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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혜민의 피플스토리+] 양팔 없이 태어나 인터넷 스타 된 남자 이야기

    [송혜민의 피플스토리+] 양팔 없이 태어나 인터넷 스타 된 남자 이야기

    중국 남부에 사는 위안리둥(32)은 매일 저녁 6~8시,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통해 팬을 만납니다. 그가 시청자와 팬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일상인데요. 게임을 하거나 마술을 보여주거나, 노래를 하는 등 어찌 보면 누구나 보여줄 수 있는 모습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터넷 라이브 방송에는 매일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위안 씨는 태어날 때부터 두 팔과 두 다리가 없었지만, 누구보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기 때문이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7일 보도에 따르면 그가 처음 ‘명성’을 떨친 것은 2011년, 세계적인 인터넷 게임을 즐기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팔이 없는 그는 누운 채로 양 빰을 움직여가며 마우스를, 입으로 젓가락을 물고 이를 이용해 키보드를 써서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게임에 임했습니다. 2015년 프로게이머가 된 그는 이러한 모습 덕분에 ‘젓가락 형님’이라는 닉네임을 얻기도 했을 정도로요. 하지만 게임을 할 때의 자세 때문에 건강에 무리가 생긴 그는 자신의 긍정 에너지를 전달할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고, 떠올린 아이디어는 바로 인터넷 라이브 방송이었습니다. 위안 씨는 “게임을 하는 도중에는 많은 청중들에게 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내가 두 팔과 두 다리 없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떻게 아내를 만났는지 등을 말하고 싶었죠”라면서 “장애를 가진 남성에게도 이렇게 강인한 면이 있으며, 삶이 어려운 사람들이 나를 보고 희망을 얻길 바라는 마음에서 방송을 시작하게 됐습니다”라고 동기를 전했습니다. 위안 씨의 삶을 향한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는 아내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았습니다. 아내의 부모는 예비 사위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도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아내처럼 그의 밝은 모습에 호감을 가졌기 때문이죠. 현재 그는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만으로 아내와 8살 된 아들을 보살피는데 큰 문제가 없을 만큼 인기스타가 됐습니다. 그는 “긍정적인 마음은 당신이 원하는 그 무엇이라도 얻을 수 있게 도울테지만, 부정적인 마음은 당신이 가진 것을 잃게 만들 것”이라면서 “나는 내 상황에 대해 불평한 적이 단 한번도 없어요. 매일 행복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렸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그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진리를 알려줄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美 60대 男, 43년간 ‘빅맥’ 3만개 먹어 세계신기록

    美 60대 男, 43년간 ‘빅맥’ 3만개 먹어 세계신기록

    1972년 운전면허 취득 기념으로 먹은 뒤 365일 만에 1000개2016년 8월 2만 8788개로 빅맥 소비 기네스 세계신기록맥도날드의 대표적인 햄버거 제품 ‘빅맥’(Bic Mac)을 가장 많이 먹은 사람으로 공인받은 미국 위스콘신 주 60대 남성이 새로운 기록을 세워 화제다. 8일 시카고 트리뷴과 피플 매거진 등에 따르면 위스콘신 중부 폰듀랙 시에 사는 은퇴한 교도관 도널드 고스키(64)는 지난 주말, ‘46년 전 처음 빅맥을 맛본’ 자택 인근 맥도날드 매장에서 호기심에 찬 주민들과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애 3만 개째 빅맥을 주문해 먹었다. 고스키는 18세이던 1972년, 운전면허증 취득을 기념하기 위해 마을에 단 하나 있던 맥도날드 매장에 가서 빅맥을 사먹은 것을 계기로 빅맥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며 영수증과 포장용기 등을 증거물로 제시했다. 그는 365일 만에 첫 1000개 기록을 세웠고, 2016년 8월에는 2만 8788개째를 먹어 ‘빅맥 소비’ 기네스 세계 신기록을 인정받았다. 고스키는 햄버거 과다 섭취를 우려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와 눈폭풍으로 인근 맥도날드 매장이 임시 폐점했을 때 등 8일 정도를 제외하고는 46년간 매일같이 이 햄버거를 먹었다고 주장했다. 섭취량은 하루 평균 2개. 그는 “끼니의 약 90%를 빅맥으로 해결한 것 같다”고 밝혔다. 위스콘신 지역방송 WISN은 이 추세대로라면 고스키가 78세 되는 2023년 4만 개 기록이 나온다고 추산했다. 고스키는 2004년 모건 스펄록(47) 감독이 패스트푸드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수퍼사이즈 미’(Super Size Me)에 등장, 자신의 강박적 식습관을 소개하기도 했다. 오프라 윈프리 쇼·레이첼 레이 쇼·지미 키멜 라이브·로페즈 투나잇 등 유명 토크쇼에도 잇따라 출연했다. 그는 맥도날드의 ‘충성 고객’답게 청혼도 매장 주차장의 노란색 M자 로고 ‘골든 아치’(Golden Arch) 아래서 했으며 경쟁사인 버거킹의 대표 제품 와퍼(Whopper)는 평생 딱 한 번 먹어봤다고 털어놓았다. 고스키는 “내 식습관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신경쓰지 않는다”면서 “최근 건강 검진에서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이었고 혈압도 완벽했다”고 말했다. 한편 시카고 소재 맥도날드 본사 측은 고스키의 새 기록과 관련 “맥도날드의 상징 빅맥 햄버거에 대한 열정과 변함없는 충성도에 감사한다”는 인사를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죽음에서 살아남았고 살기 위해 죽음을 썼다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죽음에서 살아남았고 살기 위해 죽음을 썼다

    베트남에서 온 작가는 한국의 해물탕을 좋아한다. 이유는 국토 한 면이 바다에 접한 나라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어제 병원까지 다녀왔던 분이라 뵐 수 없겠지 했는데 다행히 시간을 내주셨다. 서태지가 나왔던 1991년 현재, 16개국 언어로 번역됐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되는 그의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은 제목만치 서글프다. 그를 만난 아침은 소설의 첫 장면처럼 축축한 습기로 가득했다. 소설 주인공 끼엔은 열일곱 살 때 북베트남 정규군에 입대한다. 당시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베트남의 젊은이들은 많이 자원입대했다. 온기가 남아 있는 적병의 몸에 못을 박듯 한 발 한 발 방아쇠를 당겼던 끼엔은 전쟁 후 살아남은 단 열 명의 병사 중 한 명이었다. 전사자 유해발굴단으로 끼엔은 부대원이 몰살당한 지역을 찾아간다. 가는 곳마다 끼엔은 생시를 구별할 수 없는 혼령을 목격하곤 한다. 머리가 잘려나간 한 무리의 흑인 병사가 산기슭으로 행군하는 것을 보았다는 이들도 있었다. 전쟁이 갈라놓은 첫사랑 프엉도 찾아온다.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겪은 끼엔에게 프엉만은 확실한 존재였다. 하지만 전쟁은 프엉과의 추억을 앗아갔다. 전쟁은 그녀를 변화시키고,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을 만들었다. 죽지 않기 위해 끼엔은 글을 쓴다. 악몽과 현실 사이에서 버티고자 끼엔이 할 수 있는 일은 죽음을 쓰는 일이었다.“신짜오(안녕하세요).” 중얼거리며 외웠는데 금방 잊은 인사말, 통역해 주시는 하재홍 선생께서 가르쳐 주셔서 인사할 수 있었다. 하 선생은 천호동에 있는 한 모텔에 머물고 있는 그를 모시고 내려왔다. 그는 담배를 맘대로 태울 수 있는 모텔이 호텔보다 좋다고 한다. 홍마초의 뿌리와 이파리, 꽃잎을 담뱃잎에 섞어 말아 피워 물고 환각에 들어가곤 했다던 북베트남 병사들이 떠올랐다. 꼬박 밤을 새운 나보다 더 초췌한 그를 만나 가까운 해물탕집으로 가려 할 때 비가 스멀스멀 내리기 시작했다. 전쟁 얘기를 시작할 때 마치 정글에 비 내리듯 한꺼번에 빗물이 쏟아졌다. 장딴지까지 차오른 핏물 속을 행군했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벌건 내장을 드러낸 해물탕이 나왔다. ‘전쟁의 슬픔’은 시간의 흐름대로 쓴 톨스토이식 소설이 아니다. 끔찍한 비극의 찌끼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청년이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기억, 지금과 과거를 오가는 ‘의식의 흐름’대로 쓴 소설이다. 그렇다고 도스토옙스키의 글쓰기와도 달랐다. “그래요. 맞아요. 의식의 흐름대로 쓴 소설이에요. 처음부터 그렇게 쓰자 해서 쓴 소설이 아니라 쓰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내 소설이 도스토옙스키 소설과 비슷하다는 데 베트남어판 도스토옙스키 소설은 번역이 이상한지 읽기 어려웠어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1988년 베트남말로 번역됐는데 참 좋았어요.” 그가 ‘백년의 고독’을 읽었다는 말에 멈칫했지만, 단순히 마르케스의 영향으로는 읽히지 않았다. 신화나 전설을 차용했던 마르케스의 신화적 상상력과 달리, ‘전쟁의 슬픔’은 비극적 사실과 고통스러운 기억 자체를 신화적 상상력으로 끌어 쓰고 있었다.소설에서 2375회나 이름이 등장하는 끼엔은 1969년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입대해 북베트남 보병사단의 병사로 서부고원 전선에서 싸웠던 작가의 이력과 유사하다. 다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내가 보기에 끼엔이 아니다. 숨은 주인공이 있다. 끼엔이 외면적 주인공이라면, 950회 이름이 나오는 프엉은 내면적 주인공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작가들, 도스토옙스키나 카프카 같은 이들은 여러 인물에 자신의 내면을 투영해 넣는다. “어떻게 아셨어요? 맞아요. 끼엔은 베트남 전쟁을 겪은 베트남 병사의 일반적인 정서를 가진 인물이고요. 프엉은 내면의 제 자신입니다.” 마르케스와 다른 그의 글쓰기에는 베트남 특유의 상상력이 있었을 것이다. 죽은 혼령들은 왜 이리 많이 나오는지. 끼엔이 찾아가는 곳은 사람들이 많이 죽은 ‘고이 혼’이라는 지역이다. 우리말로 하면 ‘혼을 부른다’는 초혼(招魂) 지역이랄까. 거기서 끼엔은 죽은 자를 두 눈으로 자주 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으스러진 육신을 끌고 다니는 귀신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 곳이다. 정신병이 아니라 해질녘 나무들이 바람결에 내는 신음이 귀신의 노랫소리로 들린다. 소설에는 귀신 72회, 유령 24회, 혼령 18회, 망령이 4회 등장한다. 모두 죽은 이의 영혼들이다.“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상상력이 아니에요. 동남아 사람들은 육신이 사라져도 혼령이 일상에 함께한다고 믿지요. 내 작품에서 영혼, 귀신,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일반 사람들의 정서 속에 이렇게 남아 있다는 것을 그대로 쓴 거예요.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 전쟁에서 총에 맞아 죽어도 혼령으로 떠돌죠. 문화권이 다르면 이해하기 힘들겠죠. 공산주의 유물론의 관점에서는 유령이 뭐냐 하지요. 가톨릭 신도들은 영혼이 위로 간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위가 아니라 혼령은 영원히 우리 주변에 있다고 믿어요.” 작가로서 그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소통시키는 영매(靈媒)다. 죽은 자 중에 호아라는 여성 병사 얘기가 가장 마음 아팠다. 호아라는 이름은 이 소설에서 98회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세 번째로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다. 호아는 부대원의 길을 인도하는 선도병이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 미군이 있는 곳으로 부대원을 인도했다. 그들을 포위한 미군이 다가오자 부대원을 남기고 호아가 미군에게 뛰어든다. 풀밭에 쓰러진 호아 위로 알몸의 미군들이 숨을 헐떡이며 먼저 차지하려고 으르렁댔다. 집단 강간당하는 장면을 숨어서 보면서도 끼엔은 수류탄을 던지지 못한다. 수류탄을 던지면 위치가 발각돼 죽을까 봐. 수류탄을 던지지 못했던 비겁함은 살아남은 끼엔에게 가장 아픈 트라우마로 남는다. “내가 경험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쟁 때 여군들이 생포되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미군에게 강간당한다는 얘기가 많았어요. 그 얘기를 쓴 거죠.” 영화 ‘지옥의 묵시록’, ‘디어헌터’, ‘택시 드라이버’, ‘람보’, ‘플래툰’ 등은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한 미국 영화다. 지금까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미국의 시각을 통한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오리엔탈이면서 오리엔탈리즘 시각에서 베트남을 소비해 왔다. 이 영화들은 전쟁에 참여했던 미국인들이 겪는 내면의 싸움이며, 자가치유 방식이다. 미국인이 겪는 베트남전 트라우마가 이 영화들이 주제다. 그나마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안정효의 ‘하얀전쟁’,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은 우리의 입장에서 전쟁이 파괴한 인간을 그리고 있다. 한편 ‘전쟁의 슬픔’에는 영웅이 없다. 도박과 환각에 빠진 베트남 병사들이 등장한다. 짐승으로 오인해 민간인을 사살하는 장면도 나오기에, 베트남 정부로서는 지금도 꺼림칙한 소설이다. 승리한 전쟁을 ‘슬픔’으로 표현했다며 처음엔 제목이 ‘사랑과 숙명’으로 바뀌어 나왔다. 1995년 런던 인디펜던츠 번역 문학상, 1997년 덴마크 ALOA 외국문학상, 2011년 일본경제신문 아시아 문학상 등을 받았지만, 정작 베트남 정부로서는 감추고 싶은 금서(禁書)였다. 베트남 국내에서 학생들은 지금도 이 소설을 잘 모른다. 한국에 온 베트남 유학생에게 물어 보면 외국에서 이 소설이 유명하다는 사실을 한국에 와서 알았다는 학생도 있다.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인공 끼엔처럼 그는 아직도 악몽에서 괴로워하는 걸까. 이만큼 끔찍한 소설을 쓴 사람이 정상인으로 살 수 있을까. 베트남 파병을 다녀와서 매일 군인 수통에 소주를 넣어 마시고, 군용 단도를 차고 다니면서 주변 사람을 위협하는 등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돌아가신 한국인 얘기를 전했다. “많이 회복됐어요. 글을 쓰는 창작 활동이 치료에 도움이 되지요. 그래요. 그럴 거예요. 전쟁 후 베트남 사람들은 그래도 주변에서 대화도 하고 함께 울어 주고 그러는데 미군이나 한국군은 더 심하게 트라우마를 겪었을 거예요. 미군이나 한국군은 낯선 타국에서 전쟁의 비극을 겪은 것이죠. 베트남 군인은 함께 전쟁을 겪은 베트남 사람들이 위로해 주고 풀 수 있었는데, 미군이나 한국군은 아무도 공감해 주지 않았을 거예요. 대화 상대도 없으니 몸부림치다가 죽어갔을 거예요.” 이제 가장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1975년 4월 30일, 제27청년여단 소년병 500명 가운데 살아남은 열 명 중 한 명이었다. 전쟁의 트라우마로 방황하던 그는 어떻게 작가의 길을 선택했을까.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교수였던 아버지는 작가 친구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분들은 전쟁 무용담이나 문학 작품 얘기를 많이 했죠. 군에 입대하고 6년 동안 전쟁터에 있느라 글을 잊었지요. 전쟁 끝나고 돈 벌러 다녔는데, 아버지 친구들이 글재주 있다며 기억해 주셔서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간 거죠. 처음엔 전쟁 중 청년들의 연애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가장 깊은 체험이 전쟁이었기에 전쟁 소설을 쓴 겁니다.” 그에게 글쓰기는 슬픔을 극복하는 생존 방식이었다. 통일을 경험한 베트남 작가로 한국인에게 전할 말씀을 부탁드렸다. “베트남은 무력통일이었기에 승자 북베트남과 베트콩이 남베트남 체제를 완전히 바꿔 놓았어요. 통일 후 갈등이 컸어요. 남베트남 사람 중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은 보트피플로 망명했어요. 전쟁을 통한 통일은 가짜 통일이에요. 진짜 통일은 평화를 통한, 대화를 통한 통일이에요. 기다리는 시간이 중요해요.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인내가 필요해요.” 현재 한국의 교역국 1위는 중국, 2위는 미국, 3위는 베트남이다. 문재인 정부가 베트남과의 교역을 중요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 소설과 베트남 문학은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텍스트다. 내년에 베트남 문학과 교류를 추진을 위해 베트남에 가볼 요량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2000년에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작가회의 회장이었을 때 베트남 작가협회와 결연을 했어요. 이후 경제협력은 많이 하는데 문학 쪽 교류는 거의 없는 편이죠.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 등 일본 문학이 많이 번역되는데 한국 문학 번역은 고은, 방현석, 김영하 외에 뜸해요.” “깜언깜언(정말 감사합니다).” 배운 표현을 이제야 써 봤다. 기회 있을 때마다 조금씩 베트남 말을 써 봐야겠다. 해물탕이 많이 남았는데 더는 먹을 수 없었다. 위장이 아니라 마음이 쓰렸다. 아차,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그의 필명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땅의 이름이다. 개울물도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흐르는 베트남의 지명이다. 그는 국제적인 인물로 적지 않은 인세를 받아 서방으로 이민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전쟁 중 정글에서 자던 병사처럼 지금도 허름한 곳에서 노숙인처럼 살아야 편하다는 그의 선조가 견디며 살던 땅의 이름이다. 1952년생 바오닌. 시인·숙명여대 교수
  • [월드피플+] 난자 기증자와 수여자, 같은 대학 동아리 선후배로 만나다

    [월드피플+] 난자 기증자와 수여자, 같은 대학 동아리 선후배로 만나다

    오래 전 난자를 기증했던 여성과 난자 수정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된 여성이 뜻밖의 만남을 가졌다. 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 재학 중인 엘리자베스 가바(18)와 캘리포니아 주 에스콘디도 시에 사는 세 아이 엄마 에이미 스록모턴(42)의 놀라운 사연을 소개했다. 사연에 따르면,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가바가 자신의 '뿌리'에 늘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바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난자 공여와 대리모를 통해 태어난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18살이 되서야 자신의 출생 파일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어렵게 접근권을 얻었지만 자료는 생각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했다. 그러나 가바는 갖은 노력 끝에 난자를 기증한 여성이 1977년에 태어났고 ‘에이미’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그녀가 서던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전과목 A를 맞은 음대생이었음을 알아냈다. 놀라운 점은 가바 역시 같은 대학 음대생이라는 사실. 비슷한 점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대학 아카펠라 동아리에서 활동중이던 가바는 친구와 함께 온라인 추적을 통해 기증자인 에이미 스록모턴도 20년여 전에 같은 아카펠라 그룹에서도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가바는 스록모턴이 남긴 자료에서 향후 난자 공여로 태어난 생명과 연락할 생각이 있음을 확인했고, 늘 누군가가 자신을 찾을 거라 생각했던 스록모턴 역시 흔쾌히 가바와의 만남에 응했다. 그리고 지난 달 30일 두 사람의 첫만남이 이뤄졌다. 스톡모턴은 페이스북에 함께 노래하는 영상과 글을 공유하며 “굉장히 좋은날이다. 그녀를 알게 돼 매우 흥분됐다. 우리의 음성을 듣고 유전은 속일 수 없음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불임으로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부부가 가족을 꾸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 난자 기증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가바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폭스뉴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데드풀2’ 라이언 레놀즈 “죽을 때까지 한국팬 잊지 못할 것”

    ‘데드풀2’ 라이언 레놀즈 “죽을 때까지 한국팬 잊지 못할 것”

    5월 16일 전 세계 최초 개봉을 확정한 영화 ‘데드풀 2’(원제: DEADPOOL2, 감독: 데이빗 레이치, 주연: 라이언 레놀즈, 조슈 브롤린,수입/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에서 잔망스러운 데드풀 역으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라이언 레놀즈가 내한 기자간담회를 성황리에 마쳤다.오는 5월 16일 개봉 예정인 영화 ‘데드풀 2’의 기자간담회가 오늘 오전 10시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영화 ‘데드풀 2’는 액션은 기본, 거침없는 입담과 유머로 중무장한 마블 역사상 가장 매력 터지는 히어로 데드풀이 미래에서 온 위기의 히어로 케이블을 만나 원치 않는 팀을 결성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데드풀’ 1편은 2016년 개봉 당시 청불 외화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우며 331만 관객을 동원, 월드 와이드 R등급 역대 1위를 기록하는 등 역대급 호평과 함께 전 세계를 사로잡은 바 있다. 이번 ‘데드풀 2’는 전편 보다 화려해진 액션, 스케일은 물론 데드풀 특유의 찰진 입담과 유머까지 더욱 업그레이된 볼거리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날 진행된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데드풀 2’의 홍보차 처음 한국을 방문한 라이언 레놀즈는 영화에 대한 진솔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먼저 라이언 레놀즈는 “한국에 와서 정말 설렌다. 죽기 전까지 한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며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된 소감에 대해 전했다. 이어 전날인 1일에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라이언 레놀즈는 “이렇게 환대를 받은 적이 없었는데 어제 밤은 정말 최고였다. 팬들의 사랑이 대단했다”며 직접 팬들과 만나 가졌던 특별했던 시간들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이번 작품에 대한 취재진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라이언 레놀즈는 “데드풀의 이야기를 가장 진정성 있게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1편 때도 각본에 조금 참여했다. 2008년부터 공동 각본가들과 함께 팀워크를 발휘하면서 계속 작업을 했고 우린 이번 속편을 가족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며 11년 동안의 ‘데드풀’ 영화에 바친 그의 남다른 열정과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데드풀 캐릭터에 대한 매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전했다. 라이언 레놀즈는 “데드풀은 스스로에게 굉장히 자신감 넘치는 캐릭터고 세련된 유머감각을 갖춘 매력적인 캐릭터다. 많은 부분에 있어 저랑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며 데드풀과 자신이 완벽한 싱크로율을 선보일 수 있었던 이유를 전했다. 이어 “데드풀 슈트는 매우 타이트하고 다소 무겁기 때문에 민첩한 몸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다양한 액션 연기를 직접 소화해야 했기에 안전에 주의하며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며 슈트를 착용했을 때의 고충과 다양한 액션씬을 구사하기 위해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일명 귀막히는(?) 케미를 예고한 데드풀의 새로운 친구들인 케이블 역의 조슈 브롤린, 도미노 역의 재지 비츠의 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조슈 브롤린이 가진 묵직한 에너지가 참 좋다. 케이블 역에 조슈 브롤린만한 배우가 없었고 그를 캐스팅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우린 작품을 통해서 케이블의 매력을 보여줄 예정이다”고 전했고 “재지 비츠의 오디션은 완벽했다. 대본 리딩을 너무나도 잘했고 각본가인 렛 리즈는 그의 오디션을 보고 임팩트를 받아 고개를 끄덕였고, 모든 제작진들이 만족했다”며 두 사람을 캐스팅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히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라이언 레놀즈는 “한국에서의 흥행도 기대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흥행한다면 소주 한 병을 원샷하겠다”라는 파격적인 공약을 제시하며 “믿기 힘들겠지만 ‘데드풀 2’는 가족이 함께 볼 수 있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영화다. 그리고 다른 히어로 영화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매 장면 마다 팬들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며 예측 불가한 스토리는 물론 오직 데드풀만이 할 수 있는 상상초월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해 더욱 기대를 높였다. 영화 ‘데드풀 2’는 피플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뽑힌 라이언 레놀즈가 데드풀 역으로 다시 돌아오고, ‘아토믹 블론드’를 통해 스타일리시한 액션과 감각적인 영상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데이빗 레이치가 메가폰을 잡았다. 새로운 마블 히어로 케이블 역에 조슈 브롤린, 도미노 역에 재지 비츠가 캐스팅 되었고, 모레나 바카린, 브리아나힐데브란드 등 전편의 반가운 출연진들이 다시 합류하여 기대를 모은다. ‘데드풀 2’는 5월 16일 전 세계 최초 개봉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월드피플+] 결혼식 신부 위한 기적…7년 만에 휠체어서 일어난 신랑

    [월드피플+] 결혼식 신부 위한 기적…7년 만에 휠체어서 일어난 신랑

    7년 동안이나 휠체어 신세였던 남성이 평생에 한번 뿐인 자신의 결혼식날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위해 두 발로 서는 기적을 선보였다. 지난달 2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 지역 방송 KDVR에 따르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을 맞이한 주인공은 플로리다 주 주피터에서 결혼식을 올린 크리스 노턴(26). 크리스는 2010년 10월 16일, 대학 신입생이 된지 단 6주 만에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미식축구를 하다가 상대편 공격으로 인해 척추 부상을 입어 목 아래가 완전히 마비됐기 때문이다. 의사는 그에게 다시 걸을 수 있는 확률이 단 3%에 불과하다는 가슴아픈 진단을 내렸다. 크리스는 큰 충격에 빠졌지만 당시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준 여자친구 에밀리 섬머스 노턴(25)의 헌신 덕분에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에밀리의 도움으로 졸업식 무대에도 섰던 노턴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역경을 이겨낼 것이다. 여자친구와의 결혼식에서 걷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2015년 5월 정식으로 에밀리에게 청혼한 크리스는 하루 4~5시간의 물리치료와 훈련을 지속했다. 여자친구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하나로 결혼식 전날까지 재활치료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 크리스는 기적을 몸소 보여주었다. 신부 에밀리의 부축을 받고 약 6.4m의 거리를 함께 걸은 것이다. 비틀거리는 불안한 걸음이긴 했지만 부부의 행진에 하객들은 기립박수로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뜨거운 입맞춤으로 사랑을 약속했다 그는 “에밀리와 함께 걷고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에밀리는 내 평생의 연인이자 나의 원더우먼”이라면서 “부부로서 기적을 만드는데 7년이 걸렸지만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며 기뻐했다. 에밀리도 “크리스가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던 때와 비교하면 정말 놀라운 진전이었다. 절대 잊지 못할 하루였다”며 웃었다. 사진=사라케이트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데드풀 2’ 라이언 레놀즈, 에릭남과 만난다

    ‘데드풀 2’ 라이언 레놀즈, 에릭남과 만난다

    가수 에릭남이 영화 ‘데드풀 2’(원제: DEADPOOL 2)의 라이언 레놀즈와 함께 네이버 무비토크 라이브를 진행한다. 마블 역사상 가장 잔망스럽고 매력적인 캐릭터 ‘데드풀’로 다시 돌아온 라이언 레놀즈의 특급 내한 일정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5월 2일(수) 오후 3시 45분에 라이언 레놀즈와 에릭남이 함께하는 네이버 무비토크 라이브가 진행된다. 이번 무비토크의 진행을 맡게 된 에릭남은 공개된 예고 영상에서 “제가 엄청나게 설레는 뉴스를 가지고 왔습니다. 바로 5월 2일, 제가 데드풀을 만나게 됩니다”라며 라이언 레놀즈와의 만남에 대한 설렘을 내비쳤다. 영화 ‘데드풀 2’는 피플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뽑힌 라이언 레이놀즈가 데드풀 역으로 재등장하고, ‘아토믹 블론드’를 통해 스타일리시한 액션과 감각적인 영상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데이빗 레이치가 메가폰을 잡았다. 새로운 마블 히어로 케이블 역에는 조슈 브롤린이, 도미노 역에는 재지 비츠가 출연하며, 모레나 바카린, 브리아나 힐데브란드 등 전편의 반가운 출연진들이 다시 등장해 기대를 모은다. 한편, ‘데드풀 2’는 마블 히어로 데드풀이 미래에서 온 위기의 히어로 케이블을 만나 원치 않는 팀을 결성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5월 16일 전 세계 최초 개봉.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송혜민의 피플스토리+] 유괴된 지 24년 만에 부모 찾은 남성

    [송혜민의 피플스토리+] 유괴된 지 24년 만에 부모 찾은 남성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 살던 장씨 부부는 24년 전 그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부부가 공사장에서 일하는 동안 당시 3살이었던 아들을 공사장 옆에서 놀게 했다가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날이었죠. 가난했던 부부는 당시 아들의 사진 한 장조차 가지고 있지 않아서, 실종 전단지를 만드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오른쪽 눈 아래에 작은 점이 있었고, 광둥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 정도만으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찾는 일은 불가능했던 거죠. 부부는 그렇게 몇 년을 절망 속에 살다 실종된 지 한참 후에야 경찰이 실종자 수색을 위한 DNA 샘플을 채취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아들의 DNA가 남아있는 물건을 경찰 측에 전달했습니다. 그렇게 아들을 잃어버린 지 24년이 지난 지난 1월, 장씨 부부는 중국 션전시 경찰로부터 연락 한 통을 받았습니다. 성이 ‘웡’씨로 알려진 한 남성의 DNA가 오래 전 장씨 부부가 실종 신고했던 아들의 DNA와 일치한다는 연락이었죠. 경찰 조사 결과 장씨 부부의 아들인 장푸칭은 현재의 양부모에게 유괴돼 키워져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자신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유괴범이자 양부모에게 납치돼 20여 년을 자라온거죠. 장푸칭이 스스로가 유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24년 만에 자신을 낳아 준 친부모를 찾게 된 장푸칭은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베이징청년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매년 적어도 1만 명의 아이들이 유괴되거나 인신매매되고 있습니다. 이는 공식 집계일 뿐, 실제로 집계되지 않은 피해 아동을 포함하면 그 수는 10배 이상이 될 것이라는 정부 자료도 있습니다. 중국 현지에서는 DNA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실종 아동을 찾는 일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약 30년 전 유괴됐던 쓰촨성 출신의 남성이 자신의 진짜 가족을 찾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DNA 데이터베이스가 활발하게 이용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유괴와 인신매매로 더 이상 한 평생 고통속에 사는 아이들이 없어야 겠습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비즈카페] 패션 전문가들은 왜 리설주 여사 발에 주목했나

    [비즈카페] 패션 전문가들은 왜 리설주 여사 발에 주목했나

    만찬 전부터 예측 분분했지만 리, 점잖은 검정 펌프스힐 선택 “北여성 상징” “예의·격식 차려”“남북 정상회담은 역사적인 자리인 만큼 분명히 검은색일 것이다.” vs “소문난 패셔니스타답게 점잖되 트렌디한 색을 고를 것이다.” 지난 27일 국내 패션 전문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난데없는 ‘공방’입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이날 저녁 만찬장에 모습을 드러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의 ‘구두’ 얘기였습니다. 무난하게 블랙 슈즈(검정 구두)를 신을 것이라는 관측과 아닐 것이라는 관측이 엇갈린 것이지요. 블랙 슈즈파는 북한의 패션이 최근 많이 개방됐다고 하더라도 아직 구두만큼은 보수적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앞서 서울을 찾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도 블랙 슈즈였다는 겁니다.●리여사 中 방문땐 베이지톤 힐 신어 그러고 보니 북한 TV에 나오는 평양 여성들의 구두는 대부분 검정입니다. 가죽 영업만 20년 넘게 했다는 한 관계자는 “검정 가죽은 색감을 내기가 가장 쉽고 파스텔톤 등 다른 색상을 입히려다 실패해도 덧칠해 돌릴 수 있다”면서 “다른 가죽보다 저렴하고 구하기 쉽다는 점도 북한 여성들의 블랙 슈즈 사랑의 한 원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비(非)블랙 슈즈파는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반대 논리를 폈습니다. 한 패션 전문가는 “리 여사는 북한의 최고존엄 아내이고 패피(패션 피플)인 만큼 일반인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도 검정 구두를 신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리 여사가 지난달 국제 데뷔 무대인 중국 방문 때 베이지톤의 힐을 신었다는 점도 그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TV에 잡힌 대로 ‘블랙 슈즈’ 승(勝)이었습니다. 검은색 벤츠에서 맨 먼저 모습을 드러낸 리 여사의 구두는 무난한 느낌의 검은색 펌프스 힐(왼쪽)이었습니다. 또 다른 패션 전문가는 “정상회담이라는 중요한 자리인 만큼 튀기보다는 예의와 조화, 격식을 선택한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같은 정장 구두라도 흔히 ‘뾰족 구두’라고 불리는, 앞코가 아찔하게 뾰족하고 굽이 얇으면서 높은 ‘스틸레토 힐’은 섹시한 느낌을 주지만 펌프스 힐은 상대적으로 점잖은 느낌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리 여사는 구두와 같은 색상의 검정 ‘스퀘어 클러치’(사각 손가방)를 들어 패션 감각을 은연중에 과시했다는 게 업계의 해석입니다. 김여정 제1부부장도 이번에 어김없이 검은색 리본 구두를 선택했습니다. ●“北여성 화사해졌지만 구두는 검정” 패션업에 20년 넘게 몸담은 김모씨는 “북한 여성들의 옷과 화장이 화사해지고 있는데 구두만큼은 아직 죄다 블랙이어서 아쉽다”면서 “평양의 패션은 아직 구두에 멈춰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장식 없는 깔끔한 베이지 색 힐(오른쪽)을 신었습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월드피플+] 유일하게 아내 만은 기억하는 치매 할아버지 사연

    [월드피플+] 유일하게 아내 만은 기억하는 치매 할아버지 사연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스스로까지 잃어가는 치매는 현재 인류가 직면한, 그 어떤 질병보다 가장 두려운 질병으로 꼽힙니다. 그만큼 환자 본인과 사랑하는 가족에게 오래도록 아픔을 남깁니다. 치매 환자는 서서히 자신과 자신 주변의 것을 잊어갑니다. 영국에 사는 93세 할아버지 레이 미첼 역시 마찬가지였죠. 미첼은 더 이상 자신의 딸을 비롯한 가족 그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8년 전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내를 제외하고는요. 최근 영국 BBC의 한 프로그램은 미첼의 절절하고 아름다운 사연을 다큐멘터리로 다뤘습니다. 영상에는 주름 진 손으로 아내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바라보며 눈물짓는 그의 모습이 절절하게 담겼습니다. 그는 “나는 언제나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그녀와 결혼할 땐 더없이 기뻤죠. 하지만 아내가 떠난 지금, 무엇으로 살아야 합니까. 삶의 가치가 없는 이런 식으로 사는게 맞을까요?”라고 반문하며 그리움의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미첼이 이토록 아내를 그리워하는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그는 10년 전 당뇨병으로 다리 한 쪽을 잃었습니다. 이미 80대가 된 그의 곁에는 그의 다리가 되어 준 아내가 있었죠. 얼마 전 당뇨 합병증으로 쓰러진 그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하지만 의료진의 진단보다 무려 10주나 빨리 퇴원한 것은, 모든 것을 잊은 치매환자인 미첼이 아내와의 추억이 있는 집으로 가길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현재까지 그는 통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미첼의 딸은 “아버지는 그저 겉모습만 같을 뿐, 더 이상 예전의 내 아버지 같진 않아요. 그는 더 이상 우리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죠. 하지만 꿈을 꿀 때마저도 어머니를 찾았어요. 어머니는 그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거죠”라고 말하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아내와 아내를 향했던 자신의 사랑을 잊지 않는 미첼이 건강히, 조금 더 오래도록 그녀를 기억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송혜민의 피플스토리+] 치매에도 아내 만은 기억하는 90대 할아버지

    [송혜민의 피플스토리+] 치매에도 아내 만은 기억하는 90대 할아버지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스스로까지 잃어가는 치매는 현재 인류가 직면한, 그 어떤 질병보다 가장 두려운 질병으로 꼽힙니다. 그만큼 환자 본인과 사랑하는 가족에게 오래도록 아픔을 남깁니다. 치매 환자는 서서히 자신과 자신 주변의 것을 잊어갑니다. 영국에 사는 93세 할아버지 레이 미첼 역시 마찬가지였죠. 미첼은 더 이상 자신의 딸을 비롯한 가족 그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8년 전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내를 제외하고는요. 최근 영국 BBC의 한 프로그램은 미첼의 절절하고 아름다운 사연을 다큐멘터리로 다뤘습니다. 영상에는 주름 진 손으로 아내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바라보며 눈물짓는 그의 모습이 절절하게 담겼습니다. 그는 “나는 언제나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그녀와 결혼할 땐 더없이 기뻤죠. 하지만 아내가 떠난 지금, 무엇으로 살아야 합니까. 삶의 가치가 없는 이런 식으로 사는게 맞을까요?”라고 반문하며 그리움의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미첼이 이토록 아내를 그리워하는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그는 10년 전 당뇨병으로 다리 한 쪽을 잃었습니다. 이미 80대가 된 그의 곁에는 그의 다리가 되어 준 아내가 있었죠. 얼마 전 당뇨 합병증으로 쓰러진 그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하지만 의료진의 진단보다 무려 10주나 빨리 퇴원한 것은, 모든 것을 잊은 치매환자인 미첼이 아내와의 추억이 있는 집으로 가길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현재까지 그는 통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미첼의 딸은 “아버지는 그저 겉모습만 같을 뿐, 더 이상 예전의 내 아버지 같진 않아요. 그는 더 이상 우리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죠. 하지만 꿈을 꿀 때마저도 어머니를 찾았어요. 어머니는 그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거죠”라고 말하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아내와 아내를 향했던 자신의 사랑을 잊지 않는 미첼이 건강히, 조금 더 오래도록 그녀를 기억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월드피플+] 암으로 세상떠나는 엄마와 어린 딸의 마지막 키스

    [월드피플+] 암으로 세상떠나는 엄마와 어린 딸의 마지막 키스

    암에 걸린 엄마가 8살 딸과 작별의 키스를 끝으로 세상을 떠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했다. 23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지난 18일 잉글랜드 에식스주의 말기 환자용 호스피스에서 암 투병중이던 비키 펜(38)과 딸 록시(8)의 마지막 순간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16년 7월 가슴에 혹을 발견한 비키는 병원에서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초기에 침윤성 소엽의 유방암(invasive lobular breast cancer)이 폐경 여성에게 가장 흔한 암으로 완치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듬해 5월 희망은 곧 2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불행한 소식으로 바뀌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록시의 아빠 밥이 심장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지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었다. 비키는 “딸은 이미 아빠를 잃었다. 이제 엄마까지 잃을 예정인데, 내가 아닌 우리 딸이 불행한 사람이 된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남겨진 마지막 2년을 최대한 딸과 함께 보내며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주기로 결심했다. 플로리다주로 둘 만의 여행을 떠났고, 딸이 엄마가 보고 싶은 순간마다 열어 볼 수 있게 카드와 유품으로 가득채운 ‘추억 상자’도 만들었다. 비키는 “매년 딸의 생일, 약혼, 결혼식을 축하하는 카드를 샀다. 딸은 중요한 때가 오면 하나씩 열어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딸이 내가 항상 함께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의무적인 유방암 검진 나이를 25세로 낮추는 청원을 시작해 벌써 1만 명이 넘는 서명을 얻었다. 비키는 “나이만 믿고 내가 유방암에 걸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록시처럼 다른 아이들이 엄마를 이른 나이에 잃지 않도록 더 빨리 진단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글을 남겼다. 한편 록시를 거둔 비키의 언니 테레사(41)는 “록시가 의외로 엄마의 죽음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새 집, 새 가족, 새 학교, 완전히 새로운 삶인데 용감하게 잘 지내고 있다”며 “동생은 남편이 죽고 나서 2년 내내 스스로를 가엾다고 여기지 않았다. 딸에게 최선을 다한 강한 사람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진=페이스북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송혜민의 피플스토리+] 세계서 가장 작은 ‘인공 판막’ 가진 3세 아이

    [송혜민의 피플스토리+] 세계서 가장 작은 ‘인공 판막’ 가진 3세 아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심장판막을 이식받았던 신생아가 무사히 위기를 극복하고 3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미국 피플 등 현지 언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에 사는 새디 루텐버그(3)는 2014년 11월 출생 당시 선천적인 심장 결함으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였습니다. 루텐버그의 병명은 완전 방실관 결손(CAVC)으로, 미국에서 매년 1만 명 중 1명에게서만 나타나는 희소질환입니다. 완전 방실관 결손은 심장 한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있는 질환으로, 심방과 심실을 연결하는 방실관이 결손돼 원활한 혈액의 공급을 방해하죠. 루텐버그는 곧바로 2번의 대수술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큰 차도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심장 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적절한 치료법을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 생명의 빛을 잃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바로 미국의 소아과 심장혈관 전문가인 조나단 첸 박사와 시애틀 아동심장센터였습니다. 첸 박사와 아동심장센터 관계자는 루텐버그의 부모에게 현재 시험 중인 인공 심장판막이 있다고 소개했는데요. 이것은 크기가 15㎜에 불과한 ‘세계에서 가장 작은 인공 심장판막’으로, 당시에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2015년 5월, 루텐버그의 부모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인공 심장판막 이식수술 동의서에 사인했습니다. 당시 루텐버그는 생후 8개월에 불과했고, 이 초소형 인공 심장판막에 대한 임상실험 결과는 단 1건도 없어 더욱 위험한 상황이었죠. 하지만 수술은 기적적으로 성공했고, 루텐버그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인공 심장판막’을 심장에 단 세계 최초, 최연소 환자가 됐습니다. 루텐버그는 특유의 쾌활한 성격으로 새로운 심장판막에 적응했고 어느덧 3번째 생일을 맞이할 즈음, FDA는 루텐버그가 이식받은 인공 심장판막을 신생아 치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공식 허가했습니다. 루텐버그의 부모는 “딸은 여전히 심장박동을 항상 체크하는 기기를 착용해야 하지만, 동물원을 좋아하고 언제나 뛰어놀 수 있길 바라는 평범한 3살 소녀”라며 의료진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딸을 포기하지 않은 부모, 어린 생명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인공 심장판막 개발과 수술에 집중한 의료진, 그리고 누구보다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그 어려운 수술을 여러 차례나 견뎌 낸 루텐버그, 이들 모두에게 경의의 박수를 보냅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월드피플+] 30년 째 같은 옷입는 폐품팔이 할아버지, 알고보니 기부왕

    [월드피플+] 30년 째 같은 옷입는 폐품팔이 할아버지, 알고보니 기부왕

    허름한 옷을 30년째 입으면서도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100만 위안(1억7000만원)을 기부해 온 노인의 사연이 감동을 주고 있다. 충칭만보는 24일 중국 충칭시 통량구(铜梁区)에 사는 88살 우딩푸(吴定富) 할아버지의 사연을 소개했다. 할아버지는 지난 24년 동안 매일 10km 이상을 왕복하며 폐품을 주워오고 있다. 식사비를 아끼기 위해 폐품을 주우러 아무리 먼 곳까지 가더라도 반드시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해결한다. 교통비 1위안(170원)을 아끼기 위해 버스를 타지 않고 반드시 걸어 다닌다. 실밥이 뜯겨 나간 낡은 중산복(中山服:중국 인민복)을 30년 동안 입어왔다. 이처럼 빈곤해 보이는 할아버지는 사실 가난한 삶을 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과거 초등학교 교장이었고, 지금까지 매달 4000위안의 퇴직연금이 나온다. 여기에 연말 각종 수당 1만7000여 위안까지 합치면 일 년 수입이 6만5000위안(1100만원)이 넘는다. 노인 혼자 살기에는 크게 부족하지 않은 액수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이처럼 빈곤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다름 아닌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학생들을 돕기 위해서다. 할아버지는 현지의 한 초등학교에 매년 3000위안씩 6년간 기부해 오고 있고, 3명의 대학생에게 1인당 학기별 5000위안을 기부해왔다. 또한 원촨(汶川) 지진 복구를 위한 기부금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할아버지가 퇴임 후 35년간 기부한 퇴직연금과 각종 수당을 합치면 100만 위안이 넘는다.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날마다 폐품을 주우러 다니지만,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진정한 부자’라고 부른다. 진정한 나눔과 베풂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진=충칭만보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화끈하게 돌아왔다!…‘데드풀 2’ 메인 예고편

    화끈하게 돌아왔다!…‘데드풀 2’ 메인 예고편

    영화 ‘데드풀 2’가 더욱 화려한 액션과 스케일을 담은 메인 예고편을 공개했다. ‘데드풀 2’는 마블 히어로 데드풀이 미래에서 온 위기의 히어로 케이블을 만나 원치 않는 팀을 결성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공개된 예고편은 전편을 능가하는 더욱 화끈한 액션은 물론 데드풀이기에 가능한 유머들이 담겨 있다. 먼저 데드풀은 미래에서 온 케이블의 위협으로부터 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 팀 ‘엑스포스’를 결성한다. 베들럼부터 샤터스타, 도미노까지, 엑스포스에 합류한 새로운 팀원들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전한다. 특히 ‘행운 조작’ 능력을 지닌 도미노는 “난 운이 좋아”라면서 걸크러쉬 액션의 진수를 선보이며 독보적 매력의 캐릭터 탄생을 알린다. 데드풀과 케이블의 대결을 비롯해 도심 속 도로가 갈라지고, 트럭이 뒤집히는 장면에 이어 다양한 폭발신과 헬기에서 팀원들이 뛰어내리는 장면 등 더욱 확장된 스케일과 다채로운 액션이 데드풀의 화려한 귀환을 예고한다. 영화 ‘데드풀 2’는 피플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뽑힌 라이언 레이놀즈가 데드풀 역으로 재등장하고, ‘아토믹 블론드’를 통해 스타일리시한 액션과 감각적인 영상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데이빗 레이치가 메가폰을 잡았다. 새로운 마블 히어로 케이블 역에는 조슈 브롤린이, 도미노 역에는 재지 비츠가 열연하며, 모레나 바카린, 브리아나 힐데브란드 등 전편의 반가운 출연진들이 다시 등장해 기대를 모은다. 영화는 오는 5월 16일 전 세계 최초 개봉한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사단법인 우리희망, ‘사랑의 음식나누기’ 무료급식 봉사활동

    사단법인 우리희망, ‘사랑의 음식나누기’ 무료급식 봉사활동

    지난 23일, 사단법인 우리희망은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서울시 개포동 강남사회복지관에서 ‘사랑의 음식나누기’ 행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100여명의 장애인 및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부대찌개와 족발을 점심식사로 대접했다. 또한 이번 행사는 부함식당, 불불이족발 등 외식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주식회사 비앤비푸드시스템, 강남장애인복지관이 주관하고 우리경매, 레드크리에이티브컴퍼니, 미래에셋금융서비스, 피플인사이드가 후원으로 이뤄졌다. 우리희망 황성일 대표는 “국내외 소외된 취약계층의 후원과 봉사활동을 통해 자립을 돕는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 중”이라며 “앞으로도 급식봉사는 물론 사회적 약자를 위해 후원과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월드피플+] 2006년 만난 야구스타와 암투병 어린이…12년 후 동료되다

    [월드피플+] 2006년 만난 야구스타와 암투병 어린이…12년 후 동료되다

    12년 전 암 투병중이던 한 소년이 자신의 야구 우상과 만난 이후 같은 구단의 선수로 다시 마주치게 된 기막힌 사연이 전해졌다. 20일(현지시간) 미국 NBC뉴스는 메이저리그 LA다저스 구단의 선수 데빈 스멜처(22)와 체이스 어틀리(40)의 사연을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9살 나이에 소아암 판정을 받은 스멜처는 지난 2006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홈구장인 시티즌스 파크에서 홈 팀의 스타 어틀리를 처음 만났다. 자신의 야구 영웅 어틀리에게 친필 사인이 담긴 모자를 선물받은 그는 “메이저리그 경기장으로 들어가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를 만나는 일은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다”면서 "당시 나에게 야구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때부터 어틀리와 같은 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회상했다. 암 치료가 한창일 때 스타를 만나 받은 정신적인 힘을 얻게된 것이 그에게는 잊지 못할 자극이 된 셈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지난 2016년 스멜처는 실제로 프로야구 선수로 우뚝섰다. 드래프트를 통해 LA다저스의 5라운드 지명을 받고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달 초 아직은 마이너리거인 스멜처는 우연히 클럽 회관에서 우틀리와 재회했다. 12년 만에 우상이 아닌 동료로 마주친 것이었다. 스멜처는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통계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다. 어틀리는 여전히 겸손함 그대로였다”며 감격해했다. 스멜처와의 인연을 기억한 어틀리 역시 "우리는 매우 특별한 인연"이라면서 “그와 가족들이 겪은 일을 상상할 수는 없지만 암을 이겨내고 야구선수로서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웃었다. 어틀리를 통해 가장 힘든 시기를 극복한 스멜처는 현재 소아암 어린이들을 돕기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병원에 가서 소아암 어린이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있다"면서 "아이들과의 소통이 그들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도움을 받은 것처럼 아픈 아이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인스타그램(@devinsmeltzer)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월드피플+] 30년 넘게 이웃집 중증장애인 돌본 60대 미망인

    [월드피플+] 30년 넘게 이웃집 중증장애인 돌본 60대 미망인

    장애가 있는 이웃을 수 십년 동안 곁에 두고 보살핀 여성의 사연이 감동을 주고있다. 그녀는 가난하지만 그 누구보다 ‘베품’의 의미를 가장 잘 실천하고 있었다. 20일(현지시간) 펑미엔신원(封面新闻) 보도에 따르면, 중국 쓰촨성 출신의 미망인 우 위샤(60)는 심각한 장애가 있는 이웃 남성 류 쓰치앙(56)을 30년 넘게 밤낮으로 돌봐왔다. 류씨의 딱한 사연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였다. 류씨는 6살 때 어머니를, 10살 때는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냈고, 이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력과 청력을 모두 잃었다. 대가족인 집안에서 자랐지만 큰 형이 숨지고 세 명의 누나도 결혼해 멀리 떠나면서 류씨는 혼자 남겨졌다. 그를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우씨는 그때부터 류씨의 손발이 되었다. 그녀는 “30년 전 류씨의 집은 진흙 방이나 다름없었다. 약 20년 동안 류씨 집에서 그를 돌보다 10년 전 그와 함께 살 수 있도록 집 옆에 방 하나를 증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씨의 사정도 녹록치 않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남편이 사망한 뒤 그녀는 세 아이와 조부모를 모두 돌봐야하는 부담을 떠안았다. 그녀는 잡부로 일하면서도 자신의 가족과 류씨의 생계를 책임졌다. 특히 매일 새벽 2시와 5시에 일어나 류씨가 화장실 가는 것을 돕고 그에게 물을 주고있다. 이 때문에 우씨는 수년 동안 하룻밤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으며 친척집도 가보지 못했다. 다행히도 지난해 관계 당국이 우씨의 노고를 인정하고 보조금을 지불하기로 하면서 그녀는 류씨를 돌보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마을 시장 딩 루이잔은 “언젠가 우씨가 그를 돌볼 수 없게 되면 그때는 정부가 나서서 대신할 사람을 찾을 것"이라면서 "아무리 많은 지원을 받는다 해도 지난 30년 동안 정성을 쏟은 그녀를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qq닷컴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월드피플+] 치매 노모, 자전거에 태우고 7년 간 일한 효자

    [월드피플+] 치매 노모, 자전거에 태우고 7년 간 일한 효자

    아픈 노모를 태우고 365일 매일같이 일터를 나가는 아들의 사연이 감동을 주고있다. 18일 중국 시나닷컴과 QQ닷컴 등 외신들에 따르면, 쓰촨성 청두에서 배달 일을 하는 차이 유준(52)은 지난 7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자신의 전기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다녔다. 2011년 처음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늘 곁에 두고 보살피기 위해서다. 아들은 어머니가 더 편안하게 앉을 수 있게 자전거 뒷 좌석을 개조했고, 두 서너 개의 밧줄로 어머니를 자신과 자전거 뼈대에 고정시켜 다치시지 않도록 했다. 그는 “어머니는 가족들을 위해 평생 일하셨다. 그래서 삶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어머니를 돌보는 책임을 소홀이 할 수 없다"면서 "더 이상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어머니에게는 언제나 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모자는 전기 자전거에 몸을 싣고 도시 구석구석을 함께 다닌다. 아들은 자전거에서 내려 물건을 배달할 때는 어머니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손을 꼭 잡고 이동한다. 어머니와 같이 들어갈 수 없는 일부 빌딩을 방문할 때는 동료나 친구들이 그를 대신해 어머니를 지켜준다. 아들은 “오랜 시간동안 어머니를 홀로 남겨 둘 수 없는 것을 아는 친구들은 기꺼이 나를 도와준다. 그들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농담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은 꽉 잡은 손을 놓지 않을 것”라며 웃었다. 사진=qq닷컴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송혜민의 피플스토리+] 세계 최초로 ‘3개의 얼굴’을 가진 남자

    [송혜민의 피플스토리+] 세계 최초로 ‘3개의 얼굴’을 가진 남자

    프랑스 파리에 사는 제롬 하몽(43)은 심각한 피부 종양을 초래할 수 있는 제1형 신경섬유종(neurofibromatosis type 1)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제1형 신경섬유종은 종양이 신경 위에서 자라는 드문 유전질환으로, 얼굴 피부와 근육이 무너지는 무서운 병이죠. 하몽의 얼굴은 망가져 갔습니다. 결국 2010년 1월, 첫 번째 안면이식 수술을 받으면서 ‘생애 두 번째 얼굴’을 가지게 됐죠.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하몽의 몸에서 거부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한 겁니다. 이식된 장기나 조직에 손상을 미칠 수 있는 만성적인 거부반응이 나타난 것은 첫 수술을 받은 지 6년이 지난 2016년이었고, 그는 결국 두 번째 얼굴을 ‘제거’하고 ‘새 얼굴’을 위해 안면이식 수술 대기자 명단에 다시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 드디어 그에게 또 한 번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세 번째 얼굴을 가질, 하늘이 내린 기회였죠. 유럽 조르주 퐁피두 병원 의료진은 지난 1월 하몽의 두 번째 수술을 집도 했습니다. 안면 이식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사람은 전 세계에서 하몽이 최초이자 유일합니다. 첫 번째 수술 때와 같은 거부반응을 줄이기 위해 면역치료를 동반했고, 수술 후에도 3개월가량 언어 치료 및 심리치료를 받았습니다. 달라진 자신의 얼굴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하몽이 살면서 총 3개의 얼굴을 가지게 되기까지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고난이 있었습니다. 특히 첫 안면이식수술 후 거부반응이 나타난 뒤 두 번째 수술을 받기 전까지, 약 3개월 동안 그는 병실에서 말하거나 듣지도 못한 채 ‘얼굴없는 사람’으로 지내야 했으니까요. 두 번째 수술의 안면 기증자는 22세 남성으로 알려졌습니다. 하몽은 BBC와 한 인터뷰에서 “내 나이가 43살인데, 22살의 얼굴을 기증받아 더 어려보이는 얼굴을 갖게 됐다”면서 “처음 안면인식 수술을 받았을 때, 곧바로 달라진 내 얼굴을 받아들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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