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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티칸에서 파르테논 조각품 돌려받는 그리스 “영국 박물관도”

    바티칸에서 파르테논 조각품 돌려받는 그리스 “영국 박물관도”

    바티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파르테논 신전 조각품을 돌려주겠다고 발표하자 그리스가 다른 나라들도 이런 행동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파르테논 유물 반환에 주저하는 영국박물관을 겨냥한 압박으로 해석된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7일(현지시간) 로이터와 AP 통신 등에 따르면 바티칸 박물관은 파르테논 신전 조각품 3점의 그리스 반환을 공식화했다. 기원전 5세기에 지어진 파르테논 신전의 외벽을 장식했던 말머리 조각과 소년과 수염을 기른 성인 남성의 두상 등이다. 이 조각상들은 바티칸 박물관이 교황 컬렉션으로 100년 이상 보관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2월 이 유물들을 그리스 정교회 수장인 베아티투데 예로니모스 2세 앞으로 기증했다. 예로니모스 2세를 대리해 이날 바티칸 박물관에서 열린 기증 서명식에 참석한 에마누일 파파미크룰리스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결정을 역사적이라고 평가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파파미크룰리스 신부는 “그리스가 어려움에 처한 시점에 이뤄진 이번 결정이 (그리스 국민에게) 자부심과 행복감을 선사하길 기대한다”며 “다른 나라도 교황청이 보인 모범을 따르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결정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기독교 지도자들이 협력할 때 실질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높이 평가했다. 바티칸 박물관이 반환한 조각품들은 오는 24일 그리스에서 열리는 기념식에서 공식 전달된다. 이번 결정으로 바티칸 박물관에는 더 이상 파르테논 신전의 유물이 없게 됐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날 서명식에 교황청을 대표해 참석한 페르난도 베르헤스 추기경은 구체적인 설명 없이 반환되는 유물 3점이 19세기 초 교황의 권한으로 ‘올바르게’ 획득된 유물이라고 밝혔다. 최근 서양 박물관을 중심으로 약탈 문화재 반환 움직임이 이어지는 가운데 영국 박물관도 오랫동안 그리스와 갈등을 빚어온 ‘파르테논 마블스’ 반환에 대해 논의 중이다. 조지 오스본 영국 박물관 관장은 파르테논 신전 조각품들을 영국과 그리스에서 공동 전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최근 밝힌 일이 있다. 영국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소장 문화재를 영구히 돌려주지 못한다는 자국 법을 내세워 ‘파르테논 마블스’의 완전 반환이 아닌 문화 교류 취지의 대여 형식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박물관은 그리스가 오스만제국에 점령된 19세기 초 오스만제국 주재 영국 외교관이던 ‘엘긴 백작’ 토머스 브루스가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간 대리석 조각품 ‘파르테논 마블스’를 보관하고 있다. 신전의 외벽을 감싸고 있는, 길이가 160m에 이르는 프리즈(띠 모양의 부조)의 일부인 이 조각품은 영국 박물관의 대표적인 전시물 중 하나로, 박물관 측은 해당 조각품이 합법적으로 획득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리스의 반환 요청을 수십년 거절해 왔다.
  • [영상] 달려오다가 ‘쾅’…그리스 열차 충돌 사고 순간 영상 공개

    [영상] 달려오다가 ‘쾅’…그리스 열차 충돌 사고 순간 영상 공개

    지난달 28일(이하 현지시간) 그리스 중부에서 열차 2대가 정면으로 충돌해 최소 43명이 숨지고 85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현장에서 구조 및 수색 작업이 이어지는 상황인만큼 인명 피해는 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빠르게 달리던 열차 두 대가 충돌하는 상황을 담은 영상이 공개됐다. 인근 폐쇄회로(CC)TV에 촬영된 영상은 긴 열차가 양쪽에서 달려오다가 충돌한 직후 거대한 화염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다.  이후 멈춰 선 열차에서는 붉은색과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고, 내부에서도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손된 열차는 당시 사고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준다.  일부 목격자는 사고 당시 열차가 최소 160km의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현재 소방 인력 150명과 구급차 40대가 구조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1300도에 달하는 강력한 화재로 수색 및 사망자 신원 확인에 난항을 겪고 있다. 그리스 경찰은 정확한 사고 경위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충돌한 열차 두 대중 한 대의 목적지인 라리사의 역장을 과실치사 협의로 체포했다. 경찰은 역장이 여객열차 기관사에게 선로 변경을 잘 못 지시해 두 열차가 같은 선로를 달리다 충돌한 것으로 보고 있다.  라리사 역장은 “기술적 결함이 있었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이후 “내가 잘못 했을 수도 있다”고 진술했다고 그리스 공영방송 ERT는 전했다. 이번 사고가 그리스의 노후화된 철도 시스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리스 철도 회사 OSE 노조위원장 니코스 치칼라키스는 “단언하기는 이르지만 이번 사고는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요인으로 발생했다”며 인력 부족, 노후화된 시설 등을 거론했다.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교통장관은 “그리스 철도 시스템은 21세기 기준에 못 미친다”며 “수년간 이를 고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노력은 이런 비극을 막을 정도로 충분하지 못했다”고 말하며 사임했다.  그리스 정부는 3일간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모든 공공건물에 조기를 게양하기로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등 세계 각국 지도자들도 애도의 뜻을 전했다.
  • 콩고 방문 교황 “피 묻은 광물보다 사람이 중요”…100만명 환영 인파 몰려

    콩고 방문 교황 “피 묻은 광물보다 사람이 중요”…100만명 환영 인파 몰려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1일(현지시간)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에서 수 십년간 이어진 내전의 참상을 듣고 ‘전쟁 범죄’라고 규탄했다. 민주콩고 수도 킨샤사의 바티칸대사관에서 진행된 내전 희생자와 만남에서 교황은 강간, 신체 절단, 강제 식인, 성노예 등 각종 잔학 행위를 듣고 치를 떨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그는 또한 이 자리에서 “무기화된 경제를 부채질하고 불안정과 부패를 요구하는 원자재와 돈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이 촉발한 전쟁”이라며 “사람들이 강간당하고 살해 당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폭력과 죽음을 초래하는 상업이 계속 번성하는 것은 얼마나 위선인가”라고 했다.민주콩고는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금, 다이아몬드, 구리 등 광물 자원을 둘러싼 유혈 분쟁에 시달려왔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킨샤사 공항에서 군중 100만 명이 몰려든 옥외 미사를 집전하고 “신은 사람들이 타인에게 큰 마음의 사면을 내리는 용기를 내길 원하신다”며 “이를 통해 우리는 증오와 회한, 모든 억울함과 적개심의 흔적들을 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교황의 민주콩고 방문은 1985년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이후 38년 만이다. 그의 아프리카 두번째 순방국은 2011년 수단에서 독립한 뒤 내전을 겪으며 약 40만 명이 사망한 남수단이다.
  • “비판은 성장에 도움” 프란치스코 교황 “다만, 내 앞에서 직접 말하길”

    “비판은 성장에 도움” 프란치스코 교황 “다만, 내 앞에서 직접 말하길”

    “비판은 우리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나는 그들이 내 앞에서 직접 말하길 바란다.” 자신의 개혁 행보를 못마땅해 하던 가톨릭 보수파들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선종 이후 본격적으로 흔들기에 나섰다고 판단한 듯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4일(현지시간) AP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속내를 드러냈다. 오는 3월 13일 즉위 10주년을 맞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26일 공개된 인터뷰 기사를 통해 하고 싶은 말들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의 남미 출신이자 예수회 출신인 ‘아웃사이더 교황’이다. 그의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은 늘 보수파의 반발을 불러왔다. 특히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지난달 31일 선종한 이후 대들보를 잃은 가톨릭교회의 보수 강경파들은 발간된 책이나 유포된 문서를 통해 공개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교황은 이에 대해 “(일상생활을) 괴롭히는 (두드러기나) 발진처럼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비밀로 두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을 비판하는 일부 고위 성직자들과 대화를 나눴다고 언급하며 “그들 중 일부는 직접 나와 논의했다. 논쟁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내 의견을 표명했고 그들도 자신들의 의견을 내게 표명했다”고 소개했다. 교황은 이런 비판에 대해 “보통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비판받지 않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면서도 “나는 표현의 자유를 더 선호한다”고 분명히 못박았다. 그는 이어 “황제에게 누구도 말할 수 없다면 이는 곧 ‘거리의 독재’를 만드는 것”이라며 “동료애와 비판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일이 잘 풀리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그들이 자유롭게 말하도록 하라”고 덧붙였다. 말끝에 교황은 “비판하고 싶다면 내 앞에서 직접 말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교황직 사임 가능성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건강이 양호한 편이라며 “낙상으로 무릎에 경미한 골절이 있었지만 수술 없이 나았고 콩고민주공화국과 남수단 방문(오는 31일∼2월 5일)을 비롯한 일정을 진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종신직 교황의 자리를 스스로 물러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미래의 교황에게 사임을 선택할 수 있는 더 큰 자유를 줬다고 평가했다. 교황 직을 사임한 뒤 바티칸의 수도원에 머물렀던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결정이 “좋은 타협이었고, 좋은 해결책이었지만 미래의 은퇴한 교황들은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고 덧붙여 눈길을 끌었다.
  • 조지 펠 전 추기경 별세

    아동 성추행으로 유죄가 인정돼 가톨릭 교단을 뒤흔든 뒤 사임한 조지 펠 전 추기경이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는 10일(현지시간) 긴급 속보로 전했다. 그는 바티칸 재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호주 최고위 성직자였다. 아동 성추행으로 징역형을 산 최고위 가톨릭 성직자이기도 했다. 고인은 수술을 받던 중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끝내 소생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멜버른 교구와 시드니 교구의 교구장을 지낸 뒤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고위 참모가 됐다. 2014년부터 교황의 바티칸 재정 개혁을 뒷받침했다. 2017년 사임한 뒤 호주로 귀국해 재판정에 섰다. 이듬해 배심원단은 고인이 1990년대 멜버른 교구장으로 일할 때 두 소년을 추행한 것이 맞다고 평결했다. 물론 고인은 항상 무고하다고 강변했으며 감옥에서 13개월을 복역하다 호주 고등법원이 2020년 평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 문재인 정부 기록물 556만건 공개

    문재인 정부 기록물 556만건 공개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생산된 기록물 556만여건이 일반에 공개된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은 지난해 5월 9일까지 이관받은 제19대 대통령기록물 목록 1116만건 중 556만여건을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에 공개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 30곳에서 이관받은 일반문서, 시청각기록물, 선물·행정박물 등 64만여건과 웹기록물 492만건 등 556만여건의 목록이다. 자료 목록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자료 원본을 확인하려면 정보공개청구를 해야 한다. 일반기록물 64만여건은 대통령비서실을 비롯해 일자리위원회, 정책기획위원회 등 30곳의 위원회에서 대부분 생산됐다. 각국 정상과 주요 인사들에게서 받은 서적, 그림, 주화, 인형, 도자기 등 대통령 선물·행정박물류 목록 4244건과 대통령 관련 행사 디지털사진 및 영상 등 시청각기록물 중 정리가 완료된 목록 2863건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물한 청동 올리브 가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의 감사장 및 금장 훈장과 약장 등도 있다. 이와 함께 문 정부에서 생산한 사이트 50종, 사회관계망서비스 69종이 포함된 웹기록물 492만건의 목록도 제공됐다. 다만 이번에 공개되는 제19대 대통령기록물 목록에는 관계법령에 따라 열람이 제한되는 대통령지정기록물 39만건과 데이터로만 생산되는 행정정보데이터세트 322만건 등 361만건의 기록물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밖에 시청각기록물 199만여건은 추가적인 절차를 거쳐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 교황청, 40년 전 열다섯살 소녀 오를란디 실종사건 재조사하기로

    교황청, 40년 전 열다섯살 소녀 오를란디 실종사건 재조사하기로

    교황청이 약 40년 전 발생한 바티칸 소녀 실종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했다. 지난해 넷플릭스가 ‘바티칸 걸’이라는 제목의 4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던 바티칸 역사에 가장 희한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9일(현지시간) 알레산드로 디디 바티칸 검사장이 이탈리아 경찰과 함께 이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디디 검사장은 이 사건과 관련한 모든 파일과 서류, 보도, 정보, 증언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브루니 대변인은 전했다. 사건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재위하던 1983년 6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황청 직원이었던 부친과 함께 바티칸에 거주하던 에마누엘라 오를란디(당시 15)는 로마에서 플루트 레슨을 받은 뒤 귀가하던 길에 종적을 감췄다.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고, 로마 전역이 오를란디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로 뒤덮였지만, 성과는 없었다. 오랜 수사에도 오를란디의 행방은커녕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등 사건이 미궁에 빠지면서 갖가지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암살을 시도했다가 투옥된 튀르키예(터키) 출신 용의자를 석방시키려던 세력에게 오를란디가 납치됐다는 소문을 비롯해 교황청과 마피아의 검은 거래와 연관됐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난무했다. 2019년 7월 교황청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바티칸시국 내부의 묘소 두 곳을 발굴했으나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다큐멘터리 ‘바티칸 걸’에는 오를란디의 친구가 실종 사건 일주일 전 바티칸 고위 성직자가 성적으로 접근해왔다는 말을 오를란디에게 들었다는 새로운 증언이 담겼다. 오를란디의 오빠인 피에트로는 이탈리아 공영 방송 ‘라이’(Rai) 인터뷰를 통해 교황청이 내부 반대를 극복하고 재조사 결정을 내렸다며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는 교황청이 재조사에 나선 배경에는 어떤 대가를 치르든 이번 사건의 진실을 투명하게 밝혀내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시가 있었다고 전했다.
  • [씨줄날줄] 파르테논 마블스의 귀환/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파르테논 마블스의 귀환/이순녀 논설위원

    그리스가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던 1799년 영국 외교관 토머스 엘긴 경은 대사로 발령받아 아테네로 향한다. 고대 유물 애호가였던 그는 기원전 5세기에 지어진 파르테논신전에 매혹돼 1802년부터 10년간 대리석 벽면과 기둥, 조각품 253점을 떼어내 영국으로 실어 날랐다. 자신의 저택을 꾸밀 목적이었지만 막대한 비용 소요로 파산하게 되자 엘긴 경은 영국 정부에 유물 매입을 제안한다. 당시에도 남의 나라 유물을 제멋대로 약탈한 엘긴 경의 행위에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1816년 영국 의회는 유물을 구입해 ‘엘긴 마블스’라는 명칭으로 대영박물관에 이전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200년 넘게 대영박물관의 대표 소장 유물로 자리잡은 ‘파르테논 마블스’가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세계 각국이 진행 중인 약탈 문화재 반환 협상 가운데 가장 상징적이고 유명한 파르테논 마블스의 귀환과 관련해 대영박물관이 4일(현지시간) “건설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처음으로 인정하면서 귀추가 주목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완전 반환이 아닌 장기 대여 형식이며, 다른 고대 그리스 보물들을 빌려오는 방안이 협의되고 있다고 한다. 유물을 돌려받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온 그리스로서는 어느 때보다 협상 타결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영국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는 최근 여러 국가가 약탈 문화재를 자발적으로 원 소속 국가에 반환하는 흐름과 무관치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바티칸 박물관이 소장 중인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 3점을 그리스에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독일은 아프리카의 옛 베닌 왕국 유물 20점을 나이지리아 정부에 반환했고, 미국은 2300년 전 사제의 관인 ‘황금관’과 ‘녹색관’을 이집트에 돌려줬다. 약탈, 기증 등 여러 이유로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약 21만여 점이다. 병인양요 때 약탈당했던 외규장각 의궤는 프랑스 정부와의 20년 협상 끝에 2011년 대여 형식으로 돌려받았다. 반면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보관 중인 세계 최고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의 경우 약탈이 아닌 거래여서 반환 협상이 불가능하다. 재작년 11월 우리 정부가 프랑스에 한국 전시를 요청했으나 진전이 없다. 그리스가 새삼 부럽다.
  • 현직 교황의 배웅… 베네딕토 16세 잠들다

    현직 교황의 배웅… 베네딕토 16세 잠들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지하 묘역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5일 오전 9시 30분(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미사가 열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한 수만명의 인파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염수정·유흥식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와 사무국장 신우식 신부 등 한국 대표단도 현장에서 함께 추모했다. 그간 역대 교황의 장례미사는 수석 추기경이 집전했지만 생전에 사임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미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주례했다. 1802년 비오 7세 교황이 전임 교황인 비오 6세의 장례식을 집전한 이후 교회 역사상 두 번째 사례다. 당시는 나폴레옹 군에 의해 프랑스에 납치돼 선종한 전직 교황의 장례를 3년이 지난 뒤 치러 지금 상황과는 달랐다. 장례미사를 40분 앞두고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을 누인 목관이 성 베드로 광장 야외 제단 앞으로 운구됐다.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과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돼 간직됐다. 관 위에는 성경책 한 권이 놓였다. 장례미사는 바티칸 시스티나 합창단의 성가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며 시작됐다. 무릎이 좋지 않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단 옆 의자에 앉아 무거운 표정으로 장례미사를 주례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신자와 성직자들은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눈물을 훔쳤다. 미사가 끝날 무렵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하신 하느님 베네딕토 전임 교황을 당신 자비에 맡겨 드리나이다. 간구하오니 그를 당신 천상 거처에 맞아들이시어 영원한 영광 누리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미사를 마친 관은 ‘교황의 신사들’로 불리는 교황 수행원들의 어깨에 실려 다시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운구됐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이장되기 전까지 있던 바로 그 묘역에 안장됐다.
  • 영면에 든 베네딕토 16세…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 봉헌

    영면에 든 베네딕토 16세…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 봉헌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지하 묘역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5일 오전 9시 30분(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미사가 열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한 수만명의 인파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염수정·유흥식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와 사무국장 신우식 신부 등 한국 대표단도 현장에서 함께 추모했다. 그간 역대 교황의 장례미사는 수석 추기경이 집전했지만 생전에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의 장례미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주례했다. 1802년 비오 7세 교황이 전임 교황인 비오 6세의 장례식을 집전한 이후 교회 역사상 두 번째 사례다. 당시는 나폴레옹 군에 의해 프랑스에 납치돼 선종한 전직 교황의 장례를 3년이 지난 뒤 치러 지금 상황과는 달랐다. 배네딕토 16세는 즉위 8년 만인 2013년 건강 문제를 이유로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에 생전 퇴위한 뒤 명예교황으로 남아 있었다. 베네딕토 16세는 간소한 장례식을 원한다는 뜻을 생전에 밝혔지만 교황청은 현직 교황의 장례 미사와 거의 동일한 절차로 진행하며 전임 교황을 예우했다. 장례미사를 40분 앞두고 베네딕토 16세를 누인 목관이 성 베드로 광장 야외 제단 앞으로 운구됐다.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과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돼 간직됐다. 관 위에는 복음서 한 권이 놓였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오랜 개인 비서인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는 펼쳐진 복음서에 입을 맞추며 그를 추모했다.장례미사는 바티칸 시스티나 합창단의 성가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며 시작됐다. 무릎이 좋지 않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단 옆 의자에 앉아 무거운 표정으로 장례미사를 주례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신자와 성직자들은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눈물을 훔쳤다. 미사가 끝날 무렵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하신 하느님 베네딕토 전임 교황을 당신 자비에 맡겨 드리나이다. 간구하오니 그를 당신 천상 거처에 맞아들이시어 영원한 영광 누리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미사를 마친 관은 ‘교황의 신사들’로 불리는 교황 수행원들의 어깨에 실려 다시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운구됐다. 운구 행렬은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잠시 멈추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의자에서 일어나 성호를 긋고 관 위에 손을 올린 뒤 잠시 묵상했다.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이장되기 전까지 있던 바로 그 묘역에 안장됐다. 장례 미사에는 추기경 125명, 주교 200명, 성직자 3700명이 참석했다. 베네딕토 16세가 현직 교황이 아니기에 교황청은 바티칸이 속한 이탈리아와 그의 모국인 독일 대표단만 이번 장례 미사에 공식 초청했다. 이탈리아는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조르자 멜로니 총리·마리오 드라기 전 총리, 독일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올라프 숄츠 총리, 마르쿠스 죄더 바이에른주 총리 등이 참석했다. 필리프 벨기에 국왕과 소피아 스페인 왕대비 등 왕족들과 리투아니아, 폴란드, 포르투갈, 토고, 가봉 등 유럽과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개인 자격으로 참석해 광장 중앙 귀빈석에서 장례미사를 지켜봤다. 대부분의 국가는 주교황청 대사가 자국을 대표해 장례 미사에 참석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가톨릭 신도와 로마 시민 등 약 5만명도 광장에 운집했다. 수많은 신자들은 장례 미사가 끝난 뒤 “즉시 성인으로!”(Santo Subito!)를 외쳤고 같은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를 펼치기도 했다.
  • [포토] ‘베네딕토16세 관’ 놓인 성베드로 광장

    [포토] ‘베네딕토16세 관’ 놓인 성베드로 광장

    생전에 교황직을 사임하며 가톨릭 역사를 새로 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5일(현지시간) 전 세계인들과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가 이날 오전 9시 30분(한국시간 오후 5시 30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엄숙하게 시작됐다. 현직 교황인 프란치스코가 장례 미사를 주례했다. 가톨릭 2천년 역사상 후임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집전한 것은 1802년 비오 7세 교황(후임)과 비오 6세 교황(전임) 이후 이번이 역대 2번째다. 즉위 8년 만인 2013년 건강 문제를 이유로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며 598년 만에 생전 퇴위한 교황이 된 베네딕토 16세는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고 이승과 영원히 작별했다. 장례 미사가 열리기 40분 전인 오전 8시 50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이 누인 소박한 목관이 성 베드로 대성전 바깥으로 운구돼 광장의 야외 제단 앞에 놓였다. 삼나무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과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돼 간직됐다. 베네딕토 16세가 현직 교황이 아니기에 교황청은 바티칸이 속한 이탈리아와 그의 모국인 독일 대표단만 이번 장례 미사에 공식 초청했다. 필리프 벨기에 국왕과 소피아 스페인 왕대비 등 왕족들과 유럽 각국 지도자 등은 개인 자격으로 참석해 광장 중앙에 마련된 귀빈석에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는 오현주 신임 주교황청 한국 대사가 우리 정부를 대표해 장례 미사에 참석했다. 염수정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와 사무국장인 신우식 신부 등이 한국 천주교 조문단으로 참석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도 참석해 한마음으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영면을 기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에 이어 바티칸 시스티나 합창단이 라틴어로 “낙원으로 천사들이 그대를 인도할지니, 순교자들이 그대를 맞아 예루살렘으로 인도할지”라고 노래하면서 장례 미사는 끝난다. 미사가 끝난 베네딕토 16세의 관은 지하 묘지 안장을 위해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다시 들어간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 지하 묘지에서 진행되는 안장 의식은 비공개로 진행된다. 붉은 띠로 관을 둘러 닫고 아연으로 만든 두 번째 관과 참나무로 만든 세 번째 관에 차례로 모셔진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역대 교황 91명이 안장돼 있고,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이장되기 전까지 안장돼 있던 바로 그 묘역에서 영면한다.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16세는 당대 최고의 신학자로 명성을 얻었고, 그 신학의 연장선에서 교회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보수적이며 전통적이었던 베네딕토 16세와 진보적이며 개방적인 프란치스코의 관계는 2019년 ‘두 교황’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지난달 31일 사임 후 지내온 바티칸시국의 한 수도원에서 95세로 선종했다.
  • 현직 교황의 전임 교황 장례미사 집전 “1802년에 딱 한번”

    현직 교황의 전임 교황 장례미사 집전 “1802년에 딱 한번”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식이 5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례 미사를 집전하면서 거행된다. 교황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현직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주례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베네딕토 16세가 2013년 건강 문제로 스스로 교황 직에서 물러나면서 초유의 상황이 됐다고들 생각했다. 교황의 사임은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가 아비뇽 유수(유폐)로 서방 교회가 분열되는 것을 끝내기 위해 퇴위한 이후 598년 만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4일 교황청 관영 매체 ‘바티칸 뉴스’는 현직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주례하는 것이 역대 두 번째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교회의 2000년 역사에서 현직 교황이 전임 교황에게 마지막 축복을 전한 사례는 지금까지 딱 한 번 있었다. 1802년 2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비오 6세 교황의 장례 미사가 후임자인 비오 7세 교황의 주례 속에 엄수됐다. 비오 6세 교황(재임 1775∼1799)은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에 납치돼 유배된 프랑스 발랑스에서 선종했다. 발랑스에서 장례식이 열렸고,그 뒤를 이어 1800년 3월 14일 교황 직에 오른 비오 7세는 전임 교황의 유해가 이탈리아 로마로 송환되길 원했다. 1801년 12월 발랑스에서 발굴된 비오 6세 교황의 유해는 마르세유를 거쳐 배를 통해 이탈리아 제노바로 옮겨졌다. 마침내 1802년 2월 17일 추기경들이 로마 폰테 밀비오에서 유해를 기다리는 가운데 “로마로의 위대한 승리의 입성”이 이뤄졌다고 ‘바티칸 뉴스’는 전했다. 그 뒤 비오 6세 교황의 장례 미사가 후임자인 비오 7세의 주례로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됐다. 한편 교황청은 일반 조문 사흘간 약 20만명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이 안치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을 찾아 조의를 표했다고 이날 밝혔다. 교황청은 오후 7시 일반 조문을 마무리하고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을 삼나무관으로 옮기는 입관 예절을 올렸다. 입관식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오랜 개인 비서인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와 가사를 도운 수도회 수녀들이 참관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과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이 들어간다.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도 철제 원통에 봉인해 관에 넣었다. 한국 천주교 성직자들은 일반 조문 마지막 날인 이날 성 베드로 대성전을 방문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조문했다. 염수정 추기경,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와 사무국장인 신우식 신부 등 한국 천주교 대표단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장례 미사 참석차 전날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했다. 휴가차 세밑에 귀국해 한국에 머물던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도 한국 대표단과 같은 항공기를 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하는 장례 미사는 5일 오전 9시 30분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가 현직 교황의 장례 미사와 거의 동일한 절차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사가 끝나면 베네딕토 16세의 관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로 운구돼 안장된다. 역대 교황 91명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 베네딕토 16세 보러 하루 7만명 넘게 조문… 한국 대표단도 추모 동참

    베네딕토 16세 보러 하루 7만명 넘게 조문… 한국 대표단도 추모 동참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선종 이후 조문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방문단도 현지에 도착해 추모에 동참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와 사무국장 신우식 신부, 염수정 추기경,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가 포함된 대표단은 현지시간 3일 밤 이탈리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5일 오전 9시 30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열리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교황청은 교황의 시신이 일반에 공개된 지 이틀째를 맞아 작별 인사를 전한 조문객이 약 7만명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하루 전 약 6만 5000명보다 더 늘어난 수치다. 교황청이 첫날 조문시간을 오전 9시~오후 7시로 했던 것을 둘째 날부터는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로 늘리면서 조문객도 늘어났다. 일반 조문이 끝나면 5일 현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집전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보게 된다. 그간 교황은 선종 이후 새로 뽑는 것이 관례였지만 베네딕토 16세가 임기 중 사임하면서 보기 드문 장례 미사가 열리게 됐다. 전직 교황 선종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지만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가 현직 교황의 장례 미사와 거의 동일하게 진행될 것이라 전했다.
  • 베네딕토 16세 마지막 길 배웅… 한국 대표단도 출국

    베네딕토 16세 마지막 길 배웅… 한국 대표단도 출국

    지난해 마지막 날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미사에 참석할 한국 천주교 대표단이 3일 바티칸으로 출국했다. 염수정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이날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항공기에 탑승했다. 이들은 5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열리는 베네딕토 16세의 장례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휴가차 지난해 11월 말 귀국해 한국에 머물던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도 같은 항공기로 떠났다. 애초 이날 다시 출국할 예정이던 유 추기경도 대표단과 함께 장례미사에 참석한다. 바티칸 현지에서는 선종한 지 이틀 만에 일반에 처음 공개된 베네딕토 16세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전하려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첫날에만 6만명 이상의 조문객이 몰려 대기 줄이 길게 이어졌고, 많은 이가 차례로 베네딕토 16세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허리 높이의 관대 위에 비스듬히 누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머리에 모관을 쓰고, 붉은색과 금색이 어우러진 전통적인 교황 제의를 입었다. 깍지 낀 손에는 묵주가 감겼다. 스위스 근위병 2명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 곁을 지켰다. 첫날 조문 행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진행됐는데 3일과 4일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 진행한다. 일반 조문이 끝나면 5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가 열린다. 이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관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로 운구돼 안장된다.
  •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과 축구 황제 펠레 한날 일반인 조문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과 축구 황제 펠레 한날 일반인 조문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과 축구 황제 펠레의 조문이 한날 진행됐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지난해 마지막날 선종한 지 이틀 만에 그의 시신기 일반에 공개된 2일(현지시간) 동 트기 전부터 작별 인사를 전하려는 발걸음이 이어지는 등 첫날에만 6만명 이상의 조문객이 몰려 추모 열기가 예상을 뛰어넘었다. 베네딕토 16세의 시신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져 오전 9시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조문 시작 전부터 타원형의 성 베드로 광장 한 바퀴를 다 두를 정도로 대기 줄은 길게 이어졌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신학자인 발터 카스퍼 추기경도 다른 일반 조문객들과 함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AP 통신과 만난 카스퍼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은 나약함이 아니라 힘과 위대함의 표시”라며 “그는 더는 교황의 직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알았다”고 말했다. 교황청은 오후 7시 첫날 조문 일정을 마무리한 뒤 약 6만 5000명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을 조문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치안 당국이 첫날 추모 인파로 예상한 2만 5000∼3만명을 곱절 이상 넘어섰다.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와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 등 정부 주요 인사들은 일반 조문객보다 먼저 방문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안식을 기원했다. 첫날 조문 행사는 10시간 진행됐는데 3일과 4일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으로 늘어난다. 5일에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가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주례로 거행된다. 그 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관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로 운구돼 안장된다. 교황청은 이탈리아와 베네딕토 16세의 모국인 독일 대표단만 장례 미사에 공식 초대했다고 밝혔다. 또 베네딕토 16세의 생전 뜻에 따라 장례 미사는 간소하게 치러질 것이라고 예고했다.같은 날 브라질 상파울루 남동쪽 항구 도시 산투스의 빌라 베우미루 축구장에는 펠레와 마지막 작별을 하려는 추모객들이 새벽부터 운집했다. 하얀 옷을 차려입은 팬들 사이로 축구팀 산투스FC 유니폼을 어깨에 두른 나이 지긋한 부부의 모습도 보였다. 브라질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준비하거나, 젊은 시절 펠레와 함께 찍은 사진을 크게 프린트해 가슴에 품고 있는 이도 있었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남반구의 한여름 더위에도 조문객들은 지친 기색 없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한켠에서는 맨발의 아이들이 축구공으로 트래핑을 하거나 패스 놀이를 하고 있어 언뜻 보면 리그 경기나 축제를 기다리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평생을 축구에 헌신했던 축구 황제가 이승에서 보내는 마지막을 기리는 축구 꿈나무들 나름의 조문 방식인 듯했다. 지난해 12월 30일 타계한 펠레의 일반인 공개 추모 절차는 이날 오전 10시쯤부터 24시간 일정으로 그가 18년 동안 몸담았던 산투스 FC의 홈 구장인 빌라 베우미루 축구장에서 진행됐다. 1만 6000석 규모 관중석에는 ‘왕이여 만세’라는 글귀를 인쇄한 대형 플래카드와 펠레 등번호 ‘10’ 장식물 등으로 꾸며졌고, 경기장 밖 펠레 조형물에는 지난 며칠간 팬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이 수북이 쌓였다. 펠레의 시신은 축구장 정중앙, 센터서클에 안치됐다. 하얀색 천막 아래에 꽃다발로 장식된 관은 뚜껑을 열어둬 팬들이 펠레의 모습을 잠시라도 볼 수 있게 했다. 시신은 브라질 국기와 산투스FC 깃발로 덮였다. 지난해 9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성 자일스 대성당에서의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추모 때처럼 조문객들은 원칙적으론 관 앞에 한동안 멈춰 서지 못하고 행렬을 따라 이동해야만 했다. 다만, 한 발짝이라도 가까이 다가가 잠시 기도하는 팬들의 열정까지 무리해서 막지는 않았다. 유족들은 팬들에게 정중히 감사의 인사를 하며 슬픔을 달랬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을 비롯한 축구계 인사와 외국 추모 사절들도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빌고 유족을 위로했다. 현지 매체들은 조문 대기 줄이 낮 한때 2∼3㎞에 달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추모 행렬은 밤늦게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들의 조문은 3일 오전 10시쯤까지 할 수 있다. 그 뒤 펠레는 근처 네크로폴 에큐메니카 공동묘지에서 영면에 든다. 이곳은 14층 건물인데 펠레는 9층에서 영면하며 빌라 베우미루 축구장이 바로 내려다 보인다.
  • “믿음 안에 굳건히…” 수도원에 잠든 베네딕토 16세[포착]

    “믿음 안에 굳건히…” 수도원에 잠든 베네딕토 16세[포착]

    2022년 마지막 날 95세로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전한 마지막 메시지는 “믿음 안에 굳건히 서라” 였다. 교황청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 사진을 그의 선종 하루 뒤인 1일(현지시간) 공개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시신은 그가 2013년 교황직에서 사임한 이후 여생을 보낸 바티칸시국의 ‘교회의 어머니(Mater Ecclesiae)’ 수도원에 안치돼 있다. 교황청 공보실이 공개한 사진은 베네딕토 16세가 머리에 모관을 쓰고 전통적인 교황 제의를 입고 관대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을 담았다. 포개진 손에는 묵주가 들렸고, 시신 뒤편에는 십자가와 촛불,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돼 있다. 다만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의 상징인 팔리움을 착용하지 않았다. 팔리움은 교황과 대주교가 자신의 직무와 권한을 상징하기 위해 두르는 복장이다. 은퇴한 대주교는 팔리움을 입지 않는다. 베네딕토 16세도 2013년 교황직에서 자진 사임했기에 팔리움을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베네딕토 16세는 즉위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 쇠약을 이유로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이었다.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에서 물러난 후 ‘명예 교황’ 호칭을 받아 교황 시절 이름을 그대로 쓰고 교황의 전통적인 흰색 수단을 계속 착용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은 오는 2일부터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치돼 이후 사흘간 일반에 공개된다. 장례 미사는 5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주례한다. 이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관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로 운구돼 안장된다. 명동성당 역시 베네딕토 16세를 기리는 분향소를 마련했고, 주한교황대사관도 2일 공식 분향소를 설치한다. 염수정 추기경과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오는 5일 바티칸에서 열리는 장례 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다.“사랑하는 명예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해 첫 미사에서 전날 선종한 전임자의 천국행을 기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주례한 신년 미사 강론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을 위한 기도로 시작했다. 교황은 성모 마리아에게 “사랑하는 우리의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하느님에게 가는 길에 동행해달라”고 간청했다.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을 굽어보는 사도궁 집무실 창을 열고 집례한 삼종기도에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을 위한 묵념을 올렸다. 교황은 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과 교회의 충실한 종(베네딕토 16세)을 선물해준 하느님에게 우리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감사하자”고 말했다.  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건강상의 이유로 자진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의 결정에 대해 “용감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현직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주례하는 것은 수 세기 만에 처음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가톨릭 신자에 전한 마지막 메시지는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와 달리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유언에서 장례 절차나 시신이 안치될 장소에 대해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그의 재산과 소지품을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에 공개된 영적 유언은 베네딕토 16세가 즉위 후 1년 뒤인 2006년 8월 29일 독일어로 작성한 것으로, 2페이지 분량이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먼저 “어떤 식으로든 내가 잘못한 모든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다해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79세 때 작성한 이 유언에서 “인생의 늦은 시기에 내가 살아온 수십 년을 되돌아보면 감사해야 할 이유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고 적었다. 그는 “먼저, 내게 생명을 주시고 혼란의 여러 순간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해주신 하느님에게 감사드린다”며 “하느님은 내가 미끄러지기 시작할 때마다 항상 나를 일으켜주고 얼굴을 들어 다시 비춰주신다”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돌아보면 어둡고 지치는 이 길이 나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는 걸 보고 이해한다”고 덧붙였다.1927년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태어난 베네딕토 16세는 본명이 요제프 라칭거로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해 복구 불능의 타격을 입은 독일에서 성장했다. 그가 겨우 7살일 때 독일 나치 정권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다. 베네딕토 16세는 부모님을 향해서는 “어려운 시기에 내게 생명을 주셨고, 큰 희생을 치르면서도 사랑으로 멋진 집을 준비해줬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곁에 있던 많은 친구와 선생님,제자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또한 자신이 태어난 고국 독일, 제2의 고향이 된 이탈리아와 로마에도 감사한다고 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신자들을 향해서는 “믿음 안에 굳건히 서라”며 “자신을 혼란 빠뜨리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며, 교회는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그분의 몸”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나의 모든 죄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나를 영생의 거처로 받아주실 수 있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 ‘생전 사임’ 택했던 ‘진리의 수호자’ 지다

    ‘생전 사임’ 택했던 ‘진리의 수호자’ 지다

    598년 만에 가톨릭 첫 중도사퇴정통교리 수호… 보수파엔 영웅韓과 인연… 김수환 추기경 스승5일 장례미사… 세계 추모 이어져 프란치스코 교황, 새해 첫 미사“하느님에게 가는 길 동행을” 기도2022년 마지막 날 95세로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가톨릭 내 보수파에게는 영웅으로, 진보파에게는 교회 개혁을 거부한 인물로 꼽힌다. 변화의 시기에 교황에 올라 역사에 한 획을 남기고 떠난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78세의 나이로 제265대 교황직에 올랐다. 클레멘스 12세 이후 275년 만의 역대 최고령 교황에 이름을 올렸으나 재위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났다. 가톨릭 역사상 교황의 중도 사퇴는 598년 만이었다. 요제프 라칭거라는 본명으로 1927년 독일에서 태어나 성장한 그는 젊은 시절 ‘제2차 바티칸공의회’ 당시엔 가톨릭 교회 개혁을 앞장서 주장했을 정도로 진보적인 신학자였다. 그러나 1960년대 말 유럽을 휩쓴 ‘68혁명’을 계기로 보수파로 돌아섰다. 교황청에 1981년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입성한 그는 전통적인 신학관으로 교리 수호에 강고한 입장을 견지했다. 2005년 4월 취임 미사에서 “저의 진정한 운영 계획은 주님께서 역사의 이 시점에서 교회를 이끄시도록 온 교회와 더불어 주님의 말씀과 뜻을 경청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원칙을 강조했다. 세상이 급변하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시기에 교회의 권위자로서 지켜야 할 가치들을 엄격히 강조해 ‘진리의 수호자’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베네딕토 16세의 엄격함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슬람 및 가톨릭 내 진보 진영과 대립각을 세웠고, 어린이 성추행 사제 문제와 교황청 내부 부패 청산에는 엄격한 잣대를 대지 못해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2012년 교황청 내부 편지와 문서가 유출되는 등 곤란을 겪었고 결국 이듬해 자진 사임했다. 퇴임 후엔 ‘명예교황’으로서 바티칸 내 ‘교회의 어머니 수도원’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완고한 이미지의 그는 고양이를 좋아하고 피아노 연주와 맥주를 즐긴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런 인간적인 면모는 연극과 영화로 제작된 ‘두 교황’에서 묘사되기도 했다. 임기 중에 신었던 ‘빨간 구두’는 패셔니스타로서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는 2007년 패션지 에스콰이어가 선정한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됐을 정도로 멋쟁이 교황이었다.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가 독일 뮌스터대에 교수로 발령받아 교회 쇄신에 관한 강의를 개설했을 때 수강생이었다. 재임 시절 8명의 새로운 한국인 주교를 임명했다. 2007년 2월 15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했을 때 “제가 한반도와 주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기도드리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말씀해 주시기 바란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50여 년에 걸친 분단의 결과로 고통받아 왔다.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도록 기도드리겠다”고 하는 등 분단의 아픔에 공감하며 한반도 평화를 염원했다. 세계 각지에서 추모가 이어지는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1일 새해 첫 미사에서 “사랑하는 우리의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하느님에게 가는 길에 동행해 달라”고 기도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미사에서 “우리 시대 평화의 사도이고 영적인 스승이며 지도자”라고 추모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주셨고, 한반도 평화에 앞장서셨다. ‘주께서 내게 더 기도에 힘쓰라며 산에 오르라 하셨다’던 교황님의 마지막 삼종기도 말씀은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명동성당은 이날 베네딕토 16세를 기리는 분향소를 마련했고, 주한교황대사관도 2일 공식 분향소를 설치한다. 염수정 추기경과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오는 5일 바티칸에서 열리는 장례 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 피아노를 사랑한 보수파 vs 축구를 좋아한 진보파

    피아노를 사랑한 보수파 vs 축구를 좋아한 진보파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22년의 마지막 날 선종하면서 고인의 이야기를 그린 ‘두 교황’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두 교황’은 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현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교황직을 이임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았다. 두 사람이 세 번 만났다고 하는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앤서니 매카튼이 희곡을 썼고, 영화는 이를 원작으로 만들어 2019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연극 ‘두 교황’은 한국이 세계 최초로 라이선스를 얻어 지난해 8~10월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관객을 만나기도 했다. 2005년 78세의 나이로 제265대 교황직에 오른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청 내부에서 발생한 다양한 추문들로 위기에 봉착한다. 보수적인 신학을 권위로 교황에 당선된 그는 이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대신 혼자 밥을 먹는 등 점점 고립된 세계로 빠져든다. 이런 상황에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상에 더 헌신하기 위해 교황청에 사직서를 내고자 한다. 서로의 자리에서 물러나려는 두 사람은 별로 통하는 것이 없다. 보수적인 성향의 독일인 교황은 음악을 좋아해 피아노를 종종 연주하고, 진보적인 성향의 아르헨티나인 추기경은 축구를 좋아해 피자를 먹으며 TV 보는 것을 즐긴다. 상대에게 취향을 설득해 보지만 딱히 흥미를 느끼지도 않는다. 각자의 자리를 놓고 원하는 바도 다르니 대화가 잘 통할 리가 없다. 치열한 논쟁 속에서도 미워하지 않는 두 사람은 서로 이해하는 영역이 조금씩 넓어진다. 이 과정에서 오가는 대화는 갈등이 첨예한 시대에 필요한 다름에 대한 이해와 개별성에 대한 존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영화에서도 진한 감동이 전해오지만 한국의 원로 배우들이 한국어 연극으로 전하는 감동 역시 못지않았다. 통할 기미가 없어 보였던 두 사람이 추는 탱고와 함께 피자를 먹는 장면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종교가 주제인 데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주인공이라 무거울 수 있지만 경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영화 ‘시티 오브 갓’(2002), ‘눈먼 자들의 도시’(2008)의 페르난두 메이릴리스 감독은 화면 비율과 영상의 색감을 끊임없이 변주해 보는 재미를 주고, 실물 크기로 재현한 시스티나 성당 등 세트는 관람객들을 바티칸으로 초대한다.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조너선 프라이스), 남우조연상(앤서니 홉킨스) 후보에 오른 두 주인공의 연기력은 명불허전이다.
  • ‘튀김소보로’도 올랐다…대전 성심당 1일 빵값 인상

    ‘튀김소보로’도 올랐다…대전 성심당 1일 빵값 인상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전의 명물 빵 ‘튀김소보로’ 값도 올랐다. 66년 역사의 대전 성심당은 1일 ‘튀김소보로’와 ‘튀소구마’를 1600원에서 1700원으로 100원 인상했다. 성심당 관계자는 “지난해 극히 일부 품목을 소폭 인상한 것 외에 10년이 넘도록 가격 인상을 하지 않았지만 밀가루, 유제품, 기름, 팥, 포장재 등 모든 자재 값이 상승해 불가피했다”면서 “이미 많은 빵집이 가격을 올린 상황이었지만 경기침체 속에 소비자 부담이 커질까봐 상당히 고심했다”고 말했다. 이날 빵과 케이크 등 일부 품목도 소폭 인상됐고, 무료 배송 기준도 3만원에서 4만원으로 높아졌다. 4만원 이하 배송비는 2500원에서 3000원으로 인상됐다. 1956년 설립된 성심당은 전국에서 ‘빵투어’를 올 정도로 유명하고 대형 프랜차이즈를 제외한 단일 베이커리 브랜드 중 매출 1위를 기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이 집 빵을 즐겨 더 유명해졌다. 대전을 상징하는 브랜드답게 오프라인 매장은 중구 은행동 본점을 비롯해 롯데백화점 대전점, 대전역점, 대전컨벤션센터점 등 대전에만 4곳이 있다. 최근 통계청은 지난달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전년 같은달과 비교해 5.0% 올랐고, 빵 가격은 전년 대비 11.8%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밀가루(1kg) 가격은 2017년 1280원에서 1880원으로 46.9%, 설탕은 1630원에서 1980원으로 21.5% 올랐다. 식용유(900㎖)도 33.2% 상승했다. 이같은 원자재 값 상승 원인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적 인플레이션 등이 꼽히고 있다.
  • 베네딕토 16세 선종...오는 5일 프란치스코 교황 집전해 장례

    베네딕토 16세 선종...오는 5일 프란치스코 교황 집전해 장례

     근대 역사 들어 처음으로 현직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주례한다. 교황청은 지난해 마지막 날(현지시간) 95세를 일기로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오는 5일 장례 미사를 프란치스코 현 교황이 손수 주례한다고 밝혔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이날 특별 브리핑을 통해 “내년 1월 5일 오전 9시 30분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장례 미사가 열릴 예정”이라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례 미사를 주례한다”고 말했다. 장례 미사 뒤 베네딕토 16세의 관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로 운구돼 안장된다고 브루니 대변인은 전했다. 이곳에는 역대 교황 90명 이상이 안치돼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베네딕토 16세는 2020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선종 시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안치됐던 묘역에서 영면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이곳은 2011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과 함께 그의 시신이 같은 지하 묘지의 위층으로 이장해 현재는 비어 있다.  최근 건강이 급격히 악화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이날 오전 9시 34분 바티칸에서 95세로 선종했다. 브루니 대변인은 베네딕토 16세의 생전 뜻에 따라 장례 미사는 “엄숙하지만 간단하게 치러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교황청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을 2일 오전 9시부터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사흘 동안 공개 안치해 신자들이 마지막 경의를 바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그때까지 베네딕토 16세의 시신은 그가 교황직 사임 이후 지내온 바티칸의 한 수도원에 안치된다. 이 기간 이 수도원을 공식 방문하거나 이곳에서 공개 기도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현직 교황 선종 시에는 자세한 장례 절차가 규정돼 있지만, 전직 교황 선종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종신직으로 굳어진 교황 직을 후임자에게 물려주고 물러난 일자체가 598년 만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재임 8년 만인 2013년 2월 고령으로 인해 교황직을 더는 수행할 수 없게 됐다며 사임했다. 그레고리오 12세가 1415년 스스로 물러난 것이 마지막 사례였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직에서 물러난 후 ‘명예 교황(Pope Emeritus)’ 호칭을 받아 교황 시절 이름을 그대로 쓰고 교황의 전통적인 흰색 수단을 계속 착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재임 중이기에 현직 교황 선종 시 규정된 장례 의전은 상당 부분 생략될 전망이다. 우선 새 교황을 뽑기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 ‘콘클라베’를 할 필요가 없다. ‘어부의 반지’로 불리는 교황의 인장반지를 파기하는 절차도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직에서 사임한 뒤 인장반지를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 ‘X’자를 반지에 새겨 넣었다.  역대 교황의 장례 미사에는 각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교황청은 이탈리아와 독일 대표단만 장례 미사에 참석할 것이라고 전했다. 독일은 베네딕토 16세의 모국으로, 로이터는 교황청이 차분하고 절제된 장례 미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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