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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으로 여는 아침]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를 경멸한 이유/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고전으로 여는 아침]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를 경멸한 이유/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소크라테스(BC 470~399)는 인류가 낳은 최고의 현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아테네를 이끄는 정치지도자가 되지 않고 철학자의 삶을 고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그리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에 태어났다. 소크라테스는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전후 50년 동안 펼쳐진 ‘페리클레스의 황금기’ 속에서 보냈다. 그런데 힘과 부를 축적한 아테네는 서서히 타락해 갔다. 번영의 어두운 그림자였다. 결국 제국의 행태를 보이는 아테네를 제지하기 위해 스파르타가 칼을 들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은 그리스 세계를 양분하며 심각한 파괴와 깊은 상처를 남겼다. 장년기에 이 잔혹한 내전을 생생하게 목도한 이가 소크라테스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아테네 시민들의 그릇한 행태를 질타하는 ‘신이 보낸 등에’ 역할을 자임했다. 민중은 덕에서 멀어져 갔고 민주정은 타락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의 ‘무지(無知)의 지(知)’는 시민들을 일깨우는 죽비 소리와 같았다. 아테네 민주정은 대중 모두가 통치의 주체인 동시에 다스림의 객체임을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체제다. 민주정이 작동되기 위해서는 대중이 선도(先導)와 복종의 역할을 잘해내야만 한다. 아테네인들은 이를 익히기 위해 추첨 제도를 창안했다. 누구나 무작위 추첨에 의해 1년 동안 국가의 행정관이 될 수 있었고, 뽑히지 않은 사람들은 선임된 이들에게 순순히 따랐다. 페리클레스의 황금시대에는 이런 시스템과 민회가 어느 정도 작동되어 민주정이 안착되었다. 그러나 페리클레스가 죽은 후 5세기 말기로 갈수록 선동가들에게 휘둘린 아테네 민회는 타락해 갔다. 아르기누세 해전의 지휘관들을 사형시킨 재판이나, 멜로스 인들을 학살하는 결정 등 불법과 부정이 수시로 발생했다. 소크라테스가 제대로 ‘아는 자’들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다. 그는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 무지한 자들’이 주도하는 민주정을 경멸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통치에 참여하기에 앞서 덕을 쌓으라고 호소했다. 소크라테스는 끝까지 정치가가 아닌 철학자의 삶을 택했다. 플라톤(BC 427~347)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나오는 대목이다. “다른 군중에게 순진하게 맞서서 도시에 수많은 부정과 불법이 자행되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진실로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은, 잠시라도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공인이 아니라 사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아테네 민중의 폭주와 민주정의 타락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대중의 폭주는 민주주의를 타락시키고 현인들을 구축했다. 떼법과 불복종 선동이 난무하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멀지 않아 보여 우울하다.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르네상스 회화의 보물창고 피렌체 우피치 국립미술관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르네상스 회화의 보물창고 피렌체 우피치 국립미술관

     르네상스는 14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15세기 절정을 이룬다. 이 시기 미술분야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절이었다. 피렌체의 메디치가를 비롯해 부유한 상인들과 은행가들은 자신의 죄를 사하고 천국행 티켓을 얻기 위해 수도원에 기부를 하는 한편 새로운 경제적·정치적 세력을 나타내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가족 예배당과 대저택을 주문했다. 그 치장을 위해 최고의 예술가들을 불러들이고 이들을 적극 후원했다.  피렌체가 자랑하는 우피치 미술관은 르네상스 예술의 보물창고다. 메디치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이뤄진 우피치 미술관을 빼놓고는 르네상스 예술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사무실’을 뜻하는 우피치는 메디치가의 코시모 1세(1519~1574)가 행정과 사법 업무를 담당할 공간으로 가문의 전속 화가였던 조르조 바사리에게 주문해 지은 것이다. 베키오 궁과 자신의 가족들이 머무는 피티 궁 중간 쯤에 두 개의 건물로 지어졌다. 코시모 1세는 우피치 1층에 자신의 집무실 공간을 마련하면서 2층엔 당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작업할 공간을 마련했고 3층에는 메디치가가 소장하고 있던 작품들을 전시했다. 1560년 착공한 건물은 그의 아들 프란체스코 1세 때인 1581년 완공됐다. 프란체스코 1세는 베키오 궁, 메디치가의 옛 저택에 있던 예술품들을 우피치로 옮겨 왔다. 대칭을 이루는 두 개의 건물은 좁은 복도로 이어지는 현재의 구조로 자리 잡는다. 이후 공간은 더욱 확장된다.  1737년 메디치가의 마지막 상속녀였던 안나 마리아 루이자가 우피치 가문의 소장품들을 새 왕조인 로레나가에 양도하면서 우피치의 작품들은 1765년 우피치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안나 마리아 루이자는 메디치가의 소장품을 양도하면서 “모든 작품들은 피렌체를 떠나지 않도록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덕분에 작품들은 피렌체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었다. 1800년 메디치가의 소장품들 중 조각품들은 바르젤로 국립미술관으로 이전하면서 우피치는 르네상스 회화 작품들이 주를 이루게 된다.  짧은 복도로 이어진 동관과 서관 두개의 건물로 이뤄진 우피치 미술관은 3개 층에 걸쳐 100여개의 전시실이 있다. 1층은 고문서, 2층은 판화와 드로잉, 3층은 13세기부터 후기 르네상스 시기까지의 회화작품들이 동관부터 서관까지 시대순으로 전시돼 있고 복도를 따라 로마시대와 15세기의 조각작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2500점 이상의 작품들을 다 감상하려면 하루 이틀을 가지고는 절대로 부족하다. 시기별로 대표작들을 체크하고 방을 따라 가면서 봐도 놓치는 작품들이 허다하다.  미술관에서는 동선을 미술사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르네상스의 회화작품들을 시대순으로 보도록 짜 놓았다. 유명 작품들은 주로 3층(1~45전시실)에 전시돼 있다. 2전시실은 최초의 르네상스 화가로 언급되는 조토와 그의 스승으로 피렌체 화파의 선구자인 치마부에, 치마부에와 동시대에 활동한 두초 디 부오닌세냐가 각각 그린 ‘마에스타’(가장 높은 옥좌에 오른 예수를 형상화한 제단화)를 볼 수 있다. 3~6 전시실에서는 14세기에 피렌체와 경쟁 관계에 있었던 시에나의 유명한 화가 시모네 마르티니가 그린 ‘수태고지’, 로렌초 모나코의 ‘동방박사의 경배’와 ‘마리아의 대관식’ 같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르네상스가 무르익었던 시기의 작품들은 7전시실부터 시작된다. 산마르코 수도원을 장식한 프라 안젤리코의 ‘성모의 대관식’, 원근법에 몰두했던 파올로 우첼로의 ‘산로마노 전투’, 도메니코 베네치아노의 ‘성 모자와 네 성인’ 등 중세적인 색채가 남아있는 작품들을 지나면 세속의 고결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던 수도사 화가 필리포 리피의 ‘두 명의 천사와 함께하는 성모마리아’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그림 속의 성모마리아는 세속의 여인들이 샘을 낼 정도로 아름답다. 이 여인은 루크레치아라는 수녀를 모델로 그린 것이다.  9전시실의 중앙에는 웬만한 미술사 책에 단골로 등장하는 유명한 한쌍의 측면 초상화가 놓여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린 그림 속 남자는 당대 최고의 용병 대장이었던 우르비노의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공작이고 그를 마주보고 있는 여자 주인공은 아내 바티스타 스포르차이다. 몬테펠트로 공작은 전쟁 중 부상으로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측면 초상화는 이것을 감추면서 신비롭고 근엄함을 강조하기 위한 훌륭한 해법이었다. 그는 아내가 아들을 낳고 얼마 안 있어 세상을 떠나자 자신의 초상화와 쌍을 이루는 부인의 초상화를 주문했다고 전해진다. 미남 미녀는 아니지만 남자는 카리스마가 강하게 부각되고 여자는 순종과 희생, 사랑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10~14 전시실은 우피치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방이다. 너무나 유명한 그림 ‘비너스의 탄생’ 앞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로렌초 디 메디치의 후원을 받았고 플라톤아카데미를 드나들며 인문주의자들로부터 그리스 고전과 신화를 배운 보티첼리는 아름다운 피조물을 통해 신의 위대함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신화를 주제로 벌거벗은 10등신의 아름다운 여인상을 과감하게 그렸다. 중세 이후 실물크기로 등장한 최초의 여성누드라는 점에서도 유명한 이 그림은 결정적인 부분을 가림으로써 자신의 정숙함을 과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고대 그리스의 ‘베누스 푸디카(정숙한 비너스라는 뜻)’ 스타일을 보티첼리가 부활시킨 것이다.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싣고 다른 다리는 살짝 구부린 콘트라포스토 자세 또한 고대 그리스 조각상에서 자주 발견된다. 자연스럽게 굴곡진 몸매를 드러나게 하는 포즈다. 그림 왼 쪽의 남녀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미풍의 신 아우라다. 이들이 불러일으킨 따뜻한 바람에 실려 거품 속에 태어난 비너스가 키프로스 섬까지 밀려올 수 있었다. 비너스에게 망토를 건네주려는 꽃무늬 옷차림의 여인은 제우스의 딸로 계절의 변화를 관장하는 여신 호라이다.  ‘비너스의 탄생’ 다음으로 관람객이 북적이는 곳이 ‘프리마베라’(봄)다. ‘위대한 자 로렌초’의 조카인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 데 메디치의 저택 침실에 침대 등받이 위에 걸려 있었다. 막 결혼한 그를 위해 가문에서 결혼선물로 주문한 것으로 추정한다.  화면 한 가운데에는 비너스가 서 있고 그 위로 큐피드가 화살을 겨누고 있다. 화면 왼쪽에는 부터 제우스의 심부름꾼 헤르메스가 있고 그 옆으로 세 명의 여자가 둥글게 원을 그린 채 서 있다. 순결, 사랑,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삼미신이다. 비너스의 오른 쪽에 두 여인이 서있다. 그 중 바람의 신 제피로스에게 잡혀있는 여인의 입에서는 꽃이 피고 있다. 이 유명한 그림의 정확한 의미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지중해에 봄의 따뜻한 기운을 불러들이는 제피로스의 입김에 클로리스라는 요정이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신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배경의 나무들은 감귤나무로 학명에 ‘메디카’가 붙기 때문에 메디치 가문을 상징한다고 본다. 학자들은 목판에 템페라로 그려진 이 그림 곳곳에 그려진 꽃이 500여종에 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따뜻한 봄 같은 신혼부부의 사랑을 축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메디치가문으로 인해 황금기를 구가하는 피렌체의 영광을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다. 보티첼리의 방에 있는 그림들은 보고 또 봐도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아름답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와 ‘동방박사의 경배’,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라파엘로의 ‘방울새와 성모’와 ‘율리우스 2세의 초상’,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등 우피치 미술관에는 너무나 유명한 그림들이 미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 워낙 유명 작품이 많은 인기있는 미술관이기 때문에 항상 관람객으로 붐빈다. 반드시 사전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인터넷을 통해 사전예약을 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반드시 봐야할 명화들을 놓치지 않고 감상할 수 있다. 긴 줄을 서야하는 불편함이 있기는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 위대한 예술가들이 남긴 걸작들을 온전하게 오늘날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메디치 가문이 아낌없이 예술가들들을 후원한 덕분임은 말할 것도 없다. 메디치가의 350년 영화는 오래 전에 막을 내렸지만 예술은 영원히 남아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고전으로 여는 아침] 플라톤의 결혼 장려 법안/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고전으로 여는 아침] 플라톤의 결혼 장려 법안/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가 동반되면 경제활동 인구와 노동력의 감소로 인해 국민총생산이 위축된다. 게다가 고령 미취업자를 부양해야 할 청장년들의 어깨도 무거워진다. 현대 의학의 발달과 식생활의 개선으로 평균 기대 수명은 길어졌지만, 취업난과 자녀 양육의 어려움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고대에는 어느 사회나 평균 수명은 낮았지만, 높은 출산율 덕택에 사회 전체적으로 젊은 연령대의 인구를 적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결혼을 장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사회는 한때 낮은 출산율이 심각한 문제였던 모양이다. 27년간 지속된 펠로폰네소스전쟁(BC 431~404)의 여파로 수많은 청장년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플라톤(BC 427~347)은 대화편 ‘법률’에서 어떻게 하면 청년들의 결혼을 촉진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는 당시로는 매우 급진적인 결혼 장려 법안을 입안하고 이를 채택할 것을 권고했다. “개인은 30세가 되면 35세까지는 혼인을 할 것. 법에 복종하는 자는 벌을 받지 않고 자유로울 것이나, 반대로 불복하는 자는 해마다 얼마의 벌금으로 내게 하라. 독신 생활이 자신에게 이득과 편함을 가져다주리라고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그 나라에서 젊은 연배의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연장인 사람들을 그때마다 존경해 주는 그런 면도 누리지 못하게 하라.” 결혼을 못 한 청년들은 미혼도 억울한데, 벌금을 물고 불명예의 처벌까지 받는다면 부당하다고 여겼을 터. 플라톤은 왜 이렇게 터무니없어 보이는 법안을 입안했을까. 그런데 그의 입법 취지는 매우 설득적이다. “결혼을 통해 자녀를 낳는 일이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영원히 사는 불사에 참여하는 경건한 일이며, 이런 책무를 수행하는 자만이 존경과 명예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류가 어떤 본성에 의해 불사성(不死性·athanasia)에 참여하는 방식이 결혼이며, 또한 모든 인간은 이에 대한 온갖 욕구를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후손을 낳는 것이 영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신성한 의미를 부여했다. 플라톤의 결혼 장려 법안은 설득(peitho)과 강제력(bia)을 병행하고 있다. 플라톤의 이런 설득적 법안을 ‘이중적인 형식의 법’이라고 일컫는다. 플라톤의 법안은 이렇듯 꽤 진정성은 있었다. 하지만 이를 실행한 국가가 있었는지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결혼에 적극적이게 만들 수 있을지 우리 사회도 고민이 깊다. 그래도 인구안정처 신설은 단견일 듯싶다. 강제력은 쓸 수 없는 노릇이고 호소력 있는 설득적 정책은 없을까.
  •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나를 노래한 사포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나를 노래한 사포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알 수 있듯이 대개 왕이나 영웅의 업적을 찬양하는 목적으로 지어진 게 서사시이다. 사사로운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공유한다는 것, 나를 노래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엔 혁명이었고 휴머니즘이었다. 최고 권력자만이 아니라 나도 말할 가치가 있다, 나도 왕 못지않게 소중한 존재이니까. 민주주의가 발전했던 그리스에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철학자와 시인들이 인류문화의 꽃을 피웠다. 나는 누구인가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철학자와 서정시인은 서로 닮았다. 위대한 시인들은 다 철학자였다. 서정시를 발전시킨 가장 큰 공로자는 그리스의 여성시인 사포(BC 600?~?)이다. 일상의 언어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사포의 시어들은 250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대적이다. 사포는 기원전 600년경에 레스보스 섬의 미틸리니에서 태어났다. 당시 레스보스는 소아시아에 위치한 트로이 그리고 아시리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동서를 잇는 고대 중개무역의 중심지로 아테네가 부럽지 않을 만큼 부유했으며 문화가 발달했다. 사포와 시를 교환한 알카이오스를 비롯해 그녀를 사모하는 남성들이 여럿이었지만, 사포는 아름다운 외모로 이름을 날리진 않았다. 사포는 키가 작고 남성적인 용모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녀는 시의 힘으로,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언어의 힘으로 사람들을 굴복시켰다. 시인은 무가치한 존재로 공화국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플라톤(BC 427~347)도 사포를 ‘열 번째 뮤즈’라며 찬양했고, 사포의 이미지는 고대 미틸리니에서 주조된 동전에도 새겨져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는 눈으로 읽는 글이 아니라 귀로 듣고 즐기는 노래였고, 춤도 곁들여진 종합예술이었다. 시인들은 모두 가수였다. 사포의 시도 노래로 구전되다가 나중에 책으로 엮였다. 사포의 시는 첫 행을 보통 제목으로 사용하는데, 그 첫 행의 번역이 번역자마다 달라서 같은 시인데도 제목이 다르게 붙어 있다. 질투의 시로 알려진 ‘그는 내게 신처럼 보여’(To me he looks godlike)를 감상해 보자. 참으로 번역하기 까다로운 시다. 구글에서 영어로 사포의 ‘Poem of Jealousy’를 검색하면 기원전 50년경의 라틴어 번역본을 비롯해 무려 32개의 번역이 뜨는데, 내가 한글로 옮긴 것은 언젠가 미국을 여행하며 길거리의 서점에서 구입한 작은 책, 뉴본(Sasha Briar Newborn)의 ‘Sappho: The Poems’에 실린 영어 텍스트이다. 그는 내게 신처럼 보여 -사포 그는 내게 신처럼 빛나 보여, 네 앞에 마주앉은 남자, 달콤한 너의 말에 귀 기울이며 너의 매혹적인 웃음이 흩어질 때면 내 가슴이 가늘게 떨리네. 너를 슬쩍 쳐다보기만 해도, 내 혀가 굳어 아무 말도 할 수 없네. 뜨거운 불길에 휩싸여 내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내 귀가 둥둥 울리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몸이 떨리네 나는 마른 풀처럼 창백해지고 죽을 것만 같아… (I’m pale as dry grass, and death seems close, familiar-) ** 여기서 시인이 열중하는 상대는 신처럼 빛나는 ‘그’가 아니라, 그와 마주앉은 여인인 ‘너’이다. 너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인 그를 질투하는 사포의 고백이 처절하다. 동성애를 시어로 표현한 아주 특별한 여성이었던 사포. (사포가 태어난 섬의 이름을 따서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 몸에 나타나는 변화를 마치 의사가 환자를 관찰하듯 낱낱이 묘사하여, 눈에 보이는 선명한 이미지로 보여 준 시인은 사포가 아마도 처음이리라. 사포의 시는 서양문학만 아니라 서양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랑의 그 곤란한 깊이를 포착하는 그녀의 열정적이며 때로는 얼음처럼 차가운 시어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파피루스에 기록된 그녀의 시들은 세월이 흘러 불에 타고 물에 잠기고, 조각조각 찢어져 완전한 형태가 드물지만 파편으로 남은 시편만으로도 그녀의 천재성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포는 악기도 잘 다뤄 새로운 형태의 리라를 디자인했고, 오늘날 기타의 ‘피크’(pick)에 해당하는 채(plectrum)를 발명하기도 했다. 한때 대한민국의 여학교 교실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의 명시를 베끼고 그림을 그린 시화집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 서랍을 정리하다 학창시절에 내가 일기장 겸 시화집으로 사용하던 공책에서 사포의 시를 발견했다. 그 옛날, 여고 1학년이었다. 만년필로 또박또박 새겨진 “나는 마른 풀처럼 창백해지고 죽을 것만 같아요”가 삼십년이 지났건만 금방 흘린 피처럼 선명했다. 그래. 그래서 내가…. 사포의 뒤틀린 위트와 아이러니에 매료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평범한 주부가 되어 적당히 편안한 중년을 보냈겠지. 너무 이른 나이에 사포에게 세뇌당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는 부드러운 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감히 ‘나’를 노래하는 모험을 택하지 않고 ‘그’ 혹은 ‘그녀’의 이야기를 아리송하게 심각하게 포장하는 재주를 익혔다면, 비평가들의 칭찬과 상도 뒤따랐으련만. 그러나 나는 ‘나’를 노래하다 안개처럼 사라질 운명인 것을….
  •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죽음이여 뽐내지 마라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죽음이여 뽐내지 마라

    사랑과 죽음은 영원한 시의 주제이다. 이 세상에서 절실하게 말할 가치가 있는 건 사랑과 죽음뿐이다. 돈? 권력? 이 세상의 어떤 돈과 권력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지극한 정성은 가끔 기적을 만들어 ‘죽을’ 사람도 살린다. 죽음은 사랑보다 어렵다. 죽음이란 (개념은) 구체적으로든 은유적으로든 표현하기 어렵다. 사는 동안 우리는 사랑은 여러 차례 경험하지만 죽음은 한 번뿐이고, 이미 죽은 뒤에는 죽음을 말할 수 없기에. 사랑하는 남녀는 눈에 잘 띄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지난 몇 년 동안 종합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고,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살아 있는 시체들을 수두룩 목격했지만 ‘죽음’에 대한 시를 나는 한 편밖에 쓰지 못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직면하는, 가장 근원적이며 보편적인 문제가 죽음 아닐까. 죽음을 앞두고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잔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존 던처럼 죽음에 대해 깊이 사색하고 도발적인 언어로 죽음과 정면대결한 시인을 나는 보지 못했다. 1621년 세인트 폴 대성당의 수석사제가 되고 얼마 지나 그는 병으로 쓰러졌다. 거의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심하게 앓다가 그는 일어났다. 회복기에 쓴 기도문 중 하나는 ‘어떤 사람도 섬이 아니다’(No man is an island)로 시작하는데, 훗날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에 쓰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구절로 유명하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느니.(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새 국왕 찰스 1세 앞에서 설교하는 영광을 누리고 1631년 존 던은 이 세상과 작별했다. 그의 사후에 그의 설교문과 시집들이 발간되었다. 14줄로 된 ‘죽음이여 뽐내지 마라’(Death be not proud)는 첫 행부터 우리를 사로잡는다. 죽음이여 뽐내지 마라 - 존 던 죽음이여 뽐내지 마라, 어떤 사람들은 그대를 강하고 무섭다 말하지만, 그대는 그렇게 강하고 무섭지 않아. 그대가 쓰러뜨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죽지 않았고 가련한 죽음이여, 그대는 나도 죽이지 못해. 그대의 그림들에 불과한 휴식과 잠에서 많은 기쁨이 흘러나온다면, 그대에게선 더 많은 기쁨이 흘러나오리라. 그리고 우리 중에 가장 훌륭한 이들이 가장 먼저 그대를 따라가지만, 이는 그들 육체의 안식이며, 영혼의 구원이니. 그대는 운명과 재난사고와 군주들과 절망한 자들의 노예, 그리고 독약과 전쟁과 질병도 그대와 함께 살지. 아편이나 마술도 우리를 잠들게 할 수 있으니, 그대의 습격보다 훨씬 좋지, 그런데 그대는 왜 그리 거만한가? 짧게 한잠 자고 나면, 우리는 영원히 깨어, 더이상 죽음은 없으리; 죽음, 그대가 죽으리라. Death be not proud, though some have called thee Mighty and dreadful, for, thou art not so, For those whom thou think’st, thou dost overthrow, Die not, poor death, nor yet canst thou kill me. From rest and sleep, which but thy pictures be, Much pleasure, then from thee, much more must flow, And soonest our best men with thee do go, Rest of their bones, and soul’s delivery. Thou art slave to fate, chance, kings, and desperate men, And dost with poison, war, and sickness dwell, And poppy, or charms can make us sleep well And better than thy stroke; why swell’st thou then? One short sleep past, we wake eternally And death shall be no more;Death, thou shalt die. *(역자 주) ‘thee’는 현대영어에서 2인칭 목적격 you, ‘thou’는 2인칭 주격 you이다. ‘shalt’(=shall), ‘art’(=are), ‘dost’는 동사 do의 2인칭 단수 직설법 현재형이다. ‘canst’는 can의 2인칭 단수 현재형이다. 즉 “canst thou = can you”이니 참고하시길. 죽음을 이기려는 안간힘에 존 던 특유의 위트가 살아 반짝인다. 육신의 휴식과 잠을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그림’(pictures)으로 보고, 잠이 달콤하고 즐거운 거라면 잠의 원형인 죽음에게선 더 많은 쾌락이 흘러나올 거라니. 시에서나 가능한 비약이다. ‘죽음’을 일종의 이데아로 보고, 그 구체적인 현상인 잠을 대립시키는 논리전개에서 플라톤의 영향이 감지된다. 죽음에게 사형을 선고한 마지막 행이 압권이다. 과학으로는 불가능한 초월을 감히 시도한 시인.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한 죽음을 (시로) 이겼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언젠가 존 던의 유해가 묻힌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가서, 나도 ‘죽음’을 유쾌하게 음미하고 싶다.
  • [경희대 특집] “대학이 변해야 미래가 달라진다”… 경희, 문명사적 대전환 위한 혁신 대장정

    [경희대 특집] “대학이 변해야 미래가 달라진다”… 경희, 문명사적 대전환 위한 혁신 대장정

    지난 6월 27일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으로 1970년대 이후 세계 지성을 선도했던 앨빈 토플러의 영면 소식은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장면과 겹친다. ‘제3의 물결’을 통해 정보혁명을 중심으로 사회적 격변을 조명한 그의 예견대로 오늘날 우리는 손안에서 전 세계와 접속하고 거의 모든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정점에 올라 있다. 과학기술 혁신이 가져온 인공지능 시대는 정보혁명을 넘어 ‘제4의 물결’을 출렁이게 한다. 인공지능이 이끌어가는 새로운 시대의 명암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기계와 함께 풍요와 안녕을 영위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인간을 닮은 기계’로부터 위협을 당할 수도 있다. 해체된 인간 복원을 꿈꾸다가 괴물을 만들어버린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이 현실화할 수 있는 것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지난 4월 경희대와 플라톤 아카데미가 공동 주최한 ‘세계지성에게 묻는다: 문명전환과 아시아의 미래’ 강연에서 인공지능 시대가 가져올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능을 넘는 지성, 실용을 넘는 윤리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면 신의 자리에 오른 인간의 무책임한 선택이 인간 자신을 파멸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른바 ‘절대반지’를 발견한 인간의 미래를 묻는 것이다. ●인류가 만들어온 출구가 ‘막다른 길’로 돌변 유엔이 발표한 지속가능한 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비롯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발표한 회칙도 기술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인류의 연대를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보스 포럼도 인류가 복합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 모든 상황은 인류가 만들어온 ‘출구’가 도리어 ‘막다른 길’로 돌변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인류 문명은 기로에 서 있고, 그사이 미래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출구,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해답의 열쇠는 ‘전환’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와 용기가 절실하다. 문명을 전환하는 한 축이 교육이다. 교육을 혁신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건설하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이다. 고등교육의 철학과 비전, 방식에 일대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대학이 달라져야 미래가 달라진다. 관건은 교육 목표에 대한 기대와 생각이다. 드루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은 “교육의 탁월성이란 곧 공적 기여를 의미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대학교육이란 바로 다음 학기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아니다. 생애 전체에 걸쳐 이루어지는 배움, 천년의 유산을 상속받는 학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래를 만들어가는 학습을 뜻한다”고 말했다. 하버드대는 대학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세계적 지성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그리고 대학의 사회 공헌을 통해 학술의 책임을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하고 있다. 당장의 경제적 이익에 머무는 인간을 기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학은 지금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국내 대학들이 사회와 시장의 요구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학의 본령인 지성의 산실, 진리추구의 현장인가. ●드루 파우스트 “교육 탁월성은 공적 기여 의미” 2011년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설립, 대학 교양교육의 새로운 전범을 제시한 경희대가 최근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하고 있어 주목된다. 최근 ‘함께하는 대학혁신 대장정’을 통해 교육과 학습, 연구와 실천, 행정과 재정, 그리고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전환을 추진한다. 학부 학생들에게도 개방하는 세계적 대학원 수준의 ‘문명전환 아카데미’도 조만간 선보인다. 현대문명의 본질을 관통하는 흐름과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총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융합체계의 최고 단계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경희대가 세계적인 석학을 초빙해 진행해 온 GC(Global Collaborative)의 역량 축적과 5대 연계 협력 클러스터 구조를 이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문명전환아카데미는 문명사를 비롯해 미래학, 미학, 윤리학, 인지과학, 도시학 등의 교과를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를 성찰하며 미래를 디자인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또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설계능력을 기르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경희대의 혁신은 융·복합 분야로 확대 중이다. 2012년부터 추진해 온 바이오 헬스, 미래과학, 인류문명, 문화예술, 사회 체육 등 5대 연계협력클러스터가 하나하나 가시화하고 있다. 5대 클러스터는 국내외 기업과 지자체, 대학, 연구소 등과의 관산학연 협력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융·복합 학술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제캠퍼스 부지에 10만평 규모의 첨단 연구개발(R&D) 단지가 조성되고, 서울캠퍼스 인근 홍릉지역에 바이오 헬스를 기반으로 하는 연구단지가 들어서면 연계협력 클러스터의 성과가 세계적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학문단위를 새롭게 조직해 학생들의 학습권을 크게 향상시키는 동시에 신지식, 신기술을 창출하는 연구역량도 국제적 수준으로 올라설 것으로 기대된다. 조인원 경희대 총장은 학생, 교수들과의 대담 시리즈를 엮은 ‘내안의 미래’(한길사, 2016)에서 “‘탁월성’이라 하면 대체로 경쟁력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 탁월성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물어야 한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삶의 가치와 목표, 공적 기여를 위한 것인지 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조 총장은 위 대담집에서 “미래대학은 경제가치 외에 주력해야 할 분야가 많다. 우리가 함께 풀어가야 할 빈곤과 질병, 소외와 인권, 자유와 존엄, 환경과 기후변화, 갈등과 폭력 같은 다양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또 이 모든 삶의 가치에 근본이 되는 정신적 풍요와 문화적 성숙을 이루는 데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창학 초기인 1950년대 중반부터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온 경희대는 2009년 개교 60주년 이후 대학의 공공성을 지구적 차원에서 구현하고 있다. ‘경희의 미래, 인류의 미래’라는 모토 아래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명사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후마니타스칼리지, 미래문명원, 지구사회봉사단(GSC), 인류문명클러스터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 경희대의 대학 혁신은 대학의 지구적 공헌을 주요 기준으로 개발될 세계대학평가지표(Global Eminence Index)를 매개로 국내외 대학은 물론 세계 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기존 대학평가가 대학의 서열화를 고착화시키는 역기능이 있다면 새로운 대학평가지표는 대학의 핵심 가치를 경쟁에서 협력으로, 국가 차원에서 지구적 차원으로, 지속불가능성에서 지속가능성으로 바꿔 나갈 것이다. ●세계평화의 날, 전 세계 지성 한자리에 창학 초기인 1950년대 중반부터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온 경희대가 오는 9월 뜻깊은 학술행사를 개최한다. 올해는 유엔이 제정한 세계평화의 날 35주년이다. 유엔 세계평화의 날은 1981년 경희대 설립자 조영식(1921~2012) 박사가 세계대학총장회(IAUP)를 통해 유엔에 제안한 것으로, 그해 11월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1970년대부터 세계평화 운동을 선도해 온 경희대는 매년 9월 세계평화의 날 기념 국제학술회의(Peace BAR Festival, PBF)를 개최하고 있다. 9월 21일부터 3일간 경희대 서울캠퍼스에서 열리는 이번 PBF의 대주제는 ‘지구 문명의 미래: 실존혁명을 향하여’로, 이 행사를 통해 경희대는 세계지성 및 한국 시민사회와 함께 문명사적 위기에 대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그 구체적 실천 방안을 모색한다. 특히 이번 PBF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지성의 집합체인 로마클럽, 부다페스트클럽,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WAAS)의 주요 관계자들이 함께 참석해 한국의 지성계와 교육계는 물론 종교인, 예술가, 시민운동가, 기업인, 정치인 등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PBF 2016은 국내외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세계적 싱크탱크와 한국의 지성계를 연결하는 교량 역할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고등교육 혁신의 진로를 구체화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지성과 함께 문명사적 대전환의 모멘텀을 모색하는 이번 PBF가 인류 문명의 미래뿐 아니라, 대학의 미래를 내다보는 전망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오늘의 소용돌이치는 현실에서 대학이 과연 어떤 좌표 위에 설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성의 힘을 최전선의 돌파력으로 내세우는 작업과 직결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용어 클릭] ■로마클럽 1968년 이탈리아 기업가 아우렐리오 페체이와 스코틀랜드 과학자 알렉산더 킹의 주도로 출범했다. 세계적 지식인, 전직 국가수반, 경제학자, 과학자들이 합류했으며 1972년 ‘성장의 한계’ 출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부다페스트 클럽 1993년 헝가리 출신의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이자 과학철학자인 어빈 라즐로가 주도해 결성했다. 로마클럽과 함께 문화예술, 종교계의 지구적 기여를 촉구해 왔다.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 아인슈타인 등의 주도로 1960년에 세워졌다. 인문, 사회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비롯해 지구 차원에서 경제를 재구성하는 문제 등을 다루며 ‘세계대학’(World University) 역할을 수행해 왔다.
  • [고전으로 여는 아침] 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나 한번은 이 세상에 왔다가 떠나간다. 그러면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 소크라테스(BC 470~399)는 인간이 죽으면 육체는 사라지지만 그의 혼은 불멸한다고 믿었다. 플라톤(BC 427~347)의 대화편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독약을 마시고 죽기 직전, 제자들과 영혼 불멸과 사후 세계에 대해 나눈 대화를 전해 주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늘 육체의 욕망에 휘둘리는 감각적 삶보다 이런 것들에 초연할 수 있는 이성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철학자의 혼은 이성을 따르고 언제나 이성과 함께함으로써, 그리고 의견의 대상이 아닌 참되고 신적인 것을 정관하고 양식으로 삼음으로써 (쾌락과 고통에 얽매이는) 감정들에 초연해야 한다고 믿네.” 소크라테스가 평소 혼을 강조했지만, 혼이 불멸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제자들도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심미아스 같은 이는 혼은 항상 몸과 함께하며 이 둘의 조화가 이루어질 때 각각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혼은 일종의 조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육신이 죽으면 혼 역시 소멸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혼은 사람의 형태와 몸속으로 들어오기 전에 존재”하며, 혼이 들어 있기에 몸이 살아 있는 것이므로 죽음은 단지 육신과 혼을 분리시키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육신의 죽음 이후에도 혼은 저승으로 여행을 떠나 심판자에 의해 죗값을 치르거나 응분의 보답을 받아 각자 적절한 곳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이 육체와 혼을 함께 소멸시키는지, 아니면 혼만 홀로 남아 새로운 모험의 길을 떠나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이는 과학적 검증의 문제를 넘어 신학적 믿음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혼이 불멸한다면 결국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로 귀착된다. “만약 죽음이 모든 것으로부터의 도피라면 죽음은 악인들에게는 횡재겠지. 그들은 죽음으로써 혼과 함께 몸과 자신들의 악행에서도 해방될 테니까. 그러나 혼이 죽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 지금, 혼이 악행에서 도피하거나 구원받을 길은 달리 아무것도 없네. 최대한 선량해지고 지혜로워지는 것 말고는.” 소크라테스가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미덕과 지혜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응답이다. “만약 혼이 죽지 않는다면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이 시간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을 위해 혼을 보살펴야 하며, 만약 누가 혼을 소홀히 하면 무서운 위험에 빠지게 되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네.” 소크라테스는 죽음 앞에 담담했다. 혼의 불멸을 믿은 그는 죽음은 삶의 종결이 아니라 지혜로 갈고닦은 맑은 영혼의 ‘고상한 모험’의 출발이라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kipeceo@gmail.com
  • [고전으로 여는 아침] 행복한 삶의 조건

    인간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바란다. 그런데 무엇이 행복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이 저마다 다르니 사람마다 느끼는 행복감의 수준도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재산, 권력, 명예, 사랑, 건강 등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은 많다. 동서고금의 숱한 현인들은 행복한 삶의 물음에 끊임없이 몰두했다. 로마의 철학자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BC 106~43)도 ‘투스쿨룸 대화’에서 행복의 요건에 대한 담론을 펼쳤다. 풍족한 재산으로 쾌락과 안락한 생활을 즐기며, 유형무형의 권위로 남을 굴복시키는 힘을 누리고, 승리의 명예와 드높은 명성을 떨치는 것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키케로는 이러한 모든 일을 거의 무가치한 일로 치부하고 자연의 본성만을 탐구하며 사물을 관조하고 인식하는 일을 앞세우는 이들, 이른바 지혜를 탐구하는 철학자들의 삶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운명의 힘을 누구에게나 닥칠 법한 인간 만사를 참아 낼 수 있는 것으로 여겨, 이로부터 아무런 두려움도 고민도 얻지 않으며, 어떤 것도 탐하지 않으며, 영혼의 헛된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이 사람이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키케로는 영혼의 모든 격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언제나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덕을 성취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국 철학하는 삶이 좋은 삶을 만든다는 의미다. 행복을 추구하는 데 덕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속세의 온갖 달콤한 욕망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는 덕을 갖추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물며 철학이 부재한 오늘날에 있어서랴. 그럼에도 우리는 소크라테스(BC 470~399)의 말에서 보다 쉽게 현실적인 행복한 삶의 조건을 찾을 수 있다. 키케로가 플라톤(BC 427~347)의 대화편 ‘메넥세노스’에서 한 소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한 대목을 주목하자. “행복한 삶을 가져다주는 적합한 모든 것들이 자기 자신 안에 있고 다른 사람들의 행운과 불행에 기대지 않으며 타인의 사건들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가장 행복하게 사는 이치가 마련된 것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절제하는 사람이고 용감한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는 모든 희망을 늘 자신 안에서 찾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성공한 자들에게 으레 던져지기 쉬운 시샘과 질투를 경계하고 자족(自足)의 인생관을 강조했다. 키케로가 강조한 소크라테스적 행복관의 요체는 자족과 절제다. 행불행은 남이 아니라 자신에게 달렸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오는 ‘행유부득(行有不得) 반구저기(反求諸己)’와도 상통한다. 행복의 비결이 여기에 있지 않은가.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kipeceo@gmail.com
  • [고전으로 여는 아침] 소크라테스와 국법

    필멸의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늘 더 오래 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죽느냐가 그 사람의 삶의 가치를 좌우한다. 플라톤(BC 427~347)의 대화편 ‘크리톤’에 나오는 이야기다. 소크라테스(BC 470~399)도 시험대에 올랐다. 그는 신을 믿지 않고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기소돼 시민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시민들을 지혜로운 삶으로 이끌기 위해 분투하던 그에게 얼토당토않은 죄목이었지만 시민들의 심판 결과는 어긋났다. 소크라테스의 친구와 제자들은 독약을 마시고 죽어야 될 소크라테스의 운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들은 부당한 재판 결과에 따라 소크라테스를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사형 집행을 기다리며 투옥돼 있는 동안 죽마고우 크리톤은 감옥에 면회를 가서 간수에게 뇌물을 써서 그를 탈옥시키겠다고 말한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이대로 죽는다면 아직 장성하지 않은 자식들을 배신하는 무책임한 행위이고, 친구들에게도 해악이니 탈옥 계획을 세우자고 채근했다. 특히 소크라테스가 불합리한 일로 죽게 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친구들이 비겁하게 처신한 탓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불의한 행위에 의해 탈이 나고 정의로운 행위에 의해 덕을 보는 혼이 망가졌다면 우리의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을까?” 의문하며,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잘 사는 것은 아름답고 올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갈파한다. 소크라테스는 대중에게 자신이 해를 입었다고 해서 그 앙갚음으로 해코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며, 탈옥 행위는 국법과 국가 공동체를 파괴하는 불의한 짓이라고 규정한다. 특히 자신은 낳아 주고 교육받고 살 수 있게 해 준 국법과 조국에 앙갚음할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불경한 짓이라며, 조국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훨씬 더 불경한 짓이라네.” 소크라테스는 탈옥은 국법을 준수하기로 합의해 놓고 이를 어기고 도주하려는 기도이므로 이는 불공정한 기만행위라고 규정한다. 결국 크리톤은 소크라테스를 설득하지 못했고, 얼마 후 소크라테스는 독약을 기꺼이 마시고 죽었다. 그는 국법의 판결에 불복하고 더 오래 사는 길을 택할 수 있었지만, 국법에 따른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것이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선동과 괴담에 휘둘려 국법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들이 서슴없이 빚어지는 요즘 세태에 깊이 생각해 볼 대목이다.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kipeceo@gmail.com
  • [고전으로 여는 아침] 정치가는 처자식을 공유하라?

    한 국회의원의 가족 채용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자신의 동생, 딸, 오빠를 비서관 등 국가의 세금이 투입되는 직책에 맘대로 채용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고유의 인사권 행사인지 염치를 모르는 특권의 연장인지 모르겠다. 가족 사랑이 넘치다 보니 빚어진 일로 보기엔 납득하기 어렵다. 제 가족 챙기기에 급급한 이 선량(選良)에게 국민을 위한 입법과 국고의 문지기를 맡길 수 있을까?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정치가들의 사심(私心)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고민한 이가 있었다. 플라톤(BC 427~347)이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통치자들이 대중과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공유(koinonia)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는 통치자들이 가족과 사사로운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을 형제나 누이, 어버이나 아들딸로 여겨 공경하고 순종하며 아낌없이 돌볼 수 있기를 바랐다. 플라톤은 ‘내 것’에 대한 사유(私有·idiosis)의 끝없는 욕망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보았다. 숙고 끝에 그는 통치자들의 처자식을 공유하게 하자고 주장했다. 그의 저작 ‘국가’에 나오는 이야기다. 현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지만 당시 플라톤의 생각은 진지했다. “아내도 자식들도 따로 갖고, 사사로운 것들에 대한 사사로운 즐거움과 고통도 나라에 생기게 함으로써 분열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말일세. 오히려 이들이 자신의 것에 대한 한 가지 신념으로 동일한 것을 목표로 삼고서, 고통, 즐거움과 관련하여 모두가 최대한으로 ‘공감상태’(homopatheia)에 있도록 만들지 않겠는가?” 그는 처자식의 공유를 통해 ‘남의 것’을 ‘나의 것’처럼 사랑하게 만들고, 나아가 통치자는 친족의 이익 추구보다, 국가 전체의 행복을 증진하려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동일한 일들이 생기거나 없어질 때, 모든 시민이 최대한으로 비슷하게 기뻐하거나 괴로워할 경우의 이 즐거움과 고통의 공유가 나라를 단결시키지 않겠는가?” 턱없이 순진한 믿음인가. 처자식의 공유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어긋난다. 훗날 아리스토텔레스도 스승의 이런 제언을 비판했다. 플라톤 역시 그런 일이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단지 그는 ‘아름다운 나라’의 ‘파라데이그마(paradeigma·本)’를 세워 보고자 한 것이다. 그의 주장은 제 가족 챙기기와 사욕에 사로잡힌 통치자들에 대한 역설적 비판인 셈. 가족 채용의 비리도 사욕의 결과가 아닌가. 기실 처자식을 공유하라는 플라톤의 주장은 정치가들이 진정한 무사(無私)를 실천하라는 준엄한 질책이었다. 모든 이들을 ‘가족처럼’ 사랑하라는.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kipeceo@gmail.com
  • [데스크 시각]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으로 버거운 조선의 ‘빅데이터’/안동환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으로 버거운 조선의 ‘빅데이터’/안동환 문화부 차장

    작가 한강이 출간한 지 9년이나 된 작품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첫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번역의 힘’이 컸다. 지난해까지 작가에게만 상을 주던 맨부커 수상위원회가 올해부터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에게도 공동으로 상을 준 것은 번역을 ‘또 다른 창작’으로 인정하기 때문일 게다. 작가와 번역자는 ‘문명의 장벽을 허무는 동반자’다. 어느 시대고 한 문명의 발전은 저절로 오지 않았다. 8세기에서 12세기까지 세계 최고의 문명을 자랑했던 이슬람은 830년 바그다드에 세운 번역원 ‘바이트 알히크마’(지혜의 전당)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어 서적을 아랍어로 번역한 게 출발점이었다. 이들의 정확하고 빠른 번역 덕분에 당시 카이로 중앙도서관은 100만권이 넘는 책을 소장할 수 있었다. ‘유럽의 과학 르네상스’로 불리는 12세기 문명의 발흥도 그리스어에서 아랍어로 옮겨진 고전들을 다시 라틴어로 재번역한 덕분이다. 서양 고전 번역보다 유독 홀대받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게 우리 고전(古典)의 우리말 번역이다. 조선시대 임금의 비서실인 승정원이 288년간(인조 원년~순종 4년) 국왕의 일상을 마치 다큐멘터리 찍듯 정밀하게 기록한 ‘승정원일기’(2억 2600만자)는 1994년 시작된 후 22년이 지나도록 번역률이 19.1%에 그치고 있다. 직역과 오역으로 2011년 재번역에 착수한 ‘조선왕조실록’(4800만자)이 10.6%, 임금이 쓴 국정일기인 ‘일성록’(4800만자)이 겨우 절반 가까운 40%에 도달했다. 셋 다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받은 ‘빅데이터’인데도 이 정도다. 디지털 작업을 하면 뭐하는가. 정작 제 나라 국민은 읽을 수도 없는 ‘까막눈 기록’들인데….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승정원일기는 완역까지 앞으로 45년, 일성록은 2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구한말 망국 이후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전후 복구로 먹고살기도 힘들었다고 해도 1945년 나라를 되찾은 후 70년이 흘러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우리말로 옮기지 못한 고전이 무더기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우리 기록문화유산의 수준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정부가 지원하는 한 해 번역 예산은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에 불과하다. 올해 승정원일기 번역 예산이 12억 9000만원, 조선왕조실록 재번역 예산은 6억 6800만원, 일성록 4억 5000만원이다. 이 돈으로 번역자들에게 장당 1만 6000원의 원고료를 준다. 번역자 1명당 1년간 평균 1800장을 번역하니 연봉으로 치면 2880만원. 처우조차 나빠 고전 번역을 꿈꾸던 이들 10명 중 2명은 중도 포기한다. 번역 인재 양성 시스템도 비효율적인 ‘이중고’를 안긴다. 한학의 맥이 끊긴 국내에서 고전 역자 1명을 키우는 데 드는 세월은 현 시스템으로는 ‘10년’.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한 후 고전번역교육원에서 5~7년(연수과정 3년, 전문과정 1·2 각 2년)간 별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 번역 과정을 마쳐도 학위를 주지 않아 일반대학원에 진학해 학위를 다시 따야 한다. 국내 고전 학술 번역자로 진입하는 연령이 ‘평균 40세’인 이유다. 오래전부터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을 대학원대학교로 바꾸자고 거론됐지만 예산 타령을 넘지 못하고 수수방관돼 왔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우리 고전을 정확하고 속도감 있게 모국어로 옮기는 획기적인 방안이 필요할 때다. ipsofacto@seoul.co.kr
  • [고전으로 여는 아침] 훌륭한 정치가와 훌륭한 국민의 조건

    민주주의를 창안한 아테네인들은 기원전 5세기에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양분되어 벌인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은 그리스인들의 건강한 시민정신을 급격하게 타락시켰다. 그 와중에도 아테네에는 여전히 민회에서 활약하고픈 정치가가 양산되고 있었고 대중들은 그들의 선동에 자주 흔들렸다. 이즈음 플라톤(기원전 428?~347?)이 쓴 ‘알키비아데스Ⅰ’에 주목할 만한 일화가 있다. 알키비아데스(기원전 450?~404)도 정치와 군대의 지도자가 되려고 안달했고 그 야망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그는 아테네에서 최고의 꽃미남으로 손꼽혔다. 뭇 여성들의 잠을 설치게 했을 정도였다. 또 올림피아 마차 경주에서 우승하는 등 체력과 기량도 탁월했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는 정치에 나선 혈기방장한 알키비아데스가 걱정스러웠다. 그는 알키비아데스가 정의로운 것들과 정의롭지 못한 것들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물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테네 사람들이 뭐가 더 정의롭고 뭐가 더 정의롭지 못한지에 대해서 숙고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행위를 할 때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이로운가를 살필 따름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로운 게 좋은 것인가 반문했다. 알키비아데스는 자신 있게 응답하지 못했다.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가 나쁜 것과 좋은 것들, 이로운 것들과 이롭지 않은 것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를 질책했다. 특히 행동의 잘못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무지 탓”에 생긴다는 점을 일깨웠다. “자네는 교육도 받기 전에 정치에 달려든 셈이지. 그런데 자네만 이런 꼴인 게 아니라, 나랏일을 행하는 이들 가운데 대다수 역시 그런 꼴이라네.” 소크라테스는 정치가가 나라를 다스릴 충분한 지혜를 갖출 것을 요구했다. “나라가 행복해지고자 한다면, 훌륭함 없이는 성벽도 군선도 조선소도, 이런 것들의 많음과 큼도 소용없네. 자네가 나랏일을 정의롭고 아름답게 행하려면, 시민들에게 훌륭함을 나눠 주어야 하네.” 소크라테스는 정치가가 스스로 지혜를 쌓고 민중이 훌륭한 덕성을 발휘하도록 이끌 것을 희망했다. “자네가 자신과 나라에 갖추어야 할 것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와 권력이 아니라 정의와 절제일세.” 20대 국회가 시작되었다. 숙고하는 지혜를 갖춘 이들이길 바란다. 어디 선량(選良)들뿐이랴. 지혜와 정의, 절제야말로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온 국민이 함께 갖추어야 할 덕목인 것을.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kipeceo@gmail.com
  • [고전으로 여는 아침] 용기란 무엇인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이 끝난 후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주축으로 양분돼 내전을 벌였다. 27년간 계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이었다. 동맹의 반대 진영 국가를 상대로 한 전투가 잦았던 당시 청년들은 중장보병 또는 기병으로 전투에 자주 참전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 시민에게 최고의 화두는 조국의 승리와 자신의 생존이었다. 혼돈의 시대에 조국의 안위와 가문의 영광을 위해 청년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용기였다.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전투술과 불굴의 의지가 요구됐다. 부모들은 용맹한 청년을 어떻게 길러 내야 할지 고민했다. 두 부모가 두 장군에게 자녀 교육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자리에 소크라테스가 참여해 나눈 이야기가 플라톤(기원전 428?~347?)의 대화편 ‘라케스’에 담겼다. 장군 니키아스는 자유인이라면 중무장술과 전투술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전쟁에서든 모든 상황에서든 두려워할 것들과 대담하게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앎”이 용기라고 말한다. 반면에 장군 라케스는 “대오를 지키면서 적들을 막아 내고자 도망치지 않는다면 그는 용감한 사람”이라며, 굳이 특별한 전투 기술을 따로 배울 필요는 없다고 반박한다. 소크라테스는 대립되는 두 장군의 의견 모두 일면의 타당성만 갖고 있다고 보고 중재에 나섰다. 그는 쾌락, 고통, 욕구, 무서움 속에서 어떤 이는 용기를, 어떤 이는 비겁함을 갖게 된다면서 현명한 인내가 진정한 용기일 수 있다고 말한다. 어리석은 만용과 인내심은 수치스럽고 해로운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도 용기를 한마디로 정의 내리지 않고 있다. 그는 “두려움을 주는 것들이 두려워할 것들이고, 두려움을 주지 않는 것들은 대담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이를 명확하게 분별하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것을 용기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워할 것들과 그러지 않을 것들에 조심스럽게 대처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시대마다 용기의 초점이 다를 수는 있다. 용기란 무엇을 대상으로 하든 두려움을 이겨 내야 할 상황을 간파하고, “영혼의 인내”를 바탕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에 맞서 두려움을 이겨 내며 고통을 감내하는 실천적 행동이 아닐까. 취업난에 분투하는 청년들, 경제난의 곤경에 처한 기업가들, 비전과 역량을 갖춘 리더 부족으로 혼돈을 겪는 정치가들 모두 각자 이 시대에 필요한 용기가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 할 때다.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kipeceo@gmail.com
  • [고전으로 여는 아침] 영혼의 사랑과 도착된 사랑

    에로스는 삶의 기쁨이자 그리스 문화의 원동력이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미의 추구와 함께 성적 매력, 그리고 다양한 욕망의 분출은 그리스 특유의 에로스 문화를 만들어 냈다. 그리스 신화와 전설은 신들 사이, 신과 인간 사이의 다양한 사랑 이야기로 점철돼 있다. 플라톤(BC 427~347)의 작품 ‘향연’(symposion)은 에로스에 대한 아테네 최고 지식인들의 대담집이다. 사랑은 잃어버린 자기의 반쪽을 동경하게 되면서 생겨나는 애틋한 감성이라는 아리스토파네스(BC 445?~385)의 이야기도 여기에 실렸다. 에로스에 대한 최고의 담론은 소크라테스(BC 470~399)에게서 나왔다. 그는 에로스를 결여돼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한다. 무언가 결핍을 채우려는 것이 사랑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육체적 욕망의 탐닉보다 자기에게 결여돼 있는 것들을 인식하고 지혜를 사랑할 것을 권고한다. 정신적으로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사랑을 요구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세계를 풍미했던 소년애(paiderastia) 관습의 건강한 양태도 모범적으로 보여 준다. ‘향연’의 말미에서 알키비아데스(BC 450~404)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최고의 꽃미남인 자신의 육체적 구애를 단호히 뿌리쳤음을 폭로했다.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운 육체로 유혹하는 그를 꾸짖었다. “자네가 나와 흥정을 해서 아름다움을 아름다움과 바꾸려 한다면 자네가 나보다 더 큰 이득을 보겠다는 심산일세. 자네는 가짜 아름다움을 주고 진짜 아름다움을 얻고자 하는데, 이는 ‘청동을 황금과 맞바꾸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를 육체적 사랑이 아닌 영혼의 사랑으로 이끌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스 소년애는 소년을 강인하고 탁월한 전사로 성장시키기 위한 공동체의 선임과 후임 사이의 교육적 결합의 성격이 더 컸다. 이를테면 멘토와 멘티의 관계였다. 성인 남성 간의 육체적 탐닉이 중심이 되는 현대의 동성애와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그리스인들은 소크라테스가 지향했듯 청소년들을 육체적 사랑으로 이끄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고, 이들을 아름다운 영혼으로 가꾸기 위해 진력했다. 나아가 이를 사회적 책무로까지 인식했다. 오늘날 청소년들을 돈으로 타락시키는 정책들이 남발되고, 청소년을 도착된 사랑으로 이끄는 현실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kipeceo@gmail.com
  • [새 책]사그라들지 않는 인문학 열풍…카툰으로 만나는 인문학 입문서 출간

    [새 책]사그라들지 않는 인문학 열풍…카툰으로 만나는 인문학 입문서 출간

    인문학 열풍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인문학을 만화로 풀어낸 책 ‘카툰 인문학(지은이 전왕, 출판사 북랩)’이 출간됐다. 저자인 전왕 변호사(사시 32회)는 문학, 철학, 역사,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인류학 등 인문학 분야의 필독서를 망라해 알기 쉽고 전달하는 인문학 여행의 안내자 역할을 자처했다. 저자는 서두를 통해 ‘인문학적 가치를 소홀히 해 온 결과 우리는 물신주의, 인간 소외, 생명 경시, 환경 파괴 등의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지적하며 인문학적 소양에 바탕을 둔 상상력, 아이디어에 의해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역설한다. ‘카툰 인문학’은 총 4장으로 구성된다. 1장 현대문명 편에서는 속도, 정보화 사회, 위험사회, 웰빙, 진짜와 가짜가 전도되는 세계, 세계화, 인간 소외 등을 통해 현대문명의 다양한 속성을 묘사한다. 2장 욕망 편에서는 ‘쾌락’과 함께 욕망을 만들어 내는 기계장치로서의 자본주의를 논한다. 3장에서는 ‘사랑’의 모든 것을 고찰하며, 4장 정의 편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제레미 벤담, J.S밀, 존 롤스, 찰스 디킨스 등 인류 최고의 사상가들을 소환해 정의에 관한 그들의 사유를 들려준다. 곧 이어 출간될 제2권에서는 문화, 예술, 노년, 죽음 등을 다룰 예정이다. 북랩 관계자는 “인문학은 학문적 깊이가 요구돼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전왕 변호사의 ‘카툰 인문학’의 가장 큰 미덕은 재치 있는 카툰과 명언 등을 활용해 인문학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고전으로 여는 아침] 자녀교육 망친 아버지의 무관심

    작은 나라의 왕이었던 키루스 2세(BC 585?~529)가 주변의 큰 나라를 모두 정복하고 페르시아제국을 창건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 만다네의 훌륭한 교육이 주효했다. 키루스는 배우려는 의지가 높았고 야심 찼으며 칭송을 받기 위해 노고와 위험을 감수했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절제와 정의, 배려를 배웠다. 그런데 키루스가 피땀 흘려 세운 대제국은 2대를 유지하지 못했다. 플라톤(BC 427~347)은 일생의 마지막 역작 ‘법률’(nomoi)에서 키루스의 자녀교육 실패를 그 원인으로 들었다. 키루스가 “다른 것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훌륭한 지휘관이며 애국자였지만, 바른 교육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며, 가정 경영(oikonomia)에는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일생을 전쟁터를 누비느라 자녀 교육을 여인들에게 맡겼던 터였다. 키루스의 자식들은 키루스의 어머니가 했던 엄격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대신 그 무엇도 부족할 게 없는 자로 키워졌다. 여인들이 “그 누구도 아이들이 하는 어떤 일에서건 반대를 하지 못하게 막으며, 아이들이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은 모두가 칭찬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아이들은 사치와 방종이 충만한 인간으로 길러졌다. 잘못된 교육의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키루스가 죽은 뒤에 페르시아제국을 물려받은 두 자식 가운데 대왕에 오른 장자 캄비세스는 아우를 죽여 버린다. 또 이집트를 무자비하게 정복한 뒤 과음과 무절제로 인해 미쳐 버린다. 결국 캄비세스는 본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이집트에서 귀국하는 도중에 환관에게 살해당한다. 그로써 거대한 페르시아제국의 창업자 키루스 가문의 대가 끊겼다. 이후 환관의 반역은 다레이오스를 포함한 일곱 귀족들에 의해 평정되고 페르시아 대왕의 자리는 키루스 가문과 무관한 다레이오스에게 넘어갔다. 키루스의 자식들은 여인들과 환관들에 둘러싸여 ‘꾸지람이라고는 듣지 않는 양육을 받고서 자란’ 탓에 대제국을 이끌 페르시아적인 아버지의 방책을 교육받지 못했다. 아버지 키루스가 무관심한 사이에 행복 때문에 타락해 버린 교육이 자식 농사를 망치게 했던 것이다. 자신은 크게 성취했지만 자식만은 제대로 키우지 못한 사례를 역사는 숱하게 보여 준다. 부모는 자신의 삶을 가꾸는 것 못지않게 자식들이 모진 세파를 이겨 내고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갈 덕성과 지혜를 갖추도록 할 교육에 마음을 써야 한다. 빈곤해도 기죽지 않고, 힘겹고 위험한 일을 기꺼이 감당하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가정교육은 부모 공동의 몫이다.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kipeceo@gmail.com
  • [고전으로 여는 아침] 민주주의의 진정한 위기

    누가 국가의 최고 권력을 가져야 할까?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정치학’에서 이 문제를 숙고했다. 국가 공동체를 마치 주인이 노예를 지배하듯 통치하는 1인 지배 정체(monarchia)는 참주정체다. 반면 다수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통치한다면 이는 혼합정체다. 혼합정체에서는 전사들이 최고의 권력을 가지며, 중무장할 재력이 있는 자들이 시민권을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왕정이 왜곡된 것이 참주정체, 귀족정체가 왜곡된 것이 과두정체, 혼합정체가 왜곡된 것이 민주정체라고 말한다. 대중이 지배하는 민주정체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eleutheria)를 누린다. 그는 “최고 권력은 원칙적으로 소수자가 아닌 민중 전체가 갖는 것이 더 좋다”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아테네 민주정체는 최선의 정체였나?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와의 연이은 전쟁에서 승리한 아테네는 50여년간 번영의 황금기를 누리며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제국주의로 흐른 아테네의 오만은 민주주의의 역기능을 노출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크세노폰 등 진정한 지혜를 추구하던 철학자들은 하나같이 방종으로 흐른 아테네의 민주정체를 비판했다. 법정과 민회라는 제도를 통해 자유민들은 최고 권력을 행사하면서 그릇된 판단들을 남발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정체를 가장 운용하기 힘든 정체로 본 통찰은 옳았다. 그는 최고 권력을 갖는 것은 배심 법정, 평의회, 민회의 개별 구성원이 아니라 법정과 평의회와 민회 전체라고 보았다. 그러니 대중 전체가 최고 권력을 갖는 것은 정당하다. 그런데 문제는 최고 권력을 가진 대중의 자의적 행위와 불의(不義)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열등하고 변덕스러운 사람들이 아니라 법(nomos)에게 국가의 최고 권력을 부여하는 대안을 생각했다. “올바르게 제정된 법이 최고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민중의 결의에 따라 결정되는 이런 체제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체가 아님이 명백하다. 민중의 결의에는 보편타당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정체가 올바르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전제되어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의 지배의 원리는 헌법 가치의 준수로부터 연원되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창달의 헌법 가치를 구현하려는 법안들이 선동적 입법자들에 의해 제지되거나 그릇된 입법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현실이 민주주의의 진정한 위기이다.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kipeceo@gmail.com
  • “스마트폰에 통제당하지 않나요… AI가 우리를 섬기게 해야 합니다”

    “스마트폰에 통제당하지 않나요… AI가 우리를 섬기게 해야 합니다”

    인간 감정, AI보다 앞서지 않아 기술 지배하는 소수가 권력 독점 “인류가 개발한 최고의 기술은 항생제와 백신입니다. 이게 없다면 저 역시 어렸을 때 죽었을 확률이 높으니까요. 하지만 인류가 개발하고 인류에게 최대 위협이 될 기술은 무엇보다 인공지능(AI)이 될 것입니다. 인류 스스로 문명의 조종간을 AI에게 뺏기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호모사피엔스가 어떻게 다른 인류 종을 멸망시키고 지구를 지배하게 됐는지를 인류의 기원과 진화 관점에서 정교하게 풀어낸 화제작 ‘사피엔스’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저자 반열에 오른 유발 하라리(40)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교수가 첫 한국 방문에서 풀어낸 섬뜩한 경고다. 하라리 교수는 26일 서울 중구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술이 인간을 섬겨야지, 인간이 기술을 섬겨서는 안 된다”며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질문을 하는 주체는 인간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이렇게 당부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AI보다 결코 우위에 있지 않게 될 것이라는 묵시론적인 미래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스마트폰을 예로 들었다. “당신은 스마트폰이랑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스마트폰이 당신을 섬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당신이 스마트폰에 종속되어 시간을 통제당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 보라.” 그는 2050년을 인류가 맞닥트릴 중대한 분기점으로 내다봤다. 하라리 교수의 얘기는 이렇다. “인류는 AI를 통해 천국을 건설할 수도 있고 지옥을 만들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그 혜택은 무한할 것이지만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인류 멸종이라는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하라리 교수는 감정을 가진 인간이 결코 AI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왜 그럴까. 그는 “인간의 감정은 영적인 신비가 아니라 어떤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두뇌 속에서 이뤄지는 생화학적인 알고리즘에 불과하다”며 “인간의 감정지능이 인공지능보다 더 우월하다고 확신할 근거가 없으며 실제로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로도 인간의 얼굴 표정이나 목소리를 읽고 분석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말했다. AI와 생명공학은 현재의 전 지구적 양극화와 불평등 현상을 더 증폭시킬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기술을 지배하는 소수의 엘리트가 세상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게 더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불평등한 미래, 지구온난화, 교육, 경제 성장 문제는 인류가 지금과 같은 200여개의 독립국가로 뿔뿔이 흩어진 상황에서는 대응도 어렵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하다는 게 하라리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대안으로 전 지구적인 문제를 다룰 통일된 정치체제를 구축할 것을 제시했다. 하라리 교수는 다음달 1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서울시 독서토론 모임, 경희대와 플라톤아카데미에서 강연할 예정이다. 하라리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중세 전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11년 출간한 ‘사피엔스’로 세계적인 학자가 됐다. ‘사피엔스’는 지난해 11월 국내에서 출간된 후 23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14만 3000부(전자책 포함)가 판매됐다. 구매자의 70%가 40~50대 남성 독자들인 것으로 나타나 출판계의 주목을 받았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호부견자(虎父犬子)…아우렐리우스의 못난 아들 콤모두스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호부견자(虎父犬子)…아우렐리우스의 못난 아들 콤모두스

    ​ '명상록'의 저자 철인 황제 ​수많은 로마 황제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는 아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일 것이다. 그가 남긴 '명상록' 덕분이다. 2000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은 아직도 서점에서 꾸준히 나가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황제 이전에 한 철학자로서 삶과 세상을 관조하는 사색으로 일관한 '명상록'은 역설적이게도 피와 살이 튀는 전쟁터에서 쓴 것이다. ​금욕과 절제를 주장하며 수많은 명언이 담겨 있는 그의 '명상록' 12편은 철학자로서의 그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으며, 로마 스토아 철학의 대표적인 책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고귀한 영혼의 진지한 외침'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명상록의 한 구절을 놓는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자주 품는 생각으로 물들게 마련이다." 40살에 황제에 오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20년 동안 전쟁터를 누비다가 삶을 마감했는데, 틈틈이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은 것이 '명상록'이 되었다. 평화로운 세상에 태어났더라면 더 많은 저작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플라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철인 황제의 전범 같은 사람이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시대와 계급을 잘못 타고난 철학자였다. ​그의 치세 20년 동안 제국의 각 변방에는 끊임없이 병화가 치솟아올랐다. 즉위 초년에 아시아 대륙의 파르티아 제국이 로마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으며, 이어서 게르마니아, 히스파니아, 북부 아프리카 등에서도 전쟁과 반란의 횃불이 차례대로 타올랐다. 이리하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재위 20년은 전진 속에서 지고 샜다. ​그는 자신의 죽음도 군막 안에서 맞았다. 180년 3월 초, 도나우 강변의 군사기지였던 빈도보나(현재의 빈)에서 곧 재개될 2차 게르마니아 전쟁을 준비하던 중 지병이 악화되며 삶을 마감했다. 그는 평생 병을 달고 산 병골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는 유언을 끝낸 후 약과 곡기를 ​일절 끊었다.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 회생의 가망이 없는데도 목숨을 연장하는 것은 수치라고 로마인들은 생각했다. 곡기를 끊은 지 나흘 만인 3월 17일 철인 황제는 영원히 눈을 감았다. 향년 59세. 생일을 한 달 앞둔 시점이라고 한다. 황제가 된 후 19년을 오로지 전장에서 보냈던 그는 기질과는 참으로 다른 삶을 산, 어찌 보면 불행한 사내였다. 5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그의 죽음을 끝으로 로마 제국의 전성기는 끝났으며, 어지러운 군인황제 시대가 찾아왔다. 군이 권력을 잡는 시대는 난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 5현제 시대와 군인 황제 시대에 징검다리를 놓은 인물이 바로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콤모두스였다. 그런데 철학자의 아들이 그렇게 천하의 망나니인 줄은 세상 사람들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콤모두스가 즉위 초부터 망나니짓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크고 작은 실정을 되풀이하는 정도의 암군(暗君)이었는데, 몇 년 뒤 황제의 암살 미수사건이 터졌다. 놀랍게도 주모자는 의타심 많았던 콤모두스가 가장 의지하고 따르던 큰누나 루킬라였다. 사건 연루자들은 모두 재판도 없이 처형되었고, 루킬라는 카프리 섬으로 귀양갔다가 도착 직후 살해되었다. ​이 사건이 콤모두스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놓아 잔인하고 의심 많은 사람으로 돌변케 했다. 조금만 의심이 가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모두 죽였다. 유능한 장군과 정치인들이 어이없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자연 민심은 차갑게 식어갔고, 원로원과의 관계도 악화될 대로 악화되었다. 여기서 마침내 한 사건이 터졌다. 사건이라기보다 이벤트라고 해야 하나? ​콤모두스는 병약했던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는 달리 체격이 건장했고, 무술도 뛰어났다. 프로 검투사와 맞설 정도였다. 그래서 약골이었던 아버지를 경멸하면서, 자기 친아버지는 유피테르 신이며, 자신은 그 아들 헤라클레스의 환생인 '로마의 헤라클레스'라고 떠벌이기까지 했다. ​'타조 머리를 함부로 베지 마라' 그는 자신의 용맹, 호방함을 과시하기 위해 검투 시합에 열중했다. 문제의 이벤트는 콤모두스가 31살 때인 192년 콜로세움에서 있었다. ​ 이날도 콤모두스는 자신의 무술을 뽐내기 위해 원로원 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조와 대결하는 시합에 나섰다. 엄청난 덩치의 타조가 콤모두스를 향해 돌진해왔고, 콤모두스의 칼이 한순간 허공을 가르는가 싶더니 타조의 목이 허공에 떠올랐다. 콤모두스는 득의 만면한 표정으로 원로원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며 씨익 웃었다. 마치 까불면 너희들도 이 타조 꼴이 될 줄 알라는 듯이. ​어찌 보면 섬뜩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 이런 사건이 고대 중국에서 일어났다면 분명 다음과 같은 사자성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막참타수(莫斬駝首; 타조 머리를 함부로 베지 마라. 자신의 목이 떨어진다). 콤모두스의 암살은 그로부터 몇 달 뒤인 192년 12월 31일에 결행되었다. 여기에도 또 미스터리가 도사리고 있다. 암살 동기가 전혀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암살을 모의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은 모두 황제의 최측근으로, 애첩인 마르키아와 침실 담당 노예, 황제의 레슬링 코치였다. 자객은 레슬링 코치인 나르키소스였다. 욕실에서 목욕하고 있는 황제를 목졸라 죽인 것이다. 세 사람 모두 황제 콤모두스 옆만 지키면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위치에 있는 인물들인데 대체 왜 황제를 죽였을까? 원로원이 연루되었다는 증거도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포악한 황제가 언제든 자신들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먼저 선수를 친 것인지도 모르고, 우국지정에서 한 거사였는지도 알 수 없다. 암살 후 이들이 보인 행동을 살펴보면 약간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들은 콤모두스가 숨진 것을 확인한 후 지체없이 근위대장을 불러 사태를 설명했다. 근위대장은 역시 그날 밤으로 원로원 실력자들과 협의를 끝내고 후임 황제도 결정했다. 그리고 콤모두스의 주검은 시트에 싸여 황궁 밖으로 조용히 옮겨져 화장도 하지 않은 채 묻혔다. 마치 어떤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는 듯했다. 게다가 암살 모의자 세 사람은 그날 밤 이후로 자취를 감추었다. 어디에도 그들이 처벌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근위대장에게 비밀리에 살해되었는지, 아니면 근위대장의 통행증을 얻어 세 사람의 고향인 그리스로 돌아가 여생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역사에서 완벽히 사라진 것만은 분명하다. ​콤모두스는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의 손에 자신이 죽임을 당할지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을 때는 주위 사람들과 로마인들이 모두 슬퍼했지만, 콤모두스가 죽었을 때는 눈물 흘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호부견자(虎夫犬子·호랑이 아비에 개의 새끼)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콤모두스. 어떻게 보면 철학의 빈곤이 그의 비참한 최후를 예약했다고 할 수도 있다.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자식 농사에는 실패한 셈이다. 원로원은 끔찍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듯이 재빨리 전 황제 콤모두스를 기록말살형에 처하기로 결정했다. 콤모두스가 암살됨에 따라 군대가 실권을 잡아, 로마 제국은 군인에 의해 황제가 옹립되는 '군인황제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콤모두스가 살아 생전에 경멸했던 아버지의 '명상록'에서 다음 한 구절을 읽고 새기기만 했어도 그런 비참한 최후를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 몫으로 주어진 것들에 적응하고 운명으로 엮여진 사람들을 사랑하라."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찍어야 바뀐다

    찍어야 바뀐다

    정책 실종·분열 정치에 매운 표심을 입법권력 재편·2017대선 밑그림 초박빙 30여곳 자정쯤 당락 결정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의 날이 밝았다. 앞으로 4년간의 입법권력은 물론, 2017년 대통령선거의 밑그림도 4·13 총선에서 드러난다.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로 치러진 총선국면에서 여권의 공천 파동과 야권의 분열·갈등이 맞물리면서 여야 모두 시대정신을 담아낼 담론을 제시하거나 공약·정책 대결에 나서기는커녕 서로에 대한 ‘심판론’만 쏟아냈다. 누군가는 “찍을 만한 차선(次善)의 후보, 정당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금언을 우리는 지난 4년간 뼈저리게 체험했다. ‘탄환보다 강한’ 한 표, 또 한 표가 모여 일상의 변화가 일어나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진다. 이인복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12일 대국민담화에서 “진정 국민에 의한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를 원한다면 내일 한 분도 빠지지 말고 투표에 참여해달라”고 호소했다. 여야 지도부는 공식 선거운동이 끝나는 밤 12시까지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유세에 집중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부산에 내려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KTX를 타기에 앞서 “중간에 굉장히 위기가 왔지만, 진심이 전해져 오늘까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과반 넘을 수 있도록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동대문 신평화시장 마지막 유세에서 “내일은 새누리당의 오만과 폭정을 심판하는 날이며 지난 8년의 경제 실패를 심판하는 날”이라면서 “정치를 무시하면 나쁜 정치인들에게 무시당한다. 후보도 정당도, 기호 2번을 찍어서 심판해달라”고 호소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대국민호소문에서 “20년 만에 거대 기득권 양당 체제를 깨는 3당 정치혁명이 시작됐다. 국민이 두렵다는 사실을 투표로 보여주시기 바란다”며 ‘양당 심판론’을 거듭 제기했다. 최대 관심사는 새누리당의 과반 확보 및 더민주의 100석 붕괴, 선거를 통한 ‘3당체제’의 구축 여부다. 여론조사기관과 각 당 판세분석을 종합하면 새누리당의 과반(150석) 및 국민의당의 교섭단체(20석) 구성은 유력하며 더민주의 100석 달성은 불투명하다. 대부분 지역구에서 오후 10시쯤 윤곽이 드러나지만, 수도권 20~25곳 등 전국의 초박빙 선거구 30여곳에서는 밤 12시쯤이나 당락이 결정될 전망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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