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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도 슬픈 내 조국 버마…”

    “너무도 슬픈 내 조국 버마…”

    “지옥이다/군부독재정권은 사탕을 개에게 던졌다/개가 빨아먹어 녹아 없어지는 사탕처럼, 군인이 빨아먹어 버마가 녹아 없어지고 있다/여기가 지옥이다/단결은 어디 있고, 평화는 어디 있나/두려워 숨어 있나/서로 껴안고 손을 맞잡아야 한다/그래야 싸울 수 있다(‘따야 민 카익’의 시 ‘어디에 있나?’ 중에서).” 그의 시어는 거칠다. 에둘러 가지 않는 직설이다. 꾸밈도 은유도 없는 날것이다. 시인 고 김남주와 젊은 시절 김지하의 언어를 닮았다. 그에게 현 군부독재 버마(군사정권이 개칭한 국호 ‘미얀마’ 대신 옛 명칭 ‘버마’를 고수하는 민주인사들의 뜻을 존중해 ‘버마’로 표기)는 김남주와 김지하가 목숨 걸고 싸웠던 과거 한국의 판박이다. ●필명‘따야 민 카익’뜻은‘군정을 무너뜨리다’ 필명 ‘따야 민 카익’, 본명 쩌모르윈(37).27일 밤 서울 구로동 한 호프집에서 만난 그는 “내 조국 버마의 현실이 너무 슬프다.”며 침통해했다. 유혈사태까지 발생한 버마 국내의 참극에 마음이 상할 만큼 상해 있었다.“군사독재국가여도, 그 때문에 내가 나라 밖으로 떠돌고 있어도, 난 버마를 자랑스러워했다. 이젠 왜 버마를 자랑스러워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며 고통스러워했다.“스님에겐 아들이라도 손을 모으고 예를 갖추는 게 버마 사람들인데, 군인들은 스님들을 개머리판으로 때리고 있다.”며 버마로부터의 전언을 아프게 토해냈다. 쩌모르윈은 국내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5명의 버마 시인 중 한 명이다. 모두 민주화운동을 하다 한국으로 몸을 피한 경우다. 윈 포 마웅과 나잉윙 아웅은 버마에서 시집을 내며 정식으로 등단했고, 얀나이툰은 한국 문학계간지 ‘실천문학’에 시(‘아내를 위한 시’)를 발표했다. 쩌모르윈은 자신의 시를 버마민주주의민족동맹(NLD) 한국지부 소식지에 실어 ‘동지들’의 마음을 위무했고, 지난해 11월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한국인 모임(공동대표 유종순)’과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들 모임(대표 임동확)’이 마련한 ‘버마 혁명시인들의 시낭송회’에 초청받아 시를 낭송했다. 지난달 27일엔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자들의 무사석방을 요구하는 호소문에 버마 작가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쩌모르윈의 시는 조국의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무기’와도 같다. 필명 ‘따야 민 카익’마저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겠다(‘따야=별’,‘민 카익=왕을 무너뜨리다’)는 다짐으로 지었다. 그는 일요일마다 주한 미얀마대사관 앞 집회를 조직했고, 먹고 살기에도 벅찬 박봉의 상당 부분을 떼어 버마 내 민주화운동 지원자금으로 보내 왔다. 최근엔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를 CD로 만들어 판매 수익금을 태국의 미얀마난민촌에 보내고 있다.“시 쓰고, 노래하고, 노동해서 돈 벌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최선을 다하려는 것뿐”이라고 쩌모르윈은 설명했다. ●“우린 갈 곳이 없습니다” ‘8888항쟁’(1988년 8월8일에 정점에 이른, 버마 군부독재에 항거한 민중 총봉기) 당시 쩌모르윈은 17살이었다. 총을 쏘며 뒤쫓는 군인들이 무서워 그는 수 년 간 국경지대로 도망다녔다.NLD 멤버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교사와 간호사 일을 잃었고, 모든 생계활동이 봉쇄됐다. 쩌모르윈은 4500달러를 빌려 브로커에게 주고 97년 8월 한국에 입국했다. 그는 한국행을 택한 이유로 “군사독재를 경험하고 또 극복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대와 실제는 달랐다.2000년 난민 인정 신청을 접수한 그에게 한국 정부는 출국통보를 내렸다. 그와 동료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쩌모르윈은 “한국에 오래 있고 싶어서 난민 신청한 게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지 난민 인정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라면서도 “한국 정부만큼은 우릴 이해해줄 줄 알았다.”며 섭섭함을 나타냈다. 그는 태권도 도복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먼저 일하던 공장에서 한국인 노동자의 폭행위협이 무서워 뛰쳐나온 이후 8개월 만에 얻은 일자리다. 쩌모르윈은 “한국은 버마만큼이나 공포스러운 곳”이라고 했다. 버마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는 한국에선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다. 버마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는 단속과 검거의 대상일 뿐이다. “버마가 민주화되지 못하면 숨 쉬고 살 수 없듯, 한국에 머물지 못하면 우린 갈 곳이 없습니다. 인권 앞에선 버마인도, 아프리카인도, 한국인도 없습니다. 인간만이 있을 뿐입니다.” 쩌모르윈과 만나는 내내 그의 휴대전화는 끊임없이 울어댔다. 그때마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버마어로 무언가를 빠르게 설명했다. 뉴스도 인터넷도 접하지 못한 동료들에게 그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버마 정황을 세세히 전하고 있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아프간 피랍자 석방 그후 한달(하)] “낯선사람 두렵고 일상복귀 힘들어요”

    [아프간 피랍자 석방 그후 한달(하)] “낯선사람 두렵고 일상복귀 힘들어요”

    “일상으로 복귀하기는 아직 힘에 부쳐요.”“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기만 해요.”아프가니스탄에서 40여일간의 악몽 같은 억류 생활을 한 21명의 피랍자들은 석방된 지 1개월이 흘렀지만 일부를 제외하고는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27일 분당샘물교회와 안양샘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2일 퇴원한 뒤 그동안 통원치료로 일상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이들 중 상당수는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별도의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석방자들은 추석 연휴를 전후해 집 전화번호나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는 등 외부 접촉을 극도로 꺼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피랍기간 중 바지에 일지를 써 왔던 간호사 서명화(29)씨는 현재까지 이렇다 할 진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서씨의 언니는 “아직 피랍 당시 충격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 당분간 별다른 계획 없이 집에서 쉬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함께 피랍됐던 동생 경석이 또한 취업 준비를 미루고 당분간은 그냥 쉬기로 했다.”면서 한숨지었다. 샘물교회 단기선교팀의 통역 겸 가이드로 합류했던 박혜영(34·여)씨도 새 진로를 찾지 못한 채 고민하고 있다. ●통원 치료하며 재활의지 키워 박씨의 가족들은 “혜영이의 건강이 회복되고는 있지만 아직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어 일상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다만 이제 다시 아프간으로 갈 수는 없는 만큼 학원강사 일을 다시 할지 아니면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설지 정하지 못해 혼자 고민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일부는 몸과 마음의 상처를 씻어내고 피랍 전 일하던 회사로 복귀할 계획을 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석방된 간호사 이정란(33)씨는 피랍 전 일하던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개인병원에 곧 복귀할 예정이다. 이씨의 남동생 정훈씨는 “누나가 예전의 건강 상태를 회복함에 따라 다음달부터 병원에 복귀해 예전에 하던 신장투석 관련 업무를 계속 맡기로 했다.”면서 “오히려 병원 측에서 곧바로 일하려는 누나에게 ‘며칠 더 쉬라.’며 만류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일부 전화번호 바꾸는 등 접촉 꺼려 지난달 13일 김지나(32·여)씨와 함께 피랍자 중 가장 먼저 풀려난 김경자(37·여)씨도 피랍 전 근무하던 소프트웨어 회사에 복직하기로 했다. 김씨의 어머니 박선녀(62)씨는 “다른 석방자들보다 먼저 풀려나서인지 몸 상태가 좋다.”면서 “덕분에 회사 측과 이야기가 잘 돼 다시 회사에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분당샘물교회 관계자는 “외국 사례를 보면 목숨이 위태로웠던 정신적 충격은 치료하는 데만 1∼2년 이상 걸렸다.”면서 “상당수는 피랍 당시 충격 때문에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는 만큼 정신적 상처가 아물 때까지 조용히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아프간 피랍자 석방 그후 한달(하)] “문제점 인식… 재단체제 바꿀것”

    [아프간 피랍자 석방 그후 한달(하)] “문제점 인식… 재단체제 바꿀것”

    “몇 주, 혹은 몇 달 만에 이교도의 종교와 사고를 바꿔놓겠다는 공격적 복음주의 선교에선 경험쌓기 이상의 의미와 성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분당샘물교회 봉사단원들에 대한 비자발급을 도운 책임을 지고 물러난 분당샘물교회 박은조 목사의 후임으로 지난 14일 한민족복지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박종화(62·경동교회 당회장) 목사. 박 목사는 아프간 피랍 석방 한달을 맞아 2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어려운 상황에서 중책을 맡았다.”며 “그러나 최근 드러난 문제점을 분명히 인식해 재단의 체제를 대폭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선교는 중단할 수 없는 당위의 문제입니다. 문제는 조건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동기가 불순해지고 큰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민족복지재단은 재정경제부에 등록된 비정부기구(NGO)로 주로 대북지원 활동을 벌여왔지만 이번 사태 때 봉사단원들의 비자발급을 도왔다는 이유로 좋지 않은 인식을 남겨 안타깝다.”는 박 목사는 “어쨌든 사태에 깊숙이 관여한 만큼 깊은 책임감을 토대로 체질개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달 전 손인웅(덕수교회) 목사를 비롯한 중진 목사 6명과 함께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인 한국교회의 선교 봉사활동을 비판, 문제점을 공식 시인한 목회자답게 선교와 관련된 재단활동 방향에서도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병원과 유치원, 카불대학 컴퓨터학과 지원 기술자 등 아프가니스탄의 한국인 봉사자 31명은 모두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아프간에서 순수한 사랑의 봉사를 펼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직·간접적인 활동을 재개할 것입니다. 물론 현지인들과의 철저한 파트너십이 전제입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아프간 피랍자 석방 그후 한달(하)] 개신교계 움직임

    아프간 피랍 석방 한달째인 27일 현재 개신교계의 단기선교는 일단 주춤한 상태다. 하지만 언제 어떤 형태로 다시 시작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피랍 사태 이후 대형교단 소속 교회와 선교단체는 대부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활동을 중단, 철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작은 교회나 개별적으로 활동해오던 선교사·단체의 경우 구체적인 움직임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 개신교계에서는 이같은 아프간 선교 중지와 철수는 인질석방의 전제조건으로 한국정부와 탈레반측이 합의한 사항이란 점에서 따를 수밖에 없는 임시조치일 뿐 선교 자체의 중단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27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따르면 이번 피랍사태와 관련된 분당샘물교회를 비롯, 아프간에 파견된 모든 장·단기 선교사들과 교회의 봉사단원들은 일단 모두 철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해외선교에 경쟁적으로 나섰던 주류 개신교계는 이번 피랍사태를 계기로 급격히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단기선교 활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을 비롯한 이슬람권과 다른 위험지역에서의 철수 움직임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교계에 따르면 일부 개신교 교회들은 한편에서 단기선교의 명칭을 바꾸는 것을 비롯, 파송자 교육과 현지인 협력등 대응책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분당샘물교회 박진성 목사는 “석방된 봉사단원들의 안정과 일반인들의 감정을 고려해 해외선교나 봉사와 관련된 논의를 미뤄왔지만 조만간 선교재개와 방향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기총과 KNCC,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등이 아프간 피랍사태 이후 공동으로 추진한 선교 대응방안도 답보상태에 빠져 있다. KWMA측은 선교사들의 위기관리 대처 상설기구를 발족시키고, 교회들이 일방적으로 파송하는 교인들의 단기선교 명칭을 ‘해외봉사’나 ‘선교지 방문’(비전트립)으로 바꾸고 봉사연합기구를 통해 그 산하에 이들의 위기관리팀을 구성할 것을 한기총과 KNCC에 제의한 바 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아프간 피랍자 석방 그후 한달(하)] 정신과 전문의 조언

    석방된 지 1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외부 접촉에 불안해하는 등 상당수 피랍자들을 괴롭게 만들고 있는 고통의 정체는 뭘까. 전문가들은 “정확한 판단은 피랍자 개개인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아마도 피랍 당시 기억들이 끊임없이 당사자를 괴롭히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와 그 후유증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피랍 당시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들이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올라 당시 고통을 다시 겪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개인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쟁이나 성폭력 등 생(生)과 사(死)를 오가는 극적인 경험을 할 경우 당시 기억이 6개월 정도 지속되면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심각한 충격에 시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피랍자 뿐 아니라 가족들 또한 PTSD에 준하는 증상들이 발생하게 된다. 가족들은 TV로 피랍자들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로 악몽을 꾸거나 최악의 상황을 연상하며 무기력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피랍가족 대표였던 차성민(30)씨도 생사를 예측할 수 없는 누나 차혜진(31)씨에 대한 불안감과 피랍자 가족과 정부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하는 중압감 때문에 피랍기간 내내 고통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PTSD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피하려 하면 할수록 당사자에게 더욱 큰 고통을 주게 된다. 전문가들은 “PTSD는 개인별 정밀조사를 통해 기억을 재구성하거나 안구운동을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다양한 치료가 가능하며 6개월 정도의 치료로 소멸된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일부는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예도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이훈진 교수는 “당사자들이라면 고통의 근원이 되는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일상 생활을 접어가면서까지 숨기려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그런 기억을 다시 떠올려 온전한 기억으로 재구성하면 의외로 죄책감이나 고통이 사라지는 만큼 피랍자들이 마음을 열고 주변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범희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피랍 당시 공포심이나 정신적 압박감 등이 장기화되면서 공포심과 스트레스 노출에 대해 무기력해지거나 우울증을 앓았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이 경우 풀려난 뒤에도 매사에 의욕을 상실하고 신체적으로도 극도의 피로감이나 쇠약감에 시달리다 신체 질환이 발병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또 “피랍 당시 상황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생한 일인 만큼 그때를 최대한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탈레반의 입’ 아마디 체포설

    한국인 피랍사건 때 아프간 탈레반 무장세력의 ‘입’ 역할을 했던 카리 유수프 아마디 대변인이 26일 아프간 남서부 헬만드주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27일 AP통신에 따르면 아프간 내무장관은 이날 “아마디가 헬만드주 수피얀 지역에서 경찰의 탈레반 소탕작전 중 그의 동생과 함께 체포됐다.”고 발표했다. 헬만드주는 탈레반이 장악한 지역이다. 지난달 미국 등 연합군의 군사작전 때 아마디가 이 지역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탈레반의 또 다른 대변인 자비훌라 무자히드는 “아마디는 자유상태”라면서 내무장관의 발표를 부인했다.AP통신도 자신을 아마디라고 밝힌 인물이 AP 현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체포되지 않았다.”며 주장했다고 연이어 보도했다. 헬만드주 경찰 책임자인 모하마드 후세인 안디왈도 “26일 카리 유수프와 그의 동생을 체포한 것은 맞지만 그가 탈레반 대변인인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AP통신은 자사 기자가 27일 오전 5시23분에 아마디의 휴대전화로부터 ‘탈레반이 남부 우루즈간 지역의 경찰 초소를 공격해 경찰 3명을 죽였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전화기는 그 이후로 꺼져 있는 상태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최소한 4명이 아마디라는 이름으로 대외 접촉을 하고 있기 때문에 누가 진짜 아마디인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탈레반 대변인들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고 전화나 이메일로만 외부세계와 연락을 취해왔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아프간 피랍자 석방 그후 한달(상)] 탈레반 지지자로 변신한 피랍자들

    아프간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외국인 피랍자들도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죽음의 문턱을 넘은 사람이 흔히 그렇듯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등 후유증도 우려된다.억류생활 중 접한 이질적인 이슬람문화에 영향을 받아 아예 이슬람교로 개종한 사람까지 생겨났다. 지난 2001년 9월 탈레반에 10일간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영국 선데이 익스프레스 여기자 이본 리들리. 그녀는 파키스탄 신문 ‘Dawn(돈)’에 기재한 피랍 일기를 통해 당시 억류상황을 상세히 소개했었다. 그녀는 석방 이후 탈레반이 여성들을 왜 억압하는지가 궁금해 코란을 공부했고 이후 코란에 매료돼 이슬람으로 개종, 지금은 아랍 위성방송인 알 자지라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4월 아프간 남서쪽 님로즈 지방에서 탈레반에 납치된 프랑스 구호요원 에릭 담프레빌은 석방 당시 건강이 무척 나빠진 상태였다. 납치기간 내내 밧줄에 묶여 있었고 입에 재갈을 물려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방 직후 그는 “탈레반은 나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오히려 우호적인 발언을 했다. 2005년 6월 카불에서 무장세력에 붙잡혔다 24일만에 풀려난 이탈리아 구호활동가 클레멘티나 칸토니도 “납치자들은 나를 매우 잘 대해줬다.”고 증언했었다. 지난 3월 납치돼 2주만에 석방됐던 이탈리아 신문기자 다니엘 마스트로자코모는 석방 직후 BBC와의 인터뷰에서 “사막 한가운데 양 우리만큼 작은 은신처를 15차례나 옮겨다녀야 했다.”면서 악몽 같던 억류생활을 회고했다. 하지만 협상 교섭이 성사되는 순간 탈레반 사령관이 자신을 껴안으며 영어로 “신의 뜻이라면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며 격려했다고 전했다. 한편 7월18일 카불 남서부 와르다크주에서 다른 기술자 1명과 함께 납치된 독일인 루돌프 블레히슈미트는 아직 석방되지 않고 있다. 이는 테러단체와는 협상하지 않겠다는 독일 정부의 강경한 입장 때문이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아프간 피랍자 석방 그후 한달(상)] 겨우 30여명 남아… 카불은 안전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여기가 그렇게 위험천만한 곳은 아닙니다.” 아프가니스탄 교민들은 한국인 피랍사태가 해결된 지 한 달째로 접어들면서 아프간은 빠르게 평온을 되찾아 가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아프간은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 중 하나다.우리 정부가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한 데서 알 수 있듯 일촉즉발의 위기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현지 교민도 한때 200명을 넘었지만 지금은 거의 다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은 30∼40명에 불과하다. 탈레반이 지난달 31일까지 한국민간인들은 모두 철수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체류 허가를 받은 사람들만 남아 있다. 교민들은 대부분 수도 카불에 모여 산다. 비정부기구(NGO)와 봉사단체 일을 하던 사람들은 거의 다 떠났다. 현재 남아 있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자영업을 하던 사람들이나 건설업체 지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사관, 군부대 종사자 등이 대부분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카불 사무소 김영렬 소장은 “한때 탈레반이 교민에 대해 공격을 할 것이라는 모 언론의 ‘오보’로 교민사회가 술렁이긴 했지만 지금은 빠르게 안정을 찾고 있다.”면서 “자영업자나 자녀가 있고 오래 거주한 분들은 거의 다 남아 있다.”고 말했다. 대사관에서도 철수를 권유하고 있지만, 정착한 지 오래되는 교민들은 자체적으로 안전책을 강구하면서 주로 카불에 머물고 있다. 권용준 한인회 부회장은 “카불은 탈레반이 출몰하는 동남부지역과 달리 경찰들이 치안질서를 확보하고 있어 안전하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아프간 피랍자 석방 그후 한달(상)] 자살공격 올들어 103건…악몽 종식 먼길

    [아프간 피랍자 석방 그후 한달(상)] 자살공격 올들어 103건…악몽 종식 먼길

    한국인 피랍사태가 끝난 지 오는 29일로 한 달, 결국 승자는 없었다. 27일 현재까지 탈레반은 물론 아프가니스탄 정부도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인질극을 벌였던 탈레반은 최악의 테러 집단이라는 악명을 높였으며, 아프간 정부는 ‘카불 정권’이라는 오명을 떨쳐내기 위해 무장세력 소탕전을 강화하고 있지만 탈레반은 건재하다는 소식만 들린다. 피랍사태 종결 뒤 아프간 정세에는 먹구름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이 점은 미군 주도 연합군의 공격 강화로 탈레반 사상자가 급증한 데서 엿볼 수 있다. 교전으로 숨진 탈레반군은 9월1일 60여명 등 한 달 새 200여명에 이른다. 올 들어 8월까지 자살폭탄 테러로 사망한 아프간 국내 희생자 숫자와 맞먹는다. 뉴욕타임스(NYT)는 아프간에서 일어난 자살공격이 올 8월까지 103건으로, 이라크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다고 최근 보도했다. 탈레반에 의한 한국인 납치가 우연이 아니며, 앞으로도 아프간 사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아프간 연합군도 다급해진 듯하다. 독일은 지난 주 아프간 파병을 내년 10월까지 1년 연장하기로 내각에서 의결한 바 있다. 병력도 3000명에서 500명 늘릴 예정이다. 그러나 연합군의 공세가 강화될수록 탈레반의 저항도 강력해지고 있다. 무장세력들의 국제협조가 견고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란이 탈레반에 철갑탄 등 군수품을 제공한 증거가 적발됐다고 보도했다. 대공 미사일, 로켓 추진 수류탄 발사기 등 중국산 무기가 유입됐다는 증언도 잇따랐다. 반면 군사작전으로 인질사태 해결을 바라던 아프간 정부는 협상 주도권을 한국에 넘김으로써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아프간 의원은 “협상 과정에서 탈레반에 적법성과 대중성, 독자성이 부여됐다.”고 말했다. 더욱이 탈레반은 아프간 인접국 파키스탄의 정부군에 타격을 주는 등 그 세력이 좀체 움츠러들지 않고 있다. 따라서 갈수록 격렬해지는 교전 속에 자칫 ‘제2 이라크전’으로 치닫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적잖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아프간 피랍자 석방 그후 한달(상)] 납치 주도 압둘라 잔 사령관 피살설

    한국인 피랍사태 동안 국내언론에 빈번히 오르내렸던 탈레반 및 아프간 관계자들은 요즘 어떻게 지낼까. 사태가 마무리된 지 한 달, 피살 소문이 떠도는 인물부터 경질되거나 소식을 알 수 없는 인사들까지 근황도 가지각색이다. 한국인 인질 납치를 주도한 인물로 알려진 가즈니주 탈레반 지역사령관 압둘라 잔은 지난 17일 아프간과 미군의 연합공격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전해졌다.탈레반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압둘라는 지난 5일 이후 사용하는 전화기 3대가 모두 꺼져 있는 등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어 생존여부에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질들이 납치됐던 지역인 가즈니주의 미라주딘 파탄 주지사는 지난 18일 경질됐다. 아프간 내무부 자마리 바샤리 대변인은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한국인 인질 사태에 미숙하게 대응한 파탄 주지사를 경질하고 파이자눌라 파이잔을 신임 주지사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파탄은 ‘피랍 한국인들이 화 자초’ ‘인질성폭행설’ 등 막가파식 발언으로 한국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 ‘요주의 인물’로 꼽혀왔다. 하지만 주요 고비 때마다 등장해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카리 유수프 아마디 대변인은 여전히 ‘탈레반의 입’ 역할을 충실히 수행 중이다. 그는 지난달 20일 남부 헬만드주 조샬리 지역에서 연합군의 군사작전 때 다리에 총상을 입기도 했다.지난 18일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와 전화인터뷰로 “압둘라 잔 사망 소문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는 등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씨줄날줄] 겐다이 코리아/황성기 논설위원

    일본의 ‘겐다이(現代) 코리아’라는 잡지가 재정난 끝에 11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서 한반도 관계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갖고 읽는 팸플릿 같은 조그만 잡지다.1961년 ‘조선연구’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초기에는 재일 동포들의 인권 문제를 다루다가 84년 지금의 제호로 변경한 뒤로는 한반도 전문지가 됐다. 잘나가던 시절 1300부까지 냈던 이 잡지는 지금은 600부 정도까지 발행부수가 떨어졌다고 한다. 극렬 반북 성향인 겐다이 코리아의 폐간은 절묘하게도 아베 신조 총리의 퇴진과 겹친다. 전 편집장인 니시오카 쓰토무 도쿄기독교 대학 교수는 아베 정권에서 북한 정책 브레인으로 활약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잡지를 발행하는 사토 가즈미 겐다이코리아 연구소장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구하는 모임)의 회장이다.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고 강경노선을 취해 납치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잡지의 주장은 곧 아베 정권의 대북 정책이기도 했다. 이 잡지는 96년 10월호에 요코타 메구미의 피랍 사실을 신문·방송을 제치고 처음 보도했다. 열세살 소녀가 일본 해안에서 납치된 사실만을 보도했으나 그 뒤에 신원이 밝혀져 일본에서 납치피해자 가족모임을 결성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특종을 낸 사람이 지금 아사히방송 보도국 차장인 이시다카 겐지다. 그해 아사히신문사에서 ‘김정일의 납치지령’이란 책을 출간한 것이 인연이 되어 겐다이 코리아에 원고를 쓰게 됐다고 한다. 이시다카는 “아베 정권이 대북 강경책을 고집했지만 지난 1년간 납치해결에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납치피해자 가족들 사이에서도 강경 일변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시기에 잡지를 폐간한다고 하니 유감스럽기도 하고 불가사의하다.”고 말했다. 아베 정권과 겐다이 코리아의 동시 퇴장은 전환점에 선 일본의 대북 정책 현주소를 상징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발행인인 사토가 “납치문제를 통해 한반도 문제가 알려져 역사적인 역할을 끝냈다.”고 했듯이 말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생환 아프간 피랍자들 조용한 한가위

    생환 아프간 피랍자들 조용한 한가위

    “모든 것을 잊고 조용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40여일간의 악몽 같은 억류 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21명의 피랍 석방자들은 이번 추석 연휴 기간 각자의 집에서 조용한 추석을 맞을 예정이다. 샘물교회와 안양샘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2일 경기 안양시 안양샘병원에서 일제히 퇴원한 뒤 1주일 동안 강원 속초시의 한 휴양지에서 요양을 하며 조용히 신변을 정리한 뒤 최근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생활에 복귀했다. ●최근 귀가 생활 복귀 지난달 13일 피랍자 중 가장 먼저 풀려났던 김지나(32·여)씨는 “다른 피랍자들보다 먼저 풀려나 휴식을 취한 덕분에 몸 상태는 피랍 전과 거의 같아졌다.”면서 “그래도 아직 활동하기는 좀 이른 것 같아 이번 추석은 집에서 조용히 지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함께 풀려났던 김경자(37·여)씨도 “몸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추석 때 무엇을 하겠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피랍 당시 탈레반에 의해 24차례나 옮겨 다니며 수시로 살해 위협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 고세훈(27)씨는 “한국에 와서 두바이 도착 당시 기르던 수염을 모두 정리하는 등 심기일전했다.”면서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특별한 행사 없이 부모님과 함께 조용히 보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산본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다 피랍돼 20일 넘게 3000m 산악지대에서 지낸 제창희(38)씨는 “먼저 우리를 걱정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면서 “추석이라고 특별한 일정을 잡고 있지는 않으며 집에서 휴식하며 많은 것을 생각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차혜진(31·여)씨의 남동생이자 피랍자 가족 대표인 차성민(30)씨는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피랍자들은 아프간 피랍 당시 고통을 대부분 떨쳐내고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상태”라면서 “목숨이 위태로웠던 상황에서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다들 뭔가를 계획할 만할 경황이 없어 이번 추석은 모두 조용히 지내려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따가운 시선에 부담감” 피랍가족 부대표이자 피랍자 이정란(33·여)씨의 남동생인 이정훈(29)씨도 “예전에는 추석 때마다 큰아버지 댁에 가서 차례를 지내곤 했지만 올해는 누나가 아직 일상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냥 가족끼리만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 피랍자 가족은 “현재 피랍자들 대부분은 건강을 회복했지만 자신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을 잘 알다 보니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게 사실”이라면서 “이 때문에 올 추석은 별다른 계획 없이 조용히 지내려 하는 것 같다.”고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분당샘물교회 측 관계자는 “피랍자들이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추석과 관련해 이들에 대한 행사를 준비하지는 않았다.”면서 “앞으로도 피랍자들의 건강 상태를 늘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혔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사설] 소말리아 피랍선원도 우리 국민이다

    지난 5월15일 소말리아에서 피랍된 한국인 선원들이 억류된 지 130일이 넘도록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원양어선 마부노호의 선장 한석호씨와 선원 3명 등 피랍자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에 대해 들려오는 얘기조차 없다. 탈레반 피랍 사태 때 하루하루 국력을 쏟아붓다시피 석방교섭에 나섰던 때와는 대조적이다. 이러다 보니 추석연휴를 앞둔 그제 선원 가족들이 외교부를 항의 방문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우리는 피랍 선원 가족들이 이유 있는 항의를 했다고 본다. 마부노호가 한국 선적은 아니라지만,4명의 선원은 엄연히 한국민이기 때문에 정부가 이들의 안위를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더욱이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땐 국가정보원까지 나섰던 정부였지만, 유독 이 건에 대해선 미온적이란 가족들의 문제 제기도 일리가 있다. 피랍선원들에게 고기잡이는 생업이었지만, 국가경제에도 적잖게 기여하는 외화벌이 사업이었다. 정부가 말리는 데도 선교·봉사를 위해 아프간으로 갔다가 납치된 이들과 달리 대우를 받을 까닭이 없는 셈이다. 물론 내전상태인 소말리아 과도정부나 해적들을 상대로 석방교섭을 벌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국가가 그동안 소말리아 피랍선원들에게 너무 무관심한 게 아니었는지 자성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새우잡이 원양어선을 타고 멀리 아프리카까지 진출했다가 고초를 겪고 있는 선원들의 석방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그들이 이등국민 대접을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 종교·시민단체 ‘개신교 선교 문제점’ 토론회

    아프간 피랍사태로 불거진 한국 개신교 선교 문제와 관련해 종교계와 시민단체가 해법찾기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참여불교재가연대, 제3그리스도교연구소, 우리신학연구소,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등이 주축이 돼 활동하는 ‘개혁을 위한 종교인네트워크’가 18일 서울 장충동 만해NGO센터에서 마련한 토론회. 이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개신교의 공격적 선교를 성토,“교회들이 철저한 반성을 토대로 합리적인 공동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회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역시 선교형태. 참석자들은 “우리 주류 개신교계는 선교 본질을 등한시한 채 타문화와 현지인들을 인정하지 않는 우월적 배타주의 모순에 빠져 있다.”며 ‘종교를 넘어 인간에 봉사하는 선교’방식을 먼저 찾을 것을 강조했다. 특히 단기선교는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워 장기선교, 혹은 현지교회나 현지인들과의 협력선교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채수일 한신대 교수는 “선교는 보내는 교회의 자기목적 실현 도구가 아닐 뿐더러 모든 사람의 급진적 평등을 실현하는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는 선교는 결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며 “무엇보다 ‘우리가 가서 가르치고 도와준다.’는 의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준 한국희망재단 사무처장은 NGO활동과 관련,“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에 가입한 56개 NGO 중 55.4%인 31개를 차지하는 개신교 단체들은 선교단체인지 개발 NGO인지 정체성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처장은 이에따라 “종단 지도층이 공격적 선교와 국제개발협력 활동을 철저하게 분리할 것을 천명하고 신자나 후원자들도 이들 NGO의 활동을 감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개선점과 관련해선 대체적으로 협력과 공존, 인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견해가 많았다. 최형묵 천안살림교회 목사는 “아프간 피랍사태 때 네티즌 사이에서 쏟아진 저주성 발언을 볼 때 공격적 배타주의는 기독교만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라면서 개종의 의도를 포기한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 건설 목적의 선교를 제시했다. 박광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공동대표도 “기성종교의 자기중심적·전투적 세 확장 전략은 다원적 가치와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는 인류문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쾌적한 종교 공존을 위해 종교근본주의와 이를 배경으로 한 공격적 선·포교의 위험성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정토론에 나선 정웅기 (사)밝은세상 사무처장은 어깨띠를 두른 신도를 내보내 길거리 포교를 한 불교 포교당과 피라미드식 조직체계를 갖춰 신도를 모은 사찰의 예를 들어 “불교계도 포교방식에서 그렇게 떳떳한 것은 아니다.”면서 “선(포)교는 종교가 아닌 진리를 전하고, 몸소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자성론을 폈다. 이대훈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소장은 특히 “기독교회의 내적 권력구조의 문제점을 따지지 않은 채 진실된 선교, 진실된 진리, 진실된 믿음만 해법으로 강조함은 상투적인 반성일 뿐”이라면서 “평화-대화-섬김의 신앙을 누가 어떻게 교회 안에서 가로막고 있는지 교회집단 내부의 권력분석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나도 ‘선글라스맨’ 도전해 볼까

    나도 ‘선글라스맨’ 도전해 볼까

    최근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태에서 21명의 인질을 구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일명 ‘선글라스맨’ 덕분에 국정원 직원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방영한 ‘개와 늑대의 시간’의 이수현(이준기 분), 드라마 ‘에어시티’의 김지성(이정재 분), 영화 ‘본 얼티메이텀’의 제이슨 본(맷 데이먼) 등 영화와 드라마에 영웅처럼 등장하는 이들도 바로 국가기관의 정보요원이다.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는 없는 정보기관의 요원. 이번에는 능력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한 신념까지 겸비해야 하는 정보요원에 도전해 보자. ●채용정보 비공개…“설명회 참석을” 국정원이 신입 직원 모집을 위해 캠퍼스로 직접 찾아나서고 있다. 이번주부터 전국 27개 대학을 돌며 채용설명회를 개최한다. 올 4∼5월 36개 대학에서 설명회를 개최한 데 이어 파격적인 공개 채용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스라엘의 모사드처럼 국가에 헌신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보기관이 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우수한 인력 자원”이라면서 “우수한 인력들을 많이 받기 위해 설명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설명회 개최 배경을 밝혔다. 국정원은 국가의 최고 중요 정보를 다루는 만큼 채용정보가 비공개인 사항이 많다. 선발 인원이나 경쟁률을 공개하면 국정원의 인원 규모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다. 예년의 경우에 비춰볼 때 100명 정도 신입직원을 뽑으며 경쟁률은 100대1 이상 된다는 소문이 나돈다. 대우는 국가공무원의 보수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어에 집중해야” 국정원 채용은 7급과 9급으로 나뉜다.7급은 매년 8월 정기적으로 서류심사와 필기시험, 면접 등을 거쳐 뽑고 9급은 수시로 원서 접수를 한다.7급은 만 26세,9급은 만 24세로 나이를 제한하며 석·박사는 만 32세까지 지원이 가능하다. 7급은 정보, 안보수사, 보안방첩, 전산, 통신으로 나눠 선발하는데 대학 전공의 제한이 없지만 전산·통신은 관련학과 출신자로 제한한다. 면접은 집단토론, 프레젠테이션, 개별면접 등 3단계를 거친다. 국정원 인사 담당자는 “정보요원으로서 보안의식이나 사명감, 투철한 국가관을 가지고 면접에 임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에 들어가기 위해 취업준비생들이 중점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영어’와 ‘대학성적’이다. 인사 담당자는 “서류심사에서 대학성적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폭넓게 교양을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평소 읽기·쓰기·말하기 등에 영어실력을 고루 쌓아 두는 것이 유리하다.”고 전했다. ●매력 있는 만큼 책임감 커 국정원 직원이라면 반드시 거치는 것이 ‘신원조회’인데 기준은 역시 비공개다. 그러나 부모가 이혼했거나 친인척 가운데 전과자가 있으면 불합격한다는 소문은 거짓이라는 게 국정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정원 인사 담당자는 “최근 ‘개와 늑대의 시간’ 등으로 정보요원이 뜨면서 국정원 요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면서 “정보요원이 매력 있는 직종임에는 틀림없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매력만큼이나 첨예한 정보전쟁의 한가운데 서 있다는 부담과 책임감 역시 크다. 업무능력과 인품을 겸비한 사람이야말로 국정원이 찾는 인재상”이라고 강조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반기문 리더십 시선집중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서울 이순녀기자|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취임한 이후 첫 회의인 62차 유엔 총회가 18일(이하 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막됐다. 이번 회의는 새로운 지구촌 현안들을 논의·조율하는 한편 유엔 수장으로서 반 총장의 지도력을 가늠하는 자리란 점에서 관심을 끈다. 유엔측은 범지구적 쟁점인 기후변화와 각 지역 분쟁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안전보장이사회 확대 등 유엔 개혁 논의도 주요 이슈다. 국제분쟁의 주 원인인 종교와 문화간의 갈등 치유 방안 등 162개 의제가 다뤄진다. 반 총장은 취임 이후 최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 기후변화(24일) 문제를 비롯해 다르푸르(21일)와 이라크(22일), 아프가니스탄, 중동평화(이상 23일)에 대한 고위급회담에 잇따라 참석한다. 기후변화 고위급회의는 오는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 콘퍼런스에 앞서 국제사회의 의지를 모으기 위해 반 장관이 마련한 자리로 한덕수 총리 등 150여개국 정상 및 고위관리들이 참석한다. 25일부터는 각국 수석대표의 기조연설이 시작되며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28일 북한 핵문제 노력에 대해 설명한다. 북한 수석대표의 기조연설은 다음달 2일로 예정돼 있다. 핵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이 기조연설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연설 다음날 ‘반미주의자’인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난, 국제적인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차베스는 부시 대통령의 전날 연설을 비꼬며 “어제 악마가 다녀갔다. 아직도 유황 냄새가 난다.”며 부시에 대한 인신공격과 함께 미국의 정책을 격렬하게 공격했었다. 이번 총회에서 지난 2005년 이후 세번째로 대북 인권결의안이 통과될지도 관심사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주도하고 있는 대북 인권결의는 지난 2005년 총회에서 처음 채택됐다. 지난해에는 한국 정부도 처음 찬성했다. 올해도 EU측은 결의안을 준비 중이다. 일본은 자국민 피랍문제를 결의안에 포함시키기 위해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현지소식통들이 전했다.dawn@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2) 국제선원 무상사 주지 무심 스님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2) 국제선원 무상사 주지 무심 스님

    “모든 것을 내려놓게나.” 몸과 마음을 비우라는 전 화계사 조실 숭산(2004년 입적) 스님의 ‘방하착(放下着)’ 한마디에 미련없이 세상의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한국불교에 귀의한 무상사 주지 무심(無心·49·본명 조슈아 헨리 레아)스님. 미국 보스턴대 화학과를 졸업한 이 미국의 과학도를 한국 땅의 ‘눈 푸른 납자(衲子)’로 변신시킨 건 무엇일까. 이 푸른 눈의 과학도에게 많은 길 중에서도 하필이면 한국불교를 택해 한국 승가에 몸담게 한 것은 불법(佛法)인가, 아니면 거역 못할 인연인가. 언제 어디서건 “나는 전생에 한국사람이었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무심 스님.1984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아 한국생활을 한 지 23년째를 맞은 그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무상사(無上寺·충남 계룡시 두마면 향한리 산 51의9)는 서울 화계사 국제선원과 함께 한국의 선(禪)불교를 만방에 전파하는 양대 수행도량. 계룡산 국사봉 아래 국제선원과 대웅전, 요사채의 한옥식 건물 세 채를 갖춰 망집을 버리고 ‘참 나’(眞我)를 찾기 위해 물 건너 산 넘어 찾아드는 외국인 스님들을 맞아주는 이색지대이다. 지금은 미국, 말레이시아, 폴란드, 체코, 리투아니아, 홍콩의 스님과 행자 10명이 편하게 살고 있지만 안거 때면 참선 정진하는 20여명의 외국인 납자들로 선풍이 시퍼렇다. 이 무상사에서 4년째 외국인 수행자들을 이끄는 주지 겸 지도법사 무심 스님은 ‘아주 무서운 선생님’이다. 평소엔 웃음 많은 넉넉한 친구이지만 흐트러진 수행승들에겐 어김없이 불호령를 내리는 ‘계룡산 호랑이’인 것이다. ●보스턴대 출신 미국의 과학도 ‘불교 입문´ 무상사(無上寺).‘부처님 앞에선 위도 없고 아래도 없이 모든 게 평등하다.’는 대웅전의 ‘무상사’편액을 바라보는 스님의 각오는 날마다 새롭다. 대학시절 명상과 요가에 빠져 있던 그에게 숭산 스님과의 만남은 세상의 미명을 밝히는 큰 길로 불쑥 다가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힌두교 수행자를 따라 간 토굴에 불상이며 십자가며 힌두신이며 여러 종교 상징들이 있었는데 유독 불상에 눈길이 가더란다.“불교를 알고 싶다.”는 말에 돌아온 “불교를 배우려 들지 말고 살아 있는 부처님을 찾아보라.”는 힌두교 수행자의 말에 호기심만 더 쌓일 뿐이었다. 케임브리지 선원을 찾아 숭산 스님의 법문을 듣고도 의심이 풀리지 않아 귀찮을 만큼 끈질기게 수행법을 묻던중 “모든 것을 내려놓아라. 모든 것을 버리는 게 수행이다.”는 말에 눈앞이 밝아졌다. 스님 말마따나 “수행기술이나 방편을 알려줄줄 알았는데 의외의 내려놓으라는 ‘방하착’ 한마디에 눈 귀가 열린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식품회사에 1년반을 다니면서도 ‘방하착’이 내내 머리에 휘돌아 결국 숭산 스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행자가 됐다. ●수덕사 등 한국의 유명 선원에서 안거 34차례 화계사에 온 게 1984년 4월 말이다. 수덕사, 정혜사, 신원사를 비롯해 전국의 이름난 선원에서 안거에 든 것만 해도 34차례. 숭산 스님의 법문에 감화돼 머리를 깎고 한국으로 출가한 50여명의 외국인 스님 가운데 가장 먼저 조계종 비구계를 받은 인물이다.‘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원을 받아들인 범어사 스님들이 머리를 깎아주었다.‘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로 유명한 현각 스님의 사형이기도 하다. 부산 흥법사 주지 심산 스님과 대구 관음사 회주 우학 스님은 당시 부산 범어사에서 함께 비구계를 받은 한국인 도반들이다. “나를 버리려 했던 내가 무거운 짐을 진 껍데기가 돼있음을 알곤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남의 생각과 손에만 이끌려 살고 있는 나였지요.” 2001년 화계사 국제선원장 시절이었다. 후배들 눈치도 보이고 해서 “내 손으로 뭔가 하겠다.”는 뜻을 숭산 스님에게 간곡히 알린 뒤 부산으로 내려가 무작정 시작한게 남산국제선원이다. 한국의 외국인 스님 가운데 가장 먼저 일선포교에 나선 것이다. 한국인 신도들을 직접 대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범어사 밑의 포교당으로 쓰이던 상가 건물의 방 하나를 빌려 ‘남산국제선원’ 간판을 붙이고 나니 신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엿하게 선원의 모양새를 갖춰갈 무렵 무상사의 주지 스님이 사정이 생겨 고국인 폴란드로 돌아가는 바람에 무상사로 옮겨와야 했다. “당시 신도들의 열성과 신심은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어요. 무상사에 와서도 신도들의 요청으로 매주 두번씩 부산에 내려가 법문이며 수행지도를 해야 했지요.” 이후 비구니 스님이 선원을 맡아 어렵게 꾸려갔지만 결국 문을 닫아야 했던 사연은 잊을 수 없는 아픔이다. 무상사에 와선 대웅전도 번듯하게 세워놓았고 지금은 건물들에 단청을 입히느라 바쁘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단청 불사에 매달려 손님 맞으랴 건물 손질하랴, 한참 만에야 스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의 절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처님의 상호를 떠올리게 하는 둥근 얼굴이다. 유난히 푸른 눈만 아니라면 걷는 폼새나 말하는 투며 영락없는 한국사람이다. “이런저런 불사들을 모두 도맡아 하자니 돈도 있어야 하고 사람도 있어야 하고 여간 어려운게 아니에요. 종단 지원 없이 모든 것을 다하려니 더 힘들어요.” 종각도 세워야 하고 숭산 스님 부도탑도 모셔야 하고…. 이런저런 욕심(?)을 주섬주섬 늘어놓는다. “이젠 사판승이 다 되었다.”며 겸연쩍어하는 스님의 말끝을 잡았다.“한국불교에서 무엇을 얻었느냐.”는 물음에 한참의 침묵 끝에 날 선(?) 말을 돌려준다.“한국불교에서 무엇을 구하려는 게 아니라 무엇을 갚고 살아야할지를 고민 중입니다.” 한국의 불교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의 수행전통을 오롯이 갖춘 채 염불과 불경 공부를 겸하는 통(通)불교의 성격을 갖지만 한국의 스님들은 이 ‘귀중한 보물’을 잘 모르고 사는 게 안타깝단다. 한 절집에서 이렇게 큰 일들이 어그러지지 않고 순탄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게 신기하다고 한다. 다그쳐 물었다. 발심(發心) 출가의 화두, 즉 ‘얼마나 내려놓았느냐.’는 미련한 질문에 서슴없는 답이 나왔다.“말에 집착함은 곧 허상에 쫓기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내려놓으라는 숭산 스님의 방하착도 길을 제대로 찾으라는 방편에 다름 아니지요. 끊임없이 묻고 의심하고 노력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무상사에선 남녀구별 없이 한방에서 함께 참선 ‘분별없는 말은 오해를 낳고 큰 화로 이어진다.’는 평범한 경계가 무상사에선 혹독한 묵언수행의 전통으로 서 있다.“묵언수행은 참회의 방편이 아니라 나를 찾는 수행의 큰 길”이라는 무심 스님의 지론을 따르는 무상사의 외국인 스님들은 보름, 수개월, 심지어는 수년간 묵언수행을 계속한다. 수행을 깨는 납자들은 가차없이 쫓겨난다. 구별과 차별 없는 ‘무상(無上)’의 큰 뜻은 수행공간에서 독특하게 살아 있다. 다른 한국의 선방들이라면 비구, 비구니, 남자신도, 여신도들이 각각 다른 방에서 참선에 들지만 이곳 무상사에선 한 방에서 모두가 함께 한다. 역시 무심 스님의 수행방식이다. 포교는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이해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무심 스님. 얼마전 아프간 피랍사건을 의식한 듯 불쑥 말을 꺼낸다.“한국인이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교나 기독교 포교를 하는 것과 내가 한국에 와서 불교 포교를 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인도에서 중국으로 간 달마대사도 처음엔 그곳 불교계에서 박대당했다는 비유와 함께 “나도 한국인들에게 무시와 질시를 숱하게 받았지만 지금 이렇게 한국인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느냐.”며 웃는다. “한국에 언제까지 살겠느냐.”고 물었다. 답은 생각대로였다.“불법을 위해 사는 사람이 어디에 살고 어디에서 죽는 게 무슨 상관이냐.”면서 한국과 인연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가 살 수도 있지만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많다고 넘긴다. 유대인의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한국불가에 귀의하지 않았으면 나도 역사 교사가 되었을 것”이라는 무심 스님.“깨끗한 물이나 오염된 물이나 모두 허물없이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어머니의 가슴과도 같은 넓은 도량의 한국불교를 택하는 눈 푸른 사람들에게 맑은 정신을 갖도록 하는 게 내 소임”이라며 기자를 배웅했다. ‘내려놓으라.’는 방편과 함께 받은, 스님의 ‘이 뭐꼬.’ 화두풀이는 계속되고 있었다. 계룡산 무상사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무심(無心) 스님은 ●195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 출생 ●1979년 보스턴대 화학과 재학중 숭산 스님 만나 발심 ●1980년 보스턴대 졸업 ●1984년 한국 입국, 화계사에서 법명 ‘무심´ 받음 ●1986년 범어사에서 비구계 수지 ●1985∼1989년 수덕사, 신원사 등에서 안거 ●1997년 화계사 국제선원에서 지도법사 자격 받고 공안지도 ●1999년 화계사 국제선원 수석지도법사 ●2002년 부산 남산국제선원 개원 ●2003년∼ 계룡산 국제선원 무상사 주지 및 지도법사
  • [씨줄날줄] 빛 바랜 평양선언/황성기 논설위원

    세계 최고 수준의 외교 관계를 자랑하는 나라 중 하나가 일본이다.191개국과 국교를 맺고 있다. 한국보다 3개국 많다. 유엔 정회원 192개국 중 북한 단 한 나라와 국교가 없을 뿐이다. 일본의 유일한 비수교국 북한은 올 들어 전방위 외교에 나서 국교수립 국가를 크게 늘리고 있다. 지난 7월 인구 62만명의 마케도니아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유엔 정회원국의 81.8%에 해당하는 157개국과 수교한 상태다. 납치와 북핵 문제만 없었다면 북한과 일본은 관계정상화를 이뤄냈을지도 모른다.2002년 9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북·일 정상회담 직전까지는 적어도 그런 기대가 컸다. 평양에서건 도쿄에서건 경협자금 규모를 놓고 주판알을 튕기기에 바빴다.100억달러설도 나왔다. 그러나 북측의 일본인 납치 시인, 일부 피랍자 사망 확인에 이어 2차 북핵 위기가 겹치면서 양국 관계는 빙하기로 접어든다. 일본은 역대 정권마다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에 공을 들였다.1990년 가이후 내각 시절 정계의 실력자 가네마루 신이 자민·사회당 대표단을 꾸려 방북했다. 이듬해부터 정식으로 수교회담이 시작됐다.‘일·중 국교회복 추진 의원연맹’을 결성한 2년 뒤인 72년 중국과 일본이 전격적으로 수교한 것과 비교하면 북·일 관계의 진전은 유례없이 더디다. 북·일 수교를 역사에 기록하고 싶었던 고이즈미 총리도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평양선언을 남겼다. 선언은 수교, 경협, 미사일발사 유보, 납치문제 해결 등을 담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실천된 게 없어 빛바랜 선언이 됐지만 관계 정상화에 이르는 최상의 로드맵인 것은 분명하다. “납치 해결 없이는 국교정상화도 없다.”는 아베의 퇴진으로 강경책에 변화가 예상된다. 후임 총리로 유력시되는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은 평양선언을 전후로 다나카 히토시 당시 외무성 아주국장과 대북 대화노선을 견지한 인물이다. 북한이 평양선언 5주년인 그제 관영매체를 통해 선언의 이행을 촉구했다.‘차기’에 거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유엔의 전 회원국과 국교를 수립한 명예를 차지하는 일쯤은 일본에 선뜻 양보하고 싶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아프간 조사단 새달 파견

    정부는 한국인 23명 피랍사태가 발생했던 아프가니스탄에 다음달 초쯤 관련 부처 당국자들로 구성된 현장 조사단을 파견, 안전 상황을 점검키로 했다.정부는 조사단 보고를 근거로 현지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들에 대한 체류 허가 여부를 다시 판단할 계획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한국인 납치’ 탈레반사령관 3명 사살

    지난 7월19일 한국인 23명의 납치 사건에 직접 개입한 탈레반 지역 사령관 3명이 아프가니스탄 경찰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AP통신은 16일 아프간 내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아프간 경찰들이 14일 한국인들이 피랍됐던 가즈니주 카라바그 지역에서 탈레반 소탕작전을 벌였다.”며 이렇게 전했다. 그러나 아프간 내무부는 살해된 탈레반 지휘관들의 구체적인 신원에 관해선 밝히지 않았다. 내무부는 이달 초에도 한국인 납치를 주도한 탈레반 지역사령관 물라 마틴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탈레반측은 이 사실을 부인했다. 가즈니에선 지난달 30일 한국인 인질들이 모두 풀려난 이후 아프간 정부가 통제권을 과시할 목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군사작전을 감행했다. AP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아프간에서는 4300여명의 희생자가 생겼는데 대부분이 탈레반 반군으로 드러났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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