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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난설헌집 목판초간본 발견/조선여류시인… 시문2백10수 공개

    ◎명사신 제사도 실려… 문헌가지 높아 【강릉=조성호기자】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시인인 허란설헌의 작품집 「난설헌집」 목판 초간본이 처음으로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강릉 향토사료관 정항교 학예연구실장(39)이 16일 공개한 이 목판 초간본은 가로 18.5㎝,세로 27㎝ 크기의 39쪽으로 「유선사」「야좌」「염지봉선화가」등 2백10수의 시을 비롯한 문학작품이 실려있다. 특히 이 목판 초간본에는 난설헌집의 전형으로 알려져온 재주갑인자본(재주갑인자본)에 수록되지 않는 오언율시 8수,칠언율시 13수,오언고시 15수,칠언고시 8수등 44수와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헌정 1첩」,몽유광상산시서등이 실려 있어 허란설헌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는 귀중한 문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책머리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명나라 사신 주지번의 소인(소인)과 부사 양유년의 제사등도 실려 있다. 뒷표지만 떨어졌을 뿐 원형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이책 뒷장에는 허란설헌의 동생이자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이 발문을 통해 제작연도를선조 41년(1608년)이라고 기록해 놓고 있다.이는 1606년에 금속활자본으로 간행된 최초의 난설헌집 「재주갑인자본」보다는 2년 늦지만 동래부 목판 중간본과 필사본보다는 84년 앞선 것이다. 허란설헌은 1563년 강릉시 초당동에서 출생,27세에 요절한 조선조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그의 문집은 당시 서민들에게 많이 읽혀 활자본,목판본, 필사본등으로 다양하게 간행됐었다. 목판 초간본을 발견한 정항교실장은 『허란설헌의 새로운 문학작품이 수록돼 있을 뿐만 아니라 보존상태가 좋아 지금까지 발견된 3종류 문집의 오자나 탈자를 바로 잡는등 허란설헌 연구에 큰 도움을 주게 됐다』고 평가했다.
  • 협정내용·전망(열리는 중동평화:3)

    ◎자치 점차 확대… 99년 독립국탄생 꿈/과도정부 한달후 치안·과세권 보유/7개월내 총선… 97년 국경협상 시작/팔과격파 진정·파탄경제 회복등 난제 「가자·예리코 우선자치안」은 계획대로 진행될까.또 자치기간이 끝난 후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어떻게 될 것인가. 13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간의 역사적인 평화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향후 중동평화 정착의 시금석이 될 이스라엘 점령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의 예리코시의 자치정부수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양측이 체결한 잠정자치안의 내용은 과도자치기간을 5년으로 하고 이 기간동안 이스라엘군철수,팔레스타인총선,항구적인 평화회담논의 등의 과정을 거친 다음 새로운 형태의 팔레스타인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잠정자치안은 평화협정 체결후 1개월뒤부터 발효되며 이때부터 PLO과도정부는 국방 외교권을 제외하고 그동안 이스라엘이 행사해 왔던 치안 과세 교육등 대부분의 권한을 인계받기 시작한다.이와함께 이스라엘군은 오는 12월부터철수를 개시,내년 4월까지 가자·예리코에서 철수를 완료해야 한다. 협정체결 3개월이 지나면 5년간의 공식 자치기간이 시작되며 이로부터 7개월내 가자·예리코의 자치를 주관할 자치위원회구성을 위한 팔레스타인 총선을 끝마쳐야 한다.이에앞서 이스라엘군은 총선실시전까지 예리코 이외의 요르단강 서안에서 철수해야 한다.동예루살렘과 유태인거주지역,전략적 요새는 제외된다. 이후 97년1월까지는 동예루살렘의 지위,유태인거주지역,팔레스타인난민문제,국경문제등에 관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양측은 또 과도자치기간이 완료되는 99년초가 되면 최종합의를 거쳐 새로운 형태의 팔레스타인 정부를 수립한다는 계획을 잡아놓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문서상의 약속이 실행에 옮겨지기까지는 평화협정체결까지 겪었던 우여곡절만큼이나 넘어야할 고비가 많다는데 있다. 당장 눈앞에 떨어진 사안은 PLO내부의 반발을 어떻게 다둑거리느냐 하는 것이다.진작부터 평화협정에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회교원리주의 조직 하마스가 아라파트의장에 대한 암살을공공연히 경고하고 있는가 하면 그외 4개의 반PLO조직과 PLO내 비주류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어 평화정착의 최대의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이와함께 오랜 분쟁으로 황폐화된 이 지역의 경제재건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생활고 역시 자치성공여부에 또다른 관건이 되고 있다.미국·유럽공동체(EC)를 비롯한 각국이 경제재건의 지원자금을 내놓을 계획이지만 기대만큼 조달되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더구나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1인당 GNP는 각각 7백80달러,1천4백달러에 불과해 자치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생활형편이 나아지지 않을 경우 불만은 가중돼 오히려 과격파 회교세력들에 반기를 들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95년말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동예루살렘지위문제와 잠정자치기간이 끝난후의 팔레스타인 정부형태다.동예루살렘의 지위문제의 경우는 이미 이스라엘이 합병하고 있는데다 팔레스타인 역시 한치도 물러설수 없는 입장이어서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 자칫 그동안쌓아 올린 공든탑마저 무너질 위험성을 안고 있다.또한 잠정자치기간이 끝난 후의 팔레스타인 장래와 관련해선 현재 요르단과의 연방안이 가장 현실성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합병할 경우 대다수의 팔레스타으로 구성될 연방안을 요르단이 순순히 받아들여 줄지도 미지수다.따라서 평화협정체결이라는 서막은 화려하게 장식했지만 이스라엘과 PLO 앞에 놓인 과제들은 한결같이 순열조함이상의 복잡한 조정을 요구하는 것들뿐이다.
  • “졸면 죽는다”…혀깨물며 사신 쫓아/구사일생 광원의 매몰 91시간

    ◎힘빠진 동료5명 차오르는 물속으로/생환일념으로 암흑·갈증·추위와 싸워 무덤속 같은 91시간이었다. 태백 통보광업소 매몰사고의 유일한 생존자 여종업씨(32)는 2천m가 넘는 지하막장 탄더미속에 갇혔던 91시간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마지막 채탄을 위한 발파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위해 마무리를 하던 순간이었다.이때가 13일 낮12시쯤.갑자기 뒤쪽에서 『물이다』는 고함소리에 너나없이 채탄을 준비하는 막장으로 뛰었다.곧이어 「꽝」하는 굉음과 함께 물이 터졌다.막장안 광원들은 모두들 본능적으로 눈과 코를 막았다.발을 적신 물은 빠른 속도로 허리께로 올라왔다.막장은 30도정도의 경사진 2평남짓한 공간. 계속 물은 차올랐다.극도의 두려움을 느낀 동료 가운데 일부는 손도끼로 갱목에 「가족에게 2억원을 달라」는 유언을 새기기 시작했다. 물이 키를 넘어서면서 모두 천장의 갱목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얼굴만 내놓고 간신히 숨을 쉬었다.그렇게 하기를 30분남짓. 힘이 부친 동료들은 갱목에서 손을 놓고 하나둘씩 「죽음」속으로 빠져들었다.몇시간이 지났을까.서서히 물이 빠져 나간 갱도 곳곳에 숨진 서승구씨 등의 5명의 사체가 드러났다. 비통에 잠길 겨를도 없었다.일단 동료들의 시신을 한데 모아놓고 주위를 살폈다.공기파이프가 절단돼 있었다.체력소모를 줄이고 산소를 아끼기 위해 시신옆에 반듯이 누웠다.이전에도 10시간 갱속에 갇힌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구조작업이 간단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암흑은 곧 죽음과도 같았다.엄습해오는 극심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12시간 쓸 수 있는 헬멧의 안전등을 2∼3분 간격으로 켰다 껐다.공포와 함께 찾아온 배고픔과 타는듯한 갈증이 혀를 태웠다.바닥에 깔린 물은 석탄물이어서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상태였다.살기 위해 헬멧에 오줌을 받아마셔야 했다. 희박한 공기속에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자면 죽는다」는 생각에 온몸을 꼬집었다.그럼에도 정신을 잃고 퍼뜩 눈을 뜨기를 몇차례를 거듭했다. 『나는 살 수 있다.아니 살아야 한다』­지상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애태울 아내 지대숙씨(29)와 아들 형규(12)·성규(10)를 떠올리며 졸음을 이기려고 혀도 깨물었다. 멀리서 「쿵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구조대가 다가오고 있었다.살아난다는 확신을 「신념」이 아닌 「사실」로서 확인한 순간이었다.
  • 범죄도시로 변하는 모스크바(특파원코너)

    모스크바는 최근 범죄조직들간 세력다툼으로 인한 총기살인사건이 꼬리를 물어 꼭 30년대 미국의 시카고를 방불케하는 살벌한 분위기이다.시장개혁과 함께 등장한 각종 범죄조직들이 제각기 영역확보를 위해 「필사의 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 조직범죄 관련사건들은 유형별로 세력영역을 둘러싼 싸움과 업주들을 상대로 한 「존재과시」성격의 공격이 주류를 이루는데 최근 3주동안 이와 관련된 피살자수가 20여명에 이르고 있다.이들이 동원하는 수법도 총기난사,수류탄투척 등 잔인하기 이를데 없어 이제 모스크바는 일반시민들이 대낮에 길을 걷기가 무서운 도시가 돼버렸다. 지난 6일 하오 5시경.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괴한들이 크렘린 지척에 있는 한 무역회사 사무실을 급습,총기를 무차별 난사하고 수류탄까지 던져 사무실안에 있던 5명을 몰살했다. 8월초에는 한 카지노업소 사장이 역시 백주에 자신의 업소 문밖에서 괴한으로부터 총탄 3발을 맞고 즉사했다.종업원 2백50명을 거느린 대형 달러식당 트렌모스의 사장이 자기집 차고에서 총격을 받아 숨졌으며 같은 무렵 영국 유나이티드 텔레콤사 지점장이 자기집에서 칼로 난자당한 시체로 발견됐다.그리고 7월중순에는 한 프랑스 자동차대리점에 괴한들이 무차별 총격을 가해 4명이 현장에서 피살됐다.이런 사례는 이제 너무 많아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가 됐다. 러시아 내무부 자료에 따르면 금년도 상반기 범죄발생 건수가 7천건을 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61%가 늘어난 것이다.이가운데 살인만 6백46건이다. 이와함께 강도·살인 등 외국인을 상대로 한 강력범죄도 계속 늘어나 올 상반기 외국인 피해건수가 7천건에 이르고 있다.그래서 외국인들 가운데는 자녀들의 등하교,출퇴근길에 보디가드를 고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지저분한 거리,불친절한 사람들,외국인만 봤다하면 바가지를 씌우려는 장사치들.여기에다 범죄까지 겹쳐 이제 모스크바는 적어도 외국인들이 살기에는 「세계 최악의 도시」가 돼가고 있다. 이 마당에 빅토르 예린 내무장관은 얼마전 외국인 피해대책에 관해 언급하면서 『외국인들 스스로에게도 책임이 있다.좋은 차 타지 말고 좋은 옷도 입지 말라.가급적 돈있는 티를 내지 말라』고 주문한 적이 있다.하지만 진짜 문제는 러시아 지도부가 지지부진한 개혁과 보혁간 권력투쟁에 빠져 이런 문제에 대책을 세울 여력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 죽은 자의 춤/일 부토 서울 페스티벌

    ◎8월20일∼9월4일 창무극장서 막올려/일 춤의 3대 주류하나… 정상급 13명 출연/사체의 몸부림·영적 에로티시즘에 “전율” 가부키(가무기),노(능)와 함께 일본춤의 주류를 이루는 「죽은 자의 춤」부토(무답)가 한국에 상륙한다.창무예술원초청으로 8월20일부터 9월4일까지 창무포스트극장에서 선보이는 이번 공연에는 오노 가즈오를 비롯,야마다 세츠코등 13명의 정상급 일본 부토무용수가 참가한다. 지금까지 일본의 몇몇 부토무용가가 개별적인 국내공연을 가진 적은 있었지만 「일본 부토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특히 현대 일본부토계를 대표하는 오노 가즈오(86)가 펼치는 「라아르헨티나용」공연은 부토예술의 진수를 맛볼 흔치 않은 기회다. 부토는 지난50년대말∼60년대초 일본의 전후사회에 대한 비판정신을 바탕으로 히지가타 다츠미(작고)에 의해 시작됐다.이후 30여년의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지난85년부터는 보수적인 일본NHK에서 공연을 중계할 정도로 「일본인에 의한,일본인을 위한,일본인의 춤」으로 자리를 잡았다.일본뿐아니라 미국,유럽등지에서도 일본을 대표하는 새로운 춤,현대무용의 중요한 한 장르로 대접받고 있다. 하얀 횟가루로 온몸을 분장한 반라의 무용수가 피빛 혓바닥을 내밀며 추는 기괴한 동작,영적인 에로티시즘,반항적 육체언어는 부토를 「어둠의 춤」「침묵의 춤」으로 알려지게 했다.「부토는 일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사체이다」란 경구를 남긴 창시자 히지가타 다츠미의 표현처럼 본디 부토는 죽은 자들의 욕망을 재현하는 몸짓이 주를 이룬다.그래서 「사자와 교감하기 위한 위령곡」이라고 일컬어 지기도 한다. 한여름 공연가를 오싹하게 만들 「일본 부토 페스티벌」은 ▲히지가타 다츠미의 공연기록영화상영(8월20일)을 시작으로 ▲오노 가즈오의 「라아르헨티나송」(21∼22일) ▲우에스기 미츠요의 「그여자」와 다케우치 야스히코의 「중력의 도시」(24∼25일) ▲조쿠조노 다비그룹의 「일촌의 월」(27∼28일) ▲부토사·텐케이그룹의 「무시가시이야기」(29∼30일) ▲오모리 마사히테의 「아모니테의 손톱」,고이테루의 「지하」(9월1∼2일) ▲야마다 세츠코의 「천체의 가을」공연및 전체자유토론(3∼4일)순서로 진행된다.
  • 아시아나기 실종서 발견까지 시간대별 상황

    ◎“사라진 여객기 찾아라” 긴장의 132분/3시38분/레이더망서 자취 감춰/5시25분/생존승객 지서에 연락/4시30분/전남도경에 실종신고/5시40분/헬기·경비정 추가출동/4시58분/군 헬기 3대 바다수색/5시48분/군 헬기 사고지점 발견 ○구조활동 매우 신속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고때 신속한 구조활동으로 인명피해를 줄일수 있었던 것은 해군에서 발진한 헬기3대 중 한대를 조종한 이창묵소령(36·해사34기)이 사고지점을 빨리 찾았기 때문이다. 사고가 난 정확한 시간은 지난 26일 하오3시38분이며 이소령이 발견한 시간이 하오5시50분이어서 2시간12분동안의 공백시간에 정부당국과 군·경 수색팀들은 그야말로 숨막히는 긴장속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여객기가 레이더에서 사라지자 관제탑요원들은 즉각 비상주파수를 열어놓는 한편 사고기와의 무전연락을 계속 시도했으나 응답이 없자 12분뒤인 하오3시50분쯤 「실종」으로 판단,아시아나 항공측에 이 사실을 알렸다. ○군당국에 협조요청 아시아나측은 이때부터 전직원이 비상근무에 들어갔고 임원과 직원이 모두 대기하는 가운데 하오4시30분 사고 추정지역관할인 전남도경과 목포시경에 「실종」을 알렸다.아시아나의 박상환이사는 『실종소식에 전직원이 얼어붙을 정도로 놀랐다』면서 『그뒤 곧바로 자체 레이더시설과 통신망으로 추적했지만 허사였다』고 말했다. 실종소식을 받은 전남도경은 상황의 심각성으로 볼때 군의 지원이 절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4시53분 해군등 군당국에 사고 소식을 전했다. 당시 경찰과 군당국은 목포지역이 항구인 까닭에 실종비행기는 바다에 추락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때문에 상황접수후 5분뒤인 4시58분쯤 출동한 해군 ALT­3 헬기 3대는 목포 앞바다를 중심으로 수색을 시작했다. 그러나 목포 앞바다는 구름이 낮게 깔린데다 시간당 30∼50㎜가 넘는 비가 쏟아지면서 바람도 강하게 불어 헬기수색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도 군당국에 일단 실종을 알린뒤 하오5시10분쯤 경찰청에 이를 보고했으며 보고와 동시에 본청은 목포지역 관내의 가용 경찰력을 총출동시켰다. 이런 가운데 사고비행기에 탑승했다 기적적으로살아난 김현식씨(21)는 사고지점에서 필사적으로 빠져나와 2시간 가량뒤인 5시25분 마을 어귀에서 만난 시민에게 사고소식과 지점을 알렸다. 이 사실도 즉각 경찰에 보고 됐고 화원면 주민들이 총동원되어 구조작업에 나섰다. 추락지점이 맨처음 해남경찰서에 보고된 것은 하오5시35분.그러나 현장 상황은 전혀 알려지지 않아 경찰 관계자들은 발을 굴렀다. 경찰은 사고현장 위치를 군당국에 재차 알려주는 한편 경찰헬기 5대와 바다를 가로질러 가기위해 경비정 2대를 추가로 출동시켰다. ○수송기까지 대기 공군도 이에 가세,5시40분쯤 HH­47 헬기 1대를 사고현장으로 급파했고 부상자 수송에 대비,C­130 수송기 1대까지 대기시켰다. 가장 먼저 발진했던 해군 헬기 3대 가운데 이소령이 탄 헬기가 사고지점에 이른 것은 하오5시48분쯤.사고후 2시간 이상이 지난 시각이었다. 이소령은 현장 발견 즉시 사고지점을 함께 출동한 헬기2대에 알리는 한편 본부에 급전,군·경등에 구조요청을 했다. 사고현장을 발견한 이소령은 차마 돌아갈수 없었다. 비록 초속13∼18m의 강풍이 부는데다 골짜기가 깊고 나무가 울창해 헬기를 공중에 정지시키기가 어려웠으나 그는 즉각 인명구조용 줄을 내려 어른 1명과 어린이 1명을 끌어올렸다. 이때 함께 출동했던 고은상중령 등이 탄 헬기 2대도 현장에 도착했다. 이소령이 몰고간 해군 ALT­3기는 해군이 프랑스에서 도입한 다목적기였기에 인명구조에 용이했다. 기관총이 앞에 장착돼 사격도 할 수 있으며 인명구조용 호이스트가 달려 줄을 내려 올릴수 있었다. 그러나 한번에 한명밖에 올릴수 없게돼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었지만 그는 거동이 가능한 사람에 한해 한번에 2명씩도 끌어올렸다. ○12명 인근국교 옮겨 얼마쯤 지나자 사고지점발견보고 즉시 출동했던 다른 육군 UH­30기 2대가 현장에 도착했고 이어 육군항공 대소속 UH­1H헬기 6대도 달려왔다. 이소령은 이때까지 무려 12명의 생존자를 부근 화원국교까지 옮겼다. 구조작업은 다른 헬기에 의해서도 속속 이뤄지는 한편 부근 주민과 경찰관들도 현장에 속속 도착해 들것 등으로 부상자를 옮겼다.
  • 아시아나기 참사 해남 마산리의 7월 26일

    ◎“뒷산에 비행기 추락… 모두 나오시오”/산마을 인간애가 희생 줄였다/주민 3백여명 필사적 구조작전/빗속 진흙길 부상자 업고 줄달음/뒤늦게 온 유가족·구조대원엔 식사대접 『뒷산에 비행기가 떨어졌으니 동네사람들은 모두 낫과 삽을 들고 마을회관으로 모이시오』 아시아나 여객기추락 직후인 26일 하오 5시30분.전남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이장 김석진씨(60)의 비상을 알리는 급박한 목소리가 마을 스피커를 타고 온동네에 울려 퍼졌다.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것없이 삽과 톱등을 들고 마을회관으로 달려왔으며 『우선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는 김씨의 설명을 대충 듣고 운거산으로 내달았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과 덤불을 연장으로 잘라 헤치며 해발 3백20m의 운거산 8부능선에 다다른 이들은 너무나도 참혹한 현장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소리,처참하게 산산조각난 비행기 잔해와 옷가지,짐꾸러미 등등. 쓰러진 사람들에게 달려가 옷가지를 찢어 상처를 싸매 지혈을 해주었고 비행기 잔해 사이에 끼여 신음하는 사람들을 끄집어 내기 시작했다.힘센 장정들은 부상자들을 들쳐업고 산밑으로 뛰고 노인이나 부녀자들은 사고현장에서 정신없이 승객들을 보살폈다. 이렇게 하길 1시간쯤.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어느새 3백여명의 마천부락 주민들로 대규모 「인명구조단」이 자연스레 구성됐다. 아시아나항공 737편 보잉 737국내선 여객기 추락사고의 구조작전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결국 44명의 귀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끔찍한 대형참사속에서 여객기 추락사고치고는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많은 인명을 구한 것이다. 사고 여객기 승객 김현식씨(21)가 하오 5시20분쯤 홀로 산밑으로 기어내려와 마을에 사고소식을 전한 뒤부터 군·경의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이루어지기까지 두시간동안 마천부락 주민들의 필사적인 희생노력이 없었다면 이번 사고는 엄청나게 더 큰 재해로 이어졌을 것이다. 한차례 폭우가 내린 뒤끝인데다 40도의 급경사인 산을 오르내리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미끄러운 산길을 오르면서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당기느라 주민들의 몸은 어느새 땀으로 뒤범벅됐다. 이장 김씨는 김성수씨(23)등 청년 3∼4명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생존자들을 마을로 후송시켰고 나머지 주민들은 승객들의 안전벨트를 낫으로 끊어가며 생사를 확인했다.청년들이 생존자들을 등에 업고 막 산을 내려갈때 면사무소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군용헬기가 계곡위에서 맴돌았다.헬기에서 구조로프와 카고네트가 내려왔고 주민들은 무게가 가벼운 어린이 4명을 우선 헬기로 올렸다.곧이어 또다른 헬기가 도착하자 주민들은 헬기에서 내려온 군인 1명의 도움을 받아 생존가능성이 있는 중환자를 로프에 묶기 시작했다. 『헬기에서 구조로프를 내렸을때 강한 바람으로 로프가 흔들리는 바람에 한사람을 묶는데만도 10분씩이 걸렸습니다』주민 천용진씨(45)는 온몸이 피로 물든 자신을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박연규씨 등 동네주민들과 함께 8명의 생존자를 로프에 묶어 헬기로 올려 보냈다. 박씨는 『서로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환자들을 대할때 누구부터 구해야할지 괴로웠으나 어린이나 피를많이 흘린 중환자에게 먼저 손이 닿았다』면서 사고 신고가 조금이라도 빨랐더라도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주민들은 생존자들을 확인하기위해 사고 현장인 고도 2백50m의 계곡을 중심으로 직경 1백여m안쪽의 숲과 나무를 헤치며 샅샅이 뒤졌다.다리가 부러진채 근처 숲에 쓰러져 있던 40대 승객은 『나는 괜찮으니 급한 환자부터 옮겨달라』고 애원해 함께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고 당시 이곳에는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여객기가 추락할때 「꽝」하는 굉음을 천둥소리로 잘못 알아들었다』는 주민들은 한결같이 사고소식을 뒤늦게 알아 유가족들에게 죄를 진 것같다고 말했다. 마을에 남아있던 주민들은 각 가정에 있는 밥솥 30여개를 총 동원,생존자와 뒤늦게 달려온 구조대원등 3백여명에게 따뜻한 저녁식사를 대접했다.또 화원면장 김한철씨(53)는 근처 방앗간에서 2백여명분의 주먹밥을 만들어 사고 현장에 긴급 운반하기도 했다. 『많은 희생자가 나 마음이 아프지만 구조된 생존자들만이라도 빨리 완쾌되길 바랄뿐입니다』이 마을 사람들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사고현장에 찾아와 울부짖는 유가족들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특별취재반 전국부 임정용부장 최치봉기자 박성수〃 남기창〃 김수환〃 사회부 김재순〃 박찬구〃 사진부 김명환〃 남상인〃
  • 자백근거 물증찾기 남았다/「화성살인」용의자 수사 안팎

    ◎진술임의성 확보… 증거찾기에 총력/“범행장소서 이상한 행동” 목격자 찾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김종경씨의 신병처리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 7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고난뒤 4·5차 사건의 범행을 모두 자백한 김씨는 지금까지 수사선상에 올랐던 그 어떤 용의자들보다도 「확실성」이 높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지만 아직 증거를 찾지 못해 신병처리에 고심하고 있다. 당초 화성수사본부에서 별로 비중있게 취급되지 않았던 김씨를 전면 재수사한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김씨로부터 객관적인 자백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으나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증거없이는 유죄가 인정된 사례가 거의 없는 상황이어서 경찰의 이번 수사는 불리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경찰이 그동안 김씨를 수사하면서도 48시간 임의동행시간을 지키고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범행을 자백할 때에도 아내를 대동시키는가 하면 변호사 입회아래 다시 자백을 받는등 임의성과 신빙성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것도 수사의 중대성 때문이었다. 또 그로부터 범행내용을 담은 자술서를 받아 그가 언제고 번복할 때에 대비해 두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아내가 보는 자리에서 한차례 자백내용을 부인했다가 자술서를 보여주면서 설득하자 아내앞에서 울면서 범행을 다시 털어놓기도 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경찰은 증거확보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으며 그가 자백한 내용이 실제와 맞아 떨어지는지를 정밀조사하고 있다. 진술을 바탕으로 한 정밀조사에서 경찰은 김씨가 4번째 희생자인 이계숙씨를 살해한뒤 시계와 반지를 파묻고 나중에 이를 없애려고 동네사람들과 함께 낚시를 가장해 현장에 다시가 땅을 파는등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같이갔던 사람들로부터 확인해뒀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경찰은 『범인이 아니면 말할 수 없는』상황이 여러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중시,그를 추궁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에대한 신병처리에 있어 난점으로 떠오른 증거부족은 어찌보면 이 사건 자체가 갖는 난점이다. 사건자체가 2∼7년전 일인데다 초동수사소홀 등으로 확보된 증거가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은『진짜 범인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무죄판결이 날 판』이라고 수사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한다. 자백이 유일한 증거로서 특정사건의 일시·장소·범행내용·사체유기·피해자소지품 등에대한 설명만을 근거로 하여 구속영장이 발부된 예는 몇차례 있다. 유서대필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강기훈씨의 경우도 비슷한 최근의 예. 강씨의 경우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범행 일시와 장소가 영장신청서에 기재되지 않았음에도 그의 범행을 설명하는 정황이 법원에 받아들여져 구속돼 신병이 검찰에 확보된 채 구속만기일인 20일동안 조사를 받고 증거가 보강돼 기소됐던 것이다. 이번에도 경찰은 변호사 입회하에 자백,입회 변호사조차『자백내용이 생각보다 상세해 놀랐다』고 할 정도의 구체적 설명과 임의성을 근거로 앞으로 영장을 신청해 일단 신병을 확보한 채 수사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경찰에서의 구속만기일인 10일동안 경찰은 결정적인 증거나 그가 범인일 수밖에 없는 정황증거를 찾는데 모든 수사력을쏟을 것으로 보인다.
  • 대법·변협,정면대결 양상/「소장판사 성명」 법조계 반응

    ◎“개혁대상 법관 상당수” 성찰 촉구/변협/“법관퇴진론은 독립침해” 견해도/대법/검찰,유탄 맞을까 우려… 민변은 인책론 주장 사법부개혁을 촉구한 일선 소장법관들의 성명서발표파동은 1일 대한변호사회등 재야법조계의 지지결의와 서울지법남부지원단독판사들의 지지움직임에 이어 대법원측이 소장판사들의 집단움직임의 자제를 당부하는 공식입장을 발표,일파만파로 확대되고있다. 대법원은 특히 이날 대한변협이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수뇌부의 개편과 일부 정치판사의 퇴진을 요구하는 강도높은 결의문을 낸데 대해 이례적으로 곧바로 반박성명성 입장을 천명,이번파동의 여진은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변협은 당초 전날에 있은 소장법관들의 성명에 대해 상임이사회 명의로 지지성명만 낼 계획이었으나 『현직법관들마저 법원수뇌부의 개혁의지 부족을 정면으로 지적하고 나선 마당에 법원의 근본개편 없이는 사법부의 진정한 쇄신이 불가능하다』는 내부의견에 따라 85년 유태흥대법원장 사퇴결의이후 처음으로 법원의 인사문제까지 거론한 강도높은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 ○…변협은 이같은 결의 내용에 대해 대체로 이견이 없었으나 현재의 법원수뇌부 가운데 자기성찰 의지가 부족한 인사가 「상당수」 있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어 표결까지 가는등 막바지 진통을 거듭했다는 후문.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지난해 4월 법원부조리공개 파문 당시 사법부 전체를 모독했다는 반발에 변협이 곤란을 겪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표현에 신중을 기했다』면서 『그러나 표결결과 개혁대상이 되는 법원수뇌인사가 상당수에 이른다는데 대해 대부분이 동의,이같은 발표문을 정리하게됐다』고 전언. ○…변협이 사법부의 근본개편을 요구하고 나선데 대해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헌법과 법률에 임기가 보장된 법관의 퇴진까지 변협이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사법부의 독립과 개혁을 저해하는 무책임한 발상』이라며 우려를 표시. ○…법원수뇌부의 퇴진을 변협이 요구하고 나선데 대해 검찰은 겉으로는 무관심한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이른바 시국사건을 주도적으로 심리해온 「정치판사」들의 퇴진까지 거론된데 대해 그 파장이 검찰에까지 확산될지 적잖이 신경을 쓰는 눈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이날 변협과 같은 내용의 성명을 낸데 이어 과거 권위주의 정권아래서 권력에 영합해 현저히 공정성을 잃은 시국재판의 사례를 백서로 발간할 계획이라고 밝혀 관심. 민변은 6공당시 유서대필사건과 전두환전대통령의 처남 이창석씨사건등에서 고위층의 미움을 산 유모부장판사가 정기인사때 승진에서 제외됐던 사례와 85년 시위대학생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가 지방으로 좌천된 박모판사의 사례등 5공당시의 시국재판에 이르기까지 법원의 정치적 행태에 대해 문제삼을 것이라고 귀띔.
  • 구소의 한국전개입 비사:중

    ◎당시 비행단 정보장교 올로프박사특별기고/“압록강 교량 폭격 막아라” 총력전/미 B29 요격위해 미그15기 총출격/51년10월30일 호위기 F84 12대 격추/미군 새항법체계 개발 촉발… 전세 악화 ▷검은 화요일◁ 소공군기가 증파됨에 따라 북한상공에서의 공중전 양상은 급변했다.연합군은 11월 6일 압록강 교량에 대한 중폭격을 개시,첫번째 공습때부터 미그 15기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치열한 공중전이 전개된 것이다.11월 8일 B­29 70대가 5백84t의 폭탄을 신의주에 쏟아부었다.공습은 F­80의 지원하에 이루어졌고 여기에 미그기가 출동,역사상 제트기간 최초의 공중전이 벌어진 것이다. ○사상최초 공중 대결 그 와중에 9대의 B­29기가 안동으로 날아가 1천t의 폭탄을 퍼부었다.B­29는 너무 빨리,높이 날아 중국군의 대공포는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그러나 B­29의 폭격은 정확도가 극히 낮았다.2개의 교량은 약간의 손상만 입은채 금방 복구됐다.11월 19일부터 21일,24일부터 26일 두차례의 공습에서 홍선진 부근의 교량 교각 2개를 파괴하는데 그쳤을 뿐이다. 당시 미그 15는 최신예 전투기였다.성능상 미군의 F­86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았다.23㎜나 37㎜의 강력한 기관총을 장착하고 있었다.그러나 F­86은 수평비행시 속도가 훨씬 더 빨라 공격속도가 앞섰다. 그러나 F­80,84기는 B­29의 안전을 지키는데 부족한 점이 많았다.그들은 공중전시 스피드면에서 미그기에 뒤졌다.미그기가 편대비행을 해 공격할 경우 F전투기들은 당해내지 못했다.그래서 미그기들은 편대공격을 폈다.그해 11,12월 공중전을 겪은뒤 미군 파일럿들은 미그기에 대한 공포심을 가져 제대로 폭격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공습시 명중률이 낮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편대공격에 맥못춰 그래서 미군측은 보다 신예기인 F­88기를 한국전에 투입키로 결정,12월 제4전투비행단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미그기와 F­86간의 첫번째 조우는 안동 부근 압록강 상공에서 이루어졌다.4개의 손가락 형태로 편대비행을 하던 F­86 세이버 4대가 미그기 4대를 만나 잠깐동안의 공중전을 벌여 그중 한대를 격추시켰다. 소공군사령부에서는 이 F­86의 성능을 미그 15와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했다.미공군은 한국에 2천4백대의 폭격기,전투기 2천4백대를 대기시킨 반면 제64비행단은 50∼60대의 미그기만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소공군조종사들은 하루에 2∼3회 출격하기가 예사였다. 51년 봄 코제두프사단이 안동에 도착한뒤 공중전은 더 치열해졌다.아울러 미군측은 전술을 다소 수정,B­29기가 폭격임무에 나서면 전투기 편대 수개가 동해에서 갑자기 출현해 안동비행장으로 접근,미그기의 출격을 저지시켜버렸다.그틈에 B­29는 수월하게 폭격임무를 수행했다. 그래서 소련측으로서는 F기의 출격에서부터 「미그 앨리」로의 접근까지 미리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그러나 당시 소련군은 반경 1백80∼2백㎞를 커버할 수 있는 불과 몇대의 레이더만 보유하고 있었다.그것으로는 제때에 적기의 동향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미측의 암호 거의 파악 당시 내가 소속된 정보부대의 임무는 이 미군기의 조직·위치·전투능력을 파악하는 것이었다.우리는 미군조종사들이 사용하는 특수암호·속어를 다수 알았고 미공군 레이더망의 전파탐지가 가능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폭격기·전투기의 출격을 포착,이를 64비행단 사령부에 보고하는 것이었다. 이 임무가 제대로 이루어져 미그기들이 즉각 적기에 대응하는 것이 가능했다. 교량 하나를 파괴하는데 레이존 4발이 소모됐다.1951년에 들어서는 레이더 유도탄 변형종인 1만2천t 폭탄 「타르존」을 사용하기 시작했다.B­29는 이 타르존 폭탄 1발만 적재할수 있었다.미그 15의 주임무는 공중에서 이 타르존 적재 B­29기를 발견,격추시키는 것이었다.이들은 전투기의 엄중한 호위를 받고있었다. 51년 4월 코제두프가 이끄는 제324비행사단은 압록강 철교를 사수하기 위해 미군기와 치열한 공중전을 전개했다.한번은 50,60대의 미그기가 58대의 B­29폭격기를 압록강 부근에서 저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B­29기 18대가 이 공중전 저지망을 뚫고 교량에 접근하는데 성공했다.한대는 교량 부근에서 격추됐다.며칠뒤에도 48대의 B­29기가 전투기 80대의 호위를 받으며 교량공격에 나섰다.미그기들이 필사저지에 나서 미군기들은 38선까지 후퇴했다.당시 우리 공군기는 38도선 이남으로 적기추격을 못하게 돼있었다. 51년 10월로 들어서면서 공중전은 최악으로 치달았다.거의 매일 8∼9대의 B­29기가 전투기의 엄중한 호위속에 북한 영토내 비행장들을 폭격했다.북한이 중국군의 도움을 받아 남시와 태천시 외곽에 건설하던 비행장들이었다.쌍방이 큰 피해를 입었다. ○소군 역사상 최대전과 10월 16일 미그기 9대가 격추됐다.23일에는 B­29기 3대가 아군기에 의해 격추됐다.이튿날 미그기 40대가 미군기 34대와 맞서 B­29 1대와 F­84기 1대를 격추했다. 아군은 10월 27일 30일간의 공중전끝에 큰 승리를 거두었다.30일 하룻동안 B­29 4대를 격추하고 12대의 F­84를 격추했다.아군 피해는 미상이다.소공군 역사상 최대의 전과였다.미군측은 이 날을 「블랙 튜즈데이」(화요일)」라고 불렀다. 이날 이후 미공군의 작전은 야간에만 이루어졌다. 결국 이날의 승리는 아군측에 불리한 영향을 미쳤다.51년 여름부터 B­29는 「쇼란(슛 레인지 내비게이션)」이라는 이름의 항법체계를 개발해 놓고 있었는데 미그기는 「쇼란」을 이용한 미군의 작전에 전혀 대비가 안돼 있었다.
  • 지면서 이기고 이기면서 진다(박갑천칼럼)

    바둑두는 사람이라면 느껴본 일이겠지만 이번만은 반드시 이기겠다고 벼른 판치고 이긴 경우는 드물다.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허점이 생긴다는 것일까.아마추어만 그러는게 아니라 프로도 그러는 모양이다.얼마만큼 마음을 비운채 최선을 다할수 있었느냐에 따라 승패는 갈리는 듯하다. 그건 바둑에 국한되는 얘기만은 아니다.세상사일반에 적용된다.고층아파트에서 떨어진 아기가 살수 있었던 가닭이 무엇인가.생사에 대한 무념이었다.「필사칙생,필생칙사」라는 구절이 이충무공의「난중일기」에 보인다.죽으려들면 살고 살려들면 죽는다는 뜻이다.저 유명한 명량해전을 하루 앞둔 정유년9월15일 예하장수들을 모아놓고 한말로서 읽는 마음에까지 비장감을 일으키는 대목이다.죽고살고를 넘어서서 최선을 다함이 곧 사는 길이라는 뜻이다.사실 총알은 숨거나 도망가는 병사를 쫓아간다는 말도 있긴하다. 「장자」(달생편)가 비유했던 나무닭(목계)의 우화도 그것이다.강자일수록 승부를 잊은듯이 무심해 뵈는 법이라는 얘기로서 기성자라는 싸움닭 기르는 사람을 등장시키고 있다.그가 왕의 명을 받고 싸움닭을 기른다.열흘이 되자 왕이 물었다. 『닭은 쓸만하게 되었느냐』 『아직 안됐습니다.공연히 뽐내기만 하고 제기운을 믿고 있습니다』 다시 열흘이 지났다.왕이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다.상대를 보면 산울림이 소리에 응하고 형태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덤벼들려고 합니다』 열흘은 또 지났다.왕이 물었다. 『아직 덜됐습니다.아직도 상대를 보기만 하면 노려보고 혈기에 끌리는 점이 있습니다』 한번더 열흘이 지난다음 왕이 와서 묻자 기성자는 대답한다. 『이젠 됐습니다.다른닭이 울어도 움직이는 빛이 안보이고 먼데서 바라보면 마치 나무로 조각한 닭과도 같습니다.자연의 덕을 완전히 갖춘 것이 확실합니다.어떤닭도 감히 덤비지 못할 것이며 아마 바라보기만 해도 도망치고 말 것입니다』 당연히 영맹해야 하는 것이 싸움닭이다.하건만 그 영맹함이 밖으로 나타나보이는 동안은 아직 멀었다고 했던 기성자의 말이 함축한바는 크다.마음을 비운 강자란 사실인즉 안이 충실하다.안이 충실할수록 밖으로는 고요해 뵈는 법이다.나무닭과도 같이.영맹함이 나타난자의 범접할바가 못된다. 지면서도 이기고 이기면서도 지는 경우가 세상사에는 얼마든지 있다.죽으면서 살고 살면서도 죽는 경우는 또 어찌없다 하겠는가.다만 그걸 깨단못하는게 탈이다.
  • 족보실/이경표 국립중앙도서관(굄돌)

    국립중앙도서관 「고전운영실」.이방은 이름만 들어서는 생소하지만 그 이름대로 퀴퀴한 냄새나는 그러나 옛 우리조상들의 얼이 서려있는 방이다. 조선시대 최초 금속활자로 찍은 국보급 자료를 비롯,옛 희귀 귀중도서와 선현들의 문집,그리고 집안족보(주보)등 20여만책이 이 방에 소장되어 있다. 그중 인기를 가장 많이 끄는 자료는 아무래도 족보이며 2만여책 2백80여 문중이 망라돼 있으니 내로라하는 문중이 진열된 셈이다. 족보는 중국 한나라 때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나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이래로 소규모의 필사된 계보가 작성되어 왔으며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의미의 족보는 조선시대 들어와서야 비로소 출현하였다 한다. 기록에 의하면 세종 5년(1423년)에 간행된 문화유씨의 영락보가 최초의 족보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족보로는 1476년에 발간된 안동권씨세보인 성화보이며 1562년에 간행된 문화유씨의 두번째 족보인 가정보도 전해지고 있다. 펼쳐보면 어려운 한자만 가득한 족보는 골치아프고 재미없는 구세대의 유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그러나 족보가 단순히 가계의 기록만이 아니라 종중의 단합과 사회적 통합의 기능을 지닌다고 할때 그것은 오늘날에도 존재의의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족보실 이용자는 주로 나이드신 분들이지만 얼마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렸던 어린이 책잔치에 참가한 아동들이 족보실을 열람하고서는 족보에 대해 대단한 호기심을 보였는데 이는 조상들이 간직하셨던 족보에 대한 외경심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현장을 보는듯하여 매우 흐뭇하였다. 그러나 족보뿐 아니라 희귀도서가 아무리 인기가 있다해도 제대로 보존이 이루어지지 않고 예산때문에 너덜너덜 훼손되어 사라져간다면 그 역사적 죄과는 어찌 보응할 것인가.
  • 북한·이스라엘/작년 10월부터 비밀접촉/타임지가 보도한 실상

    ◎“대이란 무기판매 중지 해주길”/이스라엘/거액경원 제공·금광매입 요구/북한 북한이 대이란 무기판매를 중지하는 조건으로 이란의 적국인 이스라엘로부터 거액의 경제원조를 얻어내기 위해 이스라엘과 심도있는 협상을 벌인 사실이 밝혀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한과 이스라엘간 협상은 현재 북한의 핵개발 저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미국의 개입으로 표면적으론 일단 중단된 상태이다.그러나 양측 모두 관심을 갖고 계속 은밀하게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협상이 재개될 공산이 크다. 7일자 미국 시사주간지인 타임은 북한과 이스라엘이 지난해 10월초 처음으로 미국 뉴욕에서 접촉,이같은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도했다.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한국 기업인의 뉴욕 친구 중재로 이뤄진 양측의 첫 접촉때 이스라엘측에선 에탄 벤처 외무부 부국장이 참석했다.그러나 북한측의 참석자가 누구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 접촉에서 북한측 협상자가 먼저 벤처 부국장에게 『이스라엘이 운산에서 20㎞ 떨어진 지점에 있는 금광을 3억달러에 매입할 것』을 제의했다.이같은 북한측 카드의 뜻을 이스라엘측은 처음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북한이 현금이나 상품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필사적으로 팔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이유야 어떻든 운산금광을 답사하기로 결정했다. 이스라엘측은 그뒤 벤처 부국장과 두명의 지질학자를 포함한 소규모 방문단을 북경을 경유 파북,운산의 금광을 답사토록 했는데 북한측에선 군장성이 대표자로 나와 이들을 안내했다는 것. 뉴욕과 평양,북경에서의 세차례의 접촉을 거치면서 이스라엘측은 북한측이 군장성이 아닌 실질적으로 김일성을 대변할 수 있는 공식적인 인물을 내세우지 않으면 접촉을 중단키로 하는 등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러던 터에 북한측은 이스라엘측에게 『북한에 경제원조를 해주는 조건으로 이란등 중동지역에 무기판매를 중단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할 뜻이 있다』는 그들의 의도를 토로했다.말하자면 북한의 이란에 대한 무기판매로 안보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이스라엘측의 입장을미끼로 이용한 셈이다. 북한측은 당시 경제원조 내용과 관련,수천대의 트럭을 요구한 것 말고는 더 이상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진 않았으나 이스라엘 당국은 원조액이 1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왜냐하면 북한이 이란등 중동국가에 무기판매를 중단할 경우 이만큼의 손실을 입을 것이란 판단에 기초한 것이다. 결국 북한과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접촉은 지난해 12월 북한측 관리가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에게 『평양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이후 중단됐다. 북한은 이 공문에서 『경제원조와 관련한 협상이 결실을 맺으면 정상 외교관계까지도 끌어낼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타임지는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현재 북한이 요구하는 경제원조의 액수가 매년 미국으로부터 받는 원조액의 3분의1에 해당하는 데다 미국의 반대로 평양과의 2자 접촉은 배제하고 있는 상태다.
  • 6·11 보선/여 전승기세 야 “필사저지”

    ◎어제 후보등록 마감… 「여의도 레이스」 본격화/「YS 30년 동지」에 14대총선 「은」 도전/명주/민자 「젊은율사」­민주 「4수생」 각축/여 조직 결집… 야 토박이 내세워 공략/예천 오는 6월11일 실시되는 강원 철원·화천,명주·양양,경북 예천 등 3개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등록이 28일 마감됨에 따라 각 후보진영은 17일간의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했다. 민자당은 이번 선거가 지난 4·23보선에 이어 새 정부의 개혁에 대한 2차 평가라는 점을 내세워 전승을 장담하고 있고 민주당은 이번에는 전멸당할 수 없다는 각오로 배수진을 치고 있다.그러나 각 후보들은 지난 보선에서 나타난 유권자들의 무관심이 또 다시 재현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명주·양양◁ 민자당의 김명윤후보가 김영삼대통령과 30년의 정치적 고락을 같이한 「동지」이며 당 원로인데다 「여권프리미엄」까지 업고 위상면에서 다른 후보들을 앞서고 있다는 자체 분석이다.민자당은 김후보의 경력상 당선되면 여권내에서 상당한 위치를 보장받을 것이라는 지역주민의 기대가압도적인 지지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김후보가 9대 총선이후 20여년동안 이곳을 떠나 젊은 계층의 유권자들로부터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데 내심 찜찜해하고 있다.지난 총선에서 국민당 후보로 나와 상당히 선전한 최각길씨가 이번에는 출마를 포기함으로써 당초 우려했던 표잠식이 없을 것으로 예상,무난한 당선을 장담하고 있다. 민주당은 최욱철후보가 지난해 총선에서 2위를 차지,선전을 한데다가 나름대로의 고정표를 갖고 있어 가장 당선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손꼽고 있다.유권자의 10%에 이르는 강릉 최씨 문중과 고교동문회를 십분 활용,의욕적인 표갈이에 나서고 있다.지난해 대선과 총선에서 국민당을 지지했던 계층을 끌어들인다는 계산이다. 무소속으로 첫 출마한 선복기후보는 강원도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농어민후계자표를 겨냥하고 있으나 얼마나 득표를 할지는 미지수. ▷철원·화천◁ 지난 14대 총선에 나섰던 이용삼(민자)김철배(민주)이경희(신정)후보가 또 다시 격돌해 흥미를 끄는 곳이다.사퇴한 김재순전의원에 이어 이경희 1만4천2백11표,이용삼 8천9백67표,김철배 4천4백20표를 각각 기록했었다. 35세의 변호사로 여당후보를 따낸 이후보는 김전의원이 획득했던 1만4천여표를 그대로 끌어들이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당선될 경우 14대 국회에서 최연소의원이라는 점을 내세워 「젊은 개혁」을 주창하며 유권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김 민주후보는 김전의원이 차지했던 1만5천여표 가운데 가락종친회표를 자신의 몫으로 돌릴 경우 당선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3번이나 떨어진 4수생이라는 점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이다.3번째 출마한 신정당의 이후보는 1천6백여표 차이로 차점 낙선할 당시의 지지수준만 유지하면 당선이 가능하다고 보고 고정표의 이탈방지에 전력투구하고 있다.이후보는 출마 때마다 소속정당이 달랐고 선거법위반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 약점이지만 각종 사회단체의 지역책임자로 활동한 마당발로 만회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예천◁ 민자당이 가장 신경을 쏟아붓고 있는 지역.민자당은 「TK푸대접」정서가 강해 여권표의 이탈을 우려하고 있다.지난 22일 지구당개편대회 당시 TK출신 현직의원 20여명을 대거 참석시키고 이들 의원들을 통해 유권자를 다독거리는 등 중앙당 차원의 지원활동에 나섰다.지난 12대때 이곳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번형식후보는 유학성전의원의 지원약속을 내세우며 기존조직을 흡수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민자당 공천 탈락자로 지역내 탄탄한 기반을 가진 장두섭뉴영제사대표도 선대위고문을 맡아 대열에 합류,번후보측의 한숨을 돌리게 했다. 번후보의 보좌관을 지낸 민주당 안희대후보는 5·17계엄과 5·3인천시위 등으로 구속됐던 민주화 투쟁경력과 함께 예천토박이라는 점을 내세워 야성향의 표를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국민당 황병호후보는 선거때 마다 단골 출마자로 다시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으나 당선권에 진입하기는 어려울것 같다는 게 현지 분위기이다. 민주당의 이 지역 지구당위원장을 지낸 정대수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가뜩이나 고전이 예상되는 안민주후보를 괴롭히고 있다.
  • 석탄일 30여명 가석방/임종철씨 등 시국사범 포함

    법무부는 24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임수경양방북사건」으로 복역중인 전 「전대협」의장 임종석씨(27·전 한양대총학생회장)와 정책실장 박종열씨(27)등 공안시국사범 30여명을 특별가석방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그러나 「유서대필사건」의 강기훈씨(29)와 「평양축전」과 관련,복역중인 「전대협」전 평축준비위원장 전문환씨(26·전서강대총학생회장)등은 석방대상에서 제외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관계자는 『형기의 3분의2를 복역하지않은 시국·공안사범이라 하더라도 법정가석방대상인 형기의 3분의1이상을 복역하고 개전의 정이 있는 경우 신한국창조에 동참할 기회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특별가석방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면서 『최종대상자는 26일 결정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에콰도르 산사태… 200명 사망/폭우로 남부광산촌 매몰/로하주

    ◎사체 수십구 발굴… 사상자 늘듯 【키토 AP 연합】 남미 에콰도르 남부 로하주의 한 광산촌에서 9일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발생,최소한 2백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정부 당국이 10일 밝혔다. 비니시오 수아레스 로하주 지사는 산사태로 쏟아져 내린 흙과 바위더미가 약 80채의 가옥을 덮쳐 2백∼2백50명의 주민이 매몰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에콰도르 라디오 방송은 사고 현장에서 적어도 43구의 사체가 발굴됐다고 밝히고 구조반이 현재 필사적으로 생존자 수색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사고가 난 곳은 수도 키토에서 남동쪽으로 약 7백㎞ 떨어진 페루접경 지역의 광산촌으로 금맥을 찾으려는 많은 주민들이 열악한 주거 환경속에 살고 있다.
  • 캄보디아서도 “인종청소” 자행(세계의 사회면)

    ◎크메르루주,베트남계 집단학살/폴포트정권 붕괴에 앙심보복/91년 파리협정후 백여명 살해/“「제2의 킬링필드」 온다” 외국탈출 급증 무자비한 인종학살로 세계를 전율케 했던 유고판 인종청소가 캄보디아에서도 재연되고 있다.캄보디아의 4개정파 가운데 하나인 크메르 루주가 캄보디아에 살고 있는 베트남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크메르 루주는 일단 캄보디아의 베트남계로 확인되면 죽이기 일쑤고 최근에는 베트남인들이 자주 모이는 곳에 폭발물을 설치해 집단학살도 서슴지 않고 있다. 지난 29일에도 프놈펜에서 크메르 루주의 소행으로 보이는 두개의 폭발사건이 일어나 수명이 목숨을 잃었다.유엔의 한 조사에 의하면 지난 91년 파리협정에 의해 유엔평화유지군이 캄보디아에 파견된뒤 학살된 캄보디아의 베트남인은 1백명을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크메르 루주가 캄보디아의 베트남인들에 대해 이처럼 인종학살을 감행하고 있는 것은 크메르 루주와 베트남간의 악연때문이다. 베트남은 지난 78년 캄보디아를 침공,크메르 루주의 폴 포트정권을 무너뜨려 헹삼린정권이 들어서게 만든뒤 다시 지금의 훈 센 정권으로 바꿨다.그러니 정권을 빼앗긴 크메르 루주가 베트남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을리가 없다. 그러던 터에 유엔이 얼마전 그동안 캄보디아 주둔 베트남군에서 복무했던 베트남인들을 「외국군」으로 규정,보호하려 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복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크메르 루주는 오는 5월 캄보디아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이들을 철수해야 된다는 주장을 줄곧 해왔다. 물론 이같은 보복성 학살이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인종청소작업이 본격화되자 캄보디아의 베트남계는 혹시 「제2의 킬링필드」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75년 폴 포트 정권가 이끄는 마르크스 극단주의 세력인 크메르 루주가 저지른 대량학살 「킬링필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주말을 이용해 선박을 타고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접경지역인 톤레바삭 국경검문소를 넘어 베트남으로 탈출하고 있다.지난주에는 1백여척의 어선을 이용해베트남으로 탈출했다. 육로도 이들이 탈출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캄보디아와 베트남의 접경지역은 그다지 출입국통제를 엄격히 하지 않아 이들이 베트남으로 탈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유엔은 최근 캄보디아를 떠난 베트남계의 숫자가 약 7천명정도에 불과하지만 캄보디아의 베트남계가 약 50만명이나 돼 날이 갈수록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난민지가 바로 10년전 베트남이 공산화된후 수많은 보트피플들이 배를 타고 탈출했던 자신들의 조국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입다문 구속의원/박성원 사회부기자(현장)

    ◎쏟아지는 기자질문에 멍한 표정뿐 『지역구민들께 하고 싶은 말은』 『……』 『사재를 털어 교육문화재단을 설립하겠다는 신문광고는 아직 유효한가』 『……』 31일 하오4시 서울 서소문 대검청사 현관. 토지불법매입등 축재과정의 비리가 재산공개과정에서 드러나 김영삼정부 출범이래 의원구속 1호를 기록하게 된 김문기전의원은 기자들의 끊임없는 질문공세에도 굳게 다문 입을 뗄줄 몰랐다. 14세에 대패 하나만 들고 상경해 가구점종업원에서 3선의원으로 축재와 출세의 길을 숨가쁘게 달려온 김전의원은 이날 의원직사표수리와 함께 구속이 집행되는 순간이 믿기지 않는듯 멍한 표정이었다. 검찰이 이날 김전의원을 구속하면서 적용한 죄명은 업무방해·국토이용관리법 위반등 모두 4가지. 그러나 검찰수사결과 드러난 이같은 범죄행위 외에도 파행적 학사운영으로 끊임없는 학내분규를 빚어온 상지대사태와 1백59만여평의 땅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저지른 각종 탈법사례등 해명해야할 수많은 과제를 뒤로한채 김전의원은 구치소로 향했다. 축재를위해 온갖 탈법을 일삼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선량의 자리까지 올랐던 「부정한 인생」이 깨끗한 시대의 물결속에 「자연도태」되는 순간이었다. 서울 우이동 북한산국립공원내 그린벨트 훼손이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게 되고 「한번 사면 팔지 않는다」는 신조아래 키워온 「부동산 왕국」의 치부가 드러나면서 권력의 품안에 뛰어들어 부정한 축재과정을 숨겨온 김전의원의 사법처리는 예고된 일이었다. 신문광고를 통해 『사재 50억원을 털어 교육문화재단을 세우겠다』고 약속하고 청와대를 찾아가 구제를 호소하던 김전의원은 구속을 피하기 위해 도피한 끝에 다방에서 수사관에게 붙들려 연행되는 순간까지 「정치적」사퇴만으로 일을 마무리짓겠다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날 김전의원이 의원배지 뒤에 감춰온 탈법투기와 비리에 대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됨으로써 재물로 권력을 사려는 낡은 시대의 군상들에 대해 「깨끗한 시대」의 목소리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선언하는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 “쓰레기통에 감금 전자총 고문”/“LA악몽 4일”채홍찬씨 귀국술회

    ◎“차태워준다” 속여 납치… 3일간 굶기고 폭행/새벽 감시범 잠든새 수갑찬채 필사의 탈출 『범인들이 자기네들끼리 나를 죽이자는 말을 여러번 하기에 살길이 없는줄 알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미국에서 납치돼 4일동안의 감금생활끝에 극적으로 탈출,11일 하오 귀국한 채홍찬씨는 이역땅에서 쓰레기통에 갇혀 지냈던 악몽의 순간을 회상했다. 채씨가 납치된 것은 지난 5일 낮 12시25분.지난 88년 섬유업체인 E사에 함께 다니던 범인 김진범씨(43·서울 묵동)가 마중나와 숙소로 태워주겠다고 자청해 김씨의 승용차에 타면서부터였다.물론 채씨는 주범 김씨가 지난해 14억여원을 횡령하고 미국으로 도피,경찰로부터 수배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김씨와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백미러를 통해 이들의 안주머니에 권총이 들어 있고 비슷한 차량이 줄곧 따라붙어 납치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상대로 범인들은 한인타운내의 한 아파트로 끌고갔다.,채씨가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9만볼트짜리 전자총을 허리에 갖다댔으며 넘어지지 않자 권총으로머리를 3번이나 내리쳤다. 범인들은 이어 뇌진탕 증세를 보이는 그의 손발에 수갑과 족쇄를 채운뒤 경보장치가 설치된 쓰레기통속에 가뒀다. 범인들의 요구는 홍콩과 국내의 친지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국내 계좌에 입금시키라는 것이었다.시키는대로 하지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전자총고문을 했다.전화를 할때와 감금 3일만에 설렁탕 1그릇을 먹을 때만을 빼고는 쓰레기통 속에서 나올 수 없었다.범인들은 채씨가 움크리고 있는 쓰레기통 속에서 조금만 움직이면 『죽이겠다』며 발로 걷어차기 일쑤였다. 『이들 가운데는 김씨등 등 한국인 3명외에 중국인과 월남인도 끼여 있었는데 이따금 외부로부터 살인청부를 받는 것같은 얘기를 나누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차피 죽을 바에야 하는 생각에 8일 새벽2시 감시하는 범인 2명이 잠든 틈을 타 경보장치를 건드리지 않고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수갑을 찬채 속옷차림으로 무조건 달렸더니 한인상점의 간판이 보여 이 곳에서 3시간동안 숨어있다가 조기축구를 하러 나온 한인교포들에게 도움을 요청,악몽과 같은 4일동안의 피랍생활을 벗어났다.
  • 홍만종의 「시화총림」해제 발간/경상대 허권수·윤호진교수 작업

    ◎고려∼조선시대 시 24편을 비평 고려 중기로부터 조선 중기까지 24편의 시화집을 망라한 우리나라 비평문학의 집대성이라고 할수 있는 홍만종의 「시화총림」 해제가 최근 발간됐다.시화집은 우리 선조들의 시에 대한 사상,비평의 자세,창작방법등을 담고 있으며 나아가 민족정신을 파악할수 있는 국문학사에 근간이 되는 고전으로 알려져 있다. 1712년(숙종38년)편찬된 이 책은 고려시대 것으로는 이규보의 「백운소설」과 이제현의 「역옹패설」등 두편이고 나머지 22편은 조선시대의 작품들로 채웠다.저자는 기존 발행의 단행본들은 제외시키고 여러가지 잡록 필기류의 책등에서 시화를 뽑아 모아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했다. 이 책은 저자의 일관된 저술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저술을 편자가 임의로 재편집했다는 측면에서 문제점이 없는것도 아니다.그러나 편자가 서문을 통해 밝힌바와 같이 우리문학의 우수성과 그 기록된 문헌을 보존한다는 차원에서도 그 가치는 충분히 평가될만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필사본으로 전해내려오던 것이 지난 1961년 영인본으로 제작돼 배포되었으나 어려운 한문으로만 돼있어 일반의 접근은 불가능했다.그러던것을 이번에 경상대 한문학과의 허권수·윤호진 두교수에 의해 3년여의 공동작업 끝에 해제 상·하권과 원문등 3권으로 발간돼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읽을수 있게 됐다. 허교수는 『이 책은 중국의 시화 집대성인 「역대시화」에 비견할만하다』고 말하고 『편자의 심오한 시학의 조예와 평론가다운 감식안은 현대인에게도 큰 교훈이 될뿐 아니라 우리 문학사에서 비평사를 엮게 할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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