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피란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점프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봉사상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인내심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가액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074
  • 수습사무관들이 전하는 행시 합격 노하우

    수습사무관들이 전하는 행시 합격 노하우

    중앙부처 공무원이라는 꿈을 이룬 수습 사무관들이 실무 부처에 배치된 지 한달이 지났다. 지난해 행정고시(5급 공채)에 합격해 올해 6개월 과정의 중앙공무원교육원 신임관리자과정을 수료한 324명의 수습 사무관들은 지난달 1일 각 부처로 배치돼 공직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행정안전부에서 6개월간의 실무 수습을 시작한 3명의 새내기 사무관들로부터 실무 적응과정 등 후배들에게 전하는 조언을 들어봤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홍기웅 사무관 자치행정과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홍기웅(31) 사무관은 ‘4전 5기’의 주인공이다. 4년 연속 2차 시험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다 다섯 번째 도전 끝에 최종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낙방을 거듭할수록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주요 법령과 이론 등을 닥치는 대로 외우고 시험에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서술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홍 사무관이 밝힌 합격 비결은 “욕심을 버리고 쉽게 접근했다.”는 것이었다. 홍 사무관은 “서술형인 2차 시험에서 암기한 모든 지식을 쏟아내는 것은 내 생각이 아닌, 단순 지식 나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면서 “지난해에는 욕심을 버리고 기본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생각으로 시험에 임했다.”고 말했다. 최근 연평도 포격과 관련, 연평도 주민들이 임시로 머물고 있는 인천 인스파월드를 다녀온 그는 “피란 주민 중 몸이 불편한 어르신이 많아 마음이 매우 무거웠다.”면서 “막내 사무관으로서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고 수습 생활을 전했다. ●정희경 사무관 선거의회과에 근무하는 정희경(32) 사무관은 야근을 ‘밥 먹듯’ 하면서 열심히 배우고 있다. 정 사무관은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일이 많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예상 외의 업무량에 놀랐다.”고 말했다. 의회 분야를 담당하는 선배 옆에서 보고서 작성을 도우면서 곁눈질로 정책을 익혀가는 중이다. 보고서 작성은 공무원 업무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는 “의정비, 지방의원 겸직금지 관련 보고서를 쓰면서 제도 개선 방안, 해외 사례 요약을 담당했다.”면서 “1쪽짜리 보고서 안에 내용을 빠짐없이 쉽게 넣는 게 가장 어렵다.”고 전했다. 공직사회 적응에 대해서는 “수험생 때는 공직 문화라고 하면 막연히 딱딱하고 보수적인 분위기를 떠올렸었다.”면서 “하지만 행안부가 생각보다 유연하고 개방적인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공직은 여성으로서 능력을 공정하게 검증받기에 맞춤인 분야”라고 추천했다. 정 사무관은 “공무원은 사소한 업무라도 국민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에 보람과 임무가 막중하다는 점을 후배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영진 사무관 “공부 방법을 고민하기에 앞서 왜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행안부의 전반적인 행정 시스템을 파악하고 싶어 기획조정실 근무를 지원한 박영진(33) 사무관은 공무원으로서의 사명감을 강조했다. 박 사무관은 “단순히 안정적인 직장이나 남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공직에 도전한다면 치열한 경쟁자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면서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행시에 뛰어든다면 그만큼 합격의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마음가짐을 주문했다. 박 사무관은 언론에 보도되는 주요 현안들을 담당 사무관의 관점으로 분석하는 자세를 면접 노하우로 꼽았다. 그는 “면접은 부처별 업무에 가장 이상적인 사무관을 선발하는 과정임을 명심하고, 수험생이 아닌 사무관의 마음가짐으로 면접에 임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연평도의 교훈(6)] 달라진 세대별 안보관(끝)

    [연평도의 교훈(6)] 달라진 세대별 안보관(끝)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있은 지 2주일, 연평도 주민들은 찜질방에서 피란살이를 이어가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 이후 세대별 안보의식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민간인까지 숨지면서 6·25를 겪지 않은 전후 세대들에게는 전쟁의 참상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에 찬성하면서도 확전(擴戰)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철우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국방전문연구원은 “연평도 도발은 국민들이 북한 군사적 위협의 실체를 체감한 계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이 잘잘못을 가리는 소위 ‘블레임 게임’으로 빠져 이념의 논쟁으로까지 번졌다면 연평도 사건은 국민 모두가 한목소리를 냈다.”고 분석했다. 전쟁의 위협은 젊은 세대들에게 더 충격적이었다. 중학교 3학년생인 서채은(15)양은 “기사만 읽어도 전쟁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무서웠다. 앞으로는 북한에 대해 공격·전쟁·김정일 같은 이미지만 떠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구로고 1학년 김준호(16)군도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긴장하면서 살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른바 ‘반공교육’을 받으며 자란 50·60대의 반응도 비슷했다. 자영업을 하는 윤석봉(56)씨는 “연평도 도발로 어릴 적 배웠던 ‘반공의식’이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세대는 어릴 적에는 북한을 무조건 적이라고 배웠고, 중년이 돼서는 남북이 점차 화해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관계진전을 직접 목격한 세대”라면서 “이런 간극에서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북한이 우리의 ‘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나 안보의식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과거와 달리 라면을 사재기하거나 주가가 급락하지 않은 것은 불안하지만 그 불안이 증폭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넓게 퍼져 있다는 방증”이라며 “일시적인 불안감이지 안보의식이 근본적으로 바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김수진(25·여)씨도 “민간인 사망으로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일시적인 일 같다.”면서 “불안하지만 방독면을 사둔다거나 대피소를 찾거나 비상식량을 비축해 두지는 않는다. 연평도에 국한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의 의식이 바뀌는 것은 개인이 자신의 이익이 침해됐다고 느끼는 것인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며 “연평도가 지정학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과 과거 정권에서 10년 동안 평화에 길들여졌던 것도 이유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에 대한 인식은 급격하게 나빠졌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과거 10년 동안 길들여져 왔던 인식, 가치관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정대화 상지대 교양학과 교수는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피해자가 생겨 북한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것이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다.”면서 “이것이 대북 인식을 악화시키겠지만 50년간 극단적인 대립에도 통일을 지향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처럼 평화·통일·안정을 바라는 정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효섭·윤샘이나·김양진기자 newworld@seoul.co.kr
  • 임시거처 ‘물꼬’ 가옥·어업권 보상 ‘막막’… 머나먼 고향길

    임시거처 ‘물꼬’ 가옥·어업권 보상 ‘막막’… 머나먼 고향길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육지로 피란 나온 연평주민들의 임시 거처 이주 문제가 타결됐다. 인천시는 연평주민비상대책위원회와 7일 인천시청에서 회의를 갖고 주민들이 임시 거주지 이주 선결과제로 요구해 온 생활안정대책에 합의했다. 시는 이번 합의에 따라 연평주민 가운데 만 18세 이상 성인에게는 2차례에 걸쳐 150만원씩 300만원의 생활안정자금을 지급하고, 18세 미만자에게는 75만원씩 2차례 지급할 예정이다. ☞[포토]긴장 속 고요에 싸인 연평도 임시 거주지의 거주기간은 2개월로 정하고, 인천시내 33~60㎡ 다세대주택이나 경기도 김포 양곡지구의 LH 보유 아파트(112㎡) 가운데 주민들이 선택하도록 했다. 또 연평어장의 어구 철거 등 긴급히 시행해야 할 사업은 주민대책위와 협의해 우선 추진키로 했다. 정부가 20억원의 예산을 배정한 피해복구 근로사업의 시기와 방법은 주민대책위와 협의하고, 전기·수도·전화·지방세·건강보험·국민연금 등 각종 공과금은 관계기관과 감면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옥·어업권 보상협상 안건은 아직 테이블에 올려놓지 못하고 있다. 주민대책위는 8일 시내 다세대주택을 둘러본 뒤 지난달 30일 현장답사한 김포 양곡지구 LH 아파트와 비교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방침이다. 최성일 주민대책위원장은 “임시거처에서 실제로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입주할 수 있기 때문에 입주 시기는 빨라야 다음주 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연평도 300억원 즉시 지원… 주택 등 사유시설 원상 복구

    연평도 300억원 즉시 지원… 주택 등 사유시설 원상 복구

    정부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 복구를 위해 300억원을 즉시 지원하기로 했다. 앞으로 서해5도 주민에게 정주생활지원금을 지급하는 등 종합발전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6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평도 포격 도발 후속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정부는 공공·사유시설 복구에 1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사유시설은 원상복구, 공공시설은 신축 위주 복구를 추진한다. ●공공시설은 신축 위주 복구 주민 생활 안정과 임시거주 지원에는 80억원이 지원된다. 정부는 주민들의 의사 등을 고려해 인천시에서 준비하고 있는 임시주거시설로 이주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연평도에도 임시주거용 조립주택 15동을 설치해 7일부터 입주가 가능하며, 24동을 추가로 건설할 예정이다. 현지 실태조사 뒤 어구 피해 등 어업 손실에 대해서도 지원을 추진할 방침이다. 내년 중 연평도에 사망자 추모비를 설치하고, 현지 잔류 및 연평도 복귀 주민에게 소정의 위로금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연평도 안에 대피소 7곳을 신축 추진하는 등 주민대피시설을 보강하는 데에도 100억원이 들어간다. 정부는 피폭지역 가운데 일부를 보전해 안보교육장으로 만드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 밖에 특별취로사업 등 생계안정을 위해 20억원이 지원된다. ☞[포토]긴장 속 고요에 싸인 연평도 ●서해5도 종합발전방안도 추진 정부는 또 김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서해5도 지원위원회’를 구성해 범정부적으로 종합발전대책을 마련, 내년 중에 추진할 계획이다. 서해 5도 주민에게 정주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꽃게 총허용어획량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한편 꽃게 이외의 어종을 어획할 수 있는 한시적 어업허가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고교생의 수업료를 전액 지원하고, TV수신료와 전기요금 등 각종 공공요금도 할인해줄 계획이다. 백령도와 대청도에 대규모 대피시설 3곳을 포함, 총 35곳의 대피시설을 신축하게 된다. 이와 관련, 연평 주민들은 정부의 지원대책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피란민 정모(48)씨는 “지원비 사용항목이 두루뭉술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나중에 예산을 집행하더라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주민은 “새로운 것이 없고 인천시가 그동안 거론한 내용들을 재탕한 것”이라고 비꼬았다. ●주민들 “실정에 맞는 보상을” 연평도에 남아 있는 주민들의 성토도 이어졌다. 가옥 피해를 입은 박모(72)씨는 “300억원이 가옥 복구비용이면 몰라도 대피소 신축 등 모든 비용이 포함된 것이라니 큰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민 김모(58)씨는 “가을철 꽃게농사를 망쳤는데 이에 대한 피해보상이 언급되지 않았다.”면서 “파손된 어구 등 실정에 맞는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부 주민들은 지원대책이 빨리 진행됐으면 좋겠다는 다소 긍정적인 입장도 보였다. 연평면사무소 최철영(46) 상황실장은 “정부와 인천시 합동조사단 현지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원책이 마련된 만큼 신뢰가 간다.”면서 “다만 대책이 빨리 진행돼 주민들이 섬으로 복귀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학준·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연평도 피란민 돕는 ‘트위터 봉사단’ 떴다

    “우리 손길을 기다리는 피란민들을 위해 봉사하러 오세요.” 6일로 인천 찜질방에서 2주일째 피란생활을 하고 있는 연평도 주민들에게 ‘트위터 봉사단’이 수호천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들은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찜질방 구석구석을 누비며 지칠 대로 지친 연평도 주민들의 시름을 덜어 주고 있다. 트위터에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글을 보고 하나둘 모여들게 됐다는 ‘트위터 봉사단’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20~30대가 주축이다. ☞[포토]긴장 속 고요에 싸인 연평도 인천에서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는 서정호(36)씨가 자청해서 단장으로 일하며 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생업도 팽개치고 밤낮없이 일하다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서씨는 “서울, 구리, 안산 등 수도권 지역 대학생들이 주로 온다.”면서 “인천에 사는 회사원들도 시간 날 때마다 와서 4~5시간씩 도와주고 간다. 주말마다 오는 중고생도 있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올라온 대학생 강신우(26)씨는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친구들과 놀러간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왔다. 그는 “쓰레기 정리, 구호물품 나르기 등 모든 ‘잡일’을 한다.”고 쑥스럽게 말했다. 처음엔 하루 1~2명에 불과하던 자원봉사자도 최대 20명까지 늘었지만 아직도 일손이 부족하다. 지금까지 100명이 넘는 봉사자가 다녀갔다. 댄스강사 문지현(25·여)씨는 “일 끝나고 저녁시간마다 봉사하러 온 지 1주일됐다.”면서 “젊은 사람도 찜질방에서 지내기 불편한데 어르신들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인천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건강 위험지대’ 피란민 찜질방

    연평도 주민 400여명이 피란해 있는 인천의 찜질방이 주민들에게 ‘건강 위험지대’로 떠올랐다. 6일 의료계는 “연평도 주민들이 전염성 질환에 집단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질병은 오염된 음식이나 물로 전염될 수 있는 ‘A형간염’이라는 게 공통된 견해다. 40대 이상은 ‘후진국 병’이라고도 하는 A형간염에 대한 항체가 대부분 있기 때문에 A형간염에 취약한 세대는 아직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10~30대라는 것. 찜질방에서 수백명이 붙어 지내다 보니 개인위생 관리가 철저하지 못하고, 음식도 함께 섭취하고 있어 A형간염에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포토]긴장 속 고요에 싸인 연평도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위생관리 불량으로 A형 간염뿐 아니라 찜질방 음식에 식중독까지 발생한다면 대규모로 전염돼 주민들의 피해가 클 것”이라며 “주민들은 위생상태를 청결히 유지해야 하고, 찜질방에서는 조리 과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찜질방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이 신경써야 할 부분은 바로 체온관리. 찜질방은 최하 섭씨 25도에서 높게는 70~80도를 상회할 만큼 기온이 높아 한여름 날씨지만 찜질방을 나서는 순간 영하에 가까운 추운 겨울날씨라는 것. 급격하게 체온이 변하면 혈압도 큰 폭으로 변하기 때문에 혈압환자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 또 의료진들은 주민들이 찜질방에 마땅한 자기 공간이 없어서 받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과 좁은 공간에서 살면서 받는 스트레스, 적응장애, 우울증,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로 인한 수면장애뿐 아니라 몸을 균형있게 움직이지 못해 발생할 수 있는 운동부족도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최재경 건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주민들이 다함께 스트레칭이나 가벼운 운동을 하는 시간을 마련한다면 건강유지뿐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시설 더 좋지만 연평으로 가고 싶어”

    “시설 더 좋지만 연평으로 가고 싶어”

    6일 인천 영종도 운남초등학교. 연평도에서 피란 온 학생 104명은 북한의 포격 도발 14일 만에 임시 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했다. 임시학교는 빈 교실 14곳에 12개 학급, 교무실과 교장실을 임시로 꾸며 만들었다. 등교한 학생은 초등생 70명, 중학생 25명, 고등학생 9명. 연평도 전체 학생 128명 가운데 다른 지역 학교에 임시배치된 학생(16명)과 지체부자유학생(1명), 체험학습을 하는 고교 3년생(7명) 등 24명을 빼고 모두 나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임시 숙소인 인스파월드에서 교육청이 제공한 버스 3대에 나눠 타고 등교했다. 학생 대부분은 새로운 환경·시설에 잘 적응했다. 초등학교 3학년생 염지민(9)군은 “선생님도 그대로고 친구들까지 그대로 사귈 수 있어서 좋다.”며 해맑게 웃었다. 5학년 한 여학생도 “학교가 깨끗하고 커서 좋다.”면서 “시설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평도를 그리워하는 학생도 많았다. 중학교 2학년 이가영(14)양은 “연평도보다 공기가 좋지 않아서 목이 좀 아픈 것 같다.”면서 “시설이 좋긴 하지만 연평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원지희(14)양도 “시설도 좋고 선생님도 그대로라 좋지만 아무래도 연평에 돌아가면 맘이 더 편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포토]긴장 속 고요에 싸인 연평도 연평 초·중·고교 김영세 교장은 “학생들이 밝아 보이고 안정을 찾은 것 같아 안심”이라면서 “상황이 완전히 복구될 때까지 아이들 교육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인천시교육청 유석형 장학관은 “연평도 피란민들에게 생계대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자녀 교육문제”라며 “임시로나마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오는 24일까지 임시학교에서 수업을 받는다. 연평도 유치원생 12명은 인천 신선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서 지난달 29일부터 수업·놀이활동을 하고 있다. 영종도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北 연평도 공격 이후] “근본대책 없이 연평 주민 분산시키나”

    [北 연평도 공격 이후] “근본대책 없이 연평 주민 분산시키나”

    연평도 복구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주민과 행정 당국 간 갈등이 깊어가고 있다. 인천 찜질방에 있던 주민 350여명은 5일 대책이 미흡하다며 옹진군청과 인천시청을 항의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연평도 현지 복구사업에 취로사업 형태로 주민들을 참여시키려던 계획이 발단이 됐다. 연평면사무소 관계자는 “주민들을 모아 특별취로사업 취지를 설명하고 6일부터 일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주민들의 의견이 엇갈려 그냥 돌아갔다.”고 밝혔다. 연평도에 남아 있던 주민 5∼6명은 면사무소의 안내방송을 듣고 특별취로사업에 나가기 위해 모였다. 그러나 주민 한명이 회의실에 들어와 모여 있던 주민들에게 집에 돌아가도록 설득했다. 차모(70)씨는 “지금 시가 취로사업을 한다는 건 인천에 있는 주민들 보고 그냥 들어가서 살라는 것밖에 안 된다.”며 “지금 아무것도 합의된 게 없는데 취로사업을 하면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로사업에 참여하려던 주민들은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신모(70)씨는 “여기서 부득이 못 나가는 사람들은 어쩌란 말이냐. 우리가 바깥사람들 하는 일에 어떻게 동참하느냐.”고 하소연했다. 채모(80·여)씨도 “정부 대책이 나올 때까지 이런 거라도 해서 살아야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주민들은 승강이 끝에 결국 뿔뿔이 헤어졌다. 육지로 피란 온 주민들도 취로사업 문제로 들썩거렸다. 인천 찜질방에 있는 연평도 주민들은 옹진군청을 찾아가 “주민대책위와 상의 없이 연평도에서 특별취로사업을 추진한 것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원하는 주민들을 분산시키려는 의도 아니냐.”고 항의했다. 조윤길 군수는 “송영길 인천시장이 연평도를 방문했을 때 주민들이 생활대책을 요구해 특별취로사업을 추진한 것이지 주민들을 와해시키려는 목적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인천시는 예비비 5억원을 긴급 투입해 주민들이 현지 피해 복구작업에 참여하면 1일 6만원을 지급하는 특별취로사업을 추진했다. 포격 피해를 본 주민이 자신의 집을 수리해도 사업에 참가한 것으로 인정한다. 주민대책위가 취로사업을 반대하는 것은 인천시와 임시거처 입주조건 등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에서 연평도에 남아 있는 주민들이 취로사업에 참여하면 협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 주민은 “하루빨리 인천시와 합의가 이뤄져 임시거처로 이주해야 찜질방 생활 장기화에 따른 불편이 해소되는 것은 물론 주민들 간의 갈등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열린세상] 연평도 포격이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전략/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 교수

    [열린세상] 연평도 포격이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전략/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 교수

    지난 수십년간 한반도에서 지속된 평화의 신기루는 연평도의 포탄 연기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은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수천명의 삶에 충격과 공포를 심어줬다. 연평도에서 탈출하는 피란민 행렬을 보며 북한의 핵개발 소식, 천안함 피폭에도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평화는 이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G20 서울 정상회의 축제 직후 행해진 무력공격은 우리의 분단 현실과 북한의 직접적인 공격 위협을 실감케 하는 것이다. 외부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영토를 지키지 못할 때 국가는 그 존재 의미를 잃는다. 포격 이후 북한의 공격에 대응하는 정부의 안보전략 부재와 군 수뇌부의 허약함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과 비판은 바로 이러한 국가의 당위적 역할과 기대 때문이다. 수백발의 포탄으로 공격 받는 와중에 한국 정부는 확전 여부를 먼저 걱정하고 국방부 장관을 사퇴시키는 등 위기 관리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연간 30조원이라는 막대한 국방예산을 쓰고도 전력 증강과 군기 확립보다는 승진에 관심이 많았던 군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 국민들은 도대체 누구를 믿고 생명의 안전을 의지해야 하는가? 연평도 주민들의 ‘탈출’과 ‘피란 생활’을 보며 국민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임한 국가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가지게 된다. 최근 한반도의 상황은 남한과 북한의 안보경쟁을 더욱 격화시키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민족·종교·인종 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한반도에서도 분쟁의 근원은 지속되고 있으며, 그 양상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권력세습을 위해 위기를 조장하고 계속해서 핵을 개발하고 있다. 아무리 작은 남한과 북한의 충돌이라 하더라도 한 국가가 짊어져야 하는 경제적, 정치적 대가는 엄청나기 때문에 위협의 근원을 찾아서 사전에 방지하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지속적인 도발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북한의 도발 시 수십배, 수백배의 보복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줘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확전이나 전면전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한국이 전쟁을 불사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전면전은 북한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들끓는 국내 여론을 배경으로 이명박 정부는 새로운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교전규칙을 공격적으로 수정해 국가안보를 강화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번에는 정치적인 수사가 아니라 확고한 대통령의 의지를 통해 북한의 도발 의지를 무력화하는 국방개혁을 실행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신뢰가 결여된 국제정치의 불확실성 속에서 국가간 안보경쟁은 해결될 수 없는 군비경쟁의 딜레마를 증가시킨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안보를 획득하는 방법은 국내적인 안정과 강력한 군사력의 보유와 더불어 대외적인 동맹관계, 국제안보를 통해 달성할 수 있다. 물론 국제사회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내전이나 명백한 침략을 다루는 데는 한계를 가진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연평도 포격은 안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우리에게 있으며 6자회담이나 유엔헌장에 무작정 기대고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분단현실 속에서 점증하는 국지전의 위협과 북한 핵을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어지러운 정세를 고려한다면, 오늘날 한국이 당면한 안보 위기를 한국 정부의 전략 증강이나 호전적인 군사전략만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장기적으로 한국 정부의 위기관리의 성공 여부는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제공조를 통해 북한을 억제하는 전략 속에서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기회에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이 북한의 폭력적인 군사행동을 억제하는 것이 주변국의 장기적인 국가이익과도 부합하는 것임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전쟁을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다면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단호한 응징전략을 가질 때 북한의 군사 도발을 억제하고 평화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 찜질방 못떠나는 연평도 피란민들

    인천으로 피란 나온 연평도 주민들이 임시거처로 이주하지 못한 채 찜질방 생활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3일 인천시에 따르면 연평주민들의 임시거처로 ▲인천시내 다가구주택 ▲인천건설기술교육원 숙소 ▲김포 미분양 아파트 등 3가지 안을 제시해놓은 상태다. 연평주민비상대책위원회는 이 가운데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경기도 김포시 양곡2지구에 지은 아파트(155가구, 99㎡)를 선호한다고 시 측에 밝혔다. 하지만 이주조건이 문제다. 대책위는 식비와 공과금, 최저임금에 준하는 생계비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임시거주 기간은 6개월로 잠정 결정했다. 임시거처가 결정되면 연평도로 돌아간 주민 가운데 일부도 육지로 되돌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주민들이 요구한 식비는 1인당 하루 3만원, 최저 생계비는 성인 기준으로 1인당 한달 100만원, 공과금은 가구당 한달 50만원이다. 이를 4인가족 기준으로 산정하면 가구당 810만원(아동 2명이 포함됐을 경우 610만원)에 달한다고 시 측은 설명했다. [사진] 아이들은 등교했지만…끝나지 않은 긴장감 아울러 전체 연평도 주민 1361명 가운데 800명 정도가 6개월 동안 입주했을 경우 97억 2000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시는 현재의 재정형편으로는 이를 도저히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연평도 주택 및 기반시설 복구, 대피시설 정비 등 돈이 들어갈 데가 즐비한 상태에서 임시거주에 그만한 예산을 투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확보된 재원을 모두 합쳐도 인천시 예비비 18억 8000만원, 행정안전부 특별교부금 20억원, 옹진군 예비비 17억원 등 55억 8000만원에 불과하다. 다급해진 시는 행정안전부에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주민들의 요구가 현실성이 없으므로 협의를 계속하라.”는 답변을 들었다. 인천시는 주민들에게 일단 임시거처로 옮긴 뒤 협상을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확실한 지원책이 마련되기 전에는 찜질방을 떠나지 않겠다.”면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합의를 이루는 데 상당한 진통이 따를 전망이다. 김학준·김효섭기자 kimhj@seoul.co.kr
  • 인천 찜질방에 ‘연평우체국 출장소’

    인천 찜질방에 ‘연평우체국 출장소’

    북한의 무차별 폭격으로 ‘유령 마을’이 된 연평도 주민들에게 우편물과 택배는 차질 없이 배달되고 있다. 직원 5명에 불과한 전국 최소 규모급 연평우체국의 운영이 재개됐다. 인천 찜질방에서 생활하는 연평도 피란민을 위한 출장소까지 차려졌다. 연평우체국이 지난달 29일 다시 문을 열고 이달부터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우체국 직원은 모두 5명. 이 가운데 2명이 연평도 주민 300여명이 기거하는 인천 찜질방 ‘인스파월드’에 파견됐다. 이들은 인천우체국에서 연평도 주민들에게 배달되는 우편물을 개개인에게 직접 전달하고 있다. 정창권 연평우체국장은 “20년 안팎의 배달 경력을 지닌 ‘베테랑 집배원’이 1400여 주민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배달 사고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지서나 광고전단 같은 우편물은 배달하지 않는다. 집을 떠나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주민의 처지를 고려한 배려다. 청첩장, 일반 우편물, 아이들 학습지 등 당장 필요한 우편물을 중심으로 배달한다. 집배원 노명준(52)씨는 “일부는 ‘지금 내가 편지 받을 정신이 어디 있냐’고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예상하지 못한 우편물에 감사하다고 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연평우체국은 1962년 설립됐고, 일반 우편물과 신문도 배달한다. 신문 구독 주민은 6명. 정 우체국장은 “우체국 등 기관도 제자리를 찾은 만큼 주민들도 하루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평도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사설] 인천 시장은 생색내고 부시장은 윽박지르고…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으로 피란 중인 섬 주민들에 대한 인천시 고위 공직자들의 행태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특히 송영길 시장의 부적절한 행보와 윤석윤 행정부시장의 오만한 언행은, 이들이 과연 시민의 선거로 뽑힌 단체장이고 주민을 위한 공직자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송 시장은 엊그제 연평도 초등학생 100여명을 백화점에 데리고 가 옷과 운동화를 20만원어치씩 사주었다. 급히 섬을 떠나느라 옷가지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아파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비용을 개인 돈도, 시의 예산도 아니고 기부금으로 지불했다고 한다. 더구나 기부자를 밝히지도 않고 마치 자신이 선물을 사준 것처럼 홍보했다니 어이가 없다. 뒤늦게 백화점 측으로부터 2800만원을 결제해 달라는 요구를 받은 기부자 이모(46·외과전문의)씨는 매우 씁쓸해했다고 한다. 피란 중인 연평도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보내려고 옹진군청에 5000만원 기부 의사를 밝혔는데, 엉뚱하게 송 시장이 미리 성금의 절반 이상을 뚝 잘라 생색을 냈기 때문이다. 송 시장은 그러잖아도 연평도 피폭을 “우리 군의 훈련 탓”이라고 주장하고, 피폭 현장에서는 포염에 그을린 술병을 보고 “이거 진짜 폭탄주네.”라고 농담을 해 많은 국민을 화나게 했다. 준전시 상황을 앞장서서 헤쳐나가야 할 피폭지역 단체장이 이래도 되는 건지, 참으로 실망스럽다. 그제 연평도 피란 주민 앞에 나타난 윤 부시장의 언행도 공손하고 믿음직해야 할 공직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김포 미분양 아파트 등 4곳을 임시거처로 제시하면서 “합 리적 선택을 기대한다.”며 주민에게 강요하듯이 말했다. 주민의 요구대로 연안 가까운 공터에 수용시설을 지으려면 한달 넘게 걸린다며 시의 방안을 선택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는 어조였다. 오만하기까지 한 그의 태도는 가뜩이나 열흘 이상 피란생활로 고달픈 주민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겼다. 피란 주민을 우선 급한 대로 따뜻하게 보살피고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력해야 할 인천시장과 부시장이 이런 식이라면 연평도 주민들이 어떻게 그들을 믿고 의지할 수 있을지 큰 걱정이다.
  • [北 연평도 공격 이후] 이주단지·안전망 조성이 귀향 열쇠

    피란 나온 연평도 주민들은 언제 돌아갈 것인가. 언제, 얼마만한 인원이 섬으로 돌아갈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주민들의 요구조건을 정부 및 인천시가 얼마나 수용하느냐가 귀향 시기 및 인원을 결정하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피란민들은 ‘인천시장과의 대화’에서 “연평도에 다시 들어간다고 해도 불안해서 살 수 있겠느냐.”면서 “주민의 70∼80%가 육지 이주를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일이 지나고 주민들이 심리적 안정을 되찾으면 대부분 연평도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특히 ‘꽃게’라는 연평도의 확실한 생계보장 품목을 포기하기에는 현실적 여건이 녹록지 않다. 연평도에 남아 있는 한 주민도 “당국이 거액의 정착금을 주고 뚜렷한 직장을 마련해 주지 않는 한 육지로 이주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연평도에 재정착하는 데는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주민들이 원하는 귀향조건과 정부나 인천시가 생각하는 지원책 사이에 차이가 클 경우 재정착 협상에 난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는 기반시설 복구에 필요한 재원조차 충분하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따라서 연평주민들의 귀향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민들의 섬 복귀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예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연평면사무소 관계자는 “복귀하는 주민들이 잇따르고 있지만 아직은 소수인 데다 집을 돌보기 위해 잠시 들어온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남북관계 정상화 여부, 섬내 이주단지 조성, 방공호를 비롯한 안전망 구축 등에 따라 주민들의 귀향 속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의 포격 이후 섬에 남은 주민은 19명에 불과했으나 1일 현재 복귀 주민은 59명으로 늘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씨줄날줄] 포탄개그/육철수 논설위원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제목과 달리 참 가슴 아픈 얘기를 담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 말, 독일의 나치군대가 이탈리아를 침공한 시기다. 독일군은 유태인들을 모조리 수용소로 잡아가는데, 아버지(귀도)와 네살짜리 아들(조슈아)도 이를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천진난만한 아들에게 전쟁의 공포와 참혹한 수용소 생활을 모르도록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속였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어린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유머를 잃지 않고, 고비마다 지혜를 발휘하는 아버지의 희생이 너무 애처롭다.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후 정치인들의 부적절한 언행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영화 속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것처럼, 국민이 전쟁을 느끼지 못하도록 구사한, 속깊은 유머였으면 좋으련만 그게 아니어서 문제다. 피폭 다음 날 연평도를 찾은 송영길 인천시장은 포염에 그을린 술병을 보고 “이거 진짜 폭탄주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이튿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선영 의원(선진당)은 “(대통령께서는) 조종사 같은 점퍼부터 벗어던지시라. 연평도에 가셔서 작은 눈 크게 뜨고 똑바로 보시라.”고 발언했다. 연평도 주민들이 피란길에 올랐는데 폭탄주 운운하고, 대통령에게 ‘작은 눈’을 들먹이며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 행태에 웃어야 할지, 성을 내야 할지….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 일행의 ‘보온병 포탄’ 해프닝일 것 같다. 지난달 24일 연평도를 찾은 안 대표는 불에 탄 철제 통 두개를 들고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이라고 말했다. 포병 출신이며 3성 장군으로 예편한 황진하 의원은 “작은 통은 76.1㎜ 같고, 큰 것은 122㎜ 방사포탄으로 보인다.”고 친절하게 설명을 곁들였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것은 포탄피가 아니라 보온병으로 밝혀졌다. 이 장면이 그제 방송으로 나가는 바람에 ‘병역면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안 대표는 또 시중의 조롱거리가 됐다. 황 의원도 ‘주연 같은 조연’ ‘×별 출신’이란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면, 현지 주민과 안내자가 이 물체를 갖고 와서 포탄이라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마침 취재 중이던 방송기자들의 요청으로 진지하게 연출을 했는데 그만 개그가 되어 버렸다. 보온병이 하필이면 장군 출신도 구별 못할 만큼 포탄을 빼닮았는지, 일이 꼬이려니 참…. 그러게 가만히 있으면 본전은 할 텐데, 왜 그렇게들 나서길 좋아하는지. 위기 상황에서 국가 지도자들의 밑천을 들여다보는 일은 서글프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北 연평도 공격 이후] “찜질방 소음 도저히 못 견디겠다”

    “일반인도 고통스러운 찜질방 피란 생활이 우리 같은 장애인에겐 몇 배나 더 힘들지.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1일 오후 인천 신흥동 인스파월드 찜질방. 피란 온 연평도 주민들의 임시 숙소인 이곳 한구석에는 시각장애인 박광일(52)씨가 쭈그려 앉아 있었다. 6년 전 뇌수술로 왼쪽 눈 시력을 잃고, 오른쪽 눈도 거의 보이지 않는 박씨는 북한의 포격 다음 날인 지난달 24일 연평도를 탈출해 이곳으로 왔다. 박씨는 “끔찍한 피란살이”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평소에도 박씨는 밥 먹는 것부터 화장실 가는 일까지 가족과 이웃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런 박씨가 300여명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찬 찜질방에서 더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연평도 주민들의 찜질방 피란 생활이 8일째 계속되는 가운데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시각장애를 지닌 4명의 연평도 주민이 임시거처인 찜질방에서 지내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주위 배려나 당국의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반인보다 몇 배 힘든 ‘수용생활’을 견뎌내고 있다. 1급 시각장애인인 연평도 주민 이용재(48)씨는 찜질방 생활에 어려움을 겪다 며칠 전 인근 모텔로 거처를 옮겼다. 포도막염으로 5년 전부터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된 이씨는 “찜질방에 4~5시간 앉아만 있다 보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라.”면서 “답답해서 바람이라도 쐬려고 나가려 했으나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불가능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소음’이 시각 장애인들에게 더 고통스럽다. 일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청각이 발달한 시각장애인들이 야간에 수 백명이 쏟아내는 ‘시끄러운’ 소리로 인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 한 주민은 “시각 장애인들의 생활을 돕는 도우미 등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인천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60년전 포탄 피해 연평도 왔는데…이젠 영감도 없이 또 피란 나오다니”

    “60년전 포탄 피해 연평도 왔는데…이젠 영감도 없이 또 피란 나오다니”

    “6·25 때 피란을 내려와서 연평도를 고향 삼아 살았는데, 여기서 다시 피란을 나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60년 전, 29살의 젊은 나이에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라애자(89) 할머니는 일주일 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두 번째 피난길에 올랐다. 북한의 포탄 공격이 있은 뒤 딸과 함께 배를 타고 연평도를 빠져나올 때는 60년 전 고향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총성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6·25 피란을 내려올 때 아버지와 같이 열차를 타면서 너무 경황이 없어 어머니랑 생이별을 했던 것이 기억나. 참 많이 울었지….” 인천 찜질방에서 라 할머니는 종종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전쟁 악몽 자꾸 떠올라” 연평도 포격이 발생한 지난 23일 친정 나들이 온 둘째딸을 배웅하고 침대에 누워 눈을 붙이던 라 할머니는 ‘쾅쾅’하고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현관문이 저절로 열리고 폭발 소리가 이어지면서 6·25전쟁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라 할머니는 “과거 전쟁 때 머리 위로 비행기들이 뱅뱅 돌던 소리가 생각나면서 겁이 났다.”고 말했다. 피란의 최종 정착지였던 연평도에서 만난 남편은 황해도 해주 사람이었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 일주일 전인 지난 16일 숨을 거둔 할머니의 남편 손성준(85)씨는 군인 출신으로 6·25 전쟁 당시 우리군과 영국함대 등에 서해 뱃길을 안내하는 공을 세워 국립이천호국원에 묻혔다. 라 할머니는 “돌아가신 우리 영감이나 나나 어렵게 피란을 와서 평생을 연평도에서 살았는데, 영감이 돌아간 다음에 나 혼자 또다시 피란길에 오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포토] 한미연합훈련 실시…美항공모함의 위력 ●“포탄 떨어지는 소리 아직도 생생” 역시 찜질방에서 기거하는 김상진(66)씨도 6·25전쟁 당시 피란길에 올랐던 이북 출신이다. 당시 배를 타고 인천 팔미도 쪽으로 피란을 내려온 김씨는 “(6·25 당시) 함께 피란 내려온 부모님과 민가에 숨어들어 주먹밥 하나로 하루 끼니를 때웠다.”고 돌이켰다. 두번째 피란생활을 하는 김씨는 “수백명이 한데 모여 생활하니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포탄에 우리 마을이 폐허가 된 모습이 악몽으로 남아 내내 지워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그땐 ‘딱꿍총’(당시 북한 인민군이 사용하던 총을 지칭) 소리도 듣기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살던 마을에서 머리 위로 ‘쉭쉭’하며 포탄 떨어지는 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나 더 끔찍하다.”면서 “목숨이 붙어있는 게 다행”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천 백민경·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시론] 60년전, 피란 뱃길을 생각한다/송수남 언론인

    [시론] 60년전, 피란 뱃길을 생각한다/송수남 언론인

    지금 한반도 서쪽의 아름다운 섬 연평도는 북한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만신창이의 상처투성이로 변한 지 벌써 이레가 넘었다. 연평도 사람들이 포격 첫날 부랴부랴 어선을 타고, 인천 해경 부두에 내리는 피란민 행렬을 TV 화면으로 똑똑히 보았다. 부모 손에 이끌려 부두를 밟은 철부지들의 얼굴에는 영문을 미처 알아치리지 못한 공포의 그림자가 어리는 듯했다. 이렇듯 공포에 질린 피란 행렬 속의 어린 아이들을 보는 동안 끔찍스러웠던 옛날 일이 불현듯 기억되었다. 꼭 60년 전이었다. 겨우 여덟살이었던 1950년 12월이 저문 어느 날, 고향 옹진반도 끝자락까지 포탄이 떨어졌다. 포구는 몰려든 피란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 틈새를 비집고, 작은 돛단배에 올랐던 어린 마음에도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생겼던 것일까. 어떻든 피란민들이 빼곡 들어찬 배가 떠나면서 멀미가 치밀어 돛대 기둥을 끌어안은 채 이내 정신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얼마를 지나 내린 데가 서해 5도의 중간 섬에 해당하는 대청도였다. 배에서 내린 다음에야 혼자 왔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지만, 손바닥만 한 섬이었기에 다음 배를 탄 부모님을 극적으로 만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산가족을 겨우 면하고, 뒷날 인천으로 나와 유년시절을 줄곧 서해안 항구도시에서 보냈다.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도, 아주 작아 보였던 돛단배와 부모님과 잠시 헤어졌던 아찔한 순간을 생시처럼 꿈꾸었다. 그럴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깨기가 일쑤였지만, 좀처럼 기억을 홀훌 털어내지 못했다. 얼결에 연평도를 떠나 인천 연안부두 이웃의 한 찜질방에 머무는 아이들도 지금, 인천으로 오는 뱃길에서 만났던 일렁이는 파도가 꿈속에 나타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보다는 귀청을 찢을 것처럼 요란했던 대포 소리와 포탄이 마구 뿜어낸 불꽃 기둥의 기억이 골무만큼 작은 아이들 가슴을 짓누를 것이다. 꿈을 먹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아랑곳없이 마구 쏘아댄 북한군의 무차별한 포격은 아동학대일 수도 있다. 더구나 민가가 옹기종기한 여염(閭閻)을 마구 덮쳤으니, 이를 북한의 발악적 만행으로 규정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제대로 선전포고를 하고 치르는 전쟁에서도 민간은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쟁의 불문율인 것이다. 세계적 작가인 파울루 코엘류는 연평도 포격 소식을 듣고 “나는 아무것도 자유롭지 않지만, 기도는 할 수 있다.”는 말로 안타까워한 모양이다. 이 호소에 동참한 크리스티나라는 여인은 “한국에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면서 “전쟁은 이렇듯 끝나지 않는 것일까요.”라고, 연평도 포격에 회의(懷疑)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몇몇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 옛날 옹진반도에서 대청도로 향했던 피란 뱃길을 떠올릴 때마다 전쟁의 공포는 당대에 끝내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고 살았다. 그러나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들 때까지 손자 같은 아이들에게 이를 대물림했다는 죄책감이 무겁다. 더구나 아이들이 뛰어놀던 연평도 고향 땅은 멀쩡하지도 않다. 흉악한 포탄에 맞아 그을린 연평도의 몰골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 아닌가. 그 많았던 섬 사람들이 다 떠나고, 고작 서른명 남짓한 섬 사람들이 남았다는 것이다. 해양경찰서 연평출장소에 근무하는 한 의무경찰이 “주인 떠난 집 강아지가 나를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면, 차마 피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는 뉴스가 매스컴을 탔다. 주인집 아이가 무던히도 귀여워했을 강아지가 가엾고, 더러 남은 섬 사람들은 외롭다. 이렇듯 적막강산으로 변한 연평도를 생각하면, 소설가 이외수씨가 최근 트위터에 올렸다는 “비록 늙었으나, 아직은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다. 그리고 전쟁을 부추긴다는 비난에 맞서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결의부터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겁이 나시면 도망치세요.”라고 댓글을 단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 급식 봉사자마저 철수…“이젠 끼니도 걱정해야 하나”

    급식 봉사자마저 철수…“이젠 끼니도 걱정해야 하나”

    서해의 차가운 바닷바람이 연평도에 겨울이 왔음을 실감케 했다. 30일 이른 아침, 보일러를 단열재로 감싸는 등 방한 준비를 하는 주민들이 눈에 띄었다. 포격으로 불타 무너져 내린 가옥의 종잇장처럼 구겨진 슬레이트 지붕은 연방 ‘끼익, 끼익’거리는 기괴한 마찰음을 만들어 냈다. 포격 8일째, 어디에서도 사람의 말소리를 듣기 어려운 아침. 얼핏 조용하고 차분하게 하루가 시작된 것 같아 보였지만 그것은 ‘공포의 고요’일 뿐, 말을 잃은 주민들의 속은 불 탄 서까래처럼 타들어 가고 있었다. 준전시 상태의 연평도는 그렇게 두려운 아침을 열고 있었다. 오전 8시, 인천적십자사가 배식을 시작하자 군인·경찰·공무원·취재진들이 모여들었다. 통합방위령 을종, 일종의 ‘전시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금의 연평도에서 주민을 찾아보기란 좀체 쉽지 않았다. 따뜻한 쇠고기 국밥 한 그릇에 몸을 데우며 간간이 웃음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따뜻한 급식도 이날 아침이 끝이었다. 위생 장갑을 끼고 밥을 나눠주던 자원봉사자 조명자(44·여)씨는 일일이 인사를 건네며 “저희 오늘 떠나요. 점심 때부터는 식사 못 해드려서 어떡하죠.”라고 말했다. 일회용 국그릇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던 한 주민은 “그럼 이제 끼니도 걱정해야 하나.”라고 말하며 헛헛하게 웃었다. 마지막 남은 상점이 지난 29일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급식마저 끊겼으니…. 이날 삶의 터전인 연평도로 되돌아온 주민은 18명. 하지만 대부분 생활이 목적이 아니라 옷가지 등을 챙기기 위해 잠시 들른 사람들이었다. 인천에서 피란 중인 주민 박도근(70)씨는 “인천 찜질방에서 일주일째 생활하다 짐 좀 챙기러 잠시 들어왔다.”면서 “언제 폭탄 맞을지 모르는데 어떻게 사느냐.”고 말했다. 29일 인천 옹진군청이 통합방위법에 따라서 연평도 전역을 통제구역으로 설정하자 취재진들도 회사별로 철수를 서둘렀다. 방송사 취재진·외신기자 140여명이 가장 먼저 연평도를 떠났다. 한 방송사 기자는 “지금은 전시와 같다. 군 작전에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고 떠나는 이유를 말했다. 하지만 서울신문 취재진은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는 역사의 현장 연평도를 떠날 수 없다.’고 뜻을 모으고 잔류를 결정했다. 이날 낮 12시에는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HID) 회원 100여명이 여객선을 타고 연평도에 들어왔다. 정병호(47) 조직부장은 “순찰이나 재난구조 등의 자원봉사를 할 계획”이라면서 “어수선한 치안을 틈탄 간첩 침투를 막는 활동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연평초등학교에 숙소를 꾸린 뒤 운동장에 모여 큰 소리로 애국가와 군가를 불렀다. 한 주민은 “주민들 불안해 할까 봐 포사격도 취소되는 마당에 군가를 불러 오히려 불안감만 키운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인 활빈단 관계자 2명도 같은 배편으로는 연평도에 들어왔다. 이들은 곧바로 연평면사무소로 가 주소지 이전신청을 했다. 그러나 면사무소 관계자는 “연평면이 통합방위법에 따라 통제구역으로 정해져 주소 이전을 해 줄 수 없다.”며 신청을 반려했다가 받아들이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주인이 떠난 집에 홀로 남겨진 동물들을 구호할 수의사 2명과 동물보호단체 회원 2명이 연평도를 찾았다. 허주형 인천수의사회 회장은 “주인이 떠나 굶주렸거나 다친 개들을 보살피러 왔다.”면서 “마을을 살펴 실태를 파악하고 사나운 큰 개들을 격리하는 등의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평도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정세욱 풀뿌리 정치] 국민은 불안하다

    [정세욱 풀뿌리 정치] 국민은 불안하다

    연평도 전역에 대한 북한의 무차별 공격으로 군인과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민가 수십채가 파괴됐다. 연평도 포격은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침략행위다. 집과 살림을 버리고 황급히 육지로 피란 나온 연평도 주민들은 찜질방에서 지내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첫번째 임무인데 적의 포화에 맥없이 당한 모습을 보는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남한을 무력으로 적화통일하려는 북한의 야욕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적으로 본다. 대통령을 살해하려고 무장공비를 침투시킨 1·21 청와대 습격, 아웅산 폭탄 테러, 대한항공 폭파 등 반인륜적 테러행위를 저질렀고, 동해안 잠수정 침투, 천안함 폭침 공격 등 무력 도발은 도를 더해가고 있다. 무고한 민간인을 집단 살해하고도 입만 열면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우는 냉혈한(血漢)들이다. 저들은 만행을 저질러 놓고 발뺌하거나 우리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워 응징하겠다며 협박했고, 자기 잘못을 인정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천안함 폭침을 ‘남측 자작극’이라 우기고, 연평도 포격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군사시설 안에 민간인들로 인간방패를 세운 우리의 책임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60년 전 6·25전쟁을 일으켜 한반도 전역을 초토화하고 수백만명을 살해한 그들이 처음에는 북침이라고 우기더니, 남침 사실이 밝혀지자 ‘민족통일을 위한 불가피한 전쟁’이었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북한은 거짓말과 뒤집어씌우기에 이골이 난 정권이고, 잔인성과 비양심의 표상이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공산당의 집권방식이 무력혁명과 폭동, 무차별 살상이었지만 북한은 유례가 없는 가장 악랄한 정권이다. 국민이 불안한 것은 북한의 호전성과 무력도발 때문만은 아니다. 원래 북한은 그런 정권임을 알기 때문이다. 북의 남침을 막고 군사적 도발을 억제하라고 연간 30조원이 넘는 혈세를 들여 60만명 이상 병력을 유지하는데, 북의 도발에 어이없이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은 불안한 것이다. 불과 10㎞ 거리의 적 포진지에서 1000여문의 해안포가 우리를 겨누고 있는데, 우리는 고작 K9 자주포 6문을 배치했을 뿐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K9 자주포로는 적의 동굴을 공격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고, 3문은 고장이 나서 3문만으로 반격을 가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런 군 지휘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대 국민 담화에서 국방개혁으로 강군을 만들어 북의 추가 도발을 단호히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 국민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아 국민의 신뢰가 낮아진 터라 강력 응징이란 말을 선뜻 신뢰하기 어렵다. 천안함 전사자 46명을 보내던 날 이 대통령은 북한의 추가 도발 시 2~3배 응징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응징하지 않았다. 더욱 불안한 것은 정치권의 반응이다. 연평도 포격에 대해 일부 정치인들은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결과라며 정부의 대북정책에 책임을 돌렸다. 국회의 대북결의안 채택 시에도 일부 국회의원은 주저하거나 반대했다. 어느 나라 국회의원인지 의심스럽다. 세비 인상, 보좌관 수 늘리기, 전직 국회의원 평생연금 월 120만원씩 지급, 정당공천제 도입 등 자기 잇속 챙기기 법안 통과에는 한통속인 여야 국회의원들이 정작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했다. 북한의 전쟁 도발을 막으려면 최신무기들을 배치해 전력을 증강해야 한다. 정부는 특별예산을 편성해 서해 5도 지역을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로 만들고, 북한의 어떤 도발에도 즉각 응징할 수 있는 철통 방위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군은 훈련을 강화하고 정신무장을 해야 한다. 국민·정부·군·정치인은 하나로 뭉쳐야 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치를 것이란 결의를 다져야 한다. 우리 군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 최강의 미군과 동맹을 맺고 있다. ‘전쟁을 피하려면 전쟁준비를 하라.’ 그래야만 국민은 안심할 수 있다.
  • [서울신문 보도 그후] 피란민 긴급 생활지원금 대상·금액 확정

    연평도 주민 보상 대상자 선정을 둘러싸고 주민비상대책위원회와 인천 옹진군 관계자들이 고심하고 있다는 서울신문 보도 이후 피란민에게 일시 생활위로금의 대상과 금액이 확정됐다. 주민 일시 생활위로금은 긴급 생활지원금의 성격이지만 앞으로 보상 대상 선정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30일 옹진군 등에 따르면 앞으로 지급될 보상금도 이번에 마련된 주민 일시 생활위로금의 3가지 지급 대상기준에 미달할 경우에는 지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마련했다. 앞서 옹진군과 대책위는 주민등록 거주자 1756명과 실거주자 1326명 가운데 보상대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두고 논란을 벌였다. 이번에 마련된 주민 일시 생활위로금 지급기준은 ▲주민등록상 연평도에 적(籍)을 두고 실제 거주할 것 ▲최소 연 3회 여객선 승선 기록이 있을 것 ▲학생은 주소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지급할 것 등이다. 다만 주소지가 연평도로 되어 있어도 업무 특성을 고려해 공무원은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무원 가족은 지급받을 수 있다. 옹진군은 이날 622명의 주민 일시 생활위로금 5억 9150만원의 입금을 마쳤다. 전날 오후 옹진군 관계자와 연평도 주민비상대책위원회 등 11명으로 구성된 연평도 주민 일시 생활위로금 심의위원회는 지급 대상과 금액을 결정했다. 주민 일시 생활위로금은 연평도 주민 가운데 1089명이 신청했다. 대책위는 인스파월드에 머물고 있는 600여명 외에 친척집 등 외부 숙소에 머물고 있는 피란민에게도 일일이 전화를 걸어 생활위로금 지급 사실을 알렸다. 금액은 0~13세는 50만원, 14세 이상은 100만원이다. 옹진군에 따르면 622명을 제외한 나머지 467명은 실제 거주 여부나 승선기록이 확인되는 즉시 지급할 예정이다. 또 이번에 신청하지 못한 주민들에게도 추가로 주민 일시 생활위로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어렵게 기준이 마련됐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점도 여전히 남아 있다. 피란 나온 주민 가운데 상당수는 급하게 섬을 빠져 나오면서 통장을 미쳐 챙기지 못했다. 고령인 주민들은 은행계좌를 못 외우는 경우도 많았다. 또 신분증이나 도장이 없는 경우도 많아 보상금이 입금되더라도 당장 은행에서 이를 찾을 방법이 없다. 인천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