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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을 다시본다] (5)’인디펜던트 콘트랙터’가 뜬다

    [일본을 다시본다] (5)’인디펜던트 콘트랙터’가 뜬다

    |도쿄 특별취재팀|올해 마흔 한살의 아키야마 스스무. 그는 여느 직장인들처럼 아침마다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그러나 출근하는 회사는 매일매일 다르다. 월요일에는 에너지 관련 회사에 나간다. 이곳에서의 업무는 신규사업 개발. 다음날에는 가네보 화장품 회사로 출근한다. 담합 등 법률 위반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꼼꼼히 점검하고 위반 소지가 있는 행위를 미리 걸러내는 것이 주된 임무다. 수요일에는 신생업체인 모 중소기업체로 향한다. 이곳에서의 직함은 사장 고문. 경영과 관련해 이런저런 자문을 해준다. 점심시간까지 여유가 좀 있어 보인다 싶더니 또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수요일 오후에만 출근하는 또다른 회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다른 회사로 출근하니까 지겨울 틈이 없어요. 때로는 오전·오후 직장이 다를 때도 있습니다. 그 사이사이에도 급한 일이 들어오면 짬을 내 처리해줍니다.” 일찍이 ‘인디펜던트 콘트랙터(Independent Contractor)’ 세계에 뛰어든 덕분에, 지금은 꽤 일이 많이 들어온다는 아키야마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인디펜던트 콘트랙터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가장 부합하는 고용 형태”라고 말했다. ●인디펜던트 콘트랙터란 일본에서 인디펜던트 콘트랙터가 뜨고 있다. 뜻을 그대로 옮기자면 ‘독립된 계약인’이다. 전문 기능을 무기로 기업체와 독립된 계약을 맺고 일을 처리한다. 신사업 개발, 인사관리, 회계 정비, 재무전략 수립, 정보기술(IT) 시스템 구축, 경영 컨설팅 등 응용분야는 무궁무진하다. 통상 영문 머리글자를 따 IC로 불린다. 사원식당이나 콜센터 등이 팀 단위의 아웃소싱 형태라면 IC는 개인 아웃소싱이다. 대개는 10년 안팎의 직장 경력자들이다. 회사에 소속돼 있지는 않지만 계약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탈(脫)샐러리맨과는 다르고, 높은 위험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창업과도 다르다. 적게는 2∼3개, 많게는 4∼5개의 전문영역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한가지 분야의 전문가인 프리랜서와도 구별된다. 물론 한가지 업무만 전문으로 하는 IC도 있긴 하다. 태동지인 미국에서는 활동 인원수가 860만명에 이른다. 일본에 IC협회가 설립된 것은 2003년 12월.30명으로 출발한 회원수는 현재 180명으로 불어났다. 회원들의 평균 연령은 43세.4명의 공동 이사장 가운데 한 명으로 협회 설립을 주도한 아키야마는 “일본의 기업환경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어 앞으로 IC가 더욱 각광받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일본에서 IC가 뜨는 이유 아키야마 이사장은 일본 기업체에 불고 있는 ‘스피드 경영’ 바람을 IC의 확산과 연관지어 해석했다. 신입사원을 뽑아 일정 훈련을 거쳐 투입시키는 기존의 형태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와 눈높이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고도로 훈련된 외부의 전문 인력에게 눈을 돌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오랜 불황으로 비용 절감이 절실해진 것도 일본에서 IC가 뜨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다. 고용을 늘리고 싶지 않은 대기업체나, 노련한 전문가를 원하는 중소기업 또는 벤처기업체에 1인 아웃소싱인 IC는 ‘해답’이었다. 일본 특유의 ‘종신 고용’ 문화를 감안할 때,IC 붐은 다소 의외라고 지적하자 아키야마 이사장은 “종신고용은 전후에 정착된 형태”라면서 “전쟁 전엔 일이 있으면 모였다가 끝나면 흩어졌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약육강식의 세계 IC의 최대 장점은 시간조절이 자유롭다는 점이다. 몸이 힘들거나 가족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으면 일감을 줄이거나 밀쳐놓으면 된다. 그러나 전문능력이 없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것이 또 IC다. 대부분의 IC들이 10년 이상의 직장생활 경력자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회원들간 경쟁도 심하다.‘수주’는 대개 능력과 직결된다. 입소문이 나면서 협회로 IC 소개를 부탁하는 기업체들도 부쩍 늘었다. 이렇게 들어온 일감은 협회 홈페이지와 회원들의 개인 이메일로 통보된다. 시간과 조건이 맞는 IC가 수임 의사를 비치면 계약이 체결된다. 회비는 연간 3만 2000엔(약 32만원). 구체적인 보수 협상은 전적으로 IC 당사자의 몫이다. 전공 분야는 보수를 높게, 부전공 분야는 다소 낮춰 부르기 때문에 보수 계약을 놓고 큰 갈등은 없다고 한다. 연간 1억엔 이상의 고소득자도 적지 않다. 큰 프로젝트가 들어올 때면 몇 명의 IC들이 팀을 짜 맡기도 한다. ●IC도 재투자해야 IC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투자도 필수적이다.‘리크루트’사에서 15년 이상 여행잡지 편집을 맡다가 2년 전 과감히 IC로 전환했다는 이마무라 마유미(41·여).“마흔살 이후에도 직장에 매여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그림이 안 그려져 IC로 나섰다.”는 그는 잡지 편집(주 1회 낮)·아로마향 치료(주말)·커리어 상담(주 3회 저녁) 등 세가지 일을 하고 있다. 잡지 편집은 주전공이지만 아로마 치료사는 경력이 아직 짧다. 아로마 보수는 시간당 700엔(7000원). 맥도널드 매장의 아르바이트 임금보다도 낮다.“이 분야의 다른 IC들보다 기술이 처지기 때문에 적은 보수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그러나 재투자 기간이 끝나면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전문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등 수입의 30%를 재투자에 쓰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리크루트에 다닐 때보다 수입이 적다.“3년 정도 더 투자하면 역전될 것”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이어지는 얘기가 재미있다.“직장에 다닐 때는 쉬면서도 내 개인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IC로 나서고부터는 일하는 시간도 내 시간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일이 더 즐겁다.” IC들이 경계해야 할 최대의 적은 ‘과욕’.“의욕이 넘쳐 닥치는 대로 일을 맡았다가 밤샘작업을 밥먹듯이 했다.”는 이마무라는 “노련한 IC일수록 시간과 체력 안배가 뛰어나다.”며 한국에서도 IC협회가 생겨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hyun@seoul.co.kr ■ ’10년후 일본’ 저자 다카하시 |도쿄 특별취재팀|‘10년후 일본’이라는 책에서 인디펜던트 콘트랙터(IC)의 등장에 주목한 다카하시 스스무(52) 일본종합연구소 이사는 “IC가 ‘단카이세대’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카이(團塊)세대란 2차대전 직후인 1947∼1949년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첫 베이비붐 세대를 일컫는 말로, 워낙 사람수가 많다 보니 구조조정의 단골대상이 돼왔다. 게다가 오는 2007년을 전후해 대거 정년을 맞게 돼 일본 내 사회문제로도 떠오르고 있다. 다카하시 이사는 “중장년 사원이 많은 회사는 인건비를 절감해서 좋고, 당사자들은 임금이 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직장에 계속 머물러 있어봤자 비전이 없기 때문에 IC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이나 일본이나 오야지(아저씨들을 일컫는 일본말)들에게 주어진 또 한번의 기회가 IC”라며 웃었다. 그가 10년 후 일본을 보여주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IC를 지목한 데에는 일본인들의 인생관 변화와도 무관치 않다. 예전의 일본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회사형 인간’으로 불렸다. 그러나 구조조정 파고로 회사가 곧 전부는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다양한 삶의 행태를 즐기는 일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카하시 이사는 “흔히 잃어버린 10년이라고들 얘기하지만 일본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체감했고 바뀔 준비를 했다는 점에서 결코 잃어버린 10년은 아니었다.”며 “다만 다이어트(구조조정)로 뺀 살을 흡수할 데가 없으면 말짱 헛일인 만큼 새로운 분야 개척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일본에서 뜨고 있는 ‘가이고(介護·노인요양사업)’를 그 대표적 예로 꼽았다. 그는 “한국도 중국에 추격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 분야 개척은 유효한 키워드”라며 “드라마 겨울연가나 영화 쉬리 등 영상·콘텐츠산업에서의 발전 속도가 비약적인 만큼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는 1인자형 사업에 (한국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1등을 따라잡는 ‘캐치업’형에서 ‘1인자(프런트 러너)’형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10년 후 일본의 또다른 키워드로 ‘기술 중심의 시즈(seeds)형’ 대신 ‘감성 중심의 니즈(needs)형’을,‘하이테크’ 대신 ‘하이터치’를,(골프채를 전부 갖고 다니는)‘풀세트형’ 대신 (분업의) ‘하프세트형’을 제시했다. hyun@seoul.co.kr 협찬 POSCO
  • [낮은 소리] 차별·협박·폭력속의 레즈비언들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은 우리 사회에서 이중으로 고통을 겪는다.‘동성애자’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아니, 여자가?”라는 편견과 맞물리면서 더욱 냉혹하게 증폭된다. 최근 레즈비언들이 따로 내던 목소리를 하나로 합쳤다. 지난달 국내 최초의 레즈비언 인권운동단체 연합체인 ‘한국레즈비언권리운동연대’가 발족됐다. 앞서 4월에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가 문을 열였다. 레즈비언들은 “레즈비언 인권운동의 첫 단추를 끼웠다.”고 말한다. 인권 비하로 고통받는 레즈비언들의 현실을 살펴본다. 레즈비언은 사회적 차별과 편견 외에도 높은 범죄위험에 노출돼 있다. 동성애자 폭로를 빌미로 갖은 협박에 시달리고 성폭행을 당하기까지 한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레즈비언들의 인권은 사회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동성애 폭로 협박에 성폭행까지 4년 전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알게 된 대학생 김민정(가명)씨. 그는 지난해 다른 대학에 다니는 동갑내기와 사귀었고, 같은 과 남자 선배가 이를 알게 됐다. 김씨는 “그 선배가 학생수첩을 내밀며 ‘여기 나와 있는 너희 집에 전화해 네가 동성애자임을 알리겠다.’고 협박했다.”면서 “그 후 1년간 선배에게 강간을 당하고 있다.”고 상담소에 도움을 요청했다. ‘한국 레즈비언상담소’의 전신인 ‘여성 성적소수자 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에 지난해 4월까지 접수된 상담사례를 보면 레즈비언의 4%가량이 폭력 등 범죄에 시달리고 있다. 동성애자임을 폭로하는 ‘아웃팅’ 협박이나 물리적 폭력은 레즈비언만 겪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협박의 수단이다. 지난해 인천에서는 기간제 교사 출신 김모(33)씨가 프리랜서 기자를 사칭해 10대 레즈비언들을 찾아낸 뒤 ‘주변에 알리겠다.’고 협박해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김씨로부터 피해를 당한 여고생은 모두 4명이었다. 이 사건은 피해 여고생이 상담소에 적극적인 도움을 청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상담소에 하소연을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상담소 관계자는 “동성애자가 아니어도 성폭행당한 사실을 신고하기는 쉽지 않은 것 아니냐.”면서 “여기에다 수사 과정에서 원하지 않게 동성애자임이 밝혀지는 게 두려워 그냥 참고 견디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실종된 10대 레즈비언의 인권 레즈비언 가운데 10대의 인권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남학생과 달리 여학생들은 성 정체성과 관계없이 그룹을 지어 다니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쉽게 동성애자임이 드러난다. 이를 두고 학교측은 ‘풍기문란’ 등 이유를 들어 태도 점수를 깎거나 심지어 전학을 보내버리기도 한다. 상담소측은 “2002년 서울 D여고는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한 학생을 강제 전학시켰다.”면서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학생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고 전했다. 또 친구들 사이에서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해도 학교에서 보호해주지 않는다. 지난해 서울 S여고에서 한 학생이 레즈비언인 친구의 사진을 찍어 전교 학급 게시판에 붙여 아웃팅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그 학생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지난달 20∼26일 열린 제9회 인권영화제에 국내 최초 레즈비언 인권영화인 ‘이반 검열’을 출품한 이영 감독은 “학교 내에서 레즈비언을 색출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면서 “학교에서 10대 레즈비언의 인권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현재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하는 한 대학생의 경우 고3 발표 수업시간에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한 뒤 교무실 앞에서 친구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했다.”면서 “하지만 교사들은 이를 못 본 척하는게 현실이다.”고 전했다. 영화 ‘이반 검열’은 실제로 현재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한 레즈비언의 생활을 담은 ‘셀프카메라’ 형식의 다큐멘터리다. ●가족의 폭력에서도 자유롭지 못해 레즈비언들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을 때에도 무력하다. 게이에 비해 물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해 가족들의 강압적인 행동을 그대로 참을 수밖에 없다. 동성 애인과 교제하는 사실을 부모에게 발각당한 한 상담자는 “부모님이 애인의 집에 찾아가 협박하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했다.”면서 “헤어지지 않으면 유학을 보내겠다는 것이 부모님 생각”이라고 하소연했다. 레즈비언 상담소 김김찬영 소장은 “2002년에는 딸이 동성 애인을 데려오자 애인을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을 만큼 레즈비언 중 가족한테 감금·폭력을 당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면서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한국레즈비언상담소 대표 김김찬영 “같은 동성애자인데도 게이보다 레즈비언에 더 큰 거부감을 갖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 김김찬영(25)대표는 우리나라에서 레즈비언의 위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차별에 더해진 또다른 차별, 그것이 우리나라 레즈비언의 현주소라는 얘기다. “여성과 남성의 동성애자 인권모임끼리 힘을 합치면 분명 각자 활동하는 것보다는 낫겠죠. 하지만 가부장적 문화 때문인지 통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따로 활동할 계획입니다.” 상담소가 문을 연 첫 해인 올해의 중점 사업은 청소년을 상대로 동성애를 제대로 알리는 것. 오는 7월부터 9월까지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5개 도시를 찾아가 ‘찾아가는 청소년 동성애 바로알기 강의(가칭)’를 가질 계획이다. 김 대표는 “청소년의 현실에 적합한 동성애 바로알기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있다.”면서 “강의 자체만으로도 10대 레즈비언으로부터 대화를 이끌어 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10대 레즈비언 인권 실태도 조사할 예정이다. 현재 상담소에 가입된 회원은 90여명. 이 가운데 활동가는 20명 정도다. 김 대표는 1994년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레즈비언 단체인 ‘여성 성적소수자 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에서 활동하다 상담소가 문을 열면서 대표를 맡게 됐다. “아직은 회원수도 적고 회비로 겨우 꾸려나가지만 그게 어려운 건 아닙니다. 아직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못한 상태인데 남들처럼 취직 준비를 하지 않고 여기서 일한다는 말을 못하는 게 힘들죠.” 본격적인 상담 활동을 시작하고 단체간 연대까지 시작했지만 얼굴을 드러내놓고 활동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도 저희가 마음껏 얼굴을 드러내놓고 활동할 날이 오겠죠. 하지만 당장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모든 동성애자들과 마찬가지로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다. 김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여자친구를 좋아하면서 혼란을 겪기 시작했고 2년간 고민 끝에 레즈비언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김 대표는 이렇게 혼자 고민하는 사람들이 상담소를 적극 이용해 주기를 당부했다.“분명 혼자서 고민하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섣불리 이성애자다, 동성애자다 판단하지 말고 상담소 문을 두드리세요. 특히 아웃팅을 이용한 범죄의 피해자가 된 경우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길 바랍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동성애’와 ‘이반’ 포털 금칙어서 제외 최근 들어 레즈비언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일부에서 감지된다. 아무래도 변화의 수용 폭이 넓은 사이버 공간이 그 출발점이다.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은 그동안 금칙어나 성인 키워드로 취급했던 ‘동성애’와 ‘이반’을 일반용어로 분류했다.‘이반(異般·二般)’이란 ‘일반(一般)’의 상대어로 국내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인터넷을 통해 많은 동성애자들이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지난달 다음, 야후코리아 등 8개 주요 포털에 대해 동성애 관련 단어 분류의 시정을 요구한 결과 이달 14일까지 모두 받아들여졌다.”고 밝혔다. 이전에는 벅스, 인터넷한겨레, 인터넷세계일보에서는 ‘동성애’가 성인 키워드로 분류돼 주민등록번호 입력 후 성인인증을 해야 관련 자료를 검색할 수 있었다. 네이버, 야후 코리아, 엠파스는 ‘이반’이 성인 키워드에 속해 있었다. 또 다음카페와 엔티카 엔피(파일 공유 사이트) 서비스에서는 ‘이반’이 금칙어로 분류돼 검색 자체가 불가능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동성애나 이반에 대한 사전적 정의 등 일반적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성인 키워드에서 제외했다.”면서 “대신 이 키워드로 검색이 되는 성인 관련 콘텐츠는 따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담소 관계자는 “처음에는 대부분 업체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였다.”면서 “하지만 이러한 분류가 동성애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라는 점을 설득하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사항에 대해서도 설명했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의 개별 심의기준에 ‘동성애’가 명시된 것을 삭제하라고 청소년보호위원회에 권고한 바 있다. 청소년보호위는 이를 수용,2004년 4월 시행령을 개정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한·일 우정의 해’ 기리는 공연 2題] 연극 ‘강 건너 저편에’

    [‘한·일 우정의 해’ 기리는 공연 2題] 연극 ‘강 건너 저편에’

    극작부터 연출, 배우, 스태프까지 한·일 양국 예술가들이 공동참여한 연극 ‘강 건너 저편에’가 새달 1∼3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예술의전당과 도쿄 신국립극장이 공동기획한 ‘강 건너 저편에’는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 기념으로 양국에서 초연돼 호평받았던 작품. 그해 한국연극평론가로부터 ‘올해의 연극베스트3’로 뽑혔고, 이듬해 일본에선 아사히신문연극 대상을 받았다. 올해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17일까지 일본 6개 도시에서 순회공연한 데 이어 한국 관객과 재회의 자리를 마련했다. 연극은 어느 따뜻한 봄날, 서울 한강 둔치에 소풍나온 한국인과 일본인이 털어놓는 사연과 에피소드로 채워진다. 한국어학당 강사인 문호는 소설가를 꿈꾸는 독신남이고, 그의 동생 재호는 캐나다 이민을 계획중 이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고민하고 있다. 문호의 수업을 듣는 일본인 학생들은 남편 따라 온 주부, 재일교포 수영선수, 세계여행중인 프리랜서 등으로 직업과 연령대가 다양하다. 극은 이들의 입을 빌려 한국의 가족과 이민문제, 일본의 평생직장 붕괴와 프리다족(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일본의 젊은이들) 등의 고민을 자연스럽게 펼쳐놓는다. 극작가 김명화가 집필하고, 연출가 이병훈과 히라타 오리자가 공동연출한 이 작품은 지극히 평범한 소재와 일상적인 대화로 한·일 현대사회의 단면을 잔잔하게 그려내는 사실주의 연극의 전형을 보여준다.‘서울 시민’‘도쿄 노트’ 등으로 한국 관객들에게도 낯익은 히라타 오리자는 “두 나라간의 미래에 거는 희망과 잊혀지는 과거 모두를 무대에서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 출연진도 쟁쟁하다. 한국에선 국립극단 원로배우인 백성희를 비롯해 이남희 서현철 정재은 등이 출연한다. 일본에선 스타 배우 미타 가즈요와 사토 치카오 등이 합류한다. 대사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동시 진행된다.1만 5000∼3만원.(02)580-130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나의 디자인 이야기/ 이나미 지음

    ‘빨간 리본을 풀면 책 가운데 네모난 창이 뚫려 있다. 우물처럼 파인 그 창문에 눈을 대면 세상은 모두 빨간색.’ 행위 예술가 이윰의 ‘빨간 블라우스’라는 책이다. 제목조차 불필요한 책. 표지 자체가 책의 제목은 물론 책 주인공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책이 예술이 되도록 꾸며졌다. 조용히 눈을 내리 깔고 참선에 들어간 현각 스님. 참선에 몰두한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사진은 밝게 웃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자 하는 스님의 바람을 꺾고 책 표지로 결정됐다. 책 앞날개에는 염주알을 헤아리는 그의 손이 보인다. 하버드대 출신의 젊고 잘 생긴, 현각 스님의 자전적 수행기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는 이렇게 그의 수행의 길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 주고 있다. ‘나의 디자인 이야기’(이나미 지음, 마음산책 펴냄)는 저자가 디자이너로서 걸어 온 길에 대한 보고서이다.‘빨간 블라우스’와 같은 도발적인 디자인에서부터 선을 다루는 불교서적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디자이너로서 맹활약 하고 있는 이나미. 그는 이 책에서 하나의 발상이 구체적인 형태가 되기까지의 모험, 열정과 비전, 디자인 철학을 두루 담았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대상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그의 이런 지론은 보통 책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을 깨는 책의 디자인으로 탄생된다. 텍스트 중심의 획일적인 책에서 벗어나 만지는 즐거움이 있는 책, 갖고 싶어하는 책으로, 기꺼이 구매하도록 만든다. 1부는 미국 유학시절 스승으로부터 ‘다만 흐르게 하라.’(Let it flow)는 화두를 얻은 귀중한 시기등 디자이너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2부는 13년간의 유학과 프리랜서 생활을 거쳐 이별앞에 억장이 무너지는 여인의 심정을 담은 한글 ‘억장체’개발,‘오, 필승 코리아’월드컵 사진전 등의 여러 분야에서 활약상을 소개한다.3부는 혼자 꾸려가던 스튜디오을 크게 성장시키며 살아온 10년을 돌아본다.1만 8800원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Love & Wedding] 김대호·고수민

    [Love & Wedding] 김대호·고수민

    1995년 12월30일. 이듬해 1월로 예정된 입대를 앞두고 대학생활과 입대 전의 생활을 정리하고 있던 중, 예기치 못한 자리에서 발랄하고 귀여운 그녀를 만나게 됐다. 입대하기 전이라 그녀에 미련을 두고 싶지 않아 마음을 비우자는 다짐을 했으나, 감정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입대 일주일전 그녀의 “보고 있어도 보고싶다, 그러나…”라는 말에 가슴이 쓰라려 입대하는 날 새벽까지 잠 한숨 못 자고 고민하던 난 훈련소로 따라와준 그녀가 한없이 고마웠고 그리워졌다. 입대 뒤, 편지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사랑의 감정을 키웠다. 그녀는 나와 4시간을 함께 있고자 10시간을 투자해 강원도 양구까지 몇차례나 면회오는 등 나의 군 생활을 뒷바라지했다. 그렇게 2년 2개월의 기다림과 사랑의 시간이 흘러갔다. 복학 뒤 캠퍼스 커플은 아니었지만 거의 캠퍼스에서 함께 지내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뒤 그녀의 대학원 입학과 나의 바쁜 회사생활로 서로가 지쳤던 탓인지 2002년 7년 동안 키워온 사랑에 위기가 왔고, 소중한 시간들이 묻혀버리는 듯했다. 결국 참기 힘든 2년간의 이별의 시간. 무수한 고민과 많은 아픔 끝에 결국 서로 떨어질 수 없음을 확인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이별 전의 열정어린 사랑보다는 진한 정과 서로의 깊은 마음을 느끼며, 자신의 발전보다는 상대방의 발전을 기원했다. 또한 분위기 좋은 카페보다는 길커피를 즐기며, 외모보다는 진실을 추구하며 서로를 감싸안게 됐다. 만난 지 정확히 9년이 되는 2004년 12월30일 “만난지 3287일 기념 파티하자.”고 불러낸 그녀에게 난 추억어린 수십장의 사진과 사진마다의 편지, 그리고 목걸이를 전하며 “나랑 살자. 이쁘게 이쁘게 같이 만들면서 살자.”라는 프로포즈를 날렸다.2005년 6월16일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수민이와 대호는 또 하나의 삶, 그리고 하나의 긴 여행. 그리고, 서로의 꿈을 하나로 모아 정진해 나아가야 하는 그런 인생항로를 그리고자 한다. 꽃다운 대학 1년때 멋모르고 만나 오랜 연애 끝에 시집오게 된 우리 예비 아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받아주신 부모님, 예비 장모님께 무한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랑과, 많은 행복을 위해 달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한다. 그리고 이렇게 바로 오늘이 바로 우리 사랑의 시작임을 알리며….
  • [우리 결혼해요]

    ■오늘 이 아름다운 자리로 매듭짓기까지 지켜봐 주시고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두 사람이 하나로 출발하는 날, 모두 오셔서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손주형(30·KTF) ●김혜진(27·특허청) ●일시 6월19일 오후1시 ●장소 대전 화이트하우스 웨딩홀 6층 사파이어홀 ■오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저희 둘의 만남을 열매로 맺습니다. 사랑을 하늘삼아 믿음을 땅삼아 딛고 온종일 햇빛 받는 풀잎처럼 그렇게 건강하고 밝게 살겠습니다. 오셔서 축복의 한말씀 전해 주십시오. ●김환수(32·윤직물산) ●한윤정(30·페라가모 코리아) ●장소:삼성동 섬유센터 ●예식일: 2005년 6월 25일 오후 1시 ■새로운 마음과 새 의미를 간직하며 저희 두사람이 새 출발의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좋은 꿈 바른 뜻으로 올바르게 살 수 있도록 축복과 격려 주시면 더없는 기쁨으로 간직 하겠습니다. ●도용석(33·톰앤제리 스튜디오) ●김은희(30·인테리어 프리랜서) ●장소 : 용산 국방회관 태극홀 ●일시 : 6월 25일 3시
  • 카스테라/박민규 글

    노랗게 물들인 펑크풍 헤어스타일, 얼굴 절반을 가리는 우스꽝스러운 안경, 피에로가 그려진 앙증맞은 초록색 시계. 소설집 ‘카스테라’(문학동네 펴냄) 출간에 즈음해 대면한 소설가 박민규(37)의 외양은 감각적인 그의 문체만큼이나 튀었다. 그래서 내심 기대했다. 엉뚱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소설속 주인공처럼 그가 쏟아놓을 기발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을. 하지만 추측은 빗나갔다. 달변은 고사하고, 가벼운 농담 한마디 듣지 못했다.‘도대체 소설에 등장하는 그 포복절도할 유머감각은 다 어디 간거야.’ 투덜거릴 찰나 그가 웃긴다. 그것도 하나도 웃기지 않은, 어쩌면 슬플 수도 있는 이야기로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킨다. 이를테면 이런 경험담. “고교시절 내신성적이 바닥이었다. 담임이 반평균 떨어트린다며 다른 반으로 옮기라고 6개월 동안 괴롭혔다. 칭찬받은 기억이 없어서 누가 칭찬하면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부터 든다.” 2003년 장편소설 ‘지구영웅전설’(문학동네 작가상)과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한겨레문학상)으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 박민규. 평론가와 독자들은 어느날 난데없이 등장한 그에게 ‘B급 영화의 상상력’‘감각적인 문체’라는 꼬리표를 붙여주며 환호를 보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다니고도 ‘내 평생 소설 쓸 줄은 생각못했다.’는 그는 해운회사 영업사원, 문예지 프리랜서 등 여러 곳의 직장을 전전하다 갑자기 소설이 쓰고 싶어 사표를 냈다. “장편을 먼저 쓴 건 뭘 몰라서였다. 나중에 선배를 만났는데 소설은 단편부터 쓰는 거라고 하더라. 아차 싶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단편을 썼다. 한 30편 쓰고 나니 어느 정도 만회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카스테라’는 이중 10편을 골라 묶은 첫 소설집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 지미 헨드릭스의 데뷔앨범 수록곡 숫자와 일부러 맞췄다. 엄청난 소음을 내뿜는 냉장고를 등장시킨 표제작과 지하철 푸시맨을 주인공으로 한 ‘그렇습니까?기린입니다’, 고시원에서의 체험을 그린 ‘갑을고시원 체류기’ 등은 작가 특유의 한없이 가벼운 상상력과, 밑바닥 삶에 탄탄하게 뿌리내린 현실감각을 동시에 보여준다. 단편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지난해 도서출판 작가가 소설가와 문학평론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가장 좋은 소설’로 선정됐다. 그러나 주변의 호들갑에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뽑히면 뽑히는 거고, 아니면 아닌거고…. 그런 것들은 글쓰기와 아무 상관없다. 상금은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고, 새로운 글을 쓰는 데 탄환이 될 뿐이다.” “밥 먹고 글만 쓰기 때문에 다작은 당연하다.”는 그는 “소설을 왜 쓰는지 아직 잘 모르지만 앞으로 어떤 얘기라도 소설로 쓸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 seoul.co.kr
  • [레저+α] 보리 베고 털고 까불면 밥한사발이 ‘뚝딱’

    [레저+α] 보리 베고 털고 까불면 밥한사발이 ‘뚝딱’

    ●보리베기 직접 체험해 보세요 한국민속촌은 12일 보리베기 체험행사를 한다. 잘 익은 보리를 베고 탈곡·도정·까불기 등 보리쌀이 나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행사다. 옛 생활모습을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져 가는 요즘, 전통 세시풍속도 즐기고 낫·도리깨·메통·키·절구 등 농기구들도 직접 만져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다.www.koreanfolk.co.kr, (031)288-0000 ●불우이웃돕기 야외콘서트 홍천 비발디파크는 18일 초여름 밤 자연에서 즐기는 야외콘서트를 연다. 30∼40대를 위한 콘서트로 70년대와 80년대의 대중문화를 이끌어 왔던 그때 그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추억의 포크송으로 해바라기의 유익종과 심장병어린이 돕기로 유명해졌던 수와 진, 이태원, 변진섭, 녹색지대 등이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준다., 또한 이번 행사의 수익금은 대명복지재단의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기탁된다.S석 기준으로 대인 2만원, 소인 1만원.www.daemyungcondo.com,(033)430-7540. ●세계박물관문화박람회 전세계 박물관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2005 세계박물관문화박람회’가 오는 7월1일부터 8월21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한국국제전시장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에는 세계 3대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과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 등 세계 30여개국 150여개 박물관과 미술관이 참여하는 최초의 박물관 문화행사다.www.wmce.or.kr ●대형가마솥 창포물에 머리감기 롯데월드는 단오를 맞이하여 ‘창포물 머리감기’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특별 이벤트를 11,12일 이틀 동안 매직아일랜드 고공파도타기앞 행사장에서 진행한다. 대형 가마솥을 설치하여, 창포물을 끓이는 과정을 선보이고, 단오 체험행사에 참여한 여성들에게 전문 헤어 코디네이터가 창포물을 이용하여 머리를 감겨준 후,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의 머리로 윤기있게 헤어 코디 서비스까지 해준다. 하루에 선착순 200명.www.lotteworld.com,(02)411-2000. ●단오민속놀이 + 짜릿 놀이기구 서울랜드는 단오절인 11일 그네타기와 창포물에 머리감기 등 전통놀이를 놀이기구에 접목시킨 이색 단오 행사를 준비했다. 이날 참가한 커플들에게는 그네로 변신한 스릴만점 ‘스카이 엑스’를 1인 요금(1만 5000원)으로 최대 3명까지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주며, 주부씨름대회, 창포 트리트먼트 추첨 등 단오 풍습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www.seoulland.co.kr, (02)504-0011 ●문경새재로 떠나자 답사여행 전문업체인 ‘구름에 달가듯이’는 16일 문경새재와 왕건촬영장, 김룡사를 돌아보고, 진남역 철로자전거 등을 체험하는 여행상품을 마련했다. 출발은 오전 9시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에서 한다. 회비는 3만 5000원.(02) 2282-1110. ●트래비 여행기자 모집 지난달 30일 창간한 여행전문 주간지 ‘트래비’는 제1기 트래비 라이터와 사진작가를 모집한다. 행사에 참가하려면 여행관련 에세이와 사진을 트래비 인터넷 홈페이지(www.travie.com)에 올리면 된다. 트래비는 다음달 말 부문별 시상을 통해 싱가포르와 제주 등 국내외 여행권과 MP3 등을 상품으로 제공하고, 트래비 전속 프리랜서 기자와 사진기자로 활동할 수 있는 특전을 제공한다.(02)757-8980. ●인터넷 업그레이드 이벤트 인터넷여행전문업체인투어익스프레스(www.tourexpress.com)는 실시간으로 항공권을 검색·예약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 오는 20일까지 ‘투익! 업그레이드 사이트, 업그레이드 고객만족’ 이벤트를 실시한다. 국제선 항공권을 구입하는 고객에게는 항공권 3% 캐시포인트를 추가 적립해주고, 여행 에피소드 공모전에 응모하는 고객을 추첨해 다양한 경품을 제공한다.(02)2022-6500.
  • [부고]

    ● 항일 애국지사 박래은 선생 일제시대 고등학교 교원으로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한 애국지사 박래은 선생이 지난 2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87세. 전북 금산 태생인 선생은 1937년 3월부터 순창군 금과보통학교 교원으로 재직하면서 역사교육을 통해 항일 민족의식을 심었고 주민들에게 식민통치의 부당성을 비판하다 40년 7월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선생은 이듬해 전주지법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82년과 90년 대통령 표창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 김경란 여사와 4남1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5일 오전 9시.(02)3410-6919. ● 조림학계 ‘거목’ 임경빈 교수 한국 조림학계의 ‘거목’ 서울대 임경빈 명예교수가 24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82세. 고인은 70년대부터 소나무를 연구하면서 좋은 종자를 채집해 전국에 심는 조림사업에 참여했다. 또 1992년부터 6년간 ‘아카시아연구회’ 초대회장을 역임하는 등 아카시아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또 지난 30여년간 나무와 숲에 대해 쉽게 쓴 ‘나무백과’도 6권 펴냈다. 유족은 부인 은금순(63)씨와 2남1녀.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 26일 오전 9시.(02)3410-6976. ●박병규(현대오일뱅크 생산본부 상무)씨 모친상 방극호(전 한국은행 자금부장)강석구(대산전자 대표)씨 빙모상 23일 충남 태안장례식장, 발인 26일 오전 8시 (041)674-0444 ●옥문길·문관(캐나다 거주)우석(한국베링거인겔하임 전무)씨 모친상 24일 일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6시 (031)904-7499 ●정인섭(서울대 교수)인혁(성원농원 대표)씨 부친상 이명숙(우리들내과 원장)김홍도(행정자치부)씨 시부상 2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6일 오전 10시 (02)3410-6920 ●김일윤(경주대 총장·전 국회의원)씨 모친상 24일 동국대경주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 (054)776-9411 ●김재진(엔프라니 대리)연우(더북컴퍼니 기자)씨 모친상 권혁재(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정기락(시온ST 대표)씨 빙모상 24일 강북삼성병원, 발인 26일 오전 6시 (02)2001-1097 ●이순영(전 인천시 건설국장)순달(인천시 상수도시설 관리소장)씨 모친상 24일 인천길병원, 발인 26일 오전 9시 (032)462-9261 ●이복렬(한전 원주지점장)씨 부친상 정원규(자영업)민영구(숭실고 교장)황남택(서울시성동교육청 교육장)이덕진(명문교회 목사)김식(세명대 교수)진근식(자영업)씨 빙부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7시 (02)3010-2291 ●권영호(프랑크프루트 오페라단)영인(G.O라인)씨 모친상 24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6일 오후 1시 (02)392-0499 ●서영환(KBS희극인)씨 별세 동현(네오크리에이터 실장)씨 부친상 안경찬(프리랜서)씨 빙부상 2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30분 (02)392-0299 ●강의성(일본삼성 자금팀 부장)씨 부친상 24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26일 오전 5시20분 (02)921-0899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초대 기상 통보관 지낸 김동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초대 기상 통보관 지낸 김동완씨

    날씨처럼 인생과 밀접한 것이 또 있을까. 흥미로운 속담도 많다.‘장마는 나이 많은 아내의 잔소리다.’‘봄비가 많이 오면 아낙네의 씀씀이가 헤프다.’‘더위 먹은 소는 달만 봐도 헐떡거린다.’ 올 여름에는 100년 만의 더위가 찾아온다는 얘기가 있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온다면 어떤 더위일까.‘무더위’는 ‘물더위’에서 유래됐다. 습도와 온도가 매우 높아 후덥지근하다. 끓는 물과 같다는 ‘가마솥더위’나 ‘찜통더위’도 비슷하다. 또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따가운 ‘불볕더위’도 있다. 어쨌든 여름손님(더위)이 있어야 가을손님(열매)도 온다고 했다. ●날씨는 하루에 서른여섯번씩 변해 추억의 방송멘트가 있다.“여우가 시집가는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한 과학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날씨는 하루에도 서른여섯번씩 변한다고 합니다. 봄날씨는 최소한 하루에 세 번 변합니다. 아침은 썰렁하고 점심은 덥고 저녁에는 바람이 붑니다. 돌아오는 길에 여벌의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기상대에서 김동완 통보관이었습니다.” 맞다. 이른바 우리나라 초대 기상통보관을 지낸 김동완(71)씨. 특유의 비유법과 정감 있는 목소리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나이 30대 이상은 적어도 하루 한번씩 김씨의 목소리를 들었을 정도다. 지금도 ‘프리랜서 기상해설가’로 활동 중이어서 45년 동안 ‘날씨해설 인생’이라는 흔치 않은 길을 걷고 있다. 에피소드 #1. 어린이날이었다. 아침방송에서 김씨는 “오늘은 어린이 얼굴만큼이나 해맑은 날씨가 되겠습니다.”라고 마무리 멘트를 했다. 이어 방송국을 나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김씨는 비를 피하기 위해 다시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다. 비는 계속됐다. 이때였다. 방송 자막을 통해 ‘오늘 효창공원에서 열리기로 한 어린이날 행사는 우천관계로 무산됐습니다.’라고 알렸다. 이를 보는 김씨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에피소드 #2. 봄날 일요일이었다. 부부동반으로 고향 친구들과 등산을 갔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산밑 음식점 등으로 비를 피했다. 하지만 김씨는 혼자 떨어져 초라하게 비를 맞아야 했다. 사람들과 맞닥뜨릴 경우 얼굴이 알려진 그에게 무슨 얘기를 할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날 아침 김씨는 “지역에 따라 한차례 소나기가 내리겠습니다.”라고 예보했다. ●올 100년만의 무더위, 그때 가봐야 지난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위치한 기상청에서 김씨를 만났다. 기상예보 역사의 산증인이나 다름없기에 인터뷰 장소를 기상청으로 정했다. 뒤뜰 의자에 앉자마자 다가올 여름 더위의 안부(?)부터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100년 만의 더위라는 말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한 박사가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 큰 더위가 올지 안 올지 아직은 미지수”라면서 “다만 요즘 계절의 변화를 볼 때 예년보다 10여일 이른 이달 하순부터 여름이 시작될 것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또한 “우리나라는 본래부터 더운 나라”라고 전제한 뒤 “예부터 겨울을 ‘동장군’(冬將軍)이라 하고 여름을 ‘염제’(炎帝)라고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면서 “그래서 겨울철에는 방한(防寒)이고 여름철에는 피서(避暑)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대륙성 기후지만 여름철에는 열대성 기후여서 매년 열대야 현상이 20∼30일, 낮기온이 섭씨 30도 이상인 열대일 현상은 57일가량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우리 조상들은 더위를 극복하려는 지혜가 많았습니다. 복(伏)날은 농업 위주의 전통적 생활환경에서 유래됐지요. 한여름철의 낮길이가 가장 길다 보니 노동시간이 자연히 많아지고 대신 휴식은 짧았습니다. 때문에 땀흘려 일했던 머슴들은 온·습도의 상승으로 왕성해진 병원체에 감염돼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라에서 복날을 정해 영양을 보충하고 하루를 푹 쉬게 했던 것이지요.” 하지(6월21일)에서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 넷째 경일을 중복, 입추 후 첫 경일을 말복날로 정해 하루를 쉬며 개장국 등으로 기력을 보충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또한 머슴들은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는 일이 그림의 떡이었기에 집집마다 흔하게 키우는 개고기로 대신했다는 자료가 전해온다고 부연했다. 결국 복날은 노동자의 보건일로 경륜이 높은 정치가가 노동자를 위해 베푼 선정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속담에 ‘여름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할 만큼 옛조상들은 나돌아다니지 않았습니다. 마을정자에 앉아 부채질 하나로 무더위를 이겨냈지요. 반면 지금의 우리들은 냉장고와 에어컨 등 냉방기구들을 잔뜩 갖추어 놓고도 여름철에 휴가를 떠납니다. 하지만 교통지옥 등으로 진이 다 빠져버리지요.” 지금의 여름철 휴가풍습은 북유럽 바캉스에서 유래됐으며 우리나라 기후로 볼 때 5월이나 10월 중에 휴가를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유했다. 또한 사람은 섭씨 20도부터 더위를,30도부터는 고통을 느끼며 더위는 빙과류로, 고통은 차가운 음료수로 해결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부부싸움 많은 여름엔 말조심을 무더운 여름을 지혜롭게 지내기 위해서는 날씨에 순응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불쾌지수가 높다고 하지 말고 상쾌지수가 약간 낮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 또한 여름철에는 부부싸움이 많기 때문에 각자 말조심하는 것도 가정에 도움을 준다고 귀띔한다. 여성의 의상과 온도관계에 대해 흥미롭게 풀이한다. 예를 들어 겨울철 실외온도가 섭씨 0도일 경우 무릎위 20㎝가량 올라간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면 체감온도는 영하 4도라는 것. 또 1㎝씩 올라갈 때마다 체감온도는 0.5도씩 더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반면 청바지를 입었을 경우 영상 6도의 체감온도를 느낀다고 한다. 따라서 겨울철에 미니스커트를 자주 입는 여성은 생리적 부담으로 임신했을 때 순산하기가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같은 대구공고를 졸업했다. 전씨와의 인연에 대해 “(전씨가)백담사에 머물 때 처음 만나 ‘(24회)선배님 26회 김동완입니다.’고 했더니 어깨를 툭치며 ‘(청와대)재임기간에 한번 오지 그랬느냐.’고 하며 무척 반가워했다. 하지만 곧 ‘그랬으면 지금쯤 청문회에 불려다니겠지.’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서울 연희동의 전씨 자택에서 고교 선후배간으로 몇차례 만났다고 귀띔했다. 김씨는 원래 공군 조종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대구공고 3학년때 공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응시, 합격했다. 그러나 최종 선발과정에서 탈락했다. 이어 조종간부후보생 시험에도 합격했으나 기초군사훈련 중 또 탈락했다. 어쩔 수 없이 공군하사관학교를 나와 조교로 공군복무를 마쳤다. 조종사의 꿈이 무너지자 그는 수학선생이 되려고 마음을 먹었다. 서울대 사대 원서를 접수하러 가던 중 우연히 국립중앙관상대 모집 공고를 보게 했다. 결국 발길을 돌려 관상대 시험에 응시,15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이때가 58년 12월. “사무관 시절 날씨 해설을 할 때 ‘기상대의 김동완 사무관입니다.’라는 어감이 안 좋아 편의상 ‘통보관’을 사용하기 시작했지요.”이후 중앙기상대 예보분석관-통보관-예보과장 등을 거치면서 TV와 라디오 등에서 방송해설을 꾸준히 맡아 기상캐스터의 대명사가 됐다.1남4녀를 둔 그는 요즘 날씨와 관련된 원고를 써주기도 하고 각종 단체와 기업체 등에서 초청강의를 하느라 분주하다. 주말에는 주례를 보느라 더 바쁘다. 지금까지 어림잡아 1000여쌍의 주례를 봤다며 웃는다. 그는 평생동안 날씨에 대해 한번도 짜증을 낸 적이 없다. 이는 곧 자연에 대한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란다. ■ 그가 걸어온 길 ▲1935년 김천 출생 ▲55년 대구공고 기계과 졸업 ▲59년 중앙관상대 공채8기, 국립기상기술원 양성소 1기 수료 ▲59년∼82년 예보분석관, 통보관, 예보과장 ▲63년 국제대학 법학과 졸업 ▲82년∼92년 문화방송 보도국 보도위원 ▲92년∼현재 프리랜서 활동 ▲97년∼99년 한국일기예보회장 ▲2000년∼2001년 자민련 김천지구당 위원장 ▲2000년∼2002년 기상정보 케이블TV웨더뉴스채널의 김동완 기상뉴스 진행 ■ 저서 날씨 때문에 속상하시죠(좋은벗,1998년) km@seoul.co.kr
  • 프리랜서·부업자 세금 줄어든다

    올해부터 프리랜서, 부업자들의 세부담이 줄어든다. 국세청은 15일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나 부업자들의 소득(기타소득)에 적용되는 ‘필요경비’ 공제율이 75%에서 80%로 상향 조정됨에 따라 올해부터 이들의 세부담이 줄어든다.”고 밝혔다. 기타소득에 대한 세액은 ‘소득금액(기타소득 총액-필요경비)’에서 ‘소득공제’를 뺀 뒤 산출한 ‘과세표준’에 구간별로 ‘9∼36%’의 세율을 곱해 산출한다. 올해부터 필요경비 공제율이 상향되는 기타소득은 ▲공익법인이 주무관청 승인을 얻어 시상하는 상금 및 부상 ▲지역·지상권의 설정 대여료 ▲외부 강연료 ▲라디오·TV 출연료 ▲전속계약금 등으로 비(非)정규직 프리랜서와 부업자들의 소득이 대부분 해당된다. 필요경비를 제한 기타소득의 연간 합계가 300만원 미만이면 과세대상에서 제외된다. 국세청은 “프리랜서, 부업자들도 근로·사업·부동산임대·이자·배당 소득 등 종합소득세 과세대상인 소득이 없고 기타소득만 있더라도 이달말로 예정된 종합소득세 신고기한에 맞춰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승호기자 osh@seoul.co.kr
  • 방송 외주제작 비뚤어진 성장

    방송 외주제작 비뚤어진 성장

    국내 방송의 외주제작 시스템이 ‘비뚤어진 성장’으로 신음하고 있다. 수년새 양적으로는 급팽창했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속빈 강정’에 불과한 것. 거대 자본과 스타 시스템으로 무장한 몇몇 대형 외주 제작사들이 방송사를 능가하는 파워로 몸집을 불리고 있지만, 대다수 외주제작사들은 여전히 방송사의 횡포에 치여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방송위원회와 독립제작사협회 등에 따르면, 현재 국내의 방송 외주제작 업체들은 400여개.98년의 100여개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방송사에 납품 실적을 전혀 올리지 못하고 있으며, 불과 상위 5개가 전체 외주제작 물량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모두 “우월적 지위를 앞세운 방송사의 횡포로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 영세 외주제작사와 거대 외주제작사에 속한 PD들의 목소리를 통해 한국 방송 외주제작 시스템의 현주소를 들여다 봤다. ●“외주 편법 계약·청탁성 아이템 강요 등 횡포 심해져” 수년째 모 방송사 교양 프로그램에서 VJ로 일해 온 A씨는 얼마전 개운치 않은 일을 경험했다. 제작진으로부터 “프리랜서 PD로 독립시켜 줄테니 한 코너를 맡아 납품하라.”는 요청을 받은 것. 주급 55만원을 받는 그로서는 평소 꿈인 외주 PD가 될 수 있고, 경제적인 문제도 숨통을 틔울 수 있을거라는 기대에 뛸듯이 기뻤다. 하지만 제작진이 내민 계약 조건을 접하고는 한숨만 토해냈다. 통상 10여분짜리 한 코너를 외주로 제작하면 연출료와 작가비 등을 합쳐 회당 250만∼500만원 정도의 제작비가 외주 PD에게 지급된다. 그러나 제작진은 “연출료만 70만원 줄테니 작가와 스크립터 등은 내부 고용된 인력을, 편집기 등도 회사 장비를 나눠 쓰라.”고 요구한 것. 김씨는 불공정 계약 요구를 거절하고 싶었지만, 방송사 눈밖에 나기라도 하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했다. A씨는 “외주 제작비를 남기려는 편법으로, 서류상에는 외주 제작업체에 연출료와 작가비 등을 모두 지급한 것으로 해놓는다.”고 귀띔했다. 취재 결과 이같은 ‘편법 계약’은 이 방송사 5∼6개 교양 프로그램들에서도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었다. 이 방송사의 또 다른 외주 PD인 B씨도 외주제작 시스템이 프로그램 제작비를 남기는 ‘비자금 창구’역할로 전락했다고 꼬집는다. 그는 “갈수록 광고 시장이 악화되면서 올해 전체 제작비가 5% 정도 삭감됐다.”면서 “기존 프로그램의 제작비를 보전하기 위해 영세 외주제작사에 줄 제작비를 줄이는 편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외주 PD만 죽어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방송사가 ‘갑과 을’의 관계를 이용, 시시때때로 쏟아내는 청탁성 아이템 삽입 요구로 외주제작의 자율성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도 털어놨다. 사전 기획과 관계 없이 고위간부와 연이 닿아 있는 특정 업체나 연예인을 프로그램에 끼워 넣어 제작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 특히 저작권과 관련된 불공정 거래는 영세 외주제작사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강조한다. 방송물의 저작권을 모두 방송사가 배타적으로 소유하기 때문에 외주제작사의 경쟁력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원 소스 멀티 유즈’라는 말은 전파를 소유한 방송사에만 해당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수주 물량은 넘치지만, 풍요속의 빈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 드라마 외주 프로덕션에서 지난해까지 기획 PD로 뛴 C씨. 드라마 아이디어 생산에서부터, 연출자나 출연 배우를 섭외하고, 예산을 짜고, 집행·결산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모든 살림살이를 도맡았다. 현재 쉬고 있는 이유는 물밀듯이 밀려오는 일 때문. 한 드라마를 끝내면 곧바로 다른 드라마를 준비해야 하는 현실에 지쳤다.C씨가 일했던 프로덕션에서 최근 제작·방송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는 드라마는 어림잡아 6∼7개에 이른다. 일이 없거나 작품을 만들어도 편성권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중소업체들과 비교하면 분명 ‘행복한 비명’이다. 하지만 그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들이는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대가는 형편 없다.”면서 “후배들이 같은 길을 지망한다면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다.”고 말한다. 소수 메이저급 프로덕션에 일이 몰리는 불균형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고 C씨는 강조한다. 그는 “매니지먼트 등을 함께하는 업체는 출연료에 관계없이 스타를 대거 동원할 수 있다.”면서 “시청률을 고려해야 하는 지상파 3사는 스타가 나오는 드라마에 우선적으로 편성권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타가 나오고, 드라마가 뜬다고 해서 그 자체로 제작사가 돈을 벌어들이지는 못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 방송사에서 실제작비를 제대로 보전해주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회당 평균 1억 2000만원이 든다고 쳐도,‘저비용 고효율’을 바라는 방송사가 내주는 부분은 약 60∼70% 수준. 광고 수익은 모두 방송사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그나마 해외 판매 등을 위한 저작권도 7대3이나 6대4로 방송사가 기득권을 갖는다. 때문에 ‘짭짤한 수익’을 챙기기 힘들어진 프로덕션들이 스타 매니지먼트를 통해 ‘박리다매식’으로 드라마를 제작하게 된다. 드라마에 출연한 소속 연예인들을 ‘무보수’로 이용하면서 CF 등으로 벌어오는 돈은 그대로 부가 수익으로 연결시킨다는 것. 특히 OST 등 제작을 통해 파생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음반 제작에도 손을 대는 등 문어발식 사업확장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C씨는 “악순환을 없애기 위해 방송사와 외주제작업체 사이의 불균형적인 시스템을 털기 위한 법적 제도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영표 홍지민기자 tomcat@seoul.co.kr ■ 고장석 독립제작사협회장 “프로그램 생산을 독과점해온 방송사들이 이제 시장논리에 따라 검증받을 때가 됐다고 봅니다.” 독립제작사들의 모임 ‘한국독립제작사협회’를 3년째 이끌고 있는 고장석 회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협회는 문화관광부에 등록한 400여개 독립제작사 가운데 146개사가 가입한 단체다. 그러나 이 숫자가 고정적인 것도 아니고 실제적이지도 못하다.“시장이 영세하다 보니 수십개 업체가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합니다. 협회에 가입한 곳이 146개사라고 하지만 협회에 제대로 회비를 내는 곳은 절반에 불과합니다. 그 정도만 어느 정도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라 보면 됩니다.” 그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독립제작사가 꼭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사장되는 우수인력들이 너무 많다.“PD를 지망하는 전국 대학생들이 매년 5000∼6000명씩 쏟아집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만 기존 방송국 PD로 일합니다. 나머지는 독립 제작사에서 흡수해야 합니다.” 또 방송시장이 스튜디오, 녹음·편집실 등 인프라 제공업체와 독립 제작사, 방송사로 삼원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시장이 형성되면 고용창출 효과도 무시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 회장은 요즘 특히 외주 전문 채널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껏 모든 방법을 다 써봤는데도 개선이 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결국 외주제작 채널 도입만이 답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고 회장은 방송위원회를 강력히 비난했다. 방송사 이익을 위한 활동만 한다는 것이다. 방송사들이 긴급 재난방송시간을 제외하고 40%의 시간을 외주제작에 할당하게 되어 있는 방송법을 어기고 있는데 방송위가 눈감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한 코너만 제작해도 외주 제작에 포함시키고 뉴스시간은 보도프로그램이어서 외주 제작에서 빼야 한다고 합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보도는 국가적 행사라서 빼고, 자회사가 제작하는 것도 외주에 포함시킵니다. 방송법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이지요.” 외주제작 채널이 지나치게 상업적이지 않으냐는 물음에 대해 고 회장은 현실을 인정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답했다. “공영성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에 재갈을 물린 게 전두환 정권 때 만들어진 지금의 틀입니다. 지금 그 틀을 깰 수 있을까요?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상업화된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고 대안을 찾는 게 더 빠른 방법입니다.” 거듭 쓴 소리를 하면서도 그는 마냥 속이 편한 것만은 아닌 듯했다. 고 회장 또한 방송사(MBC) PD 출신이고, 방송사 사람들도 다 알고 지내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위기감과 고충도 다 알고 있다.”며 “그렇지만 해야 할 소리는 해야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곤혹스런 방송위 방송위원회는 방송사와 독립제작사간 갈등에 곤혹스럽다. 독립제작사라 해도 회사마다 사정이 천차만별이어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모든 독립제작사들이 울고만 있는게 아니라, 프로그램의 질에 자신이 없는 이유 등으로 해서 현 시스템 유지를 바라기도 한다. 거기에다 콘텐츠진흥과 관련된 사안은 문화관광부 소관인데다 기본적으로 외주제작은 방송사와 독립제작사 당사자간 계약 관행이 굳어진 만큼 끼어들 여지가 적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당사자들을 불러 외주개선협의회도 열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계약에 관한 표준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런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데 있다. 그럼에도 방송위는 올해 안에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미 공정거래위원회는 독립제작사에 대한 방송사의 우월한 지위를 문제삼아 하도급법 개정을 통해 방송프로그램 유통 문제에 개입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위 관계자는 “현재 방송법 등 관련 조항이 너무 포괄적이기 때문에 편성비율 고시 개정 등을 통해 외주제작의 개념과 범위 등을 더욱 명확히 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20&30] “우리는 21세기 노마드(유목민)”

    [20&30] “우리는 21세기 노마드(유목민)”

    “구속은 그만, 소유도 그만.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과거 유목민들이 비옥한 목초지를 찾아 떠돌았던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도전과 방랑을 두려워하지 않는 ‘노마드(nomad)족’ 3명을 만나봤다. ●세계 누비며 삶의 의미 찾는 21세기 유목민 ‘원조 노마드족’은 뭐니뭐니해도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한 곳에 뿌리박고 살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과거 유목민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 곳곳을 누빈다. 박동식(39·프리랜서 여행가)씨는 10년 경력의 여행 전문가다. 그는 마음이 동하면 언제나 배낭에 옷 한 벌, 필기도구와 세면도구만 챙겨넣고 훌쩍 길을 나선다. 길에서 배운 경험과 느낌을 글로 옮기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이를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여행 자금을 번다. 그는 현재 월간지 페이퍼와 행복한 세상, 농협사보 등 3개 매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하며 한 달에 150만원 정도 벌고 있다. 박씨는 1995년 다니던 전자회사를 그만두고 인도 여행을 떠나면서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약 2년 주기로 한번에 3∼6개월씩 여행을 다녔다. 중국, 홍콩,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네팔, 티베트 등 아시아 국가를 대부분 섭렵했다. 박씨는 “10년이 지나도 항상 똑같은 유럽과 달리 아시아 나라들은 한 달이 다르고 1년이 다를 만큼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 변화를 놓치고 싶지 않아 아시아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여행의 정의는 ‘일상을 포기하는 것’. 훌쩍 인도로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보다 대단해서가 아니라 책임져야 하는 가정도, 포기하기 힘들 만큼 절실하게 원했던 직장도 없었기 때문이란다. “광고카피 중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란 말이 있잖아요. 하지만 정말로 절실하다면 열심히 일하지 않았어도 떠나야 하는 거죠.” 열심히 일하지 않았어도 떠나고 싶을 때 떠난 뒤 돌아와서 다시 열심히 일하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또 가족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절실함을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다면 충분히 허락을 구할 수 있는데, 용기가 부족할 뿐이라는 것이다. 박씨는 오는 6월 다시 티베트로 떠날 예정이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 여행다닐 때 더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는 걸 보니 이제 방랑이 천성으로 굳어진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직업도 맞춤형 “그때그때 달라요.” 평생 직장을 거부하고 자기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직업을 개척하거나 아예 직업이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수시로 맡겨진 일에 대한 대가만 받는 ‘잡 노마드(job nomad)족’도 늘고 있다. 김병문(36·벤처기업 운영)씨는 홈페이지 제작 전문가. 그는 97년 대학졸업 이후 홈페이지 제작 벤처기업을 전전해 왔다.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단위로 직장을 옮겨 지난해 3월 창업을 하기까지 4∼5곳의 직장을 옮겨다녔다. 돈을 더 준다고 해서 따라간 적도 있었고, 프로젝트가 마음에 들어 직장을 옮긴 적도 있었다. 김씨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 이런 ‘잡 노마드족’들이 부쩍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누구나 거대한 조직에서 안정된 생활을 원하고 있지만, 이미 나이가 들면 독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제환경이 찾아왔다.”면서 “직업이 아니라 일을 좇아 그 일을 수행하고 대가를 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위해 마음의 준비와 함께 전문적인 실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지난해 1주일에 2∼3권씩 모두 135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그는 ‘잡 노마드족’으로 살면 일할 때에는 일에 몰두하고 남는 시간에는 다른 데 신경을 끈 채 자기계발에만 매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6개월 정도 서울시청 홈페이지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공무원 생활을 옆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안정적인 생활에 자부심이 높아 보였지만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은 부족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조직에 속해 있으면 조직을 위한 것밖에 보이지 않아 자신을 돌아볼 시간은 적다.”면서 “지금 일하고 있는 홈페이지 제작회사에서 어느 정도 수익을 내게 되면 구인구직 전문회사라는 새로운 일로 또다른 모험을 시작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온·오프라인 상점서 ‘알짜’만 골라내는 쇼핑 9단 치밀한 사전정보 수집으로 온·오프라인의 상점들을 찾아다니며 값싸고 질좋은 상품만을 낚아채는 ‘쇼핑 노마드족’도 늘고 있다. 김민지(25·여·방송작가 교육원)씨의 쇼핑 실력은 웬만한 상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상품별로 애용하는 상점은 따로 있고, 수시로 정보를 업데이트해 새로운 ‘필드’를 개척한다. 김씨는 화장품을 살 때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온라인 매장을 주로 이용한다. 하지만 온라인 구입은 직접 향을 맡아보거나 자기 피부에 맞는지 확인해 볼 수 없는 게 맹점. 김씨는 “자신의 피부 특성을 정확히 점검하고, 이미 상품을 써본 소비자들이 올리는 제품사용 후기를 ‘간접 테스트’로 이용해야 한다.”면서 “후기를 통해 더욱 저렴한 쇼핑몰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판매자들이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최저가로 물건을 살 수 있는 경매전문 인터넷사이트 ‘옥션’이나 매일 제한된 시간 동안만 저렴한 상품을 내놓는 인터넷 쇼핑몰의 ‘타임 세일’도 자주 이용한다. 회원 공지메일 등을 통해 정보를 얻어 꼼꼼히 챙겨뒀다가 세일 시간대에 접속, 실속있는 쇼핑을 한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재래시장에 가더라도 소매상부터 먼저 찾지 않는다. 오후 10시 이후 도매상에 가면 소매업자들이 물건을 구입하러 많이 오기 때문에 거기서 오가는 대화 속에 물건 값을 파악하고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옷을 입어보지 못해 구입하기 꺼려진다면 소매상으로 간다.”면서 “이미 도매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격 흥정에 훨씬 유리하다.”고 귀띔했다. 유지혜 이재훈기자 wisepen@seoul.co.kr ■ 노마드족도 가지가지 ‘노마드족’이 확산되면서 그 종류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우선 노마드족의 대명사격이었던 ‘디지털 노마드족’은 ‘유비 노마드(ubi nomad)족’으로 진화하고 있다. 무선랜 노트북과 PDA(개인휴대단말기)폰, 외장형 하드디스크 등 최신 전자제품으로 무장하고 공간 제약 없이 업무를 처리하는 디지털 노마드족의 개념이 컴퓨터 접속 네트워크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환경에 맞게 더욱 정교화된 것. 유비 노마드족은 텔레매틱스가 장착된 자동차로 처음 가는 곳도 지름길로 척척 찾아가고, 무선전파식별(FRID)장치가 내장된 휴대전화로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버스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알아본다. 밖에서도 휴대전화로 집 안의 가스밸브를 잠글 수 있고, 목욕물도 미리 데워 놓는다. 유비 노마드족에게는 멀리 있는 친구에게 자기 위치를 알려주는 것도 식은 죽 먹기다. 겉치레 문화를 거부하고 경험을 존중하는 ‘노블레스 노마드(noblesse nomad)족’도 각광받고 있다. 명품, 골동품 등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여행, 레저, 공연 관람 등 무형의 경험을 수집하는 새로운 소비자층이다. 비싼 물건으로 치장하기보다는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경험을 재산으로 삼는 ‘귀족형 유목민’이다. 이들은 더 많이 보고, 느끼는 체험적인 삶을 통해 자기계발을 하고, 궁극적으로는 자기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기 침체와 취업난이 만든 슬픈 신조어도 있다. 이른바 ‘강의 노마드족’으로 불리는 취업 준비생들. 취업 경쟁에서 자격증과 영어 점수 등이 중요해지자 전공 과목 외에 ‘실용형’ 강의를 들으러 이곳저곳 유랑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토익, 취업 강좌, 경영학 강좌 등에 가 보면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서로 밀어주니 몸값 쑥쑥 미래 쑥쑥

    서로 밀어주니 몸값 쑥쑥 미래 쑥쑥

    재(財)테크든, 자(自)테크든 선택의 핵심은 결국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하는 문제다. 미혼일 때는 선뜻 공부에 투자를 아끼지 않다가도 결혼을 하고 나면 이런 저런 돈 쓸 곳이 많아지면서 자기계발은 뒷전으로 밀리곤 한다. 그럼에도 부부가 함께 노력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2030 부부가 늘고 있다. 김용섭(33)·전은경(30)씨는 “지속적인 자기계발로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가는 것은 ‘1+1’이상의 시너지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부부 자테크족’이다. 김씨 부부는 결혼을 앞둔 2001년 2월 ‘능력과 전문성 키우기 5년 계획’을 세웠다. 당시 김씨는 컨설팅회사에서, 전씨는 디자인 전문교육기관에서 그래픽디자인 강사로 일하며 각각의 분야에서 책을 내는 등 이미 상당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서 보다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으고 서로를 전폭적으로 밀어주기로 했다.5년 동안 석사학위를 하나씩 따고, 전문성을 키워나가면서 해마다 두 사람이 함께 책을 한권씩 내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두 사람은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대학원 공부와 다양한 저술활동을 시작했다. 학비와 정보수집 비용 등으로 해마다 3000만원 이상을 썼다. 4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투자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은,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숙명여대 원격대학원 등에서 디지털콘텐츠와 웹미디어 전략을 가르치고 있다. 미디어전략을 분석하는 컨설팅과 각종 칼럼을 쓰는 일도 꾸준히 했다. 전씨도 이화여대 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매니지먼트를 공부하면서 현재는 디자인 전문 잡지사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책 쓰기 목표도 거의 이루었다. 지금까지 김씨가 8권, 전씨가 5권의 책을 펴냈다.‘1위 웹사이트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2003년)’,‘전략적인 웹디자인(2002년)’ 등은 두 사람의 전문 분야를 접목시켰다. 부부칼럼니스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결혼은 안 미친 짓이다(2004년)’ 등 함께 쓴 책도 3권이다. 김씨는 “디지털 시대에 조직에 기대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미지와 가치를 바탕으로 한 ‘1인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차근차근 달성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한 사람이 열 걸음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에게 투자하면서 같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더 의미있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또 “자신에 대한 투자에도 시기가 중요한 만큼 20∼30대가 최적기”라면서 “결혼은 자기발전의 걸림돌이나 사회활동의 제약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동기부여이며 상호 발전을 위한 기회”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물론 투자에는 책임과 노력이 따라야 하고 때로는 기대 이하의 결과도 감수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모든 투자가 다 그렇고, 그것이 또 투자의 매력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아파트 평수를 늘리는 것보다 자기계발로 3000만원짜리 몸값을 1억원짜리로 만들어 낸다면 이보다 현명한 투자는 없을 것”이라면서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에 자기 자신만큼 좋은 대상은 없다.”고 단언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生生인터뷰]소설 ‘유랑가족’·산문집 ‘사는게’ 펴낸 소설가 공선옥씨

    [生生인터뷰]소설 ‘유랑가족’·산문집 ‘사는게’ 펴낸 소설가 공선옥씨

    ●가난속 힘겹게 사는 가족들 그려 그의 소설은 늘 조금은 가난하고, 더러는 배가 고프다. 하지만 그를 아는 독자라면 이때의 ‘가난’이 땟국에 절은 남루함이 아니란 사실쯤은 눈치챌 것이다. 핍진한 현실을 흥분 없이 꼿꼿이 대면하고 보듬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 어느 작가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 돼 준 공선옥(42)이 새 소설을 냈다. 신작 ‘유랑가족’(실천문학사 펴냄)은 희망없이 부유하는 부초 같은 인간군상을 불러낸 연작소설이다. “산문집 ‘마흔에 길을 나서다’(2003년)를 쓰느라 돌아다닐 때 많은 사람들을 만났더랬어요. 그때 마주친 사연들이 상당부분 녹아들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결국 그 모든 것들이 작가인 나, 공선옥의 삶이겠지요만.” 7일 인사동에서 만난 그는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행위는 그 자체가 삶”“쓴 건 나였지만, 글들이 나에게로 와주었다.”는 등 선문답 같은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5편이 연작소설 얼개인 이번 책의 주인공은 어쩌면 현실을 힘겹게 부비며 사는 ‘가족’들이다. 글을 끌어가는 동력은 그 가족군상을 헤집고 실핏줄처럼 흐르는 ‘가난’일 것이다. ●‘가난 심술만큼 희망 힘도 세다’ 메시지 연작소설을 이어주는 거멀못 같은 인물은 프리랜서 사진작가 ‘한’. 그 역시 어렵사리 한 가정을 꾸려가는 힘없는 가장이다. 그의 눈을 빌려 시골에서 도시로 또는 도시에서 시골로 정처없이 떠도는 가족들이 지면으로 불려나온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피해 서울로 달아난 여자 용자, 시골에 초라하게 남겨진 아이들, 그리고 그녀를 찾아나선 남편 달곤은 반쪽짜리 가족(‘겨울의 정취’)의 자화상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출발한 이야기는 이리저리 흩어진 ‘가족의 파편’들이 궁핍을 매달고 떠도는 형상들을 줄곧 쫓아다닌다. 작가에게 맨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왜 이렇게 가난에 집착하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답은 간명했다.“내 눈에는 모든 인간들이 다 가난해 보여요. 우리 속에 마치 가난의 싹이 내장돼 있는 것처럼….” 도망쳐온 서울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전전하는 여자 용자, 그를 찾겠다며 서울바닥을 떠도는 남자 달곤, 돈을 좇아 한국 농촌으로 시집왔으나 결국 서울로 ‘탈출’한 조선족 여자 명화, 명화를 찾아 서울 공사판을 전전하는 남편 기석, 역시 명화를 찾아 입국한 조선족 전 남편 용철…. 만화경 같은 이들의 이야기는 메마른 무채색 풍경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작가가 보내는 애정의 눈길은 예사롭지 않다. “거덜난 인간들을 앞세운 이번 글들을 쓰면서 의외로 무척 경쾌했다.”는 그는 “뭔가 물질이 치덕치덕 발라진 인생을 쓰는 게 내겐 오히려 더 답답한 일”이라고 했다. 그에게 있어 가난이란,‘없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작가의 말마따나 “가족을 잃은 외로움으로 또 다른 가족을 일구고 사는 가족들”이 소설에 등장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의 아이를 거두는 또 다른 여자(‘그들의 웃음소리’), 고아가 된 조카딸이 유일한 혈육인 고모네에서 가족으로 엮이는 이야기(‘남쪽 바다, 푸른 나라’)가 그들이다. 검질긴 가난의 심술만큼이나 희망의 힘도 세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잊지 않은 셈이다. ●산문집엔 어린시절·독서일기 등 담아 그 자신 “가난한 유랑작가”라고 잘라 말했다. 초등학생 딸을 거두며 춘천에서 산 지 3년.“전주에 살고 있는 딸이 대학엘 들어갔으니 다시 그곳으로 이사한다.”는 그 삶도 꼭 ‘유랑’을 닮았다.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열여섯살 이후 광주, 여수, 서울, 춘천으로 어지간히도 자주 거처를 바꾸고 살았다. 새 소설이 베스트셀러로 뜨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손사래 치는 품이 영락없이 푼푼한 시골아줌마다.“내 책이 거그(베스트셀러 목록) 올라가믄 부끄러워 살간디요? 없는 데 워낙 익숙해놔서….” “출판사에서 계약금을 받아 썼으니 머지않아 동화책도 낼 것”이라며 또 한바탕 웃어제꼈다. 그는 이번에 어린시절, 독서일기 등 생활이야기를 묶은 산문집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당대 펴냄)도 함께 냈다. 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재계인사이드] 둘째아들 사장취임… 김우중家 재기?

    부활 날갯짓? 성마른 모정?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둘째아들 선협(36)씨가 골프장 사장으로 취임한 것을 둘러싸고 해석이 분분하다. 김우중가(家)의 조심스러운 부활 날갯짓으로 보는 관측과 아직 김 전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와 여론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기상조라는 부정적 관측이 엇갈린다. 게다가 김 전 회장은 최근 프랑스에서 또 고소를 당했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선협씨는 경기도 포천의 포천아도니스CC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룹 해체후 조그만 벤처회사를 경영하던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실질적으로 어머니(정희자) 소유인 이 골프장 이사로 근무해왔다. 법원은 지난달 이 골프장이 “김 전 회장이 아닌 가족들 재산”이라고 판결, 채권단과의 소유권 분쟁은 일단락된 상태다. 대우그룹의 2세가 최고경영자(CEO)로 경영 전면에 본격 나선 것은 처음이다. 어머니 정희자(65) 전 대우개발(현 필코리아리미티드) 회장의 의사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 CEO가 나이를 이유로 은퇴 의사를 밝히자 이번 기회에 “기가 죽어 있는” 자식들을 위해 사장 자리를 맡겼다는 후문이다. 정 전 회장과 가까운 일부 인사들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만류했으나 정 전 회장이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한다. 셋째아들 선용(30)씨는 미국 하버드대를 나와 외국에 머물고 있다. 미혼으로 아직 이렇다 할 직함이 없는 상태다.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을 지낸 맏딸 선정(40)씨는 프리랜서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큰아들 선재씨는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선협씨는 포천아도니스CC 입구에 짓고 있는 C&H호텔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관, 수영장, 사우나 등을 갖춘 5층짜리 이 호텔(76실 규모)은 5월께 개장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발판으로 김우중가가 재기를 모색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김 전 회장에 대한 ‘사면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 전 회장이 며칠전 여당의원 3명에게 후원금을 낸 것도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정 전 회장은 경주힐튼호텔의 지분도 9% 갖고 있다. 옛 대우맨들이 만든 ‘하이대우’ 홈페이지도 최근 들어 부쩍 내방객이 늘었다. 김 전 회장에 대한 재평가와 ‘거자필반’(去者必返·떠난자는 반드시 돌아온다)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많다. 얼마전에는 김 전 회장의 비밀 귀국설이 제기돼 한바탕 소동이 인 적도 있다. 그러나 김우중가의 이같은 움직임을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다.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기소유예된 상태다. 프랑스 로렌지방의 옛 대우전자 공장 근로자들은 지난 25일 “회사 파산을 초래한 김 전 회장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봤다.”며 김 전 회장을 현지 검찰에 고소했다. 김 전 회장은 1999년 10월 출국한 이후 줄곧 해외에 머물고 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성공시대] 세련된 고깃집 ‘신씨화로’

    [성공시대] 세련된 고깃집 ‘신씨화로’

    전통적인 삼겹살 집이 많은 서울 서소문에서 현대적인 감각의 신씨화로를 개업해 손님의 입맛을 사로잡은 송미화(표지42)씨. 고소득 화이트칼라를 대상으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걸쳐도 분위기를 찾는 게 요즘 추세다. 젊은이들의 취향에는 ‘○○회관’의 전통적인 고깃집보다는 깔끔하고 세련된 레스토랑 스타일이 제격이다. 이를 꿰뚫은 고깃집에는 사람들이 항상 북적인다. 신씨화로 서소문점 송미화(42)씨는 “서소문 일대에는 전통적인 삼겹살집은 많지만 현대적인 감각의 삼겹살집은 없었다.”면서 “이런 희소 가치가 맞아 떨어져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초창기부터 손님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서소문동 일대에는 삼성본관을 비롯, 신한은행 에어프랑스 러시아 대사관 등 비교적 급여를 많이 받는 직장인들이 몰려 있다. 이들은 와인으로 입맛을 돋운 뒤 삼겹살을 씹을 정도로 맛과 멋을 중시한다. 아직까지는 삼겹살에 곁들인 와인이 대중적이지 않아 판매량이 월 20만∼30만원에 불과하지만 점차 늘어가는 추세다.1병에 1만∼15만원의 다양한 와인이 삼겹살집 한 쪽에 빼곡하게 쌓여 있다. 대개 2만∼3만원짜리 와인이 식탁에 오른다. 삼겹살은 1인분에 8000원.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 삼겹살에 곁들인 와인 “와인을 마시는 격조 있는 손님들이 다수라서 그런지 매너가 참 좋아요. 영업시간을 연장해 달라는 손님들이 거의 없으며 술을 파는 가게에서는 여러 차례 겪었을 법한 싸움도 전혀 일어나지 않았어요.”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로만 생활하던 송씨는 문득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에 프리랜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소득이 일정치 않자 창업으로 방향을 돌렸다. 장사는 처음이지만 지인의 소개와 남편의 상권 분석을 보고 선뜻 가게를 차렸다. 대신 가게 운영 등 제반사항을 본사에서 지원하는 프랜차이즈를 골랐으며 초기 투자비용을 줄이기 위해 유명 업체보다는 인지도가 다소 낮은 중·소규모 업체를 택했다. “14년 동안 남편이 서소문 일대에서 직장생활을 한 덕에 이곳 상권을 비교적 상세하게 분석할 수 있었어요. 또 지인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여서 가게의 형태와 영업현황 등을 장기간 살펴본 뒤 자신감을 얻어 지난 2003년 10월 문을 열었습니다.” ●월 매출 4000만원… 순익 25%선 실평수 28평에 60석을 갖춘 삼겹살집이 올리는 월 매출액은 4000만원 안팎이다. 이 가운데 순이익은 25% 정도로 월 800만∼1000만원의 이문을 남긴다.2층에 자리잡은 고깃집치고는 양호한 경영 실적이다. 초기 투자 비용은 가게를 마련하는 데 드는 비용을 빼고 인테리어 비용 등을 합쳐 1억원가량이 들었다. 오피스 타운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듯 점심에는 5000원짜리 김치찌개와 깡장 비빔밥, 저녁시간에는 삼겹살과 갈비 등 육류가 주로 팔린다. 점심 시간에는 테이블 회전수가 많은 대신 고객 1명당 매출액이 낮고 저녁에는 고객의 이동이 적은 대신 1명당 매출액이 높은 특성을 보인다. 두 시간대의 매출액을 비교하면 1대2 정도. 직장인들이라서 10명 가운데 9명은 신용카드로 결제한다. “매출액은 휴일이 많은 1∼3월 줄어들며 4∼6월에 높은 편입니다. 특이한 점은 날씨가 좋으면 가게에 손님들이 많아요. 비가 오면 직장인들은 구내 식당을 이용하거나 배달을 시키는 등 밖에 나오기를 꺼리죠.” ●외국인 발길도 잦아 송씨는 애로사항으로 광우병 파동으로 올라간 재료 비용과 경기 불황을 들었다. 이런 외적인 사항 외에 내부적인 것으로는 점심 시간대에 손님들이 갑작스럽게 몰려 서비스가 어렵다는 점과 사람관리를 들었다. 이 가게에서는 직원 2명과 아르바이트 직원 3명 등 5명이 일하고 있다. “유럽의 레스토랑처럼 오후 2∼5시에는 영업을 하지 않아요. 직장인이 주 고객층인 점을 감안해서 효율성을 높인 조치죠. 또 이 일대 분위기를 반영하듯 우리 가게에서는 삼겹살을 먹는 외국인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글 사진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가족창업 ‘성공 예감’

    가족창업 ‘성공 예감’

    가족 창업이 증가하고 있다. 형제, 자매 등 가족이 힘을 합쳐 동업을 하다 보니 호흡이 척척 맞아 업무효율이 높다. 창업자금에서 부담을 더는 등 사업 초기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는 일석이조의 창업 방식이라고 가족 창업자들은 말한다. ●가족창업으로 좋은 아이템은 가족끼리 동업을 함으로써 운영은 물론 매출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업종이 좋다. 대표적 업종은 외식업. 창업자금이 많이 들고 육체적으로도 힘든 업종이기 때문에 가족 동업에 효과적이다. 배달업종은 주방과 배달을 분담해 고객확보에 유리하고, 새벽까지 점포 문을 여는 주점의 경우 시간대별로 업무분담이 가능해 체력을 비축할 수 있어 좋다. 라이스치킨 전문점, 보쌈 전문점, 배달전문 패밀리 레스토랑, 꼼장어 전문점, 퓨전 포장마차, 세계맥주 전문점 등이 있다. 판매업은 생활밀착형 사업을 중심으로 가족창업이 활발하다. 즉석반찬 전문점은 자매지간이나 동서지간이 해볼 만하다. 최근 온라인 창업도 가족창업 아이템으로 부상하고 있다. 온라인상 홍보 및 주문관리와 오프라인상 구매·배송을 분담해 운영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서비스업의 경우 각자의 고정고객을 밀착 관리, 매출을 늘릴 수 있다. 가격파괴 피부관리점, 감성놀이학교, 방문 컴퓨터수리업 등이 있다. ●형은 고객관리, 동생은 매장관리 디자인 관련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리랜서 산업제품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정준영(32)씨는 지난해 결혼하면서 창업을 결심했다. 월 수입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중에 들고 있는 자금은 5000만원. 자신이 계획한 사업을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돈이었다. 생각 끝에 동생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당시 수입 오토바이 딜러로 일하고 있던 동생 민영(30)씨도 영업이 잘 되지 않아 전업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업종은 세계맥주전문점 ‘와바’(www.wa-bar.co.kr)로 정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120개 종류의 세계 각국 맥주를 골라 마실 수 있고, 서부영화에 나오는 웨스턴 바와 비슷한 분위기 때문에 단골손님이 많아 매출이 안정적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입지의 중요성을 감안, 정씨 형제는 서울·경기지역을 3개월 동안 돌아다닌 끝에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로 장소를 최종 결정했다. 이곳은 최근 아파트 1만가구가 들어서면서 새 상권이 형성되는 지역이다. 창업비용은 점포 보증금 1억원, 가맹비 900만원, 인테리어 5000만원, 초도물품비 4100만원 등 총 2억원이 들었다. 각각 5000만원씩 1억원을 투자하고 모자라는 1억원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형인 준영씨는 고객관리 및 칵테일 바를 담당하고, 동생 민영씨는 매장관리·재고관리·직원교육을 맡았다. 서로 맡은 분야에 대해서는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다. 준영씨는 고객이 마신 맥주의 병뚜껑을 모아 일정량이 되면 무료 안주를 제공하고, 처음 오는 고객에게는 칵테일 시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음악 선곡도 준영씨 몫이다. 민영씨는 항상 매장을 살피며 고객이 부르기 전에 직원들이 먼저 달려가 서비스하도록 교육을 한다. 준영씨는 “가게를 연 후 3개월이 지났는데 남이 아니라 형제이다 보니 말을 안 해도 이심전심으로 손발이 척척 맞아 일하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가끔씩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 가게를 비울 일이 생겨도 걱정이 없다.”고 자랑했다. 분위기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첫 달 이후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월 평균 360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 여기서 원재료비 1600만원, 직원 5명 인건비 400만원, 점포 임대료 350만원, 기타 공과금 100만원을 빼면 순이익으로 1150만원이 남는다. 정씨 형제는 점포를 하나 더 낼 계획으로 수익의 일정부분은 통장에 적립하고 있다. 나머지 이익은 똑같이 나눈다. ●언니, 동생이 서로 고정고객 확보 조신애(30)·신주(24)씨 자매는 지난해 11월 1억 5300만원을 투자, 경기도 분당 야탑동에 가격파괴 미용·다이어트 전문점 ‘얼짱몸짱’(www.beaupeople.com)을 열었다. 언니인 신애씨가 9300만원을, 동생인 신주씨는 자신의 모아둔 2000만원과 은행융자 4000만원을 얻어 총 6000만원을 투자했다. 아이 셋을 키우는 가정주부 신애씨는 장래 자녀들의 교육비 마련을 위해 사업을 결심했다. 회사원인 남편 월급에만 의존하기에는 교육비가 너무 많이 드는 현실 때문이었다. 신애씨는 “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육아문제도 있고, 가정 일을 해야 하는 주부로서 누군가 믿을 만한 강력한 조력자가 필요했다.”면서 “그래서 설계회사를 다니던 여동생에게 동업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신주씨도 박봉에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 사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 언니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경쟁이 심한 음식점보다는 최근 뜨고 있는 미용·다이어트 전문점을 하기로 했다. 언니 신애씨는 주로 고객 상담을 하고, 동생 신주씨는 직접 고객이 선호하는 부분을 기록해 집중 관리를 해주는 방식으로 밀착 관리를 한다. 이들은 분당 야탑동에 10년 이상 살았기 때문에 이들을 보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꽤 된다. 사장이 두 사람이니 영업효과도 두배다. 첫달에는 월 매출이 3000만원이 넘었다. 이른바 오픈효과가 빠진 2개월째부터 현재까지 월 평균 매출은 2500만원대. 여기서 점포 임대료 100만원, 인건비 520만원, 물품구입비 150만원, 공과금 및 관리비로 125만원, 홍보비 150만원을 제외하면 1500만∼1600만원이 순수익이다. 이익은 6대4로 나눈다. 투자금액에 비례한 금액이다. 동생 신주씨는 “자매이기 이전에 동업자이기 때문에 계산은 확실히 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고 말한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가족이라고 만만하게 대하거나 일을 떠넘겨서는 안된다.”면서 “사전에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해두고 이익배분에 대한 원칙을 확실히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충고했다. 강 대표는 이어 “운영상 문제점이나 감정상 문제가 발생하면 대화로 푸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가족이라고 해서 잘못된 점이 있어도 말을 하지 않고 마음 속에 담아 두면 오히려 더 큰 오해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시론] 신자유주의 체제 하의 젊은 파우스트들/김명곤 국립극장장

    [시론] 신자유주의 체제 하의 젊은 파우스트들/김명곤 국립극장장

    대학을 졸업한 어느 젊은이가 인터넷에 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일을 하고 싶다.”라는 글이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 오십대 초반인 내 주변에도 명예 퇴직한 ‘중년의 젊은이’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고, 아직 오십도 안 된 ‘새파란’ 후배들마저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퇴직 준비를 하고 있는 터에 그들 모두의 속마음을 그 젊은이가 강렬한 한마디의 말로 대변했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을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는 일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진리를 위해 계약을 한다. 악마는 노예가 되어 모든 소원을 들어주되, 만약 파우스트가 어느 순간 향락의 극치를 맛보고 거기에 만족하면, 그 순간에 그의 영혼을 빼앗는다는 계약이 피로 쓴 계약서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파우스트를 타락시키고 영혼을 빼앗으려는 메피스토와, 악마를 노예처럼 부리며 학문으로 도달하지 못한 인간과 우주의 근본 진리를 얻으려는 파우스트의 싸움이 전개된다. 우리 사회에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젊은 파우스트와 중년의 파우스트들은 진리가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서 악마를 필요로 한다. 고귀한 영혼을 살찌우기 위한 계약이 아니라, 그와 가족들의 세속적 삶을 유지하기 위한 계약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절실한 건 한조각의 빵만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이 사회에 증명하기 위한 ‘직업’이다. 자신이 무능하거나 패배자라서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줄 조직적 보호막이 필요한 것이다. 나처럼 자유롭게 살며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 직업을 가진 예술가나 프리랜서들은 일반 직장인보다는 실업 상태로 지내는 상황에 훈련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직업의 사람들도 실업 상태가 오래 계속되면 우울증에 걸리거나, 난폭해지거나, 이혼을 하거나, 자살을 결심한다. 하물며 취업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도 못한 채 가고 싶은 직장 근처를 서성이거나, 평생 몸담아 왔던 직장으로부터 강제로 쫓겨나-명예퇴직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도 강제이긴 마찬가지다-직장이 있던 쪽 하늘도 바라보기조차 싫어진 사람들에게 그 상황을 혼자서 해결하라고 하는 건 너무도 가혹한 일이다. ‘노동의 종말’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은 2003년 동아시아 공동체 초청으로 한국에 왔을 때 “현재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실패했다. 세계인구의 5분의1이 주도하면서 나머지 5분의4를 소외시키고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세계화는 부당하며, 장벽 없는 세계화를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성 향상이 고용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그는 “노동 시간 감축과 정부의 지원 증대, 세금 이전을 통한 불량기업 규제 및 우량산업화 유도, 시민 사회 영역의 경제적 활용 및 사회적 통화의 창출, 에너지 소외 계층을 없애기 위한 에너지 혁명”등을 들었다. 기존의 시장 모델을 시민사회 네트워크 모델로, 시장 자본을 사회적 자본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울분에 찬 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천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세계의 힘은 ‘부당한 세계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사회적 신뢰는 무너지고 악순환의 고리는 더욱더 커져 가기만 한다.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명제도 경제의 효용성이라는 명제에 가려 더 이상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듯하다. 사회적 복지와 고용의 유연성을 고려하지 않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몰고 온 이 부작용을 치유할 묘약은 없는 것인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는 수많은 한국의 파우스트들과 피로써 계약을 맺어 줄 악마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 [문화마당] 돈, 권력자, 그리고 예술가/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얘기다. 국내 한 대학의 이사장님께서 같은 대학 미대 교수가 제작한 모자상(母子像)이 너무 뚱뚱하다며 조각상을 팔등신의 늘씬한 미인으로 바꾸어 제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런 지시를 받은 교수는 예술가로서의 양심에 따라 당연히 그것을 거부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교수는 재임용에서 탈락되는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수십 년 전의 얘기가 아니라 소위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 대망의 21세기에 일어난 일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이때 내가 놀랐던 것은 그 사학재단이 저지른 엄청난 비리가 아니었다. 사실 이런 종류의 비리는 너무나 많이 일어나서 이제는 더 이상 놀랄 만한 일도 되지 못한다. 내가 정작 놀랐던 것은 권력을 쥔 사람이 아주 비상식적인 이유로 예술작품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내렸다는 것과, 예술가가 그것을 거부한 것에 대해 괘씸죄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의 초연이 끝난 후, 공연을 본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황제가 신하들을 대동하고 모차르트를 찾았다. 그는 일단 작품이 매우 훌륭했다고 칭찬을 한다. 하지만 너무 칭찬만 해서는 황제로서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한다. 이 말에 수긍할 수 없었던 모차르트가 무엇이 부족하냐고 묻자 황제는 당황한다. 꼬투리를 잡을 말이 영 떠오르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눈치 빠른 신하가 “음표가 너무 많아.”라고 하자 마침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맞아. 음표가 너무 많아.”라고 말한다. 모차르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꼭 필요한 음만 썼다고 하자 황제는 “그래도 한가한 저녁에 듣기에는 음표가 너무 많아. 음표를 줄이도록 하지.” 이렇게 얘기하고는 자리를 뜬다. 실제로 요제프 황제가 이런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아마데우스’의 작가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통해 예술에 대해 식견이 없는 권력자와 그 밑에서 일하는 예술가 사이에 있음직한 갈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음표를 줄이라는 지시를 받고 모차르트가 얼마나 황당했을까. 속된 말로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 그가 교회와 귀족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생의 마지막 10년을 프리랜서로 보냈던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경제적 안정을 버리는 대신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얻었지만 그 대가는 너무도 참담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와 그 밑에서 일하는 예술가. 역사를 살펴보면 양 쪽이 서로 행복하게 만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경우, 상처를 입고 고통을 받는 쪽은 예술가이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지시를 내리는 쪽은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인지 스스로 모르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것이 부끄럽다는 것을 알면 애초부터 음표를 줄이라는 식의 몰상식한 주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에 예술가에게 엄청나게 많은 후원을 하고 있는 미국의 한 억만장자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는 후원하지만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후원을 받은 예술가가 몇 년 동안 작품 하나 발표하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예술가가 그저 놀기만 해도 그것은 새로운 작품을 위한 충전이라고 생각하며, 자기가 준 돈으로 술을 먹든 여행을 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그것을 통해 얻은 경험이 나중에 빛나는 예술작품으로 탄생할 것이라고 믿어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예술가의 자유와 창작의지를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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