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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군 3명 피살/팔인,가자지구서 기관총 난사

    【예루살렘 AP AFP 연합】 이스라엘 점령 아랍 영토인 가자지구에서 7일 새벽 이스라엘군인 3명이 팔레스타인인 무장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숨졌다고 군소식통들이 밝혔다. 이스라엘 군인에 대한 이번 공격은 워싱턴에서 제8차 중동평화회담이 재개되기 수시간 앞두고 발생한 것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현재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및 가자지구 점령에 항의하는 봉기개시 6주년을 기념키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중이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통해 이들 군인 3명이 탑승한 지프가 가자지구의 한 마을을 통과하던중 옆을 지나가던 차량으로부터 기관총 공격이 가해져 이들 군인 3명이 모두 숨졌다고 밝혔다. 한편 회교원리주의단체인 하마스운동산하 무장조직은 이번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고 팔레스타인 소식통들이 전했다.
  • LA흑인폭동·유고내전 등/올 10대뉴스 선정/AP

    【뉴욕 AP 연합】 미국의 AP통신사는 4일 「92년의 국제 10대뉴스」를 선정,발표하고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는 유고내전을 빌 클린턴의 미국대통령 당선보다 앞서는 올해의 국제뉴스 1위로 꼽았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37개국 유력 신문및 통신,방송사의 뉴스편집자 1백5명이 뉴스가치를 10점 만점제로 평가,산출한 이번 AP의 10대 국제뉴스에서 유고내전은 총 9백38점을 얻어 미민주당의 대선승리(8백42점)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다음은 AP선정 92년도 10대 뉴스이다. ①유고내전 사태 ②미국 대통령 선거,클린턴 당선 ③구소련공화국들의 민족분규등 완전독립을 향한 과도기적 진통 ④보수세력에 맞선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개혁노력 ⑤소말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기아문제 ⑥독일극우파들의 외국인 공격과 환경문제 ⑦브라질 리우환경정상회담 ⑧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 종식을 둘러싼 흑·백정치세력간의 갈등 ⑨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 ⑩이스라엘과 아랍권의 중동평화노력. 이밖에 11위부터 20위까지의 중요 뉴스로는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의 전세계적인 확산 ▲이스라엘 화물기의 암스테르담 아파트단지 추락 ▲중국공산당 제14차당대회 ▲농산물보조금 지급문제를 둘러싼 미·EC간 무역분쟁 ▲태국의 민주화시위 유혈진압 ▲콜로르 데 멜로 브라질대통령 탄핵 ▲페루의 헌정중단사태와 좌익게릴라단체 「빛나는 길」지도자 체포 ▲이탈리아의 마피아 담당판사 피살 ▲캄보디아 평화노력 ▲아프간 회교반군의 카불 입성 등이 올랐다.
  • 스웨덴서도 극우폭력/유태인묘석 파손/독선 또 외국인숙소 습격

    【본·스톡홀름 AP AFP DPA 연합】 독일내 터키계 이주민 3명 피살사건으로 독일정계 지도자들이 극우세력 척결을 다짐하는등 국내외적 분노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24일 외국인 숙소에 대한 폭탄 테러위협과 스웨덴의 유태인 묘지 훼손사건이 또다시 발생,극우테러가 확산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독일청년 20여명은 이날 바이젠하임 암 잔트에서 『독일인을 위한 독일』등 나치 구호를 외치면서 외국인 이주민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의 창문을 부수고 행패를 부리는등 한동안 난동을 부리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기 직전 도주했다고 현지 경찰이 밝혔다. 경찰은 그러나 이번 난동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다고 말하고 현재 수사가 진행중이라고 덧붙였다. 또 독일 동부 플리아시에서도 한 외국인 숙소를 폭파하겠다는 협박이 가해져 60여명의 외국인들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도 23일에 이어 24일 솔나지방의 노라 퀴르코가르덴에 위치한 유태인 묘석 92개가 뽑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 “히틀러망령 번져온다” 유럽국 전율

    ◎터키인 이어 베트남·동구인도 피습/“외국인이 복지 축낸다” 인식이 문제 독일에서부터 터지기 시작한 극우테러가 스웨덴등 유럽 각국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여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유럽각국들은 특히 독일에서 있었던 터키계 여성3명의 피살사건에 경악을 금치못하며 이같은 극우테러가 자기나라로까지 번질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문제의 심각성은 그같은 극우테러가 어제 오늘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뿌리가 생각보다 깊다는데 있다.독일은 나치의 본고장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에 확산지로 등장한 스웨덴 또한 극우테러가 처음이 아니다.스웨덴에서는 지난해에도 제3세계 출신 이민자 6명이 총격을 받아 죽거나 다쳤으며 2년전에도 5명이 총격을 받았다. 스웨덴당국은 총격사건에 대한 제보에 1백만 크로네(약17만2천달러)라는 거액의 상금을 내걸고 범인 색출에 힘써 왔으나 아직 한명도 잡지못했다.이들 사건은 각각 개별적으로 일어났지만 한 집단의 일원들이 저지른 것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경찰은 보고있다. 이번에 스웨덴에서 일어난유태인 묘지 훼손사건은 지난 90년5월 프랑스에서도 발생,이 나라가 온통 소용돌이에 휘말린 적이 있다.사건의 첫 발생지는 프랑스 제2의 도시인 마르세유시 북쪽 1백㎞쯤 떨어진 카르팡트라라는 소도시의 공동묘지였다. 경찰 조사결과 이때도 묘석이 깨지고 땅속 깊숙하게 파헤쳐져 크게 훼손된 묘가 34개나 됐으며 모두 유태인의 것이었다.한 노인의 시체는 관에서 꺼내 여러조각으로 자른뒤 우산대에 찔러 꿰어놓은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됐었다. 이 사건 며칠뒤에는 파리근교 클리시숲의 유태인묘지에서 32개의 묘석이 까뭉개지고 그위에 빨간 나치식 문장이 휘갈겨지는 테러가 있었다. 사건이 나자 여론의 표적은 즉각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과 장 마리 르팽당수에게 쏠렸다.인종차별주의자로 유태인·아랍인및 아프리카인의 추방과 이민규제강화를 주장하는가 하면 히틀러와 나치즘을 찬양하는 르팽당수의 유태인혐오증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과 스웨덴 등지의 극우폭력 테러에서 그렇듯 이 사건도 수사가 장기화되다 결국 미궁으로 빠지고 말았다. 이처럼 유럽 전역에 불고있는 극우배타주의 바람은 최근들어 불경기가 심화돼 자국민들의 실업자가 늘고있는데다 많은 세금으로 마련된 복지혜택을 이민들이 축내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같은 극우폭력에 대해 터키의 유력지 후리예트와 밀리예트는 『날로 가열되는 독일의 인종차별 현상이 통독 후유증으로 유발된 사회심리적 결과』라고 분석한뒤 『유사한 폭력 사태의 재발을 막기위해 범인들을 체포해 본보기로 처벌하라』고 독일정부에 촉구했다. 같은 터키의 사바지도 『히틀러의 망령이 발트해 연안마을에 나타났다』면서 『이번 살육행위에 대해 독일인들은 수치심과 두려움을 느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탈리아의 스탐파지는 『이제 공격 목표가 터키인들로부터 베트남인및 동구출신 슬라브인및 정치적 망명자들과 모든 이민 근로자들로 본격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프랑스의 리베라시옹지는 인종차별적 폭력사태의 확산에 독일 정치인들이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타지크공 차기정부/공산세력 장악할듯

    【코잔트(타지크) AFP 연합】 공산주의자들이 수도 듀산베 공격을 위협하고 내전종식을 위해 노력하던 중도연합계로 국가안보위 부위원장인 주라벡 아미노프대령이 18일 피살되는등 정정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타지크공화국의회는 19일 공화국지도자 아크바르쇼 이스칸다로프의 사임을 공식 승인함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이 정부를 장악할 발판을 마련했다. 이스칸다로프는 이날 의회표결에서 찬성 1백41,반대 54표로 자신의 사임이 확정된 직후 AFP통신과의 회견에서 『이로써 차기 타지크공화국정부는 공산주의자들이 장악,지배하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 30대 가수매니저/피살시체로 발견

    10일 상오5시쯤 서울 서초구 양재동2 정우빌딩 앞길에서 가수의 매니저인 박경민씨(31·영등포구 여의도동 한서빌딩 오피스텔 1212호)가 얼굴과 뒷머리등이 심하게 멍들어 숨져 있는것을 신문배달원 김모군(16)이 발견했다. 김군은 『신문을 배달하려고 정우빌딩 앞으로 가다보니 박씨가 코뼈가 부러지고 얼굴에 피멍이 든채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 한밤 귀가 사장부인 피살/양손 묶인채 15곳 찔려 공터서 발견

    ◎집앞서 주차하다 납치된듯 8일 상오2시50분쯤 서울 서초구 우면동 140 빈터에서 정화조 청소업체인 성덕실업대표 임영신씨(60)의 부인 송춘지씨(50·여·강남구 역삼동 725)가 두손이 묶이고 온몸 15곳이 흉기에 찔려 숨져있는 것을 송모씨(42·술집주인·서초구 우면동 110)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송씨는 경찰에서 『이날 종업원들은 집에까지 승용차로 태워준뒤 빈터에 차를 주차시키다 불빛사이로 송여인이 손이 묶이고 허벅지와 옆구리등을 흉기에 마구 찔린채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숨진 송씨의 서울4므9494호 쏘나타 승용차가 7일 하오10시40분쯤 시동이 걸린 상태에서 집앞에 대각선으로 서 있었고 송씨가 온몸을 난자 당했으며 피해금품이 없는 점등으로 미뤄 범인이 송씨를 계획적으로 납치하려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숨진 송씨의 남편등 가족을 중심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이와함께 현장주변의 세차장을 상대로 피묻은 차량을 세차했는지의 여부를 조사하는 한편 주변 불량배들에 대한 수사도 벌이고 있다.
  • 임부,성폭행 피살

    【인천=김학준기자】 6일 하오 8시50분쯤 인천시 남구 도화2동 119 이화아파트 2동 최모씨(30·회사원)집 안방에서 임신 5개월인 최씨의 부인 이모씨(26)가 성폭행 당한 뒤 목을 흉기에 찔려 숨져있는 것을 남편 최씨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최씨는 이날 회사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보니 아내가 안방 침대위에서 하의가 벗겨지고 양손을 뒤로 묶인채 목에 피를 흘리며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 불교중흥 보우대사 사상 재조명/봉은사 학술세미나

    ◎조선 억불정책속 명종때 꽃피워/주류유교의 지탄으로 「요승」 낙인 억불숭유책으로 불교가 배척됐던 조선시대에 불교중흥을 위해 노력하다 순교한 하응당 보우대사.그의 삶과 사상을 학문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학술대회가 7일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발제는 ▲교단부흥의 역사성과 그 의의(김영태·동국대) ▲보우대사의 선사상(서종범·승가대) ▲보우대사의 유교관(송석구·동국대) ▲보우대사의 문학세계(황패강·단국대) ▲보우대사의 교관(이봉춘·동국대) ▲보우대사와 봉은사(김상영·승가대)등 6편.이들은 16세기 중반 멸절위기에까지 처했던 불교를 소생시켜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잇게해준 공로가 보우대사에게 있다는데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김영태교수는 불교가 조선 국초 11종에서 7종으로 축소되고 다시 선·교양종으로 통폐합됐다가 중종때에 이르러 폐지됐음을 상기시키면서 중의 인증제도인 도첩제 마저 중지됨으로써 불교는 그 발흥이 원천적으로 봉쇄됐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보우대사가 어린 명종을 수렴청정하던 문정대비에 의해 봉은사 주지로 임명된 것은 바로 이무렵이며 그후 17년간 많은 불교사적 업적으로 그를 조선불교부흥의 성사라고 평가했다. 이어 황패강교수는 그가 불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유교일변도 사류들의 극렬한 지탄으로 「요승」으로 낙인찍힌 역사사실을 들추어냈다.그럼에도 많은 저술과 높은 문학성을 들어 시문승 또는 학승으로서의 자리를 굳혔다는 것이다.또 선종판사로서 그의 흥불업적으로 ▲국가공인 사찰로 지정해 3백여 사찰보호 ▲도첩제부활로 2년간 승려4백명 양성 ▲승과부활로 15년간 유능한 불교인물 배출등을 들었다. 그러나 그의 불사진흥이 전적으로 문정왕후의 후광을 등에 업고 성급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종교개혁가로서의 업적에 흠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석구교수는 보우의 불교중흥을 통해 임진왜란때 승군이 나올수 있는 기초가 닦여졌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그러면서 문정왕후는 12세에 등극한 어린 명종을 위해 불교에 심취될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본 송교수는 이때의 불교중흥은 문정왕후의 의지와 당시 불교계의 대표적 인물이던 보우와의 자연스런 만남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했다.따라서 일본학자 고교정이 「하응당집해제」에서 보우의 불교중흥을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의한 계략이었다고 주장한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김상영교수는 보우가 봉은사 주지로 부임한 15 48년부터 제주도로 유배돼 제주목사 변협에게 피살당하는 15 65년까지의 17년을 투쟁기(15 48∼51),안정기및 은퇴기(52∼61),몰락기(62∼65)로 나누어 시기별 활동상을 개괄했다.보우의 몰락과 죽음은 장성해진 명종이 대비의 그늘에서 벗어날 것과 맹목적 호불행위를 금하라는 대신들의 끊임없는 요구에서 발단됐다는 김교수는 명종이 나중에는 태도를 바꾸게 됐고 마침내 65년 대비가 죽자 그의 운명도 종말을 맞았다고 말했다. 한편 봉은사는 이날 학술대회를 계기로 보우대사의 호를 딴 허응장학재단을 발족,보우사상의 체계적 연구를 위한 학자들에 대한 지원과 학술세미나등을 지속적으로 열기로 방침을 세웠다.
  • 미군당국 사과 촉구/공대위 성명

    민자당 여성대책위원회등 15개 정당·시민·종교단체로 구성된 「주한미군의 윤금이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6일 미군전용클럽접대부로 일하다 지난달 28일 살해된 윤금이씨(26·여) 피살사건과 관련,기자회견을 갖고 『윤씨 살해사건은 잔인한 구타와 성적유린을 동반한 민족적 성적침탈행위로서 주한미군측은 공식사과와 적정한 배상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 앙골라내전 천여명 사망/휴전합의 수시간만에 깨져… 전투 재개

    【리스본·요하네스버그 로이터 UPI 연합】 지난 1일 유엔의 중재로 앙골라정부와 우익반군 앙골라완전독립민족동맹(UNITA)간에 전격 합의됐던 『휴전』이 발효 예정시간(현지시각 2일 상오5시·한국시간 하오1시)이 지난뒤 수시간만에 정부군이 UNITA거점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사실상 결렬됐다고 한 소식통이 2일 전했다. 또한 지난 주말 앙골라 정부군과 UNITA간에 벌어진 전투로 1천명이상이 숨졌다고 앙골라 국영 라디오가 보도했다. 포루투갈의 루사통신은 이날 앙골라 라디오의 보도를 인용,지난주말 앙골라 수도 루안다시와 후암보,루방고,벤겔라 그리고 로비토 등 남부도시에서 벌어진 양측간의 교전으로 1천명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현지의 또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UNITA의 고위간부 2명이 이날 루안다시를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피살됐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0)

    ◎김형직의 사망신화:1/“일경에 연행도중 탈출하다 동상” 미화/“공산당 싫어해 피살” 무사단원이 증언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은 1925년 5월 이후에 백두산 서남쪽인 장백현 팔도구에서 백두산 북쪽인 무송에 이사한 것으로 보인다.무송은 백산무사단과 광정단의 발생지였고 26년에는 한때 정의부의 총지부가 있었다. 그러나 김형직은 1926년 6월5일에 32세로 갑자기 사망한다. ○26년 갑자기 사망 김일성은 이 사망의 원인을 1917∼18년 평양감옥에 투옥된 김형직이 병약하였던 것과 24년말 팔도구 내안인 평북 후창군 포평에서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후창경찰서로 호송되는 도중 연포리의 주막집에서 탈출할때 입은 동상이 악화되었다는데 돌리고 있다.사인은 직접적으로는 연포리에서 얻었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일찍이 이 주장에 대한 반박논문을 쓴 일이 있었다.그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①24년말 김형직을 연행한 경관은 아키시마(추도)와 또 한명의 조선인 경관이라고 주장하는데 68년에 발간된 「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은 도보로,72년에 발간된백봉의 「인류해방의 구성 김일성원수」는 호송차로 김형직을 연행했다고 주장을 달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탈출을 성공시킨 인물 황씨는 술병을 들고 그들을 뒤쫓아 연포리 주막에서 순사 2명을 취하게 하였다.그 틈을 타서 김형직은 탈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씨가 호송차를 어떻게 술병을 들고 뒤쫓았는지의 설명이 불가능하다.68년 전기를 72년 전기가 이렇게 바꾸어 놓은 것은 이 일화가 창작의 하나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된다.물론 그후의 전기들에서는 두 경관은 다시 「걸어가게」되었다. ②연포리라는 곳은 한반도에서도 가장 추운 중강진 근처의 산간부락으로 영하30도를 오르내리는 곳이다.24년말이면 12월이 되는데 이런 혹한에서 탈출하여 산마루까지 올라가면 「심한 동상」으로 끝나는 정도가 아닐 것이다. ③연포리는 인가가 드문 중간고지이지만 후창과 포평에는 경관들이 아주 많았다.가령 두 경관이 김형직을 놓치더라도 그후의 그들의 경계망을 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52년 전기엔 없어 이상인데 필자는 여기에 1960년초까지발간된 김일성의 전기들에는 이러한 「일화」가 없었다.그의 만주행은 김형직이 김일성을 「데리고」만주로 갔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따라서 이 「일화」는 1960년에 있었던 조선노동당 제4차대회 이후 김일성의 「만주단독행신화」를 우상화하기 위하여 꾸며진 창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필자의 논문은 87년에 발간된 김일성평전에 실렸다.그런데 김일성은 이번에 나온 「세기와 더불어」에서 필자의 견해를 다시 논박하는 듯한 장대한 이야기를 꾸미고 있다. 그 내용인즉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의 초가을,김일성은 무임소상이었던 한글학자 이극로를 평안북도에 파견하였는데 그는 김형직이 탈출한 연포리의 주막을 들렀다는 것이다.그 주막은 당시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뿐만 아니라 이극로에게 김형직 탈출의 이야기를 한 인물은 한국전쟁보다 훨씬 이전인 1930년 그가 신간회대표단에 망라되어 길림에 갔는데 이때 만난 황백하였다는 것이다.황백하는 길림소년회에 김일성과 같이 있었던 황귀간의 아버지이다. 이런 말을 늘어놓은 김일성은 이극로가 「혁명전통」을 고수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하며 무척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말 자체가 역시 날조라고 보고 있다.김일성이 50년 초가을에 그런 말을 들었다면 52년 전기에는 왜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가 문제로 되기 때문이다. 이극로는 82년에 죽었는데 김일성은 그가 죽어서 10년된 후에 이런 말을 끄집어 내고 있다. ○우상화위해 창작 이번 회고록은 김형직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두세번 「심한 동상」을 입히고 도중에서 마적때에까지 털리게 하고 있다.김형직이 중병에 걸리지 않으면 안되도록 새로 만든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진상은 아래의 증언에 있는 것이다. 「나는 형직 등과 같이 독립운동단체의 하나인 백산무토단에 관계하고 있었다.단장은 김호라는 사람이었는데 우리는 모두가 순전한 민족주의자였다. 그런데 이 무렵에 공산당운동이 성하게 되었다.그렇게 되자 자연히 독립운동진영에 금이 가서 분열하였다.한방의사였던 김형직은 독립군에는 약을 주고 치료하여 주었는데 공산당은 냉대하였다. 그러한 형직을 반동분자라 하여 공산당원들이 어느날 밤 습격·살해하였다. 김성주(김일성의 본 이름)는 자기 부친이 누구에게 죽었는지도 모르면서 지금 공산당운동에 광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증언을 한 이도일은 1930년대 일제의 주주로 전락하여 김일성 토벌에 동원된 인물이다.그러나 그는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도 구출하여 김형직의 아들이라고 갖은 배려를 다 돌려준 인물이기도 하다.또 그가 말하는 당시의 소란한 세상도 필자의 연구와 일치한다. 김형직은 건강한 몸으로 있었지만 테러리즘에 희생되어 급작스럽게 사망한 것이다. ①「4인의 김일성」이명영저 일본 성갑서방간 242면 ②「세기와 더불어1」109면 이하 ③「4인의 김일성」242면
  • 부산 3남매 살해/어머니 정부 검거

    【부산=이기철기자】 부산 서부경찰서는 지난 21일 발생한 부산 3남매 피살사건의 범인으로 3남매의 어머니와 내연의 관계를 맺어온 김철표씨(38·선원·전과1범·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3가 111)를 검거,26일 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지난 21일 하오10시20분쯤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 2가 대신아파트207호 박민자씨(43·여)집에 찾아갔으나 박씨의 맏딸 마선미양(22)이『더이상 어머니를 만나지 말라』며 핀잔을 주자 부엌에 있던 흉기로 맏딸을 마구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이어 귀가하던 둘째딸 유경양(20)을 살해한 뒤 하오11시20분쯤 집앞에서 만난 아들 준혁군(18·S상고 3년)을 옥상으로 유인,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 오늘 의거 83주년… 한·중·일 3국 입체취재

    ◎안중근의사/“동양평화 지켰다” 중국인이 더 추앙/이등 저격 하얼빈시선 해마다 확술대회/기념비 곧 건립… 여순감옥엔 유품 보존 우리는 해마다 10월이 저물어가면 의사 안중근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19 09년 10월26일 하얼빈역두에 터뜨린 총성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더 이상 침략책동자로 세워두지 않은 의거의 그날이 돌아오기 때문이다.일제는 그를 테러리스트로 매도,끝내는 교수대에 세웠다.그러나 안의사는 지금 영원한 휴머니스트이자 또 평화론자로 추앙받고 있다. 1909년 10월26일 상오 10시가 막 지나는 시각.모두 6발의 총성이 중국 흑용강성 하얼빈시 하얼빈역두에 울려 퍼졌다.의장대 사열을 끝내고 귀빈열차를 향해 몸을 돌리던 일본의 침략원흉 이등박문을 향한 안중근의사의 육혈포가 불을 뿜는 소리였다.그날의 총성이 사라진지 83돌을 맞은 하얼빈역은 신역사를 짓는 건설현장의 굉음과 종종걸음치며 플랫폼을 오가는 중국인들의 말소리만이 어울려 요란할 뿐이다. 이등박문이 피를 뿌리며 쓰러진 1번 플랫폼앞 현장에는 뜰이 조성돼 대형플라스틱에 담긴 화분이 몇개 놓여 있었다.피격지점에서 10m쯤 떨어진 러시아군 사열대 뒤편에서 총구를 겨누었던 안의사의 저격장소는 이곳에 새로 지어진 1등 대합실건물에 편입돼버렸다.이등이 쓰러진 곳은 몇년전만해도 피살지점을 표시하는 둥근 녹쇠판이 놓여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등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한 안의사가 5개월에 걸친 수감생활끝에 1910년 3월26일 상오10시15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여순형무소.당시 악명 높았던 이「인간지옥」은 요령성 대연시 서쪽 40㎞지점에 「여순일아감옥구지」라는 현판아래 지난88년부터 중국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안의사가 복역한 지하감방은 간수사무실부속창고로 이용되고 있으며 수감동 복도벽에는 「조선애국지사 안중근」이라고 쓴 액자속에 안의사의 수감당시 사진과 함께 남아있다.이밖에 유화초상화·족자·유시「장부가」가 담긴 액자등이 걸렸다. 안의사에게 교수형이 행해졌던 교형실은 감옥 동북쪽 구석에 감춰진채 15평남짓의 좁은 공간으로 남아있다.교수대는 2층으로 꾸며져 있고 시체처리통까지도 보존됐다. 현재 6만명의 조선족동포들이 살고 있는 하얼빈시에는 2개의 안중근연구회가 있다.안의사추모사업은 지난89년 의거80주년을 맞아 한·중·일의 학자들이 하얼빈역에서 추모회를 가진 이래 학술대회를 잇따라 열어 왔다.또 안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대형오페라가 공연되는등 추모붐이 대단했다.최근에는 새로 발굴된 자료를 모은 안중근사료집발간을 준비중이며 안의사기념비를 피격현장에 세우기위해 중국정부와 교섭도 벌이고 있다.당초 하얼빈역 광장에 안의사의 동상을 세우고 기념관도 건립할 계획이었지만 일본과의 불편한 입장을 고려한 중국측의 소극적 태도로 한걸음 물러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하얼빈시내 동북열사박물관에 전시된 중국근대사소개부문에도 안의사의 영정과 기념자료등을 손문다음으로 다루는등 안의사에 대한 중국현지의 평가와 연구열기는 그 어느때보다 높다. ◎국내/국내연구 활기­일선 “평화주의자” 새 시각/학계 동향/대중수교 계기 새 자료발굴 기대 우리나라에서의 안중근연구는 올해 중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짐에 따라 새로운 계기를 맞고있다.그 이유는 중국이 「역사의 현장」인데다 그동안 우리측에 공개되지 않은 자료에 대한 접근도 가능해졌다는 데서 찾아진다. 이에따라 그동안 한정된 자료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국내 학계의 상황도 크게 개선되어가고 있다.또 안의사의 의병활동기지였던 러시아측의 연구성과도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여서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근에는 길림성 조선연구소가 국내에서의 안중근연구를 희망해오는가 하면 러시아사회과학원 동방연구소에서도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우리나라에 와서 발표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또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최석우신부)에서는 안의사가 천주교신자였다는 점을 고려,프랑스측이 소장해오던 자료를 입수,연구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원장은 『최근 국제정세의 변화로 안중근연구에 숨통이 트인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때일수록 연구자들은 일과성이 아닌 체계적 연구작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새로 입수된 자료들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되지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해석이 나올 경우 안의사연구에 자칫 흠집을 남길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올해는 아직 별다른 성과가 없다.안중근의사에 대한 저술은 물론 연구결과를 집약한 논문 역시 나오지 않았다.기존의 학술자료로는 「한국독립운동사 자료」(국사편찬위원회)안에 수록된 공판기록문서와 주한일본공사관 기록등이 정리돼 있다.또 논문은 신용하교수(서울대)의 「안중근의 사상과 의병운동」등이 꼽힌다.저술은 주로 전기류인데 안의사 의거 이후에 쓴 박은식의 「안중근전」이 있고 해방후에는 「의사 안중근」(만수사보존회·1964년)과 「안중근자서전」(안중근의사 숭모회·1970년)등이 나왔다. 그리고 안의사를 기리는 단체는 사단법인 안중근숭모회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안중근의사장학회등이 있을 뿐이다. ◎일본/올 전기 등 2권 출간… 사당건립도 안중근에 대한 가해자쪽인 일본에서 안의사 평가는 「암살자」와 「휴머니스트」라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시각으로 나타났다.테러리스트 시각을 가진쪽은 안의사의 의거 이후 일제정권담당자들이다.그리고 휴머니스트로 보는쪽은 안의사의 재판에 참여한 판사와 검찰관,여순감옥의 형리에서부터 시작되어 현재 일본의 지식인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있다.안의사를 휴머니스트로 보는 시각도 두 갈래로 나뉜다.그 하나가 중천팔양교수(축파대)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 이끌려지는데,여순감옥에서 쓴 「동양평화론」이 『한일관계의 원전으로 오늘날 더욱 빛나는 혜안이었다』고 극찬한다.동아시아의 제국이 우방과의 신의를 축으로 한 동맹관계를 수립,러시아에 대응방위를 해야한다는 안의사의 주장은 오늘날 일본에 좋은 교훈이 된다는 것이다. 형무소장과 변호사는 물론이려니와 검찰관·재판관들이 서 있다. 재판과 수형생활등의 과정에서 안의사의 높은 지적수준과 고결한 인품이 자신들을 매료시켰다고 회고한다.오늘날 남아있는 안의사의 유묵은 그들에 의해 고이 간직되어 온 것이 많을 정도다.또 이들의 후손들에 의해 안중근연구회가 조직되어 일본안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현재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 와카야나키의 대림사에 세워지고 있는 안의사의 기념사당도 그러한 경우다. 「테러리스트아닌 독립운동가」라는 시각에 따라 「안중근 무죄론」까지 제기되어 주목을 끌었다.특히 올들어 최근 일본에서는 안중근관계 저술이 2권이나 새로 출간됐다. 그 하나가 중야태낭교수(아세아대교수·국제관계학)의 「안중근」(아기화방간행).한국관계의 원상이라는 부제로 간행된 이 저술은 이토를 저격한 안의사를 훌륭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생애와 사상/의병투쟁땐 일군포로 석방/「동양평화론」 저술한 선각자 안중근의사는 1879년9월9일 황해도 해주 한 향반의 집에서 태어났다.그리고 나서 31살을 일기로 1910년3월26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하기 까지의 삶은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그 생애에서 안의사가 평화론자였다는 사실은 여러군데서 찾아진다.1907년 정미칠조약이 강제체결되고 고종 양위와 함께 군대가 해산됐을 때 독립전쟁을 주장하면서 의병활동에 뛰어든다.그는 의병전투기간에생포한 일본군 포로를 석방,논란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그러나 이 사실은 오히려 의병활동을 일본에 대한 대한제국의 독립전쟁이라는 국제공법에 근거,포로를 인도적으로 처리한 사례로 평가 되고있다. 안의사가 여순감옥에 갇힌 뒤 쓴 미완성원고 「동양평화론」은 그의 이같은 사상적 배경을 구체화한 것이다.「독립한 청국 한국 일본이 일심 협력해서 서양세력의 침략을 방어하게 된다」는 논리를 편다.그래서 개화의 역으로 진보,구주 세계각국과 더불어 평화를 위해 진력할 때 동양평화가 실현되고 또 유지된다고 주창했다. 이토는 침략의 원흉이고 동양평화에도 역행했다는 것이 안의사의 주장이다.그의 자서전과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이등의 15개조의 죄목」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결론적으로 안의사는 자신의 행동을 『한국의병참모중장의 자격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토를 공격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 3남매 피살/아파트서 흉기 찔려

    【부산=이기철기자】 21일 하오 11시30분쯤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2가 83 대신아파트 207호 박민자씨(43·여·식당종업원)의 맏딸 마선미(23·회사원) 둘째딸 유경씨(21·회사원) 아들 준혁군(18·고3) 등 3남매가 흉기에 찔려 숨진채로 발견됐다. 이웃주민 노봉선씨(55·여·서대신동2가 290의 4)는 『이날 하오 11시 넘어 이 아파트 1층 길가 노점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데 갑자기 「윽」하는 소리가 들려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보니 젊은 사람이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노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점퍼에서 학생증을 찾아내 준혁군의 신원을 밝혀내고 병원으로 옮긴뒤 부근식당에서 일하고 있던 어머니 박씨를 불러 이 아파트 207호에 들어가 미선씨자매가 부엌에서 흉기에 마구 찔린채 엎드려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 독 녹색당 창당의 주역/켈리,동거남에 피살

    【본 AFP 로이터 연합】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됐던 독일 녹색당의 창당주역인 여성운동가 페트라 켈리(44)는 동거중인 게르트 바스티안씨(69)에 의해 권총으로 살해됐으며 바스티안도 범행후 자살했다고 독일 경찰이 20일 공식 발표했다. 두사람의 시체는 19일 본시 탄넨부시 주거지역에 있는 그들의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됐었다. 켈리는 지난 80년대 초반 미군 핵미사일의 독일배치를 반대하고 환경보호및 여권신장운동을 주도했으며 83년에는 구서독 총선에서 녹색당이 5.6%의 지지를 얻어 의회에 처음으로 진출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 남아공 테러격화 하룻새 8명 피살

    【요하네스버그 AFP 연합】 남아프리가공화국에서 계속되는 정치폭력으로 지난 12일밤 인카타자유당(IFP) 지역지도자를 비롯,모두 8명이 살해됐다고 남아공 경찰이 13일 발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밤 분쟁이 심각한 나탈지역 IFP 지도자가 총에 맞아 살해됐으며 요하네스버그 남동쪽 흑인거주지역 토코자와 북쪽 흑인거주지역 알렉산드리아에서도 총격사건이 발생,6명이 살해됐다.
  • 이란납치범은 마약밀매단/현지경찰 밝혀

    ◎인질로 잡아 동료와 교환 요구/대우근로자 피랍 대우는 8일 지난달 21일 이란 반다르아바스철도공사현장에서 대우근로자 4명을 납치한 무장괴한들이 이란·파키스탄·아프카니스탄접경 산악지대에서 암약해온 이란인을 중심으로한 국제마약밀매단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용준 대우건설부문부사장은 이날 『지난 3일 하오2시 김준성회장등 대우대책반이 이상열 주이란대사와 함께 이란외무부 브로제디 차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이번 피랍사건이 국제마약밀매단의 소행임을 통보받았다』고 밝히고 『이들이 피랍자들의 몸값이 아니라 현지 경찰에 붙잡힌 동료들과의 교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현지경찰이 제3자를 통해 납치범들과 교섭하고 있으며 피랍근로자들은 모두 생존이 확인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피랍사건은 이란정부당국과 국제마약밀매단간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정부는 두달전쯤 이번 피랍사건이 발생한 호르무즈간주북쪽에 있는 케르만주 부지사가 마약밀매단에의해 피살되지 경찰력을 동원,현재 상당수의 마약밀매단원들을 체포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대우측은 이번 사건이 이란 내정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됨에 따라 정부간의 협의에 맡기기로 하고 지난달 24일 현지에 파견했던 대책반을 철수시켰다.
  • 아파트 추락사 국교생/성폭행뒤 피살 판명

    【광명=조덕현기자】 지난 5일 아파트 잔디밭에서 숨진채 발견된 김모양(10·국교3년·광명시 하안동)변사사건을 수사중인 경기도 광명경찰서는 8일 김양의 사체를 부검한 결과 성폭행당하고 목이 졸린 흔적이 발견됨에 따라 전면 재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부검결과 김양의 직접사인은 추락에 의한 심장출혈사로 판명됐으나 사체에서 정액이 검출되었고 목에는 손으로 졸린 흔적과 배에 반항할때 생긴듯한 찰과상이 남아있었다고 밝혔다.
  • 자동차 뺏으려 살인까지 예사로(특파원코너)

    ◎미,「카 재킹」 극성에 몸살/최근 출근길 모녀 끔찍한 피해… 시민 경악/의회,도난차 부속품 추적제 등 대책 부심 미국에서는 19초만에 자동차 1대가 도둑을 맞거나 강탈을 당하고있다.미연방수사국(FBI)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햇동안 1백70만대가 수난을 당했으며 피해액은 금액으로 따지면 80억달러가 넘는다. 특히 자동차를 뺏기위해 인명을 예사로 해치는 「카재킹」범죄가 급격히 늘어나고있어 시민들을 불안케 하고있다. 최근 워싱턴일대에는 1주일새 3건의 「카재킹」사건이 잇달아 발생,2명이 희생됐다.메릴랜드주 하워드 카운티에서 출근길에 2살난 딸을 보육원에 데리고 가던 어머니가 강도를 만나 피살되고 딸은 길에 내던져진 사건이 일어나 시민들을 전율케했다. 파멜라 바수여인(34)은 BMW차로 딸을 보육원에 데려가려고 집앞에서 한 블록 떨어진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를 하고있던중 2명이 달려들어 차를 빼았았다.이들은 왼쪽 팔이 시트벨트에 감긴 바수여인을 1마일가량 매달고 가다 그녀를 떨어뜨리려고 차를 일부러 철망에 부딪쳐 숨지게했고 어린 아기는 차바깥으로 던져버렸다. 더욱 가증스런 것은 이들이 카재킹을 하게된 동기가 버스를 놓쳐버린 여자친구를 볼티모어의 직장까지 데려다주기위해 그들의 차를 타고가던중 연료가 떨어지자 남의 차를 빼앗기로 했다는 것이다. 바수여인이 참변을 당한지 이틀뒤 몽고메리 카운티에서는 한낮에 권총을 든 강도가 차를 강탈했고 다시 이틀뒤에는 근무를 마치고 자신의 아파트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려던 FBI요원이 권총강도를 만나 자동차열쇠를 빼앗겼으나 재빨리 자신이 휴대하고 있던 권총으로 강도를 사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봄에는 조지 워싱턴대교수가 조지타운의 한 병원앞에서 차를 멈추는 순간 강도가 권총을 쏴 그녀를 숨지게한뒤 자동차를 빼앗아 달아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바수여인의 참사사건이 일어난후 미하원의 에너지·상업위 소비자보호소위는 「반자동차도범,강탈범방지」청문회를 열고 자동차강탈사건을 연방범죄로 규정,범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도난당한 차량의 부속품을 추적하는 제도를 만들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이법안을 제기한 찰스 슈머의원(민주당·뉴욕출신)은 무장자동차강탈범이 차를 옮기거나 팔경우 최고형을 현재의 5년에서 10년으로 높이고 모든 차의 주요 부속품에다 고유번호를 붙여 부속품이 장물인지여부를 추적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부속품 고유번호제는 경찰,소비자보호단체,보험업계등이 모두 지지하고 있으나 자동차업계는 이를 위해서는 2억2천만달러가 더 들어 자동차값을 올려야되는게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카재킹」으로 불리는 자동차강탈과 도난사건이 날이 갈수록 극성을 피우는 것은 마약과 폭력,강력범죄의 증가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긴 하지만 강탈범이나 절도범들이 자동차를 분해해 부속품을 팔아 돈을 손쉽게 챙길 수 있는데도 원인이 있다. 오늘날 미국사회가 안고있는 고민은 날로 늘어나는 카재킹에서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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