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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하오 베이징] 한국어 최초로 공식 통역 언어 채택

    한국어가 이번 대회에서 역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공식 통역 언어로 채택됐다.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BOCOG)는 메인프레스센터(MPC)와 국제방송센터(IBC)에서 한국어 통역 지원을 한다고 28일 밝혔다. 한국어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아랍어, 러시아어, 일본어와 함께 9개 통역 언어로 이름을 올렸다.
  • 뉴욕 공공기관 내년부터 한국어 서비스

    뉴욕시가 내년부터 모든 산하기관에서 한국어 서비스를 의무화한다. 23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내년 1월부터 산하 기관에서 한국어를 비롯해 중국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서비스를 의무적으로 실시토록 규정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이에 따라 뉴욕시 산하 모든 기관은 행정 관련 서류를 영어 이외에 6개 국어로 제공해야 하며, 행정서비스를 이용할 때 언어 불편을 없애기 위해 이중언어 구사자 채용 같은 구체적 방안을 45일 안에 마련해야 한다. 블룸버그 시장은 “언어 장벽으로 인해 행정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뉴욕시민이 180여만명에 달한다.”면서 “시민이 시 정부와 법규정을 모른다면 행정서비스 제공에 들어가는 예산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말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PEN이 pen으로 철학을 고민한다

    PEN이 pen으로 철학을 고민한다

    ‘앙가주망(engagement)’은 ‘참여’를 뜻하는 프랑스어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유행시켰다. 그는 ‘계약’‘서약’‘구속’의 의미를 갖던 단어를 ‘정치·사회참여’라는 의미로 확장·발전시켰다. 사르트르를 거치며 ‘낡은 앙가주망’은 실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의 자유행위와 책임에 관한 사상으로 새롭게 진화했다. ●실무자·사무실 없지만 사안 있으면 한목소리 전국철학자앙가주망네트워크(PEN·Philosophical Engagement Network)는 ‘한국의 사르트르’들이 모인 단체다. 엄밀히 말해 단체라고도 할 수 없다. 대표도 실무자도 사무실도 없다. 평소에는 아무 것도 안 하는 ‘실체 없는 조직’이나, 일이 터질 때마다 기동성 있게 결합한다. 집단적으로 모여본 적도 없다. 사발통문을 돌려 의견을 모으고 성명을 발표할 뿐이다. 그들 표현대로 ‘유목적’이다.PEN은 펜(pen)으로 발언하고 행동하는 철학자들의 자발적 네트워크인 셈이다. 전국에 흩어진 PEN이 또한번 머리를 모은다.‘미국산 쇠고기 논란’에 맞춰 성명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철학자들 사이를 매개하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참여를 채근하는 사탄 역할’을 맡아온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가 직접 성명 초안을 작성 중이다. 성명엔 쇠고기 사태로 불거진 폭력과 비폭력의 문제, 국가권력과 자본의 문제, 공기업 민영화 문제, 촛불의 향후 전망 등에 관한 전반적인 견해가 담길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의 핵심 화두는 공화국”이라고 정리했다. ●미국산 쇠고기 논란 관련 성명발표 준비 그는 “헌법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한국사회는 잘 먹고 잘 사는 것 외에 공화국의 내용을 규정해 내지 못했다.”면서 “공공성에 기반한 공화국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민주주의도 껍데기란 사실을 철학자들이 꼭 짚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성명이 완성되면 다음주말까지 서명을 받아 발표할 계획이다. PEN은 철학의 시대적 사명을 치열하게 고민한다.PEN 결성은 지난 시기 선배 철학자들이 걸었던 철학의 길을 후배들이 뼈 아프게 반성하며 토해낸 결과물이다. 안호상(1대 문교부장관), 박종홍(전 서울대 교수), 이규호(25대 문교부장관) 등 한국 철학계의 거물들은 각각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토대를 놓으며 ‘철학의 정치시녀화’를 불렀다. 김 교수는 “과거 한국 철학계는 지나치게 서구이론에 몰입하며 현실에 무관심하거나 정치세력과 결탁해 권력의 첨병이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면서 “우리 철학의 수치스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현실과 긴장하며 철학의 시대적 역할을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4년 결성 이후 PEN은 송두율 교수 석방 호소, 이라크파병 연장동의 반대, 삼성 비자금 규명 특검제 도입 촉구, 중국의 티베트 유혈진압 규탄 등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목소리를 냈다. 사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보통 200여명의 철학자들이 이름을 보탰다. ●선배들의 ‘철학의 정치시녀화´ 뼈아프게 반성 PEN엔 정파가 없다. 보수적 철학관을 가진 학자부터 진보적 철학자들까지 골고루 참여하고 있다. 동의하면 이름을 올리고 동의하지 않는 성명엔 이름을 뺀다.PEN은 입장에 따른 견해차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PEN이 공유하는 유일한 가치는 ‘공공적 이성과 양심’이다. 김 교수는 “철학자의 양심이야말로 정파를 뛰어넘는 힘이 있다.”고 단언한다.‘이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형성된 상호 신뢰는 지난해 ‘전국대학철학과연합’(회장 배석원 경상대 교수)을 탄생시키는 동력이 됐다. 각 대학에 소속된 PEN 회원들이 주도해 ‘철학과다운 철학과를 만들자.’며 협회를 결성했고, 전국 대학 대부분의 철학과가 동참하고 있다. ●공유하는 가치는 ‘공공적 이성과 양심´ 한국 지식인운동은 시대별로 주도층이 바뀌는 특징을 보였다.1970∼80년대엔 문인들이 민주화운동의 선두에 섰고,87년 이후엔 역사학과 사회학 전공자들이 학회를 중심으로 사회 공론장에 개입했다. 김 교수는 현 시기 철학자들이 전면에 나서야 하는 까닭을 ‘총체성’이란 단어로 설명했다.“한국사회가 자꾸 벽에 부딪히는 건 지식인들이 큰 그림을 그려내지 못하기 때문”으로 “사회의 전체 지도를 그리는 작업은 ‘총체성의 학문’인 철학만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김 교수는 전환기에 선 한국사회의 진로를 이렇게 표현한다.‘비판의 시대에서 형성의 시대로!’ 타도하고 부수는 것을 넘어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할 때란 얘기다. 철학이 ‘형성’의 역할을 자임하는 데 PEN이 앞장서고 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소수언어 살려야 민족·국가간 갈등 줄인다”

    “소수언어 살려야 민족·국가간 갈등 줄인다”

    “세계화의 여파로 세계의 언어가 거대 언어, 즉 영어·중국어·프랑스어·독일어 등으로 급격히 수렴되다 보니 전 세계 4000∼6000개 언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의 소수 언어들이 사멸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서로간의 의사 소통이 어려워지면서 여러가지 갈등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언어학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18차 세계언어학자대회에 21∼26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다. 이번 대회에 참석하는 학자들은 이런 맥락에서 “선진국과 후진국간, 민족간에 일어나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수 언어들을 생존·유지시키는 게 바람직하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시아에서 두번째 열리는 이번 대회의 주제는 ‘세계 언어의 통일성과 다양성’. 유네스코가 올해를 ‘세계 언어의 해’로 정한 만큼 소수 언어를 보호하려는 노력과도 맥이 통한다. 세계 언어학계의 거물인 수전 로메인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수전 피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로렌스 혼 미 예일대 교수 등 세계 70여개국 1500여명의 언어학자들이 모두 850여편의 논문을 발표한다. 로메인 교수는 ‘언어의 권리:국제화 세계 안에서의 인류 발전과 언어 다양성’을, 피셔 교수는 ‘동양과 서양의 수화’라는 제목으로 특별 강연한다. 로메인 교수는 먼저 사멸 위기를 맞고 있는 세계 소수 언어의 보호에 주목한다. 그는 “창의적 사고를 잘 하기 위해서는 자기 모국어로 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면서 “세계 속의 다양한 언어도 천연자원처럼 보존·유지하기 위한 획기적이고 철저한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피셔 교수는 청각 장애자들을 위한 수화도 민족이나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수화는 기본적으로 국경을 초월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미국과는 달리 그리스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게 부정을 뜻하는 등 수화에서도 지역과 민족적 차이가 있다.”고 강조한다. 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은 이익환 연세대 명예교수는 “대회의 주제가 ‘세계 언어의 통일성과 다양성’인 만큼 언어의 보편성 내지 보편문법 확립에 이바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개화기·일제시대에도 영어는 출세의 필수 수단

    개화기·일제시대에도 영어는 출세의 필수 수단

    새 정부가 ‘아륀지’소동으로 영어사교육을 부추기고 혀를 더 잘 굴리기 위해 아이들이 수술대에 내몰리는 시대. 이같은 ‘영어 쓰나미’ 현상은 초등학교에 영어교육이 도입된 1997년부터 이미 그 싹을 보였다. 그러나 ‘개화기·일제시대에도 영어가 곧 권력이자 출세의 필수 수단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은다. 박거용 상명대 영어교육학과 교수는 계간 ‘내일을 여는 역사’(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펴냄) 여름호에 실린 ‘영어 신화의 어제와 오늘’이란 논문을 통해 이같은 주장을 폈다. 일제시대는 흔히 영어교육의 ‘암흑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박 교수는 “이는 정확하지 못한 인식”이라고 단언한다.3·1운동 후 일본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고등보통학교의 필수 과목으로 정했다.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이 시행되면서부터는 주 32시간 교육 중 외국어 교육시간이 5∼7시간을 차지하기도 했다. 개화기에는 ‘미션스쿨’이 큰 역할을 했다.1885년 배재학당,1886년 이화학당·경신학교 등이 설립되면서 영어교육기관으로 활용됐다. 특히 영어교육이 설립 동기 가운데 하나였던 배재학당에는 많은 학생들이 몰렸다. 그러나 1903년 영어 과목이 정규과목에서 제외되자 학생들이 대부분 다른 학교로 전학 가버리는 일도 발생했다. 박 교수는 “이는 예나 지금이나 영어가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독자의 가치를 지닌 물신’ 또는 ‘문화자본’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결국 “영어는 근대문명 수용의 도구이자 출세의 수단으로 기능했고, 한국 영어교육의 고질병인 문법 중심·번역식 영어교육도 이때부터 출발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영어 제일주의’ 풍조는 해방 후 3년간 미 군정기에서 극에 달했다. 당시 미 군정청의 ‘조선인에게 고함’이라는 태평양 미군 육군부대 사령부 포고 1호는 “군사적 관리 기간 동안에는 영어가 공식 언어다.”라고 규정했다. 공식 언어는 영어이고 영어 원문이 기준이 되며 조선어나 일본어는 참고자료일 뿐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의 지적대로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면에 걸쳐 일제(日帝)에서 미제(美帝)로의 이동이 자연스럽게 완료된 셈”이다. 박 교수는 영어광풍을 잠재우기 위해 “미신이 되어버린 영어신화를 깨고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대학교까지 아우르는 일관성 있는 교육 정책과 과정 개발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직지심경 대모’ 在佛 사학자 박병선박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직지심경 대모’ 在佛 사학자 박병선박사

    “박사님, 올해 여든하나이신데 아주 정정해 보이십니다.” “(잠시 창밖을 응시하더니)세월이 그렇게 흘렀네요.” 짧은 생머리, 나이만큼 백발이 묻어났지만 주름살은 별로 없었고, 눈썹과 입술 화장이 잘 어울려 보였다. “여전히 얼굴이 고우십니다. 젊었을 땐 참 예쁘고 미인이었겠습니다.” “어이구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어릴 때 친척들한테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잘생긴 언니와 오빠, 동생들과는 비교가 안됐지요. 미인이라뇨? 천만의 말씀입니다.” 약간 홍조 띤 얼굴로 변한다. “죄송한 질문이지만 결혼은 왜 안 하셨는지요?” 보통 같으면 증손자까지 봤을 법한 할머니에게 던진 질문 자체가 우스웠나 보다. “뭐 특별한 이유가 없어요. 한 가지 일을 끝내면 또 다른 일을 시작하고, 그것에 파고들다 보면 정신없이 시간 가고, 어디 (연애할) 틈이나 생겨야 말이지요. 호호.” 노(老) 박사의 웃음 짓는 모습은 해맑은 소녀의 그것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하시는 일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젠 나이도 그렇고 쉬셔도 되는데 젊은이들보다도 정열이 더 뜨겁습니다.” 잠시 한숨을 쉰다.53년 동안 도도히 흐르는 역사와 함께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한우물을 팠다. 또한 해야 할 관련 숙제 역시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인 듯하다. “더 늙기 전에, 총기가 사라지기 전에 선명하게, 뚜렷하게 규명해야 일들이 많이 있네요. 개인이 한다는 게 외롭고 어렵긴 하지만….”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는 노 박사의 말과 표정이 경외스럽도록 다가온다. 문득 노 박사를 모델로 한 역사 추리소설(외규장각도서의 비밀)이 생각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까.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한국학중앙연구원 게스트하우스.‘직지심경(直指心經·직지심체요절)’의 대모(代母) 박병선 박사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가 직지심경의 대모로 불리는 까닭은 1967년 파리에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을 발견해내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킨 1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최근 방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언론의 인터뷰가 쇄도했다. 그래서인지 박 박사는 직지심경이나 외규장각도서 얘기는 하도 많이 해서 가급적 피해달라고 먼저 주문한다. 재불(在佛) 역사·서지학자인 그가 잠시 방한한 이유는 1985년 국내에서 발간했던 ‘조선조(朝鮮朝)의 의궤(儀軌)’ 증보판을 내기 위해서다. 이번 증보판은 300쪽 중 100쪽가량을 프랑스어로 썼다는 점이 눈여볼 대목. 그는 평소 프랑스인들이 병인양요를 거의 모른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증보판 앞 부분에 병인양요에 대한 설명과 ‘왜 한국 사람들이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해 달라.’고 요구하는지 등을 프랑스어로 자세히 언급한다. 또한 의궤의 내용과 그것이 프랑스로 가게 된 사연, 당시 프랑스 해군의 일기와 공문서 등도 새롭게 첨부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의 출간을 염두에 두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이번 증보판에는 당시 프랑스 해군들의 행적을 어렵게 추적, 이른바 ‘작전루트’를 처음 공개할 예정이어서 중요한 역사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병인양요와 의궤 반환문제로 프랑스 국영 3TV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이때 방송사 간부한테 ‘프랑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대부분 모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더 이상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때마침 한국학중앙연구원측의 도움으로 이번에 작업을 하게 된 것. 증보판은 한달 후쯤이면 국내에 선보일 예정이다. ▶당시 프랑스 해군들의 흔적과 관련된 자료는 많이 있는지요. “프랑스가 1차 원정 왔을 때 일기를 보면 강화도의 문수산성과 적성산성 등을 왔다갔다는 기록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2차 원정때의 군함, 당시 그림과 자료, 관청의 위치도 등을 종합해볼 때 황해도 연안까지 갔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행적을 찾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최초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최대한 자세하게 그려볼 생각입니다. 현재 이 작업만 남아 있습니다.” 그는 방한에 앞서 당시 프랑스 로즈함대장의 후손을 만나 여러 번 설득 끝에 강화도 등에서 프랑스로 압수해간 ‘압수목록표’를 어렵게 얻을 수 있었다(이번 증보판 부록에 실린다). 그는 “로즈함대장의 후손은 할아버지를 영웅으로 알고 있으며 곧 ‘할아버지 전기’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프랑스인들은 병인양요나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해달라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지요. “도대체 그걸 왜 반환해야 하느냐고 묻는 프랑스인들이 많습니다. 이때마다 ‘만약 루이 14세의 왕실 행사를 자세히 기록한 유일한 문서본이 다른 나라에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되묻지요. 그럼 프랑스인들은 당연히 찾아와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프랑스에서 지내는 50여년 동안 한국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대부분 스크랩해 놓을 만큼 자료 수집에 많은 애착을 갖고 있다. 특히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관 등에서 3·1운동 당시 한국에 주재했던 프랑스 영사관이 본국에 보낸 많은 공문서를 찾아냈다. 또 일제때 일본과 중국에 주재했던 프랑스 공관이 본국에 보낸 공문서 중 한국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모은 자료 등을 합하면 무려 2000상자 1만 5000쪽 분량에 이른다. 이 귀중한 것들을 정리하고 책으로 펴내는 일이 그의 마지막 숙원사업. 파리에도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가 그만큼 많다고 강조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혼자서 어렵게 해왔습니다. “개인이 한다는 게 사실 엄두가 안 나지요. 국가에서는 (반응이)냉랭합니다. 아무튼 어렵게 자료들을 모았으니 그냥 놔둘 수도 없겠고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다가…. 지금이라도 국가에서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1919년 파리 강화회의 당시 독립을 호소했던 김규식 박사의 자취도 추적했다. 파리 시내 서쪽 쇼토 거리에서 이들이 머물던 곳을 찾아냈고 2006년에 겨우 건물 현판 정도만 걸 수 있었다. 기념관이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박 박사의 어릴 적 꿈은 유치원을 설립해 서구식 교육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대 사대에 진학했지만 나중에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방향을 틀었다. 대학 때는 손보기(사학자)·이두현(민속학자) 선생 등과 친하게 지냈다.6·25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유학을 택한 것은 평소 가톨릭 신자로 프랑스 출신 수녀들과 가깝게 지낸 덕분. 이후 소르본대학에서 종교사를 전공한 뒤 파리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던 중 1979년 의궤를 찾아낸 직후 ‘비밀을 누설했다.’는 질책과 함께 파리국립도서관을 그만두었다. 이후 여러 파란곡절을 겪었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고문서와 귀중한 자료들 속에 파묻혀 ‘여자의 일생’을 걷고 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8년 서울에서 5남매 중 셋째딸로 태어났다. 서울대 사대 사회생활학과(역사학과)를 졸업한 뒤 1955년 6·25 이후 민간 여성으로는 첫 프랑스 유학비자를 받고 떠났다. 소르본대학에서 종교사를 전공(석·박사)한 뒤 1967년 파리국립도서관에 근무할 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경’을 발견해 냈다. 이어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책의 역사 종합전람회’에 출품, 구텐베르크의 성경책보다 무려 73년이 앞선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1979년에는 조선 왕조의 의식에 관련된 세세한 기록문인 외규장각 도서 279권을 프랑스국립도서관 창고에서 발견, 한국에 알렸다. 이같은 공로로 대한민국훈장 동백장과 제7회 비추미여성대상특별상 등을 받았다. 특히 1919∼1920년 사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가 있던 청사를 찾아내기도 했다. 현재는 파리 근교에서 살면서 한국 관련 각종 고서연구와 프랑스에서 본 한국의 3·1운동 등에 관한 독립운동사를 정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인쇄사’(프랑스어·스페인어·영어·한국어)가 있고, ‘한국의 무속사’‘한국의 역사’ 등을 프랑스어로 펴냈다.
  • 읽기 쉬운 고지서

    이달부터 서울시가 발행하는 각종 세금고지서가 보기 쉽고, 읽기 편하게 바뀐다. 서울시는 단순한 나열식의 과세 정보를 제공하던 세금고지서를 이달 자동차세 고지서부터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꿔서 발행한다고 24일 밝혔다. 디자인이 바뀌는 고지서는 6월 자동차세와 7,9월 재산세,8월 주민세 등 정기분 지방세 고지서이다. 새로운 디자인은 납세자의 편의를 위해 내야 하는 금액, 기한, 담당자 성명 등 필요한 정보의 글자 크기를 키우고 진하게 강조했다. 고지서 앞면은 주요 과세정보만 적고, 뒷면에 자세한 설명을 달아 정보 전달 기능을 강화했다. 또 납세고지서, 각종 코드 등 어려운 행정용어 사용을 줄였다. 고지서 색상은 자동차세는 연한 파란색, 재산세는 연한 주황색, 주민세는 연한 녹색이다. 이와 함께 2001년부터 영어판만 발행하던 외국인용 세금 고지서는 일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 3개 언어를 추가하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수십년간 사용되던 정기분 지방세 고지서는 과세관청 위주의 권위주의적인 부분이 있어 실제로 납세를 하는 시민이 정확한 정보를 알기 어려웠다.”면서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한 고지서를 올해 1500만건 발송하고, 앞으로 모든 지방세와 과태료 등 세외수입 고지서의 디자인도 바꿔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진관희 누나, 동생에게 “금욕해라” 충고

    진관희 누나, 동생에게 “금욕해라” 충고

    섹스 스캔들로 물의를 빚고 홍콩 연예계를 은퇴한 배우 에디슨 천(陳冠希·이하 진관희)의 누나가 동생에게 공개적인 충고를 던져 화제가 되고 있다. 홍콩에서 가수로 활약했던 천젠페이(陳見飛·진견비)는 진관희의 둘째 누나로 지난 2004년 코카인 불법소지 혐의로 벌금형을 받는 등 동생 못지않은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최근 올림픽 관련 공식 행사에 참석한 천젠페이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종교를 가지면서 금욕을 실천하고 있다.”며 “교제한 지 한달 된 남자친구와도 ‘플라토닉 러브’를 실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녀는 섹스 스캔들로 아시아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자신의 동생 진관희에게도 “깨끗한 마음으로 금욕할 것을 권한다.”면서 “법을 엄격히 지키고 언행에 주의해야 한다.”고 따끔히 충고했다. 동생만큼 ‘자유로운’ 연애관으로 유명세를 치뤘던 천젠페이는 최근 남자친구와 키스하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이 인터넷을 떠도는 것에 대해 “남자친구와 만난지 한달이 지났다. 포옹과 손을 잡았을 뿐 그 이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는 이제 혼전 성관계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다. 동생을 아는 목사에게 인도해 금욕생활을 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진관희의 스캔들 당시 심정에 대해서는 “동생 뿐 아니라 나도 매우 힘들었다.”면서 “너무 큰 부담과 충격 때문에 심장에 이상이 생겨 입원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한편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에서 경영관리학을 전공한 천젠페이는 영어·프랑스어·광둥어 등에 능통한 중화권 연예계 인재로 알려졌었으나 마약 파동이후 우울증을 호소하며 연예계 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사진=yule.sohu.com(왼쪽은 진관희의 누나 천젠페이, 오른쪽은 진관희)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굵직굵직한 이슈들 정리 번역의 역사적 의미 조명

    훌륭한 번역가를 만났을 때 국경을 넘어온 책에는 없던 날개가 달린다. 원문의 묘미를 다치지 않고 옮기는 글작업이 얼마나 힘든지를 압축한 표현이 있다.“번역은 반역이다.” 영국속담이기도 한 이 말은 빼어난 언어감각으로 독일어권 문학의 지평을 넓힌 번역작가 슐레겔이 인용해 더 유명해졌다. 일본의 저명 번역가 쓰지 유미가 쓴 ‘번역사 오디세이’(이희재 옮김, 끌레마 펴냄)는 번역의 인류문화사적 의미를 짚는다. 원작자 혹은 번역가 둘 중의 하나는 만신창이가 되고만다는 번역의 고단한 면모를 따진 게 아니라 인류사에 걸쳐 그것이 남긴 ‘성과’에 주목했다. 책은 인류의 문화, 학문, 예술, 과학이 세대와 국경을 넘어 파급되는 과정을 ‘번역’이라는 창을 통해 들여다봤다.“다른 나라의 언어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자기의 문화를 재창조하는 작업”이라고 번역을 정의한 뒤 번역은 창조에 종속되는 작업이 아니라 한때 창작에 버금가는 중요한 문화행위였음을 흥미로운 일화들을 동원해 재확인시킨다. 번역이 처음 시작된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는 번역가들이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기원 이후의 이집트나 중세 유럽의 번역가들은 왕국과 귀족의 후원을 받았다는 것. 르네상스기에서부터 근대까지 번역을 둘러싸고 벌어진 굵직굵직한 이슈들을 정리한 대목은 특히 주목해볼 만하다. 그리스도교 국가인 중세 유럽은 이슬람교도인 아랍인들의 번역으로 꽃피워진 그리스·로마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성경이 아랍의 번역을 거쳐 중세로 전해졌으나, 유럽은 라틴어 성경을 고집했다. 대중의 통속어(프랑스어)로 성경을 번역할지의 문제도 대단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일리아스’ 원문의 번역을 둘러싸고 고대파와 당대파가 서로 우월하다고 다투는 바람에 프랑스가 시끌시끌했던 적도 있었다. 책이 귀띔하는 흥미로운 사실 또 한가지. 앙드레 지드, 보들레르, 몽테뉴, 뒤마, 볼테르 등 중세와 근대를 움직인 대다수의 저명작가들은 번역으로 글쓰기의 탄력을 붙여갔다.1만 4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프랑스 교육공로훈장 받아

    김현주 단국대 교수가 프랑스어 진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교육공로훈장을 받는다. 수여식은 15일 오후 6시 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린다.
  • [68혁명 40돌] (2) 혁명은 살아있다-佛 대표적 68세대 이냐시오 라모네 교수 인터뷰

    [68혁명 40돌] (2) 혁명은 살아있다-佛 대표적 68세대 이냐시오 라모네 교수 인터뷰

    |파리 이종수특파원|“모든 종류의 권위주의와 싸웠던 68혁명의 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30주년이니 40주년 하면서 68혁명을 자꾸 ‘의례화’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프랑스의 대표적 앙가주망(현실 참여) 지식인으로 불리는 이냐시오 라모네(65) 파리7대 교수는 68혁명 40돌을 맞이한 심정이 약간 착잡한 듯했다.2일(현지시간) 파리 13구 ‘비판적 저널리즘의 상징’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건물에서 만난 그는 68혁명의 ‘계승’을 거듭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혁명 주역들의 ‘변신’을 뼈아프게 꼬집었다.“당시 학생운동 리더였던 다니엘 콘-벤디트가 녹색당의 일원으로 유럽의회에 진출한 것은 흥미로웠다. 그러나 정작 그가 한 일은 무엇인가. 현재의 그는 정치적 부르주아에 불과하다.” 68혁명 당시 마오쩌둥(毛澤東)주의자로서 비판의 칼을 빼들었던 철학자 앙들레 글뤽스만에 대한 평가는 더 혹독했다.“그는 아예 신보수주의로 돌아섰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지지하더니 지난해에는 사르코지를 공식 지지했다. 그의 모습에서 타락·부패를 연상했다. 깨끗하지 못한 ‘늙음의 형태’라고나 할까.” 인터뷰 도중 그의 휴대전화가 끊임없이 울렸다.1997년부터 10여년간 맡았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주간직을 지난 3월에 그만뒀지만 여전히 분주했다. 프랑스의 대표적 68세대로서 68혁명의 정신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그에게 68혁명의 본질과 현대적 의미를 물어보았다. 그는 차분한 어조(이제껏 인터뷰 한 인사 가운데 가장 듣기 쉬운 프랑스어였다는 느낌이었다)로 68혁명의 어제와 오늘을 정리해줬다.“68혁명은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정치적 혁명이라기보다는 ‘삶을 변화시키자.’는 문화 혁명이었다. 칼 마르크스는 ‘세계를 변혁시키자.’고 했지만 68세대는 ‘삶을 바꾸자.’고 거리로 나섰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서양사가 68혁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어 68혁명의 현대적 계승에 대해서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 특히 세계화라는 거센 물결과의 싸움은 매우 중요하다. 각국의 경제 주권을 훼손시키는 국제 자본의 거대한 야망과 싸우는 것은 68혁명과 맥이 닿는다.” 그는 1990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인연을 맺은 뒤 세계화를 비판하는 날카로운 기고문을 남겼다. 또 세계화에 반대하는 시민운동단체 ATTAC(Association for a Taxation of financial Transactions in Assistance to the Citizens)를 세워 세계화와 싸우고 있다.ATTAC는 지난해 5월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등급을 결정하는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장 앞에 항의 시위를 하러 왔던 한국 농민단체와 함께 지지 시위를 했다. 이어 68혁명의 현재적 의미와 관련, 최근 벌어지고 있는 고교생들의 시위를 주목했다.“교원 정원 감축에 항의하는 고교생들의 시위는 겉으로 보면 교사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일방적으로 감원안을 밀어붙이는 정부 입장에 반발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68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은 움직임이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지방 도시 보르도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파리 시위 현장에는 없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 전역이 혁명의 열기에 휩싸였다. 보르도에서 열린 시위와 정치 논쟁에 참가했는데 ‘새 사회’의 대안으로 마오쩌둥주의, 체게바라주의자 등 다양한 이념들이 분출됐다. 당시 열기는 혁명적 낭만주의에 비유할 수 있다.” 이어 68년 5월혁명의 정점이었던 5월 ‘바리케이드의 밤’에 참여한 많은 친구들의 경험담을 들려줬다.“경찰과의 대치 속에 팽팽한 긴장이 오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위 현장에 참여한 남녀노소가 모두 하나가 돼 갔다.”고 들려주었다. 화제는 프랑스의 현안으로 넘어갔다. 기자가 지난해 대통령선거 2차 국면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이 “프랑스가 발전하려면 68혁명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고 도발적인 주장을 해 거센 논란이 일었다고 환기시켰다. 그러자 라모네 교수는 즉각 냉소적 표정으로 “사르코지 대통령이 68혁명의 유산을 청산하자고 한 것은 자가당착이다.”라고 맞받았다. 구체적 이유를 묻자 “68혁명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이혼 경력이 있고 이민자 출신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프랑스와 한국 등 최근에 일고 있는 실용주의 ‘열풍’에 대한 우려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을 네차례 방문할 정도로 한국의 시민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과 프랑스 대통령이 모두 ‘실용주의’를 주창하고 나섰는데 실용주의가 무엇인가. 돈이 되면 다 한다는 것 아닌가. 연대와 공동체 정신이 훼손될 가능성이 많아 걱정스럽다. 또 한 국가의 경제가 쉽게 개선될 수 있는가. 한 국가의 경제는 국제 경제와 맞물려 있다.” 그 연장선에서 자신이 비판해온 세계화가 첫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동에서 시작한 세계 금융 위기는 결국 세계화의 위기를 의미한다. 또 석유·곡물 가격의 폭등과 환경 파괴 등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맞물려 있어 국제 경제의 사이클이 달라지는 시기에 직면했다. 이와 관련 미국 대통령 선거가 주목된다.” vielee@seoul.co.kr ●이냐시오 라모네는? 프랑스에서 68혁명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대표적 지식인.1943년 스페인 레돈델라에서 출생. 기호학자 롤라 바르트의 제자로 파리 고등사회과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파리7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임용됐다.1997년부터 지난 3월까지 국제문제 전문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주간으로 활동. 이 신문에 실은 세계화에 대한 날카로운 기고문으로 유명하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전 국가평의회장과 단독 인터뷰를 할 정도로 친분이 두텁다. 한국에도 번역 출간된 ‘커뮤니케이션의 횡포’를 비롯 ‘상업의 제물, 커뮤니케이션’‘세계의 새로운 권력과 지배자’‘조용한 프로파간다-대중, 텔레비전, 영화’‘마르코스, 반역의 존엄성’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 [Seoul In] ‘서초 e-교육센터’ 강좌 확대

    서초구(구청장 박성중) 인터넷 교육강좌서비스인 ‘서초e-교육센터’(edu.seocho.go.kr)가 새롭게 개편한다. 영어·일본어·중국어·프랑스어 등 외국어, 자격증, 문화, 컴퓨터, 여성 등 9개 분야 146개 강좌로 확대했다. 인터넷으로 업무담당자와 무료 통화할 수 있는 ‘인터넷 무료민원전화 서비스’도 시작했다. 전산정보과 570-6908.
  • 친부모 찾는 한국계 벨기에인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친부모 찾는 한국계 벨기에인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어머니는, 음악을 닮았을 거예요. 취재, 글 박혜란 기자 ┃ 사진 한영희 무대에 설 때마다 그는 기대와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오늘 연주하는 이 곡이 삶을 뒤흔들 운명의 서곡이 되는 건 아닐까. 지금 객석 어디에서 친부모님이 내 연주를 숨죽여 듣고 있는 건 아닐까. 연주가 끝나고 그분들이 다가와 “우리가 네 엄마, 아빠란다” 하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클래식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34세, 신성호)는 유럽에서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연주자이다. 2004년 유럽 콘서트홀 연맹이 ‘라이징 스타’로 지목하여, 뉴욕 카네기홀,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빈 무지크페라인,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같은 세계 유명 콘서트홀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그런 그가 한국으로 날아와 크고 작은 무대를 가리지 않고 기타를 연주하는 것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찾게 될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1975년 1월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사흘 만에 고아원에 보내졌다. 그리고 돌이 되기 전 ‘좋아하는 것은 우유이며, 그 밖에 신체적 특성은 없다’는 문서 한 장을 발급받고 벨기에로 입양되었다. 다시 한국 땅을 밟게 된 것은 2006년 한민족문화공동체대회의 초청을 받고서였다. 갓난아기는 그 사이 서른 넘은 청년이 되어 있었다. 벨기에 국적을 가지고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썼다. 하지만 서울 거리에서 마주치는 청년들보다 더 한국적인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젓가락질을 잘했고, 김치와 곱창을 즐겨 먹었다. “열여덟 살까지 살았던 곳은 수도 브뤼셀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벨기에 남부의 아름다운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동양인이 거의 없는 그곳에서 ‘보름달’이다 ‘밥공기’다 놀리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그들과, 부모님과도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춘기 때는 친부모에게서 버림 받은 것에 대한 분노로 어설픈 반항아가 되기도 했고, 4년 넘게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원망과 미움도 다 버렸습니다. 나는 행복하다고, 어머니를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혼란과 방황 속에서 그의 삶을 이끌어준 등대는 기타였다. 양부모님은 클래식 음악에 흥미를 보이는 어린 아들에게 피아노를 사주고 싶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대신 기타를 사주었다. 여덟 살 때 처음 기타를 잡은 그는 자기 손으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기타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제2의 목소리였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세계였다. 그곳에서는 자신이 벨기에인인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사랑 없이는 살아도 기타 없이는 못 살아요.” 기타가 그의 정체성이었다. 어떻게 하면 기타를 잘 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끝없이 연습하고, 자신의 길을 찾으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것은 연주자로서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공허함과 상실감이 늘 따라다니기에, 입양인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놀랍도록 큰 행복이 찾아오리라 믿지 않아요. 그보다는 평범하고 평온한 삶의 순간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입니다.” 은 ‘테크닉은 뛰어난데 영혼이 부족하다’고 평하는 유럽 음악계에서 그는 남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했다. 수련을 하듯이 꾸준히 연습하고, 자신의 내면과 끊임없이 싸울 것.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묻고, 나를 알아가고,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자신과 자기 음악의 뿌리를 찾고 싶은 것은 그 때문인지 모른다. “양부모님은 음악과는 거리가 먼 분들이지요. 친부모님에게서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의 양아버지는 체육 교사였고, 양어머니는 화원을 운영했다. 소박하고 따뜻한 분들이었고, 언제나 그의 뜻을 존중하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그는 기타 케이스 안에 양부모의 사진을 지니고 다녔고, 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주 안부 전화를 했다.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던 날선 감성은 이제 조금씩 세상을 향해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연초에는 충남 서산의 한 시골 보육원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호기심 어린 눈망울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날 아이들이 본 것이 희망이었길 바랍니다.” 마치 동생들에게 처음으로 큰형 노릇을 한 사람처럼 그는 뿌듯해했다. 현을 튕기는 그의 오른손 손톱은 길고 날카로운 삼각형이다. 현을 눌러야 하는 왼손 손톱은 바짝 깎아 동그랗다. 그렇게 서로 다르게 생긴 양손으로 그는 영혼을 울리는 연주를 할 수 있다. 같은 것과 다른 것, 얻은 것과 잃은 것, 슬픔과 기쁨을 모두 껴안고 그는 묵묵히 현을 고르고 있다. 드니 성호는 열네 살 때 벨기에 청소년 음악경연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파리 알프레드 코르토 음악학교와 벨기에 왕립음악원에서 수학했다. 클래식기타 이중주단으로 유명한 세르지오 오다이르 아사드 형제의 수제자이기도 한 그는 탱고와 같은 남미음악을 주로 연주한다. 세 장의 앨범을 내고 유럽 각지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주한교황대사에 파딜랴 대주교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2일 신임 주한 교황대사로 필리핀 출신 오스발도 파딜랴(66) 대주교를 임명했다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전했다. 파딜랴 대주교는 1966년 필리핀 세부 대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으며 외교관 양성센터인 교황청 교회학술원을 나와 1972년부터 교황청 외교관으로 일했다.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를 구사하며 1990년부터 파나마, 스리랑카, 나이지리아 주재 교황대사를 거쳐 2003년부터 코스타리카 주재 교황대사를 맡아왔다.
  •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윌리엄 존스턴 지음

    프로이트, 루카치, 비트겐슈타인, 슘페터, 말러, 브로흐, 볼츠만, 부버, 후설, 만하임, 클림트, 곰브리치, 쇤베르크…. 전 세계가 기억해 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기억할 사상가이자 예술가인 이 이름들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모두 오스트리아가 낳은 거목들이란 점이다. 이들의 사상과 예술이 무르익은 시간적 공간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미국 매사추세츠대 역사학과 교수였던 윌리엄 존스턴은 세계적 지성들이 한데 어울렸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황혼기에 주목했다.‘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변학수 등 옮김, 글항아리 펴냄)은 1848년에서 1918년 사이 오스트리아의 지식인들이 그토록 거대한 정신적 성과를 이뤄내기까지 어떻게 사회와 유기적으로 교류했는지를 짚었다. ●프로이트 등 오스트리아 지성 70여명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근 600년 동안 유럽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조가 몰락하면서 대제국은 극도의 혼란을 맞았다.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황제 카를 1세가 왕위를 포기하자 제국은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등 모두 6개 민족국가로 분열돼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수도 빈을 포함해 700만 인구를 거느린 오스트리아의 사정은 가장 열악했다. 호프부르크 궁전의 비품들은 식량과 바꿔치기되는 신세가 됐고, 수백년 세를 떨쳤던 쇤브룬 성은 고아원으로 전락했다.1921년 몰아친 혹한으로 이듬해 빈대학은 문을 닫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 조피아와 화가 에곤 실레 등 수천명이 죽은 것도 이 시기였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오스트리아의 문화유산과 사상적 가치들은 독일의 아류쯤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사상과 예술이 대접받는다는 건 당시 형편으로는 사치였다. 시대정황을 정밀묘사한 책은, 그럼에도 그 시점의 오스트리아 사상가와 예술가들을 홀대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세기말, 오스트리아라는 이름의 ‘정신적 대륙’을 누빈 거목들은 세계 지성사에 결정적 자양이 됐기 때문이다.730여쪽의 방대한 저술 속에서 호명된 오스트리아 지성들은 줄잡아 70여명. 사회민주주의자 빅토르 아들러, 오토 바우어, 막스 아들러, 법률가이자 정치학자 요제프 슘페터, 안톤 멩거, 한스 켈젠이 있다. 음악 장르를 확장시킨 브루크너, 볼프, 말러, 쇤베르크를 비롯해 화가 클림트, 실레, 코코슈카 등에 이르기까지 예술사에 새 이정표를 세운 명단도 화려하다. ●세계 역사·문학·예술 등서 족적 남겨 세기말 혼란기를 살았던 거목들의 족적 자체를 상세히 추적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의 목표지점은 일관되게 하나다. 그들의 정신적 허기와 지적 위기를 버티게 해준 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추적이다. 예컨대 당시 빈에서 야유와 모함을 받았으며 오늘날에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당시 프로이트의 사회적 좌표를 되돌아보는 것은 기본이고, 그의 제자들과 반대론자들에 관한 에세이 두 편을 실어 그의 학자적 삶이 시대와 어떻게 유기적 호흡을 시도했으며 또 불화했는지를 되짚는다. 빈을 떠나 보헤미아 지역과 부다페스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프로이트의 면모를 새롭게 읽을 수 있다. 오스트리아 연구에 천착한 지은이의 학문적 깊이 덕분에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된 사실도 적지 않다. 하이데거의 스승이자 오늘날 프랑스어권에서 집중연구되고 있는 에드문트 후설. 보헤미아의 정신권에 뿌리를 대고 빈과 그라츠로 지평을 확장해 간 일련의 재조명 작업 등은 깊이 있는 사상사를 기다려온 독자라면 반색할 만하다. 유럽을 넘어 세계의 문화·사상사 전반을 끝점없이 활강하는 지적 편력, 그 사유의 깊이에 번번이 발목이 잠긴다. 쉽게 책장이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잊혀진 한 시대의 정신사적 성과들을 새삼 확인하는 의미는 선명하다. 저자는 물었다.“온고지신(溫故知新)이 없다면 우리의 정신적 삶은 얼마나 공허하며 얼마나 황량한 것이겠는가?” 2만 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레테름 벨기에 새총리

    [피플 인 포커스] 레테름 벨기에 새총리

    지난해 6월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무려 9개월이 지난 후에야 벨기에 총리직에 오른 이브 레테름(47)을 지구촌이 주목하고 있다. 변호사 출신으로 과묵한 일벌레인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플레미시(네덜란드어권) 기독민주당을 제1당으로 끌어올렸다. 그 후 두 차례에 걸친 연정협상에서 자치권 확대를 둘러싸고 다른 정당과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타결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벨기에가 남과 북으로 갈라서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고조됐었다. 과도정부에서 총선에서 패배한 기 베르호프스타트 전 총리 밑에서 부총리직을 맡기도 한 그는 지난달엔 장출혈을 일으켜 입원까지 했었다. 그는 1961년 왈롱(프랑스어권) 출신 아버지와 플레미시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플레미시 지역 의회에서 정치적 경력을 쌓은 그는 1999년 연방의원이 됐고 2004년 플레미시 정부총리에 올랐다. 천신만고 끝에 총리직에 오르긴 했지만 레테름의 앞날은 장밋빛이 아니다. 언어권 자치확대 문제 등 숙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분리주의자인 그에 대한 지지도가 바닥을 기고 있어 레테름호(號)의 앞길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서초 홈페이지 12개 언어로 서비스

    서초구는 외국인들이 구청 홈페이지(www.seocho.go.kr)에서 실생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지난해 11월부터 영어, 일어, 중국어 등 12개 외국어로 운영한다고 18일 밝혔다.서비스되는 언어는 영어, 일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아랍어, 태국어, 터키어, 몽골어, 베트남어 등 12개 외국어다. 구는 홈페이지의 정확한 번역을 위해 전문 번역가 및 해외 한인회의 협조를 얻었으며 한국에 있는 각국 대사관의 검토도 거쳤다. 이 홈페이지에서는 생활안내, 교통, 관광명소, 가격정보, 교육문화, 각종 통계자료 등 한국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박성중 구청장은 “지역내 터키 국제학교인 ‘레인보 외국인학교’를 비롯해 프랑스마을, 외교센터 등 외국인의 활동이 활발하다.”면서 “모국어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아 한국 생활과 활동에 도움을 얻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국방부 대장급 인사

    ●김태영 합참의장 내정자 이상희 국방장관의 경기고 4년 후배다.23사단장 시절 영동지역 산불과 태풍 루사로 인한 피해 복구에 힘썼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병이 전역하면 반드시 회식자리를 마련할 정도로 자상한 면모가 있다. 수영과 테니스를 즐긴다. 부인 이범숙(53)씨와 1남1녀. ▲58세·서울 ▲육사 29기 ▲6포병 여단장 ▲23사단장 ▲국방부 국제협력관 ▲수도방위사령관 ▲합참 작전본부장 ▲육군 1군사령관 ●임충빈 육군참모총장 원리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창의적인 것을 강조한다. 지난해 육사 교장으로서 화랑대 국제심포지엄을 열어 국제 사관학교 협의체를 결성하는 등 국제적 감각도 지니고 있다. 올해 초에는 새로 창립된 한국군사학교육학회의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테니스를 즐긴다. 부인 최옥례(57)씨와 1남. ▲58세·충남 천안 ▲육사 29기 ▲청와대 국방비서관 ▲17사단장 ▲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 ▲1군단장 ▲육군사관학교장 ●정옥근 해군참모총장 해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 재직시 이지스구축함(KDX-Ⅲ),214급 잠수함 등의 국내 건조 사업을 추진하는 등 해군의 주요 전력증강 사업을 추진했다. 2년간의 프랑스 유학으로 프랑스어에 능통하다. 종교는 기독교. 부인 장은숙(55)씨와 2남. ▲56세·경남 창원 ▲해사 29기 ▲작전사 작전참모처장 ▲진해기지사령관 ▲국방대학교 부총장 ▲제1함대사령관 ▲해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 ▲교육사령관 ●이성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군내 전략통으로서 대미관계에 정통하다는 평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 합참의장의 주무 참모본부장으로서 무난하게 보좌했다. 검정고시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로 사단장 시절 병사들과 함께 자주 식사를 하는 등 현장 중심 리더십을 발휘했다. 부인 박정신(55)씨와 2남. ▲59세·전남 신안 ▲육사 30기 ▲육본 전략기획처장 ▲22사단장 ▲육본 지휘통신참모부장 ▲5군단장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김근태 1군사령관 온화한 성품으로 부하들의 건의를 존중하는 편이다.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 당시 군 대책반을 이끌며 이라크, 아프간 주둔 미군 지휘관들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했다고 한다. 지난해 공직자 재산공개 때 2329만원의 재산을 신고,‘청렴 군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부인 김혜영(52)씨와 1남1녀. ▲56세·충남 부여 ▲육사 30기 ▲합참 작전차장 ▲11사단장 ▲육군대학 총장 ▲7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 ●조재토 제2작전사령관 군 인사·군수 전문가로 후방 작전사령관으로 적임자라는 평이다. 군내 군수업무 체계를 현대화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하부대 순시 때 지적보다 격려를 많이 하는 ‘칭찬형 리더십’의 소유자다. 전북대 철학과를 나와 학군(ROTC)으로 임관해 대장까지 오른 뚝심있는 인물이다. 부인 김점례(63)씨와 1남1녀. ▲61세·전북 김제 ▲3군 군수처장 ▲25사단장 ▲육본 군수참모부장 ▲9군단장 ▲합참 인사군수본부장 ●이상의 3군사령관 3군사령부 작전과장과 1군단사령부 작전참모 등을 역임한 작전통이다.8군단장 시절 엄정한 부대지휘와 작전 능력을 바탕으로 각종 훈련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육사 축구 대표선수 출신으로 지금도 시간이 나면 축구화를 신고 그라운드에 나선다. 부인 황문향(52)씨와 1남1녀. ▲57세·경남 사천 ▲육사 30기 ▲보병학교 교수부장 ▲39사단장 ▲8군단장 ▲건군 60주년 기념 사업단장
  • 시집 ‘찔레’ 다시 펴낸 문정희

    시집 ‘찔레’ 다시 펴낸 문정희

    “상상력과 창조력이 고갈되지 않도록 간단없이 노력해 문학의 건강성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시인 문정희(60·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씨. 이순의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젊고 솔직하다.“새학기가 시작되면 강의하고, 학생들과 만나 술도 마시고 노래방에도 가고….” 시인의 이런 자연스러움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자연스러운 몸의 욕망과 시를 합일시키려는 노력의 결과로 봐야 할 듯하다. ●대부분 1980년대 초 뉴욕서 고독 속에 빠져 쓴 작품 그가 시집 ‘찔레’(도서출판 북인)를 다시 펴냈다. 최근 미국에서 ‘윈드 플라워(Wind Flower)’라는 제목으로 영역 출간된 것은 기념하기 위해서다. 표제시 ‘찔레’를 비롯해 ‘아들에게’ ‘편지’ ‘보석의 노래’ 등 72편의 시가 실린 이 시집은 고독에 빠진 젊은 날의 감성을 웅숭깊게 그려내고 있다. “1980년대 초 2년간 뉴욕대에 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하루종일 말 한마디 할 기회가 없는 절대 고독 속에 빠져 있었죠. 당시에 쓴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때 그 시절, 시인은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오르는 다종다양한 감정을 그대로 시로 옮겨 적었다. 이 시집은 출간 당시 KBS TV 9시 뉴스가 조사한 청소년들이 사랑하는 한국의 애송시집 가운데 하나로 뽑히기도 했다. 시집 ‘찔레’는 시인이 뉴욕을 떠돌며 쓴 아웃사이더의 노래로 가득하다.“삶은 표류하는 것이죠. 그때 거짓과 폭압으로 시작된 한국의 정치 현실은 암울하기만 했고, 나의 현실은 송곳 위에 선 듯 날카롭기만 했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쓴 작품인 만큼 기법상으로 미숙한 점이 적지 않죠. 지금이라면 훨씬 노회하게 썼을 텐데…. 날 것, 그야말로 생 이미지 그대로여서 지금 보면 아찔한 기분마저 들어요.” 당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후유증을 앓고 있던, 무척이나 거칠고 피폐한 시절인지라 시인에게는 유형, 무형의 부담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가을엔 스페인어, 내년엔 불어·일본어판 시집 출간 그래서인지 시집에는 울음의 정조(情調)거 넘쳐난다. 문학평론가 장석주씨는 “시집에 나오는 화자들은 마치 곡비(哭婢·상을 당한 양반집에서 돈을 받고 대신 울어주던 계집종)처럼 울어댄다.”며 “이 울음들은 ‘안’에서 ‘바깥’으로 내쳐진 자, 파편으로 떨어져 나와 떠도는 자, 디아스포라의 울음이다.”라고 말한다. “제가 문학의 중심에 서서 헤쳐나오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어느 한순간도 만만한 적이 없었습니다.” 문학의 승부는 투자한 시간과 비례하는데,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시에 천착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는 얘기다. 이야기는 미당 서정주 선생에까지 미쳤다. 미당의 수제자였던 만큼 그에 대한 마음은 각별한 데가 있다.“고등학교 백일장에 나갔는데, 마침 심사위원을 맡으셨죠. 그때 장원으로 뽑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대학도 선생님을 따라 동국대로 갔죠. 결혼해 아들을 낳았을 때는 이름도 지어주셨어요.” 그러나 미당으로부터 시에 대한 구체적 작법은 배운 적이 없다는 그는 생전에 선생이 선물한 나무 지팡이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지팡이를 보면 든든해지기 때문이란다. “가을에는 스페인어 시집이 나오고, 내년에는 프랑스어와 일본어 시집도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러면 모두 9개 언어로 시집이 나오게 되네요. 시집도 12권이나 냈으니 글로벌 시인이라고 불려도 될까요.” 시인은 시집은 한번 나오면 그만인데, 이번 ‘찔레’가 다시 나오게 돼 자신의 시적 생명이 연장된 것 같아 무척 기쁘다고 했다.6000원.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씨줄날줄] 프랑스 요리/함혜리 논설위원

    먹는다는 것의 첫번째 목적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식사를 식사 그 이상의 것, 즉 삶의 즐거움을 찾기 위한 행위로 보는 전통이 강하다. 루이 14세는 맛있는 요리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화려한 식탁으로 자신의 권력을 과시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식탁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올랐다. 요리사들은 배가 부르지 않으면서 왕의 혀와 눈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요리법을 개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거위간에 달팽이 요리, 개구리 뒷다리까지…. 초대된 사람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에 대해 평가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했다. 음식을 중심으로 하는 식탁에서의 대화술이 중시되고, 식사가 교제와 정치적 결속을 위한 자리가 된 것도 이때다. 프랑스의 미식문화를 체계화한 사람은 브리야-사바랭(1775∼1826)이다. 미식가의 시조로 불리는 그는 ‘미각의 생리학’이라는 책에서 식사의 즐거움을 더할 수 있는 각종 일화와 교훈 등을 요리법과 함께 소개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9년 뒤인 1835년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미식(gastronomie)이라는 단어를 프랑스어로 인정했다. 프랑스는 음식문화와 관련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프랑스가 미식과 식도락의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음식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넓고 비옥한 국토에서 생산되는 농·축·수산물을 이용한 지역 요리들은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치즈 종류만 400여가지가 되고, 포도주는 수천가지에 이른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최근 연례 농업전시회에 참석해 프랑스의 음식문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인들은 환영했지만 이웃나라 이탈리아가 태클을 걸었다. 이탈리아의 피자와 파스타가 프랑스의 달팽이요리나 푸아그라보다 세계인들에게 더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우리의 팔도요리도 프랑스 요리나, 이탈리아 요리에 견줘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한국 요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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