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포스트 BRICs] (18·끝) 전문가 대담
“이제 우리의 외교역량을 ‘안보모드’에서 ‘경제모드’로 전환해야 하고 후진국에 대한 지원도 경제규모에 맞게 늘려 국제사회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서울신문은 기획물 ‘포스트 브릭스’ 시리즈를 마치며 7일 홍기화 코트라(kotra) 사장과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장을 초청, 본사 회의실에서 전문가 대담을 갖고 포스트 브릭스의 의미와 진출 전략을 짚어봤다. 본사 염주영 논설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두사람의 대담 내용을 간추린다.
●치열한 에너지 쟁탈전 대비 시급
▶염주영 실장 서울신문은 브릭스 이후 등장할 신흥 시장인 포스트 브릭스 8개국(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멕시코 칠레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카자흐스탄)을 16차례에 걸쳐 소개했다. 포스트 브릭스가 우리에게 갖는 의미와 중요성은 무엇인가.
-홍기화 사장 우리의 잠재 성장력이 2000년 이후 감소해 노동·시장·생산 부문에서 한계에 도달했다. 해외 진출을 통해 성장의 기반을 재조성해야 한다. 또 1990년대 60%에 이르던 미국·일본 등에 대한 수출 비중이 최근 35%로 줄었다. 그만큼 브릭스, 포스트 브릭스가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쟁탈전도 치열해졌다.
-정구현 소장 기업 입장에서 성장이 중요한데 중국·인도에 이어 포스트 브릭스의 성장률이 5% 안팎으로 높다. 현재 선진국은 2∼3%에 불과하다. 그만큼 포스트 브릭스에 성장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염 실장 현지에서는 정부가 체계적인 진출 전략을 마련하는데 소홀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정책적 지원을 요구하던데 정부가 어떤 일을 해야한다고 보나.
-정 소장 정부 과제는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외교부가 ‘장사모드’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분단 국가이다 보니 우리 외교관들은 외교·안보에 집중하고 기업 경제에 관심을 덜 쏟는다. 반면 영국 같은 나라는 대사들이 비즈니스맨처럼 활동한다. 외교부가 경쟁 중심으로 방향 전환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두 번째는 개발도상국인 포스트 브릭스에 공적개발원조(ODA)를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형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들이 패키지로 참여하도록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도시개발이 대표적이다. 분당 같은 도시를 몇 년 안에 개발한 나라가 전세계를 통틀어 얼마나 되겠나. 이런 시스템적 노하우를 갖고 복합적으로 진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소기업이나 개인 투자자는 KOTRA가 많이 도와줘야 한다.
●정부와 민간공동으로 자원시장 공략해야
-홍 사장 패키지 진출은 매우 중요하다. 포스트 브릭스 국가는 인력과 자원이 풍부하지만, 동시에 리스크도 분명 갖고 있다. 이에 시장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패키지를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이 진출해도 부품을 몽땅 생산할 수 없다. 대기업이 협력업체와 함께 진출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대기업은 브랜드와 마케팅 능력으로 공략하고, 중소기업은 생산 기지를 이전해서 수출하는 형식이다. 예컨대 나이지리아에서는 한국전력이 발전소를 세운 덕에 해사 탐사권을 얻었다.
기업이 정부와 공동으로 활동해도 좋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대통령이 방문한 뒤 정부와 민간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기술 방산 에너지 산림 해양 등 여러 분야에서 정부와 민간기업이 보조를 맞추기로 했다.
재정지원도 중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평균 ODA가 국민총소득(GNI)의 0.46%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0.05%인 4억 5000만 달러였다. 일본은 116억 달러이고, 미국은 227억 달러였다.
해외에서 ‘어글리 코리안’이라 불리는 것도, 이처럼 산업에 투자하지 않고 돈만 벌려고 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중국에서 부도가 나면 일부 한국기업은 인건비를 주지 않고 도망간다. 이런 이미지가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가로막는다.
-정 소장 언론에서 ODA를 ‘0.1%로 올리자’는 캠페인이라도 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에 주는 것도 일종의 ODA다. 그것까지 합쳐서 OECD 수준으로 가야 한다.
●오일쇼크 산업화과정에서 계속될 것
▶염 실장 에너지 확보도 해외 진출의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세계 에너지 시장을 싹쓸이한다는 우려가 많다. 우리 정부는 자원안보에 소홀한 것 아닌가.
-홍 사장 그렇지는 않다. 중국이 아프리카, 중남미 등과 자원 외교활동을 강화하는 것처럼 우리 정부도 노력하고 있다. 예전에는 오일쇼크가 정치적인 이유로 왔지만 이제는 산업화 과정에서 계속될 것이다.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은 물량적으로 2%에 불과하지만, 가격적으로는 28%에 달한다.
-정 소장 70년부터 오르기 시작한 에너지 값이 84년 이후 내리다가 2000년부터 다시 오르고 있다. 우리가 보유하던 석유·가스 개발지는 97년 외환위기 때 다 팔았다. 그렇다고 지금 섣불리 들어가기도 힘들다. 상투를 잡아 손해볼 수 있어서다.
▶염 실장 산업자원부가 외환보유고를 자원 확보에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는데 재정경제부가 안된다고 했다는 뉴스를 봤다.
-정 소장 신중해야 한다. 외환보유고가 많으니까 공공펀드를 활용해서 수익을 높이겠다는 것인데 어디에다 투자해야 하는지 등 쉽지 않은 일이다. 자원 개발은 리스크가 있다.
-홍 사장 정부의 중요한 자산인데 잘못 쓰이면 큰일이다. 외환보유고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민관 협력을 통해 효율적인 해외 투자 진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염 실장 한국기업들이 해외 진출할 때 준비가 부족하다거나 현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계속된다. 우리 기업들에 필요한 자세가 있다면.
●경쟁력없이 ‘너도나도식 진출´ 버려야
-정 소장 첫째 핵심 역량이 있어야 한다. 경쟁력 있는 제품이나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중소기업은 국내에서 안되니까 나간다고 한다. 국내 인건비나 원가가 비싸서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은 해외로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인건비가 오르고 비용이 비싸지니까 베트남으로 이동했다. 베트남 임금도 높아지니까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얘기가 나온다. 특별한 기술적 우위도 없으면서 저임금을 찾아 진출한다면 현지에서 원성을 살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인도나 중국에서 인건비를 떼먹고 도망가고, 노동자를 함부로 대해서 말썽이 많이 발생했다.
-홍 사장 이제는 ‘너도 가니 나도 따라간다.’는 마인드를 버려야한다. 시장을 선점하고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투자·진출에 관한 종합적인 전략을 짜야 한다. 산자부와 KOTRA, 국가정보원까지 현지에 진출한 정부 부처를 총괄하는 해외진출 센터 ‘글로벌 코리아’가 이 달 말 론칭한다. 포스트 브릭스를 포함해 40개 해외무역관에 설치할 예정이다.
글로벌 코리아에서는 노사·세금·투자 상담에서 진출까지 지원한다. 변호사를 고용해 일주일에 두 번씩 상담하고, 전자메일로 조언해준다. 자문단도 구성해 진출한 기업도 돌봐줄 것이다.
●성장잠재력 큰 카자흐스탄 주목을
▶염 실장 포스트 브릭스 중에서 주목할 만한 국가는 어디인가.
-정 소장 가장 자원이 풍부하고 성장 잠재력이 큰 카자흐스탄을 주목해야 한다. 베트남도 잠재력이 있다. 인구도 많고 우리와 유사한 문화를 지녔다. 임금도 저렴하다. 베트남은 앞으로 계속 발전할 것이다. 터키는 한국에 우호적인 나라인데 아직 판단하기에 이르다. 유럽연합(EU) 가입이 쉽지 않고, 종교 갈등도 있다. 남아공도 아프리카가 뜨면 성장성이 상당히 많다.
▶염 실장 20년 전만해도 중국이 형편없이 낙후했었는데 이제 우리 턱밑까지 쫓아왔다. 포스트 브릭스에는 우리 경쟁 상대가 될 만한 나라가 없는가.
-정 소장 중국은 예외적인 나라다. 해마다 10% 성장해 세계 경제가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가 발전하려면 자원과 사람만이 아니라 시장과 환경이 효율화돼야 한다. 민주주의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포스트 브릭스 국가는 우리나라에 위협을 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홍 사장 중국 만큼은 아니겠지만, 분명 포스트 브릭스가 성장할수록 세계시장은 좁아질 것이다. 그만큼 세계시장을 활용하는 전법이 중요해진다.GE의 경우 의료사업부를 헝가리, 멕시코에 두고 있는데 연구개발(R&D)은 중국에서, 소프트웨어는 인도에서 생산하고 총괄 전략은 미국에서 맡는다. 글로벌 아웃소싱을 이행하는 것이다. 글로벌 환경을 활용해서 사업을 분해해 나라별로 진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캄보디아 필리핀도 주목할 만한 나라
▶염 실장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홍 사장 포스트 브릭스만큼 중요한 나라들이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캄보디아와 필리핀을 꼽을 수 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이란, 시리아에 눈길이 간다. 외교 분쟁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경제 시장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남미에서는 콜롬비아를 주목해야 한다.
-정 소장 국내에 머물면 우리 시장, 세계시장의 2%밖에 누리지 못한다. 반면 글로벌 기업은 100%를 공략할 수 있다. 우리의 최대 경쟁력은 경제개발 경험과 정보통신(IT)기술이다. 최근 20년 동안 산업화·세계화·경제화·민주화를 한꺼번에 이룩한 나라가 전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포스트 브릭스 국가들은 신도시를, 대덕 연구단지, 창원 기계공업단지를 어떻게 조성했는지 알고 싶어 우리나라를 방문한다. 우리의 경험 자체가 엄청난 자산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기회가 많다.
정리 정은주 강주리기자 ejung@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