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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옴부즈맨 칼럼] 주변 의인과 천사가 주는 희망/이인재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정책관

    [옴부즈맨 칼럼] 주변 의인과 천사가 주는 희망/이인재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정책관

    지난 1월 10일 4명이 사망하고 126명이 부상당한 경기도 의정부 오피스텔 화재 현장에 있었던 숨은 의인들의 영웅담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동아줄 의인’으로 불리는 이승선(51)씨는 가스 배관을 타고 올라가 30m 길이 밧줄로 10명의 생명을 구했다. 옥상 난간에 판자를 연결해 12명을 옆동으로 대피시킨 진옥진(34) 새내기 소방관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불길 속에 몸을 던졌다. 옆 건물에서 관리소장으로 일하다가 연기로 가득한 건물 10층까지 세 차례를 오르내리며 주민들을 대피시킨 염섭(62)씨는 “세월호 선장과 같이 비겁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우리를 한번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주말 여느 때와 같이 필자가 체육관에서 운동을 마친 뒤 택시에 올랐을 때는 모처럼 눈이 날리고 있었다. 젊은 시절 좋은 직장에서 근무했을 법한 택시기사가 흘끗 쳐다보더니 “요즘 유달리 사고도 많고 사건도 많아 온통 나라가 어수선…”이라고 운은 뗀 뒤 말끝을 흐리면서 내 화답을 기다렸다. 나는 “요즘 스마트폰 동영상과 사진으로 속속들이 국민들이 보고 있고, 인터넷과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빠르게 퍼지기 때문에…”라고 지극히 조심스럽게 답했지만 어느새 지난 몇 달간의 사건·사고들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땅콩 회항 사건이 보여 준 재벌 자녀의 비뚤어진 특권의식, S대 모 교수의 성희롱 사건, 하버드대 박사 출신인 서울시향 대표의 모욕적 막말 파동이 국민들의 눈에는 갑(甲)질 문화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필자를 포함해 국민 모두의 공분을 산 인천 모 어린이집 가해 보육교사(33)의 상습적 폭행과 학대는 양심불량 어린이집의 인면수심 그 자체다.<서울신문 1월 8, 17일자> 하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 승객을 버리고 도망친 선장, 선원들과 달리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친구와 제자 그리고 승객을 구한 의인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디 의인들뿐이겠는가. 얼굴 없는 천사도 많이 있다. 지난해 말 대구에서 1억 2500만원을 건네고 홀연히 사라진 60대 남성, 서울 명동에서 1억원짜리 수표가 든 봉투를 전달하고 자취를 감춘 사람, 전북 전주시 노송동에 15년째 거르지 않고 수천만원씩 익명으로 기부한 독지가 등.<서울신문 2014년 12월 31일자>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만은 누구보다 부자인 천사들도 많다. 서울 서대문구 인왕산 중턱에서 2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개미마을’은 6·25전쟁 때 피란민들이 판잣집을 지어 살면서 형성된 달동네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이곳 주민들은 사회에서 받은 도움을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연말이면 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성금을 모금하고 있다. 기초수급자 할머니도 빠짐없이 1만원짜리 ‘통 큰 기부’를 하고 있고, “작은 방에서 연탄불로 겨울을 나는 어르신들도 500원, 1000원이라도 꼭 쥐여 주신다”고 통장 이선옥(57)씨는 말한다(기초수급 어르신들 이웃돕기 마음은 ‘알부자’, 서울신문 1월 7일자 25면).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의인과 천사들이 많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 희망을 준다. 내 생애뿐만 아니라 우리 후세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이어 줄 것이다. 삭막하게만 느껴지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큰 희망이 살아 있어 오늘도 참 따뜻한 겨울을 느낀다.
  • “모든 순간 두 아들에게 필요한 사람이길 원해요” 미소가 귀여운 이 남자의 뜨거운 부성애

    “모든 순간 두 아들에게 필요한 사람이길 원해요” 미소가 귀여운 이 남자의 뜨거운 부성애

    “유명 배우가 되기 전에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 공원에 갔어요. 솔잎을 치우고 바닥에 원하는 소원을 쓴 뒤 덮는 일을 계속했죠. 아마 호주에서 그렇게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한 배우는 저밖에 없었을 거예요. 늘 다른 배우들이 하지 않는 뭔가를 하려고 노력했죠.” 영화 ‘글레디에이터’ ‘레미제라블’ ‘노아’ 등에서 그만의 존재감을 확인시켜 국내에 두꺼운 영화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호주 출신의 할리우드 스타 러셀 크로(51). 19일 처음 내한해 서울 역삼동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한 그는 세계영화제들에서 40여 차례나 남우주연상을 받은 비결을 묻자 ‘절제와 노력’을 강조했다. “저는 작품을 무척 까탈스럽게 고르는 편입니다. 특히 스토리를 중시하는 편인데,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제 스스로 감동을 받지 않으면 선택을 하지 않죠. 연극과 영화를 막론하고 배우에게는 디테일, 협력하는 자세, 집요한 노력이 중요해요.” 특유의 낮은 저음으로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라고 또박또박 한국어로 인사를 건넨 그는 청바지 차림의 편안한 옷차림만큼이나 소탈한 답변을 돌려줘 회견장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오는 28일 국내 개봉되는 새 영화 ‘워터 디바이너’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8만명의 전사를 낸 터키 갈리폴리 전투에서 세 아들을 모두 잃고 시신을 찾아 나선 아버지의 험난한 여정을 그린 드라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그는 절절한 부성애를 연기했다. “극중 인물은 깊은 상실감에 빠진 채 힘든 여정과 모험을 겪어요. 한국도 전쟁을 겪은 데다 가족애에 대한 가치관이 남다르기 때문에 공감을 얻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삶의 동력인 두 아들과 떨어지는 것을 가장 걱정하고 싫어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아버지가 되기를 원하죠. 영화에서도 그런 유대감을 표현하려고 애썼어요.” 영화는 그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하다. 그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평소 친한 감독들에게 조언을 구해 연기와 연출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을 해결했다”고 귀띔했다. “5편을 함께 찍은 리들리 스콧 감독은 특히 코드가 잘 맞아 평소에도 아이디어를 많이 교류하는 사이죠. 벤 스틸러 감독도 조언을 해 줬어요. 연출하느라 다른 배우들의 연기에 신경 쓰다 보면 정작 내 연기를 놓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요.” 그가 연출할 차기 작도 이미 결정돼 있다. “베트남 전쟁 때 피란민이 9m 어선을 타고 호주로 피란 오는 이야기를 그린 ‘해피 레퓨지’라는 작품으로, 아시아에서 촬영할 예정이에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도 꼭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최동호 새벽을 열며] 패망의 역사에서 희망의 역사로

    [최동호 새벽을 열며] 패망의 역사에서 희망의 역사로

    처음부터 희망의 역사를 쓰기에는 우리가 처한 현실은 불투명하고 가변적이다. 사회의 여론은 양극화를 치달려 모든 사안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 것 같다. 20세기 한국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 전반은 패망의 역사요 그 후반은 극복의 역사이다. 21세기 우리는 더 큰 희망의 역사를 성취해야 한다. 한국은 20세기 전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1945년에 맞이한 광복은 민족분단으로 이어졌다. 1950년 발발한 6·25는 거의 세계 3차 대전에 가까운 엄청난 민족상잔의 전쟁이었다. 20세기 한국은 패망의 역사를 고난 극복의 역사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최근 화제의 영화 ‘국제시장’은 1950년 12월 10만명의 피란민 흥남철수작전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덕수는 가족을 부탁하고 동생을 찾아 나선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린 가장이 되어 온몸으로 자신을 희생한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파독 광부로, 다시 월남전 노무자로 나가 외화를 벌어 생활의 터전을 마련한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는 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한 외신기자의 말을 통쾌하게 뒤집고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산업화는 물론 민주화를 이루면서 고도성장을 거듭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6·25 직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 이하였으며 2015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와 같은 아버지들의 각고의 노력이 뒷받침돼 이루어진 놀라운 국가적 발전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결여된 것이 하나 있다. 국민소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한편에서는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단이라는 민족사적 과제가 남아 있다. 통일대업이 역사적 사명이라는 것은 명백한 일이지만 아직 그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와 시련이 가로놓여 있다. 최근 한국사회의 분열은 역사의식의 결여나 반목에서 온다. 덕수 세대들이 가진 아버지의 논리는 이미 유효성을 상실하거나 현실을 통어하는 힘을 상실한 것 같지만 지난 100년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 우리는 미래지향적 역사의식을 가질 수 없다. 원로 인문학자 홍일식 교수의 역저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문화대국을 지향하는 인문학적 비전을 담고 있다. 조국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사명감으로 저술된 이 책은 종전에 우리가 가진 역사인식을 전환하는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전통문화를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하고 외면하기만 한다면 문화 대국으로 가는 창조적 원천을 찾을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은 낡은 논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경제발전을 위해 치달려 온 결과 지금 우리가 당면한 여러 난제를 풀어나가는 지혜를 함축하고 있다. 단재 신채호는 국권 상실기에 쓴 ‘대한의 희망’에서 “크구나, 대한의 희망이여, 아름답구나, 대한의 오늘의 희망이여, 머지않아 조물주가 세계 민족마다 시험성적을 발표할 것이니 우리 국민이 제1등의 자격을 가질 것이다”라고 했다. 단재는 또 “역사를 오도하는 것은 역사학자”라고도 했다. 홍일식 교수는 어떤 의미에서 신채호가 역설한 희망의 사관을 계승한 것이다. 역사의 정도를 바로잡는 데 비판적 지성은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그러나 패망의 역사에서 고난 극복의 역사로 그리고 희망의 역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역사적 담론이 절실하다. 진보와 보수라는 낡은 정치적 틀로 미래의 역사를 일방적으로 재단한다면 산업화시대의 상황적 논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비전은 상극이 아니라 상생, 갈등이 아니라 화합이며 그 목표는 민족 통일과 문화대국의 건설이다. 21세기 창조적 문화대국의 건설을 위해서는 지난 100년 동안 우리가 축적한 귀중한 체험과 지혜를 되살려 희망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혜안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원로인문학자의 충심에서 우러나온 증언을 한번 경청하고 역사의 방향성을 심도 있게 구상할 필요가 있다. 경남대 석좌교수·시인
  • [씨줄날줄] ‘현봉학 리스트’/구본영 논설고문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이 숱한 화제와 논란을 부르면서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뒀단다. 영화의 전체적 완성도에 대해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평론가들도 도입부의 흥남 철수 장면의 스펙터클에 관한 한 후한 점수를 주는 것 같다. 6·25 전쟁 당시 흥남 부두의 숨막힐 듯한 순간을 잘 재현했다는 점에서다. 중공군에 밀려 후퇴하는 미군들과 피란민 수만 명이 뒤엉킨 그 아수라장을 말이다. 이 장면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 나온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아들 고윤(본명 김종민)이 단역을 맡아 가십 기사를 제공한 현봉학(1922∼2007)이 바로 그다. 그는 영화 초반부 10분가량의 흥남 철수 신에서 불과 1∼2분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라는 현대사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수많은 한국인들이 그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본다. 영화에서도 보듯 그는 미군과 군수품을 싣기에도 빠듯한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피란민 1만 4000여명을 태우는 데 성공한다. 망설이는 아몬드 미 10단장과 그의 참모인 에드워드 포니 대령을 상대로 “이대로 철수하면 저 사람들은 다 죽는다”고 읍소, 그들의 마음을 돌린 것이다. 다만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탱크와 같은 무기를 몽땅 버리고 피란민들을 태웠는지 여부는 고증이 더 필요한 대목이다. 비록 ‘단일 선박으로 가장 큰 규모의 구조 작전을 수행한 배’라고 기네스북에도 등재돼 있긴 하지만, 이 배 이외에도 193척에 달하는 수송선이 동원됐다는 기록도 있기 때문이다. 세브란스 의전을 마친 후 미 버지니아주립 의대를 다니던 현봉학은 6·25가 터지자 해병대 문관으로 참가했다가 아몬드 소장과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다. 버지니아주 출신인 아몬드가 그를 통역을 맡을 민사고문으로 스카우트하면서다. 물론 아몬드 소장과 현봉학의 개인적 인연이 피란민 구조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에도 논란은 있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그의 진심이 통했다는 점이다. 사실 소아마비를 앓아 군 면제 대상인 그는 군의관으로 자원 입대했다. 청진기와 메스를 놓고 통역을 맡았지만 사람부터 살려 놓고 봐야 한다는 휴머니즘이 무려 9만 8000여명의 목숨을 구해 낸 셈이다. 히틀러 치하에서 독일 기업인 오스카 쉰들러는 사재를 털어 1만 2000명의 유대인들을 살려 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본 바처럼. ‘흥남 철수’는 세계 전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민간인을 탈출시킨 작전으로 기록돼 있다. 목숨을 건 탈북 대열이 꼬리를 물고 있는 요즘 현봉학의 선택이 위대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도 쉰들러는 알지만 현봉학은 모르는 세태라면? 청년 세대를 오도한 신은미·황선씨의 ‘토크 콘서트’ 여진을 보면서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는데….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구본영 칼럼] 다시 ‘국제시장’에 설 젊은 그대에게

    [구본영 칼럼] 다시 ‘국제시장’에 설 젊은 그대에게

    영화 ‘국제시장’을 보는데 눈시울이 젖어 왔다. 옆자리 아들에게 티 내지 않으려 무던히 애썼다. 주인공 덕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자식들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라고 할 때 연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군대 말년 휴가를 나온 아들도 눈물을 글썽거리는 듯했다. 하긴 설령 신파극이라 한들 공감하는 걸 부끄러워할 까닭도 없다. 우리 모두가 근현대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헤쳐 온 ‘또 다른 덕수’이거나 그의 아들·딸이 아닌가. 매사를 이념적 잣대로만 보는 배배 꼬인 영화평론가가 아니라면…. 따뜻한 덕담이 오가는 연초다. 하지만 현실은 늘 녹록지 않다. 먹고살 만한 나라가 됐다지만, 청년들은 할아버지 세대보다 더 행복하지 않은 모양이다. 세밑 ‘대학생과 함께하는 청춘 무대’에서 한 대학생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던진 물음이 귓전에 맴돈다. “‘청년실신’이란 말을 아시냐?”고. 청년·실업자·신용불량자의 준말이란다. 최악의 구직난에 직면한 청춘들의 자조 어린 아우성이다. 청춘의 불안감을 어디 ‘풍요의 세대’의 배부른 투정쯤으로 치부할 일인가. 이제 부산의 시장통에서 이어 가던 피란민의 고단한 삶은 더는 없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드리워진 ‘세계화의 그늘’은 전에 없이 짙다. 고용 없는 성장과 ‘2대8 양극화 사회’가 기다린다니 그렇다. 며칠 전 칼라일그룹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회장은 회견에서 한국 대학생 다수가 공무원을 꿈꾸고 있는 건 문제라고 했다. 미국 청년들의 롤모델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빌 게이츠 MS 창업자 등이라면서. 하지만 미국과 달리 패자부활전도 없는 터에 누가 실패해도 좋으니 도전해 보라 할 건가. 부산을 넘어 지구촌의 국제시장을 누벼야 할 청년들이 현실에 안주하려 한다면? 고교 전국 1등에서 2000등까지 의대를 고르는 세태라면? 그들을 탓하기보다 기성세대, 특히 경제·교육 등 제반 정책에서 역량을 보여 주지 못한 박근혜 정부 당국자들이 마땅히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국제시장’ 주인공들이 애국가가 들리자 부부 싸움도 중단하고 국기하강식에 참여한 ‘애국심’을 높이 샀다. 한데 그런 과도한 국가주의가 요즘 세대에 먹힐 리가 없거니와 그 시대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그러나 청년 세대가 지레 좌절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인생이라면. 교문을 나서는 순간 매서운 칼바람을 만난다지만 6·25 전쟁 당시 흥남 부두의 삭풍보다 더 차가울 리는 없다. 요즘 ‘미생’(未生)들의 삶도 고단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려 이역만리 서독의 탄광 막장과 병실에서 석탄을 캐고 시신을 닦던 ‘덕수와 영자’의 신산(辛酸)에 비하랴. 영화 속 국제시장은 미군 물자나 밀수품 등을 팔아 ‘국제’라는 이름만 붙었을 뿐이지 생사를 건 전쟁터였다. 까닭에 애국심에 기대 정부의 무능과 사회의 부조리에 눈감으라 요구해서도 안 되겠지만, 자신은 공동체를 위해 ‘덕수’만큼도 헌신하지 않으면서 모든 걸 국가가 해결하도록 투쟁하겠다는, 입으로만의 선심과 사술(邪術) 또한 경계해야 한다. 자기 자식은 병역을 기피하도록 미국 유학을 보내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한다고 미 대사관 앞에서 종주먹을 들이대는 정치꾼들을 익히 봤지 않나. 대한민국이 여전히 문제투성이 나라지만, 그래도 우리의 근현대사는 총체적으로는 성공 스토리였다. 비단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 규모 15위권 나라로 도약한 경제적 성취만이 아니다. 자유와 인권, 복지 등 모든 부문에서 세계 문명사의 큰 흐름을 좇아 더디지만 진일보하는 과정이었다. 흥남 철수 이후 오늘의 북한은 안성맞춤의 반면교사다. 국가가 무상으로 뭐든 제공하는 ‘지상락원’이라는데 탈북 대열은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누구든 국가의 혁신을 요구할 권리는 있겠지만 자학할 까닭은 없다. 기성 세대의 폐습과는 결별해야겠지만, 땀 흘려 일군 성취에 대해 체제를 부정하듯 “토 나온다”고 할 이유도 없다. 현실이 고달프더라도 새로운 도전을 마다 않는 진취적 자세가 절실하다. 이것이야말로 ‘국제시장’이 ‘젊은 그들’에게 주는 눈물보다 더 순도 높은 메시지일 듯싶다.
  • 기초수급 어르신들 이웃돕기 마음은 ‘알부자’

    기초수급 어르신들 이웃돕기 마음은 ‘알부자’

    “이 정도면 나는 많이 부자야. 맨날 받기만 하는데 나눠 쓰고 싶어.” ‘개미마을’ 기초생활수급자 정연인(왼쪽·81) 할머니는 6일 꼬깃꼬깃한 1만 원권 한 장을 주머니에서 꺼내 통장 이선옥(57)씨에게 건넸다. 6·25 전쟁 때 피란민들의 임시 거처였던 개미마을은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인왕산 중턱에 형성된 무허가 판자촌으로, 서울에 남은 몇 안 되는 달동네 가운데 한 곳이다. 수은주가 영하 4도까지 내려간 6일 개미마을에서 만난 정 할머니의 손은 차디찬 수돗물로 빨래를 하느라 꽁꽁 얼어 있었다. 집 앞 빨랫줄에는 칼바람을 맞아 고드름이 맺힌 옷가지들이 널려 있었다. 2평 남짓한 정 할머니 집을 연탄이 빼곡히 채웠다. 이씨의 손을 맞잡은 정 할머니는 “더 내고 싶지만 만 원만 낼게”라며 환하게 웃었다. 할아버지는 수년 전 돌아가시고 아들은 직업을 잃고 멀리 떨어져 산다. 개미마을 24통 통장 8년차인 이씨는 7년 전부터 사회에서 받은 도움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십시일반으로 이웃 돕기 성금을 모금해 왔다. 이씨는 “추운 날에도 경사진 골목길을 걸어서 어르신 한 분 한 분을 만났다”며 “작은 방에서 겨우 연탄불로 겨울을 나는 어르신들이지만 500~1000원이라도 꼭 쥐여 주신다”고 전했다. 정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도 모금을 시작한 2008년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통 큰’ 기부를 해 왔다. 이씨는 “주민센터에서도 모금자 명단에 적힌 정 할머니의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곰팡이가 핀 집에서 한평생을 어렵게 살아오신 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씨는 “마을의 겉모습은 허름하고 남루하기 짝이 없지만 시골 마을처럼 끈끈한 인심은 이곳의 큰 자랑”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주민 절반 이상이 독거노인으로 기초노령연금에 기대어 살아간다”며 “모금액은 30만원 정도로 크지 않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10만~40여만원으로 한 달을 생활하는 개미마을 사람들에게는 적지 않은 액수”라고 강조했다. 이어 “해마다 가구당 연탄 400장, 쌀 20㎏이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이웃들이 보내준 온정의 손길 덕분”이라며 “십시일반으로라도 은혜를 조금씩 갚아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글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영화 ‘국제시장’ 흥행 바람… 부산 관광상품으로 만든다

    영화 ‘국제시장’ 흥행 바람… 부산 관광상품으로 만든다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에 힘입은 부산 중구 국제시장이 관광 상품으로 거듭난다. 부산관광공사는 3일부터 ‘국제시장’ 촬영지를 안내하는 관광 코스를 운영한다고 2일 밝혔다. 관광공사는 ‘국제시장’이 영화 ‘해운대’에 이어 1000만명 이상 관객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국제시장을 비롯한 부산의 원도심을 관광 상품으로 묶어 홍보하기로 했다. 관광공사는 3일부터 한 달간 현행 ‘원도심 근대역사 골목 투어’ 프로그램 가운데 국제시장 코스에 영화 촬영지를 추가하는 특별 투어를 운영한다. 영화 속 ‘꽃분이네’를 비롯해 덕수(황정민)와 아내 영자(김윤진)가 말다툼하다가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국기에 경례했던 용두산공원도 포함된다. 국제시장 투어는 기존 원도심 골목 투어와 마찬가지로 스토리텔러인 ‘이야기 할배·할매’들이 국제시장에 얽힌 역사를 설명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형성한 국제시장의 역사와 영화 속 일화를 할배·할매들의 구수한 얘기로 풀어낼 예정이다. 이번 투어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영화 촬영지를 관광 상품화한 사례다. 특별 투어는 3일부터 온라인 사전 예약을 받아 1월 한 달간 총 16회 무료로 운영하고 관광객의 만족도 등 성과에 따라 상시 코스로 전환할 예정이다. 부산 오성택 기자 fivestar@seoul.co.kr
  • [씨줄날줄] ‘메이드 인 USA’의 부활/구본영 논설고문

    6·25 피란민들이 고단한 삶을 잇던 시장통은 미국 제품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요즘 뜨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 속 풍경이다. ‘흥남 철수’ 장면의 스펙터클도 대단했지만, 1950년대 부산 국제시장을 리얼하게 재현함으로써 영화는 올드팬의 시선을 사로잡은 듯싶다. 국제시장에 가 본 적은 없지만, 필자도 어릴 적 ‘미제(美製)=최고급품’으로 인식했던 세대에 속한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미 연수 생활 중 그런 고정관념은 여지없이 깨졌다. 가전제품 매장 맨앞 진열대엔 일제 소니 TV가 자리 잡았고, 브라운관 시대를 연 RCA 등 미국산은 삼성·LG 제품과 함께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미국의 퇴조를 예언한 폴 케네디의 책 ‘강대국의 흥망’이 나온 뒤의 얘기다. 2008년 미국 출장 중 찾은 워싱턴의 가전 매장에서도 미국 제품은 여전히 찬밥이었다. 소니 대신 삼성·LG 제품이 앞자리를 차지한 반전에 얼마간 뿌듯했던 기억이 새롭다. 도요타와 혼다 등 일제 차들이 홍수를 이룬 주차장에 드문드문 현대·기아차가 눈에 띄는 게 약간의 변화였다. 그러나 세상은 돌고 도는 건가. 미국 경제가 다시 고속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 3분기 성장률이 5.0%를 기록한 것으로 추계된단다. 개발도상국도 아닌데 놀라운 수치다. 더욱이 유럽연합(EU)과 중국·일본이 경제 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가 살아나니 대통령 연임 중 업적이라곤 없다는 평가를 받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도도 최근 20개월 만에 최고치(48%)를 기록했다. 그가 성탄절 연휴 중 하와이에서 ‘골프 삼매경’에 빠진 배경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나홀로 질주’ 비결이 뭘까. 다수 전문가들은 ‘정보기술(IT) 시장’ 등 각 분야에서 미국의 혁신 역량을 주목한다. 실리콘밸리처럼 돈과 인재, 그리고 기술이 몰려드는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은 타국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미국을 유가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 ‘셰일혁명’을 원동력으로 꼽는다. 에너지 비용 감소로 미 제조업이 다시 황금시대를 맞았다는 해석이다. 오바마 정부에서만 해외로 나갔던 제조업체 150개사가 ‘유턴’했다니 그럴싸하다. 나무 블록 장난감 ‘링컨 로그’를 만드는 케넥스가 중국 공장 문을 닫고 귀환한 게 상징적이다. 케네디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인구 이동에 대한 비관적 예측으로 미국 경제의 쇠퇴 가능성을 점쳤다면 ‘메이드 인 USA’의 부활은 제조업이 경제의 펀더멘털임을 방증한다. 미 제조업의 부흥은 한국 경제에도 산 교훈이다. 오바마 정부의 고용장려금 지원 등 기업 육성 정책과 생산성에 연동하는 미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힘입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세월도 쉬어가던 섬… 지는 해 배웅하는 너

    세월도 쉬어가던 섬… 지는 해 배웅하는 너

    교동도는 은둔의 섬이었다. 인천 강화도를 거미줄처럼 잇던 도로들도 바다 너머 교동도에는 이르지 못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인 데도 그랬다. 요즘엔 달라졌다. 강화도와 교동도 사이에 교동대교가 놓였다. 그 덕에 여행 목적지도 북녘땅 가까운 곳까지 한껏 확장됐다. 다리가 놓이기 전, 외부 세계와 단절되다시피 했던 교동도엔 그 간극만큼이나 남아 있는 보물들이 많다. 낡고 수수한 풍경을 따라 겨울 볕 즐기기 딱 좋다. ●도로가 닿지 못하던 곳… 대교 생기며 뭍에 편입 강화도 서쪽 끝. 걸어서는 갈 수 없었던 곳으로 다리가 놓였다. 길이 3.44㎞에 폭 13.85m, 왕복 2차로의 교동대교다. 이 다리 덕에 바다 너머 교동도가 자연스레 뭍으로 편입됐다. 예전엔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교동도로 들어와야 했다. 그나마 조수간만의 차가 커 간조 때는 서너 시간씩 배 운항이 정지됐고, 물이 덜 찼을 땐 교동도 월선포 선착장까지 15분이면 닿을 뱃길을 1시간 넘게 돌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가깝고도 먼 섬이 교동도였다. 교동대교 앞에 서면 강 양쪽으로 철조망이 펼쳐져 있다. 북녘땅이 그리 멀지 않다는 걸 새삼 일깨우는 장면이다. 교동도 서단의 말탄포에서 북한의 황해남도 연안군까지는 직선거리로 2㎞ 정도에 불과하다. 바다 폭이 좁으니 북한 주민이 헤엄쳐 넘어와 귀순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지난여름에도 북한 주민 2명이 그랬다. 이처럼 북한과 가깝다 보니 교동도 전체가 민통선 지역이다. 당연히 출입절차도 마련돼 있는데, 그리 까다롭지는 않다. 이름과 연락처를 적은 출입신청서와 신분증만 제출하면 된다. 다만 출입 시간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기준이다. 검문소 초병은 “오후 6시 30분 이전에 나와야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익일(다음날) 오전 6시 30분 이후에나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말은 그렇다지만, 설마 늦었다고 섬에서 나오는 걸 막으랴. 한데 초병의 다부진 자세로 미뤄보건대, ‘좋은 게 좋은 거’ 식으로 생각했다간 꼼짝없이 하룻밤을 묵는 낭패를 당하지 싶다. ●‘철새 놀이터’ 고구저수지·교동읍성 등 명소 교동대교를 건너면 길은 곧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은 고구리, 왼쪽은 읍내리 방면이다.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없지만, 고구리 쪽으로 방향을 잡고 섬을 한 바퀴 도는 게 일반적이다. 다리 건너 만나는 첫 번째 명소는 고구저수지다. 수도권 낚시인들 사이에서 ‘대물터’로 입소문 난 곳이다. 겨울이면 수많은 겨울철새들이 찾아와 장관을 이룬다. 도시 사람들은 흔히 섬사람들이 물고기나 잡으며 살아갈 것처럼 생각한다. 한데 교동도는 넓다. 논농사를 많이 짓는다. 특히 삼선리 일대 개시미벌을 보면 생각이 싹 바뀐다. 들녘이 어찌나 너른지, 꼭 전북 김제의 만경평야를 보는 듯하다. 지금은 강화군에 딸린 면소재지로 전락했지만 옛 교동도는 독립된 군현이었다. 조선 전기에는 교동현(喬桐縣)이었다가 인조 7년(1629)엔 교동도호부(喬桐都護府)로 승격되기도 했다. 강화군에 완전히 병합된 건 일제강점기인 1914년이다. 교동도 남쪽의 남산포엔 삼도수군통어영도 있었다. 경기, 황해, 충청도의 해군을 지휘하던 곳이다. 한반도가 두 동강 나지 않았다면, 사실 수군의 중심지가 되기에 적합한 위치가 교동도다. ●근대사 풍경, 밀려든 관광객에 얼마나 지켜질지 교동도에 들면 시간이 묻혀 있다는 걸 단박에 느끼게 된다. 가까운 근대사와 옛 고대사가 뒤섞여 있는 느낌이다. 교동대교가 세워진 이후 주말에만 4000여대의 차량이 쏟아져 들어 온다는데, 이런 낡고 투박한 풍경이 얼마나 더 지켜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오래된 역사를 되짚자면 교동읍성을 먼저 찾는 게 순서다. 도읍인 한양을 지키는 성이 도성이고, 지방 고을 읍에 세워진 게 읍성(邑城)이다. 교동읍성은 조선 인조 7년(1629)에 쌓은 석성이다. 동·남·북 세 개의 문 가운데 현재 남문(유량루)의 홍예문만 남았다. 아치형 돌문 두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그 자태가 아름다우면서도 견고하다. 한데 폐허 위에 서면 깊은 한숨만 나온다. 주변 성벽은 허물어졌고 돌들은 사라졌다. 출처와 제작연대를 알 수 없는 사금파리 조각들도 홍예문 위쪽에 널려 있다. 하지만 홍예문 주변엔 사람의 접근을 막는 펜스조차 세워져 있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건 들고나기 쉽지 않은 섬이었을 테니 성벽을 이루던 돌들도 멀리 가지 않았을 거라는 것, 그리고 돌들이 여전히 민가의 담장을 이루며 남아 있다는 거다. 교동읍성 주변에 황색 대룡이 나타났다는 황룡우물, 경기수영 터, 연산군 유배지(추정) 등 볼거리가 많다. 시간 너머의 흔적을 따라 찬찬히 둘러보길 권한다. 교동읍성에서 바다로 향하다 보면 길이 끊겼을 법한 곳에서 난데없이 작은 포구가 나온다. 동진포다. 고려시대부터 뭍과 교동도를 이어주던 나루였다는 곳이다. 안내판에 따르면 나루터는 교동읍성과 비슷한 시기에 조성됐다. 한양과 인천, 해주 등을 오가는 관문 노릇도 담당했다. 중국으로 가는 사신은 먼저 교동도로 와서 바닷길의 일기 등을 살핀 후 출항했다고 한다. 사신들의 임시 숙소인 ‘동진원’이라는 객사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손님을 맞고 배웅하는 광경이 제법 장관이었다는데, 이 장면이 바로 교동팔경의 하나인 동진송객(東津送客)이다. 조선시대엔 각종 조운선과 화물선 등이 오갔고, 한국전쟁 때도 수많은 배들이 들락날락했다던 동진포지만 지금은 배 한 척 없는 썰렁한 나루터로 남았다. 시멘트 포장 아래 조선시대 때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돌들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11명 ‘왕족의 유배지’… 한국전쟁 피란민 집결지 교동도는 왕족의 유배지였다. 정쟁에서 패한 신하들과 달리 왕족은 가까운 곳에 격리시켰다. 늘 그들의 동정을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교동도는 한양과 가까우면서 조류가 급해 유배지로서 최적지였다. 고려 21대왕 희종, 조선시대 안평대군, 임해군, 능창대군 등 11명의 왕족이 교동으로 유배됐다. 그 가운데 연산군은 교동도로 유배된 지 두 달 만에 사망했다. 읍내리에 연산군 적거지가 조성돼 있다. 대룡시장은 근대의 시간들이 갇혀 있는 공간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1960~70년대로 날아간 듯한 낡은 풍경과 만날 수 있다. 후줄근한 간판과 낡은 유리문, 옛 포스터 등을 보자니 기억 저편에 숨어 있던 향수가 현재로 소환되는 듯하다.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계란 푼 쌍화차 얻어 마실 수 있는 다방도 여태 남아 있다. 대룡시장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의 집결지였다. 전쟁 끝나면 얼른 돌아가려고 고향과 가까운 대룡리 일대에 진을 쳤다. 하지만 닫힌 문은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열리지 않았고, 고향 그리던 이들은 대부분 생을 마감하거나 생계를 위해 자리를 떴다. 골목은 짧다. 채 500m도 못 된다. 하지만 더께로 쌓인 시간은 도무지 방문객의 발걸음을 놓아주질 않는다. ■여행수첩 <지역번호 032> →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48번 국도를 따라 곧장 가면 교동대교가 나온다. 교동도 출입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다. 교동도에서 숙박하지 않을 경우 교동대교 앞 군 검문소에서 나오는 시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교동면사무소 932-5001. 강화버스터미널에서 교동도까지 운행하는 18번 버스가 신설됐다. 선진버스 933-6801. → 맛집 대룡시장 쪽에 먹거리가 풍성하다. 해성식당(932-4111)과 대풍식당(932-4030)이 그중 알려졌다. 오래된 ‘다방’도 두 곳 영업하고 있다. → 잘 곳 대룡시장에 교동파크(932-4164)라는 작은 모텔이 있다. 강화여인숙(932-4067) 등 오래된 숙박업소도 있다. 고구저수지 인근 고구촌펜션민박(933-8668), 난정저수지 주변 수정민박(934-8929) 등 민박집도 운영 중이다. 글 사진 강화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영화 ‘국제시장’ 제작 비하인드 영상

    영화 ‘국제시장’ 제작 비하인드 영상

    영화 ‘국제시장’이 19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기준 24만1612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누적관객 65만8415명을 기록했다. 지난 17일부터 관객을 맞이한 ‘국제시장은’ 개봉 하루 만에 박스오피스 1위 자리에 오르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국제시장’에 이어 ‘호빗: 다섯 군대 전투’와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제시장’은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평생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 없는 아버지 덕수(황정민)를 중심으로 그린 이야기다. 여기에 김윤진과 오달수, 정진영 등이 합류했으며, 2009년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해운대’의 연출자 윤제균 감독의 신작이기도 하다. ‘국제시장’은 연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에 이름을 올리는 등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에 ‘국제시장’의 배급을 맡은 CJ엔터테인먼트 측은 촬영 현장의 뒷이야기가 담긴 ‘제작 비하인드 영상’을 공개했다. 제작 비하인드 영상에서 윤 감독은 “영화를 시작하면서부터 꼭 만들겠다고 생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며 연출 의도를 밝혔다. 이어 윤 감독은 “‘해운대’ 같은 경우는 상상력이 발휘 될 수 있다. 반면 ‘국제시장’의 경우는 실제 있었던 일을 재현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자료조사와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등 공부를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너는 내 운명’부터 ‘신세계’까지 장르 불문, 독보적인 연기력을 선보인 황정민이 주인공 ‘덕수’ 역을 맡았다. 여기에 김윤진이 ‘덕수’의 동반자 ‘영자’ 역을 통해 황정민과 부부로 연기 호흡을 맞췄다. 황정민은 “시나리오가 굉장히 따뜻하고 좋았다. 아마 관객분들이 영화를 보면 놀랄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김윤진은 “소중하고 특별한 영화, 차원이 다른 가족영화가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나리오가 완벽에 가까웠다”라고 작품에 대해 신뢰를 보였다. 이밖에 제작 비하인드 영상에는 그때 그 시절 피란민들 삶의 터전을 그려내기 위해 생생하게 재현해낸 부산 국제시장 오픈 세트, 시대별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1만 벌 가량의 의상 등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7번방의 선물’과 ‘변호인’ 등 역대 휴먼영화 사상 가장 높은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한 ‘국제시장’은 개봉 후 첫 주말관객을 통해 100만 고지를 넘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영상=CJ엔터테인먼트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아부지, 이만하면 저 잘 살았지예

    아부지, 이만하면 저 잘 살았지예

    한국전쟁 흥남부두 피란 행렬, 무너져 버린 독일 탄광 갱도, 총탄이 빗발치는 베트남 건설 현장, 억척스럽게 생활하며 지켜내야 하는 국제시장통 가게 ‘꽃분이네’, 피란 때 헤어진 아버지와 여동생을 찾기 위해 헤매던 여의도광장…. 아버지는 그곳에 있었다. 힘겨운 세월을 건너온 우리 시대의 아버지 세대가 발붙이고 있었던 상징적인 공간들이었다. 선장이 되고 싶었던 덕수(황정민 분)의 어릴 적 꿈은 가장의 책임감에 치여 언감생심 입 밖으로 꺼내지조차 못했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 화면에 삶 속으로, 시간 속으로 날아가는 나비의 가냘픈 날갯짓 같은 일장춘몽이었다. 그래도 늙은 덕수는 회고한다. “아버지, 이만하면 저 잘 살았지요”라고. 영화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이 시대를 허위허위 건너온 우리들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독일에 광부로 나갔다가 간호사로 파견 와 시체만 닦고 있던 영자(김윤진 분)를 만났지만 무너진 탄광에서 구사일생하고, 여동생 결혼 자금을 마련하려 베트남에서 기술노동자로 일한 뒤 총탄에 맞아 죽을 고비도 넘긴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언론시사회에 앞서 영화사 측이 일회용 휴지를 나눠준 것도 울지 않고는 못 배길 거라는 자신감이었을 터이다. ●정주영 회장·앙드레 김·이만기 보는 재미 쏠쏠 특히 1983년 서울 여의도광장을 삐뚤빼뚤한 글씨로 가득 메웠던 이산가족들의 간절한 울부짖음은 TV 자료 화면만 봐도 여전히 울컥하게 된다. 흥남부두에서 헤어졌던 아버지와 여동생 막순이를 애타게 찾던 덕수는 이 행사에서 미국으로 입양 가서 살고 있던 동생 막순이를 33년 만에 극적으로 해후한다. 봐도 봐도 눈물이 쏟아진다. 윤제균 감독이 2009년 ‘해운대’ 이후 5년 만에 연출을 맡았다. 청년 덕수, 어린 덕수, 노년 덕수의 50~60년에 걸친 시간을 마구 오가는데도 스크린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매끄럽다. 영화 컷과 신을 절묘하게 전환하며 시간과 공간을 창출한다. 영화 곳곳에는 현대사의 실제 인물들이 있다. 흥남 철수 때 미군 장성을 설득해 피란민들을 군함에 태웠다는 현봉학 박사를 비롯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디자이너 앙드레 김, 미래의 천하장사 소년 이만기, 베트남 전쟁터에서 “저 푸른 초원 위에”를 흥얼거리던 가수 남진 등이 덕수 또는 달구(오달수 분)와 시대를 공유하며 살아온 인물들이다. ●대통령·고위층의 부정부패는 어디에 하지만 묘하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요구하는 정서를 쭉 따라가다 보면 문득 불편해진다. 역사의 사건 중 무엇을 보느냐, 그 자체가 정치적 입장을 설명한다. 윤 감독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자식 세대와 아버지 세대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영화의 시선은 아버지 세대에 머물러 있다. 한국전쟁 때 국민을 내팽개친 뒤 한강대교를 폭파시키고 먼저 도망친 대통령에 대한 기억이나, 독일로 광부를 보내고 근대화 역군이라고 칭송하던 시절 고위층의 부정부패는 물론 법의 이름을 빌려 국가가 살인을 저지른 일 등으로 상징되는 추악함은 찾아볼 수 없다. ‘국제시장’ 속 베트남 군인들은 1980년대 냉전시대 람보 영화에서 그랬듯 자기네 인민들을 마구 학살할 정도로 잔혹하다. 반면 덕수를 비롯한 한국인은 베트남인들에게 따뜻한 온정과 연민의 손길을 건넨다. 마치 미군이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또한 덕수의 자식들은 행복에 겨운 삶을 살면서도 누구 덕에 이만큼이나 살게 됐는지도 모른 채, 아버지가 겪어 온 세월 속 노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랑은 대화가 안 된다”며 무시한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화면에 세련된 방식으로 기존 우익사관을 버무린 작품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미지수다. 12월 17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지옥 탈출한 그녀들, 또다른 지옥에

    포탄이 떨어진 곳에서만 전쟁의 참상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전쟁의 고통은, 공습과 총격을 피해 달아난 이들의 삶을 여전히 따라다닌다. 특히 약자인 여성과 아이들이 더 그렇다. 1년 전, 가족과 함께 시리아 알레포를 탈출해 터키로 건너간 새마가 그 예다. 이슬람국가(IS)를 잡겠다고 덤벼든 연합군에, 수년째 지속된 내전까지 만신창이가 된 고향을 등지고 나선 새마네 가족은 지낼 곳조차 없었다. 간신히 구한 터키 가지안텝의 호텔은 하루 방값이 30달러였다. 그러나 온 가족이 레스토랑 허드렛일을 하고 버는 돈은 20달러. 그것도 일자리를 부탁한 레스토랑 주인에게 새마가 ‘몸’을 바쳐 얻은 자리다. 요로감염에 걸린 상태로 새마는 부족한 10달러를 벌기 위해 밤엔 매춘까지 한다. 괴로워하던 남편도 수긍했다. 새마는 “도움을 요청하면, 터키 남성은 반드시 성적 대가를 요구한다”고 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26일(현지시간) 전쟁 피란민 여성들이 또 다른 지옥에 빠지는 참혹한 현실을 집중조명했다. 매춘만이 아니다. 유엔에 따르면 터키 등으로 탈출한 시리아 여성과 아이들은 가정폭력, 교육 및 의료 서비스 제한, 강제결혼이라는 굴레에 갇혀 살고 있다. 터키에서만 150만명 이상의 난민들이 고통받고 있지만 그들을 위한 피난처도, 지원도, 정확한 통계도 없다. 시리아 정부는 “정보를 얻기가 너무 힘들다”고 손을 뗐다. 국경 인근에서는 터키 남성이 시리아 여성을 두 번째 부인으로 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터키에서 일부다처제는 불법이지만 12~16세 소녀는 ‘피스타치오’, 17~20세 ‘체리’, 20~22세는 ‘사과’라고 불릴 정도로 이제 관행이 됐다. 중매는 아예 ‘브로커’를 뜻하는 말로 변질됐다. 결혼이라는 명목하에 여성들을 시리아와 터키 국경 사이의 불법 밀수나 마약 판매, 인신매매 등에 활용하기 때문이다. 돈 한 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범죄조직의 먹잇감이 되는게 현실이라고 CSM는 지적했다. 이런 시리아 여성의 한 가닥 희망은 사랑이다. 터키 남성과 결혼을 앞둔 시리아 출신의 마나는 말한다. “시리아에 남아있는 것은 피 냄새뿐이에요. 터키에선 살아서 사랑할 기회라도 있어요. 당신이라면 포기할 건가요?”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新 국토기행] 옹진군

    [新 국토기행] 옹진군

    옹진군은 인천광역시에 속해 있지만 아직도 ‘경기도 옹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경기도에서 인천시로 편입된 지 20년이 됐건만 오랫동안 경기권에 포함됐던 점이 이러한 인식을 유발하고 있다. 또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한 백령도와 북한군 포격 도발이 있었던 연평도는 잘 알아도 이들 섬이 옹진군에 속한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옹진군의 역사는 실로 오래됐다. 황해 도서 지역에 신석기시대 유적이 분포돼 있는 것으로 미뤄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옹진군은 25개의 유인도서와 75개의 무인도서로 이뤄졌다. 일찍이 덕적도, 백령도 등은 중국과 통하는 해상 교통의 중간 거점이었다. 고대 한국~중국 간 항로는 인천에서 덕적도를 거쳐 중국 산둥반도로 가는 동로(東)와 흑산도를 거쳐 중국 명주(明州)에 도달하는 남로(南)가 있었는데 거리가 가깝고 안전한 동로가 주로 이용됐다. 고려시대인 940년부터 현재의 명칭인 옹진(甕津)으로 불렸으며 1018년 현령을 뒀다. 대청도는 고려시대의 유배지로 널리 알려졌다. 황해도에 속했던 옹진군이 1945년부터 경기도 관할이 됐다. 1953년 휴전협정에 따라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등 도서 지역을 제외한 옹진군 육지 지역이 휴전선 이북에 포함되자 황해도 출신 피란민들이 대거 옹진군으로 유입됐다. 1973년에는 영종면, 북도면, 용유면, 덕적면, 영흥면, 대부면 등 섬 지역 6개 면이 편입돼 옹진군은 전체가 섬으로만 구성된 군이 됐다. 1989년 경계 조정으로 영종면과 용유면이 인천시에 편입됐고 1994년에는 대부면이 경기도 안산시로 넘어갔다. 이듬해인 19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옹진군 전체가 경기도에서 인천시로 편입돼 오늘에 이른다. 군청은 인천 남구 용현동에 위치해 있다. 65세 이상 주민이 4250명으로 노인 인구 비율(20.5%)이 타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며 혼자 사는 노인 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옹진군의 대표적인 섬인 서해 5도는 북방한계선(NLL)에 인접해 북한 도발에 직면하곤 한다. 우리나라 최북단인 백령도에서는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이 일어났고 백령도 바로 밑에 있는 대청도에는 대청해전이 일어났다. 연평도에선 제1·2연평해전, 북한군 포격 도발 등이 이어졌다.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2010년 11월 발생한 연평도 피격은 서해 5도의 거주환경을 바꾸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포격 당시 파손된 집과 상가 32채는 당국의 지원으로 신축됐고 188채의 노후 주택은 개량됐다. 하지만 예산이 적어 서해 5도 전체적으로 볼 때 신청 가구의 3분의1 정도만 혜택을 받고 있다. 사업 첫해인 2012년에는 주택 개량을 신청한 534가구 중 243가구(45%)가 혜택을 받았지만 지난해 402가구 가운데 134가구(33%), 올해는 485가구 중 140가구(28%)만 지원을 받았다. 신축 대상 주택까지 포함하면 사업 기간이 끝나는 2016년 이후에도 650가구의 노후 주택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러나 서해 5도에 대한 정부 지원 예산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정부가 올해 서해 5도 발전 사업을 위해 반영한 예산은 401억원으로 2011년 이후 가장 적었다. 2011년 531억원에 달했던 게 2012년 482억원, 지난해 478억원으로 줄더니 올해는 400억원을 겨우 넘겼다. 정부가 3년간 투입한 예산은 1491억원으로 올해분을 포함하더라도 2000억원을 넘지 못한다. 정부는 지원 계획 발표 당시 2020년까지 9109억원의 재원을 투입하겠다고 강조했으나 이 추세라면 절반에도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해 5도 주민 5300여명에게 1인당 매달 5만원씩 지급하는 정주생활지원금도 주민 기대치에 못 미친다. 정모(56·연평도)씨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섬에 살라는 취지의 지원금이겠지만 용돈도 안 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두 배가량 늘려줄 것을 원하고 있으나 현재 정부 재정 형편으로는 1만원도 늘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역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진행하는 취로사업도 일정한 틀 없이 들쭉날쭉해 주민들이 불만을 토로한다. 옹진군 서해5도지원팀 관계자는 “낙후된 서해 5도의 특성상 정주 환경 개선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수록 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정부 지원은 갈수록 줄고 있어 걱정”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서해 5도 인근 해역에서의 중국 어선 불법 조업이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것도 주민들의 불안을 부채질한다. 특히 해양경찰청이 해체 위기에 처해 해경의 단속이 느슨해지자 중국 어선들이 제집 드나들듯 서해 5도 해역을 휘젓고 다니면서 치어까지 무분별하게 잡는 싹쓸이 조업을 해 어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진구(56) 연평도 어민회장은 “중국 어선들은 아예 운반선, 유류선까지 동원해 불법 조업을 한다”면서 “심지어 우리 어선이 쳐 놓은 통발 위에 그대로 통발을 겹쳐 올리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옹진군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 어획량이 날로 떨어지는 현실에서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수산 종묘 방류와 인공 어초 확대, 바다목장화 사업 등으로 어업 소득이 향상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지난해 서해 5도 어장 91㎢가 확장됨에 따라 꽃게, 까나리 등의 어획량이 250t 정도 늘어났다. 해양 생태계 복원을 위해 어장을 정화하고 갯벌 참굴단지와 해삼섬을 육성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아울러 농산물 브랜드화를 위해 고품질 쌀 생산 단지를 육성하고 단호박, 인삼, 무화과 등 특산품 재배를 확대하는 한편 고추 등의 작물에 대한 명품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옹진군은 어업만 성행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지역의 최대 섬인 백령도의 경우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70% 이상이다. 노동력을 절감하기 위해 무인헬기를 활용한 방제를 확대하고 농기계 임대 사업, 공공비축미 매입, 농사 장비 지원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옹진군 관계자는 “어업 못지않게 농업의 비중이 크다”면서 “어업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농업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섬의 미래를 좌우하는 또 다른 포인트는 관광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광업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군은 관광을 지렛대 삼아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여객 운임 지원, 관광상품 개발, 섬 둘레길 조성, 서해 5도 안보 관광 개발, 민박 현대화 등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지역별 소규모 축제 발굴에도 힘을 쏟고 있다. 7개 면으로 구성된 옹진군의 인구는 현재 2만 700명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다른 지역 대부분의 섬 주민이 날로 줄어드는 것과 대조적이다. 연평도의 경우 피격 사건 이후 인구가 오히려 100명 이상 늘어났다. 육지로 피난갔을 당시 연평도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며 당국에 새로운 정주처를 요구했던 주민들이지만 석달 만에 전원이 돌아왔다. 옹진 주민들에게 섬은 삶의 터전이자 숙명인지도 모른다. 조윤길 군수는 “군민들이 아픔을 딛고 일어서 새로운 도약을 이루려는 의지가 강하다”면서 “섬이 존재하는 한 주민들은 늘 그 자리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끊어진 48번 국도 맴도는 이산자들의 눈물과 희망

    끊어진 48번 국도 맴도는 이산자들의 눈물과 희망

    올해는 한국전쟁이 휴전되고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린 지 61년째 되는 해다. 15일 밤 7시에 방송되는 아리랑 프라임의 ‘이산자’는 고향을 가슴에 묻으며 죽음을 기다리는 우리 시대 마지막 남은 이산자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시인이자 평론가 김갑수와 음악 감독 이정욱이 통한의 현대사를 기록하는 구술채록자로 길을 나선다. 한국전쟁 당시 북쪽 주민의 피란길이었던 48번 국도를 떠나지 못하는 이산자, 그리고 그 시절 피란민이 지금껏 살고 있는 마을을 찾아간다.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 눈물 어린 이산자들의 사연, 그 비극의 역사를 ‘문학’과 ‘음악’으로 기록한다. 48번국도의 중간지점 김포에는 실향민의 한이 높은 봉우리로 솟아있는 애기봉이 있다. 한 해 20만명이 넘는 실향민이 올라와 눈물짓는 이곳에서, 경기 김포시 군하리에 터를 잡아 살고 있는 실향민 부부 목성균(88)·정정임(86)씨를 만났다. 매년 추석이면 망향제를 지내기 위해 나이든 몸과 성치 않은 다리를 이끌고 산을 오르는 실향민 부부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북녘 바로 앞에서 끊겨버린 48번 국도의 끝에서 그리운 ‘어머니’를 외치는 늙은 목소리가 들린다. 황해도 벽성 출신 화가 이동표 (83) 화백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초혼제를 치르기 위해 직접 그린 어머니의 영정을 태우고 있었다. 평생 고향을 모티프로 작품 활동을 해온 이 화백. 수백 장의 크고 작은 캔버스 위에는 한국전쟁의 처참함과 통일에 대한 열망이 형상화돼 있다. 이 화백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반드시 통일될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48번 국도의 끝에서 끝나지 않은 이산자의 희망을 기록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新 국토기행] ‘만추’의 그 길 걸으며…

    [新 국토기행] ‘만추’의 그 길 걸으며…

    청주는 천혜의 자연풍광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지자체와 시민들의 노력이 더해져 전국적으로 이름난 명소가 적지 않다. [가로수길] 경부고속도로 청주IC에서 복대동 산업단지(5.89㎞)까지 조성된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진입로로 찬사를 받고 있다. 1952년 당시 홍재봉 강서면장이 국토녹화계획에 따라 공급된 묘목 1600그루를 가로수로 식재하면서 탄생한 가로수길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서로 다른 매혹적인 분위기를 연출, 외지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주고 있다. 봄이면 파릇파릇해져가는 가로수들이 봄기운을 느끼게 하고 여름이면 울창한 녹음이 자연만이 줄 수 있는 시원함을 선사한다. 가을이면 빨갛게 물든 단풍이 행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겨울이면 눈맞은 가로수들이 장관을 연출한다. 한때 가로수길은 하복대 지구 택지개발공사로 인해 1㎞ 구간의 가로수가 베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시민들의 거센 항의로 위기를 모면했다. 가로수길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모래시계’와 영화 ‘만추’의 촬영장으로도 유명하다. [청남대] 상당구 문의면에 자리 잡고 있는 청남대는 20년간 대통령 전용별장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대청호반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그 속에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이곳을 사용했던 역대 대통령의 숨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청남대는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이다. 1980년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로 1986년 184만 4843㎡ 부지에 지어진 청남대는 민간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2003년 민간에 개방됐다. 청남대 관리권을 넘겨받은 충북도는 대통령이 머물렀던 본관과 골프장, 잉어장, 테니스장 등 기존 시설에다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산책로와 대통령 광장, 전망대 등을 추가로 조성했다. 2009년 건립된 ‘청남대 전망대’에 오르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청남대와 이를 둘러싼 대청호반의 조화로운 경관에 찬사가 절로 나온다. [수암골] 상당구 수동에 위치한 수암골은 피란민이 정착했던 청주의 대표적인 달동네였지만 드라마 촬영장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 2009년 드라마 ‘카인과 아벨’을 시작으로 ‘제빵왕 김탁구’, ‘영광의 재인’ 등 인기드라마들이 촬영되면서 관광객들과 함께 예술가들의 빈집 입주가 시작됐다. 또한 공공미술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충북민예총 회원 작가와 청주지역 대학생들이 ‘추억의 골목여행’이라는 주제로 서민들의 애틋한 삶이 묻어나는 좁은 골목에 아기자기한 벽화를 그려나갔다. 여기에다 수암골 곳곳에 그림 같은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요즘은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좋다. 벽화 골목으로 소문나면서 카메라를 멘 외지인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수암골에 오면 벽화골목이 끝나는 오르막길 바로 위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청주시내 야경도 즐길 수 있다. [초정약수]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에 위치한 초정약수는 라듐 성분이 다량 함유된 천연탄산수로 600여년 전에 발견됐다. 세계 광천계는 미국의 샤스터광천, 영국의 나포리나스광천과 함께 세계 3대 광천으로 꼽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초수고을 동쪽 39리에 있는데 그 맛이 후추 같으면서 차고 그 물에 목욕을 하면 병이 낫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초정’이라는 지명은 ‘후추처럼 톡 쏘는 물이 나오는 우물’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초정약수는 세종대왕이 오래 머문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종대왕은 책을 가까이 한 탓에 눈병이 생긴 데다 소갈증까지 겹치자 1444년 2월 초정리에 행궁을 지은 뒤 3월과 9월에 두 차례 이곳을 다녀갔다. 총 123일 머무르면서 병 치료를 위해 약수를 마시고 몸을 씻었다. 세조도 초정리에 머물며 피부병을 고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4개의 온천탕이 영업하고 있다. 해마다 6월이면 이곳에서는 세종대왕과 초정약수 축제가 열린다. 시는 행궁터를 복원하고 책마을과 한글테마파크, 세종대왕 힐링 100리길 등을 조성해 관광지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청주고인쇄박물관] 흥덕구 운천동의 청주고인쇄박물관은 규모가 작은 시립박물관이지만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곳이다. 현존하는 금속활자로 찍은 책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지를 배경으로 한 시설이어서다. 시는 1984년 당시 토지개발공사가 청주 운천동지구 택지개발사업을 하면서 발견한 쇠북 파편을 통해 1377년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라는 절이 운천동에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시는 1992년 그 자리에 지금의 박물관을 짓고 금속활자 주조과정과 인쇄과정을 재현했다. 4868㎡ 규모로 건립된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5개의 상설전시관, 수장고, 도서관, 세미나실 등으로 꾸며졌다. 시는 2007년 이 일대가 직지특구로 지정되자 전체면적 1591㎡ 규모의 ‘금속활자주조전수관’과 전체면적 1518㎡ 규모의 ‘근현대인쇄전시관’을 지었다. 글 사진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신화 걷어낸 자리, 인간 이중섭 만나다

    신화 걷어낸 자리, 인간 이중섭 만나다

    이중섭 평전/최열 지음/돌베개/932쪽/4만 8000원 화가 이중섭은 전설과 신화를 동시에 간직한 인물이다. 거칠기 그지없는 벌판에서 부른 노래는 불꽃으로, 수많은 그의 족적은 밤하늘의 별로 남아 있다. 때문에 이중섭에 관한 이야기들은 천재화가로, 고독한 예술가로, 애절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으로 회자된다. 9월은 이중섭의 달이다. 1916년 9월 16일에 태어나 1956년 9월 6일에 세상을 떠났다. 40년이란 길지 않은 생애를 식민지 백성으로, 피란민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멀리 떠나 보낸 외로운 사람으로 살다 갔다. 그는 평남 평원에서 태어나 평양과 정주, 원산 등을 거쳐 도쿄와 서울, 부산과 서귀포, 통영과 진주 등을 떠돌며 유랑민의 삶을 살았다. 이중섭은 수많은 기억과 기록으로 남아 그의 생을 증거하는 유용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기억이란 때로 왜곡되기도 하고 과장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중섭에 관한 숱한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 실체에 닿아 있을까. 신화 속 주인공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이중섭의 삶은 과연 어떤 것일까. 미술사학자 최열이 쓴 ‘이중섭 평전’은 바로 이런 물음표에서 출발한다. 우리 미술사에서 빠질 수 없는 화가 이중섭에 대한 기록을 다시 들추어내 신화가 된 화가의 진실을 꾸준히 찾아나선다. 숱하게 흩어진 수많은 기록을 통해 이중섭이라는 한 인간의 실체를 원점으로 돌이켜 세워놓고 그가 왜 신화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지를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이중섭 생애 전반을 복원하는 것은 물론 그동안 이중섭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많은 에피소드의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있다. 이중섭이 머물렀던 도시들의 문화계 풍경에는 한 예술가의 생애만이 아니라 식민지와 전쟁의 와중에 우리 문화계가 어떠한 지형을 구축하고 있었는지도 세세하게 녹아들어 있다. 사후 쏟아진 그에 대한 관심의 현상 또한 고스란히 담겼다. 아울러 작품과 생애의 밀접성에 주목하면서 때로는 잘못 읽히고 감상적으로 소비된 이중섭 작품세계의 본질이 과연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객관적으로 살피면서 그의 예술세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밖에 몇 차례 열었던 개인전의 경위, 사망 시점, 기존 저술들의 불확실성을 바로잡고 있다. 덕분에 이중섭을 둘러싸고 그동안 미묘하게 어긋나 있던 많은 사실들을 다시 고찰해 볼 수 있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우크라서 실제 총성 멎을지… 푸틴에게 달렸다

    우크라서 실제 총성 멎을지… 푸틴에게 달렸다

    우크라이나 정부, 친러시아 반군, 러시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5일 벨라루스에서 열린 다자회담에서 휴전안에 전격 서명함으로써 지난 5개월 동안 전 세계를 ‘신냉전’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우크라이나 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전기를 맞았다. 유엔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동부 유혈 사태로 인한 사망자는 정부군과 반군을 합쳐 2600명에 달하고, 피란민도 34만명이다. 지난 7월 말레이시아 항공기가 교전 지역에서 격추됐을 때 논의됐던 휴전안과 달리 이번에는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댔고 결국 합의에 이르렀기 때문에 실제로 양측이 전투를 멈출 가능성이 커졌다. 더욱이 휴전안은 친러 반군의 배후로 지목돼 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서서 제안했고, 우크라이나의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도 “합의안이 서명되면 곧바로 휴전을 명령할 것”이라고 밝혀 왔기 때문에 회담 전부터 성사에 무게가 실렸다. 동부의 친러 반군들이 세운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지도자 알렉산드르 자하르첸코도 “민스크에서 합의안이 도출되면 1시간 내에 전쟁을 중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정말로 총성이 멎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포로셴코 대통령이 ‘푸틴 안’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지도자들은 “절대 푸틴을 믿을 수 없고 반군이 당장 점령지에서 철수하기 전에는 계속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경파인 아르세니 야체뉴크 우크라이나 총리는 휴전 성사 직후 “러시아가 손을 뗀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미국과 유럽이 이를 보증해야 휴전이 실행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장의 반군들도 “우크라이나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푸틴에게 수차례 뒤통수를 맞았다’고 느끼고 있는 서방이 합의안을 전폭 지지할지도 미지수다. 당장 이날 영국 웨일스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담에선 더 강력한 러시아 경제제재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다만 휴전 상황을 봐 가면서 제재를 시행할지 결정할 방침이다. 나토는 또 우크라이나에 대한 1500만 유로(약 200억원) 규모의 군사 지원 기금을 조성하고, 동유럽 회원국에 이틀 내 배치 가능한 신속대응군을 창설해 러시아를 압박하기로 했다. 서방국 사이의 견해차도 있다. 미국과 영국은 “휴전과 무관하게 강력한 추가 제재안을 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독일과 프랑스는 “휴전이 됐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하마스, 이스라엘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찬성

    하마스, 이스라엘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찬성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는 방안에 찬성했다. 하마스 지도자 칼레드 마샤알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마무드 아바스는 23일(현지시간) 회의에서 이같이 결정했다. CNN에 따르면 이자트 알리셰크 하마스 대변인은 “관련 서류에 하마스가 공식적으로 사인을 했다”고 트위터에 공개했다. CNN은 “새로울 것 없는 전술이지만, 전쟁범죄 조사가 스스로를 도마에 올리는 행위라 생각해 온 하마스로서는 큰 입장 변화”라고 평가했다. 아바스는 ICC에 가입해 이스라엘군의 무차별적 공격을 전쟁범죄로 규정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팔레스타인의 각종 정파들은 찬성했으나 두 가지 장애물이 있었다. 자신들의 테러 행위도 조사받을 것을 우려한 하마스의 반발, 한창 진행 중인 평화협상에 이롭지 못할 것이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대다. 하마스는 자신들의 테러 행위는 걱정할 일이 없다는 태도다. 하마스 정치국의 살레 아루리는 “지도부의 통제에서 벗어난 몇몇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는 것과 지도부가 책임을 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면서 “하마스 지도부의 행위는 이스라엘 점령에 대한 자위 조치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문제는 평화협상이다. 이스라엘의 반대야 그렇다 쳐도 자치정부의 후원자인 미국의 반대까지 무시할 수 있느냐다. 아바스 측은 “신중하게 고려 중”이라고만 밝혔다. 한편 평화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양측은 여전히 공방을 주고받았다. 이스라엘군은 23일 하루 동안 가자지구에 60차례 공습을 퍼부어 12층 높이의 고층 아파트가 무너지고 10여명이 숨졌다. 가자지구 인근 마을에선 4살배기 이스라엘 어린이가 숨졌다. 지난달 8일 이스라엘 공습이 시작된 이래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2103명, 피란민은 10만여명이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 놀이터’로 변신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 놀이터’로 변신

    국내 유일한 헌책방 골목인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이 시민들의 문화휴식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부산시는 23일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문화관 옆에서 책방골목 특화거리 준공식을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시는 보수동 책방골목에 총 9억원을 투입, 기존 낡고 색이 바랜 차양막을 전통미를 가미한 차양막 41개로 교체하고 책방골목어린이도서관을 개관했다. 새 책과 헌책이 한자리에 공존하는 어린이도서관은 연면적 195.39㎡에 지상 4층 규모로 열람실과 북카페, 서고, 사무실 등이 들어섰다. 또 책과 놀이터를 결합한 ‘책 놀이터’를 만들어 어린이들이 다양한 정보를 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꾸몄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6·25전쟁 당시 피란민과 학생, 지식인들이 헌책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조성된 곳으로, 1960~1970년대 전성기를 이뤘으나 서점의 현대화와 온라인 서점의 활성화, 책에 대한 인식 저하 등으로 최근 급격하게 쇠락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서울의 청계천 헌책 거리를 비롯한 전국의 헌책 서점들이 사라지는 가운데 보수동이 유일한 헌책 골목으로 남았다”면서 “어린이도서관 개관과 특화거리 조성을 통해 시민의 휴식처이자 문화적 명소로 재탄생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산 오성택 기자 fivestar@seoul.co.kr
  • 美 철수 3년 만에 IS 소탕 나서… 이라크 새 국면

    美 철수 3년 만에 IS 소탕 나서… 이라크 새 국면

    ‘이라크 사태’ 개입을 꺼리던 미국이 8일 이슬람 극단주의 수니파 반군 이슬람국가(IS)에 대해 전격 공습에 나선 것은 민간인 대량 학살을 막겠다는 인도주의적 이유가 가장 크다. 미국은 전날 수송기 3대를 이용해 고립된 피란민들에게 구호 물품을 투하하기도 했다. 이때 수송기를 호위한 전투기가 바로 이날 공습 작전에 투입된 FA18C 호닛이다. 이 전투기는 공대공 전투능력을 비롯해 대지상 공격능력, 공대해 작전능력, 해상기뢰 작전능력, 야간 대지 작전능력과 정찰능력도 갖추고 있는 전천후 전폭기다. 2개의 터보팬 엔진이 장착돼 1대의 엔진이 고장 나도 운용이 가능하다. 미사일을 모두 9기까지 장착할 수 있다. 엄청난 화력을 뽐내는 미국 전투기가 폭격을 시작하면서 이라크 내 종파전쟁의 양상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공습이 시작되자마자 이라크 정부군은 “미군의 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될 것”이라면서 “곧 반군에게 빼앗겼던 영토를 탈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출했다. 이라크 정부군은 그동안 연전연패로 밀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공습 작전을 승인하며 “아무 잘못도 없는 민간인들의 희생이 크다. 미국이 이 같은 폭력을 유일하게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바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IS가 시아파 주민과 기독교인, 난민 등을 무차별 도륙하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공습의 배경에는 IS의 ‘거침없는 진격’도 있다. 그대로 뒀다가는 이라크 전체가 IS의 손아귀에 들어갈 형국이었다. 서북부로 공세를 확대한 IS는 쿠르드족 자치 지역까지 밀어닥쳤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IS는 7일 쿠르드자치정부(KRG) 군조직인 페슈메르가를 몰아내고 이라크 최대 댐인 ‘모술댐’을 장악했다. 이로써 IS는 물과 전기를 확보했을 뿐 아니라 댐을 방류할 경우 수도인 바그다드도 수몰시킬 수 있게 됐다. IS는 또 이라크 최대 기독교 마을인 카라코시를 비롯해 탈카이프, 바르텔라, 카람레슈 등도 차례로 점령했다. 이로 인해 이들 지역 기독교 주민 10만여명이 피란길에 올랐다고 dpa통신이 전했다. 더욱이 IS가 쿠르드 자치 지역이자 풍부한 석유자원이 있는 아르빌을 공격하면 미국 교역에도 악영향이 갈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마냥 손놓고 있다가 자칫 이라크 사태가 더욱 꼬이면 중동 전체의 안보가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강한 대처를 주문하는 자국 여론도 이번 공습 결정에 한몫했다. 그동안 미국은 우방이라는 이유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을 촉발한 이스라엘에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도 요원한 상태다. 여기에 이라크 사태까지 악화되면 또 다른 차원의 외교 실패 논란이 불거져 오바마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지상군 투입과 같은 ‘전면전’이 아닌 ‘제한적 개입’이다. 2011년 잔류 병력을 완전히 철군시키며 ‘책임 있는 종전’을 했다고 선언한 마당에 다시 지상군을 파견한다고 나서면 호의적인 여론을 이끌어 내기 어렵다. 그러나 이라크 상황이 최근 급속히 악화되면서 미 정계에서는 군사작전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적잖다. 이 때문에 전면 재개입도 배제할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날 “이라크인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며 추가 군사행동 가능성을 열어 놨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서울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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