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우리’라는 이름의 배타주의
한국인들은 ‘우리'라는 말을 즐겨 쓴다.일반적으로 ‘우리'는 ‘나'와 ‘너',즉 ‘말하는 이'와 ‘듣는 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한국인들은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끼리우리나라,우리민족,우리사회,우리지역,우리학교라는 표현을사용하며 동지애로 똘똘 뭉친 집단정체성을 확인하곤 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표현이 그 대표적 예다.
때로는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우리'라는 말은 ‘듣는 이'가배제되고 ‘말하는 이'만 소속된 집단을 의미한다.우리집,우리엄마,우리마누라,우리남편 등과 같은,되새겨보면 의미가이상하게 다가오는 ‘우리'는 말하는 사람과 지칭된 대상을아우르는 공동체를 의미한다.한국인들은 외국인에게 한국을설명할 때도 ‘우리나라'라는 표현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한다.
이처럼 ‘나' 대신에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우리'라는 말 뒤에는 너를 배제하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다.“우리는 그렇지 않아.”라는 말을 할 때,‘우리'는 ‘듣는 이',즉 ‘너'는 내가 속한 집단 구성원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는 장치다.
한국인들이 ‘우리'라는 말을 남발하는 배경에는 자기 자신의 개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집단을 내세우는 집합주의적 심성이 있다.집합주의의 장점은 공동체성에 있고,단점은 차이와다양성을 용인하지 못하는 데 있다.집합주의적 심성이 잘못발현되면 모든 구성원들이 같아야 한다는 평균주의적 강박증으로 연결된다.“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용심이 그러하고,자기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도망가는 도둑”에 비유하는 심성이 그러하다.잘 나가는 사람을 이처럼 삐딱하게 보는 왜곡된 심성은 약자에 대해서는 폭력적으로 전화된다.약자를 배려하고 보살피기보다는,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짓밟는다.그것도 개인을 집단 뒤에 숨기는 비겁한 형태로 말이다.강자에 비굴하고 약자에 강한,비뚤어진 모습이 우리의 자화상 속 구석에 숨어 있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의 집단 의식은 한국인뿐 아니라 모든 인간사회가 공유하는 것이다.한국인의 ‘우리'의식이 남다른 것은 그집단주의적 차별·배제의 요소 때문이다.‘우리'는 무조건 좋은 것이고 ‘남'은 무조건 좋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배타적 위계의식에 사로잡힌 자에게 인간의 평등과존엄이란 사전 속에만 있는 단어일 뿐이다.
한국인들이 좀처럼 ‘우리'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집단 중 가장 열악한 집단은 외국인 노동자라 할 수 있다.현재 국내에는 중국,필리핀,파키스탄,방글라데시,몽골,인도네시아,스리랑카 등지에서 온 약 33만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온갖 멸시와 불이익을 당하며 일하고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불법체류자고,일부 합법체류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산업연수생이다.즉,국적에 따른 차별금지란 법전 속에만 있다.또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인의 마음속에서 ‘영원한 남'으로 남아 있다.재중동포 노동자도 이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3D 업종의 일을 떠맡아 하는 중국인 노동자인 그들을 ‘우리'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그들은 자기들이 ‘동포'가 아니라 ‘똥포'로 대접받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한국인들이 그들을 ‘우리'로 대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고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편법으로 운영되고 있는 외국인산업연수제도를 폐지하고,정식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또 재외동포의 범주에서 재중동포와 재구소련동포를 배제하는 재외동포법의 문제점을 시급히 바로잡아야한다.아울러 외국인 노동자,재외동포,탈북자 등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와 관용의 정신을 고취할 수 있는 국민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다문화 이해'야말로 통일 후 사회통합의 원동력일 뿐 아니라 지구화된 사회를 살아갈 수 있는 지혜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설동훈 전북대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