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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모에 효과’ 한약재 ‘삼칠’을 아십니까?

    ‘탈모에 효과’ 한약재 ‘삼칠’을 아십니까?

    탈모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탈모 치료를 받은 환자는 연간 20만명을 웃도는 수준이다. 하지만 의료보험 미적용, 잠재적 대상자 등을 더하면 1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탈모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혈류량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있다. 이를 방증하듯, 현대의학에서는 두피의 말초혈관을 넓히고 피부의 혈류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미녹시딜을 적용해 탈모를 치료하고 있다. 모세혈관을 확장하고 혈류량과 산소량을 증가시켜 모근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 모발 재생을 촉진하는 것이다. ‘삼칠(三七)’이 탈모 방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한약재로 떠오른 것도 혈행 개선 효능과 관련이 있다. 청나라 조학민은 본초강목습유을 통해 ‘인삼은 보기(補氣)에 제일이고, 삼칠은 보혈(補血)에 제일이다’라고 했다. 삼칠은 혈을 보하는 데 으뜸이라는 것이다. 본초강목을 저술한 이시진 역시 삼칠은 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약초라는 뜻의 ‘금불환(金不換)’이라고 부른다고 전했다. 삼칠은 원추형으로 길이 1~6㎝, 지름 1~4㎝이고, 근두부에 줄기가 붙었던 자국이 있고 주위에는 작은 혹 모양의 돌기가 있다. 바깥 면은 회갈색 또는 회황색을 띠며 세로 주름과 가는 뿌리가 붙었던 자국이 있다. 냄새는 없고 맛은 쓰고 달다. 고전 의서에 나오는 삼칠의 효능은 혈병(血病)을 다스리는 것이다. 출혈을 멈추는 지혈(止血), 어혈을 흩뜨리는 산혈(散血), 종기와 부은 상처를 삭히는 소종(消腫) 및 통증을 가라앉히는 정통(定痛), 미세순환 개선 등에 효과를 보인다. 탈모인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탈모 치료제 성분인 ‘미녹시딜’과 유사한 효능이다. 실제로 삼칠추출물을 주요 원료로 한 ‘머리나라 프리미엄플러스 샴푸’와 ‘머리나라 프리미엄플러스 토닉’를 출시한 헤어랜드 관계자는 VISIOSCAN V98을 이용해 모발의 성장 피부를 확인한 결과 삼칠추출물이 5% 마이녹실과 비슷한 정도의 결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삼칠 추출물은 두피의 혈액순환 및 모발 성장 촉진을 유도해 탄력 있고 윤기 있는 모발을 만들어주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모 방지뿐만 아니라 비듬이 심하거나 모발에 윤기가 없고 끊어지는 이들에게도 적합해 두피가 건조한 경우, 염색이나 탈색, 펌 등으로 모발이 손상된 경우에 사용해도 양모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머리나라 프리미엄플러스 샴푸’는 모발성장촉진용조성물로 특허 출원한 삼칠 추출물뿐만 아니라 강원도 홍천 홍삼에서 채취한 홍삼추출물, 불가리스쑥, 병풀 등 탈모방지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성분을 함유해 기능성 화장품으로 인정받았다. 탈모방지·두피관리 전문 헤어랜드 측은 “탈모는 스트레스 육체 피로 등으로 인해 근육이 수축되면서 국소적으로 혈관을 압박, 혈전을 생성하고 혈관 내 콜레스테롤이 증가해 혈행장애가 발생할 경우 악화된다”며 “탈모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두피의 혈행 개선을 통해 혈류량을 늘리는 관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계문화유산 종묘(宗廟), 으뜸이 되는 사당

    세계문화유산 종묘(宗廟), 으뜸이 되는 사당

    종묘는 사직과 함께 왕조의 근간이 되는 가장 중요한 장소다. 조선시대 한성에 화재가 나면 종묘가 진화 1순위였다. 군주제에서는 왕이 곧 국가이며 이 왕과 왕의 조상을 모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세운 시조의 조상과 그 후손인 왕들을 모시는 곳이 종묘다. 많은 외국인이 종묘를 파르테논과 비교해 ‘동양의 파르테논’이라는 별칭이 있다. 외국인들이 종묘의 가치를 먼저 알아보았던 것이다.종묘제도는 중국의 주나라 때부터 있었으나 중국은 공산화를 가치며 명맥이 끊기고 우리는 종묘와 종묘제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며 아직도 제례를 올리는 살아있는 정전을 유지하고 있다. 종묘에는 정전과 영녕전이 있으며 정전에 19분의 왕의 신주가, 또 영녕전에 16분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업적이 있다고 판단한 ‘왕 중의 왕’ 19분을 정전에, 태조 이성계의 4대조와 사도세자를 비롯한 추존왕 9분과 재임기간이 짧고 업적이 미약한 왕 6분과 영친왕이 영녕전에 모셔졌다. 조선의 임금 중 폐위된 광해군과 연산군을 당연히 제외된다. 문화재 이전에 전주이씨의 사당이기에 제례는 전주이씨 종친회에서 주관한다.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으로 나뉘어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간다고 믿었다. 장례를 치르고 시신을 매장하며 신주를 만들어 혼을 신주에 모신다.종묘는 유학을 통치기반으로 삼은 조선에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새왕조가 들어서면 정통성을 위해 종묘를 세우고 전 왕조의 종묘는 패망한 왕조와 운명을 같이했기 때문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고려의 종묘는 송악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일제가 종묘를 없애지 못했기 때문에 이 위대한 건축물이 남아있다. 종묘는 임진왜란 때 한번 완전히 소실되었다. 일제는 종묘를 파괴하지는 안았지만, 조선왕조의 종묘 앞을 유흥가로 만들어 집창촌이 되도록 하였다. 이 집창촌은 ‘종삼’이라는 이름으로 1968년까지 번성하다가 세운상가 개발과 함께 ‘나비작전’이라는 이름으로 30여년 만에 해체되었다. 종삼 집창촌은 오랫동안 소위 먹물들이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욕정을 풀어놓던 곳이었다. 어느 원로시인은 명동의 술과 종삼의 여자는 작가들에게 고향같은 곳이라고 말을 했단다. 세운상가는 군부정권의 상징적 도시개발 사업이었다. 일제는 미군의 공습에 대비해 화마를 끊기 위해 가로세로의 격자 공지를 조성하였는데 이를 소개지라 하였다. 세운상가는 이 소개지에 종로와 청계천을 잇는 최초의 주상복합 건축물이다. 이 소개지 덕분에 을지로, 퇴계로 등 지금 강북의 큰 길들이 쉽게 만들어졌다. 당시 군출신의 서울시장 김형옥이 세운상가 개발지 시찰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집창촌의 한 여인이 시장임을 몰라보고 놀다가라고 팔을 잡았고 이에 화가 난 김형옥이 종로구청에 들러 집창촌의 해체를 지시했다고 하는 설과, 세운상가의 개발로 정비가 필요했던 지역에 대한 계획적인 정비였다는 설이 나도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군출신 시장의 추진력 덕분에 종묘 앞의 집창촌은 빠른 시간 내에 해체되었고 지금의 종묘 앞 공원이 조성되기 전까지 공지로 있었다. 세운상가는 김수근이라는 대한민국 대표건축가의 작품이지만 군부정권의 기형적인 요구로 지어졌기 때문에 김수근 스스로 본인의 대표작품에 넣지 않았다. 종묘 주변은 많은 역사가 있다. 종묘의 한쪽 끝은 창경궁과 이어지는 북신문이 있다. 왕은 비공식적으로 이 문을 통해 종묘를 찾아 선대의 왕들과 많은 마음의 대화를 했었다. 창경궁과 창덕궁, 종묘는 붙어있었지만, 일제가 율곡로를 만들며 단절되었다. 현재 율곡로를 확장해 지하화하고 담장과 문을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빠르면 올해 이 복원된 보행로를 따라서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종묘 뒤쪽으로는 익선동과 이어진다. 피맛길이라 하면 종로의 뒷길만 생각하지만 익선동길도 창덕궁 창경궁에 따른 피맛길이다. 종묘의 담장을 따라 순라길이 있었다. 순라군이라 하여 지금의 방범순찰대 역할을 하던 군인들이 육모 방망이를 들고 순찰하던 길이다. 지금도 순라라는 이름은 근처 식당이나 카페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 종묘의 정문 앞에는 임금이 행차시 물을 마시던 어정이 복원되었고 하마비가 있다. 하마비는 누구든 종묘 앞을 지날 때는 말이나 가마에서 내리라는 문구가 적혀있어 종묘를 얼마나 신성시 하였는지 알 수 있다. 본격적으로 종묘를 살펴보자. 종묘의 문은 외대문 이라고 하지만, 원래 창엽문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정면은 세 칸이며 가운데 칸은 신문이다. 왕의 신주를 모실 때만 개방하는 문이니 이 문이 열리기를 바라지 마시라. 궁궐의 문과 달리 세 칸의 높이가 같은 평대문이다. 가운데 신문을 높여 솟을대문으로 만들 수도 있었으나 사자의 집이라서 화려함은 없는 단아한 건물들로 축조되었다. 문을 들어서면 박석이 깔린 삼로가 보인다. 삼로중 중앙의 높은 길은 ‘신로’라 하여 산 사람이 딛지 않는 길이고 왼쪽은 ‘어로’라하여 임금의 길이다. 오른쪽은 ‘세자로’다. 신로는 지금도 관람객들에게 밟지 말라는 안내문이 있다. 어로와 세자로는 지금 주인이 없으니 밟아도 된다. 종묘는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신로를 따라 이동하여 정전에 이르는 길이고 하나는 신을 모시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재궁과 전사청을 거쳐 정전의 동문을 통해 정전에 이르는 방식이다. 신로를 따라 이동하는 방법은 정전과 영녕전의 남문인 신문이 개방되지 않아 평소 불가능하다.두 번째 길을 따라 이동하며 살펴보면 들어가며 좌우에 연못이 있다. 연못의 주 용도는 소방수로 쓰기위해 만들어지나 때에 따라서 정원의 일부로 보는 연못이 되기도 한다. 오른쪽의 연못은 네모난 연못의 가운데 둥근 섬이 있고 섬에는 소나무가 아닌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 죽으면 향기만 남는다는 뜻과 제당에 향이 쓰여서 향나무를 심었다 한다. 실제로 다른 향교나 사당을 가도 다른 장소에 비해 향나무가 많다. 지방의 향교나 서원에는 일제때 일본의 향나무인 가이스카 향나무를 심었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아직도 가이스카 향나무가 많이 보인다. 네모난 연못은 천원지방설에 따라 땅을 뜻하며 둥근 섬은 하늘을 나타내니 땅이 하늘을 품은 연못이다. 못 가운데 하늘은 사후의 세계라 향나무를 심었다고도 한다.우측에 향대청과 공민왕 사당이 자리잡고 있고 향대청에는 망묘루가 있다. 루라는 글자가 붙은 건물은 오늘날 피로티 구조와 같이 기둥으로 받혀진 떠있는 마루의 구조다. 주로 전망을 하며 쉬거나 연회를 하는 장소다. 경복궁의 경회루가 대표적이고 남원 광한루 진주 촉석루도 많이 알려져 있다. 망묘루는 건물의 형식이나 위계를 보며 정말 왕이 종묘를 보던 공간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향대청은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고 예전에는 근처에 종묘를 지키는 군인들이 머무는 건물도 있었다 한다. 현재 향대청에는 정전안에 모셔진 신위를 재현한 공간과 설명이 있다. 신주는 혼이 머무르는 집과 같다. 밤나무로 만들며 홀을 만들어 혼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공민왕 신전이 이곳에 있는 것에 대하여 전 왕조에 대한 예로 마지막 왕을 모셨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일인의 손에 있던 공민왕의 영정이 반납되어 적정한 장소를 찾지 못하다 종묘의 한쪽에 모셨다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다. 삼로를 따라가다가 길이 갈라진다. 신로는 없이 어로만 있는 길을 따라가면 재궁과 이어지고 신로를 따라가면 정전과 영년전의 정문에 이른다. 재궁은 임금과 세자가 제사전에 머물며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며 제사를 준비하는 곳이다. 이곳은 세동의 건물로 이루어졌는데 그나마 왕과 세자가 머무르는 공간이라 격을 조금 높였다. 향대청은 막새없이 앍매흙으로 마무리가 되었으나 재궁의 건물은 막새기와를 사용하였고 박공의 측면에는 풍판까지 설치되어있다. 세 건물 중 중앙에 있는 건물은 임금이 머무르는 어재실이다. 이곳에는 왕의 밀랍인형과 용교의라는 의자가 놓여있다. 이 밀랍인형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고종이나 순종이다. 이유는 9장복이 아닌 12장복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황제는 12장복을 입고 왕은 9장복을 입었는데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임을 선포하였고 최초로 12장복을 입었기 때문이다. 12장복은 9장복에 비하여 화려하며 면류관에 구슬을 꿰어 단 유의 수가 12줄이다. 9장복은 류의 수가 아홉줄이다. 어재실의 한옆에는 무쇠로 된 큰 솥단지같은 것이 있는데 이름이 ‘드무’라하며 소방수를 담아두었던 단지다. 왼쪽에는 어 목욕청 건물이 있는데 목욕재개를 하는 곳이다. 왕이 어떻게 목욕을 하였는지 기록이 없어 욕조를 만들어 전시해놓고 있다. 재궁은 정전의 동측 마당으로 이어지고 그 뒤로 전사청과 제정이 있다. 전사청은 제수 음식을 준비하던 곳으로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로 건물이 앉아있다. 당연히 제기고와 찬간이 갖추어져 있고 생물을 도살하는 시설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제례의 음식은 익히지 않은 생물을 올린다. 고기는 소와 양과 돼지고기를 생것으로 올리는데 전사청까지 살아있는 제수용 동물이 들어와 전사청에서 검사를 한뒤 도살되었다. 전사청 앞에 단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찬막단이라 하여 여러 제수 음식을 검사하는 단이고 하나는 성생위라 하여 살아있는 소 등의 제수용 생물을 검사하던 단이다.왕가에서는 소, 양, 돼지를 올렸고 양가에서는 양과 돼지를 올렸으며 민가에서는 돼지만 올렸다. 요즘 가정의 제사에는 소고기 산적을 올리는데 조상님을 왕의 대우를 하는 것인 셈이다. 전사청 옆에 담장으로 둘러싸이고 문를 통해 통제되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이 우물이 제정으로 제사때 쓰는 우물물이니 신성시되고 보호되었다.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 되었다. 임진 왜란때 종묘의 건물들이 모두 불탔지만, 왕들의 신위는 제일 먼저 왕과 함께 피신되었다. 제사에 쓰이는 제기는 가져갈 수 없어 포장을 해서 이 제정에 숨기고 피난을 갔다고 한다. 배례를 마친 왕과 신하들은 동문을 통해 정전에 이른다. 이 정전 건물이 종묘의 백미다. 동문을 지나면 월대 위로 월랑이 보이고 이 월랑의 기둥 사이로 정전건물 전체가 보인다. 월랑은 정전에 없던 형식을 태종이 만들었는데 마치 학의 날개같이 정전건물은 한층 멋지게 보이게 한다. 월대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하는 장치다.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를 오르면 높은 축위의 공간이 불국이듯 월대는 신의 영역을 상징적으로 구분한다. 월대의 중앙에서 살짝 비켜서 부알판위가 있는데 이는 삼년상을 모시고 신주를 모실 때 정전에 들어가기 전 신주를 임시로 모시는 곳이다. 백미터가 넘는 월대와 정전 건물은 담장 안 어느 곳 에서도 온전히 한눈에 담을 수 없다. 상하월대와 처마, 용마루의 수평선은 모든 것을 다 집어삼킨다. 수평선이 갖는 차분함은 경건함이 절로 우러나게 한다. 열아홉 칸을 구성하는 열주도 수직선이 아니고 수평선의 구성 요소로 보인다. 공간의 구성요소와 규모는 신전으로서 경건함을 갖기에 최적으로 디자인 되었다. 만약 전면의 신문과 담장이 더 물러나서 그곳에서 정전이나 월대가 한눈에 쉽게 들어왔다면 또 다른 분위기였을 것이다.원래는 정전이 석실 5간 허실 두 간 합이 7실이었다. 유교의 법식에 4대조를 모시니 태조의 4대조와 이성계를 모시기 위해 다섯 간을 만들도 예비로 두간을 만들었다. 이전의 풍습을 따르면 4대조를 모시니 왕이 한 명 죽게 되면 제일 윗대의 한 분은 신위를 땅에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종이 승하하자 세종은 차마 땅에 묻지 못하고 중국 송대의 별묘기록에 따라 영녕전을 지어 태조의 4대 추존왕을 한 명씩 영년전에 모시고 정조를 정전에 모셨다. 영년전은 4대조가 넘어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묘였으며, 정전은 제사를 지내는 제묘였다. 연산군에 이르러 성종이 승하하자 다시 정전의 신실이 부족하게 되었고 태조를 영년전으로 모셔야 했으나 시조라 하여 불천위로 정전에 계속 모시고 정종을 영년전으로 모시게 된다. 이때부터 공적이 있는 왕은 계속 정전에 모시고 그렇지 못한 왕은 영년전으로 모셨다. 불천위가 있으면 원래는 그 이상의 공적이 있어야 다시 불천위로 모실 수 있었으나 자신의 부친 공적을 높여 불천위로 만드는 왕이 많아졌고 후대에는 그 공적이 미미한 왕조차도 불천위로 정전에 남았다. 명종대에 정전을 11칸으로 증축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종묘가 모두 소실되었다. 이후 선조와 광해군때 종묘가 정전 11간에 양 협실 두 간, 영녕전 네 간에 양 협실 세 칸씩으로 복원 되었다. 이후 정전은 동쪽으로 두 차례 네 간씩 증축 되었고 영녕전은 동서 양측으로 증축되어 최종은 현종때 정전 19간 영녕전 16간으로 완성되었다. 증축이 얼마나 정교하게 잘 되었는지 전문가들조차 증축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영녕전은 불천위가 아닌 왕과 추존왕을 모신 곳으로 효심, 또는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별묘다. 원래는 현 왕의 4대조까지만 모시고 나면 인연이 끝났다고 보고 땅에 묻는 것이나 불천위와 이 별묘는 조선왕조의 왕들을 영원히 모시도록 만들었다. 조선왕조가 세계에 유래 없는 긴 시간을 유지한 것에는 이곳 종묘의 공이 크지 않을까 싶다. 5월과 11월의 첫주에는 종묘제례가 시연된다. 이때 연주되는 제례악 역시 세종 때 만들어진 우리 음악으로 서양의 음악인들에게도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이시기를 맞추어 가면 건축물로서 세계문화유산과 무형의 세계문화유산을 함께 만날 수 있으니 그때 가 보시길 추천한다. 글 사진: 최세일 한건축 대표
  • [열린세상] 16세 장기 기증자와 윤리/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열린세상] 16세 장기 기증자와 윤리/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얼마 전 아는 의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학병원에서 장기이식을 오랫동안 해온 그는 내게 미성년 장기기증에 관한 연구 자료가 있는지 대뜸 물었다. 미성년자의 기증을 못 하게 막으려 하는데, 반대측 의사들이 미성년 장기기증자가 문제 있다는 객관적 자료를 내놓으라고 한다는 것이다. 대학에 오기 전 장기이식 관련 현장 연구를 했던 내게 도움을 요청한 것인데, 나도 자료가 없어 미성년 기증자를 만난 경험들을 들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답답함과 무력감이 밀려왔다. 장기가 부족해 이식을 못 한다는 언론 보도가 종종 있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장기이식을 가장 많이 하는 국가 중 하나다. 신장이식은 세계 최고인 스페인보다는 적지만, 많은 편에 속하고, 간이식은 100만명당 약 28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뇌사자의 장기기증률이 낮은데도 이렇게 이식을 많이 할 수 있는 이유는 살아 있는 이들이 많이 기증하기 때문이다. 국내 신장 이식의 2분의1, 간 이식의 3분의2 이상은 살아 있는 이들이 기증한 장기로 하고 있다.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는 이들 대부분은 환자의 가족들이다. 신장은 배우자가, 간은 자녀가 가장 많다. 이들은 자신의 신장 하나를 떼거나 혹은 간의 75% 정도를 절개해 아픈 가족에게 기증한다. 살아 있는 이들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는 이 행위는 그 자체로 타인을 위한 희생이지만, 의료윤리적 관점에선 문제가 있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의사가 건강하고 멀쩡한 한 사람을 의도적으로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식 초기와 달리 지금은 의료기술이 발전해 위험이 많이 낮아졌고, 윤리적 우려도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증자의 위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증자가 죽거나 수술 후 건강이 나빠지는 사례는 여전히 있다. 이식수술을 하는 많은 의사는 부인하지만, 일부 의사는 기증자가 수술 이전의 몸으로 완전히 회복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연구를 위해 내가 만난 기증자들은 대체로 건강했지만, 일부는 고통을 호소했다. 수술 후 나타난 원인 모를 통증 때문에, 소화 장애와 밀려오는 피로감 때문에, 수술 후 힘든 회복 과정을 홀로 겪어야 했던 기억 때문에, 이식받은 가족 일원이 고마움을 잊고 무심코 내뱉는 말들 때문에, 고통이 있어도 가족들에게 터놓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 때문에 이들은 상처 입고 아파했다. 두 달이면 일상으로 복귀 가능하다는 의료진의 말과 달리 회복은 최소 1년여 걸렸고, 어떤 기증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회복되지 않는 몸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려 했다. 하지만 의료진은 기증자의 이 고통을 심리적인 것일 뿐이라고 답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에선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성년자까지 장기를 기증할 수 있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은 만 16세부터 사촌 이내의 친족에게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해마다 국내 간이식의 약 8%는 고등학생의 몸에서 장기를 얻고 있다. 경제적으로 의존적이고 삶의 경험이 부족한 미성년자는 강압과 유인에 취약해 보통 법의 보호를 받지만, 장기이식에선 그렇지 않다. 부모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보호 장치가 있지만, 이식받는 이가 부모이기 때문에 유명무실하다. 국가, 언론과 의료계는 부모에게 기증한 미성년자에게 아름다운 효행이라고 칭찬할 뿐 이들의 몸과 삶에는 관심이 없다. 성인들도 감내하기 어려운 기증 전후의 고통을 미성년의 몸과 마음으로 어떻게 겪어 내는지 추적 조사한 적도 없다. 효심이 있는지를 묻고 장기기증으로 증명하라고 말하기 바쁘다. 체계적으로 연구할 책임이 있는 의사들은 오히려 미성년자가 기증 후에 문제 있다는 연구 자료를 가져오라고 한다. 가족을 위해선 그 정도 희생하는 것이 도리 아니냐는 이들에겐 다음 사례를 들려주고 싶다. 고등학생 때 부모에게 기증한 한 기증자는 내게 부모에게 이 정도까지 했으니 이제는 이 가족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그동안 가족은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가족을 먼저 생각하라고 말하기 이전에 그에게 가족이 어떤 존재였을지 먼저 헤아려 주는 것이 진정한 도리가 아닐까.
  • “한국, 프리미엄 커피시장 급성장…스토리 있는 특별한 커피로 승부”

    “한국, 프리미엄 커피시장 급성장…스토리 있는 특별한 커피로 승부”

    “한국을 포함해 글로벌 소비자들은 더이상 평범한 커피에 관심이 없습니다. 품질이 뛰어나면서 스토리가 있는, 특별한 커피를 원하죠. 우리 커피가 한국에서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이유입니다.” 세계 10대 커피무역하우스로 꼽히는 머콘그룹 최고경영자(CEO) 오스카 세빌라(44·니카라과)는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커피엑스포에서 메이저 커피 회사로는 처음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이유에 대해 “프리미엄 커피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감 있게 (한국 시장 진출을) 결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커피 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경쟁이 매우 치열한 한국 시장에선 최근 ‘프리미엄 커피’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원두 본연의 맛과 향을 감별하는 전 세계 커피 감별사(큐그레이더) 자격증 보유자 4500명 가운데 2500명이 한국인이며 커피계의 ‘애플’ 블루보틀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 진출국으로는 두 번째로 한국을 선정하고 올 상반기 첫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이제 프리미엄 커피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들이 돈다. 머콘은 이 기회를 포착했다. 1954년 커피 비즈니스를 시작한 머콘그룹은 재배와 생산부터 무역, 마케팅, 수출입까지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세계적인 커피 회사로 네덜란드 본사를 비롯해 9개국에 35개의 사무소를 두고 북미와 유럽에서 스타벅스, 라바짜, 일리 등에 커피를 공급하고 있다. 유럽과 북미에선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아시아 비즈니스는 이제 시작이다. 국내 파트너를 찾기 위해 이번 행사에 참여한 머콘은 향후 한국 시장을 아시아 커피 비즈니스의 교두보로 삼을 계획이다. 한국에서는 우선 베트남 람동 지역의 까우닷 마을에서 특별한 공정을 통해 생산되는 스페셜티 커피와 프리미엄 커피의 대명사인 과테말라 산타로사 지역의 원두, 싱글몰트위스키를 주입한 오크통에 숙성된 배럴 에이지드 커피 등을 판매할 예정이다.세빌라는 머콘 커피의 특별함을 ‘지속 가능성’에서 찾았다. 그는 “소비자가 품질이 좋은 커피를 즐기려면, 결국 농부(생산자)의 ‘삶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 환경과 생산자의 이익이 보호돼야 좋은 원두가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커피가 맛있는 비결은 커피 농장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3년간 생산자와 협력하는 프로그램, 니카라과 커피 생산자 가정의 아이들에게 교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등 ‘사람’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을 졸업한 농부들의 45%는 생산량이 늘어 생활 수준도 높아져 저축을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됐다. 세빌라는 “요즘 소비자들에게는 커피의 맛뿐만 아니라 투명한 생산 과정을 통해 내가 어떤 커피를 마시는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사회적 공헌과 더불어 커피 나무를 심기 위해 삼림을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친환경 노력 등을 한국 소비자들에게 적극 어필하겠다”고 밝혔다. 글 사진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비운의 개혁파’ 후야오방 서거 30주기에 쏠린 눈

    ‘비운의 개혁파’ 후야오방 서거 30주기에 쏠린 눈

    중국 민주화 운동인 톈안먼 사태를 낳았던 ‘개혁과 청렴의 상징’ 후야오방 총서기의 사망이 15일 30주기를 맞는다. 홍콩 명보는 14일 후 전 총서기의 세 아들이 그의 고향인 후난성과 묘가 있는 장시성에서 당국의 감시 속에 열리는 세미나와 기념식에 참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30주기라는 점에서 어떤 규모와 형식으로 열릴지 주목된다. 또 이를 계기로 어떤 정치적 소요나 파장이 있을지도 주목된다. 그런 점에서 후 전 총서기는 여전히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10대에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 후 전 총서기는 대장정에 참여할 정도로 열성 당원이었지만 진보적인 사상 때문에 당내 보수파와 대립했다. 1989년 4월 15일 73세를 일기로 후 전 총서기가 사망하자 대학생 10만명이 톈안먼 광장 앞으로 쏟아져 나와 분노의 시위를 벌였다. 후 전 총서기에 대한 애도의 물결은 민주화 운동으로 발전했고 같은 해 6월 4일 당국의 강제 진압으로 톈안먼 광장은 학생들의 피로 물들었다. 당시 학생들은 인플레이션 통제와 실업 문제 해결도 요구해 톈안먼 사태는 경제 문제가 민주화 열기에 불을 붙였다. 덩샤오핑이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자라면 후야오방은 개혁개방의 총책임자였지만 톈안먼 사태 이전 1986년 학생 시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서기 자리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총서기직에서 물러난 뒤 사망한 이후 후의 이름은 톈안먼 사태와 같은 민주화 운동이 재연될 것이란 당국의 우려 때문에 금기어가 됐다. 2015년 탄생 100주년 행사에 시진핑 주석이 참석하면서 후 전 총서기는 해금됐지만 톈안먼 사태를 뜻하는 6·4는 중국에서 여전히 철저히 금지되고 있다. 후 전 총서기는 마오쩌둥과 같은 독재의 폐해를 막고자 집단지도체제와 임기제도를 도입했지만 시 주석은 지난해 헌법 개정을 통해 영구 집권의 길을 열었다. 후 전 총서기의 친구였던 두다오정 전 신문출판서장은 “올해는 항일운동이자 제국주의에 반대한 5·4운동 100주년으로 후야오방은 5·4정신인 민주주의와 과학의 실천자이나 그 이상만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며 “민주주의와 과학이란 두 구호를 실현하려면 중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아프리카 난민들 표류 열흘만에 입항

    아프리카 난민들 표류 열흘만에 입항

    난민구조선에 발을 묶인 채 열흘간 지중해를 표류했던 아프리카 난민들이 어렵사리 몰타에 입항했다. 몰타 정부는 13일(현지시간) 독일 비정부기구(NGO)의 난민구조선 ‘알란 쿠르디’에 승선한 난민 수십명과 관련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주도로 이들 난민이 유럽 4개국에 분산 수용되는 합의안이 도출됐다”면서 이들이 몰타에 일단 들어온 뒤 독일과 프랑스,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등 4개국으로 이송될 것이라고 밝혔다. 쿠르디호는 지난 3일 리비아 근해에서 신생아 1명과 어린이 1명이 포함된 난민 64명을 구조했다. 이후 이탈리아 최남단의 섬 람페두사로 향했지만, 이탈리아와 몰타 정부로부터 잇따라 입항을 거부당하자 독일 정부와 EU에 도움을 요청했다. 난민 가운데 건강이 급속히 악화한 임신부 등 2명은 치료를 위해 며칠 전 몰타 발레타로 먼저 후송됐다. 또 쿠르디호 소속 승무원 1명 역시 극심한 피로를 호소해 전날 몰타로 이송됐다. 한편,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의 ‘관문’ 역할을 하던 이탈리아가 지난해 6월 강경 난민 정책을 밀어붙이는 포퓰리즘 정권 출범 이후 자국 항구를 봉쇄한 이래 지중해에서 구조된 난민들을 태운 NGO의 선박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1월에도 독일 NGO ‘씨 워치’가 구조한 난민 47명이 유럽 각국의 거부 속에 지중해를 열흘 넘게 떠돌다가 유럽 7개국이 분산 수용에 합의한 이후에야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상륙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주 52시간 넘겨 마트 행사·민원 도맡다 뇌출혈…산재 인정

    주 52시간 넘겨 마트 행사·민원 도맡다 뇌출혈…산재 인정

    마트에서 민원업무와 행사, 매장기획 등 여러 업무를 동시에 맡았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직원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해당 직원은 시간 외 근무를 빼고도 1주 52시간이 넘는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 것으로 파악됐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 김정진 판사는 마트 직원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급여 신청을 승인하지 않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2014년부터 한 마트에서 물류·행사팀장으로 근무한 A씨는 이듬해 민원업무를 담당하던 직원들과 행사·매장기획 등을 담당하던 직원이 줄줄이 퇴사하자 해당 업무를 모두 떠맡았다. 그는 2015년 11월 집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요양급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A씨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과중한 업무를 한 데 따르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기존 질환인 고혈압 등이 악화해 뇌출혈에 이르게 됐다고 봐야 한다”며 A씨의 질병이 업무상 재해라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직원들이 퇴사하면서 그 업무까지 수행해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9월 이후 추석 행사와 김장 행사가 이어져 A씨의 업무가 더 가중됐을 것”이라며 “특히 쓰러진 날에는 김장 행사에 사용할 절임 배추가 입고될 예정이라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시간 외 근무가 반영되지 않는 출퇴근 기록부만으로도 발병 전 A씨의 1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겼다고 설명했다. 행사 기간에는 근무시간 외에도 일해 만성적인 과로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했다고 재판부는 덧붙였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29%가 ‘봄날 부상’… 그대여, 봄바람 휘날리며 달리는 건 참아요

    29%가 ‘봄날 부상’… 그대여, 봄바람 휘날리며 달리는 건 참아요

    봄은 운동의 계절, 곧 ‘부상의 계절’이라는 걸 아는가? 행정안전부에서 매년 발표하는 ‘재난연감’의 2013~2017년 5년간 생활체육 사고 평균치를 살펴보자. 3월(247.8건)부터 조금씩 늘어나다가 5월에는 1년 중 가장 높은 수치인 평균 404.6건까지 올라간다. 3~5월의 평균 생활체육 사고 발생 건수는 전체 사고의 29%를 차지한다. 등산 사고 건수도 4월(평균 574.6건)에 급증하기 시작해 5월에는 평균 781.4건까지 치솟는다. 봄철은 단풍이 드는 가을철과 더불어 등산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기다. 날씨가 선선한 4~6월에는 자전거 사고도 급증한다. 이 시기의 평균 발생 건수가 1년 전체의 33.2%를 차지하고 있다. 스포츠안전재단이 2016년 3~4월에 1만 36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스포츠 안전 사고 실태조사에서도 봄(27.1%)에 주요한 부상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야외 활동을 하기 좋은 가을에 전체 주요 부상의 25.6%가 발생했고, 여름(24.4%)과 겨울(22.9%)이 그 뒤를 이었다.햇살이 점점 따사로워지고 봄꽃이 봉우리를 활짝 펼치는 이 무렵 전문가들은 절대 주의, 절대 조심을 당부하고 있다. 특히 봄철 생활체육은 어느 때보다도 주의가 요구된다. 겨우내 운동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유연성과 근육량이 줄어든 상태임을 잊기 쉬워서다. 관절 기능은 약해져 있는 반면 피하지방은 축적돼 체중이 늘어나면 운동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봄기운에 취해 자신의 체력은 고려하지 않고 과도하게 의욕을 뽐내며 등산이나 자전거, 마라톤 등을 즐기다 보면 부상을 당하기 십상이다. 스포츠안전재단의 손민기 교육사업팀장은 11일 ‘쉬어가기’를 추천했다. “봄철에는 날씨가 좋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무리해서 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다. 예를 들어 배드민턴 스매싱을 20번 하면 적당한 사람이 30번까지 했다가는 어깨에 무리가 간다”면서 “이럴 때는 즉시 운동을 중지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체육시설 내에서 생활체육을 즐길 때는 비상구나 소화기, 안전요원 등의 위치를 미리 파악해 두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 김원 교수는 “통증의 소리를 들으라”고 했다. 김 교수는 “통증은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라면서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체력 수준에 맞는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통을 극복해야 체력이 한 단계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고통을 무리해서 극복하면 다치게 된다”며 “봄철에 새로운 다짐으로 운동을 하곤 하는데 통증이 심해지면 운동을 줄이거나 종목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종목별로 주의점도 다르다. 동호인들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우선 마라톤을 조심해야 한다. 평소에 충분히 체력 관리를 하지 않다가 갑자기 대회에 나섰다가 낭패를 보기 쉽다. 발이나 무릎 부위에 무리가 생기기 십상이다. 심장 혈관계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고, 탈수도 조심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6일 경북 경주시에서 열린 제28회 벚꽃마라톤대회에 참가했던 20대 중국인이 출발한 지 10분여 만에 쓰러져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상쾌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는 이즈음, 미끄러지거나 물체에 걸려 넘어져 발생하는 부상도 급증한다. 무릎·손바닥 찰과상이나 손목·발목 염좌 등이 흔하다. 헬멧이나 무릎보호대 등을 착용해 사고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로 주행시에는 차량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눈에 띄는 옷을 입거나 자전거에 거울을 부착하는 것도 방법이다. 등산에 나설 때는 장비를 제대로 갖춰야 한다. 아무리 날씨가 따뜻해졌다고 하더라도 고도가 높은 산은 아직 겨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대비가 필요하다. 초봄에는 아이젠(등산화에 부착하는 미끄럼 방지 기구)이나 등산 막대, 등산화를 갖춰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랜만에 신는 등산화의 밑창 무늬가 닳아서 거의 없다면 교체해야 한다. 봄철에는 일교차도 심하기 때문에 저체온증을 예방하기 위해 얇은 옷을 여러 벌 겹쳐 입어 체온 조절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체력을 생각하지 않은 무리한 코스의 산행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등산 중 입는 부상의 약 80%는 하산할 때 발생한다. 내려갈 때는 올라갈 때보다 상대적으로 주의를 덜 기울이다가 미끄러져 부상을 입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오를 때 체력의 대부분을 사용하면 하산 시에는 다리가 풀려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어느 종목이든 부상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운동 전후 실시하는 스트레칭이다. 스트레칭은 겨우내 굳어 있던 근육이나 관절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운동 전에 발목이나 손목 같은 작은 관절부터 시작해 허리처럼 큰 관절까지 차례로 스트레칭을 해주는 것이 좋다. 각 동작을 정확한 자세로 5~20초 동안 유지하며 3~5회 반복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기상 후에 실시할 때는 너무 갑자기 움직여서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을 모두 마친 뒤 5~10분간 가볍게 걷거나 스트레칭을 통해 마무리 운동을 하면 피로물질인 젖산의 축적을 줄이고, 근육통을 예방할 수 있다. 봄철에는 미세먼지 농도가 짙어질 때가 많다. 일기예보를 주시하다가 관련 주의보나 경보가 발생하면 배드민턴이나 탁구, 수영 같은 실내 스포츠를 즐기는 편이 낫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삼계탕 본 칠레 자매들 “다리를 왜 꼬고 있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삼계탕 본 칠레 자매들 “다리를 왜 꼬고 있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칠레 자매들이 아버지의 추천 음식을 맛봤다. 11일 방송되는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는 칠레 4인방의 삼계탕 먹방기가 공개된다. 이날 방송에서 오랜 비행 후 한국에 도착한 동생들에게 제르가 대접한 점심 식사 메뉴는 삼계탕이었다. 삼계탕은 제르와 아버지의 최애 한식 메뉴로 아버지는 자매들이 한국으로 떠나기 전부터 “한국에 가면 꼭 삼계탕을 먹어. 내가 한국에서 몸이 허해졌을 때 먹었던 음식이야”라며 강력 추천했다. 제르는 “칠레의 수프와 비슷한데 피로회복에 아주 좋아”라고 말하며 긴 비행으로 인해 지친 동생들이 기력보충하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냈다. 주문한 삼계탕이 등장하자 자매들은 “다리는 왜 꼬고 있어?”, “신기하다”라고 말하며 처음 보는 삼계탕 비주얼에 깜짝 놀랐다. 삼계탕을 맛본 자매들은 그 맛에 반해 곧장 폭풍흡입에 돌입했다. 하지만 첫째 마조리의 식사 속도가 점점 더뎌지기 시작했다. 배고픈지 칭얼대는 하람이에게 수유를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불만을 표했다. 그런 하람이를 위해 마조리는 삼계탕을 맛보게 했다. 과연 아기인생 11개월 만에 처음으로 삼계탕을 맛본 하람이의 반응은 무엇일지 방송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한편,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11일 오후 8시 30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길섶에서] 노안/김균미 대기자

    노안이 온 지는 꽤 됐다. 신문이나 책을 읽을 때, 휴대전화 문자를 확인할 때 나도 모르게 안경을 벗고 맨눈으로 보는 습관이 생겼다. 지하철에서 팔을 뻗어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사람, 안경을 벗어 머리에 꽂고 보는 사람을 보면 그 심정이 절로 이해가 된다. 그런데 얼마 전 휴대전화 문자를 확인하려는데 또렷하지 않아 안경을 벗고 자세히 보려는데 안경이 없다. 더듬어 보니 이미 머리 위에 얹어 놓고 있었다. 순간 당혹스럽기도 하고, 기가 막혔다. 지난 연말 시력검사를 했을 때만 해도 별 이상이 없었는데, 그새 시력이 나빠졌나 싶어 슬그머니 걱정이 됐다. 눈이 쉬이 피로해지면서 새 습관이 생겼다. 시력이 한참 떨어질 때 주변에서 권했던 ‘눈 운동’이다. 신체의 다른 근육과 마찬가지로 눈동자를 위아래 좌우로 천천히 움직여 눈 근육을 풀어 주는 운동이다. 오랜만에 하니 눈동자가 뻐근하다. 안경을 새로 맞추면 되지 웬 호들갑인가 싶기도 하다. 한데 안경 도수를 높이면 금세 익숙해지고 다시 시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주저된다. 버티다 오히려 시력이 더 나빠질지도 모르겠지만, 불편함을 조금 더 감수해 보기로 한다. 다행히 먼 것은 잘 보이니까. 따뜻한 봄 햇살 받는 데 시력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kmkim@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전쟁 중에도 정쟁 올인 이승만… 산불도 정치에 활용하는 보수 야당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전쟁 중에도 정쟁 올인 이승만… 산불도 정치에 활용하는 보수 야당

    전쟁엔 관심 없다, 정쟁에 ‘올인’할 뿐. 1951년 7월 초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시작됐다. 교착된 전선에서는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고지전이 전개됐다. 지난 1년 전면전 때보다 더 많은 군인이 희생당하는 처절한 전투였다. 전선에서 500여킬로미터 떨어진 임시수도 부산. 이승만 대통령은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산혈해의 전선에는 관심이 없었다. 국민을 현혹한 ‘북진통일’, ‘휴전협상 반대’는 당시 한국군으로는 이룰 수 없는 허황한 구호였다. 당시 그에게 절박한 것은 야당이 압도하는 2대 국회를 전복시키거나 장악하는 일이었다.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2대 총선에서 이승만 세력은 궤멸했다. 전체 210석 가운데 57석만 차지했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제헌의회의원 선거에 불참했던 지사들이 대거 출마해 당선됐다. 과반이 훨씬 넘는 126석이 무소속이었다. 당시는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했다. 이승만의 재선은 불가능했다.총선 결과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국민은 제주4·3과 여순 사건 학살의 배후, 백범 김구와 몽양 여운형 등 민족지도자의 잇따른 암살의 배후에 이승만이 있다고 믿었다. 동족의 고혈을 일제에 바친 자들을 처단하기 위한 반민족행위자처벌특별위원회(반민특위)를 강제로 해산시킨 것도 이승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민심은 이승만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는 2대 총선을 미루려 했다. 그는 이미 지방의회의원 선거도 무산시킨 터였다. 제헌의회가 1949년 7월 지방자치법을 제정해 8월 15일 이후 지방의회를 구성하도록 했지만, 이승만은 제주4·3, 여순 사건 등을 핑계로 미뤘다. 12월에는 아예 지방의회 구성을 무기한 유보하도록 지방자치법을 개정해버렸다. 미국 정부가 눈치 챘다. 한반도에서 소련과 각축하고 있던 미국은 국제여론에 민감했다. 제주4·3 문제로 소련에 된통 당한 터였다. 딘 구더햄 애치슨 국무장관이 나서서 이승만에게 경고했다. 총선을 연기한다면 대한군사경제지원을 철회하겠다! 앞서 1월 태평양 미국 방위선에서 한반도를 빼버린 애치슨이었다. 미국이 경제지원까지 중단한다면 이승만은 끝장이었다. 이승만은 꼬리를 내렸다. ‘미국의 등쌀에 밀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실시한 총선이었다.이후에도 악재가 잇따랐다. 6·25전쟁이 터졌고, 27일 새벽 몰래 서울을 버렸고, 대전에서 ‘국군이 북진 중’이라고 거짓 방송을 했다. 1951년 1월엔 간부들이 식량과 피복을 빼먹고 뜯어먹어 장정 1000여명이 얼어 죽고 굶어 죽고, 수만명이 영양실조로 죽어가던 국민방위군 사건이 터졌다. 간부들은 이승만의 사조직 대한청년단 단원들이었다. 2월엔 국군이 어린이 359명을 포함해 민간인 719명을 학살한 거창양민학살 사건이 터졌다. 그렇다고 포기할 이승만이 아니었다. 1951년 7월 휴전협상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본격적인 정치공작에 나섰다. 2대 대통령 선거를 8개월여 앞둔 1951년 11월 말 개헌 추진을 선언했다. 29일 공비 소탕을 명분으로 지리산 주변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북도 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날 국무회의는 대통령직선제를 뼈대로 한 개헌안도 의결했다. 30일 국회에 개헌안을 제출했다. 대통령을 국민 직접선거로 뽑자는 것이었다. 군사, 경찰, 행정권이 압도하는 전시체제였으니 직접선거로 한다면 승산은 충분했다. 북의 남침처럼 그야말로 전격전이었다. 11월 당시 교착된 160여마일 전선에서는 근접전이 격렬해지고 있었다. 11월 19일 국군은 동부전선의 요충지 월비산을 적에게 내줬다. 11월 30일엔 양구 북방 어은산과 백석산 사이의 바위 하나(크리스마스고지)를 두고 유엔과 중공군 사이에 격전이 벌어졌다. 대규모 전투의 전초전이었다. 펀치볼,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백석산, 백마고지, 화살머리고지, 교암산, 지형능선, 벙커고지, 삼각고지 등은 차라리 병사의 거대한 무덤이었다. 1952년 1월 18일, 국회는 정부 개헌안을 부결시켰다. 찬성은 14표에 불과했고, 반대는 개헌선을 넘는 143표였다. 야당은 이승만이 도발하지 못하도록 내각제 개헌안을 제출했다. 대통령 직선제 도발로 벌어진 정쟁은 전면전으로 발전했다. 그날도 유엔군의 대대적인 북폭이 있었고, 고지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승만은 ‘플랜2’를 꺼냈다. 여순 사건을 핑계로 미뤘던 지방의회의원 선거를 전쟁 중에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방의회를 앞세워 국회를 압박하려는 것이었다. 경찰, 행정권은 물론 군까지 동원할 수 있는 전시체제에서 여당의 지방의회 장악은 여반장이었다. 1952년 4월 25일과 5월 10일 시읍면, 도 의회의원 선거가 실시됐다. 예상대로 이승만계가 싹쓸이했다. 관제 선거로 들썩이던 4월 23일 중부전선에선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유엔군이 연천을 내줬다. 평강과 금성에선 대규모 근접전이 벌어졌다. 5월 8일 중공군은 모든 전선에서 공세를 펼쳤다. 연천 탈환을 위한 교전이 7일째 계속됐다. 유엔군은 평양, 사리원, 희천, 정주, 청진, 수안 등 후방의 병참기지 철교 등을 폭격했다. 5월 이승만의 국회 침공이 본격화했다. 지방의원들이 피란지 부산의 국회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민족자결단, 백골단, 땃벌떼 등 정체불명의 폭력배들이 가세해 국회를 무력화시켰다. 이들의 요구는 하나, 국회 해산이었다. 경찰은 수수방관했다. 5월 25일 이승만은 부산·경남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공비 소탕과 병참기지 방어가 명분이었다. 그러나 공비 소탕은 1951년 11월 25일 창설된 백야전투사령부가 4단계 작전을 통해 1952년 3월 14일 종료를 공식 선언한 터였다. 계엄군은 25일 새벽부터 소탕에 나섰다. 공비가 아니라 야당 의원이었다. 26일 아침엔 국회의원 통근버스를 크레인으로 끌고 헌병대로 연행했다. 이어 국제공산당 프락치 사건을 발표했다. 국회의원 10명이 구속됐다. 국회 기능은 마비됐다. 6월 4일 이승만은 대통령 직선제에 내각제 요소를 짬뽕한 발췌개헌안을 발의했다. 6월 11일 지방의원들이 다시 국회로 몰려와 직선제 통과 시위를 벌였다. 미국 대사관 난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전선에서는 6월 14일 중공군이 중부전선 철의 삼각지에 무려 7000여발의 포탄을 유엔군 진지에 퍼부었다. 5일 동안 중공군 1000여명이 사망했고, 그로부터 3개월간 아군 971명이 전사하고 3120명이 부상했다. 철의 삼각지대는 말 그대로 주검이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이룬 ‘시산혈해’였다. 6월 20일 김성수 이시영 김창숙 등 원로들의 반독재호헌구국선언대회가 폭력배들에 의해 피로 얼룩졌다. 국회에서는 발췌개헌안이 상정됐지만, 정족수 미달로 의결할 수 없었다. 이승만은 구속 의원들을 석방했다. 국회 표결에 참여하라는 것이었다. 30여개 고지전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었다. 7월 초부터 중공군은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을 장악하기 위해 대대 규모의 공격을 해왔고, 7일엔 탱크 14대를 앞세우고 유엔군 진지를 공격했다. 유엔군은 판문점 동쪽 북한군 3개 진지를 공격했다. 수도고지 공방은 8월 초 사단 규모의 대규모 전투로 발전했고, 하룻밤에 주인이 다섯 번이나 바뀌기도 했다. 미국은 7월 9일 한국전 희생자가 전년도(1951년)보다 552명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임시수도 부산에선 7월 초부터 미군이 군정을 다시 실시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신익희 의장, 조봉암 부의장 등이 도피 중인 의원들에게 국회 등원을 설득했다. 7월 4일 헌병이 국회의사당과 회의장을 포위한 가운데 발췌개헌안에 대한 표결이 이루어졌다. 185명 출석 166명 찬성, 기권 3명, 반대 0명으로 통과됐다. 미국의 간섭이 주효했다. 미국은 휴전협상에 반대하는 이승만과 타협을 하고, 직선제를 지지했다. 이승만은 전쟁과 재난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권력 장악을 위한 정쟁 승리에 ‘올인’했다. 지난주 강원도 시민과 소방관들은 산불과 사투를 벌였다. 그 와중에 자유한국당 안팎에선 ‘북한과 협의? 빨갱이 정부!’라고 색깔론을 제기하거나 ‘촛불 정부? 산불 정부!’라고 이죽거렸다. 원내에서는 재난 컨트롤타워인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국회에 잡아뒀다. 재난은 외면하고 정쟁에 몰두하는 것이 이승만의 후계 집단답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비극·활극 버무린 ‘오락 영화’ 식민지 조선의 청춘을 위로하다

    비극·활극 버무린 ‘오락 영화’ 식민지 조선의 청춘을 위로하다

    ‘청춘의 십자로’(1934)는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존된 일제강점기 조선극영화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다시 말해 공식적으로 한국에 존재하는 최고(最古)의 무성극영화이다. 이 영화는 필름의 발굴 과정에서도, 또 영화사적 의미로도 무척 흥미로운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그동안 한국영상자료원의 조선영화 발굴 작업이 2004년 이후 중국전영자료관을 통해 본격적인 성과를 보인 데 비해 이 영화는 2007년 국내 소장자를 통해 입수되었다. 또 중국에서 찾은 작품들이 ‘미몽’(1936) 등 발성영화의 프린트(상영용) 필름이었다면 ‘청춘의 십자로’는 무성영화의 네거티브(원판) 필름으로 수집되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아리랑’을 볼 수 없는 지금의 우리에게 조선 무성영화의 수준과 당시 조선인 관객에게 전달했을 영화적 에너지를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크다.●조선 무성영화의 대표작 먼저 ‘청춘의 십자로’가 등장한 1930년대 전반의 조선영화계부터 살펴보자. 1935년 ‘말하는’(talkie) 영화 ‘춘향전’의 제작 성공으로 발성영화 국면에 진입하기 직전의 시기, 조선영화는 과도기적 변화를 겪고 있었다. 나운규의 친구였던 배우 윤봉춘이 감독 데뷔작 ‘도적놈’(1930)에서 철공소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아리랑’의 정서를 이었고, 황운이 연출한 ‘딱한 사람들’(1932)은 흥남의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의 노동자 해고 사건을 다루며 카프(KAPF) 영화의 계급적 관점을 이었다. 두 작품 다 일제 당국의 검열로 만신창이가 되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일본 교토의 영화스튜디오에서 견습하고 돌아온 이규환이 ‘임자없는 나룻배’(1932)로 데뷔했다. 나운규와 문예봉이 출연한 이 영화 역시 식민지 농촌의 현실을 그리는 것으로 나운규 영화의 저항성을 잇고 있지만, 표현의 수위는 전보다 낮아졌고 그 대신 조선의 로컬 컬러를 담아내는 것으로 연출 방향이 전환되었다. 이처럼 이규환을 시작으로 1930년대 중반 일본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와 조선의 향토색을 담아내는 영화를 만든 이들을 2세대 영화인으로 규정할 수 있다. 한편 ‘청춘의 십자로’는 배우 출신 안종화(1902~1966)의 세 번째 연출작으로, 무성영화시기 조선에서 형성된 신파 양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이다. 즉 비극과 활극을 절묘하게 버무린 신파 화법을 기반으로 대중오락으로서의 영화라는 한 방향으로 명쾌하게 밀고 나갔다. 조선인 관객들의 평가 역시 좋았다. 1938년 11월 조선일보가 개최한 조선 최초의 영화제에서 그동안 만들어진 조선영화를 대상으로 관객들의 인기투표를 실시했는데, ‘청춘의 십자로’는 2175표를 받아 무성영화 부문 6위를 차지했다. 1위는 ‘아리랑’(4947표)이었고, 그 뒤로 ‘임자 없는 나룻배’(3783표), ‘인생항로’(3075표), ‘춘풍’(2921표), ‘먼동이 틀 때’(2810표)가 뽑혔다. 주목할 부분은 ‘청춘의 십자로’뿐만 아니라 3위를 차지한 ‘인생항로’(1937) 역시 안종화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그가 대중이 원하는 영화를 능숙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감독이었음이 입증된다. 안종화는 신파극단의 여형(女形) 배우 출신으로(초창기 신파극 무대는 여성 역도 남성 배우가 맡았다), 부산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제작한 ‘해의 비곡’(1924) 등에서 주연을 맡았고, 1930년 ‘꽃장사’를 시작으로 감독의 길을 걸었다. 같은 해 두 번째 작품 ‘노래하는 시절’을 연출했고, 1934년 ‘청춘의 십자로’를 내놓으며 감독의 역량을 주목받는다. 2세대 영화인 신경균이 감독 데뷔 전 평문을 쓰던 시절 “화면의 연락(숏의 연결을 의미)의 정비와 템포, 리듬의 고조”가 잘 구축된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어서 역시 직접 각본을 쓴 ‘은하에 흐르는 정열’(1935)과 ‘조선 최초의 갱영화’인 ‘역습’(1936)을 연출했고, 1937년 ‘인생항로’를 끝으로 일제시기의 필모그래피를 마무리했다. 그는 무성영화 감독에 머물렀지만 조선영화의 무성시기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평가할 수 있다. 1930년대 중반 조선 무성영화가 가장 성숙기에 이르렀을 때 전성기를 구가한 감독이기 때문이다. 해방 후 그는 ‘수우’(1948)를 시작으로 ‘춘향전’(1958)을 거쳐 ‘견우직녀’(1960)까지 6편의 영화를 더 연출했다. 안종화는 일제시기 영화사 연구자들의 중요한 참고도서인 ‘한국영화측면비사’(1962)를 남기기도 했다. 2007년 ‘청춘의 십자로’ 필름이 한국영상자료원에 입고되었을 때 제목도 크레디트 자막도 없어 어떤 영화인지 특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안개 속의 초기 조사 단계에서 가장 기본이 된 자료가 바로 그가 기록한 ‘한국영화측면비사’였다.●식민지 청춘들의 슬픔, 분노 그리고 복수 ‘청춘의 십자로’는 그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서로 연결돼 있지만 만나지 못하고 엇갈리다 결국은 다시 조우하는 청춘들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영복(이원용)은 서울역에서 수하물 운반부로 일하고 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내린 한 모녀를 흔쾌히 도와준 그는 떠나온 고향 생각에 빠져든다. 성품이 우직한 영복은 봉선네 집 데릴사위로 들어가 7년 동안 뼈가 으스러지게 일했으나 결국 마을 지주의 아들 명구(양철)에게 봉선을 뺏기고 고향을 떠난 것이다. 영복의 누이동생 영옥(신일선) 역시 어머니를 잃고 오빠를 찾으러 서울에 왔다가 카페의 여급이 된다. 영복은 이를 모른 채 서울역 부근 주유소에서 일하는 계순(김연실)과 친하게 지낸다. 한편 명구 역시 서울로 올라와 모던보이 개철(박연)의 집에 머문다. 어느 날 영옥은 개철 일당의 술책에 걸려들고 결국 개철에게 몸을 더럽히고 만다. 실직한 계순 역시 개철 일당에 걸려들어 고초를 겪게 된다. 영화는 선술집의 영복이 술에 취해 사과를 발로 차는 장면과 개철 일당의 술자리에서 양복 상의가 사과를 덮는 장면(영옥의 겁탈을 암시)을 연결시키며, 서울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지만 영복과 영옥 남매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 계순의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개철에게 구타를 당하고 나온 영복과, 명구에 의해 개철의 집으로 끌려가다시피 하는 계순이 길에서 서로 엇갈리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분명 당시 관객들이 안타까운 탄성을 내뱉었을 장면들이다.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온 계순이 개철의 악행을 영복에게 알리고, 그는 복수를 위해 개철을 찾아간다. 개철의 집 안으로 들어간 영복이 처음 마주친 이는 다름 아닌 누이동생 영옥이었고, 그간의 사정을 나눈 둘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린다. 안종화의 연출이 탁월한 점은 영화의 마지막 복수 장면의 파토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영복과 영옥, 계순이 고초를 당하는 장면들을 겹겹이 쌓아 놓은 것이다. 영복이 자신과 여동생과 애인을 위한 복수를 펼치는 곳은 개철과 명구가 개최한 화려한 피로연 자리이다(실제 이 클라이맥스의 격투 장면은 당시 서울 장안의 3대 요정 중 하나인 국일관에서 촬영되었다). 결국 영복은 사정없는 주먹세례를 날려 개철을 쓰러트린다. 그의 복수가 끝나고 이제 셋은 함께 살게 된다. 영복과 계순이 각자의 직장으로 향할 때 영옥이 천주교식의 십자성호를 그으며 축복하는 마지막 장면으로 그들의 새로운 출발이 암시된다.고향의 지주 아들과 서울의 모던보이로부터 주인공들이 겪은 고초와 울분, 참다 참다 폭발하는 우직한 주인공의 활극, 그리고 해피엔딩까지 ‘청춘의 십자로’는 조선인 관객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민초를 괴롭히는 지주, 여동생 영희(신일선)를 겁탈하려는 마름, 그를 응징하는 영진(나운규)을 등장시킨 ‘아리랑’에서 가장 대중적인 요소만 취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인 혹은 친일파를 연상시킬 수 있는 인물과 이들을 낫 혹은 주먹으로 벌하는 주인공의 구도는 무성영화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193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면 조선영화가 묘사할 수 있는 활극적 에너지는 거의 사라지게 된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모디 ‘안보’vs 간디 ‘민생’…‘100억달러 총선’ 달아오르는 인도

    모디 ‘안보’vs 간디 ‘민생’…‘100억달러 총선’ 달아오르는 인도

    하층민 출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인도판 북풍(北風)’으로 재선할 것인가, 정치 귀족 가문 라훌 간디 인도국민회의(INC) 총재가 친서민 정책으로 막판 대역전을 할 것인가. 9억명 표심의 향방은 이번 주부터 6주간 100억 달러(약 11조 4000억원)짜리 ‘세계 최대 민주주의 축제’로 불리는 인도 총선거가 끝난 뒤 공개된다. 인도 총선은 오는 11일부터 다음달 19일까지 전국 29개 주에서 진행된다. 1차전이었던 2014년 총선에서는 모디가 간디 총재에 압승했다. 그가 이끈 인도국민당(BJP)은 과반인 282석을 차지했다. 단일 정당이 하원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것은 1984년 이후 처음이었다. 인도 하원 전체 의석은 545석이다. 이 중 2석은 대통령이 지목한다.언어와 민족이 매우 다양한 인도는 마하라슈트라, 웨스트벵골, 델리, 타밀나두, 안드라프라데시 등 지역 정당이 장악한 주가 많지만 결국 전체 판세는 연방의회 집권 BJP와 INC의 대결로 압축된다. 양당이 각 지역 정당과 연대해 각각 BJP가 주도하는 국민민주연합(NDA)과 INC의 통일진보연합(UPA)으로 세력 대결을 펼치기 때문이다. 모디 총리기 이번 총선에서도 쉽게 이길 수 있을까.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경제성장률이 눈에 띄게 둔화했다. 농민들은 모디 총리가 제조업만 챙긴다며 등을 돌렸다. 인도의 실업률은 45년 만에 최고치인 6.1%를 기록했다. 악재가 겹친 가운데 BJP는 지난해 12월 정치적 텃밭인 마디아프라데시 등 3곳의 주의회 선거에서 완패했다. 지난 2월 14일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공격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모디 총리는 인도 경찰 40명이 숨진 이 사건의 배후로 파키스탄을 지목하고 같은 달 26일 공습을 감행했다. 인도가 파키스탄을 공격한 것은 4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양국은 하루 뒤 공중전을 벌였다. 전면전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안보 이슈가 선거판을 집어삼켰다. 인도인들은 파키스탄을 공격한 모디 총리를 “결단력 있는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주춤했던 지지율이 치솟았다. 인디아TV는 8일 최신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NDA가 이번 총선에서 275석을 얻어 과반 의석을 확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현직 프리미엄’이 더해져 모디 총리의 승리 확률이 높아졌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달 31일 개국한 ‘나모 TV’가 선거 공정성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모디 총리의 이름을 따 만든 이 채널은 하루 종일 모디 총리의 유세 연설 등 총리의 정보만 전달한다. 모리 총리의 지지자들은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나렌드라 모디 총리’까지 제작했다. 당초 지난 5일 개봉 예정이었으나 INC의 반발로 연기됐다. 이외에도 모디 총리를 영웅화한 책 등이 출간된 것으로 전해졌다. 모디 총리는 공고한 신분제 카스트 제도 하위 계급인 간치(상인) 출신으로 총리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모디 총리는 기차와 거리에서 차와 음료 등을 팔다가 정치계에 입문했다. 이후 구자라트주 총리 등을 거쳐 연방정부 총리에까지 올랐다. 이대로 모디 총리의 재선을 낙관해도 좋을까. 변수는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하층민이었던 모디 총리가 하층민들의 이익을 등한시했다는 비난을 받는 등 이번 총선으로 시험대에 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NYT는 “불가촉천민 ‘달리트’가 1억표다. 지난 선거에서 달리트는 자신이 하위 계급 출신임을 강조한 모디를 지지했었다. 하지만 달리트들은 더는 모디 총리와 그의 당을 신뢰하지 않는다”면서 “총리가 된 후에 달리트가 당하는 폭압을 모른 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NYT는 이어 “파키스탄과의 대립은 달리트의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디 총재는 모디 총리가 외면한 하층민에 집중했다. 간디 총재는 인도 명문가 ‘네루-간디’ 가문 출신이다. ‘네루-간디’ 가문은 자와할랄 네루 초대 인도 총리, 네루 초대 총리의 외동딸 인디라 간디 총리, 네루 총리의 손자 라지브 간디 총리 등을 배출했다. 간디 총재는 네루의 증손자다. 다만 마하트마 간디와는 무관하다. 간디라는 성은 인디라 총리가 페로제 간디와 결혼하면서 붙은 것이다. 간디 총재는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가구에 월 6000루피(약 10만원)를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인도의 1인당 월 국민소득은 20만원 미만이다. 그는 “인구로는 2억 5000만명, 가구 수로는 5000만 가구가 혜택을 입을 것”이라고 밝혔다. AP통신은 “간디 총재가 지난해 말 주의회 선거에서 ‘농민 부채 감면’을 공약으로 내세워 승리한 경험을 되살리고 있다, 모디 정부의 일자리 문제와 농촌 빈곤, 방산 비리 등 약점도 집중 공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총선은 전국 29개 주에서 지역별로 7차례(4월 11일·18일·23일·29일, 5월 6일·12일·19일)에 걸쳐 치른다. 개표는 다음달 23일 하루 만에 끝난다. 하원의 윤곽도 이날 나온다. 하원 과반을 획득한 정당에서 총리가 나오고 정권을 잡는다. 유권자는 8억 7500만여명으로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가장 많다. 선거 규모가 큰 만큼 정부 지출이 상당하다. 인도 전역 100만곳에 투표소를 설치하고 군경 등 1000만명의 선거 관리 요원을 투입한다. 인디아투데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인용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09년 총선에서는 정부가 유권자 1명당 15.5루피를 썼으나 2014년에는 관련 비용이 1인당 46.4루피로 늘었다. 2014년 총선 당시 인도 정부의 전체 지출은 총 387억 루피”라고 전했다. 개별 후보자의 비용까지 합산하면 전체 선거 비용은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뛴다. CNN 등은 전문가를 인용해 “이번 인도 총선은 전 세계 역사상 최대로 기록된 2016년 미국 대선 비용 65억 달러 규모를 훌쩍 넘어설 것”이라면서 “2014년 인도 총선 비용은 50억 달러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번에는 그때보다 두 배(100억 달러)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전체 선거 비용을 최소 70억 달러로 내다봤다. 왜 이렇게 많은 돈을 쓰는 것일까. 치열한 경쟁과 부정 선거 풍토 때문이다. 이번 선거 입후보자만 8000명이 넘는다. 이들 후보는 당선을 목표로 선거 운동원의 일당, 교통비, 식대는 물론 현수막, 마이크, 폭죽 등 선거 전반 비용을 부담한다. 후보자들은 금품까지 살포해야 한다. 현지 설문에 따르면 인도 정치인 90%가 선거 때 유권자들에게 금품을 제공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블룸버그는 “인도의 선거 유세장에서는 각 후보자가 평소 서민들이 맛보기 힘든 치킨카레 등이 든 박스나 현금을 나눠주는 일이 흔하다. 지난 선거 때 일부 선거구에서는 유권자에 염소를 선물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설상가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비도 급증했다. 각 후보는 홍보요원, 댓글부대 등을 운영하는데 이 비용이 2009년 선거 3600만 달러에서 2014년 7억 2000만 달러로 빠르게 늘었다. 이 와중에 SNS를 타고 확산하는 ‘가짜뉴스’ 문제가 대두됐다. 페이스북은 지난 1일 인도 총선 관련 가짜뉴스를 유포한 것으로 의심되는 계정 수백개를 폐쇄했다. 페이스북은 이들 계정 배후에 파키스탄군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들 가짜계정은 280만명이 넘는 페이스북 사용자에 파키스탄군, 인도 정부, 카슈미르 분쟁 지역과 관련한 거짓정보를 흘린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이 거대한 민주주의 축제를 보려는 관광상품이 나와 관심을 끈다. 로이터통신 등은 최근 타지마할 등 인도 관광 명소는 물론 총선 후보자 유세 현장을 체험 가능한 여행 상품이 나왔다고 전했다. 인도 전역의 35개 관광회사가 참여했고, 3500여건 이상의 예약이 완료됐다. 로이터는 “일반 관광객보다는 각국 정치인, 정치학 전공 학생, 언론인, 연구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부천 링거 사망사건 유족 “진실 밝혀달라” 타살 의혹 제기

    부천 링거 사망사건 유족 “진실 밝혀달라” 타살 의혹 제기

    지난해 경기도 부천 한 모텔에서 30대 남성이 프로포폴 등 약물 투약 흔적을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과 관련, 경찰이 사건 당시 이 남성과 함께 있던 여자친구를 입건했다. 8일 부천 원미경찰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1일 오전 11시 30분 부천 한 모텔에서 A(30)씨가 숨져 있는 것을 간호조무사인 여자친구 B(31)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고, 당시 A씨의 오른쪽 팔에는 두 개의 주삿바늘 자국, 모텔 내부에서는 빈 약물 병 여러 개가 발견됐다. 부검결과 사인은 디클로페낙으로 인한 심장마비. A씨는 마취제인 프로포폴과 리도카인, 소염진통제인 디클로페낙을 치사량 이상으로 투약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A씨와 함께 있던 B씨는 약물검사 결과 치료농도 이하의 해당 약물을 투약했고, 경찰에 “A씨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B씨를 위계 등에 의한 촉탁살인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현장에서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고 휴대전화에서도 극단적 선택을 암시한 정황이 없는 점 등을 들어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적다고 본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개인 사정으로 진 빚을 갚는 중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며 “여러 정황을 종합했을 때 B씨가 A씨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A씨의 유족 역시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글을 올려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A씨의 누나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원자는 해당 글에서 “B 씨는 본인도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링거로 투약했지만 링거 바늘이 빠져서 중간에 깨어나 (119에) 신고했다는 말이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남동생 친구들에 따르면 B 씨는 남동생과 크게 싸우며 다툼이 잦았으며 3년 된 동거남이 있고 결혼까지 생각했다. B 씨는 평소 피로 해소에 좋다며 약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약하고 남동생의 친구들에게도 권했다”고 주장하면서 “남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철저하게 수사해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늘어난 저비용항공사… ‘기장 모셔가기’ 시끌시끌

    늘어난 저비용항공사… ‘기장 모셔가기’ 시끌시끌

    정년 앞둔 기장에 아들 일자리 미끼도 옮겼다가 빡빡한 근무·꼼수 연봉 불만 인사적체·오너리스크로 中 이직 많아 대형 항공사들 인력 유출로 골머리 “3년 단기계약… 근무 안정성 떨어져”최근 신생 항공사 세 곳이 한꺼번에 신규 저비용항공사(LCC) 면허를 발급받고, 기존 항공사들이 새 항공기를 추가로 들여오며 항공사마다 ‘기장 모셔가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판이 커진 ‘조종사 이직 시장’ 안팎에서 잡음이 많이 들려 옵니다. 대표적인 예 중 하나는 빡빡한 단거리 근무 스케줄과 낮은 복리후생으로 이직 뒤 실망하는 기장들이 나온다는 겁니다. 업계 관계자는 7일 “연봉이 대형 항공사인 대한항공 못잖다는 제안에 LCC로 옮겼지만 실제로는 쉬지 못하고 받는 연차 수당이 연봉에 포함된 것이라 조종사들 사이에서 ‘꼼수로 연봉을 올린 것’이라는 불만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조종사 근무시간은 월평균 70시간 미만인데 통상 40~50시간 정도 일한다고 합니다. 반면 LCC 조종사들은 대개 월평균 60~90시간 정도라네요. 물론 LCC 업계는 “휴식일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 수당으로 보전해 주는 데다 비행시간 자체가 항공안전법 시행규칙(월 100시간)보다 낮은 수준이라 문제가 없다”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안전 운항을 위해 기장 피로도 관리도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특히 또 다른 항공사 직원은 “‘조종사 대란’이 벌어지다 보니 A항공사의 경우 아들의 항공사 취업을 돕겠다며 일자리를 미끼로 정년을 앞둔 기장들에게 접근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면서 “신체검사, 시뮬레이터 테스트 등을 버거워하는 기장 등에게 오퍼를 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반대로 조종사들이 스스로 이직을 준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형 항공사들은 인사 적체가 심해 기장 승급이 오래 걸리는 만큼 LCC에서 빠른 기장 승급 후 처우가 더 좋은 중국으로 기회를 찾아 떠나는 것이지요. 연봉 1억 4000만~1억 7000만원을 받는 3~4년차 기장들에게 중국 항공사들이 제시하는 연봉은 3억원 이상이니까요. 또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의 두 총수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처럼 ‘오너리스크’에 대한 자조도 한 원인입니다. 하지만 인력 유출로 골머리를 앓는 대형 항공사들은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대형 항공사 관계자는 “최근 LCC뿐 아니라 중국 등 항공사들이 고연봉을 조건으로 외국 기장을 채용하는 이유는 급속한 항공 수요 팽창으로 인해 부족한 기장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일시적인 채용이라 계약 기간도 평균 3년에 불과하고 사소한 과실에도 즉시 해고할 수 있는 세부 계약 등이 달려 있다”면서 “60세 이상까지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국내 대형 항공사 여건과 비교할 때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큰 만큼 단기 연봉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이직 조건 등을 잘 따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출동 15시간 만에 평지 밟아… 밤샘사투에 3일째 속옷도 그대로”

    “출동 15시간 만에 평지 밟아… 밤샘사투에 3일째 속옷도 그대로”

    20년 베테랑도 6개월 신입도 “전쟁터” 산불은 일반 화재와 달리 예측 불가능 4일 밤 초속 20m 돌풍 탓 진화 어려워 호흡기·호스까지 갖추면 무게만 30㎏ 장비 메고 밤새 산에 올라가 체력 고갈 잿더미 된 수많은 민가 보면 안타까워“딱 두 가지만 생각났습니다. 죽음, 그리고 가족.” 사상 최악의 산불에서 최소 희생자 발생이라는 ‘기적’이 가능했던 건 소방관들의 빠른 판단과 목숨을 건 진화 작업 덕분이었다. 지난 4일 밤 화재 발생 초기 주불 진화 작업에 나섰던 강릉소방서 옥계 119안전센터 소방관들은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며 “전쟁 같았다”고 말했다. 소방관 생활 23년차인 조병삼(47) 센터장은 강릉 옥계면에서 산불이 시작되자 9분 만에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 중 한 명이다. 원래 산에는 바람이 많이 부는데 그날 밤에는 초속 20m가 넘는 돌풍이 불었다고 한다. 조 센터장은 “눈앞의 불을 끄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불길이 휘몰아쳤다”고 돌이켰다. 산속 진화 작업은 장비 활용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는 “지상에서는 소방차를 몰아 화재 지점에 가까이 갈 수 있지만, 가파른 산길은 불가능하다”면서 “대원들이 직접 수백m에 이르는 펌프 호스를 짊어지고 산을 올라야 했다”고 설명했다. 또 “산불이 발생하면 기도 화상을 막기 위해 공기호흡기까지 착용하는데 호흡기와 방화복, 호스 등 장비 전체를 다 갖추면 30㎏이 넘는다”면서 “장비를 메고 밤새 산에 올라 체력이 고갈됐다”고 덧붙였다. 젊은 피로 이뤄진 팀원들 다수는 대형 산불은 처음이었다. 강릉소방서에서 근무한 지 6개월째인 최종윤(28) 소방사는 “영상으로만 보던 거대한 산불이 실제 눈앞에서 펼쳐졌다”며 “‘저걸 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 뒤에는 ‘무조건 빨리 꺼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대원들은 4일 밤 산 정상에 오른 뒤 능선을 따라 내려오며 밤새 진화 작업을 이어갔다. 불길을 잡고 다시 평지를 밟은 건 출동 15시간 뒤인 5일 오후다. 주불 진화 이후에는 잔불과 싸우느라 또 잠을 자지 못했다. 조 센터장은 “3일째 속옷도 못 갈아입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11년차인 김남현(36) 소방위는 “피해가 적었지만,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잿더미가 된 집을 보고 대성통곡하는 주민이 많았다”면서 “국민들은 우리 소방관들이 잘했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하지만, 불에 타버린 수많은 민가를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고 했다. 조 센터장은 “우리를 부르는 이들은 모두가 절박한 분들”이라면서 “그분들께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다고 생각하니 비록 새벽이슬을 맞고 돌아왔지만, 힘들지 않다”며 웃었다. 검게 그을린 소방관들의 얼굴에 오랜만에 평화로운 미소가 보였다. 글 사진 강릉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빨리 꺼야한다”는 생각뿐…60시간 화마와 싸운 소방관들

    “빨리 꺼야한다”는 생각뿐…60시간 화마와 싸운 소방관들

    강원 옥계면 화재 초기 진압작업 나선 소방관들전쟁 같았던 현장에서 ‘빨리 끄자’라는 생각 뿐“칭찬 감사하지만, 타버린 집들 보면 아쉬움만”“화재 현장에서는 딱 두 개만 생각납니다. 죽음, 그리고 가족이죠.” 지난 4일 발생한 강원 산불이 대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건 소방관의 발 빠른 초기대응과 몸을 사리지 않는 진압작업의 역할이 컸다. 화재 초기 주불 진화 작업에 나섰던 강릉소방서 옥계 119안전센터 소방관들은 “전쟁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강릉·동해 지역에서는 이번 화재로 250㏊ 산림이 훼손되고 주택 100여 채가 파손됐다. 조병삼(47) 옥계 119안전센터장은 “산불은 일반 화재와 달리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소방관이 된 지 23년 째인 그는 강릉 옥계면에서 산불이 시작되자 9분 만에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 중 하나다. 조 센터장은 “원래 산에는 바람이 많이 부는 데다 4일 밤에는 초속 20m가 넘는 돌풍이 불어 진화가 특히 어려웠다”면서 “앞을 보고 있는데 불이 뒤에서 휘몰아치고, 현장 영상 촬영 때 카메라를 쥔 손까지 흔들렸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산 위에서는 지상과 달리 진화 장비를 제대로 갖출 수 없다는 것도 한계다. 지상에서는 소방차를 몰아 화재 장소 가까이 갈 수 있지만, 가파른 산길에서는 불가능하다. 대원들이 직접 수백 미터에 이르는 펌프를 짊어지고 산을 올라야 한다. 조 센터장은 “산불이 너무 크면 기도 화상을 막기 위해 공기 호흡기까지 착용하는데, 호흡기와 방화복, 호스 등 장비 전체를 다 갖추면 30㎏이 넘는다”면서 “장비를 메고 밤새 산을 오르내리면서 진화 작업을 하다 보면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고 전했다. 젊은 피로 이뤄진 팀원들 다수는 이런 대형 산불 진화 작업이 처음이었다. 수습을 갓 떼고 강릉소방서에 발령받아 근무한 지 6개월째인 최종윤(28) 소방사는 “불을 보면서 ‘저걸 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 뒤에는 ‘빨리 끄자’는 생각만 했다”고 전했다. 대원들은 4일 밤 산에 올라간 뒤 산능성이를 따라 내려오며 밤새 진화 작업을 이어 나갔다. 어느 정도 불길이 잡히고 다시 땅을 밟은 건 출동 14~15시간 뒤인 5일 오후다. 이들은 주불 진화 작업 이후에도 잔불을 잡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한다. 조 센터장은 “쉴 틈이 없어 3일째 속옷도 못 갈아입었다”면서 멋쩍게 웃었다. 지상에서 화상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소방관들의 몫이다. 허형규(30) 소방사는 화재 진압 때 현장에 갔다가 산 인근 민가에서 화상 환자가 생기자 내려와 치료에 앞장섰다. 허 소방사는 “화상 환자는 피부가 벗겨지기 때문에 외부 세균이 감염되기 쉽다”면서 “넓은 거즈로 상처 부위를 감싸고, 열을 몸에서 빼내는 ‘아이싱’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근무 11년차인 김남현(36) 소방위는 “화재 피해가 적었다고 하지만 재난 현장이다 보니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고 전했다. 김 소방위는 “불이 잦아든 뒤 살던 집을 확인하러 와서 잿더미가 된 모습을 보고 대성통곡하는 주민이 있었다”면서 “국민들은 소방관이 일을 잘했다고 좋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하지만, 불에 타버린 민가 수십 채를 보면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더 크다”고 말했다. 조 센터장은 “역대 최악으로 기록되는 2000년 강원 동해안 산불 당시에는 열흘 동안 집에 못 가고 현장에서 진화 작업을 했는데, 그때의 경험을 돌아보며 이번 화재에서는 초기부터 비교적 빨리 대응했다”면서 “불이 고성에서 강릉으로 넘어오기 전에 미리 주민들을 대피시켰고, 불이 덮친 이후에도 대원들이 민가를 일일이 두드리며 위험을 알렸기에 피해가 적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소방 서비스가 필요한 이들은 전부 절박하고 도움이 긴급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다면, 새벽이슬을 맞고 돌아와도 힘들지 않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레쓰비 솔트커피&연유커피 이벤트 참여하고 타이완·베트남 여행가자

    레쓰비 솔트커피&연유커피 이벤트 참여하고 타이완·베트남 여행가자

    국민 캔커피 ‘레쓰비(Let’s Be)’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주요 SNS를 통해 민호×피오 레쓰비 솔트커피&연유커피 SNS 인증샷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벤트 기간은 오는 11일까지로, 당첨자 발표는 22일 칸타타 페이스북을 통해 발표된다. 이벤트 기한이 11일까지로 얼마 남지 않아 빠른 참여는 필수다. 연예계 대표 절친으로 알려진 민호×피오와 함께하는 이번 이벤트는, 레쓰비 솔트커피&연유커피 인증샷을 개인 SNS에 업로드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참여가 가능하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참여할 경우, 당 떨어지는 순간 레쓰비 솔트커피 또는 연유커피와 함께하는 모습을 찍어 ‘#레쓰비아시아트립’ 필수 해시태그 후 개인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업로드하면 된다.이번 해외여행경품 이벤트의 당첨자에게는 △1등(2명) 타이완 여행권 1명, 베트남 여행권 1명(각 1인 2매), △2등(2명) 레쓰비 아시아트립 베트남 편 CF에서 민호, 피오가 착용한 상의(각 1명), △3등(20명) MINO ‘XX’ 앨범 사인 CD(10명), P.O ‘소년처럼’ 앨범 사인 CD(10명), △4등(50명) 레쓰비 솔트커피&연유커피를 제공할 예정이다. 한편, 캔커피 레쓰비의 신제품 ‘레쓰비 솔트커피’와 ‘레쓰비 연유커피’는 해외 현지에서 유명한 이색 커피를 국내에서도 즐길 수 있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레쓰비 연유커피는 기존 커피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진하고 달콤한 연유커피로 베트남산 원두의 진한 커피맛과 달콤한 연유의 조화로운 맛이 일품이며, 레쓰비 솔트커피는 타이완 방문 시 꼭 먹어 봐야 하는 대표 음료로, 달콤한 밀크커피에 소량 첨가된 소금이 어우러져 ‘단짠단짠’한 맛으로 중독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레쓰비 아시아트립은 베트남과 타이완 여행처럼 기분 좋은 달콤함을 선사하는 레쓰비 신제품으로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5G 상용화 앞둔 이통 3사, 광고전쟁은 ‘초’경쟁

    5G 상용화 앞둔 이통 3사, 광고전쟁은 ‘초’경쟁

    SKT, 세상 모두의 생활 바꾸는 ‘초시대’ KT, 무엇이든 가능 ‘초능력’ 젊은층 겨냥 LGU+ ‘일상을 바꿉니다’ 생활밀착형5G 상용화가 임박한 가운데 이동통신 3사의 5G 광고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2일 광고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이통사들이 본격적으로 5G 캠페인 광고를 시작한 가운데 이통3사의 3월 광고비(TV, 신문, 디지털 등)는 전월 대비 4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 따르면 2분기 통신업종의 광고비 지출이 가장 많을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각 사가 5G에 사활을 걸고 대국민 홍보전에 역량을 초집중하고 있는 것은 이통사들이 5G를 기점으로 통신사를 넘어 플랫폼 기반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과 KT는 지난 8일 각각 ‘초시대’와 ‘초능력’을 5G 캠페인 광고의 메인 카피로 내세운 TV 광고를 동시에 론칭했다. 극비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광고계에서 두 회사의 메인 카피에 공교롭게도 ‘초’(超)라는 단어가 겹치면서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통사들이 ‘뛰어넘다’라는 뜻의 ‘초‘라는 단어를 쓰게 된 것은 5G의 핵심 속성에 해당하는 초고속, 초저지연, 초연결에 공통적으로 포함된 ‘초’를 화두로 삼았기 때문이다. 광고를 통해 전달하려는 개념과 마케팅 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다. SKT는 5G를 ‘초시대’로 규정하고 통신 네트워크의 진화나 산업의 혁명을 뛰어넘어 세상 모두의 생활을 바꾼다는 의미로 ‘초시대, 생활이 되다’라는 광고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CF도 소년을 모델로 현재보다 미래 생활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KT는 5G 네트워크와 서비스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원하는 무엇이든 가능해진다는 뜻으로 ‘초능력’을 키워드로 삼았다. 제일기획이 제작한 이 CF는 ‘당신의 초능력 KT, 5G’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실제와 가상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5G를 통해 초능력 같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SKT가 다소 묵직한 시대적 화두를 던졌다면, KT는 5G 시대의 핵심 고객을 밀레니얼 세대로 보고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영상으로 젊은층을 겨냥했다는 것이 차별점이다. KT 관계자는 “세계 최초의 5G 기술을 선보인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5G 상용화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홍보 마케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LG유플러스는 ‘일상을 바꿉니다’란 슬로건을 내걸고 생활밀착형 광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청하, 차은우 등 인기 스타를 CF 모델로 캐스팅해 AR, VR 등 5G 관련 서비스를 홍보하거나 ‘태양의 서커스’ 등 대중적인 문화 콘텐츠로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월드피플+] 비 오나 눈 오나…6년간 매일 친구 업고 학교 다닌 소년

    [월드피플+] 비 오나 눈 오나…6년간 매일 친구 업고 학교 다닌 소년

    중국 쓰촨성 메이산시 칭선현의 한 초등학교.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쉬빈양(徐彬洋)이 동급생 장쩌(张泽)를 둘러업었다. 다른 학생들이 15초면 갈 회장실을 두 소년은 3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1학년 때 처음 만난 쉬빈양과 장쩌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다니는 단짝이다. 몸이 불편한 장쩌에게 쉬빈양은 살아있는 지팡이나 다름없다.장쩌는 4살 때 희귀 근육질환인 중증근무력증을 진단받았다. 중증근무력증은 일시적인 근력 약화와 피로를 특징으로 하는 대표적인 신경근육접합질환이다. 면역체계 문제로 근육이 수축되지 않고 약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눈과 눈꺼풀 근육에 이상이 생기기도 하며 씹고 삼키는 근육은 물론 호흡과 목, 팔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근육도 영향을 받는다. 장쩌는 이 질환으로 다리 근육 전체가 통제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고 혼자서는 걷지도 못했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학교도 다닐 수 없었는데 그때 쉬빈양이 나타났다.1학년 때 장쩌를 처음 만난 쉬빈양은 자발적으로 친구를 돕겠다고 나섰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6년간 매일같이 장쩌의 등하교를 도왔다. 쉬빈양은 교실을 옮길 때도 점심을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장쩌를 부축하거나 둘러업고 다녔다. 덕분에 장쩌는 초등학교 졸업반까지 무사히 진급할 수 있었다. 쉬빈양은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난 몸무게가 40㎏이 넘는다. 장쩌는 25㎏밖에 안 나가서 업는 게 힘들지 않다”고 밝혔다. 장쩌는 “쉬빈양은 가장 친한 친구다. 매일 쉬빈양과 함께 공부하고 함께 논다. 매일 나를 돌봐주는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두 소년을 가르치는 한 교사는 “처음 3년은 다른 친구도 함께 장쩌를 도왔다. 그러나 장쩌를 돕느라 놀 시간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돕기를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쉬빈양은 단 한 번의 불평도 없이 6년간 장쩌를 업고 다녔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쉬빈양의 선행은 쉬빈양의 어머니조차 한동안 알지 못했다. 쉬빈양의 모친은 조용한 성격의 아들이 가족들에게 장쩌를 돕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며, 우연히 다른 학생들에게 들어 알게 되었다고 전했다. 쉬빈양은 쓰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며 “앞으로도 계속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수줍게 웃어 보였다. 중국 현지언론은 두 소년의 아름다운 우정을 연이어 보도하며 쉬빈양의 조용한 선행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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