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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갑옷 입고 화살·조총에 맞선 이름모를 그들 조선 무사를 만나다

    종이갑옷 입고 화살·조총에 맞선 이름모를 그들 조선 무사를 만나다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인류의 역사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수없이 일어났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전쟁이 터지면 으레 전투에서 맹활약한 영웅호걸이 탄생하고, 역사는 이들에게 집중하며 이들만 기억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호위 병사와 물자를 보급해준 백성이 없이도 장수는 출중한 지략만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을까. 전쟁에서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상처받는 것이 비단 영웅호걸뿐일까. ‘조선무사’(최형국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는 이런 의문에서 시작했다. 무예사와 전쟁사를 연구하고 무예24시연구소를 운영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조선시대 전쟁 속 병사, 이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백성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저자는 “아무리 뛰어난 장수나 지휘관이라도 실제 전쟁에서 총칼을 쥔 한 명 한 명의 병사들과 여러가지 물자를 보급했던 이름 모를 백성들이 없었다면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이들에 대해 알아야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주목했다.”고 밝힌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좀더 가까이 읽으려면 소소하고 일상적인 병사나 백성의 하루를 들여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옛 문헌·그림 토대로 조선무사의 하루 재구성 저자는 옛 문헌과 그림 등을 토대로 조선 병사의 하루를 재구성했다. 새벽 4시쯤 첫번째 나팔 소리 ‘두호’가 길게 울리면 병사들은 일어나 잠자리를 정리하고 무기와 보급품 등을 챙긴다. 요즘의 취사병과 비슷한 화병(火兵)이 있어 밥을 짓는다. 두번째 나팔 소리인 이호가 울리면 병사들은 주특기에 따라 업무를 시작한다. 조총병은 길게 늘어서 주특기인 사격 연습을 하는 식이다. 비상식량을 만드는 훈련도 있다. 볶은 쌀 두 되와 밀가루 한 되 다섯 홉으로 떡을 찌거나 소주에 여러번 담갔다가 꺼내 말린 게 일종의 휴대 식량이다. 새벽 기상, 훈련, 행군, 오후 9시쯤 취침의 일과가 반복되는 직업군인의 하루는 예나 지금이나 고단하기 그지없다. 나라를 위해 싸우면서도 대부분의 병사들은 갑옷과 무기를 스스로 사야 했다. 가난한 백성들은 대충 모양만 갖춰 갑옷을 만들어 입는 경우도 허다했다. 튼튼하기로는 철로 만든 철갑이 최상이었지만 여윳돈이 없는 백성들은 짐승가죽이나 종이로도 갑옷을 만들었다. 이것이 피갑, 지갑이다. 비단으로 짠 단갑, 무명으로 만든 삼승갑 등 갑옷의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종이 갑옷으로 화살이나 조총을 무슨 재주로 막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조선 무사들의 갑옷은 피눈물이 스며있는 것이다. 당시 국가의 위급상황을 알리는 최고의 통신망이었던 봉수(烽燧) 이야기도 재미있다. 평시에는 한 개, 심각성에 따라 다섯개까지 지피는 봉수는 승패를 좌우했다. 인조는 봉수로 인한 승패를 모두 경험한 왕이었다. 명장 정충신이 봉수를 선점한 덕에 이괄의 난은 실패로 끝났지만, 병자호란 당시 도중에 봉수가 끊겨 미처 피신하지 못한 인조는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봉수는 거친 날씨에는 보이지 않아 구실을 못 하는 통신수단이라 이때는 봉수군이 직접 다음 봉수대까지 달려가 상황을 전달해야 했다. ●“조선 숭문천무 풍조 일제가 왜곡·과장한 것” 세계에서 인정하는 한국의 양궁 실력이 고구려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맥을 잇는 것임을 확인시켜 주는 일화도 있다. 1377년 남해안을 습격한 왜구가 맨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놀리는 일이 있었다. 화가 날 법한 상황에 이성계는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활을 쐈다. 화살은 200보 떨어진 거리의 왜구 엉덩이에 정확히 꽂혀 이들을 혼비백산하게 했다. 활쏘기 연마는 조선 개국 이후로도 계속됐고, 엄지에 깍지를 끼워 시위를 당기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배울 수 있는 무예로 통했다. 조선시대 무(武)를 천대하고 문(文)을 숭상했다는 숭문천무(崇文賤武)의 풍조도 일제가 조선강점을 비호하기 위해 왜곡·과장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한 사극에서는 오합지졸로 표현되는 군졸도 사실은 체계적인 공격술인 창검술을 갖췄다는 등 흥미로운 읽을거리도 곳곳에 녹아 있다. 1만 2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현실의 어두움 적나라하게 그렸죠”

    “현실의 어두움 적나라하게 그렸죠”

    새하얀 생크림 딸기케이크를 흐뭇하게 음미하다가 갑자기 돌조각을 씹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제2 창비청소년 문학상(2009년) 수상작 ‘위저드 베이커리’가 꼭 그랬다. 위저드(Wizard·마법사)의 판타지를 즐기다가 거지반 읽어갈 무렵 화들짝 놀라며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달콤한 마법의 세계에서 고통스러운 현실로 돌아왔지만 책을 덮을 수도 없다. 이 마법의 책이 마저 읽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제2 창비소년 문학상 수상작 지은이 구병모(본명 정유경)를 만난 느낌도 다르지 않았다. 이름처럼 남자 작가를 기대했는데 귀엽고 깜찍한 기미가 사라지지 않은 서른세 살의 여성이 나타났다. 블랙으로 차려입는 것도 위치(Witch·마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청소년 독자들이 받을 당혹감을 두고 “예상하고 있었다.”면서 “현실의 어둠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줄거리는 이렇다. 열여섯 살인 ‘나’는 아주 어릴 때 친엄마로부터 청량리 역에 버려진 경험이 있다. 그후 엄마는 우울증으로 자살하고,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으로 어린 딸이 딸린 배 선생과 재혼을 한다. 어느 날 ‘나’는 아홉 살 의붓 여동생 무희를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쓴다. 그러곤 폭력을 행사하는 계모와 이를 방관하는 아버지에게 절망해 단골 빵집인 ‘위저드 베이커리’로 피신한다. 빵집의 이름처럼 정말 마법사가 운영하는 빵집 말이다. 이 빵집에서는 평범한 식빵 말고도 100% 화해가 가능한 ‘메이킹 피스 건포드 스콘’이나 실연의 상처를 잊게 하는 ‘브로큰 하트 파인애플 마들렌’, 학교를 대신 가주는 ‘도플갱어 피낭시에’,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망신 주는 ‘악마의 시나몬 쿠키’, 그리고 원하는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해주는 ‘타임 리와인더 머랭 쿠키’ 등을 판다. 하지만 이런 환상의 세계에 이어 나타나는 여고생이 자살하는 살벌한 학교생활, 의붓아들에게 저주를 퍼붓기 위해 계모가 부두인형을 주문하는 가정, 의붓여동생을 성폭행한 범인이 ‘나’의 눈에 목격되는 순간 드러나는 혹독한 현실에서 더욱 화들짝 놀라게 된다. ●“청소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쓴 작품” 구 작가는 문제의 대목에 대해 “내 독자인 청소년들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창비측도 수상작 선정에 참여한 청소년심사단이 이 대목에 두드러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거들었다. 사실 계모가 독사과로 딸을 죽이려는 ‘백설공주’나 친자식을 둘이나 내다버리도록 방조하는 친아버지가 나오는 ‘헨젤과 그레텔’도 덜하지는 않구나 싶기도 하다. 이 책은 남다른 미덕도 있다. 청소년들은 각자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가장 혹독한 것이라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 견딘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 스스로 선택한 것에는 대가를 치러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 등을 전혀 교훈적이지 않지만 친절하게 이해시키고 있다. 작가는 ‘나쁜 성장 소설’이라고 하지만 ‘친절하고 공감 가는 성장소설’ 같다. 85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北, 美여기자 2명 억류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서울 김미경 김정은기자│ 중국에서 탈북자 문제를 취재하던 미국 기자 2명이 지난 17일 중국과 북한 국경 지역에서 북한군에 억류된 것으로 확인됐다. 탈북자 지원단체인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는 19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미국 케이블TV 커런트(Current) TV의 한국계 미국인인 유나 리(Euna Lee 왼쪽) 기자와 중국계인 로라 링(Laura Ling·오른쪽)기자가 지난 17일 오전 조선족 가이드 1명과 함께 두만강변 중국과 북한 국경에서 취재를 하다 북한군에 끌려갔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천 목사는 “미국 기자들이 11일 한국을 거쳐 13일 중국으로 들어갔으며 17일 오전 6시쯤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그들은 ‘중국 옌지 취재를 마쳤고 단둥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들에게 ‘북한과의 국경 지역으로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아마 의욕이 넘쳤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천 목사는 “같이 취재하던 촬영기자 1명은 피신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현재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라며 그도 역시 북측에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천 목사는 최근 북한국경수비대가 몸값을 노리고 외지인들을 국경으로 ‘유인’해 끌고 간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커런트 TV는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회장으로 있는 방송사이다. 억류된 두 기자는 다큐멘터리프로그램인 ‘뱅가드’ 를 제작하던 중이었다. 정부 당국자도 이날 “2~3일 전 북·중 접경지대인 두만강 인근에서 미국 국적의 여기자 2명이 취재 도중 북한 당국에 억류돼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확인했다. 이들은 북한 당국 요원들의 제지 요청에도 촬영 등 취재활동을 계속하다 억류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사건 발생 직후 뉴욕과 베이징 채널을 통해 북측에 ‘조속한 석방’을 요청하고 있지만 북측은 아직까지 뚜렷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FP통신은 이날 프레드 래시 국무부 대변인의 말을 인용, “(미 정부가) 중국 정부와 협력해 기자들이 억류된 장소와 신변 안전 등을 확인하고 있다.”며 “이미 북한 당국자와 접촉해 이번 사태에 대해 우려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kmkim@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봉중근 “경완이 형이 던지라는대로 던졌다” 예멘 교민 안전 초비상…10여명 귀국행 신입사원 통해 본 산업계 대학 평가
  • 마다가스카르 대통령 정권 이양

    반정부 시위를 이끌던 야권 지도자가 대통령궁에 입성하며 3개월째 지속됐던 마다가스카르 사태가 종국을 맞이하고 있다고 AP 등 외신들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울러 피신해 있던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대통령이 이날 군부 세력에게 자신의 권력을 이양했다고 발표, 마다가스카르 정국이 안정될지 주목된다. 전날 군부를 앞세워 수도 안타나나리보 중심부에 자리잡은 대통령궁 집무실을 접수한 야권 지도자 안드리 라조에리나 전 안타나나리보 시장은 이날 대통령궁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으며 권력쟁취의 마지막 점을 찍었다. 라조에리나 전 시장은 이날 1만여명의 지지자들에게 “현 정부 장관 8명이 나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반정부 세력은 라조에리나 전 시장이 과도 정부 수반을 맡을 것이며, 앞으로 24개월 이내에 ‘제4공화국’의 출범을 위해 개헌을 하고 대통령 선거를 치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대통령은 도심에서 10㎞ 정도 떨어진 또 다른 대통령궁에 피해 있다가 이날 대통령직 사임을 발표한 뒤 모처로 피신했다고 대통령측 대변인은 전했다. 대통령 가족들은 지난주 군대가 반정부 시위대로 넘어가자 출국했다. 2007년 지방선거에서 야당 후보로 수도인 안타나나리보 시장에 당선된 라조에리나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라디오 방송국을 대통령이 폐쇄하는 등 언론 통제 정책을 쓰자 이에 반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해 왔다. 이 시위는 초반에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2월 대통령 호위대가 시위 진압과정에서 시민 28명을 사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커지고 라조에리나가 시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자 반정부 움직임은 탄력을 받게 됐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베네수엘라 영화에 빠져볼까

    베네수엘라 영화에 빠져볼까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17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정과 매혹:베네수엘라 영화제’를 연다. 주한 베네수엘라 대사관과 국립영화자치센터 등이 공동주최하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평소 좀처럼 접해 보기 힘든 베네수엘라 영화 6편이 소개된다. 개막작은 ‘이사벨호는 오늘 오후 도착했다’(1949년)로 유부남인 선장 세군도와 라 과이라 항구의 여인 에스페란사의 사랑을 담은 멜로영화다. 1934년 출간된 베네수엘라의 대표작가 기에르모 메네세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아르헨티나 출신인 카를로스 우고 크리스텐센 감독이 연출했다. 베네수엘라 국민감독으로 불리는 로만 찰바우드의 작품 두 편도 만나볼 수 있다. ‘담배 피우는 물고기’(1977년)와 ‘게Ⅱ’(1984년)가 그것. 매음굴 포주의 정부와 한 청년의 사랑을 담고 있는 ‘담배 피우는 물고기’는 훗날 베네수엘라 영화의 이정표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복잡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게Ⅱ’는 베네수엘라 영화 중 최초의 속편 제작 영화라는 특징을 지녔다. 솔베이그 호헤스테인 감독의 ‘경찰관의 여자 마쿠’(2006년)는 베네수엘라에서 최대 관객을 동원한 기록을 가진 영화로 35차례가 넘게 각종 국제영화제에도 참가했다. 20년 연상의 경찰관과 결혼한 소녀의 삶을 통해 시민과 제도권 사이의 관계를 담아 냈으며, 질투, 사랑, 폭력에 대한 대담한 묘사가 돋보인다. 이반 페오 감독의 ‘이피헤니아’(1987년)는 사회생활에 부적응하고, 복잡한 삼각관계에 빠진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레오나르도 엔리케스 감독의 ‘도쿄 파라과이포아’(1996년)는 범죄를 저지르고 베네수엘라로 피신한 일본 청년이 겪는 운명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시네마테크협의회는 “영화 자본이 활발하게 유통되지 않아 영화 제작 환경이 척박함에도 불구하고 강한 집념으로 영화 만들기에 힘쓰는 베네수엘라인 특유의 열정과 근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상영시간은 협의회 홈페이지(www.cinematheque.seoul.kr) 참조. (02)741-9782.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모닝브리핑] 서울시, 내성 결핵 환자에도 치료비 지원

    서울시가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다제내성결핵(MD R-TB)’ 환자들에게도 치료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6일 1억 7000만원의 예산을 편성, 결핵전문병원인 시립서북병원을 찾는 다제내성 결핵환자 중 외래환자에게는 약제비용 전액을, 입원환자는 청구된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의 70%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제내성 결핵은 아이소니아지드나 리팜피신 등 기존 약제에 내성이 생겨 치료가 어려운 결핵을 뜻한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비열한 여왕’, 애완견에 유산 몰아주기 안돼?

    지난 2007년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호텔 재벌 레오나 헴슬리는 개들을 돌보는 자선단체들에 엄청난 유산을 기부하도록 유언을 남겨 화제를 모았다.  당시 유산이 50억~80억달러로 추정됐던 헴슬리는 2004년 작성한 ‘법률 문서’를 통해 두 명의 손주에겐 각각 500만달러를 물려주면서 애지중지하던 애완견 트러블에게 1200만달러를 남겨 ‘해도해도 너무했다.’는 욕을 사후에 얻어들었다.손주들이 자신의 외아들 묘소를 1년에 한 번씩 들러야만 그나마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1980년 외아들이 40세 젊은 나이에 죽자 자신이 아들에게 빌려준 돈을 모두 돌려받은 뒤 며느리와 손주들을 내쫓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런데 미국 법원이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간) 그녀의 유산을 관리하는 신탁관리인들이 개들을 돌보는 자선단체들에만 한정하지 않고 다른 자선단체들에게 유산을 배정해도 좋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사실이 26일 뒤늦게 알려져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뉴욕주 맨해튼법원의 트로이 웨버 판사는 유언검인(遺言檢認·probate) 소송에서 “헴슬리의 법률 문서는 신탁관리인들로 하여금 적절한 자선단체를 가려내고 적정한 기부액을 결정할 ‘유일한 결정권’을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결했다.헴슬리는 이 문서에 ‘(1)개들을 돌보는 데 관여할 목적 (2)신탁관리인들이 결정할 다른 자선행위들에 기부금 배정을 결정할 수 있다.’고 적시했는데 법원은 (2)를 조금 더 폭넓게 인정하도록 한 것이다.  신탁관리인들의 대변인인 하워드 루빈슈타인은 “예를 들어 건강보험,의학 연구,사회적 서비스,교육 기타 다양한 분야에 유산을 기부받을 수 있게 됐다.”고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동물보호단체들도 이같은 판결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지난해 헴슬리의 유산 모두가 개를 돌보는 데만 쓰이도록 유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동물보호단체들은 개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을 돌보는 데 유산이 쓰여야 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미국휴먼소사이어티는 애완견 과잉을 억제하고 중국이나 인도에서의 공수병 창궐,투견 규제,재난지역에서 개들을 구출하는 등의 목적에 유산이 쓰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1989년 세금탈루 소송을 진행하면서 헴슬리는 ‘야비한 여왕’이란 별칭을 들었다.부하 직원들에게 탈세를 지시하는 등 온갖 비열한 짓을 꾸미고도 엄청 인색하게 굴었기 때문.당시 법정에서 그녀는 “세금은 서민들이나 내는 것”이라고 진술해 세간의 공분을 샀다.  그녀는 눈을 감으면서까지 피붙이들보다 아홉살 짜리 말테즈종인 트러블에게 1200만달러를 물려주는 한편,자신이 살던 28개의 방이 있는 코네티컷주 저택에 죽을 때까지 머무를 수 있도록 했다.  이후 트러블을 겨냥해 수십건의 살해 협박이 쇄도해 코네티컷 저택을 떠나 개인비행기를 타고 플로리다주의 모처로 피신했을 정도였다.트러블을 먹이고 가꾸고 건강을 관리하는 등의 비용으로만 연간 30만달러가 들어간다.  그러나 상식을 벗어난 헴슬리의 유언은 이미 지난해 4월에 한번 바로잡힌 바 있다.뉴욕주 법원은 두 손주에게 각각 600만달러,트러블에게 200만달러를 배정하도록 신탁관리인들에게 명한 바 있다.뒤늦게나마 사람 값을 더 쳐줬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선종] “내가 제일 바보” 자화상 선보이며 뼈 있는 유머

    [김수환 추기경 선종] “내가 제일 바보” 자화상 선보이며 뼈 있는 유머

    김수환 추기경은 늘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한편 신자와 국민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따뜻한 지도자였다. 김 추기경은 지난 2003년 11월18일 서울대 초청 강연에서 “삶이 뭔가, 너무 골똘히 생각한 나머지 기차를 탔다 이겁니다. 기차를 타고 한참 가는데 누가 지나가면서 ‘삶은 계란, 삶은 계란’이라고 하는 거죠.”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이런 모습을 잘 설명해준다. 김 추기경은 2007년 10월 모교인 동성중고 100주년 기념전에서 동그란 얼굴에 눈, 코, 입을 그리고 밑에 ‘바보야’라고 적은 자화상(그림)을 선보이면서 “내가 제일 바보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사람들이 잘난 척을 하고 살아가지만 결국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겸손하게 지적한 것이다. 엄숙한 장엄미사나 주교 서품식에서도 추기경은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2002년 11월21일 김운회 주교 서품식에서 그는“김 주교님이 주교된 것을 축하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뭐냐면 김씨가 주교 됐다는 것. (웃음) 우리 주교단에 김씨 주교가 5명이 있었는데 세월이 흐르니까 다 나가래요. 얼마나 외롭게 느껴지는지! 거기에 비해 산 김씨 10명이 죽은 최씨 한 명도 당하지 못하죠. 주교회의에 최씨의 기가 얼마나 강한지! 그래도 걱정이 덜한 것은 최씨 위에 강씨가 있어. (웃음)” 라고 말했다. 이어 김 추기경은 “사실은 주교에게는 최씨도 김씨도 없다.”면서 “주교는 백성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그리스도 안에는 차별 없이 모두가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며 좌중을 인도하기도 했다. 김 추기경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목도하면서 국민들 걱정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지도자였다.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김 추기경은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김 추기경은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시위대를 강제진압하려는 정부에 “여기에 공권력이 투입되면 맨앞에 당신들이 만날 사람은 나다. 내 뒤에 신부들이 있고 그 뒤에 수녀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들은 나를 밟고 우리 신부들도 밟고 수녀들을 밟고 넘어서야 학생들을 만난다.”고 선언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나 ○○○판사인데… 신호위반 한번 봐주세요” 부적절 처신 법관 징계한다

    ‘○○○판사, 나 ○○○부장판사인데 처갓집 사건이 그 방에 있으니 잘 좀 부탁하네.’, ‘○○법원 판사인데 이자 좀 싸게 해주세요.’, ‘○○법원 판사인데 신호위반 한 번 봐주세요.’… 종종 이런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행태로 구설에 올랐던 법원 공무원들이 철저한 내부 단속을 받게 됐다. 대법원이 10일 공직 윤리를 한층 강화한 ‘법관 및 법원공무원 행동강령 일부 개정규칙’을 공포했기 때문이다. 어길 경우 징계처분을 받게 된다. 기존 규칙은 법관 등이 직위를 직접 이용해 이권에 개입하는 행위를 금지했지만 개정규칙은 사적이익을 위해 소속기관의 이름이나 직위를 공표·게시하는 행위까지 금지 대상으로 삼았다. 직무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금전거래의 범위는 빌리는 행위뿐만 아니라 빌려주는 행위까지 포함됐다. 또 직무관련 공무원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행위도 금지하는 조항이 새로 생겼다. 공정성을 우려해 법관 스스로 해당 사건을 맡지 않겠다고 밝히는 회피신청의 대상도 확대됐다. 기존에는 법관 본인의 이해와 관련된 사건이나 4촌 이내 친족이 관련자일 때 신청을 하도록 했지만 개정규칙에서는 본인과 본인의 직계 존·비속,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 존·비속의 금전적 이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경우까지 포함됐다. 또 본인이 2년 이내에 재직했던 단체 또는 그 단체의 대리인이 관련된 사건도 추가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직윤리에 대한 국민의 기대수준이 높아진 상황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정조 ‘政敵’과 서신정치… 독살설 희박

    정조 ‘政敵’과 서신정치… 독살설 희박

    조선 22대 국왕 정조(1752~1800년)가 재위 말년에 막후에서 은밀한 통치행위를 벌였음을 보여주는 친필 어찰 6첩 299통이 발굴됐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과 한국고전번역원은 9일 ‘새로 발굴한 정조 어찰의 종합 검토’ 학술대회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조가 예조판서와 우의정으로 있던 노론 벽파(僻派)의 거두 심환지(1730~1802년)에게 보낸 비밀편지의 일부를 공개했다. 1796년 8월20일부터 1800년 6월15일까지 보낸 이 편지들은 개인이 소장해 오던 것으로, 1년동안 탈초(정자체로 풀어쓰기)와 번역을 거쳤다. ●현안 있을 때마다 의견 조율 임형택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장은 “조선조 국왕의 어찰로는 가장 많은 분량인 데다 정조가 심환지 한 사람에게 보낸 비밀편지라는 점에서 정조 말년 정국 동향의 비밀스러운 전개과정은 물론 인간적인 면모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획기적인 사료”라고 평가했다. 정조는 어찰이 공개될 때의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지속적으로 편지를 없앨 것을 지시했으나 심환지는 어찰을 받은 날짜와 시간, 장소를 꼼꼼히 기록해 보관해 왔다. 편지에 따르면 정조는 현안이 있을 때마다 심환지에게 편지를 보내 의견을 조율하고, 지시를 내렸다. 노론 벽파인 심환지가 정조와 날카롭게 대립했다는 통념을 깨는 한편 어진 선비형으로 알려진 정조가 막후 정치에 능란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조가 1798년 7월14일 심환지를 예조판서에 임명한 뒤 8월28일 우의정으로 발탁하기에 앞서 금강산으로 ‘피신여행’을 보낸 것이 대표적이다. 정조와 심환지는 수많은 비밀편지를 교환하며 미리 상의했다. 심환지가 우의정으로 있으면서 여러번 사직상소를 올린 것도 정조의 각본에 따른 것이었다.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소설이나 드라마에선 정조와 심환지(노론벽파)의 대립을 쉽게 얘기하지만 1795년 화성 축조 이후 정조가 노론벽파를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인정해 본격적으로 등용했음을 보여준다.”면서 “당대 벽파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앞으로 학계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정조는 남인계 거두 채제공(1720~1799년)과도 비밀편지를 주고받았음이 최근 밝혀졌다. 이는 정조가 노론과 소론, 남인, 시파와 벽파 사이에서 자신의 정치적인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당파를 초월해 어찰을 통한 정치를 꾀했음을 보여준다. ●수차례 건강이상 언급 이번 편지 발굴로 정조 독살설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정조는 사망 13일 전인 1800년 6월15일에 심환지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서 “뱃속의 화기(火氣)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는 않는다.”고 호소한 것을 비롯해 수차례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있음을 토로했다. 소장자는 조만간 원본을 공신력 있는 기관에 기탁할 것으로 알려졌다. 영인본은 내달 중 성균관대 출판부에서 간행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용산사망자 아들 “아버지가 테러범?” 아직도 동네 목욕탕에선… 9급 공채에 30대가 몰린다 현인택 ‘동문서답’ 청문회 화왕산 억새 태우다 4명 사망 고3 시기별 수능 전략 제주女교사,1~2일전 살아있었다
  • 공무집행방해 남용 논란

    공무집행방해 남용 논란

    경찰이 최근 공무집행방해(공집방해) 혐의를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법 질서 확립’이냐, ‘과도한 국민 기강잡기냐’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모(46·여·서울 송파구)씨는 지난달 31일 밤 10시55분쯤 친구와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고교생 20여명이 2~3명의 학생을 에워싼 채 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송파경찰서 방이지구대 소속 경찰관 두 명이 도착해 확인한 결과 생일을 맞은 친구를 장난으로 때린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애들 장난까지 신고하느냐. 술 먹었으면 곱게 들어가라.”며 화를 냈다. 정씨는 “큰 사고가 날까봐 신고했는데 왜 모욕을 주느냐.”며 사과를 요구했다. 경찰은 정씨가 업무를 방해한다며 연행하려 했다. 순간 정씨는 순찰차 앞에 드러누웠다. 경찰은 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정씨는 우여곡절 끝에 지구대에 가 경찰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사과를 받고 귀가했다. 그러나 이튿날 새벽 2시쯤 경찰들은 순찰차 앞에 누워있는 사진을 근거로 공집방해 혐의로 정씨를 연행했다. 정씨는 조사 뒤 오전 7시40분쯤 풀려났다. 정씨는 “범죄가 의심되는 상황을 보고 신고한 것도 죄냐.”며 억울해했다. 백모(47·여·서울 강남구)씨는 최근 자신의 식당에서 손님 성모(38)씨와 박모(45)씨가 술을 마시다 다투는 것을 보고 밖으로 피신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수서경찰서 도곡지구대 경찰관 2명이 도착했다. 경찰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가 난동을 부린 성씨와 이야기하다 사소한 몸싸움을 벌였다. 성씨가 갑자기 백씨가 자신을 때렸다고 말했다. 경찰은 3명 모두 폭행 혐의로 연행했다. 백씨는 죄도 없이 끌려가는 게 분해 순찰차 안에서 성씨와 다투다 경찰관 얼굴에 손이 살짝 닿았다. 이 경찰은 백씨가 자신을 폭행했다며 공집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백씨는 48시간 동안 유치장에 있다 영장이 기각돼 풀려났다. 8일 경찰청에 따르면 공집방해사범 검거 인원은 2006년 9783명, 2007년 1만 3803명, 2008년 1만 5646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90% 가까이(2006년 8765명·2007년 1만 2467명·2008년 1만 3900명)가 불구속으로 풀려났다. 대다수가 단순 욕설, 대듦 등으로 입건됐기 때문이다. 한 경찰은 “지난 10여년 동안 인권을 필요 이상 강조해 공권력이 붕괴됐다.”면서 “공권력 강화를 위해 더욱 강경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경찰은 “최근 지구대 경찰들이 몸에 손이 닿거나 욕만 해도 공집방해로 경찰서로 연행해와 다른 일에 지장이 있을 정도다.”면서 “남발은 막아야 한다.”고 털어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오윤식 변호사는 “경찰과 단순히 언성을 높이는 등 경미한 행위까지 모두 입건하는 것은 과하다.”면서 “공집방해 적용 기준을 경찰에 위해를 가할 정도의 폭행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승훈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이-하마스 다시 공습 긴장 고조

    이스라엘 공군이 28일(현지시간) 가자지구를 3차례 공습한 데 이어 하마스도 이스라엘에 3발의 포탄을 발사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이날 AP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집트와 가자지구 국경지대의 밀수땅굴을 대상으로 3차례 공습을 퍼부었다. 주민들은 황급히 집 밖으로 피신하는 등 공포에 떨었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스라엘의 일간 하레츠는 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 “전날 매설 폭탄으로 인해 이스라엘 병사 1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한 것에 대한 대응”이라고 밝혔다.이에 하마스도 이스라엘을 향해 3발의 박격포를 발사해 휴전 중인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관계는 다시 얼어붙고 있다. AFP통신은 목격자의 말을 인용, “4대의 이스라엘 탱크를 향해 박격포가 발사됐다.”고 밝혔다.한편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조지 미첼 중동특사는 이날 이스라엘에 도착, 사흘간 머물며 올메르트 총리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무드 아바스 수반 등을 차례로 만날 예정이다. 미첼 특사는 “이집트의 중재안을 통해 휴전과 협상이 계속돼야 한다.”고 밝혔다.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화염병 터지며 망루3층 시너 폭발”

    “화염병 터지며 망루3층 시너 폭발”

    용산 4지구 철거민대책위원회 소속 세입자들은 반년 전쯤부터 점거농성을 준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망루 안에 인화성 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 아니라 진압과정에서도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투척, 한 차례 철수할 정도로 위험했는데도 진압작전을 강행한 사실도 확인됐다. 22일 검찰에 따르면 용산대책위 간부들은 점거농성을 통해 보상금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하고 지난해 8~11월 6명이 1인당 1000만원씩, 모두 6000만원을 모았다. 시위 준비는 지난 14일 이모 위원장의 지시로 20일 동안 쓸 생필품과 쇠톱, 공구, 새총 등을 마련하면서 본격화했다. 이틀 뒤인 16일에는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관계자에게서 망루 조립법을 배웠다. 세입자와 전철연 관계자들은 18일 오전 3시쯤 1차 점거를 시도했다가 크레인이 고장나 실패로 돌아가자 이튿날인 19일 오전 5시30분쯤 잠겨 있는 건물 문을 부수고 진입했다. 이들이 건물을 장악하자 곧바로 경찰이 주변에 병력을 배치하고 해산하라고 경고했다. 재개발조합에서 고용한 용역업체도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철거민들의 ‘물량공세’가 만만치 않았다. 검찰이 파악한 시위물품은 화염병 400개, 염산병 50개, 세녹스 80통(큰 막걸리병), 새총으로 날릴 골프공 600개들이 17부대, 유리구슬 등이었다. 철거민들의 화염병 투척은 자정을 넘어서까지 계속됐다. 20일 오전 5시30분. 백동산 용산경찰서장이 10분 간격으로 해산을 권유했지만 농성자들이 이를 듣지 않자, 경찰은 6시30분쯤 계단을 통해 진입에 나섰다. 하지만 철거민들이 화염병과 벽돌을 던지는 바람에 진입에 실패했고, 곧바로 경찰특공대가 컨테이너 박스를 타고 옥상에 내렸다. 옥상 한쪽을 장악한 특공대원들은 곧바로 망루가 있는 옥상 다른쪽으로 연결되는 통로의 철문을 부수고 건너갔다.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지자 2명은 방패로 위를 막고, 2명이 방패 밑에 숨는 방법을 써 함석 일부를 절단하고 망루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특공대원들은 소화기를 1대씩 들고 화염병으로 불이 붙을 때마다 이를 진화하면서 차례차례 3층까지 장악했지만, 연행자를 밖으로 끌어내느라 망루 안에 특공대원 4명만 남게 되었고, 다시 화염병 공격이 심해져 1층으로 철수해야 했다. 잠시 뒤 병력을 보충해 다시 3층까지 치고 올라간 순간 어딘가에서 떨어진 화염병이 터지면서 바닥에 불이 붙었고, 3층에 집중적으로 쌓아놓았던 시너통이 폭발했다. 대부분의 특공대원은 불이 크게 번지기 전에 망루를 빠져나왔지만, 고(故) 김남훈(31) 경사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붕괴된 망루에 깔려 숨졌다. 망루 4층으로 급히 피신한 철거민들도 불을 피해 뛰어내리다 부상을 입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특공대원들이 모두 소화기를 가져간 것으로 보아 화재 위험성을 예견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확한 발화지점은 알 수 없지만, 소화기를 가지고 있는 대원들이 없던 1층에 화염병이 떨어졌기 때문에 진화가 되지 않고 큰 불로 번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佛 선교사가 본 조선의 감옥생활

    130년 전 조선 말기 감옥의 모습은 어땠을까. 푸른 눈의 이방인에게 이런 풍경이 또 어떻게 비춰졌을까. ‘나의 서울 감옥 생활 1878’(유소연 옮김, 살림 펴냄)은 프랑스 선교사인 펠릭스 클레르 리델(1830~1884년)이 1878년 1월 말부터 6월 초까지 5개월 동안 서울에서 체험한 감옥 생활을 담은 회고록이다. 이 책은 아드리앵 로네 신부가 정리해 1901년에 발간한 같은 이름의 책(Ma Captivit Dans Les Prisons de Soul)을 바탕으로, 리델의 회고록 일부를 되살린 것. 한국과 관련된 희귀 서양고서를 번역한 ‘그들이 본 우리’ 총서의 6번째로, 서양인의 눈으로 조선의 감옥 생활을 관찰한 첫 번째 기록이라는 게 출판사의 설명이다. 1857년 사제 서품을 받은 리델은 포교지로 배속된 조선에 1861년에 들어왔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중국으로 피신하여 11년이 지난 뒤 선교활동을 하러 다시 조선에 왔다가 이듬해 서울 포도청에 투옥됐다. 리델은 당시의 감옥을 “지상에 존재하는 지옥의 상(像) 중에서도 가장 잔혹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몸을 가눌 수 없는 좁은 공간, 여름이나 겨울이나 거의 헐벗어 더위와 추위에 시달리고, 환기는 바랄 수도 없다. 씻을 물은 감옥 중앙 웅덩이에서 얻을 수 있지만 몸을 닦았다간 피부병을 얻기 일쑤다. 그나마 손을 겨우 씻을 양의 멀쩡한 물을 얻는 것은 행복이다. 보통 수감자들은 도둑, 채무죄수, 신도들이지만 가끔 포졸의 계략으로 들어온 무고한 사람도 있었다. 옥졸들은 죄수들에게 밤새 노래를 부르도록 강요하며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을 하고, 밤낮없이 작은 구실을 대서라도 죄수를 두들겨 패는 ‘야만인’으로 그려진다.‘차꼬’라고 불리는 목판 두 개를 맞댄 발족쇄, 한쪽 끝에 용 장식품이나 방울 등이 달린 오랏줄, 포졸 넷이 닻을 올리듯 잡아끌며 진행하는 교수형, 감방·법정·형구틀 등으로 구성된 감옥 구조도 등 당시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사료적 가치가 크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나라 조선에서 인간의 정이란 얼마나 끔찍한가.”라는 리델의 표현을 접하는 순간 인간의 잔혹함에 가슴이 저린 것은 어쩔 수 없다. 1만 6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SC제일은행, 키코판결 이의신청

    SC제일은행이 통화옵션 거래인 키코 계약의 효력 정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법원의 결정에 불복하는 이의 신청을 접수했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에 이번 결정을 재고해 달라는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면서 “이의신청이 기각되면 서울고법에 항고할 계획”이라고 6일 밝혔다.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 경우 상급법원에 항고하기에 앞서 피신청인은 해당 법원에 이의신청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이르면 이달 안에 가처분을 인용했던 재판부가 은행 쪽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지난달 30일 내린 효력정지 결정은 즉시 취소된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50부는 지난달 30일 주식회사 모나미와 주식회사 디에스엘시디가 SC제일은행을 상대로 낸 옵션계약효력정지가처분 신청에 대해 “본안 판결 선고 때까지 모나미 및 디에스엘시디와 SC제일은행 사이의 키코 계약 중 해지 의사를 보낸 11월3일 이후 구간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기로에 선 입법전쟁] 김형오 의장 부산칩거는 피신?

    [기로에 선 입법전쟁] 김형오 의장 부산칩거는 피신?

    일촉즉발의 여야대치 상황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이 29일 출신 지역인 부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면 타개를 위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하지만 김 의장의 행보를 바라보는 정치권 안팎의 시각이 곱지만 않다. 국회가 유례없는 난맥상을 보이며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마당에 김 의장이 굳이 국회를 비우고 지역을 겉돌아야 했느냐는 지적이 많다.과거 거물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중대 결심을 할 때 지역을 찾은 것처럼 김 의장도 입법부 수장으로서보다는 정치인으로서 이미지를 앞세운 게 아니냐는 것이다.김 의장이 고심하는 표정으로 선영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그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것도 구설에 오르고 있다. 같은 시각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이 며칠째 밤샘 점거농성을 벌였고,여야 원내대표는 국회 정상화의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이날도 여당 내에선 김 의장에 대해 “자신의 체면과 이미지를 고려해 정치적 행보만을 너무 따지고 있다.”며 불만이 터져 나왔다. 김 의장은 한나라당이 쟁점법안 직권상정을 요청한 지난 주말 이후 수원 용주사와 경남 양산 선영을 거쳐 지역구인 부산 영도에 체류했다.이르면 30일 오전 상경할 것으로 알려졌다.이와 관련,김 의장 주변에서는 민주당이 의장실을 점거한 뒤 공관을 지속적으로 항의 방문해 정상적 업무처리가 불가능했고,마지막 카드를 뽑아들기 전 분위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는 해석이 나온다.또 여당 당적을 버린 터에 직권상정을 강행하면 ‘정치적 중립을 저버렸다.’는 야당의 공세에 휘말릴 수 있고,마냥 직권상정을 미루자니 청와대와 여당의 따가운 눈초리를 의식해야 하는 현실에서 김 의장이 나름대로 고민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현실 상황이야 어떻든 국회 내에서 여야간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이 국회의장의 바람직한 처신이라는 비판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조직개편 놓고 행안부-인권위 줄다리기

    정부 조직개편의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와 국가인권위원회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행안부가 얼마전 인권위 인력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감축하라고 통보하자 인권위가 ‘인력감축 절대 반대’를 내세우며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연내 인권위 조직개편을 마무리지으려 했던 행안부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23일 인권위는 행안부가 보낸 조직개편안에 대해 “(인권위 조직은)조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내부적으로 검토된 바도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인권위는 당초 23~24일 행안부를 방문해 조정안을 놓고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방문조차 하지 않기로 잠정 결론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행안부는 지난 12일 인권위에 새 정부의 ‘작고 효율적인 정부’ 방침에 따라 ‘대국·대과체제‘에 맞도록 2개국 13개과로 줄이고,3개 지역사무소 폐지와 함께 인력을 절반 수준인 106명(전체 208명)으로 감축하는 ‘인권위 조직개편안’을 통보했다.그에 앞서 인권위는 인력 감축 없이 1개국 3개과만 줄이는 자체 통폐합안을 행안부에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위는 엄연히 헌법재판소,선거관리위원회와 같이 독립기구”라면서 “대통령 인수위에서도 조직개편은 행정부처를 대상으로 한다고 명시했는데 갑자기 기준도 없이 49%의 인력감축을 하라는 건 조직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이어 “다른 통폐합부처도 20~0.2% 감축에 그쳤다.”면서 “정치적 목적이 개입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행안부는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이 됐다.조직효율과 타부처의 형평성 차원에서 개편이 불가피하지만 강제로 추진할 경우 여론 등 극심한 반대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그는 “인권위법은 업무상 독립성만 인정할 뿐 조직·예산은 정부조직법 등에 의해 실질적으로 행안부가 관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행안부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인권위의 조직·기능과 관련,▲공무원 등 피신고인의 항명권이 없고 ▲인권과는 무관한 인·허가권 등 다른 부처와 중첩되는 업무가 상당수이며 ▲독립적 지위를 악용해 직권조사와 같은 군림적 태도나 편향적 태도로 일관한다는 점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인권위는 최근 감사원 감사와 국정감사에서도 국민권익위원회 및 법무부 인권정책국과 업무가 중첩되고 인력운용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단독] 부장판사,변협에 진상조사 요구 파문

    ‘불공정 재판’ 시비에 휘말린 현직 부장판사가 진 상 조사를 요청하고 재판이 불공정했다고 밝혀지면 사직할 것이라고 공언해 파장이 일고 있다. 서울북부지법 민사합의13부 정진경(45·사시 27회) 부장판사가 “서울변호사회(이하 서울변회) 주장처럼 재판이 불공정하게 진행됐다면 법관의 직을 물러날 것이니 진상을 조사해 달라.”고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대한변협)에 공식 요청한 것으로 14일 확인됐다.그러나 재판 진행이 상식에 어긋나지 않았다면 법원의 위신과 재판의 신뢰성을 손상시킨 홍범식(44·사시 45회) 변호사와 서울변회 하창우(53·사시 25회) 회장을 징계해 달라고 주장했다. 사건은 지난 10월23일 홍 변호사가 서울변회에 60쪽짜리 진정서를 보내면서 시작됐다.홍 변호사는 진정서에서 “정 부장판사가 ‘변호사 생활 몇 년 했느냐.’는 등의 막말을 하고 ‘손해금액 감정’ 신청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등 편파적으로 민사재판을 진행한다.”고 주장했다.재판부 기피신청도 냈지만 재판을 지연하려는 목적이라고 각하했다고 했다.하 회장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법원장을 찾아가 항의했다.또 판사의 자질을 변호사가 평가하는 ‘법관 평가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들이 사건 담당 법관의 업무 수행 능력과 태도,윤리적 자질 등을 1년에 2차례씩 평가해 점수화하고 구체적 사례와 함께 그 내용을 대법원에 전달하겠다는 것이다.홍 변호사 측은 지난달 17일 이 소송에서 패소했다. 이같은 사실이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정 부장판사는 지난달 27일과 지난 2일 “재판부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변호사가 사실을 왜곡,과장한 것인데 서울변회가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법원장을 방문해 헌법상 보장된 법관의 독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며 하 회장과 서울변회 임원들에게 진상 조사와 사과를 요구하는 이메일을 보냈다.그러나 답변이 없자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하고 대한변협 임원들에게 진상 조사를 또다시 요청했다.그리고 이런 내용을 지난 10일, 법원내부통신망을 통해 공개했다.서울변회 하 회장은 “진정서 내용을 볼 때 변호사 시각에서 재판 진행이 불공정했다고 판단했지만,재판장이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면서 “법관이 특정 사건의 재판 진행이 공정했는지 조사해 달라고 변호사단체에 요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좌파정권때 ‘KAL기 사건 안기부 조작’ 왜곡 강요” 김현희 편지 공개 논란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범으로 알려진 김현희씨가 썼다는 편지와 김씨의 사진이 26일 공개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KAL 858기 폭파사건을 북한의 테러가 아닌 전두환 정권 시절 안기부의 조작사건으로 돌리려 했다는 것이 편지의 핵심내용이다.  편지와 사진은 북한민주화포럼 이동복 상임대표가 최근 조갑제 닷컴에 공개하면서 알려졌다.이 상임대표는 ‘안내말씀’과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지난달 하순 김현희씨의 남편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가 편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김씨의 서체가 다르고 노출을 극도로 꺼린 김씨의 사진이 공개된 점 등을 들어 진위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현 정부의 과거사기구 청산 정국과 맞물려있다는 측면에선 공개시기 논란도 일고 있다. 편지는 “좌파정권 10년동안 친북·좌파 세력은 국가기관과 TV·방송매체를 동원해 ‘양심선언’을 강요하며 괴롭혔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2003년 국정원 등이 공중파 방송사를 동원,KAL기 폭파 조작설을 퍼뜨리기 위해 ‘KAL기 폭파를 북한 김정일이 지시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도록 강압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신변의 위협을 느껴 결국 가족과 함께 집을 버리고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참여정부 당시 관계자는 “당국 차원에서 김현희씨에게 기존 진술을 번복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다른 관계자는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우선 조사대상 사건으로 선정된 뒤 김씨에 대한 조사계획이 있었지만 조사를 위해 위압을 가한 적이 없다.”면서 “조사에 단 한번도 응하지 않았던 김씨였는데 하필 과거사 기구 청산 움직임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며 공개 배경을 의아하게 여겼다. 편지의 필체도 지난 1987년 김현희씨가 쓴 자술서의 필체와 다른 점이 많은 것으로 파악돼 필적 감정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구한말 대한매일신보 도운 英외교관 헨리 코번 손자 내한

    구한말 대한매일신보 도운 英외교관 헨리 코번 손자 내한

    “외교관으로서 할아버지는 영국 정부의 정책을 따라야 했지만, 일본에 고문당하다가 탈출한 양기탁을 넘기면 다시 고문 당할 것이 너무 뻔했지요. 그래서 인간적·도덕적 이유로 양기탁의 인도를 3개월이나 거부한 것입니다.” 해외문화홍보원 초청으로 한국에 온 영국 일간신문 인디펜던트의 외교담당 대기자인 패트릭 코번(58)은 17일 주한영국 총영사를 지낸 할아버지 헨리 코번을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하며 “몹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할아버지는 전혀 정치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 조용한 분이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인물로 할아버지가 놀랍기만 했다는 것이다. 패트릭 코번은 지난해 12월6일 인디펜던트에 ‘헨리의 전쟁-강제인도에 대한 반대 투쟁’이라는 제목의 5장짜리 장문의 기사를 썼다.100년 전 일제 통감부가 한국 언론인 양기탁(1871∼1938) 선생을 고문하는 등 탄압한 사료를 찾아내 생생하게 반영했다. 영국 외무부와 한국과 일본, 중국의 총영사관 사이에서 오간 전문을 찾기 위해 영국 국가기록원을 뒤졌다. 때문에 이 기사는 당시 상황을 보도한 어떤 자료보다 정확하게 국제 정세를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헨리 코번은 1905년 11월17일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상실하는 을사늑약이 체결된 3일 뒤인 11월20일 주한 영국대리공사로 부임해 1908년 9월15일 귀국할 때까지 3년 남짓 한국에 머물렀다. 이 기간, 그는 영국인 어네스트 베델(한국명 배설)이 발행인 겸 사장으로 있는 대한매일신보의 일제에 대한 저항과, 일제의 탄압을 목도하게 된다. 특히 1908년 7월 대한매일신보 총무 양기탁 선생이 일본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영국이 관할하는 치외법권지역이었던 대한매일신보 건물로 피신하자 일본과 인도적 싸움을 시작한다. 일본 경찰은 양기탁 선생을 넘겨 달라고 요청했지만, 코번 총영사는 고문의 흔적을 내세우며 “고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거절했다. 영·일동맹을 맺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 외무부 고위 관계자들도 양 선생을 넘기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코번 총영사는 무려 3개월 동안 인도하지 않았다. 패트릭 코번은 “할아버지는 본국에 보내는 전문에서 ‘만일 우리가 양기탁을 일본에 넘겨준 것이 알려지면 외교상 최악의 불명예를 만드는 것’이라고 외무부를 설득했다.”고 밝혔다. 당시 코번 총영사의 양 선생 인도 거부가 장기화됨에 따라 일제의 언론탄압과 고문 등 만행이 국제사회에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마찰로 코번 총영사는 49세의 젊은 나이에 외교관에서 은퇴해야 했다. 코번은 “지금도 이라크를 비롯해 외국군이 점령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지만, 점령국의 피정복국민에 대한 고문 등 탄압에 저항한 제3국 외교관이 있다는 이야기를 할아버지 사례 말고는 들어보지 못했다.”면서 코번 총영사가 대단히 드문 일을 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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