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큰 형님 강동희’ 통했다
슈퍼스타 출신 감독들의 연착륙은 쉽지 않다. ‘농구대통령’으로 불린 KCC 허재 감독은 2005~06시즌 정규리그 5위를 했지만 2006~07시즌에는 10위로 쓴 맛을 봤다. ‘슛쟁이’ 이충희 전 감독도 LG(1997~00년)에선 무난한 성적을 냈지만, 2007~08시즌 오리온스에선 시즌 초 일찌감치 경질되는 수난을 겪었다.
한국농구 명가드의 계보를 잇는 동부 강동희(43) 감독의 첫 시즌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까닭이다. 물론 두 선배 감독과는 차이가 있다. 둘 모두 프로에서 코치 생활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감독으로 시작한 반면, 강 감독은 2005~06시즌부터 4시즌 동안 전창진(KT) 감독을 사사했다. 전략·전술과 훈련법은 물론 ‘사람을 다루는 법’까지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덕분일까. 고전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강동희 감독이 이끄는 동부는 잘 나가고 있다. 11일 현재 8승3패로 전창진 감독이 이끄는 KT에 이어 단독 2위. 전력은 지난 시즌보다 외려 낫다는 평가다. 박지현의 가세로 가드진이 두터워졌고, 윤호영의 성장과 김주성의 부활로 포워드진은 한층 강력해졌다. 높이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든 대신 스피드와 수비 강도는 업그레이드됐다.
전 감독이 만들어 놓은 큰 틀에 강 감독의 색깔이 덧입혀진 셈.
강 감독은 “초반 페이스에 만족한다. 선두 다툼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대 이상이다. 모두 선수들 덕분이다. (김)주성이는 통합챔프를 했던 2007~08시즌 플레이오프 때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흡족해했다. 초보답지 않은 두둑한 뱃심도 여러 차례 보여줬다. 6일 동부전, 8일 삼성전 모두 힘겨운 연장 승부. 하지만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연장전 작전타임 때도 차분하게 선수들에게 ‘원포인트’ 지시를 내렸다.
초보 감독의 어려움도 있다. 강 감독은 “코치로 앉아 있을 때는 감독이 되면 선수들을 두루 쓸 것 같았는데 막상 해 보니 박빙 게임에서 뺄 타이밍을 못 잡겠다. 그러다보니 주전들을 더 고생시키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또 전 감독이 채찍과 당근으로 끊임없이 선수들을 쥐락펴락하는 스타일이었다면, 강 감독은 천성적으로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다. 가끔 일부러 화를 내보기도 하지만 어색할 때도 있다. 하지만 선수들은 ‘친형’ 같은 강 감독의 성공을 위해 외려 한발 더 뛰고, 한 방울의 땀을 더 흘린다. 선수들의 자발적인 희생을 이끌어내는 초보 감독의 ‘큰 형님’ 리더십이 올시즌 어떤 결실을 맺을지 궁금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