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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면 차림 사진 실어도 된다”…복면레슬러 의원 손 들어준 日 시의회

    “복면 차림 사진 실어도 된다”…복면레슬러 의원 손 들어준 日 시의회

    일본 오이타시의회가 프로레슬러 출신 스컬 리퍼 에이지(52) 시의원이 복면을 쓴 채로 찍은 사진을 시의회 소식이나 시의회의 홈페이지에 게재하도록 허가했다. 23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전날 오이타시의회는 운영위원회를 열고 에이지 의원이 레슬러 복면을 쓰고 찍은 사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앞서 오이타시의회 측은 모자 등의 착용을 금지하는 회의 규칙에 따라 에이지 의원이 복면을 착용하는 것으로 허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지난 3월 복면 착용 사진을 게재해달라고 시의회 측에 요청했고 허가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면서 시의회 소식 발행이 두 차례 연기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에이지 의원은 시의회를 상대로 지난달 6월 30일 500만엔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에이지 의원은 “복면 차림 거부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복면 착용을 지지해 준 유권자들의 민의를 시의회가 등한시하고 있다”고 오이타시의회를 비판했다. 결국 논란이 계속되자 오이타시의회는 에이지 의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후지타 게이지 시의회 의장은 “의회의 문제로 시민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시의회는 회의장 등에서 복면 착용을 하는 방안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소송 문제에 대해서는 변호사 등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프로레슬링이 인기가 높은 일본에서 프로레슬러가 정계에 진출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프로레슬러 하세 히로시는 아베 신조 정권 시절 문부과학상으로 임명되며 프로레슬러 출신 첫 장관으로 이름을 올렸다. 2012년 9월 오사카부 이즈미시의원 선거에서 프로레슬러인 와키타 히로토가 2위로 당선되기도 했다. 그는 복면을 쓰고 있는 게 시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며 복면 착용을 강조하기도 했다.
  • [씨줄날줄] 사이버 모욕죄/이종락 논설위원

    일본 여자 프로레슬러 기무라 하나가 지난해 5월 23일 자살했다. 당시 22세이던 기무라는 높은 인기를 끌었던 후지TV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테라스 하우스’에 출연해 프로레슬러답게 터프한 이미지를 선보였다. 그런 행동이 방송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그녀를 비판하는 악플러들의 글이 쏟아졌다. 그런데 다른 출연자가 그녀가 링에 오를 때마다 입던 소중한 의상을 세탁기에 함께 빨아 옷이 망가졌다. 더이상 링 의상을 입을 수 없게 된 기무라가 불같이 화를 내며 출연자에게 욕설을 퍼붓는 장면이 TV 화면에 공개됐다. 시청자와 네티즌의 거센 비난과 공격을 참지 못한 기무라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고, 일본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도가 지나치게 그녀를 비난한 악플러 2명이 고작 9000엔(약 9만 5500원)의 과태료만 부과받으면서 모욕죄를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도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인터넷상 악플과 인신공격 등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형법상 모욕죄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요미우리신문이 30일 보도했다. 법무성 자문기관인 법제심의회가 다음달 중순 심한 악플 시 1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게 하고 30만엔 이하의 벌금을 추가하는 방안을 제안할 방침이다. 현행 모욕죄는 30일 미만 구류, 1만엔 미만 과태료로 지나치게 가볍다는 지적이 들끓었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사이버 범죄가 늘어나는 추세다. 상대방과 직접 대면하지 않는 온라인 특성상 인격살인까지 마다하지 않는 글들이 떠돌거나 명예를 훼손할 만큼의 모욕을 주는 행동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특히 유튜브 이용자가 급증하고 이용 시간도 길어지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아 두기 위한 자극적인 정보가 난무하고 있다. 무차별적인 비방까지 여과 없이 표현되면서 이제는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인 채널 운영자나 구독자까지도 모욕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유튜브를 포함해 국내 인터넷에서 발생하는 명예훼손과 모욕 관련 신고 건수는 연간 4000~5000건에 이른다고 한다.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 측은 올해 1분기에만 전 세계에서 950만개 이상의 동영상을 삭제했다고 한다. 사이버 모욕은 이제 우리나라와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가 된 셈이다. 우리나라 형법 제311조에 규정된 모욕죄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일본이 모욕죄를 개정할 경우 우리와 형은 같고, 벌금은 더 많아진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인 우리나라가 타인을 배려하는 성숙한 인터넷 문화를 아직 갖추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 프로레슬러 복면쓰고 시의회 출석?…日 시의원 법정투쟁 나섰다

    프로레슬러 복면쓰고 시의회 출석?…日 시의원 법정투쟁 나섰다

    일본 프로레슬러 출신 시의원이 복면 착용을 불허한 시의회를 상대로 500만 엔(약 51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30일 아사히신문은 ‘복면 프로레슬러’ 스컬 리퍼-에이지(52)가 오이타현 지방법원에 오이타시의회를 제소했다고 보도했다. 2013년 2월 오이타시의원에 당선된 에이지는 초선 후 8년간 시의회에 복면 착용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지난 3월 복면을 쓰고 재차 의회를 방문했지만 출석이 인정되지 않았다. 시의회는 회의장에서 모자, 지팡이 등을 착용 휴대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들어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시의회 홈페이지와 시의회 소식지에도 복면을 쓴 에이지 의원의 사진은 한 번도 게재하지 않았다. 4월 26일 에이지 의원은 시의회 홈페이지와 시의회 소식지에 복면을 쓴 얼굴 사진을 게재해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러나 시의회는 세 차례 심문에도 끝까지 화해를 거부했고 에이지 의원은 지난달 30일 결국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에이지 의원은 “복면 차림 거부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복면 착용을 지지해 준 유권자들의 민의를 시의회가 등한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시의회 홈페이지에 복면 사진을 올리지 않은 것은 인격권 침해이자 차별이다. 차별을 용인하는 시의회라니 이상하다. 품위 규정을 내세워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관행이 있다. 소송을 통해 지방의회를 개선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같은 복장 논란은 얼마 전 불거진 아르헨티나 시의원의 사례를 상기시킨다. 과거부터 노출이 심한 옷차림으로 시선을 끈 아르헨티나 지방도시 살타의 현역 시의원 칸델라 코레아는 2018년 시의원 당선 이후에도 부적절한 복장으로 동료 의원들의 원성을 샀다.코레아 의원은 “일상의 삶을 이어가는 게 무슨 문제냐”는 입장이지만, 동료 의원들은 “제발 몸을 가렸으면 좋겠다. 노출이 심한 그녀를 보며 시민들이 시의회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다. 시의회 품위와 직결된 문제”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복장 논란 하면 정의당 류호정 의원도 빼놓을 수 없다. 류 의원은 지난달 23일 멜빵 청바지를 입고 국회 대정부 질문에 참석했다. 앞서 16일 타투업법 제정을 촉구하는 회견에는 등이 파인 보랏빛 드레스 차림으로 등장했다. 지난해 8월에는 짧은 원피스 차림으로 국회 본회의에 출석해 주목을 받았다. 한편 프로레슬링 인기가 높은 일본에서 프로레슬러의 정계 입문은 흔한 일이다. 현역 시절 콧수염이 트레이드마크였던 하세 히로시는 아베 신조 총리 시절 문부과학상으로 입각하며 프로레슬러 출신 첫 장관에 등극한 바 있다.
  • [열린세상] 대통령과 명예훼손/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열린세상] 대통령과 명예훼손/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신사가 되기 전 소년은 가난했다. 부친은 파산했고 어머니는 일찍 죽었다. 소년은 나무꾼과 뱃사공으로 일했다. 가게 점원도 했다. 부친은 그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일터로 소년을 보내 노동한 품삯을 받아 오게 했다. 소년은 혼자 공부했다. 책 읽기를 좋아했다. 훗날 아내를 얻었을 때 “밥상을 차렸으니 식사하라”는 아내의 말을 듣지 못해 장작개비로 얻어맞았다. 책을 읽느라 벌어진 사단이었다. 스물네 살 때 우체국장을 했다. 집배원 역할도 맡았다. 편지와 신문을 배달해 주고 수금을 했다. 청년은 정직했다. 우체국은 정보의 교차로였다. 청년은 우체국에서 책을 읽으며 정치에 눈을 떴다. 신사는 총명했다. 통찰력과 유머 감각이 뛰어났다. 포용력이 컸다. 신사는 힘이 셌다. 잠시 프로레슬러로 연명할 때 ‘집어던지기’는 그의 주특기였다. 신사는 키가 컸다. 신사를 태운 열차가 중간역에 정차했다. 사람들이 신사 주위로 몰려들었다. “어이, 나보다 키 작은 양반.” 한 남자가 신사에게 소리를 질렀다. 신사는 소리꾼을 연단으로 불렀다. 말없이 소리꾼과 등을 지고 섰다. 신사의 동료가 의자에 올라가 등지고 선 두 사람의 머리 높이를 쟀다. “더 작은 사람은 없다”고 동료가 외쳤다. 신사와 소리꾼은 같이 웃었다. 신사는 목적지를 향했다. 기차에서 내린 신사는 대통령에 취임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었다. 미국 남부의 우체국들은 일부 신문을 배달하지 않았다. 링컨이 소속된 공화당에 우호적인 보도를 한다는 이유였다. 선거운동 기간 중 남부의 신문들은 링컨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가 당선되면 연방은 무너지고 자유와 고향과 조국을 잃게 될 것이라고 독자들을 선동했다. 링컨이 당선됐다. 남부의 신문들은 그의 당선을 조롱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기사를 쏟아냈다. 연방에 잔류하는 것은 불명예의 표지라고 표제를 뽑았다. 남부는 즉시 무기를 들어야 한다고도 외쳤다.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노예제도는 폐지되고 링컨은 연방의 붕괴를 막았다. 링컨은 일찍이 언론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물리적인 군사전쟁과 선동왜곡을 일삼은 언론의 여론전쟁을 동시에 겪었다. 해리 마이하퍼의 ‘워 오브 워즈’에 상세하다. 염정민이 우리말 책으로 번역했다. 링컨은 자신의 연설이 원문대로 게재되도록 신문사를 찾아가 밤새 조판을 지켜보기도 했다. 적대적인 언론에도 동료를 보내거나 직접 찾아가 소통하려고 애썼다. 우호적인 언론이라도 불충분한 보도에 대해서는 반박문을 보냈다. 링컨은 시민과 언론의 모욕과 명예훼손을 견디어야 했다. 그는 대통령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모욕한 죄로 기소될 뻔한 시민이 풀려났다. 대통령의 지시로 고소가 취하됐다. 모욕죄는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다. 모욕죄가 위헌이라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때마다 헌법재판소는 합헌을 선고했다. 지금도 헌재에 모욕죄 위헌 제청 사건이 접수돼 있다. 친고죄 때문이었을까? 동물에 비유된 모멸적 표현을 겪으면서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시민을 모욕죄로 처벌하지 못했다. 대신 측근들이 대통령을 욕했다며 사람들을 명예훼손죄 법정에 세웠다. 이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던 시민은 2013년 헌법재판소에서,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법정에 선 외신기자는 2015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무죄임이 확인됐다. 반의사불벌, 즉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전직 대통령들이 표현했더라면 형사 절차가 전개되지 않았을 사건이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처벌 여부에 대해 끝까지 침묵했다. 만약 명예훼손죄가 친고죄였다면 대통령들은 시민과 외신기자를 고소했을까? 지난 4월 헌법재판소는 명예훼손의 반의사불벌죄 처벌은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명예훼손죄 처벌 운운하며 측근들이 앞장서 봉쇄·겁박하는 일이 가능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비판을 단죄하는 단맛을 알았던 것인지 십여 년 전 어떤 국회의원들은 반의사불벌의 사이버상 모욕죄 제정안을 제출했다. 다행히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정부 정책과 고위공직자에 대한 언론과 시민의 정당한 감시와 비판이 위축되지 않도록 국회가 나서야 할 때다. 최소한 반의사불벌의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는 바꾸어야 한다. 참, 링컨은 변호사였다.
  • 이건희 회장 “불량은 범죄”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 호통친 이유

    이건희 회장 “불량은 범죄”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 호통친 이유

    삼성전자를 글로벌 IT 기업 최강자로 키워낸 이건희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우리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할 정도로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았다. 과감한 돌파력과 끈질긴 인내, 사업에 대한 통찰력은 이런 다채로운 삶을 통해 차츰 완성되고 굳건해졌다. 이건희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호암이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청과·건어물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경영하던 시절이다. 어린 건희는 경남 의령 친가로 보내져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다. 1945년 해방되고 어머니와 형제를 만날 수 있었다. 형으로는 제일비료 회장을 지낸 맹희씨와 고인이 된 창희씨, 누나로는 인희(한솔그룹 고문), 숙희, 순희, 덕희씨가 있다. 신세계그룹 회장인 명희씨가 유일한 동생(여동생)이다. 그는 사업가인 호암을 따라다니며 유소년기를 보냈다. 유년기를 대구에서 보내다 사업확장에 나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1947년 상경했다. 혜화초등학교에 다녔다. ●무슨 물건이든 뜯어보고 해부해봐야 직성 풀려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53년, 선진국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이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유독 과학탐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슨 물건이든 손에 잡히면 뜯어보고 해부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 성격이 삼성그룹의 발자취에 큰 영향을 미쳤다.당시 첫째 형이 도쿄대학 농과대학에, 둘째 형이 와세다대학을 다니고 있었으며 어린 건희는 둘째 형과 같이 지냈다. 그러나 나이 차이가 아홉 살이나 났던 만큼 외로움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었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외로움을 타다 보니 개를 길렀다. 개 기르기는 취미가 돼 1979년엔 일본 세계견종종합전시회에 순종 진돗개 한 쌍을 직접 출전시키기도 했다. 순종을 찾느라 150마리까지 키워보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에 심취해 일본 유학 3년간 1200편 이상을 본 걸로 알려져 있다. 일본 막부시대 사무라이 영화가 많았다. 3년간의 일본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울사대부속중학교에 편입했고 서울사대부속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시절 레슬링부에 들어갔으며 2학년 때는 전국대회에 나가 입상하기도 했다.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 중엔 당시 전설로 불리던 한국계 프로레슬러 역도산을 만난 일화도 있다. 럭비에도 심취했다. 당시 스포츠와 맺은 인연을 계기로 대한레슬링협회장을 지내는 등 아마스포츠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1996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되는 영광으로 이어졌다. ●경영 철학에 핵심이 된 ‘미꾸라지와 메기’ 이론 호암은 학창시절의 이건희 회장에게 ‘미꾸라지와 메기 이론’을 주입시켰다. 이것은 그의 경영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떤 농부가 한쪽 논에는 미꾸라지만 풀어놓고, 다른 쪽 논에는 미꾸라지와 메기를 같이 풀어놓았다. 천적인 메기와 뒤섞여 풀어놓은 미꾸라지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튼실했다. 살아남으려면 메기보다 빨라야 했기 때문이다. 서울사대부고를 나온 뒤에는 연세대학교에 합격했으나 호암의 권유로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로 진학했고, 와세다대학 졸업 후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부전공으로 매스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이 시절 이 회장은 자동차에 심취했다. 자동차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자동차 구조에 관한 한 전문가 수준이 됐다. 미국에서 어느 대사가 타던 차량을 4200달러에 사서 한참 타다가 600달러를 더 받고 판 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를 만나 맞선을 봤다. 1967년 1월 약혼을 하고 홍 여사가 대학을 졸업한 후인 그해 4월 결혼에 골인한다. 결혼 후 삼성 비서실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삼성그룹의 큰 그림을 보게 된다. 1970년대 이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빈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첨단 하이테크 산업으로의 진출을 모색하던 때였다. 당시 ‘반도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조악한 집적회로로 전자시계를 만들던 한국 반도체가 파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삼성이 인수하자’고 건의했으나 호암은 고개를 저었다. 서른둘의 이건희는 순전히 자기 돈으로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했다. 그리고는 실리콘밸리를 50여 차례 드나들며 반도체 기술이전을 받아오려 애썼다. 페어차일드사에는 지분 30%를 내놓는 대신 기술을 받아오기도 했다. 256메가 D램의 신화는 이때부터 싹을 틔웠다. ●호암의 반대에도…‘반도체 신화’의 시작 삼성그룹 후계자로서의 본격적인 경영수업은 1978년 8월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시작됐다. 이병철 창업주가 위암 판정을 받고 약 2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창업주는 1977년 니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건희가 후계자”라고 공식화했다.이어 이듬해에는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해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28층에서 일을 시작했다. 창업주의 집무실 바로 옆방이었다. 호암은 “건희는 취미와 의향에서 기업 경영에 열심히 참여해 공부하는 것이 보였다”고 회고했다. 이 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것은 부회장이 되고도 9년이나 지난 뒤였다. 그가 삼성의 경영권을 승계하기까지는 엄청난 풍랑이 몰아쳤다. 입사 이후에도 20년 넘게 우여곡절을 겪었다. 애초 호암은 이 회장에게 중앙매스컴을 맡길 작정이었다. 와세다대학 재학 시절부터 이를 권했고 실제로 이 회장은 1966년 첫 직장으로 동양방송에 입사한다. 하지만 그해 불거진 이른바 ‘한비 사건(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이 삼성그룹의 후계구도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사카린 원료 밀수가 적발된 한비 사건은 호암의 장·차남인 맹희·창희 씨가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사건 직후에는 차남인 창희씨만 구속됐다. 이후 호암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제계에서 은퇴한다. 눈물을 머금고 한비 지분 51%를 국가에 헌납해야 했다. 서른여섯이던 맹희씨는 삼성의 총수 대행으로 10여개 부사장 타이틀을 달고 활동했다. 당시만 해도 장자상속이 대원칙이던 시절 삼성의 경영권이 장남인 맹희씨로 넘어갈 듯 보였다.호암은 사장단을 향해 “맹희 부사장이 거부하면 세 번 얘기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내게 가져오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호암자전에선 “주위 권고와 본인 희망이 있어 맹희에게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겨봤는데 6개월도 채 못돼 맡긴 기업은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져 본인이 자청해 물러났다”고 썼다. 반면 맹희씨는 자신이 6개월이 아니라 7년간 삼성을 경영했다고 달리 기술했다. 이어진 그룹의 혼란과 청와대 투서 사건 등의 여파로 장남 맹희씨는 호암의 신임을 잃고 해외로 떠돌게 된다. 몇 차례 복귀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날아갔고 호암은 1971년 일찌감치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을 맡기기로 결단을 내린다. 이건희 부회장에게도 1982년 아찔한 순간이 닥친다. 그해 가을 어느 날 푸조를 몰고 양재대로를 달리던 그의 눈앞에 덤프트럭이 나타난다.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늦었다. 차 밖으로 튕겨 나간 이 회장은 외상이 심하지 않아 2주 만에 회복했지만 항간에는 교통사고를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 불호령 나온 이유 회장 취임 5년차인 1993년. 삼성 역사에 남을 중요한 해가 밝았다. 그해 2월. 삼성이 8㎜ VTR을 막 개발해 시장에 내놓던 시기다. 이 회장은 임원들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가전매장을 찾았다. GE, 필립스, 소니, 도시바 등 선진국 전자회사들의 휘황찬란한 제품 진열장 한 귀퉁이에 삼성 제품이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LA 센추리프라자 호텔 회의장에서 이 회장은 78가지 전자제품을 갖다놓고 당장 분해하라고 했다. 삼성 제품은 싸구려로 취급당했기 때문이다. 회의장에는 내내 이 회장의 호통과 불호령이 이어졌다. 그리고 세탁기 사건이 터졌다. 삼성사내방송 SBC의 몰래카메라 영상물에는 세탁기 뚜껑 여닫이 부분 부품이 들어맞지 않자 직원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칼로 2㎜를 깎아내고 조립하는 장면이 나왔다. 심지어 교대자를 바꿔가며 이런 식으로 제품을 대충 끼워 맞추는 장면이 카메라에 적나라하게 잡혔다.이 회장은 득달같이 이학수 비서실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녹음하시오. 이게 그토록 강조했던 질 경영의 결과란 말이요. 당장 사장과 임원들 모두 프랑크푸르트로 집합시키시오”라고 지시했다. 윤종용, 김순택, 현명관 등 삼성의 주요 CEO와 고위 임원들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캠핀스키 호텔에 모였다.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압축되는 신경영 선언을 했다. 불량 부품을 칼로 깎아 조립하는 것을 보고 격노했던 그가 삼성의 제2 창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 회장은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변화의 원점에는 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변화의 방향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에세이에 썼다. 이 회장은 “전자산업의 경우 불량률이 3%에 달하면 그 회사는 망한다. ‘불량은 암이다. 악의 근원이다’라고 되뇌면서 일하라고 했다”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 때 ‘불량은 범죄’라는 신조가 만들어졌다. 이 회장은 1990년대 들어 그룹의 주요 사업체를 분리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그룹의 소유와 경영 체제를 명확히 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1991년 11월에는 신세계와 전주제지(현 한솔제지), 1993년 6월 제일제당(현 CJ)을 분리했고 1995년 7월에는 제일합섬을 떼냈다. ●“불량은 범죄” 부숴버린 15만점의 삼성제품들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신경영 선언 이후에도 그룹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자 이 회장은 또 결단한다.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직원들이 모였다. 운동장 중앙엔 무선전화기 등 삼성 마크가 붙은 전자제품 15만점이 놓였다. 해머를 든 직원들이 제품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 이윽고 무선전화기엔 불을 붙였다. 삼성전자 부회장을 한 이기태 당시 데이터사업본부 이사는 “내 혼이 들어간 제품이 불에 탔다. 그런데 그 불길은 과거와의 단절이었다”고 회고했다.1994년 국내 4위였던 삼성의 무선전화기 시장 점유율은 1년 뒤 시장 점유율 19%를 달성하며 1위에 올라섰다. 1990년대 중반에 일기 시작한 ‘애니콜 신화’는 국내 시장을 휩쓸고 세계로 뻗어나갔다. 당시 휴대전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던 모토로라가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고지를 점령하지 못했다. 애니콜의 인기는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S 시리즈 등 모바일 기기의 혁신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반도체에 대한 이 회장의 남다른 집념도 결실을 봤다. 1992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64메가 D램을 개발하면서 반도체 강자가 됐고 이후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 번도 글로벌 1위를 내주지 않고 질주했다. 이 같은 체질 개선과 미래 산업에 대한 집중투자는 삼성을 크게 변화시켰다. 이 회장 취임 당시 9조9천억원이었던 그룹의 매출은 2013년 390조원으로 25년 만에 40배나 성장했으며 수출 규모도 63억 달러에서 2012년 1567억 달러로 25배 커졌다. 시가 총액은 1987년 1조원에서 2012년 300조원을 넘어섰다. 총자산은 500조원을 돌파했다. 고용 인원(글로벌 기준)도 10만여명에서 42만 5000여명으로 늘었다. 계열사 수도 비상장사를 포함해 17개에서 83개로 증가했다. 이는 신세계, 한솔, 새한 등 계열 분리된 기업을 제외한 것이다. 브랜드 가치도 급신장했다. 브랜드 컨설팅 그룹인 인터브랜드는 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 9위인 329억 달러로 추산했다. 삼성은 부품과 세트(완제품)에서 모두 글로벌 1위를 제패한 전무후무한 IT 전자 기업으로 우뚝 섰다. 1969년 흑백 TV를 생산한 이후 37년 만인 2006년 글로벌 TV 시장에서 소니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고, 2012년에는 갤럭시 시리즈로 애플을 따라잡고 스마트폰 시장 세계 1위를 달성했다.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LSI 등 반도체 부문은 일찌감치 세계 1위 고지를 점령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4년 전 트럼프 야유 말라던 오바마, 이번엔 분노 쏟아냈다

    4년 전 트럼프 야유 말라던 오바마, 이번엔 분노 쏟아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를 위해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첫 단독 유세에 나섰다. 4년 전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지원하려 처음으로 섰던 곳이다. 하지만 당시 ‘트럼프에게 야유를 멈추라’며 짐짓 여유를 부렸던 오바마는 없었다. ‘투표’(VOTE)라고 적힌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선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작심 비판하며 한 표 행사를 호소했고, “여론조사를 개의치 않는다”며 자만을 경계했다. 민주당이 1988년 이후 2016년 대선에서 처음으로 공화당에 뺏겼던 펜실베이니아는 중요 승부처 중 하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필라델피아에서 차량에 탄 청중에게 “트럼프는 자신과 친구를 돕는 것 외에 관심이 없었고, 대통령 직무를 리얼리티 쇼처럼 대했다. 그래도 시청률(지지율)이 떨어지니 화를 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을 언급하며 “그는 감염으로부터 스스로도 보호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한국의 인구당 사망률은 불과 미국의 1.3%”라고 무능을 탓했다. 또 2016년 악몽 재연을 막자는 취지로 “지난번에도 많은 여론조사가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많은 사람이 집에 머물렀다. 이번 선거에서는 안 된다”며 투표 참여를 촉구했다. 유세에 앞서 흑인 남성 선출직 공직자와 원탁회의를 갖고 이들의 투표를 독려했다. ‘연설의 신’답게 그는 투표를 운동에 비유하며 ‘더 락’으로 유명한 프로레슬러 출신 영화배우 드웨인 존슨의 이름을 꺼냈다. 한 달 뒤 더 락처럼 안 보이면 운동을 그만두겠다던 고객에게 자신이 아는 트레이너가 ‘그처럼 보이진 않겠지만 지금보다 건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며 “한 차례 선거의 힘으로 모든 것이 완벽해질 순 없지만 정부가 당신을 더 잘 대표하고 더 잘 섬기는 패턴이 생기게 된다”며 투표를 독려했다. 이번 대선의 승부를 가를 6개 핵심 경합주는 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미시간 등 ‘러스트벨트’로 불리는 북부 3개주와 플로리다·노스캐롤라이나·애리조나 등 남부 3개주다. 그중에서도 남부에서는 플로리다(29명), 북부에서는 펜실베이니아(20명)가 가장 대의원 수가 많아 꼭 차지해야 하는 곳이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도 펜실베이니아 이리 유세에서 “펜실베이니아를 이기면 모두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지난 12일 바이든 후보가 7.3% 포인트까지 벌렸던 펜실베이니아주의 지지율 격차는 지난 19일 3.8% 포인트까지 줄었다가 이날 다시 4.9% 포인트로 커졌다. 하지만 2016년 여론조사에서 크게 뒤지던 트럼프 대통령이 불과 0.7% 포인트 차이로 이긴 바 있어 민주당은 경계를 늦출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노동자층에 다시 기대를 걸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트럼프 시대에 일자리가 감소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백인 노동자를 포함하는 노조(약 70만명)를 집중 공략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는 바이든 후보의 고향(스크랜턴)과 트럼프 대통령의 출신 대학(펜실베이니아대)이 위치하고 있어 서로 “내 고향 지역”이라고 주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마스크 왜 안 써?” 악플에…日연예인 끝내 극단 선택

    “마스크 왜 안 써?” 악플에…日연예인 끝내 극단 선택

    리얼리티 쇼 등에 출연해 온 한 일본 여성 연예인이 ‘악플’(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끝내 극단적 선택을 했다. 31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인터넷 방송인 아베마(Abema)TV의 리얼리티 쇼 ‘이키나리 매리지’(전격 결혼)에 출연해 온 하마사키 마리아(23)씨가 지난 26일 도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지 경찰은 특별한 외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루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자신의 일상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던 하마사키 마리아가 지난 4월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외출했다는 악성 댓글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아베마TV 측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하마사키가 악플로 괴로워한 듯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마사키는 한국에 화장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사업을 시작하면서 직접 모델로 나서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앞서 지난 5월에는 후지TV의 리얼리티쇼 ‘테라스 하우스’에 출연하던 여성 프로레슬러 기무라 하나(22)가 악성 댓글에 고통을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생명의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씨줄날줄] 국회의원 복장/이종락 논설위원

    [씨줄날줄] 국회의원 복장/이종락 논설위원

    유시민 개혁국민정당 의원은 2003년 4·24 재보궐 선거로 당선돼 국회에 처음 등원하면서 캐주얼 감색 재킷에 노타이, 흰 면바지를 입고 나섰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소속 의원 10여명은 유 의원의 복장이 국회의원의 품위를 손상케 한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퇴장했다. 결국 유 의원은 박관용 국회의장의 권유로 다음날 정장 차림으로 입고 와서야 의원선서를 할 수 있었다. 유 전 의원뿐만 아니라 한국 진보적 정당의 의원들은 이따금씩 복장으로 화제를 모았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전 대표는 농민운동을 하던 1990년대 초부터 개량한복을 착용하고 흰 고무신을 신었다. 노동운동가 출신의 민주노동당 단병호 전 의원도 감색 점퍼의 평상복을 걸치고 나와 ‘블루칼라’ 의원임을 과시했다. 2012년 통합진보당 김재연 전 의원은 19대 국회 등원 첫날 보라색 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어 논란을 빚었다. 당시 보라색은 통합진보당의 상징색이었지만 맥시보다 짧은 치마 길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국회의원 복장 조항은 국회법에 없다. 유일하게 국회법 25조(품위 유지의 의무)에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일본 상원격인 참의원에서는 본회의장이나 위원회 회의실 등에서 모자와 코트, 목도리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 늘 붉은색 스카프를 두르고 다니는 일본의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출신 안토니오 이노키 의원도 참의원의 규정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의회 내에서는 스카프 착용을 자제했다. 그런데도 2014년 여성 장관인 마쓰시마 미도리 법무상이 회의장에 붉은색 스카프를 하고 나타나 ‘드레스 코드’ 논란을 일으켰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어제 페이스북에 다양한 옷을 입고 회의를 진행하는 유럽연합의 회의 모습 사진을 공유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지난 4일 분홍색 계열의 원피스 차림으로 국회 본회의에 출석한 것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비판과 옹호가 상충하는 가운데, 일부 친문 지지 성향 사이트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서는 류 의원을 향한 도 넘은 비판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류 의원은 “국회의 권위가 영원히 양복으로 세워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소신을 밝혔다. 정보기술(IT) 기업 등 대부분의 대기업은 자유로운 복장으로 근무하는 게 일상화돼 있다. 무슨 옷을 입든 일만 잘하면 되지 않겠냐는 공감대가 한국 사회에 이미 이뤄져 있다. 국회가 ‘권위의 상징’이지만 복장까지 세세하게 규정하고 이를 어기면 비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복장에 신경 쓰기보다는 민생을 꼼꼼히 살피는 등 의정활동을 잘한다면 국민 입장에서는 용인할 수 있는 일이다. jrlee@seoul.co.kr
  • 日아베 정권, 비방댓글 전화번호 공개 추진…“표현의 자유 위축” 반발

    日아베 정권, 비방댓글 전화번호 공개 추진…“표현의 자유 위축” 반발

    일본 정부·여당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상의 욕설·비방 등에 대한 규제 강화에 나선 가운데 시민사회와 야권이 ‘표현의 자유’ 위축 가능성을 들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아베 정부와 집권 자민당은 TV 리얼리티쇼에 출연했던 여성 프로레슬러 기무라 하나(22)가 SNS 등에 도배된 자신에 대한 욕설과 비방을 못견디고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 왔다. 자민당은 SNS 비방중상 대책을 전담하는 실무팀까지 구성했다. 기시다 후미오 정무조사회장은 “일본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이 논의를 속도감 있게 진전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일본내 인터넷 비방중상은 그동안 빠르게 증가해 왔다. 총무성 산하 위해·유해정보상담센터에는 지난해 5198건의 관련 상담이 들어와 2010년의 4배로 늘었다. 정부·여당은 SNS 등에 욕설, 비방글을 올린 사람의 전화번호를 피해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 구제가 쉬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악성댓글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는 취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와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변호사, 학자 등으로 구성된 ‘인터넷과 인권법 연구회’는 지난 9일 약 170명이 참가한 가운데 ‘인권 침해에 대해서 생각하는 온라인 집회’를 열었다. 피해자 대책 마련의 중요성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이것이 아베 정권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후쿠야마 데쓰로 간사장은 “아베 정권은 SNS상의 비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권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비방중상으로 몰아가거나 감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기무라 소타 도쿄도립대 교수(헌법학)는 정부·여당의 SNS 대책이 형사처벌이나 손해배상 강화·확대의 방향으로 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마이니치신문에 말했다. 그는 “처벌 및 배상 범위가 확대되면 정치인에 대한 비판과 내부비리 고발과 같은 표현까지 통째로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인터넷에서의 표현 활동은 위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맨손으로 황소 잡는 ‘당수왕’… 프로레슬러 천규덕 별세

    맨손으로 황소 잡는 ‘당수왕’… 프로레슬러 천규덕 별세

    맨손으로 황소를 때려 잡는 ‘당수왕’으로 이름을 날렸던 한국 프로레슬러 1세대 천규덕씨가 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88세. 현란한 테크닉을 자랑했던 ‘비호’ 장영철씨와 국내에 프로레슬링의 씨앗을 뿌렸던 고인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한 ‘박치기왕’ 김일과 함께 트로이카 체제를 이루며 1960∼70년대 한국 프로레슬링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올드 팬들의 뇌리에는 검은 타이츠를 입은 천씨가 ‘얍’하는 기합 소리와 함께 필살기인 당수를 날리는 장면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앞서 지난 2006년 장씨, 김씨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으며 고인은 그동안 지병으로 요양병원에서 지내왔다. 태권도 유단자로 사범 생활을 했던 고인은 1961년 부산에서 우연히 거구의 미국 레슬러들을 무너뜨리던 ‘일본 프로레슬링의 전설’ 재일교포 역도산의 경기를 TV중계로 접한 뒤 친구이자 레슬링 사범이었던 장씨에게 레슬링을 배우게 된다. 또 함께 의기투합해 부산에서 열었던 레슬링 경기가 인기를 얻자 서울로 활동 무대를 옮기고 1963년 정식으로 프로레슬링에 데뷔했다. 그해 4월 고인은 레슬링과 당수를 접목한 자신만의 기술로 사각의 링을 평정하며 한국 프로레슬링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으며 이후 프로레슬링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맏아들이자 중견 연기자인 천호진씨 등이 있다. 빈소는 인천 나은병원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4일 오전 5시 30분. 6.25전쟁 참전 유공자인 고인의 장지는 서울 국립현충원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日 女레슬러 ‘극단 선택’에…한국계 女격투기 챔피언 “댓글 전 생각하길”

    日 女레슬러 ‘극단 선택’에…한국계 女격투기 챔피언 “댓글 전 생각하길”

    지난달 일본 여자 프로레슬러 기무라 하나가 SNS에서 악플에 시달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을 두고 아시아 최대 규모 종합격투기(MMA) 단체 원챔피언십의 여자 아톰급 챔피언 앤절라 리(23·한국명 이성주)가 사람들에게 댓글을 남기기 전 다시 한번 생각해 달라고 호소했다. 중국-싱가포르계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로부터 태어났으며 원챔피언십 라이트급 챔피언인 크리스천 리(21·한국어명 이성룡)를 남동생으로 둔 앤절라 리는 2일(현지시간)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보다 1살 어린 기무라 하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을 두고 미리 알았다면 도왔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그는 또 “끊임없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부담을 줄 것이다. 거기에 사람들의 비판과 비난 그리고 무지하고 악의적인 의견이 더해지면 누구든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난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사람들이 왜 부정적으로 말하거나 불행을 바랄 필요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의 말은 누군가를 기운 차리게 하거나 치유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를 쓰러뜨리거나 파괴할 수도 있다”면서 “제발 말하기 전 다시 한번 생각하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면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열흘 전인 지난달 23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기무라 하나는 셰어하우스에서 남녀 6명이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인 ‘테라스하우스’에 출연해 유명세를 치르면서 악성 댓글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의상을 잘못 세탁해 줄어들게 한 남성 출연자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 방송돼 성격 등을 비난하는 부정적인 반응이 올라온 것이다. 소속사는 기무라의 사인 등을 자세히 공개하지 않았지만 악성 댓글에 따른 스트레스와 연관된 죽음으로 현지 언론들은 보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댓글을 다는 발신자의 정보 공개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프로바이더(인터넷 제공자) 책임 제한법 개정 서명 운동이 펼쳐졌다. 이 법은 포털(프로바이더)은 악성 댓글 피해자가 요청할 경우 그 댓글을 삭제하고 댓글 작성자 정보를 피해자에게 제공하지만, 시간과 비용이 들고 절차가 복잡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와 여당은 SNS에서 익명의 발신자에 의한 악플 대책을 검토해 연내 정책을 내놓기로 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이젠 하늘에서 태그 매치’...‘당수왕’ 천규덕씨 별세

    ‘이젠 하늘에서 태그 매치’...‘당수왕’ 천규덕씨 별세

    1960~70년대 프로레슬링계 풍미했던 트로이카 중 1인‘얍!’ 기합소리와 함께 황소 거꾸러 뜨리는 당수촙 필살기 2006년 세상 뜬 ‘비호’ 장영철 ‘박치기왕’ 김일 이어 귀천맨손으로 황소를 때려 잡는 ‘당수왕’으로 이름을 날렸던 한국 프로레슬러 1세대 천규덕씨가 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88세.현란한 테크닉을 자랑했던 ‘비호’ 장영철씨와 국내에 프로레슬링의 씨앗을 뿌렸던 고인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한 ‘박치기왕’ 김일과 함께 트로이카 체제를 이루며 1960∼70년대 한국 프로레슬링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올드 팬들의 뇌리에는 검은 타이츠를 입은 천씨가 ‘얍’하는 기합 소리와 함께 필살기인 당수를 날리는 장면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앞서 지난 2006년 장씨, 김씨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으며 고인은 그동안 지병으로 요양병원에서 지내왔다. 태권도 유단자로 사범 생활을 했던 고인은 1961년 부산에서 우연히 거구의 미국 레슬러들을 무너뜨리던 ‘일본 프로레슬링의 전설’ 재일교포 역도산의 경기를 TV중계로 접한 뒤 친구이자 레슬링 사범이었던 장씨에게 레슬링을 배우게 된다. 또 함께 의기투합해 부산에서 열었던 레슬링 경기가 인기를 얻자 서울로 활동 무대를 옮기고 1963년 정식으로 프로레슬링에 데뷔했다. 그해 4월 고인은 레슬링과 당수를 접목한 자신만의 기술로 사각의 링을 평정하며 한국 프로레슬링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으며 이후 프로레슬링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유족으로는 맏아들이자 중견 연기자인 천호진씨 등이 있다. 빈소는 인천 나은병원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4일 오전 5시 30분. 6.25전쟁 참전 유공자인 고인의 장지는 서울 국립현충원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서민에 희망 줬던 ‘박치기왕’ 故김일, 현충원 묻힌다

    서민에 희망 줬던 ‘박치기왕’ 故김일, 현충원 묻힌다

    고혈압으로 쓰러진 후 2006년 별세 프로 스포츠인 출신으로는 첫 사례 손기정·민관식 등 이어 체육인 5번째 1960~1970년대 동네에 한두 대밖에 없던 흑백 TV 앞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동네 사람들을 끌어모았던 국민 영웅, 화려한 잔재주 대신 맨머리로 우직하게 거구들을 쓰러뜨리며 넉넉하지 못한 삶을 버텨 내던 서민들에게 희망을 준 프로레슬러 ‘박치기왕’ 김일(1929~2006)이 세상을 뜬 지 14년 만에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프로 스포츠인 출신으로는 첫 사례다.대한체육회는 22일 김일의 유해가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된다고 21일 밝혔다. 국가보훈처 국립묘지 안장대상심의위원회는 지난달 한국 체육 발전에 공헌한 업적을 인정해 김일의 현충원 안장을 최종 승인했다. 스포츠인의 국립묘역 안장은 2002년 손기정(마라톤), 2006년 민관식(전 대한체육회장), 지난해 서윤복(마라톤), 김성집(역도)에 이어 다섯 번째다. 전남 고흥군 거금도 출신으로 지역 씨름 대회에서 이름을 날렸던 김일은 6·25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던 1950년대 후반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교포 출신으로 당대 일본 프로레슬링계를 주름잡던 역도산 문하에서 사각의 링에 서기 시작했다. 상대 머리를 붙잡은 뒤 한쪽 다리를 들고 몸을 뒤로 젖혔다가 다리에 체중을 실으며 들이받는 이른바 외다리 박치기(원폭 박치기)를 주무기로 같은 역도산 문하였던 일본 프로레슬링 영웅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와 트로이카 체제를 이루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노키의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잡아챈 뒤 박치기를 꽂아 쓰러뜨릴 때 온 국민이 열광했고, 상대의 반칙으로 김일의 하얀 이마에 붉은 피가 흘렀을 때는 온 국민이 분노했다. 1963년 WWA 세계 태그 챔피언, 1967년 WWA 세계 헤비급 챔피언 등 다수의 타이틀을 땄던 김일은 국내 프로레슬링 1세대인 고 장영철, 천규덕 등과 함께 국내 무대에서도 활동했으며 1970년대 중반 체육관을 열고 후배 양성에 힘을 쏟기도 했다. 1989년 일본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진 이후 1994년 1월 귀국해 투병 생활을 이어 가다가 2006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생전 국민훈장 석류장(1994), 체육훈장 맹호장(2000)을 받았으며, 사후 체육훈장 청룡장(2006)이 추서됐다. 2018년에는 대한체육회가 선정하는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 뽑혔다. 한국 스포츠 명예의 전당 격인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에는 한국 엘리트 스포츠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주로 선정돼 왔기 때문에 파격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일본 前문부상, 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에서 여성 성추행

    일본 前문부상, 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에서 여성 성추행

    일본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문부과학상(장관) 출신의 집권 자민당 중진 의원이 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에 갔다가 그곳에 있던 여성을 성추행해 물의를 빚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국회에서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30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2015~2016년 아베 총리 밑에서 문부과학상을 지낸 바 있는 하세 히로시(58) 중의원 의원과 비서 등 10여명은 지난 22일 학대나 성폭력 등 피해를 본 10대 여성 지원단체 ‘콜라보’(도쿄 신주쿠구)를 시찰 명목으로 방문했다. 하세 의원은 콜라보가 여성들을 위해 마련한 무료 카페에 들어갔다가 자신의 앞에 있던 10대 여성에게 “좀 비켜봐”라고 말하며 좌우에서 양손으로 허리를 만졌다. 이에 콜라보는 24일 여성에 대한 신체접촉은 물론이고 상처입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에 사전 약속했던 것보다 많은 남성 방문단이 온 것 등에 대한 항의문을 트위터에 올렸다. 콜라보는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을 지원하는 장소에서 자신들의 가해적 행위에 대한 자각이 너무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하세 의원은 “그런 행위를 했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면서도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매우 죄송한 일이며 마음 깊이 사과드린다”고 홈페이지에서 말했다. 이 일은 29일 국회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도 문제가 됐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렌호 참의원 간사장이 하세 의원의 성추행에 대해 아베 총리를 추궁했고, 이에 아베 총리는 “대단한 민폐를 끼쳤다. 기분을 상하게 해 드린 데 대해 자민당 총재로서 사과드린다”고 했다. 프로레슬러 출신의 하세 의원은 극우성향 인물로 2009년 역사왜곡 교과서를 높이 평가해 물의를 빚었고 위안부 만행에 대해 사과한 ‘고노 담화’의 수정을 요구한 적도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이디오크러시 2019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이디오크러시 2019

    ‘이디오크러시’(Idiocracy)는 2006년 개봉한 마이크 저지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바보, 멍청이(idiot)들이 지배하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실험이 어긋나는 바람에 500년 후 깨어난 조 바우어스는 세상에 온통 바보들만 산다는 사실을 알고 기겁을 한다. 거리는 쓰레기로 덮이고 언어는 퇴보해 사람들은 속어와 욕설을 남발한다. 대통령은 프로레슬러에 포르노 스타 출신이며 반쯤 벌거벗은 남녀 앵커들이 방송에 등장해 거짓과 혐오 발언을 쏟아낸다. 지적 호기심과 사회적 책임은 사라지고 정의와 인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주인공 조 바우어스가 피실험자로 선발된 이유는 지능, 외모, 지위, 모든 점에서 가장 평범하기 때문이었다. 감독은 지극히 평범한 시민을 내세워 미국 사회가 얼마나 터무니없고 어리석은지 고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500년 후의 미국만 그럴까? 지능, 외모, 지위가 대한민국 평균임을 자부하는 나이건만, 내 눈에 비친 대한민국 사회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듯싶다. 말은 분명히 말이건만 너무나 황당해서 말인지 막걸리인지 헷갈리는 말들이 정치인의 입에서, TV에서, 신문에서 걸러지지 않은 채 흘러나온다. 광화문에 나가 보았는가? 태극기, 성조기를 흔들며 대통령을 독재자니 빨갱이니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는 김정은의 끄나풀이고 우리나라는 일본이든 미국이든 쳐들어와 구해야 할 지옥이다. 그중에는 전·현직 국회의원도 있고 정부 장관 출신도 있다. 정말 저런 얘기를 사실이라고 믿는 걸까? 저 멍청한 얘기를 믿는 멍청이가 있기는 한 걸까? 아니면 믿지 못하는 나만 멍청이인 걸까?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의 투자를 기대하나?” “문재인 정권발, 한일 관계 파탄의 공포” 어느 신문의 일본어판 제목이란다. 설마, 잘못 알았겠지? 한글 제목을 일본어로 바꾼 게 아니라 원래 일본 신문의 일본어 제목일 것이다. 바우어스는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 세계로 갔건만 나는 과거로 날아와 일본 식민지에 갇혔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여기가 바로 ‘이디오크러시’란 말인가? 난 애먼 뺨을 꼬집어도 본다. 도대체 누구를 웃기려고 이렇듯 집요하게 B급 코미디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진영의 이익이라면 논리와 윤리는커녕 최소한의 양심도 고민도 없다. 내가 괴로운 건 바로 이 점이다. 500년 후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들이 지금 내 눈앞에, 코앞에 펼쳐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온 국민을 눈먼 바보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생각도 해 본다. 실제로 멍청한 건 우리가 아닐까? 저들은 늘 그랬다. 검찰, 경찰, 소위 보수언론 등 기득권 세력은 그렇게 한통속이 돼 우리 눈과 귀를 막고 바보로 만들었다. 간첩을 조작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지식인을 협박하고 기업의 불법을 눈감아 주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보호하고 장자연 자살의 내막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엉터리 수사 결과를 공표해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고 입맛에 맞는 정권에서 특권을 공고히 다졌다. 그때도 지금처럼 법과 정의와 형평성을 내세우고 진실만을 얘기한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우린 멍청하게도 그 말을 믿었다. 이제 그들이 다시 뭉쳤다. 며칠 전 서초동에 갔다. 적어도 이곳은 광화문과 달리 혐오 발언이 없고 막무가내가 없고 민망한 폭력이 없다. 이곳에서 지능, 인물, 지위가 평균인 나도 속이 편하다. 거짓과 협박은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단식, 삭발 등 야당의 정치 쇼는 해학과 풍자 속에서만 존재감을 드러낸다. 광장의 구호는 사실 조국 수호도, 검찰, 언론 개혁도 아니었다. 시민들은 다시는 멍청이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더는 바보로 살지 않겠다고 외쳤다. 터무니없는 세상에 터무니를 세우고 어처구니없는 세상에 어처구니를 돌려놓으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적어도 내 눈에 비친 광장은 그런 모습이었다. 2019년 우리는 이 시대의 ‘이디오크러시’를 끝낼 수 있을까?
  • 뇌종양 투병 소년의 선물 훔친 도둑들…참회 편지와 함께 반납

    뇌종양 투병 소년의 선물 훔친 도둑들…참회 편지와 함께 반납

    미국 델라웨어주 블레이즈에 사는 티모시 빅 주니어(5)는 자폐를 앓고 있다. 소년의 아버지 티모시 빅 시니어는 “아들이 2살 때쯤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대부분의 자폐아가 그런 것처럼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 한다”고 말했다. 이런 빅 주니어가 유일하게 몰두해 있는 게 있는데 바로 레슬링이다. 사실 티모시 가족 모두는 프로레슬링의 열렬한 팬이다. 그 중에서도 티모시는 레슬링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빅 시니어는 “아들은 레슬링을 보는 것도, 하는 것도 모두 좋아한다. 형제자매와 늘 프로레슬러 흉내를 내곤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빅 주니어의 부모는 레슬링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특별한 챔피언 벨트를 선물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자폐가 있는 티모시가 뇌종양 진단까지 받았기 때문. 뇌종양으로 투병하는 아들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하고 싶었던 그들은 실제와 비슷한 벨트를 만들기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빅 시니어는 “진짜 벨트처럼 만들려면 일단 온라인에서 가품을 산 뒤 워싱턴으로 보내 개조해야 했다”고 밝혔다. 티모시의 부모는 약 2000달러(약 231만 원)의 비용을 들여 맞춤형 벨트 제작을 의뢰했다. 그러나 개조해야 할 벨트는 워싱턴에서 증발하고 말았다. 빅 부부가 보낸 벨트가 워싱턴 제조업체 현관 문 앞에서 도둑맞은 것. 제조업체 측은 “부재중 도착한 소포가 문 앞에 놓여 있었는데 도둑들이 나타나 가로챘다. 현관문 도어캠에는 여성 2명이 빅 주니어의 벨트를 훔쳐가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밝혔다.소식을 듣고 크게 낙심한 빅씨 부부를 위해 제조업체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현지경찰은 도어캠에 녹화된 도둑들의 모습을 공식 SNS에 공유하며 제보를 호소했다. 그리고 며칠 후, 빅 주니어의 벨트는 4장짜리 사과 편지와 함께 다시 돌아왔다. 편지에는 “아픈 다섯살짜리 아이의 물건을 훔쳤을 줄 꿈에도 몰랐다. 나도 6살짜리 아들이 있다. 내 자신이 부끄럽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도둑들은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든 팔면 돈 몇 푼 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벨트 개조를 의뢰받은 세르지오 모레라이는 “물건을 훔친 두 사람을 직접 만났다. 두 명 모두 아이 엄마였고 마약에 빠진 노숙자 신세였다”고 설명했다. 모레라이는 “두 사람 모두 잘못을 뉘우치며 눈물을 흘렸다”고 덧붙였다. 모레라이는 두 사람에게 죄를 묻지 않고 그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빅씨 부부는 만약 카메라에 절도 현장이 포착되지 않았다면 벨트는 돌려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빅 주니어의 어머니 다니엘레 존슨은 “범행 모습을 들켰기 때문에 미안해하는 것”이라고 화를 감추지 못했다. CNN 등 미국매체의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도둑들에 대한 처분은 일단 관계 당국으로 넘어간 상태다. 한편 모레라이는 티모시의 벨트가 3주 안에 완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모레라이와 빅씨 부부 모두 어서 티모시에게 완성된 챔피언 벨트를 보여주고 싶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실패도 자산… 대구, 오늘부터 동성로서 ‘실패박람회’

    실패도 자산… 대구, 오늘부터 동성로서 ‘실패박람회’

    마지막 날엔 시민 80명 모여 숙의 토론 생산적 공유로 재도약 발판 기회 마련시민의 다양한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재도전을 응원하는 2019 실패박람회가 12일부터 사흘간 일정으로 대구 동성로 일원에서 열린다. 대구시는 행정안전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공동 주최하는 행사로 올해 강원, 대전, 전주에 이어 네 번째라고 11일 밝혔다. ‘가치 있는 실패, 같이하는 내일’이라는 슬로건으로 열리는 박람회에서는 실패자산콘퍼런스, 실패 공감 콘서트, 이불킥 공모전, 실패 토크 버스킹, 국민 숙의 토론회 등이 진행된다. 12일 오후 3시 실패자산콘퍼런스에서는 저명인사의 특강이 펼쳐진다. 성신제 지지스코리아 대표의 ‘실패에서 배우는 인생’, 이동형 전 싸이월드 대표의 ‘다섯 번의 실패, 한 번의 성공’, 신상진 팝업레스토랑 대표의 ‘팝업레스토랑 사례발표’ 등이 이어진다. 이불킥 공모전은 부끄러운 일이 있을 때 이불 속에서 이불을 걷어찬 경험에서 착안한 가장 부끄러운 경험을 겨루는 대회다. 13일 펼쳐지는 ‘실패토크 버스킹’에서는 대구 출신 연극배우 이재선씨가 ‘나는 오늘도 실패한다’는 강연을 한다. 이어 프로레슬러 출신 김남훈씨가 걷지 못하게 된 레슬러가 다시 링 위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미스터 엑스의 비밀’, 개그맨 이봉원씨의 7전 8기 도전 얘기 ‘숨 쉬는 힘이 있으면 도전하라’ 등이 진행된다. 행사 마지막 날 시민 80명이 대구백화점 앞에 모여 실패 사례를 공유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국민 숙의 토론을 연다. 대구백화점에서 구 중앙파출소로 이어지는 길에는 재도전 정책마당 거리와 대구·경북 상생 혁신 스토어가 꾸며진다. 중소기업진흥공단과 대구신용보증재단 등 23개 기관이 참여하는 재도전 정책마당은 재기 및 재도전 관련 서비스를 현장에서 지원한다. 이상길 행정부시장은 “실패 경험의 생산적 공유를 통해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친북 인사’ 日 이노키 의원 또 방북 추진

    ‘친북 인사’ 日 이노키 의원 또 방북 추진

    ‘친북 인사’로 유명한 일본의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출신 정치인 안토니오 이노키(76) 일본 참의원이 34번째 북한 방문을 추진 중이다. 교도통신·산케이신문 등은 지난 4일 이노키 의원이 오는 21일 중국 베이징을 거쳐 북한에 들어가 26일까지 머물면서 북측 고위 인사와 회담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교도 등에 따르면 이노키 의원은 현재 북한을 방문하려고 국회 허가 절차를 밟는 중이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씨줄날줄] 능라도 5·1경기장/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능라도 5·1경기장/황성기 논설위원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디움은 평양에 있는 ‘능라도 5월 1일 경기장’이다. 북한이 88서울하계올림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제행사를 치르겠다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유치하고, 1989년 5월 1일 서울 한강의 여의도 같은 대동강의 능라도에 완성했다. 그해 7월 축전에는 세계 177개국에서 2만 2000명의 청년 학생이 참가했고, 남측에서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임수경씨가 참석했다. 마크 어빙 등이 펴낸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의 하나다.정몽준 아산재단이사장이 대한축구협회장을 지내던 1999년 평양을 방문해 5·1경기장을 둘러보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의 분산 개최를 북한에 제의했다. 북한이 난색을 표명해 무산됐지만, 끼어서 앉으면 20만명까지 들어갈 수 있다고 믿은 그는 국제축구연맹(FIFA)과 일본을 설득할 수 있다며 몇 년간 의욕을 보였다. 말이 15만명 수용이지 20만 가까운 관객이 들어간 적이 있다. 일본의 프로레슬러이자 지금은 참의원 국회의원인 안토니오 이노키(75)가 실전에 나섰던 경기다. 1995년 4월 북한 정부가 5·1경기장에서 주최한 프로레슬링 대회에 19만명이 관람해 세계 프로레슬링 사상 최대의 관객 동원 기록을 세웠다. 다목적인 5·1경기장은 2000년대에는 집단체조 ‘아리랑’ 등의 집단체조 공연장으로 쓰였다. 미국 국무장관으로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백전백승 조선노동당’을 관람했으며,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리랑’을 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15만명의 평양시민 앞에서 “8000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는 연설을 한 것도 5·1경기장이다. 5·1경기장은 남북 교류와 인연이 많다. 남북 대표팀의 통일축구대회가 1990년 10월 11일 5·1경기장에서 열렸고, 1999년, 2015년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도 5·1경기장에서 개최됐다. 서울·평양 축구대회 ‘경평전’의 부활을 서울시가 추진 중인데 5·1경기장에서 열린다면 잔디를 다시 깔아 주는 조건으로 올해 개최될 가능성이 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평양선언 1주년인 오는 9월 5·1경기장에서 방탄소년단(BTS)의 공연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한 달쯤 전 기획사 쪽에 타진을 했으나 답변이 없다”면서 “무료 공연을 하겠다는 스타들이 많은 만큼 5·1경기장 공연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가 급속도로 진전된다면 BTS가 평양 공연을 망설일 이유는 없다. 지난해 4월 걸그룹 레드벨벳의 공연에 서먹한 얼굴을 했던 평양 시민이 BTS를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된다. marry04@seoul.co.kr
  • [하프타임] 故김일·김진호 2018 스포츠영웅 헌액

    ‘박치기왕’ 프로레슬러 김일과 ‘원조 신궁’ 김진호(56)가 2018년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으로 헌액됐다. 김일 유족과 김진호는 1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헌액식에서 스포츠영웅 칭호를 부여받았다. 대한체육회는 2011년부터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명예와 자긍심을 고취한 체육인을 국가적 자산으로 예우하기 위해 스포츠영웅을 선정해왔다. 2006년 타계한 김일은 1957년 일본으로 건너가 역도산 체육관 문하생 1기로 레슬링을 시작한 후 1963년 세계레슬링협회(WWA) 태그 챔피언, 1967년 WWA 세계헤비급 챔피언 등에 오르며 당시 어려웠던 국민에게 감동을 준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진호는 1983년 LA 세계선수권대회 5관왕, 1984년 LA 올림픽 개인전 동메달,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3관왕 등을 차지하며 세계 무대에 한국 양궁을 널리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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