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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무원 사명감·승객 질서의식/전원 무사의 기적 이뤘다

    ◎불타는 KAL기 필사의 탈출 10분/사무장 “침착” 외치며 비상구 열어/폭발공포속 승객들 차례로 대피/군·경 신속한 구조활동도 큰 도움 불과 10여분만에 이루어진 극적인 탈출이었다.기체가 폭발,전소된 여객기사고에서의 「탑승자 전원 무사」­그것은 승객들의 성숙된 질서의식과 승무원들의 철저한 직업의식이 연출해낸 기적이었다. 1백60명의 승객·승무원들은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아 생사를 초월한 탈출작전을 침착하게 편 끝에 한사람의 인명피해도 없이 모두 무사히 대피하는데 성공,여객기사고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결과를 낳은 것이다.이들이 폭발직전의 불타는 여객기에서 안전지역으로 탈출하는데는 공항내의 경찰,군부대와 때마침 비상근무중이던 공무원들의 신속한 구조활동도 큰 도움이 됐다. 이날 상오10시7분 김포공항을 떠난 사고여객기가 제주공항 상공에 이른 것은 한시간여 뒤인 상오11시20분쯤. 태풍의 영향인지 비행기는 몹시 흔들렸고 승객들은 다소 불안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봤다.빗줄기는 거셌으나 시계는 양호한 편이었다.곧이어 착륙안내방송이 있었고 김영미양(21)을 비롯한 5명의 여승무원들은 승객들이 안전벨트를 제대로 매었는지 일일이 확인을 했다. 그러나 착지순간 한번 튕겼다가 다시 이륙하는듯 하더니 기체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며 미끄러졌다. 『꽝』­비행기는 중심을 잃은듯 흔들리다 공항담장을 들이받고 고꾸라지듯 멈췄다.동시에 좌석위 선반에서 산소마스크등이 떨어지고 전기마저 끊어져 기체안은 어두워졌다.순간 놀란 승객들의 단말마같은 비명이 터져나왔고 기내는 온통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다. 어느새 기체 뒷부분에서 연기가 치솟앗고 왼쪽 날개에도 불이 붙었다.승객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동요하지 말라』외마디 고함소리가 들렸다.김제중사무장(33)이었다.왼쪽 창문을 통해 기체뒷부분에서 시작된 불길이 눈에 들어왔다.오른쪽 비상문이 열렸으나 지면에서 너무 높고 비상탈출미끄럼대가 거센 바람에 날려 창문을 가렸다.비행기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왼쪽 첫번째 비상구를 열고 승객대피에 들어갔다. 승무원들은 『이럴수록 침착하고 질서정연해야 불상사를 줄일 수 있다』고 승객들에게 강조한뒤 차례차례 비상구로 인도했다. 승객중 아기엄마들은 아기를 팔로감싸안은채 눈물을 흘리며 비상미끄럼대를 내려온뒤 땅에 덥석 주저앉기도 했다.승객들은 의외로 냉정함을 지키며 차분하고 신속하게 승무원들의 지시를 따랐다. 이미 기내안은 연기로 가득찼다.『남아있는 승객은 없읍니까』7년 경력의 여승무원 백은경씨(30)는 두차례 소리친뒤 탈출했다. 김사무장은 기내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한뒤 마지막으로 미끄럼대를 내려오며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과정에서 정찬규부기장과 김경식씨등 승객 8명이 얼굴등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을뿐 중상자는 아무도 없었다.밖에는 사고현장에서 1백50m쯤 떨어진 제601전경부대에서 사고를 목격하고 달려온 전경대원 60명이 탈출한 승객들을 돕고 있었다. 대부분의 승객들과 승무원들이 전경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사고현장을 떠나 전경부대막사로 가는 순간 사고비행기는 『꽝』하는 폭발음과 함께 화염에 휩싸였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벗어난 이들의 탈출시간은 불과 10분남짓.이들에게는 억겁의 세월로 여겨졌던 순간순간이었다. KAL기 사고 부상자 9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정찬규(36·부기장) ▲김경식(41·전북 전주시 대성동) ▲정규진(48·서울 마포구상암동) ▲주기성(61·서울 용산구 보광동) ▲김경현(10·서울 양천구 목동) ▲김대형(34·인천시 남구 성천동) ▲임윤정(27·여·인천시 남구 용현동) ▲정상구 ▲김정권 ◎사고조사반 급파/교통부 교통부는 10일 상오 제주국제공항에서 일어난 대한항공 2033편 국내선 여객기의 활주로 이탈및 화재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구본영차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항공기사고 수습대책본부」를 구성했다. ◎사고기 보상 어떻게 되나/국내외 13개 보험사서 4백96억까지 보상가능/항공사에 사고책임 있을땐 전액보상은 힘들어 대한항공은 A300 에어버스 여객기에 대한 기체보상금으로 최고 6천2백만달러(한화 4백96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대한항공은 보유중인 A300기종여객기 22대를 모두 같은 한진그룹계열의 동양화재보험을 통해 대한재보험에 가입했다.대한재보험은 다시 영국의 로이드사 등 외국보험사와 신동아화재보험 등 국내 10개 보험사에 재보험을 들었다.1대당 보험금은 최고 6천2백만달러이다. 이 액수가운데 99.26%인 6천1백54만1천달러는 로이드사 등 외국보험사가 지급하게 되고 나머지는 동양화재보험(12만4천달러)을 비롯한 국내보험사가 나눠서 지급한다. 단 사고원인이 악천후 등의 천재지변때문이어야 한다.정비결함이나 조종사의 실수 등 사고의 책임이 항공사에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전액 보상받기는 어렵다. 부상당한 승무원과 탑승객들에게는 기체보상금과 같은 비율로 각 보험사들이 별도의 보상금을 지급한다.다행히 사망자는 없지만 만약에 승무원이나 탑승객이 사망하면 최저 10만SDR(12만8천달러)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시간대별 사고상황◁ ▲10시00분 김포공항 출발예정 ▲10시07분 김포공항 출발 ▲10시25분 정상운항 교신 ▲10시50분 착륙예정,안전벨트착용 안내방송 ▲11시23분 제주공항 활주로 접지,활주 개시 ▲11시23분20초 돌풍 ▲11시24분00초 기체 앞부분 착륙 유도시설에 충돌 ▲11시24분30초 항공기 완전 멈춤 ▲11시25분 외부 화재 ▲11시25분 사고 안내방송 ▲11시25분20초 비상탈출용 슬라이더 팽창 ▲11시26분 승객 탈출 시작 ▲11시30분 승객 전원 탈출 ▲11시35분 승무원 탈출 ▲11시40분 항공기 폭발,중간부분 화재
  • 해방후 10년간 「경찰 사찰문서」 발견/서울대교수,하버드대서

    ◎좌익·중간파 정당 5천여명 계보 총정리/홍명희 등 월북자 1백90명 명단도 수록 경찰이 45년 해방이후 10년간 남북한의 주요좌익과 중간파정당 및 사회단체의 이념과 계보,각 정파지도자의 정치성향과 조직원들의 명단등을 상세히 분석,정치사찰에 사용한 미공개자료가 국내학자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됐다. 서울대 교육연구소 「한국교육사고」 김기석교수(교육학)는 29일 『미국 하버드대부설 옌칭도서관에서 서울특별시경찰국이 45년부터 55년8월까지 10년간에 걸쳐 조선노동당·민주주의민족전선·민족자유연맹·사회당·독립노농당·자유사회당 등 91개에 이르는 좌익·중간파·제3세력 정당 및 사회단체의 정치이념과 계보·행동강령·조직원명단 등을 수록한 극비문서 「사찰요람(사찰요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해방후 좌파 및 중간파의 활동을 기록한 각 정파의 기관지와 문서 등은 단편적으로 남아 있으나 이처럼 상세하게 정치격동기의 각 정파를 종합분석·평가한 경찰 내부문서가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총2백8쪽 분량의 필사본으로 휴전협정 2년후인 55년8월15일 「서울특별시경찰국 사찰과」가 작성한 「사찰요람」은 「총론」 「중간계 사회정당단체」 「기타 각파 정당사회단체」 「제3세력 정당사회단체」 「좌익계 정당사회단체」등 5개 장으로 구분,각 정파의 사상적 배경과 성립역사·활동개요·간부동향·조직원 및 월북자명단 등을 일목요연하게 수록하고 있다. 특히 이 문서는 91개 좌익 및 중간노선 지도자와 조직원 5천여명의 명단과 계보 및 해방전후의 정치상황을 체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당시 경찰이 사찰대상으로 삼은 정당 및 사회단체는 좌익세력으로는 조선노동당을 비롯,남조선노동당·인민공화당·민주주의민족전선·조선농민동맹등 58개,중간파로는 민족자유연맹·한국독립당·민중동맹·사회민주당등 26개,제3세력으로는 독립노농당등 7개다. 이 문서는 또 조선노동당의 김일성이 48년 남한 단독정부수립이후에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등을 통해 자유사회당·한독당 등 남한내 중간파들을 조종,친북행동을 하도록 사주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함께이 문서는 중간파 간부로 활동하다 6·25동란을 전후해 월북한 홍명희(전북한부수상)·조소앙 등 1백90명의 명단도 기록하고 있다. 이밖에 북한에 조선인민공화국이 들어서기에 앞서 48년8월25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서 선출된 김일성·김두봉·허헌등 5백66명의 대의원명단도 수록돼 있다. 김교수는 『이 문서는 해방전후 남북한에서 활약한 좌파 및 중간파 정당 및 사회단체의 활동상황을 낱낱이 수록·분석하고 있어 해방전후사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며 『다음달초 이미 공개한 을사보호조약 관련 「고종황제친서」등과 함께 3권짜리 「한국교육사고자료총서」로 출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딸이 어때서!/권영자(일요일 아침에)

    어쩌다 틈이 나서 TV를 켰던 날,나는 못볼 것을 본듯 얼른 채널을 돌렸다가 곧 제자리로 갖다 놓고 잠시 숨쉬기를 멈춘 적이 있다.내용인즉 아직도 아들을 낳기 위해 있을 것 같지도 않은 비방을 구하러 헤맬 뿐 아니라,잉태된 생명이 딸인 줄 알면 낙태조차 서슴지 않는 잘못된 세태를 나무라는 것이었다. 「원,딸이 어때서!세상에 아들이 뭐길래 아직도 저러나!」. 답답한 심정으로 르포를 따라가 보았다. 남아선호사상의 굴레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여인상,그 칼날을 용케 피해 출생의 기쁨을 누리는 등뒤의 딸,곧 우리 미래의 어머니,그들이 연출하고 있는 슬픈 여인상은 여성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나를 일격하기에 충분했다. 누가 저 여인에게 등뒤에 매달린 딸이 들어서 섬뜩할 말 『다음 아이가 아들이 아니면…』하는 말을 입에 담게 했을까. 남녀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은 자녀로 해서 더욱 풍성할 수가 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한 수의 자녀를 갖는다.이 「적당한 수」는 출산을 선택할 수 있게된 뒤부터 점차 규모가 축소되어 지금은 하나 아니면 두자녀가 통례로 되고 있다. 자녀의 수는 뜻대로 조절이 가능해졌지만 자녀의 성비를 원하는 대로 얻기란 아마 신도시 아파트 당첨만큼이나 행운이 따라야 하는 일인 듯 하다.복불복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자녀의 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겠는데 그게 아닌게 문제다.아들이면 쉽게 단산하나 딸이면 아들이 생길 때까지 낳아야 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아직도 우리 여성들을 짓누르고 있다. 다산이 미덕이던 시대나 소자녀 경향인 지금이나 아들을 출산한 어머니는 선택의 폭이 넓다.더 낳아도 좋고 단산해도 좋다.그러나 딸을 출산한 어머니는 두번째 출산이 두려운 것이다.딸만으로 단산하는데는 상당한 용기와 결의 그리고 가족의 격려가 필요한데 그게 그리 쉽지 않다.남아선호적 가족규범이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를 묶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아들 타령을 더 합디다』아이를 들쳐업고 이 약국 저 병원,심지어 점까지 치러 다니는 여성들을 두고 이런 억울한 소리를 한다.아들 타령하지 않아도 좋을 세상이라면 구태여여성들이 그 고생을 하고 다닐까. 세상이 많이 변하여 여성들의 권익이 신장되고 목소리도 높아졌다.그들의 능력이 집울타리 안에서 뿐 아니라 밖에서도 유용하게 쓰이는 시대임이 분명하다.아들들로만 가득하던 바깥일터에도 여성들이 구색을 갖추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여러 면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쪽은 아들들임이 분명하다.국회의원의 99%,고위공직자의 98%가 아직 남성들로 채워져 있다.사회적인 지위 측면에서 이러한 우위 아닌 독점은 우리로 하여금 쉽사리 남아선호관을 떨쳐 버리지 못하게 한다. 소자녀와 남아선호,이 둘의 결합은 인구의 성비를 매우 불균형하게 만들고 있어서 문제다.벌써 국민학교 아동의 성비는 남아가 매우 높다.여아와 짝하지 못하여 질금거리는 남아가 적지 않은 현실이 그 위험을 예고하고 있다.1982년의 신생아 남녀비가 1백6.8로 남아쪽이 높던 것이 92년에는 1백14.0으로 까지 더 늘어났다. 앞으로 10년 20년 계속 이와같은 추세로 간다면 우리의 미래사회는 어떻게 될까.남자의 수가 훨씬 많은 이상한 모습의 사회가될 것임이 분명하다.그 사회에서는 입시경쟁 못지 않은 짝 얻기 경쟁이라는 또하나의 필사적인 경쟁이 일어날 것 아닌가. 어느 한 성이 지나치게 많은 사회에서 형성될 가족제도나 결혼제도는 또 어떨는지.금년은 유엔이 정한 가정의 해여서 건강한 가족만들기를 위한 여러가지 연구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이들 연구에 의하면 우리의 가족은 규모의 축소에서 오는 기능상의 변화를 크게 겪고 있으나 변화된 현실과 가족에 대한 기존의 의식의 차이를 줄이지 못한데서 오는 문제를 많이 안고 있다고 한다.가정의 문제를 점검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류의 나아갈 방향을 발견코자하는 세계가정의 해 선포 목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소자녀 가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남아선호 가치관을 치유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북한의 실상은 어떨까? 분단이후 우리와 다른 체제에서 여성의 사회참여를 독려해 온 북한의 가족과 남아선호 사상의 상관관계가 궁금해 진다. 이산가족의 만남을 포함하는 남북교류가 속히 이루어져서 이런 궁금증이 풀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백령도에선 지금/이기백(데스크시각)

    인천에서 1백73㎞,평양에선 1백40㎞­.서해 최북단 백령도는 북한 옹진곶의 월래도와 육도,북의 해군기지 구미포가 12㎞앞 지척에 보이는 실향민의 섬이다. 더욱이 북한의 전진기지인 풍천비행장에서 미그 23기가 떴다하면 2∼3분안에 도달하기 때문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곳이다. 우리로서는 서해 최북단 전략지역이지만 북한으로서는 자기네 안마당에 버티고 서서 안방과 사랑방의 동정을 엿보는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다. 한참 북한핵문제로 전쟁발발의 위기감이 나돌아 뭍에서는 식량과 연료 사재기 바람이 일던 지난 주말 전쟁이 나면 북한이 제일 먼저 「본때」를 보여줄 이 섬을 찾았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주민들과 해병장병의 얼굴에서는 불안·동요나 긴장감을 찾아 볼수 없었다.너무 태연한 일상생활에 실망감이 들 정도였다. 마침 이곳 특산물인 까나리 어획철이라 주민들은 해변에서 삼삼오오 어망을 손질하고 잡아온 까나리에 소금을 뿌려 젓갈 담는 작업에 열중했다. 섬 10시방향 두무진포구 모래사장에선 어부 10여명이 북쪽바다를가리키며 목청을 높였다.『간밤에 중국어선들이 어망을 끊고 달아났습니다.이젠 고기잡이도 못해 먹겠습니다』 1·4후퇴때 풍천에서 피란와 주저물러 앉았다는 이원배씨(57·두무진 1048)는 『기자선생,어떻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며 하소연을 한다. 정말 답답하다.남북상황이 긴박하면 중국어선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해상분계선을 줄타며 말그대로 어부지리를 한다.물반 고기반 어장에 남북한 어부들이 접근할 수 없는 현실을 악용,고기들을 마구 퍼담는다. 「백령도의 명동」이라 불리는 진천리는 섬 인구 4천3백여명중 1천7백여명이 사는 제법 갖출것 다 갖춘 평범한 읍내.주민들의 속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오가는 몇사람을 붙들고 「삶」을 물어 보았다. ­고속 여객선도 좋지만 데모크라시호로 인천까지의 편도 요금 3만6천원은 너무 비싸다. ­유일한 병원인 적십자 병원이 연 2억원의 적자를 핑계로 곧 문을 닫는 다는데 그래도 되는가. ­무공해 지역에 최근 관광객이 늘면서 공해문제가 심각한데 도시인들은 나갈때 가지고 온 물건과 쓰레기도갖고 나가야 합니다. 이들의 목소리는 진솔한 「삶」의 문제들일 뿐 전쟁 공포심을 엿볼 수 없었다.주민들의 60%가 장단·연백등 황해도 출신 피란민인데다 90%가 기독교신자들이라 이들의 안보태세는 확고했다.조그만 섬에 교회가 12곳,성당이 2곳이나 된다.주민들 대부분이 해방후 기독교인에 대한 북한의 탄압에 저항,1·4후퇴때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곳에 정착한 6·25 청교도들이라고나 할까. 『백령도 방어는 사수개념입니다.전쟁이 나면 적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될테고 더 이상 피할데가 없는데다 개전초에는 뭍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어 이 섬에서는 민과 군이 공동운명체 입니다』 이곳 방어를 책임지고 있는 해병여단장은 『유사시 민간인들까지 군방어 진지에서 함께 버틴다는 「민관사수」개념때문에 뭍에서의 사재기 현상이나 평화무드란 없다』고 설명한다.처변불경이 일상생활화 돼 있는 이곳의 분위기는 뭍에서 온 사람에게 많은 생각을 나게했다. 인천으로 가는 해군 고속순찰함을 향해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 해병들의 얼굴에는 「필사즉생,필생즉사」의 충무공 정신이 넘쳐 흘렀다.이들이 이곳에 있는한 뭍사람들의 전쟁 공포심은 기우일 뿐이리라….
  • 태평양 횡단중 조난/일본 요트인 부산에/화물선에 구조된 모로이씨

    ◎“생존 일념으로 석달 견뎌”/“하루 한끼에 빗물 받아 마셨다” 요트로 태평양을 횡단하다 폭풍우로 조난당한 뒤 1백여일동안 표류중이던 일본인 모로이 기요지씨(제정청이·56·오사카거주)가 한국으로 들어오던 화물선에 구조돼 17일 상오 부산 감천항에 입항,부인 지에코씨(42)·누나 마쓰이 다가코씨(61)와 감격적인 재회를 했다. 이날 모로이씨는 텁수룩한 머리에 흰색 운동복과 청색바지를 입고 다소 지친듯한 표정이었으나 부산해운항만청 감천출장소를 가득 메운 취재진들에게 조난당시 상황과 표류일정등을 설명했다. ­실종당시 상황은. ▲출항 1개월여만인 지난 3월8일 폭풍우를 만났다.강풍이 불어 돛을 내리려고 하는데 큰 파도가 뱃전을 때려 몸중심을 잃고 바다에 떨어졌으나 필사적으로 헤엄쳐 다시 배로 올라갔다. ­표류기간동안 생활은. ▲배는 마스터가 부서지고 유리창이 파손됐으며 무전기도 손상돼 통신이 불가능했다. ­식량은 부족하지 않았는가. ▲오는 8월까지 견딜 수 있는 왕복항해 분량의 식량을 준비했었지만 언제 구조될지 몰라 하루 한끼씩만 먹으며 구조를 기다렸다.식수가 부족해 빗물을 받아 마셨다. ­표류과정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은. ▲가족들이었다.처와 자녀 5명의 얼굴은 한시도 잊지 않았다.표류기간이 길어질수록 억울해 죽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로이씨는 지난 2월초 일본 오사카항에서 요트 수텐도지호(10t)로 미국 LA까지 횡단하던중 지난 3월8일 하와이 북쪽 8백마일 해상에서 폭풍우로 조난,행방불명된 지 1백1일만인 지난 7일 조난해역에서 2천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던 빈센트선적 화물선 비엔나우드호(1만7천1백61t)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 “북 초보적핵무기 개발 임박”/플루토늄 확보 거의 확실

    ◎98년엔 양산체제… 「수출국」 부상 전망/김 안기부장,국회보고 김덕안기부장은 13일 북한의 핵무기개발 진전상황과 관련,『북한은 지금쯤 조잡한 형태의 핵무기 개발이 임박한 단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김안기부장은 이날 국회 국방위에서 『북한은 이미 92년 이전에 플루토늄 생산시기가 지났고 계속해서 3천여명의 핵기술 과학자들이 노력해왔다』면서 이같이 답변했다. 김부장은 이어 『현재 북한의 핵투명성은 모든 세계가 알고자하고 있으나 북한은 계속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제,『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플루토늄은 확보했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핵개발 전망에 대해 김부장은 『95년 완공 예정인 영변의 50MW급 3호기와 98년쯤 완공될 태천의 2백MW급 4호기 원자로가 가동되면 해마다 2백여㎏의 플루토늄을 추출,핵무기 양산이 가능해진다』고 지적하고 『이때는 핵보유국 수준을 넘어 핵무기 수출국으로 부상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김부장은 또 『북한은 기폭실험을지난 83년부터 88년까지 70차례이상 해왔으며 그 이후에는 다른 곳에서 계속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면서 『현재 북한은 김정일의 총괄지휘아래 핵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내부동향에 대해서는 『북한은 현재 외형적으로는 통상적 활동현상을 나타내고 있을뿐 작금의 긴박한 정세와 관련해 특이한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부장은 그러나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본격화되어 곤경에 처하게 되면 국지도발등 긴장국면을 조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부장은 『북한이 이번에 5MW급 원자로 연료봉의 임의인출을 강행한 것은 북한이 핵폭탄을 보유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체제보위와 대남혁명을 겨냥해 핵개발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이나 국제사회의 압력이 계속 가중되면 북한의 태도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회국방위 무슨 얘기 오갔나/“전쟁가능성 있나 없나” 질문공세/의원들/“최악의 상황대비,북한내부 감시”/김 부장 13일 국회 국방위에서는 북한핵문제로 비롯된 한반도 위기상황에 대한 안기부의 수집정보및 분석내용이 논의의 주제로 다뤄졌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는 북한의 도발가능성및 예상시나리오,주변국의 전략,정부의 위기관리능력,남파간첩들의 현황등에 대한 안기부의 역할을 총체적으로 점검했다. 먼저 의원들은 최근의 북한동향및 북한제재 추진동향에 대한 슬라이드를 관람한 뒤 북한의 핵개발수준에 대한 궁금증을 일제히 제기했다.즉 북한이 ▲핵무기 개발 완료,보유 ▲기폭장치 일부의 개발만을 남겨놓은 최종완성임박 ▲기술적인 문제로 개발중단 ▲사실상 핵무기를 제조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어디에 있느냐가 의문의 요지였다.임복진의원(민주)은 『북한의 핵개발및 보유 여부를 자체적으로 판단,이를 기초로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안기부의 정보능력 제고를 주문했다.황명수의원(민자)은 『외국에서는 북한이 2∼3개의 핵무기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데 안기부는 자주적인 핵정보조차 생산하지못하고 있다』면서 북한의 기폭제,발사대,운반수단등의 개발현황에 대한 정보수집 실적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 가능한 수단은 어떠한 것들이 있고,어느 정도까지 동원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민주당 의원들은 『북한을 제재하는 길로 가더라도 대화모색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그러나 황의원은 『북한이 핵무장을 공식선언한다면 우리의 생존전략은 무엇이냐』면서 한반도 비핵화선언의 수정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유엔 안보리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이후 예상되는 시나리오,즉 전쟁 가능성을 포함한 대응방안에 대해 질의가 집중됐다.의원들은 유엔 결의안이 통과돼 다국적 함대의 동원과 해상봉쇄가 이뤄지면 북한의 반응을 어떻게 예상하고 있는지를 따졌다.한마디로 한반도에서의 전쟁가능성이 어느 정도냐는 것이었다.장준익·강창성의원(민주)등은 북한이 제재를 받더라도 전쟁도발을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지와 함께 전쟁억지가 실패하거나 북한의 핵보유가 현실로 나타났을 때,중국의 제재불참등에 대한 대비책이 있는지를 물었다. 북한 권력층의 전쟁의지등 북한의 실상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전쟁억제의 유효한 수단이라는 데는 여야가 인식을 같이 했다.곽영달의원(민자)은 『북한은 사면초가로 필사칙생의 자세인데 반해 우리는 사면의존』이라고 질책하고 유사시에 대비,국민들에게 행동지침등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덕안기부장은 『북한은 핵개발 목적을 단순한 외교협상용이 아닌 보유에 두고 있다』고 말하고 『또한 극도의 식량난과 에너지난등을 해결하기 위해 대외적인 긴장을 조성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고했다. 김안기부장은 그러나 『북한은 전쟁도발이 정치적 자살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면서 『그렇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북한내부의 각 부문과 요소에 대해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 산업평화·경쟁력 강화 힘모을때/김 대통령­이 대표 대화록 요지

    ◎“식량원조 제의 북한서 거절했다”/김 대통령/“불교문제 정부 성의있는 조처를”/이 대표 김영삼대통령과 이기택민주당대표의 28일 청와대회담에서 오간 대화내용을 주돈식청와대대변인의 발표와 회담후 이대표가 밝힌 것을 조합,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외교·안보◁ ▲김대통령=북한 무기의 90%이상이 구소련 또는 러시아제품이다.이번 러시아방문에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러시아가 전쟁에 개입토록 되어 있는 제도등에 대해 옐친 러시아대통령과 중점논의하겠다. 북한은 핵개발에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북한에 들어간 IAEA사찰단도 협상이 결렬돼 되돌아갔다.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연료봉이 8천개인데 그 가운데 반이상을 북한이 뽑아냈다.이에 대해 IAEA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미·북협상도 유동적이며 어떻게 미·북대화가 이뤄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다.북한은 최근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해 주민의 불만이 극도로 높다.우리의 안보도 중요한 시기에 처한 것이다.비공식적으로 우리가 보유한 저장미를 일부 보내주겠다고제의했으나 북한은 거부했다. 최근의 국제정세와 우리의 안보상황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으며 그 폭이 종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넓다.야당에게도 이런 변화와 우리의 안보상황·국제정세를 수시로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오늘 회담을 그래서 마련했다.앞으로 야당대표를 자주 만나 협의하겠다. ▲이대표=좋은 얘기다.이런 자리가 자주 마련돼야 한다.북한핵문제는 미·북 3단계회담을 지켜보면서 평화적 해결과 일괄타결방식이 바람직하다.비핵화선언수정은 핵투명성보장이후 하는 게 옳다.북한과 러시아의 방위조약을 폐기하려 노력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고 판단한다. 통일논의에 있어서 정부가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것은 좋지 않다.김대중이사장의 북한핵발언에 대한 정부의 비판은 통일논의보장을 침해한 것 아니냐.어떤 경우든 통일논의를 위축시키려는 의도는 버려야 한다. ▷여야관계◁ ▲김대통령=이제 우리도 소모적인 정쟁이 아니라 여야가 동반자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노사문제·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문제등을 논의하는 큰 정치,생산적인 정치를 해나가야 한다. ▲이대표=그 뜻에 동감한다.정부가 잘하면 도울 용의가 있다.그러나 지금처럼 개혁이 실종되는등 잘못할 때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시국인식과 현실진단을 정확히 해달라.특히 원로들과도 많은 대화를 갖는 게 좋겠다. ▷상무대국정조사◁ ▲이대표=상무대국정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대통령이 새로운 돌파구를 만드는 조치를 해달라.은행이나 검찰의 자료제출거부는 국회권능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대통령은 국회생활을 많이 한 만큼 이 점을 깊이 고려해주기 바란다.정부여당이 금융실명제긴급명령을 빙자해 국정조사를 계속 방해한다면 금융비리를 보호하는 역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법테두리에서 볼 때도 은행과 법원이 법사위 요구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는 관련법조항을 어긴 것이니 이를 검토해 국정조사에 차질이 없도록 해달라. ▲김대통령=대통령이 초법적인 조치를 할 수는 없다.그러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현재 국회가 하는 국정조사에 정부가 협조하도록 지시하겠다. ▷국가보안법개폐◁ ▲이대표=군사통치시대의 산물인 국가보안법은 개정되거나 폐기돼야 한다. ▲김대통령=여야간에 이 문제를 처리하는 방안으로 소위원회를 구성해놓고 있는만큼 여야의 간부와 법률가들 사이에서 충분히 논의,원만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좋겠다. 조계사폭력사태 ▲이대표=조계사폭력사태를 포함해 불교계문제에 대해 정부가 성의있는 조치를 해달라. ▲김대통령=내각에 대해 누군든지 폭력을 쓰는 자는 절대용인할 수 없다는 지시를 했으며 그러한 원칙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김대중씨 정치사찰 ▲이대표=이미 정계은퇴를 선언한 김이사장에 대한 정치사찰을 계속한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재발이 없도록 조치를 취해달라. ▲김대통령=상도동에 있을 때 부근에 사는 몇사람은 인사도 하지 않고 지냈다.뭘 하는 사람들인지 나도 알고 있었다.사찰의 문제점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청와대에 와서 주변의 안가 9채를 다 헐어버렸다.공작정치의 수법이 어떠한지 알고,그 피해를 수없이 당한 나로서는 절대 그런 사찰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김대통령=세계적인 흐름에서 동떨어져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 참가한 것이다.많은 국민이 그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우루과이라운드협정의 국회동의 때 협조해달라. ▲이대표=동의하지 않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비준에 절대반대하겠다.농촌대책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달라.양곡관리법도 농민편의위주로 개정해야 한다고 본다. ◎영수회담 여야 반응/“북핵등 현안대처 김대통령의지 천명”/민자/“이번회담 대성공… 원만관계 전기마련”/민주 민자·민주당은 28일 청와대영수회담의 결과에 대해 생산적인 여야협조관계를 이룩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민자당은 이날 영수회담이 북한핵등 외교·안보문제에 대한 야당의 초당적 협력을 구하고 상무대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등 국내정치현안을 성의껏 풀어가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밝힌 자리였다고 풀이. 백남치정치담당정조실장은 『이번 영수회담을 계기로 대외문제에 관한 국익차원의 여야공조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면서 『국정조사에 대해서도 법테두리안에서 정부차원의 최대한 협조를 약속한 만큼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 박범진대변인도 『모든 정치현안을 순리에 맞게 당당히 풀어가겠다는 통치권자의 의지가 천명된 만큼 정치공세차원의 여야대결보다 생산적인 여야협조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 강삼재기조실장은 『대통령이 국정조사에 대해 법테두리안의 최대한 협조를 약속한 것은 법해석을 둘러싼 야당과 해당기관 사이의 경직된 대립을 풀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고 해석.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결과에 대해 대체로 만족을 표시했으나 상무대사건 국정조사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신중한 자세. 이대표를 수행해 청와대를 방문하고 돌아온 박지원대변인은 『지난 3월에 있은 영수회담때와 달리 청와대측에서 이대표에 대한 의전에 상당한 신경을 쓴 것 같다』고 만족감을 표시. 박대변인은 『상무대사건 국정조사에 대해 김대통령이 내각에 협조를 지시하기로 합의했고 통일논의에 대해서도 자유를 보장한만큼 이번 영수회담은 대체로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 합의사항을 어떻게 준수하는지 예의주시하겠다』고 논평. 함께 이대표를 수행한 문희상대표비서실장은 『이번 회담은 대성공』이라면서 『앞으로 여야가 원만한 협조관계를 이뤄나갈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고 언급. 신기하원내총무는 『상무대사건 국정조사와 관련해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합의로 평가한다』면서 『반드시 상무대사건 정치자금의 의혹을 푸는 조사방안까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 한편 이대표는 회담을 마친 뒤 하오3시20분 마포당사로 돌아와 5층 회의실에서 소속의원과 당직자 1백여명에게 회담결과를 보고. 이대표는 『처음 김대통령은 상무대사건 국정조사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합의하라는 것이냐」고 난감해 했으나 거듭 합의를 촉구하자 결국 「법테두리안에서 내각이 최대한 협조하도록 지시하겠다」고 말했다』고 설명.
  • 암보다 무서운 것들/서지문(일요일 아침에)

    암을 정복하는 것이 멀지 않았다는 기쁜 소식이 들린다.캐나다 어느 대학의 연구소에서는 정상세포에는 없고 암세포에만 있는 효소를 발견했는데,이 효소의 작용을 억제하는 방법을 발견하기만 하면 암세포분열을 막을 가능성이 기대된다고 한다.또 미국 유타주의 어느 유전공학연구소에서는 암세포에는 세포의 비정상성장을 차단하는 유전인자의 사본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고,그래서 이 결여를 시정할수 있게되면 암의 진행을 막을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AIDS예방약 개발가능성 발견등 최근에 의학계의 낭보가 적지 않았다.이런 소식은 암이나 AIDS에 걸릴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기쁘고 감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끈기가 드디어 수많은 사람을 죽음과 고통에서 구하게 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켜주고 인류의 내일에 대해 희망을 갖게 한다. 바로 얼마전에는 암의 정복보다도 더 오래되고 중요한 인류의 숙제를 푼 사건이 있었다.3백50년의 백인통치를 종식시킨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총선이그것이다.우리의 일제강점기의 열배나 되는 세월을 침략자의 지배를 받으며 인간이하의 생존을 강요받아왔던 남아공의 흑인들이 오랜 필사적인 투쟁 끝에 드디어 시민권을 얻고 민주적인 투표로 자신들의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 기적은 단순한 정의와 민중의 힘의 승리이상의 인간개가이다.흑인들의 목숨을 건 긴 투쟁이 세계의 안목을 남아공에 집중시키고 백인들의 안전을 위협해서 백인통치종식의 토대를 마련했다.그러나 총선의 성공은 흑인들이 백인들에 대한 처절한 원한에도 불구하고 수백년간 그곳에서 삶을 이룩한 백인들도 남아공의 국민이라고 인정을 했고,또 백인을 중오하는 이상으로 서로를 증오하는 흑인종족들이 그들사이의 적대감을 접어두고 민주국가수립에 함께 참여하기로 양보와 수용을 했기에 가능했다. 인류의 역사를 보고 우리의 주위를 보면 인간에 대해서 절망하고 정의의 실현가능성을 불신하게 될때가 많다.금세기에 들어서만도 양차대전과 수차례의 인종말살,대 숙청과 탄압,탈 식민지 투쟁과 영토분쟁등 수많은 인류사적 범죄와 살상이 있었다.그런가하면 평화시의 민주사회에도 갖가지 범죄와 비리는 그치지 않는다.그래서 현대에서는 더 나은 미래를 믿는 사람은 감수성이나 통찰력이 부족한 사람같이 보이게 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건설적인 노력이나 성실한 삶의 자세 같은 것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팽배하게 되었다.물론 이런 정신적 풍토를 틈타 정치적 냉소주의와 허무적 실존주의를 표방하며 이기적,반사회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2중인격자들도 무더기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전쟁과 인종말살,독재,그리고 질병과 재해때문에 거듭 퇴행을 했으면서도 수천년간 인류는 꾸준히 발전을 해서 20세기 말에는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누리고 사는 사람의 비율이 부족국가시대 보다 몇십배 증가했다.그러니까 역사적 비관주의는 오히려 근시안적 사고라고 할수 있다. 우리민족도 끊임없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면서도 생존을 했고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했다.환난이 많았던 만큼 탁월한 지도자,뛰어난 인물도 많았었고 이름없는 영웅도 많이 있었다.그런데 이제 UR협상으로 상품시장 뿐아니라 서비스시장까지 개방되면 우리나라는 또한번 존립자체에 위협을 받을수 밖에 없다. 흔히들 우리나라는 하드웨어는 제대로 되어있지만 소프트웨어는 가망이 없다는 말들을 한다.즉 기계나 제도나 장치가 갖추어져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효율적으로 운용할 두뇌와 정성과 치밀함이 없다는 말이다. 역사·문화사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설명이 될수 있겠지만 우리 민족은 세심하지 못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 면밀하게 다각적으로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앞날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하는 것이 사실이다.독재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고 항거를 할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이웃,공동사회의 안전을 위해 간단한 안전점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독한 역설인데 그것이 우리의 실상이다. 이제 반독재투쟁을 벌일때 보다도 더 큰 용기와 각오로 우리 국민성의 혁신을 이룩해야 한다.타성과 적당주의와 부주의와 요행심리는 암보다도 더 치명적인 적이다.정체도 모르는 암을 잡아내어 굴복을 시키는 사람도 있는데,우리의 각오가 철저하다면 정체를 잘 아는 우리 속의 장애를 제거하지 못하겠는가. 한 세대의 과오가 열세대의 불행을 몰아 온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으로 배웠다.우리는 열세대의 감사와 존경을 받는 세대가 되어야겠다.
  • “필사즉생 각오 개혁”/김 대통령,현충사 헌화 분향

    김영삼대통령은 28일 『나는 필사즉생,필생즉사의 각오로 개혁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고 강력한 개혁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충남 아산 현충사에서 열린 제449회 충무공 탄신기념 다례행제에 참석,헌화 분향한 뒤 『충무공은 당대에는 죽음으로 나라를 구했고 사후에는 정신으로 민족의 나아갈 길을 일깨워 주었다』면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충무공이 보여주신 것처럼 민족 앞에 바치는 뜨거운 애국심과 희생정신,그리고 개척정신을 이어받아 실천해 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우리 모두 충무공처럼 「그때 나는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부끄럽지 않게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도록 각자가 서있는 자리에서 할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한다』면서 『모두가 신한국 창조의 주역이 되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현충사 참배에 이어 충남 예산에 있는 매헌 윤봉길의사의 사당인 충의사도 참배했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박중배충남지사에게 충의사 관리를 철저히 하고 윤의사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이 참배객의 마음에 느껴질 수 있도록 보다 상세한 안내와 홍보를 하는 한편 경내를 확장하고 윤의사 생가를 포함한 충의사 주변정비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예산군 오가면 신석리에 있는 예산사과주산단지를 방문,시설을 돌아본 뒤 과수재배 농민 30여명과 오찬을 나누며 이들을 격려했다.
  • 아프간반군 스팅어미사일/북·이란등으로 넘어가

    ◎“미 회수작전 실효 못거둬”/WP지 【워싱턴 AP 연합】 미중앙정보국(CIA)은 지난 8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반군에게 제공한 스팅어 미사일을 회수하기 위한 비밀 작전을 벌이고 있으나 이들 미사일중 일부가 북한 등 몇몇 국가에 이미 넘어가는 등 막대한 자금만 낭비한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지가 7일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견착식 휴대용 미사일인 스팅어 미사일이 테러조직의 손에 들어갈 경우 민항기나 군용기가 테러를 당할 가능성을 우려해 CIA가 필사적인 회수작전을 펴고 있으나 미사일중 일부는 이미 이란과 카타르,북한 등으로 넘어갔으며 심지어는 타지크 반군 지도자들조차 아프간에서 스팅어 미사일을 구매했음을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 「정도 6백년 지도전」/서울의 변화상 한눈에

    ◎28∼4월25일까지 성신여대박물관서/조선이후 서울지도등 1백종 자료 전시/행정·정치도등 다양… 「경조오부도」 눈길 조선시대 지도책의 첫장에 그려지곤 했던 「천하도」는 중국을 중심대륙으로 비해와 환대륙,영해가 차곡차곡 감싸고 있는 모습을 담은 원형의 세계지도이다.유독 조선에서만 크게 번성한 「천하도」의 사상적 기원은 중국에서 찾아야 하겠지만 당시의 세계관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지도는 이처럼 그 지역의 문화사를 간직한 역사적 기록으로 간주된다.「천하도」가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처럼 각 지도에는 당시에 필요로 하였던 요소들이 당시 의식하에 그려져 있어 그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자료가 된다는 것이다. 「서울정도 6백년 서울지도전」은 바로 지도에 나타난 서울의 변화상을 통해 지도가 지닌 이같은 의미를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성신여대박물관(관장 허영환)이 28일부터 4월25일까지 여는 이 전시회에는 조선시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50종의 지도를 포함한 1백여종의 서울 관련 자료가 선을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에 이미 지도가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의 모양이 실제와 비슷한 정도까지 파악되고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현재까지 전해지는 옛지도는 모두 조선시대 것이다.조선시대의 지도제작술은 천문도를 그리는 기술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태조4년(1395년)에 1천4백63개의 별을 그린 대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든 기술은 태종2년(1402년)에는 상당히 정확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까지 만들어 낼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모두 72종의 서울지도가 만들어 진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이번 전시회에는 그 가운데 고산자 김정호가 1861년 완성한 「대동여지도」의 제1첩인 「경조오부도」와 이보다 20년 앞서 만든 목판본 「수선전도」를 비롯,필사본으로 1780년대 만들어진 「한양도성도」와 「도성지도」등 30종이 출품된다. 조선시대에는 오늘날의 국립지리원과 천문대 기상대의 기능을 합친 서운관과 도화서에서 정치·군사·산업·운수등 국가경영에 필요한 다양한 지도를 만들었다.출품된 지도 가운데 1394년 서울에 정도하고 경복궁 조성을 시작한뒤 그린 「경복궁도」나 1620년 경희궁을 완성하고 그린 「서궐도」등이 정치도에 해당한다면 1454년 인구 10만명인 서울을 5부49방으로 나눈 「경성도」는 행정도에 해당한다.또 1750년대 「도성삼군문분계지도」는 서울방위용 군사지도이며 1765년의 「사산금표도」는 벌목·매장·개간등의 금지지역을 표시했다.행정도인 「경성도」는 행정단위가 5부47방으로 바뀐 17 92년에는 「성시전도」가 제작되는등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새로 그려졌다. 이번 전시회에는 조선시대 것 뿐 아니라 일제시대 및 해방 이후 만들어진 지도도 각각 10종씩 선을 보여 그동안 서울의 변화상을 확연하게 보여준다.예를 들어 1939년 제작된 「최신대경성전도」에 나타난 여의도와 동부이촌동 일대의 거대한 모래사장은 1987년 만들어진 「서울특별시 행정안내도」에는 시가지로 변했다.
  • 248명 동학재판기록 발견/당시 연루인사 전원분

    ◎정부기록보존소/“혁명전모 밝힐 획기적 자료” 올해로 동학혁명 발발 1백년을 맞는 가운데 당시 혁명에 가담했던 인사 2백48명의 재판기록 전체가 이달말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소장 김기옥)는 15일 1895년3월부터 1904년8월까지 동학혁명과 관련돼 재판을 받은 이들의 재판기록을 영인본으로 제작,공개하기로 했다. 이들 판결문은 최근 정부기록보존소가 동학 1백주년을 맞아 부산지소 서고에 보존돼 있던 동학관련 판결문을 정밀 조사하다 새롭게 발견한 것들로 학계에서는 동학혁명의 전모를 재조명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판결문은 서장옥 황하일등 동학지도층뿐 아니라 운동에 참가한 일반농민에 대한 것으로 갑오개혁정부나 대한제국정부가 동학관련자에 내린 판결문 전체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청군을 불러들여 동학운동탄압에 압장섰던 민영순등 민씨세도가에 대한 판결문도 이에 포함돼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동학관련 판결문은 전봉준,손화중,최경선,김덕명등 동학지도층의 것뿐이었으며 천도교 2대교주인 최시형에 대한 판결문은 필사본만 공개됐었다. 한편 이번 판결문을 통해 당시 갑오개혁정부는 혁명을 주도한 동학접주등 지도층에 대해서는 사형등 가혹한 형벌을 내린 반면 일반농민에 대해서는 무죄방면하는 등 회유책을 썼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부패한 관찰사나 자의적으로 동학농민을 처벌한 관리도 형사처벌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함께 1900년을 전후해 속리산을 중심으로 최시형에 대한 신원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사실과 일진회가 천도교로부터 원산의 객주회사소유권을 빼앗아간 과정도 밝혀졌다.
  • “평양에 전쟁징후 없었다”/미 뉴스위크기자 그레이엄목사 동행기

    ◎대체로 평온… 연료난에 공장 가동중단/북한주민 “남한보다 미 공격 더 두렵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미시사주간지 뉴스 위크의 토니 클리프턴 기자는 북한주민들이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전쟁위험의 징후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뉴스위크 최신호(14일자)에 실린 클리프턴 기자의 방북기는 다음과 같다(요약).…최근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평양방문과 때를 같이해 관광비자로 북한을 1주일간 방문했다.부분적이지만 내가 본 북한은 나의 선입견과는 거리가 멀었다.북한주민은 심각한 식량난에 허덕이지도 않았고 핵개발을 꿈꾸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도 아니었다. 물론 외부에서 생각했던것 가운데 일부는 사실이었다.반쯤 짓다 만 건물 위에는 크레인이 정지해 있었고 굴뚝에는 연기가 나지 않았으며 도시들은 춥고 어두웠고 모든 사람이 걸어다닐 뿐 고속도로는 텅비어 있었다.공장과 발전소에 필요한 석유와 부속품들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내가 방문한 여러 시골마을에서는 대부분의 집에서 닭을 기르고 있었으며 돼지와 거위,염소가 있는 집도 목격할 수 있었다. 도시지역에서는 상점에서 기본 생필품을 구할수 있었으며 식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김일성과 오찬을 함께 한 그레이엄 목사는 그가 건강해보였다고 말했다.공산권지도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을 정도로 권력을 유지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김일성이 핵사찰을 놓고 왜 그다지도 위험한 게임을 벌이는지에 대해선 정통한 견해가 존재하지 않는다.일부 외교관들과 외국 방문객들은 김을 불리한 카드를 쥔 포커플레이어에 비유한다.핵위협 외에는 다른 카드가 없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북한이 필사적으로 필요로 하는 국제무역과 투자를 얻어내려 한다는 얘기다. 북한군은 병력은 많지만 장비는 노후화 됐다.주력 탱크인 구식 러시아제 T­62는 걸프전에서 미군에 의해 무기력하게 폭파당하는 것을 직접 봤다. 이번 방북기간중 본 군대차량은 트럭 10대와 지프 5대였으며 무장을 하지 않았다.이들 차량 가운데 절반은 병사를 태운채 길가에 정지해 있었다.북한에선 고급관리들도 전용차를굴리지 못하고 주요 공장조차 가동이 중단될 정도로 연료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북한군이 남한을 침공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수백만갤런의 연료와 수만t의 식품및 탄약,그리고 부품이 가득찬 창고가 필요한데 이들 보급품의 조달이 가능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평양의 외국인들은 북한이 전쟁동원령을 내릴 것으로는 결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그들이 목격한 것은 핵개발과 관련한 미국의 강력한 경고에 대한 반응으로 작년에 수백명의 청년들이 미국의 공격에 대비해 경찰보조 훈련을 하는등 두차례 대응 움직임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북한사람들이 의식하고 있는 것은 남한에 대한 침공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의 공격인 것 같았다.한 북한주민은 『미국인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공격이 무섭다.평양은 한국으로부터 1백60㎞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북한을 떠나면서 전쟁을 일으킬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외국투자를 유치하고 서방의 경제전문가들과 뉴질랜드의 한 관광전문가까지 초청하는등 오히려 다소 느슨한 인상을 받았다.
  • 미소장 우리문화재/전적·화기발달사연구에 귀중자료

    ◎전적/「학림옥로」는 갑진자로 찍은 유일본 확인/화포/포대·받침대 완비… 신미양요때 빼앗아가 미국에 건너간 수많은 우리 문화재가운데 이번에 확인된 전적류 4백51종 2천9백43책과 화기류 2점등은 전적 문화재분야는 물론 화기발달사등을 연구하는데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우리 문화재는 미국의회도서관 한국과에 소장된 고려사등 4백9종 2천8백56책,법률자료과에 소장된 경국대전등 13종 43책,세계각국의 고지도를 보관하고 있는 지도과에 소장된 우리나라 고지도 29종 43책등 모두 4백51종 2천9백43책등이다.또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는 신미양요(1871년)때 노획해간 강희4년(1665년) 통영에서 제작된 화포(포신길이 98.6,구경 10.2㎝)와 「솔」자를 수놓은 대형깃발(450×450㎝)을 소장하고 있다.이밖에 버지니아주 해병대 박물관에서는 강희2년(1680년)에 만들어진 개량형 화포(포신길이 104,구경 8.66㎝)와 백마그림의 깃발등을 확인했다. 의회도서관 한국과는 당초 중국과 소속으로 있다가 2년전 따로 독립되었다.한국과 소장유물은 대부분 일본에서 수집한 것으로 그 판본은 15세기의 갑진자를 비롯해 정·순조년간의 정이자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활자본들로 되어있다.목판본·필사본등 여러 종류의 완질본이 많이 소장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조선조 중종년간에 인쇄된 학림옥로는 이번 조사과정에서 처음 발견된 유일본. 중국 송나라 나대경이 지은 전적으로 당대의 문장가와 도학자들의 문장과 도학을 사건별로 정리한 고서다. 이책은 또 갑진자로 찍은 유일본이어서 당시의 인쇄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와함께 1613년 무오자로 찍은 시전대전(16책)은 국내에 완질이 없는 희귀본.그리고 영조때의 명필 원교 이광사 친필의 해동락부등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법률자료과에는 해방후에 구입된 경국대전,대전회통등 주로 조선조의 법전류들이 수장고를 차지하고 있다.지도과에는 18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동안 제작된 우리나라의 고지도들이 수장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화포에는 모두 약실에 음각으로 제작년대,무게,제작참여자등을 새겨놓았다.특히 해군사관학교 소장 화포는 포대와 받침대까지 완비하고 있으며 나무로 약실을 막음질한 해병대박물관 화포와는 달리 전체가 청동으로 주조되었다.신미양요때 로저스제독이 노획한 포로 밝혀졌다. 한편 우리 조사단은 이번 조사과정에서 해군사관학교의 화포가 16 65년 중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영문으로 잘못 표기되어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시정하도록 미국측과 합의했다.전문가들은 이들 화기류·깃발등은 19세기 우리나라 화기발달사뿐만 아니라 당시의 군제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보고있다. 이들 문화재는 대부분 미국측이 구입해간 것이어서 아직 반환청구 대상이 되지않는다는 것이 문화재관리국의 견해.문화재관리국은 지금까지 확인된 일본등 세계 17개국에 산재한 우리 문화재는 이번에 확인한 2천9백45점을 합해 모두 5만7천6백점에 이른다고 밝혔다.
  • 미에 한국 고서 3천책 있다/유일본 16세기 학림옥로등 4백51종

    ◎문화재관리국,화포도 2점 확인 16세기 초에 인쇄된 국내 유일의 전적 「학림옥로」를 비롯한 전적류 4백51종 2천9백43책과 화기류 2점이 미국 의회도서관과 해군사관학교 및 해병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관리국은 7일 지난해 11월 22일부터 한달동안 문화재전문위원 등 관계 전문가 4명으로 구성된 「미국 소재 우리 문화재 조사단」을 현지에 보내 이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이 조사단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미의회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우리 문화재는 유물의 성격에 따라 한국과에 고려사등 4백9종 2천8백56책,법률자료과에 경국대전등13종 43책,지도과에 고지도 29종 43책등 모두 4백51종 2천9백43책이다. 이들 유물은 15세기의 갑진자에서 정·순조년간의 정이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활자본을 지니고 있고 목판본,필사본등 여러 종류의 완질본이 여러점 포함돼 있어 전적문화재와 당시 인쇄문화 연구에 활용가치가 큰 것들이다.
  • 파출소 경관이 잡은 떼강도/박찬구 사회부기자(현장)

    ◎비번날 골라 3일잠복끝에 수갑 채워 『좁은 골목길에서 20여분동안 차량 추격전을 벌이면서 강도들을 놓치면 끝이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창신1파출소 소속 김인호경장(40·가명)은 1일 국민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한 떼강도를 검거하느라 지난 닷새동안 겹친 긴장과 피로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듯 목소리마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지난달 27일 평소 알고 지내던 한시민으로부터 사무실 강도들과 인상착의가 비슷한 청년들이 성남시 금광동의 현대다방을 아지트로 삼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김경장은 하루 20시간씩의 방범근무를 해야하는 짝수날짜를 피해 비번인 지난27일과 29일 하오 두차례에 걸쳐 다방주변에서 잠복근무를 하면서 사무실강도단 4명이 거의 매일 이 다방에 드나든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김경장은 비번인 31일을 범인검거를 위한 D데이로 잡고 이날 하오5시30분쯤 수갑과 가스총등으로 무장하고 파출소부소장 조용필경사(54)와 신호섭경장(35·가명)등과 함께 자신의 엑셀승용차를 몰고 이 다방앞 노상주차장에 도착했다. 『하오7시쯤 일당중 1명은 쏘나타를 타고 어디론가 가버렸고 40분쯤뒤 나머지 3명이 프린스에 올라탔습니다』 대낮에 사무실을 털 정도로 노련하고 대담한 범인들은 곧 자신들이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폭6m쯤의 좁은 길을 시속40㎞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핸들을 꽉 붙잡고 불과 1m간격으로 이들을 추격할때는 긴장감으로 입안이 바싹바싹 말라왔고 10평남짓의 방 두칸짜리 연립주택에서 고생만시킨 처와 두아들의 얼굴이 눈앞에서 자꾸 아른거렸습니다』 하오8시쯤 2㎞남짓 골목길을 필사적으로 달리던 범인들의 차가 왕복2차선도로를 나서자 김경장은 중앙선을 넘어 대각선방향으로 프린스를 가로 막았다. 순간 김경장은 스프링처럼 차에서 내려 범인들이 반항할 틈도 주지않고 주범 박흥순씨(29)등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경찰의 위신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 포항공대 합격생 유치경쟁 “참패”

    ◎복수지원 120명 등록포기,서울대행/교육여건 앞서지만 이미지 실추 우려 국내 최고임을 자부하던 포항공대가 올 입시에서 실시된 복수지원제 때문에 울상이 되어 있다.이번 입시 합격생들이 대거 등록을 포기했기 때문이다.그것도 다른 학교가 아닌,평소 경쟁상대로 여겨오던 서울 공대에 합격생들을 빼앗겨 체면이 말이 아닌 상태다. 이번 입시에서 포항공대와 서울대에 모두 합격한 1백61명가운데 75%에 해당하는 1백20명이 포항공대 등록을 포기하고 서울대를 택했다. 포항공대는 ▲교수확보율 ▲실험·실습기구 확보율 ▲도서확보율등 대학교육여건이 서울대 공과대학 수준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포항공대를 공과대학 정상에 올려 놓겠다는 학교재단(포항제철)의 필사적인 지원에 힘입어 개교 7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우수학생들이 크게 몰려들었다.같은 시험문제로 입시를 치렀을 때 포항공대의 합격선은 서울대 공과대학을 웃돌았다.바로 지난해 입시까지만 해도 이같은 고합격선과 함께 우수한 교육여건,완벽한 장학제도등을대대적으로 홍보하며 명실공히 공과대학의 최고봉임을 은근히 자랑해온 것도 사실이다. 복수지원제가 도입된 올 입시에서 일류대학들이 모두 망설임없이 피해간 서울대와의 우수학생 유치경쟁에 포항공대가 도전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자신감에서 비롯됐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솔직히 포항공대 교수진들은 차제에 우수학생 유치전에서 서울대를 압도함으로써 포항공대가 공과대학의 정상임을 대내외에 확인시켜주려는 의도도 베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포항공대 염영일 교무처장의 지적대로 이번 「참패」가 교육여건이나 우수대학 서열매김의 잣대가 될 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문제는 교육환경·연구실적등 교육여건이나 실질적인 학문탐구의 수준과는 별도로 우선 명문대학에 진학하고 보자는 식의 「일류병」이다.이점이 바로 이번 포항공대의 참패원인이요 우리 교육현장의 고질병이기도 하다. 포항공대는 내년에도 서울대와의 일대 회전을 치르겠다고 벼르고 있다.현재의 학생수준이 결코 서울대에 뒤지지 않기 때문에 2∼3년이면 서울대 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포항공대측은 벼르고 있지만 일류병이 바로 잡히기 전까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 양수겸장과 전광석화(이동화칼럼)

    행정의 질을 높이기 위한 개혁차원의 문제제기와 구상들이 최근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앞으로의 진전이 주목된다. 대표적으로 지난연말 우루과이라운드(UR)강정에 따른 국제경쟁력 강화문제,올들어 낙동강 수돗물 파문속에 나온 깨끗한 물 관리문제가 제기됐다.그 가운데 막대한 투자재원이 필요한 사안은 제쳐놓고 기업등에 대한 규제의 대폭완화라든가 수돗물 관리체계의 일원화 등은 개선이 아닌 행정개혁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과제들이다. 또 내년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최근 여야간에 활발히 오가고 있는 지방행정구역 통합개편 논의 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 하겠다.지난해 정부기구개편 과정이후 단속적으로 제기되었던 경제기획원의 기구축소나 존폐문제라든가 서해페리참사직후 나왔던 해양관할부서의 일원화 등도 행정개혁적 측면의 접근이었다. 이 문제들이 어떤 결과에 도달할지는 아직 예측할 수 없지만 그 성패에는 추진하는 사람이나 세력의 의지,효율적 방안의 연구,장애요소와의 투쟁,그리고 국민적 지원을 얼마만큼 끌어낼수 있는지 여부등 복합적 요소가 작용할 것이다. 이런 요소들에 앞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고 나아가 문제제기부터 되어야 하는 것이 순서이다.최근 표출된 행정분야의 여러 개혁과제들은 고조된 개혁분위기에 무작정 편승한 측면도 적지 않겠지만 「시작이 반」이란 의미에서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이같이 다양한 문제제기 현상은 올해 제도개혁이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문민정부 출범후 지난해의 개혁이 주로 사정에 중점을 둔 인적개혁의 인상이 짙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제 개혁이 본궤도에 진입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특히 행정제도의 개혁은 군림하던 행정에서 서비스의 행정으로 바꿔보겠다는 방향전환의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이러한 개혁의 포인트는 비용을 줄이면서 효과를 끌어올리는 것이다.얼핏 생각하면 모순된 말이지만 행정 구석구석에 모순과 비합리가 도사리고 있기에 「양수겸장」이 가능한 것이고 그것이 행정개혁의 묘미라 할만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어떤 개혁이든 그렇지만 행정개혁도 기득권이라는 장애물과 힘든 씨름을 해야하기 때문이다.이 기득권은 관료편의주의와 부처이기주의로 무장되어 있기에 더더욱 부수기가 어렵다. 지난 88년 노태우대통령의 당선 직후 「작은 정부」를 내걸고 민관혼성의 행정개혁위원회까지 만들어 1년간의 심의끝에 나온 정부기구축소안이 불이익을 당할 해당부처의 이기적 반발에 부딪쳐 무산된 것이 그 예이다.아니,「작은 정부」는 커녕 오히려 기구가 늘어나기까지 했다.그때 해당부처의 로비는 그야말로 필사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또 하나의 사례로 그 당시 행정개혁의 문제가 떠올랐을때 어느 여당국회의원이 국회본회의 대정부질문을 통해 검찰·안기부·감사원등의 직급문제를 제기하려고 시도했다.이들 부서의 국·과장등 모든 직급이 타부서에 비해 높으니 힘도 세고 직급도 높아서야 되겠느냐는 지적을 하려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전에 질문원고를 배포하자 소속정당의 간부는 물론 친구·친척등 모든 채널을 통해 압력이 들어왔고 그는 결국 질문을 우회하고 말았고 이것이 두고두고 국회주변에서 화제로 남았었다.그만치 기득권 깨기가 어렵다는 증거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문민정부의 발족과 함께 체육부가 문화부에,동력자원부가 상공부에 흡수 통합되어 제도개혁의 첫 작품으로 평가받았다.이같은 가시적 성과를 조기에 거둘 수 있었던 것은 88∼89년에 행정위를 통한 연구검토결과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89년 당시에도 이 연구안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있었으나 개혁의 기운이 기득권을 뚫을 수 없을 정도로 약했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개혁마인드가 강력한 새정부가 들어서니 이를 단번에 이룰 수 있었다.다만 개혁의지가 강하더라도 그런 문제에 대한 연구검토가 없어 뒤늦게 이를 시작했다면 전광석화같이 기득권의 벽을 뚫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금융실명제도 이미 사전준비와 연구가 있었고 여기에 가장 중요한 개혁실천의지가 있었기에 예상보다 조기실시가 가능했으리라. 최근에 나온 「물 대책」을 놓고 일부에서는 「페놀사고대책」의 재판이라지만 그때 이미 물문제가 심각했으나 실천의지가 없었고 지금은 앞선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멍에임에도 불구하고 개혁적 실천의지가 있기에 기대해 볼만한 것이다. 이런점에서 볼때 개혁,특히 행정개혁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제제기와 연구가 계속되는 분위기를 더욱 고양시킬 필요가 있다.행정부는 행정부대로,국회는 국회대로 또 민간은 민간대로 보다 다양하게,보다 심도있게 개혁과제가 연구·검토되는 분위기 말이다.
  • 도읍 공주서 부여로(백제를 다시본다:1)

    ◎부여 금동용봉향로가 말하는 사비시대/풍요로운 곡창서 「사비문화」 무르익다 백제는 곧잘 잃어버린 왕국으로 간주되어왔다.그 까닭은 정사성격의 사료부족과 또 승자에 의한 문화유산파괴에서도 찾아진다.이러한 상황속에서 지난 연말 발굴된 부여 능산리 출토유물 김동용봉봉래산향로는 백제사 연구의 한줄기 빛으로 떠올랐다.서울신문은 이를 계기로 전문학자들이 백제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장기기획물 「백제를 다시본다」를 주1회씩 연재키로 했다.금동향로가 제시하는 자료를 근거로 백제사 복원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 시리즈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넓은평야 끼고 있어 “3국중 가장 자족”/도성체제 완벽… 5부 구획에 2중 방어/국방 한창 뻗어나갈때 나·당 연합군 침공으로 비명에 저버려 일찍이 조선후기의 대실학자인 정채산은 국가의 운명이 수도의 입지조건에 의해서 크게 좌우된다고 보았다.그런만큼 반드시 요충지대를 점거하여 위압의 형세를 이루어야만 일단 위기가 닥치더라도 능히 이를 극복하여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의하면 백제의 첫 도읍지이던 오늘날의 서울은 문자 그대로 김성탕지와 같은 곳이라서 건국이래 4백93년간이나 국세를 유지했으나,한번 웅진(공주)으로 옮겼다가 다시 사비(부여)로 옮긴 뒤에는 1백85년만에 망했다고 한다.사비시대는 웅진시대 63년을 제외하면 겨우 1백22년에 지나지 않는다. ○각부는 또 5권으로 큰 들녘의 한복판에 위치한 사비도성은 확실히 한성(서울)과 같은 천연적인 요새는 아니다.그렇다고 백제의 지배층이 도성의 방어체제를 게을리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지난 십수년간 백제문화권개발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된 결과 우리들은 사비시대의 도성계획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사비도성은 기본적으로 부소산성을 배후에 두고 외곽의 요해지에 부분적으로 나성을 쌓아 방어체제를 이중으로 견고하게 다졌다. 그런 다음 왕궁은 부소산성밖 남쪽에 세웠다.이는 웅진시대 왕궁이 공산성 내의 광장에 구축된 것과는 크게 다른 점이다.옛 문헌에 의하면 사비도성의 시가지는 크게 5부로 구획되고 또한 각부는 5권으로 나누어지는등 실로정연한 체제를 갖추었다고 한다.한마디로 사비도성은 백제의 역사에서 볼 때 가장 잘 디자인된 수도였다.한국고대의 도성제 발달사상 거의 완성된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백제가 공주에서 서남쪽으로 30㎞쯤 떨어진 부여로 천도한 것은 일세의 영주인 성왕 16년(서기538년)봄의 일이었다.실로 국가재흥을 목적으로 한 웅대한 경륜에서 나온 결단이었다.백제는 이보다 앞서 서기 475년 서울로부터 공주로 천도했는데,이는 고구려 군대에 의해서 수도가 함락되고 개로왕이 피살되는 등 급박한 국가위기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그러나 부여천도는 이와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공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방어에는 유리한 점이 있으나 그자체는 고립된 곳이고 수도가 들어시기에는 너무나 협소했다.이 야영도시를 벗어나 평야지대로 진출하여 본격적인 수도를 건설하는 것이 공주시대 역대 군주들의 꿈이었다.마치 고구려가 압록강가의 산악지대인 집안으로부터 평양으로 천도하려 한 것과 같은 취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동성왕때부터 부여의 중요성에 주목한 백제의 최고지배층은 이곳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할 요량으로 사냥을 겸하여 자주 이곳에 들러 지세를 살피는등 전반적인 입지조건을 예의검토해왔다.금강가에 위치하면서 산으로 둘러싸인 부여지방은 방어에도 적합했을 뿐 아니라 더욱이 넓은 평야를 끼고 있어 경제적으로도 풍요한 곳으로 비쳤다. 그리고 지리상 호남평야의 경영이나 가야지방으로의 진출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백제조정은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유역의 땅을 이 기름진 곡창지대를 적극개발함으로써 보상하려고 했다.요컨대 부여천도는 장기간에 걸친 준비작업 끝에 마침내 단행된 것이었다. ○결실못본 화평세계 이처럼 사비시대는 개막되었다.당시는 삼국간의 항쟁이 극심한 전란기였다.영토확장을 목표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삼국간의 국경선은 수시로 뒤바뀌었다.이같은 살벌한 시대풍조 속에서도 백제는 삼국중 가장 자족함을 알며 인을 실현코자 노력했다.한성시대인 근소고왕때 장군 막고해가 승승장구 고구려군대를 추격하던중 수곡성(황해도 신천)북쪽에 이르렀을 때 스스로회군을 결행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그런데 사비시대 법왕은 서기 599년 즉위하자마자 살생을 금하는 칙령을 내린다.이에따라 민가에서 기르던 매를 놓아주도록 했으며 사냥도구와 그물마저 태워버리게 했다.이는 같은 시대 신라와는 크게 대조되는 현상이다.즉 신라왕의 최고고문이었던 원광법사는 바로 이때 「살생유택」의 덕목이 들어 있는 세속5계를 제정하여 비록 조건을 달았지만 살생을 인정했던 것이다. 백제가 신라에 패망한 궁극적인 원인중의 하나가 바로 이같은 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어쨌든 백제의 지배층이 국가의 위기상황 아래서도 인을 구현하려는 열의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주목되는 사실이다. 사비시대 화평의 세계를 실현하려던 백제인의 웅지는 끝내 결실을 하지 못했다.무왕의 야심에 찬 팽창정책과 그 아들 의자왕의 거듭된 실정은 신라를 자극했다.그래서 신라로하여금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아예 지도상에서 말살하려는 비밀외교에 열중하게 만들었다.신라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당과의 군사동맹이 체결되었고 양국 연합군은사전계획에 따라 서기 660년 전격적으로 백제에 대한 침공을 개시하였다.마침내 사비도성은 함락되고 백제는 그 찬란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수도의 지세를 중요시하는 정다산은 백제의 멸망원인이 사비도성의 집중성 결여에 있는 것인 양 설명하고 있다.그러나 앞에서 본 것처럼 그 방위체제는 결코 허술한 것이 아니었다. ○우아·격조 높은 문화 한 시대의 문화는 정치를 비추는 거울이다.흔히 이야기되고 있듯이 사비시대야말로 백제문화가 그 절정에 도달한 황금기였다.얼마전에 별세한 삼불 김원용선생은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고구려의 미술은 민족이나 국가가 무기력해질 때 생기는 퇴폐나 타락의 양식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소멸되어버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것은 백제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사비시대의 백제문화 역시 쇠퇴·타락의 징후는커녕 완숙의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고 있다.결국 백제는 쇠퇴기에 접어든 끝에 멸망된 것이 아니라 한창 국력이 뻗어나갈 즈음 칼에 등을 찔려 비명에 간 것임을 알 수 있다. 해방 직후일제가 이른바 부여신궁을 지을 목적으로 거두어들인 석재더미 속에서 백제말기 대좌평이었던 사택지적의 당탑 건립기념비석이 일부 파괴된 채로 발견된 일이 있다. 이로써 사비시대 백제문화의 우아하고도 격조높은 기품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요 백제말기 정치사를 해명하는 데 유력한 단서를 얻게 되었다. 지난해 연말 부여 능산리 벽화고분 근처의 한 건물지에서 새로운 유물들이 출토되었다.여기서 나온 금동제 향로를 비롯한 사비시대 후기의 유물들을 통해서 우리들은 완숙기에 접어든 백제문물의 찬란함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되었다.또 덧붙여 말하거니와 신비스러운 빛깔로 떠오른 새로운 문물 금동용봉봉래산향로를 대하면서 백제를 뒤돌아보고 재음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비시대의 문화상/출토유물 통해 「선진문화」 확인/능산리·궁남지유적발굴로 실체 드러나 사비시대 백제(AD538∼660년)의 문화상은 고분과 절터·성곽유적 등에서 출토된 매장문화재를 통해 드러난다.신라와의 각축에서 패망의 길을 걸은 백제는 외형의 문화유산을 철저히 파괴당했기 때문에 땅속에 묻힌 유물만이 겨우 백제의 잔영을 남기는 비운의 역사를 겪었다. 이 시대의 백제고분은 충남 부여군전역에 분포되어 있다.마지막 도읍지 부여를 중심으로 능산리등 13개 고분군이 대표유적으로 꼽힌다.거의가 돌방무덤(석실분)인 고분유적은 껴묻거리(부장품)라는 유물이 많이 매장되었다는 점에서 고고학이나 역사연구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사비시대 고분 가운데 고고학적으로 처음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15년 능산리 고분군 발굴이후부터다.1917년까지 모두 6기가 발굴되었다. 능산리 고분에서 사신도벽화가 있는 1호분이 특히 유명하다.널길(선도)이 달린 굴식돌널무덤(횡혈식석실분)이 주류를 이루는 능산리 고분군에서는 금동투조식금구 등이 발굴되었다.그리고 일찍부터 왕릉으로 전해왔다.이번에 햇빛을 본 금동용봉봉래산향로도 바로 능산리 고분군 이웃에서 출토되었고,마주보고 있는 나성의 일부도 발굴되어 사비도성 방어요새가 밝혀진바 있다. 최근에는 금동향로가 출토된 능산리지역 말고도 궁남지유적 3차발굴사업이 진행되어 벼농사유적인 논유구와 함께 목각의 새와 수레바퀴 등을 출토하는 수확을 거두었다.이밖에 정림사터를 비롯,부소산성 도성내의 도시계획 유구 등이 발굴되어 사비시대 백제의 선진문화상을 속속 보여주었다.특히 사비시대 백제문화권을 전북 익산지역으로까지 확대,백제 최대의 가람 미륵사터를 발굴함으로써 불교문화의 실상을 가늠하게 되었다. 그리고 웅진시대(AD475∼538년) 유적으로는 세기적 발굴이라 할 수 있는 무령왕릉을 비롯,공산성과 임류각 발굴도 고고학 성과로 치부된다.이와 더불어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발굴된 한성시대(AD18∼475년)의 도성으로 추정되는 서울 몽촌토성과 백제 초기의 건국집단의 무덤으로 보이는 서울 석촌동 돌무지무덤(적석총)도 백제연구 고고학자료가 되고 있다.
  • 상도동집마저 버릴 각오로/최평길(시론)

    총집권기간중 5분의1을 보낸 김영삼문민정부는 이제부터는 선언적 사정개혁을 계속하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국제화시대의 경제업적 창출에 전력을 기울일 때다. 하지만 사정개혁은 지속되어야 한다.영국은 1215년 대헌장선포로 왕실비용과 정부예산이 뚜렷이 양분되었고 그이후 8백년을 거치는 동안 영국의 국가예산과 정치자금은 어항에 노는 붕어같이 투명성이 맑아져 왔다.이에 비추어 볼때 일제하의 급조된 국가재정관리와 최근까지 있어온 정경유착에서 빚어진 검은 돈의 원천봉쇄를 위하여 과거의 부패를 청산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금융실명제 등과 같은 도덕성회복노력이 앞으로 수백년간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신혁명을 밑받침으로 이제부터는 선진형 경제강국이 되기위한 실질적정책을 마련,추진하여야 한다.60­80년대에 돈되는 것이면 무조건 수출하여 신발에서 TV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유럽의 백화점을 주름잡던 우리의 수출품은 이제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삼성의 전자제품,현대의 쏘나타도 중질의고가품으로 외면당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적자수출로 허덕이고 있다. 최근 미·일·중·러·한국의 한반도전문가 50명이 2000년까지 남북한을 진단한 결과를 보면 남한은 90년대초에 선진형 경제구조로의 개선,보수·혁신구도의 정계개편으로 대표되는 개혁이 이루어지고,중반기에 무역흑자에 내각제개헌이 예상되는 개혁의 성숙단계에 올라서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아울러 90년말이후 2000년에는 북한사회가 극도로 혼란해지면서 북한판 흐루시초프와같은 대중정치인이 등장하여 북한체제붕괴를 선언하고 결국에는 북한을 남한에 떠맡기는 식의 통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대다수 남북한전문가들의 예측이다.이같은 전문적예측을 고려해 보아도 통일은 기존의 외교·군사적측면의 해결방식에서 앞으로는 경제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생긴다. 따라서 피부로 느끼는 경제회생과 통일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도 내부정치에서 국제경쟁력향상의 세계안목을 넓혀야 할 것이다.그러므로 김일성체제유지에 고육지책으로 나온 동반자살용의 조잡한 원자탄제조중지에무한정 목을 맬 이유도 없다. 위험스러운 중국땅에 시설투자를 하는 것보다는 국민내부거래행위로 북한의 싼 임금으로 상품을 생산하여 북한주민을 굶주림에서 해방시키면서 국제가격경쟁을 이겨내고 그 이익금을 기술개발투자에 쏟는 탄력적정책을 행동으로 옮겨야 될 것이다.이미 물건너 간 러시아차관 회수도 미국의 스텔스전폭기와 맞먹는 진정한 의미의 차세대인 MIG31 생산시설도입을 통해 변제함으로써 우리나라 연관산업의 기술정밀도를 한단계 끌어올리고 역수출이 가능하도록 적극적이면서 정열적인 방법을 모색해 나아가야 한다. 끊임없는 부패소탕과 선진경제강국이 되기위해 김영삼대통령이 할 일은 국민 모두가 60년대에 다같이 잘 살아보자고 월남의 전쟁터와 사우디의 사막에서,그리고 북유럽의 오슬로에서 남미의 리우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때우는 수출운동에서 첨단과학기술을 통해 흑자수출로 전환시키는 21세기를 향한 국가재도약에 국민의 지지를 모으는데 있다. 특히 김대통령은 저소득서민과 근로자,경영난에 허덕이는 영세기업,8∼9급 하급관료 모두의 고통을 몸으로 느껴야 하고 영국의 근로임금을 앞지르고 미국의 근로자평균임금에 육박하는 한국근로자의 높은 임금을 자제시켜야 할때가 왔다.이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한 방편은 대통령이 그의 마지막 남은 재산인 상도동집 한채도 팔아 경영난에 허덕이는 영세기업이나 과학기술개발연구소와 교육기관에 상징적으로라도 기부함으로써 오늘날 최대의 과제인 경제회생을 위해 몸을 던지는 필사즉생의 행동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권력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이며 여자는 남자의 반려자로,그리고 돈은 인간을 움직이는 최소한의 연료로서 생각하고 살아왔다는 트루먼 전 미대통령의 자서전을 회고해 보면서 과거 야당시절 포천 광덕산과 3당통합후 관악산을 오르내리며 했던 자신의 전재산 사회환원 약속을 직접 행동으로 옮길 최적의 시기가 바로 1994년 오늘의 이 시점이라 생각된다.5년후 김영삼대통령이 청와대생활을 마감할때 자서전을 쓸 자료가방 하나만을 들고나온다면 1980년대말 신민당사 문앞에서 하루종일 번데기 판 돈을 야당성금으로쓰라고 담넘어 전해주고 지나가던 아줌마와 YH여공농성때 만원짜리지폐를 돌에 말아 던졌던 택시운전기사가 보여준 바로 그러한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지지가 반드시 되살아날 것이라 확신한다.이와함께 남북통일시대에 있어서 김일성과 함께 양금시대에 돋보이는 도덕정치지도자로서 통일의 구심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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