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피소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집단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개발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방한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소련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471
  • 클린턴 ‘마무리 구상’ 주도 박차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1년 이상 끌어왔던 탄핵재판에서 예상대로 면죄부를 받음으로써 앞으로 남은 임기동안 대통령직을 능동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미 상원은 12일(현지시간)클린턴에 대한 탄핵안을 표결에 부처 위증과 사법방해 혐의 등 하원이 상정한 탄핵혐의를 각각 55대 45와 50대 50으로 표결,정족수 67표에 미달함으로써 모두 부결시켰다. 이로써 클린턴은 오는 2001년 1월까지 임기보장은 물론 그동안의 수세에서벗어나 능동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단단한 발판을 마련했다. 사실 탄핵 부결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됐던 일이므로 클린턴은 대통령직‘마무리 구상’을 착실히 준비해왔다. 정책면에서 공무원의 5% 임금인상을 비롯,사회보장제도로의 재정흑자분 전용,은퇴자들을 위한 재정지원,국립공원의 개발 18개월 금지 등 지난해부터발표해온 일련의 선심성 정책은 이런 맥락의 일환이다. 그는 탄핵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된 상황에서 “사생활에 다소 문제는 있었으나 정책수행 능력은 탁월했고 국민들을위한 정책을 많이 펼쳤다”는 퇴임후 평가를 추구가능 목표로 하고 있다. 한 배를 탄 민주당 역시 지금부터 클린턴에게 그동안 보여졌던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층 더 왕성한 차기 선거준비에 몰입할 수 있게 됐다. 탄핵과 관련 해명에 나서자니 인기에 지장있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차기대권 선두주자인 고어를 비롯한 민주당 진영은 이제 홀가분하게 대선 및 총선몰이에 돌입할 수 있게 됐다. 이와함께 클린턴 개인으로서는 그동안 당한 수모를 곱씹으면서 공화당 탄핵기소팀과 케네스 스타 검사팀에 대한 매서운 눈길을 거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별검사에 대한 법무부의 불법여부 조사는 자신의 형사범 피소 면제와 스타검사에 대한 반격 모두 적용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라고 미국의 언론들은지적한다. 일부 성급한 언론들은 이제 클린턴이 공격받았던 대상들에 대한 반격이 시작됐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hay@
  • 외언내언-부유층도박

    도박꾼의 심보는 ‘남이 하면 도박이요 내가 하면 오락’이다.도박에 빠지면 날새는 줄 모르고 집과 전답은 물론 마누라까지 팔아먹는다는 고사가 있다.도박을 못하게 손가락을 절단하면 발가락을 동원하고 그것도 안되면 입으로 화투패를 뗀다는 식이다.평생을 노름빚에 시달리다 철창신세를 지는 한이 있어도 한번 도박은 영원한 고질병으로 심화될 뿐이다.그래서 임종을 할때도 의사가 ‘내일 아침 8시를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예고하자 영국의 한유명한 도박사는 ‘내가 만약 9시까지 산다면 5기니를 내라’고 내기를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우리나라에서는 백제의 개로왕때 고구려의 간첩(間諜)중이던 도림(道琳)이 개로왕을 바둑으로 유혹하는 바람에 토목공사로 국고를 축내어 백제가 패전했다는 기록이 있다.도박은 가산탕진과 패가망신 등 끝장을 내고야 만다는 차원에서 파멸이나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미국에서도 지난 80년 정신과 의사들이 정식 질병으로 분류한 바 있다. 연례행사처럼 부유층 도박꾼들이 적발되고 있다.이번에는 단 3시간 만에 1억원에서 하룻밤새 수억원,8억짜리 빌라를 날리거나 17년 동안 술집을 해서번 12억원을 고스란히 잃은 사례도 등장한다.주로 돈이 있는 연예인이나 스포츠감독·중소기업 사장의 부인들이 거액의 재산을 탕진하고 남편과의 불화를 겪은 뒤 이혼한 것으로 되어있다.그러나 그들이 도박판에서 흔들어댄 수억원대의 돈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선량한 서민들에게 얼마나 큰낭패감과 허탈감을 안겨주었는지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대부분의 가정은 아이들의 교육비와 집장만을 위해 월급의 절반을 저축하는가하면 월세,전세를전전하다 10년 만에야 겨우 집장만을 하고 있다.그런 집을 하루아침에 날릴수도 있다는 한탕주의는 모처럼의 값진 성취감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나 다름없다.가뜩이나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있다.시의를외면한 이러한 도덕불감증은 어떤 세찬 비난과 엄한 벌을 받아도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도박은 정신병이다.사회발전을 저해하는 독버섯이다.남들이 노력하고 힘겹게 살 때 한가롭게 맥을 빼는 망국병은 가차없는 처벌이마땅하다.적발해봤자 보석으로 풀려나와 또다시 도박을 되풀이하기 전에 도박중독증이 주변에어떠한 해를 끼치는지를 알게 하고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가를 속속들이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 가수 김종환 혼빙간음혐의 피소(조약돌)

    ◎재미동포 “결혼전제 교제” 고소 ●‘사랑을 위하여’ 등을 부른 인기가수 金종환씨(33·본명 김길남)가 지난 26일 혼인빙자간음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됐다. 재미동포 캐시 리씨(28)는 소장에서 “97년 10월 LA 오렌지카운티에서 열린 ‘한국의 날’행사에서 金씨를 만나 결혼을 전제로 LA를 오가며 사귀어오다 지난 달 2일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으나 金씨가 2명의 자식을 둔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고소했다”고 주장했다. 金씨측은 이에 대해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며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관계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 북한산 등 국립공원 8개 구역/2002년까지 자연 휴식년제

    북한산 우이·구기·평창계곡 등 국립공원 내 8개 구역의 출입이 내년부터 2002년까지 4년간 금지된다.또 지리산 반야봉∼쟁기소 등 13개 구역의 출입금지기간이 2002년까지 4년간 연장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4일 행락객의 이용으로 훼손됐거나 자연생태계 보전을 위해 출입 통제가 필요한 지역을 대상으로 자연휴식년제를 이같이 새로 실시하거나 연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새로 출입이 금지되는 구역은 지리산의 ▲선녀탕∼천왕봉 ▲장터목 훼손지 복구지역 ▲왕등대 습지 ▲북한산의 우이분소∼옛 백운매표소(우이계곡),구기분소∼제4휴식처(구기계곡),평창2매표소∼동령폭포 위(평창계곡) ▲주왕산의 기암교∼자하교 수달래 군락지,▲월출산의 동원농장∼억새밭 등이다. 출입금지기간이 연장되는 구역은 지리산의 ▲반야봉∼쟁기소 ▲노고단 정상부 ▲반야봉 정상부 ▲제석봉 구상나무 식재지,▲북한산의 백운매표소∼우이대피소 위 갈림길,우이능선 하루재∼육모정매표소 위 용덕사 입구,도봉 제4휴식처∼도봉 주능선 삼거리,도봉서원∼도봉 제10휴식처갈림길,우이대피소위 하루재·깔닥고개 갈림길∼깔닥고개 위,하루재 깔닥고개 ▲월출산의 천황사∼바람폭포 ▲월악산의 마애불∼960고지 삼거리,▲한려해상국립권의 학동 동백 군락지 등이다.
  • 국립공원내 수익시설 매점 등 178곳 민영화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금까지 공단이 운영해온 주차장,야영장,매점,대피소 등 국립공원 내 240개 수익시설 가운데 178개의 운영권을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내년 1월부터 민간에게 넘기기로 했다고 20일 밝혔다. 공개경쟁입찰은 각 시설별로 적합한 시기에 실시되며 유찰되면 수의계약 방식으로 민간에게 운영권이 넘어간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는 “정부출연기관에 대한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내년부터 정부출연금이 없어지게 돼 직영이 힘들어진 공원 내 수익시설 중 민간에게 넘겨도 공원관리에 크게 차질이 없는 178곳을 선별했다”고 말했다.
  • 日 경비정 公海서 돌연 사격훈련/우리 어선 20여척 대피소동

    일본 해상보안청이 공해상에서 함포 사격훈련을 갑자기 실시,조업중이던 우리 어선들이 어구도 챙기지 못한 채 긴급대피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7일 해양수산부 등에 따르면 일본 해상보안청 경비함들은 지난 12일 낮 12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일본 쓰시마섬 인근 북위 34도49분,동경 129도52분의 반경 8마일 공해상에서 함포사격 훈련을 해 조업중이던 부산선적 303효성호 등 우리 어선 20여척이 긴급 대피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해상훈련의 경우 통상 2주전에 이를 통보하던 관례를 무시하고 훈련 4시간 전인 당일 오전 8시30분쯤에야 한국 어업지도선에 이같은 사실을 알려왔다.
  • 여야 고소취하 안된다(사설)

    여야는 지난 16일 ‘3당3역회의’ 첫 모임을 갖고 지난 6·4 지방선거 때 서로 고발·고소했던 사건들을 일괄 취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아직 공식 합의는 아니라지만 그런 보도를 접하는 국민들의 감정은 착잡하다. 국민들은 여야가 극한 대결을 그치고 국난극복을 위해 나서주기를 진정 바라고 있다. 그래도 그렇다. 3당 3역이 현 정부 출범 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게 고작 ‘고소·고발 일괄 취하’란 말인가. 여야가 서로 협력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혼탁한 선거풍토를 정화(淨化)하는 작업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물론 여야의 고소·고발 일괄 취하로 선거관련 피소자들이 모두 법망에서 풀려나는 건 아니다. 친고죄나 무고죄등에만 한정된다. 그동안 검찰은 6·4 지방선거와 관련해서 4,310명을 입건,3,900여명을 사법처리했다. 그 가운데 명예훼손등 흑색선전 사범은 656명으로 대부분 처리를 마친 상태다. 여야가 고소·고발을 일괄 취하하게 되면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공업용미싱’발언으로 대통령 모욕죄가 적용돼 기소돼 있는 한나라당 金洪信 의원도 법원의 공소기각 결정으로 발을 뻗고 자게된다. 당시 국민회의는 金의원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원직 제명까지 거론하며 초강경 대응을 했었다. “이땅에서 음해나 중상·폭언의 풍조가 사라지도록 만들겠다”던 국민회의쪽 호언을 국민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은 검찰과 법원이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나 후보자 비방등에 대해 너무 무르게 대응하지 않는가 하는 느낌을 갖고 있다. 그런 마당에 여야가 고소·고발은 일괄 취하하게 되면 다른 선거사범들에 대한 사법처리에도 당연히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특히 ‘망국병’으로 지탄받는 지역감정 조장사범의 경우가 그렇다. 지역감정 조장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6명으로 그 가운데 4명은 이미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다. 6·4 지방선거 때뿐만 아니라 몇몇 보선 때도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언동이 극에 달했었다. 명색이 국정을 맡겠다는 정치인이 지역감정을 선동하는 것은 민주주의 내용을 유린하는 범죄행위이다. 길게 말할 것 없다. 여야는 협력 분위기를 내세워 고소·고발을 일괄 취하해서는 안된다. 피의자들을 검찰수사와 법원의 판결에 맡겨 엄벌해야 한다. 그래야만 혼탁한 선거풍토가 다소나마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동해항 검색대·대합실 비좁다/관광객이 본 미비점

    ◎배 갈아타기 큰 불편/외국승무원 너무 많아/공중전화 회선 부족 2박3일 동안의 금강산 관광을 마치고 16일 돌아온 관광객들은 대체로 만족스러워했지만 출·입국 과정에서의 불편 등 몇가지 점에는 아쉬움을 표시했다.이들이 지적한 문제점을 간추린다. ●출·입국문제 동해항의 검색대가 크게 부족,수속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면서 30분 늦게 출발했다.18일부터 본격 관광이 시작되면서 더 많은 관광객이 몰릴 때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대합실 규모도 예상 승객수에 비해 너무 작다.의자는 100여개,화장실은 2개에 불과하다. 북한 장전항에서 바지선과 부속선 등으로 승객들을 승·하선시키는 과정도 개선돼야 한다.2차례나 배를 옮기타다 보니 크게 불편했다.부두접안시설이 완공되는 99년 6월 전에라도 다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처음 겪는 일이다보니 예상밖으로 시간이 지체될 때가 두번 있었다.북한측이 제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특히 보조선인 장전 1·2호로 갈아타는 과정에서 2시간 이상이 더 걸렸다. ●선상생활관광객들은 외국 선원들과의 언어소통 장애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선원 423명 가운데 한국인 승무원은 54명 뿐이었고 나머지 369명은 전부 외국인이기 때문이다.영어를 못하는 노인들은 일일이 한국 승무원들을 찾아다니는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통신문제 개선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현재 금강호 안에는 공중전화가 4대 뿐인데 관광객들은 이마저도 사용할 수 없어 우리 영해에서는 핸드폰으로 연락해야만 했다. ●관광지 주변문제 편의시설이 크게 부족했다.관광지 주변의 가게나 음식점 등 편의시설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아직 북한측의 준비가 부족하고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점을 감안해도 기념품 가게 정도는 제대로 갖추었으면 하는 것이 관광객들의 바람이다.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하는 등 제약이 너무 많았다.이후 협상과정에서 완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등산문제 겨울산행에 대한 안전 문제가 심각했다.특히 관광코스 곳곳에 만약의 사고를 대비한 응급의료시설이나 대피소가 있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 경찰 장외경마장서 실탄 발사/수배 조선족 1명 잡으려

    ◎고객 100여명 대피소동 25일 오후 5시10분쯤 경기 광명시 철산동 서울경마장 4층 장외발매소에서 강도상해로 수배된 조선족 崔창림씨(33·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가 서울 구로경찰서 형사과 소속 金炳喆 경장이 쏜 실탄에 오른쪽 옆구리를 맞고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경마장 안에 있던 고객 100여명이 총소리에 놀라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金경장은 “강도상해 혐의로 수배된 崔씨가 경마장에 나타났다는 신고를 받고 동료와 함께 출동,崔씨를 체포하려 했으나 흉기를 휘두르며 저항했다”면서 “공포탄 1발을 쏘았으나 도망가면서 계속 흉기를 휘둘러 어쩔수 없이 실탄 1발을 쐈다”고 말했다. 崔씨는 지난 8월 중순 서울 구로구 구로3동 공단역 입구에서 조선족 裵모씨(32)를 흉기로 20여차례 찔러 중태에 빠뜨려 경찰의 수배를 받아왔다.
  • 카뮈 에세이집 작가수첩1 출간/카뮈의 삶과 문학 그리고 에피소드

    ◎창작계획·작품초안·단상…/35∼42년의 기록 모음/‘이방인’ 첫 문장도 고스란히 “실존주의가 끝나는 데서 나는 출발하고 있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는 자신의 문학이 어떤 한정된 범주로 규정되는 것을 거부했다. 실제로 카뮈의 문학역정을 살펴보면 그의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그는 ‘안과 겉’‘결혼·여름’ 등의 시적 산문집을 냈는가 하면 ‘페스트’‘전락’같은 심각한 소설을 발표,20세기 문학의 정점에 올랐다. 또한 ‘시지프 신화’ ‘반항적 인간’같은 철학적 에세이로 실존주의 문학의 옥토를 일궜고,‘오해’‘칼리굴라’‘정의의 사람들’등 희곡을 발표해 앙가주망 예술가로도 주목받고 있다. 소설가이자 극작가,모럴리스트였던 카뮈. 그의 다양한 내면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에세이집 ‘작가수첩1’이 고려대 김화영 교수(불문과)의 번역으로 나왔다. 도서출판 책세상. 카뮈는 스물두살이던 1935년부터 죽는 날까지 모두 7권의 공책에 기록을 남겼다. ‘작가수첩1’은 1935년부터 1942년까지의 기록을 모은 것. 그는 이 공책에 시시 때때로 떠오르는 단편적인 생활감정과 창작계획,작품의 초안,독서단상 등을 적었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카뮈의 삶의 진실과 문학적 바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작가수첩1’에는 카뮈의 첫번째 소설로 1937년에 탈고됐지만 죽은 뒤에야 출판된 ‘행복한 죽음’에 대한 구상이 담겨 있다. 또 “오늘은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통 받았다”라는 ‘이방인’의 첫 문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한편 “‘시지프’ 탈고. 세가지 부조리가 완성되었다”라는 1941년 2월 21일자의 기록은 ‘부조리’라는 카뮈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문학적 주제가 바로 이때 완성됐음을 보여준다. 이 기록을 남길 무렵 카뮈는 ‘노동극단’과 에키프극단’을 창단했고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등지를 여행했으며,공산당과 결별했고 오랑으로 돌아가 교사로 부임하기도 했다. 이런 개인적인 여정 속에서도 카뮈는 창작을 위한 사색과 관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카뮈는 스스로 ‘두려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던 여행을 통해 다양한 삶의 에피소드들을 채집했다. 이 책에 묘사돼 있는 여행의 흔적들은 에세이 ‘결혼·여름’ 등에서 그대로 발견된다. 카뮈의 ‘작가수첩’은 모두 세권으로 되어 있다. 제3권(51∼54년)은 91년에 국내에 소개됐고,제2권(42∼51년)은 곧 출간될 예정이다.
  • 매커리 前 백악관 대변인 퇴임이후 첫 대중강연회

    ◎“클린턴 사생활에선 어리석은 사람”/역사책 속 이름옆엔 스캔들 ‘별표’ 따라 다닐것 【피츠버그 AP 연합】 “클린턴 대통령은 사생활에선 분통터질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이달초 백악관을 떠난 마이크 매커리 전 백악관 대변인이 19일 퇴임후 가진 첫 대중 강연회에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을 이렇게 평했다. 피츠버그 대학에서 열린 이날 강연회에서 매커리 전 대변인은 클린턴 대통령에 관해 “훌륭한 자격을 갖춘 지도자”이지만 사생활만큼은 “분통터질 정도로 어리석었다”고 회고했다. 실제 강연회에서 매커리 전 대변인은 클린턴 대통령이 경제와 평화구축 분야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나열하면서 업적에 대한 칭찬으로 일관했다.하지만 모니카 르윈스키 전 백악관 인턴직원과의 스캔들은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역사책 속에 클린턴 대통령의 이름 옆에 별표가 따라다닐 것”이라면서 클린턴의 업적은 “항상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에피소드 때문에 훼손되고 더럽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200여명의 청중들에게지난 3년간의 대변인 생활을 솔직히 털어난 그는 또 청중이 백악관을 떠난 소감을 묻자 두팔을 벌리고 껑충 뛰며 “마침내 자유!”라고 외치는 예의 유머스런 행동을 보여주었다. 이 자리에서 매커리 전 대변인은 백악관 출입기자단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않았다. 그는 르윈스키 스캔들로 자신이 수차례 브리핑을 할때 기자들이 다른 문제에 대해선 단 한가지 질문도 하지 않는것에 무척 놀랐다고 술회했다.
  • 親日의 군상:9/시인 金東煥(정직한 역사 되찾기)

    ◎名詩 남긴 민족 시인 끝내 변절의 길로/“聖戰 나가 죽는것이 충성의 길” 전국 돌며 강연회/‘삼천리’ 등 각종 친일매체에 논설·평론 게재 앞장/1941년 임전대책 협의회 결성 주도… ‘황민화’ 실천/해방후 반민특위에 자수/6·25때 납북후 행방불명/3男 부친 행적 대신 사죄 “아하,無事히 건넜을까/이 한밤에 男便은/豆滿江을 탈없이 건넜을까?//저리 국경 강안을 경비하는/외투 쓴 검은 巡査가/왔다- 갔다-/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소곰실이 密輸出馬車를 띄워놓고/밤새가며 속태이는 젊은 아낙네/물레 젓던 손도 脈이 풀려서/파!하고 붓는 漁油등잔만 바라본다,/北國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가는데.(‘국경의 밤’ 제1부 첫머리에서) 새벽마다/고요히 꿈길을 밟고와서/머리마테 찬물을 솨- 퍼붓고는/그만 가슴을 드듸면서 멀니 사라지는 北靑물장수.//물에 저즌 꿈이/北靑물장수를 부르면/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온 자최도 업시 다시 사라진다.//날마다 아츰마다 기대려지는/北靑물장수.(‘北靑물장수’ 전문)‘시인은 가도 시는 영원한가?’ 낯익은 두 편의 시를 보면서 우리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한 시인을 그리워하게 된다.파인(巴人) 金東煥(1901∼?,창씨명 白山靑樹).바로 그다.흔히 그를 ‘북국(北國)의 시인’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그가 함경북도 경성(鏡城)출신인데다 북방지역의 정서를 담은 시를 여럿 쓴 때문이다. ○한때 민족시인으로 각광 위에 첫번째 소개한 ‘국경의 밤’은 우리 국문학사에서 ‘최초의 장편 서사시’로 평가받고 있다.당시 북방지역 조선인들의 애환을 담은 이 시는 작품 저변에 흐르는 민족적인 색채로도 특별한 평가를 받고 있다.두번째 시 ‘북청(北靑)물장수’는 ‘북청’이란 지명을 유명하게 만들었다.당시 경성(京城·현 서울)에는 물장수를 하면서 아들이나 동생의 학비를 대는 북청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문단생활 초창기 토속적인 정서로 식민지하 조선인들의 삶과 애환을 노래한 ‘민족시인’ 김동환.일제말기 그의 변절은 이래서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김동환의 첫 출발은 신문기자였다.서울 중동중학교를 마치고 1921년 일본 동양(東洋)대학에 입학한 그는 23년 9월1일 도쿄 일대를 강타한 ‘관동(關東)대지진’이 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그는 1924년 고향 경성에서 발행되던 ‘북선일일신문(北鮮日日新聞)’기자로 입사,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이 신문은 일본인이 발행하던 지방신문으로 일문판(日文版)과 조선문판을 발행하고 있었는데 그는 여기서 조선문판 기자로 있었다. 입사 한 달만에 그는 동아일보로 일자리를 옮겼는데 여기서도 1년을 채우지 못했다.당시 좌익기자들이 주도하던 파업에 참여했다가 결국은 그도 사표를 내고 동아일보를 떠나야만 했다.이후 시대일보·중외일보를 거쳐 27년 5월 조선일보에 자리를 잡았다.그의 5년 남짓한 신문기자 생활은 조선일보에서 막을 내렸다. 그는 신문기자보다는 시인·문필가로 더 유명하다.그의 문단활동은 신문기자 생활보다도 앞선다.24년 5월 梁柱東의 추천으로 ‘금성(金星)’지에 ‘적성(赤星)을 손가락질 하며’를 발표하면서 그는 문단에 데뷔하였다.대표작중의 하나인 ‘북청물장수’는 그가 동아일보 입사 1주일만(24년 10월13일)에 동아일보 지면에 발표한 것이다.첫 시집 ‘국경의 밤’은 이듬해 3월 한성도서(漢城圖書)에서 출간됐다.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그의 시작활동은 40년대 초반까지 계속됐다. 신문기자,시인에 이어 그를 상징하는 또 하나는 잡지 ‘삼천리(三千里)’발행인(사장).‘삼천리’는 1929년 6월에 창간하여 42년 1월까지 통권 152호를 발행한 월간 종합잡지.(42년 5월1일자부터 ‘대동아(大東亞)’로 바뀜) ○中日전쟁 계기 친일 선회 ‘삼천리’ 창간배경에는 재미있는 일화 한토막이 있다.원래 그는 자본가는 아니었다.그가 이 잡지를 창간한 밑천은 ‘촌지’였다.당시 그는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차장)로 총독부를 출입하고 있었다.그해 가을 조선총독부는 경복궁에서 ‘조선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출입기자들에게 300원씩(액수에 대해선 일부 주장이 엇갈림) ‘촌지’를 돌렸는데 당시 쌀 한가마 13원 하던 시절이니 꽤 큰 돈이었다.대부분의 기자들은 ‘공돈’이라며 옷을 사 입거나 유흥비로 날렸으나 그는 이 돈을 ‘사업자금’으로 활용한 셈. 초창기 ‘삼천리’는 우리 국토를 상징하는 제호(題號)만큼이나 민족적인 색채가 강한 잡지였다.당대의 거물 문사·논객들이 단골필자로 참여하여 조선의 역사·문화와 당대의 시대상을 주요 테마로 다루곤 했다.‘삼천리’는 당시 민간신문사들이 발행하던 종합잡지 ‘신동아’‘조광(朝光)’ 등과 어깨를 겨룰만큼 인기있는 잡지였다. 3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그는 잡지 발행 이외에도 신문과 다른 잡지 기고를 통해 왕성한 문필활동을 했다.그러나 그에게도 이른바 ‘시국(時局)’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37년 7월 중일전쟁 발발을 분수령으로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이 전개되자 여타 문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이 친일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시국은 점점 긴장하여 가고 장기전(長期戰)의 체제는 점점 굳어가고,그리하여 국민총동원의 추(秋) 다다랐도다.우리는 일체의 힘을 합하여,‘전쟁에 이깁시다.국책(國策)의 선(線)에 연(沿)하여 일체의 동작을 합시다’…” ○학병 참가 촉구 詩 발표 38년 5월 ‘삼천리’ 창간 10주년호 ‘편집후기’에서 그는 자신의 향후 친일노선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였다.같은 호 기명칼럼 ‘시평(時評)’(‘권문세가의 반성을 촉(促)함’)에서 그는 “…이제 제국은 아세아의 번영과 행복을 위하여 대지(對支)응징의 전쟁을 기(起)하고 있다.…자식과 조카(侄)를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군문(軍門)에 보내야할 것”이라며 지원병으로 나갈것을 독려하였다.그가 친일로 전향한 배경에는 ‘삼천리’의 재정난이 한 요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보다는 기득권 유지와 ‘대세순응주의’가 주된 요인이었다고 보여진다. 그의 친일시는 이듬해부터 노골적으로 시작된다.지원병을 찬양한 ‘1천병사(兵士)의 삼(森)’에서는 ‘저마다 폐하의 무궁한 성대(聖代)를 노래부르는 젊은 건아’로,‘고란사에서’라는 시에서는 ‘대화(大和)의 처녀가 사라져 가버린 뜰에 나홀로 서성거리며 어조영(御造營)의 망치소리에 천년 역사를 회상’하며 부여신궁(扶餘神宮) 근로봉사의 감격을 읊었다.(두 편 모두 ‘삼천리’39년12월호) 조선인 학병 동원이 시작되자 그는 ‘매일신보’에 ‘권군취천명(勸君就天命)’(43년 11월6일)이라는 시를 통해 ‘번듯하게 사는 길이란­ 제 목숨 나라에 바쳐,…군국(軍國)에 바칠 때일세 ’라며 ‘성전(聖戰)’에 나서라고 촉구하였다.이 밖에도 그는 각종 친일매체에 다수의 친일논설·평론 등을 남겼다. ○각종 단체서 背族행위 그의 대표적인 친일행적은 그가 주동이 돼 41년 8월25일 ‘임전대책협의회’를 발족시킨 일이다.이 단체는 임전(臨戰)체제하에서 자발적으로 황민화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조선내 친일인사를 총망라하여 구성한 단체로 발족 1개월 후인 9월에는 尹致昊 중심의 친일단체인 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와 통합,‘조선임전보국단’으로 재출발하였다.그는 이 단체의 핵심요원인 상무이사로 활동하였다.이 밖에도 그는 조선문인협회 발기인,조선문인보국회 상임이사,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대화동맹 위원 등을 지내면서 일제말기 친일대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해방후 그는 자신의 친일행각을 뉘우치며 반민특위에 자수하였다.반민재판에서 공민권 정지 5년을선고받은 그는 6·25때 납북됐다.94년 그의 3남 英植(65)은 부친의 전기를 펴내면서 부친의 친일행적에 대해 대신 사죄한 바 있다. “문인이 지켜야 할 절개에 두 가지가 있다.…믿던 부류의 사람까지 이(利)에 팔리고 지위에 움직임을 받아서 부끄러운 처신을 취한다면 대중이 그를 버릴 것이요,예술은 그를 타기(唾棄)할 것이다…”.아직 민족혼이 살아 숨쉬던 시절 그가 쓴 이 한 구절이 가슴을 치는 것은 왜일까. ◎金東煥­崔貞熙 ‘사랑의 행로’ ‘같이한 친일’/유부남­미망인의 동거/7년 산뒤 딸 둘 낳아/崔貞熙 일제말 친일 전향 巴人 金東煥과 여류소설가 崔貞熙(90년 작고)의 ‘불륜’은 한국문단에서 잘 알려진 이야기다.두 사람 모두 문인이자 일제말기 친일행적도 똑같이 남겼다. ‘시대일보’ 기자 시절인 1926년 원산(元山) 출신 신여성 申元惠(93년 작고)와 결혼한 파인은 이 사이에서 3남1녀를 두었다. 파인이 崔貞熙를 처음 만난 것은 1931년 초가을.중앙보육학교장 朴熙道(33인중 1인으로 나중에 친일로 변절함)의 취직부탁을 가지고 삼천리사를 찾아 온 崔貞熙를 파인은 당일로 ‘부인(婦人)기자’(여기자)로 채용하였다.당시 崔貞熙는 결혼한 몸이었다. 두 사람이 동거를 시작한 것은 43년초.이무렵 崔貞熙는 남편과 사별한 상태였다.두 사람은 50년 파인이 납북될 때까지 7년간 동거하면서 두 딸을 낳았다.崔貞熙는 생전에 전 남편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을 파인의 호적에 올렸다가 申元惠측으로부터 피소된 적도 있다. 34년 ‘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사건’으로 9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崔貞熙.그러나 그 역시 결전부인대강연회(41년 12월27일)에 연사로 참여하는 등 일제말기 친일로 전향하였다.대표적 친일작품으로는 소설 ‘장미의 집’(‘대동아’42년 7월호),‘야국초(野菊抄)’(‘국민문학’42년 11월호),수필 ‘동아(東亞)의 새아침’(‘매일신보’42년 2월21일) 등이 있다.
  • 유니버설발레단 ‘돈키호테’ 무대에/17일까지 예술의 전당서

    ◎문훈숙·임혜경 등 무용수 80여명 출연 유니버설발레단(단장 문훈숙)은 고전 희극발레 ‘돈키호테’(전3막)를 14∼1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다. 오후 7시30분,17일은 오후 3시30분·7시30분. ‘돈키호테’는 경쾌한 줄거리에 장면전환이 빠르고 스페인풍의 춤 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특징. 특히 3막의 결혼식 장면에 나오는 주인공 키트리와 바질의 그랑 파드두(2인무)는 고난도의 테크닉과 환상적인 춤으로 유명하다. 누레예프,바실리예프,바리시니코프 등 러시아의 발레 스타들은 모두 이 작품의 바질 역을 맡아 관객들을 열광케 했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가 처음 발레로 만들어진 것은 1750년대. 그후 샤를르 디드로,오거스트 부농빌 등 많은 안무가들이 부자 가마슈가 바질의 애인 키트리와 결혼하려다 실패한다는 원작의 에피소드를 토대로 작품을 안무했다. 오늘날 ‘돈키호테’라고 하면 보통 1869년 초연된 마리우스 프티파 안무·루드비히 밍쿠스 음악의 발레를 가리킨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1900년 모스크바에서 초연된 알렉산더 고르스키 판이다. 발레계에서는 오랫동안 발레 마스터가 작곡가의 동의 없이 편곡하는 것이 인정돼 왔다. 그 당시만 해도 발레 작곡가의 지위가 변변찮았기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마저도 편곡된 적이 있다. 고르스키판을 기본으로 하는 ‘돈키호테’에서는 밍쿠스 이외에 8명의 곡이 사용됐다. 이번 공연의 총지휘는 지난 5월 유니버설발레단의 예술감독을 맡은 올레그 비노그라도프씨가 맡았다. 그는 250년 전통의 키로프발레단을 20여년동안 이끌어오고 있는 인물. 문훈숙 임혜경 황재원씨 등 주역무용수를 포함 80여명의 무용수가 호흡을 맞춘다.(02)204­1041
  • 서류 직접 복사·햄버거 점심 예사/OB맥주 데스멧 사장 話題

    ◎격식 구애 받지않고 필요한 일 스스로 처리/퇴근시간 지나 자리지키는 직원 이해못해 “근무시간에 신문을 보다니 이해가 안됩니다” 지난 14일 OB맥주가 벨기에 인터브루사와의 합작회사로 재탄생하면서 사장으로 부임한 벨기에인 토니 데스멧씨(50).그가 얼마전 사무실에서 무심코 신문을 읽고 있던 사원을 발견하고 던진 말이다. 사상 처음으로 국내 대기업에 외국인 사장이 앉은 지 이제 보름.사내에는 문화차이에서 오는 갖가지 에피소드가 속출하고 있다.무엇보다 신임사장의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면모가 화제다.사원들만 있는 사무실에 불쑥 들어와 필요한 것을 가져가는가 하면,직접 서류를 복사하기도해 비서나 직원들을 당황케 한다. 데스멧 사장은 점심시간을 따로 갖는 문화를 생소하게 여긴다고 한다.서구에서는 대부분 점심시간에 업무를 계속하며 빵이나 샌드위치 등으로 간단히 때우기 때문이다.데스멧 사장 역시 사장실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대신하는 경우가 다반사다.퇴근시간이 지났는데도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그가 이해하기어려운 부분이다.직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의사소통이다.영어로 보고를 하다 보니 영어실력이 딸리는 직원들은 상사나 부하직원을 통해 대신 결재를 받는 일도 생긴다. 모든 보고서는 영문으로 대체됐다.이 때문에 직원들은 책상위에 영어사전등 외국어 전문 서적을 4∼5개씩 쌓아놓고 영작과 씨름하고 있다.
  • 선량들의 저질 발언/吳豊淵 차장·정치팀(오늘의 눈)

    최근 여야 의원들의 ‘막가파식’ 저질발언으로 가뜩이나 불신받는 정치가 더 혼탁해지고 있다. 최근들어 여야관계가 급랭하면서 언어의 ‘품격(品格)’도 사라진 지 오래다.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비속어(卑俗語)가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다. 여는 야를,야는 여를 나무라지만 도토리 키재기다. 국민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투다. 각 당 대변인과 일부 강경파 의원들이 ‘저격수’노릇을 자임하면서 시작된 말싸움이 이제는 당 지도부까지 가세해 ‘갈 데까지 다 간’ 형국이다. 이에 따라 여야 대표들이 모두 피소될 상황에 놓여 있다. 상대방 발언을 문제삼아 명예훼손혐의로 고발하겠다고 각기 으름장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고발 엄포’에 있어 국민회의가 먼저 선수(先手)를 쳤다. 지난 25일 한나라당의 ‘대구집회’와 관련,지역감정을 선동하는 반국민적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李會昌 총재를 흑색선전 및 유언비어 유포 등의 혐의로 사직당국에 고발하겠다고 경고했다. 같은 날 국민회의 張永達 의원이 국회 본회의 5분발언을 통해 한나라당의 장외집회를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내란유발행위라고 꼬집자 한나라당이 발끈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대국민집회를 내란유발로 호도하는 것은 무서운 음모”라고 반박하고 “張의원은 전국민들에게 백배사죄하고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또 張의원을 비롯,한나라당의 규탄대회를 지역감정으로 몰아붙인 趙世衡 총재권한대행 등 국민회의 당직자를 모두 명예훼손혐의로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여야가 극한 대립을 할 경우 정작 피해를 보는 쪽은 국민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치인들의 가당찮은 말싸움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일할 의욕마저 생기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부 흥분한 시민들은 “아예 국회를 없애라”고 ‘국회무용론’을 펴기도 한다. 작금의 경색정국은 여야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감정대립을 하면서 ‘브레이크’없는 저질발언 때문에 확대된 측면이 없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언어순화(醇化)를 통해 품위있는 말을 사용하면 정국정상화의 ‘가닥’이 금방 잡힐 것도 같은 예감이 든다.
  • 부산영화제 화려한 개막/24일 5천명 참석 성황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가 24일 오후7시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국내외 영화계 인사 등 4,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뜨거운 열기 속에 막을 올렸다. 영화배우 明桂男씨와 裵裕靜씨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식은 은은한 재즈연주가 흐르는 가운데 文正秀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의 개회사와 安相英 부산시장의 환영사,영화에피소드를 소재로 한 마임공연,金大中 대통령의 영상 축하메세지,동래학춤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金대통령은 영상메시지에서 “문화의 시대,영상산업의 시대인 21세기를 앞두고 영화제가 부산에서 열리는 것은 태평양시대를 향한 문화한국의 미래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치하하고 “이 영화제가 우리 문화산업을 크게 일으키고 세계를 품에 안는 세계주의를 실현하는 훌륭한 축제의 마당이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30여분간의 개막행사에 이어 개막작인 이란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고요’가 대형스크린을 통해 상영됐다. 개막식에는 金正吉 행정자치부장관,辛鉉雄 문화관광부차관,金芝美 영화인협회이사장,감독 裵昶浩·李明世씨,배우 姜受延,韓石圭씨 등 국내 각계인사와 프랑스의 삐에르 르시앙 칸영화제 선정위원,일본의 이와이 순지 감독,홍콩 스탠리 콴 감독 등 해외 영화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 국립공원 야영 예약제/11월부터/여름휴가·단풍철·공휴일 이용때

    ◎숙박 5일전 신청해야 앞으로 전국 국립공원내 34개 야영장과 13개 대피소에서 숙박하려면 예약을 해야 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1일 국립공원 이용객이 몰리는 매년 7월10일∼8월20일과 10월1일∼11월14일,공휴일 및 공휴일 하루 전날 야영장 또는 대피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전 예약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공단은 우선 오는 10월 한달 동안 사전 예약제를 시범 운영하면서 계도 및 홍보 활동을 편 뒤 11월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이다. 대상 야영장은 지리산의 제1·2 야영장을 비롯해 달궁 노고단 황전 중산리 백무동 대원사,계룡산의 동학사,설악산의 설악동 장수대 오색,속리산의 청소년 후영리,내장산의 백양사,가야산의 치인 백운,덕유산의 덕유대,오대산의 동피골 소금강,주왕산의 상의동,다도해의 염포,치악산의 구룡 금대,월악산의 덕주 닷포,북한산의 인수 석굴,소백산의 천동 남천 희방,월출산의 천황사,한려해상의 상주,내장산의 임시야영장 등 34곳이다. 이용 희망자는 숙박 5일전까지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전화나 팩스,또는 PC통신 하이텔로 예약하면 된다.사전 예약자가 야영장 및 대피소의 수용인원보다 적을 때는 당일에도 신청할 수 있다.
  • 국내 첫 가요사 박물관 선다

    ◎가요연구가 김점도씨 소장품 인천예총에 기증/SP·LP음반 11,600여장에 유랑극단시절의 포스터도/새달 17일 현판식후 본격준비/내년 6월이면 일반에 공개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사 박물관이 인천에 세워진다. 한평생을 가요관련 자료 수집에 바쳐온 가요연구가 김점도씨(金占道·63)가 기증한 소장품 1만여점을 토대로한 것이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인천지회(이하 예총인천지회·회장 李鮮周)부설로 오는 10월17일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설립준비에 들어갈 이 박물관은 국내 미공개 자료들을 더 모아 명실상부한 우리 가요사의 최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계획이다. ‘가요계의 자료광’김씨가 내놓은 자료는 일제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대중가요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SP(78회전)음반 1,600여장,LP음반 1만여장과 유랑극단 시절의 포스터 100여점 등 양적인 의미 외에도 미공개된 자료가 많아 가치가 더 크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보컬그룹 ‘연희전문 4중창단’사진이나,국내 여성보컬1호 ‘저고리시스터’,대정11년(1922)시대의 노래책 등은국내에서 처음 빛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시는 내년 6월이 되어야 가능할 전망이다. “집에서 예총인천지회로 옮기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는 김씨의 ‘30년 정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선 10월의 현판식 및 축하공연을 통해 공식출범한뒤 전국에 있는 미공개 자료들을 보태서 내년 상반기내에 100평 규모의 인천문화회관(인천시 숭의4동) 1,2전시실에 상설전시관을 개설할 계획이다. 박물관 건립의 공신은 김점도씨와 예총인천지회장 이선주씨. 이선주 회장은 “우선 가요사박물관을 세운뒤 사진,문학박물관 등을 차례로 세워 예술박물관을 건립하는게 목표”라고 포부를 밝힌뒤 “벌써 소문이 나기 시작해 개인 소장가들이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혀와 작업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총인천지회 차원에서 추진한뒤 인천광역시나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겠다”고 덧붙였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중가요 전통에 비추어 볼때 번듯한 박물관 하나 없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그만큼 우리 대중가요가‘천덕꾸러기’였음을 반증한다. ◎가요관련 자료 기증 김점도씨/“30년간 돈만 생기면 자료찾아 전국 헤매”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국내 최초의 가요사박물관 설립을 눈앞에 둔 김점도씨(관장 위촉·KBS­TV ‘가요무대’ 자문위원)의 얼굴엔 지난 30년간의 ‘대중가요 짝사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67년 밴드마스터로 활약할때 전주나 간주가 없는 악보가 이상해 원래의 음반이나 악보를 모으면서 시작한 외길인생이 벌써 30여년. 돈만 생기면 서울 인사동이나 전국 곳곳을 헤매면서 고귀한 자료를 찾아다녔다. “언젠가 인사동 고서점에서 SP음반 몇개를 발견하고는 주머니를 뒤져 샀는데 인천에 돌아올 차비가 없는거예요. 할수없이 주인에게 1,000원을 빌리기도 했지요”. 김씨의 열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 가요사는 상처투성이다. 특히 월북이나 피랍된 사람의 작품인 경우 이름이나 가사를 고쳐서 유통했는데 후세 사람들이 이를 그대로 쓰로 있다는 것이다. “가요‘알뜰한 당신’은 어부풍 작사·전수린 작곡으로 알고 있는데 실은 월북한 조명암씨가 작사한 것”이라며 당시 나온 ‘빅터 레코드’의 종이자켓을 보여준다. ‘선창’이나 ‘번지없는 주막’도 비슷한 사연이라고 덧붙인다. 이번 박물관 건립이 가요사를 새로 쓰는 의미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개인적으로 소장자나 유족들에게 달라고 하면 잘 주지않아 어려웠던 점이 이번 박물관 설립으로 수월해질 것”이라고 소박한 의미를 부여했다. 꾀가 많은 사람은 못할,실속도 없는 일에 매달리느라 살림은 부인이 도맡다시피 했고 “남은건 600만원 빚뿐”이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흠뻑 배인 김씨의 굽은 어깨 너머로 곰팡내나는 ‘김씨의 분신’들이 고맙다는듯 빽빽이 어깨겯고 있었다.
  • 도심 가스충전소 폭발/55명 부상·4명 중태/부천 주택가

    ◎주민 2,000여명 대피소동 11일 하오 2시5분쯤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내동 70의 2 대성에너지 LP가스충전소(주인 유삼진·59)에서 가스가 누출,폭발과 동시에 큰 불이 일어났다. 폭발 순간 지상 100여m까지 치솟았던 불길은 발생 3시간여만인 하오 5시10분쯤 대부분 잡혔다. 사고로 충전소 직원 5명과 소방관 18명,주민과 행인 21명 등 44명이 1∼3도 화상을 입었으며 차량 50여대가 불에 탔다.부상자 가운데 4명은 위독하다. 불은 이웃 공장지대로 번져 건물 5채를 태우는 등 반경 30m 가량이 피해를 봤다. 사고는 충전소 직원 변재갑씨가 15t 대형 탱크로리 2대로부터 지하 가스탱크에 가스를 주입하는 과정에서 호스가 빠지면서 가스가 새 나와 인화물질에 폭발하면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경찰은 이에 따라 저장탱크 주입구에 가스를 넣는 이음호환장치에 문제가 생겨 사고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이를 수거해 정밀 분석 중이다. 지하 가스탱크에는 프로판가스 30t,부탄가스 40t이 저장돼 있었으나 다행히 불이 옮겨 붙지는 않았다. 그러나 충전소 안에 있던 배달용 가스통에 불길이 번져 가스통 600여개 가운데 10여개가 잇따라 폭발했다. 이웃 폐타이어 야적장에도 불이 옮겨 붙어 3시간 남짓 현장 하늘은 시커먼 연기로 뒤덮였다. 불이 나자 이웃 공장직원과 주민 등 2,000여명이 추가 폭발을 우려,긴급대피하는 등 소동이 빚어졌다. 현장에는 소방차 90여대와 소방관 700여명,소방헬기 1대가 출동해 진화작업을 펼쳤으나 폭발이 잇따른데다 불길이 거세 어려움을 겪었다. 사고로 부천시내 주요 도로와 경인고속도로 부천인터체인지 일대 교통이 완전히 마비됐다. 부상자들은 부천의 늘푸른병원과 대성병원,서울의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 漢字 교육/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한자(漢字)를 둘러싼 실수나 웃지 못할 희비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얼마전 전주시의 한 외곽에서 차량을 검문하던 의경이 운전자가 제시한 주민등록증의 이름중 ‘설(卨)’자를 보고 경찰청 상황실에다 “탱크처럼 생긴 한자인데 어떻게 읽느냐?”고 물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자깨나 공부했다는 사람도 읽을 때와 쓸 때가 헷갈릴 적이 많다. 어쨌든 한자문맹 현상은 지식수준 탓이 아니라 학교에서 제대로 한자를 가르치지 않은 때문이다. 지난해 전국 4년제 49개대학 61개 학과 졸업생 100명을 대상으로 한국 한자능력검정회가 치른 한자시험에서 아홉 구(九)자를 못쓰는 사람이 무려 55%나 된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쓰지 못하거나 부모이름을 쓰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했다. 전에는 대학생들이 교재에 나오는 한문을 읽지 못하면 창피하게 여겼으나 지금은 ‘한글세대’를 내세워 모르는 것을 당연시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지금은 동북아(東北亞)가 새 세기의 문화경제를 함께 이뤄가는 시대다. 베이징(北京)이나도쿄(東京)를 여행하면서 한자로 된 간판이나 표지판을 읽지 못한다면 전혀 자랑스러울 것이 못된다. 북한은 68년이후 문화경제적 고립을 실감하여 고교와 대학과정에서 각각 1,500자씩 3,000자의 한자교육을 시키고 있고 일본은 중학교까지 상용한자 1,945자,사회에서는 3,000여자를 이용하여 문자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우리도 정식과정에는 없지만 초중고에서 학교재량으로 1,800자를 가르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방치된 감이다. 경찰청은 주민등록증에 기재된 한자이름을 읽지 못하거나 잘못 읽어 업무수행의 어려움을 겪는 일이 잦아지자 전국 5만여명의 의경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한자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자를 모르면 한자가 7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말의 참된 의미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우리 전통을 제대로 아는데도 도움이 되지못한다. 한자를 읽지못하는 층의 85%가 ‘한자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한 것만 봐도 한자교육의 불가피성을 절감할수 있다. 한글전용이니 국한문 혼용이니의 논쟁을 떠나 실생활에서 불편한가 아닌가가 먼저 문제다. 일시적 혼란이 따르더라도 실용적인 한자교육의 시급성은 눈앞에 닥친 현실이라는 생각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