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프라하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박정현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감기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간사이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생필품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86
  • 스텔스기 탐지 레이다/체코서 개발 보도

    【프라하 로이터 연합】 체코슬로바키아는 레이다의 추적을 피할 수 있는 미국의 스텔스기를 『최고 4백㎞ 밖까지』 탐지해낼 수 있는 최신 방공시스템을 개발했다고 체코의 중립계 신문인 리도베 노비니지가 15일 군 고위장교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리도베 노비니지는 이날 체코 항공의 「무장 및 기술안전담당」 책임자인 O 바락장군의 말을 인용,『일반 레이다는 20∼60㎞ 밖의 항공기를 탐지할 수 있는 데 반해 새로 개발된 방공시스템은 이른바 「탐지되지 않는」 비행기들을 4백㎞ 밖까지 탐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락 장군은 이 신문과의 회견에서 『우리 군 연구의 소산인 이 시스템은 세계에서 아주 독특한 것으로 다른 국가들도 이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 “서방의 조건부 경원/소 경제에 도움 안돼”/고르비 보좌관

    【프라하 로이터 연합】 서방국가들의 소련에 대한 대규모 원조는 조건의 유무에 관계없이 소련의 경제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또 환영받지도 못할 것이라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보좌관인 알렉산데르 야코블레프 전 공산당 정치국원이 11일 말했다.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프라하를 방문중인 야코블레프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고 서방국가들이 마치 걸인에게 무엇을 주듯 하거나 어떠한 조건을 달아 원조를 제공하는 등 소련에게 열등감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 “소련은 이제 밝혀야 한다”/장정행 국제부장(데스크시각)

    1983년 9월. 아직 초가을 이었지만 북방의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던 사할린의 바다는 창자를 끊는 듯한 통곡으로 가득했다. 이달 1일 새벽 KAL007기를 타고 뉴욕을 떠나 서울로 오다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공격으로 수중고혼이 된 승객 2백69명의 유가족들이 사랑하는 부모 아들 딸을 찾아 흔적도 없는 망망대해를 향해 울부짖었다. 세계가 다 함께 분노하고 상상할 수 없는 소련의 만행에 치를 떨었다. 사할린을 마주하고 있는 일본 최북단의 조용한 어항인 와카나이는 희생자들의 유품이라도 확인하려는 유가족들과 사고경위를 밝히려는 각국의 조사단,취재진들로 연일 붐볐다. 미국·일본,그리고 우리나라의 함정과 선박들이 사고해역에 몰려 한달 이상의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바닷가에 떠내려온 사고기의 일부 잔해와 승객들의 유류품 몇 조각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사고경위를 밝힐 수 있는 블랙박스도 발신음까지 포착했으나 끝내 회수하지 못하고 말았다. 소련 영해인 사고지점을 일찌감치 둘러싸고 있던 소련 함정들의 집요한 방해 때문이었다.소련은 무고한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유가족들의 뱃길마저도 함정과 전투기로 위협했다. 유엔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이 천인공노할 만행을 규탄하고 나서자 소련은 사고발생 3일 만에 타스통신을 통해 KAL기 격추사실을 시인하고,그러나 이 여객기가 첩보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얼토당토 않은 어거지를 썼다. 9일에는 오가루코프 참모총장 겸 제1국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수호이 15전투기가 미사일로 KAL기를 격추시켰으며 KAL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첩보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출격전투기와 기지와의 교신내용을 분석,소련측이 경고나 강제착륙의 시도없이 격추를 명령했음이 밝혀져 있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건 경위는 아무것도 없는 형편이다. 다만 소련의 자유화바람을 타고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가 당시 수색작업에 동원됐던 잠수부,출격전투기의 조종사 등을 광범위하게 취재,최근 10회에 걸쳐 사건의 내막을 보도하여 진상의 일부가 알려졌을 뿐이다. 이 보도에 이어 공개된 사건 직후의 해저상황을 촬영한 몇 장의 사진은 소련이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그뿐 아니라 지금은 퇴역해 있는 출격전투기의 조종사는 당시 KAL007기가 여객기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명령에 따라 격추시켰다고 증언하고 있다. 수색에 동원됐던 잠수부들은 블랙박스로 보이는 오렌지색 상자도 분명히 인양했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의 한소관계는 83년과는 판이하게 변했다. 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적대관계에서 협조관계로 바뀌었으며 빈번한 교류와 함께 정식으로 국교가 수립되었다. 19일에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샌프란시스코 모스크바에 이어 세번째 한소정상회담을 갖는다. 비록 일본방문 후의 귀국길이고 회담장소가 서울이 아닌 제주도이긴 하지만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한국방문은 세계사에 남을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비단 한소관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소련의 위상도 이제는 더이상 냉전체제의 한쪽 우두머리가 아니라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동참하는 위치로 바뀌었다. 따라서 이제는 KAL사건의 진상을 밝힐 때가 됐으며 또 당연히 밝혀야만 한다. 이 같은 불행한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련은 최소한 현재까지 그들이 알고 있는 사건경위와 왜 격추시켰는지를 밝혀야 할 책임이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도 항공계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KAL기의 항로이탈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회수한 블랙박스를 공개하여 국제적인 분석을 하도록 해야 한다. 거대한 보잉747점보기를 민간여객기로 알아보지 못했다든가,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승객 2백69명을 태우고 KAL기가 첩보활동을 했다는 등의 어거지로 사건의 진상을 더 이상 묻어두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이제 막 본격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한국이 KAL기 사건의 피해당사국이기 때문에 앞으로 두 나라 관계의 발전을 진심으로 바란다면 사건의 진상공개와 함께 그에 합당한 사과가 있어야만 한다. 소련은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면서 45년 동안이나 자신들의 행위가 아니라고 부인해 왔던 1940년의 폴란드군 대량학살 사건을 소련비밀경찰의 소행이라고 인정했고,「프라하의 봄」을 무참히 짓밟았던 68년 8월의 체코 무력침공도 소련정부의 과오였음을 솔직이 시인했었다. 그러나 소련은 KAL기 사건에 대해서만은 최근까지도 계속 「더 이상 아는 것이 없다」는 식으로 발뺌하고 있다. 이달 내한했던 로가초프 외무차관은 사건진상의 공개를 바라는 우리 국민들의 기대에 『냉전시대에 발생했던 불행한 사건이었다』고 대답하며 관련자료가 추가로 입수되면 한국측에 전달하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려 버렸다. 급속한 접근과 빈번한 교류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의 대다수가 모스크바에 대해 느끼는 인상은 어딘가 음흉하고 어둡다는 쪽이 아직도 강하다. 소련 대통령이 역사적인 방한을 하고 두 나라 정상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고 정답게 상호 관심사를 의논하는 마당에,그깟 이미 흘러간 불행한 사건을 더 이상 굳이 들출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소 두 나라가 경제적이나 통일·안보적 필요에 의해 일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하여 참다운 협력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간의 신뢰가 회복돼야 하며 이 같은 신뢰를 쌓는 첫걸음이 KAL사건의 진상공개와 사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2백69명의 원혼과 그 유가족들을 달래고 평화를 사랑하는 자유세계에 소련의 변화를 확신시켜 주는 길이기도 하다.
  • 동서 군사대립,유럽선 사실상 종식/바 기구 군사조직 해체 안팎

    ◎「냉전유물」 36년 만에 역사 속으로/회원국 이해 달라 「정치동맹」 역할도 의문 동유럽의 지역적 집단안전보장기구인 바르샤바조약기구(WTO)가 지난달 31일 통합군사 사령부를 공식적으로 해체,36년간에 걸친 동유럽군사공동체로서의 역할에 막을 내렸다. 소련 관영 타스통신은 『표트르 루셰프 바르샤바조약기구 동맹국 총사령관과 블라디미르 로보프 합참의장이 동맹군 통수권을 내놓았다』면서 『이로써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군사적 조직은 오늘부로 그 모든 활동을 끝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동구권 회원국들이 동구 대변혁을 바탕으로 잇따라 비공산 통치체제를 선택함으로써 사실상 그 존재의의를 상실해왔던 바르샤바기구는 이날 모스크바선언으로 앞으로는 군사공동체의 기능은 상실한 채 유명무실한 정치공동체로서의 성격만을 지니게 됐다. 지난 55년 소련 및 동유럽 7개국이 서방측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했던 동구권 정치·군사 동맹체인 바르샤바기구는 지난날에는 나토와 함께 공산·민주 양 진영을 대표하는 냉전의쌍두마차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지난 89년 동유럽에 밀어닥친 민주화 물결로 인해 핵심 회원국들이 공산체제를 포기하고 이 기구를 탈퇴하자 이 조직의 존재는 그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르샤바기구의 핵심국가인 동독은 지난해 9월 통일과 함께 탈퇴를 선언했고 헝가리도 올해 안으로 탈퇴할 것을 다짐해 왔다. 때문에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고문인 게오르기 아르바토프는 지난해 『바르샤바기구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히죽히죽 웃는 고양이 체셔처럼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 기구의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다수 관측통들은 이번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군사조직 해체는 사실상 이 기구의 완전한 「무장해제」를 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바르샤바기구의 성격이 창설 당시부터 정치동맹체제로서보다 군동맹체로서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인 것이다. 게다가 바르샤바기구의 정치공동체로서의 역할은 냉전종식 이후 동구 각국들이 개별국가이익에 우선순위를 두고 「하나의 유럽」에 동참하고 있는현상황에서 더 이상 동구권을 묶어두는 힘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비록 아직까지는 소련 군부와 정계내 보수파들간에 바르샤바기구의 해체에 관한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탈냉전시대의 안보개념이 군사적 대립개념이 아닌 경제적 협조개념으로 바뀐 현상황을 소련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동구 변혁의 와중에서 위상변화의 필요성을 실감해왔던 바르샤바기구의 종주국 소련은 아직까지는 구 동독영토에 30여 만명의 군을 주둔시키고 있으나 조만간 여타 동구국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과 함께 철수할 예정으로 있어 지난 68년 발생한 체코 프라하의 봄을 무력진압하면서 만들어낸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주역인 바르샤바조약기구는 멀지 않아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 슬로바키아공서 탈 체코 독립시위

    【프라하 AP 연합】 수만명의 슬로바키아 민족주의자들은 11일 「프라하의 통치종식」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체코로부터의 독립과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의 종식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체코 공화국 정부는 체코 출신인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이 연방이 분리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한 다음날인 이날 성명을 발표,미래를 위한 「대안」모색에 나설것이라고 말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동부 지역 3분의1을 점하고 있는 슬로바키아의 주요 정당들은 중앙 정부가 슬로바키아 공화국에 더 많은 자치권을 부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일부 과격 단체들은 지난해 11월 체코 및 슬로바키아 공화국에 광범한 자치권을 부여하는 협정이 체결됐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분리 독립을 모색하고 있다.
  • 모라비아 자치 요구/체코 수만명 시위

    【프라하 AFP 연합】 수만명의 체코인들이 2일 체코의 3개 도시에서 모라비아 지방의 자치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고 체코의 CTK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부르노,오스트라바와 올로모우츠에 모인 시위군중들은 모라비아 지방에 체코 및 슬로바키아 공화국과 동일한 지위를 부여하는 3개 공화국으로 구성되는 연방을 창설할 것을 요구했다.
  • 체코,대소 국경에 「철의 장막」

    ◎경제난민 유입에 골치… 파등도 공동대처/합법적 입국자도 비자소지 의무화 추진 소련의 이민자유화법이 1주일 이내로 통과될 것으로 보임에 따라 서구는 물론 동국 국가들이 파도처럼 몰아닥칠 소련인 유입물결을 걱정,대책 마련에 속을 썩이고 있다. 소련의 이민자유화는 지난 수십년간 미국등 서방국가들이 기회만 있으면 소련에 대해 요구한 것이지만 막상 소련이 이민을 자유화하게 되자 소련의 경제난민 유입을 걱정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빚고 있는 것이다. 소련 경제난민 유입의 길목에 위치한 동구 국가들은 자신들도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데다 소련의 사정을 잘 꿰고 있어 소련 난민유입 대책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7일 일본의 교도통신은 체코슬로바키아가 소련의 경제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소련과의 국경에 철책을 치기 시작했다고 프라하의 보도를 인용,보도했다. 서방국경에 설치된 철책을 얼마전 철거한 체코가 이제 지난날의 동맹국인 소련에 「철의 장막」을 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이 통신은 말하면서 체코뿐만 아니라 헝가리,폴란드 등 동구 3개국이 지난 1월 소련정부의 출국자유화 조치이후 비자가 면제되는 이들 경제난민의 대량유입 방지를 위해 머리를 싸매야 할 형편이라고 전했다. 사태가 심각해질 것에 대비,이들은 합법적인 입국에 대해서도 체재일수에 따라 외화소지의무 또는 비자제도의 부활을 신중히 검토하는 등 대응조치를 취하는데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만일 폴란드와 헝가리도 체코처럼 철책을 치게 된다면 냉전시대에 동구와 서구를 갈랐던 철의 장막에 이어 이제는 소련을 포위하는 새로운 「철의 장막」이 출현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는 교도통신의 보도가 세월의 변화를 실감케 해 준다. 소련의 이민자유화법 통과이후 동구와 서구로 빠져 나갈 사람물결의 숫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소련 외무부의 한 공식보고서는 이민법 통과후의 이민 예상자를 연간 1백50만명으로 꼽고 있지만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지는 소련 전체인구의 10%에 달하는 2천2백만명을 잠재적 이민 희망자로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민이 자유롭지 못했던 89년 한해에만도 23만여명이 소련을 등졌다. 올해에도 주로 유태계·독일계·그리스계를 중심으로 40여만명이 소련을 떠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민 희망자의 상당수가 지식인 전문가인 소련 이민현황을 고려할 때 앞으로 이민물결이 본격화되면 소련사회는 지적인 불모지가 되리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공포를 떠나 희망을 쫓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 자유이기는 하지만 소련의 이민법이 통과된 새해에는 우리는 또 다른 엑서더스를 보게 될 것이다.
  • 국경 넘나드는 전파가 통독앞당겼다/양독기자들이 본 통독과 언론역할

    『독일통일과 언론의 역할』을 주제로한 세미나가 23일 하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한국언론연구원(원장 한동원)주최의 이날 세미나에는 통독 이전 서독과 동독에서 각각 기자생활을 경험한 게르하르트 담프만씨(마인즈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대 TV저널리즘교수·전 서독ZDF방송 동아시아특파원)와 볼프강 크라인베흐터씨(라이프치히 칼 마르크스대 국제커뮤니케이션학교수·전 동독 드레스덴신문기자)가 주제발표를 맡았다. 동서독의 통일과정에서 언론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는 우리의 통일문제와 관련,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이들의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소개한다. ◎동독국민 80%가 서독TV 즐겨/당 통제받는 방송에 염증… “시청률 5%” 89년 가을까지 동독의 대중정보현황은 첫째,완전히 빗나간 동독의 정보정책과 둘째,서독의 대중정보수단,그중에서도 특히 라디오와 TV의 동독에서의 영향력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 우선 동독정부의 정보정책은 완전히 중앙의 통제하에서 이뤄지고 있었으며 중앙당의 정보담당서기의 결정하에 어떤 내용이 어떻게 언제 알려질 것인가가 결정되고 있었다. 따라서 비판적인 내용이나 분석은 있을 수 없으며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문제점들,예를 들자면 비능률적인 경제제도,자연오염현상,인권침해 등은 삭제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보도되었다. 서방세계에 대한 보도는 일률적이고 적대감정을 유발시키는 내용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러한 보도들을 믿지 않았다. 당의 직접지휘하에 제작되는 뉴스인 「악투 엘레 카메라」(시사뉴스)가 5%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보정책은 객관적인 정보전달이나 국민의 관심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이처럼 국민의 관심사와 정보정책의 차이에서 빚어진 공백을 서독의 언론이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지리적인 조건때문에 동독국민들은 서독의 수많은 라디오·TV방송을 쉽게 시청할 수 있었다. 서독의 국영방송인 ARD와 ZDF는 약 80%의 동독국민이 시청할 수 있었다. 서독 TV뉴스프로는 동독에서 평균 시청률이 50%이상 이었다. 이때문에 동독주민들은 동서독이나 유럽등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헝가리의 국경개방과 프라하·부다페스트의 서독대사관에 동독인 대량진입 등이 동독국민들에게 알려졌고,이것은 동독내 저항운동세력의 힘을 북돋워주었으며 89년 가을 마침내 동독의 스탈린주의적인 제도의 붕괴를 가져왔다. 동독의 사회변혁과 함께 언론체제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 변혁과정은 3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①변혁의 시초기:89년 가을부터 90년 3월18일 선거까지로 이 기간중에 국민의회에서 의사표현,정보·언론의 자유를 결의해서 당과 무관한 독자기업으로 변신했고 옛간부들이 퇴진,젊은 기자들도 새 편집체제를 구성했다. ②전환기:선거이후 10월3일 통일까지의 시기로 서독언론체제로의 전환기였다. 서독출판사들이 동독으로 진출하고 방송에 광고가 등장했으며 경제적인 측면의 경쟁체제가 등장했다. ③통합시기:10월3일의 통독으로 형식적인 통합은 이뤘으나 물질적·정신적인 실질통합까지는 많은 과정이 남아있다. 동서독 언론이 함께 경쟁하는 상황에서 동독의 조그마한 도시의 지방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동·서독 사회모습 거짓없이 전달/72년 동독에 특파원 상주뒤 실상보도 어떤 다른 정보전달매체도 TV만큼 독일통일에 중요한 역할은 하지 못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어떤 다른 매체도 TV만큼 동독공산당(SED)에 위협적인 것은 없었다. 동독과 서독간의 긴 국경선은 서독의 TV방송전파에 유리했다. 또 서베를린은 동독의 한 가운데 섬처럼 놓여있어 TV방송은 사방으로 전달될 수 있었다. 특히 정치 엘리트와 인문과학자 및 예술가들의 대다수가 살고 있는 동베를린으로 TV전파가 쉽게 발사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동독공산당정권은 정치적 선전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동독TV에 비해 진실된 보도를 위해 노력하는 서독TV의 위험성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독공산당은 처음에는 서독전파의 수신을 방해했었다. 심지어는 과격한 젊은이들을 내세워 서쪽으로 세워진 안테나를 철수하도록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갔다. 동독사람들은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정보공급처로서 서독TV수신을 위해 평화적이면서도 꾸준한 투쟁을 계속했다. 드디어 동독공산당은 전파방해를 단념하고 방해공작을 포기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간의 대립이 위험수위를 넘도록 증폭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동독인들이 서독TV에 이렇게 큰 관심과 신뢰를 보인 것은 이들 프로그램이 동독인들을 위해 특별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동독인들이 서독TV방송에서 보는 것은 서독인들을 위한 보통의 정규TV 방송프로였다. 이들 프로들은 국가적인 선전에 의해 조작되거나 의도적인 해설이 담겨있지 않았다. 공산당 선전에 염증을 느낀 동독인들이 서독의 TV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대체로 아주 다양하고 서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이는 동시에 살아움직이고 있는 복합적인 사회,그리고 논쟁이 가능한 민주주의의 모습이었다. 서독특파원들이 동독에 상주(72년말)하게된 이후 서독언론의 동독에 대한 보도는 질적 양적으로 크게 향상되었다. 서독특파원 상주사실을 안 동독인들이 편지나 전화로 개인적인 압박과 핍박으로부터 체제에 반감을 갖고 저항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왔다. 동독의 지식인 작가들과도 긴밀히 접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서독TV는 동독시민들에게 동독상황의 참모습을 자세하게 전해주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 나갈 수 있었다. TV방송은 장벽을 넘어 서독의 밝고 어두운 모든 면들을 동독에 보여주었고 동독 매체들과는 달리 동독의 점진적인 몰락을 동독내에 거짓없이 전파했다. 따라서 동독공산당 지도부가 동독과 관련한 국민감정을 형성하지 못한데에는 서독TV에 상당한 원인이 있었다.
  • 「평화의 새유럽」건설 기본구도 마련/파리 유럽안보회의 무얼 남겼나

    ◎정례개최 합의… 지역협의 발판 구축//「대서양서 우랄까지」 통합의 길 열어/의사결정권 없어 실질문제 해결엔 한계 갈등과 대립의 동서 냉전시대를 마감하고 화합과 번영을 향한 새 유럽의 탄생을 선언한 제2차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정상회담이 사흘간의 회의일정을 모두 마치고 21일 폐막됐다. 지난 75년 헬싱키에서 첫번째 정상회담을 가진 뒤 15년만에 열린 이번 회담은 동서간 이념대립을 존치시킨채 긴장속에서 균형을 추구한 첫 회담과는 달리 동서의 가름을 없애버리고 화합을 통한 공동번영을 다짐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채택된 파리헌장은 유럽에서 분열과 대립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믿음과 협력속에 새로운 관계가 수립되었음을 천명함으로써 새 역사의 장이 열렸음을 확인했다. 이에 앞서 동서 양진영 대립의 첨병으로서 서로를 적으로 간주해오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유럽재래식무기(CFE) 감축협약을 맺으면서 발표한 정치선언을 통해더 이상 적의 관계가 아니라 새 시대의 동반자임을 선언,새 유럽질서 구축의 기반을 다졌다. 이번 회담은 이같은 다짐과 약속의 효과적인 실천을 위해 구체적인 몇가지 장치를 마련해 냈다. 첫째가 상설 행정사무국의 설치.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세워질 행정사무국은 앞으로 계속될 CSCE의 각종 회담준비와 회원국간의 연락,의제조정 등의 임무가 주어진다. 또 분쟁방지센터(빈),자유선거 사무소(바르샤바)의 설치도 결의됐으며 회원국 의원들간의 모임인 CSCE 의회협의회의 구성도 추진키로 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상설기구들의 설치와 함께 CSCE 정상회담을 정례화,2년마다 열고(92년 헬싱키개최 확정) 장관급회담은 1년에 한차례 이상 개최하기로 합의함으로써 CSCE가 단순한 「회의」에서 지역협의체로의 발전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점이다. 헬싱키협약이 그동안 인권개선이나 환경보호 또는 군축을 통한 긴장완화 노력에 적잖은 기여를 해온 것이 사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CSCE에 제한적이나마 기능과 틀을 부여한 파리헌장도 새로운 유럽건설의 기본설계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CSCE의 장래가 마냥 분홍빛 일색일 수만은 없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실질적인 안보협력이 이루어지려면 군사협력체제로의 변환이나 유사한 기능부여가 따라야 되나 CSCE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소련측은 범유럽군사기구 구축을 희망하고 있지만 미국 영국 등 나토 핵심멤버들이 반대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만프레트 뵈르너 나토연합군 총사령관은 『나토는 현재의 군사 및 전략적 균형을 깨지 않는 상황 아래서 안정된 유럽의 구축을 원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핵을 포함하여 아직도 막강한 군사대국임이 분명한 소련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래서 고르바초프는 『유럽에 평화가 깃들었다는 판단은 아직 이르다』며 다음 단계의 군축을 위해 한달 이내에 단거리핵 감축협상을 시작할 것을 제의하기도 했지만 미국이 버티고 있는 나토가 쉽사리 자세를 바꾸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어떤 수단으로든지 나토를 해체시키고 궁극적으로 미국이 유럽에서 손을 떼게 하려는 것이 지금까지의 소련의 대 유럽전략이었음을 간파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나토의 약화·해체기도나 CSCE로 하여금 이를 대체케 한다는 발상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으로 「적」이 없어졌음을 선언함으로써 나토가 위상을 재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한계는 마찬가지이다. 회의에 참석한 동구지도자들은 냉전이 끝난 상황에서 부국과 빈국을 갈라 놓는 새로운 경제장막이 유럽에 드리울 위험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에 아랑곳 없이 구공체(EC)는 90년대 중반까지는 신규회원의 가입을 막고 있다. 결국은 CSCE가 아직은 공동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군사협력체제도,실질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경제기구도,의사결정 권한도 없는 단순한 회의체인 것이며 여기에 그 발전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CSCE의 자체적인 취약점 외에도 한치 앞을 점치기 힘든 소련의 내정문제·소수민족문제·추가감축문제 등 CSCE가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들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새 유럽을 출범시킨 CSCE가 이런 과제들을 차근차근 풀어나갈 수 있을 때 유럽인의 숙원인 「대서양에서 우랄까지」(드골)의 유럽대통합의 길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 유럽안보회의 채택 「파리헌장」 요지

    ◎민주주의 강화… 소수민족 독립성 존중/내년 11월 오슬로서 인권옹호 세미나/시장경제 지향… 번영된 통일유럽 건설/화학무기 금지·영공개방조약 곧 체결 동서냉전의 종식을 공식선언한 역사적인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정상회담은 21일 「파리헌장」을 채택하고 3일간의 회의를 마칠 예정이다. 다음은 이번 회담을 결산하는 파리헌장의 요지이다. ▷민주주의 평화 통합의 새로운 시대◁ 우리들 참가국정상은 커다란 변화와 역사적인 기대의 시기에 파리에 모였다. 유럽에 있어서 대립과 분열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의 우리의 관계가 존경과 협력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선언한다. 유럽은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있다. 헬싱키 최종문서의 이념은 유럽에 민주주의와 평화·통합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인권·민주주의·법의 지배 우리는 유일한 정치시스템으로서 민주주의를 건설,강화할 의무를 진다. 인권과 기본적 자유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으며 법으로 보장된다. 정부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드러나는 국민의 자유의사에 기초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는 인간과 법의 지배 존중에 기초를 둔다. 우리는 국내 소수민족의 민족·문화·언어·종교적 독자성을 존중한다. ▲경제적 자유와 책임 경제적 자유,사회정의,환경문제에 관한 책임은 번영에 불가결하다. 자유와 정치적 복수주의는 시장경제발전에 필요한 요소이다. 시장경제 이행을 성공시키는 일은 중요하며 번영의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참가국간의 우호관계 유럽에서 새 시대가 탄생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유럽제국 미국 캐나다 사이의 우호관계 및 협력을 확대,강화하고 제국민간의 우정을 촉진하기로 결의한다. 유엔헌장 및 헬싱키 최종문서에 따라 모든 나라의 영토보전·정치적독립에 대한 군사력에 의한 위협과 그 행사를 금지한다. ▲안전보장 유럽재래식전력(CFE) 조약조인을 환영한다. 일련의 실질적인 새로운 신뢰­안전조성조치의 채택을 시인한다. ▲통합 「독일문제의 최종해결에 관한 조약」에 커다란 만족을 표명한다. 북미와 유럽 각국 양측의 참가가 CSCE의 기본적 특징이다. 공통행동과 협력·연대에 의해서만 직면한 도전에 대처할 수 있다. ▲CSCE와 세계 참가국의 운명은 다른 모든 나라들과 연결돼 있다. 유엔을 지지하고 국제평화촉진에 기여하는 유엔의 역할강화를 희망한다. ▷장래의 지침◁ CSCE의 모든 원칙·조항을 완전 이행하고 나아가 균형잡힌 포괄적인 협력관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인권분야 우리는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불가침한 것으로 존중한다. 이 목적을 위해 1991년 11월4일부터 15일까지 오슬로에서 전문가 세미나를 연다. 소수민족보호가 충실히 되도록 협조하는 일이 긴급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소수민족문제에 관한 전문가회의를 91년 7월1일부터 19일까지 제네바에서 개최한다. ▲안전보장 CFE조약과 신뢰조성조치(CBM)에 관한 협의의 성과를 한층 강화한다. CBM과 CFE를 계속하여 92년 개최예정인 헬싱키 재검토회의때까지 협의를 완료하도록 노력한다. 또 화학무기의 포괄적 금지조약 및 영공개방계획을 조속히 해결하도록 촉구한다. ▲경제협력 시장경제에 기초한 경제협력은 참가국간 관계의 중요한 요소를 구성하고번영된 통일유럽을 건설하는데 유효하다. 시장경제의 확립과 자립경제기반의 창설에 애쓰고 있는 제국에 대해 지원을 계속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환경 참가국은 환경문제 해결의 긴급성과 개별적이고 공동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또 환경파괴에 관한 정보 교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유럽환경기관(EEA)의 설립을 환영한다. ▷CSCE의 새로운 구조와 제도 차기 정상회담은 92년 헬싱키에서 열리는 재검토회의와 함께 열리며 그후 2년에 1번씩 개최된다. 이사회로서 외무장관회담을 적어도 연1회 연다. 이 이사회는 CSCE 정치적 협의의 주요장이 된다. 제1회 회의는 91년 베를린에서 연다. 고급 사무레벨위원회가 이사회를 준비하고 그 결정을 이행하며 참가국의 합의에 따라 긴급현안사항을 검토하는 특별회의 및 각료회의도 개최할 수 있다. 이들 협의사항을 행정지원 하기 위해 프라하에 사무국을 설치한다. 이사회에 의한 분쟁의 위기경감을 지원하기 위해 빈에 분쟁방지센터를 설치한다. 선거에 관한 참가국간의 접촉과 정보교환을 위해 바르샤바에 자유선거사무소를 설치한다. 전가맹국의 국회의원을 포함한 CSCE 의회 협의회를 통해 각국의 회의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모색한다.
  • 체코,공산당 전재산 몰수/의회 결의/2억3천만불… 국민에 반환

    【프라하 로이터 연합】 체코슬로바키아 의회는 16일 공산당 소유의 모든 재산을 압수해 국민들에게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체코 의회는 이날 열린 회의에서 이같은 재산수용법안을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으며 일부 공산당 출신 대의원들은 토의가 진행되는 동안 회의장을 떠났다. 공산당 재산에 대한 압수요구는 지난해 공산당정권이 붕괴한 이래 줄곧 제기돼 왔는데 공산당은 금년초 대중의 압력에 굴복,40년간의 공산당 집권기간동안 축적한 재산의 일부를 반환한 바 있다. 체코 국가감사위원회는 공산당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재산이 55억크로네(약 2억3천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내일 개막되는 유럽안보회의 무엇을 다루나

    ◎화해시대 유럽통합의 “새 초석 놓기”/얄타체제 종언 확인… 새 세계질서 모색/군축ㆍUR협상ㆍ페만사태 등 포괄논의 예상/동서 불가침선언 채택… 공동번영 다짐 「새 유럽」이 탄생한다. 새로운 세계질서의 첫 장이 열린다. 19일부터 파리에서 개최되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그 모태이며 출발점이 될 것이다. CSCE 34개 회원국 정상들은 이번 파리회담을 통해 냉전체제가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함과 아울러 동서 진영간 그동안의 불신과 적의를 털어버리고 공동번영을 향해 평화와 협력의 시대를 개막한다. 오는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회담의 공식의제는 ▲유럽정세 전반에 대한 논의 ▲CSCE의 향후 정책 ▲CSCE의 상설기구 설치문제 등으로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준비된 의제들에 대한 토의나 결론 그 자체보다도 이 모임을 통해 얄타이후 시대가 공식적으로 출범한다는 점에서 이번 파리회담에 보다 큰 역사적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지난 75년의 헬싱키 첫 회담이 동 서독 분단상황을 포함한 유럽국가들의 영토체계와 정치체제에대한 확인역할을 했다면 이번 회담은 동서독간의 국경변경(통일) 사실의 인정과 동구의 공산체제가 와해ㆍ소멸,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고 있음을 재확인하는 절차가 된다. 이번 회담이 열리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동서 긴장완화에서 찾을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그에 영향을 받은 동구권의 변혁,동서독의 통일 등이 유럽의 새 질서 구축을 부추겨 왔으며 구체화ㆍ공식화하기 위해 이번 회담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온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75년 회담의 결과인 헬싱키협약이 추구하는 목표가 달성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됐다고 판단되고 있으며 유럽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협약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또 다른 장치나 수단의 강구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즉 헬싱키 협약은 ▲유럽의 안보추구 ▲경제ㆍ과학기술ㆍ환경문제에 대한 협력 ▲인권문제에 대한 협력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동안 소련을 비롯한 공산진영은 경제ㆍ과학기술에 대한 협력을 강조해 온데 비해 서구측은 인권문제 개선의 실천을 요구해 왔고유럽안보 추구를 위한 군축문제에도 양 진영이 팽팽히 맞서 협약자체가 유명무실한 상태에 머물러 온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와해되면서 진행된 소련을 비롯한 동구 각국의 자유화ㆍ민주화는 인권상황을 눈에 띄게 개선시켰으며 서구 각국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구측에 경제지원을 실시,서로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와 함께 난항을 거듭하던 군비축소협상도 무난히 해결되어 CSCE의 새로운 정상회담의 토대를 닦아 왔다. 당초 이번 회담의 개최가 합의된 지난 2월의 나토 및 바르샤바조약기구 외무ㆍ국방장관들의 오타와(캐나다) 회담에서는 통독문제가 가장 중요한 의제로 꼽혔었다. 통독의 실현은 동 서독간의 국경이 소멸된다는 것을 뜻하며 이는 헬싱키협약이 규정하고 있는 「전후 국경의 준수」 조항에 관련되는 문제이다. 즉 국경을 변경하려면 협약서명국 전체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토록 되어 있어 당시 통독문제가 대두되면서 이를 다루기 위해 CSCE 정상회담이 요구됐었다. 이번 회담에서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가맹 22개국들에 의해 서명ㆍ발효될 유럽배치 재래식 전력감축조약(CFE) 타결이 가시적인 최대의 성과로 꼽히게 될 것이다. 이번 회담은 또 새 유럽 질서구축을 위한 보장조치로 상호불가침을 골자로 한 평화선언(파리선언)을 채택,다시 한번 유럽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다짐하게 된다. 그동안 논의 되어온 각종회의 개최시기,CSCE의 상설기구화 및 관련기구 설치문제도 이번 회담에서 다루어지게 된다. 정상회담은 2년마다,그리고 외무ㆍ국방장관회담 등 실무회의는 수시로 개최 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으며 상임사무총장제를 포함한 상설사무국을 프라하에 설치,회원국간의 연결과 각종 회의 준비업무를 담당케 한다는데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이다. CSCE를 현재의 협의기구에서 의사결정기구로 전환시키기 위해 범유럽 의회를 구성하자는 의견이 나와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어 채택여부가 불투명하다. 이번 회담에서의 새로운 집단안보체제의 구성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논의조차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나토의 입장에서는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와해직전에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막강한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소련은 여전히 잠재적인 적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안보의 한 울타리에 그들을 품기는 아직 서먹한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소련의 불안정한 국내정세도 이번 CSCE 정상회담이 무한정의 화합과 협력만을 강조하는데 쐐기를 박는 요인이 되고 있다. 페르시아만 사태는 이번 회담의 공식의제에서는 제외되었으나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회담 등 공식회담 막간에 활발히 진행될 각 국가원수들의 개별접촉을 통한 장외협의의 가장 중요한 과제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소식통들은 회담 이틀째인 20일에 열릴 비공개회담에서 이 문제가 다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2주 앞으로 다가온 우루과이라운드 최종협상 문제도 이해 당사국간의 활발한 막후접촉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유럽국가중 유일하게 이 회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알바니아에 이번에는 옵서버 참가자격이 주어질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민주개혁의진척도를 보아 가입을 허락한다는 원칙을 천명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은 참석인원등 규모면에서도 사상 최대의 정상회담이기도 하지만 다루어질 내용이나 의미로 보아서도 전후 세계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회담이 될 것이 분명하다. □CSCE 약사 ▲66.7:부쿠레슈티 바르샤바조약기구 정상회담에서 안전ㆍ협력문제논의 위한 범유럽회의 제의 ▲69.3:바르샤바조약기구,범유럽회의 구성을 위한 전유럽 국가대표회동 주장. ▲69.10:바르샤바조약기구 외무장관회담,70년에 헬싱키 범유럽회의 개최 주장 ▲72.10∼73.6:나토,유럽안보협력회의를 위한 준비회의개최 동의 ▲75.7:제1회 유럽안보협력회의 개최,헬싱키협정 채택 ▲77.10∼78.3:CSCE 베오그라드회담 개최 ▲80.11∼83.9:CSCE 마드리드회담 개최 ▲84∼86:CSCE 스톡홀름회담 개최 ▲89.12:고르바초프 CSCE 정상회담 90년중 개최 제의 ▲90.2:나토 및 바르샤바조약기구 외무ㆍ국방장관회담,CSCE 정상회담 개최 합의 ▲90.6:부시ㆍ고르바초프 연내 CSCE 정상회담 개최 합의 ▲90.7:나토 정상회담,나토 및 바르샤바조약기구간 불가침선언 및 CSCE 상설기구설치 제의 ▲90.9:CSCE 외무장관 예비회담
  • 재래무기 보유제한/바기구 6개국 조인/군축걸림돌 제거

    【부다페스트 AFP 연합】 바르샤바조약기구 6개 회원국은 3일 곧 체결될 유럽 재래식무기 감축협정(CFE)에 따라 바르샤바회원국들이 보유하게 될 재래식무기의 상한선에 관한 군사협약에 조인했다고 헝가리 정부소식통들이 말했다. 바르샤바조약기구 6개 회원국들은 이날 이 협약에 조인함으로써 오는 18일 파리에서 있을 CFE 조인을 위한 마지막 걸림돌을 제거했다. 지난달 27일 프라하에서 원칙적 합의를 본 이 협약에는 또 주요 전투용 탱크의 비축에 관한 소련측의 요구를 담은 문서도 딸려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 부시,16일부터 유럽ㆍ중동 순방/각국 정상과 페만사태 논의

    ◎백악관 발표/대 이라크 압력 강화 방안 모색 【워싱턴ㆍ로체스터(미 미네소타주) UPI AFP 연합】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오는 22일 사우디를 방문,대 이라크 전선에 배치된 미군부대를 돌아보고 중동 지도자들과 페르시아만 사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미 백악관이 2일 발표했다. 미 정부는 또 부시 대통령의 중동방문에 앞서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을 중동 및 소련에 파견,다국적군의 결속을 강화하고 이라크에 대한 다각적 압력을 가중시키기 위한 외교적 정지작업을 펼칠 예정이다.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이 22일 사우디를 방문,다국적군으로 파견된 현지 미군들과 추수감사절 휴일을 함께 보내는 한편 파드 사우디 국왕 및 셰이크 자비르 알 사바 망명 쿠웨이트 정부수장과 만나 페르시아만 사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부시 대통령의 이번 사우디방문이 16일부터 시작되는 8일간의 유럽 및 중동 순방일정의 막바지에 이루어지며 사우디와 함께 이집트도 방문,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도 회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부시 대통령의 사우디 및 이집트 방문에 앞서 베이커 국무장관이 중동 및 소련을 방문,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및 전기침 중국 외교부장 등과 페르시아만 사태 등을 논의한다고 마거릿 터트와일러 미 국무부 대변인이 2일 발표했다. 터트와일러 대변인은 베이커장관이 당초 오는 8일 모스크바를 방문,고르바초프 대통령 및 셰바르드나제장관과 페르시아만 사태 및 군축문제 등에 관해 연쇄회담을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베이커장관은 3일 미국을 떠나 4일 바레인에 도착하며 사우디아라비아의 타이프와 제다에서 자비르 알 사바 망명쿠웨이트 정부수장 및 사우디아라비아 관리들과 회담한후 카이로에서 전기침 중국 외교부장과 만난다. 베이커장관은 이집트방문후 6일 터키로 건너가 터키 지도자들과도 이라크에 대한 압력가중방안을 논의한다. 부시 대통령은 16일 워싱턴을 출발,17일 체코의 프라하에 도착해 바클라프 하벨 체코 대통령과 회담하며 이어 18일에는 독일을 방문,헬무트 콜 독일총리와 만나고 19일부터 21일까지는 파리에서 개최되는 유럽안보협력회의에 참석한다.
  • 바 기구 해체작업 마무리/탱크ㆍ포 등 나라별 감축규모 합의

    ◎대 나토협상 장애 제거 【프라하 AP UPI 연합】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들은 27일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와의 협정에 따른 탱크와 포의 감축규모를 각국 별로 어떻게 할당할 것인지에 관해 마침내 합의함으로써 나토와의 재래식무기 감축협정을 가로막는 마지막 장애를 제거하는 한편 바르샤바기구 자체의 해체를 앞두고 마무리작업을 끝냈다. 로베르트 하렌시아 체코슬로바키아 외무차관은 이날 프라하에서 열린 바르샤바기구 회의에서 소련은 보유 탱크 수를 1백50대 줄여 1만3천1백50대를 유지하기로 했으며 다른 나라들도 약4백90대의 탱크를 나눠서 줄이기로 합의,나토와의 협정에 따라 기구내 탱크 수를 2만대로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나토와 바르샤바기구는 전체적인 무기감축 규모에 관해서는 합의했으나 이를 각국 별로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는데 이날 합의는 소련이 다른 5개 동구 국가들의 의견에 따름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전투기와 헬리콥터 및 장갑차량 감축규모 배분에 관한 합의는 이미이달초에 이루어졌으나 탱크와 포에 관한 합의는 회담 네번째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 한­체코 경협협정 체결/항공협정도 함께

    최호중 외무장관은 26일 방한중인 이이지 딘스트비어 체코 외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양국간 항공협정 및 무역ㆍ경제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양국간에 체결된 항공협정은 양국 수도인 서울과 프라하간 민간항공운수권 부여 및 항공기 부품ㆍ연료ㆍ윤활유 등의 면세 등을 주요골자로 하고 있다. 또 무역ㆍ경제협력 협정은 상품 수출입시 관세ㆍ세금ㆍ통관절차 등에 대한 최혜국 대우 및 자유태환성 통화에 의한 대금지불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 항공협정 가서명/한­체코

    한국과 체코는 지난 19일 체코의 프라하에서 양국간 항공협정에 가서명했다고 20일 외무부가 밝혔다.
  • 바기구 내년까지 군사조직 해체/헝가리ㆍ체코,개편일정 제시

    【빈 AFP 연합】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는 91년말 이전에 소련주도하의 바르샤바조약기구 군사지휘체계를 종식시키는 바르샤바조약기구 개편일정을 제시했다고 오스트리아의 디 프레세지가 20일 보도했다. 디 프레세지는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이 제안이 이번주 프라하 근교에서 열린 바르샤바조약기구 군사전문가회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바르샤바조약기구는 오는 11월의 정상회담 이전까지 군사기구에서 정치기구로 전환되며 이어 내년 연말까지 산하 모든 군사 조직들을 해체하는 것으로 돼있다고 이 신문은 말하고 이 바르샤바기구의 최종 해체는 유럽 집단안보체제의 확립여부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디 프레세지는 올 가을의 제1단계 개편에서는 현재 각 회원국 정상들로 구성되는 정치협의위원회가 외무장관들의 회의체로 격하되며 내년에 이루어질 2단계 개편에서는 소련군의 지휘를 받는 바르샤바조약기구 군사령부가 해체되어 각 회원국의 통제하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신문은 이어 마지막 3단계에서는 알바니아를 제외한 전 유럽국가들과 미,캐나다 등이 참가하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범유럽안보체제를 마련하면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최종적으로 해체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쿠바인 2명 또 탈출/스페인 대사관으로/피신자 22명으로 늘어

    【아바나ㆍ프라하 AP AFP 연합】 2명의 쿠바인이 이미 다른 1명의 쿠바인이 서방국가로의 망명을 요구하며 피신해 있는 아바나 주재 스페인 대사관에 13일 피신했으며 이로써 지난 9일이래 아바나의 외국 공관에 피신한 쿠바인이 모두 22명으로 늘어났다고 아바나의 소식통들이 말했다. 아바나의 체코슬로바키아대사관에는 이미 14명의 쿠바인이 피신해 있으며 다른 쿠바인 5명도 12일 강제로 얀 도모크 체코 대리대사의 저택에 들어갔으나 도모크 대리대사는 그의 저택에 들어간 5명의 추방을 요구하고 있어 실제로 보호를 받고 있는 쿠바인 피신자는 17명인 셈이다.
  • 피신자 출국 허용/체코,쿠바에 촉구

    【프라하 AP 연합】 체코는 13일 쿠바 수도 아바나주재 체코대사관에 피신중인 14명의 쿠바인들에게 자유출국을 허용해 달라고 촉구하고 소련 서독 이탈리아 등에 이 문제의 해결을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