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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鍾哲이가 그리던 세상은 언제…

    “정권이 바뀌고 국민의 정부가 출범했지만 종철이가 그리던 세상은 아직오지 않았습니다.” 14일 오후 3시 서울대 인문대 ‘박종철 기념비’ 앞. 지난 87년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물고문 끝에 숨진 朴鍾哲씨(당시 23세)의 12주기 추모식이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열렸다. 잿빛으로 흐린 날씨 속에 열린 추모식에는 아버지 朴正基씨(71)를 비롯,87년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李韓烈씨의 어머니 裵恩深씨(민족민주열사유가족협의회장),金勝勳신부(60·기념사업회장),白泰雄씨(36·전 서울대 총학생회장) 등 200여명의 추모객들이 참석했다. 아버지 朴씨는 추모제를 알리는 검정색 플래카드 사이로 아들의 흉상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였다. “종철이가 떠난 지가 벌써 12년이 지났지만 당시 그 기막힌 심정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뒤 첫번째로 열린 추모제였지만 아쉬움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金신부는 “우리가 바라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지만 역대 독재정권 아래서 자행된 의문사와 이들의명예회복 등의 조치는 아직도 취해지고 있지 않다”면서 “朴鍾哲열사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은 아직도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특사로 풀려난 白씨는 “朴鍾哲열사는 ‘대학문화연구회’ 후배로 누구보다 열정적인 꿈을 가진 청년이었다”고 회상하고 “이제 독재정권의 암흑에서 벗어난 만큼 장기수 문제 등 우리의 인권상황과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이 하루빨리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40여분 남짓한 추모식이 끝나자 朴鍾哲씨를 위한 추모곡 ‘그날이 오면’이 쓸쓸한 기념비 사이로 메아리쳤다.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4회)

    ◆종교계 '민주운동 거목' 박형규 목사 지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교회의 실천운동을 벌이면서 숱한 옥고를 치렀던 朴炯圭목사(76).유신체제 아래서의 대표적 반체제 인사로 꼽히며 민주화운동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재야 원로다. 박목사는도시 빈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운동으로부터 시작해 남산 야외음악당사건과 민청학련 사건,그리고 교회탄압에 맞선 노상예배 등 굵직굵직한 사건의주역으로 92년 은퇴때까지 가시밭길을 걸었던 종교인.유신체제 하의 거침없는 발언으로 인한 탄압과 압박은 5·6공 군사정권까지 계속돼 민주화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종교계의 거목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박목사가 세인들의 관심대상이 된 것은 73년 남산야외음악당 사건.이로부터 시작된 민청학련 사건과 이와 관련한 그의 금서(禁書) ‘해방의 길목에서’(74년 사상사刊)에는 잊지못할 사연이 담겨 있다. 남산 야외음악당사건은 서슬퍼런 유신체제에 대해 공식 항거한 첫 집단운동.10월 유신이 시작된지 6개월만인 73년 4월22일 남산 야외음악당에서 부활절 연합예배가 열렸다.당시 수도권 특수지역선교위원장을 맡고 있던 박목사는각 교단의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빈민들의 실질적인 문제를 합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운동을 추진하고 있었다. 20개 교단의 연합예배가 열리던 이날 행사장에는 10만명이 운집했다.언론자유와 학원자유 교회갱신 등을 주장한 플래카드와 전단을 마련,행사 당일 알리려는 사전 준비가 돼 있었다.행사장 주변에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펴 전단과 플래카드를 준비한 학생과 지역주민들이 정작 행사장 근처엔 접근도 못한 채 전단과 플래카드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모두 물러나고 말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날 행사에 참가하려다 불발에 그친 한 주민이 장롱속에 감추어 두었던 플래카드가 보안사 출신 이웃에게 알려지면서 불거졌다.집요한추궁끝에 박목사가 행사를 주동했음이 밝혀졌다.박목사는 7월부터 9월까지재판이 진행된 뒤 내란예비죄로 7년을 구형받고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선고 이틀뒤 보석으로 풀려났다. “내가 주도하는 활동중 도시빈민선교에 당국의 시선이 곱지 않았지요.보건소 이용이나 오물처리에 대한 혜택 등 실질적인 문제에서 철저하게 소외된도시빈민들이 스스로 항의하고 요구하도록 만드는 것에 치중했는데 좌경용공으로 몰렸습니다.정치적 자유없이는 이웃사랑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아래 빈민선교와 정치적 투쟁을 병행한 것인데 결국 철퇴를 맞은 것입니다” 남산 야외음악당사건이 이렇게 끝나자 맨 먼저 찾아온 사람들은 학생들과대학교수 등 지식인층이었다.그들은 서슬퍼런 상황에서 박목사가 보석으로풀려나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고 있었다.이때부터 민청학련이 시작된다.당시 민청학련 10인위원회에는 박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던 서울제일교회 대학생부 학생들이 소속돼 있었다.74년 정초에 세배하러 온 이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알렸다.그리고 자금주선을 요구했다.박목사가 尹潽善 전대통령에게 이야기를 전했고 尹 전대통령도 선뜻 응했다.그러나 민청학련은 결국 발각돼 모두 묶여 들어갔고 박목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군사정권은 이 사건을 북한의 지령을 받고 한 것으로 몰아갔고 여기서 박목사는 대통령긴급조치4호 위반,국가내란음모혐의로 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으나 10개월뒤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해방의 길목’은 박목사 재판이 진행되던 때 전국기독학생총연합회 간사였던 서울대학생인 아들 박종렬목사(현 전국기독학생회총연맹 총무)와 부인,종교계 인사들이 박목사의 좌경성을 부인하기 위한 증명차원에서 펴낸 책이다.68년부터 70년까지 박목사가 기독교잡지 ‘기독교사상’의 주간으로 일하던 때 쓴 권두언과 설교들을 묶은 것이다.박목사는 감옥에 있을 때였다. 책이 나온 뒤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출판기념 행사가 열렸는데 입추의 여지없이 많은 사람들이 왔다.책은 처음에 1,000부를 발간했으나 매진되자 다시 2,000부를 찍었다.그러나 이듬해 5월 마침내 ‘금서’로 묶였다.이책은 모두 압수당하고 지금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당시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이 거의 없었습니다.서슴없이 유신비판을 하고 나선데 대한 제재였지요.그때는 박형규 일당만 제거하면 기독교계는 문제없다는 말이 돌 정도였으니까요” 5공에 들어서는 박목사에 대한 압박이 더욱 심해졌다.박목사가 제일교회에서 목회활동을 못하게 하라는 지령이 떨어졌다.그래서 ‘노상예배’가 시작된다.보안사의 사주를 받은 조직폭력배들이 교회건물 방에서 합숙하면서 직원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결국 84년 추석 전날 감금당하고 다음날까지 경찰들이 포위한 가운데 깡패와 반대파 교인들이 ‘박형규는 항복하라’며 수도 전기 전화선을 끊어버린사건이 일어났다.그해 12월9일부터 노상예배의 험로가 시작돼 90년 12월9일까지 6년동안 계속됐다.매주 치안본부장에게 전화를 걸고 중부경찰서 앞에서 예배를 지속했다.이 노상예배는 일종의 ‘순례지’가 됐으며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참석해 설교를하기도 했다. 그는 유신정권과 5·6공은 물론,문민정부에 들어서도 활동의 제약을 받았다.“여권 발급을 자유롭게 못받아 필요할 때마다 정부에서 내주는 단수여권을 써야만 했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1년짜리 복수여권만 받을 정도였지요.95년 사면된 뒤에야 정상을 되찾았습니다” 박목사는 92년 8월 서울제일교회에서 은퇴,험하고 험한 현역 목회자 생활을마감했다. 글 金聖昊 kimus@
  • 케이플 프로 113만5,000달러 수출 가계약

    ◎싱가포르 선텍시티 방송영상물 프로그램 견본시장/지상파 3사는 145만불 규모 상담/한·일·불 등 45국 300여업체 열띤 홍보/공동 부스 설치·정부 차원 홍보지원 절실 【선텍시티(싱가포르) 李鍾壽 특파원】 지난 10일부터 사흘동안 싱가포르 선텍시티에서 방송영상물 프로그램 해외견본시장인 ‘98MIP­ASIA’가 열렸다. 5회째를 맞는 이 행사에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프랑스,싱가포르 등 45개국 300여업체가 참가했다. 지난 95년 2회대회때 kmTV가 단독으로 전시관을 연 이후 4번째 참가한 한국의 케이블업계는 아리랑TV,m.net,DCN,삼성영상사업단,투니버스,대교방송등 6개 프로그램공급사(PP)가 82종의 프로를 내놓았다.지상파 3사와 데이콤위성방송(DSM)의 관계자도 참석했다. 올 케이블프로의 수출상담액은 총 113만5,000달러에 이르러 지난해 8개 업체의 108만달러에 견줘 4.3% 늘었다.올 대회부터 장소가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바뀌면서 최대 고객인 중국 바이어들의 참여가 줄어든 악재를 감안하면 실질 액수의 증가는 큰 편이다.여기에 처음 참여한 아리랑TV의 ‘최승희 더댄서’다큐가 NHK등의 좋은 반응으로 22만달러의 실적을 올렸고 DCN의 ‘백야 3.98’이 ‘인도 비전’‘대만 케이블’에 4만5,000달러를 계약하는 등 수출로 케이블업계의 어려움을 뚫는데 큰 교두보를 마련했다. 한편 KBS MBC SBS 등 지상파3사는 145만4,000달러가량의 판매상담을 기록하면서 작년보다 18% 늘었다.특히 SBS의 애니메이션 ‘스피드왕 번개’는 편당 1만달러로 26편을 독일 배급사에 판매키로 해 상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드러난 문제점도 많다.먼저 전시관이 너무 초라해 중국 일본 프랑스 등의 치밀한 준비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국내 영상산업의 낙후된 자화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케이블방송 6사가 공동으로 개설한 한국전시관(KOREAN PAVILION)마저도 중국과 NHK의 전시관 틈새에 끼어 외국 구매자들의 눈길을 끌기가 어려웠다.대형 플래카드를 전시관 위에 만든 중국이나 대형 플래카드는 물론 3천달러의 비디오 전용 스크린을 문앞에 배치한 NHK는 바이어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한국 지상파3사는 KBS,MBC,SBS 등 방송 3사가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어 효과적인 수출상담을 벌이기 어려웠다.게다가 태국이나 프랑스가 나라 이름을 걸고 16∼20개 업체가 공동부스를 설치한데 반해 한국은 방송사 이름만 내걸어 국가차원에서 홍보효과가 미미했다.지상파방송사별로 사정은 있겠지만 공동부스를 설치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할 때가 되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국 대표단으로 참석한 문화관광부 박민권서기관은 “프로그램 수출입 관련 사업에 내년 1억원의 예산이 배정돼 있다”면서 “지원된 예산으로 MIP­ASIA 행사에 참가하는 업체를 중점 지원하고 중국시장 진출 프로그램 판매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내년부터 공동부스를 설치해 케이블TV와 지상파방송사의 공동 수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참가업체들은 “이번 케이블TV의 공동부스가 9,000만원 들었는데 1억원으로는 효과가 미미하다”면서 “말만의 지원이 아니라 홍보물 제작이나 대회참가 비용을 전폭적으로 도와주면서 실질적인 내용을 갖춰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 기간중 19개국 280여 회원사로 참가하고 있는 케이블TV·위성방송·아시아협회(CASBAA)도 전시회 및 회의을 열어 케이블TV·위성방송·통신 관련 하드웨어 장비 전시전과 영상 프로그램 전시 및 케이블TV·위성방송 관련 세미나’ 등의 행사를 가졌다.
  • 각료간담회 이모저모/양국 총리 조손도공 후손 심수관씨 집 방문

    ◎김 총리 기자들에 ‘AMF’ 제안 입장 설명 【가고시마 李度運 특파원】 한·일 각료간담회는 양국의 고위관계자들이 처음으로 긴장을 늦추고 만난 자리였다.간담회가 열린 일본 규슈(九州) 남단의 가고시마(鹿兒島)시도 공항에서부터 간담회장인 시로야마(城山)호텔에 이르는 모든 길을 환영 플래카드로 장식했다.또 마침 가고시마에서는 1598년 조선인 도공이 전래한 ‘사쓰마 도자기 4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려 환영분위기를 한층 돋우었다. ●金총리는 29일 오부치총리와 함께 가고시마 현 미야마(美山)에서 개최된 ‘사쓰마 도자기 전래 4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조선도공의 14대 후손인 沈壽官씨의 집과 전시실도 돌아봤다. 金총리와 오부치 총리는 沈壽官씨 조상의 고향인 전북 남원에서 채화해 가로등으로 만든 ‘한·일 우호의 불꽃’을 시찰하고 뒷산에 각각 소나무와 벚나무를 기념식수했다. ●金총리는 이에 앞서 이날 아침 오부치 총리와의 조찬을 마친 뒤 수행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한·일 각료간담회에서 제안한 아시아통화기금(AMF)에 대한 입장을 설명했다. 金총리는 “金大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나카소네(中曾根康弘)·다케시타(竹下登) 전 일본총리가 그 필요성을 얘기하는 등 여러 곳에서 얘기가 나왔다”면서 “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연구해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金총리는 그러나 전날 각료간담회에서 3,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에 대해 “일본이 러시아에 300억달러를 지원하겠다는 말을 해,‘0이 하나 빠진 것 아니냐’고 농담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아직은 기초적인 생각을 가볍게 말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金총리는 또 30일 규슈대에서 일본어로 연설하는데 대해서는 “학위를 주면 모교가 되니까,신분을 떠나서 모교 학생들과 복잡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주고 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金鍾泌 총리를 비롯한 한국 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한 기간은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중국의 최고통치자로는 처음 일본을 방문한 시기와 겹쳤다.장주석이 일본의 과거사 인식을 놓고 ‘아슬아슬한’ 발언을 계속했기 때문인지,일본의 언론은 상대적으로 장주석 방문보다 오부치총리와 경제각료들이 대거 참석한 한·일각료회담에 비중을 뒀다. ●金鍾泌 총리와 오부치 게이조(小淵慧三) 총리는 28일 만찬,29일 조찬·오찬 등 이틀동안 세끼 식사를 함께하는 등 우의를 다졌다.28일 만찬과 29일 조찬은 당초 예정에 없었지만,오부치 총리가 요청했다. 오부치 총리는 또 당초 각료간담회에 앞서 열린 金총리와의 단독회담 장소를 자신의 숙소에서 金총리의 숙소로 옮겼다.오부치 총리는 “손님의 방으로 가는 것이 예의”라며 장소변경을 요청했다고 한다.오부치 총리가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기간중 이틀이나 金총리에게 할애한 것은 각별한 예우라고 주일대사관 관계자는 설명했다.
  • “위안화 가치 유지는 용기있는 결단”/金 대통령 북경대 연설

    ◎기립·환호·15차례 박수/예정 40분 넘겨… TV생중계/조크 해가며 진지한 대화 【베이징 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의 12일 베이징대(北京大) 연설은 비정치적 일정 가운데 압권이었다.1,000석 대강당은 물론 2층 통로까지 교수와 학생들로 가득 메웠고,교정은 ‘와’하는 함성과 박수로 떠나갈 듯했다.金대통령은 이날 들고날 때는 두차례 기립박수로 포함,모두 15차례나 박수를 받았다. 연설과 질의응답은 당초 예정을 40분이나 넘겨 1시간40분동안 계속됐다. 金대통령의 연설은 자신과 베이징대학의 인연으로 시작해 한·중 두나라의 문화·종교적 관계,그리고 이날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합의까지 열거하면서 한·중 두나라의 미래를 담았다.먼저 한국문화가 중국의 영향 속에서 독창적인 문화를 더욱 발전,유지해 왔음을 상기시키면서 “새로운 도약과 번영을 향한 대로를 여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나아가 “중국을 진정한 우방으로 여기면서 이번 방중을 계기로 양국경제가 더한층 굳게 협력하는 기틀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기대한뒤 중국의 위안화 가치유지 방침을 ‘용기있는 결단’이라고 평가했다.연설말미에서는 “두나라 젊은이들은 손에 손을 잡고 전진하라.귀국 지도자들과 나는 그런 다리를 놓는 역할을 기꺼이 다할 것”고 다짐했다. 金대통령은 답변 도중 통역을 칭찬하며 “돌아갈 때 강연은 신통치 않은데 통역만은 참 잘한다고 하지나않을지 모르겠다”고 조크,청중들이 폭소를 자아냈다.또 “여학생도 질문하라”며 지명한 한 한국 유학생은 “기독교 모임 유학생들이 새벽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 힘내시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연설장에는 단상위와 강당뒤에 ‘韓國總統 金大中 閣下 北京大學 講演會(대한민국 金大中 대통령 베이징대학강연회)’ 등 두개의 환영 플래카드가 내걸렸다.이날 강연은 국내에 TV로 생중계됐으며,중국 CCTV도 이날 저녁 뉴스시간과 별도의 5분짜리 특집으로 다뤘다. 다음은 金대통령과 학생들간의 일문일답 요지. ●한·중간 협력동반자 관계와 중·미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중국은 강대국과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맺고 있으며,한국과 협력동반자 관계는 선린우호관계를 넘어 한반도 평화 분야까지 협력을 뜻합니다. ●21세기 두나라 청년교류를 위한 구상은 무엇입니까. 양국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고 사회로 부터 각출해 유학생에게 장학금 지급을 늘리고,가족이 딸린 대학원생들을 위해서는 기숙사를 제공할 것입니다. ●베이징대생들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을 밝혀주십시오. 20세기에는 평균적 대학생을 대량생산했으나 21세기 정보·지식사회에서는 지적 특색이나 창의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또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만이 행복한 일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98민중대회/요구는 ‘과격’ 질서는 ‘만점’

    ◎여의도 한강둔치서… 새정부 출범후 최대 집회/“재벌 해체” “부패정치인 재산 몰수” 큰목소리/경찰과 충돌없어 성숙한 집회문화 과시 9일 하오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열린 ‘98 민중대회’는 참가 인원와 단체면에서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다.민주노총 전교조 참여연대 등 60개 시민사회단체의 회원 2만5,000여명이 참석했다.행사를 주최한 단체들은 집회에 7만여명이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요구와 주문도 다양했다.10대 요구안에는 ‘IMF를 불러들인 경제파탄 책임자 처벌’에서부터 ‘민주열사 특별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현안들이 망라됐다.주된 기류는 사회적 개혁이 미진하다는 것이었다.“정부가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오는 12월 중순에 제2차 민중대회를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치르겠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나왔다. 참가자들은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며 다른 단체의 주장을 진지한 모습으로 경청하고 박수를 보냈다.행사를 전후해 경찰과의 충돌도 없었다. 첫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선 민주노총 李甲用 위원장은 “60만 조합원은 불평등한 IMF협약 폐기를 통한 경제주권회복과 경제파탄의 주범인 재벌해체,부패관료·정치인 재산몰수 등을 위해 앞장 서겠다”고 말했다. 전국농민회 총연맹 李수금의장은 “농산물 저가격정책과 농산물 수입개방 등 정부의 잘못된 농정으로 농민들은 IMF위기에서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정부는 농가부채 해결과 농축산물 가격보장 및 소득보장 등 농가파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빈민운동연합준비위원회 梁연수위원장은 “실업대란으로 노점상과 노숙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소외된 빈민들에 대한 정책은 거의 없다”면서 “관료들이 군림하고 재벌 위주의 정책을 펴는 것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오는 11일 총파업을 결의한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노조원 1,200여명은 “사납금제도는 시민에게 불친절하고 난폭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제도였다”면서 “택시기사에게 안정된 작업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월급제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들은 200여명의 대표자지문이 찍힌 플래카드 들고 나와 단결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사전행사로 전국교사대회를 개최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올바른 교육개혁’과 ‘교육노조 법제화’ ‘인간화교육’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개회사를 통해 “교육환경 개선없이 경제논리에 의해 차등보수제, 수습교사제,정년단축 등을 도입하는 정책은 학교 교육을 더욱 황폐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대회장 소식과 연설내용,현장모습은 인터넷 진보네트워크센터의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 됐다.
  • 鄭周永 명예회장 재방북 이모저모

    ◎차분한 소떼몰이 ‘얼굴에 웃음 가득’/마중 北 인사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남북운전사 전통술·담배 등 주고받아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재방북은 1차 때와 달리 비교적 차분한 가운데 진행됐다. ○…27일 오전 10시쯤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 들어선 鄭회장은 金潤圭 현대건설 사장의 부축을 받으며 묵묵히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간 “재방북 소감이 어떤가”라는 기자질문에 鄭회장은 말 없이 웃기만 했다. 북쪽 문을 나선 鄭회장은 북한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정운업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의 환영을 받으며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鄭회장은 취재진에 포즈를 취한 뒤 북측이 마련한 검정색 벤츠 뒷자리 오른쪽에 올랐다. ○…이에 앞서 鄭회장 일행은 예정보다 46분 늦은 오전 9시26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자유의 집에 도착. 소떼 501마리와 사료 85t을 실은 트럭 51대는 9시30분쯤부터 15분간 중립국감독위원회 북측 경비병 휴게실 오른쪽 길을 통해 북측에 인계됐다. 현대측 운전기사들은 북측으로부터 백두산 들쭉술,인삼곡주,붉은별 담배(낙원담배,공작담배 등)등을 선물로 받고 북측 안내요원 3명에게 문배주,안동소주,시나브로담배 등을 전했다. ○…판문점 주변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한 모습. 오전 8시40분쯤 남측 적십자사 연락관이 임순일 북측 적십자사 연락관에 소떼 검역증과 차량별 한우탑재 명세표를 전달했고 곧 이어 소와 차량에 대한 인수인도 서명식을 갖고 양측은 악수를 교환. 군사분계선 남측지역에는 우리측 취재진이 사진촬영을 했으며 북측에서도 3,4명의 카메라맨과 기자가 취재에 열중. ○…鄭명예회장은 오전 8시30분쯤 임진각 근처에 마련된 환송행사장에 도착. 행사장 주변에는 실향민 30여명이 플래카드 등을 들고 鄭명예회장 일행을 환송. 한국근우회 회원 金允子씨(52·서울 마포구 성산동)는 “이런 역사적인 행사에 참석해 기쁘다”면서 “鄭명예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남북 민간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鄭명예회장은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金正日 총비서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면서 “특히 북한 연안에 석유가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석유가 나오면 남북이 협력해 개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鄭명예회장은 27일 오전 6시40분쯤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 본사에 도착,환영나온 현대 직원들과 취재진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 이발소에서 머리손질을 한 鄭명예회장은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타고 임진각으로 출발. 鄭명예회장이 손을 흔들자 현대직원 500여명이 태극기와 적십자기,현대그룹기 등을 흔들며 환송.
  • 50년 분단사 정경분리 이정표 놓을듯/鄭周永씨 방북과 남북관계

    ◎대북 포용정책 실천 민간교류 활성화 기대/북측 ‘외화벌이’잇속 일방적 시혜는 경계 27일 현대그룹 鄭周永 명예회장의 재방북이 남북관계의 큰 흐름을 바꾸는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소떼 501마리를 동반하는 그의 판문점 통과는 경제적 차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50년 분단사에서 ‘정경분리’라는 새 흐름을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당국간 거래를 중심으로 부침해 왔다.양측 이해가 맞닿을 때 ‘반짝 특수’가 있다가 곧 긴 냉각기로 이어지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金大中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정경분리가 대북 포용정책의 실천 지침이다.민간교류 활성화로라도 남북 접촉면을 넓히는 게 통일기반 조성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현대측이 독점 개발권을 갖고 추진하려는 금강산 종합개발사업이 주목된다.금강산 유람선사업과는 달리 남북한 주민간 접촉빈도가 잦아질 것이라는 점에서다.금강산내 각종 인프라 건설과 운용 과정에서 북한측의 참여가 불가피한 탓이다. 북한도 이사업엔 의욕적이다.그 과정에서 예상되는 체제 동요 우려를 감수하면서까지다.금강산개발이 죽은 金日成 주석의 ‘유훈사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무엇보다 한푼의 외화가 아쉬운 북한으로서 목돈을 만진다는 것은 뿌리치기 쉽지 않은 유혹일 것이다. 이 사업 계획에 따르면 현대측은 북측에 앞으로 6년간 매년 1억5,700만달러를 지불한다.대신 금강산을 ‘상품’으로 하는 각종 부대사업을 2030년까지 독점한다. 물론 鄭회장 방북으로 당장 남북간 해빙무드가 본격화하는 것은 아니다.당국을 배제한 채 남측으로부터 실리를 극대화하려는 게 북한의 기본 입장이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도 보수적 여론을 설득하는 게 ‘발등의 불’이다.거액 자금의 북한유입에 따른 체제유지 내지 군비 전용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해야 한다는 쉽지않은 과제다. 최근 ‘햇볕정책’ 대신 대북 포용정책 내지 공존공영 정책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도 이를 의식한 결과인 듯하다. 북측에 대한 ‘일방적 시혜’라는 오해를 사지 않겠다는 경계심과 무관치 않은 까닭이다. ◎‘牛公의 행차’/위속 이물질없는 건강한 소만 골라/수송열 대비 백신·항생제 등 주사 소떼를 북한에 출가시키는 현대의 정성이 지극하다.지난 6월16일 보낸 500마리 가운데 71마리가 죽은 원인을 둘러싸고 남북간에 한바탕 홍역을 치른터라 신경을 더욱 썼다.현대는 앞으로도 남북교류를 계속 잇는다는 뜻에서 1차 때보다 1마리를 더 보태 501마리를 보낸다. ■알짜만 골랐다=밧줄이나 비닐을 먹은 소는 뺐다.760마리를 놓고 직장과 위장검사를 해 이물질이 없고 건강한 소 501마리를 골랐다. 암소 375마리,수소 126마리.암소 가운데 절반이 새끼를 뱄다.1차때 태어난 송아지는 30여마리.귀에 501∼1001번까지 명찰을 달았다.코뚜레는 하지 않았다.소값만 9억원. ■특별히 관리했다=장시간 이동에 따른 수송열에 걸리지 않게 백신주사를 맞혔다.출발하기 전에는 항생제를 놓았다.새끼를 밴 소에게는 유산예방용 호르몬 주사를 맞히기도 했다.‘특별사양 프로그램’을 짜고 3주 전부터 정성껏 보살폈다.북한에 도착할 때까지 소에게먹일 사료 85t과 소화촉진제,물통 205개,약품 등을 준비해놨다.낯선 땅에 도착해 수송열과 ‘향수병’에 걸려 죽지 않게 북한 도착후 1주일간의 관리요령도 마련했다. ■트럭 타고 간다=이동중 사고를 막기 위해 사양관리자 15명과 수의사 3명이 서산농장부터 판문점까지 동행해 보살핀다.26일 밤 11시 출발해 천안톨게이트∼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와 올림픽대교∼신행주대교∼자유로를 거쳐 27일 새벽 5시쯤 통일대교 입구에 도착한다. ◎방북길 이모저모/“새로운 시작 의미로 1마리 더 추가”/승용차 14대도 새벽녘 임진각 도착 지난 6월16일에 이어 두번째로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전달될 소 501마리가 26일 밤 11시 북행길에 올랐다.이번에 북한측에 보낼 소는 1차 때보다 1마리가 늘어난 501마리.이에 대해 현대측은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로 1마리를 추가했다”고 밝혔다. ○…소떼를 실은 트럭들은 서산농고 농악대의 풍물놀이 가락이 펼쳐지는 가운데 서산농장 직원 100여명의 환송을 받으며 장도에 올랐다. 차량행렬은 홍성∼아산을 잇는 국도를 따라 천안까지 간 뒤 10분 가량 휴식을 취하고 다시 천안 톨게이트를 통해 경부고속도로에 진입,상경했다.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뒤에는 올림픽대로와 신행주대교,자유로 등을 거쳐 27일 오전 5시쯤 임진각에 도착.또 소떼와 함께 북한에 전달될 다이너스티등 승용차 14대도 오전 4시가 조금 지나 임진각에 도착했다. ○…이날 북송 소의 출발을 취재하기 위해 취재진 100여명이 서산농장에 몰려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으며 특히 방송사들은 헬기까지 동원해 지상과 공중에서 입체 중계를 실시했다. ○…현대측은 소들이 운송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트럭에 붙들어 매지 않고 천막을 둘러 눈길. 소를 실은 트럭 양쪽에는 ‘정주영 명예회장 방북 소 운반차량’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차량행렬의 출발에 앞서 현대건설 서산 A·B지구 사업소 姜永洛소장(49)을 제주(祭主)로 소들의 무사 북송을 비는 안전수송 기원제가 열렸다.
  • 스승의 날/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스승의 날이 내년부터는 5월이 아닌,2월로 옮겨진다고 한다. 2월은 학년말이어서 ‘잘 부탁한다’보다는 ‘가르친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이 강조되어 부담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스승에게 감사하는 날이 이해득실을 따져서 변경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어버이날과 어린이 날이 있듯이 스승에게 감사하는 날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촌지비리를 자인하는 결과라서 민망스럽기만 하다. 우리 주변에는 훌륭한 교사들이 얼마든지 있다. 자신의 봉급을 털어 제자 등록금을 대신 내주거나 자신의 도시락은 물론 행동거지가 불편한 제자를 위해 손과 다리의 역할을 해준 교사도 있다. 육신은 어버이에게서 받지만 정신은 스승의 교육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교직은 다른 직업과는 달리 ‘사람’을 길러낸다는 긍지와 사명감이 빛난다. 제자는 스승의 드높은 학문을 흠모하고 경외하며 스승의 고매한 풍모를 두려워하게 된다. ‘누구의 제자’라는 것은 ‘누구의 자녀’ 못지않은 불가분의 관계다. 자신의 신분과 실력과 자격을 스승이증명하고 보장하고 지켜주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교사의 체면은 땅에 떨어지고 성스러운 교육현장은 촌지수수로 인한 사회비리의 온상으로 비쳐지게 되었다. 촌지를 주면 학생을 특별대우하고 촌지를 주지 않으면 냉대하고 따돌린다는 소리도 들린다. 학부모들에게서 받은 돈봉투와 선물목록을 장부로 만들어서 수금실적을 관리해온 교사도 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담임선생 교체’ 주장도 바로 이런 촌지가 낳은 극단적인 결과다. 오죽하면 ’스승의 날’이 ‘촌지의 날’이 되어 지난 5월은 ‘촌지없는 달’이라는 궁색한 플래카드가 내걸리기도 했겠는가. 촌지를 바라는 교사도 문제지만 지레 돈봉투를 싸들고 촌지침투를 자행하는 학부모도 문제다. 그러나 낳고 기르신 부모에게 감사하듯이 지식과 인격을 연마시켜준 스승에게 제자가 감사하는 미풍은 아름답다. 문제는 감사의 방법이 왜 하필 ‘돈봉투’인가 하는 것이다. 스승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일년내내,그리고 한평생동안 지속되는 것이다. 2월이나 5월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송이카네이션이 ‘훌륭한 스승을 모신 것’을 자랑삼을 수 있게 진정한 향기를 내뿜기를 기대해본다.
  • 北 9·9절 행사 체제선전 주력

    ◎金正日도 金日成광장 열병식에 참석 북한당국은 9일 정권창건 50주년을 맞아 대규모 경축행사를 갖는 등 주민 결속 작업에 총력을 쏟았다. 그러나 예년과 달리 외국사절 초청 등 돈이 많이 드는 과시성 행사는 줄어든 인상이었다.당면한 경제난 때문인 듯했다.대신 신문·방송을 통해 ‘인공위성’ 발사 주장을 크게 보도하는 등 등 체제 선전에 주력하는 분위기였다. ○…북한은 이날 ‘金日成광장’에서의 대규모 열병식을 거행.이 행사에는 한동안 공개행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金正日 국방위원장도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열병식과 연이어 열린 군중시위가 진행된 1시간45분 동안 金正日은 단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그는 쉴새없이 ‘만세’를 연호하는 군중들에게 간간이 손을 흔들어 답례.한 당국자는 金日成과 달리 金正日 당총비서의 공개연설 기피 성향에 대해 “경제 등 특정사안에 책임 지지않으려는 ‘은둔정치’의 일환”이라고 해석. 북한 중앙방송은 이에 앞서 이날 당중앙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 명의의 결정을 통해 국방위원회부위원장 李用茂와 만경대혁명학원 원장 金龍延에게 ‘차수’칭호를 수여했다고 보도. ○…‘인공위성’ 발사 진위여부를 놓고 국제적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이날 군중행진에서 ‘지구인공위성 광명성1호 발사 성공 축하’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노동신문은 8일자 ‘정론’에서 인공위성 발사 발표를 접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을 특유의 과장된 어법으로 소개.정론은 특히 “귀를 기울이면 광명성1호에서 은은히 울려퍼지는 金日成 장군의 노래가 들리는 것 같다”고까지 짐짓 도취된 모습을 보여줬다.
  • 영남지역 찾은 DJ의 감회(청와대 취재수첩)

    아무리 애를 써도 표가 나오지 않던 영남지역을 찾은 金大中 대통령의 감회는 어떠한 것일까.‘초도순시’의 성격이지만,이번의 발걸음은 남다를 것 같다.부산을 근거지로 지난 대선때 500만표를 얻었던 국민신당과 통합을 이룬 뒤끝이다. 金대통령의 영남 나들이는 처음부터 여의치 않았다.수도권 집중호우로 지난달 6,7일 잡았던 첫 일정이 연기됐었다.다시 같은달 20,21일로 날짜를 잡았으나 이 때도 낙동강 범람위기로 지방나들이에 따른 인력 동원은 무리라고 판단,뒤로 미루었다.당시 청와대안에서는 ‘IMF 속 당선축하연 취소’‘수재로 인한 제2의 건국행사 축소’등을 빗대어 “뭘 한번 하려고 하면 왜 이렇게 어려운 지 모르겠다”는 푸념섞인 하소연이 나왔었다. 의도한 모양새는 아닐테지만,“IMF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는 金대통령의 말처럼 두차례 연기가 오히려 새옹지마(塞翁之馬)가 된 듯 싶다.특히 울산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도시 곳곳에 ‘金大中 대통령 방문 환영’이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내걸렸다.지난달말 목포나 광주 방문때보다도 많았다.동서화합을 위한 자신의 호소를 주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던 차에 좋은 전조로 생각했을 것 같다.부산 선물거래소와 울산 신항만건설 지원 등 굵직한 ‘선물’을 준비한 것도 같은 차원이다.
  • 金 대통령 고향 방문 남다른 감회

    ◎96년 총선유세후 2년4개월만에 처음/“환영행사는 자제해달라” 간곡히 요청 金大中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처음으로 고향땅을 밟았다. 무안군 하의도가 태어난 곳이나 중학 시절부터 목포에서 자랐다. 이날 목포에서 저녁 일정을 비워놓고 비공식 만찬행사를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동안 만나지 못한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金대통령은 언젠가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들고서도 고향에서는 일절 부탁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정에 감사하고 있다는 얘기다. 金대통령의 고향 나들이는 지난 96년 4·11 총선 지원유세 이후 2년 4개월만이다. 그러나 그의 고향 방문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이나 당선된 후나 여의치 않았다. 취임 후 지난 4월과 5월 대구와 부산은 방문한 적이 있다. 대선 때 도움을 준 김해 가락종친회도 찾았었다. 金대통령은 이번에도 울산·창원·부산지역을 먼저 방문하려 했다. 이를 위해 실제로는 이미 완공돼 차량이 통행하고 있는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식마저 2개월 뒤로 미뤘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호우와낙동강 범람 위기가 영남지역 방문을 두차례나 막았다. 원하는 순서는 아니었지만 이번 고향방문은 金대통령에게 남다른 감회를 주고 있는 것 같다. 고속도로 개통식 연설에서 그 일단이 드러났다. 金대통령은 ‘특별히 말씀 드리고 싶다’며 짧지만 가슴에 와닿는 연설을 했다.“무안군 하의면에서 태어났고 목포시민으로서 활동했던 제가 이제 대통령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되니 무한한 감회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의 제가 있게 된 데는 이 지역주민 여러분의 특별한 지원이 큰 힘이 되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며 심경을 스스럼 없이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金대통령은 이번 방문이 금의환향(錦衣還鄕)이 되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시민들에게 환영행사 자제를 요청했고,숙소에도 오지말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대신 자신에 대한 환영의 열기와 기쁨이 제2의 건국의 원동력이 되길 바랐고,그 불씨가 활활 타오르길 기대하고 있었다. ◎이모저모/환영인파 수만명… 차량 시속 10㎞ 서행/金 대통령 “제2건국운동으로 국난 타개” 金大中 대통령은 취임후 처음으로 부인 李姬鎬 여사와 25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전주·무안·목포 등 호남지역을 방문했다. 고향인 목포에서는 하루밤을 묵으면서 오래된 친구들도 만났다. ○…金대통령이 서해안 고속도로 개통식이 끝난 뒤 숙소로 향하는 도중 연도에는 수만명의 시민들이 나와 대통령 일행을 환영했다. 이 바람에 예정에 없던 ‘차량 행진’이 벌어졌다. 대통령을 태운 차량행렬이 시내로 들어서자 환자복을 입고 간호원을 대동하고 나온 사람을 비롯, 수십명이 나와 태극기와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흔들며 환영했다. 金대통령 내외는 환영하는 시민들을 향해 차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이 때문에 시내 8㎞ 구간을 시속 10㎞속도로 달려 숙소 도착이 1시간이나 지연됐다. 이에앞서 金대통령은 개통식에서 예정시간을 20분이나 넘기면서 즉석연설,“여러분이 나를 국회의원,대통령을 시킨 것은 국민,나라 전체를 위해 일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라면서 “다시는 이 나라에 경상도,전라도가 없고 특혜와 차별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韓和甲 金弘一 金玉斗 裵鍾務 의원 등 이 지역 의원들이 나와 영접했다. ○…이에 앞서 金대통령은 전주 전북도청에서 柳鍾根 전북지사 등 관계자들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긴 세월동안 불초 이 사람을 한번도 빠짐없이 지원해 준데 대해 보답하고 휼륭한 업적을 남기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지역언론과 기자회견을 가진뒤 각계인사 185명과 오찬을 함께 하고 제2건국 운동을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다. 이자리에서 金대통령은 “제2건국 운동을 국난을 타개하고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 ‘농반 진반’ 국정 자신감 피력/홀가분해진 JP 행보

    ◎여야당사 돌며 협조 부탁 여유도 金鍾泌 총리가 18일 여야 3당을 찾았다.전날 ‘서리’꼬리를 떼고 인사차 들렀다.‘우·아·적(友·我·敵)’을 차례로 방문했다. 먼저 JP(金총리)는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을 만나 “채비를 다했는데 많은 지도 편달 바란다”고 인사했다.趙대행은 협력을 약속한 뒤 “국회가 피난처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야당 의원 영입의 한계를 설정했다.JP는 공감 표시로 교감을 나눴다. 친정인 자민련에서는 많은 이들이 반겼다.마포 중앙당사 앞에서는 축하 플래카드가 나붙었다.덕담과 농(弄)이 30여분동안 오갔다.클린턴 미 대통령의 ‘부적절한 성관계’증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수해걱정,현대자동차사태등을 걱정하는 대화도 주고받았다. 金총리는 표정이 밝았다.평소보다 다변(多辯)이었다.자신감이 엿보였다.金총리의 아호를 딴 ‘운정(雲庭)봉사단’단원들은 수해봉사활동을 보고하면서 꼬리곰탕을 점심으로 먹었다는 얘기를 듣고 “떨어진 꼬리로 그것 해먹었구먼”이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JP는 속내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金大中 대통령과의 관계에는 “그전과 같을 것”이라고 피력했다.그리고는 국민회의와의 ‘공동정부운영협의회’구성과 관련,“약속한 것이니 양당간에 성사되기를 기대한다”고 분명히 했다. 이어 한나라당 李基澤 총재권한대행을 찾아서는 “해야 할 일은 하고,하지 않을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협력을 요청했다.李대행은 “30년전 총리를 하신 경륜을 바탕으로 진짜 개혁을 추진해달라”면서 “요즘 구호성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슬쩍 걸었다.金총리는 야당 지도부에 식사 초청 의사를 전했고,李대행은 흔쾌히 수용했다.
  • 막오른 7·21 재·보선 선거전­열전현장·부산 해운대·기장乙

    ◎‘토박이론’‘최형우 분신’ 격돌/김동주 후보 “기장의 거목” 내세워 세 확산/안경률 후보 최 고문 지원유세에 큰 기대 ‘달맞이길’을 넘어 해운대에서 기장으로 들어섰다.왕복 2차선으로 좁아 진 도로에서 택시는 거북이 걸음을 했다.울퉁불퉁한 시골길은 바닷바람에 맨살을 드러냈다. “기장에는 수돗물도 안 나와예.부산에 편입만 됐지,한나라당이 해 준 게 뭐 있습니꺼”택시기사 陳福生씨의 푸념이다.읍내에서 만난 50대 아낙네는 “기장은 부산의 서자(庶子)”라며 불만을 털어놨다. 해운대쪽 유권자들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미워도 한나라당”이라는 전통적 표심(票心)은 ‘달맞이길’을 경계로 사그라들었다.지난 6·4 지방선거때 부산에선 유일하게 자민련 소속 시의원이 당선된 곳이라는 점에서 해운대·기장을 선거구의 표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특히 지역경제 개발론이 쟁점으로 떠올랐다.기장시장에서 ‘동부인삼’을 경영하는 李丙文씨는 “매출액이 지난해의 30%에도 못 미칩니더.한나라당이 여당때 정경유착을 하는바람에 동남은행까지 말아먹은 거아입니꺼”라며 한나라당의 ‘원죄론’을 제기했다.그러나 경부고속철 신설구간에서 부산이 제외될 것으로 알려지자 한나라당쪽의 ‘부산 소외론’도 먹혀들고 있다. 지난 5월 현재 해운대·기장을의 유권자는 7만9,0000여명.전형적인 도농 복합지역이다.해운대구 3개 동에 2만6,000여명이,기장군내 2개읍,3개면에 5만3,000천여명이 살고 있다.기장군의 유권자가 67%에 해당한다.게다가 지역특성상 부산의 ‘베버리 힐스’로 불리는 고급 빌라촌과 서민아파트 등이 섞인 해운대구가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낮을 수 밖에 없다.세 후보의 선거사무소가 모두 기장읍내에 몰린 것도 기장을 집중 공략하려는 전략 차원이다. 기장읍이 고향인 金東周 후보는 기장프라자에 사무소를 차렸다.경남 합천 출신인 한나라당 후보와 차별화를 꾀하는데 역점을 둔다.사무소 벽에는 온통 ‘고향을 위해 여당을 택한 정치인’‘기장이 키워준 정치 거목’ 등 ‘토박이론’을 강조하는 문구들이다.자민련 朴泰俊 총재의 고향도 기장군 장안읍이다.이래저래 金후보는 기장군에서 적어도 1만표 이상의 고정표를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지난 1일 불출마를 선언한 金龍完 전 시의원의 해운대 조직을 흡수,세확산을 노리고 있다. 근처 인제빌딩 1층에는 ‘기호 1번 한나라당 安炅律 후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安후보의 홍보물에는 ‘화합의 정치인,崔炯佑의 분신’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安후보는 한나라당 崔고문의 특보 출신이다.崔고문의 고향이며,호인 溫山은 기장과 멀지않은 동네다.崔고문은 70년대 당시 울주군에 속했던 이곳에서 당선됐다.경남 합천 출신으로 ‘낙하산 공천’이라는 부담을 안은 安후보로서는 큰 힘이다.자민련 朴총재와 한나라당 崔고문이 본격 유세를 벌이는 이번 주말 이후 양쪽은 자존심을 건 총력전을 펼칠 예정이다. 초대 민선 기장군수 출신인 무소속 吳奎錫 후보의 약진도 볼 만하다.吳후보는 ‘해운대 기장을은 무소속이 이깁니다’라는 기치를 내걸었다.기장군 철마면이 고향인 吳후보가 강세를 보인다면 자민련 金후보의 표가 분산될 가능성도 있다.
  • 仁寺洞 문화거리 살리자(사설)

    서울 인사동 문화의 거리 축제가 당분간 중단된다고 한다. 시작도 성급했던 데다 중단의 대안도 제시되지 않고있다. 졸속계획과 행정부재의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4월 ‘차 없는 일요일’을 선언하고 ‘인사동 거리축제­문화장터’를 계획할때는 인사동이 당장이라도 세계적인 문화의 거리로 부상하는 듯했다. 그러나 1년반 만에 청사진은 찢기었고, 여론도 당초의 의도에서 빗나간다면 문화행사 자체를 폐지하라는 쪽이다. 이런식으로 작은 문화 하나도 지켜가지 못한다면 다른 더큰 문제들은 기대할 수조차 없겠다. 인사동의 상징은 골동품과 화랑이다. 거리에 들어서면 미술전시를 알리는 플래카드들이 넘치고 길가에 늘어선 고상점들이 이 거리만의 정취를 풍기면서 개성과 특성을 자랑해왔다. 지난봄 축제를 시작한 후 일요일마다 10만여명의 인파가 몰려든 것만으로도 이를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경제난속에 이 지역에 문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반업소들이 자리를 넓히게 되자 인사전통문화보존회는 전통문화·예술·관광의 보존지구로서 인사동을 무차별 비문화적 산업의 침투로부터 보호하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 일환으로 모든 사람이 고루 참여하는 축제를 마련,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자연스러운 문화장터를 만든다는 것이 행사의 취지였다. 그러나 몰려드는 인파와 잡상인을 통제할수 없게되자 문화의 거리는 하루아침에 지리멸렬한 저잣거리로 추락해버렸고 보존은커녕 파괴가 아니냐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사람들이 인사동을 찾는 이유는 한국 전통고전문화중에서도 미술관련으로 고유의 특색을 살려왔기 때문이다. 그처럼 오랜 전통으로 인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도 한번쯤 들러볼만한 장소로 추천되는 곳이다. 그런 인사동이 서투른 행정과 졸속계획으로 휘청거리다니 여간 한심한 노릇이 아니다. 더이상 전통의 거리가 훼손되고 변질되기 전에 가장 개성적인 문화의 거리를 성취하기 위해 이런 행사보다 본래의 모습이라도 잘 보존하고 지키라고 당부하고 싶다. 우리는 하나가 잘되면 너도나도 끼어들어 그 지역의 특성과 개성을 깨트리고야 마는 습성이 있다. 어느 경우에라도 인사동 고유의 정취가 사라지면 모든이들에게 외면당하거나 존재자체가 가치가 없어지기 십상이다. 돈으로 발전시키기에 급급하지 말고 이 거리의 특성을 어떻게하면 좀더 개성있게 살릴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인사동을 지키는 일은 문화민족의 긍지다. 문화의 거리는 한번 사라지면 유흥가로 타락해 두번 다시 되찾을 수 없게 된다.
  • 소떼 서산농장 떠나던 날

    ◎“통일의 쟁기질하거라” 주민 등 300여명 축원/500마리 트럭 45대에 4시간 걸려 ‘승차’/떠나기앞서 떡·과일 상차려 안전기원제도 【서산=李天烈 기자】 ○…소 떼가 북한을 향해 출발한 서산시 부석면 창리 현대건설 서산목장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15일 하오 11시쯤 소를 실은 방북 트럭 45대가 9대씩 5개조로 나뉘어 출발하자 주민들과 직원 300여명은 환호와 박수로 배웅. 소를 실은 차량을 이어 사료 트럭과 예비 트럭이 뒤를 따르면서 차량행렬은 장관을 이루었고,차에 나눠 탄 수의사와 차량정비사들은 감격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차량행렬 앞 뒤를 경찰 순찰차와 오토바이가 호위하자 마을 주민들이 구경하기 위해 몰려 나오는 등 때아닌 소동. 순찰차 15대와 오토바이 10대가 행렬을 유도하는 가운데 교통경찰 100여명과 전경 1개 중대 120명도 곳곳에 배치돼 진행을 도왔다. ○…이에 앞서 하오 3시쯤부터는 서산농장에서 농장 직원 250명과 주민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북한으로 가는 소 500마리를 환송하는 행사가 벌어졌다. 환송식은 40명으로 구성된 서산농고 농악대의 풍물놀이에 이어 소 10마리에게 짚신을 신기고 몸에 새끼줄을 감은 뒤 소 머리에 꽃다발을 씌우는 순서로 진행됐다. 새끼줄을 감는 것은 농가에서 애써 키운 소를 내다 팔 때 농민들이 섭섭함을 달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설명. 농장 직원과 주민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듯 눈만 끔벅이는 소들에게 “무사히 도착해 잘 살라”며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어 하오 5시부터는 500마리의 소를 특별히 제작된 트럭 45대에 10여마리씩 나눠 싣는 ‘상차식’이 펼쳐졌다. 농장측은 트럭 적재함 바닥에 왕겨를 깔고 방역 작업을 벌인 뒤 이동하는 도중 소들이 날뛰지 않도록 머리와 목을 밧줄로 묶었다. 또 적재함 양 옆에는 ‘정주영 명예회장 방북 소 운반차량’이란 플래카드를 붙였다. ○…하오 10시 10분쯤부터는 소를 싣고 늘어선 트럭 앞에서 ‘한우 환송 및 안전기원제’가 열렸다. 트럭운전사 등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산 A·B지구 사업소 姜永洛 소장(49)이 기원제를 20여분동안 주재.
  • 인문학자의 외로운 몽상/최혜실 KAIST 교수·국문학(굄돌)

    연구실 밖으로 5월의 햇살과 신록이 눈부시다.쾌적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사람이 없는 공간.이제는 친숙해진 이 공간이 7년전의 나에게는 무척 낯설었다.플래카드와 대자보가 나붙고 오가는 학생들로 붐비며 풍물소리,구호,노래소리로 활기찬 대학만을 경험한 나는 일년내내 조용하고 밤이 되면 건물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이 연구 중심 대학에 몹시 당황했었다. 내가 낯설어 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먼저 ‘박사님’이라는 호칭.‘선생님’이라며 스승과 제자의 인간적 측면을 강조하는 인문학의 기풍 속에서 자란 나는 어떤 분야에 전문가라는 의미가 강한 이 호칭에도 당황했다.그리고 모든 것을 구체화하고 계량화하여 설명하는 방식,일년에 논문이 몇편이고 어떤 학술지에 게재된 사실이 점수로 구체화하여 그 사람을 평가한다.어느분야에 명성이 있고 평소 대인관계가 무난하여 제자들에게 존경받는다는 식의 평가가 점잖은 것이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이 또한 새로운 것이었다.그리고 훨씬 투명한 언어습관.일종의 도제제도의 학문전수 방식에 익숙한 문과에비해 계약을 존중하는 때문인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훨씬 공개적이고 적극적이다. 처음에 나는 이 경향을 대상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거나 그것과 의사소통하려는 노력이전에 그것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서 사용하려는 ‘이성의 도구화’경향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 방식은 적어도 지금 현재로는 산업과 기술 발달을 위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이라는 이해가 요즈음은 들게 되었다.왜냐하면 전문성,기술,정보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후기산업사회에서 자연과학과 응용과학의 이런 방식은 비단 전공의 특수성뿐만 아니라 현 사회의 한 특징으로 일반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그 현상을 보고 놀라고 그것을 이해하며 해석하려고 애쓰는 것이 한 인문학자의 외로운 몽상만은 아니지 않을까?
  • “우리 세리가 해냈다” 목멘 만세/대전 박세리 선수 집 표정

    ◎하루종일 축하전화 빗발/모교·시내에 플래카드/가족·친지 얼싸안고 눈물 【대전=李天烈 기자】 “세리가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줘 자랑스럽습니다” 세계적인 여성골퍼 朴세리(21)가 미국 여자골프 98 LPGA선수권 우승을 확정 지은 18일 상오 7시쯤 대전시 서구 월평동 무궁화아파트 204동 605호 朴선수의 집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TV를 통해 게임을 지켜보던 아버지 峻喆씨(48)와 어머니 金貞淑씨(46) 등 가족들은 朴세리가 18번 홀을 파로 마무리,우승을 거머쥐자 일제히 일어나 만세를 부르며 박수를 쳤다.함께 TV를 보던 언니 유리(26) 애리양(18)을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었다. 어머니 金씨는 “너무 기뻐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세리가 세계적 권위의 경기에서 최연소 우승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감격해 했다. 아버지 朴씨는 “오늘 새벽 1시 세리하고 통화를 하면서 전에 큰 대회에서 우승할 때마다 느꼈던 가슴떨림이 있어 반드시 우승하리라 예감했다”면서 “예감이 그대로 들어 맞았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朴씨는“경기가 끝난 뒤 곧바로 ‘아빠 나 우승했어요.고마워요’라는 세리의 전화가 걸려왔다”고 밝히고 “‘고생했다 자랑스럽다’는 말로 우승을 축하해 줬다”고 덧붙였다. 이날 朴선수의 집에는 하루종일 축하전화가 걸려왔으며 朴선수의 모교인 금성여고와 사회단체에서는 교문과 공주시내 등에 ‘장하다 박세리’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어 분위기를 띄웠다.朴선수의 가족들은 이날 저녁 유성 모호텔에서 친지 등과 잔치를 열고 기쁨을 함께 했다.
  • 어제 ‘5·18’ 18돌 추모행사 1만여명 참가

    ◎민주의 꽃으로 핀 5월의 넋이여…/망월동 묘역서 씻김굿 등 진혼의식 엄숙히/독일 목사 등 7명 방한 국제적 위상 확인도 【광주=崔治峰 기자】 5·18광주민주화운동 18주년 기념식이 18일 상오 10시 광주시 북구 운정동 5.18묘지 참배광장에서 金鍾泌 국무총리서리와 유가족 시민 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기념식에는 金鍾泌 국무총리서리를 비롯,金正吉 행정자치부 장관 朴相千 법무장관 등 정부인사와 趙世衡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鄭水萬 5·18유족회장 등이 참석했다. 金 총리서리는 묘지순례 및 유영봉안소 추모분향을 마치고 추념문 잔디광장에서 기념식수를 했다. 5·18묘지에서는 기독교 대학총학생회연합의 추모예배가 열렸으며 광주공원에서도 5·18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씻김굿 등이 펼쳐졌다. ○…기념식장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헤센나사오 개신교회 바그너 노 회장과 목사,평신도 등 7명이 참석해 시종 행사광경을 지켜보며 달라진 5·18기념행사와 한국의 민주주의 위상에 대해 관심을 표명. 하오 광주 한빛교회에서열린 5·18기념 예배에 참석한 바그너 노 회장 일행은 “그동안 2∼3차례에 걸쳐 5·18 연합예배에 참석하고 5·18묘지를 방문했으나 이처럼 조용하고 엄숙한 가운데 치러진 기념식은 처음”이라고 밝히고 “이는 국민의 정부 탄생과 한국의 민주주의를 선도한 5·18관련자의 희생대가 때문”이라고 평가. ○…추모광장 입구에는 조선대 구속자가족들이 ‘모든 양심수를 어머니의 품으로’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구속학생 9명의 조속한 석방을 눈물로 호소. 97년 총학생회 부회장 강성일씨의 어머니 박명자씨(55)와 97년 동아리연합회장 정재형씨의 어머니 기흥순씨(59) 등은 “全斗煥 盧泰愚씨도 사면하는 마당에 죄없는 아들들을 차디찬 교도소에 가둬 두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의 멍예를 씌어 2∼3년씩 실형을 선고한 아들들을 학교와 가족에 돌려보내야 한다“고 밝히고 “金大中 대통령이 약속한 5·18양심수 사면에 이들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 ○…묘역앞에서는 씻김굿 무형문화재인 李상조씨가 초혼가를 시작으로 지전춤·넋올림·씻김·고풀이·길닦음 등으로 5·18 영령들의 영혼을 달래는 의식을 진행했다. ○…행사장 주변에는 동광주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이 비상진료팀으로 나와 봉사했으며 광주 전남 적십자사 무선봉사자들이 햄(HAM)으로 기념식 상황을 해외에 생중계하고 참배객을 안내했다.
  • 망월동 르포­5·18 光州민중항쟁 18주년

    ◎차분한 추모행렬 “恨 잊을수 있나요”/망월동에만 플래카드 걸려/금남로선 지하철공사 소음 광주는 조용했다.50년만의 정권교체,金大中 대통령의 집권후 첫 5·18을 맞은 광주의 모습은 다른 지역 사람들의 예상과 달랐다.망월동 묘역을 빼고는 5·18 관련 플래카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5·18 18주년을 앞두고 하루 수천명의 추모 인파가 줄을 잇는 망월동 신·구묘역.그곳에서 만난 郭성환씨(45·자영업).“그동안 5·18만 되면 광주가시끄러웠던 것은 과거 정권탓이지요.가장 큰 피해자인 金大中 대통령이 취임했으니 시끄러울 이유가 있나요” 계엄군과 시민·학생 사이에 유혈공방이 벌어졌던 금남로,전남도청,전남대 교정도 5·18의 긴장된 느낌은 없었다.금남로에는 지하철공사가 한창이었다.전남대 등 광주지역 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과 조선대 교수협의회는 5·18 기간중 폭력화할 수 있는 한총련 집회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18년전의 피맺힌 한이 어찌 쉽게 잊혀질까.전주에서 교회 신자들과 함께 처음 망월동 참배를 왔다는 金희선씨(여·43)는 묘비를 살피며 눈시울을 붉혔다.‘어머니,조국이 나를 부릅니다.민주 정의 자유를 위해 앞서 갑니다’,‘여보,당신은 천사였오,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애끓는 묘비명들에는 아직도 못다한 사연들이 절절이 배어있다.金씨는 “어린 생명까지 이토록 잔인하게 죽이다니…”라며 말을 잇지못했다. ‘5·18 연구소’ 朴秉基 상임연구원은 ‘광주의 차분함’은 ‘망각’이 아니라고 풀이했다.한 단계 승화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그는 “이제는 5·18이 지닌 보편적 가치,즉 민주주의·인류애를 실증적 연구를 통해 확산시키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5·18의 전국화’를 바라는 광주시민의 염원이 담긴 것이 바로 망월동 구묘역의 돌탑과 신묘역의 헌수탑.전국 각지의 참배객이 작은 돌 하나씩 들고와 쌓은 탑이 이제 1m 높이에 이르렀다.묘역 헌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명단도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 5·18 묘역 입구 표지석은 광주시민들이 정부에 가진 바램을 대변한다.길이 6.8m,높이 4m,무게 33t의 화강암으로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5·18 묘지’라고 씌여진 표지석의 왼쪽 부분은 비어있다.‘국립’이라는 명칭을 써넣기 위함이다.5·18기념행사위 李基洪 위원장은 “묘역의 국립묘지 승격,5·18정신의 교과서 수록,국가차원의 전국적 기념식 거행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촉구했다.올해 5·18 기념사업은 사상 처음으로 통합추진되고 있다.기념재단이 주축이 된 행사위원회를 만들었다.차분하고 내실있는 행사추진이 가능한 연유다. ◎곳곳에 남겨진 상흔/1천여명 부상·고무 후유증 시달려/金來香양 18년째 ‘휠체어 신세’… 올 대입 도전 “약사가 돼 나처럼 고통받는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5·18 당시 두차례 척추 관통상을 입고 휠체어에 18년째 몸을 의지하고 있는 金來香양(22)은 영문도 모른채 불구자로 운명지어체적 진실이 하루빨리 밝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학속의 5·18/대하소설 봄날 “절규가 희망으로”/대부분 詩로 분노 표출… 제도 폭력 허위 고발 광주민주화항쟁은 여전히 진실규명이 미흡한채 세월과 함께 과거의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문학속에서도 광주의비극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해왔다.그러나 임철우씨의 장편소설 ‘봄날’에서 마침내 ‘광주의 진실’이 총체적으로 형상화되어 한국인의 보편적 역사 흐름의 한 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봄날’은 왜곡된 정치형태 탓에 ‘광주정서’라는 감정적 모습으로 호도된 광주항쟁을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장편소설이다.임철우(한신대교수)씨는 당시 전남대 휴학생으로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대하소설 봄날이 지난 2월,5권으로 완성되기 전에도 광주항쟁을 다룬 작품은 많이 발표됐다.상징과 은유라는 특성을 갖고 있는 시는 정치적 금기의 상징이었던 광주를 다루는데 소설보다 자유로웠다.광주항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던 80년 6월 김준태의 장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가 발표됐다.그후 광주 비극에 분노하는 시가 쏟아져나왔다.광주의 5월을 다룬 첫 소설로는 윤정모씨의 단편 ‘밤길’이 85년 발표됐다.그 2년후 ‘80년 5월 광주항쟁 소설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일어서는 땅’이 출간됐다.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은 사태의 본질에 제대로 접근하지못하고 역사적 진실을 우회하는 형식을 취하는 한계성을 드러냈다.판도라의 상자격이었던 광주 진상에 대한 통제 때문이었다.‘봄날’은 그러나 참담한 살육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광주항쟁 열흘동안의 처절하고 비극적인 모습을 장대한 한편의 드라마로 만들었다.시민들의 항쟁을 체계적으로 논리화하는 등장인물 윤상현은 현실에서 패배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말한다.대학생으로 나오는 명기도 “인간과 삶을 향한 소망을 배워가리라” 다짐한다.그래서 이 소설은 ‘눈부시게 맑은,늦은 봄날의 아침’으로 끝난다.작가가 고발하고자 하는 권력에 의해 조작된 제도적 폭력이 사라지고 의식의 허위성이 제거된다면 광주의 5월은 찬란한 ‘봄날’로 빛날 것이다. ◎宋基淑 5·18 연구소장/“진실 밝히고 올바른 평가 내려야”/발포명령자 규명­군기록 보존 중요 광주문제라면 말도 꺼내기 힘들었던 5공시절부터 5·18이 제대로 평가받는데 앞장섰던 宋基淑 전남대 교수(5·18 연구소장)는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을 밝히고,그 진실을 바탕으로 5·18을 정치사회적으로 올바르게 평가하는 것”이라며 ‘5·18의 학문적 객관화’를 강조했다. ­5·18 18돌을 맞는 의미는. ▲지금까지는 정부주도의 배상논의가 주를 이뤘습니다.또 기념사업,망월동 묘역 단장도 기대만큼 이뤄졌다고 봅니다.5·18을 역사의 생생한 기록으로 남기려면 관련 자료를 챙겨 정리하는게 중요합니다.진실의 핵심은 발포명령자를 가리는 것인데 아직 전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80년 당시 군기록중 소멸시킨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현재 있는 것이라도 솔직히 공개하고,군사비밀로 분류되어 있다면 존재만이라도 확인해 두었다가 10∼20년뒤라도 공개해야 할겁니다. ­5·18의 전국화,세계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그렇습니다.5·18은 광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때문에 5·18을 4·19,제주 4·3항쟁 등 국내의 다른 민중항쟁뿐 아니라 중국의 천안문사태,대만의 고웅사태 등과 비교연구하는게 필요합니다.나아가 아르헨티나 칠레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등 중남미국가들과의 비교도 필요하다고 봅니다.일부 남미국가들이 민중혁명에 실패,군사정권이 재등장하는 과정을 반추해보면 잘못된 역사의 반복을 막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金大中 대통령정부에 바라는 것은. ▲金대통령에게는 큰 부담을 주지않으려는게 이곳(광주·전남)의 정서인것 같습니다.金泳三 전 대통령때는 큰 소리쳤었는데….(웃음)사회단체들에서는 5·18 묘역의 국립묘지 지정,5·18관련 교과서 내용 재정리를 요구하고 있고,앞으로 정부도 이것들을 추진하리라 생각합니다. ◎5·18 광주민중항쟁 이란 5·18 광주민중항쟁은 1979년 유신독재를 자행해온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로 초래된 권력공백기에 불법적으로 집권을 꾀하려는 신군부세력을 거부하며 민주화를 요구,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계속된 광주시민들의 봉기를 가리킨다.현재 정부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공식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나 5·18단체들을 비롯한 다수 학자들은 시민·학생들의 자발적 미주화 투쟁을 부각시키는 뜻에서 ‘5·18 광주민중항쟁’으로 부록 있다.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부장(반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전국팀=金守煥·崔治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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