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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주 기술자 아닌 사회와 소통하는 음악인 키워”

    “연주 기술자 아닌 사회와 소통하는 음악인 키워”

    7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잡았다. 전공인 비올라로 전향한 것은 15살 때. 이쯤 되면 늦깎이다. 그런데도 로스트로포비치(내셔널심포니), 오자와 세이지(보스턴심포니), 네빌 마리너(미네소타오케스트라) 같은 거장들이 그를 단원(혹은 수석)으로 선택했다. 미국 커티스음악원 총장까지 맡고 있다.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 단원의 25%는 커티스 출신이란 말이 나올 만큼 철옹성을 구축한 엘리트 음악의 요람에 역대 최연소 총장으로 부임했다. 로베르토 디아즈(51) 총장이 주인공이다. 제8회 대관령국제음악제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달 30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콘서트홀에서 만났다. ●이경숙 연세대 명예교수가 장모 대기실의 비올라 케이스는 온통 아내와 아홉 살짜리 딸 소피아의 사진으로 도배돼 있었다. 사진 속 얼굴이 묘하게 동양적이다. 아내 엘리사 리 콜조넨은 한국과 핀란드의 피가 반씩 섞였단다. 국내 1세대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이경숙 연세대 명예교수가 그의 장모다. 주목받는 피아니스트 김규연이 처제다. 한국과는 각별한 인연인 셈이다. 그는 “불고기나 김치를 너무 좋아한다. 한식을 좋아하지 않으면 집에서 아내와 큰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보통 2년 전에 연주 스케줄이 결정되는 그가 빡빡한 여름 일정을 조정하면서까지 대관령을 처음 방문한 것도 한국에 대한 애정이 밴 결정이다. 디아즈 총장은 이번 축제에서 3번의 공연과 더불어 음악학교 교수진으로도 참여한다. 그는 “연주와 가르치는 일 모두 사랑스럽고 흥미로운데 대관령에선 두 가지 일을 모두 할 수 있어 아주 좋다.”면서 “물론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은 언제나 연주”라고 말했다. 1924년 세워진 커티스음악원은 교수진이 95명, 학생은 160명 안팎이다. 교수 한 명에 학생이 두 명 꼴도 채 안 된다. 모든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작곡과 피아노, 지휘전공 학생에게는 재학 중 명품 피아노 스타인웨이를 공짜로 빌려준다. 음악 영재들이 커티스를 선망하는 이유다. ●“음악은 동시대 환경의 산물” 물론 커티스 출신들이 잘나가는 이유는 따로 있다. 연주만 잘하는 기술자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악보에 담기지 않은 시대적 공기까지 꿰뚫어 보도록 교육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아즈 총장은 “단지 유명해지려고 하거나 세계적 수준의 연주 실력을 갖추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면서 “음악은 동시대 환경의 산물이다. 베토벤이 살았던 시대를, 말러가 숨 쉬던 당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곡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미술과 시, 문학, 정치, 사회,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도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 가르칠 수 있는 건 행운” 커티스음악원 재학생 가운데 아시아 학생 비중은 10%를 웃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를 뺀 외국 출신 중 가장 많은 게 한국 학생이다. 디아즈 총장은 “(한국 학생이) 12~15명쯤 된다.”고 설명했다. 총정원이 12명인 비올라 부문에는 내년에 4명의 한국인 학생이 입학할 예정이다. 그는 “한국 학생들은 믿을 수 없는 재능들을 갖고 있다.”면서 “그들을 가르칠 수 있는 내가 운이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음악 영재들이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로 몰리는 ‘쏠림 현상’이 심각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내 오케스트라들이 관악기 파트가 부실한 것도 같은 이유일 터. 디아즈 총장은 “피아노나 바이올린, 첼로 연주자들이 노출되는 일이 많으니 어린 학생들이 선망하는 건 당연하다.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다. 점점 작곡이나 지휘, 타악기 같은 분야에서도 훌륭한 인재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관령축제 예술감독(정명화, 정경화)이나 남동생(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도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 연주자가 아니냐.”면서 “슈퍼스타들이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부정적으로 볼 건 없다.”고 덧붙였다. 평창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장애극복 이미지보다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어”

    “장애극복 이미지보다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어”

    “역경을 극복한 이미지가 아니라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능력 있으니까’ 이렇게 합당한 평가가 내려졌으면 해요. 저도 그걸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할 거고요.” 현관에 들어서니 키 182㎝의 훤칠한 청년이 수줍은 듯 손을 내밀었다. 기자가 다가서던 각도와 약간 틀어진 채였는데 기자 목소리를 듣고 이내 바로 잡았다. 짙은 속눈썹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라틴계 호남을 연상시키는 이창훈(26)씨는 지상파 방송 사상 처음으로 KBS에 프리랜서 앵커로 기용돼 1년간 활약하게 된다. <서울신문 7월 26일 자 29면> 지난 29일과 30일 케이블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된 ‘TV 쏙 서울신문’ 스튜디오에 나온 이씨는 지금까지의 삶과 앵커로서의 각오 등을 특유의 중저음과 빛나는 재치로 풀어냈다. 오는 8일부터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집에서 방송국 근처의 9호선 국회의사당역까지 지하철과 도보로 출퇴근해야 하는 이씨는 “어머니와 몇 번 왕복해 봤는데 평소에도 지하철 등을 이용해 왔기 때문에 그다지 힘들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자택과 스튜디오를 오가며 진행된 이씨와의 일문일답. →시력을 잃은 뒤 많이 힘들었을 텐데. -태어난 지 7개월 됐을 때 시력을 부분 상실했는데 어둠과 밝음 정도만 분간할 수 있었어요. 억울함이나 분노 같은 건 없었고 무섭고 아팠을 뿐이지요. 가위에 눌려 잠에서 깰 때마다 어머니를 때리고 깨물곤 했다고 나중에 어머니가 말씀하시더라고요.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뒷바라지해온 어머니 이상여(57)씨는 “창훈이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 없어 구석에 숨어 잠을 청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용케도 아이가 냄새를 맡고 찾아내 정말 힘들었다. 온 몸이 꼬집힌 자국투성이였다.”고 말했다.) →학교 생활은 어땠나. -여덟살 때 시각장애인 학교가 진주에 없어 서울로 왔어요. 한빛맹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뇌수막염이 재발, 시력을 완전히 잃었어요. 사지도 마비돼 의사들은 다시 움직이기 어렵다고 했는데 용케 이겨냈습니다. 나 혼자 경상도 사투리를 쓰니 티 안 내려고 애써야 했지요. 다른 아이들이 집에 가는 주말에 혼자서 기숙사 생활을 하려니 외롭고 힘들었죠. 3~4학년 때 브라스 앙상블에서 트럼펫과 피아노를 배우면서 재능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주변에서 잘한다고 얘기해 줘 성격도 밝아졌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 내내 흥얼거리길래) 성격 참 좋은 것 같다. -늘 살아 오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느낌을 가졌어요. 그런 안정감이 제 장점입니다. 그런 분야의 책도 많이 보고 학교에서 좋은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지요. →인터넷 방송 경험이 밑거름이 됐을 텐데. -한국시각장애인방송(KBIC)에서 매일 밤 9~11시 방송 중 제가 한 시간을 맡고 있습니다. 노래 두 곡 들려주고 다른 동료가 장애인계 뉴스를 전하는데 전 전체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의 방송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함께 도전한 분들뿐만 아니라 KBIC에도 재주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대체로 목소리가 좋은데 뉴스에 어울리는 목소리도 있고 예능 끼를 갖고 있는 분도 있어요. 함께하면 능력이나 기회를 공유하고 교류하며 힘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3개월 연수를 빼면 실제 활동할 시간이 짧은 것 같은데. -KBS에서도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공고한 뒤 절 뽑기까지 한 달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거든요. 어떤 대우를 할지에 대해서도 아직 정해진 것이 없고 계약도 맺지 않았습니다. →비장애인들이 어떻게 대했으면 하나. -모르면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영화 ‘말아톤’ 포스터에 ‘5세 아이 지능을 가진 스무살 청년’ 이런 식이에요. 정신지체 3급이라고 정확한 정보를 주면 되는데 ‘아, 다섯 살짜리 아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유도하는 거예요. →그런 이들의 마음을 열려면. -마음을 열 수는 없고 삶을 보여 줘야죠. 대학 다니면서도 ‘시각장애인이니까 이런 건 이렇게 해줘.’, ‘이런 부분은 강하고 이런 건 약하다.’ 분명히 얘기했어요. 신뢰감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친구들은 절 장애인으로 의식하지도 않아요. →‘장애 극복’ 이런 식의 표현을 싫어한다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상황을 겪으면서 견뎌내는 것이죠. 안 보이는 건 안 보이는 거잖아요. 벽에 들이받을 수 있는 거지요. ‘벽이 있었네.’ 하고 웃는 거지요. 시각장애인 앵커나 스포츠 캐스터, 작가, 배우가 되는 일이 특별한 일이 안 되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 →좌우명이 있다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란 야구판 명언이 있어요. KBS 장애인 라디오에서 장애인들이 직접 프로야구 올스타전을 중계한 적이 있어요. 그만큼 시각장애인들 중에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1년에 5~10회는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LG 경기를 응원하러 갑니다. 응원 소리와 그라운드에서 들려오는 소리로도 충분히 야구를 즐길 수 있어요. 2009년 장애인의 날 전날에 KIA-LG 경기 때 시각장애인 장남석(당시 26)씨가 시구한 적이 있는데 저도 꼭 해 보고 싶습니다. →배우자 이상형은. -신앙이 있어야 하고 가치관이 같았으면 좋겠어요. 잘 웃고 생기 넘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팔로어가 50명쯤 된다는 그의 트위터 계정은 @lch85 글 사진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노르웨이 테러범 감옥은 천국?… “우리집보다 낫네”

    노르웨이 테러범 감옥은 천국?… “우리집보다 낫네”

    노르웨이를 공포와 울음바다로 만든 ‘살인마’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여생을 보낼 것으로 알려진 교도소가 일반인보다 호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천국’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쏟아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 등 해외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그가 수감될 곳은 오슬로 인근의 할덴 펭셀 교소로 지난 해 6월에 문을 연 신생 교도소다. 건물 외관은 마치 미술관을 연상케 할 만큼 깔끔하다. 내부는 국내외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이 줄지어 전시돼 있고, 죄수 한 명이 사용하는 방은 거실과 욕실, 주방으로 구성돼 웬만한 소형아파트보다 나은 환경이다. 대형 평면TV는 기본이고 마치 전문요리사들이 사용할 법한 깨끗하고 아름다운 주방은 모델하우스를 보는 듯 하다. 교도소가 천혜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지어진 탓에 내부 또한 친환경적 구성요소들이 다분히 배치돼 있다. 수감자 모두 널따란 체육관 뿐 아니라 숲속 산책길, 조깅코스까지 이용할 수 있고, 자유시간에는 낚시와 승마, 일광욕을 즐기는 것도 허용된다. 타임지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장르별 다양한 음악을 배우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기타나 피아노, 보컬, 뮤지컬 레슨 등을 받을 수 있으며, 최근에는 ‘아메리칸 아이돌’ 노르웨이 버전이 이 교도소에서 펼쳐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르웨이 교도소가 죄수들에게 이처럼 호화로운 생활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수감자들을 처벌의 대상이 아닌 재활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우리 집보다 훨씬 호화로운 곳에서 살인마가 산다니 용납할 수 없다.”, “죄수는 죄수일 뿐 더 이상 이런 환경을 인정할 수 없다.”등 강한 반발이 이어지면서 노르웨이 총리 등 현지 담당자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76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경찰에 끌려가면서도 잔혹한 미소를 보여 전 세계를 경악케 하면서 ‘세기의 살인마’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길섶에서] 피아노/최용규 논설위원

    “여기 좀 주물러 줘….” 새벽녘 또 아픈가 보다. 아내와 나는 작년 8월 안방의 피아노를 딸 방으로 옮겼다. 수능이 끝날 때까지 딸 아이에게 안방을 내주자는 아내의 제안이 있은 뒤였다. 내키진 않았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아내의 ‘보물 1호’ 영창피아노. 문턱을 넘어가야 하는데 돌덩이 같다. 온몸을 땀으로 목욕하고 나서야 겨우 옮겼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 됐다. 통증을 호소하던 아내는 급기야 왼쪽 팔을 어깨 위로 올리지 못한다. 힘줄이 파열됐다. 1년 이상 꾸준히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상한 주사’를 맞는 날이면 완전 그로기 상태다. 그런 아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마트에 간다. 공부방 10여명 아이들의 반찬이며, 간식거리를 챙겨야 한다. 남편 잘못 만난 탓이다. 근무 부서가 바뀌었다. 밤 아홉시나 열시쯤 마트 가는 아내를 따라나선다. 꽉 찬 장바구니는 내가 들기에도 무겁다. 그 팔로 근 1년을 날랐구나. 퇴근 무렵 휴대전화기 단축번호 1번을 꾹 누른다. 몇시에 가? 오늘도 아내의 짐꾼이 된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 보아 집 공개 남양주 전원주택… 네티즌 “수수하니 더 호감”

    보아 집 공개 남양주 전원주택… 네티즌 “수수하니 더 호감”

    보아 집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월드스타의 집으로 기대했던 저택과는 달리 단출한 전원주택이었던 것. 월드스타 보아의 어머니 성영자씨가 26일 KBS 2TV 아침방송 ‘여유만만’에 출연해 보아가 성장하면서 가족과 함께 보낸 전원주택을 공개했다. 경기도 남양주의 넓은 자연 속에 자리 잡은 보아 가족 전원주택은 널찍한 마당과 큰 정자가 있어 전원생활 을 만끽할 수 있어 보였다. 성공한 월드스타의 화려한 저택 인테리어를 상상했지만 거실에 피아노와 노래방 기기가 있다는 것 외에는 집 내부는 일반 주택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평범했다. 이날 방송으로 처음 공개된 보아의 방은 월드스타라는 화려함과 달리 꾸밈없는 침대와 소파만 달랑 단출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방송에서는 또 두 명의 보아 훈남오빠가 깜짝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피아니스트인 첫째 오빠 권순훤은 훈남 외모에 감미로운 목소리까지 보유해 부러움을 샀다.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면서 음반제작자로도 활동 중이라고. 프로덕션을 운영하는 둘째 오빠 권순욱은 보아는 물론 서인영, 걸스데이 등 스타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히트를 치고 있는 잘 나가는 뮤직비디오 감독이다. 보아 전원주택 공개에 네티즌들은 “월드스타의 집이 이렇게 단출하다니 놀랍다”, “검소한 월드스타”, “보아 집 평범해서 더 호감 간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나와 통일] (26)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

    [나와 통일] (26)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

    2001년 어느 날. 나는 평양의 한 연습실에서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가을의 속삭임’을 연주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보위부에 불려 가 자기비판서 10장을 써내야 했다. 누군가 ‘김철웅이 반동적인 음악을 연주한다’고 신고한 것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피아니스트인 내가 피아노를 쳐서 보위부에 불려 갔다면 내 인생이 앞으로 별 볼 일 없겠구나, 유학 가서 배운 것도 하나도 쓸모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내가 탈북한 계기였다. 평양에서 나는 매우 흡족한 생활을 했다. 고위당원인 아버지와 교수인 어머니 아래에서 벤츠도 몰고 어려울 것 없는 생활을 했다. 그런 내가 2004년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열린 ‘북한 인권 국제대회’에 참석해 들은 북한 주민들의 실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버지가 굶어 죽고, 언니는 중국에 팔려 가고, 살아남기 위해 정치범 수용소를 탈출했다는 얘기를 듣고 ‘설마…, 북한에 그런 사람들이 있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많은 탈북자들이 공통된 증언을 하는데 어찌 거짓말이겠는가. 북한에서 편안한 삶을 살았던 내가 그들을 착취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그 뒤로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고, 공연차 외국에 나갈 때마다 세계인을 상대로 북한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피아노를 자유롭게 치지 못해 북한을 떠난 것도 인권의 문제다. ●‘반동음악’ 연주했다고 보위부 끌려가 남한에 처음 왔을 때 기자들로부터 ‘북한에도 클래식이 있느냐.’는 ‘무식한’ 질문을 들었다. 북한에서는 최소한 연주할 때 한 악장 끝났다고 박수를 치진 않는다. 북한의 음악 수준은 매우 높다. 음악인의 숫자를 비교하면 적을지 몰라도 정예 멤버의 실력은 수준급이다. 서울대 음대보다 평양음대의 수준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남북 통일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다. 나는 북한 사람들이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들의 문화를 안다. 그들의 생각을 남한에 알려줘서 통일이 되기 전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연주회 때마다 꼭 들려주는 자작곡 ‘아리랑 소나타’에는 남북한의 문화를 연결하는 끈이 되고 싶다는 내 꿈이 담겨 있다. 통일이 된다면 북한 사람들은 남한 문화에 금방 적응해 따라가겠지만, 남한 사람은 북한 문화를 이해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부터 남한이 북한의 문화를 배우기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최소한 통일에 대한 예의가 있어야 한다. 남북이 합치는데 상대방의 문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통일을 하겠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한 사람들은 너무 노력을 안 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신문, 뉴스, 영화, 음악 등 북한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통일 이전에 문화부터 배워야 남한에 ‘북한문화원’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 영화, 북한 음악, 북한 책을 볼 수 있는 문화원 하나쯤 있다고 해서 남한 사람들이 빨갱이 물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통일은 서로가 동등한 출발선에서 시작해야 한다. 나는 요즘 중국을 통해 북한의 악보책을 모으고 있다. 북한 영화 음악 1000여곡, 피아노 연주곡 400여곡 정도를 모았다.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가사라는 게 흠이지만 북한의 역사이고 유물이다. 가사를 바꿔 한 곡씩 녹음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통일이 됐을 때는 이미 없어져 버리거나 남한 문화에 흡수돼 흔적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고유의 문화를 잘 지켜오고 있다. 지금이라도 북한의 음악을 들어보기 바란다. 그 곡이 촌스럽지 않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곧 통일을 해야 한다. 정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김철웅은 ▲36세 ▲평양음대 졸업 ▲평양 국립교향악단 피아니스트 ▲러시아 차이콥스키음악원 유학 ▲2002년 탈북 ▲2009년 뉴욕 카네기홀 공연 ▲영화 ‘김정일리아’ 출연 ▲현 백제예술대학 음악과 교수
  • [김문이 만난사람] 세계적 옻칠예술가 전용복

    [김문이 만난사람] 세계적 옻칠예술가 전용복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된 최고의 명작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500여년 지난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도료나 아교 등으로 덧칠을 해 놓아 원래의 ‘모나리자 미소’를 잃은 지 오래다. 만약 무덤에서 다빈치가 일어나 그 모습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장탄식을 하겠다. 좀 더 오래가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을 놓고 후회막급할 것이다. 여기서 잠깐, 고민하는 다빈치에게 우리 전통의 옻칠을 얘기해 주자. 1500년 전의 고구려 벽화나 700여년 전의 팔만대장경 글씨가 지금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을 예로 들면서 우리 조상의 옻칠에서 그 비결을 찾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첨단 과학의 시대에 그저 산에 나는 옻을 사용했다는 조상들의 지혜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이참에 제대로 보여 주고 싶다. 그만큼 옻칠은 나무의 결이나 그림을 고스란히 살려 주는 동시에 장구한 세월을 견디는 생명력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옻이란 무엇인가. 옻을 잘 모르는 사람도 ‘옻오리탕’ ‘옻닭도리탕’ 정도는 들어 봤을 것이다. 또 ‘옻이 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좀 더 전문적으로 알기 위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옻칠 예술가 전용복(58)씨를 만나러 간다. 인터뷰에 앞서 유명한 일화를 떠올렸다. 지난해 7월이었다. 문화재청이 주최한 ‘전통공예의 산업화·세계화 심포지엄’에서 전씨는 직접 옻칠한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옻을 입힌 제기와 상, 장롱 등은 수없이 보았으나 손목시계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확 주목을 끌었다. 그가 지금까지 만든 손목시계는 8억원과 3억원짜리 1개씩, 그리고 5000만원짜리 30여개. 4년 전 세이코 시계 회사의 주문을 받아서 시계 금박에 옻칠을 해 영원 불멸의 작품을 만들었던 것. 또 있다. 1991년 11월 13일. 도쿄 시내의 국보급 연회장인 메구로가조엔(1920년대 일본의 고급 문화를 담은 호텔, 연회장, 예식장으로 쓰인 복합 건물)이 오픈되는 날이다. 거기엔 이례적으로 태극기가 휘날렸다. 전씨가 3000여명에 달하는 일본 옻칠 장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3년 만에 완벽하게 복원해 낸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60년 전 조선의 장인들이 나라 잃은 울분을 삭이며, 피와 땀을 흘렸던 과거의 한을 떠올리며 대역사를 재현해 내 일본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다. 미술관 엘리베이터나 사계절 산수화 등의 창작품에는 전씨의 이름 세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음은 물론이었다. 서울 화양리 네거리에 위치한 ‘전용복 옻칠예 아카데미’. 자리에 앉으면서 “옻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거봐요, 기자라는 사람이 저러니 참으로….”라고 야단부터 맞았다. “옻은 만년의 신비를 갖고 있습니다.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지요. 첫째, 옻칠은 지구상에서 그 어떤 물질보다 오래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둘째, 옻칠은 나무에서 추출한 수액이므로 자연 친화적이며 인체에 유익한 물질을 생성합니다. 셋째, 옻칠은 아름다움을 가장 오래도록 간직하게 해 줍니다. 옻칠만이 가지고 있는 신비스러움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지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런 수액을 제공하는 옻나무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난 4월 중국 문화부 중외문화교류중심 초청으로 베이징에서 ‘전용복 칠화전’을 가졌다. 이때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축사를 통해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는 중국 땅에서 서양인들이 선망해 오던 칠공예를 아시아 문화 발신의 기점을 만든 전용복 선생에게 큰 기대와 함께 경의를 표한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중국으로 걸어간 거대한 발자국이 드디어 대륙 땅에 찍히는 순간 옻칠은 다채롭고 찬란한 아침 햇살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본에서 24년을 살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가 당당히 중국 문화부 초청으로 전시회를 가진 무대였으니 국내외에서 적지 않은 관심이 쏠렸다. 중국 문화부 관계자 뤼진은 “이번 전시는 만년의 빛이라는 테마로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전시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전시를 얘기하는 전씨에게 요즘 무슨 일로 바쁜지 물었다. “서양 가구에 옻을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크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지요. 다시 말하면 전통적인 옻칠을 갖고 우리의 생활공간에 어떻게 아름답게 접목할까 하는 것입니다. 4년 전부터 연구해온 것을 구체화하고 있지요. 한국의 전통 옻이 친환경적 소재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 전씨는 또 “옻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옻을 이용한 작품 개발 등 순수 예술도 있지만 이제는 일반 서민들도 옻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대중화해야 한다.”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화에도 힘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얘기를 하나 꺼낸다. 다름 아닌 오는 11월 세계 유네스코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이 방한할 때 세계 문화재 보존을 위한 전 세계 투어 전시회 협약을 맺기로 했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일대와 미국 남미 등에서 옻예술 전시회를 갖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우리의 전통 옻예술이 서양 세계를 향해 떠나는 최초의 길이라고 말했다. 그가 일본에서 귀국한 지 1년밖에 안 됐다. 소식을 듣고 한 수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이들 중 몇몇이 선발돼 ‘옻칠예 아카데미’에서 작품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 수제자로 할 만한 사람은 15명. 전씨는 현재 세 가지 일에 몰두하고 있다. 첫 번째는 창작 전시 작품, 두 번째는 주거공간에 쓰이는 생활작품, 그 다음에는 후진 양성을 위한 일이다. 그는 얼마 전 부산 영산대 석좌교수로 초빙을 받았고 올가을 학기부터는 이화여대에서 특강을 하기로 예정돼 있다. 최근에는 가구 회사인 바로크C&F와 협약을 맺어 서양 가구에 우리의 전통 옻을 입히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완성된 물건이 1만년 가는 것은 옻밖에 없습니다. 살균력이 좋고 전자파도 잘 흡수합니다. 이러한 장점을 활용해 산업 부문에도 적용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예술적 접목도 다양할 때가 됐지요. 젊은 작가와 젊은 디자이너, 그리고 우리 공예를 지켜온 사람과 결합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실험작품을 내놓았다. 앞서 얘기한 옻칠한 금속시계뿐만 아니라 비올라·첼로 등 악기에도 옻칠을 했던 것. 특히 피아노의 경우 음향판에 옻칠을 했더니 소리가 무척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완성된 물건에 옻은 어떻게 칠할까. 오묘한 색깔은 어떻게 빚어낼까. “옻나무 수액을 처음 채취했을 때에는 막걸리 색깔과 비슷합니다. 이에 열을 가하면 맥주병 색깔로 변하지요. 이런 정제 과정에서 돌가루를 적당히 섞어 가면서 여러 가지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옻을 음용하다 보니 옻나무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요즘에는 중국에서 수입해야 할 형편입니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훨신 많은 1년에 70t 정도 사용하고 있지요.” 그는 6·25전쟁이 끝날 무렵 부산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살림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길거리에서 과일과 국화빵 장사를 했다. 연탄 배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관심을 두었던 것은 동네 어귀마다 자리한 나전칠기 가구나 장롱을 만드는 곳이었다. 화가가 되는 꿈도 꾸었다. 소나무 판자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또 손재주가 좋아 목재소에서 헌 나무토막을 주워 와 토끼집이며 개집을 직접 만들어 이웃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런 생활을 견디며 청년이 돼 해병대에 입대했고 전역한 뒤 목재 회사에 입사했다. 1978년 당시 월급은 57만원. 솜씨가 워낙 좋아 회사로부터 특별 배려를 받았다. 열정과 패기까지 있어 젊은 나이에 기획실장과 디자인 회사 재정까지 맡았다. 잘나가던 그에게 어느 날 ‘전용복식 가구’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회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경기 마석에 예린공예사를 차렸다.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는 공예품을 만들어 내려는 뜻에서 예린(藝鱗)이라고 했던 것. 이후 그의 작품은 서울에 있는 고급 가구상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향인 부산으로 옮기면서 가구공방 운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활로를 모색하던 중 도자기 위에 옻칠을 한 ‘와태칠 기법’을 생각해 냈다. 독학으로 1200년 전의 기술을 익히면서 옻칠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가구와는 점점 멀어졌고 순수한 옻칠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로 탈바꿈했다. 1986년 한국현대공예미술전에 와태칠 작품을 출품해 대상을 거머쥐는 등 타고난 실력을 발휘했다. 얼마 후였다. 일본인 무역상이 오래된 ‘오젠’ 밥상 하나를 들고 와 수리를 부탁했다. 그 일본인은 도쿄예술대학에서 얘기를 듣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밥상 윗부분에는 고운 빛깔의 나전으로 두 마리의 학이 아름다운 자태로 입혀져 있었다. 전씨는 새것처럼 깔끔하게 수리를 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메구로가조엔 복원 작업에 참여했고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지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일본 교과서에 실렸으며 한때 귀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옻칠은 우리 선조들이 남긴 혼의 정수(精髓)이자 영원불멸의 유산입니다. 일본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것도 ‘나는 조선의 옻칠장이’라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이 땅의 옻칠 문화를 되살리는 데 진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전용복씨는…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1년 일본 메구로가조엔의 옻칠 작품을 3년에 걸쳐 복원해 내 세계적인 옻칠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23년 동안 일본에서 살다가 1년 전 귀국했다. 지난 4월 중국 정부 초청으로 전시회를 가져 그의 진가를 새삼 입증했다. 그의 이력은 이렇다. 1980년 예린 칠연구소를 설립했으며 1983년 일본 한국문화원 초대 전시회, 1986년 한국 현대미술전 대상 수상, 일본 이와테 현 미술공방전 특상(1988),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통령 표창장 수상(2000), 이와테 현 가와이무라 약사도칠예관 명예관장(2000), 대통령 표창 수상 기념 개인전(2001), 이와테 칠예미술관&동관대표 취임(2004), APEC기념작품전시회(2005), 세계 최고급 옻칠 시계 발표(2008), 온스타일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공동 기획 아트도네이션 작품 기증(2009) 등이다. 현재는 서울 화양리에서 제자들과 작품 활동을 하면서 생활공간에 어떻게 옻을 적용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있다.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장,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자 축하

    박삼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장,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자 축하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박삼구 이사장이 제14회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입상한 금호영재 출신의 연주자들을 축하하는 행사를 가졌다고 20일 밝혔다.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행사에는 콩쿠르 피아노부문 2위 손열음(25·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씨와 3위 조성진(17·서울예고)군, 바이올린 부문 3위 이지혜(25·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씨가 참석했다. 박 이사장은 “그동안 애써주신 부모님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면서 “앞으로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지속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1977년 설립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꾸고’라는 취지 아래 음악 영재를 발굴해 육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재단이 배출한 음악 영재 및 아티스트는 1000여명이 넘는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사고] 2011 서울신문 청소년 음악회

    서울신문사는 오는 8월 18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2011 서울신문 청소년 음악회’를 개최합니다. 이번 공연의 전반부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연으로 구성하였습니다. 후반부에서는 교과서에 나오는 다양한 장르의 성악곡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지휘자 여자경이 시대별 음악이 탄생한 사회적 배경과 음악가의 삶에 대해 해설을 합니다. 또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음악회의 품격을 더욱 높여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일 시 2011년 8월 18일(목) 오후 8:00 ●장 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입장권 VIP석 5만원, R석 3만원, S석 2만원, A석 1만원 ●예매처 예술의전당(02-580-1300), 인터파크(1544-1555), 맥스티켓(1544-0113), 티켓링크(1588-7890) ●문 의 문화사업부 (02) 2000-9751~5 ●협 찬 KB금융그룹
  • 부산 연제구 복지관 첫 삽

    부산 연제구민의 사랑방이 될 거제종합사회복지관이 최근 첫 삽을 뜨고 본격 공사에 들어갔다. 연제구는 최근 거제2동 1179-4번지 일원 건립 부지 현장에서 이위준 구청장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제종합사회복지관 신축 기공식을 하고 본격 공사에 들어갔다고 18일 밝혔다. 시비 30억원, 특별교부세 10억원과 구비 20억원 등 모두 6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대지 면적 2865.3㎡, 전체 면적 3656.29㎡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2012년 2월 준공 예정이다. ▲지하 1층(274.53㎡)엔 기계실, 전기실, 창고, 문서 보관실 ▲지상 1층(423.99㎡)엔 식당과 자원봉사자실, 회의실, 사무 공간 ▲2층(494.06㎡)엔 어린이를 위한 공간으로 아동 프로그램실, 어린이 북카페, 상담실, 아동발달 지원센터, 도서실, 방과 후 교실, 청소년 공부방 ▲3층(525.78㎡)엔 노인주간보호센터, 물리치료실, 아동발달 치료센터, 장애아 놀이터, 장애아 교육실, 요리교실, 피아노교실 ▲4층(595.34㎡)엔 대강당과 체력 단련실, 다목적홀 등이 들어선다. 안전과 편의를 우선 고려해 한정된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했고,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통해 복지관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킬 수 있도록 예술성을 더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테마로 본 공직사회] “두 딸 원없이 돌볼 수 있어 너무 행복”

    [테마로 본 공직사회] “두 딸 원없이 돌볼 수 있어 너무 행복”

    행정안전부 정무순(37·수원시 영통동) 주무관에게 요즘 하루하루는 꿈만 같다. 두 딸의 편안한 웃음, 부인의 여유있는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이렇게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어 불쑥 직장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솟구친다. 1초도 허투루 흘려 보내지 않고 1년을 값지게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하게 된다. “육아휴직계를 낼 때 인상 한번 찡그리지 않고 이해해 준 동료들한테 너무 감사하죠.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방치하다시피 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의 고충은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를 겁니다.” 육아휴직에 들어간 지 2주일째. 그런데 벌써부터 아이들의 행동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초등학교 6학년인 큰딸과 1학년인 둘째 딸은 학교를 마치면 한눈 한번 팔지 않고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온다. 아이들은 ‘아빠가 기다리는 집’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정 주무관에게도 육아휴직 결정은 쉽지 않았다. 허리 디스크 수술에 건강이 심하게 나빠져 처음엔 병가를 낼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1년 육아휴직으로 마음을 굳히기까지는 동료들의 격려가 결정적인 힘이 됐다. “최장 180일까지 병가를 쓸 수는 있지만, 6개월 이상 휴직하지 않을 경우는 인력보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는 그는 “내 상황을 이해해 주는 고마운 동료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으면서 아이들도 원없이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에는 육아휴직이 최상의 카드였다.”며 웃었다. 1993년 기술직 특채로 공무원이 된 그는 국토해양부, 경찰청을 거쳐 지난해 1월 행안부로 적을 옮겼다. 정부 청사관리소의 세종시 건립 공사 관리관을 맡아 꼬박 1년여 조치원에서 파견근무를 했다. 주말에나 간신히 집을 들르는 처지였다. “맞벌이 부부가 육아휴직을 결정할 때는 수입이 적은 쪽이 대개 직장을 쉬게 되죠. 당장의 집안경제로 따지자면 아이들 엄마가 쉬어야 했어요. 하지만 피아노를 전공해 언젠가는 작은 학원을 꾸려보고 싶어하는 집사람의 꿈도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가계 수입이 절반으로 뚝 떨어져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건 ‘넘어야 할 산’이다. 그러나 육아휴직 1년을 후회하는 순간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며 환히 웃는다. 아이들 준비물을 꼼꼼히 챙겨 학교에 보내고 나면 가까이 있는 부모님 집에도 이틀에 한 번은 찾아간다. 한낮에 아이들 학원차를 기다리고 있는 아빠. 더러 의아한 눈초리를 받기도 하지만, 그런 시선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내년 7월 다시 일터로 돌아갈 때까지 원없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애들 손잡고 짬이 날 때마다 전국 유적지를 구석구석 답사해보고 싶습니다.” 글 사진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테마로 본 공직사회] (11) 남성 공무원 육아휴직 실태

    [테마로 본 공직사회] (11) 남성 공무원 육아휴직 실태

    오후 3시 아파트 정문. 학원차가 도착하길 기다리며 삼삼오오 모인 엄마들 틈새로 ‘아빠’가 끼어 있다. 딸아이의 친한 친구 엄마들과는 이제 짧은 인사도 주고받는다. 지난달 육아휴직에 들어간 중앙부처의 한 남성 공무원은 “처음 며칠간은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가 피아노 학원 차에서 내리기를 기다리는 10여분이 솔직히 1시간처럼 길게 느껴지곤 했다.”며 웃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적응’ 속도가 빨랐다. 아이 친구 엄마들이 학원행사 같은 정보를 알려주기까지 한다. 이름을 밝히길 사양한 그는 “육아휴직하고 두어 주 동안은 집안어른들께도 알리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가족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면서 이제 더 이상 주위의 편견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을 신청한 중앙과 지방 공무원은 모두 1만명에 육박했다. 지난해 육아휴직을 사용한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은 9806명으로, 2006년 2560명에 비하면 5년 만에 거의 4배 가까이 늘었다. 전체 육아휴직 공무원은 2007년 3712명, 2008년 5953명, 2009년 7584명으로 꾸준히 늘어나다 지난해는 전년 대비, 29.3%나 껑충 뛰었다. ●중앙·지방 모두 매년 증가세 중앙과 지방을 나눠도 증가세는 엇비슷하다. 지난해 42개 중앙행정기관 공무원(교사 제외) 가운데 육아휴직 사용자는 4309명으로 전년(3342명)에 비해 28.9% 늘었다. 지자체 공무원은 5497명으로 전년(4242명)에 비해 29.6% 많아졌다. 이 같은 추세 속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이다. 근년 들어 증가세에 전례 없이 꾸준한 가속이 붙고 있다. 2007년 123명이던 것이 2008년 296명, 2009년 386명, 지난해에는 458명으로 늘었다. 지난해의 경우는 전년 대비해 18.0%나 증가했다. 지난해 육아휴직 대상인 남성 공무원이 4만 5744명이었음을 감안하면, 그중 약 1%가 육아휴직원을 낸 셈이다. 산술적으로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꾸준히 늘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게 관가의 해설이다. 육아휴직이 가능한 중앙부처 남성공무원 대상자 가운데 실제로 휴직원을 낸 비율은 2007년 0.6%, 2008년 0.7%, 2009년 0.8%였다. 육아휴직제가 국가공무원법에 처음 명시된 것은 1995년. 행안부의 한 고위간부는 “그 당시도 육아휴직에 남녀 차별을 두지는 않았지만, 애 키운다고 남자가 직장을 쉰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면서 “아이 하나를 키우면서도 육아휴직을 십분 활용하는 요즘 후배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중앙부처들 중에서는 국세청, 고용노동부, 법무부, 지식경제부 등이 육아휴직 이용률이 눈에 띄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처 인력이 상대적으로 많은 데다 인적 구조상 미취학 자녀를 둔 젊은 직원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아이 돌봄’에 관대해지는 일터 실제로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민간기업 쪽에서도 꾸준히 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4년 181명이던 남성 육아휴직자는 2006년 230명, 2008년 355명, 지난해 819명을 기록했다. 여성가족부의 한 사무관은 “불과 4~5년 전만 해도 남자가 아이를 돌본다는 이유로 직장을 쉬겠다고 하면 덮어놓고 눈총부터 줬지만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더더구나 맞벌이 부부라면 오히려 다른 사유보다 더 관대하게 이해해 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아이 키우기’를 선언한 남성 직장인의 증가는 전반적인 육아휴직 확대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민간의 경우 2005년 1만 700명에 그쳤던 전체 육아휴직자가 지난해에는 4만 1732명으로, 5년새 4배 가까이 많아졌다. 행안부의 인사 관계자는 “전반적인 육아휴직자의 증가와 남성 공무원들의 가세에는 육아휴직에 대해 사회 전반적으로 높아진 이해도가 주효했던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2008년부터 여성 공무원의 육아휴직 기간이 1년에서 최장 3년(남성은 1년)으로 연장되고, 만 3세 이하 자녀에서 만 6세 이하로 완화된 휴직기준 등 정책적인 배려가 조직문화를 바꾸는 데 한몫했다.”고 풀이했다. 앞으로도 공무원 육아휴직은 꾸준히 상향곡선을 그을 전망이다. 지난 5월부터는 휴직기준이 만 6세 이하 자녀에서 만 8세 이하로 또 확대됐다. ‘육아휴직에 이어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연달아 사용해야만 출산휴가시 결원보충이 되던 것이 출산휴가로 시작해 육아휴직을 붙여써도 출산휴가 때부터 인력이 충원되도록 바뀐 제도도 증가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원보충이 되지 않으면 매일 얼굴을 맞대는 동료들에게 ‘민폐’가 된다는 생각이 육아휴직을 가로막는 큰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 급여도 인상됐다. 올 1월부터는 매월 50만원 정액제에서 월 봉급액의 40%(상한 100만원, 하한 50만원)로 조정됐다. 근평점수 문제도 불이익이 덜한 쪽으로 개선된다. 현재 육아휴직자는 근무평정 만점(70점)의 60%(42점)만 받고 있으나, 하반기부터는 휴직 전 받은 두 차례 근평점수의 평균을 적용받을 수 있다. ●서울시 ‘파파 쿼터제’ 연내 시행 그러나 육아휴직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인식돼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여성계에서는 “일과 가정생활을 양립하는 문제를 여성에게만 국한시키지 말고 이제는 남성의 영역으로도 확대시킬 때가 왔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직사회에서도 그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부부 공무원 중 여성의 육아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올해 안에 만 8세 이하의 자녀를 둔 공무원을 대상으로 ‘파파 쿼터제’(아버지 육아휴직 할당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서울시 계획에 따르면, 연말까지 약 14명의 남성 공무원이 육아휴직을 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육아휴직의 일정 기간을 아버지 몫으로 돌리는 파파 쿼터제는 영국,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에서는 이미 제도화돼 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대관령에 ‘클래식 별’ 쏟아진다

    대관령에 ‘클래식 별’ 쏟아진다

    미국 뉴멕시코주 샌타페이와 콜로라도주 아스펜, 스위스 베르비에의 공통점을 단박에 알아챘다면 골수 클래식 팬이다. 산악지대의 쾌적한 환경에서 클래식 선율에 흠뻑 취할 수 있는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이다.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는 24일부터 새달 13일까지 해발 700m의 강원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대관령국제음악제(http://www.gmmfs.com)가 열리기 때문. 올해에도 48명의 정상급 연주자들이 평창을 찾는다. 8회를 맞는 올 대관령음악제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 음악가, 정명화(67·첼로)·경화(63·바이올린) 자매가 공동 음악감독을 맡았다는 점이다. 언니 정명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서울에, 동생 정경화 미국 줄리아드 음대 교수는 뉴욕에 떨어져 있을 때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전화 통화를 할 만큼 끈끈한 자매인 터라 ‘투 톱 체제’의 갈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정명화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61년 미국에 이민 갔을 때 6개월쯤 싸운 걸 빼면 이후로 다툰 기억이 없다. 둘 다 현(絃)을 다뤄서 그런지 7남매 가운데 유달리 죽이 잘 맞는다.”고 털어놓았다. 정경화 교수도 “언니와 함께라서 (감독 직을) 수락했다. 언니는 말도 못하게 섬세하다.”고 거들었다. 축제 주제는 ‘빛이 되어’(Illumination). 모차르트, 멘델스존, 쇼팽, 슈베르트 등 시대를 초월하는 거장들의 생애 최후 작품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와 미완성 유작 레퀴엠, 슈베르트의 현악 오중주 C장조, 멘델스존의 현악 오중주 2번, 쇼팽의 야상곡 20번, 하이든의 현악 사중주 F장조 등 대가들의 마지막 혹은 후기 작품이 대거 연주된다. 정명화 교수는 “천재 음악가들의 후기 작품이야말로 인생의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 질병과 좌절이 반영된 원숙미 넘치는 작품”이라면서 “선정한 곡들은 나에게도 일생의 빛이 됐고, 영원불멸할 것이기 때문에 일루미네이션이라고 테마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가장 관심이 가는 공연은 7년 만에 호흡을 맞추는 자매의 무대(29일)다. 아쉽게도 이번에 ‘정 트리오’의 막내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은 빠졌다. 대신 1990년 쇼팽콩쿠르 우승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가 브람스의 피아노 트리오 1번 B장조를 함께 연주한다. “작고하신 어머니(이원숙)가 유난히 좋아했던 작품이라 더 특별하다.”는 게 자매의 얘기다. 손가락 인대 부상으로 5년간 무대를 떠났다가 지난해 한국에서 딱 한 차례 공연했던 정경화 교수의 연주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독한 완벽주의자로 불리는 정경화 교수는 “99.9% 회복된 상태다. 그동안에도 연주할 수는 있었지만 완벽해야 하기 때문에 자제했다. 다시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흥분된다.”고 말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첼리스트 카리네 게오르기안, 커티스 음악원 총장을 겸한 비올리스트 로베르토 디아즈, 두 차례나 그래미상을 받은 클라리넷 연주자 리처드 스톨츠만의 공연도 놓쳐서는 안 될 무대다. 성시연 서울시향 부지휘자가 이끄는 대관령음악축제(GMMFS) 오케스트라가 펼쳐보일 모차르트의 레퀴엠도 궁금하다. ‘떠오르는 별’들도 평창 밤하늘에 쏟아진다. 최근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한 손열음(피아노)과 2004년 칼 닐센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9세의 나이로 우승한 권혁주를 비롯해 김태형(피아노), 고봉인(첼로), 성민제(더블베이스), 신현수(바이올린), 클라라 주미 강(바이올린) 등이 나선다. ‘저명연주가 시리즈’는 9회 공연 모두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야외 스크린으로 하루 시차를 두고 중계한다.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관객들을 배려해서다. 서울 한강반포지구 새빛둥둥섬에서도 대형 화면을 통해 중계될 예정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대중음악 ●한영애 콘서트 “Will You Marry Me?” 15일 오후 8시, 16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 특유의 창법과 퍼포먼스로 ‘소리의 마녀’로 불리는 포크가수 한영애가 8년 만에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하며 여는 공연. 7만 7000~9만 9000원. (02)517-0394. ●2011 FTISLAND 콘서트 PLAY! FTISLAND 8월 20일 오후 7시, 21일 오후 5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악스 코리아. 일본 등 해외활동에 주력했던 그룹 FT 아일랜드가 국내 팬들을 위해 마련한 1년 만의 콘서트. 전석 8만 8000원. (02)501-7888. 국악·클래식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마에스트로+비르투오소Ⅱ 20일 오후 7시 30분 경기 부천시 중동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 박영민(원주시향 상임지휘자)이 지휘하는 부천시향과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는 37년 만에 피아노 부문 2위에 오른 손열음이 협연. 베토벤 발레서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리스트 피아노협주곡 제2번,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 1만 5000원. 1544-1555. ●금호예술기금 영재상 수상자연주회-김봄소리 21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트홀. 2009년 금호예술기금 영재상을 받은 김봄소리(22)는 지난해 일본 센다이 국제콩쿠르 최연소 4위 입상, 핀란드 시벨리우스 국제콩쿠르 입상 등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는 바이올리니스트. 파울 힌데미트 소나타 내림마장조 Op11/1, 베토벤 소나타 제8번 사장조 Op 30/3 등. 2만~3만원. (02)6303-7700. 미술·전시 ●이소발 개인전 30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갤러리나무그늘. 일상에서 늘 접하는 것들, 그래서 일상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신발과 안경에 대해 그린 작품들이 전시된다. (02)599-1210. ●소민희 개인전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팔레 드 서울. 텅빈 공간 속에서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몸짓의 향연이라는 작가의 시각에 걸맞게 인간의 몸짓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캔버스에 담았다. (02)730-7707. 연극·뮤지컬 ●연극 ‘Open Your Eyes’ 8월 31일까지 서울 대학로 SM 스타홀. 강남의 한 복판에서 고급바를 운영하는 명품덩어리 장윤호, 갑자기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 ‘사이코메트리’를 얻었다.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감동과 재미를 준다. 2만~3만 3000원. (02)745-5570. ●뮤지컬 ‘렌트’ 8월 28일부터 10월 9일까지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사는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꿈과 열정, 사랑과 우정을 그린다. 박칼린이 연출을 맡았으며 가수 브라이언 등이 캐스팅됐다. 3만~9만원. (02)2230-6600.
  • 피아니스트 손열음 “나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나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지난달 30일 밤(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차이콥스키 콘서트홀. 세계 3대 콩쿠르 가운데 하나인 차이콥스키콩쿠르에서 벌써 4차례나 ‘카레야’가 호명됐다. 잠시 뒤 ‘욜루음 쏭’이란 알 듯 모를 듯한 이름이 불렸다. 1974년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이 콩쿠르의 ‘꽃’이라는 피아노 부문에서 2위를 한 데 이어 한국인으로는 37년 만에 2위를 차지한 손열음(25·독일 하노버국립음대)이 주인공이다. 25년 전 ‘열매를 맺음’이란 뜻의 이름을 지어준 어머니의 의도가 결실을 본 셈이다.  6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손열음을 만났다. 1998년 금호문화재단의 음악 영재 프로그램 1기로 뽑혀 첫 리사이틀을 금호아트갤러리에서 가졌던 그에게는 “집처럼 편안한 곳”이다. 지난 4일 금의환향(1974년 정 감독은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했다)한 이후 고향 원주에서 휴식을 취한 덕인지 피로한 기색은 없었다.  다만, 첫 인상이 예상을 비켜 갔다. 깔끔한 회색 원피스에 굽 높은 힐을 신은 것까지는 ‘예상 범주’였는데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택시 타고 헐레벌떡 왔다.”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대목에서는 적잖이 의외였다. 깨지기 쉬운 유리잔처럼 섬세한 음악인을 떠올렸던 게 착오였다. →인터넷으로 시상식을 봤는데 침착해 보이더라. -신경안정제를 먹었다. 처방받아 놓은 지는 오래됐는데 혹시 중독될까 봐 한 번도 안 먹다가 그날 먹었다. 그런데 약효가 확실했다(웃음). 자신이 있어서 콩쿠르 내내 떨리지는 않았다. 콩쿠르를 한 번 할 때마다 1년씩 수명이 주는데 이번엔 정말 재밌었다. 내 연주에 만족한 건 아닌데 할 만큼은 했다. →성격이 긍정적인 편인가. -콩쿠르에 나갈 땐 당연히 제일 잘해야겠다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1등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한다. 원래 낙천적이다. →1등을 놓친 게 못내 아쉬운가. -지금은 괜찮다. 처음부터 러시아 피아니스트가 된다는 소문도 많았고. 하지만 자신감을 얻었으니까 상관없다. 이제 더는 콩쿠르에 안 나갈 거다. 나이 제한이 보통 28~32세니까 그만 나갈 때도 됐다(웃음). →연주할 때 보면 쉴 틈 없이 입을 움직이는데. -(음)계이름을 하나씩 불러 가면서 친다. 오랜 습관이다. →8명이 겨루는 준결선부터 드레스를 검정색에서 붉은색으로 바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처음에는 사람들이 옷에 신경 쓰지 않고 음악에만 집중하도록 검정색을 입었다. 준결선부터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 때문에 너무 묻히지 않으려고 붉은색을 입었다(웃음). →언젠가 쓴 칼럼에서 콩쿠르에 대해 ‘음악을 두고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이만한 기회가 없으니까 나가는 것이다. →콩쿠르를 통해 얻는 것-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자에게는 3년간 수많은 연주 기회가 부여된다-도 많지만 잃는 것도 있을 텐데. -어떤 친구들은 두 달에 한 번씩 나가기도 하더라. 그러면 콩쿠르만을 위한 음악과 연습만 하게 되니까 본인에게도 손해다. 나는 1~2년에 한 번 정도라 그렇지는 않다. →피아노는 어떻게 시작했나. -한국 나이로 다섯 살 때 동네 교습소에서 맨 처음 배웠다. 내가 졸랐는지 엄마가 권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가 치던 피아노가 집에 있었는데 곧잘 갖고 놀았다. 아무래도 시골이니까 더 돋보인 모양이다. 절대음감이 있어서 선생님한테 칭찬을 많이 받았다. →한참 놀고 싶을 때인데. -피아노 때문에 못 한 건 거의 없다(웃음). 피아노 교습소 다니기 2년 전부터 미술학원도 다녔고,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예원학교 대신 원주여중을 다닌 건 굳이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다닐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럴 바엔 아예 외국으로 나가는 게 낫지 않겠나. 그러려면 가족들이 (경제적, 정신적으로) 희생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언제부터인가. -처음 피아노를 친 순간부터다(웃음). 내 기억이 존재하는 한 그렇다. →손열음에게 음악이란, 피아노란 무엇인지 정의한다면. -음악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고, 피아노는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다. 지휘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적성에 안 맞는다. 내가 직접 해야지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는 흥미를 못 느낀다. 죽는 순간까지 피아니스트로 남고 싶다. →콩쿠르 수상자 중에 국내에서 영재 교육을 받은 이가 4명이다. 조기 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영재 프로그램 출신이라 객관적이지는 않을 수 있다. 다만, 너무 어릴 때 유학을 가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경우를 자주 봤다. 언어도 힘들고. 사춘기는 지나고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나는 만 스무 살에 독일로 갔다. 물론 언어는 준비하고 가는 게 좋다. 나는 ‘프렌즈’ 같은 미드(미국 드라마)도 열심히 봤다. 지금은 영어가 한국말보다 편하다(인터뷰 중 가끔 뜸 들이며 답변하기도 했는데, 영어로 생각하고 한국말로 ‘번역’해서 그렇다고 했다). →독서광에다가 미드까지 챙겨 보면 연습은 언제하나. -연습을 매일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고 싶을 때만 한다. 그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6~7시간씩 꼼짝 하지 않고 한다. 하기 싫을 땐 아예 안 한다. 어떻게 매일 연습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하다 보면 더 이상은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 있을 텐데. →음악가는 타고나는 건가, 길러지는 건가. -100% 전자다. 재능이 없는데 노력만 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당신도 타고난 것인가. -그렇다(웃음).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음악을 정말 좋아해야 한다는 점이다. 누구도 나보다 음악을 사랑할 수는 없다. 그건 자신 있다. →롤모델이 있다면. -하하, 1년 단위로 바뀐다. 19세기 초에 마르셀 마이어란 프랑스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바로크는 물론 당대의 음악까지 섭렵했다. 나도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 물론 정말 좋아하는 한 사람만 꼽으라면 모차르트다. 레코딩도 하고 싶은데 음반사가 흥행성을 생각해야 되지 않겠나(웃음). →8월까진 한국에 머물 텐데 뭘 하고 싶은가. -매운 음식을 실컷 먹고 싶다. 매운 닭갈비와 떡볶이, 매운 건 다 좋다. 동부(원주 프로농구팀)의 경기를 보지 못해 아쉽다(그는 열혈 농구 팬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영화프리뷰] ‘타이베이 카페 스토리’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그만큼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 카페. 때문에 그동안 카페에서의 일상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등장했다. ‘타이베이 카페 스토리’(7일 개봉)도 음악과 그림이 있는 카페에서 펼쳐지는 두 자매의 꿈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상당히 아기자기하고 감성적이다. 잔잔히 흐르는 피아노 선율에 에스프레소 기계 돌아가는 소리, 쌉싸래한 커피 한 잔과 달콤한 브라우니. 카메라 앵글은 도시적이면서 아늑한 타이베이의 한 카페를 온통 감각적으로 담아낸다. 이 카페의 주인장은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자매 두얼(구이룬메이)와 창얼(린짜이짜이)이다. 자매는 생김새부터 성격, 살아온 인생까지 정반대다. 학창 시절엔 모범생이었고 사회에선 착실한 직장인이었던 두얼은 꿈꾸는 현실주의자인 반면, 창얼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마침내 자신들의 오랜 꿈인 카페를 차리게 된 두 사람.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손님들의 발길이 뜸하자, 창얼은 개업 선물로 받은 잡동사니들의 물물교환을 제안해 활력을 불어넣고, 카페는 타이베이의 이색 명소로 떠오른다. 물물교환은 단순히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실어 나른다. 두얼은 35개의 비누에 담긴 35개의 도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 남자와 마음을 주고받게 되고, 36번째 이야기를 찾기 위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타이완의 거장 허우샤오셴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마치 타이베이로 여행을 온 것처럼 이국적이면서도 편안한 감성에 빠져들게 한다. 여자라면 한번쯤 꿈꿔 보는 우아안 카페 주인이 된 자매의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여성들의 미묘한 심리와 함께 담담하게 풀어낸다. 주인공들이 고민하는 문제를 놓고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일반인들의 인터뷰 장면도 매끄럽고 재치 있다. 자매의 어머니가 등장해 두 딸에게 현실 감각을 일깨우는 장면도 코믹하다. 특히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통해 국내에 인지도를 넓힌 구이룬메이의 청순한 매력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극적인 상황 연출이 부족하고 다소 밋밋한 전개 때문에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영화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관객에겐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허우샤오셴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샤오야취안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로 타이베이의 명소를 홍보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전체 관람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클래식 한류’ 차이콥스키 콩쿠르 휩쓸다

    ‘클래식 한류’ 차이콥스키 콩쿠르 휩쓸다

    한국의 젊은 음악가 5명이 ‘세계 3대 콩쿠르’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무더기 입상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과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콘서트홀에서 열린 제14회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시상식에서 피아노 부문의 손열음(25·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씨가 2위, 조성진(17·서울예고)군이 3위에 올랐다. ●손열음 실내악협주 최고연주 등 3관왕 이 콩쿠르의 ‘꽃’인 피아노 부문에서 한국 국적자가 2위를 한 건 손씨가 처음이다. 1974년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피아노 부문에서 1위 없는 공동 2위를 했지만, 당시에는 미국 국적이었다. 한국 국적자로는 1994년 백혜선 대구가톨릭대 석좌교수가 3위를 한 게 최고 성적이다. 손씨는 이번 콩쿠르에서 실내악 협주곡 최고연주상과 콩쿠르 위촉작품 최고연주상도 함께 받았다. 그는 11살 때인 1997년 주니어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를 시작으로 1999년 미국 오벌린 국제 피아노대회 1위, 2000년 독일 에틀링겐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2002년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 콩쿠르 1위 등 화려한 경력을 가졌다. 손씨는 “항상 다 만족스러운 경우는 거의 없고,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남는다. 오늘도 그렇지만 최선을 다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조)성진이와 같이 잘된 게 너무 기분이 좋다.”고 덧붙였다. 2008년 모스크바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와 2009년 일본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잇따라 최연소 우승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조군이 3위에 입상한 것도 놀라운 성과다. 그의 멘토인 정명훈 감독이 같은 대회에서 입상한 것은 21살 때였다. ●바이올린 3위 이지혜 최고연주상도 베이스 박종민(24·이탈리아 라 스칼라 아카데미극장)씨는 남자 성악 부문 1위, 소프라노 서선영(27·독일 뒤셀도르프 슈만 국립음대)씨는 여자 성악 부문 1위에 올랐다. 성악에서는 1990년 최현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우승한 적이 있다. 최 교수는 박씨의 대학 은사다. 박씨는 “고교 때 성악을 시작하면서 처음 봤던 동영상이 최 교수님의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장면이었다. 꿈만 같다.”고 말했다. 서씨는 “너무 일찍 외국으로 나가는 것보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성숙한 뒤 나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어디에 있든 온 힘을 다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바이올린 부문에서는 이지혜(25·독일 크론베르그 아카데미)씨가 3위 입상과 함께 실내악 협주곡 최고연주상도 받았다. 이씨는 “다른 대회에서 1등도 해봤는데 그게 다가 아니라 다음이 더 중요하더라. 큰 상을 받았으니 더 열심히 해서 발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5명 중 4명 금호아시아나 지원 영재 수상자 5명 중 4명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1998년부터 10년 이상 발굴 지원해온 음악 영재 출신들이다. 민간 기업의 예술 지원 프로그램인 ‘메세나’가 결실을 본 것이어서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폴란드 쇼팽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1958년 시작돼 4년에 한번씩 열린다. 피아노·바이올린·첼로·성악 4개 부문으로 나눠 진행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주말영화]

    [주말영화]

    ●평행이론(SBS 일요일 밤 12시) 다른 시대, 같은 운명 ‘평행이론’. 내게 누군가의 인생이 반복되고 있다. 최연소 부장판사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석현(지진희·오른쪽). 미모의 아내와 귀여운 딸까지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지만, 어느 날 그의 아내 윤경(윤세아·왼쪽)이 끔찍한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석현의 법대 동기이자 윤경을 짝사랑해 왔던 강성(이종혁)은 사건을 자진해 맡게 되고, 석현의 판결에 불만을 품어 온 장수영(하정우)을 살해범으로 검거해 서둘러 사건을 종결 짓는다. 한편 실의에 빠져 있던 석현은 사건담당 여기자로부터 석현이 과거의 인물인 한상준 판사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되는 ‘평행이론’에 휘말렸으며, 범인으로 검거된 장수영이 탈주해 석현과 석현의 딸을 살해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경고를 듣게 된다. 서울대 법대 수석졸업, 최연소 부장판사 임명, 미모의 아내 살해까지. 자신이 한상준과 30년의 시차를 두고 날짜까지 똑같은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된 석현은 점차 평행이론을 확신하게 되고, 30년 전 한상준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누군가 30년 전 자료를 의도적으로 파기한 상태인데…. ●로마의 휴일(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앤 공주(오드리 헵번)는 왕실의 제약과 정해진 스케줄에 싫증이 나자 로마를 여행하던 중 왕실을 몰래 빠져 나간다. 앤은 길거리에서 잠이 들었고 한 신사의 도움으로 서민의 생활을 즐긴다. 그러나 알고보니 그 신사는 특종을 찾아다니는 신문기자였다. 처음에는 단지 특종을 잡기 위해서 앤 공주와 로마의 거리를 다니며 공주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들을 하며 여러 가지 해프닝을 벌인다.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큰 특종인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앤 공주는 친절한 그에게 정이 들었고 단지 특종만을 위해서 그녀와 함께했던 기자 조(그레고리 펙) 역시 순수한 앤 공주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앤은 궁전으로 다시 돌아갔고 조가 신문기자였던 것을 알게 된 앤은 그에게 실망을 한다. ●친니친니(OBS 일요일 밤 11시 15분) 지루한 일터와 지나치게 깔끔한 아파트, 그리고 어항 속의 물고기가 삶의 전부인 피아노 조율사 첸가후(금성무). 일하러 갔던 어느 집에서 눈물 흘리며 매달리는 여자를 뿌리치며 집을 나서는 한 남자와 같은 버스를 타게 된다. 초라한 옷차림만큼이나 초라한 종이 상자 하나가 삶의 전부라 말하는 남자 유목연(곽부성)은 자칭 소설가이다. 출판된 소설은 없지만 그 모든 것이 머릿속에 있다고 허풍을 떠는 목연은 단지 버스에 동행했다는 이유로 가후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가후는 이층집에 이사온 피아니스트 목만이(진혜림)와 사랑에 빠진다. 이사온 다음 날부터 쉴새없이 피아노를 두드려대는 소리가 한없이 사랑스럽지만 목연은 그 소리 때문에 결국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가후는 두 사람을 화해시키기 위해 애쓴다.
  • 클래식도 한류…차이코프스키 콩쿠르서 박종민·서선영 남녀 성악 1위

    클래식도 한류…차이코프스키 콩쿠르서 박종민·서선영 남녀 성악 1위

     한국 음악가들이 세계 3대 콩쿠르 중의 하나인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를 휩쓸었다.  30일 오후(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막을 내린 제14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베이스 박종민(24·이탈리아 라 스칼라 아카데미 극장)씨가 남자 성악부문 1위를, 소프라노 서선영(27·독일 뒤셀도르프 슈만 국립음대)씨가 여자 성악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콩쿠르에서는 또 피아노부문에서 2, 3위에, 바이올린부문에서 3위에 오르는 등 한국 음악가 5명이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꽃’인 피아노부문도 손열음(25·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씨가 2위에, 조성진(17·서울예고)군이 3위, 바이올린부문에서도 이지혜(25·독일 크론베르그 아카데미)씨가 3위에 올랐다.  박종민씨는 하이든과 슈베르트, 로시니 등의 곡으로 1차 예선과 2차 본선을 통과하고 3차 결선에서는 차이코프스키 오페라 ‘이올란타’ 중에서 레네왕의 아리오소 ‘하느님, 만일 내게 죄가 있다면’과 폰키엘리의 오페라 ‘라 지오콘다’ 중 알비세 공작의 아리아를 불러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서선영씨는 모차르트와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등의 곡으로 1, 2차 예선과 본선을 통과하고 결선에서 카탈라니의 오페라 ‘라 왈리’ 중 아리아와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중의 ‘타티야나의 편지 장면’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지금까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우승한 것은 1990년 제9회 대회 성악부문 최현수씨가 유일하다. 1974년 제5회 콩쿠르에서 정명훈씨가 피아노부문에서 공동 2위를, 1994년 제10회 콩쿠르에서 백혜선씨가 피아노부문에서 3위를 차지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노르웨이 인 어 넛셸’ 가보니

    ‘노르웨이 인 어 넛셸’ 가보니

    ‘북방으로 가는 길’(Norway)로 접어듭니다. 빙하가 만든 거대한 협만, 피오르를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노르웨이 지도를 펴면 대서양과 연한 등줄기에 실핏줄처럼 세밀한 선들이 가득합니다. 그게 피오르입니다. 피오르가 만든 해안선을 모두 연결하면 길이가 지구 반바퀴와 비슷하다지요. 피오르는 산정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며 폭포를 만들고, 수수한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는 이맘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베르겐 공항. 피오르로 가는 관문이다. 밤 10시 30분. 희뿌연 어둠이 내려 앉아 있다. 밝지도, 그렇다고 컴컴하지도 않다. 이른바 백야(white night)다. 여름이면 새벽 3시쯤 해가 떠서 밤 11시쯤 진다. 해가 져도 한 치 앞이 안 보일 만큼 어둡지는 않다. 갈 곳, 볼 것 많은 여행자에게 시간을 확장해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베르겐은 노르웨이 제 2의 도시다. 지금은 수도의 지위를 오슬로에 내줬지만, 중세 때는 노르웨이의 수도였을 만큼 번성했다. 그 영화의 흔적이 브리겐이다. 중세시대 목조 건물들이 밀집된 곳으로, 베르겐의 대표 아이콘으로 통한다. 12세기 이후 유럽에선 상인들 간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 가운데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한 상인들을 한자(Hansa), 이들을 보호하는 도시 간 동맹을 한자동맹이라 불렀다. 베르겐도 한자동맹의 주요 도시였다. 독일의 상인들은 베르겐 항구에 자신들만 묵는 상관을 지었는데, 이게 브리겐이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지금도 카페와 술집, 액세서리상점 등으로 쓰인다. 브리겐 안에 들면 목조 건물 특유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오래된 나무만 낼 수 있는 세월의 향기다. 특히 브리겐 박물관엔 예전 독일 상인들이 쓰던 의자와 침대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채로운 건 침대를 드나드는 여닫이 문마다 ‘풍만한’ 여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는 것. 현지 가이드는 “가족과 떨어져 이국에서 혈혈단신 생활하던 홀아비들과 독신 남성들이 그렸다.”며 씽긋 웃었다. 베르겐을 감싸고 있는 플뢰엔산(320m)에 오르면 예쁜 도시 풍경이 한눈에 잡힌다. 레일과 케이블로 움직이는 산악기차를 타면 7분 만에 전망대에 이른다. 시청 옆에 정거장이 있다. 베르겐 남쪽 바닷가의 그리그 박물관도 필수 방문 코스다. ‘솔베이지의 노래’ 등을 작곡한 그리그(1843~1907)가 성악가였던 부인 니나와 1885년부터 말년 22년 동안 머물렀던 집이다. 당시 가구와 편지, 피아노 등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바닷가 전망 좋은 언덕 절벽 묘지엔 그리그와, 그보다 23년 뒤에 세상을 뜬 니나가 함께 잠들어 있다. #180도 커브길 너머로 우람한 계곡 이제 ‘노르웨이 인 어 넛셸’(Norway in a Nutshell)을 맛볼 차례다. 베르겐~보스~구드방엔~플롬~뮈르달~오슬로에 걸쳐 있는 피오르의 정수를 기차·산악열차·유람선·버스를 이용해 살피는 프로그램이다. 시작은 기차다. 베르겐에서 보스까지 간다. 기차는 피오르의 바닷물과 거의 같은 높이로 달린다. 단선 철길인 탓에 마주오는 열차와 교행하기 위해 중간중간 간이역에 서곤 한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예쁜 시골 풍경과 만난다. 보스에서는 버스로 갈아탄다. 우리의 완행버스쯤 된다. 버스는 구드방엔까지 한 시간 남짓 달리는데, 장담컨대 차창에 풍경화를 매달고 달린다고 보면 틀림없다. 당신이 상상했던 북유럽의 풍경들, 이를테면 너른 초원과 뾰족한 지붕을 한 적갈색의 농가, 만년설을 이고 선 산자락, 그리고 마음을 비춰낼 것 같은 맑은 호수가 줄곧 따라온다. 절정은 ‘스탈하임스클라이바’(Stalheimskleiva)다. 180도에 가까운 커브길이 13번이나 이어지는 절벽길이다. 버스 승객들은 이 장면에서 전부 일어서서 감탄사를 쏟아냈다. 그럴밖에. 버스는 고꾸라질 듯 급경사를 아슬아슬하게 돌아가고, 옆에서는 거대한 폭포가 물안개를 피워 올리며 떨어져 내린다. 멀리 앞으로는 거인이 손으로 후벼판 듯, 깊고 우람한 계곡이 펼쳐져 있다. 그게 장엄한 ‘피오르 왕국’의 시작이었다. #억겁의 시간 켜켜이 쌓인 빙하 노르웨이의 해안선 길이는 2만여㎞에 달한다. 지구 반 바퀴를 도는 거리와 맞먹는다. 해안선이 들쑥날쑥 돌아나가며 여러 개의 피오르를 만들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노르웨이 최장의 송네 피오르다. 길이 204㎞에 가장 깊은 곳은 1309m에 달한다. 길이가 워낙 길어 전부를 돌아보기는 어렵고, 구드방엔에서 유람선을 타고 송네 피오르의 지류 가운데 하나인 내뢰 피오르와 아울란 피오르를 둘러보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종착지인 플롬까지 2시간 20분 남짓 소요된다. 이맘때 피오르의 가장 큰 볼거리는 폭포다. 바닷물을 사이에 둔 U자형 곡벽(谷壁) 정상의 만년설이 녹아 여기저기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가까이서 보면 규모가 큰 폭포는 스키장의 슬로프에 견줄 만하다. 그 많은 폭포를 이루는 물은 대체 어디서 유입되는 걸까. 궁금증은 ‘스노 로드’(Snow Road)에 오르면 단박에 풀린다. 스노 로드는 해발 1300m의 피오르 정상을 따라 가는 고산도로다. 원래 피오르의 마을들을 잇던 간선도로였으나 산 아래쪽에 자동차 전용 터널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래르달터널(24.5㎞)이 생기면서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스노 로드는 6월 1일부터 10월 중순까지만 개방된다. 워낙 눈이 많기 때문이다. 도로 주변엔 아직도 눈이 2m가량 쌓여 있다. 그 방대한 양의 눈이 폭포의 근원이다. 만년설이 조금씩 녹으며 곳곳에 에머랄드 빛 호수를 만들어 뒀다. 그 덕에 거칠고 장식되지 않은, 그러나 더없이 빼어난 풍경이 완성된다. 노르웨이 관광청 안내책자는 노르웨이 사람들이 ‘자연에서 힘을 얻고(Powered by nature), 피오르를 통해 영감을 얻는다(Inspired by fjords)’고 적고 있다. 만년설을 딛고 서면 그 문구가 여실히 가슴을 파고든다. 또 하나. 피오르를 여행하며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니가르츠브렌 빙하다. 송네 피오르의 북쪽 끝에 있다. 약 80㎞에 걸쳐 뻗어 있는 요스테달브렌빙하의 수많은 곡빙하 가운데 하나다. 빙하박물관에 인접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버스에서 내려 40분 정도 걷다 보면 억겁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빙하와 만난다. 빙하는 파란빛을 띠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겹쳐진 탓이다. 사전에 신청하면 빙하 트레킹도 가능하다. ‘피오르의 심장’이라 불리는 플롬에서 뮈르달까지는 산악열차 ‘플롬스바나’를 이용한다. 용수철처럼 산자락을 에둘러 오르는데, 약 20㎞를 가는 동안 인상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뮈르달에서 오슬로까지는 날렵하게 빠진 열차를 타고 간다. 한데, 안락한 좌석에 기대 눈 감고 쉬진 마시길. 오슬로까지 다섯 시간 남짓, 놓치면 서운할 풍경들을 줄곧 달고 가기 때문이다. 글 사진 베르겐·플롬(노르웨이)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 노르웨이까지 직항편은 없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베르겐, 혹은 핀란드 헬싱키에서 오슬로행 비행기로 갈아탄다. 인천~암스테르담 약 11시간 30분, 암스테르담~베르겐 1시간 40분. #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서머타임 적용) 늦다. 통화는 노르웨이크로네. 1크로네는 210원 안팎이다. 여행 도중 필요한 경우가 많아 얼마간 환전해 가는 게 좋다. 전기는 220V. 대부분의 호텔 수돗물은 그냥 마셔도 될 만큼 깨끗하다. 관광지 상점 가운데 면세점 표시가 붙은 곳에서 쇼핑을 하면 오슬로와 베르겐 공항 등의 인포메이션센터에서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다. 해당 상점에서 주는 영수증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플롬의 기념품점이 종류도 다양하고, 값도 싸다. # 여행 성수기는 5~9월이다. 노르웨이관광청 홈페이지(www.visitnorway.com)를 이용해 자신만의 ‘노르웨이 인 어 넛셸’ 루트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베르겐, 오슬로 등 도시 투어를 할 경우 패스를 사면 훨씬 싸게 여행할 수 있다. 피오르 정상에서 트레킹을 하려면 긴팔 옷을 가져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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