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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레반, 인질 1명 살해

    아프가니스탄 피랍 한국인 23명 가운데 1명이 25일 탈레반측에 의해 끝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22명의 인질은 계속 억류 중이라고 독일 dpa통신이 보도했다. 이와 관련,AP는 “시신 발견됐으며 살해된 인질은 남성이며 시신은 가즈니주 카라바그 지구의 무셰키 지역에서 머리와 가슴, 배 등에 10발의 총상을 입은 상태였다.”고 현지 경찰간부 압둘 라만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탈레반은 특히 26일 오전 5시30분(한국시간)까지 자신들이 요구한 탈레반 수감자를 석방하지 않을 경우 나머지 인질들도 차례로 살해하겠다고 협박, 사태가 긴박하게 흐르고 있다. 아울러 ‘8명 석방-1명 살해’,‘1명 살해-22명 계속 억류’,‘피살-병사’ 등의 소식이 시차를 두고 전해지는 등 극심한 혼란상이 밤새 계속돼 가족과 당국을 안타깝게 했다. 외신들은 탈레반이 25일 오후 한국인 인질 1명을 살해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러나 로이터,AFP와 아랍 위성방송 알 자지라 등은 이날 오후 “탈레반이 한국 남성 인질 1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며 “탈레반 대변인은 한국 국민으로 하여금 한국 정부에 협상하도록 압박을 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카리 유수프 아마디 대변인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프간 정부가 우리 요구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인질 1명을 총으로 쏴 죽였다.”며 “앞으로도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추가로 살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프간 정부관계자도 인질 1명의 사망, 시신도 발견됐다고 AFP에 밝혔다. ●“아프간 군경·미군 구출작전 위해 병력이동” 탈레반은 사망자의 시신을 인질들을 납치한 지역 인근의 무세키 지역에 버렸다고 주장했다. 알 자지라는 인질들이 억류돼 있는 가즈니주에 집결한 아프간 군경과 미군은 인질 살해소식에 구출작전을 위해 병력을 이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앞서 아마디가 독일 인질 살해와 관련해서도 아프간 정부군과 다국적군의 공격을 중지시키기 위해 살해했다고 거짓으로 발표한 바 있어 이같은 보도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는 최종 확인되지는 않았다. 탈레반은 인질 살해는 물론 나머지 인질들의 석방협상에 대해서도 26일 오전 1시(한국시간 오전 5시30분)를 마지막 협상시한이라고 최후통첩성 제시를 했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나머지 인질들도 살해 할것” 아마디 탈레반 대변인은 로이터와의 전화통화에서 “만약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죄수들을 오전 1시까지 석방할 준비가 되지 않을 경우 나머지 인질들도 살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탈레반은 한국인 남성 1명을 살해하기에 앞서 한국인 인질 중 8명을 석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dpa통신은 인질들이 억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즈니주의 파탄 주지사가 “8명이 석방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탈레반은 중앙 정부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인질 1명을 살해했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그렇지만 일본의 NHK 방송은 석방된 8명 가운데 7명은 여성이고 남성이 1명 끼어있다고 보도했지만 한국 KBS는 살해된 1명을 제외한 22명이 탈레반에 여전히 억류돼 있다고 아마디 탈레반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dpa와 같은 내용이다. 한편 아프간 정부 협상단을 이끌고 있는 와히둘라 무자디디는 25일 탈레반이 협상 장소에 도착한 자신을 체포하려 했으나 원로들의 도움으로 화를 면했다고 주장했다. 정부 당국자는 26일 새벽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한국인 23명 중 1명이 살해되고 8명이 석방됐다는 보도에 대해 “현재까지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현재 피랍자 8명이 석방되고 1명이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직 최종 확인은 안됐다.”면서 “현재 확인 중에 있으니 확인이 되는 대로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납치된 23명 가운데 1명이 살해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에 모여있던 가족들은 할 말을 잊은 채 충격과 극도의 불안에 휩싸였다. 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 [피랍 한국인 1명 피살] 탈레반 자극할 게시물 삭제

    한국인 피랍사건과 관련, 탈레반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영어로 된 인터넷 게시물은 앞으로 인터넷사이트 운영자에 의해 삭제된다. 이 같은 게시물들을 인터넷에서 모두 삭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형편이어서 네티즌들의 자제가 요구된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25일 한국인 피랍자와 관련된 영문 게시물 가운데 탈레반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것들을 삭제해 달라고 국내외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들에게 요청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이슬람권의 여론과 탈레반측의 감정을 악화시켜 피랍자들의 신변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게시물에 대해 삭제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문제의 영문 게시물과 사진이 실린 사이트 자체가 유해 사이트는 아니므로 초고속 인터넷업체 등에 사이트 접속 차단 조치 등을 요청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게시물은 아프간에서 납치된 한국인 피랍자 중 한 명이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렸던 아프간 여행기와 사진들을 다른 네티즌들이 퍼나른 것이다. 이 게시물이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원문에 없는 내용이 일부 첨가된 채 동영상으로 제작돼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 등으로 퍼날라졌다. 이처럼 왜곡된 동영상이나 게시물은 탈레반이나 이슬람권을 자극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해당 영문 게시물은 이날 대부분의 국내외 사이트에서 삭제됐으나 네이버나 구글 등에서 ‘샘물교회’가 아닌 다른 검색어로 검색하면 손쉽게 개인 블로그 등에 남아 있는 피랍자 A씨의 미니홈피 내용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한글 게시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게시물들은 심지어 탈레반 홈페이지 운영자 이메일로도 전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정부 사실확인 못해… 위기관리능력 부재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 탈레반에게 납치된 한국인 23명 가운데 샘물교회 배형규 목사가 살해되고,8명이 풀려났다는 외신보도가 25일 저녁부터 잇따르면서 온 나라가 일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자정을 넘기도록 기초적인 사실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정부의 정보력 부재는 물론 허술한 위기 관리능력을 여실히 드러냈다. 정부는 이날 밤 9시20분쯤 로이터 통신이 한국인 남성 1명이 탈레반측에 의해 살해됐다는 소식을 처음 타전한 뒤로 3시간여를 넘겨 26일 0시10분이 되도록 피살 여부에 대해 아무런 사실 확인을 하지 못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밤 11시 비공식 브리핑에서 배씨의 피살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현재 사실을 확인 중에 있다.”고만 말했다. 이연수 외교부 공보국장도 밤 11시20분 비공식 브리핑을 통해 “여러 외신보도가 나오는데 8명 석방설과 1명 살해설 모두 아직까지 최종 확인이 되지 않았다.”면서 “두가지 모두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 양해를 바란다.”고 말했다. 25일 저녁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측에 거액의 돈을 지불했으며, 탈레반이 8명의 인질 석방을 약속했다.’는 일본 교도통신의 보도에 대해서도 관련 정부 부처간에도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국방부 관계자는 8명의 인질 석방 이후 대책을 묻는 질문에 “이들의 신병이 인도되는 대로 안전한 곳으로 이송, 간단한 건강 검진을 실시한 뒤 빠른 시일 내에 귀국시킬 방침”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인도 절차만을 설명한 이 발언은 ‘8명 석방설’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으로 일부 언론에서 보도됐다. 한편 정부는 이날 밤 배씨 피살 소식이 전해진 직후 청와대에서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를 갖고 피랍 한국인들의 신병안전 확보 방안과 탈레반측과의 막판 협상대책을 집중 논의했다. 정부는 특히 탈레반측이 협상시한을 26일 오전 5시30분(한국시간)으로 제시함에 따라 피랍 한국인들의 신병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진경호 박찬구기자 jade@seoul.co.kr
  • [피랍 한국인 1명 피살] 외신 보도 ‘살해→병사→22명 억류’ 극과극

    [피랍 한국인 1명 피살] 외신 보도 ‘살해→병사→22명 억류’ 극과극

    한국인 인질 피랍 7일째인 25일 외신보도 내용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널뛰듯 변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급진전된 협상으로 희망섞인 보도가 나오다 오후 들어서 인질 살해 위협, 협상 실패, 급기야 인질 1명 살해 소식이 숨가쁘게 타전됐다. 탈레반 세력은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는 데 다양한 외신들을 극적으로 활용했다. 전날 NHK가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1보로 전한 뒤로 밤새 인질 석방에 대한 희망섞인 관측들이 흘러나왔다. 탈레반측이 1차 석방 후보로 여성 8명을 제시했다는 아마디 대변인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석방이 임박한 듯한 분위기도 감지됐다. 그러나 날이 밝으면서 NHK가 “인질 맞교환에 대한 요구가 엇갈리고 있다.”면서 사태 장기화가 우려되기 시작했다. 요리우리 신문은 아프간 정부 협상단의 말을 인용 “탈레반측이 제출했던 8명의 교환 죄수 명단을 철회했다.”면서 “(어떤 병사의 석방을 요구할지) 내부에서도 분란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오후 들어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AFP통신이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죄수 8명을 석방하지 않으면 25일 오후 2시(한국시간 오후 6시30분) 인질 일부를 죽일 것”이라는 탈레반측 대변인 발언을 보도하면서 분위기는 급랭했다.AP통신은 연이은 보도에서 처형 시간이 “오전 11시30분(한국 시간 오후 4시)에서 오후 2시(한국 시간 오후 6시30분) 사이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후 50여분 만인 한국 시간 오후 5시54분 아프간 통신사인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AIP)는 “탈레반, 인질 석방 협상 실패 선언” 소식을 1보로 타전했다. 만 하루가 채 되지 않아 극에서 극으로 상황이 반전된 순간이었다. 곧이어 교도통신은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측에 거액의 몸값을 지불했으며 수감중인 탈레반 요원 8명의 석방을 약속했다.”는 속보를 내보냈다. 결국 알 자지라 방송은 오후 8시43분 남자 인질 5명 중 1명을 살해했다는 1보를 내보냄으로써 인질 전원 석방에 대한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AIP도 오후 9시41분 한국인 인질 가운데 1명이 오후 4시15분에 희생됐다고 탈레반측 대변인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30대男 훔친차로 추돌사고 도주

    고속도로에서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30대 남성의 피살과 여성의 실종, 차량강도 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했다. 24일 오전 2시40분쯤 충북 진천군 덕산면 중부고속도로 하행선에서 30대 후반의 남자가 쏘나타승용차를 몰고가다 카렌스승용차를 들이받은 뒤 실랑이를 벌이다 카렌스승용차 탑승자 두명을 야구방망이로 때리고 승용차를 빼앗아 달아났다. 이 남자가 몰다가 버린 쏘나타승용차의 주인 정모(32·경기도 평택시)씨는 이날 오전 7시20분쯤 안성시 원곡면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 주차장에 주차된 EF쏘나타승용차 밑에서 야구방망이에 머리를 맞아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경찰은 정씨가 전날 밤 10시쯤 안성휴게소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태우러 가면서 “5분 후에 도착한다.”고 말한 점으로 미뤄 휴게소에 도착하기 직전에 30대 남자에게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정씨의 사체가 발견된 EF쏘나타승용차 주인 김모(39)씨의 부인도 행방이 묘연하다. 김씨의 EF쏘나타승용차 트렁크 겉에 핏자국이 발견됐고 운전석에는 키가 꽂혀 있었다. 남편의 EF쏘나타승용차를 몰고 나간 김씨의 부인은 23일 오후 8시40분쯤 평택시 이충동 여성회관에서 스포츠댄스 강습을 마치고 나온 뒤 연락이 끊겼다. 경찰은 175㎝의 키에 갸름한 얼굴형인 30대 남자를 수배했다. 진천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안성 실종 부녀자, 채무자 남편에 피살

    지난 3월 경기 안성에서 실종된 40대 사채업 여성 2명은 채무자의 남편에게 살해돼 암매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경기 안성경찰서는 23일 강도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유모(47)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유씨의 부탁을 받고 증거인멸을 위해 실종 여성들의 차량을 분해한 혐의(증거인멸 및 자동차관리법 위반)로 차모(44)씨 등 4명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유씨는 지난 3월1일 오후 8시30분쯤 안성시 사곡동 야산으로 사채업을 하며 함께 사는 박모(45·여·안성시 낙원동)·심모(45·여)씨를 유인, 엽총으로 살해한 뒤 시신을 파묻은 혐의다. 유씨는 숨진 박씨 등이 자신의 아내로부터 빌려간 돈 5000만원을 갚으라며 독촉을 하자 이를 변제하겠다며 유인, 범행을 저질렀다. 또 유씨의 후배인 차씨 등은 유씨의 부탁을 받고 숨진 박씨 등이 범행현장에 몰고 온 신형 아반떼 승용차를 폐차장에서 분해해 중고차량 수출업자에게 팔아넘긴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수배된 피해 여성들의 차량이 4개월여째 발견되지 않자 해외로 수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수소문 끝에 차량 엔진이 지난 3월 초 이집트에 판매된 사실을 확인한 뒤 수출경로를 역추적해 유씨를 22일 검거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국내 첫 건물풍수백과사전 내는 이정암 전 경무관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국내 첫 건물풍수백과사전 내는 이정암 전 경무관

    #상황1 지난 봄 어느날이었다. 한 풍수학자와 현직 경찰 고위간부가 서울시내 모처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풍수학자는 “5월을 조심하라. 큰 사건이 벌어질 것이다.”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화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이 터지면서 경찰조직에 줄초상이 났다. #상황2 경찰총수의 퇴진압력이 거세게 일던 얼마 전, 풍수학자와 경찰 고위간부가 다시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앞날을 물어보는 경찰 고위간부에게 풍수학자는 “지금은 (총수가)그럭저럭 넘어가겠지만 올해 안에 한번 더 고비가 올 것”이라고 조심스레 귀띔했다. 앞으로의 일이야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 이택순 경찰청장은 일단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지만 앞날이 불안한 상황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요즘 경찰 내부에서는 ‘푸닥거리’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곤혹스러워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화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사건을 둘러싼 후유증으로 다들 맥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택순 청장이 최근 대국민 사과를 통해 “사건청탁 관행을 일소하고 조직 운영 시스템을 바로잡겠다.”고 역설했지만 일선의 체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사실 경찰은 1991년 현재의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에 둥지를 튼 후 무슨 연유에선지 총수들의 ‘말년 팔자’가 대체로 사납다. 이인섭(2대) 전 청장은 슬롯머신 사업자와의 연루 의혹으로 구속됐으며, 김효은(3대) 전 청장은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밀려났다. 박일용(5대) 전 청장은 초원복집 사건으로 구속됐고, 김광식(8대) 전 청장은 인천 인현동 상가건물 화재참사로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이무영(9대) 전 청장은 수지김 피살사건 내사중단 의혹으로 구속됐으며, 이팔호(10대) 전 청장은 최성규 전 특수수사과장 배후의혹 참고인으로 검찰에 소환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 때문에 2003년 12월 경찰청장 임기제가 확정되자 안팎에서는 오랜 숙원인 ‘수사권 독립’과 달라질 경찰의 위상에 많은 기대를 했다. 하지만 임기제 시행 첫 총수인 최기문 전 청장은 지역구 출마와 관련, 정치권에 휘둘리다가 결국 2004년말 임기 3개월을 남겨놓고 도중 하차했다. 최 전 청장은 퇴임후 한화건설 고문을 맡았다가 이번 사건으로 기소된 상태. 그 뒤를 이은 허준영 전 청장 역시 임기 1년을 남긴 2005년말 농민시위 사망사건으로 그만 뒀으며 지금의 이택순 청장 역시 임기를 채울 것이라고 장담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그렇다면 경찰청 주변에는 풍문대로 ‘불운의 그림자’가 잔뜩 드리워져 있는 걸까. ●26년 경력의 베테랑 수사관 한국 도선풍수 명리학회 이정암(60·본명 이기만) 회장. 전직 경찰 간부 출신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2005년 8월 경기지방경찰청 청문감사관으로 명예퇴직해 최종 계급은 경무관이다. 경찰에 몸담은 26년 중에 17년이 넘게 수사분야에서만 근무한 베테랑이다. 경찰 입문 전부터 배운 풍수·명리학을 적용해 사건을 해결한 것도 한두번이 아니어서 경찰 내부에서는 오래 전부터 ‘용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퇴임 후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밀린 원고를 정리해 ‘풍수 그리고 운명’,‘범위명운수비결’ 등 10여권의 관련저술을 연이어 발간, 주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이달 중 발간 예정인 ‘건물풍수 핵심 비결’은 국내 최초의 건물풍수 백과사전이라는 점에서 벌써부터 관심을 끈다. “경찰청 건물은 마름모꼴의 대지 위에 동향(東向)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정문 출입문이 북동쪽으로 나 있어 풍수상 좋지 않아요. 북서쪽의 후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경찰청장 집무실이 9층인데 바로 여기가 절명궁(絶命宮)에 해당합니다. 즉 관재(官災), 구설(口舌)이나 교통사고로 요절하는 등 단명을 주관하는 흉살(凶煞)방위에 해당되지요.” 그러면서 청장실을 적절한 층(7층)으로 배치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정문을 남쪽(정동향)으로 일부 개조해야 대길(大吉)하다는 것. 사실 이씨는 이택순 청장이 경기청장 재임때 차기 경찰총수로 승진할 것을 이미 예견한 바 있어 주위에서는 이씨의 권고를 그럴 듯하게 받아들인다. 하기야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대한 예언도 그렇거니와 2003년 8월 인천지방경찰청 청문감사관 때 대통령 탄핵건을 비롯, 모 장관의 100일 낙마와 17대 총선 당락여부까지 미리 알아 맞혔으니 그럴 법도 하다. 흥미있는 일화도 많다.2004년 경기도 군포경찰서장 재임 때였다. 평소 군포서장은 단명하기로 소문난 자리였다. 그가 부임해서 서장자리를 풍수적으로 풀어 보니 육살궁(六煞宮)에 해당됐다. 그래서 대문의 방향을 현 교육청 쪽으로 약간 틀었다. 이후 해마다 전체 직원 중 10% 이상 승진자가 계속 생겼고, 지금도 감사의 전화를 받곤 한다고 전한다. 군포시의회 건물도 같은 ‘절명궁’ 자리여서 건강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생기궁’으로 바꾸는 법을 귀띔해 줬더니 단명하던 의장이 연임하는 경사가 겹치기도 했단다. ● 청와대 3층으로 지었어야 “청와대는 3층으로 지어야 합니다. 배산이 탐랑목성(貪狼木星)이고 정문이 정남향에 배치돼 있어 1층은 금(金),2층은 수(水)로 대문과 상극이 되지만 3층일 경우 생기궁이 되어 대길할 운입니다.” 국회의사당의 경우 떠다니는 배의 꼬리에 있어 정치인들의 생각이 이재(理財)에 치우친다고 지적했다. 여의도가 행주형(行舟形)이라면 63빌딩이 돛이요, 섬안에 늘어선 빌딩들은 마치 큰 상선에 짐을 싣고 계류하는 선박의 모습인데, 선미(船尾)가 되는 남동쪽에 국회의사당이 배치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대검찰청 건물도 배산보다 높이 솟은 데다 정문이 남향으로 돼 있어 검찰총장실을 현재의 8층에서 5층으로 옮겨야 복덕궁(福德宮)의 생기가 회복된다고 했다. 반면 재벌가의 경우 비교적 길운의 자리에 위치했다고 설명했다. 삼성과 LG, 현대차 등 국내 10대 그룹 총수들이 사는 동네는 서울 강북의 한남동 등 남산 자락과 성북·평창·가회동 등 북한산 자락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비싼 주택들이 모여 있는 한남동의 경우 남산을 등지고 양 옆에 좌청룡·우백호 격의 언덕이 솟아 바람을 막아주며, 옆에 한강이 감싸듯 흘러 풍수적으로 재물운이 많다는 것. 재벌그룹의 사옥 중에서는 삼성그룹의 서울 태평로 본사가 층수별로 오행상생의 길운을 받도록 잘 배치돼 있다고 풀이했다.SK건설도 풍수경전인 ‘양택삼요’에 따라 집을 짓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고 귀띔했다. 생활풍수 상식에 대해 몇가지를 알려달라고 부탁하자 ▲임신 중에는 집수리를 하지 말 것 ▲아이들이 비뚤어지면 동쪽과 동남쪽을 먼저 살필 것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북서쪽을 살필 것 ▲여자에게 문제가 있으면 남서쪽을 살필 것을 권했다. 또한 주택의 서쪽에 큰 길이 있으면 길하고, 남쪽에는 빈터가 있어야 좋다고 말한다. 과거 각종 사건을 수사하면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집에 가보면 대부분 ‘절명궁’터였음을 알 수 있었다는 그는 현장 경험이 풍수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 풍수 학문적으로 집대성할 것 “풍수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의 지혜입니다. 또 그 역사와 뿌리가 장구하고 경험적 과학의 산물이기에 백발백중, 천발천중 맞아 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한테서 한학과 역경 등 경학을 배웠다.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해군에 지원해 36개월 군복무를 마친 뒤 검사가 되고자 고시 준비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한 스님을 만나 “자네는 검사는 안 될테고 경찰서장은 하겠구만.”이라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이 계기가 돼 3년 동안 스님과 전국을 떠돌며 풍수·명리학을 공부했다.1979년 간부27기로 경찰에 입문한 후에도 틈틈이 스승(스님)한테 물려받은 풍수경전을 익히며 내공을 쌓았다. 퇴임 후에 본격적으로 관련 저술을 발간하는 등 오로지 풍수·명리연구에만 전념하고 있다. 요새는 고미술협회와 대학, 각 단체 등에 초청 강의도 나간다. 이래저래 제자가 130여명에 이를 만큼 따르는 사람도 많아졌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는 “제갈공명과 소강절 선생의 인간 길흉사 요결 ‘황극책수(皇極策數)’ 등 7,8권 정도의 저술을 더 발간해 풍수이론을 학문적으로 새롭게 집대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7년 의성 출생. ▲76년 경북대 졸업. ▲79년 경찰 간부후보 27기로 임관. ▲99∼2004년 강진경찰서장. 군위경찰서장, 군포경찰서장. ▲05년 경기지방경찰청 청문감사관으로 명예퇴직(경무관). ▲주요 저서 풍수 그리고 운명(풍수), 요해 도선비기(풍수), 소설 도선국사(풍수), 비전으로 전하는 한국 최고의 명당(풍수), 옥룡자답산가(풍수), 범위명운수비결(주역), 하락명운수(주역), 적천특수비전(명리), 천운(명리) 등.
  • 러시아의 잽?

    러시아 폭격기 2대가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상공을 침범하려다 영국 왕립 공군(RAF)에 의해 저지됐다고 현지 언론이 18일 보도했다. 더 타임스는 이날 “이는 매우 드문 경우”라는 RAF 관계자의 말을 인용, 북대서양이 냉전시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이번 사건이 영국 정부가 런던 주재 러시아 외교관 4명을 추방한 지 하루 뒤 벌어진 사태라는 점에서 러시아의 보복성 군사 공격에 대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의 TU95형 베어 폭격기 2대는 이날 북극권의 콜라 반도 기지에서 출발해 영국 상공을 향해 진격했다.RAF는 이에 맞서 노르웨이 왕립 공군 전투기의 호위를 받아 요크셔주 레밍 기지의 토네이도 전투기 2대를 이륙시켰고, 러시아 폭격기는 영국 상공에 닿기 전에 되돌아갔다고 RAF 대변인이 밝혔다. 이에 대해 러시아 공군 대령 알렉산더 드로비셰프스키는 “6개월 전에 이미 계획된 일상적인 비행훈련일 뿐”이라며 의혹을 일축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전했다. 영국과 러시아는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의 피살 사건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여왔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스파이 피살’ 英·러 관계 악화일로

    영국과 러시아 관계가 냉랭하게 얼어붙고 있다.‘스파이 피살사건’으로 경색된 두 나라 관계가 외교관 추방과 보복 조치 경고로 이어지면서 점입가경 상황이다. 영국 정부는 16일(현지시간) 런던 주재 러시아 외교관 4명을 추방했다.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의 살해 혐의자 안드레이 루고보이의 신병 인도를 러시아가 거부한 데 대한 제재 조치다. ● ‘보복보고서´ 이번주 하원 제출 17일 BBC에 따르면 데이비드 밀리반드 영국 외무장관은 이와 함께 “양국 사이에 협의 중인 비자발급기한 단축 논의도 중단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총리까지 가세한 상태다. 독일을 방문 중인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도 외교관 추방에 대해 러시아의 사과 요구를 일축하며 “어떤 사과도 없을 것”이라며 강경한 영국 입장을 확인했다. 게다가 영국 측은 인도 거부가 계속될 경우 교육, 무역 그리고 반테러 분야 협력도 중단하겠다고 경고한 상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같은 보복조치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이번 주 하원에 제출될 것”이라고 전했다. 고유가 속에 초강대국으로서 자존심을 되찾고 있는 러시아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다. 미하일 카미닌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도 질세라 즉각 성명을 발표했다.“영국의 조치는 부도덕하며 우리를 도발하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영국 정부는 이에 걸맞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드미트리 페스코브 대통령 대변인도 “이런 소모전에 뛰어들고 싶지 않지만 상응하는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으르렁대는 사자와 곰”으로 비유되는 두 나라의 갈등은 ‘스파이전’에다 경제적 갈등까지 겹쳐져 아슬아슬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푸틴 대선 앞두고 민족주의 고취 냉전 후에도 모스크바와 런던에서 양측 정보기관원들이 치열한 정보전을 벌이고 있는 데다 러시아의 자원국유화에 따라 손해본 영국 기업들이 이를 갈고 있다. 영국계 다국적기업 BP 등은 최근 러시아 내 사업권을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에 넘긴 일도 있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반서방·강한 러시아’를 내세우는 크렘린측이 신병 인도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 민족주의를 고취하며 표심을 사로잡으려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용어클릭] ●리트비넨코 암살 사건 영국으로 망명해 반푸틴 활동을 벌이던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전 KGB 요원이 2006년 11월1일 런던의 한 호텔에서 러시아 정보요원 안드레이 루고보이를 만난 뒤 같은 달 23일 사망한 사건. 사인은 방사성 물질 폴로늄 210에 중독된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은 루고보이를 살해 용의자로 지목하고 러시아에 신병 인도를 요구해왔다. 루고보이는 “영국 정보기관 MI6가 리트비넨코를 채용했으나 통제에서 벗어나자 살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건 배후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있다는 설도 있다.
  • [길섶에서] 낯선 사람들/우득정 논설위원

    우리는 형제, 자매, 부모 그리고 자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들의 삶의 궤적에 드리워진 그늘과 의식의 저편에 숨겨진 비밀의 창고를 상상이나마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대학시절 첫 하숙을 함께 한 김영현이 최신작이라며 건넨 ‘낯선 사람들’은 나 자신에게 이런 의문을 던졌다. 아버지 피살사건에 얽힌 실타래를 한올 한올 풀어헤쳐 가던 예비 신부 성현은 가족 구성원들의 이면에 감추어진 추악한 실체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실체를 알면 알수록 가족으로 알고 있었던 인물들이 점점 낯선 사람들로 탈바꿈한다. 시대의 부조리에 거센 몸짓으로 항거했던 김영현으로서는 대단한 변신이자 영역 확장이다. 그날도 김영현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로 밤 새워 토론하자며 발톱을 곧세웠다.“형, 나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라고 하자 갑자기 낯설어진 듯 한동안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 봤다.‘낯선 사람들’의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네.’라는 결론이 선연하게 다가왔다.‘내 생각도 마찬가지야.’하고 가만히 되뇌어 본다. 우득정 논설위원
  • ‘캄보디아 사고’ 수습 오갑렬 재외동포영사대사

    ‘캄보디아 사고’ 수습 오갑렬 재외동포영사대사

    “따르릉, 따르릉∼” 지난 6월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외교통상부 청사. 오갑렬(53) 재외동포영사대사 집무실의 전화기가 급하게 울려댔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캄보디아에서 우리나라 여행객 13명을 태운 여객기가 추락했다. 현장에 가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또 사고’ 그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골든로즈호침몰 등 부임 두달 4번째 사고 그가 지난 4월 해외 동포와 해외 여행객 등이 현지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현지 대사와 함께 상황 대처 업무 등을 관장하는 재외동포영사대사를 맡은 지 두 달만에 벌써 4번째 접하는 안타까운 사고다. 지난 5월3일 나이지리아에서 대우건설 임직원 3명이 피랍됐고, 같은 달 12일에는 동중국해에서 골든로즈호가 중국 진생호와 충돌해 침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7명이 실종, 사망했다. 사흘 뒤에는 소말리아에서 한국어선 2척이 피랍됐다. 나이지리아 피랍 당시에는 출장길에 오르려다 해결됐다는 소식에 짐을 풀었지만 골든로즈호 사건 때는 정부 신속대책반장으로 중국에 달려가 사건해결에 힘을 쏟았다. 1978년 12회 외무고시에 합격한 그는 외교관 생활 시작부터 안타까운 사건들과 유난히 ‘인연’이 많았다.81년 주 버마(현재 미얀마) 대사관에 2등 서기관으로 처음 부임했는데 83년 10월9일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등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사건 현장과 5분 거리에 대사관이 있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후 미국과 스웨덴, 호주 등지의 1등 서기관과 참사관, 총영사관 등을 지낸 뒤 2002년 7월 외교부 재외국민영사국 재외국민담당 심의관 자리를 맡았다.2004년 6월에는 고 김선일씨가 이슬람 과격단체에 피랍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라크에 급히 달려갔지만 결국 김씨가 피살되는 안타까운 현장을 지켜봐야 했다. ●“유족 위로 가장 힘들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달 26일 캄보디아 현지로 달려가 갑작스런 비보에 넋을 잃은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시신 확인 작업 등을 무리없이 마무리했다. 그는 “지난 30년의 외교관 생활동안 이번 참사처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을 곁에서 함께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말을 맺었다. 글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5) 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25) 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Ⅱ

    인조반정을 ‘찬탈’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조선을 후금과의 대결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절실했던 명은 고민을 거듭했다.‘찬탈’을 자행한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을 응징하여 상국으로서 명분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이미 바뀌어버린 조선의 현실을 수용하여 실리를 택할 것인가? 인조와 반정공신들 또한 초조했다. 반정 직후 명에 보낸 주문(奏文) 속에서 ‘광해군이 명에 대한 사대(事大)를 소홀히 하고 배은망덕했다.’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명 조정이 ‘찬탈’을 운운하자 그들은 바짝 긴장했다. 명 조정이 만일 ‘명분’을 선택하여 인조에 대한 책봉을 거부할 경우, 집권의 정당성을 얻지 못하고 좌초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명, 실리를 택하다 ‘조선 사태’에 대한 처리 방향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던 명 조정은 절충안을 내놓았다.1623년 8월 명의 예부상서(禮部尙書) 임요유(林堯兪)는, 신료를 파견하여 조선 신민(臣民)들의 의견을 청취한 다음 인조에 대한 책봉 여부를 결정하자고 건의했다. 여론 조사를 통해 ‘명에 대한 광해군의 배은 망덕’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인조반정을 ‘찬탈’로 규정하여 성토하자고 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고 인조가 명에 협조하여 후금과의 싸움에 앞장서겠다는 자세를 보일 경우,‘찬탈’이 아닌 것으로 결론을 내리자고 했다. 명 조정은, 당시 가도( 島)에 주둔하고 있던 모문룡(毛文龍)의 부하 진계성(陳繼盛)을 서울로 들여보냈다. 진계성은 조선에서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광정(李光庭)을 비롯한 831명의 의견을 청취했다. 진계성이 면담한 사람들의 의견은 거의 한결 같았다. 그들은 ‘1619년 심하전역에서 유정(劉綎) 등이 전사하고 명군이 패한 것은 조선군이 후금군에게 군사 기밀을 누설했기 때문’이고,‘광해군은 후금과 화친했다.’고 진술했다. 또 ‘광해군이 자신의 죄악을 은폐하기 위해 명 사신들을 숙소에 억류하고, 명과 후금 사이에서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반정 당일 일본군을 끌어들이고 궁궐에 방화했다.’는 소문은 유언비어임을 지적하고, 인조의 인품이 훌륭하고, 광해군은 잘 보호되고 있다고 진술했다. 예부상서 임요유는 1623년 12월8일 황제에게, 인조를 승인하여 책봉하자는 내용으로 상주(上奏)했다. 그는 진계성의 보고 내용을 토대로 ‘광해군의 배은망덕’과 인조의 ‘충순’을 확인했다고 평가하고, 일단 인조를 국왕으로 인정하되 그가 모문룡과 합세하여 후금을 공격하여 공적이 드러난 뒤에 정식으로 책봉하자고 주청했다. 말하자면 ‘조건부 책봉’이었다. 후금의 도전 때문에 곤경에 처한 명의 현실을 고려하여 명분이 아닌 실리를 택한 것이다. 그런데 그 실리의 크기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모문룡, 인조반정을 찬양하다 비록 ‘조건부 책봉’이지만 인조가 명으로부터 조선 국왕으로 인정받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은 모문룡이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의 부하 진계성이 서울에 들어가 ‘조선 사태’의 전말을 조사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주청사 일행이 가도에 들렀을 때 모문룡은 반정의 발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명 조정에 보낸 주문에서도 인조를 책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으로 연결되는 육로가 끊어진 상황에서, 조선과 가장 가까운 가도에 머물던 모문룡의 의견은 명 조정이 인조를 승인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모문룡은 무슨 까닭으로 인조반정을 긍정하고 인조를 책봉하자고 했을까? 모문룡의 존재는 1620년대 조선과 명, 조선과 후금, 명과 후금 사이의 관계를 결정했던 ‘아킬레스건’이었다. 한마디로 모문룡 때문에 조선과 후금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고, 궁극에는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그는 달리 말하면 ‘시한폭탄’이었던 셈이다. 모문룡은 1621년(광해군 13년) 7월,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요동으로 잠입하여 진강(鎭江)을 탈취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의 의주를 마주보고 있는 진강-오늘날의 단둥(丹東) 부근-은 전략 요충이었다. 육로를 통해 선양 등 만주 내륙으로, 수로를 통해 요동반도와 산동반도 등지로 연결될 수 있었다.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모문룡의 진강 점령은 명과 후금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1618년 푸순성이 함락된 이후 명군은 후금군에 연전연패했다. 승전보에 목말랐던 명은 모문룡의 진강 점령을 기첩(奇捷)이라 불렀다. 마치 요동 전체를 수복이라도 한 것처럼 고무되었다. 후금은 자신들의 안마당에서 허를 찔린 것에 격앙되었다. 후금은 곧 대병을 동원하여 반격에 나섰다. 모문룡은 도주하여 조선의 미곶(彌串)으로 상륙했다. 그가 상륙했다는 보고가 날아들었을 때 광해군은 경악했다. 광해군은 모문룡이 조선과 후금 관계에서 화근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예상대로 모문룡은 휘하를 이끌고 철산(鐵山), 용천(龍川), 의주(義州) 등지를 옮겨다니며 “요동을 수복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때로는 압록강 너머의 만주 지역으로 포를 쏴대며 후금군을 자극했다. 모문룡 때문에 후금군의 침략을 받을 판이었다. 실제 1621년 12월, 후금군은 모문룡을 처치하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와 의주와 용천을 기습했다. 모문룡은 조선인 복장으로 갈아입고 탈출하여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다. 그의 휘하 578명이 피살되었다. 그가 ‘화근’임을 분명히 입증한 사건이었다. 광해군은 이후 모문룡을 설득하여 철산 앞 바다에 있는 가도로 들어가게 했다. 그가 육지에 있는 한 후금군의 침략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모문룡이 가도로 들어간 뒤에는 가능한 한 그와 접촉하지 않으려고 했다. 모문룡은 가도에 동강진(東江鎭)이라는 군사 거점을 마련했다. 거점을 유지하기 위해 ‘군량 보급’ 등 조선 조정에 여러 가지 요구 사항을 내밀었다. 광해군은 최소한만 수용할 뿐 그에 대한 지원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후금과 사단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모문룡이 광해군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했다. ●인조정권, 모문룡에게 코가 꿰이다 명은 모문룡을 높이 평가했다. 그가 가도로 들어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명 조정은 가도의 동강진을 후금의 서진(西進)을 견제하는 거점으로 활용하려 했다. 그러려면 가도에 대한 군량과 군수 물자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했다. 당시 천진(天津)이나 산동에서 가도로 가는 해로가 있었지만 거리가 만만치 않은 데다 파도가 험악 했다. 자연히 명은 조선의 도움을 받고 싶어했다. 하지만 광해군은 모문룡에 대한 지원을 기꺼워하지 않았다. 열 받은 모문룡이나 명 조정이 조선을 손봐주고 싶어도 육로가 끊어진 상황에서는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차에 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쫓겨나고 인조가 집권했다. 모문룡은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책봉승인’에 목을 맨 주청사 일행에게 인조반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공짜란 없는 법이다. 모문룡은 명 조정이 인조를 승인하도록 애써주는 대가로 가도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려 했다. 그는 반정이 성공한 직후 부하 응시태(應時泰)를 서울로 보내 사정을 탐색했다. 인조는 응시태를 접견한 자리에서 ‘광해군이 명의 은혜를 망각하고 모문룡의 지원 요구를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모문룡과 합심하여 이 오랑캐들을 소탕하겠다.”고 약속했다. 모문룡의 입장에서는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였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인조 스스로 광해군을 성토하고 자신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었다. 모문룡으로서는 표정 관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의 새 정권은 반정에 대한 명의 승인을 얻어내기 위해 모문룡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해마다 엄청난 양의 양곡을 가도로 보냈다. 가도에 머물던 명의 난민들이 수시로 평안도 지역으로 상륙하는 것도 묵인했다. 자연히 후금과의 군사적 긴장은 날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인조는 자신의 집권을 승인 받는 대가로 모문룡이라는 ‘시한폭탄’을 끌어안았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親日 반민족 행위’ 2기 3차 조사 110명 확정

    ‘親日 반민족 행위’ 2기 3차 조사 110명 확정

    대통령 직속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진상규명위)는 15일 민영휘와 배정자, 박제빈 등 친일·반민족행위자 110명을 2기(1919∼1937년) 3차 조사대상자로 선정했다. 위원회가 이날 발표한 조사 대상자에는 갑신정변을 진압하고 한일합병 이후 일본으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수여받은 민영휘(1852∼1935)와 이토 히로부미 ‘수양딸’로 유명했던 배정자(1870∼1952) 등이 포함돼 있다. 민영휘는 관직을 이용해 수탈한 재물로 엄청난 재산을 모았으며 일제시대에도 이 재산을 계속 늘려 조선 최고 갑부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배정자는 ‘흑치마’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밀정이었으며 1949년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이 발효되면서 구속된 여성 6명 가운데 가장 먼저 구속됐다.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조선인 여성들로 구성된 군인위문대를 이끌고 동남아 전선에 위문을 가기도 했다. 또 이토 히로부미 피살 후 사죄단으로 일본에 건너가 장례식에 참석하는 등 친일행위를 저질러 남작이 된 박제빈과 일본군 소장을 지낸 김응선, 왕족(장헌세자의 현손)이면서도 매국 공채 발행에 돈을 보태 후작 지위를 받은 이재각 등도 포함돼 있다. 활동 분야별로는 독립운동 탄압단체와 친일사회단체 소속 요인이 36명으로 가장 많았고, 종교단체 8명, 관료 8명, 언론계 7명, 경제계 6명 등이 포함돼 있다. 위원회는 조사대상자 중 연고를 파악한 31명은 직계비속과 이해관계인에게 곧바로 선정 사실을 통보했고 나머지 79명은 관보를 통해 명단을 공개했다. 위원회는 개인 통지일로부터 60일(관보 공고일로부터는 74일) 이내에 이의 신청서와 소명 자료를 받아 정밀 조사를 한 뒤 오는 11월까지 2기 조사 보고서를 완성해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친일행위 조사 시기를 1∼3기로 나눠 작업 중인 위원회는 이날 발표로 2기 조사대상자를 모두 226명으로 확정했다. 위원회는 지난 3월 1차로 80명, 지난달 2차로 36명을 각각 발표한 바 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이용원 칼럼] 노무현과 趙盾, 그릇의 차이/수석논설위원

    [이용원 칼럼] 노무현과 趙盾, 그릇의 차이/수석논설위원

    춘추시대라 불리는, 서기전 7세기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진(晉)나라 군주 영공(靈公)이 궁궐에서 피살되었을 때 재상인 조돈(趙盾)은 이웃나라로 망명하려고 국경 근방에 가 있었다. 조정에 복귀한 그에게 어느날 사관(史官)인 동호(董狐)가 기록을 내밀었다.“조돈이 그 군주를 시해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깜짝 놀란 조돈은 이 끔찍한 죄를 왜 나에게 뒤집어씌우는가라고 항변했다. 동호는 그 이유를 또박또박 짚어주었다. 조돈이 (미처 망명하지 못하고) 국내에 있을 때 변이 일어난 데다 복귀하고도 역적을 처벌하지 않으니, 군주를 죽인 건 결국 재상인 그가 한 짓이라는 뜻이었다. 이는 역사기록의 엄정함을 강조할 때 인용하는 고사성어 ‘동호지필(董狐之筆, 또는 董狐直筆)’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이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이 교훈에는 동호 말고도 주인공이 한사람 더 있다. 조돈이다. 진영공은 무도한 군주였다. 높은 대(臺) 위에서 지나가는 백성에게 돌팔매질을 하도록 시켜, 이를 피하느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즐길 정도였다. 곰 발바닥을 제대로 삶지 않았다고 요리사를 죽인 일도 있었다. 이같은 잘못을 조돈이 거듭 간(諫)하자 영공은 그를 죽이려 했다. 한번은 영공이 보낸 자객이 새벽녘에 조돈의 집에 잠입하니, 그는 이미 의복을 갖춰 입고 조정에 나갈 준비를 마친 채 자는 듯 앉아 있었다. 자객은 이분이야말로 백성의 주인이라고 감탄한 뒤 조돈을 암살할 수도, 영공의 명을 어길 수도 없다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암살 기도가 세 차례에 이르니 조돈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이웃나라로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국경을 채 넘기 전에 영공이 피살된 것이었다. 영공을 죽이는 데 앞장선 이는 조돈의 조카인 조천(趙穿)이었다. 영공이 죽자 백성과 벼슬아치들은 오로지 환호할 뿐 누구도 조천의 죄를 묻지 않았다. 그는 공을 내세워 조돈에게 벼슬을 올려달라고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자 화병이 나 바로 세상을 떠났다. 조천의 아들이 관례대로 아비의 벼슬을 잇게 해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조돈은 거절했다. 그는 오로지 나라 다스리는 일에만 더욱 힘을 쏟을 뿐이었다. 동호와 조돈의 일을 ‘춘추’에 남기면서 공자(孔子)는 “동호는 법도대로 기록하여 사실을 숨기지 않은 훌륭한 사관”이라고 칭송했다. 조돈 또한 “훌륭한 선비로서 법도를 위해 악명을 받아들였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동호는 공정한 기록과 엄격한 사실 판단으로써, 조돈은 억울하긴 하나 대의를 받들어 더욱 노력함으로써 역사에 함께 이름을 빛냈다. 상생(相生)한 것이다. 대략 2600년전 중국에서 일어난 일을 장황하게 소개한 까닭은, 그때만도 못한 일이 목하 한국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언론은 사실 보도와 함께 시시비비를 따진다. 사관 동호가 했던 몫이다. 지도자는 기록(언론)이 맘에 안 들지라도 그 뜻을 살펴 백성을 다스리는 데 활용한다. 조돈의 지혜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사사건건 언론과 부딪치더니 임기 말에 이르러서는 직접 선전포고에 나섰다. 그는, 언론이 “터무니없는 특권을 주장”하며 “진실을 회피하고 숨기는 비양심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비난했다. 언론과 전면전을 선포한 노 대통령의 속셈을 가늠할 능력은 없다. 다만 언론(사관)을 대하는 그와 조돈의 태도를 비교하자면, 본질적인 그릇의 차이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고교동창 이택순경찰청장-한화증권 고문 수사청탁 전화 오갔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과 관련,28일 시작되는 검찰 수사는 경찰청 감찰조사에서 손대지 못한 이택순 경찰청장 등 경찰청 간부들에 대한 조사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청장이 고교 동창인 한화증권 A고문과 전화통화를 했는지 등에 따라 파문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경찰청 남형수 감사관은 지난 25일 감찰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청장이 A고문과 1년에 3∼4차례에 걸쳐 안부전화를 하는 사이”라고 밝혔다. ●경찰 수뇌부 성토 잇따라 사이버경찰청 경찰관 전용방과 무궁화클럽, 폴네띠앙 등 경찰관 게시판에는 경찰 수뇌부를 비난하는 글이 빗발쳤다. 경찰에 따르면 황운하(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 총경이 지난 26일 사이버경찰청 경찰관전용방에 ‘경찰청장은 스스로 물러남으로써 조직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내야 한다.’는 글을 여러 차례 올렸으나 운영자 측에 의해 글이 잇따라 삭제됐다. 퇴직 경찰 최모씨는 “생각 있는 경찰총수라면 책임지고 조직을 지켜야 한다. 혼자만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조직에 누가 될 뿐이다.(검찰) 수사의뢰 방침을 철회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라.”며 이 청장을 직접 겨냥했다. 필명 ‘죽림누필’이라는 한 경찰관은 감찰조사 결과가 발표된 지난 25일을 ‘경치일(警恥日)’로 규정짓고 “감히 조직원들을 배신하고 조직을 팔아먹은 자가 누군지 알아야겠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일선서 과장급의 한 경정은 “조직의 생리상 청와대가 경찰에서 검찰로 수사 이첩 의견을 낸 건 이 청장이 의혹의 대상이 되어 ‘너희는 수사하지 말라.’는 의미이니 (이 청장이)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을 의미가 없다.”면서 “연말 대통령 선거 전 국민의 여론을 등에 업은 대선 주자들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관한 경찰 지지 의견을 밝혀줘야 하는데 이젠 그마저 어렵게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총수 소환 악몽 재연되나 2000년 이후 최고위층 경찰 간부의 검찰 소환은 모두 3차례 있었다. 이무영(1999∼2001년) 전 경찰청장은 1987년 발생한 ‘수지김 피살사건’에 대한 경찰의 내사 중단을 주도한 의혹을 받다 퇴임 직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적이 있다. 이팔호(2001∼2003년) 전 경찰청장도 2004년 4월 최성규 전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의 개인 비리 및 해외도피 배후의혹 수사와 관련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으며, 최광식 전 경찰청 차장은 법조브로커 윤상림씨 비리 사건에 연루돼 지난해 4월 불구속 기소됐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한국 천주교 20세기 순교자 시복시성 추진

    한국 천주교 20세기 순교자 시복시성 추진

    한국 천주교에서도 ‘20세기 순교자’들을 복자(福者)와 성인(聖人)으로 추대하기 위한 ‘시복시성(諡福諡聖)’ 작업이 추진된다.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최근 공동체 미사에서 1949∼1952년 사망한 사제·수도자 36명에 대한 시복시성 추진 교령을 반포한 것으로 한국교회 전체 차원에서 20세기 순교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시복시성 추진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교회에서 이처럼 20세기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에 나선 것은 지난 1996년 교황청이 낸 ‘순교자에 대한 성찰과 지침’이 계기. 당시 지침은 “우리 시대의 최근년까지 신앙에 대한 배척 때문에 피를 흘린 모든 이를 미래에도 기억하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호소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수차례에 걸친 박해에서 순교한 초기 박해자들이 전부였던 지난 1984년의 103위 시성과는 성격이 크게 다른 것으로, 전쟁기간 중 숱한 희생자를 냈던 한국 교회가 크게 반겼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후 한국 천주교는 20세기 순교자들의 ‘순교록’ 작성을 위한 조사작업을 벌였으나 시복시성을 위한 구체적인 성과는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 왜관수도원에서 본격적인 작업을 벌이기로 공식 선포한 것이다.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한국진출 100주년(2009년)을 앞두고 시복시성 추진을 공식 선포한 대상자들은 덕원 수도원 소속 사제 및 수사 26명, 연길 수도원 소속 사제 1명, 보이론 수도원 소속 사제 1명, 원산 수녀원 수녀 및 헌신자 4명, 덕원 자치수도원구와 함흥교구 소속 사제 4명. 이들은 대부분 전쟁기간 중 평양 인민교화소와 자강도 옥사독 수용소, 만포 수용소에서 옥사하거나 피살되었다. 왜관수도원 공동체 미사에서 시복시성 청원인으로 지명된 로마 성안셀모대학의 에두아르도 로페즈 텔로 그라시아 신부는 한국 왜관수도원의 이상근 신부와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의 빈프리트 신부 등 2명을 부청원인으로 두고 시복시성 작업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본격적인 시복시성 작업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당시 대상자들의 희생을 목격했거나 증언할 수 있는 이들이 모두 사망해 기록들에 대한 인증이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에 대상자의 관할 주교가 평양교구장 서리인 정진석 추기경, 함흥교구장 서리인 장익 주교(춘천교구장), 덕원자치수도원구장 서리인 이형우 아빠스 등 3명으로 나뉘어 시복시성에 앞선 예비심사 과정이 단순하지 않다. 또 대상자 가운데 독일인이 많아 조사 작업에서 언어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왜관수도원측은 “성베네딕도회 왜관 성 바오로와 성 쁠라치오 아빠스좌 수도원 공동체는 우리 선배들이 보여준 신앙의 증거를 기리려는 살아 숨쉬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다.”면서 “이들에 대한 시복시성 절차가 어렵긴 하지만 한국 천주교계가 뜻을 모은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안산 암매장 일대 도로 CCTV검색… 탐문수사

    화성 부녀자 연쇄실종 및 피살사건을 수사중인 경기지방경찰청 형사과는 11일 안산시 사사동 야산에서 암매장된 채 숨진 박모(36·여)씨의 동선(動線)을 중심으로 용의 차량을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박씨의 예상 이동로인 화성시 비봉면 구포리∼화성시 매송면∼안산시 사사동 일대 도로(98번,313번 지방도)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5대의 기록을 발췌, 실종 시간대(지난해 12월24일 새벽)에 이동한 차량들을 확인하고 있다. 경찰은 특히 암매장 지점 인근인 313번 지방도(매송면∼사사동)에 설치된 CCTV 1대의 분석에 기대를 걸고 있다. 경찰은 또 실종시간대 구포리와 매송면, 사사동의 이동전화 기지국을 이용한 휴대전화 통화자들을 상대로 용의자를 압축하고 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안산 암매장 부녀자 화성 실종자로 확인

    화성 부녀자 연쇄실종사건의 피해자 4명중 한 명이 피살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경찰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 313번 지방도 인근 주민 상대 목격자 탐문수사경기지방경찰청 형사과는 10일 “지난 8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사사동 구반월사거리 인근 야산에서 암매장된 채 알몸으로 발견된 여성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DNA 대조 결과 화성 부녀자 연쇄실종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인 박모(36)씨로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은 암매장 장소 일대에서 대대적인 수색작업과 발굴작업에 들어갔다. 박씨는 목에 검정색 팬티 스타킹이 묶여 있는 점으로 미뤄 목이 졸려 살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래방 도우미 박씨는 지난해 12월24일 오전 2시25분쯤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화성시장 김밥집 앞에서 목격된 뒤 실종됐다. 휴대전화 전원이 오전 4시25분쯤 화성시 비봉면 비봉IC 인근에서 끊겨 경찰이 공개수사에 착수했다. 암매장 지점은 313번 지방도에서 100여m 거리이며, 휴대전화 전원이 꺼진 비봉IC와는 직선거리로 7㎞ 떨어졌다. 경찰은 이에 따라 10개 중대 1000여명을 동원, 암매장 지점을 중심으로 313번 지방도 5∼6㎞ 구간에서 집중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 박씨의 휴대전화가 마지막으로 끊긴 비봉IC(비봉면 구포리)에서 암매장 지점으로 향할 수 있는 98번 지방도와 313번 지방도 등 도로에 설치된 폐쇄회로(CC) TV 5대에서 실종 당일 녹화기록을 발췌, 용의 차량을 쫓고 있다.●범인 안산·군포 거주자 추정 경찰은 이밖에 사사동과 313번 지방도 인근 주민과 공장 직원들을 상대로 목격자 탐문수사에 들어가는 한편 사사동의 이동통신 기지국을 통해 사건 당일 통화기록을 확보해 용의점이 있는 통화자를 분석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의 시신이 발견됨에 따라 범인의 동선(動線·화성시 비봉면∼화송시 매송면∼안산시 사사동)이 확인돼 수사의 폭을 상당히 좁히게 됐다.”며 “범인이 인적이 드문 313번 지방도를 새벽 시간대에 이용한 것으로 미뤄 이 지역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9) 장교 최천종 피살사건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9) 장교 최천종 피살사건

    18세기 일본에서 쇼군(將軍)이 정권을 세습하면서 가장 먼저 조선통신사를 맞을 준비를 했다. 박지원은 역관 이언진의 전기 ‘우상전’ 첫머리에서 도쿠가와 이에하루(德川家治)가 준비하는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통신사 일행을 접대하기 위해)저축을 늘리고 건물을 수리했으며, 선박을 손질하고 속국의 여러 섬들을 깎아서 자기 소유로 만들었다. 그밖에도 기재(奇才)·검객(劍客)·궤기(詭技·술수꾼)·음교(淫巧·기교꾼)·서화(書畵)·문학 같은 여러 분야의 인물들을 에도(江戶)로 모아들여 훈련시키고 계획을 갖추었다. 그런지 몇년 뒤에야 우리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마치 상국의 조서(詔書)를 기다리는 것처럼 공손했다.” 그러자 조선 조정에서도 문신으로 삼사(三使)를 선발한 뒤에, 말 잘하고 많이 아는 자들을 수행원으로 발탁했다. 박지원은 이렇게 기록했다.“천문·지리·산수·점술·의술·관상·무력으로부터 퉁소 잘 부는 사람, 술 잘 마시는 사람, 장기·바둑을 잘 두는 사람, 말을 잘 타거나 활을 잘 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한가지 기술로 나라 안에서 이름난 사람들은 모두 함께 따라가게 되었다.” ●여러 명이 범인 목격…외교문제로 비화 쇼군의 즉위를 축하한다는 명분 아래, 조선과 일본 두나라가 국력을 기울여서 온갖 전문기예자를 총동원해 맞섰다. 일종의 국제문화박람회라고도 할 수 있다. 무력으로 이름난 사람, 말을 잘 타거나 활을 잘 쏘는 사람은 모두 군관이다. 이들은 사행단을 호위하며 무예를 과시하거나, 일본인들에게 마상재(馬上才)를 공연했다.1763년 사행 때에 486명 일행 가운데 4명이 사망했다. 선장 유진원은 배 밑창 곳간에 떨어져 죽고, 소동(小童) 김한중은 풍토병으로 죽었으며, 격군 이광하는 미친 증세가 일어나 제 목을 찔러 죽었다. 그러나 경상도 무관(장교)이었던 도훈도 최천종은 일본인 역관에게 찔려 죽었기에 외교문제로 비화했다. 이는 외국인을 보기 힘들었던 일본에서 200년 동안 연극이나 소설의 소재로 전해졌다. 일본에서 고구마를 처음 가져온 것으로 널리 알려진 통신사 조엄(1719∼1777) 일행이 에도에서 외교적인 의전절차를 마치고 돌아오던 1764년 4월7일 오사카(大阪) 니시혼간지(西本願寺)에서 도훈도 최천종이 피살됐다. 이 절에는 500명을 재울 숙박시설이 마련돼 있었다. 조엄이 새벽에 보고를 듣고 의관과 군관을 급히 보냈더니, 곧이어 한사람이 돌아와서 보고했다. 최천종이 피가 흥건하게 흘러 숨이 끊어지게 되었는데, 손으로 목을 만지면서 이렇게 설명했다는 것이다. “닭이 운 뒤에 하루 일과를 보고하고 돌아와 새벽잠을 자는데, 가슴이 답답해 깨어보니 어떤 사람이 가슴에 걸터앉아 칼로 목을 찔렀소. 급히 소리 지르면서 칼날을 뽑고 일어나 잡으려 하자, 범인은 재빨리 달아났소. 이웃방 불빛에 보니 왜인이었소. 나는 어떤 왜인과도 다투거나 원한 맺을 꼬투리가 없으니, 나를 찔러 죽이려 한 까닭을 모르겠소. 공연히 죽게 되니 너무 원통하오.” 첩약을 붙이고 약을 달여 마시게 했지만, 최천종은 해가 뜨자 운명했다. 자루가 짧은 창과 ‘어영(魚永)’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칼이 현장에 남아 있었는데 왜인의 것이었다. 범인이 달아나다 격군 강우문의 발을 밟아 그가 “도적이 나간다.”고 크게 소리쳤기 때문에 여러명이 목격했다. 조엄은 “범인을 색출해 목숨으로 변상하라.”고 일본측에 통고했다. 밤늦게야 쓰시마에서 에도까지 왕복행차를 호위하는 쓰시마 수행원과 살해사건이 일어난 오사카의 법관, 그리고 조선의 역관들이 함께 입회해 검시(檢屍)했다. 최천종은 조엄이 대구 감영에 있을 때부터 신임하던 장교였으므로 정성껏 장례준비를 했다. 14일에 주변 인물들을 신문하던 과정에서 쓰시마 역관 스즈키 덴조(鈴木傳藏)가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가 자백하는 편지를 보내고 달아났다. 일본측에서 목격자 진술에 의해 인상서(人相書)를 만들어 배포했다. 범인은 스즈키 덴조(鈴木傳藏), 나이 26세, 쓰시마 역관, 얼굴색이 희고 키는 5척3촌이라고 자세하게 밝혔다. 수백명의 수사력이 동원되어 그의 뒤를 쫓았다. ●범인 “거울 도둑으로 몰며 때려 살해했다.” 17일부터 군사 2000명과 배 600척을 동원해 범인 색출에 나서,18일 다른 지방에서 체포했으며,19일부터 니시혼간지 경내에서 신문했다. 최천종이 6일 거울을 잃어버렸는데, 스즈키 덴조가 훔쳐갔다고 의심하며 말채찍으로 때렸기 때문에 분을 이기지 못해 밤늦게 찾아와 살해했다는 동기까지 밝혀졌다. 그러나 과연 거울 하나 때문에 국제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났는지는 확실치 않다. 범인을 처형하니 조선 역관과 군관들이 참관해 달라는 통고가 29일에 왔으며,5월2일 삼헌옥(三軒屋)에서 집행했다. 조엄은 김광호를 시켜 최천종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내고, 원수를 갚았다고 아뢰게 했다. ‘명화잡기(明和雜記)’나 ‘사실문편(事實文編)’을 비롯한 일본측 기록들은 대부분 인삼 판매대금을 나눠달라는 독촉 때문에 살해했다고 설명했다. 몇달 걸리는 국제여행 경비를 조정에서 직접 지급하지 않고 인삼을 무역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으므로, 수행원들까지도 일정한 양의 인삼을 가지고 가서 팔고 다른 물건으로 사왔다. 사대부들은 정량을 지켰지만, 역관을 비롯한 수행원들은 남몰래 더 가지고 갔다. 몇차례 단속에 발각되면 인삼도 빼앗기고 엄한 처벌까지 받았지만, 그래도 밀무역은 그치지 않았다. 쓰시마 역관들이 에도까지 따라가면서 호위하는 과정에서 인삼을 팔아주었으니, 인삼 판매대금을 나눠가지는 과정에서 칼부림이 났을 가능성이 많다. 밀무역 죄를 감추기 위해 거울을 잃어버려 말다툼이 생겼다고 했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한양에서 따라온 조선 역관들의 일본어 회화실력이 낮았으므로, 저간의 숨은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지만, 이야기는 계속 부풀었다. 중국과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있었던 당시 일본에서 외국인이 피살된 사건 자체가 일본인들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최천종이 살해된 사건을 테마로 하는 일련의 작품을 ‘도진고로시(唐人殺し)’라고 한다. 도진(唐人)은 외국인을 가리키며 네덜란드인, 중국인뿐만 아니라 조선인도 포함된다. 박찬기 교수는 이들 수십종의 작품을 이국인(異國人) 살해, 통역관 살해, 혼혈아의 원수 갚기, 인삼 밀거래에 의한 보복 살해의 네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이국인 살해와 통역관 살해 유형은 가부키(歌舞伎)와 조루리(淨瑠璃)로 상연되었다. 박찬기 교수가 정리한 도표에 의하면 오사카와 교토의 여러 극장에서 1767년부터 1883년까지 42회, 에도에서 5회 상연됐다. ●막부 압력으로 연극 줄거리 바뀌기도 가장 먼저 1767년 2월17일 아라시히나스케 극장에서 상연된 ‘세와료리스즈키보초(世話料理 )’는 사건이 일어난 지 3년도 지나지 않은 시기에 허구화 과정을 거쳐 제작되었다. 글자는 다르지만 제목에 ‘스즈키’라는 음이 들어간 것만 보아도 최천종 살해사건을 다루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 작품은 열흘도 못 되어 같은 작가가 다른 제목으로 바꿔 같은 극장에서 또 상연했다. 가부키 연표에는 “첫날 둘째 날은 관객의 반응이 좋아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나, 사정이 있어 상연 중지”라고 기록되었는데, 외교문제로 비화할 것을 염려한 막부의 압력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 이후에 줄거리가 바뀐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가장 많이 상연된 작품은 나카야마 라이스케(中山來助)와 지카마츠 도쿠조(近松德三)가 지은 ‘겐마와시사토노다이츠(拳揮廓大通)’이다.1802년에 초연을 시작해 1883년 5월까지 33회나 상연됐다. 이 작품에는 이국인을 살해하는 장면 묘사가 없고, 역관 고사이덴조(香齋傳藏)를 살해하는 유형으로 바뀌었다. 덴조(傳藏)라는 쓰시마 역관의 이름 정도만 남고, 이국인의 복장이나 언어 같은 이국적 정취에 더 관심이 많아졌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알카에다 지도자 알 마스리 사망”

    올해 처음으로 지난 4월 이라크 미군의 사망자 수가 1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이라크 알카에다 지도자의 사망설이 제기됐다. 이라크 내무부는 1일 이라크 알카에다 지도자 아부 아유브 알 마스리가 바그다드 북부에서 경쟁 조직과의 교전 중 사망했다고 밝혔다. 알 마스리는 2004년 고(故) 김선일씨 피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지난해 6월 미군 폭격으로 숨지자 알카에다를 이끌어 왔다.이에 대해 이라크 주둔 미군은 그의 사망을 공식 확인하지 않고 있다고 CNN방송 등이 보도했다. 미군 대변인은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현재 없다.”고 말했다. 이라크 내무부 대변인 압둘 카림 칼라프 준장은 “오늘 새벽 알 마스리가 숨졌다는 확실한 정보 보고를 받았다.”면서 “미군과 이라크군은 그의 사망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알 마스리 시신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출신의 알 마스리는 아부 함자 알 무하지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미군이 알 마스리에게 현상금 500만달러를 제시할 정도로 이라크 무장 조직의 주요 인물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지난달 이라크에서 미군 104명이 사망, 올해 들어 최대 월간 사망자수를 기록한 동시에 이라크전 개전 이후 6번째 많은 사망자 수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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