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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5)안전 우려되는 한국의 단기선교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5)안전 우려되는 한국의 단기선교

    지난달 이집트에서 무슬림과 기독교인 간 충돌이 발생하자 일각에선 민주화 혁명이 종교 갈등으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기독교의 한 분파인 콥트교를 믿는 압둘라 만수르(32)는 카이로에서 기자와 만나 “갈등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건 일부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무슬림과 기독교가 서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싸울 일도, 오해가 생길 일도 없다.”고 말했다. ●대형교회 일방적 선교 활동 역풍 우려 오히려 중동 현지에서 활동하는 목사와 선교사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 일부 대형 개신교회의 자극적인 단기 선교 활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중동 각국의 정정이 불안한 상황에서 일방적인 선교 활동이 안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칫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중동의 유서 깊은 모스크를 방문해 그 주변을 돌면서 모스크가 무너지기를 기도하는 이른바 ‘땅 밟기’ 선교 활동이 거센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약성경 여호수아기에는 땅 밟기를 통해 요르단강 서안 예리코 성을 함락시켰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본적으로 상대를 멸망시키겠다는 관념을 바탕에 깔고 있는 셈이다. ●시내 한복판 ‘통성기도’에 현지인 기겁 현지 목사와 선교사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단기 선교팀들은 주로 대학생 등 청년부가 주축을 이루며 역사가 오래된 모스크를 찾아 주변을 돌면서 우상이 무너지길 기도한다. 랜드마크로 유명하고 일반 관광객에게도 개방되는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수도 아부다비에 있는 ‘그랜드 모스크’가 대표적 표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슬림들이 이 같은 의도를 알면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 있어 보통 두세명씩 조심스럽게 ‘땅 밟기’를 한다는 것이다. 일부 단기 선교단은 시내 한복판에서 무리지어 ‘통성 기도’를 해 현지인들이 기겁을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올여름도 수백명 중동 찾을 것” 중동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한 목사는 “영적으로 강한 곳, 주로 역사가 오래된 모스크에 가서 회랑을 밟고 지나가면서 우상이 무너지라고 ‘기도 사역’을 한다.”면서 “보통 대학생들로 구성된 교회 청년부가 단기 선교의 주축이다 보니 여름철에 집중적으로 땅 밟기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여름에도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이 중동을 찾을 것이라고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현지 무슬림들은 선교를 하는 이유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카이로의 한 시민은 “선한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준다면 주변에서 그가 믿는 종교에 호감을 갖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동 전문가인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학대학원 교수는 “중동에서 이슬람은 단순히 개인의 믿음이면서 동시에 과거 한국에서 유교가 그랬던 것처럼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공식적·비공식적 제도라고 할 수 있다.”면서 “그들이 한국 선교사를 경계하는 것은 한국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사회 시스템을 적대시하고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비치게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교사는 “현지에서 어렵게 만들어놓은 우호적 분위기가 단기 선교 한 번이면 물거품이 된다.”면서 “현지와 협의 없이 보여주기식으로 보내지는 단기 선교단은 오지 말아 달라고 권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글 사진 아부다비 강국진 순회특파원 betulo@seoul.co.kr
  • MB ‘아덴만 영웅’들 청와대 초청 격려

    MB ‘아덴만 영웅’들 청와대 초청 격려

    “우리 국민은 작년에 있었던 상처를 여러분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이제 우리 군은 어느 때 어디서든지 생명을 위협하는 곳에서는 ‘여명작전’과 같이 완벽하게 우리 국민을 보호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30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선원들을 구출한 ‘아덴만 영웅’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고 격려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지난 1월 피랍된 삼호주얼리호의 구출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청해부대 최영함 소속 특수전(UDT/SEAL) 대원 등으로 최근 수개월의 임무를 마치고 귀국했다. 이 대통령은 무공훈장과 무공포장, 대통령표창 등을 수여해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끈 대원들의 공로를 평가했다. 이에 대원들은 최영함 모자와 군함의 취역기를 이 대통령에게 선물로 증정했다. 이 대통령은 “이제 우리 군은 새로운 군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국민으로부터도 새롭게 신뢰받는 군으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조영주 대령을 위시한 전원이 우리 군이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맞는 것에 기여했으며, 300여명 모두가 다 훈포장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1진에서 5진까지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고 7진도 여러분의 전통을 이어받아 국제사회에서 가장 용감한 부대로 인정받고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최영함 함장인 조영주 대령은 “군인으로 본분을 다했을 뿐인데 과분한 환영을 해 주신 대통령께 감사한다.”면서 “앞으로도 지휘관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해 적이 넘볼 수 없는 부대로, 싸우면 이기는 부대가 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에 대해서는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 후 따로 일정을 잡아 격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찬에는 김관진 국방장관과 한민구 합참의장, 임태희 대통령실장, 이희원 안보특보, 정진석 정무수석, 홍상표 홍보수석 등이 참석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씨줄날줄] 인간방패/박대출 논설위원

    1945년 4월. 오키나와에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됐다. 일본은 소년병 1만명을 최전방에 세웠다. 그들은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 갔다. 미군은 인간방패(Human Shield)라고 불렀다. 인간방패란 말이 처음 등장한 순간이었다. 이후 전쟁사에서 공식 용어가 됐다. 하지만 전례는 꽤 있다. 2차 대전 때 독일군은 소련 민간인 포로들을 앞줄에 세웠다. 스탈린은 단호했다. “적을 돕는 자는 적이다. 그들을 공격하지 않는 부대도 적이다.” 포로들 역시 인간방패였다. 칭기즈칸은 포로들을 화살받이로 삼았다. 인간방패는 오래된 전술이다. 미군이 영어 표현으로 쓴 뒤부터 공식 용어가 됐을 뿐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강제성을 근간으로 한다. 비인도적이고 반인륜적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발적인 인간방패들이다. 우리 학도병처럼. 한국전쟁에 참전한 학도병은 27만 5200명에 이른다. 군사편찬연구소의 한국전쟁 통계집에 나온다. 학도병은 총알받이를 자처했다. 고대 스파르타와 아테네 전쟁 때도 전례가 있다. 아테네 부녀자들은 손을 묶고 성을 둘러쌌다. 화살받이였다.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다. 자기 희생이다. 상반된 사례는 진행형이다. 보스니아 내전 때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포로를 인간방패로 내세웠다. 탈레반 반군은 파키스탄 주민을 인간방패로 삼았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장갑차에 묶었다. 강제적 사례들이다. 반면 반전 운동가들도 애용한다. 인간방패프로그램(HSP), 이라크 평화팀(IPT) 등은 국제적인 단체다. 그들은 이라크전에서 인간방패로 활동했다. 자발적 사례들이다. “오사마 빈라덴이 부인을 인간방패로 삼았다.” 미국은 이 발표를 하루 만에 뒤집었다. 빈라덴은 비무장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백악관 측은 실수라고 주장한다. 그를 악으로만 몰려다가 곤혹스럽게 됐다. 이 때문에 의혹이 꼬리를 문다. 처음부터 사살을 의도했다는 의문을 낳았다. 국제법적 논란으로 이어졌다. 부인이 빈라덴 앞에 선 이유도 확실치 않게 됐다. 강제적인지, 자발적인지. 지난 1월 아덴만 여명작전 때가 연상된다. 특수전 요원들이 피랍 선원 21명을 구출했다. 합참은 모두 무사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석해균 선장은 위독했다. 생과 사를 넘나들다가 기적적으로 회생했지만. 무혈 작전을 부각시키려다가 힘이 너무 들어갔다. 과잉 홍보는 효과를 반감케 한다. 괜스레 의혹을 낳을 수도 있다. 솔직하면 탈이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고금의 진리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한국인 4명 탄 싱가포르 선박, 해적에 피랍[속보]

     한국인 4명이 탑승한 싱가포르 선적 화학물질 운반선이 지난달 30일 케냐 인근 해역에서 해적으로 추정되는 괴한들에게 납치됐다고 선박 소유사가 1일 밝혔다.  글로리 십매니지먼트사는 한국인 4명 등 25명이 탑승한 화학물질 운반선 ‘MT GEMINI’호가 전날 케냐 해역을 지나던 중 해적으로 추정되는 괴한들이 선박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MT GEMINI’호에는 당시 선장과 선원 등 한국인 4명,인도네시아인 13명,미얀마인 3명,중국인 5명이 타고 있었으며 인도네시아산 야자유가 실려 있었다.  피랍 선박은 현재 소말리아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선박 소유사는 전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7) ‘삼민주의’ 쑨원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7) ‘삼민주의’ 쑨원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孫文·1866~1925). 그가 내세웠던 ‘삼민주의’ 곧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는 한마디로 말하면 ‘구국주의’이다. 삼민주의는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건국할 수 있게 만든 혁명 정신이었고, 외세로부터 중국의 통일을 지켜낼 수 있게 하는 이념적 모토였다. 쑨원의 유훈을 받든 장제스나 마오쩌둥 등에 의해서 삼민주의는 재해석되고 계승되었다. 그리고 지금 쑨원은 중국과 타이완 양쪽에서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다. 성공한 혁명가 쑨원. 이상이 우리가 보통 상식으로 알고 있는 쑨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실제 쑨원의 삶은 이와 달랐다. 현실의 쑨원은 혁명가로 이름을 내건 이래로 단 한번도 혁명 봉기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신해혁명을 알리는 1911년의 우창 봉기까지도. 한마디로 쑨원의 삶은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 무엇이 혁명 봉기에 계속 실패한 그를 성공한 혁명가의 아이콘으로 기억하게 만드는가. 쑨원에게 혁명이란 과연 무엇이었고,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쑨원은, 혁명은 또 어떤 의미인가. ●직업 혁명가 쑨원의 탄생 1800년대 청나라가 외국에 문을 열어 놓고 있었던 유일한 곳 광둥성 광저우. 근처 농촌의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쑨원은 외국인과 그들의 생활 및 문화에 대해서 낯을 가리지 않았다. 이 지역 출신자가 으레 그러했듯 그의 집안에도 해외에 나가서 돈을 버는 친척들이 있었던 까닭이다. 쑨원은 하와이에서 일하는 형 덕분에 근대적 교육과 기독교에 접할 수 있었고, 이후 의학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전근대적인 청나라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고, 중국은 점차 서구 열강들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었다. “대체로 중국과 조약을 맺은 나라는 모두 중국의 주인이다. 따라서 중국은 한 나라의 식민지가 아니라 여러 나라의 식민지가 되어 있고, 우리는 한 나라의 노예가 아니라 여러 나라의 노예가 되어 있다. … 이것을 보아도 중국이 안남이나 조선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래서 중국을 반(半)식민지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내가 만든 명칭에 따르자면 ‘차(次) 식민지’라고 불러야 한다.”(‘민족주의’ 제2강, 1924년 2월) 1895년 전근대시기 세계 최대 제국의 하나였던 청나라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무참히 패배했다. 서구 열강도 아닌,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했다는 사실에 중국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중국의 멸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위기감은 강력한 민족주의적 신념과 혁명적인 방법을 통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쪽으로 쑨원을 몰고 갔다. ‘만주족을 몰아내고 공화국을 건설하자.’ 혁명이 그의 답이었다. 쑨원은 요동치는 정국을 틈타 혁명 봉기를 도모했다. 하지만 쑨원의 봉기는 시작도 하기 전에 청 정부의 감시와 단속에 발각됐다. 함께 거사를 도모한 동지들 중 일부는 정부군에 잡혀 처형을 당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한 이 거사로 쑨원은 반체제의 길로, 직업적 혁명가의 길로 들었다. 이후 혁명은 그의 삶이 되었다. 한번은 쑨원이 해외의 지원자를 모으기 위해 영국 런던에 갔다가 런던 주재 중국 공사관 관헌에게 잡힌 일이 있었다. 쑨원의 자칭 ‘피랍’ 사건은 그의 이름을 중국보다도 해외에서 먼저 반체제 혁명가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쑨원은 하와이를 필두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가는 곳마다 중국혁명을 역설했다. 그들로부터 한두 푼 피땀이 가득 밴 후원금을 모금했다. 그리고 그는 혁명의 불길을 살리고,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하기 위해 항상 봉기를 일으켰다. 그것의 성공과 실패는 상관없이 그는 항상 격동하는 중국의 근현대사와 온몸으로 부딪쳤다. ●혁명, 다시 한번 더 1905년 쑨원은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 보황회와 힘겨운 각축을 벌였다. 그는 혁명과 공화를 기치로 내건 단체들이 연합해 만든 중국동맹회의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당시 쑨원만큼 서구 열강을 다루는 교섭에 뛰어나다고, 해외 화교 사회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평가를 받은 자가 드물었던 덕분이다. 쑨원은 중국혁명에 열강들이 개입할까 항상 우려했다. 쑨원에게는 열강들의 이권다툼 속에서 중국의 운명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 냉철함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쑨원이 도모했던 봉기들, 가령 광둥, 광시, 윈난 등 남서부 변방의 봉기들은 모두 실패했다. 1911년에 일으키려고 했던 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쑨원에게는 중국 국내에 어떠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기반도 없었다. 이 때문에 쑨원을 대하는 서구 열강의 시선도 냉담해졌다. 열강들은 중국에서 자신들의 이권을 지켜낼 수 있느냐, 쑨원에게 그럴 만한 힘이 있느냐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쑨원이 기댈 것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민중의 불만과 혁명적 열기뿐이었다. 쑨원은 자신을 대하는 서구 열강의 시선이 냉담해질수록 민중의 혁명적 열기에 의지했고, 그것을 혁명 이상으로 녹여 내는 작업에 매진했다. 삶이 계속되듯 쑨원의 혁명은 계속되었다. ●1911년, 혁명정신을 갖고 온 사나이 쑨원은 우창 봉기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미국에서 신문을 통해 접했다. ‘열 번째 패배’에서 잠시 낙담한 뒤, 다시 활동을 재개하려고 움직이고 있던 찰나였다. 우창 봉기가 성공했다는 소식이었지만, 쑨원은 서둘러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워싱턴, 런던, 파리를 경유해서 귀국하는 긴 행로를 선택했다. 긴 항해를 마치고 1911년 말 상하이에 도착한 쑨원. 사람들은 그에게 무엇을 갖고 왔느냐고 물었다. 쑨원의 답은 간단했다. ‘혁명 정신’을 갖고 왔노라. 쑨원이 세계를 돌고 돌아 귀국한 까닭은 바로 열강들에게 중국 혁명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기 위해서였다. 열강의 이권 다툼으로 중국이 사분오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쑨원에게 중국 혁명의 성공은 외세의 중국 분할 없이 전 영토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형태로 공화제 혁명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중국 혁명의 과정에서 보여 줬던 통일된 중국에의 염원, 이것이야말로 쑨원을 중국을 낳은 아버지로 추앙받게 만든 힘이었다. 혁명이 성공한 후에 쑨원이 보여준 행적도 중국의 통일이라는 궤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공화정에 맞춰 비밀결사의 구태를 벗은 동맹회는 국민당으로 거듭났다. 국민당의 대표로 선출된 쑨원은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군사적인 기반이 약했던 그는 초대 대총통의 자리를, 당시 베이징을 중심으로 기반을 잡고 있던 위안스카이(袁世凱·1859~1916)에게 양보했다. 쑨원에게서 혁명은 공화정의 수립으로 완성됐기도 했지만, 외세에 흔들리지 않는 강하고 하나 된 중국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1912년 마침내 중화민국이 수립됐다. 그러나 혁명 정신의 완성태로 보였던 공화정은 잘 굴러가지 않았다. 선거를 통해서 만들어진 임시약법은 믿었던 위안스카이 등 정치가들에게 유린당했다. 아첨, 뇌물, 협박과 살인이 횡행했다. 설상가상으로 1915년 위안스카이의 칭제(稱帝)와 군벌의 난립으로 중화민국의 기반은 흔들렸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쑨원의 방식 “또 다른 거사를 분주히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나는 모든 일을 직접 지휘하겠다.”라고 쑨원은 미국인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말했다. 중화민국의 성립과 더불어 역사에서 사라진 듯 보이는 쑨원.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국민당을 재정비하고, 혁명 세력을 결집시키고, 그들을 훈련시켰다. 삼민주의로 혁명 정신을 다잡았다. 1923년 쑨원은 마침내 광둥을 진원지로 한 통일을 위해 북벌을 선언한다. 하지만 그는 혁명의 시작점에서 그 결과를 보지 못한 채 1925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쑨원은 단 한번 성공한 1911년의 혁명에서 무참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쑨원은 결과물로 주어진 현실을 견주고, 재고, 제도화하는 정치에 서툴렀으므로 새로 만들어진 공화정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쑨원은 그 실패에서 혁명이 결코 공화제라는 정치체제의 수립만으로 이뤄질 수 없음을 알았다. 쑨원은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전히 혁명 정신은 유효하고, 중국은 통일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쑨원은 중국의 통일을 향한 외침, 북벌을 선언한 채 죽었다. 그는 혁명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그 길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혁명이란 오로지 길 위에서 끝나지 않는 과정으로만 말해지지 않던가. 그래서 쑨원에게 혁명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지금 여기 혁명의 이름으로 그는 항상 살아 있다. 이것이 바로 ‘혁명가’ 쑨원이 갖는 의미다. 최정옥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한인 4명 탄 싱가포르 선박 피랍

    한인 4명 탄 싱가포르 선박 피랍

    선장과 선원 등 한국인 4명이 승선한 싱가포르 선적 화물선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아프리카 케냐 인근 해역에서 해적에게 납치됐다. 선박 소유사인 글로리 십매니지먼트사는 1일 성명을 내고 한국인 등 25명이 탄 2만 1000t 화학물질 운반선 ‘MT 제미니’호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오전 7시30분쯤 케냐 몸바사항에서 남동쪽으로 320㎞ 부근 해역에서 해적으로 추정되는 괴한들에 납치됐다고 밝혔다. 피랍 선박은 소말리아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피랍 당시 ‘MT 제미니’호에는 선장 박모(56)씨와 선원 등 한국인 4명, 인도네시아인 13명, 미얀마인 3명, 중국인 5명 등이 타고 있었으며 인도네시아산 야자유가 실려 있었다. 외교통상부는 사건 직후 싱가포르 측으로부터 피랍 사실을 통보받고 본부 및 주싱가포르 대사관에 대책반을 구성, 싱가포르 측에 신속하고 안전한 구출작업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선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싱가포르 선사 측이 협상에 나서게 될 것”이라며 “싱가포르 측으로부터 실시간 정보를 받아 대책을 계속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정부에 따르면 아직 해적으로부터 연락은 없었으며 선원들 피해도 파악된 내용이 없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정부는 싱가포르측과 해적 간 협상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고, 구출작전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아직 우리 군이 관여할 사항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청해부대 최영함은 현재 아덴만 해역에서 충무공이순신함과 임무 교대를 위해 준비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김균미·김미경기자 kmkim@seoul.co.kr
  • 법원 “샘물교회 피랍자 국가배상 책임없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 정일영)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납치돼 살해된 샘물교회 신도 A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는 ‘여행경보제도’를 운영하면서 인터넷과 언론매체 등을 통해 꾸준히 아프간의 불안한 정세와 탈레반의 테러 가능성 등을 국민에게 공표해 여행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면서 “물적·인적 자원의 한계상 국가가 아프간을 여행하고자 하는 개인에게 이 같은 사실을 일일이 알릴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A씨의 부모는 국가를 상대로 3억 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국제 해적들 ‘투자 -납치-협상’ 전문화

    국제 해적들 ‘투자 -납치-협상’ 전문화

    “‘선박 내 긴급대피소’를 자세히 묘사하지 말아 주세요. 해적들에게는 오히려 생생한 정보가 됩니다.” 지난 21일 한국선원 14명이 탑승한 한진텐진호가 피랍위기에서 벗어난 직후 이 같은 편지가 일부 언론사에 배포됐다. 자신을 네덜란드에 정박 중인 국내 컨테이너선 기관장의 아들이라고 소개한 발신자는 “아버지가 인도양을 지나 유럽을 오갈 때마다 한숨도 못 잔다.”면서 “업계에선 해적들이 국내 뉴스를 꼼꼼히 읽어 본다는 소식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도 “소말리아 해적과 연계된 외곽조직에는 한국인이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해적들은 국내 선박 납치에 성공하면 국내 언론보도를 활용, 고도의 심리전을 펼친다.”고 전했다. 24일 국제해사국(IMB)과 국토해양부 등에 따르면 최근 소말리아 해적 조직들은 기업 뺨치는 유착고리를 갖고 진화하고 있다. 투자·납치·협상팀으로 나뉘어 치밀한 작전을 펼치는 데서 나아가 고도의 심리전도 구사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앞서 한 대형선박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을 때 선원들은 해적들이 건넨 위성전화로 수시로 부산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면서 “해당 선사 관계자가 몸값 협상을 벌이기 직전이나 직후여서 혀를 내둘렀다.”고 말했다. IMB 공식사이트(www.icc-ccs.org)에는 해적들의 생생한 모습도 담겨 있다. 한진텐진호 사건 발생 이튿날인 22일에는 인근 해역에서 대형 유조선과 컨테이너선이 잇따라 공격받았다. 한진텐진호를 공격한 것으로 추정되는 16명의 해적들이 소형보트 4척에 나눠 타고 대형 컨테이너선 180m 옆까지 접근, 총기를 난사했다. 또 다른 해적들은 유조선에 탑승한 보안요원들과 총격전을 벌인 뒤 퇴각했다. 지난달 12일 아덴만에 출몰한 해적선에는 대전차 로켓포가 실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적들의 ‘기업화’는 이미 업계에선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아가 요즘은 아예 조합형태로 진화했다. 투자금을 모아 납치계획을 꾸민 뒤 납치에 성공하면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배분하는 식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최근 소말리아 해적들의 투자자는 마약상이나 무기판매상 등으로, 투자에 일종의 기업공개(IPO) 방식을 도입했다. IMB 관계자는 “지난 14일까지 전세계적으로 156건의 해적 관련 사고가 일어났다.”면서 “소말리아 해적은 이 중 107건과 연계됐고, 지금도 26척의 배와 532명의 선원을 억류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사설] 한진호 해적 대응 매뉴얼 전 선박에 적용해야

    한진해운 소속 컨테이너선인 7만 5000t급 한진텐진호가 그제 인도양 해상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될 뻔했으나 위기를 모면했다.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선원들이 모두 안전한 것은 침착하게 매뉴얼대로 대응한 게 주요인이다. 선장은 총격소리를 듣고 해적의 공격이라는 것을 직감, 즉각 엔진을 정지시키고 선내 방송을 통해 선원들에게 시타델(citadel)로 불리는 긴급피난처로 피신하도록 했다. 선원들은 평소 훈련한 대로 재빠르게 긴급피난처로 모였다. 긴급피난처의 문은 13㎜의 강철로 돼 있어 해적의 총알도 뚫을 수 없다. 선교(船橋)에서는 AK소총 실탄 2발 등 실탄 3발과 어지럽게 찍힌 맨발 자국, 기관 조종을 시도한 흔적 등 해적에 의한 피랍 미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선원들의 신속한 대응이 참사를 막은 것이다. 해적들이 규모가 큰 컨테이너선까지 납치하려 한다는 것은 그만큼 대담하고 흉포화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한진텐진호의 사례에서 철저한 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알 수 있다. 지난 1월 해적에게 납치됐던 삼호주얼리호를 무사히 구출한 이후 정부는 해적이 출몰할 위험한 해역을 지나는 선박에 대해서는 긴급피난처를 설치하도록 했다. 한진텐진호는 긴급피난처를 제대로 갖췄지만, 영세한 선박의 긴급피난처는 안심할 수 없다. 긴급피난처를 만드는 데는 수억원이 든다고 한다. 사람의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 영세한 곳에는 선주협회나 정부가 보조해 주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한진텐진호의 긴급피난처에는 원거리 교신이 가능한 장비가 없어 교신이 불가능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원거리 교신이 가능한 장비를 모두 갖추도록 해야 한다. 보안요원도 탑승시키고, 청해부대의 헬기 성능도 보강할 필요가 있다. 한진텐진호 선원들처럼 평소 긴급사태를 가정한 훈련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만약의 사태에도 비극을 막을 수 있다.
  • “한진텐진호 납치 실패후 해적들 伊선박 납치한 듯”

    지난 21일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한진텐진호를 납치하려 했던 소말리아 해적은 16명 정도로 구성됐으며, 이들은 한진텐진호 납치에 실패하자 근처에 있던 이탈리아 선박을 납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군이 밝혔다. 이성호 합참 군사지원본부장은 22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사태 당시의 (인접)상황으로 봤을 때 해적은 16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당시 상황에 대한 현안보고를 통해 “링스헬기 및 최영함이 근접 정찰을 하면서 K6 100발과 함포 6발을 경고 사격했다.”면서 “작전 당시 해적은 없었지만 정상적인 인질구출작전을 펼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이어 “한진텐진호 좌·우현에서 해적이 사격을 가해 오자 선원들이 모두 안전구역으로 대피해 해적의 승선 여부를 알지 못했다.”면서도 “AK 소총 실탄 3발을 선교와 안전격실(긴급피난처) 앞에서 발견했고 선교 바닥에서 맨발 발자국을 다수 확인했으며, 해적들이 상용인공위성 전화기를 사용하고 기관 조종을 시도한 흔적도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합참 관계자는 “청해부대 최영함의 링스헬기가 전날 피랍 위기를 모면한 한진텐진호에서 25마일 떨어진 해상에서 이탈리아 선박 주변에 있는 해적의 선박을 식별했다.”면서 “한진텐진호를 공격한 해적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최영함의 링스헬기가 한진텐진호 인근에서 해적 선박을 보지 못했지만 이탈리아 선박 주변에서 해적으로 추정되는 모선 1척과 자선 2척을 식별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항은 한진텐진호 구출을 돕기 위해 먼저 출동한 터키군함의 헬기도 확인했다고 합참은 설명했다.그는 이어 “터키군함 헬기와 청해부대 헬기가 현장에 도착한 시각과 주변 정황을 미뤄 볼 때 이탈리아 선박을 납치한 해적이 한진텐진호를 납치하려 했던 해적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진텐진호는 이날 정상운항을 재개했으며 최영함의 호위를 받아 당초 목적지인 싱가포르로 향하고 있다. 한진해운에 따르면 한진텐진호 선체에는 전혀 이상이 없으며, 전날 구출작전에서 관측된 연기도 외부 공격으로 인한 피해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오상도·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완벽한 시타델’이 피랍 막았다

    ‘완벽한 시타델’이 피랍 막았다

    21일 새벽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 해역을 항해하던 한진해운 소속 컨테이너선인 한진텐진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될 뻔하다가 구조됐다. 선박에 타고 있던 선원 20명은 선박 내 마련된 긴급피난처로 피신해 안전했으며, 오후 7시 30분쯤 청해부대 최영함에 의해 전원 구출됐다. 외교통상부와 국방부에 따르면 한진텐진호는 오전 5시 15분쯤 국토해양부 상황실로 위험신호를 보낸 뒤 연락이 두절됐다. 이 사실은 청해부대를 통해 합동참모본부로 전달됐으며, 한진텐진호는 소말리아 동방 460마일 해상에서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정부는 위험신호 이후 연락이 두절되자 해적에 의한 피랍 등 위험에 빠진 것으로 파악하고, 청해부대 최영함을 급파하는 한편 연합함대에 지원을 요청, 인근에 있던 터키군함이 오전 8시 30분쯤 현장으로 출동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터키군함이 헬기를 띄워 현장을 살펴보니 선박이 정지된 채 갑판은 점등 상태였고 외부에 해적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해 왔다.”면서 “선원들이 안전지대로 대피해 있다고 파악하고, 최영함을 현지에 투입해 안전하게 선박을 장악하는 작전을 세웠다.”고 말했다. 이어 최영함 링스헬기는 오후 2시 30분 한진텐진호에 접근했으며, 최영함은 오후 4시 40분쯤 선박에 접근했다. 청해부대 UDT팀은 오후 6시 30분쯤 승선해 격실을 모두 뒤지고 피난처에 있던 선원 20명 전원의 안전을 확인하면서 1시간 만에 상황을 종료했다. 한 관계자는 “최영함이 바로 승선하지 않고 인근을 순회하면서 주변을 상세히 점검했다.”면서 “오랜 시간 동안 해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매복해서 우리를 유도사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고 말했다. 합참에 따르면 선박 내 해적은 없었으며, 선상에서 해적의 것으로 추정되는 AK소총 실탄 3발을 수거했다. 합참 관계자는 “선교에 다수의 맨발 자국이 발견된 점으로 보아 해적들이 선교까지 올라온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진해운 측은 “해적으로부터 두 차례 총격을 받은 직후 엔진을 정지시키고 피신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진해운 측이 피난처 및 물대포 설치 등 자체 안전대책을 잘 세워 선원들이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며 “삼호주얼리호 피랍 사건 후 상선회사들이 자구책을 많이 강구했다.”고 말했다. 한진해운 측은 승선 1주일 전부터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철제 빔을 갖춘 긴급피난처는 물론 강력한 물대포를 갖추는 등 만일의 해적 공격에 대비하며 운항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번 삼호드림호 구출 과정에서 겪은 물질적·정신적 피해는 상당하다.”며 “이번 한진텐진호 사건의 경우 준비를 잘해 작전비용을 빼고 전혀 들지 않았고, 국제사회의 신용도도 얻게 됐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선원 20명이 모두 무사하다는 소식에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 직원들은 크게 안도하는 모습이다. 김영민 사장을 반장으로 하는 비상대책반의 임직원 10여명은 자리를 지키며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 직원은 “600여명의 본사 임직원들이 오늘 하루 천당과 지옥을 오간 기분”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오후까지만 해도 선원들의 생사가 불투명해 속을 태웠다. 선박과 선원을 관리하는 부산의 한진 해사그룹(HSM)도 밝은 표정이다. HSM 측은 “선원이 모두 안전하다고 하니 무척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HSM은 한진텐진호 선원들 스스로 선박 상태를 점검해 큰 문제가 없으면 애초 예정대로 운항을 재개하도록 할 방침이다. 다만 선박 운항에 지장이 있다면 배를 가까운 항만으로 이동시켜 수리하게 할 예정이다. HSM 관계자는 “해군과 정부, 국민들께 감사드린다.”면서 “구체적인 상황을 분석해 비슷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오상도·오이석기자 chaplin7@seoul.co.kr
  • “석해균 선장님 완치되면 제주 오세요”

    우근민 제주지사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다가 구출되는 과정에서 크게 다친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에게 제주도 방문을 요청했다. 제주도는 우 지사가 지난 23일 아주대병원에 입원 중인 석 선장에게 전화를 걸어 쾌유를 빌고, 완치되면 가족과 함께 제주도를 공식적으로 방문해 달라고 말했다고 24일 밝혔다. 우 지사는 석 선장이 지금까지 제주도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해 꼭 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 석 선장은 “배를 타고 안 가본 나라가 없는데 아직 제주도를 못 가봐 퇴원하면 집사람과 함께 꼭 제주에 가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이대통령 병문안…석선장 “꼭 나아 마도로스복 입고 뵙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5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다 구출되는 과정에서 크게 다친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직접 찾아 쾌유를 빌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에 입원한 석 선장을 문병하고 석 선장의 부인과 부모를 위로했다. 또 의료진으로부터 석 선장 상태를 설명듣고 노고를 치하했다. 이 대통령은 먼저 석 선장의 손을 잡으며 “살아나서 너무 고맙다.”고 말을 건넸고, 석 선장은 “대통령님께서 저를 살려주셔서 고맙다.”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은 “작전을 지시해 놓고 선장이 다쳤다고 해서 마음에 얼마나 부담을 가졌는지 모른다.”며 석 선장의 중상 소식을 들은 뒤의 심경을 전했다. 이어 ”정말 훌륭하다. 해군 함대 사령관을 해야 될 사람이다. 지휘관으로서의 정신이 (있다)”고 치하했다. 이에 대해 석 선장은 “나는 그 배의 선장이다. 선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말 (문병) 오고 싶었는데 (회복에) 방해가 될까봐 못 왔다.”면서 “내가 해군으로부터 석 선장이 안에서 큰 작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우리도 작전을 해도 되겠구나 하고 판단했다.”고 당시 결정 순간을 전했다. 이 대통령은 “빨리 퇴원해서 걸어 나와야 ‘아덴만 여명작전’이 끝이 나는 것”이라며 석 선장의 빠른 쾌유를 빌었다. 이어 “마도로스 복을 한 벌 만들라고 했다.”면서 선장 예복을 석 선장에게 선물하고 직접 모자를 씌워줬다. 특히 “퇴원하면 이 예복을 입고 청와대에 가족과 함께 와달라. 모든 국민이 사랑하고 기대하고 있으니 의지를 갖고 빨리 일어나 달라.”며 석 선장과 그의 가족들을 청와대에 초청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소말리아 해적, 삼호드림호 납치도 가담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던 소말리아 해적들이 삼호드림호 납치에도 가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서울신문 2011년 2월 2일자 1, 6면> 부산지검은 25일 삼호주얼리호 피랍 사건에 대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석해균 선장에게 소총을 난사한 마호메드 아라이(23) 등 소말리아 해적 5명을 해상강도살인미수 등 혐의로 전원 구속기소했다. 또 선박 및 해상구조물에 대한 위해행위 처벌법(선박위해법) 위반과 특수공무집행 방해 혐의를 추가했다. 아라이는 검찰 수사에서도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피랍 선원들과 작전 해군들의 진술, 아주대병원 의료진들에 대한 출장조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감식과 국방과학연구소의 총기발사 실험 결과 등을 근거로 아라이를 총격의 범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또 배후 세력과 관련, 해적들에게 고속보트와 무기, 식량 등을 제공한 현지 투자자가 ‘마하드 유수프’라는 제3의 인물이라는 해적들의 진술을 받아냈다. 다만 그 내용을 아는 두목과 부두목이 이미 사살되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못했다. 검찰은 사살 또는 생포된 해적 13명 중 일부는 지난해 4월 삼호드림호 납치에도 가담했다는 위성통화상의 증거도 확보했다. 부산지법은 외국인전담 재판부인 형사5부(부장 김진석)에 사건을 배당하고 이르면 3월 말이나 4월 초쯤 첫 심리를 진행하기로 했다. 해적 5명은 현재 수감돼 있는 부산주례구치소에서 계속 생활하면서 재판를 받게 된다. 이들은 형이 확정되면 외국인 교도소가 있는 천안교도소로 이감돼 징역형을 살게 된다. 수감된 해적들은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구치소 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간단한 한국말을 배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다 조사 일정에 빠진 해적은 교도관들에게 장난을 걸기도 하고 한국 생활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美軍의 굴욕

    요트를 타고 아라비아해 인근 해역을 지나다 지난 18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미국인 4명이 전원 살해됐다. 미국인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살해되기는 처음으로, 미군의 구출 작전 도중 살해됐다는 점에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으로서는 굴욕적인 작전 실패의 오명을 안게 됐다. 미 중부군 사령부는 22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미 해군 함정이 소말리아로 끌려가던 피랍 요트 ‘퀘스트호’를 추적하던 중 해적들과 교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요트에 승선해 있던 미국인 4명이 희생됐다고 밝혔다. 동부 아프리카 시간으로 오전 9시 해적들이 요트에서 미군 함정을 향해 로켓 추진 수류탄을 발사했고, 직후 요트 안에서 총성이 들려 즉각 요트를 급습했으나 이미 인질 4명은 총상을 입은 상태로, 군의 응급조치에도 불구하고 끝내 숨지고 말았다는 게 미군 당국의 설명이다. 요트를 급습하는 과정에서 미군과 해적들 사이에 교전이 벌어져 해적 2명이 숨지고 13명이 체포됐으며, 또 다른 해적 시신 2구가 요트에서 발견됐다. 숨진 미국인들은 요트 소유주 부부인 스캇 애덤과 진 애덤, 그리고 필리스 매케이와 봅 리글 등 두 쌍의 부부다. 이들은 태국 푸켓을 출발해 인도 뭄바이를 거쳐 오만 살랄라로 향하던 중 납치됐었다. 미군은 요트 피랍 사건이 발생한 직후 함정과 헬리콥터를 동원, 요트를 근접 추적하면서 협상과 함께 구출작전을 모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9일 인질들에게 긴급한 위협이 가해질 경우 미 해군이 무력을 사용하도록 승인했었다고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이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개탄스럽다.”면서 “해적 소탕을 위한 국제협력이 더욱 절실하다.”고 밝혔다. 한편 자신의 신분을 해적이라고 밝힌 한 인물은 로이터 통신과의 전화통화에서 미군이 요트를 향해 조준 사격해 해적 2명이 숨지자 나머지 해적들이 곧바로 인질들을 보복 사살했다고 말했다. 사실일 경우 구출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인질들이 희생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해적에 수면제 투여 시도…사랑하는 아내에게 큰 빚”

    “해적에 수면제 투여 시도…사랑하는 아내에게 큰 빚”

    소말리아 해적들로부터 4개월 만에 풀려난 금미305호 김대근(54) 선장이 피랍기간 동안 기록한 일기 내용이 16일 국내 언론에 공개됐다. 일기에는 해적들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탈출을 시도하려던 일, 해적질에 동원됐던 사실, 아내를 향한 그리움 등 절박했던 심경이 담겨 있다. 김 선장의 부인 이모(54)씨는 16일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어제 남편과 통화했는데 일기 등 그런 말은 없었다.”면서 “피랍기간 동안 남편이 겪은 고초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선다.”고 말끝을 흐렸다. 금미호는 석방 6일 만인 지난 15일 오전 8시(한국시간 오후 2시) 케냐 몸바사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다음은 김씨의 피랍 일기 일부이다. ●해적 허점 찾을 수 없어 좌절 배에 대게 마취용 수면제가 1000알 정도 있어서 해적들이 차를 마실 때 수면제 탄 물을 마시도록 주방장에게 당부했다. 그러나 주방장은 “잘못하다간 우리 모두 죽는다.”고 울면서 사정을 했다. 그래도 수면제를 먹고 조는 놈 있으면 너와 내가 총을 빼앗아 죽기를 불사하고 싸우자고 결의했지만 허점을 찾을 수 없어 결국 포기했다. 차라리 내가 수면제 먹고 잠들어 버릴까 수없이 생각했다.(2010년 10월 12일) ●재벌 부럽지 않은 해적 상선 1척 잡으면 기본이 600만 달러라고 하니 그 돈으로 케냐, 동남아, 유럽 등지에 부동산을 사고 주식도 사고 재벌보다 더 잘살고 있는 실정이다. 케냐 선원들한테 한달 급료가 얼마냐고 묻기에 150달러 정도 된다니까 해적들이 웃으면서 “뭐 하러 배 타느냐.”며 “해적질 한번에 너희가 평생 버는 것을 해결한다.”고 하며 당직을 서는 조타수에게 해적에 지원하라고 한다.(10월 25일) ●해적들에게 풀어달라 호소 43명을 죽여도 돈 1달러도 나올 데가 없다고 호소했지만 해적들은 막무가내다. 해적들은 인터넷에 들어가서 ‘305 Golden Wave’(금미호) 치면 한국 선원 2명이 중요하고 한국 정부로부터 돈 받는 데는 지장없다고 나온다며 끝까지 우긴다. 과연 한국 정부가 해적 테러에 어떻게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지 의문이다.(11월 3일)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 내가 진 빚 중에 제일 큰 빚이 당신에게 진 빚일 게요. 이 빚을 다 갚기 전에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절망을 딛고 꼭 성공해 코스모스보다 더 맑고 청초한 당신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소. 사랑하오.(1월 13일)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사설] 분별없는 선교지상주의는 도그마일 뿐

    또 해묵은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여권법 시행령에 외국에서 국위를 손상한 자에 대해 여권 발급 또는 재발급을 제한한다는 조항을 넣기로 한 데 대해 개신교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해외선교를 가로막는 독소조항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종교의 자유가 양도할 수 없는 국민의 기본권이지만 재외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의무 또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연전의 아프가니스탄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사건’을 우리는 악몽처럼 기억한다. 여행제한지역인 예멘 수도 한복판에서 위험천만한 거리 설교를 벌여 국민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것은 바로 지난달 일이다. 개신교인으로서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보람이요 사명일 터이다. 그러나 많은 이슬람 국가들은 모든 선교를 금지하고 있다. 종교를 전도하거나 집회를 열 땐 현장에서 곧장 체포할 수 있다. 언제까지 이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려 하는가. 선교자유 제한이라는 볼멘소리를 하기 전에 과연 현지법을 지키며 합리적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기 바란다. 독선은 또 다른 독선을 낳는다. 우리는 왕조시대 천주교 혹은 불교가 부모도 국왕도 모르는 무부무군(無父無君)의 종교로 배척받은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도무지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작금의 선교 행태가 개신교로 하여금 ‘국가는 안중에도 없는 종교’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정신적 오만에 가까운 무분별한 이슬람권 선교는 자제돼야 마땅하다. 아프간 피랍사건 이후 개신교계는 해외선교 방법론에 대해 나름의 성찰을 보였다. 그러나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번에 손질한 여권법 시행령은 그처럼 완고한 현실을 반영한 고육지책이다. 일각에선 이슬람 국가에서 추방당하는 선교사는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양심의 자유를 침해당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양심이나 사상의 자유라는 것도 ‘시장’이 있을진대 그것은 무한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분별 없는 선교로 국익이 심대하게 손상된다면 여권 제한은 물론 일본의 경우처럼 구상권까지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 ‘석방’ 금미호, 내일 케냐 도착한다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가 풀려난 금미305호가 예정보다 하루 늦은 15일(한국시간), 오전 케냐 몸바사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외교통상부측은 14일 “금미305호가 역조류를 만나 속도가 떨어졌다.”면서 “한국시간으로 15일 새벽 4시쯤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금미305호는 지난 9일 오후 해적들에 의해 석방된 뒤 다음날 공해상에서 유럽연합(EU) 소속 핀란드 군함의 호위를 받으며 케냐로 이동중이다.  김대근(54) 선장과 김용현(68) 기관장 등 한국인 2명을 포함해 금미305호 선원 43명은 오랜 억류생활로 지쳐 있는 상태지만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 12일 외교부와 농림수산식품부 직원 2명을 케냐에 파견했으며 금미305호가 몸바사항에 도착하는대로 피랍 및 석방 경위를 파악한다는 계획이다. 선원들은 우선 케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휴식을 취한 뒤 한국에 들어오거나 현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숨진채 발견된 최고은 작가 애도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숨진채 발견된 최고은 작가 애도

    2월 둘째 주, 네티즌들의 관심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32세의 나이로 요절한 최고은 작가의 사망 소식에 집중됐다. 최 작가는 설을 앞둔 1월 29일 경기 안양에 위치한 자신의 월세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최 작가의 궁핍한 생활은 그가 세입자 송씨에게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과 김치가 있다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달라.’고 남긴 쪽지를 통해 알려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지 124일 만에 풀려난 ‘금미 305호’의 석방소식도 인터넷을 달궜다. 금미호는 지난 9일 이례적으로 석방금을 지불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공해상으로 풀려나 화제가 됐다. 이날 선장 김대근씨 등 한국인 선원 2명과 중국 선원 2명, 케냐 선원 39명 등 43명이 선박과 함께 풀려났다. 지난 10일 열린 대한민국 축구팀과 터키 대표팀의 친선 경기도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경기는 0대0 무승부를 기록했다. 검색어 4위는 ‘KTX 탈선’이 차지했다. 지난 11일 오후 1시 5분쯤 부산에서 광명으로 향하던 KTX산천 224호 열차가 경기 광명역 인근 상행선 일직터널에서 선로를 이탈하며 멈춰선 것.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서울 여의도백화점 물품보관 업체에 보관 중인 10억원 현금상자가 5위에 올랐다. 폭발물로 의심되는 상자에서 현금 10억원이 나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영등포 경찰서는 지난 11일 백화점과 인근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15대를 분석한 결과 돈 상자 주인으로 추정되는 의뢰인의 인상착의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연예인 대표 ‘미녀와 야수’ 커플이었던 가수 길과 박정아의 결별이 6위를 차지했다. 2년여간 교제해온 두 사람은 지난 연말부터 바쁜 스케줄로 인해 사이가 소원해졌고, 결국 좋은 동료로 남기로 했다. 동해안 지역에 100년 만에 1m가 넘는 폭설이 내려 강릉과 동해, 삼척 등 18개 마을 640여 가구 1280여명의 산간 주민들이 고립되는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동해안 폭설’이 7위에 올랐다. 8위는 걸 그룹 카라의 리더 박규리 왕따설이 차지했다. 박규리는 지난 10일 이른바 ‘카라 사태’ 이후 첫 공식 무대였던 애니메이션 영화 ‘알파 앤 오메가’ 언론시사회에서 왕따설을 부인했다. 9위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스트라이커 웨인 루니의 환상적인 오버헤드킥이 차지했다. 루니는 12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정규리그 27라운드 홈 경기에서 1대1 동점 상황에서 오버헤드킥으로 결승골을 넣었다. 가수 겸 배우 이승기의 ‘1박2일’, ‘강심장’ 하차설이 10위에 올랐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금미호, 해적에 5만弗 냈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가 4개월 만에 풀려난 금미305호가 석방을 조건으로 몸값을 지불하지는 않았으나 선원들의 식비와 선박 유류비 보조 차원에서 5만 달러(약 5500만원)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미호 석방 협상에 정통한 동아프리카 항해자 지원프로그램(EASFP) 운영자인 앤드루 므완구라는 1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처럼 밝히고 금미호가 14일 케냐 몸바사항에 입항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므완구라는 “40명이 넘는 선원들의 식비와 선박 유류비 등 자체 지출이 많아지자 해적이 몸값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선사 재정을 고려했을 때 몸값을 받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3∼4주 전에 석방 대가와는 상관없이 선원들의 식비와 금미호의 유류비 지원 차원에서 5만 달러가량이 해적에게 건네졌다는 말을 소말리아 현지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해 금미호가 해적에게 일정 금액을 지불했을 가능성을 높였다. 금미호 선원 43명 중 김대근(54) 선장과 김용현(68) 기관장 등 한국 선원 2명은 피랍 기간에 당뇨와 말라리아 증세 등으로 건강이 악화됐지만 유럽연합(EU) 군함 의료진으로부터 치료를 받고 점차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몸바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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