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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포로(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36)

    ◎미­북한,송환방법 싸고 2년간 첨예 대립/이 대통령,반핵포로 2만여명 전격 석방 1951년 7월 8일 개성회담을 시작으로 2년간 지속된 휴전협상에서 가장 큰 쟁점은 포로문제였다.한국전쟁에서 독특한 양상을 표출한 포로문제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까지 비화됐다.그래서 휴전협상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이 포로문제는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줄곧 난항을 거듭했다. 북한은 포로문제를 불리해진 전황정비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또 전쟁 조기 종료를 바란 미국 주축의 유엔은 휴전회담에서 북한측에 끌려다니는 인상을 지우지 못했다.전세가 아군에 유리하게 전개되면서 한국전쟁을 통일의 기회로 여겼던 이승만 대통령은 처음부터 휴전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특히 포로문제에 있어서 유엔 협상대표들이 북한측의 요구를 수용하자 마침내 독단적인 결정을 내려 반공포로들을 석방해 버렸다. 그렇다면 한국전에서 포로문제가 복잡하게 꼬였던 이유는 무엇일까.여기에 대한 대답은 유엔군에 생포된 포로의 성분이다.생포된 공산측 포로중에는 북한에 의해 강제 징집된 수많은 남한출신과 함께 장개석의 국부군 출신 중공군이 끼어 있었다.이에따라 휴전회담에서 포로송환문제가 거론되자 이들이 북한과 중공으로 돌아가길 거부하면서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북·중 송환거부자 급증 미국은 휴전회담이 개막되기 전인 7월에 접어들어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당시 미 육군 심리전감 매클루어 준장은 콜린스 참모총장에게 정전이 될 경우 국부군 출신 포로들을 대만으로 보낼 것을 건의해놓고 있는 상태였다.워싱턴에서는 51년 가을내내 포로문제에 대한 논의가 계속됐다.그러나 자원송환과 강제송환,1대1교환과 전체대 전체 교환,인도주의적인 입장과 제네바협정 준수가 엇갈려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해 10월 판문점에서 협상이 재개됐으나 협상 벽두부터 북한측은 휴전협정 조인즉시 양측의 모든 포로들을 석방하자는 의견을 강력하게 들고 나왔다.그러면서도 북한측이 제시한 포로 숫자도 터무니 없게 축소돼 의혹을 불러일으켰다.유엔군은 공산군 포로 13만2천4백74명(중공군 2만7백명)의 명단을 제출하면서 민간인 수용자로 별도 격리 수용한 3만7천명이 더 있다고 미리 밝혀두었다. 반면 공산측은 한국군 7천1백42명과 유엔군 4천4백17명을 합쳐 고작 1만1천5백59명의 포로숫자를 제시했다.북한측이 한달전 평양방송을 통해 주장한 포로수가 6만5천명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너무나 큰 차이가 났다.유엔군측은 그 때까지 실종인원을 한국군 8만8천명,미군 1만1천5백명 이상으로 파악해 놓고 있었다. 휴전회담은 이렇다할 진전을 보지 못한채 51년을 마감했다.그러나 해가 바뀌면서 양상이 달라져 양측이 좀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로 나왔다.19 52년 1월2일 회담에서 유엔군측 대표 R E 리비 미 해군 소장은 자원송환 원칙을 강력히 담은 포로교환을 제안하고 나섰다.공산군측은 이를 즉각 거절했다.이무렵 워싱턴에서는 자원송환의 원칙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종전의 입장을 바꾸었다.반드시 고수해야 한다는 강경론으로 선회했던 것이다. 송환원칙으로 인해 협상이 교착되자 쌍방은 세부적인 사항의 타결을 시도해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이는 듯 했다.3월5일 공산측은 전년도 12월18일 교환된 명단에 입각한 송환을 제의하면서 꼬리를 달았다.전선에서 석방했다는 유엔군측 포로 5만여명의 행방을 유엔군이 묻지 않는다면 유엔군이 억류하고 있는 3만7천명은 불문에 붙이겠다는 것이었다.유엔군측은 이미 명단을 제출한 공산군 포로 13만2천여명에 대한 조사결과 겨우 7만명이 송환을 원한다는 사실을 통고했다. 공산측은 이를 유엔군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맞서 회담은 또 교착상태에 빠졌다.4월28일 유엔군측은 일괄타결안을 제시하고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과 미 트루먼 대통령은 각각 성명을 내놓았다.유엔군측이 제시한 일괄 타결안에는 공산측이 통고한 송환가능 유엔군 포로 1만2천여명을 인정하고 송환을 희망하는 유엔군 억류 공산군 포로 3만여명과 교환한다는 조건이 포함됐다.당시의 분위기를 볼때 상당히 완화된 이 조건은 공산군측에 실리를 넘겨준 것이었다. ○공산포로,소장 인질로 이같은 분위기속에서 5월7일 거제도 제76포로수용소장 F T 도드 준장이 공산포로들에 의해 피랍되면서 공산측의 입지는 더욱 강화되었다.도드 준장을 인질로 잡은 공산포로들은 포로수용소측에 ▲독가스 및 세균무기 사용,원자탄 실험중지 ▲불법 부당한 인민군과 중공지원군의 자원송환 즉각 중지 ▲수천명의 포로를 재무장시키려는 강제조사 중지▲포로대표단 구성 승인등을 요구했다.도드준장 후임인 새 포로수용소장 C F 콜슨 준장은 포로들의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였다.공산측은 콜슨 준장의 회신내용을 들어 유엔군측이 지금까지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를 학대하고 세균전까지 서슴지 않은 것으로 선전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유엔군측은 10월8일 마침내 최종안을 제출했으나 공산군측이 거부함으로써 협상은 끝이났다.이후 10월14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포로문제를 다시 다루어 휴전문제가 유엔으로 옮겨갔다.유엔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스위스,스웨덴등 4개국으로 포로송환위원회를 구성해 본국송환을 원하는 포로는 본국으로 송환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그리고 모든 포로가 선택의 권리를 갖고 90일의 시한을 넘기고도 결정하지 못한 비송환자들은 휴전회담에서 위임한 정치회담에 이양하자는 인도의 절충안이 채택됐다.그러나 공산군측은 기본적으로 자원송환을 지지하는 유엔결의안을 수락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런 와중에 1953년 1월 미국에서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행정부가 들어서고 3월에는 소련수상 스탈린의 죽음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판문점 연락장교회의를 통해 병상포로교환에 우선 합의했다.이에따라 4월26일 판문점에서 양측의 대표단 전원이 만났으나 회담은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미국정부는 5월25일 회담대표자회의를 통해 최종안을 전달했다. 이 최종안은 6월4일 회의에서 약간 수정됐지만 송환을 원하는 포로는 휴전조인후 2개월내에 송환완료하고 잔여포로에 대해서는 그후 90일간의 설득기간을 갖도록 한다는 내용을 일단 도출해냈다.또 30일이내에 송환거부 포로문제를 정치회담에서 처리하되 합의를 보지못한 해당포로는 민간인 신분으로 변경키로 합의했다.민간인이 된 포로들은 뒷날 중립국 송환위원회에 의해 한국도 북한도 아닌 제3국으로향하는 운명이 결정되었다. ○첫 석방계획은 실패 그로부터 14일후인 6월18일 자정 남한에 수용됐던 반공포로 2만6천4백24명이 국군의 도움으로 수용소를 탈출했다.이른바 반공포로 석방으로 불리는 이 한국판 엑서도스는 이승만 대통령이 결정했다.유엔군과 공산군간에 휴전회담이 본격 진행되자 휴전반대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던 이승만 대통령은 10일 헌병총사령관 원용덕 중장등 군 수뇌들을 불러들였다.이 자리에서 반공포로 석방문제를 검토하고 다음날 정오 이를 시행토록 명령했다.그러나 한국군 병력배치등 준비미흡으로 첫 계획은 실패하고 1주일뒤인 18일 북한행을 거부한 포로들이 미군 경비 수용소를 빠져나와 자유의 품에 안겼던 것이다. ◎미 힉컬슨 작성 문서/미,공산군포로 난동에 시종 곤욕/북·중서 강력 항의… 정전협상 불리/도드 수용소장 피랍사건 상세 기록 미군은 한국전쟁 기간내내 공산군 포로문제로 시달렸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MARA)에서 입수한 문서더미 가운데 국제정치관계철 북한 전쟁포로 관련 시리즈는 이같은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문서시리즈는 미 국무성 차관보 힉컬슨이 1952년 2월18일 「한국의 전쟁포로」라는 제목으로 작성해 극동과 간부 엘리손과 존슨에게 발송한 문서로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이 문서시리즈에 따르면 미군측은 공산포로로 인해 지휘체계 상부의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등 심한 타격을 받았다. 이 문서가 작성된 당일만 해도 한국인 포로를 조사하기 위해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제62동에 진입한 미군병력과 포로들의 충돌로 미군1명과 포로 77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했다.이밖에 미군 38명,포로 1백40명이 부상당하는 유혈사태를 빚었다.공산군측은 이사건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유엔군측은 「민간인이 관련된 내부사건」으로 일축했지만 결국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유엔군과 미군측은 협상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고 분석했다. 리지웨이 장군이 이 시리즈 4월29일자 전문에서 수용소 상황에 대해 기술한 내용도 이같은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장군은 전문을 통해 『이들 수용소는 잘 조직돼 수용자들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힐 정도의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는 다스릴 수가 없다.하지만 위험한 폭동이나 유혈사태등의 모험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기술하는 등 포로문제로 고심한 흔적을 나타내고 있다. 이 문서 시리즈는 또 52년 5월7일 도드 거제도 제76포로 수용소장의 납치사건도 기록하고 있다.콜슨장군은 도드의 석방을 위해 포로들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이 사건으로 5월20일 도드와 콜슨장군이 모두 대령으로 강등하는 과정도 잘 드러내 보였다.
  • 27일 남북 3차회담/나 부총리 “쌀 추가지원 고려안해”/북경서

    남북한 당국은 오는 27일 북경에서 제3차 남북당국자회담을 열고 경협 및 북한에 피랍된 우성호선원과 안승운 목사 송환문제 등 현안을 논의 한다. 나웅배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5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3차회담이 열리더라도 1차 지원분인 쌀 15만t 이외 추가지원은 현재로선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나부총리는 또 대북 수재물자 지원문제와 관련,『1차 합의대로 15만t을 지원하는 것 그 자체가 수재 지원』이라면서 『의약품 등 추가 수재물자 지원은 유엔 산하 국제기구들의 피해조사가 끝난 뒤 3차 당국자회담에서 북한이 공식 요청해 오면 그 때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복수사증 협정 합의/한·중 영사국장회의

    한국과 중국 양국은 양국간 사증발급 수속절차를 간소화함으로써 인적 교류를 촉진키 위해 조속한 시일내에 복수사증협정을 체결할 것에 합의했다고 24일 외무부가 밝혔다. 정부는 23일부터 북경에서 개최된 한·중 영사국장회의에서 양국간 경제·인적 교류확대에 발맞추기 위해서 심양총영사관 설치를 요청,중국측으로부터 『한국의 입장에 유의하여 적극 검토하겠다』는 언질을 받았다. 양측은 또 상대국내에 자국민의 합법적 권리를 보호하고 영사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 양국간 영사협정이 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중국측은 회의에서 안승운목사 피랍사건과 관련,사건의 중요성과 민감성을 감안해 진상규명에 최대한 노력중임을 우리측에 설명하는 한편 조사결과가 나오는대로 우리측에 즉시 결과를 통보해주기로 했다고 외무부 관계자가 전했다.
  • “쌀­남북관계 개선 연계”/정부,10일 북경 3차회담때 북에 통보

    ◎평화체제 전환 문제도 타진/반응따라 「8·15제의」내용 수정 정부는 오는 10일 북경에서 재개될 쌀관련 제3차 남북당국자회담에서 대북 쌀 추가지원이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북한의 호응과 사실상 연계되어 있다는 입장을 북측에 전달할 것으로 1일 알려졌다. 정부는 특히 광복 50주년인 올 8·15를 맞아 준비중인 획기적 대북 제안 내용도 북경회담에서의 북한 반응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절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같은 방침에 따라 정전협정을 남북당사자 해결원칙에 의한 새로운 평화체제로의 전환문제 등에 대해 북한의 반응을 일차 타진할 예정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1일 이와 관련,『우리측의 대북 쌀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피랍된 우성호 선원의 송환을 지연시키며 안승운목사 납치사건까지 자행하는 등 기대에 반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북한에 제의할 내용에 상당한 변화를 기할 수 밖에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우리측이 준비하고 있는 평화체제 구축방안은 남북 당사자 해결원칙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미·북간 평화협정 체결 방식과는 전혀 궤를 달리한다』면서 『북한이 남북 당사자간 해결원칙만 수용한다면 우리측은 구체적인 평화체제 전환방식에는 융통성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번 북경회담에서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는 새로운 평화체제 구축문제에 대해 북측이 긍정적 반응을 보일 경우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키 위해 남북기본합의서 틀내에 있는 화해공동위나 군사공동위 등의 가동을 북측에 제의하는 방안을 검토중임을 시사했다.
  • 8·15대북제의 무슨내용 담길까

    ◎정상회담·평화구축·이산가족·경협에 초점/10일 북경 쌀회담때 북태도 따라 조정될듯 광복 50주년이 되는 오는 8·15에 즈음해 정부는 남북관계의 교착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전향적인 대북 카드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분단 50주년과 한국전 발발 45주년이라는 연대기적 무게가 간단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김영삼대통령은 방미중인 지난 28일 미 CNN방송과의 회견에서 이번 광복절을 기해 『획기적이고 중대한 대북 제의를 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북측의 심상찮은 자세로 인해 준비하고 있던 대북 제의내용을 재검토하고 있는 것이 현재 정부의 대체적 분위기인 것 같다.북한은 우리측의 대북 쌀지원에도 불구하고 피랍된 우성호 선원들의 송환을 지연시키고 안승운목사를 끌고가는 등 경직된 자세를 보이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이번 대북 제의는 크게 보아 ▲정상회담 재추진 ▲평화체제 구축 ▲이산가족 교류 ▲남북 당국간 경협 활성화 등으로 초점이 모아질 것이라는게 일반적 관측이다.물론 이들 제의 메뉴의 우선순위는 오는 10일북경에서 재개될 쌀관련 남북당국자회담에서 보여줄 북한의 태도에 따라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로선 현 정전협정의 항구적 평화체제 전환문제에 대한 원칙 천명에 최우선 순위가 주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지난해부터 부쩍 강도를 높이고 있는 북한의 정전협정 무실화 공세에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전협정을 북­미간의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북한은 최근 제3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국제여론 조성에 부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측이 천명할 새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원칙천명은 일종의 공세적 방어의 성격도 지닌다고 볼 수 있다.내용면에서 북한이 지금까지 외면해온 남북당사자 해결원칙을 핵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31일 정부의 한 당국자는 『최근 언론이 경쟁적으로 우리측이 「2+2」방식(남북이 평화협정 체결후 미·중이 참여)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 보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2+2」방식 또는 「2+4」방식(남북과 미·중·일·러가 참여)이든,아니면 「2+1」방식(남북평화협정 체결후 미국이 사후보장)이든 중요한 것은 남북당사자 원칙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측이 새평화체제 구축방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회담 제의를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검증하겠다는 의사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 중국억류 85우성호 잔류선원 2명귀환

    【인천=김학준 기자】 서해상에서 조업하다 중국에 억류됐던 인천선적 1백t급 저인망 어선 제85우성호(선장 김수원·30)의 선원 10명중 그동안 돌아오지 못했던 선원 2명이 이 배와 함께 29일 하오 6시10분쯤 인천항 인천해양경찰서 전용부두에 도착했다. 제85우성호는 지난 5월30일 귀환중 항로이탈로 북한에 피랍된 제86 우성호와 함께 같은달 27일 하오 중국 산동반도 동남쪽 해상에서 고기잡이하다 영해를 침범했다는 이유로 중국 어업지도선에 의해 나포됐으며 이 배의 선사인 우성수산(대표 한재영·54)이 최근 중국이 영해 침범에 대한 벌금으로 요구해 온 2천9백여만원을 지급함에 따라 이날 돌아오게 됐다.
  • 안씨피랍 조사결과 조속통보 거듭요청/정부,중외교부에

    【북경=이석우 특파원】 정부는 지난 9일 연길시에서 활동중 납북된 것으로 보이는 순복음교회 소속 안승운(50)목사 사건과 관련,26일에 이어 28일 주중한국대사관의 조상훈 공사를 중국외교부에 보내 이 사건에 대한 중국 관계당국의 조사결과를 조속히 통보해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
  • 남북경협 논의 진전 있었다/이수석대표 밝혀/북경 2차회담 끝나

    ◎북,우성호선원 조속송환 약속/쌀 상업·군수전용 방지도 확약/3차회담 새달10일 북경 개최 【북경=이석우 특파원】 북한은 북경에서 열린 제2차 쌀회담에서 납북된 우성86호를 조속히 송환하고 제공된 쌀에 대해 민생용이 아닌 일반상업·군수용으로의 전환방지를 위해 보완조치를 취해나가기로 약속했다고 우리측 수석대표인 이석채 재경원차관이 19일 우리측 발표문을 통해 발표했다. 이차관은 또 남북한이 제3차 쌀회담을 오는 8월 10일 잠정적으로 북경에서 열기로 했으며 이 회의에서는 쌀 추가지원문제와 남북한간 경협문제를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차관은 이날 상오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지난 15일부터 북경에서 열린 남북한간 2차 쌀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내외신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대남비방중지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측은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으며,그리고 앞으로 변화할 것』이라면서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차관은 회견에서 우리측이 제기한 제공된 쌀의 투명성 보장문제에 대해 북측이 『받은 쌀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며 민생용으로 쓴다는 사실을 믿어도 좋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북측은 지난달 서해상에서 북한에 피랍된 우성호 송환문제와 관련,『인도적 견지에서 관계당국의 조사가 끝나는대로 가능한 한 빨리 송환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우리측에 약속했다고 이차관은 전했다. 남북경협 확대와 관련,우리측은 북한에 대해 ▲경공업부문 투자 확대▲농업생산성 제고를 위한 한국산 비료및 농약 제공▲무연탄 제공문제등을 깊이있게 논의,부분적인 진전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북측 수석대표인 전금철 대외경제협력위 고문도 『쌀 추가제공문제가 합의되지 못한 것은 비생산적이지만 많은 얘기를 나누고 이해의 폭을 넓힌 것은 유익했으며 북측은 이미 시작한 일을 중단하지 않고 앞으로도 남측과 손을 잡고 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차관은 전했다.
  • 오늘 남북 2차 쌀회담 북경서/이석채 단장 어제 출국

    정부는 15일부터 북경에서 열리는 2차 남북당국간 회담을 위해 이석채재경원차관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 7명을 14일 북경현지로 파견했다. 우리측 회담대표단은 이에 따라 15일부터 전금철 대외경제협력추진위고문을 수석대표로 한 북측대표단과 대북 쌀지원문제를 비롯,남북간 경제협력문제를 중점 논의한다. 정부는 이와함께 이번 회담에서 ▲경제공동위 개최문제 ▲피랍된 우성호선원의 송환을 포함해 4백40여명에 이르는 북한억류자의 조기송환 ▲이산가족문제 해결 ▲8·15를 계기로 남북문화예술단 교환방문및 상호 친선체육경기 개최사업등을 거론,북한측의 호응여부를 타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 남북 2차쌀회담/우성호 송환 역점

    정부는 15일 북경에서 열릴 남북 2차 쌀회담에서 쌀 추가지원문제를 논의하는 한편 막후협상을 통해 북한측에 피랍된 우성호 선원송환등 남북간 현안문제 해결에 보다 성의있는 태도를 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남북당국간 대화를 향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수 있도록 북측대표단에 경제공동위 가동등 남북회담에 적극 호응할 것을 촉구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우리측 회담대표인 이석채재경원차관등 대표단 일행을 오는 14일 북경 현지로 파견한다.
  • 중 피랍 선원8명 27일 귀국/제85 우성호

    지난달 27일 불법조업 혐의로 중국에 나포됐던 제85 우성호의 김수원 선장을 포함한 선원 8명이 23일 풀려나 오는 27일 귀국할 예정이라고 외무부가 24일 밝혔다. 중국은 85우성호에 중국 인민폐 32만원(한화 약3천2백만원)의 벌금을 부과했으며,어로장 김창근씨와 기관장 김정길씨등 2명은 선주가 벌금을 납부한 뒤 선박과 함께 귀환할 예정이다.
  • 일 여객기 납치범은 휴직은행원/경찰,50대 체포…옴교 관련여부추궁

    ◎기습작전 도중 승무원 등 7명 부상 【도쿄=강석진 특파원】 승객과 승무원 3백64명을 인질로 삼은 전일본항공(ANA) 857편 보잉 747 납치사건은 22일 새벽 범인이 경찰의 기습작전에 검거됨으로써 사건발생 15시간 30분만에 막을 내렸다. 일본열도를 한동안 공포에 떨게했던 여객기 납치사건은 드라이버 1개를 가진 단독범의 어처구니 없는 범행으로 밝혀졌으며 범인은 도쿄에 살고 있는 구쓰미 후미오(구진견문웅·53)로 도쿄의 동양신탁은행에 재직중이나 자율신경 실조증등 지병으로 현재 휴직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경찰은 50여명의 진압요원을 투입,이날 새벽3시42분 하코다테(함관)공항 유도로에 억류돼 있던 피랍기의 출입문 3곳을 열고 기내로 진입,5분만에 범인을 체포하고 승객과 승무원 전원을 안전하게 구조했다. 경찰의 기내 진입과정에서 스튜어디스와 승객 등 7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을뿐 전원 무사했다. 범인은 경찰에서 『미안하다』면서 범행 일체에 관해서는 시인했으나 범행동기 등에 대해서는 진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경찰은 범인이 옴교 신자인 듯한 인상을 풍겼던 점을 중시해 도쿄 지하철 독가스테러사건을 일으킨 이 종교단체와 관련여부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일 피랍여객기 구출 이모저모/드라이버 든 범인 한명에 16시간 떨어/승객 휴대폰으로 정보보내… 폭탄 없어 ○…일본경찰 특공대가 기습작전을 통해 여객기 납치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테러용 첨단장비나 무기라기보다는 일반화되어 있는 휴대폰이었다고. 기내의 사정을 알 수없어 범인체포 작전을 감행하기 어려웠던 경찰특공대는 21일 하오 5시 조금넘어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피랍여객기 화장실에서 휴대폰으로 하는 전화라고 말한 한 승객은 『범인은 청바지와 선글라스를 쓴 남자다』라고 말했다.또다른 전화는 『범인은 2층에서 전혀 내려오지 않는다』고 전해오는 등 기내상황을 알리는 전화가 경찰에 몇차례 걸려왔다.경찰은 이러한 전화를 통해 범인이 한명이라고 판단하고 기습적전을 감행 범인을 체포. ○…드라이버 하나와 비닐 주머니 두개를 든 단지 한명의 납치범에 의해 3백64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16시간이나 인질로 잡혀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풀려난 승객들은 안도하면서도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전문가들은 범인이 드러이버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을 옴쭉달싹하지 못하게 했던 원인으로 ▲일본 국민들이 3개월 동안 옴진리교의 진상을 알고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었으며 ▲범인이 옴교의 수법을 상당부분 사용했고 ▲기내 보안관리에 문제점이 있기 때문으로 분석. ○…범인은 얼음송곳과 비슷하게 생긴 길이 20㎝의 드라이버와 은색 비닐주머니를 소지한채 여객기에 탑승했으나 경찰수색 결과 플라스틱 폭탄등 위험물은 기내에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기내에 돌입했을 때 대부분의 승객은 접착 테이프와 끈 등으로 눈과 입 등이 봉해진채 1층 뒷부분 바닥에 앉혀져 있었으며 스튜어디스 12명중 11명이 결박되어 있었다.
  • 쌀 2천t 24일 첫 북송/나 부총리/북경회담 남북합의 발표

    ◎제공약속 15만t 전량 무상/7월중순 2차협상 갖기로 정부는 21일 우리측이 북한측에 1차로 쌀 15만t을 전량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북경 차관급 쌀회담의 최종 합의내용을 발표했다. 나웅배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이날 하오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은 합의내용을 공식발표하고 대북 추가 쌀제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2차 당국자간 회담을 오는 7월 중순에 개최키로 했다고 밝혔다. 남북 양측은 이날 하오 합의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대북 쌀지원 1차분을 해상을 통해 선박으로 북한의 청진·나진항등에 인도하는등 7개항의 합의내용이 담긴 합의문에 서명한뒤 북경 차관급 쌀회담을 마무리했다. 정부는 이날 우리측 이석채 재경원차관과 북한 정무원의 대외경제위원회의 위임을 받은 전금철 대외경제협력추진위 고문이 공동합의문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남북은 북한측에 보내는 1차분의 쌀은 40㎏단위로 포장하되 원산지등 일체의 표기를 하지 않기로 하고 이 합의내용을 실행하는 쌍방주체로 우리측은 대한무역진흥공사,북측은 조선삼천리총회사를 지정했다. 나부총리는 『2차 쌀회담에서는 쌀문제 뿐만 아니라 그밖의 여러가지 문제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면서 『회담장소는 우리측으로선 가능한한 한반도내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나 북한측과의 접촉을 통해 추후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다른 고위 당국자는 이와 관련,『2차 회담에서는 남북관계 전반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이번 북경회담에서 양측이 남북대화 채널 복구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모종의 이면 합의를 이뤘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나부총리는 또 이번 회담 타결이 북한에 피랍된 우성호 선원들의 귀환에 긍정적 작용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오는 24일 동해항에서 남성해운 소속 씨아팩스호가 2천t의 쌀을 싣고 북한의 나진항으로 첫 출발할 예정이다. 한국 국적선이 남북간 항로를 공식 운항하는 것은 남북분단 이후 처음이다. 씨아팩스호는 22일부터 쌀을 선적,24일 동해항을 출발해 최단거리로 운항,25일 밤 또는 26일 새벽 나진항에 입항할 예정이다. 이어 3∼5천t급 국적선들이 잇따라 도정을 끝낸 쌀을 싣고 동해·포항·울산·부산·진해·마산·광양·목포·군산·인천등 10개항을 출발,북한측이 지정한 남포·원산·청진·나진항등에 입항할 예정이다. 한편 정부는 남북 쌀회담이 타결됨에 따라 이날 송영대 통일원차관 주재로 16개 유관부처 실무자들이 참석하는 「대북 곡물지원 실무대책회의」를 열고대북 쌀제공은 남북협력기금과 정부 예비비에서 재원을 충당키로 의견을 모으고 통일원에 쌀지원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한 종합상황반을 설치키로 했다. 정부는 또 금명간 나부총리 주재로 통일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부처별 추진상황을 점검하는 한편 이번 대북 쌀지원이 남북대화 재개 및 경협 활성화등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으로 기여토록 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 쌀 5만t 주내 북송 개시/남북차관급 북경회담

    ◎북 요구 15만t중 1차분/무상지원­해상수송 유력/북 “우성호 선원·시신 무조건 인도”/합의문 오늘 서울·평양 등 동시 발표될듯 정부는 17일에 이어 18일 열린 북경 남북당국자간 쌀회담에서 북한에 제공되는 쌀의 규모와 공여절차 등에 대한 협상이 대체적으로 매듭됨에 따라 이번 주중 북한에 보낼 쌀 1차분의 선적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정부는 북한측이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15만t의 쌀을 가급적 무상으로 전량지원하되 1차적으로 5만t정도를 보내고 나머지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보아가면서 단계적으로 전달한다는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그러나 북한이 북경회담에서 정부 대 정부의 무상공여에 대해서는 「자존심」을 이유로 거부반응을 보임에 따라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와 북한의 삼천리공사간 민간차원의 구상무역형식으로 북한에 쌀을 보내는 방안을 놓고 북한측과 막바지 절충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북경 남북쌀회담이 최종타결되면 나웅배부총리 주재로 통일관계장관회의를 즉각 소집해 유관부처간 협조방안을 비롯한 범정부차원의 후속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편 대북 곡물지원경로로 정부는 「주해로종육로」방식을 고려하고 있으나 북측의 희망에 따라 목포·인천∼남포,부산·포항∼언산·청진항을 이용한 해로수송이 유력시되고 있다. 【북경=이석우 특파원】 남북한 대표단은 18일 대북한 쌀제공과 관련한 이틀째 회담을 갖고 제공규모와 방법·시기절차등에 대해 거의 합의,19일중으로 합의문에 서명한후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날 북경의 모처에서 이석채 재정경제원차관고 전금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수석대표로 열린 남북한 차관급 회담에서 양측은 북한에 대한 15만t규모의 대여와 1차분 5만t의 무상공급원칙에 대한 의견접근을 본후 구체적적인 전달방법등에 대해서도 대체적인 합의를 보았다고 북경의 한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양측은 인천을 통해 남포항으로 인도하는 방식과 판문점을 통해 육지로 수송하는 복수방안을 놓고 논의했으며.해상운송의 경우 제3국선박으로 인도하는 방식으로 논의했으나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양측은 지난달 30일 중국에서 귀환도중 북한에 피랍된 제86우성호 선원과 숨진 선원의 사체등을 한국측에 무조건 인도한다는 원칙에 잠정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담에서 북한측은 대남경협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부 대기업등의 대북투자등에 대해 한국정부가 제한하지 말하야 한다며 강한 불만을 제기했으며 이에 대해 우리측은 기업인의 방북인사에 대한 신변보장안전등 정부차원의 문제점을 더욱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고 북경의 친북한 실업인들이 전했다.
  • 우성호 선원 송환 북적에 협조 촉구/한적 강 총재 성명

    강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15일 피랍된 우성호와 선원 8명의 송환을 위해 북한적십자회가 적극 협조해 줄 것을 재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강 총재는 이날 상오 10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 회의실에서 남북 적십자사 연락관 접촉을 갖자는 우리측 제안에 북측이 불응함에 따라 발표한 성명에서 『우성호는 민간어선으로서 방향착오로 항로를 잘못 들어선 것이므로 북한측은 인도적 견지에서 지체없이 선원들과 선체를 송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나포과정에서 총격으로 인한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그 신원을 신속히 알려주는 것이 도리』라며 선원 신상자료와 가족호소문을 공개했다. 대한적십자사는 북한적십자회가 우리측의 이같은 송환 협조 요구에 계속 응하지 않을 경우 국제적십자사에 인도적 차원의 중재를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우성86호 중에 나포안돼”/해군·수산청

    ◎“「85호」 억류되자 달아나다 피랍” 북한 경비정에 피랍된 제86우성호는 중국 어로통제선에 나포돼 중국 산동반도 영성항에서 억류됐던 것이 아니라 중국측의 나포를 피해 달아났다가 피랍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해군 및 수산청 관계자들은 이날 『 당초 모선인 제85우성호만 중국 어로통제선에 나포됐으며 자선인 제86우성호는 중국측의 나포를 피해 달아났었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들 관계자는 『제85호가 중국측에 나포된 뒤 산동반도 근해에 머물고 있던 86호와 무선교신을 통해 「중국측이 영해 침범죄로 미화 4만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풀어주겠다고 했으니 인천으로 돌아가서 이 사실을 선주에게 전하라」는 연락을 받고 제86호는 중국측의 나포를 피해 산동반도 근해를 출발하면서 수산청 어업무선국과 무선을 통해 85호의 나포사실을 알리면서 인천항으로 귀항하겠다고 교신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성호 항로유도 잘못없다”/해군·해경 상황전모 설명/시간마다 교신통해 방향 확인/나침반고장·실수로 이탈 추정 제86 우성호가 「해군의 착오에 따른 항로유도 잘못」으로 북한해역을 침범,피납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우성호의 항로 유도경로가 과연 어떠했는지에 대해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해군은 2일 이와 관련,우성호와 무선통신을 유지했던 천안함 함장 등 군관계자는 물론,해경관계자들까지 참석시킨 가운데 상황전모를 밝혔다. 해군과 해경은 우성호가 해군항로 유도 잘못이 아니라 나침반고장이나 실수로 항로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이들에 따르면 29일 하오3시5분쯤 중국에 억류된 우성호의 모선이 보낸 『86우성호가 인천으로 출발한다』는 내용의 무선통신을 해경이 접수,상황이 시작됐다. 해경은 즉시 해군2함대사령부에 우성호의 유도를 부탁했고 사령부는 인근 해역을 초계중인 천안함에 임무를 주었다. 천안함은 우성호와의 거리가 1백50㎞로 레이더포착이 불가능하자 우성호와 매시간마다 교신을 갖고 방향을 확인했다. 우성호는 교신에서 「1백도,8∼9노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해 정상항로임이 확인됐다. 천안함은 다음날 새벽2시28분쯤 방향 1백20도에 9노트로 항해중인 선박을 레이더로 처음 포착,해경측에 확인을 부탁한뒤 우성호를 무선으로 불러 「확인을 위해 침로를 75도로 일시 변경하라」고 지시했다. 천안함은 또 인근 해역의 235해군함정에 해당선박을 식별할 것을 요청,새벽3시20분쯤 이 선박이 화물선 성광호임을 확인했다. 천안함은 이에 따라 우성호에 방향을 1백도로 다시 수정할 것을 지시했다.이어 해경은 새벽5시쯤 해군측이 확인을 요청한 해역을 지나는 선박이 챌린저호인 것을 육안식별했다. 이때부터 우성호 위치탐색에 본격적으로 나선 해경은 방향탐지장비를 동원,우성호가 산동반도 북측 해양도쪽으로 진행했음을 알아냈다. 해군은 방탐장비가 없어 해경의 위치탐색결과를 기다렸다.이어 상오 9시14분 해경은 우성호가 군사분계선 윗쪽 기린도 북방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고 해군레이더기지도 상오10시30분 백령도 북방에 우성호가 있음을 찾아냈다.
  • 항로·시간 비슷한 딴배와 착각 교신/해군,우성호 유도실수 안팎

    ◎우성호 “항해불가”에 해군 “정상” 타전/선체작고 안개짙어 레이다 안잡혀 해군이 피랍되기 이전의 86우성호로 알고 항로를 유도한 선박은 엉뚱하게 다른 선박이었음이 밝혀졌다.해군이 항로를 잘못 유도해 피랍을 초래했다는 얘기이다. 해경은 우성호가 지난달 29일 하오2시 중국 산동반도 영성항을 출발했다는 사실을 하오3시10분쯤 인천 어업무선국으로부터 통보받고 3시45분쯤 서해에서 초계중이던 해군함정에 알리고 항로유도를 요청했다. 해군은 무선으로 항로를 유도한뒤 다음 날인 30일 상오5시쯤 동경 1백24도 인근에서 해경 경비정에 우성호 유도를 넘겼다. 그러나 해경의 경비정이 해군이 인계한 선박을 찾아내 확인한 결과 우성호가 아니고 우성호보다 한시간 늦게 영성항 인근의 항구를 출발,인천으로 향한 한국국적의 상선 챌린저호로 밝혀졌다. 해군은 항로와 시간대가 우성호와 비슷한 챌린저호를 우성호로 착각,교신은 우성호와 하면서 상황판단은 레이다에 잡힌 챌린저호를 기준으로 항로를 유도한 셈이다. 이같은 사실은 해군함정과 우성호와외 교신내용에서도 확인되고 있다.30일 상오2시30분쯤 우성호는 『현재 안개가 많이 끼고 앞을 분간할 수 없어 항해가 불가능하다』고 했으나 해군은 『우성호 앞에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으니 그대로 항해하면 된다』고 엉뚱하게 알려줬다. 또 군당국은 우성호의 선체가 작아 레이다망에 걸리지 않았다고 밝혔고 자체 항법 치를 갖춘 챌린저호는 항로유도를 해군에 요청하지도 않았다.이에 대해 이 곳의 군부대는 「다 아는 것 아니냐」며 해명을 거부했다. 이처럼 해경과 해군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우성호는 엉뚱한 항로로 항해를 계속,위치가 확인된 30일 상오9시30분에는 이미 북한이 주장하는 그들의 영해에 들어가 있었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우성호는 영성항을 출발할 때부터 정상방향인 1백35∼1백40도보다 80∼90도나 방향을 위쪽으로 잡아 북으로 항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출발당시 안개가 무척 짙었으며 나침반외에는 항해장비가 전혀 없는 우성호가 「정상 항해중」이라는 해군측의 교신만 믿고 계속 북쪽으로 항해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나침반의 편차가 80∼90도나 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어서 처음에는 정상항로로 항진하다 잘못된 항로지시 등으로 북쪽으로 기수를 급선회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성호가 출발직후인 29일 하오3시10분쯤 『산동반도 동방 10마일 지점에서 남동쪽 1백40도 방향으로 항해중』이라는 교신을 인천 어업무선국에 알려온 사실도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 북은 납북어선 즉각 송환하라(사설)

    북한경비정이 우리의 비무장어선에 총격을 가해 선원을 살상하고 납북한 것은 반민족적이며 비인도적인 행위다.납북된 제86우성호가 나침반 고장으로 항로를 잘못잡아 북방한계선을 넘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 배가 무장을 갖추지 않은 꽃게잡이보조어선에 불과하고 납북지점이 북한영토에서 12해리이상 떨어진 공해상이었다는 점,그리고 이런 정황을 쉽게 분별할 수 있는 대낮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사상자를 낸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만행이 아닐 수 없다.북한당국은 이같은 불법적인 과잉대응을 솔직히 시인·사과하고 납북어부들을 지체없이 송환해주기 바란다. 북한에 의한 우리어선 납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56년 제3선진호가 동해에서 피랍된 것을 시발로 16차례에 이른다.이중 87년1월15일 서해 백령도근처 공해상에서 납치된 제27동진호 선원 12명을 포함,25명의 어부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그뿐 아니다.휴전이후 강제납북돼 지금까지 억류돼 있는 사람은 4백29명이나 된다. 우리정부는 인도주의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문제나 핵문제와 연계시키지 않고 어떤 남북현안보다도 이를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왔고 그동안 여러차례 남북적십자회담의 재개를 촉구해왔다.이번에도 우리정부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납북어부들을 조속히 송환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다.그러나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직은 불투명하다.북한은 최근 정전협정의 무력화를 꾀하며 비무장지대 정찰병사들에게 군사분계선 남측지역을 고의적으로 침범케 하는등 일련의 무력시위를 벌여온만큼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우려도 없지 않다.그럴 경우 북한은 국제사회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정부는 최근 아무 전제조건 없이 북한에 쌀을 제공하겠다고 제의했다.따라서 북한당국도 조건 없이 납북어부들을 돌려보내야 한다.남북이 인도적인 문제를 이런 식으로 풀어간다면 신뢰는 쌓이게 될 것이고 민족화해에도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북한당국의 성의 있는 반응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 우성호 납북/“해군 유도잘못 탓”/해양경찰청

    ◎항로지시 내린 선박은 상선/“레이다 탐지안돼 해경에 임무인계”/국방부 【인천=김학준 기자】 지난달 30일 발생한 86우성호의 피랍사건은 해군측의 항로지시가 잘못돼 빚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1일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하오3시45분쯤 우성호의 영성항 출발사실을 해군측에 통보,항로지시를 요청한뒤 다음날 상오5시쯤 동경1백25도 해상에서 선박을 인계받았으나 이 선박은 우성호가 아닌 한국선적의 4천t짜리 상선 챌린저호였다. 해군함정은 우성호와 비슷한 시간대인 지난달 29일 하오3시 영성항 인근에서 인천으로 출항한 챌린저호를 우성호로 판단,이를 근거로 항로지시를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29일 하오 3시5분쯤 인천해경으로부터 86 우성호의 위치와 귀환상황을 처음으로 접수했다』면서 『이때 해군 경비함은 1백50㎞ 이상 떨어진 경비구역에 위치해 있어 레이다 탐지가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또 『따라서 우성호와는 무선으로만 교신할 수밖에 없었으며 30일 상오 4시30분 해경 253함에게 우성호 유도 임무를 인계한 뒤 훈련에 참가했다』고 전하고 『그 뒤 해경에서 수색작업을 한 결과 우성호를 발견하지 못해 다시 해군과 해경이 합동으로 수색에 나서 북방한계선 북한에 있는 우성호의 위치를 확인하고 남하를 유도하던 중 북한경비정에 피랍된 것』이라고 말했다.
  • “우성호 피랍수역은 공해”/국방부

    ◎북한의 영해침범 주장은 억지/나침반 편차생겨 항로이탈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31일 『제86우성호가 북한 경비정에 나포된 곳은 서해 북방한계선 이북 28.8㎞ 지점으로 국제법상 공해상이며 북한이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지만 북한은 이를 인정치 않고 영해침범에 대한 정당한 권리행사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발효된 신해양법은 12해리(약 22.1㎞)까지를 영해로 인정하고 있지만 북한은 지난 77년 8월1일 「군사경계수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하면서 북한 연안에서 50해리(약 92.5㎞)까지를 「영해」로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또 『제86우성호가 나침반 등 항법장치의 고장으로 항로를 이탈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국방부 관계자가 전한 제86우성호의 피랍 경위. 제86우성호는 억류돼 있던 중국 산동반도 영성항에서 풀려난 29일 하오 3시쯤 수산청 어업무선국에 무선으로 『영성항에서 동쪽방향 10㎞지점에 있다』고 위치를 알리고 『인천항으로 복귀하겠다』고 교신했다.이에 따라 어업무선국은 해양경찰청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이어 해양경찰청은 당시 서해상에서 초계활동을 벌이고 있던 천안함에 우성호가 중국해역에서 우리해역을 향해 출발했다고 연락했다. 이후 천안함은 30일 새벽 4시30분까지 무선으로 우성호를 유도한 뒤 인천 앞바다에 가까워지자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부근에 있던 해경 소속 253호에 우성호 유도임무를 인계했다. 이때까지는 인천항 복귀가 순조로운 것으로 판단했다.해경 253호가 유도임무를 인계한 뒤 1시간 가량이 지난 새벽 5시25분쯤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우성86호로부터 『섬이 보인다.그런데 주변에 중국배가 많이 보인다』고 연락이 온 것. 우성호는 시속 8∼10노트의 속도로 항해하고 있었으며 영성항에서 인천항까지의 거리는 2백50∼3백㎞이므로 30일 새벽 4∼5시쯤 인천 앞바다에 도착해야 했다.그러나 『중국배가 많이 보인다』는 것은 이 배가 중국쪽에 위치해 있음을 뜻한 것.즉 우성86호는 산동반도 앞바다에서 동쪽으로 계속 항해해야 하는데도 천안함과 교신하면서 정작 북쪽으로 항해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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