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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고, 美 실리콘밸리의 엑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에 입성

    O2O 마켓플레이스인 ‘숨고’는 3일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투자 및 육성기관인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에 국내에서는 4번째로 입성했다고 밝혔다. 숨고에 앞서 뷰티 이커머스 ‘미미박스’, 라이브 채팅 솔루션 ‘샌드버드’, 그리고 가사 도우미 O2O 서비스 ‘미소’가 와이콤비네이터에 입성한 상태다. 와이콤비네이터는 스타트업 투자와 육성을 전문으로 하는 이른바 ‘액셀러레이터’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창업투자사이다. 10년간 500개가 넘는 벤처 스타트업을 육성했다. 숙박 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앤비,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드롭박스 등 글로벌 ‘유니콘’(기업 가치 1조 이상 기업) 기업이 여기서 탄생했고, 200대1의 경쟁율을 넘어야 하는 만큼 전세계의 엘리트들이 모인 집단이다. 숨고는 음악 강사, 이사 용달, 웨딩플래너 등 전문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프리랜서 및 소상공인들과, 전문 서비스를 찾는 소비자들을 연결하는 O2O 오픈마켓이다.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가 숨고에 필요한 서비스 요청을 넣으면, 해당 요청 조건에 맞는 서비스 전문가들이 곧바로 요청서를 받아 소비자들에게 직접 견적서를 보내게 된다. 이 업체 김로빈 대표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여러 전문가의 서비스 내용과 가격을 비교할 수 있고,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도 본인의 상황 및 소비자에게 맞는 서비스와 가격을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람녀서 ”앞으로 모든 소비자들이 실시간으로 견적을 받아 볼 수 있는 서비스마켓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옥션, 지마켓, 11번가 등의 신생 오픈마켓 벤처들은 오프라인 상인들에게 온라인 판매의 활로를 개척해준 바 있다. 숨고같은 스타트업들이 기술과 재능을 가진 전문가들에게 대형 업체들이 독점하고 있는 온라인 고객 유치의 채널을 열어주고, 소비자에게도 편의성을 제공할 지 주목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탈세 세무사에 맡겼다가…프리랜서 200여명 세금폭탄 발 ‘동동’

    탈세 세무사에 맡겼다가…프리랜서 200여명 세금폭탄 발 ‘동동’

    자동차 딜러·보험설계사 등 프리랜서 수천명이 세무사에게 세금 납부를 맡겼다가 수천만~수억원을 추징당할 처지에 몰렸다. 이 세무사가 탈세를 저지르다 세무당국에 적발됐기 때문이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국세청 앞에서 박모씨 등 약 200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세무사 유모씨가 세무회계를 빙자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바람에 프리랜서 수천명이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세무사 유씨에게 세무 업무를 맡긴 프리랜서들이다. 박모씨 등에 따르면 세무사 유씨는 ‘업계 가격보다 싼 수임료로 합법적인 절세를 해주겠다’며 접근했다. 그러나 유씨는 고객들 세금을 낮추려고 공제받을 비용을 무리하게 책정해 신고하거나 고객들이 낸 비용 증명 영수증보다 더 많은 액수를 신고하는 수법으로 탈세를 일삼다가 국세청에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지난해 10월 유씨를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했으며, 그는 현재 검찰에서 구속 수사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국세청은 유씨 고객이었던 수천명에게 ‘2011∼2015년 납부한 종합소득세가 허위로 신고됐으니 5년간 소득에 쓴 비용을 증명할 소명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입증하지 못하는 금액은 40% 달하는 신고불성실가산세와 세금 미납 날짜부터 매일 0.03%로 계산되는 납부 불성실이자를 내야 한다. 박모씨 등은 기자회견에서 “멀게는 6년이나 지난 시기의 자료를 모으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수천명이 생업을 내려놓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중년 여성은 “우리는 남들보다 잠 덜 자고 식사도 제때 못하면서 일한 죄밖에 없는데 탈세가 웬 말이냐”면서 “국세청은 평범하게 살아온 엄마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달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단독] 늘어나는 비정규직 ‘최대 42.5%’…900만명 육박

    [단독] 늘어나는 비정규직 ‘최대 42.5%’…900만명 육박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최대 42.5%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인원 수로는 900만명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앞으로도 통계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사내하청 근로자와 시간제 근로자, 자영업자와 경계선상에 있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돼 사회안전망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3일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고용형태 다양화와 노동시장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를 분석한 취업자 수는 2600만명이다. 정부 공식 통계로는 정규직은 1300만명으로 50.0%, 비정규직은 627만명으로 32.5% 수준이다. 그러나 장 위원은 정규직으로 분류된 사내하청 근로자 93만명과 비임금 근로자로 분류된 특고 177만명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규정할 경우 실제 전체 비정규직 비율은 최대 42.5%, 인원수는 897만명으로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사내하청, 공식 통계에선 정규직 포함 이에 대해 장 위원은 “그간 사용해 온 비정규직 분류체계는 급변하는 노동시장과 다양한 고용형태의 분화를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며 “취약노동자 수는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보다 훨씬 큰 규모”라고 지적했다. 이어 “무엇보다 사내하청이나 단일한 대기업과 거래하는 서비스 외주업체 등을 중소기업 정규직으로 분류할 가능성이 크다”며 “단일한 사용자를 위해 일하는 프리랜서나 앱노동자 등 임금금로자와 비임금근로자의 경계에 있는 고용형태도 제대로 포착하지 못 한다”고 덧붙였다. 더 큰 문제는 비정규직 규모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패널자료 분석에서 2001~2015년 기간 동안 대기업 정규직 비율은 18%에서 13%로 감소했다. 중소기업 정규직도 55%에서 42%로 줄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서 2013년 기준으로 비정규직의 1년 내 정규직 전환율은 11%, 3년내 전환율은 22%에 그쳐 비교 대상 국가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OECD 평균은 1년 내 전환율 32.4%, 3년 내 전환율 54.2%였다. 비정규직의 확대는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실질근로소득 상승률은 대기업 정규직이 76.6%, 대기업 비정규직은 73.4%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중소기업 정규직은 46.2%,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36.3%로 취약근로자의 경우 양극화 현상이 심했다. ‘위험의 외주화’도 심각한 상황이다. 장 위원은 “서울메트로 용역업체 청년 근로자가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중 사망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된다”며 “2011년에서 2015년까지 5년 동안 주요 업종별 30개 기업에서 일어난 산재사망자는 245명이었는데, 그중에서 86.5%에 해당하는 212명의 산재사망자는 사내하청 근로자였다”고 지적했다. ●“고용형태공시제, 비정규직 대책 한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장 위원은 “지난 수년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고용형태공시제로 사회적 압력을 가하는 정도로는 대기업이 비정규직이나 사내하청을 줄이도록 만들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사내하도급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에 대해 이보다 유효한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12%에 이르는 최저임금 미준수율을 높이기 위해 행정력이 동원돼야 하고, 최저임금 수준도 적극적으로 끌어올려야 할 것”이라며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확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안녕허우꽈? 왕 방 갑서!…국립제주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안녕허우꽈? 왕 방 갑서!…국립제주박물관

    “안녕하세요? 와서 보고 가세요!” 이제 제주는 예전 ‘놀멍쉬멍’ 걸어 다니던 90년도 추억의 올레길 풋풋한 섬마을이 아니다. 연간 관광객이 1500만 명을 넘어설 정도의 국제적인 휴양지이자 관광특화지역이다.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선정된 한라산과 수많은 오름들, 세계 7대 자연경관 대표명소인 성산일출봉과 그 주변의 경관, CNN에 선정될 정도의 아름다움을 지닌 섭지코지 등 각종의 대표 관광 명소에는 이미 365일 늘상 사람들의 발길이 차고 넘친다. 바로 이런 제주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방문지가 숨어 있다. 바로 탐라국에서 조선까지 제주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 국립제주박물관이다. 제주공항에서 자동차로 불과 20분, 약 7.5Km 거리에 있는 국립제주박물관은 의외로 관광객들이 뜸하다. 제주에 도착한 날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다시 뭍으로 나가는 날은 공항 라운지에서 아까운 시간 어슬렁대지 말고 시원스레 가까운 박물관 탐방도 좋다. 제주 여행의 뒷맛이 개운해진다. 국립제주박물관은 2001년 6월 5일에 개관하여 한반도와 중국, 일본을 잇는 동북아시아지역 문화교류의 주요 거점으로서 제주의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곳이다. 삼성(三姓) 신화와 함께하는 탐라시대 고유의 토착문화, 고려시대 삼별초의 대몽항쟁, 그리고 제주목의 설치로 인한 조선시대의 제주문화, 그리고 현재까지 이르는 제주 역사의 전개과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산리 발굴 유적, 각종 패총과 분묘, 탐라국 당시 제주 고유 관련 유물, 삼별초 대몽 항쟁 유물, 제주읍성의 모형, 조선 제주목 관련 자료, 현재까지 이르는 제주의 생활 유물 등이 전시되었고, 야외에는 덕판배, 연자매, 돌하르방 등이 내륙과는 다른 제주 문화의 특성을 알려준다. 제주박물관은 중앙홀을 중심으로 선사실, 탐라실, 고려실, 탐라순력실, 조선실, 기증실, 기획전시실 등 다채로운 공간이 있다. 우선 중앙홀에는 중앙홀에는 제주읍성 디오라마와 탐라의 개국신화를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제작되어 있다.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제주의 명산인 한라산탐라 개국신화인 삼성 신화, 삼다도(돌, 바람, 여자)를 표현하였다. 선사실에는 화산섬 제주의 탄생부터 첫 제주인의 정착과정에 대해 살펴보고, 구석기시대부터 탐라국이 탄생하기 전까지의 문화발전상을 볼 수 있다. 특히 청동기시대 삼양동 유적의 복원모형을 통해 선사시대 삶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탐라실에는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완성되고 꽃을 피웠던 탐라시대를 보여주며, 고려실에는 화려한 도자문화의 유입과 융성했던 불교문화, 아시아의 거국에 당당히 맞서 싸웠던 대몽항쟁의 역사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탐라순력도실과 조선실에는 300년 전 제주의 모습을 고스란히 기록해 둔 탐라순력도를 통해 조선시대 제주인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이외에도 기증실과 기획전시실에는 시기마다 다른 제주 문화의 특성을 알려주는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 체험관이 마련되어 있어 어린 자녀와 함께 제주에 방문한 부모님들의 작은 휴식 공간(?)도 제공된다. 국립제주박물관은 2017년 3월 1일부터 기존 유물을 재배치한 상설전시실이 재개관되어 관광객들을 새로이 맞이하고 있다. <국립제주박물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제주를 떠나는 날, 비행기 출발이 한두 시간이 남는다면! 2. 누구와 함께? -가족과 함께 3. 가는 방법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주동로-17 4. 감탄하는 점은? -제주에 산재한 자질구레하면서도(?) 수준 떨어지는 일부 사설 박물관들에 비해 확연히 느껴지는 국립박물관의 정제된 힘!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아직 명성까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충분히 제주의 속내를 드러내는 곳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탐라순력도실과 조선실. 7. 관람 예상 소요시간은? -전시물이 다채롭다. 은근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2~3 시간 소요!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jeju.museum.go.kr/html/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제주민속박물관과 사라봉공원 10. 총평 및 당부사항 -전시실 및 여타 공간은 훌륭함. 어린이 체험관 운영 관리에 좀 더 신경 써 주시길.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오상진·김소영 ‘방송인 커플’ 4월 결혼

    오상진·김소영 ‘방송인 커플’ 4월 결혼

    MBC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오상진(왼쪽·37)이 MBC 김소영(오른쪽·30) 아나운서와 오는 4월 30일 결혼한다. 오상진 측은 21일 이같이 밝히며 “결혼식은 서울의 한 호텔에서 비공개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오상진과 김소영 아나운서는 2015년부터 교제해왔다. 오상진은 2006년 MBC에 입사해 간판 아나운서로 활약했으며, 2013년 퇴사 후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오상진의 대학 후배이기도 한 김 아나운서는 2012년 MBC에 입사한 이후 ‘뉴스투데이’ 등을 진행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큰바위얼굴, 부처님을 만나다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큰바위얼굴, 부처님을 만나다

    “(…)다른 약초상 아저씨가 은진미륵님을 꼭 뵙고 가라고 하여 관촉사엘 들렀다. 네모난 관을 쓰고 뚱뚱한 기둥처럼 썼는 돌미륵을 한번 휘둘러보고는 한적한 절 마당을 지나 다시 돌아섰다.” 황석영 작가의 소설‘개밥바라기별’(2008)에 나오는 은진미륵보살은 네모나고 뚱뚱하다. 분명 여느 불상과는 다름은 분명하다. 단순히 투박하다는 것으로 정의내리기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푸근하며 정겨우면서도 힘있다. 더구나 귀한 아들 훈련소에 맡겨 두고 눈물 듬뿍 흘리는 부모님 등 토닥거려주는 큰일 하시는, 논산의 큰 바위 부처님이다. 황산벌 훤히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관촉사 절집 마당, 입대하면서 맡긴 아들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부모님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 천년 세월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상이다. 참으로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 보자. 현재 ‘은진 미륵’이라고 불리는 논산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은 현재 보물 제 2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입상은 고려 초기 양식의 관제 미륵불로 당시 왕의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고 추정된다. 고려 광종 21년(970)에 조성하기 시작하여 목종 9년(1006)에 완성된 석불로 혜명대사가 완성하였다. 당시 미륵입상의 백호에서 나온 빛이 너무 밝아 중국의 명승 지안대사가 찾아 예불을 올렸다는 연유로 인하여 관촉사(灌燭寺)라는 절집 이름이 붙여졌다. 관촉사는 기존의 신라 불적과는 다르게 정형화된 틀을 전혀 따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석불, 석등, 석탑 등이 일렬 배치가 된 점이라든지, 미륵전에는 아예 불상이 없다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은 기존의 규범화된 가람배치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관촉사는 지극히도 민중적이면서 서민적인 미륵신앙의 발원 형태로 절집 모양새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이 중에서 가장 토속적인 원형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은진 미륵 불상’이다. 고려 초기 불안했던 정국에서 민초들은 미륵불 신앙을 받들었고, 이를 대표하는 불상이 은진 미륵이다. 경주에 남아있는 세련된 간다라 형식의 불상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은진 미륵은 고려 초기 왕이나 호족들의 힘을 드러내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던 일련의 석불, 철불 들과 궤를 같이 한다. 파주 용미리 석불,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안동 제비원 석불 등이 바로 고려 초기 자유로운 양식의 석불형태다. 이 중에서 자연 암반을 깎아 만든 높이 18m의 거대한 은진 미륵 입상은 얼굴이 과도하게 크고, 균형미나 조형미는 떨어지지만 규모면에서 거대할 뿐만 아니라, 토속적이면서 푸근한 느낌을 주기에 힘없는 민초들이 섬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는 관을 쓰고 있으며 사각형 관 모퉁이에는 방울을 달아 놓았다. 또한 찢어진 눈, 납작한 코, 두툼한 입술은 크고 확연하게 묘사되었으며, 목과 턱의 주름은 과도할만큼 사실적이다. 또한 귀는 3m가 넘어 거의 어깨에 닿을 정도이며 천의(天衣)는 간단한 옷주름을 넣었으며, 손 모양은 과도하게 크고 굴절되어 있어 어떤 특징적인 불교 양식을 따랐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인 모양이다. 과히 교과서에 나올만한 자격이 될 만큼의 존재감있는 석불이다. 관촉사에는 이외에도 석등(보물 제232호), 석탑, 배례석(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 석문(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9호), 대광명전(大光明殿), 미륵전, 윤장대, 산신각 등의 문화재가 많아 넉넉히 돌아 볼만한 사찰의 규모를 지니고 있다. <관촉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논산이나 부여 등지를 방문할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라도 가 볼 만하다. 2. 누구와 함께? -가족 단위 관광객, 논산 훈련소에 아들이 입소한 부모님들. 3. 가는 방법은?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254 /건양대 후문 근처 4. 감탄하는 점은? -은진 미륵 보살은 교과서에 나온 것보다 훨씬 크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생각보다 그리 많은 관람객들이 방문하고 있지는 않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은진 미륵 보살, 미륵전, 윤장대, 해탈문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돼지갈비로 유명한 ‘햇잎갈비’(736-6001), 젓갈백반 ‘만나식당’(745-7458), 순대국밥 ‘연산할머니순대’(735-0367), 콩나물국박 ‘유정콩나물국밥’(732-0080), 갈치조림 ‘옛날집’(734-0333). 지역번호는 041 8. 홈페이지 주소는? -gwanchoksa.modoo.at/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백제군사박물관, 논산 명재고택, 수락계곡 10. 총평 및 당부사항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이라면 한 번은 가 볼만하다. 왜냐하면, 은진 미륵 불상은 교과서 곳곳에 나올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자주 언급되는 곳임.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조우종 정다은 아나운서, 신혼여행 미룬 이유 보니 ‘내조의 여왕’

    조우종 정다은 아나운서, 신혼여행 미룬 이유 보니 ‘내조의 여왕’

    방송인 조우종과 KBS 정다은 아나운서가 신혼여행을 잠시 미뤘다. 조우종의 방송 일정 때문이다. 21일 조우종 정다은 커플이 신혼여행을 오는 4월로 연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 결정은 최근 프리랜서로 전향한 조우종이 당분간 일에 전념하도록 배려한 예비신부의 마음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조우종 정다은 커플은 3월 16일 서울 모처 한 호텔에서 백년가약을 맺는다. 예식은 비공개로 진행되며 식후 각자 방송 일정에 임하다 한달 뒤 허니문을 떠날 예정이다. 조우종과 정다은 아나운서는 KBS 아나운서 선후배로 만나 5년여 열애 끝에 결혼의 결실을 맺게 됐다. 조우종은 2005년 KBS 31기 공채 아나운서로 방송에 입문했다. 이후 KBS 간판 아나테이너로 활약하다 지난해 가을 프리랜서로 전향해 FNC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틀었다. 현재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다은 아나운서는 2008년 KBS 34기로 입사했으며 ‘도전 골든벨’ ‘굿모닝 대한민국’ ‘비바 K리그’ 등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게이 힐, 후커 힐, 이슬람 언덕을 아시나요?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게이 힐, 후커 힐, 이슬람 언덕을 아시나요?

    “그런데 이태원이라니 . 그녀가 그 짓밟히고 썩은 거리에서 바다 건너 먼 아메리카를 그리워하고 있는게 나 때문이라니,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8)에 나오는 이태원은 짓밟히고 썩은 거리로 묘사된다. 여자 주인공인 ‘윤주’가 마지막으로 흘러들어가 전전하던 1970년대의 이태원 거리는 남자 주인공 ‘형빈’에게 지독히도 불쾌하고 지저분한 거리로 각인된 곳이었다. 당시 용산과 이태원을 둘러싸고 있던 미군 철조망 건너편 도로는 뉴욕의 할렘보다 더 어두운 곳이었다. 새벽마다, 밤마다 미군 헌병들이 권총차고 몰려다니던 치외법권 지역과도 같은 곳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그러나 이태원 거리가 변하였다. 변해도 너무 변해서 예전 불쾌한 거리의 기억은 이미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너머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단연코 지금의 이태원은 서울 최고의 핫 플레이스이자 젊은 청춘들의 멋진 데이트 장소로 탈바꿈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태원의 이미지는 아마도 세대마다 다를 성 싶다. 1970년대에 젊음을 누렸던 지금의 60대 이상의 세대들에게는 이태원은 여전히 생소한 락음악에 미군들 들썩이던, 기지촌 담벼락 어두운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1980, 90년대 젊은 한 시절을 보낸 40대 이상에게는 이 거리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태원은 쇼핑, 큰옷, 큰 가방, 짝퉁, 이민 준비와 유학원, 외국인 전용 클럽에 드나드는 이방인들의 세계였다. 그러다 2000년도를 지난 지금의 청춘에게 이태원은 또다른 모습이다. 아프리카부터 유럽과 그리스를 돌아 미국, 중남미 음식과 음악까지 한 곳에 어우러지는 거대한 세계촌의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다. 이렇듯 이 거리는 우사단길로, 경리단길을 지나면서 꼼데가르송 거리까지 무한 확장 중이다. 이태원은 이제 '거리가 아닌 문화'가 되고 있다. 우선 이태원 명칭의 유래부터 살펴보자. 이름 역시 예사롭지 않다. 사실 어느 것이 정설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다들 나름의 설득력은 있다. 우선 이 지역이 배나무(梨·이)가 많은 곳이었고, 조선의 여행객을 위한 숙소인 역원(驛院)이 있는 곳이어서 이태원(梨泰院)이라고 불리었다는 말이 있다. 또 한 편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원치 않게 왜인(倭人)의 씨앗을 받게 된 조선의 여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는 뜻으로 다를 이(異), 태반 태(胎)를 조합하여 이태원(異胎圓)이라고 불렸다고도 한다. 어찌 되었던 간에 이태원이라는 땅은 한강 다리 건너기 전의 요충지이자, 사통팔달 물산(物産)과 사람이 모여 들던 운명을 지니고 있었던 듯하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부대의 주둔지가 이 곳에 만들어지고 난 후, 온갖 외세들은 이태원에 자신들의 터를 박아두기에 여념이 없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군 조선사령부가 만들어졌으며, 1950년대에는 미군기지가 이곳에 들어오게 된다. 이후 본격적으로 외국공관들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1970년대 부평에 있던 미 121 후송병원이 옮겨오면서 지금의 이태원 거리 원형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후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거쳐 1997년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그때부터 이태원은 명실상부하게 우리나라 대표적인 외국 문화가 깃드는 곳으로 인식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이태원 지역 관광은 크게 해밀튼 호텔을 중심으로 총 4개의 지역으로 나눌 수가 있다. 우선 해밀튼 호텔 뒤편 이태원로 27가길 주변에는 세계의 다양한 맛을 체험할 수 있는 맛집과 클럽, 바(Bar)들이 많다. ‘고블앤고’, ‘마이타이차이나’, ‘레뒤플라’, ‘마이첼시’, ‘모글’, ‘코파카바나’, ‘샘 롸이언’ 등 유명한 가게들이 많아서 젊은 데이트 족들이 항상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이태원 역에서 한강진 역까지 이르는 이태원로 대로변에도 볼거리가 풍부하다. 이 거리에는 다양한 맛집도 많지만 패션, 문화가 어우러지는 공간이 많아 최근에 각광을 받는 거리다. 이 곳에는 ‘리움미술관’, ‘현대카드 스토리지’, ‘꼼데가르송’, ‘제일기획’ 건물이 눈에 띈다. 또 다른 이태원 지역으로는 해밀튼 호텔 길건너 맞은 편 쇼핑 지역이다. 흔히 이태원 쇼핑 지역으로 불리는 곳으로 이 곳에 이태원 시장이 있다. 큰 옷, 큰 가방부터 시작해서 이태원퀴논길에는 다양한 편집숍들이 즐비하여 패셔니스타들에게는 필수 방문 코스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이태원의 가장 후미진 곳이자, 가장 이태원다운(?) 거리가 있다. 흔히 이태원 소방서길이라고 불리는 우사단로다. 지금은 이태원의 윗동네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이슬람거리로 올라가기 전에 왼편에 두 개의 골목길이 있는 데, 이 곳이 ‘진짜’ 이태원의 역사를 안고 있는 길이다. 첫 번째 골목이 ‘후커 힐’이라고 불리는 우사단로 14길, 바로 언덕길이다. 도로바닥에 진입금지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진 곳으로 ‘클럽 지온’을 끼고 돌면 양편 거리에 ‘치어스’, ‘알마즈’ 등의 간판을 내건 작은 술집들이 많다. 바로 이 거리가 그 옛날 미군을 대상으로 특수한(?) 영업을 하던 ‘청소년 통행 금지구역’ 이다. 이런 술집들도 이태원의 명맥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드문드문 그때의 기지촌 내음 물씬하게 네온싸인 간판 밝히며 배경으로 남아 있다. 두번째 골목은 지금도 ‘이반 언덕’, ‘게이 힐’이라고 부르는 우사단로 12길이다. 1995년에 이태원 지역에 ‘터널’이라는 게이바가 생긴 이래, ‘파슈’, ‘트랜스’, ‘지니’, ‘와이낫’ 등의 성소수자들의 위한 장소가 꾸준히 만들어졌고, 지금도 주말 저녁에 20, 30대의 성소수자들의 유흥 공간으로 늘상 북적이는 곳이다. 그 다음 골목이 바로 이슬람 언덕이라고 불리는 우사단로 10길이다. 이 길에는 이슬람사원을 비롯하여 케밥, 이슬람 서적 및 의류, 각종 중동 사막 내음새 물씬 풍기는 가게들이 모여 있다. 이외에도 해밀튼 호텔 맞은 편 보광로에는 100여개에 이르는 앤틱 중고 가구 거리라든지, 아프리카 문화가 모여 있는 이화시장 등이 있어 이태원이라는 지역을 더욱 더 다채롭게 만들고 있다. 이태원은 언제든지 방문해도 어딘가 이질적이면서 묘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흔히들 퓨전의 끝판왕 거리라는 이태원. 지금도 여전히 다양한 문화들이 이태원이라는 거리 속으로 녹아들고 있다. <이태원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꼭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될 만큼 특징적인 지역이다. 저녁 10시를 전후로 이태원은 낮과는 전혀 다른 밝지만 어두운 밤의 세상이 열린다. 주의!! 2. 누구와 함께? -20, 30대의 피끓는 청춘들. 3. 가는 방법은?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이 제일 편하다. 4. 감탄하는 점은? -낮과 밤이 정말 다르다는 사실. 다채로운 외국 문화와 음식점들이 많아 볼거리가 많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이태원 거리의 명성은 예전부터 유명하다. 특히 세계 각국의 퓨전 음식들과 특징적인 클럽들. 6. 꼭 봐야할 거리는? -해밀턴 호텔 뒷 골목들, 이화시장, 이슬람 언덕 주변, 세계 각국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는 각종 맛집들. 참고로 TV에 소개된 맛집만 120군데가 넘는다. 7. 관람 예상 소요시간은? -반나절 이상의 시간은 걸린다.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itaewon.or.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 경리단길, 리움미술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이태원의 낮과 밤은 완전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가기를. 말 그대로 밤길 조심! 최근 외국인에 의한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조우종♥정다은 아나운서, 열애 인정 이어 결혼 발표 ‘화끈’

    조우종♥정다은 아나운서, 열애 인정 이어 결혼 발표 ‘화끈’

    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조우종(41)이 정다은(34) KBS 아나운서와 열애를 인정한 데 이어 오는 3월 결혼을 발표했다. 조우종의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는 6일 “조우종 정다은 아나운서가 3월 중순 백년가약을 맺는다”고 밝혔다. 이어 “두 사람은 KBS 아나운서 선후배로 처음 만나 지금까지 진지하게 교제해왔고 서로 격려하고 지지해주며 사랑을 이어왔다”고 설명했다. 또 “서로를 향한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평생의 동반자가 되어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오래전부터 조용히 결혼을 준비해왔다”고 전했다. 앞서 소속사는 이날 불거진 조우종 정다은 아나운서의 열애설에 “조우종과 정다은 아나운서가 5년째 열애 중이라고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우종은 2005년 KBS 공채 31기 아나운서 출신으로, 지난해 9월 프리랜서 선언을 했다. 현재 MBC에브리원 ‘아찔한 캠핑’, KBS조이 ‘차트를 달리는 남자’ 등에 출연 중이다. 정다은은 2008년 공채 34기로 KBS에 입사해 ‘도전 골든벨’ ‘생생정보통’ 등을 진행했다. <이하 조우종 정다은 아나운서 결혼 발표 전문> 안녕하세요, FNC엔터테인먼트입니다. 금일 저희 소속 방송인 조우종씨와 관련한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조우종씨는 오는 3월 중순 정다은 아나운서와 백년가약을 맺을 예정입니다. 두 사람은 KBS 아나운서 선후배로 처음 만나 지금까지 진지하게 교제해왔고, 서로 격려하고 지지해주며 사랑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한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평생의 동반자가 되어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오래 전부터 조용히 결혼을 준비해왔습니다. 방송인으로서의 삶과 더불어 한 가정을 이루며 새 출발을 앞두게 된 조우종씨의 앞날을 축복해주시길 바라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조우종♥정다은 5년째 열애, 과거 함께 있는 모습 포착 ‘미소가 닮았네’

    조우종♥정다은 5년째 열애, 과거 함께 있는 모습 포착 ‘미소가 닮았네’

    방송인 조우종(41)과 정다은 아나운서(34)가 열애를 인정한 가운데 과거 두 사람의 투샷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2015년 9월 정다은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오늘은 목요일. 89.1 ‘조우종의 뮤직쇼’ 게스트로 나가는 날이에요. 열심히 노래 불러볼게요”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사진에는 정다은과 조우종이 같은 자세를 취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편안한 복장의 두 사람은 닮은 미소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6일 일간스포츠의 보도에 따르면, 한 연예계 관계자는 “주말 사이 포털사이트를 뜨겁게 달군 ‘조우종의 그녀’는 정다은 아나운서”라며 “프리랜서를 선언하기 전부터 교제해 왔다. KBS 아나운서실에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조우종 소속사 측은 “정다은 아나운서와 열애 중인 것이 맞다”며 “만난 지 4~5년 정도 됐다. KBS 재직 당시 만나 사랑을 키웠다. 결혼 계획은 아직”이라는 공식 입장을 전했다. 사진=정다은 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아는 형님’ 정소민 “이상형은 서장훈과 김영철” 이유는?

    ‘아는 형님’ 정소민 “이상형은 서장훈과 김영철” 이유는?

    배우 정소민이 ‘아는 형님’에 출연한다. 4일 방송되는 JTBC 예능프로그램 ‘아는 형님’에는 최근 종영한 KBS 시트콤 ‘마음의 소리’에 출연했던 배우 정소민과 최근 프리랜서 선언을 한 방송인 조우종이 출연할 예정이다. ‘아는 형님’ 출연진들은 자신들 가운데 정소민의 이상형이 있는지 물었다. 이상민은 “여기 앉은 사람들 모두 나이가 같고, 재산도 비슷하고, 부채가 없고, 싱글이라는 조건에서 선택해야 한다. 다른 것은 오직 생김새와 성격이다”라며 조건을 제시했다. 정소민은 “(이상형) 두 명 있는데?”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에 김영철은 “설마 김희철과 민경훈은 아니겠지?”라고 추측했다. 정소민은 “서장훈과 김영철”이라며 출연진들의 예측을 보란 듯이 뒤집었다. 이에 정소민이 이상형을 꼽은 이유에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한편, JTBC ‘아는 형님’은 이날 오후 8시 50분에 방송된다. 사진=네이버TV 동영상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충무공, 눈꽃으로 만나다…아산 현충사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충무공, 눈꽃으로 만나다…아산 현충사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하니, 안위가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한다.(난중일기 4 中 정유 9월) 그 해도 올 해와 같은 정유년(丁酉年)이었다. 거제현령 안위(安衛)에게 벼락처럼 내려진 충무공의 호된 질책이었다. 늘 그렇듯 싸움은 승리하였다. 그러나 충무공은 스스로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난중일기에 이렇게 한 줄 적는다. ‘차실천행’(此實天幸) 하늘이 도운 행운이라고 겸손하게 자평했을 따름이다. 충남 아산에 있는 현충사(顯忠祠)다. 눈이 내렸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현충사 앞 뜰에 내린 눈은 소복보다 더 하이얗다. 1589년 11월 19일, 탄환을 맞아 전순(戰殉)한 이순신은 향년 54세였다. 철군하던 500여 척의 왜선중 살아남은 배는 50척에 불과하였다. 그의 유언에 따라 전투가 끝난 뒤 발상(發喪)하였고 임진년에 일어났던 전쟁도 끝이 난다. 선조는 이순신의 공을 기려 우의정과 좌의정을 증직(贈職)하였고, 숙종 32년(1706)에는 지금 자리에 사당을 지어 충무공의 위업을 기리게 하였다. 그 이듬해에 ‘충성스러운 마음을 기리고 나타낸다’는 뜻에서 '현충사(顯忠祠)'가 건립된다. 그리고 후대에 와서 정조는 충무공을 영의정으로 추증(追贈)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이 곳에서 그의 충심을 본받도록 하였다. 그러나 1863년 흥선대원군이 내린 서원 철폐령으로 현충사는 문이 닫히기도 하였으며, 1930년대 초 충무공 후손들의 빚으로 인하여 이곳이 일본인 투자자에게 넘어가게 되는 위기도 겪는다. 이에 1931년 5월 26일, 충무공유적보존회가 설립되고 윤치호, 남궁 억, 한용운, 정인보 등 15명이 모금운동을 벌여 1만 6021원의 성금을 모은다. 가까스로 현충사를 지켜내게 되었고, 모금운동을 주도하였던 여러 애국 인사들은 불령선인으로 분류되어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현재 현충사에서 우리가 만나는 본전(本殿)은 1967년에 신축된 곳으로 충무공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숙종 시절에 만들어지고, 1932년에 국민성금으로 중건된 옛 본전은 빈 공간으로 남아 전시용으로 공개되고 있다. 또한 이 곳에는 보성군수의 무남독녀를 아내로 맞이하면서부터 무과시험을 볼 때까지 살았던 처갓집이 이전 보존 가옥으로 만날 수 있다. 이 외에도 활터, 충무정으로 불리는 우물터, 유물 및 유품 들을 전시하는 유물전시관, 충무공관련 해전 사료 및 역사 테마관으로 운영되는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이 있어 가족 단위 관람객들에게는 알찬 나들이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현충사에는 국보 제 76호로 지정된 ‘난중일기’가 보관되어 있다. 난중일기의 내용 중에는 수군통제에 관한 군사비책과 전황을 보고한 장계의 초안 뿐만 아니라 이순신의 개인적인 고뇌 등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많은 도움을 주는 사료로 평가된다. <현충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충무공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 많다. 여수의 충민사, 통영의 충무사 등이 있지만 현충사는 가장 대표격인 사당으로 한국인이라면 한 번은 다녀갈 만한 곳이다. 2. 누구와 함께? -공원형태로 조성된 곳으로 가족 단위 관람객이나 충무공에 대하여 알고자하는 누구에게나 유익한 곳이다. 3. 가는 방법은? -정확한 주소는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126이다. 지하철 1호선(신창행) 온양온천역에서 내리면 시내버스 900, 910, 920번을 타면 된다. 문의 041) 539-4617 4. 감탄하는 점은? -넓다. 그리고 ‘칼의 노래’를 읽은 독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곳일 수 있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생각보다는 그리 많은 관람객들이 방문하고 있지는 않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2011년 4월 28일 준공·개관한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망향비빔국수’(545-3575)/ ‘미사리밀빛초계국수’(531-9855)/ 설렁탕 ‘강화족탕’(544-6957)/ 한정식 ‘소나무집’(547-9598)/ 연잎오리정식 ‘느티나무집’(541-4252) 지역번호는 041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hcs.cha.go.kr/cha/idx/SubIndex.do?mn=HCS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외암민속마을, 천안 독립기념관, 홍대용 과학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현충사는 숙종 때 세워진 후, 1930년대에 우리 조상 2만여 명의 성금으로 중건된 곳이다. 따라서 1960년대의 성역화 작업 훨씬 이전부터 의미가 있던 곳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뭉쳐야 뜬다’ 윤두준 “회사라는 울타리 나온 후 무섭다는 생각”

    ‘뭉쳐야 뜬다’ 윤두준 “회사라는 울타리 나온 후 무섭다는 생각”

    JTBC ‘패키지로 세계일주-뭉쳐야 뜬다’에 출연한 윤두준이 회사를 나온 후의 심경을 밝혔다. 최근 윤두준은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기 위해 녹화에 불참한 정형돈을 대신해 ‘뭉쳐야 뜬다’ 스위스 패키지 여행에 합류했다. 스위스 리기산 정상에 앉아 김성주-김용만-안정환 등 멤버들과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던 윤두준은 김성주로부터 “아이돌이 꼭 좋은 직업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솔직하게 속마음을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아이돌식 FM 대답만 내놓던 윤두준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에 꺼낸 이야기였던 것. 이에 윤두준은 “아이돌이 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고 재미있고 좋아하는 일이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김성주가 “아들을 낳으면 아이돌을 시킬 거냐?”고 되묻자 윤두준은 단호하게 “절대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두준은 “환경이 꾸준히 바뀌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모든 게 바뀌어버린다. 보이는 것과 다른 이면이 많은 직업이다”라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회사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게 처음이다 보니 올해 처음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윤두준의 고민에 김성주는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전향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선배로서 진심어린 충고와 응원을 던져 훈훈함을 자아냈다. 하편 윤두준과 함께 한 ‘뭉쳐야 뜬다’는 31일 화요일 오후 10시 50분에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일제, 근정전 옆에 축사(畜舍)를 두다 - 경복궁(景福宮)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일제, 근정전 옆에 축사(畜舍)를 두다 - 경복궁(景福宮)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 풍경 소리 날러간 추녀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시인 조지훈(1920~1968)은 경복궁을 둘러본 뒤, ‘봉황수’(1940)라는 시를 통해 폐허가 되어버린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의 운명을 슬퍼했다. 경복궁의 역사를 들려주는 문화해설사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바로 ‘아쉽게도 지금은 볼 수 없지만’이라는 머리말이다. 이 ‘아쉽게도’를 방문객들은 경복궁 관람이 끝날 때까지 귀에 수 십 번은 감고 다녀야 한다. 그리도 아쉬움이 많이 남겨진 경복궁 역사.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아귀같이 그렇게도, 악착같이 조선의 법궁이던 경복궁 훼손에 골몰하였다. 후손들이 늘상 아쉬움을 가지라고 일부러 그러한듯. 조선 창업의 표징이자, 정궁인 경복궁이다. 1907년 7월 20일이다. 병약하고 유약한 황태자 척(拓)은 순종이 되었다. 조선의 마지막 27대 임금으로 연호는 ‘융희'(隆熙)로 부른다. 1910년 8월 4일, 총리 대신 이완용은 순종을 겁박하여 ‘조선의 통치권을 일본 천황에게 넘긴다’라는 조약문을 만든다. 일주일 뒤 조선의 국권은 일본에게 위임한다는 조칙이 내려진다. 이로써 조선의 역사는 519년만에 절멸(絶滅)한다. 경복궁의 주인이 바뀐 것이다. 경복궁의 넓이는 43만 2,703㎡에 달한다. 그렇게도 넓다는 자금성의 넓이도 72만㎡이니 애당초부터 경복궁은 자금성에 이어 동아시아 법궁들 중에서 규모면으로는 2위인 거대한 궁궐이다. 일제는 조선의 상징인 이런 경복궁을 난도질하기 시작한다. 13만 8천 평에 들어서있던 7,225칸의 전각은 불과 36동만이 남았다. 10분의 9가 없어진 셈이다. 또한 남겨진 10분의 1도 안되는 전각들도 옳은 모습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뒤틀어지고, 없어진 부속 자재들로 인해 지금도 복원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일제의 경복궁 훼손 계획의 시작은 이미 1902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일본의 건축사학자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의 조사를 바탕으로 조금씩 경복궁 내의 전각과 건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1916년 6월에 이르러 일제는 흥례문 주변 전각들을 아예 대놓고 본격적으로 철거하고 조선총독부 청사 착공 공사를 시작한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1926년 10월에 완공된다. 또한 일본은 ‘조선물산공진회’라는 박람회를 위해 건춘문, 동십자각을 비롯한 수 백 동의 전각을 철거하여 경복궁은 말 그대로 폐허가 되어 간다. 이에 더해 근정전 용상마저 뜯어 고쳐 조선 의병들에게 죽은 일본 경찰, 헌병, 조선인 하수인들의 제례단으로 바꾸는 만행까지 저지른다. 일본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1929년 10월 경복궁에 깃든 우리 민족의 혼을 짓밟기 위해 근정전 서행각 너머에 축사를 설치하고 정화조를 만든다. 온종일 가축 분뇨 냄새는 궁을 뒤덮는다. 이후 일제가 물러갈 때 남은 경복궁 내의 건축물로는 그들이 만든 조선총독부 건물만이 온전하고, 나머지 남은 36동의 전각들은 여염집 사랑방보다 못한 폐허로 남아 있었다. 한 마디로 지독하게도 우리 민족의 정신과 혼을 지우기 위한 작업이 행해졌던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일본이 그리도 없애고자 발버둥 쳤던 조선의 얼과 혼이 깃든 대표적인 건축물인 경복궁의 내력을 간단히 알아보자. 경복궁의 역사는 조선 창업 때부터 시작한다. 조선 개창 4년, 1395년(태조 4년)에 경복궁이 지어진다. 여기서 ‘경복'(景福)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태평성대의 큰 복을 누리기를 축원한다.’는 의미로 정도전이 이름 붙였다. 이후 임진왜란 당시까지 조선의 정궁(正宮)으로 머무르게 된다. 지금까지도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 화재 원인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왜군이 불 질렀다는 이야기와 아울러 당시 임금에 대한 반감을 지니고 있던 민초들의 분노로 경복궁은 불타올랐다는 말은 지금도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여하튼 불타버린 경복궁은 1865년(고종 2년)에 이르러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1868년 완성되어 다시금 조선의 왕궁으로 일어선다. 그러나 이도 잠시, 1895년 을미사변으로 경복궁내에서 일본 낭인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결국 1896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으로 옮겨감에 따라 경복궁은 빈 집으로 남게 된다. 이후 경복궁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일본에 의해 힘든 시간을 견디게 된다.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침략군에 의한 역사적 유물의 파괴는 종교적 갈등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파괴 대상 역시 종교적 시설물에 집중한다. 국제사회에서 온갖 비난이 집중되는 IS에 의한 시리아의 바알 샤민 신전 파괴나 탈레반에 의한 바미얀 석불 파괴 등이 그러하며 그 옛날 아스테카의 신전 파괴, 예루살렘의 성전 파괴 등도 결국 종교 갈등에서 연유하였다. 그러나 이렇듯 침략정부 주도에 의한 평상시의 왕궁의 유적, 유물 훼손 및 철거작업은 그 일례를 찾기가 힘들 정도로 드물고도 더러운 짓이었다. 현재 경복궁 복원 작업은 불과 25%에 머물고 있다. 그러하기에 아직도 우리는 일본과는 할 말이 많이 남아있다. 우리 민족 정기마저 없애려 가축의 똥 냄새 풍기던 축사(畜舍)마저 왕의 침소인, 근정전 곁에 두었던 일본이 소녀상 설치에 대하여 그토록 날선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경복궁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당연하다. 조선의 법궁이자 정궁이었던 장소다. 2. 누구와 함께? - 누구라도. 3. 가는 방법은? - 3호선 경복궁역 5번출구 도보 5분 /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 도보 약 10분 4. 감탄하는 점은? - 정말 중국 관광객들일 많다는 점. 경회루 주변의 아름다움.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하루빨리 경복궁이 복원되어 넉넉한 관람공간이 많이 생기길 바란다. 6. 꼭 봐야할 전각은? - 임금이 집정하던 근정전, 임금의 침소인 강녕전, 중전 처소인 교태전, 연회 장소인 경회루, 옛 집현전이던 수정전 7. 관람 예상 소요시간은? - 국립고궁박물관이나 국립민속박물관까지 들리면 반나절은 걸린다. 8. 홈페이지 주소는? - www.royalpalace.go.kr:8080/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 운현궁, 청와대, 조계사, 삼청동 거리, 인사동 10. 총평 및 당부사항 - 경복궁 관람 포인트는 임진왜란 당시의 민초들의 분노와 일제에 의한 경복궁 훼손 흔적이다. 이 두 개의 역사축을 중심으로 경복궁을 바라보자. 혼자서 둘러보지 말고 반드시 해설사의 설명을 꼭 듣길 바란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협궤열차를 아시나요?…인천 소래포구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협궤열차를 아시나요?…인천 소래포구

    '외롭고 비린내 나는 생활에 찌든 사람들이 차창에 기대어 비춰 보내고 있는 불빛이었다.(중략) 상대편 사람과 서로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수원과 인천 사이를 오가는 수인선 협궤열차이다.' 윤후명은 소설 ‘협궤열차’에서 수원과 인천 소래 사이를 오가는 협궤철도(狹軌鐵道·수인선)를 옹색한 서민들의 삶을 그나마 숨통 트게 위로해주는 기찻길로 묘사한다. 1937년, 일제 강점기 시절 소래염전의 소금을 수원으로 실어 나르던 협궤열차는 1995년 12월 31일 폐선되었다. 추억 한 가득 담아가던 협궤열차는 지금은 전동차로 대체되어 2012년부터 다시금 소래포구로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소래포구는 현재 수도권에서 가장 '핫'한 관광지다. 얼마 전 한 네비게이션 업체에서 발표한 관광도착지 검색어 1위에 이름 넉자 띄울 정도이니 유명세야 지금 굳이 말해서 무얼하랴? 우선 소래포구의 어원을 살펴보자면, 소래(蘇萊)라는 명칭의 연원은 다양하지만 그 중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중국 산둥성의 내주(萊州)에서 나와 지금의 소래포구 지역에 도착하였다 한다. 이에 소정방의 소(蘇)와 내주의 래(萊)를 붙여 만들었다는 설이 지금은 가장 유명하다. 사실 현재의 이름난 소래포구 지역 주변은 원래는 염전으로 유명했던 곳으로 지금은 소래습지생태공원으로 변하여 그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 1970년대 ‘소래염전’은 국내 최대 염전으로 규모면에서도 79만㎡에 달했던 곳이니 한때 '인천 당구 짜다'는 소문은 여기에서 나온 듯 하다. 이렇듯 한 시절 풍미하였던 소래염전도 1995년 12월에 수인선이 폐선된 뒤 1997년부터는 폐염전으로 남아 지금은 공원으로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당시 소래염전에서 나오는 질 좋은 천일염은 멸치젓, 꼴뚜기젓, 밴댕이젓, 게젓 등을 만들어 내었고 이후 소래포구를 지금의 젓갈 백화점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한 일등공신임은 분명하였다. 이렇듯 전국적인 젓갈 산지로 이름난 소래포구는 의외로 포구로서의 역사는 과히 길지는 않다. 1960년대 실향민들의 어선 10여 척 정도만 드나드는 작은 선착장에 불과하였고 이들은 주로 근해에 나가 새우잡이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갔다. 이때 정박한 배들이 썰물 때가 되면 갯벌 위에 어영부영 그대로 앉아 있다가, 밀물이 들면 바닷물을 헤집고 나갔는데 이 모습이 꽤나 독톡한 풍광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던 모양이었다. 이후 1974년 인천내항이 준공이 된 후 인천항 주변의 많은 새우잡이 소형어선들이 정박 가능한 소래로 포구를 옮기면서 이 지역은 단숨에 새우 파시로 발전, 수도권 대표 재래포구 어항이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는 연평균 300만명 넘는 사람들이 소래에 다녀가니, 어느 순간인가 인천 차이나타운 언덕 부럽지 않은 유명 관광지가 되었고, 2001년부터는 ‘인천 소래포구 축제’가 열리며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 옛날 수인선 협궤열차가 덜컹대며 건너 다니던 다리를 넘어서면 어시장이 연중무휴로 열리고 있어 늘 선착장 주변에서 신선한 회를 먹을 수 있는 노천횟집과 해산물 튀김 점포가 약 420여개가 들어서 있을 만큼 번성하고 있다. 더구나 송도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주변 지역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여 과거 세숫대야에 젓갈 담아 팔던 눈물나던 풍경은 이미 옛말이 되어버렸다. 또한 인근 지역 상업시설이 나날이 들어서고 있어 불과 1, 2년 만에 소래포구는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 중이다. 서민들의 애환을 가득 담은 채 덜거덕, 흔들흔들 달려가던 시속 20Km의 협궤열차는 비록 사라졌지만 소래포구에는 아직은 그 때의 기억을 담은 풍광들이 넘어가는 서해의 늙은 석양빛속에서 찾을 수 있다. <소래포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인천에 갈 일이 있다면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가 볼만한다. 특히 김장철을 앞둔 겨울 소래포구 어시장 주변은 수도권의 대표 해산물 시장임을 증명하듯 방문객들의 주차전쟁이 가히 상상초월이다. 2. 누구와 함께? -친구들과 우정을 도모하러, 40대 이상 장년들의 입맛 잡는 해산물 잔치가 열린다. 3. 가는 방법은? -수도권 지하철인 수인선 소래포구역. 지하철이 가장 편하다. 4. 감탄하는 점은? -서울 가까운 곳, 지하철로 내릴 수 있는 바다 가까운 오붓한 선착장이라니.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명성에 버금갈만큼 내실도 넉넉하다. 각종 횟집과 튀김, 생선구이집이 즐비하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소래포구 어시장 주변 낡은 선착장.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새우튀김은 갯벌횟집(434-4990), 꽃게요리 황해(1661-0823), 꽃게탕 진복호(435-0105), 랍스타 대게수산(434-1118)/지역번호 032 8. 홈페이지 주소는? -www.soraepogu.net/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협궤열차의 추억이 담긴 소래역사관,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화약공장인 한화기념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소래포구는 수도권 지하철이 연결되면서 급속도로 팽창, 유명해지고 있는 수도권 대표어항 관광지다. 문득 서해의 겨울 낙조를 보고자하는 그대들이여, 소래포구로! 그러나 생각보다 물가는 만만하지 않으니 지갑은 두둑히!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홍민정 아나, 아찔한 ‘S라인’ 볼륨 몸매 공개

    홍민정 아나, 아찔한 ‘S라인’ 볼륨 몸매 공개

    아나운서 홍민정이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자랑했다. 홍 아나운서는 지난해 3월 자신의 SNS에 사진 두 장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 속 홍 아나운서는 비키니를 입은 채 섹시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으며 또 다른 사진에서는 몸에 밀착된 수영복을 입고 ‘S라인’ 몸매를 뽐냈다. 한편 홍 아나운서는 SBS 스포츠 아나운서 출신으로 지난 2015년 프리랜서로 전향했으며 최근에는 뉴욕 라디오 코리아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홍민정 인스타그램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백제의 뜰을 거닐다…백제문화단지 사비성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백제의 뜰을 거닐다…백제문화단지 사비성

    “너희가 너희 스스로를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너희를 지켜줄 수 있겠느냐!!” 백제의 명멸을 그려내면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TV 드라마 ‘근초고왕’에 나오는 대사다. 백제 제13대 왕, 근초고왕 부여구가 요서지역을 경락하면서 남긴 말로서 드라마 방영 당시 꽤나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근초고왕이 한때 중원을 넘보며 대(大)백제 건설을 꿈꾸었던 도읍지, 부여 백제문화단지 사비성으로 가보자. 백제문화단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에 1994년부터 2010년까지 근 17년 동안 조성된 백제역사 체험공간이다. 규모면에서도 당시 백제문화를 제대로 재현하려는 충청남도의 의지를 반영한 듯, 넓이로만 총 327만 6000㎡(100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문화단지다. 이 곳에는 드라마 근초고왕의 촬영지이자 백제의 옛 도읍지를 재현해 놓은 사비성을 비롯하여, 백제역사문화관, 한국전통문화학교, 민간자본으로 설립된 체험 테마파크 부대시설, 아울렛, 골프장 등 다양한 시설이 모여있다. 이 중에서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백제문화단지 방문지는 단연 사비성이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삼국시대 백제 왕궁을 재현한 곳으로 백제식 왕궁 뿐만 아니라 사찰의 하앙(下昻)식 구조, 신라 혹은 고구려와는 다른 단청의 색감, 주거양식 등이 관람객들의 흥미를 듬뿍 북돋아준다. 사비성은 총 5개의 구역으로 나눌 수가 있다. 우선 4492㎡에 달하는 사비궁을 비롯하여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백제왕실의 사찰인 능사,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고분형태를 이전 복원한 고분공원, 백제 사비시대의 계층별 주거유형을 보여주는 생활문화마을, 백제 한성시기(BC 18 ~ AD 475)의 도읍을 재현한 위례성 등이 각각의 특색을 지닌 채 앉아 있다. 사비성의 입구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비궁의 천정전(天政殿)이다. 백제 왕실의 즉위 의례, 신년 행사, 국가 의식을 담당했던 곳으로 사비성 전체를 아울러 제일 중심인 2층 규모의 전각이다. 천정전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왕의 집무 공간으로 주로 문관들이 머물던 동궁전, 서쪽에는 무관들의 공간인 서궁전이 있다. 사비궁의 오른편에는 사비성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능사 5층 목탑이 나온다.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과 익산미륵사지 석탑 등의 양식을 참고하여 높이 38m에 달하는 백제양식의 목탑을 재현해 놓았다. 능사 5층 목탑을 관람하고 나오면 부여지여의 대표적인 석실 무덤을 재현해 놓은 고분공원을 만날 수 있다. 사비시대의 귀족계층의 무덤으로 현재 총 7기의 무덤이 이전복원 되었다. 또한 사비성 내의 백제생활문화마을에서는 당시 백제인들의 생활풍습을 알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귀족가옥이었던 대좌평 사택지적의 가옥에서 계백장군의 가옥뿐만 아니라 중류계급과 서민계급의 가옥까지 다양한 계층의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다.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머무는 곳이자 주막이 있어 간단한 먹거리까지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위례성은 백제의 도읍지를 재현해놓은 곳이다. 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왕이 터전을 잡은 곳으로, 미추홀에 자리 잡은 비류의 나라를 통합하고 난 후 백제의 수도로 자리하였다. 이 곳에서 관람객들은 거의 2000년 전의 주거 형태를 만날 수 있다. 백제문화단지는 의외로 가족단위 관람객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이 곳의 특징은 개발당시의 목표대로 모든 시설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숙소를 나와 동네 한 바퀴 산보하듯 어슬렁거리며 단지를 다니다 보면 어느덧 하루 해가 기운다. 올 겨울 백제 근초고왕의 넋이 어린 부여 사비성에서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추억을 만드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백제문화단지 사비성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가족단위의 여행지로는 최적지다. 거대한 역사적 의미를 찾기보다는 백제시대의 생활모습을 만날 수 있는 차분한 여행지로는 제격이다. 2. 누구와 함께? -가족 단위, 혹은 회사 단체 친목 모임. 3. 가는 방법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368-11(041-635-7740) 4. 감탄하는 점은? -공공예산만 3780억 가까이 투자된 곳답게 규모면이나 시설 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다. 특히 재현된 사비성은 한 바퀴 도는 데도 반나절 이상 걸린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규모나 시설에 비해 명성이 따라가지 않는다. 가족단위 방문객들은 매년 찾아오는 따뜻한 공간. 6. 꼭 봐야할 장소는? -능사 5층 목탑, 위례성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이미 방송을 통해서 알려진 시골통닭(835-3522), 서동한우 부여본점(835-7585), 연잎밥으로 유명한 백제의 집(834-1212), 장원막국수(835-6561), 광명식당(836-5176)/ 지역번호는 041 8. 홈페이지 주소는? -www.bhm.or.kr/html/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백제역사문화관, 궁남지, 정림사지터, 고란사 10. 총평 및 당부사항 -백제문화단지는 충청권에 위치한 대표 역사체험 테마단지다. 오붓한 가족단위 관람객들에게는 최적화된 장소다. 도심의 불빛 먹은 네온사인 번쩍이는 곳은 아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트럼프 또 “넌 해고야” 취임식 60년 진행자 교체

    트럼프 또 “넌 해고야” 취임식 60년 진행자 교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60년 간 미 대통령 취임식 행사 진행을 맡아온 베테랑 아나운서를 전격 ‘해고’했다.  8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1957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부터 11명에 이르는 미 대통령 취임식 퍼레이드의 아나운서로 활동해온 찰리 브로트먼(89)이 오는 20일 트럼프 취임식에서는 사회를 보지 않는다. 트럼프 측은 60년 간 이어온 ‘전통’을 깨고 브로트먼 대신 트럼프 대선캠프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프리랜서 아나운서 스티브 레이(58)에게 취임식 사회를 요청했다. 여느 때처럼 대통령 취임식 행사 진행을 준비하던 브로트먼은 젊은 트럼프 지지자가 그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취임식 준비위원회 결정을 지난주 들었다. 브로트먼은 60년 간 해온 일을 그만하라는 통보를 받고 크게 상심했다고 워싱턴 지역 방송 WJLA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그들은 내가 마이크를 잡고 갑자기 죽을까봐 두려운 것 같다”며 진행자 교체 이유로 자신의 고령을 탓했다. 취임식 준비위는 브로트먼의 공로를 인정해 그를 ‘명예 아나운서’로 예우하기로 했다. 보리스 엡슈타인 취임식 준비위 대변인은 “1957년부터 수많은 미국인이 찰리 브로트먼을 취임식의 목소리로 인정했다”며 “취임식 준비위는 20일 찰리를 명예 아나운서로 자랑스럽게 예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브로트먼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 프로야구팀 ‘워싱턴 내셔널스’ 등과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취임식 진행 행운을 잡은 레이는 “우리는 찰리를 건물처럼 워싱턴의 풍경이라고 생각한다”며 “나는 그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다음에 오는 사람일 뿐”이라고 워싱턴포스트에 전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트럼프, 취임식 ‘60년’ 진행자 해고…“갑자기 죽을까봐 두려웠나”

    트럼프, 취임식 ‘60년’ 진행자 해고…“갑자기 죽을까봐 두려웠나”

    준비위, 前진행자에 명예 아나운서 예우새로운 사회자는 캠프서 활동 프리랜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60년간 미국 대통령 취임식 행사를 진행한 베테랑 아나운서 찰리 브로트먼(89)을 해고했다. 미국 CNN 등 외신은 8일(현지시간) 역대 대통령 11명의 취임 퍼레이드 사회를 맡았던 아나운서 찰리 브로트먼이 오는 20일 트럼프 당선인 취임식에서는 사회를 보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새로운 진행자 자리에는 트럼프 당선인 대선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프리랜서 아나운서 스티브 레이가 앉았다. 여느 때처럼 대통령 취임 퍼레이드 준비를 하다 이 소식을 들은 브로트먼은 “마음이 아프고 절망적 기분이 들었다”고 지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브로트먼은 “내가 마이크를 잡고 갑자기 죽을까봐 두려워했던 것 같다”며 자신의 고령을 탓하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 취임식 준비위원회는 브로트먼을 ‘명예 아나운서’로 예우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취임 퍼레이드에서 아나운서를 맡은 레이는 “나는 브로트먼을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그냥 그다음에 오는 사람”이라고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브로트먼은 “몇몇 반대파들은 내가 레이가 잘 못해서 ‘찰리가 돌아오길 바란다’는 얘길 듣길 원한다고 말하는데 전혀 그런 상황은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익숙한 듯, 낯선 흔적…서울역사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익숙한 듯, 낯선 흔적…서울역사박물관

    ‘우리는 모두 역사라는 것의 필연적인 도구가 되며,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후세의 사람들에게는 알려지게 될 일정한 작용을 거들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대문호 톨스토이(1828~1910)의 역사관이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역사에 참여를 하고 있다. 새해에도 여전히 우리의 역사는 광장 가득 입김 뿜으며 광화문과 청계천을 넘나들고 있다. 오늘의 서울 아침도 어제의 서울의 밤과 맞닿아 시간을 밀어내고 달은 지고 해는 뜬다. 서울의 역사가 모인 곳, 서울역사박물관이다. 깍쟁이 같은 서울의 시간도 알고 보면 드넓은 역사의 물길을 힘차게 헤쳐 나온 넉넉함이 있다. 2017 새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서울의 삶을 돌아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생활 속의 ‘낯선 체험’일 수도 있다. 익숙하였기에 오히려 잘 몰랐던 서울의 옛거리를 더듬고 간다는 것은 할머니의 옛집을 찾아가는 것처럼 설렌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원래 1997년에 준공한 ‘서울특별시립박물관’을 현재의 ‘서울역사박물관’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어 2002년 5월 21일에 개관했다. 부지 7434㎡, 연면적 2만 130㎡ 3층 규모로 서울 한복판에 나름 모양새있게 잘 꾸며 놓았다. 전시실과 시청각실·강당·휴게실·뮤지엄숍·물품보관소·카페테리아 등의 시설을 잘 갖추고 있으며 전시품 해설도 알차게 이루어지는 서울의 숨겨진 명소임은 분명하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입구 너른 마당에부터 옛 서울의 자취가 가득하다. 전차 381호,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창경궁 종묘에 있던 육교의 난간석 등을 직접 만날 수 있다. 건물 입구로 들어서면 1층 왼편에는 기획전시실 및 기증유물전시실 등이 있으며 3층에는 옛 서울의 모습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복원 재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서울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나 문화의 단면을 실감나게 볼 수 있다. 또한 실제 유물과 모형·디오라마·패널 등 다양한 도구가 가득하여 관람객들의 체험 효과를 높이고 있다. 특히 상설전시관에서 확인되는 조선시대의 서울의 모습과 아울러 대한제국기의 서울, 일제강점기의 서울, 고도성장기의 서울의 모습은 서울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막연한 지리적인 위치로서 서울이 어느덧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에 늘 오롯이 서있어 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게 해준다. 또한 매번 기획전시실에는 수준 높은 역사 체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2017년 3월 5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서울의 대표적 중산층 밀집 주거지이자 조선시대부터 한양의 관문이었던 북서울을 역사지리와 도시발달사 측면에서 전시하는 ‘아파트 숲이 된 북서울’ 기획전을 열고 있다. 때때로 생활의 한가운데서 새로운 공간을 발견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풍요로운 일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은 늘 풍요롭게 변하고 이런 풍성함이 곧 역사의 무게감일 듯하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분명 의미뿐만 아니라 새로움도 가득한 오늘의 우리네 역사를 담고 있다. 아직 안 가 보았다면 꼭 방문해보길 권유한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꼭’이라는 말을 붙여도 된다. 대한민국 수도의 모든 것을 담고 있어 서울의 맥락이 한 번에 잡힌다. 2. 누구와 함께? -초등학생을 둔 부모님이라면 필수 방문 코스. 3. 가는 방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5호선 광화문역 7번출구에 내려 470m를 걸어가는 것이 제일 낫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정차하는 간선, 지선, 일반버스는 대단히 많다. 4. 감탄하는 점은? -생각보다 알찬 구성. 작은 시립박물관으로 여겨지지만 의외로 볼거리가 풍부함.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명칭이 너무 알려져서 오히려 가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명성에 맞게 내실도 있다. 6. 꼭 봐야할 전시실은? -기획전시실과 전시해설. 7. 관람 예상 소요시간은? -넉넉잡아 2시간이면 충분하다. 8. 홈페이지 주소는? -www.museum.seoul.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한양도성박물관, 청계천박물관, 백인제가옥, 경희궁, 경교장, 동대문역사관 등이 있다. 10. 총평 및 당부사항 -기본이 필요할 때가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바로 역사의 기본기를 다져주는 중요한 장소이다. 초등학생이나 어린 자녀가 있는 서울시민들의 필수 가족 나들이 방문 코스이다. 꼭 홈페이지에서 전시해설 프로그램을 확인할 것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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