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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軍 학병서 광복군까지(항일독립군 장정따라 6천리:上)

    ◎臨泉 軍訓地서 ‘광복꿈’ 회상/銅山路 日 부대터에 中軍병영/연병장·단층막사 ‘옛 그대로’/끌려간 日 병영탈출 감행 뿌듯 한국 독립유공자협회 회원들이 조국 광복을 꿈꾸며 젊은 날 이역만리에서 피 흘렸던 중국땅을 찾았다.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韓光班) 출신 광복군 초급장교들로 흔히 광복군 마지막 세대로 분류된다. 일본군의 학병으로 끌려왔다가 탈출,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이 항일투쟁의 족적을 찾아 나선 것은 광복의 참뜻을 지금의 시대 정신으로 승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중국 중부 장쑤(江蘇)성 쉬저우(徐州)에서 쓰촨(四川)성의 충칭(重慶)까지 장장 6,000리길. 일본군 탈출부터 광복군 훈련장,항일 지하공작 거점 등 열하루간 동행했던 이들의 답사 행로를 3회에 나눠 소개한다. ‘마지막 독립군’들의 첫 현장 답사는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에서 시작됐다. 베이징(北京)서 814㎞. 기차로 8시간. 54년전에 거쳐온 길을 더듬기 위해 1시간 남짓한 비행기편도 마다했다. 1944년 2월초. 평양을 출발,기차에 강제로 실려 닿은 곳은 일본군과 중국군이 대치하던 최전방 쉬저우. 7월까지 쉬저우와 슈저우(宿州),푸양(阜陽)일대 전선에 배치됐던 이들은 그해 3월부터 7월까지 하나둘 일본병영을 탈출했다. “일본군이 되어 동포들의 가슴에 총을 겨누느니 차라리 탈출하다 죽기로 했다”고 50여년전 결의를 회상했다. “상당수는 우선 충칭에 있던 임시정부를 찾아가기로 했었습니다” 회고담은 이어졌다. 당시 쉬저우 주변에선 일본군이 밀집해 있었고 중국으로 끌려온 ‘조선학병’ 3,000여명의 대부분도 부근에 배치됐다. 때마침 텐진(天津)에서 시작된 진푸선(津浦線)철로가 쉬저우를 지나 상하이(上海),푸둥(浦東)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노 광복군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일본군은 철도와 주변을 점령,광대한 중국대륙을 ‘선’과 ‘점’으로 연결하는 전략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끌려갔던 학병들은 대부분 철도역 주변에 주둔해 있었단다. 밤을 틈타 3m가 넘는 철책을 넘었다. 짧게는 2∼3일에서 일주일이상을 풀잎이나 과일로 연명하며 낮에는 수수밭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들판을 달렸다. 대개는 중국 유격대와 조우했고 당당한 광복군이 되었다. 44년 6월 ‘宿縣부대’ 제4중대에서 탈출했던 金柔吉 부회장과 全履鎬 회원은 슈저우역에서 2㎞쯤 떨어진 곳을 찾아 헤맨끝에 당시의 탈출지점을 찾아냈다. 지금은 ‘宿縣 付小樓 村庄’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2∼3층의 주택들이 병영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에 앞서 5월에 같은 부대 보병중대에서 津浦線을 넘어 탈출했던 石根永 회원도 슈저우에서 50㎞ 떨어진 구쩐(固鎭)역부근에서 병영터를 찾아냈다. 일본군은 철도가 파괴되거나 공격받으면 주변의 중국인을 몰살시켜 보복했다고 악몽같은 50년전을 떠올렸다. 중국 유격대원이 생포되기라도 하면 총검술 연습의 표적으로 삼아 살해하기도 했단다고 치를 떨었다. 대부분의 병영들은 푯말하나 남지않고 촌락 등으로 바뀌는 등 사라졌지만 尹慶彬 회장과 金永錄 회원이 탈출했던 쉬저우시 통산로(銅山路)의 부대터는 지금도 ‘중국 인민해방군’ 주둔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부대안을 돌아본 尹慶彬 회장 등은 연병장앞의 3층 본부 건물,검은 벽돌과 돌로 지어진 단층 막사가 옛 그대로라며 회상에 젖었다. 높은 천정의 막사안에는 시멘트바닥에 철로 만든 2층 침대 10여개와 간단한 사물함이 눈에 띄었다. 張俊河 선생 등과 함께 尹회장 일행 4명이 44년 7월7일. 일본군의 이른바 ‘중국침략 기념일’로 경계가 느슨해 틈을 타 ‘취침전 15분의 자유시간’을 이용했다. 일본군을 벗어난 이들은 이틀밤을 앞만 보고 달리다 먼저 탈출해 중국 유격대에 와 있던 金俊燁(전 고대 총장)씨와 해후했다. “중국의 여러 유격대에 흩어져 있던 탈출자들은 린촨(臨泉)로 모였지요. 린촨에서 군사훈련을 받으며 광복의 꿈을 키워 대일항전의 장정(長征)을 시작했습니다” 노 독립군의 회고는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따라 어느새 50년전의 린촨에 닿고 있었다. ◎독립유공자협회/항일전 참가 175명이 결성… 현 회원 220명 한국독립유공자협회는 광복회와 함께 항일투쟁의 일선에 섰던 독립운동가들의 양대 산맥. 81년 독립운동가 175명에 의해 발족됐다. 초대회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趙擎韓 선생. 한국전력 사장을 지낸 朴英俊 회장에 이어 尹慶彬 회장이 3대 협회를 이끌고 있다. 회원은 220명. 광복회가 독립지사의 유가족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비해 항일투쟁을 벌였던 본인만이 가입할 수 있다. 회원 모두 건국훈장을 받았다. 일제말기 학병 등으로 중국전선에 끌려갔다가 탈출,광복군에 합류했던 독립운동의 마지막 세대가 협회의 주축. 金九 선생을 보좌,충칭(重慶) 임시정부서 일했던 마지막 생존자들이기도 하다. 대부분 70대후반에서 80대초반. 색이 바라가는 독립정신을 드높이기위한 연구,탐사 등 학술사업과 사회사업,독립운동 사적에 대한 복원운동을 벌여왔다.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80주년이 되는 내년 충칭시 광복군 총사령부건물 표지석 건립작업 등 후세에게 민족애국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중이다. ◎광복군/임정 정규군… 美와 對日 공동작전 활약 광복군이 정규군으로 발족한 것은 40년 9월. 무력으로 조국을 되찾겠다며 중국으로 온 젊은이와 일본군에 끌려왔다가 탈출한 학병이 주축이 됐다. 총사령관은 李靑天 장군이었고 참모장 李範奭 장군.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한편 지하활동 등 갖가지 군사활동을 감행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였다. 3개의 직할부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李範奭 장군이 지휘하는 2지대는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을 거점으로 일본군 전력을 교란시키는 활동에 주력했다. 최전방에서 일본군과 필사의 전투는 3지대의 몫. 안후이성 푸양에 본부를 두고 산둥성(山東省) 등 화북지역에서 지하공작 활동도 병행했다. 44년부터는 일본군에서 탈출한 학병들이 합류하면서 미국 첩보기구인 전략사무국(O.S.S)과 함께 일본군에 결정타를 가하기 위해 한반도침투 등 특수공작을 준비하기도 했다.해방직전 광복군은 700여명. 광복이 될 무렵에 중국에 거주하는 교포들로 30만여 군병력을 조직하는 계획에 착수하기도 했다. ◎임천사관학교/日軍 탈출한 한국인 광복군 간부 양성소 안후이성(安徽省) 린촨(臨泉)에 있던 ‘광복군 사관학교’. 더 정확히 말하면 44년 7월 린촨 중국 중앙군관학교 제10분교안에 설치됐던‘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일명 한광반(韓光班)’. 중국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군서 탈출한 한국인을 광복군 간부로 양성하던 곳이다. 44년 7월에 들어온 첫 입학생들은 48명. 33명은 대학졸업후 일본군으로 징병돼 중국전선까지 끌려왔다가 탈출한 학병. 15명은 조국광복을 꿈꾸며 중국으로 건너왔던 애국청년들. 5개월 과정을 마친뒤 白正甲 등 25명은 6,000리 길을 걸어서 쓰촨성(四川省)충칭(重慶)의 임시정부를 찾아가 광복군본류에 합류한다. 나머지 8명은 최전방 안후성에 남아 정보수집 등 대일투쟁을 벌인다. 25명중 尹慶彬은 임시정부 경위대장으로,鮮于鎭은 金九 선생비서로 白凡 선생을 최후까지 보좌하게 된다. 또 張俊河,金俊燁,金柔吉 등 일부는 한·미군사협력으로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으로 가 한반도진입을 위한 특수훈련을 받는다. 현재 한광반 첫 수료생 가운데 국내엔 11명이 생존해 있다.
  • 용비어천가 필사본 첫 발견/경산 조곡서원서

    용비어천가 필사본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경산대 경산문화연구소 趙春鎬 소장(국문학)은 10일 “용비어천가 창제에 핵심역할을 했던 조선 세종조 한글학자 安止선생의 제사를 모시는 경북 경산시 조곡리 조곡서원의 유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용비어천가 필사본 완질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용비어천가는 1447년 500질이 판본으로 간행 유포됐으나 이 초간본은 현재 완질이 전해지지 않으며 이후 간행연도가 알려지지 않은 고판본과 1612년에 간행된 만력본,1695년에 간행된 순치보,1765년에 간행된 건륭본 등의 판본은 있으나 필사본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모두 5책 10권 517장으로 된 이 필사본은 지난 1750년대 영조 말기에 安止의 후손 4∼5명이 해서체로 몰래 베껴쓴 것으로 추정된다.
  • 새로쓴 言官史官(金三雄 칼럼)

    언론인 출신의 사학자 千寬宇 선생은 ‘언관과 사관’이란 글에서 현대의 언론인은 왕조시대의 사관과 같다고 했다. 임금의 말 한마디로 생명이 좌우되기도 하는 시대,그 속에서도 할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언관의 책임이라는 것,그는 언관의 기개를 서거정(徐居正)의 말을 빌어 “항뇌정(抗雷霆) 도부월(蹈斧鉞) 이불사(而不辭)”(벼락이 떨어져도 목에 칼이 들어가도 서슴지 않는다)라고 썼다. 추상열일과 같은 언관의 기개다.조선왕조가 끊임없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면서도 500년 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언관과 사관의 기개 때문이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들과 함께 역사를 쓰는 사가들의 기개 또한 대단하였다.단재 신채호 선생이 31세때인 1910년 국치 4개월 전에 안창호·이갑 등과 망명길을 떠나면서 가져간 책이 있다.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東史綱目)’필사본이다. 동사강목은 안정복이 22년간에 걸쳐 완성한 노작으로 단군조선부터 고려말까지를 다룬 실학기의 대표적 역사서다. 단재는 이 책을 짊어지고 고국을 떠나 만주·노령연해주·중국땅을 전전하면서 우리 고대유적과 유물,사서(史書)를 두루 섭렵했다. 단재는 이 책을 자료로 삼고 연구를 거듭하여 ‘조선상고사’와 ‘조선사연구초’등을 집필하였다. 안정복이 단재의 스승인 셈이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역사가의 중요한 원칙으로 ①계통을 밝힐 것 ②찬탄자와 반역자를 엄하게 평할 것 ③시비를 바르게 내릴 것 ④충절을 높이 평가할 것 ⑤법제를 상세히 살필 것을 들었다. 안정복의 다섯가지 원칙은 언론인이 지켜야 할 수칙이기도 하다. 오늘의 언론인은 어제의 언관이고 내일의 사관이기 때문이다. 언관이고 사관인 언론인은 모름지기 역사를 의식하면서 글을 쓰고 말을 해야 한다. 군사독재시절부터 길들여진 냉전논리와 수구세력과의 유착 커넥션에서 벗어나야 한다.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젖어온 안보상업주의 멘탈리티를 깨뜨려야 한다. 남북이 차츰 화해와 교류의 물꼬를 트고 서유럽국가들의 정치이념 지도가 바뀌는 터에 냉전의식과 매카시즘으로 중세기적 마녀사냥을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히틀러 피아노 건반 언론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앙그리프(Hangriff:공격)’란 신문을 창간하면서 “신문은 피아노 건반이다”고 썼다. 히틀러는 이를 받아서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천국도 지옥으로 느끼게 하고 반대로 더없이 비참한 생활을 낙원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언론은 나치즘적 언론관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양심세력을 모해하는 글쓰기 행태를 지양해야 한다. 나치가 패망한 지 반세기도 더 지났는데 언제까지 ‘피아노 건반’식의 글쓰기를 한다면 언론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레이몽 아롱의 비판정신 ‘지식인의 아편’을 쓴 레이몽 아롱은 지식인의 비판활동의 유형으로 기술적 비판, 논리적 비판,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들면서, 어떤 유형의 비판활동이든 양심과 진실의 전제가 아니면 비판의 자격이 주어질 수 없다고 했다. 언론인과 지식인은 레이몽 아롱이 지적한 양비론의 기술적 비판이나 길들여진 냉전논리의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지양하고 당당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논리적 비판정신을 따라야 한다. 개혁과 민족화해 ‘시대정신’으로 모아지는 때에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식의 언론활동은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그리하여 선배 언관과 사관에 부끄럽지 않은 언론인으로 개혁과 민족화해의 선도자가 돼야 한다.
  • 글렌 “하와이 아름답다” 첫 교신/디스커버리호 무사 궤도 진입

    ◎노화규명 위해 15초마다 체온측정·뇌파검사/클린턴·디카프리오 등 25만명 발사장면 구경/NYT “평범한 일에 소동 피워 약간슬퍼” 비판 【케이프 커내버럴 AFP 연합】 우주비행 사상 최고령인 77세에 두번째 우주여행에 나선 존 글렌 상원의원 등 7명의 승무원을 태운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29일 미국 플로리다의 케이프 커내버럴 발사기지에서 발사돼 무사히 지구궤도에 진입했다. 디스커버리호는 경미한 문제로 두차례 발사가 연기됐다가 이날 오후 3시19분(한국시각 30일 새벽 4시19분) 성공적으로 발사된 뒤 8분만에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디스커버리호는 내달 7일 케네디 우주센터로 귀환할 예정이다. ○…글렌 의원은 발사 수 시간 후 지상통제소와의 교신에서 “지금 하와이섬이 보인다”고 말한 뒤 “제로G(무중력상태) 매우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하와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답다”고 감탄을 연발. 그는 비행기간 동안 노화와 유사한 증상의 실상 및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10가지 실험을 수행하는데 이를 위해 위속에 15초마다 체온을 측정하는 소형기기를 넣었고 잘 때는 뇌파변화 등을 측정하는 감지장치 모자를 쓰게 된다. ○…미 연방항공우주국(NASA)은 발사 직전 항로를 이탈한 비행기 한 대가 발사장 상공에 나타났으나 곧 문제가 해결됐고 선체 뒷부분의 문짝 하나가 이륙 직전 떨어져 나갔지만 발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설명. 발사장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과 스페인의 펠리페 왕자를 비롯,브루스 윌리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유명 연예인 등 25만명이 참석,발사 광경을 지켜봤으며 주요 TV방송사들은 미국 전역에 생중계. ○…대부분의 미국 언론은 글렌 의원의 우주비행이 과학사에 이정표를 세웠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선전용 곡예비행에 불과하다며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 특히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그냥 놔두면 평범했을 이 비행을 둘러싼 모든 소동에는 약간 슬프고 필사적이기 까지 한 무엇인가가 있다”며 비난.
  • 英·佛 “獨逸을 짝궁으로 잡아라” 경쟁/유럽 역학구도 변화 조짐

    ◎英­친분 이용 3국 연대 거론 등 ‘구애 손짓’/佛­위기감속 獨 총리 유럽국가중 첫 초청 요즘 유럽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을 먼저 짝궁으로 삼기 위해 필사적이다.독일의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유럽의 헤게모니 구도에 틈이 보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흐름을 먼저 눈치챈 것은 영국.프랑스와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던 헬무트 콜 총리 정부가 퇴진하자 영국이 재빨리 틈새를 파고 들었다. 유럽은 누가 뭐래도 영국과 프랑스,독일의 집단지도체제로 움직인다고 분석된다.황금의 삼각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만약 셋중 둘이 조금이라도 가깝다면 유럽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유럽의 현실. 영국이 게하르트 슈뢰더 차기 독일 총리라면 콜 총리의 지원아래 독주해온 프랑스를 제칠 수 있다고 본 것이다.더구나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슈뢰더와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터.명분으로 영·독·불 중도좌파정권 동맹을 내걸었다. 블레어 총리는 슈뢰더의 승리가 확정되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각국 지도자들 중 가장 먼저 축하전화를 걸었다.그리고 세나라 중도좌파 정부가 공조하는 ‘3자연대’을 거론하며 독일에 구애의 화살을 쐈다. 로빈 쿡 외무장관은 보다 노골적이었다.슈뢰더는 과거 독일과 프랑스의 밀월관계를 떠받쳐온 축에 해당되지 않는 신세대 인물이기 때문에 영국에 보다 우호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애써 감추지 않는다. 영국은 ‘유럽의 삼각구도’에서 물론 프랑스를 밀어낼 생각은 없다고 했지만 프랑스로서는 불안하기만 할 것이다“자신은 프랑스 사회주의자들보다(토니 블레어의)신 노동당에 가깝다”는 슈뢰더의 영국에 대한 화답은 프랑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국가에선 처음으로 슈뢰더를 초청했다. 영국과 독일의 움직임에서 비롯됐다.정치적으로 대처식 자유시장 경제를 고수하는 블레어보다는 리오넬 조스팽의 전통적 사회주의쪽에 가깝다는 게 프랑스로서는 유리하다. 결국 열쇠는 독일의 슈뢰더가 쥐고 있는 상황이다.패전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유럽의 중심축이 되어 보겠다는 게 전통적인 독일의 외교 전략.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등거리 전략을 구사해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 “대선자금 모금 公기관 동원 안했다”/李會昌 한나라당 총재 문답

    ◎특검제 도입 공정수사를/영수회담 제의 아직 유효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는 10일 “공공기관을 동원,대선자금을 모금하지 않았다”면서 대선자금의 엄정한 수사를 위해 특별검사제 도입을 주장했다.다음은 기자회견 일문일답 요지. ­徐相穆·金泰鎬 의원 등으로부터 대선자금 모금 상황을 보고받았나. ▲‘국세청’‘공공기관’ 동원이라는 표현을 여권이 사용하는데 이는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잘못된 표현이다.국민들에게 오해를 밝히려고 이 자리를 마련했다.분명히 그렇지 않다. ­徐相穆 의원의 검찰 자진 출두는. ▲국가의 사법권이나 형벌권 행사는 공정해야 한다.공정한 사법권 행사라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믿지 못한다.그래서 특별검사제 도입을 주장하는 것이다.지난 대선 당시 우리 당은 상대당과 비교해서 필사적으로 후원금을 모금했고 나 자신 집도 팔았다. ­여야 영수회담 제안은 유효한가. ▲공은 저쪽으로 넘어가 있다.총재수락연설에서 과거와는 다른 여야 관계의 정립을 호소했다.무자비하고 반민주적인 야당 파괴공작을 중단하고 회담을 제의한다면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각제에 대한 입장은. ▲내각제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정치인들이 따질 일이 아니라 국민들이 원하고,또 합당해야 한다.대통령제나 내각제나 모두 영구불변의 제도는 아니다. 정략적 차원의 내각제 개헌은 반대한다.
  • 러 일부州 ‘경제 비상’ 선포

    ◎정치불안속 물가통제… 외국에 식량원조 호소 러시아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체르노미르딘 총리서리 인준이 두차례 거부되면서 의회해산,비상사태 선포,유혈쿠데타 등 극한의 시나리오가 흘러나오고 있다. 경제 역시 무정부상태. 생필품 품귀와 가격 폭등에 따른 주민들의 필사적인 사재기로 일부지역에선 ‘경제 비상체제’를 선언했다. ○…러시아의 일간 모스코브스키 콤소몰레츠는 8일 ‘대학살의 냄새’라는 제하 기사에서 옐친의 비상사태선포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나리오’라고 전망. 모스크바 전략연구소의 피온트코프스키 소장도 만약 체르노미르딘 총리안이 다시 상정돼 부결된다면 “의회는 해산되고 총선은 실시되지 않은 채 독재정치만 남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옐친 대통령이 의회의 강력한 반발에 굴복,체르노미르딘 총리안을 철회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대두. 한 정치분석가는 “옐친과 그 측근들은 체르노미르딘 도박의 실패로 다른 최상의 인물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옐친도 1차 총리인준 동의안부결때와 달리 체르노미르딘 총리인준 동의안을 의회에 즉각 재상정하지 않아 의회와의 대결을 피했다. ○…러시아 서부의 칼리닌그라드주는 식품·연료 등 필수품 재고 확보를 위해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 주정부는 7일 연금혜택자와 저임노동자를 위한 재원과 90만여명의 주민들에 대한 기본 의약품 지급보장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주와 옴스크주도 물가통제에 들어갔다. 극북동부 무르만스크주는 스칸디나비아국에 식량원조를 호소,핀란드가 유럽연합(EU)에 긴급원조를 호소했다.
  • 한나라 전당대회 이모저모/임기 2000년까지… 총선 공천권 확보

    ◎청와대선 “개혁 동참하는 야당 기대” 한나라당이 ‘대세론’을 업고 강력한 야당을 주창한‘李會昌호(號)’를 선택했다. 31일 6시간여에 걸친 전당대회에서 李會昌 후보는 1차투표에서 과반수를 넘는 55.7%의 득표로 승리를 거뒀다. ○“희망주는 새 정치 실현을” ○…李신임총재는 수락연설에서 “불신과 대결의 정치 반세기를 종식,희망과 용기를 주는 새정치를 실현시켜야 한다”며 “필사즉생의 각오로 어떤 난관도 헤쳐나가겠다”고 밝혔다. 李총재는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당 상임고문단과 만찬을 나눈 뒤 명륜동 집으로 부친 李弘圭옹을 찾았다. ○…이에 앞서 하오 3시쯤 개표결과가 발표되자 李총재는 다른 후보들과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했다. 李총재의 임기는 趙淳 전 총재의 임기를 이어받아 2000년 4월까지여서 차기총선 공천권을 확보한 셈이다. ○李 정무 오늘 축하방문 ○…金大中 대통령은 1일 아침 李康來 정무수석을 李총재의 종로구 가회동 집으로 보낸 축하난을 전달한다. 청와대 朴智元 대변인과 국민회의 鄭東泳 대변인도 각각 성명을 내고 “경제살리기 개혁에 동참하는 야당,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야당이 돼주기를 바란다”면서 “앞으로 李총재의 지도아래 정치개혁에도 여야가 힘을 합치기를 바란다”고 기대를 표시했다. ○…투표 직전 후보들은 합동연설을 통해 치열한 설전(舌戰)을 주고 받았다. 李漢東 金德龍 徐淸源 후보는 李會昌 후보를 집중 공격하면서 ‘대의원 혁명’을 강조했다. 金후보는 낙선한 뒤 대회장을 떠나며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다”고 말했다. 徐후보는 기자실에 들러 “경선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이지”라고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李漢東 후보는 곧바로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 水月觀音圖 등 4건 국가문화재 지정

    문화관광부는 22일 水月觀音圖 등 4건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예고한다. 이들 문화재는 30일 이상의 예고기간을 거쳐 보물 및 국보 등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다. 수월관음도(서울 宇鶴문화재단 소장)는 52.5×100.3㎝ 크기의 고려시대 불화로,합장한 善財동자가 오른발을 왼무릎 위에 올린 半跏의 자세로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에게 法을 청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大樂後譜(국립국악원 소장)는 영조 35년(1759)에 徐命膺이 편찬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官撰 악보로 7권 7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이다. 資治通鑑綱目(서울 개인 소장)은 중국 송나라 朱熹가 司馬光의 ‘資治通鑑’을 ‘春秋’의 체제를 모방해 綱과 目으로 나눠 편찬한 중국 史書. 이를 조선 세종의 명령으로 집현전 학사들이 교정하고 주석을 달아 세종 10년(1428)에 인출한 책 59권 중 제20권이다. 50×98.3㎝ 크기의 地藏菩薩圖(부산 개인 소장)는 道明尊者와 無毒鬼王이 함께 배치된 三尊圖 형식의 그림. 고려불화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는 麗末鮮初의 것으로 추정된다.
  • 경제 파탄… 사임 압력…/‘옐친의 러시아’ 四面楚歌

    러시아가 어렵다.엊그제 금융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극약처방’을 내리고 말았다.이번에는 야당이 옐친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등 정치적 공세를 펴고 있다.엎친데 덮쳤다.경제위기를 극복해 나갈 정치세력마저 무게중심을 잃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정치/야 “연정구성만이 위기극복책” 공세/측근들 조차 “국민 신뢰감 상실” 토로 러시아 옐친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졌다. 최대 야당인 공산당의 주가노프 당수는 18일 전면적인 정부조직 개편을 요구하면서 옐친 대통령의 즉각 사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또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 두마(하원)의 셀레즈뇨프 의장은 19일 ‘비상연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하나같이 옐친 대통령과 지금의 내각으로는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정치권의 혼란 뿐 아니다.민심의 이반은 더욱 큰 문제다.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치솟고 있다.옐친은 ‘금융 조치’를 발표하기 사흘전까지 루블화의 평가절하를 부인,국민들로부터 신임을 잃었다. 내년의 의회선거와 2000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측근 개혁세력조차 볼멘소리를 낸다는 소식이다.한편에서는 루슈코프 모스크바 시장,레베드 크라스노야르스크 주지사 등 차기 지도자들의 이름이 때 이르게 거론되고 있다. 옐친은 이에 맞서 개혁 강도를 더 높이겠다는 의욕을 다잡고 있다.경제 자문관을 해임하고,강력한 탈세근절 정책을 펼쳐온 보리스 표도로프 국세청장을 거시경제 담당 부총리로 전격 기용했다.야당의 예봉을 피하고 국민적 신뢰를 추스리겠다는 계산이다. ◎경제/극약처방 빛바래 주가 10% 폭락/루블화 2개월내 또 절하 가능성 지불유예(모라토리엄)와 사실상의 루블화 평가절하이후 러시아 경젝 바닥모를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19일 러시아 주가지수는 정부가 국내 채권시장 회생방안 발표를 연기한게 화근이 돼 전남보다 10%나 폭락했다. 18일 이미 28개월만의 최저치를 기록한 뒤였다. 러시아 정부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중앙은행은 18일 지불유예 대상을 △만기 180일 이상 외국인이 단기로 보유한 채권이나 금융차관 △다시 사주는조건으로 발행한 환매채와 보증보험,그리고 자산 담보부 채권 △미래 환율의 변동을 가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외국돈을 사고 파는 거래인 환선물거래로 한정한다고 발표했다. 정부 및 중앙은행,연방정부,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차관 등 국가가 보증한 거래는 지불유예 대상에서 모두 제외시켰다.대상을 민간부분으로 한정시켜 국가 공공부문의 외채는 기한이 도래하는 대로 갚겠다고 자신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속이 탄다.‘금융 극약처방’발표 다음날인 이날 주가는 전날보다 9.01%나 폭락했다.28개월만의 최저치였다.환율도 전날 미화 1달러당 6.4300루블에서 6.8850까지 치솟았다. 실제로 러시아 하원의장은 이날 2개월안에 또 루블화를 평가절하해야 할지 모른다고 털어 놓았다.또 일본정부에 긴급 도움을 요청했다.약속된 일본 수출입은행의 8억달러 융자를 앞당겨 연내에 집행해달라고 요청했다. 러시아가 자력으로 총체적인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힘들 것같다.그래서 일본의 대답도 ‘전향적인 검토’였다.미국의 뉴욕타임스가 “러시아 붕괴는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하다”고 우려하고 나서는 등 러시아를 바라보는 세계의 눈길에 걱정이 깃들어 있다.
  • 힐러리 “그래도 내사랑”/“對국민 연설은 당신이 하는 것”

    ◎“스타 비난 강도높게 하세요” ‘세상에 조강지처(糟糠之妻)만한 동지는 없었다’ 미국의 힐러리를 두고 하는 얘기다.17일(미국 동부시간) 하오 백악관 솔라리움(일광욕실). 클린턴 대통령은 잠시 후에 있을 TV 국민연설 문안을 놓고 보좌관들과 심한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쟁점은 케네스 스타 검사에 대한 공격여부. 스타 검사로부터 시달려온 클린턴 대통령은 연방 대배심 증언에 앞서 억하심정이 스민 연설문 초안을 만들어 절친한 친구인 캔터 변호사에게 건넸다. 연설문을 검토한 정치담당 보좌관들이 ‘비속한 용어’들이 눈에 많이 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구체적으로 내용을 밝히며 사과하고 스타 검사에 대한 비난을 삭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가득이나 화가 치밀어 있던 클린턴이 30분간 휴식을 마치고 토론에 합류하면서부터.클린턴은 스타 검사에 대한 심정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시드니 블루멘탈 공보실장,캔터 변호사 등은 “필사적으로 대통령을 자빠뜨리려고 발악하는 광신자(스타 검사)”를 언급해야 한다며 클린턴의 입장을 두둔했다. 그러나 베갈라를 비롯해 로버트 스키어,앤 루이스,램 에마누엘 등 정치담당 보좌관들이 “‘미안하다’고 구체적인 사과를 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며 팽팽히 맞섰다. 힐러리 여사가 특유의 말투로 말문을 열었다.“이봐요.연설은 당신이 하는 것이예요.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숨김없이 하란 말이예요” 힐러리는 ‘관계’ 시인으로 뒤틀린 심정을 뒤로 한 채 성추문으로 어깨가 쳐진 남편의 입장을 강력히 두둔,논쟁도 마무리짓고 클린턴의 체면도 세워 주었다.
  • 자녀 실직·생활고 겹쳐…/노인들이 내몰린다

    ◎“자식들에 큰 부담”… 집에 있자니 눈치만/일자리 찾지만 젊은이에 밀려 별따기/“쓸모없는 존재” 소외감에 집단우울증 노인들이 버림받고 있다.IMF경제난 속에서 300만 노인들이 겪는 소외감과 상실감은 젊은 층보다 훨씬 크다.자녀들의 실직과 생활고는 노인들을 집 밖으로 내몰고 있다.취업 전선에 나서려해도 여의치 않다.많은 노인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주변냉대◁ 金모씨(80·여)는 최근 며느리의 권유로 서울 은평구의 한 무료 사회복지시설에 들어가기로 했다.외아들이 지난 4월 부도를 내고 구속된 뒤 한 사람이라도 입을 줄이자고 내린 결정이다.며느리는 형편이 좋아지면 모시러 오겠다고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93년 남편과 사별한 뒤 경기도 일산에서 혼자 살고 있는 尹모씨(67·여)는 요즘 통 잠을 자지 못한다.며칠전 아들 내외로부터 “같이 살자”는 전화를 받고 나서부터다.혼자 사는데 익숙해진 尹씨는 내키지는 않지만 마냥 뿌리 칠 수도 없다.자신의 전세금 4,500만원을 가계에보태고 싶어하는 실직 아들의 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올들어 사단법인 ‘한국 노인의 전화’등 서울시내 3개 노인문제 상담소에는 이런 하소연 전화가 줄을 잇고 있다.하루 4∼5건이 넘는다.중류층은 부모와 자식이 합치는 문제로,서민층은 따로 사는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생계부담◁ 예비역 육군 대령 金모씨(65·서울 성북구 동선동)는 한달 전부터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맞벌이를 하던 아들 내외가 모두 실직한 뒤부터다.경제적으로 보탬이 될까 해서였다.노부부가 할일없이 집에만 있자니 눈치도 보였다.몇년 전에는 창피하다며 반대했던 아들도 이번에는 별말이 없었다. 실직한 자식들을 돕기 위한 노인들의 구직 경쟁은 필사적이다.그러나 취직은 쉽지 않다.경비원이나 청소부마저 젊은 사람들의 차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현재 노인의 전화에만 400여건의 구직 신청이 들어와 있지만 노인을 구하는 업체는 거의 없다. ▷집단 무기력증◁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대부분의 노인들이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노인 상담소에는 매일 30여명의 노인들이 우울증을 하소연한다.‘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내용이다.생활고로 인해 삶의 의지를 잃는 노인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특히 용돈이 줄면서 느끼는 상실감이 크다. 최근 한 사회단체가 서울시내 양로원 10여곳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노인들의 월 평균 용돈은 3만∼5만원으로 일년전에 비해 절반이상 준 것으로 나타났다.노인의 전화 徐惠京 이사는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쉬운 노인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 명동성당/80년대 이후 농성史

    ◎양심세력의 피난처서 집단이기주의場 변질/군사독재시절­6·29선언후 반정부시위 메카로/문민정부 이후­이익집단 갈등으로 성당과 반목 서울 명동성당은 80년대 이후 각종 농성과 집회의 ‘상징’처럼 알려져 왔다.초기에는 공권력이 미칠 수 없는 ‘양심세력의 도피처’로 인식됐으나 성역을 역으로 이용하는 농성자들이 늘어나면서 집단이기주의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명동성당이 농성장소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87년 6·29선언 이후부터다. 이때부터 명동성당에서는 1주일이 멀다하고 농성과 집회,시위가 끊이질 않았다.70년대 군사독재시절 시국선언이나 성명을 기습적으로 발표하기 위해 애용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시대에 따라 농성의 성격이 달라지면서 명동성당의 대응도 바뀌었다. 盧泰愚정권 당시에는 군사정권의 연장이라는 시각이 깔려 있었다.91년 ‘강경대군 치사사건’과 ‘강기훈씨 유서대필사건’ 때에는 한 달 이상 집회와 농성이 이어졌지만 성당은 이들을 감싸고 사제단 성명 등을 통해 두둔하는 듯한 인상까지 주었다. 92년 金泳三정부가 들어서면서 집단 이해관계에 얽힌 대규모 농성이 잦아졌다. 94년 6월과 95년 5월의 서울 지하철 노조 농성과 한국통신 노조 농성이 대표적이다.3개월 동안 계속된 지하철 노조 농성 때에는 성당 본래의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무질서와 혼란이 심해 사제단과 사목협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철수를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 4월부터 3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는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농성은 87년 6·10항쟁 이후 규모면에서 가장 크다.명동성당은 이번에 농성자의 철수를 요구하면서 “실정법 위반자에 대해서는 보호할 수 없으며 국민의 정부를 신뢰한다”고 천명했다.성당이 더 이상 집단이기주의의 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 전시회서 본 북한 교과서/金日成 父子 우상화 일색

    ◎95년부터 그림 사라져/남한사회 왜곡·비방 여전 94년까지는 북한 교과서에 삽도(揷圖),즉 그림이 있었지만 95년 이후에는 삽도를 거의 볼 수 없고 설명 위주로 되어 있다.또 95년 이후에는 ‘김일성 원수님’이라는 호칭이 ‘김일성 대원수님’으로 격상됐다. 통일부가 최근 입수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전시하고 있는 북한 교과서의 내용을 보면 여전히 김일성·김정일 등 김부자(父子) 가계 우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 인민학교의 경우 학급당 교과서 소지 학생은 평균 5명 내외로,교과서가 없는 학생은 개인별로 필사본을 만들어 사용한다.또 학년이 끝나면 교과서를 반납해 대물림을 한다. 통일부가 이번에 새로 입수한 북한 교과서는 인민학교 교과서 8과목 17종과 고등중학교 교과서 22과목 79종 모두 96종 124권.주요 과목으로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의 어린시절’‘국어’‘공산주의 도덕’‘도화공작’‘조선력사’‘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 등을 꼽을 수 있다.이 책들은 모두 남한사회를 왜곡·비방하고 북한체제 수호를 강조하는 공통점을 지닌다.특히 인민학교 4학년 국어 교과서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다룬 ‘누나의 사진’이란 단원이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또한 북한교과서에는 “사회주의는 지키면 승리,버리면 죽음”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북한의 인민학교 4학년과 고등중학교 국어 교과서의 경우 학기 구분 없이 단권으로 되어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한편 통일부는 25일까지 교보문고에서 열리는 전시회가 끝나는 대로 이 북한교과서들을 광화문 우체국 6층 ‘북한자료센터’와 전국 북한관 등에 상설전시,‘북한교육’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 클린턴­특별검사 끝없는 ‘돈싸움’

    ◎클린턴 ‘스캔들사건’ 관련 4년간 양측 820억원 사용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최근 대통령 경호원들의 법정 증언 결정으로 중대 고비를 맞고 있는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스캔들 사건.결백과 혐의를 입증하려는 필사적인 공방전이 4년동안이나 계속되면서 엄청난 ‘돈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스캔들 사건이 법정싸움을 비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4년.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그동안 의혹을 캐면서 쓴 수사비는 4,000만달러(520억원)가 넘는다. 검사 측만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것이 아니다.클린턴 대통령을 비롯 수백명의 피의자나 참고인으로 소환돼 조사받은 사람들도 수천만달러의 개인 재산을 털어 넣어야 했다.200명 이상의 조사 대상자들이 지금까지 쓴 비용은 어림잡아 2,300만달러(300억원).모두 변호사 비용이다. ‘변호사의 나라’ 미국에서는 단순한 정황을 검사측 대배심 앞에서 진술하는 참고 증인이라 할지라도 빠짐없이 변호사를 고용해서 대동해야 한다.대배심 한번 출두하는데 드는 변호사 비용은 5,000달러(650만원)에서 1만달러(1,300만원). 아직 대배심에 직접 출두하지 않은 클린턴 대통령은 이미 17.5년치의 대통령 연봉에 해당하는 350만달러(45억5,000만원)를 변호사들에게 빚지고 있다.
  • 경찰 범죄대응 훈련/준비없고 내용없고

    ◎무도·체포술 월 1∼2회… 그나마 불참/권총사격 1년에 2차례 보고용 그쳐/모의 훈련도 실제상황보다 점검 위주 경찰이 지난 16일 탈옥수 申昌源을 또다시 눈 앞에서 놓침에 따라 범인체포술 등 훈련과정에 문제가 많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申을 놓친 嚴鍾哲 경장 등 경찰관 2명은 申이 타고 있던 차량이 수배차량임을 확인하고도 차주인이 따로 있다는 말만 믿고 경계를 늦추는 등 소홀하게 대응했다. 申이 아무리 날래고 힘이 셌다고는 하나 무술유단자인 경찰관 2명은 너무도 맥없이 당했다. 경찰은 평소 훈련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훈련 내용도 지나치게 형식적이어서 막상 현장에서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인정한다. 그나마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고 마지못해 참여한다는 것이다. 경찰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은 무도,체포술,사격술 등 3가지다. 무도와 체포술 훈련은 월 1∼2회에 불과하다.조교의 시범을 보고 따라하는 지극히 형식적인 수준이다. 특히 범인과 맞닥뜨려야 하는 파출소 근무자들은 야근을 핑계로 훈련에 빠지기 일쑤다. 사격술 훈련도 1년에 고작 두번이다. 형사·교통·파출소 등 외근부서 근무자만 ‘특별사격’이라는 형태로 4회 더 실시한다. 한번에 35발을 쏘지만 사격에 익숙해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 정지된 표적에만 사격을 하기 때문에 실제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범인을 제대로 맞추기는 쉽지 않다. 경찰은 지난 1월11일 천안에서 申과 격투 끝에 권총 5발을 발사했으나 단 한발도 맞추지 못하고 도리어 총만 빼앗겼다. 현장적응력을 키우기 위해 도입된 모의(FTX)훈련도 실제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상황실에서 예고없이 사건 발생을 무전으로 알리면 형사·교통 등 관련 경찰관들이 지정된 장소에 출동하는 것으로 훈련은 끝난다. 누가 빨리 현장에 도착하느냐만 점검할 뿐이다. 현장상황을 가상체험하는 내용이 빠진 것이다. 경찰 관계자 스스로도 “보고용이 아닌 실질적인 훈련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꼬집었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2(정직한 역사 되찾기)

    ◎잘못된 법 적용/간첩누명 복역수 가족 비탄의 나날/새법 재정 재구금… 가정 풍비박산/정권안보차원 범죄 날조 처형/김 대통령 한때 사형선고 받아/고문조작으로 10여년째 구금도/심장병·신경질환 등 후유증 심각 비가 오는 가운데 초췌한 모습의 한 남자가 푸른 수의를 입고 탑골공원 정문 앞에 앉아 있다.그는 옆에 서 있는 건장한 사내에게 연신 무죄를 호소한다.그러나 전기스위치가 올려지고,그의 코에 물주전자의 물이 거듭 부어진다.그는 눈동자가 풀어진 채 옆의 사내가 불러주는 대로 횡설수설 따라 읊는다. “북한의 우순학이 제 처입니다”“저는 30년간 북한의 공작원이었습니다”. 탑골공원을 무대로 지난 9일(목요일) 상연된 연극의 한 장면이다.건장한 사내는 고문기술자 李根安이고 초췌한 남자는 16년째 간첩죄로 복역중인 咸珠明씨다.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는 매주 목요일 탑골공원에서 집회를 갖는다.이날 집회의 주제는 ‘고문조작 간첩사건 피해자의 석방’.이 자리에는 군사정권 아래서 고문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돼 복역하고있는 14명의 가족들과 민가협 회원 등 50여명이 참가해 새정부의 조속한 석방조치와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법과 동일시되는 것이 정의라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악법 논란’은 지난 50년간 끊일 날이 없었다.대부분이 아는 것과 틀리게 일찌기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란 말을 한 적이 없다.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전하고자 한 것은 ‘법에 대한 사전 합의와 동의의 중요성’이었다. 지난 61년의 국가재건최고회의나 유신시절의 비상국무회의,80년의 국가보위입법회의 등은 국회가 아닌 비정통적인 대의기구들이다.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태에서 이런 기구가 쏟아낸 법률들이 사전동의나 합의의 절차를 충실히 거쳤다고 하기는 어렵다.또한 본인의 자백 외에는 증거가 없는,고문에 의한 조작 논란이 많았던 사건들도 정당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71년 통일사회당 위원장 金哲씨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북괴를 북한으로 불러야한다’는 발언을 해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됐다.당시 혐의는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는 것인데 이조항은 국가보안법 7조에 그대로 편입됐다.그러나 남북한 동시가입은 수년후에 이뤄졌고,지금 북한을 공식적으로 북괴라고 호칭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찾아보기 힘들다.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자의적으로 적용돼왔다는 논란 속에 숱한 인권침해와 위헌시비를 일으켰다. 이종·최남규·김중종씨 등은 50∼60년대 남파돼 체포된 뒤 10여년간 복역을 마쳤으나,75년 사회안전법 제정으로 재구금됐다가 89년 이 법의 폐지로 다시 석방된 이들이다.출소후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다가 새 법이 제정돼 느닷없이 다시 갇히는 사람들의 황당함은 어떤 것일까. 정권안보차원에서의 범죄의 날조·조작은 법 자체 문제보다 더 심각했다. 李承晩 정권은 야당당수였던 曺奉岩 진보당위원장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고,金大中 대통령도 80년 신군부로부터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선고가지 받았었다. 고문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으로 수십년째 갇혀 있는 사람들도 많다. 함주명·이장형씨 처럼 고문기술자 李根安으로부터 취조를 받은 사람들도 있다.함씨는 남파된 뒤 즉시 자수했으나 30년후 재구금되어 20년형을 선고받고 16년째 복역중이다. 이씨는 무기형을 선고받고 14년째 구금돼 있는 상태다. 함씨의 누나 함주옥씨(73)는 “너무 억울하다.지금이라도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하루빨리 재심절차가 있기를 바란다”며 눈물을 떨구었다.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74년 일본 유학때 조총련계 인사를 접촉한 것이 빌미가 돼 23년간 복역하다가 올 3월 특사때 나온 유정식씨. 南奎先 민가협 총무는 “현재 유씨는 심장병과 신경질환 등 극심한 고문후유증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또 “함께 나온 재일동포 손유형씨도 후두암 당뇨병 등으로 고생하다가 현재 일본으로 건너가 살고 있다”고 전했다. ◎張俊河·白基玩씨 악법철폐 앞장/학생들 민주화투쟁 전위대 역할… 3·4·9차개헌 견인/80년대 후반 민가협 등 수백개 민주단체서 주도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1974년 1월에 발표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는 이렇게 시작된다.朴正熙 대통령은 당시 유신헌법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자 긴급조치를 발동했다.정권유지를 위한 강경책이었다.과거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헌법과 법을 고치고 그를 정권유지에 이용했다.그러나 온갖 탄압과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법과 헌법에 대한 저항과 투쟁도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긴급조치가 발표되자 張俊河·白基玩씨 등은 ‘반유신 백만인서명운동’을 벌였다.그러나 서명운동은 심한 탄압을 받았다.두 사람은 구속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긴급조치의 첫 희생자가 된 것이다.당시 판결은 구형과 판결이 일치하는 이른바 ‘정찰제 판결’로,이후 많은 공안사건의 판결 기준이 됐다. 그러나 정의를 위한 투쟁은 계속됐다.그들은 민주화운동과 악법철폐운동에 앞장섰다. 일부 판·검사들의 ‘정의 투쟁’도 있었다.지난 64년 1차 인민혁명당사건에서 이용춘·장원찬·김병리검사는 중앙정보부에서 넘어온 공안사건이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소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지난 96년 유원석 판사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박충렬·허인회씨에게 잇따라 무죄판결을 내려 공안사건에서도 ‘증거재판주의’원칙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그는 지난해 2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법복을 벗어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샀다. 그러나 누구보다 앞장서서 법의 타락에 맞서 싸운 주체는 학생들이었다.그들은 왜곡된 헌법과 법을 바로 잡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지난 60년 이루어진 3·4차 개헌과 87년 민주항쟁에 의해 얻어진 9차개헌도 사실 학생들이 이룬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들은 법의 감시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제도권에 몸담은 기성세대들이 하기 어려웠던 민주주의 투쟁을 위한 ‘전위대’ 역할도 담당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역할의 중심으로 등장한 것이 수백여개에 달하는 민주시민단체와 비영리전문단체들이다.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및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인권운동사랑방 등이 대표적 단체. 민가협은 양심수 석방운동과 악법철폐운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으며,매주 목요일 주제를 정해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민변 또한 지난10여년 동안 文益煥 목사 방북사건,姜基勳씨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시국사건의 진상조사 및 변론을 맡았고,국가보안법 개정·폐지운동에도 앞장서 왔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하루소식’지를 통해 법 집행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사례를 찾아내 공론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간첩 불고지혐의 무죄판결 받은 咸雲炅씨/“명예실추·정신적 피해 상상 초월 보안법 자의적 적용 빨리 고쳐야” “무죄판결은 받았지만 실추된 명예와 정신적·금전적 피해는 어떻게 보상받습니까.” 간첩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판결을 받은 전 서울대 삼민투위원장 咸雲炅씨(34).“재판중에는 모든 피고인이 무죄로 추정돼야 하나 이것이 지켜지지 않아 당하는 피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咸씨는 지난 95년 ‘남파간첩 김동식 사건’과 관련해 불고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지난 12일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그러나 무죄판결을 받을 때까지 겪은 정신적 고통과 이미지 실추로 인한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남북분단 상황에서 일단 간첩사건에 관련돼 체포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회생활에는 족쇄가 채워집니다.그 점 때문에 역대 정권에서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왔지요.” 지난 96년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咸씨는 “선거를 불과 몇개월 앞두고 이 간첩사건에 관련돼 조사를 받았다.그리고 그것은 선거에 치명타를 가했다.”고 말했다. 咸씨는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면 일부 언론사와 국방부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고 피해보상도 요구할 방침이다.언론사에는 재판중인 사건임에도 자신을 완전히 범죄자로 기정사실화해 보도한 책임을,국방부에는 자신의 이름과 사진 등을 사병들의 정신교육 자료에 사용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보안법이 수년전보다는 많이 완화돼 과거의 ‘막걸리 보안법’수준은 벗어났다는 점은 인정했다.그러나 여전히 독소조항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친척까지도 신고해야하는 불고지죄는 반인륜적이라고 비판했다.유교적 윤리가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친척과 친구를 신고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이적단체 찬양고무죄나 이적표현물 제작 및 소지죄 등도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문제의 조항이라고 했다.그는 “새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자의적 해석에 의해 보안법이 적용되고 있다”면서 수사기관에 시정을 촉구했다.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李昌淳 팀장·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 기업체 부동산 매각 경쟁/토공,2차 토지 매입

    ◎505개사서 모두 838건 접수 국내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위해 필사적으로 부동산 매각 경쟁에 나서고 있다. 19일 토지공사에 따르면 정부가 금융·기업 구조개혁 방안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부채 상환용 기업의 토지매입 2차 신청접수 결과 505개 기업에서 총 838건,336만1,000평의 땅을 내놓았다.금액으로 따지면 무려 3조6,069억원어치로 2차 매입 예정분 1조원어치의 3.6배다. 1차 접수분에서 탈락한 물량의 63%인 7,100억원어치가 이번에 다시 신청됐다.신규 신청 물량도 3조원어치에 달했다.기업들이 부동산 처분을 통한 구조조정 자금 마련에 사활을 걸고 있음을 말해준다. 토공은 이처럼 토지 매각신청이 쇄도한 것은 토지개발채권 금리가 연 11.76%에서 13.76%로 상향 조정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2차분 매각신청 토지를 용도별로 보면 공장용지 30%,잡종지 29%,대지 23%,임야 12% 순이다. 대기업이 1조2,282억원(123건),중소기업은 2조3,787억원어치(715건)를 신청했다.1차 때와 달리 매각 신청때 금융기관의 매각확인을 거치는 절차가 폐지된데다 기업명의 토지 외에 주주 등 기업관계인 명의의 토지도 매각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중소기업의 참여를 늘린 요인이다. 지역별로는 서울·경기지역이 전체 45%,부산·경남·북지역이 32%를 차지해 수도권과 동남권 지역의 신청 물량이 1차에 이어 여전히 많았다. 토공은 오는 29일까지 현장을 조사해 매입적격 여부를 가린 뒤 오늘 30일 입찰을 실시한다.매각 희망가격이 낮은 순서로 1조원어치의 토지를 사들일 계획이다.
  • 해태제과 끝내 죽나/필사적 자구노력/내주 생사 최종담판

    해태제과가 또 한번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필사적 자구노력을 벌어던 중 퇴출대상 명단에까지 들어가는 불명예를 경험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의연한 모습이다. 그룹도 임직원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판매 및 매출 증대에 힘쓰라고 독려,재기의 의지를 내비쳤다. 그룹은 “97년 11월 부도 이후 자구노력을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고 주요 계열사의 해외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돼 온 만큼 퇴출대상 기업의 명단발표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밝혔다. 퇴출기업으로 확정된다는 것은 기업운명이 채권단의 손에 좌우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해태그룹은 사실상 채권금융단에 의해 관리돼 왔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얘기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제과가 퇴출대상에 들어간 것은 주채권자인 조흥은행의 결정이라고 얘기한다. 해태그룹의 모기업으로 연간 1,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이 기대되는 제과를 퇴출대상에 넣고 다른 부실계열사를 넣지 않은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다. 한편 ‘제과의 출자전환’을 결정한 제 2·3금융권은 명단 발표와상관 없이 종금사 사장단 회의를 거쳐 내주 중 조흥은행 등 은행권과 담판을 벌일 계획으로 알려졌다. 조흥은행은 출자전환에 반대해왔다.
  • 국내最古 필사본 大다라니경 발견

    세계 최초의 목판 두루마리 불경으로 알려진 석가탑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751년)보다 40년 정도 앞선 것으로 보이는 8세기초 국내 최고(最古)의 필사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됐다.이 사경은 서울 성암고서박물관 趙炳舜 관장(77)이 입수,보관하고 있다가 13일 공개한 것으로 총 길이 709㎝ 폭은 27㎝이다.불경은 종이 위에 묵으로 글씨를 썼고 오른편 위쪽에는 채색한 변상도(變相圖:불교의 교리를 그림으로그려 표현한 불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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