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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평양 횡단중 조난/일본 요트인 부산에/화물선에 구조된 모로이씨

    ◎“생존 일념으로 석달 견뎌”/“하루 한끼에 빗물 받아 마셨다” 요트로 태평양을 횡단하다 폭풍우로 조난당한 뒤 1백여일동안 표류중이던 일본인 모로이 기요지씨(제정청이·56·오사카거주)가 한국으로 들어오던 화물선에 구조돼 17일 상오 부산 감천항에 입항,부인 지에코씨(42)·누나 마쓰이 다가코씨(61)와 감격적인 재회를 했다. 이날 모로이씨는 텁수룩한 머리에 흰색 운동복과 청색바지를 입고 다소 지친듯한 표정이었으나 부산해운항만청 감천출장소를 가득 메운 취재진들에게 조난당시 상황과 표류일정등을 설명했다. ­실종당시 상황은. ▲출항 1개월여만인 지난 3월8일 폭풍우를 만났다.강풍이 불어 돛을 내리려고 하는데 큰 파도가 뱃전을 때려 몸중심을 잃고 바다에 떨어졌으나 필사적으로 헤엄쳐 다시 배로 올라갔다. ­표류기간동안 생활은. ▲배는 마스터가 부서지고 유리창이 파손됐으며 무전기도 손상돼 통신이 불가능했다. ­식량은 부족하지 않았는가. ▲오는 8월까지 견딜 수 있는 왕복항해 분량의 식량을 준비했었지만 언제 구조될지 몰라 하루 한끼씩만 먹으며 구조를 기다렸다.식수가 부족해 빗물을 받아 마셨다. ­표류과정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은. ▲가족들이었다.처와 자녀 5명의 얼굴은 한시도 잊지 않았다.표류기간이 길어질수록 억울해 죽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로이씨는 지난 2월초 일본 오사카항에서 요트 수텐도지호(10t)로 미국 LA까지 횡단하던중 지난 3월8일 하와이 북쪽 8백마일 해상에서 폭풍우로 조난,행방불명된 지 1백1일만인 지난 7일 조난해역에서 2천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던 빈센트선적 화물선 비엔나우드호(1만7천1백61t)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 산업평화·경쟁력 강화 힘모을때/김 대통령­이 대표 대화록 요지

    ◎“식량원조 제의 북한서 거절했다”/김 대통령/“불교문제 정부 성의있는 조처를”/이 대표 김영삼대통령과 이기택민주당대표의 28일 청와대회담에서 오간 대화내용을 주돈식청와대대변인의 발표와 회담후 이대표가 밝힌 것을 조합,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외교·안보◁ ▲김대통령=북한 무기의 90%이상이 구소련 또는 러시아제품이다.이번 러시아방문에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러시아가 전쟁에 개입토록 되어 있는 제도등에 대해 옐친 러시아대통령과 중점논의하겠다. 북한은 핵개발에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북한에 들어간 IAEA사찰단도 협상이 결렬돼 되돌아갔다.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연료봉이 8천개인데 그 가운데 반이상을 북한이 뽑아냈다.이에 대해 IAEA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미·북협상도 유동적이며 어떻게 미·북대화가 이뤄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다.북한은 최근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해 주민의 불만이 극도로 높다.우리의 안보도 중요한 시기에 처한 것이다.비공식적으로 우리가 보유한 저장미를 일부 보내주겠다고제의했으나 북한은 거부했다. 최근의 국제정세와 우리의 안보상황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으며 그 폭이 종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넓다.야당에게도 이런 변화와 우리의 안보상황·국제정세를 수시로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오늘 회담을 그래서 마련했다.앞으로 야당대표를 자주 만나 협의하겠다. ▲이대표=좋은 얘기다.이런 자리가 자주 마련돼야 한다.북한핵문제는 미·북 3단계회담을 지켜보면서 평화적 해결과 일괄타결방식이 바람직하다.비핵화선언수정은 핵투명성보장이후 하는 게 옳다.북한과 러시아의 방위조약을 폐기하려 노력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고 판단한다. 통일논의에 있어서 정부가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것은 좋지 않다.김대중이사장의 북한핵발언에 대한 정부의 비판은 통일논의보장을 침해한 것 아니냐.어떤 경우든 통일논의를 위축시키려는 의도는 버려야 한다. ▷여야관계◁ ▲김대통령=이제 우리도 소모적인 정쟁이 아니라 여야가 동반자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노사문제·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문제등을 논의하는 큰 정치,생산적인 정치를 해나가야 한다. ▲이대표=그 뜻에 동감한다.정부가 잘하면 도울 용의가 있다.그러나 지금처럼 개혁이 실종되는등 잘못할 때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시국인식과 현실진단을 정확히 해달라.특히 원로들과도 많은 대화를 갖는 게 좋겠다. ▷상무대국정조사◁ ▲이대표=상무대국정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대통령이 새로운 돌파구를 만드는 조치를 해달라.은행이나 검찰의 자료제출거부는 국회권능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대통령은 국회생활을 많이 한 만큼 이 점을 깊이 고려해주기 바란다.정부여당이 금융실명제긴급명령을 빙자해 국정조사를 계속 방해한다면 금융비리를 보호하는 역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법테두리에서 볼 때도 은행과 법원이 법사위 요구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는 관련법조항을 어긴 것이니 이를 검토해 국정조사에 차질이 없도록 해달라. ▲김대통령=대통령이 초법적인 조치를 할 수는 없다.그러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현재 국회가 하는 국정조사에 정부가 협조하도록 지시하겠다. ▷국가보안법개폐◁ ▲이대표=군사통치시대의 산물인 국가보안법은 개정되거나 폐기돼야 한다. ▲김대통령=여야간에 이 문제를 처리하는 방안으로 소위원회를 구성해놓고 있는만큼 여야의 간부와 법률가들 사이에서 충분히 논의,원만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좋겠다. 조계사폭력사태 ▲이대표=조계사폭력사태를 포함해 불교계문제에 대해 정부가 성의있는 조치를 해달라. ▲김대통령=내각에 대해 누군든지 폭력을 쓰는 자는 절대용인할 수 없다는 지시를 했으며 그러한 원칙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김대중씨 정치사찰 ▲이대표=이미 정계은퇴를 선언한 김이사장에 대한 정치사찰을 계속한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재발이 없도록 조치를 취해달라. ▲김대통령=상도동에 있을 때 부근에 사는 몇사람은 인사도 하지 않고 지냈다.뭘 하는 사람들인지 나도 알고 있었다.사찰의 문제점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청와대에 와서 주변의 안가 9채를 다 헐어버렸다.공작정치의 수법이 어떠한지 알고,그 피해를 수없이 당한 나로서는 절대 그런 사찰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김대통령=세계적인 흐름에서 동떨어져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 참가한 것이다.많은 국민이 그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우루과이라운드협정의 국회동의 때 협조해달라. ▲이대표=동의하지 않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비준에 절대반대하겠다.농촌대책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달라.양곡관리법도 농민편의위주로 개정해야 한다고 본다. ◎영수회담 여야 반응/“북핵등 현안대처 김대통령의지 천명”/민자/“이번회담 대성공… 원만관계 전기마련”/민주 민자·민주당은 28일 청와대영수회담의 결과에 대해 생산적인 여야협조관계를 이룩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민자당은 이날 영수회담이 북한핵등 외교·안보문제에 대한 야당의 초당적 협력을 구하고 상무대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등 국내정치현안을 성의껏 풀어가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밝힌 자리였다고 풀이. 백남치정치담당정조실장은 『이번 영수회담을 계기로 대외문제에 관한 국익차원의 여야공조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면서 『국정조사에 대해서도 법테두리안에서 정부차원의 최대한 협조를 약속한 만큼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 박범진대변인도 『모든 정치현안을 순리에 맞게 당당히 풀어가겠다는 통치권자의 의지가 천명된 만큼 정치공세차원의 여야대결보다 생산적인 여야협조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 강삼재기조실장은 『대통령이 국정조사에 대해 법테두리안의 최대한 협조를 약속한 것은 법해석을 둘러싼 야당과 해당기관 사이의 경직된 대립을 풀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고 해석.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결과에 대해 대체로 만족을 표시했으나 상무대사건 국정조사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신중한 자세. 이대표를 수행해 청와대를 방문하고 돌아온 박지원대변인은 『지난 3월에 있은 영수회담때와 달리 청와대측에서 이대표에 대한 의전에 상당한 신경을 쓴 것 같다』고 만족감을 표시. 박대변인은 『상무대사건 국정조사에 대해 김대통령이 내각에 협조를 지시하기로 합의했고 통일논의에 대해서도 자유를 보장한만큼 이번 영수회담은 대체로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 합의사항을 어떻게 준수하는지 예의주시하겠다』고 논평. 함께 이대표를 수행한 문희상대표비서실장은 『이번 회담은 대성공』이라면서 『앞으로 여야가 원만한 협조관계를 이뤄나갈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고 언급. 신기하원내총무는 『상무대사건 국정조사와 관련해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합의로 평가한다』면서 『반드시 상무대사건 정치자금의 의혹을 푸는 조사방안까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 한편 이대표는 회담을 마친 뒤 하오3시20분 마포당사로 돌아와 5층 회의실에서 소속의원과 당직자 1백여명에게 회담결과를 보고. 이대표는 『처음 김대통령은 상무대사건 국정조사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합의하라는 것이냐」고 난감해 했으나 거듭 합의를 촉구하자 결국 「법테두리안에서 내각이 최대한 협조하도록 지시하겠다」고 말했다』고 설명.
  • 암보다 무서운 것들/서지문(일요일 아침에)

    암을 정복하는 것이 멀지 않았다는 기쁜 소식이 들린다.캐나다 어느 대학의 연구소에서는 정상세포에는 없고 암세포에만 있는 효소를 발견했는데,이 효소의 작용을 억제하는 방법을 발견하기만 하면 암세포분열을 막을 가능성이 기대된다고 한다.또 미국 유타주의 어느 유전공학연구소에서는 암세포에는 세포의 비정상성장을 차단하는 유전인자의 사본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고,그래서 이 결여를 시정할수 있게되면 암의 진행을 막을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AIDS예방약 개발가능성 발견등 최근에 의학계의 낭보가 적지 않았다.이런 소식은 암이나 AIDS에 걸릴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기쁘고 감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끈기가 드디어 수많은 사람을 죽음과 고통에서 구하게 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켜주고 인류의 내일에 대해 희망을 갖게 한다. 바로 얼마전에는 암의 정복보다도 더 오래되고 중요한 인류의 숙제를 푼 사건이 있었다.3백50년의 백인통치를 종식시킨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총선이그것이다.우리의 일제강점기의 열배나 되는 세월을 침략자의 지배를 받으며 인간이하의 생존을 강요받아왔던 남아공의 흑인들이 오랜 필사적인 투쟁 끝에 드디어 시민권을 얻고 민주적인 투표로 자신들의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 기적은 단순한 정의와 민중의 힘의 승리이상의 인간개가이다.흑인들의 목숨을 건 긴 투쟁이 세계의 안목을 남아공에 집중시키고 백인들의 안전을 위협해서 백인통치종식의 토대를 마련했다.그러나 총선의 성공은 흑인들이 백인들에 대한 처절한 원한에도 불구하고 수백년간 그곳에서 삶을 이룩한 백인들도 남아공의 국민이라고 인정을 했고,또 백인을 중오하는 이상으로 서로를 증오하는 흑인종족들이 그들사이의 적대감을 접어두고 민주국가수립에 함께 참여하기로 양보와 수용을 했기에 가능했다. 인류의 역사를 보고 우리의 주위를 보면 인간에 대해서 절망하고 정의의 실현가능성을 불신하게 될때가 많다.금세기에 들어서만도 양차대전과 수차례의 인종말살,대 숙청과 탄압,탈 식민지 투쟁과 영토분쟁등 수많은 인류사적 범죄와 살상이 있었다.그런가하면 평화시의 민주사회에도 갖가지 범죄와 비리는 그치지 않는다.그래서 현대에서는 더 나은 미래를 믿는 사람은 감수성이나 통찰력이 부족한 사람같이 보이게 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건설적인 노력이나 성실한 삶의 자세 같은 것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팽배하게 되었다.물론 이런 정신적 풍토를 틈타 정치적 냉소주의와 허무적 실존주의를 표방하며 이기적,반사회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2중인격자들도 무더기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전쟁과 인종말살,독재,그리고 질병과 재해때문에 거듭 퇴행을 했으면서도 수천년간 인류는 꾸준히 발전을 해서 20세기 말에는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누리고 사는 사람의 비율이 부족국가시대 보다 몇십배 증가했다.그러니까 역사적 비관주의는 오히려 근시안적 사고라고 할수 있다. 우리민족도 끊임없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면서도 생존을 했고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했다.환난이 많았던 만큼 탁월한 지도자,뛰어난 인물도 많았었고 이름없는 영웅도 많이 있었다.그런데 이제 UR협상으로 상품시장 뿐아니라 서비스시장까지 개방되면 우리나라는 또한번 존립자체에 위협을 받을수 밖에 없다. 흔히들 우리나라는 하드웨어는 제대로 되어있지만 소프트웨어는 가망이 없다는 말들을 한다.즉 기계나 제도나 장치가 갖추어져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효율적으로 운용할 두뇌와 정성과 치밀함이 없다는 말이다. 역사·문화사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설명이 될수 있겠지만 우리 민족은 세심하지 못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 면밀하게 다각적으로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앞날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하는 것이 사실이다.독재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고 항거를 할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이웃,공동사회의 안전을 위해 간단한 안전점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독한 역설인데 그것이 우리의 실상이다. 이제 반독재투쟁을 벌일때 보다도 더 큰 용기와 각오로 우리 국민성의 혁신을 이룩해야 한다.타성과 적당주의와 부주의와 요행심리는 암보다도 더 치명적인 적이다.정체도 모르는 암을 잡아내어 굴복을 시키는 사람도 있는데,우리의 각오가 철저하다면 정체를 잘 아는 우리 속의 장애를 제거하지 못하겠는가. 한 세대의 과오가 열세대의 불행을 몰아 온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으로 배웠다.우리는 열세대의 감사와 존경을 받는 세대가 되어야겠다.
  • 아프간반군 스팅어미사일/북·이란등으로 넘어가

    ◎“미 회수작전 실효 못거둬”/WP지 【워싱턴 AP 연합】 미중앙정보국(CIA)은 지난 8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반군에게 제공한 스팅어 미사일을 회수하기 위한 비밀 작전을 벌이고 있으나 이들 미사일중 일부가 북한 등 몇몇 국가에 이미 넘어가는 등 막대한 자금만 낭비한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지가 7일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견착식 휴대용 미사일인 스팅어 미사일이 테러조직의 손에 들어갈 경우 민항기나 군용기가 테러를 당할 가능성을 우려해 CIA가 필사적인 회수작전을 펴고 있으나 미사일중 일부는 이미 이란과 카타르,북한 등으로 넘어갔으며 심지어는 타지크 반군 지도자들조차 아프간에서 스팅어 미사일을 구매했음을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 “평양에 전쟁징후 없었다”/미 뉴스위크기자 그레이엄목사 동행기

    ◎대체로 평온… 연료난에 공장 가동중단/북한주민 “남한보다 미 공격 더 두렵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미시사주간지 뉴스 위크의 토니 클리프턴 기자는 북한주민들이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전쟁위험의 징후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뉴스위크 최신호(14일자)에 실린 클리프턴 기자의 방북기는 다음과 같다(요약).…최근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평양방문과 때를 같이해 관광비자로 북한을 1주일간 방문했다.부분적이지만 내가 본 북한은 나의 선입견과는 거리가 멀었다.북한주민은 심각한 식량난에 허덕이지도 않았고 핵개발을 꿈꾸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도 아니었다. 물론 외부에서 생각했던것 가운데 일부는 사실이었다.반쯤 짓다 만 건물 위에는 크레인이 정지해 있었고 굴뚝에는 연기가 나지 않았으며 도시들은 춥고 어두웠고 모든 사람이 걸어다닐 뿐 고속도로는 텅비어 있었다.공장과 발전소에 필요한 석유와 부속품들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내가 방문한 여러 시골마을에서는 대부분의 집에서 닭을 기르고 있었으며 돼지와 거위,염소가 있는 집도 목격할 수 있었다. 도시지역에서는 상점에서 기본 생필품을 구할수 있었으며 식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김일성과 오찬을 함께 한 그레이엄 목사는 그가 건강해보였다고 말했다.공산권지도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을 정도로 권력을 유지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김일성이 핵사찰을 놓고 왜 그다지도 위험한 게임을 벌이는지에 대해선 정통한 견해가 존재하지 않는다.일부 외교관들과 외국 방문객들은 김을 불리한 카드를 쥔 포커플레이어에 비유한다.핵위협 외에는 다른 카드가 없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북한이 필사적으로 필요로 하는 국제무역과 투자를 얻어내려 한다는 얘기다. 북한군은 병력은 많지만 장비는 노후화 됐다.주력 탱크인 구식 러시아제 T­62는 걸프전에서 미군에 의해 무기력하게 폭파당하는 것을 직접 봤다. 이번 방북기간중 본 군대차량은 트럭 10대와 지프 5대였으며 무장을 하지 않았다.이들 차량 가운데 절반은 병사를 태운채 길가에 정지해 있었다.북한에선 고급관리들도 전용차를굴리지 못하고 주요 공장조차 가동이 중단될 정도로 연료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북한군이 남한을 침공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수백만갤런의 연료와 수만t의 식품및 탄약,그리고 부품이 가득찬 창고가 필요한데 이들 보급품의 조달이 가능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평양의 외국인들은 북한이 전쟁동원령을 내릴 것으로는 결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그들이 목격한 것은 핵개발과 관련한 미국의 강력한 경고에 대한 반응으로 작년에 수백명의 청년들이 미국의 공격에 대비해 경찰보조 훈련을 하는등 두차례 대응 움직임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북한사람들이 의식하고 있는 것은 남한에 대한 침공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의 공격인 것 같았다.한 북한주민은 『미국인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공격이 무섭다.평양은 한국으로부터 1백60㎞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북한을 떠나면서 전쟁을 일으킬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외국투자를 유치하고 서방의 경제전문가들과 뉴질랜드의 한 관광전문가까지 초청하는등 오히려 다소 느슨한 인상을 받았다.
  • 파출소 경관이 잡은 떼강도/박찬구 사회부기자(현장)

    ◎비번날 골라 3일잠복끝에 수갑 채워 『좁은 골목길에서 20여분동안 차량 추격전을 벌이면서 강도들을 놓치면 끝이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창신1파출소 소속 김인호경장(40·가명)은 1일 국민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한 떼강도를 검거하느라 지난 닷새동안 겹친 긴장과 피로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듯 목소리마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지난달 27일 평소 알고 지내던 한시민으로부터 사무실 강도들과 인상착의가 비슷한 청년들이 성남시 금광동의 현대다방을 아지트로 삼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김경장은 하루 20시간씩의 방범근무를 해야하는 짝수날짜를 피해 비번인 지난27일과 29일 하오 두차례에 걸쳐 다방주변에서 잠복근무를 하면서 사무실강도단 4명이 거의 매일 이 다방에 드나든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김경장은 비번인 31일을 범인검거를 위한 D데이로 잡고 이날 하오5시30분쯤 수갑과 가스총등으로 무장하고 파출소부소장 조용필경사(54)와 신호섭경장(35·가명)등과 함께 자신의 엑셀승용차를 몰고 이 다방앞 노상주차장에 도착했다. 『하오7시쯤 일당중 1명은 쏘나타를 타고 어디론가 가버렸고 40분쯤뒤 나머지 3명이 프린스에 올라탔습니다』 대낮에 사무실을 털 정도로 노련하고 대담한 범인들은 곧 자신들이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폭6m쯤의 좁은 길을 시속40㎞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핸들을 꽉 붙잡고 불과 1m간격으로 이들을 추격할때는 긴장감으로 입안이 바싹바싹 말라왔고 10평남짓의 방 두칸짜리 연립주택에서 고생만시킨 처와 두아들의 얼굴이 눈앞에서 자꾸 아른거렸습니다』 하오8시쯤 2㎞남짓 골목길을 필사적으로 달리던 범인들의 차가 왕복2차선도로를 나서자 김경장은 중앙선을 넘어 대각선방향으로 프린스를 가로 막았다. 순간 김경장은 스프링처럼 차에서 내려 범인들이 반항할 틈도 주지않고 주범 박흥순씨(29)등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경찰의 위신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 포항공대 합격생 유치경쟁 “참패”

    ◎복수지원 120명 등록포기,서울대행/교육여건 앞서지만 이미지 실추 우려 국내 최고임을 자부하던 포항공대가 올 입시에서 실시된 복수지원제 때문에 울상이 되어 있다.이번 입시 합격생들이 대거 등록을 포기했기 때문이다.그것도 다른 학교가 아닌,평소 경쟁상대로 여겨오던 서울 공대에 합격생들을 빼앗겨 체면이 말이 아닌 상태다. 이번 입시에서 포항공대와 서울대에 모두 합격한 1백61명가운데 75%에 해당하는 1백20명이 포항공대 등록을 포기하고 서울대를 택했다. 포항공대는 ▲교수확보율 ▲실험·실습기구 확보율 ▲도서확보율등 대학교육여건이 서울대 공과대학 수준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포항공대를 공과대학 정상에 올려 놓겠다는 학교재단(포항제철)의 필사적인 지원에 힘입어 개교 7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우수학생들이 크게 몰려들었다.같은 시험문제로 입시를 치렀을 때 포항공대의 합격선은 서울대 공과대학을 웃돌았다.바로 지난해 입시까지만 해도 이같은 고합격선과 함께 우수한 교육여건,완벽한 장학제도등을대대적으로 홍보하며 명실공히 공과대학의 최고봉임을 은근히 자랑해온 것도 사실이다. 복수지원제가 도입된 올 입시에서 일류대학들이 모두 망설임없이 피해간 서울대와의 우수학생 유치경쟁에 포항공대가 도전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자신감에서 비롯됐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솔직히 포항공대 교수진들은 차제에 우수학생 유치전에서 서울대를 압도함으로써 포항공대가 공과대학의 정상임을 대내외에 확인시켜주려는 의도도 베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포항공대 염영일 교무처장의 지적대로 이번 「참패」가 교육여건이나 우수대학 서열매김의 잣대가 될 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문제는 교육환경·연구실적등 교육여건이나 실질적인 학문탐구의 수준과는 별도로 우선 명문대학에 진학하고 보자는 식의 「일류병」이다.이점이 바로 이번 포항공대의 참패원인이요 우리 교육현장의 고질병이기도 하다. 포항공대는 내년에도 서울대와의 일대 회전을 치르겠다고 벼르고 있다.현재의 학생수준이 결코 서울대에 뒤지지 않기 때문에 2∼3년이면 서울대 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포항공대측은 벼르고 있지만 일류병이 바로 잡히기 전까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 양수겸장과 전광석화(이동화칼럼)

    행정의 질을 높이기 위한 개혁차원의 문제제기와 구상들이 최근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앞으로의 진전이 주목된다. 대표적으로 지난연말 우루과이라운드(UR)강정에 따른 국제경쟁력 강화문제,올들어 낙동강 수돗물 파문속에 나온 깨끗한 물 관리문제가 제기됐다.그 가운데 막대한 투자재원이 필요한 사안은 제쳐놓고 기업등에 대한 규제의 대폭완화라든가 수돗물 관리체계의 일원화 등은 개선이 아닌 행정개혁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과제들이다. 또 내년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최근 여야간에 활발히 오가고 있는 지방행정구역 통합개편 논의 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 하겠다.지난해 정부기구개편 과정이후 단속적으로 제기되었던 경제기획원의 기구축소나 존폐문제라든가 서해페리참사직후 나왔던 해양관할부서의 일원화 등도 행정개혁적 측면의 접근이었다. 이 문제들이 어떤 결과에 도달할지는 아직 예측할 수 없지만 그 성패에는 추진하는 사람이나 세력의 의지,효율적 방안의 연구,장애요소와의 투쟁,그리고 국민적 지원을 얼마만큼 끌어낼수 있는지 여부등 복합적 요소가 작용할 것이다. 이런 요소들에 앞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고 나아가 문제제기부터 되어야 하는 것이 순서이다.최근 표출된 행정분야의 여러 개혁과제들은 고조된 개혁분위기에 무작정 편승한 측면도 적지 않겠지만 「시작이 반」이란 의미에서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이같이 다양한 문제제기 현상은 올해 제도개혁이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문민정부 출범후 지난해의 개혁이 주로 사정에 중점을 둔 인적개혁의 인상이 짙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제 개혁이 본궤도에 진입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특히 행정제도의 개혁은 군림하던 행정에서 서비스의 행정으로 바꿔보겠다는 방향전환의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이러한 개혁의 포인트는 비용을 줄이면서 효과를 끌어올리는 것이다.얼핏 생각하면 모순된 말이지만 행정 구석구석에 모순과 비합리가 도사리고 있기에 「양수겸장」이 가능한 것이고 그것이 행정개혁의 묘미라 할만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어떤 개혁이든 그렇지만 행정개혁도 기득권이라는 장애물과 힘든 씨름을 해야하기 때문이다.이 기득권은 관료편의주의와 부처이기주의로 무장되어 있기에 더더욱 부수기가 어렵다. 지난 88년 노태우대통령의 당선 직후 「작은 정부」를 내걸고 민관혼성의 행정개혁위원회까지 만들어 1년간의 심의끝에 나온 정부기구축소안이 불이익을 당할 해당부처의 이기적 반발에 부딪쳐 무산된 것이 그 예이다.아니,「작은 정부」는 커녕 오히려 기구가 늘어나기까지 했다.그때 해당부처의 로비는 그야말로 필사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또 하나의 사례로 그 당시 행정개혁의 문제가 떠올랐을때 어느 여당국회의원이 국회본회의 대정부질문을 통해 검찰·안기부·감사원등의 직급문제를 제기하려고 시도했다.이들 부서의 국·과장등 모든 직급이 타부서에 비해 높으니 힘도 세고 직급도 높아서야 되겠느냐는 지적을 하려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전에 질문원고를 배포하자 소속정당의 간부는 물론 친구·친척등 모든 채널을 통해 압력이 들어왔고 그는 결국 질문을 우회하고 말았고 이것이 두고두고 국회주변에서 화제로 남았었다.그만치 기득권 깨기가 어렵다는 증거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문민정부의 발족과 함께 체육부가 문화부에,동력자원부가 상공부에 흡수 통합되어 제도개혁의 첫 작품으로 평가받았다.이같은 가시적 성과를 조기에 거둘 수 있었던 것은 88∼89년에 행정위를 통한 연구검토결과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89년 당시에도 이 연구안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있었으나 개혁의 기운이 기득권을 뚫을 수 없을 정도로 약했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개혁마인드가 강력한 새정부가 들어서니 이를 단번에 이룰 수 있었다.다만 개혁의지가 강하더라도 그런 문제에 대한 연구검토가 없어 뒤늦게 이를 시작했다면 전광석화같이 기득권의 벽을 뚫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금융실명제도 이미 사전준비와 연구가 있었고 여기에 가장 중요한 개혁실천의지가 있었기에 예상보다 조기실시가 가능했으리라. 최근에 나온 「물 대책」을 놓고 일부에서는 「페놀사고대책」의 재판이라지만 그때 이미 물문제가 심각했으나 실천의지가 없었고 지금은 앞선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멍에임에도 불구하고 개혁적 실천의지가 있기에 기대해 볼만한 것이다. 이런점에서 볼때 개혁,특히 행정개혁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제제기와 연구가 계속되는 분위기를 더욱 고양시킬 필요가 있다.행정부는 행정부대로,국회는 국회대로 또 민간은 민간대로 보다 다양하게,보다 심도있게 개혁과제가 연구·검토되는 분위기 말이다.
  • 도읍 공주서 부여로(백제를 다시본다:1)

    ◎부여 금동용봉향로가 말하는 사비시대/풍요로운 곡창서 「사비문화」 무르익다 백제는 곧잘 잃어버린 왕국으로 간주되어왔다.그 까닭은 정사성격의 사료부족과 또 승자에 의한 문화유산파괴에서도 찾아진다.이러한 상황속에서 지난 연말 발굴된 부여 능산리 출토유물 김동용봉봉래산향로는 백제사 연구의 한줄기 빛으로 떠올랐다.서울신문은 이를 계기로 전문학자들이 백제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장기기획물 「백제를 다시본다」를 주1회씩 연재키로 했다.금동향로가 제시하는 자료를 근거로 백제사 복원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 시리즈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넓은평야 끼고 있어 “3국중 가장 자족”/도성체제 완벽… 5부 구획에 2중 방어/국방 한창 뻗어나갈때 나·당 연합군 침공으로 비명에 저버려 일찍이 조선후기의 대실학자인 정채산은 국가의 운명이 수도의 입지조건에 의해서 크게 좌우된다고 보았다.그런만큼 반드시 요충지대를 점거하여 위압의 형세를 이루어야만 일단 위기가 닥치더라도 능히 이를 극복하여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의하면 백제의 첫 도읍지이던 오늘날의 서울은 문자 그대로 김성탕지와 같은 곳이라서 건국이래 4백93년간이나 국세를 유지했으나,한번 웅진(공주)으로 옮겼다가 다시 사비(부여)로 옮긴 뒤에는 1백85년만에 망했다고 한다.사비시대는 웅진시대 63년을 제외하면 겨우 1백22년에 지나지 않는다. ○각부는 또 5권으로 큰 들녘의 한복판에 위치한 사비도성은 확실히 한성(서울)과 같은 천연적인 요새는 아니다.그렇다고 백제의 지배층이 도성의 방어체제를 게을리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지난 십수년간 백제문화권개발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된 결과 우리들은 사비시대의 도성계획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사비도성은 기본적으로 부소산성을 배후에 두고 외곽의 요해지에 부분적으로 나성을 쌓아 방어체제를 이중으로 견고하게 다졌다. 그런 다음 왕궁은 부소산성밖 남쪽에 세웠다.이는 웅진시대 왕궁이 공산성 내의 광장에 구축된 것과는 크게 다른 점이다.옛 문헌에 의하면 사비도성의 시가지는 크게 5부로 구획되고 또한 각부는 5권으로 나누어지는등 실로정연한 체제를 갖추었다고 한다.한마디로 사비도성은 백제의 역사에서 볼 때 가장 잘 디자인된 수도였다.한국고대의 도성제 발달사상 거의 완성된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백제가 공주에서 서남쪽으로 30㎞쯤 떨어진 부여로 천도한 것은 일세의 영주인 성왕 16년(서기538년)봄의 일이었다.실로 국가재흥을 목적으로 한 웅대한 경륜에서 나온 결단이었다.백제는 이보다 앞서 서기 475년 서울로부터 공주로 천도했는데,이는 고구려 군대에 의해서 수도가 함락되고 개로왕이 피살되는 등 급박한 국가위기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그러나 부여천도는 이와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공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방어에는 유리한 점이 있으나 그자체는 고립된 곳이고 수도가 들어시기에는 너무나 협소했다.이 야영도시를 벗어나 평야지대로 진출하여 본격적인 수도를 건설하는 것이 공주시대 역대 군주들의 꿈이었다.마치 고구려가 압록강가의 산악지대인 집안으로부터 평양으로 천도하려 한 것과 같은 취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동성왕때부터 부여의 중요성에 주목한 백제의 최고지배층은 이곳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할 요량으로 사냥을 겸하여 자주 이곳에 들러 지세를 살피는등 전반적인 입지조건을 예의검토해왔다.금강가에 위치하면서 산으로 둘러싸인 부여지방은 방어에도 적합했을 뿐 아니라 더욱이 넓은 평야를 끼고 있어 경제적으로도 풍요한 곳으로 비쳤다. 그리고 지리상 호남평야의 경영이나 가야지방으로의 진출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백제조정은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유역의 땅을 이 기름진 곡창지대를 적극개발함으로써 보상하려고 했다.요컨대 부여천도는 장기간에 걸친 준비작업 끝에 마침내 단행된 것이었다. ○결실못본 화평세계 이처럼 사비시대는 개막되었다.당시는 삼국간의 항쟁이 극심한 전란기였다.영토확장을 목표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삼국간의 국경선은 수시로 뒤바뀌었다.이같은 살벌한 시대풍조 속에서도 백제는 삼국중 가장 자족함을 알며 인을 실현코자 노력했다.한성시대인 근소고왕때 장군 막고해가 승승장구 고구려군대를 추격하던중 수곡성(황해도 신천)북쪽에 이르렀을 때 스스로회군을 결행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그런데 사비시대 법왕은 서기 599년 즉위하자마자 살생을 금하는 칙령을 내린다.이에따라 민가에서 기르던 매를 놓아주도록 했으며 사냥도구와 그물마저 태워버리게 했다.이는 같은 시대 신라와는 크게 대조되는 현상이다.즉 신라왕의 최고고문이었던 원광법사는 바로 이때 「살생유택」의 덕목이 들어 있는 세속5계를 제정하여 비록 조건을 달았지만 살생을 인정했던 것이다. 백제가 신라에 패망한 궁극적인 원인중의 하나가 바로 이같은 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어쨌든 백제의 지배층이 국가의 위기상황 아래서도 인을 구현하려는 열의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주목되는 사실이다. 사비시대 화평의 세계를 실현하려던 백제인의 웅지는 끝내 결실을 하지 못했다.무왕의 야심에 찬 팽창정책과 그 아들 의자왕의 거듭된 실정은 신라를 자극했다.그래서 신라로하여금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아예 지도상에서 말살하려는 비밀외교에 열중하게 만들었다.신라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당과의 군사동맹이 체결되었고 양국 연합군은사전계획에 따라 서기 660년 전격적으로 백제에 대한 침공을 개시하였다.마침내 사비도성은 함락되고 백제는 그 찬란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수도의 지세를 중요시하는 정다산은 백제의 멸망원인이 사비도성의 집중성 결여에 있는 것인 양 설명하고 있다.그러나 앞에서 본 것처럼 그 방위체제는 결코 허술한 것이 아니었다. ○우아·격조 높은 문화 한 시대의 문화는 정치를 비추는 거울이다.흔히 이야기되고 있듯이 사비시대야말로 백제문화가 그 절정에 도달한 황금기였다.얼마전에 별세한 삼불 김원용선생은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고구려의 미술은 민족이나 국가가 무기력해질 때 생기는 퇴폐나 타락의 양식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소멸되어버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것은 백제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사비시대의 백제문화 역시 쇠퇴·타락의 징후는커녕 완숙의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고 있다.결국 백제는 쇠퇴기에 접어든 끝에 멸망된 것이 아니라 한창 국력이 뻗어나갈 즈음 칼에 등을 찔려 비명에 간 것임을 알 수 있다. 해방 직후일제가 이른바 부여신궁을 지을 목적으로 거두어들인 석재더미 속에서 백제말기 대좌평이었던 사택지적의 당탑 건립기념비석이 일부 파괴된 채로 발견된 일이 있다. 이로써 사비시대 백제문화의 우아하고도 격조높은 기품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요 백제말기 정치사를 해명하는 데 유력한 단서를 얻게 되었다. 지난해 연말 부여 능산리 벽화고분 근처의 한 건물지에서 새로운 유물들이 출토되었다.여기서 나온 금동제 향로를 비롯한 사비시대 후기의 유물들을 통해서 우리들은 완숙기에 접어든 백제문물의 찬란함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되었다.또 덧붙여 말하거니와 신비스러운 빛깔로 떠오른 새로운 문물 금동용봉봉래산향로를 대하면서 백제를 뒤돌아보고 재음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비시대의 문화상/출토유물 통해 「선진문화」 확인/능산리·궁남지유적발굴로 실체 드러나 사비시대 백제(AD538∼660년)의 문화상은 고분과 절터·성곽유적 등에서 출토된 매장문화재를 통해 드러난다.신라와의 각축에서 패망의 길을 걸은 백제는 외형의 문화유산을 철저히 파괴당했기 때문에 땅속에 묻힌 유물만이 겨우 백제의 잔영을 남기는 비운의 역사를 겪었다. 이 시대의 백제고분은 충남 부여군전역에 분포되어 있다.마지막 도읍지 부여를 중심으로 능산리등 13개 고분군이 대표유적으로 꼽힌다.거의가 돌방무덤(석실분)인 고분유적은 껴묻거리(부장품)라는 유물이 많이 매장되었다는 점에서 고고학이나 역사연구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사비시대 고분 가운데 고고학적으로 처음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15년 능산리 고분군 발굴이후부터다.1917년까지 모두 6기가 발굴되었다. 능산리 고분에서 사신도벽화가 있는 1호분이 특히 유명하다.널길(선도)이 달린 굴식돌널무덤(횡혈식석실분)이 주류를 이루는 능산리 고분군에서는 금동투조식금구 등이 발굴되었다.그리고 일찍부터 왕릉으로 전해왔다.이번에 햇빛을 본 금동용봉봉래산향로도 바로 능산리 고분군 이웃에서 출토되었고,마주보고 있는 나성의 일부도 발굴되어 사비도성 방어요새가 밝혀진바 있다. 최근에는 금동향로가 출토된 능산리지역 말고도 궁남지유적 3차발굴사업이 진행되어 벼농사유적인 논유구와 함께 목각의 새와 수레바퀴 등을 출토하는 수확을 거두었다.이밖에 정림사터를 비롯,부소산성 도성내의 도시계획 유구 등이 발굴되어 사비시대 백제의 선진문화상을 속속 보여주었다.특히 사비시대 백제문화권을 전북 익산지역으로까지 확대,백제 최대의 가람 미륵사터를 발굴함으로써 불교문화의 실상을 가늠하게 되었다. 그리고 웅진시대(AD475∼538년) 유적으로는 세기적 발굴이라 할 수 있는 무령왕릉을 비롯,공산성과 임류각 발굴도 고고학 성과로 치부된다.이와 더불어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발굴된 한성시대(AD18∼475년)의 도성으로 추정되는 서울 몽촌토성과 백제 초기의 건국집단의 무덤으로 보이는 서울 석촌동 돌무지무덤(적석총)도 백제연구 고고학자료가 되고 있다.
  • 개혁의 지속과 변화의 미래(사설)

    대통령이 미래지향의 개혁을 언급할 때마다 지레짐작으로 「국면전환」이라는 해석이 뒤따르고 그에대한 부연설명이 가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김영삼대통령이 지난 8일 신경제추진회의에서 국제화와 미래지향에 필요한 개혁을 역설한 것을 두고 일부언론은 물론 여당인 민자당내에서도 사정개혁의 국면전환이다,원래의 기조에 변함이 없다는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그런가 하면 대통령이 「기득권층」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썼다고 해서 예민한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이런 현상이 대통령의 메시지를 가능하면 올바로 이해하려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싶다.그러나 이런 과정이 결과적으로 개혁의 방향을 오도하거나 혼선을 일으키는 것은 개혁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지난 9개월에 가까운 개혁과정을 통해 시종일관 지속적인 개혁,체제정비를 통한 총체적 국가경쟁력강화라는 개혁의 원칙과 방향을 접해온 국민대다수의 입장에서 볼때 문민정부의 개혁론이 그렇게 난해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그런데도때마다 다른 뜻풀이가 나오는 것은 수용자의 자세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예컨대 개혁은 통치의 명분일뿐 언젠가는 권력측의 필요에 의해서도 일과성으로 그치게 되고 말 것이라는 과거식 권력행태를 생각할수 있다.그러나 이런 시각은 정경유착의 단절선언과 제도화노력으로 빗나가고 말았다.다음으로는 개혁에 따르는 고통을 들수 있다.금융실명제실시에 따라 나돌던 김융대란설이 대표적인 예라 할만하다.그역시 빗나갔다.개혁의 명분에는 드러내놓고 반대할 수 없고 개혁을 그만하자고 주장할수도 없으므로 개혁의 부작용을 과장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보통사람들의 시선도 있다. 역사상 개혁에는 낡은 질서에서 이득을 얻던 사람들의 필사적인 저항과 반발이 있었다.이들은 개혁자를 헐뜯을 틈만 생기면 그때그때 교묘한 논리와 선동으로 대중심리를 장악하려 한다.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것이 이런 까닭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같은 교과서적 역학관계의 도식을 갖고 오늘의 현실을 대결적구도로 보려는 것이 아니다.그럴 징후가 있다고 느끼지도 않는다.다만 오늘의 개혁은 정권적차원이 아니라 국민적과제로 파악되어야 하며 사회지도층일수록 함께 하는 개혁의 도수관으로서 역할이 그만큼 무겁다는 것이다.현실의 불만을 개혁탓으로 왜곡하는 심리는 경계해야한다. 「미래」를 말하면 부패척결은 이제그만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선 안된다.요컨대 개혁은 지속되는 것이고 미래는 변화된 것이어야 한다.그리고 지금까지 이룬 개혁을 지키며 미래로 나가기위한 길은 이러한 의식의 전환을 통한 자기혁신 뿐인 것이다.
  • 싱가포르:상(세계의 개혁현장:28)

    ◎“밖으로 가자” 인니·말연진출 급증/작년·올 1백50사 현지공장 싱가포르 좁은 땅에서 차고 넘치는 건 다국적기업(MNC)들의 간판이다.거기에 영어를 일상적인 공용어로 사용하는 주위에 휩쓸리다 보면 자연 세계화,국제화와 연관된 「글로벌」(「전지구적인」)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그러나 요새 싱가포르 언론이나 지도층 인사 등이 가장 빈번하게 입에 올리는 말은 이와는 영 다른 방향의 것이다.현재 싱가포르 최고의 캐치프레이즈는 처음 듣는 한국인에겐 「지역·지방화」란 의미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 엉뚱한 구절(고 리저널·Go Regional)이다. 선택적인 경제발전 방식이 아닌,국가생존의 전략으로서 국제화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성공했던 싱가포르가 이제 정반대 길을 가겠다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시국가로서 중앙과 지방의 구별이 있을 수 없는 싱가포르의 「리저널」이란 용어는 인근의 해외지역을 지칭한다.그래서 이 슬로건은 기존 노선의 연장선상에 놓여 새로울 것 하나없이 괜한 말장난으로 비칠 수 있다.그러나 같은 노선이지만 「이제 가까운 데라도 해외로 나가자」는 싱가포르의 새 전략은 이 나라 기존의 국제화·세계화와는 방향이 분명 다른 것이다. 독립 이전 자치령시절부터 채택,30년 넘게 무르익어온 싱가포르의 국제화는 「해외자본 끌어들이기」의 외곬 길이었고 극대화였다.외국인이 기업의 1백% 소유권을 향유하고,어느 나라에서든 근로자를 데려올 수 있으며,원료·자재·생산품의 수출입시 일절 세금을 물지 않으며,수익의 과실송금이 전적으로 보장된다.제 물을 만난듯 활개치는 다국적기업이 싱가포르의 이 내향일변도 세계화를 웅변한다. 이런 싱가포르에서는 경제의 활력이 막바로 짚여지는 제조업이나 서비스부문의 투자내역을 공개할 때 다국적기업을 통한 외국투자가 사전 설명없이 무조건 앞자리를 차지하고 내국자본의 투자는 맨뒤에 조그맣게 첨가된다.92년 싱가포르 제조업의 총 투자액 25억달러 가운데 다국적기업분이 80%였다.인건비나 건물임대 등 4억달러에 달하는 서비스부문의 사업경비 투자도 외국분이 82%,국내분을 단숨에 압도해버린다. ◎한단계 높은 글로벌화의 새전략/중국에 1백억불 산업기지 추진 여기서 문제가 제기된다.소득과 더불어 인건비가 오를 수 밖에 없는데 싱가포르의 평균임금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 중국 등 후발개도국에 비해 최소 3배,많게는 10배 가량 높다.싱가포르 국민소득이 뉴질랜드나 유럽의 스페인보다 많은 1만5천달러라고 자랑만 할 계제가 아닌 것이다.한푼이라도 싸게 먹히는 곳을 찾아다니는 다국적기업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싱가포르에 남을 리는 만무할 터. 이같은 상식적인 우려가 금방 현실로 나타날만큼 싱가포르의 국제화 기반이 무른 건 분명 아니다.그럼에도 싱가포르는 「고 리저널」이라는 신용어를 앞세워 변화의 기틀을 착실히 짜아가고 있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싱가포르는 국민소득,인건비 상승과 병행해 다국적기업의 투자도 늘어났다』고 이곳 경제개발청의 채특금 국제사업개발 부국장은 말한다.실제 제조업분야에 국한시켜 보더라도 싱가포르에 대한 외국투자는 91년 19%,92년 21%라는 증가율을 기록했으며 올 상반기에만 15억달러의 신규투자가 유치돼 연 3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92년말 현재 제조업의 총외국투자액은 2백80억달러,7년만에 갑절로 뛰었다. 또 92년 제조업에 유치된 외국투자의 근로자 1인당 부가가치 산출액은 15만달러로 추산돼 기왕의 제조업전체 평균치를 3.5배나 웃돈다.그만큼 싱가포르에는 다국적기업의 계속적인 투자를 유인하는 고부가가치의 기술집약 하이테크산업이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다.여기에다 「평균시간당 임금 3.2달러로 12달러의 생산량을 올려 생산성 세계 최고」라고 평가받은 싱가포르 근로자의 질을 묶어보자. 『이곳에 진출한 9백여개의 제조업체를 비롯한 3천개의 해외기업이 싱가포르를 웬만해선 제발로 뜨지 않을 것』이라고 경제개발청의 채부국장은 장담한다.이처럼 해외투자 유치에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자신감을 갖고있는 싱가포르의 「고 리저널」은 그러므로 용어상으론 격이 떨어지나 실제는 한단계 더 높아진 글로벌화 전략을 지칭한다. 싱가포르 국영·민간기업의 해외투자는 지난 91년까지 11억달러에 그쳐 국내유치 해외투자의 5%수준이었으나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역외진출이 증가하고 있다.북쪽 말레이시아령 조호르섬과 남쪽 인도네시아의 바탐·빈탄 섬에 1백50여개의 제조업체가 제2공장건설 등으로 진출했다.셈바왕그룹은 인도네시아 카리문섬에 10년동안 7억달러를 투자,중공업단지로 개발하는 사업에 착수했으며 싱가포르가 중국 소주에 1백억달러 이상의 투자비를 들여 초대형 산업기지를 신설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올 여름부터 꾸준히 나돈다. 고촉통(오작동)싱가포르총리도 『국가경제 영역을 확장시키는 「고 리저널」이야말로 중계무역항,다국적기업 기지에 이은 싱가포르의 활로』임을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현재의 싱가포르에서 다국적기업의 간판을 쉽게 볼수 있듯 동남아나 중국에서 다국적·국제화된 싱가포르기업들을 흔하게 볼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 뒤엉킨 사체… “목불인견”/구조대원이 말하는 선실 상황

    ◎출입구에 몰려… 탈출 몸부림 흔적 역력/“칠흑같은 수중”… 손으로 더듬어 확인 마치 괴물처럼 펄 속에 드러누운 서해훼리호의 선실 내부는 사체들로 뒤엉켜 있어 침몰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말해주기에 충분했다. 1백여구의 사체가 갇혀 있는 선실의 처절한 모습이 12일 본격적인 인양작업을 벌이고 있는 해군 구조대원들의 입을 통해 생생히 전달되고 있다. 이틀째 물속을 드나들며 사체를 건져올리는 해군의 정예 해난구조대원(SSU)과 수중폭파대원(UDT) 70여명은 선실에서 사체를 건져올리며 몸서리쳤다. 구조대원들이 작업을 벌이는 곳은 수심 15m로 햇빛이 전혀 닿지 않아 선체의 전체 모습을 분간할수 없을 정도이다.시계가 제로인 셈이다.수중 전등에 의존해 손으로 더듬어 가며 사체를 확인하고 있다. SSU대원 이상현하사(24)는 이날 상오 8시45분쯤 선실에서 여자 사체를 인양,물 위로 올라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선실을 가득 메운 사체들은 한결같이 온몸이 뒤틀려 있는 상태로 아이스박스·그물 등과 뒤엉킨 채 출입구 쪽으로 몰려있다』고말했다. 이하사는 또 계단 출입구가 한사람이 겨우 빠져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아 대원들이 교대로 선실을 출입하느라 인양이 늦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선체가 좌우로 기우뚱거리며 침몰,선실로 물이 차올라오자 위험을 느낀 승객들이 앞다퉈 빠져나가기 위해 출입구로 몰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조반원들의 손길이 아직 미치지 못하는 정원 1백27명의 1층 선실의 사체 수는 확인이 불가능하나 대략 60∼70여구로 보인다. 이 사체들은 2층 선실로 통하는 양측 출입구 계단 쪽에 쏠린채 구석에 포개져 있다고 대원들은 전했다. 구조대원들은 『선실 안의 승객 대부분이 여자들로 빠져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안간힘을 쓴 듯 손발이 뒤엉키고 오그라들어 침몰시 탈출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친 흔적이 역력하다』고 입을 모았다.
  • 협정내용·전망(열리는 중동평화:3)

    ◎자치 점차 확대… 99년 독립국탄생 꿈/과도정부 한달후 치안·과세권 보유/7개월내 총선… 97년 국경협상 시작/팔과격파 진정·파탄경제 회복등 난제 「가자·예리코 우선자치안」은 계획대로 진행될까.또 자치기간이 끝난 후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어떻게 될 것인가. 13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간의 역사적인 평화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향후 중동평화 정착의 시금석이 될 이스라엘 점령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의 예리코시의 자치정부수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양측이 체결한 잠정자치안의 내용은 과도자치기간을 5년으로 하고 이 기간동안 이스라엘군철수,팔레스타인총선,항구적인 평화회담논의 등의 과정을 거친 다음 새로운 형태의 팔레스타인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잠정자치안은 평화협정 체결후 1개월뒤부터 발효되며 이때부터 PLO과도정부는 국방 외교권을 제외하고 그동안 이스라엘이 행사해 왔던 치안 과세 교육등 대부분의 권한을 인계받기 시작한다.이와함께 이스라엘군은 오는 12월부터철수를 개시,내년 4월까지 가자·예리코에서 철수를 완료해야 한다. 협정체결 3개월이 지나면 5년간의 공식 자치기간이 시작되며 이로부터 7개월내 가자·예리코의 자치를 주관할 자치위원회구성을 위한 팔레스타인 총선을 끝마쳐야 한다.이에앞서 이스라엘군은 총선실시전까지 예리코 이외의 요르단강 서안에서 철수해야 한다.동예루살렘과 유태인거주지역,전략적 요새는 제외된다. 이후 97년1월까지는 동예루살렘의 지위,유태인거주지역,팔레스타인난민문제,국경문제등에 관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양측은 또 과도자치기간이 완료되는 99년초가 되면 최종합의를 거쳐 새로운 형태의 팔레스타인 정부를 수립한다는 계획을 잡아놓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문서상의 약속이 실행에 옮겨지기까지는 평화협정체결까지 겪었던 우여곡절만큼이나 넘어야할 고비가 많다는데 있다. 당장 눈앞에 떨어진 사안은 PLO내부의 반발을 어떻게 다둑거리느냐 하는 것이다.진작부터 평화협정에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회교원리주의 조직 하마스가 아라파트의장에 대한 암살을공공연히 경고하고 있는가 하면 그외 4개의 반PLO조직과 PLO내 비주류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어 평화정착의 최대의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이와함께 오랜 분쟁으로 황폐화된 이 지역의 경제재건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생활고 역시 자치성공여부에 또다른 관건이 되고 있다.미국·유럽공동체(EC)를 비롯한 각국이 경제재건의 지원자금을 내놓을 계획이지만 기대만큼 조달되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더구나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1인당 GNP는 각각 7백80달러,1천4백달러에 불과해 자치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생활형편이 나아지지 않을 경우 불만은 가중돼 오히려 과격파 회교세력들에 반기를 들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95년말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동예루살렘지위문제와 잠정자치기간이 끝난후의 팔레스타인 정부형태다.동예루살렘의 지위문제의 경우는 이미 이스라엘이 합병하고 있는데다 팔레스타인 역시 한치도 물러설수 없는 입장이어서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 자칫 그동안쌓아 올린 공든탑마저 무너질 위험성을 안고 있다.또한 잠정자치기간이 끝난 후의 팔레스타인 장래와 관련해선 현재 요르단과의 연방안이 가장 현실성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합병할 경우 대다수의 팔레스타으로 구성될 연방안을 요르단이 순순히 받아들여 줄지도 미지수다.따라서 평화협정체결이라는 서막은 화려하게 장식했지만 이스라엘과 PLO 앞에 놓인 과제들은 한결같이 순열조함이상의 복잡한 조정을 요구하는 것들뿐이다.
  • “졸면 죽는다”…혀깨물며 사신 쫓아/구사일생 광원의 매몰 91시간

    ◎힘빠진 동료5명 차오르는 물속으로/생환일념으로 암흑·갈증·추위와 싸워 무덤속 같은 91시간이었다. 태백 통보광업소 매몰사고의 유일한 생존자 여종업씨(32)는 2천m가 넘는 지하막장 탄더미속에 갇혔던 91시간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마지막 채탄을 위한 발파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위해 마무리를 하던 순간이었다.이때가 13일 낮12시쯤.갑자기 뒤쪽에서 『물이다』는 고함소리에 너나없이 채탄을 준비하는 막장으로 뛰었다.곧이어 「꽝」하는 굉음과 함께 물이 터졌다.막장안 광원들은 모두들 본능적으로 눈과 코를 막았다.발을 적신 물은 빠른 속도로 허리께로 올라왔다.막장은 30도정도의 경사진 2평남짓한 공간. 계속 물은 차올랐다.극도의 두려움을 느낀 동료 가운데 일부는 손도끼로 갱목에 「가족에게 2억원을 달라」는 유언을 새기기 시작했다. 물이 키를 넘어서면서 모두 천장의 갱목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얼굴만 내놓고 간신히 숨을 쉬었다.그렇게 하기를 30분남짓. 힘이 부친 동료들은 갱목에서 손을 놓고 하나둘씩 「죽음」속으로 빠져들었다.몇시간이 지났을까.서서히 물이 빠져 나간 갱도 곳곳에 숨진 서승구씨 등의 5명의 사체가 드러났다. 비통에 잠길 겨를도 없었다.일단 동료들의 시신을 한데 모아놓고 주위를 살폈다.공기파이프가 절단돼 있었다.체력소모를 줄이고 산소를 아끼기 위해 시신옆에 반듯이 누웠다.이전에도 10시간 갱속에 갇힌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구조작업이 간단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암흑은 곧 죽음과도 같았다.엄습해오는 극심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12시간 쓸 수 있는 헬멧의 안전등을 2∼3분 간격으로 켰다 껐다.공포와 함께 찾아온 배고픔과 타는듯한 갈증이 혀를 태웠다.바닥에 깔린 물은 석탄물이어서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상태였다.살기 위해 헬멧에 오줌을 받아마셔야 했다. 희박한 공기속에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자면 죽는다」는 생각에 온몸을 꼬집었다.그럼에도 정신을 잃고 퍼뜩 눈을 뜨기를 몇차례를 거듭했다. 『나는 살 수 있다.아니 살아야 한다』­지상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애태울 아내 지대숙씨(29)와 아들 형규(12)·성규(10)를 떠올리며 졸음을 이기려고 혀도 깨물었다. 멀리서 「쿵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구조대가 다가오고 있었다.살아난다는 확신을 「신념」이 아닌 「사실」로서 확인한 순간이었다.
  • 죽은 자의 춤/일 부토 서울 페스티벌

    ◎8월20일∼9월4일 창무극장서 막올려/일 춤의 3대 주류하나… 정상급 13명 출연/사체의 몸부림·영적 에로티시즘에 “전율” 가부키(가무기),노(능)와 함께 일본춤의 주류를 이루는 「죽은 자의 춤」부토(무답)가 한국에 상륙한다.창무예술원초청으로 8월20일부터 9월4일까지 창무포스트극장에서 선보이는 이번 공연에는 오노 가즈오를 비롯,야마다 세츠코등 13명의 정상급 일본 부토무용수가 참가한다. 지금까지 일본의 몇몇 부토무용가가 개별적인 국내공연을 가진 적은 있었지만 「일본 부토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특히 현대 일본부토계를 대표하는 오노 가즈오(86)가 펼치는 「라아르헨티나용」공연은 부토예술의 진수를 맛볼 흔치 않은 기회다. 부토는 지난50년대말∼60년대초 일본의 전후사회에 대한 비판정신을 바탕으로 히지가타 다츠미(작고)에 의해 시작됐다.이후 30여년의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지난85년부터는 보수적인 일본NHK에서 공연을 중계할 정도로 「일본인에 의한,일본인을 위한,일본인의 춤」으로 자리를 잡았다.일본뿐아니라 미국,유럽등지에서도 일본을 대표하는 새로운 춤,현대무용의 중요한 한 장르로 대접받고 있다. 하얀 횟가루로 온몸을 분장한 반라의 무용수가 피빛 혓바닥을 내밀며 추는 기괴한 동작,영적인 에로티시즘,반항적 육체언어는 부토를 「어둠의 춤」「침묵의 춤」으로 알려지게 했다.「부토는 일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사체이다」란 경구를 남긴 창시자 히지가타 다츠미의 표현처럼 본디 부토는 죽은 자들의 욕망을 재현하는 몸짓이 주를 이룬다.그래서 「사자와 교감하기 위한 위령곡」이라고 일컬어 지기도 한다. 한여름 공연가를 오싹하게 만들 「일본 부토 페스티벌」은 ▲히지가타 다츠미의 공연기록영화상영(8월20일)을 시작으로 ▲오노 가즈오의 「라아르헨티나송」(21∼22일) ▲우에스기 미츠요의 「그여자」와 다케우치 야스히코의 「중력의 도시」(24∼25일) ▲조쿠조노 다비그룹의 「일촌의 월」(27∼28일) ▲부토사·텐케이그룹의 「무시가시이야기」(29∼30일) ▲오모리 마사히테의 「아모니테의 손톱」,고이테루의 「지하」(9월1∼2일) ▲야마다 세츠코의 「천체의 가을」공연및 전체자유토론(3∼4일)순서로 진행된다.
  • 아시아나기 실종서 발견까지 시간대별 상황

    ◎“사라진 여객기 찾아라” 긴장의 132분/3시38분/레이더망서 자취 감춰/5시25분/생존승객 지서에 연락/4시30분/전남도경에 실종신고/5시40분/헬기·경비정 추가출동/4시58분/군 헬기 3대 바다수색/5시48분/군 헬기 사고지점 발견 ○구조활동 매우 신속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고때 신속한 구조활동으로 인명피해를 줄일수 있었던 것은 해군에서 발진한 헬기3대 중 한대를 조종한 이창묵소령(36·해사34기)이 사고지점을 빨리 찾았기 때문이다. 사고가 난 정확한 시간은 지난 26일 하오3시38분이며 이소령이 발견한 시간이 하오5시50분이어서 2시간12분동안의 공백시간에 정부당국과 군·경 수색팀들은 그야말로 숨막히는 긴장속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여객기가 레이더에서 사라지자 관제탑요원들은 즉각 비상주파수를 열어놓는 한편 사고기와의 무전연락을 계속 시도했으나 응답이 없자 12분뒤인 하오3시50분쯤 「실종」으로 판단,아시아나 항공측에 이 사실을 알렸다. ○군당국에 협조요청 아시아나측은 이때부터 전직원이 비상근무에 들어갔고 임원과 직원이 모두 대기하는 가운데 하오4시30분 사고 추정지역관할인 전남도경과 목포시경에 「실종」을 알렸다.아시아나의 박상환이사는 『실종소식에 전직원이 얼어붙을 정도로 놀랐다』면서 『그뒤 곧바로 자체 레이더시설과 통신망으로 추적했지만 허사였다』고 말했다. 실종소식을 받은 전남도경은 상황의 심각성으로 볼때 군의 지원이 절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4시53분 해군등 군당국에 사고 소식을 전했다. 당시 경찰과 군당국은 목포지역이 항구인 까닭에 실종비행기는 바다에 추락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때문에 상황접수후 5분뒤인 4시58분쯤 출동한 해군 ALT­3 헬기 3대는 목포 앞바다를 중심으로 수색을 시작했다. 그러나 목포 앞바다는 구름이 낮게 깔린데다 시간당 30∼50㎜가 넘는 비가 쏟아지면서 바람도 강하게 불어 헬기수색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도 군당국에 일단 실종을 알린뒤 하오5시10분쯤 경찰청에 이를 보고했으며 보고와 동시에 본청은 목포지역 관내의 가용 경찰력을 총출동시켰다. 이런 가운데 사고비행기에 탑승했다 기적적으로살아난 김현식씨(21)는 사고지점에서 필사적으로 빠져나와 2시간 가량뒤인 5시25분 마을 어귀에서 만난 시민에게 사고소식과 지점을 알렸다. 이 사실도 즉각 경찰에 보고 됐고 화원면 주민들이 총동원되어 구조작업에 나섰다. 추락지점이 맨처음 해남경찰서에 보고된 것은 하오5시35분.그러나 현장 상황은 전혀 알려지지 않아 경찰 관계자들은 발을 굴렀다. 경찰은 사고현장 위치를 군당국에 재차 알려주는 한편 경찰헬기 5대와 바다를 가로질러 가기위해 경비정 2대를 추가로 출동시켰다. ○수송기까지 대기 공군도 이에 가세,5시40분쯤 HH­47 헬기 1대를 사고현장으로 급파했고 부상자 수송에 대비,C­130 수송기 1대까지 대기시켰다. 가장 먼저 발진했던 해군 헬기 3대 가운데 이소령이 탄 헬기가 사고지점에 이른 것은 하오5시48분쯤.사고후 2시간 이상이 지난 시각이었다. 이소령은 현장 발견 즉시 사고지점을 함께 출동한 헬기2대에 알리는 한편 본부에 급전,군·경등에 구조요청을 했다. 사고현장을 발견한 이소령은 차마 돌아갈수 없었다. 비록 초속13∼18m의 강풍이 부는데다 골짜기가 깊고 나무가 울창해 헬기를 공중에 정지시키기가 어려웠으나 그는 즉각 인명구조용 줄을 내려 어른 1명과 어린이 1명을 끌어올렸다. 이때 함께 출동했던 고은상중령 등이 탄 헬기 2대도 현장에 도착했다. 이소령이 몰고간 해군 ALT­3기는 해군이 프랑스에서 도입한 다목적기였기에 인명구조에 용이했다. 기관총이 앞에 장착돼 사격도 할 수 있으며 인명구조용 호이스트가 달려 줄을 내려 올릴수 있었다. 그러나 한번에 한명밖에 올릴수 없게돼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었지만 그는 거동이 가능한 사람에 한해 한번에 2명씩도 끌어올렸다. ○12명 인근국교 옮겨 얼마쯤 지나자 사고지점발견보고 즉시 출동했던 다른 육군 UH­30기 2대가 현장에 도착했고 이어 육군항공 대소속 UH­1H헬기 6대도 달려왔다. 이소령은 이때까지 무려 12명의 생존자를 부근 화원국교까지 옮겼다. 구조작업은 다른 헬기에 의해서도 속속 이뤄지는 한편 부근 주민과 경찰관들도 현장에 속속 도착해 들것 등으로 부상자를 옮겼다.
  • 아시아나기 참사 해남 마산리의 7월 26일

    ◎“뒷산에 비행기 추락… 모두 나오시오”/산마을 인간애가 희생 줄였다/주민 3백여명 필사적 구조작전/빗속 진흙길 부상자 업고 줄달음/뒤늦게 온 유가족·구조대원엔 식사대접 『뒷산에 비행기가 떨어졌으니 동네사람들은 모두 낫과 삽을 들고 마을회관으로 모이시오』 아시아나 여객기추락 직후인 26일 하오 5시30분.전남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이장 김석진씨(60)의 비상을 알리는 급박한 목소리가 마을 스피커를 타고 온동네에 울려 퍼졌다.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것없이 삽과 톱등을 들고 마을회관으로 달려왔으며 『우선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는 김씨의 설명을 대충 듣고 운거산으로 내달았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과 덤불을 연장으로 잘라 헤치며 해발 3백20m의 운거산 8부능선에 다다른 이들은 너무나도 참혹한 현장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소리,처참하게 산산조각난 비행기 잔해와 옷가지,짐꾸러미 등등. 쓰러진 사람들에게 달려가 옷가지를 찢어 상처를 싸매 지혈을 해주었고 비행기 잔해 사이에 끼여 신음하는 사람들을 끄집어 내기 시작했다.힘센 장정들은 부상자들을 들쳐업고 산밑으로 뛰고 노인이나 부녀자들은 사고현장에서 정신없이 승객들을 보살폈다. 이렇게 하길 1시간쯤.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어느새 3백여명의 마천부락 주민들로 대규모 「인명구조단」이 자연스레 구성됐다. 아시아나항공 737편 보잉 737국내선 여객기 추락사고의 구조작전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결국 44명의 귀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끔찍한 대형참사속에서 여객기 추락사고치고는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많은 인명을 구한 것이다. 사고 여객기 승객 김현식씨(21)가 하오 5시20분쯤 홀로 산밑으로 기어내려와 마을에 사고소식을 전한 뒤부터 군·경의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이루어지기까지 두시간동안 마천부락 주민들의 필사적인 희생노력이 없었다면 이번 사고는 엄청나게 더 큰 재해로 이어졌을 것이다. 한차례 폭우가 내린 뒤끝인데다 40도의 급경사인 산을 오르내리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미끄러운 산길을 오르면서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당기느라 주민들의 몸은 어느새 땀으로 뒤범벅됐다. 이장 김씨는 김성수씨(23)등 청년 3∼4명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생존자들을 마을로 후송시켰고 나머지 주민들은 승객들의 안전벨트를 낫으로 끊어가며 생사를 확인했다.청년들이 생존자들을 등에 업고 막 산을 내려갈때 면사무소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군용헬기가 계곡위에서 맴돌았다.헬기에서 구조로프와 카고네트가 내려왔고 주민들은 무게가 가벼운 어린이 4명을 우선 헬기로 올렸다.곧이어 또다른 헬기가 도착하자 주민들은 헬기에서 내려온 군인 1명의 도움을 받아 생존가능성이 있는 중환자를 로프에 묶기 시작했다. 『헬기에서 구조로프를 내렸을때 강한 바람으로 로프가 흔들리는 바람에 한사람을 묶는데만도 10분씩이 걸렸습니다』주민 천용진씨(45)는 온몸이 피로 물든 자신을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박연규씨 등 동네주민들과 함께 8명의 생존자를 로프에 묶어 헬기로 올려 보냈다. 박씨는 『서로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환자들을 대할때 누구부터 구해야할지 괴로웠으나 어린이나 피를많이 흘린 중환자에게 먼저 손이 닿았다』면서 사고 신고가 조금이라도 빨랐더라도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주민들은 생존자들을 확인하기위해 사고 현장인 고도 2백50m의 계곡을 중심으로 직경 1백여m안쪽의 숲과 나무를 헤치며 샅샅이 뒤졌다.다리가 부러진채 근처 숲에 쓰러져 있던 40대 승객은 『나는 괜찮으니 급한 환자부터 옮겨달라』고 애원해 함께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고 당시 이곳에는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여객기가 추락할때 「꽝」하는 굉음을 천둥소리로 잘못 알아들었다』는 주민들은 한결같이 사고소식을 뒤늦게 알아 유가족들에게 죄를 진 것같다고 말했다. 마을에 남아있던 주민들은 각 가정에 있는 밥솥 30여개를 총 동원,생존자와 뒤늦게 달려온 구조대원등 3백여명에게 따뜻한 저녁식사를 대접했다.또 화원면장 김한철씨(53)는 근처 방앗간에서 2백여명분의 주먹밥을 만들어 사고 현장에 긴급 운반하기도 했다. 『많은 희생자가 나 마음이 아프지만 구조된 생존자들만이라도 빨리 완쾌되길 바랄뿐입니다』이 마을 사람들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사고현장에 찾아와 울부짖는 유가족들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특별취재반 전국부 임정용부장 최치봉기자 박성수〃 남기창〃 김수환〃 사회부 김재순〃 박찬구〃 사진부 김명환〃 남상인〃
  • 북한·이스라엘/작년 10월부터 비밀접촉/타임지가 보도한 실상

    ◎“대이란 무기판매 중지 해주길”/이스라엘/거액경원 제공·금광매입 요구/북한 북한이 대이란 무기판매를 중지하는 조건으로 이란의 적국인 이스라엘로부터 거액의 경제원조를 얻어내기 위해 이스라엘과 심도있는 협상을 벌인 사실이 밝혀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한과 이스라엘간 협상은 현재 북한의 핵개발 저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미국의 개입으로 표면적으론 일단 중단된 상태이다.그러나 양측 모두 관심을 갖고 계속 은밀하게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협상이 재개될 공산이 크다. 7일자 미국 시사주간지인 타임은 북한과 이스라엘이 지난해 10월초 처음으로 미국 뉴욕에서 접촉,이같은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도했다.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한국 기업인의 뉴욕 친구 중재로 이뤄진 양측의 첫 접촉때 이스라엘측에선 에탄 벤처 외무부 부국장이 참석했다.그러나 북한측의 참석자가 누구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 접촉에서 북한측 협상자가 먼저 벤처 부국장에게 『이스라엘이 운산에서 20㎞ 떨어진 지점에 있는 금광을 3억달러에 매입할 것』을 제의했다.이같은 북한측 카드의 뜻을 이스라엘측은 처음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북한이 현금이나 상품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필사적으로 팔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이유야 어떻든 운산금광을 답사하기로 결정했다. 이스라엘측은 그뒤 벤처 부국장과 두명의 지질학자를 포함한 소규모 방문단을 북경을 경유 파북,운산의 금광을 답사토록 했는데 북한측에선 군장성이 대표자로 나와 이들을 안내했다는 것. 뉴욕과 평양,북경에서의 세차례의 접촉을 거치면서 이스라엘측은 북한측이 군장성이 아닌 실질적으로 김일성을 대변할 수 있는 공식적인 인물을 내세우지 않으면 접촉을 중단키로 하는 등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러던 터에 북한측은 이스라엘측에게 『북한에 경제원조를 해주는 조건으로 이란등 중동지역에 무기판매를 중단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할 뜻이 있다』는 그들의 의도를 토로했다.말하자면 북한의 이란에 대한 무기판매로 안보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이스라엘측의 입장을미끼로 이용한 셈이다. 북한측은 당시 경제원조 내용과 관련,수천대의 트럭을 요구한 것 말고는 더 이상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진 않았으나 이스라엘 당국은 원조액이 1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왜냐하면 북한이 이란등 중동국가에 무기판매를 중단할 경우 이만큼의 손실을 입을 것이란 판단에 기초한 것이다. 결국 북한과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접촉은 지난해 12월 북한측 관리가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에게 『평양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이후 중단됐다. 북한은 이 공문에서 『경제원조와 관련한 협상이 결실을 맺으면 정상 외교관계까지도 끌어낼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타임지는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현재 북한이 요구하는 경제원조의 액수가 매년 미국으로부터 받는 원조액의 3분의1에 해당하는 데다 미국의 반대로 평양과의 2자 접촉은 배제하고 있는 상태다.
  • 에콰도르 산사태… 200명 사망/폭우로 남부광산촌 매몰/로하주

    ◎사체 수십구 발굴… 사상자 늘듯 【키토 AP 연합】 남미 에콰도르 남부 로하주의 한 광산촌에서 9일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발생,최소한 2백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정부 당국이 10일 밝혔다. 비니시오 수아레스 로하주 지사는 산사태로 쏟아져 내린 흙과 바위더미가 약 80채의 가옥을 덮쳐 2백∼2백50명의 주민이 매몰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에콰도르 라디오 방송은 사고 현장에서 적어도 43구의 사체가 발굴됐다고 밝히고 구조반이 현재 필사적으로 생존자 수색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사고가 난 곳은 수도 키토에서 남동쪽으로 약 7백㎞ 떨어진 페루접경 지역의 광산촌으로 금맥을 찾으려는 많은 주민들이 열악한 주거 환경속에 살고 있다.
  • 캄보디아서도 “인종청소” 자행(세계의 사회면)

    ◎크메르루주,베트남계 집단학살/폴포트정권 붕괴에 앙심보복/91년 파리협정후 백여명 살해/“「제2의 킬링필드」 온다” 외국탈출 급증 무자비한 인종학살로 세계를 전율케 했던 유고판 인종청소가 캄보디아에서도 재연되고 있다.캄보디아의 4개정파 가운데 하나인 크메르 루주가 캄보디아에 살고 있는 베트남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크메르 루주는 일단 캄보디아의 베트남계로 확인되면 죽이기 일쑤고 최근에는 베트남인들이 자주 모이는 곳에 폭발물을 설치해 집단학살도 서슴지 않고 있다. 지난 29일에도 프놈펜에서 크메르 루주의 소행으로 보이는 두개의 폭발사건이 일어나 수명이 목숨을 잃었다.유엔의 한 조사에 의하면 지난 91년 파리협정에 의해 유엔평화유지군이 캄보디아에 파견된뒤 학살된 캄보디아의 베트남인은 1백명을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크메르 루주가 캄보디아의 베트남인들에 대해 이처럼 인종학살을 감행하고 있는 것은 크메르 루주와 베트남간의 악연때문이다. 베트남은 지난 78년 캄보디아를 침공,크메르 루주의 폴 포트정권을 무너뜨려 헹삼린정권이 들어서게 만든뒤 다시 지금의 훈 센 정권으로 바꿨다.그러니 정권을 빼앗긴 크메르 루주가 베트남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을리가 없다. 그러던 터에 유엔이 얼마전 그동안 캄보디아 주둔 베트남군에서 복무했던 베트남인들을 「외국군」으로 규정,보호하려 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복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크메르 루주는 오는 5월 캄보디아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이들을 철수해야 된다는 주장을 줄곧 해왔다. 물론 이같은 보복성 학살이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인종청소작업이 본격화되자 캄보디아의 베트남계는 혹시 「제2의 킬링필드」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75년 폴 포트 정권가 이끄는 마르크스 극단주의 세력인 크메르 루주가 저지른 대량학살 「킬링필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주말을 이용해 선박을 타고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접경지역인 톤레바삭 국경검문소를 넘어 베트남으로 탈출하고 있다.지난주에는 1백여척의 어선을 이용해베트남으로 탈출했다. 육로도 이들이 탈출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캄보디아와 베트남의 접경지역은 그다지 출입국통제를 엄격히 하지 않아 이들이 베트남으로 탈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유엔은 최근 캄보디아를 떠난 베트남계의 숫자가 약 7천명정도에 불과하지만 캄보디아의 베트남계가 약 50만명이나 돼 날이 갈수록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난민지가 바로 10년전 베트남이 공산화된후 수많은 보트피플들이 배를 타고 탈출했던 자신들의 조국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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