자로서의 아버지란 ‘세번째 유방’의 아버지를 빼고는 찾아보기 힘들며, 심지어 ‘아버지―법’은 “어머니를 닮은 부라보콘”에게까지 자리를 내준다(‘눈보라콘’);“오직 부라보콘만이 내 운명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1:90)”다.‘∼하지 말라’가 사라진 자리에서, 가위를 든 “이발사” 아버지가 사라진 바로 그 자리에서,‘나’는 어머니를 마음껏 향유하고자 한다.‘눈보라콘’에서 부재하는 아버지는 그러므로 이후 도래할 어머니의 빈자리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그치게 된다. 또 다른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아버지의 엉덩이’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버지는 느낄 수 없을 만큼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텔레비전을 본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상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본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쇼핑호스트가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소개하고 있다. 앞치마를 두른 쇼핑 호스트는 크기가 각기 다른 밀폐용기를 쌓아놓고 얼마나 저렴한지에 대해 과장되게 말하며 전화주문을 유도한다.(……) 아버지는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조금씩 내려가는 숫자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2:172) 위 장면의 등장인물의 성(性)을 여성으로 치환시켜 놓으면 즉, 아버지와 아들의 식사장면이 아니라 어머니와 딸의 그것으로 바꾸어 놓으면, 우리 눈 앞에 매우 익숙한 광경이 펼쳐진다. 늙은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딸이 “상”을 차려 들어간다, 어머니의 모습에 “신경질”이 난 딸은 그녀를 “쏘아 본다”, 텔레비전에서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선전하는 “홈쇼핑”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어머니는 숫자판에 넋을 놓고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의 주인공은 분명 아버지와 아들이다. 홈쇼핑 중독자인 아버지의 “게걸스런 주문과 반품”이 “외출”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히스테리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 혹은 홈드라마의 역전된 판본이라 할 만한다. 그러나 이 장면을 언급한 것은 이 시대의 ‘아버지 부재’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한다. 아버지의 ‘엉덩이’라는 발칙한 상상력이 말해 주듯이 다만,‘어머니 부재’로 세계의 중심을 잃어버린 한 “엄마”의 아들로서만,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이 소설의 아버지와 아들, 두 남성 주인공을 움직이는 숨은 작인은 아버지가 아니라 부재하는 어머니이다. 자신의 어머니 묘소 앞에서 “이제 막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갓난아이처럼 우는(2:166)” 아버지는 물론이고, 태어나자마자 잃어버린 “따뜻한 자궁(2:167)”을 그리워하는 아들 역시 포도나무 가지에서조차 “침묵하며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2:182)”를 발견한다. 이들 부자(父子)에게 ‘부재하는 어머니(할머니)’는 모성적 초자아(maternal superego)의 형상으로 그녀의 아들들을 조종한다. 남성인물을 움직이는 모성적 초자아의 형상은 ‘숨’에서는 ‘차가운 자궁’의 이미지를 빌려 섬뜩하게 변주된다. 할머니를 설득하는 마지막 방편인 송치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 ‘나’가 불법적인 물먹이기를 감행하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도망치는 대목에서, 단속반의 추격을 피해 숨어든 장소가 높이 2미터, 영하 20도의 “거대한 냉장창고”라는 점을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추격의 장면이 마치 사냥의 한 대목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점―할머니가 “육식동물”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 발각으로 인해 할머니의 의사를 거스른 미연과의 결혼이 틀어질 위기에 처한다는 점, 그 안에서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숨을 죽여(1:55)”야 한다는 점 등은 이 냉동고가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얼어붙은 자궁’이 물질화된 것임을 암시한다.‘숨’에서 아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냉동고가 이처럼 은유적 차원에서 자궁의 부정적 이면을 함축하고 있다면,‘행복고물상’에서 그것은 “유산된지도 모르고 보름 동안이나 자궁 속에 죽은 아이를 넣고 다녔던(1:162)” 아내를 빌려 실체화되고 있기도 하다. 자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자궁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는 천운영의 소설들에서는 빈번하게 출물하면서 작품의 기저음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당신을 둘러싼 바다 밑바닥 같은 어둠”(‘당신의 바다’)과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천운영 소설에서 어둠, 바다는 의미론적인 층위에서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 놓이는 경우가 흔하며,“깊은 어둠(1:195)”,“어두운 바닷 속으로 깊숙이(1:139)”,“바다 깊숙한 곳(1:156)”,“물 속 깊숙이(1:158)”,“깊은 바다로 침잠(1:136)” 에서와 같이 곧잘 하강 혹은 침잠의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는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최종지점에 어머니―모체―자궁이 자리한다.“탄생 이전의 따뜻한 양수 속으로 돌아가고 있는” 할머니(‘명랑’)나,“태아처럼 몸을 구부리”고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해진 어둠”을 즐기는 아이(‘유령의 집’)는 천운영 소설의 주인공들에서 발견되는 모체―자궁으로의 회귀욕을 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다음과 같은 해석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무력한 아버지를 대체하는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법에 내포된 헤게모니의 일시적인 전복을 읽어낼 수도 있고, 성적 관계의 절대적 방해자로 나타나는 할머니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손자의 서사를 아버지―질서의 외부를 꿈꾸는 딸의 서사의 역전된 판본으로 체감할 수도 있으며, 빈번히 등장하는 자궁 회귀욕으로부터 주체―대상의 이분법에 이전하는 원초적 충동으로서의 모체 회귀욕을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 소설들에서는 그것이 의존성이건, 억압이건, 회귀이건 간에 어머니의 부재가 스토리―시간 내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며,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죽음(‘아버지의 엉덩이’)이나 재혼(‘눈보라콘’)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버려짐이나 내쳐짐의 쓰라린 감각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대상―타자의 상실을 ‘버려짐’으로써 격렬하게 경험하는 인물들은 무엇보다 ‘바늘’‘멍게 뒷맛’‘월경’‘모퉁이’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이다. 울음보가 터졌다.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락 계단을 기어오르면서부터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코피가 나올 것처럼 콧잔등이 매큼해지고 입술은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엄마는 내 울음소리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었다. 내 울음이 엄마를 돌려세울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울음을 그칠 수는 없었다.(2:100) ‘모퉁이’는 주인공 ‘나’가 ‘엄마’와 헤어지는 인상적인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엄마를 잃어 비통한 한 소녀의 심사는,14줄에 걸쳐 집요하게 서술된다. 마치 그것을 영원한 이별이라 예감하는 듯이 소녀는 줄기차게 울어댄다. 그러나 소녀가 그토록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엄마는 단지 아빠의 공장에 밥을 가져다주러 나선 길일 뿐이다. 매일 반복되었을 이 일상적인 엄마의 떠남 앞에서 소녀는 한참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놓는다고 생각되는 존재는 “뱃속의 아이”라도 저주하는 소녀,“엄마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악을 쓰고 울었(2:112)”던 그 소녀,“우는 것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2:105)”이었던 바로 그 소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남자”에게는 여전히 “울음소리”로 존재한다.‘멍게 뒷맛’,‘바늘’에서 역시, 어머니와의 이별은 언제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이며, 성장한 그녀들이 겪는 모든 상실의 밑그림이 된다. 엄마들은 결국 떠난다. 엄마가 떠난 길목을 바라보며 꼼짝도 못하고 있던 그날을 기억하는 ‘나’(‘바늘’)나, 좋은 옷을 차려 입고 기차에 올랐을 때부터 이미 엄마에게 “버려질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당신’(‘멍게 뒷맛’)은, 그런 점에서는 모두 닮은 존재들이다. 이 세 작품에 비해 어머니의 비중이 미미하게 그려진 ‘월경’에서조차, 주인공 ‘나’는 어머니의 화사한 보석함에, 손톱 자른 것, 빠진 머리카락, 상처에서 떼어낸 딱정이와 같이 제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을 모아둠으로써, 뿌리깊은 분리 불안을 드러낸다. 이 소설들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들은 어린시절, 주로 어머니로 대표되는 대상-타자에게 강렬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되, 필연적으로 그 애착이 거부(혹은 금지)됨을 경험한다. 가령,‘모퉁이’에서 그것은 금지의 양상(“엄마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젖무덤을 헤치는 내 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나는 엄마의 매정한 손이 야속했다. 엄마는 내게 동생이 생길 거라고 했다. 동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되우 맞은 사람처럼 휘청거렸다(2:109)”)으로,‘바늘’에서 그것은 거부의 양상(“엄마가 내민 보자기에는 꽤 많은 돈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스님의 옷을 들고 집을 나섰다.‘나는 그곳으로 가야겠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말이었다.(1:24)”)으로 전면화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금지/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욕망은 부인된 형태로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할머니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은 뒤 그녀의 뼛가루를 생전의 할머니가 명랑가루 먹듯 맛보는 손녀가 “내 내부에는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그녀가 있다(2:37)”고 고백하는 것(‘명랑’)처럼, 상실이 일어났을 때 상실을 부인하고 상실된 대상의 속성을 취하여 이를 내면화하는 것이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생존전략이라고 한다면,‘바늘’과 ‘월경’의 ‘나’는 바로 그 길을 간다. ‘바늘’과 ‘월경’은 각각 그로테스크한 인물 묘사와 도착적인 섹슈얼리티로 인해 발표된 직후부터 유독 많은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 온 작품들이다. 이 글의 관점에서 역시, 두 작품은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두 소설을 집중적으로 되짚어 보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 단서들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먼저 두 소설 모두 여성 화자들이 이미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임에도 여전히 아동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으며 또한 공히 인물이 비성적인 단계―통상적인 의미로―에서 성적인 단계로 이행하는 순간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 인물들은 각각 어머니(‘바늘’) 혹은 아버지(‘월경’)와의 이별을 하나의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반대성(性)의 부모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는 점 등이 그 단서들로, 이로부터 우리는 천운영 소설에 나타나는 도저한 공격성(/도착성)의, 이면(/연원)을 다시금 집약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왜냐하면 ‘바늘’과 ‘월경’에서는 여성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한 쪽 부모의 상실이 그녀들의 자아정체성의 형성에 결정적인 기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바늘’에서는 그로테스크한 삽화가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다음의 세 장면은 특히 문제적이다;(1)먼저, 죽어가는 새끼고양이. 간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절에서 살던 시절 ‘나’는 “어미고양이의 날카로운 울부짖음(1:20)”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새끼고양이를 변기통에 버리고는 그 변기통 속으로 고양이가 자취를 감추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2)다음으로, 전쟁기념관에서의 상상. 전쟁기념관에서 ‘나’는 전시된 무기들을 하나씩 꺼내 스님을 공격하는 불온한 상상을 해보지만 스님의 심장이 관통당하고 내장이 갈가리 찢기고 발에서 피가 솟구쳐도, 그녀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좀더 강인하면서 잔인한”“엄마가 할 수 있는 그런 방법(1:21)”이 아니었기 때문에.(3)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자살 소식 직후 행해지는 육식. 형사로부터 어머니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의연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기 한 점을 집어 먹으며, 바위에 찢긴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 보지만 ‘나’의 머릿속엔 “여자의 하얀 알몸만 떠오를(1:31)” 뿐이다;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행위들이 무대화되고 있는 이 세 장면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러니까 ‘나’의 공격적인 행위의 메커니즘을 해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첫 번째 장면에 대한 질문 하나. 어미고양이에게서 떨어져 나와 변기통 속으로 빠져 들어간 새끼고양이는 마찬가지로 버려진 ‘새끼’인 ‘나’의 분신과 다름 없을 터. 그렇다면 이 장면은 ‘나’에게 지극한 고통을 유발했을 것임에도 왜 ‘나’는 이를 스스로 자행하며 게다가 “오랫동안” 지켜 볼 수 있었던 것일까? 마조히스틱한 쾌감 때문에?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상실이 곧 결핍을 부른다는 오래된 통념은,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 앞에서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아가 포기된 대상의 심리적 저장고이며 상실된 대상은 구성적 동일시의 하나로 자아 안에 거주하면서 자아와 함께 출몰한다는 사실은 일찍이 프로이트가 ‘자아와 이드’에서 기술한 바 있으며, 버틀러는 그러하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대상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위상을 외부적인 것에서 내부적인 것으로 전이하는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J 버틀러, 앞의 글). 즉, 상실에 대처하는 멜랑콜리적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상실 자체를 무화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나’가 새끼고양이를 변기통 속에 버릴 수 있었던 까닭으로 이미 그녀의 자아 안에, 거부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가, 멜랑콜리적 동일시를 통해 그 자아의 일부로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어머니는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숨쉰다! ‘나’의 행위에서 ‘나’의 위치와 어머니의 위치가 이중적으로 얽혀있는 것은 이러한 내면화의 결정적인 증거다. 버려짐과 버림을 동시에 구현하는 새끼고양이의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스님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상상이나, 자살 소식 직후의 육식 또한 마찬가지의 메커니즘 아래에서 작동한다. 스님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어머니를 빼앗아간 존재에 대한 응징이라는 점에서 그 일차적 의미가 있지만, 그 방식은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던 방법 혹은 어머니가 스님을 살해했던 바로 그 방법에는 미치지 못하기에 ‘나’는 그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수가 없다.‘나’가 공격으로부터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그녀의 내부에서 그녀와 함께 공존하는 어머니의 시선 바로 그것을 체현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기 한 점을 씹어 삼키면서 찢겨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는 그녀로부터 우리는, 어머니가 여전히 ‘나’에게는 알몸의 여자로 현현하는 에로틱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유추함과 동시에,“상실하기보다는 차라리 조각내고 분해하고 자르고 삼키고 소화하고”자 하는 곧, 대상을 먹음으로써 그 대상을 제 안에서 부활시키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식인 행위의 환상(J 크리스테바,‘검은 태양’)의 한 풍경과 마주하기에 이른다. 정신이 아득해져온다. 가슴 한쪽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솟구쳐 올라온다.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리고 그가 했던 것처럼 팔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한다. 누구를 향해 팔을 휘둘렀는지 모른다. 푸른 모자가 튀어오른 것 같기도 하고 계집의 찢어지는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1:83) ‘바늘’에서와 같이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에도 여전히 아동으로 남겨진 듯한 여성 주인공은 ‘월경’의 ‘나’로 재등장한다.‘월경’의 ‘나’는 스무살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월경(越境)하지 못한 채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다.‘나’의 말을 빌리자면 ‘나’의 “몸은 작정이라도 한 듯 자라기를 멈추었다(1:62).” 이 소설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그 경계를 넘어서는 한 순간에 있다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암시되는 바다. 그런데 ‘바늘’과 마찬가지로 한쪽 부모의 상실을 초점화하고 있는 이 소설을 전작 옆에 나란히 놓고 따져볼 때 새롭게 부각되는 측면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그 상실이 ‘나’의 젠더 정체성 형성에 개입됨으로써 ‘나’의 젠더 정체성을 매우 불안정하게 구조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경’에서는, 천운영 소설에서는 이례적으로, 어머니의 떠남이 아니라 아버지의 떠남이 ‘나’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나’가 떠나버린 아버지를 하나의 이성으로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 또한 수차례 등장한다. 그녀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칭하지 않고 ‘그’라고 지칭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인상을 강화하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은 일렉트라 콤플렉스의 천운영식 판본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울 듯하다. 그러나 프로이트에게 이성부모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과 그 욕망의 금지가 여아에게 여성성을 최종적으로 선사하는 것과는 달리 이 소설에서 ‘나’의 젠더 정체성은 오히려 남성의 그것에 가깝게 드러나고 있어 차별적이다. 즉,“가슴도 가슴이지만 계집의 엉덩이는 정말 탐스럽다. 표주박 두 개를 나란히 놓은 듯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툭 불거지는 모습이 여간 아니다(1:70)”라는 구절을 비롯한 소설의 여러 대목에서 나타나듯이 ‘나’는 “은하수 계집”을 성인 남성의 시선으로 욕망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여러 평자들로 하여금 ‘월경’을 도착적 섹슈얼리티가 전경화된 소설로 주목하게 한 주요한 요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함께 트럭 짐칸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 온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았고, 별들은 작은 이슬방울이 되어 우리의 배 위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1:63)”에서와 같이 지극히 감상적으로 또 지극히 여성적인 시선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기억하고 또 애타게 그리는 ‘나’가 어떻게 동시에 “은하수 계집”을, 그것도 저러한 시선으로 욕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불균형은 작가가 도발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몰두한 나머지 그 일관성은 신중히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함에 불과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상실한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내면화하고자 했던, 그럼으로써 상실로 인한 상처를 무의식적으로 무화하고자 했던 ‘바늘’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월경’의 ‘나’ 역시 상실한 아버지를 그러한 방식으로 제 속에 부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즉, 그녀의 자아 안에, 상실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가, 그 자아의 일부로서 공존하고 있다고 말이다.“은하수 계집”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이에 대한 한 근거가 됨은 물론이거니와,‘나‘가 “은하수 계집”을 여러모로 ‘그녀(어머니)’와 견주어 보면서 ‘그녀(어머니)’의 분신처럼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위치하는 사건 곧,“은하수 계집”과 “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정사장면을 ‘나’가 목격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그 사건에서,‘나’가 ‘그(아버지)’의 위치를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과거의 ‘그(아버지)’―‘그녀(어머니)’―“낯선 남자”의 구도를, 현재의 ‘나’―“은하수 계집”―“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구도로 전이시키고 있다는 점은 그 결정적인 증거로 제출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요컨대 ‘월경’에서 ‘나’는 아버지를 욕망하는 데서, 아버지의 욕망을 그리고 아버지가 욕망할 것이라 추정되는 대상을 욕망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나’의 젠더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한 근본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의 시발점에 현실에서의 상실을 절대로 수락할 수 없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내면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읽는 이를 순식간에 포박하는 천운영 특유의 자질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상실과 박탈의 어두운 그림자……, 누군가는 사라지고 그 사라짐이 가족 내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저토록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리하여 이 작가에게 가족은 천운영식으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같은 유령의 집(‘유령의 집’)” 즉,‘아가리(구강기)’적 욕구에 충실한 “괴물”스러운 인물들이 집 안을 떠도는 “유령”의 “어두운” 그림자와 씨름하는 전쟁터나 다름없다.“핏줄”과 얽혀진 인간 욕망의 가장 원초적인 그래서, 들여다보고 싶으면서도 그러기에는 두려운 “하수도” 속 같은 “어둠”이야말로 이 작가의 해부 대상인 것이다. 이어지는 ‘유령의 집’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라;“보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이면에 삶은 존재하니까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고 해보세요. 그건 때때로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겁니다.” 천운영이 꾸며놓은 유령의 집을 방문한 독자에게 이 보다 더 친절한 안내가 또 있을까. 천운영은 이렇게 근본적인 상실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그것도 가족 내부에서 끈질기게 문제화한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 문단에서는 매우 독특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배수아, 백민석 같은 바로 앞선 연배의 작가는 물론이고, 비슷한 연배이며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정이현이나 김윤영에 견주어 보아도 이는 이 작가 특유의 자질이다. 앞서 살펴본 작품들에서처럼 특히나 천운영은 가족 안에서의 상실을 한 인간을 배태해내는 결정적인 그 무엇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제 전환을 맞을 때가 온 것은 아닐까.‘늑대가 왔다’나 ‘그림자 상자’와 같은 비교적 근작들에서는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파괴적 욕구가 분출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가족이 부여한 운명으로부터의 탈출은 아직 환상 속에서만 가능하고 결국에는 처참한 결말을 맞지만 말이다. 앞으로 이 작가에게 “배꼽을 버리고자 하는(‘그림자 상자’)” 욕구가 앞설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운명론에 더 깊숙이 천착할 것인지, 우리는 이 작가를 계속 눈여겨 지켜볼 필요가 있다. ■ 당선 소감 하루 평균 서른 통 정도의 전화를 받고 또 그만큼의 전화를 하며 두 해를 보냈다. 맞춤법을 묻는 전화부터 부고를 알리는 전화까지.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하며 또 누군가의 수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 역시 그리 다르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누군가의 호소에 응답하는, 그러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마음껏 공부할 수 없어 애태우던 나날들이었지만 헛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족함을 스스로 잘 알기에 당선은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응모한 글에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공이 아니라 주위 여러분들의 은덕이다. 국문과 은사님들과 조남현 지도 교수님,202호와 326호에서 동고동락했던 선후배 동료들, 이 분들께 더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 결점이 많은 글을 너그러이 감싸주신 김윤식 선생님과 정과리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결같이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언니, 동생, 오랜 벗들에게는 쑥스럽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고백하건대,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이제는 다른 길을, 그것도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쓸쓸하다. 그러나 약속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세상을 향한 내 새로운 수화기를 함부로 놓지 않겠노라고. 그것이 지금 주어진 이 지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인 것 같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약력 ▲1976년 대구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이번에도 평론의 기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이론에 대한 지식을 과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설익은 개념들이 횡행하면서 작품을 파괴하거나, 작품과 겉도는 독무를 추는 글이 적지 않았다. 이론이 문학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니 배울수록 좋다. 그러나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니 작품 분석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네 편이다. 김수영의 시를 다룬 정경은의 ‘생활의 뒤란, 시’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김수영의 시를 장식해가면서 시의 변주를 다룬 재미있는 글이다. 그러나 그 상상력이 김수영 시의 이해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장욱과 김행숙의 시를 다룬 송승환의 ‘청동 방패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은 동일성의 부정이라는 기본적인 전제 하에 새로운 시의 존재 가능성을 탐색한 글이다. 꼼꼼한 분석이 돋보이고 설득력도 있었다. 오랫동안 시를 써본 사람이라는 짐작이 간다. 다만 구도가 지나치게 단순한 게 흠이었다. 최윤의 세 장편을 분석한 허병식의 ‘진정성의 서사와 주체의 귀환’은 ‘기원의 부재’라는 현대 이론의 신화에 깊이 침윤된 글이다. 그래서 마치 소설이 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씌어진 것처럼 읽었다. 그것이 약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주체의 귀환이라는 명제를 끌어낸 것은 글쓴이만의 독창적 사유의 결과이다. 전체적으로는 대상 작품에 들어맞았지만 세목들에서는 무리한 적용이 많았다. 천운영의 소설 세계를 해부한 차미령의 ‘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은 ‘등뼈’ 이미지를 천운영 소설의 핵심 징조로 보고 그것으로부터 소설의 무의식의 ‘작업’과 변주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파고든 글이다. 분석과 해석이 요령을 얻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기존의 상식적인 해석을 뛰어넘으려는 패기가 돋보였다. 마무리를 서둘러 처리했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글 전체가 보여준 가능성은 그런 약점을 무시해도 좋게 하였다. 당선을 축하한다. 김윤식·정과리
  • 재벌 2·3세 경영 참여…능력 인정? 핏줄 특혜?

    재벌 2·3세 경영 참여…능력 인정? 핏줄 특혜?

    최근 재벌 2·3세들의 경영 참여가 부쩍 잇따르면서 ‘경영권 세습’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체계적인 경영수업과 능력에 토대한 ‘실력 이양’이라는 주장과, 시장 검증을 거치지 않은 무책임한 ‘핏줄 상속’이라는 비판이 맞선다. 대우·한보사태에서 보듯 재벌의 흥망은 국가경제와 직결되는 만큼 부(富)의 승계와 경영권 승계는 명백히 구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지금 상속중 4대 재벌은 3세 경영체제를 굳혔거나 굳혀가고 있다.LG 구본무(59)·SK 최태원(44) 회장이 경영권을 이미 물려받았고, 삼성 이재용(36) 상무·현대차 정의선(34) 부사장은 임원으로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4대 재벌에서 뻗어나온 방계그룹도 경영권 이양이 한창이다. 구평회 LG 창업고문의 둘째아들인 구자용(49) E1 부사장은 28일 사장으로 승진했다. 구자열(LG전선 부회장), 구자균(LG산전 부사장), 구자은(LG전선 상무), 구자민(LG전자 부사장), 구본진(LG상사 상무) 등 범 LG가(家)의 후손들이 속속 전진 배치되고 있다. 현대백화점 정몽근 회장의 아들인 지선씨와 교선씨,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큰딸 현아씨와 외아들 원태씨도 차례로 입사하며 3세 체제 발판을 마련했다.CJ그룹 이재현 회장-이미경 부회장 남매, 롯데그룹 신동빈 부회장-신동주 전무 형제, 현대상선 정지이씨,BNG스틸 정일선 부사장-정문선 이사 형제 등도 총수의 아들딸들이다. ●박용성 회장,“경영능력이 중요” 전국경제인연합회 이규황 전무는 “경영능력만 있으면 총수의 아들이든 삼촌이든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삼성 이건희 회장과 현대차 정몽구 회장도 창업주의 아들이지만 그룹 규모를 10배 이상 키우며 경영능력을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두산그룹 2세인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사석에서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을 나온)이재용 같은 인재는 돈주고 모셔올 판”이라며 재벌 2·3세를 덮어놓고 삐딱하게 보는 세간의 색안경을 경계했다. 최근 총수 자녀들의 승진인사를 낸 그룹들도 한결같이 “혈연관계에 앞서 전문지식을 갖췄다.”고 강변했다. ●이헌재 부총리 “경영권 세습은 곤란” ‘따뜻한 시장경제주의자’를 자처하는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재산이야 자신들이 번 것인 만큼 세금만 제대로 낸다면 얼마든지 세습해도 되지만 경영권은 딸린 임직원과 식솔들,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난 만큼 세습은 곤란하다.”고 못박았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시장에서 전혀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국가경제의 상당부분을 맡겨야하는 운명”이라고 반박했다. 권 교수는 “지금처럼 재벌 2·3세들이 입사에서부터 승진까지 시장원리가 아닌 특혜를 적용받게 되면 경영실패 때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게 된다.”고 우려했다. 최근 공개된 재벌들의 지분 족보에서 드러났듯 적은 지분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유지배 구조 아래서는 이같은 폐해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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