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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첼로거장 로스트로포비치·다니엘 샤프란 내한 공연

    ◎로스트로포비치­새달 서울·부산서 바흐곡 등 연주/다니엘 샤프란­19·22일 브람스·슈니트케곡 선사 현존하는 첼로계의 「빅3」 미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69)와 야노스 슈타커(72),그리고 다니엘 샤프란(73).이 가운데 같은 러시아 출신으로 1950년 체코 프라하 국제콩쿠르에서 공동 우승하는등 끊임없이 「맞수」로 비교돼온 로스트로포비치와 샤프란이 잇따라 한국의 음악팬들을 찾는다. 첫 내한연주인 샤프란의 독주회는 19일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하오7시 30분)과 22일 대구 경북대강당(하오7시)에서 열린다.세번째 내한하는 로스트로포비치는 6월4일 부산 문화회관 대강당(하오7시30분)과 5일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연주한다. 두사람은 모두 소련의 영향력있는 음악가를 부모로 두고 당대 거장으로부터 사사했으며,소련정부가 최고예술가에게 주는 「인민예술가」칭호를 받은 거장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샤프란은 43년부터 모스크바필하모닉 솔리스트이자 독주자로 유럽·일본·미국등에서 연주회를 가졌으나 음반은 러시아에서만 주로 나와 국내팬들에게는 생소한 편.최근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전곡 레코딩과 두차례 내한공연으로 친숙해진 로스트로포비치와 대조된다. 로스트로포비치는 「힘이 넘치고 거침없는 연주를 한다」는 평을,샤프란은 「낭만적이며 섬세한 가운데 강렬한 묘사를 한다」는 평을 듣는다. 이번 공연에서 샤프란은 자신이 편곡한 브람스의 「4개의 노래」와 슈니트케의 「알텐스틸 모음곡」을 비롯,브람스의 「첼로소나타 d단조」,브리튼의 「첼로소나타 C장조」등을 연주한다.로스트로포비치는 브람스의 「소나타제2번 F장조」,바흐의「무반주첼로 모음곡 제5번,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등을 연주한다.〈김수정 기자〉
  • 하벨 체코 대통령 “전재산 헌납”

    ◎수백만불 호가 부동산 등 재산정리 착수/신탁기금 조성… 이익금 사회사업 사용 바츨라프 하벨 체코 대통령이 전재산을 헌납,자선사업 등 사회를 위해 사용할 계획인 것으로 20일 알려져 전직대통령 등 정치지도자들의 비리·부정 뉴스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하벨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전재산을 헌납해 신탁기금을 조성,사회봉사 활동을 위해 사용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DPA통신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하벨 대통령은 대대로 물려받은 프라하 요처의 부동산을 곧 처분키로 하는 등 재산정리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나라에 귀속됐다 민주화 개혁 이후 소유권을 되찾은 부동산은 현시가로 따져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벨 대통령 부부의 이름을 따 만들어질 이 신탁기금의 이익과 운용수익은 전액 자선사업 등 사회의 그늘진 구석을 어루만지는데 쓰여질 예정이다. 하벨 대통령이 이같은 결심을 한 것은 올초 부인 올가 여사가 오랜 투병끝에 암으로 타계한데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슬하에 자녀도 없는 그는 부인과 사별 후 자신의 여생 및 거취문제를 깊이 숙고한 끝에 평소 생각해온 바를 행동에 옮기게된 것으로 전해졌다.
  • 러·나토,군사협력 합의/사령부에 상주 군사대표부 설치

    ◎나토 동구확대는 반대 【모스크바·프라하 AFP 로이터 연합】 러시아는 나토와 군사력 관계를 포함,다양한 협조관계를 모색할 것이라고 파벨 그라초프 러시아국방장관이 20일 밝혔다. 그라초프 장관은 러시아를 방문중인 하비에르 솔라나 나토사무총장과 회담한 후 이같이 밝히고 러시아와 나토는 벨기에 몽스에 있는 나토군 사령부 내에 러시아의 상주 군사대표부를 설치하는데 원칙적 합의를 봤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에 앞서 솔라나 사무총장은 러시아가 94년6월부터 나토 비회원국이 참여하는 군사협력체제인 「평화를 위한 동반자 계획」에 동참하고 있어 나토와 러시아의 협력관계가 크게 진전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라초프 장관은 나토의 동구권 확대 문제에는 양측이 서로 다른 접근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해 동유럽국의 나토가입에 대한 러시아의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 보스니아군,「세」계 공격 재개

    ◎휴전 불구 대공세… 북서부 모스트시 점령 【자그레브·베오그라드 AFP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정부군이 13일 휴전을 위반하고 북서부 세르비아계 지역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고 유엔관리들이 밝혔다. 한 유엔관리는 『이번 휴전은 36번째이며 기본적으로 보스니아 전역에 걸쳐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휴전 발효일인 12일 아침 겨우 2시간동안 총격이 멎었다가 다시 시작됐다고 전했다. 세르비아계도 이날 보스니아 정부군의 공세로 보스니아 북서부 산스키 모스트시가 함락됐으며 이 지역에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세르비아계는 이날 SRNA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12일의 맹렬한 공격끝에(보스니아 정부군)제5군단이 산스키 모스트를 점령한 데 이어 13일 새벽부터 세르비아계 영토 깊숙이 민간인 목표물에 대한 포대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프라하를 방문중인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보스니아대통령은 이날 자신은 일부 휴전 위반 사례에도 불구하고 휴전이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이날 보스니아 정부군과 크로아티아군의 위협을 받고 있는 세르비아계 지역 바냐 루카시 당국이 야간 통행금지를 실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 이사민·현 앨리스 사건(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8)

    ◎재미교포 부부… 49년 입북후 고위직 올라/북,「미 간첩」 혐의로 체포… 남로당 숙청 이용 한국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지자 남북한 집권세력은 내부투쟁을 통해 권력을 강화해 나갔다.남쪽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19 52년 부산정치파동을 거쳐 재집권한데 이어 북쪽에서는 그해가 끝날 무렵 남로당계 숙청을 서둘렀다. 김일성은 52년 12월15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에서 『종파주의 잔재들이 당과 정부기관에서 허장성세를 부리고 있다』고 경고하고 이들을 남겨두면 적의 「탐정배」(간첩)로 변하고 만다고 강조했다.남로당계를 겨냥한 이 발언을 뒷받침해 19 53년 1월 「문헌토의사업」이 벌어지면서 대대적인 남로당계 검거선풍이 일었다. ○53년 남로당 숙청 시작 3월 들어 박헌영을 비롯,이승엽·이강국 등 주요 간부들이 잇따라 체포됐으며 이 가운데 이승엽등 12명에 대한 재판은 휴전직후에,박헌영에 대한 재판은 55년에 각각 열렸다.이들에게 걸린 죄목은 「미 제국주의를 위한 간첩행위」와 「국가전복 음모」,「남반부 민주역량 파괴」등이다.따라서 이 사건을 흔히 「박헌영사건」또는 「박헌영 미제간첩 사건」이라고 부른다. 박헌영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대표적인 의혹사건의 하나로 꼽힌다.이는 사건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이같은 상황에서 박헌영사건의 성격을 가늠해 주는 또 다른 간첩사건인 「이사민·현앨리스 사건」은 큰 의미를 가진다. 이사민·현앨리스 사건은 재미동포인 이사민·현앨리스 부부가 북한 정권 수립 후에 입북,고위관리로 일하다 한국전쟁 발발후 소련을 통해 탈출을 기도한 사건을 말한다.남로당 숙청에 앞서 발생한 이 사건은 이승엽등의 재판과 박헌영재판에서 그들의 「미제 간첩」행위를 입증하는 증거로 제시됐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묻혀 있었다.그러나 이번에 서울신문이 이사민부부에 관한 자료와 당시 그 사건을 취급한 관계자들의 증언을 발굴해 사건 내막을 상당한 부분까지 밝혀냈다. 이사민은 본명이 이경선(미국명 이윌리엄)으로 출신지·나이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그러나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가 민족혁명당 미주지부에서 일하는등 항일독립운동에 관계 했다.부인 현앨리스는 재미 독립운동가 가운데 거물로 꼽히는 현모씨의 딸로 알려져 있다. 이 부부가 공산주의자가 된 시점은 확실하지 않지만 1947년 초 이미 재미 친북파의 대표로서 자리를 잡았다.이사민은 그해 4월부터 정기적으로 북한에 보고서를 제출했으며 보고서는 주로 체코 수도 프라하에 머물고 있던 한오수를 통해 북한 당국자들에게 전달됐다. 이들의 미국내 활동은 매우 적극적인 편이었다.미국 공산당에 가입해 한인조직을 결성,한달에 한번 꼴로 모임을 가졌다.그러면서도 평소 이사민은 워싱턴에,현앨리스는 로스앤젤레스에 떨어져 살며 각각 활동한 것을 보면 상당한 골수분자들처럼 보인다. 이와 함께 외부조직으로 민주인민전선연맹과 진보당후원회를 결성해 재미 한국인 단체,미국 좌파단체들과 고리를 맺었다.이들은 민주인민전선연맹을 통해서는 한인 최대 조직인 국민회에 북한에 설립된 인민공화국을 승인하라고 권하기까지 했다.또 「독립」이라는 주간신문을 2천여부 발행하여 국외및 각급단체에 배포했는데 당시 현지에서 발행된 한글 주간신문 4종 가운데 북한 소식을 보도한 것은 「독립」하나 뿐이었다. 이처럼 활발히 움직이던 이사민부부가 갑자기 북한에 들어가 일하겠다는 뜻을 밝힌 때가 1948년 12월이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발굴한 「이사민의 보고서」(별도기사 참고)에서 이사민은 김일성·박헌영에게 동구권 국가를 통해 입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실제로 이 부부는 1949년 1월 체코 프라하로 가 체코정부에 북한으로의 정치망명을 요청했다. ○박헌영이 적극 도와 그러나 북한행이 생각대로 쉽지는 않았다.이들의 망명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3∼4개월이 걸렸다.체코정부가 이들의 의도를 의심했기 때문이다.체코 안전기관은 먼저 분명한 정치적 동기가 없다고 판단했으며,게다가 이들은 북한이 부모의 고향이라고 주장했으나 거짓말인 것으로 판명됐다.정체를 의심한 체코 안전기관은 이를 북한 내무성 안전국에 알렸으며 북한당국도 망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고했다. 이때부터이사민·현앨리스와 박헌영이 관련되기 시작한다.당시 외무상인 박헌영은 내무성의 판단을 무시하고 부부에게 입국사증을 내주었다.아울러 이들이 북한에 도착하자 외무성을 동원해 환영행사를 해주기까지 했다.그후 이사민은 조국전선 중앙위원회 조사연구부 부(부)부장으로,현앨리스는 중앙통신사 번역부장을 거쳐 외무성 조사보도국에서 일했다.내무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입북한 이들이 짧은 기간에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 역시 박헌영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이사민과 현앨리스는 북한에 들어와 5∼6개월 동안 아주 성실하게 일해 주변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다.그러나 입국을 거부했던 내무성 안전국은 여전히 부부를 주시하고 있었다.이들은 직위를 이용,유럽에 편지를 자주 했는데 일일이 검열을 당했다.따라서 답장은 한차례도 받을 수 없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이사민부부는 황급히 북한당국에 유럽여행을 요청했다.내무성은 「불가」통보를 했지만,이번에도 외무성이 출국사증을 내주었다.북한을 떠난 이들이 소련 모스크바공항에 도착하자 북한 안전국 요원들은 짐을 수색했다.의심했던대로 그동안 수집한 자료가 쏟아져 나왔으며 그 가운데는 군대관계 비밀자료도 여럿 들어있었다. 그길로 북한으로 강제귀환된 부부는 안전국의 추궁 끝에 미 정보기관으로 부터 정보수집 임무를 띠고 침투했다고 자백했다.마치 한국 땅을 밟았다 사이공으로 탈출했던 「위장간첩 이수근 사건」을 보는 듯이 북한의 이사민·현앨리스 사건은 아주 드라마틱하다. ○북한판 「이수근 사건」 이 사건의 불똥은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파에게로 튀었다.이사민부부의 북한 입·출국을 방조한 박헌영이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1953년 7월30일 열린 이승엽등의 재판에서 이강국은 『50년 7월 미국에서 직접 파견한 간첩분자 이윌리엄(이사민)과 현앨리스를 평양에 있는 집에서 두차례 만나 공화국의 군사기밀을 탐지하여 제공하는데 대한 토의를 했다』고 고발됐다. 또 55년 12월 재판받은 박헌영도 같은 혐의를 받았는데 그 내용은 더욱 구체적이었다.곧 박헌영은 48년 6월 하지로부터 『이사민등미국 정보원들을 유럽을 통해 북한에 보내겠으니 입국과 간첩활동을 보장해 주라』는 지령을 받았다.이에 따라 이사민등이 입북할 때 입국사증을 내주었으며 현앨리스를 중앙통신사·외무성에,이사민을 조국전선의 요직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박헌영은 과연 미국의 간첩이었을까,아니면 김일성과의 권력투쟁에서 지는 바람에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까.그 진실을 알려줄 것으로 기대되는 이사민·현앨리스 사건이 이제 막 역사의 전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사민의 대북 보고서/“미 교포 공산당원 26명” 김일성에 보고/47년부터 미 정세 등 탐지… 편지 보내/“곧 동구 경유 입북” 박헌영에도 알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박헌영사건」과 관련해 그동안 이름만 알려져 있을 뿐 구체적인 행적은 베일에 가려 있던 이사민 관계 자료를 이번에 발굴했다.워싱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찾아낸 이 자료는 이사민이 미국에 있던 19 48년 12월 북한 최고 권력자인 김일성과 박헌영에게 직접 보낸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서 「미국 워싱턴주재동지대표」이사민은 ▲당 동지들의 활동 ▲조선인 거류민의 분위기 ▲독립운동 상황 ▲미국의 정세들을 자세히 전했다.당 동지들의 활동에 대해 『현재 당원으로는 로스앤젤레스에 13인,샌프란시스코에 1인,뉴욕에 4인,워싱턴에 2인,기타 지역에 6인을 합하여 26인』이 있으며 이들은 『미국 당부(미국 공산당)의 허락으로 조선인그룹빠를 재조직하고 1개월에 1차 회집』한다고 밝혔다.또 현지의 당원 대표는 『로스앤젤레스의 변준호·김강·현앨리스,워싱턴의 이사민·선우학원,뉴욕의 신두식·곽지순』등 7명이라고 소개했다. 이사민은 이와 함께 동지들 중 일부가 동유럽을 경유하여 북한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그후 이사민과 현앨리스는 체코 프라하를 경유해 북한에 들어갔다.이 대목이 이사민과 박헌영의 연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고서 수신자중 한명이 박헌영이었으므로 그가 이사민의 입북계획을 미리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박헌영은 이사민의 입북이 어려워지자 적극 도왔으며,북한에 있을 때나 뒷날 출국할 때도 이사민을 옹호했다.박헌영의 이른바 「미제간첩 사건」과 이사민을 직접 연결시킬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의심받을 만한 정황은 있는 것이다. 한편 이 보고서에서 이사민은 47년 4월이후 동구권을 통해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이 루트가 이제 불가능한 듯 하다고 밝혔다.그래서 앞으로는 자신에게 직접 연락달라며 미국 주소를 제시했다. 이사민이 보고서를 작성할 무렵은 47년 3월 미국이 「트루먼독트린」을 발표한 뒤 동서냉전이 더욱 격화된 시기라는 점에서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이 시기에 동구권을 통한 북한과의 서신교류나,미국 주소로 연락을 받겠다고 제의한 사실들은 미 정보기관의 양해없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최근 발굴한 「이사민의 보고서」.「박헌영사건」관련인물로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던 이사민은 이 자료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 서울신문 발굴 「이사민 보고서」를 보고/김광운 국사편찬위 연구원

    ◎「박헌영 숙청」 본질 파악 단서 제공/「이사민 부부와 연계」 일부 밝혀/해방후 미 교포사회 친북인사 활동 처음 알려져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발생한 「박헌영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최대쟁점중의 하나다.지금까지 이 사건에 대한 증언이나 연구는 선입견이나 불확실한 사실에 의존한 경우가 많았다.오늘날 북한에서는 박헌영이 「미제의 간첩」이었다는 믿음만이 존재한다.반면에 대한민국에서는 김일성이 6·25 패전의 책임을 물어 박헌영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으며,이로써 김일성 정권은 더욱 공고화됐다고 대체로 이해하고 있다. 서울신문이 이번에 공개한 「이사민의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박헌영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받을 것으로 기대한다.정치적 성격이 강한 역사적 사건일수록 무엇보다 먼저 구체적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박헌영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사건의 기원까지 거슬러올라갈 필요가 있다.조선노동당은 1953년1월부터 「문헌토의사업」이라는 것을 전개했다.토의는 문헌에 기초해 당사업을 총화하는 것이었다.그런데 두 차례에 걸친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박헌영과 그 주변인물의 과거비리와 문제점이 하나둘 폭로되었다.이 과정에서 전쟁전에 미국의 정보공작선이 여럿 침투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들추어냈다. 여기서 무엇보다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이미 간첩혐의로 체포된 이사민·현 앨리스와 이들이 맺은 관계였다.북한당국의 공판기록에는 『박헌영이 이들의 간첩활동을 백방으로 보장해주었다』고 기술되어 있다.이번에 공개된 「이사민의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공판과정에서 쟁점이 된 사안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이사민과 현앨리스가 체코 프라하로 가 북한으로의 정치망명을 요구한 사실이 「이사민의 보고서」에는 예고돼 있다. 최근 미국의 한국현대사 연구가인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 제2권에서 미국 CIA가 박헌영사건으로 체포당한 설정식을 통해 북한의 여러가지 정보를 입수했음을 자료를 통해 새롭게 입증한 바 있다.설정식은 함남 단천 출신으로 미국 마운트유니언대학을 나왔으며 해방후 미군정청 공보처 여론국장을 지낸 인물이다.46년9월 공산당에 입당해 51년7월 개성휴전회담에서는 인민군대표단 통역을 맡았다.그는 53년8월 이승엽등과 함께 「미제간첩」혐의로 재판받아 사형을 당했다. 이사민·현앨리스의 경우도 이와 같은 부류에 해당될 것으로 판단된다.아울러 「이사민의 보고서」는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해방후 미국에서 전개된 친북인사의 활동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충격적이다.
  • 나토,러에 「특별관계」 제의/정치·군사 협력강화

    ◎새 조약 체결 등 포함 【브뤼셀·프라하 AFP 로이터 연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26일 러시아와 정치,군사 분야의 모든 관계를 개선,특별한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 러시아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나토는 이날 성명을 통해 「나토­러시아 관계의 정치적 틀」에 관한 나토측 초안이 비탈리 추르킨 브뤼셀 주재 러시아 대사에게 전달됐다고 밝히고 『나토는 유럽안보에서 차지하는 러시아의 중요한 역할을 전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러시아와 능동적이고 협조적이며 건설적인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성명은 또 『나토의 방안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추진력을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성명은 이어 이날 나토측이 전달한 초안은 지난 5월의 나토 외무장관 회담에서 올 연말까지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틀에 대해 논의하기로 한 결정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하고 『이 정치적 틀에는 상호 정치협상 개발은 물론 안보협력의 기본적인 원칙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토 소식통들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에는 새로운 조약체결이나 모든 관심사안을 논의할 수 있는 「상임위원회」 설립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 대우­오사 컨소시엄/체코 최대 트럭사 경영

    【프라하 UPI 연합】 오스트리아와 한국의 컨소시엄이 체코공화국 최대 트럭 제조업체인 아비아의 경영을 주도하게 됐다고 이 회사 관계자들이 14일 밝혔다. 아비아는 지난해 2백만달러의 적자를 냈으나 올해 상반기에는 2백90만달러의 흑자를 냈다.아비아는 체코와 슬로바키아공화국 트럭시장의 74%를 점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주말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참석한 이사선임 주총에서는 대우에서 1명,슈타이어 다임러 푸흐와 전 체코 경영진에서 각각 1명씩의 이사가 선출됐다. 아비아는 올해 트럭생산과 판매를 4천5백대로 늘릴 계획이며 96년에는 현재의 모델을 개선하고 99년에는 완전히 새로운 모델을 생산할 방침이다. 대우는 아비아에 재정지원을 계획하고 있으며 트럭 배급망은 물론 마케팅과 리스활동도 지원할 계획이다.
  • 프라하의 봄(영화탄생 100년/감동의 명화)

    ◎격변기 삶·사랑·죽음 “철학적 성찰”/상업성·예술성 기발한 접목 토마스라는 의사,테레사라는 사진작가,사비나라는 화가 그리고 프란츠라는 교수가 격변기의 체코에서 겪어나가는 삶과 사랑과 죽음의 이야기 「프라하의 봄」은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망명작가 밀란 쿤데라(1929∼)가 1984년에 발표한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화한 것이다.1968년의 「프라하의 봄」이라는 역사적·사회적·정치적 사건이 어떻게 한 세대의 삶을 좌절과 파멸로 몰아갔으며,개인의 사랑과 죽음의 항로를 뒤바꾸어 놓았는가를 밀도있게 추적한 이 작품은 「장미의 이름」과는 또다른 측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성적 접촉을 통해 여성의 상이한 개성을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수백명의 여자들과 자유분방하게 관계를 갖는 토마스는 어느날 시골에 왕진을 갔다가 잠깐 들른 카페의 여급 테레사와 사랑을 하게되고 결국에는 결혼까지 하게된다.토마스는 어느날 자신의 애인인 사비나에게 테레사를 소개하며 도움을요청하고 사비나는 테레사가 사진작가가 되도록 도와준다.이윽고 19 68년 소련군의 체코침공이 시작되자 토마스와 테레사는 프라하를 떠나 취리히로 간다.한편 제네바로 간 사비나는 그곳에서 만난 프란츠와 짧은 사랑을 하지만 곧 그를 떠나 파리로 간다.결국 토마스와 테레사는 시골에서 자동차사고로 죽고 프란츠 역시 외국에서 우연한 사고로 죽게된다.그러나 이같은 사건들은 모두 연대기적 순서가 거의 무시된채 시공을 초월해서 관객들에게 제시되고 있다. 원작자 쿤데라는 이 소설을 니체의 영원한 재귀사상에 대한 언급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니체는 인간의 역사란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라고 믿었다.그러한 그의 사상속에는 물론 역사의 진보에 대한 회의와 과거에 대한 탐색정신이 깃들어 있었다.부단히 반복되는 역사는 무거운 존재다.그러나 인간의 삶은 한번 지나가 버리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솜털처럼 가벼운 존재일 뿐이다.그것을 깨닫는 순간 니체의 「영원한 재귀」사상은 심오한 이중의 의미를 갖게 된다.쿤데라의 의식속에 토마스라는 인물이떠오르게 된 배경에는 바로 그와 같은 철학적 성찰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작품속의 토마스는 테레사에게서 무거움의 중요성을 배우고,테레사는 토마스에게서 가벼움의 중요성을 배운다.역사의 대장정속에서 이들의 삶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가벼운 솜털처럼 사라져간다.쿤데라는 오직 작가만이 그들의 삶을 되살릴 수 있음을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다.소위 말하는 상업성과 예술성을 기발하게 접목시킨 「프라하의 봄」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본 작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 우랄의 옛도시­페름시(시베리아 대탐방:21)

    ◎인구 1백만… 우랄 최대의 문화중심지/「러」 3대 발레극장·베르샤긴 미술관이…/실바강 따라 1시간동안 절경 펼쳐/별장 지붕위 “매물” 페인트 표시 눈길끌고 페름시에 도착하면서 여행출발 이후 처음으로 인구 1백만명이 넘는 대도시를 밟아보게 된다.이곳은 프리 우랄 최대의 문화중심지로 혁명전까지 우랄의 행정수도는 에카테린부르크가 아니라 페름이었다.우랄의 공장지대에서 생산된 각종 물품들은 육로로 이곳까지 와서 배로 카마강∼볼가강을 따라 러시아중부의 각 도시로 운반돼 나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발레단(키로프발레단의 새이름),모스크바의 볼쇼이와 함께 러시아 3대 발레극장으로 꼽히는 페름발레단이 이곳에 있다.그러나 너무 추운 환경탓에 우수한 발레리나들이 서쪽도시로 빠져나가 지금은 그 명성이 많이 바랬지만 전유럽에 명성을 날렸던 발레학교는 지금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그리고 20세기초 화가 베르샤긴의 작품 60여점을 소장한 베르샤긴미술관을 자랑한다.특히 이 도시는 카마강변의 언덕위에 건설돼 체코의 프라하 같이 언덕위에서 강을 내려다보는 정경이 일품이다. ○5㎞ 얼음동굴로 유명 페름은 또한 역대 소련 외상들 중 가장 유명했던 몰로토프가 이곳에서 혁명운동을 한 인연으로 40년부터 57년까지 시 이름이 몰로토프였다.러시아 전역에는 유명한 볼셰비키라면 어김없이 그의 이름을 딴 도시·대학이 5∼6개는 되는 게 보통이다.57년 도시 이름이 페름으로 바뀐 것은 몰로토프가 카가노비치·쉬필로프등과 함께 반흐루시초프 음모에 가담했다가 실각했기 때문이다.카가노비치는 스탈린 때 철도상을 지낸 스탈린의 최고 심복중 한명으로 이름난 킬러.러시아인들은 지금도 그를 가리켜「아이언(철혈) 카가노비치」라고 부른다. 페름역을 출발해 조금 나아가면 실바강이 나오고 강과 철길이 만나는 지점에 쿵구르역이 있다.쿵구르인들은 러시아에서도 손재주가 좋기로 이름난 사람들이다.쿵구르 구두·쿵구르 케이크·쿵구르 악기등 손재주가 필요한 정교한 제품들로 이름난 도시다.1759년까지는 우랄전체자보드(공장)의 행정본부가 있었을 정도로 번창했던 도시였으나 이후 시베리아철도가 건설돼 다른 도시가 커지며 상대적으로 쇄락의 길을 걷고 있다.이곳을 제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쿵구르스키 리제나야 피쉐라(쿵구르 얼음동굴)」라는 지하동굴이다.길이 5㎞가 넘는 동굴안에 60여개의 호수가 서로 연결돼 있는데 항상 영하의 기온으로 얼어 있는 곳이다. ○야생능금꽃 눈부셔 길이 5백㎞의 실바강을 따라 1시간여 동안 그림같은 우랄의 절경이 펼쳐진다.강,강안의 바위,그위의 나무숲….페름주에서 우랄의 중심부에 위치한 스베르들로프스크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역은「코르간」이다.입산신고대란 뜻의 이름인데 숲이 많은 우랄지대라 이런 마을 이름이 유난히 많다. 왼편 차창밖으로 맑게 내리쬐는 5월 햇살아래 폭 1백여m의 실바강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우랄산맥의 정점에 있는 유럽·아시아 분수령에서 발원해 유럽쪽으로 흘러내리는 강이다.시베리아횡단열차구간중 최고로 꼽히는 절경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강변에는 잎이 갓 돋아나 연두색을 띤 베료자와 겨울을 지나 검붉게 뻗은 소나무·옐나무들이 같은 비율로 뒤섞여 고도로 세련된 색의 하모니를 연출해내고 있다.강변에 늘어선 별장 지붕에 흰 페인트로 커다랗게 「프로다유(팔겠다는 뜻)」라고 써놓은 글씨가 눈길을 끈다. 기차가 산정을 향해 숨가쁜 행진을 계속해 본격적으로 우랄의 수중으로 들어서자 지금껏 보이지 않던 새로운 수종들이 나타났다.야생능금꽃이 눈꽃을 덧씌운 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1시간여를 달린 뒤 스베르들로프 경계를 넘어 첫번째 역인 샬랴역을 지나갔다.갑자기 잎을 달지 못한 베료자나무들이 나타나 산 곳곳이 민둥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우랄은 아직 봄의 첫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우랄산맥은 서쪽으로는 페름주의 쿵구르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에카테린부르크시 직후 산세가 끝이나며 동서거리의 최장은 2백㎞,남북길이는 2천㎞에 이른다.전체적으로 완만한 산세를 보이지만 북쪽 코미공화국에 있는 최고봉 나로드나야산은 해발 1천8백95m에 이른다. 페름에서 에카테린부르크로 연결되는 현재의 직선노선은 1905년에 건설됐다.그 전에는 1875년에 건설된 북쪽 우회도로가있었을 뿐이다.이 직선노선이 건설되기전 우랄과 모스크바를 잇는 노선은 에카테린부르크에서 남으로 첼리야빈스크를 경유해 서쪽으로 사마라를 거쳐 모스크바로 연결됐다.따라서 시베리아횡단열차노선도 첼리야빈스크에서 동쪽으로 쿠르간∼페트로파블로프스크(카자흐영토)∼옴스크로 이어졌다. 현재 이 북부 카자흐경유 노선은 매우 아름다운 절경을 지나긴 하지만 승객들이 기피하는 노선이다.카자흐스탄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양국 국경세관에서 거의 1시간 이상씩 짐검사를 해 승객들을 귀찮게 굴기 때문이다.러시아인들은 노비자이지만 외국승객의 경우 이 노선을 이용하자면 미리 카자흐정부로부터 통과비자를 얻어야한다. ○희귀금속 무진장 매장 마침내 러시아 최대 산업지구 우랄지구로 들어섰다.우랄은 최대 공업지대이면서 메탈·희귀금속의 최대 매장지다.이 금속들을 발달된 기계공업기술로 묶어 아주 밀접한 단일 경제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현재 우랄로 통칭되는 이 산업지대에는 페름주·코미자치공·스베르들로프주·첼리야빈스크주를 비롯해순수농업지대인 쿠르간주·바시코르토스탄주·우드무르티공화국등이 속한다. 우랄의 가장 큰 자랑은 역시 무궁무진한 금속이 매장돼 있다는 것이다.지질학적으로 오래된 산은 완만하지만 희귀석·메탈·알루미늄 등 귀중한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고 반면 지진대로 분류되는 신생 산맥은 산세가 가파르고 아름다운 반면 자원이 매장돼 있지 않다.우랄은 전자의 전형적인 예이다.
  • 대만, 중 반발속 외교공세 박차/행정원장,체코 총리와 회담

    ◎22일 미와 첫 경제차관 회의 【대북·프라하·도쿄·홍콩 외신 종합】 이등휘 총통의 미국방문을 계기로 한 대만의 외교공세가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3일간의 일정으로 체코를 방문중인 연전 대만행정원장은 19일 프라하에서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총리를 만나 비공식 논의를 가졌고 자신의 유럽방문이 대만의 밝은 미래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연전 행정원장의 체코방문에 대해 중국은 체코정부에 공식항의했다고 체코주재 중국대사관 공보관이 19일 밝혔다. 대만은 또 미국과 지난 79년 단교이후 처음으로 양국 경제담당 차관급회의를 22일 워싱턴에서 갖는다고 교도통신이 19일 보도했다. 대만은 싱가포르와 통신위성 합자 비망록에 다음달 서명한다고 홍콩과 대북의 연합보가 이날 보도했다.
  • 영국 부동산 회사서/세계 주요도시 조사

    ◎홍콩­소매상가 임대표 세계서 가장 비싸/평방피트당 1,500달러… 2위 뉴욕의 3배 【런던 로이터 연합】 홍콩이 산매상가 임대료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이며 그 다음은 뉴욕,상하이,도쿄 등의 순서인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의 부동산 상담 전문회사인 힐리 앤 베이커사가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홍콩 코즈웨이만 연안의 산매상가의 임대료는 평방 피트당 1천5백 달러로서 세계 2위인 뉴욕의 3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의 존 윌스 영업담당본부장은 『산매수요가 강하면 산매상가 임대료가 비싸진다고 볼 때 이 조사는 세계 경제에서 동남아시아가 날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입증해 준다』고 말했다. 윌스씨는 이번 조사결과 산매상가 임대료가 비싼 세계 20개 도시 중에서 14개가 유럽에 있어 유럽이 아직 건재함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그는 뮌헨,빈,파리,취리히,런던 등이 세계에서 산매상가 임대료가 비싼 상위 10위권 도시에 들어 갔고 프라하도 13위를 차지했다면서 『이는 세계 곳곳의 산매업자들이 새롭게 자유화된 유럽의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유럽에서 줄을 서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조사결과 남아공,오스트리아,프랑스,포르투갈,터키 등의 도시들이 산매상가 임대료가 크게 상승한 반면 미국도시들은 정체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 숙명의 라이벌들(북한 특권층 심층 해부:5)

    ◎김정일 신임싸고 시기·견제 치열/인사·정책결정에 훼방놓기 일쑤/김국태·김달현­협력사업 아귀 안맞아 얼굴 붉히고/강성산·연형묵­총리직 맞교대 직후 전우가 적으로 ○허담 사망뒤 티격태격 ▷김국태와 김달현◁ 북한에선 누가 김정일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느냐에 따라 「힘」이 붙었다 떨어졌다 한다. 지난 91년 5월 사망하기 전까지 김정일로부터 가장 신임을 받은 인물은 당중앙위비서 허답이었다.그러나 그가 죽은 뒤엔 당간부부장 김국태가 김정일을 자주 수행,힘을 썼다.하지만 그 기간은 고작 1년에 불과했다.92년께부터 김정일의 신임이 김달현과 김용순에게로 옮아갔기 때문이다.처지가 이렇게 바뀌자 부아가 난 김국태는 특히 김달현을 시기,견제하기 시작했다. 당시 김달현은 대외경제위원장으로 대외무역을 책임지고 있었다.자연 대외경제협력과 관련한 「사업」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모든 사업은 관련 부서에서 성안은 해도 실행에 옮기려면 당의 검토와 비준이 있어야 한다.김국태는 이같은 메커니즘을 최대한 이용,김달현을 골탕먹였다.당에 올린 사업의 검토와 비준을 별다른 이유없이 미뤘던 것.김달현이 독촉을 해도 김국태는 『지금 검토중이니 좀 기다려라』해놓곤 마냥 시간을 끌었다. 사업이 다급해진 김달현은 김정일에게 당에서 빨리 비준토록 압력을 넣어줄 것을 부탁했다.그러나 김정일로부터 선처해주라는 지시를 받고도 김국태는 계속 깔아 뭉갰다. 김달현으로선 다시 김정일에게 부탁하기가 민망한데다 김국태의 농간으로 하는 일마다 어그러져 부글부글 속을 끓여야 했다.이러니 둘 사이가 틀어질 수밖에 없을 건 뻔한 일. 두사람 사이가 결정적으로 악화된 건 93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김달현은 자신이 맡고 있던 대외경제위원회위원장 자리에 무역통으로 무역부 부부장을 지낸 이성대를 앉히려 했다.그러나 간부 선임권을 가진 김국태는 무역부장 출신의 최정근을 심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팀플레이어로 최정근보다 이성대를 의중에 두고 있던 김달현은 김정일에게 직소,김국태가 밀던 최정근을 밀어내고 이성대를 앉히는데 성공했다.그뒤 김국태와 김달현은 견원지간이 되고 말았다. ○대표단 여권 늑장발급 ▷김국태와 강성산◁ 김국태는 강성산 총리와도 사이가 좋지 않다. 두사람은 만경대혁명학원 동창인데도 선배인 김국태의 시기로 사이가 나빠진 경우다.김국태는 자신이 한번도 올라보지 못한 총리자리에 강성산이 두번씩이나 앉은데다가 김정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데 배알이 틀렸던 것.그래서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다.93년 8월 정무원은 식량사정이 급해지자 태국으로부터 쌀을 사오기로 결정,대표단을 급파키로 했다. 그러나 하루가 급한 대표단에게 도대체 여권이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다.김국태가 『어디 애좀 먹어봐라』며 미적거렸기 때문.이에 울화가 치민 강성산은 『간부부 때문에 일 못해먹겠다』며 김국태의 못된 짓거리를 김정일에게 일러 바쳤다.강총리를 신임하던 김정일이 김국태에게 『총리가 하는 일은 무조건 협조하라』고 지시한 것은 물론.그러나 김국태는 예의 우보작전으로 강총리를 계속 애먹였다.강총리는 열이 뻗쳤지만 그렇다고 총리체면에 다시 김정일을 잡고 늘어질 수가 없어 이만 부득부득 갈아야 했다.얼마나 화가 났던지 강총리는 사위 앞에서 『X같은 놈의 X끼』하며 김국태에게 마구 욕을 퍼붓더라는 것이다. ○“정치국원은 별종이냐” ▷강성산과 연형묵◁ 두사람 사이는 이유없이 가까워야 하는게 정상이다.둘은 만경대혁명학원과 체코 프라하공대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이기 때문.더군다나 이들은 한국전쟁기간중 김일성친위중대서 같이 근무한 전우이기도 하다.그러나 두사람 사이는 가깝기는 커녕 남들보다 더 껄끄럽다.무엇보다 강성산 총리는 연형묵이 김정일에게 아첨떠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그래서 인간적으로 신임하지를 않는다는 것.둘 사이가 나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강성산 총리가 88년 12월 물을 먹고 하루 아침에 함북도 당비서겸 인민위원장으로 쫓겨내려가 있을 때 후임 총리에 오른 연형묵이 전혀 도와주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함북도에는 북한이 자랑하는 대부분의 중공업체들이 몰려 있다.큰 연합기업소만도 김책제철,청진화학,성진제강 등 세개나 있으며 무산광산을 포함,탄광도 많다.그러나 말이 연합기업소지 이런 큰 공장들은 정무원 지원없이는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는 곳이 북한이다.전력공급부터 필수자재에 이르기까지 정무원의 지시없이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원되는게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연형묵은 강성산의 SOS를 받고도 모른척 했다.자연 도당책임비서 강성산은 연합기업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과 관련,다짜고짜 김정일부자의 질책과 꾸중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1백80도 상황이 역전된 국면이다.92년 12월 연형묵이 총리에서 자강도 당책임비서겸 인민위원장으로 쫓겨간 반면 은인자중하던 강성산이 다시 총리로 롤백했기 때문.사정이 이렇게 뒤바뀌게 됐으니 요즘 두 사람 사이가 어떠리란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이다. 『지체높은 정치국원들도 싸움박질을 합네까』란 강명도씨 물음에 강총리의 대답은 퉁명스럽기 그지 없었다고 한다.『야,정치국원은 뭐 별종인줄 아네』
  • 「북회귀선」 「킬러」/개봉 앞둔 충격영상 기대와 우려 엇갈려

    ◎북회귀선/“외설” 시비속 “주제는 성도덕 옹호”/킬러/“폭력미화” 비난에 “현실고발” 변명 양성애,광적 살인 등 사회상식과 통념에서 벗어난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들이 개봉될 예정이어서 기대와 우려를 함께 사고있다. 오는 22일 뚜껑을 열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원제 Henry & June)과 15일 선보일 「킬러」(원제 Natural Born Killers).특히 「…북회귀선」은 지난 90년 처음 공연윤리위원회에 수입심의를 냈지만 「외설」을 이유로 반려됐던 작품으로 소설해금(91년)과 연극공연(93년)에 이어 지난 2월 본심의를 통과함으로써 5년만에 영화로 볼 수 있게됐다. 「…북회귀선」은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사랑하는 한 여류작가의 자유분방한 성탐험과 그를 통한 자아완성을 그린 고감도 에로틱 영화.명성높은 여류작가 아나이스 닌(마리아 드 메데리오스)은 남편에 무력감을 느끼던중 성문학 작가 헨리 밀러(프레드 워드)를 만나면서 그의 동물적 야성과 작품세계에 어느덧 빠져든다.문학의 테두리안에서 서로의 삶을 공유하던 그들은 이내 비밀스런 사랑에 취하게 되고,아나이스는 나아가 밀러의 아내 준(우마 서먼)과 레즈비언 사랑을 나누는 벅찬 운명의 주인이 된다.『다양한 성체험을 통해서만 순수를 느낄 수 있다』는 준의 위험한 성철학을 그대로 답습하며 육체의 방황을 거듭하는 아나이스.하지만 그녀가 결국 돌아가는 곳은 정부(정부)도 여자애인도 아닌 본남편의 품이라는 어찌보면 진부한 줄거리의 영화다. 노골적인 레즈비언 묘사 등 실험적이라고 할만큼 대담한 애정유희로 점철된 영화이지만 그 충격적 에로성에 비해 결말은 사뭇 평범한 셈.성은 식욕처럼 건강한 욕망이되 올바른 성만이 축복받는다는 정도의 메시지를 겨냥하고 있는 듯하다.「프라하의 봄」「떠오르는 태양」으로 잘 알려진 미국감독 필립 카우프만이 연출한 작품으로 짙은 회화적 이미지와 느슨한 대사처리가 유럽 예술영화의 지적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북회귀선」이 단순히 반윤리적인 성묘사에 그치고 있는데 비해 「킬러」는 폭력과 살인을 미화하고 있는 혐의가 짙다는 점에서 문제성을 더한다.올리버 스톤 감독의「킬러」는 과도한 폭력성으로 국내개봉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지난 11일 공륜이 본심의를 내줌으로써 관객과 만날 수 있게됐다.우디 해럴슨과 줄리엣 루이스가 주연한 이 영화는 사회에 대한 무한정의 증오심에 불타는 두 남녀의 끝없는 살인행진을 그린 작품으로 부모살해 장면,살인이야말로 순수한 행위라고 강변하는 살인광의 언행,점차 살인을 찬양하게 되는 TV기자의 심경변화 묘사 등 인화성 강한 요소들로 가득차 있다. 폭력불감증에 걸린 현대사회,살인에 열광하는 대중의 이상심리 및 이에 영합하는 매스컴의 병폐를 강렬한 영상언어로 고발하고 있다는 것이 이 영화를 옹호하는 측의 설명.그러나 영화 전편에 흥건하게 배어있는 잔인한 폭력과 피의 냄새는 현대인의 사회심리적 병리를 고발한다는 감독의 깊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일반의 정서를 해치고 있다는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 김 대통령­콜 총리 2년만의 반가운 재회(김대통령 유럽순방 여로)

    ◎무궁화·십자훈장 헤어초크와 주고받아/진눈깨비속 재독교민들 공항까지 마중 김영삼 대통령은 독일방문 이틀째인 6일 하오(현지시간) 헬무트 콜총리와 한·독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본 시청을 방문하고 저녁에는 헤어초크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하는등 독일 정상들과 우의를 다졌다. 김 대통령은 이날 상오에는 독일 대통령궁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 참석했고 헤어초크 대통령과 환담한 뒤 함께 오찬을 나누었다. 김대통령은 전날 하오 본공항에 도착,영빈관에 여장을 풀고 현지 교민들을 위해 리셉션을 베푼 데 이어 수행하고 있는 경제인들과 만찬을 나누며 정부와 기업의 협력방안등에 대해 논의했다. ▷한·독 정상회담◁ ○…김대통령과 콜 총리는 이날 하오 본의 총리집무실에서 유종하 수석 등 두나라의 외교안보수석과 통역만을 배석시킨 가운데 1시간30분동안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및 동북아정세를 비롯한 국제정세와 두나라의 협력증진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 김 대통령은 총리실 현관에서 콜 총리의 영접을 받고 악수를 나누며 『다시 만나게 돼 기쁘다』고 인사. 김 대통령과 콜 총리는 3층 접견실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곧바로 총리집무실로 자리를 옮겨 회담을 시작. 김 대통령은 본격적인 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국빈자격으로 초청해 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며 특히 지난 93년 3월에 이어 또다시 만나 의견교환의 기회를 갖게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국빈초청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시. 김 대통령은 또 콜 총리가 지난달 하순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았음을 의식,『최근 수술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오늘 이렇게 건강한 모습을 뵙게 돼 무엇보다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언급. 김 대통령은 한반도 정세와 관련,김일성사망 후 북한정세에 관해 설명한 뒤 『북한이 남북대화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남북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이에 콜 총리는 전적으로 공감하며 지지한다는 뜻을 표시. 김 대통령은 또 두나라의 관계발전방안에 대해 『우호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상을 비롯한 각 레벨간의 긴밀한 교류증진과의사소통이 필요하다』고 피력. ▷독일대통령과 환담◁ ○…김 대통령은 이날 상오 독일 대통령궁인 빌라 함머슈미트궁에서 헤어초크 대통령과 독일통일과 유럽통합등을 화제로 30여분동안 환담. 김 대통령 내외는 헤어초크 대통령 내외의 안내로 1층 로비에서 방명록에 서명한 뒤 후원 테라스로 가 두나라 수행원들과 함께 기념촬영. 김 대통령은 1층 엠팡살 룸으로 이동,헤어초크 대통령에게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했고 헤어초크대통령은 김대통령에게 십자대훈장을 수여. 김 대통령이 헤어초크 대통령과 환담을 나누는 동안 부인 손명순여사는 헤어초크 대통령의 부인 크리스티아네 여사와 별도 환담. 이어 김 대통령과 헤어초크 대통령 내외는 대통령궁에서 오찬을 나누었고 오찬이 끝난 뒤 손여사는 별도로 탁아소를 방문. 이에 앞서 김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 헤어초크 대통령과 함께 참석. 15분 남짓 걸린 환영식이 끝난 뒤 김 대통령은 대통령궁으로 들어가다 환영나온 독일측 학생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 ▷본 교민 리셉션◁ ○…김 대통령은 5일하오 (현지시간) 본의 숙소인 영빈관에서 현지 교민들과 수행경제인 등 약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리셉션을 갖는 것으로 독일 방문일정을 시작. 김 대통령은 격려사에서 『눈은 좋은 일을 알리는 서설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 독일 방문을 시작하는 날에 눈이 내리는 것을 보니 기쁜 일이 생길 것 같다』고 언급. 김 대통령은 『9년 전에도 독일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국민들과 이를 억누르는 군사독재정부간에 투쟁이 전개되던 시기였다』고 회상하고 『프라하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외롭고 고통스럽던 그 때가 떠올라 말할 수 없는 심정으로 본에 도착했다』고 피력. 김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단행한 군개혁,금융실명제 도입,정치개혁입법 등 일련의 개혁조치에 대해 설명한 뒤 『앞으로도 남은 임기동안 변화와 개혁의 고삐를 결코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 이어 공산정권의 붕괴 이후 독립국가들로 분리된 옛 소련과 통일독일의 예를 들면서 『억지로 하나로 된 국가는 나누어지며 억지로 나누어진 민족은통일되는 것이 역사의 순리』고 말하고 『누구고 그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통일된다는 사실』이라고 부연. 김 대통령은 『나는 대통령으로서 남은 임기동안 혼신의 힘으로 조국을 구하고 위대한 나라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여러분들도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갖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기여해 달라』고 당부. 김 대통령이 30분 남짓 격려사를 하는 동안 교민들은 다섯차례에 걸쳐 박수를 보내기도. ▷본 공항 도착◁ ○…김 대통령이 탑승한 대한항공 특별기는 프라하를 출발한지 1시간20분만인 5일 하오 5시40분쯤(현지시간·한국시간 6일 상오 1시40분) 본 공항에 도착.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특별기에서 내린 김 대통령은 도메즈 의전장등 독일측 환영인사들의 영접을 받고 의장대를 사열. 김 대통령은 이어 지메스 주한독일대사 내외를 비롯한 독일측 의전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환영나온 90여명의 독일교민들과 악수하면서 『이렇게 궂은 날씨에 마중을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체코 공동기자회견◁ ○…이에 앞서 김 대통령은 체코의 하벨대통령과 5일 하오 프라하의 대통령궁에서 40분 남짓 기자회견을 진행. 두나라 정상은 각각 모두발언을 통해 상대방의 민주화 투쟁경력에 대해 아낌 없는 찬사를 보내 눈길. 김 대통령은 하벨 대통령에 대해 『동유럽에서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상징적 인물이 바로 하벨 대통령』이라고 칭송한 뒤 『체코가 완벽한 시장경제의 구축으로 안정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있는데 대해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피력. 하벨 대통령은 앞으로 북한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질문을 받고 『과거 체코슬로바키아는 북한과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이젠 체코주재 북한대사관 직원 숫자가 고작 몇명에 불과하듯 서로 냉랭한 관계에 있다』고 거침없이 답변. 대통령부인 손명순 여사는 공동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대통령궁 경내에 있는 옛 왕궁을 관람.
  • 하벨“한반도 군사분계선 반드시 붕괴”(김 대통령 유럽순방여로)

    ◎김 대통령,“양국 경협 급속 확대될것”/체코국민 자유화 열망,한국인 민주투쟁과 비슷/민주화 완성·한반도 통일 기원하며 석별의 건배 이틀동안의 체코공식방문일정을 모두 마친 김영삼 대통령은 5일 하오(현지시간·한국시간 6일 상오) 유럽순방 세번째 나라인 독일의 수도 본에 도착,영빈관에서 현지교민들을 위해 리셉션을 베푸는 등 3박4일동안의 독일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김 대통령은 이날 체코를 떠나기에 앞서 프라하의 옛 시청을 방문한 데 이어 클라우스 총리와 회담을 갖고 오찬을 나누었으며 대통령궁에서 하벨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가진 뒤 공식환송식에 참석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위하여” 건배 제의 ▷체코 총리 회담◁ ○…김 대통령은 전날 하벨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휴일인 이날 상오 클라우스 총리와 회담을 갖는 등 이틀동안의 짧은 방문일정을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 총리별장인 크라마조바 빌라에서 열린 김 대통령과 클라우스 총리의 회담은 비록 30분동안 짧게 진행됐지만 두나라 사이의 현안에 대해밀도 있게 협의. 회담에서는 두나라의 경제·기술협력 기반 구축문제와 함께 북한의 최근 변화에 대해 폭넓은 의견교환이 있었고 특히 클라우스 총리는 한국의 유엔안보리 진출을 지지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 김 대통령은 회담을 마친 뒤 클라우스 총리내외가 주최한 오찬에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참석,1시간30분동안 오찬을 들며 배석한 두나라의 경제·외무 관련각료들에게 회담결과를 설명. 클라우스 총리는 『김 대통령을 위하여』라고 건배를 제의했고 김 대통령도 『한·체코의 영원한 우의를 위하여』라고 건배를 제의. 김 대통령은 『두나라 경제의 상호 보완성과 경제인들의 활기찬 기업활동을 감안할 때 양국간 경제협력은 앞으로도 더욱 확대되어 나갈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지속적인 관계 발전을 기대. ▷프라하 옛시청 방문◁ ○…이에 앞서 김 대통령은 이날 상오 프라하의 옛 시청을 방문,방명록에 서명하고 청사 내부를 시찰. 마침 일요일을 맞아 시청앞 광장에 모인 시민 5백여명의 환영을 받으며 이곳을 방문한 김 대통령은 정문까지영접나온 얀 코칼 시장에게 『안녕하십니까.매우 아름다운 도시입니다』라고 인사. 이어 4층 접견실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코칼 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두 나라가 지금까지는 주로 경제적인 분야에서만 협력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문화·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가자』고 제의. 코칼 시장은 또 『프라하 시민들은 한국의 LG 삼성 현대 등의 이름과 상품을 익히 잘 알고 있지만 질좋은 상품을 생산하는 더 많은 기업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이들 기업의 진출도 희망한다』고 역설. 코칼 시장은 프라하시와 서울시 사이의 실무적이고 일상적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서울시장을 초청하고 싶다면서 이를 서울시장에게 꼭 전달해 달라고 요청. 김 대통령은 답사에서 『체코 민주화를 묵묵히 지켜보아온 유서깊은 옛 시청이 앞으로 체코 번영을 이끌고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살찌워 나가는 터전이 되리라 믿는다』고 피력. 김 대통령은 또 코칼 시장이 제의한 서울시장 초청에 대해 『두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의 상호협력에도움이 될 것』이라며 초청의사를 반드시 전달하겠다고 약속. 김 대통령은 이어 방명록에 서명했고 코칼 시장은 김 대통령에게 우호와 신뢰의 상징인 「프라하시 열쇠」를 증정. 김 대통령은 이어 수행원들과 함께 옛 청사 내부를 살펴본 뒤 『프라하시와 시민 여러분께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한다』는 안부인사와 함께 청사방문을 마감. ○손 여사에 화환 증정 ▷체코 환송식◁ ○…김 대통령과 하벨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가진 뒤 서재로 자리를 옮겨 10분 남짓 환담을 나누며 1박2일동안의 짧은 일정에 아쉬움을 표시. 김대통령 내외는 이어 대통령궁 제1궁정에서 열린 공식환송식에 참석,체코방문 공식일정을 종료. 두나라 국가가 연주된 뒤 김대통령은 하벨대통령의 안내로 의장대를 사열하고 악수로 작별인사를 나눴으며 하벨 대통령은 손명순여사에게 꽃다발을 증정하고 환송인사. ○양국일행 80명 참석 ▷체코 대통령 만찬◁ ○…하벨 대통령이 김대통령 일행을 위해 4일 저녁 대통령궁에 마련한 국빈환영만찬장에는 한국측에서 30여명,체코측에서 50여명등 모두 80여명이 참석. 두 정상은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헤드테이블에 착석,민주주의의 완성과 한반도통일을 기원하며 각각 건배를 제의. 하벨 대통령은 『민주한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민주체코를 방문했다는 점에 역사적 의의를 부여한다』고 말하고 『체코가 한국기업인들의 중부유럽 진출을 지원할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은 체코와 아·태지역간의 협력을 도와 달라』고 주문. ◎김 대통령 오찬 건배사 나는 클라우스 총리께서 우리 내외와 일행을 이렇게 환대해 주시고 우의에 찬 말씀을 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나는 이번 방문을 통해 귀국의 민주화와 경제개혁이 성공적인 결실을 맺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나는 「벨벳혁명」이래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사회적 안정을 이룩하고 중부유럽의 중심국가로 도약하고자 노력하고 계시는 각하와 체코 국민에게 심심한 경의와 성원을 보내는 바입니다. 한국과 체코 두 나라는 지난 90년 3월 수교한 이래 꾸준한 관계발전을이룩해 왔습니다. 특히 무역면에 있어 지난해 교역규모는 1억3천만달러를 기록하여 93년에 비해 약 70% 정도의 급격한 신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두 나라 경제의 상호 보완성과 경제인들의 활기찬 기업활동을 감안할 때 경제협력은 앞으로도 더욱 확대되어 나갈 것으로 확신합니다. 나는 격변하는 국제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두 나라가 다방면에 걸쳐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난해 10월 총리 각하의 한국 방문이 두 나라 사이에 긴밀한 협력시대를 여는 전기가 되었음은 물론 중부유럽과 동아시아를 잇는 가교를 건설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고 믿습니다.나의 이번 귀국 방문이 그런 협력관계를 더욱 심화시키는 의미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클라우스 총리 내외분의 건강과 체코 공화국의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그리고 한국과 체코간의 영원한 우의를 위하여 건배할 것을 제의합니다.
  • 한­독 오늘 정상회담/과기 협력·투자 확대논의/오늘 새벽 본에안착

    ◎안보리 진출 지지 재다짐/체코총리 【본=김영만 특파원】 김영삼 대통령은 이틀동안의 체코방문을 마치고 5일 하오5시40분(현지시간·한국시간 6일 상오1시40분) 유럽순방 세번째 나라인 독일의 수도 본에 안착,3박4일 동안의 공식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김 대통령은 6일 하오 헬무트 콜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한·독 두나라의 상호 투자 확대및 첨단과학기술 협력 등 경제협력 방안을 비롯,한국의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및 북한 핵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김 대통령은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바츨라프 클라우스 총리와 회담을 갖고 두나라의 상호투자및 교역확대,제3국 공동진출 등 포괄적인 경제협력관계를 증진시켜 나가기로 한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합의사항을 거듭 확인했다. 클라우스 총리는 이 자리에서 한국의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체코정부의 방침을 거듭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어 클라우스 총리가 주최한 오찬에서 『한국과 체코 두나라 경제의 상호 보완성과 활기찬 기업활동을 감안할 때 두나라의 경제협력은 앞으로도 더욱 확대돼 나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프라하를 떠나기에 앞서 프라하의 옛 시청을 방문,환영행사에 참석했다. 한편 김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정근모 과학기술처장관은 이날 체코의 밀리안 체르니 산업통상부차관,얀 스뮬러 원자력청장과 한·체코 원자력장관회의를 갖고 원자력협력협정 체결에 대한 의향서를 서명·교환했다. 두나라 정부는 이 의향서에서 원자력협력의 활성화를 위해 빠른 시일 안에 정부간 협정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의향서는 ▲정부간 원자력협력협정의 체결 추진 ▲두나라 원자력연구기관의 협력협정 체결 추진 ▲과학기술자 교환,공동연구,정보교류 등을 통한 협력 등에 합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의향서의 교환으로 두나라의 원자력기술 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은 물론 앞으로 우리나라의 원자력산업이 동구권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마련됐다. 이같은 정부간 의향서의 교환에 이어 한국원자력연구소(KAERI)와 체코 원자력연구소(NRI) 사이에도 협력양해각서가 체결됐다.
  • 외교지평 넓어졌다(사설)

    김영삼 대통령이 그의 두번째 유럽순방국인 체코에서 정상외교를 펼치고 있다.체코는 유럽에서도 중동부 깊숙이 위치해있는 나라다.지리적으로도 멀지만 체코는 반세기 가까이 구소련의 그늘에 숨어있었기 때문에 우리와는 체제면에서도 멀리 서있던 나라다. 한국의 대통령이 체코에 갔다는 것은 우리의 외교지평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어김없는 증거다.한국은 중국·러시아와도 이미 국교관계를 수립했고 상당한 수준의 실질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저 먼 중동부유럽의 과거 공산국가와의 새로운 협력관계 설정은 또다른 의미를 지닌다.이제 우리 한국외교는 지구상 어느곳에도 있고 우리의 국력은 어디에도 뻗쳐나가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나라는 하나의 명줄같은 인연의 끈을 대고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체코는 1968년 「프라하의 봄」이래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나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끈질기게 투쟁해 오늘의 체코를 이룩해낸 빛나는 투쟁사를 갖고 있다.우리와 아주 흡사한 민주화 역정을 통해서다.특히 김영삼 대통령과 바츨라프 하벨체코대통령은 다같이 양국의 민주화투쟁을 주도했던 인물들이다. 양국은 이런 정신적 유대감을 토대로 수교 5년밖에 안됐지만 92년 하벨 대통령,94년 클라우스 총리의 방한에 이어 이번 김 대통령의 프라하 방문으로 모두 3번의 정상회담을 갖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됐다.우리는 양국관계를 통해 외교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체코는 짧은기간에 민주화와 번영을 동시에 이룩한 한국을 개발모델로 삼고 있다. 이미 보도된대로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은 체코의 기업민영화사업과 통신사업에 한국이 참여하고 제3국에서의 양국합작진출에도 합의하는등 구체적 협력관계로 들어섰다. 한·체코 두나라는 이번 정상회담을 새로운 기점으로 정치·외교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양국관계를 더욱 실질적으로 확대해 더많은 도움을 서로 주고받게 될것으로 기대한다.
  • 김 대통령­하벨 정상회담의 성과

    ◎한­체코 「경제·과기 실질협력의 틀」 구축/체코 트럭회사 주식 34% 오와 공동인수/9백40만달러 규모 광케이블공사 낙찰 김영삼 대통령과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4일 정상회담은 경제·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와 체코 두나라의 실질적 협력관계를 한단계 향상시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체코는 이른바 「벨벳혁명」이래 개방과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있어 중동구권의 모범이 되는 나라다.비슷한 처지인 폴란드나 헝가리·불가리아에 다시 사회당정권이 들어선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는 데 이처럼 성공한 나라와의 협력강화는 한국외교의 위상강화는 물론 경제·통상분야에서 우리의 동구권진출에 매우 효과적인 거점을 확보했음을 뜻한다. 두나라는 이날 40분동안의 정상회담과 통상장관회담 등을 통해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방지협정을 공식적으로 발효시켰다.또 과학기술협력협정·원자력협정을 체결하고 제3국 공동진출과 민간차원의 경제교류확대 등에 합의했다.경제·과학·기술·투자등 다양하고 실질적인 분야에서 협력을활성화하기 위한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쪽에서 본다면 이번 회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체코 국영기업의 민영화사업과 통신망 현대화사업 등에 우리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구체화 또는 확대시켰다는 점이라고할 수 있다. 회담에서 우리는 민영화사업참여와 관련,국영트럭제조회사(AVIA)의 주식 34%를 오스트리아와 공동으로 인수하기로 했다.통상장관회담에서는 삼성전자가 9백40만 달러규모의 체코 체신청의 광섬유케이블 설치공사를 낙찰받은 것이 두나라의 긴밀한 협력관계의 상징적 계기가 된다는 사실에 뜻을 모으고 5천만 달러규모의 전전자교환기사업과 체신청 민영화사업에 한국기업의 참여가능성을 서로 확인했다.지금껏 동구권 국가의 민영화사업이나 통신망 현대화사업을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독과점해온 사실을 감안하면 이는 우리기업의 유럽진출에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것이다. 한국과 체코는 5년이란 짧은 수교기간에도 불구하고 그사이 3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진 특수한 관계다.체코가 한국의 경제개발모델을 자기네의시장경제전환을 위한 교과서로 삼으려는 의지와 관계가 깊다.동남아시아 여러나라와 러시아나 우즈베크·헝가리 등에 이어 체코의 이같은 움직임은 한국이 고도경제성장 또는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독특한 경제개발모델의 종주국으로 국제무대에서 지위를 향상시켜 가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두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독특한 「정치경제철학」을 정리해 눈길을 끌었다.민주주의를 위해 줄기차게 투쟁해온 두지도자는 『인간존엄성등 인류보편적 가치의 추구가 민주주의 발전은 물론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불가결하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이는 한국의 고도경제성장 및 민주화의 동시달성에 대한 하나의 철학해석이자,한국형 발전을 추구하는 개발도상국들에게 새로운 이념적 지표를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두 정상이 북한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공동보조를 다짐하면서 북한의 인권개선을 위해 함께 노력키로 한 점도 이같은 인류보편적 가치의 추구와 경제발전의 상호관계 설정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특히 북한의인권개선에 대한 공동보조는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날 체코는 북한문제에 대한 협조는 물론 국제무대에서의 다른 현안에 대해서도 완전한 동반자가 될 것을 약속했다.우리의 유엔 안보리비상임 이사국진출에 대한 지지를 말로서만 아니라 문서로까지 약속했는가 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문제에서도 긴밀한 협력체제를 유지하고 가입후에는 OECD를 탄력적이고 배타성없이 운영하는데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김대통령의 꿈은 대통령 재임기간안에 우리나라를 국제중심국가로 만드는데 있다.세계화전략의 궁극적 목표도 세계중심국가화에 있다. 체코는 강한 나라는 아니다.그러나 중동구권의 중심국가인 체코가 한국에 보인 「존경」과 실질협력강화,국제무대에서의 완전한 동반자역할 약속 등은 김대통령의 이같은 꿈을 구체화하는데 또 한차례 힘을 보태준 것이다. ◎김 대통령 만찬답사 요지 나는 찬란한 문화와 전통에 빛나는 아름다운프라하를 한국대통령으로서 처음 방문하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특히 공산주의로 얼어 붙은 대지에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20여년동안 투쟁해오신 하벨대통령 각하를 비롯한 체코 민주개혁 지도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게 되어 참으로 깊은 감회를 느낍니다. 20세기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향한 민주화투쟁이 마침내 승리를 이룩한 「민주주의 구현의 세기」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1968년 「프라하의 봄」이후 그 길고도 험난한 투쟁과정에서 보여준 각하의 영도력과 체코국민의 용기는 중부유럽 개혁의 횃불이 되었습니다.나는 1989년 늦가을 이곳 바츨라프 광장에서 전개된 「벨벳혁명」때의 여러분을 상기합니다.자유와 정의를 쟁취하고 말겠다는 불퇴전의 용기와 결의에 차 있던 여러분의 그때 그 모습은 한국땅에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투쟁했던 한국 국민의 모습,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각하께서는 1990년 신년사에서 「국민 여러분,여러분의 정부가 다시 여러분의 손으로 되돌아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이는 곧 민주와 번영을 향한 새로운 체코역사의 시작을 선언한 것이라고 믿습니다.나는 이 자리를 빌려 각하의 영도아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서 착실한 진전을 이룩하고 있는 체코국민에게 우리 국민의 뜨거운 성원을 보내는 바입니다.나는 오늘 각하와 가진 회담에서 두 나라는 국교를 수립한지 5년에 불과하지만 지속적인 관계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두나라는 그동안 이중과세 방지협정,투자촉진 및 보장협정등 각종 협정을 체결하여 양국관계 발전의 기본틀을 마련하였습니다. 21세기를 앞두고 세계는 더욱 가까워지고 있습니다.체코와 한국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가까운 이웃처럼 긴밀히 교류하고 협력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나의 이번 체코방문이 두 나라국민의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하고 양국 협력관계를 한 차원 높이는 계기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나의 이번 체코방문이 두 나라국민의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하고 양국 협력관계를 한 차원 높이는 계기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 한국,체코기업 민영화 참여/김 대통령­하벨 회담

    ◎북인권 개선·OECD가입 협력/“EU­동아 정상회의 주도”/김 대통령­불총리 【프라하=김영만 특파원】 김영삼 대통령은 4일하오(현지시간)유럽순방 두번째 나라로 체코를 방문,수도 프라하의 대통령궁에서 바츨라프 하벨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날 정상회담에서 두정상은 우리나라가 체코 국영트럭제조회사의 민영화 사업과 통신공사의 광케이블네트워크 사업에 참여하는데 최종적으로 합의했다. 하벨 대통령은 특히 『한국기업의 적극적인 체코투자로 한국의 개발경험과 기술이 전수될 수 있도록 한국정부와 기업의 관심을 촉구한다』고 말하고 『투자진출 때 모든 부문에 걸쳐 가능한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두나라 정상은 이와 함께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등 경제관련 기본협정의 발효를 계기로 상호투자 및 교역을 확대해 나가고 제3국에의 공동진출 방안도 적극 모색하기로 했다. 김 대통령은 이번 순방을 계기로 두나라 사이의 과학기술협력협정이 체결된데 따라 연구인력의 교류와 과학기술의 협력방안을도출하기 위한 기술조사단의 상호파견을 제의했다. 두 정상은 이자리에서 북한문제를 논의,북한의 인권상황개선에 두나라가 공동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두정상은 북한의 핵무기개발저지,한국의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한국과 체코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문제 등에서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체코는 특히 한국의 유엔안보리진출지지를 문서로 확인했다. 김 대통령은 20개국 1백50명의 학자가 참석한 가운데 다음달 프라하에서 열리는 유럽한국학총회에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두 정상은 회담후 공동기자회견과 이날 밤 대통령궁에서 열린 공식만찬에서 『앞으로 다방면에 걸쳐 상호교류를 가속화시켜 나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날 상오 발라뒤르 프랑스총리와의 조찬을 끝으로 프랑스방문일정을 모두 마치고 파리를 떠나 프라하에 안착,대통령궁에서 열린 환영식에 참석했다. 김 대통령은 5일 낮 클라우스총리와 회담을 가진뒤 체코를 떠나 3박4일 일정으로 독일을 방문한다. 【파리=김영만 특파원】김영삼 대통령과 발라뒤르 프랑스총리는 4일 아침(현지시간) 프랑스총리공관에서 조찬을 겸한 회담을 갖고 두나라가 유럽연합(EU)과 동아시아 국가간의 다자정상회의 실현을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하자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유종하청와대외교안보수석이 발표했다. 두나라의 외무·통상장관등이 배석한 이날 회담에서 두사람은 서울∼파리간 항공편 증설에 원칙적인 합의를 보고 구체적 시기와 증편횟수등을 관련 항공사들간에 협의하도록 했다. 두나라는 또 프랑스의 민간이 보유하고 있는 생명공학,가축위생,신소재분야에 대한 첨단기술을 한국기업에 이전하도록 프랑스정부가 협력하는 등 상호 민간첨단기술에 대한 이전을 촉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회담에서 김대통령은 연간 25억원에 달하는 프랑스주재 한국상사원들의 사회보장세를 환원하도록 촉구했으며 이에 대해 발라뒤르총리는 상호주의원칙에 따라 이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발라뒤르총리는 북한 경수로 지원사업에 대한 참여요청에 『재정적 지원보다는 기술지원을 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프라하=김영만 특파원】 한국과 체코 정부는 4일 통상장관회담과 과학기술장관회담을 갖고 두나라 사이의 경제및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체코 방문을 수행하고 있는 박재윤통상산업부장관은 이날 하오 소몰 통상부장관대리와 회담을 갖고 체코의 주요 국책사업에 우리 기업이 선정되도록 하고 합작투자등에서도 우리 기업에 대한 특별배려를 요청했다. 소몰 장관대리는 체신청 민영화계획에 한국통신이 참여하기를 희망했다. 한편 정근모 과학기술처장관도 체코 교육·청소년·체육부의 이반 필립 장관과 체코 대통령궁에서 한·체코 과학기술장관회담을 갖고 이날 서명한 「한·체코간 과학기술협력협정」을 토대로 협력분야와 대상기관의 선정 등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두 장관은 이를 위해 두나라 정부와 대학·연구소 등의 기술조사단을 구성해 올해안에 상호 교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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