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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색정남녀’ 장국영 파격 에로연기

    ‘영웅본색’에서의 정의로운 이미지,‘아비정전’의 불안정한 모습,‘패왕별희’와 ‘해피투게더’의 개성있는 캐릭터,‘성월동화’에서의 로맨틱한분위기…. 출연하는 영화마다 독특한 색깔을 보여준 홍콩배우 장국영(42)이 또한번 파격적인 연기변신을 했다.왕가위와 함께 홍콩 뉴웨이브의 선두주자로 꼽히는이동승감독의 영화 ‘색정남녀’(色情男女·18일 개봉)에서 그는 괜찮은 에로영화를 찍고자 고심하는 포르노 영화감독으로 나온다. 두 편의 영화를 연출했지만 흥행에 실패한 별 볼일 없는 감독 아성(장국영)은 경찰인 애인 메이(막문위)에게 얹혀 산다.그러던 어느날 포르노영화를 찍자는 제의를 받고 고심끝에 수락한다.아성은 신음소리 하나 제대로 못내는여배우 몽교(서기)에게 점차 빠져든다.가난한 부모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배우가 됐다고 고백하는 몽교 또한 아성에게 호감을 갖는다.영화 속 몽교는 무명시절 누드모델이던 서기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서기뿐 아니라 장국영이 화려한 누드연기를 펼쳐 화제가 된 이 영화는 홍콩영화계의 부박한 현실도 간간이 짚고 넘어간다.개봉도 안된 영화의 불법CD가 나돈다든가,할리우드 히트작을 대충 끌어다 베끼자고 채근하는 영화 제작자가 나오는 장면 등이 그 한 예다. 우디 앨런의 영화 ‘브로드웨이를 쏴라’가 예술이 ‘물주(物主)의 상품’이 되는 현실을 풍자했다면,‘색정남녀’는 오락만능의 홍콩 영화계를 은근히꼬집는다.그러나 마음에 없는 포르노영화를 찍어야 하는 아성의 내적인 고민은 벌거벗은 육체의 퍼레이드에 치여 그 빛을 잃었다. 김종면기자
  • 스페인총선 우파 집권당 압승

    [마드리드 외신종합]12일 실시된 스페인 총선에서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총리가 이끄는 집권 국민당(PPP)이 압도적인 표차로 재집권에 승리,중도좌파가 휩쓰는 유럽대륙에서 우파정권의 한 보루를 지켜냈다. 중도우파인 국민당은 하원 350석중 44.3%를 차지,최종적으로 182석을 얻어무난히 과반수를 넘어섰다.반면 야당인 사회당은 득표율 34%대로 141석을 얻는 데 그쳤다. 국민당은 지난 96년 선거에서는 156석을 획득하는 데 그쳐 지역정당인 카탈루냐동맹(CIU)과의 제휴가 불가피했다.사회노동당과 제휴한 통합좌파(IU)도득표율이 10.5%에서 5.5%로 떨어져 의석수가 기존의 21석에서 8석으로 줄어들었다. 국민당은 선거 승리에 따라 스페인 경제의 급속한 성장 및 실업 감소를 가져온 현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재집권에 성공한 아스나르 총리의 정책은 상당 부분 좌파출신 곤살레스 전총리의 정책을 이어가되긴축 예산,복지지출 절감,세제개혁,노동시장 규제완화등에 주력해왔다. 아스나르총리는 그동안 국민당의 전통적인 우익정책들을점진적으로 개선,중도우파,혁신우파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올들어 스페인은 실업률이과거 고질적인 20∼30%선에서 20년만에 최저인 15%선으로 떨어졌으며 유럽연합(EU)회원국중 가장 건실한 성장을 한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한편 후아킨 알무니아 사회노동당 당수는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당수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이날 발표했다. [포커스 투데이] 재집권 성공 스페인총리 아스나르. 12일 총선에서 압승한 스페인 국민당(PPP)의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총리(47)는 중도우파 보수적 정치인이다. 그는 지난 96년 선거에서 14년 집권 사회노동당의 펠리페 곤살레스 총리를물리치고 집권에 성공했다.아스나르는 당시 과거 프랑코 총통의 독재 스타일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보수주의 정책을 펼칠 것을 공약했다.국민당의 전통적인 우익 정책들을 점진적으로 개선,‘중도정당’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국민당 대변인들조차 국민당을 ‘중도-우파’ ‘혁신 우파’‘중도’라고표현해왔다. 이같은 면모는 긴축예산,복지지출 절감,세제 개혁,노동시장 규제완화,민영화 등의 경제정책에서 드러난다. 1953년 2월 마드리드의 부유한 외교관 가정에서 출생한 아스나르는 법학을전공하고 20대 중반 국민당의 전신인 국민연맹에 입당,정치에 입문했다.1982년 29세때 하원의원에 선출됐으며 90년 국민당 당수직에 올랐다. 입심좋은 웅변가로 평판이 자자한 아스나르는 대중친화력이 높아 인기가 높다.이번 총선에서 지난 해 3.7%의 성장률과 15%의 인플레 등 경제실적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 매주 미사에 참석하는 독실한 가톨릭이며 열렬한 축구팬이자 투우 애호가라는 측면도 대중과 친숙한 정치인으로 그를 만든다.세무관료 출신으로 부인과3자녀가 있다. 그러나 스페인 테두리 밖에서 그에 대한 인지도가 낮다는 점은 큰 결점으로꼽힌다.지난 해 5월 러시아 방문때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이 면담을 마지막 순간에 취소한 것은 그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고 언론들은 꼽씹기도했다.그의 단구를 빗댄 풍자만화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박희준기자 pnb@
  • 총선연대 공천무효訴 제기

    총선연대는 8일 지역주의 정치를 추방하기 위해 오는 13일 부산을 시작으로대표단이 전국 버스투어를 하기로 했다. 장원(張元)대변인은 “최근 부산을 거점으로 지역주의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맞불’ 차원에서 부산부터 투어를 시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총선연대는 이날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에서 유권자들과 함께 ‘지역감정 조장 정치인 곤장 때리기 퍼포먼스’ 행사를 갖고 민국당 김광일(金光一)의원등 3명을 풍자한 인물에게 곤장을 쳤다. 아울러 9일에는 공천무효확인소송 및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낼 방침이다. 지난달 24일부터 거리서명운동을 통해 모집한 100명이 원고로 참가하며 모두40여개 지역구가 소송 대상이다. 한편 민주당 정호선(鄭鎬宣)의원은 이날 총선연대를 방문,“총선연대의 공천 반대 명단에 올라 낙천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총선연대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화해하겠다”고 밝혔다. 장택동 이랑기자 taecks@
  • 민국당 창당 3黨 반응

    8일 민국당 창당에 대해 기존 3당은 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이대변인단을 동원해 미리부터 ‘김빼기’작전에 나선 반면 자민련은 기대감을나타냈다. 민주당은 중간자적 입장을 취했다. □민주당 뒤늦게 낸 성명을 통해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신당 창당은 국민적 축복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면서 “그러나 민국당 창당에 대해 많은국민들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민국당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사천(私薦)과 돈공천파동을 태생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이를 거울삼아 민주적 정당구조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가일층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정대변인은 “민국당의 출현으로 이번 총선에서 지역주의가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을 극력 경계한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자민련이 야당을 선언하고 민국당이란신당이 생겨 야당을 분열시키는 것은 김대중(金大中)정권을 이롭게 해서 독재화와 장기집권 책략을 돕는 것”이라고 두 당을 싸잡아 비난했다. 이사철(李思哲)대변인은 “민국당 창당으로 야권분열 책동이 공식화되었다”면서 “민국당을 찍으면 민주당이 당선된다는 논리가 이번에도 통용될 것”이라고 ‘DJ 2중대론’을 거듭 주장했다.이어 조순(趙淳)대표에 대해서는“의자라고 생긴 것은 상여인지 꽃가마인지 구분 않고 탄다는 그가 이번에는강릉에서 종로,전국구로 이어지는 ‘갈짓자’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장광근(張光根)부대변인도 “민국당은 낙천자들과 지역분열 조장자들이 뒤범벅이 된 ‘낙지 비빔밥당’이라는 풍자가 시중에 돌고 있다”고 긁었다. □자민련 영남지역을 의식하면서도 성명의 톤은 낮췄다.이미영(李美瑛)부대변인은 “의회주의 발전을 위해 여러 다양한 정당이 출현하는 것은 바람직한일” 이라며 “민국당이 영남을 기반으로 한 지역정당임을 자임하는 것은 탓할 수 없겠으나 지역감정 조장을 유일의 선거전략으로 삼아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아울러 “지역감정을 치유해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을 이루는데 동참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문예진흥원 기획공모전‘이미지 미술관’

    미술관은 수많은 시각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모태일 뿐 아니라 미술문화를 이끄는 견인차다.그러나 미술관은 미술을 박제화하고 모호한 예술성으로 포장해 대중과의 거리를 멀게 한 혐의도 받는다.이런 이중적 속성을 지닌 미술관의 형태를 빌려 이미지 문제를 살피는 색다른 전시가 열린다. 문예진흥원이 기획공모전의 하나로 마련한 ‘이미지 미술관’전은 이미지와가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입체적 성격의 전시다.3월4일부터 14일까지 진흥원미술회관 전관에서 그 이미지 여행이 펼쳐진다.‘이미지 미술관’은 미술관의 기존형식을 패러디한 이미지로 재구성된다.거장 작품의 ‘포장된 현실’과 미술관의 거짓 권위에 분노하는 젊은 작가 10여명이 참여한다. 1전시실은 미술관 전시실 형태를 따른다.전시장에 들어서면 10m가량의 복도가 나타난다.복도 끝에는 10대의 모니터가 놓인다.그 모니터에서는 미술관의내부를 쫓는 영상이 전개된다. 그 영상이 뿜어내는 이미지는 현대미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박혜성은 초현실주의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 작품의 복사본과 그 작품을 현실의 공간으로 옮겨 패러디한 비디오작품을 선보인다.평면작품으로는 실제 이미지와 허위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수정의 유화 ‘흑백 눈’이 출품된다.또 홍지연은 모나리자 같은미술사 속의 인물들을 대량 생산되는 완구점 인형처럼 만들어 화석화 된 권위를 조롱한다. 2전시실은 미술관 부대시설과 상업시설로 꾸며진다.이 전시에서는 작품뿐 아니라 미술관 부대시설인 휴게실 등도 모두 이미지나 오브제로 구성된다.눈길을 끄는 작품은 멀티큐브를 이용한 김지현의 영상 ‘아트 미디어 홈 쇼핑’. 작품 판매를 넘어 작가의 영혼까지도 사고파는 물신주의 현실을 풍자한다.또김홍국은 명화의 이미지를 퍼즐로 만들어 관람객 참여를 유도하고, 양만기는미술관 수장고 형식을 빌린 작품을 내놓는다. 전시 첫날에는 100여명이 참여하는 ‘미술가 제복’이란 이름의 퍼포먼스도 펼친다.작품을 설명해주는 상냥한 도우미를 연출해 미술관 안내원의 경직된 태도와 대비시킨다는 의도다. 이미지 홍수의 시대,이번 전시는 특히 영상이미지의 범람이 가져올 인식론적인 불확실성을 경고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또한 작가들에게는 이미지 세계에서 미술가가 담당해야 할 몫이 무엇인가를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자리다. 김종면기자 jmkim@
  • 풍자극 2편 ‘정치의 계절’ 정치 코믹질타

    4월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 바람이 거센 가운데 우리 정치 현실을 곱씹어보게 하는 연극이 2편 내달 1일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극단 아리랑의 ‘기호0번 대한민국 김철식’(최일남 원작,방은미 연출)과 극단 작은신화의 ‘타르튀프?’(몰리에르 원작,반무섭 연출).‘기호0번…’이1940∼70년대 외곬수 정치인 김철식의 입을 빌려 요즘 선량들의 행태를 직접 꼬집는 반면 ‘타르튀프’는 중세시대 사기꾼 타르튀프의 권모술수를 통해위선적인 정치인 면모를 우회적으로 풍자한다. 4월30일까지 대학로 아리랑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기호0번…’은 작가 최일남의 소설 ‘숙부는 늑대’를 각색한 작품.주인공 김철식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4·19혁명까지 격동의 정치상황에서도 끝까지 세상에 타협하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살다간 ‘외로운 늑대’같은 인물이다. ‘애국청년단’을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치고,몽양 여운형의 암살범을 잡겠다고 무작정 상경하는가 하면,오로지 나라를 위해 몸뚱이 하나만 믿고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그의 행동은 얼핏 돈키호테처럼 보이지만 요즘 정치인에게서찾기 힘든 순수한 열정과 살아 있는 양심을 느끼게 한다. 세번 출마해 번번히 낙선한 그의 삶은 세속의 잣대로 보면 실패한 인생이지만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점이라고 극은 주장한다. 연출자 방은미는 “정의감과 사람 사랑이 넘쳐나는 김철식같은 인물이 이 시대에 필요한 참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를 통해 2000년대를 사는우리 모습도 함께 돌아봤으면 한다”고 말했다.‘오봉산 불지르다’에서 열연한 박철민이 김철식 역을 맡아 특유의 걸죽한 입담과 감칠맛나는 연기를선사한다.(02)741-5332. 대학로 혜화동1번지소극장에서 3월12일까지 공연하는 ‘타르튀프’는 종교적 위선자를 묘사한 17세기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의 걸작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했다.당대 최고의 사기꾼이자 바람둥이인 타르튀프가 위선과 허풍을이용해 맹신과 불신을 오가는 극단적 성격의 오르공집에 머물게 되면서 얘기는 시작된다. 타르튀프는 오르공의 눈을 피해 아내와 딸까지 유혹하고 마침내 재산까지 빼앗을 음모를 꾸민다.맹신에 눈이 먼 오르공과 그의 어머니는 아내와 딸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모르게 하는 죄는 죄가 아니다’라는 타르튀프의간계에 넘어간다. 극은 거짓 신자인 타르튀프의 위선보다 오히려 그에게 속아넘어간 경솔한 오르공과 그 가족에게 초점을 맞춘다.이는 드러난 위선보다 스스로 위선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벌이는 행위가 더 나쁠 수 있기 때문이다.사이비 정치인을 솎아내지 못하는 유권자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풍자한 셈이다. 작은신화가 ‘고전넘나들기 시리즈’두번째로 마련한 이번 작품은 시대와장소를 뛰어넘는 몰리에르의 ‘웃음의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02)902-2048. 이순녀기자 coral@
  • 뮤지컬 ‘지하철 1호선’ 1,000회 진기록

    연극계 최악의 불황이라는 요즘도 하루에 수십가지 작품이 오르내리는 대학로.내달 6일 이 거리에 의미 있는 기록이 하나 세워진다.극단 학전(대표 김민기)의 소극장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1,000회 공연을 맞는 것.지난 94년 5월14일 첫 공연이후 6년만에 달성하는 귀한 기록이다. 토요일인 지난 22일 낮 학전블루소극장에는 역대 출연배우 20여명이 모였다. 옛 멤버가 모두 참여하는 ‘1,000회 특별공연’을 위한 준비모임이었다.‘지하철 1호선’은 배우 11명이 역을 바꿔가며 80여 배역을 소화하는데,특별공연에서는 이들이 역을 하나씩 나눠가져 우정출연하게 된다.95∼96년 멤버인오지혜씨는 “연출자와 배우,스탭이 모두 가족같은 분위기여서 가장 기억에남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지하철 1호선’을 거쳐간 배우는 66명,라이브밴드 연주자는 20명에 달한다.아무리 스타배우라도 반드시 오디션을 보게 하는 연출자 김민기의고집스런 캐스팅과정 덕에 이 작품 출신 연기자들은 누구보다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는다.영화 ‘박하사탕’의 설경구(94,96∼98년)방은진(94·96년)이 그렇고,권형준 이정헌 장현성 이미옥 등 수많은 뮤지컬 배우들이 이 작품으로 명성을 쌓았다. 매년 내용을 다듬어 장기공연하는 동안 극장을 찾은 관객은 15만명.여러번본 고정관객도 상당수라는 ‘지하철 1호선’의 저력은 무엇일까.아무 사전지식없이 공연을 본 관객이라면 이 작품이 김민기의 창작극이 아니라 독일작품의 번안이라는 데 깜짝 놀란다.86년 독일 극단 그립스가 초연한 ‘Line1’을원작으로 한 이 작품 어디에서도 번안극 흔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 현실을 꿰뚫는 날카로운 주제의식과 이를 표현하는 양식이 우리정서에 가까이 닿아 있다.95년과 96년 ‘지하철 1호선’을 관람한 독일 원작자와 연출가도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라이브연주가 드물 때 5인조 밴드를 무대에 세워 생생한 록음악을 들려준 시도도 새로웠다. 지방 소도시 아가씨의 눈을 통해 본 베를린 풍경을 담은 원작은 ‘지하철 1호선’에서 서울에 온 연변처녀의 시선으로 바뀐다.사이비교주,가출소녀,강남 사모님 등 지하철 1호선 주변온갖 군상의 일상을 풍자와 해학으로 까발리는 한편에서는 윤락녀 혼혈아 외국노동자 등 사회에서 등떠밀린 사람들의어두운 그림자에도 애정어린 시선을 보낸다.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지하철 1호선’이 갖는 틀의 한계도 보인다.김민기씨는 “현재 작품은 90년대 것으로 정리하고 2000년대에는 새로운 내용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10년넘게 공연중인 독일에서도 지금까지 936회만을 기록해 이번 ‘지하철 1호선’1,000회 공연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폴커 루드비히(원작자)비르거 하이만(작곡자)토마스 아렌스(그립스극단 배우)등 공연 관계자와 ‘슈피겔’을 비롯한 독일 언론인이 독일문화원 초청으로 내한한다.학전측은 2월4∼6일 학전그린소극장에서 독일영화 ‘Line1’을 상영하고,2월말까지던 공연을 4월2일까지 연장키로 했다.(02)763-8233이순녀기자 coral@
  • 김홍신의원 판소리로 변론

    ‘아따,놀부가 조상이드냐 변학도가 성님이드냐/해학풍자 가래로 막고 트인입 찢어서 막고/바른말은 갓난애 손목 비틀듯하고…’ 98년 6·4지방선거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임창렬(林昌烈) 당시 경기지사 후보를 비방한 ‘공업용 미싱 발언’으로 기소된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홍신(金洪信) 피고인이 현대판 ‘판소리’로 자신의 최후변론을 대신했다. 21일 오후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金大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김피고인은 원고지 104장 분량의 최후진술문을 재판부에 제출,자신이 직접 쓴 ‘세상타령’이라는 판소리로 자신을 변론했다. 김피고인은 변론문에서 “당시 우리사회에 만연한 거짓풍토에 대해 해학적으로 비판했을 뿐 김 대통령이나 임 지사를 비방하려 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정치적 비판의 자유 보장의 선례를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386세대 초보부부 겨냥 1편 ‘배암그라’ 새달 출시

    암울한 시대상황을 반영했던 어두컴컴한 동굴,그 속에서 미스터 고·인·돌세 남자와 미스 오·육·팔 세 여인이 펼치는 기상천외한 사랑 얘기에 담긴해학과 풍자. 7·80년대 군부통치에 찌든 성인들의 탈출구 역할을 톡톡히 해 한 잡지에18년동안 830여회 연재라는 전무후무할 기록을 세웠던 박수동 화백의 만화 ‘고인돌’이 애니메이션 영화로 새롭게 태어난다. 서울애니메이션은 박재동 화백의 오돌또기와 공동기획으로 1편 ‘배암그라’를 2월에 내놓기 위해 마무리작업에 한창이다.3∼8분 분량의 에피소드 10편과 3편의 브리지로 구성되며 70분 분량.역시 20대 후반과 386세대 초보 부부를 겨냥하고 있다. 비디오보다 표현을 누그러뜨린 TV시리즈도 기획하고 있다. 오돌또기는 작화 부문의 터줏대감인 삼원동화와 함께 애니메이션 제작을 맡았다.오돌또기의 선명한 캐릭터 부각은 원작자인 박화백이 “내 작업보다 더 생동감 넘친다”며 감탄했다는 후문. 제작 총지휘를 맡은 오성윤PD는 97년 ‘돌리의 얼음별 대모험’ 등을 제작하며 쌓은 노하우를 이번에 마음껏 발휘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누들누드 역무원 K’편을 만든 경험이 있는 애니메이션 감독 이춘백은 다양한 표정연기와 애니메이션의 액션 표현력을 높이겠다고 각오가 대단하다. 주제음악은 엉뚱한 퍼포먼스로 유명한 황신혜밴드가 작사 작곡한 ‘으랏차차고인돌’로 정했다. ‘황밴드’는 김정구부터 H.O.T까지 배꼽잡는 테크노 뽕짝과 힙합스타일의 고인돌 랩은 물론 다양하고 재미있는 효과음을 사용해 극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 99정치권… 말말말

    99년 정치권을 맴돈 말은 정쟁(政爭)과 혼돈의 자화상을 담고 있다.독설과험담이 꼬리를 물었고,속내를 감춘 풍자와 은유가 난무했다.지난 한해 ‘말의 정치’를 결산한다. [대치정국] 정국현안을 둘러싼 여야간 설전(舌戰)은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원색적 성토와 인신공격 속에 설화(舌禍)가 이어졌다. 연초 국회 529호사건으로 한나라당이 “배째라식 투쟁”(權哲賢의원)을 외치자 국민회의는 한나라당측이 529호실을 망치로 부수고 들어간 것을 빗대어 “망치국회가 대화정치를 실종시켰다”(鄭均桓의원)고 맞섰다. 정부 여당의 정책혼선이 이어지자 한나라당 김진재(金鎭載)의원은 “현 정권은 초보에 무면허 음주운전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이회창(李會昌)총재도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처럼 ‘국민의 정부’에는 국민이 없다는 말이있다”고 가세했다. 여당은 야당의 방탄국회를 빗대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히트쳤지만 ‘서상목 구하기’는 관중이 넌더리내는 실패작”(국민회의鄭東泳 당시 대변인)이라고 공박했다. 한나라당이 영남권 등 장외집회를 계속하자 국민회의 이영일(李榮一)대변인은 “상습적 가출벽을 버려라.나라는 죽고 고향만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여야간 신경전은 ‘빨치산 발언’으로 곪아 터졌다.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11월 부산집회에서 “현 정권의 덮어 씌우기는 전형적인 빨치산 수법”이라고 발언한 것은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정치행태를 드러낸대표적 사례다. 대통령이나 현 정권을 직접 겨냥한 발언도 쏟아졌다.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는 “고(故)제정구(諸廷坵)의원은 ‘DJ암’에 걸려 세상을 뜬 것”이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내각제와 양당 합당] 김종필(金鍾泌)총리는 연초 “김 대통령과는 척하면 30척”이라며 내각제 논의에 불을 지폈으나 “타협은 패배가 아니다”고 해명하는 것으로 연내 개헌론에 종지부를 찍었다.자민련 김용환(金龍煥)의원은“장수가 도망쳤으니 누가 성(城·내각제)을 지키랴”며 한탄했고 한나라당김철(金哲)의원은 “DJ의 습관적 위약(違約)과 JP의 습관적 미수가 빚어낸참사”라고 폄하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론은 “여자친구와 손목잡고 키스하다 마음이 맞으면 결혼하는 것 아니냐”(국민회의 李萬燮총재대행)는 말에서 보듯 한때현실화될 조짐을 보였다.그러나 “러시아 군대가 체첸공화국을 유린하고 있다”(자민련 姜昌熙의원)며 자민련 내 반대세력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김 총리는 “대통령과 합당의 ‘ㅎ’자도 꺼낸 적이 없다”며 합당 거부를 선언했다. 한나라당 장광근(張光根)부대변인은 “자민련의 처지는 보쌈돼 갈 날만 기다리는 과부 신세”라고 양당간 신경전을 부채질했다. [전직대통령 설전] 지난 한해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은 현 정권을 원색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지난 4월 부산·경남 방문 당시 “김대중씨는 독재자”라고 주장한 김 전 대통령은 27일 전직대통령의 연말 만찬초청에도 “독재자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참석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거부했다.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이 지난 2월 “전직 대통령이 주막집 강아지식으로하면 안된다”고 김 전 대통령의 언행을 공격하자 김 전 대통령측은 “전씨는 골목강아지”라고 맞불을 놓았다.급기야 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도 “(YS에게 정권을 넘겨준) 나는 색맹환자”라고 전직 대통령간 말싸움에 뛰어들었다. [각종 청문회] 환란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선 강경식(姜慶植)전 부총리는 “불끄러 들어간 소방수를 방화범으로 몰 수 있느냐”며 정책결정상의 오류는 단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항변했다.진형구(秦炯九)전 대검부장의 폭탄주 실언으로 김태정(金泰政)전 법무장관이 경질되자 파업유도청문회에는 “진형구는 논개”라는 말이 나돌았다.진 전 부장은 “맥주가 약해서 양주를 타서 마셨다”며 나름대로 폭탄주론을 피력했다. “비올 때는 우산을 써라”(裵貞淑씨)는 말로 불거진 옷로비청문회는 “미안합니다,제가 몸이 아파서…”(延貞姬씨)라는 유행어를 남겼다.‘김봉남’(앙드레 김의 본명)이라는 이름 석자도 화제가 됐다.한나라당 김용수(金龍洙)부대변인은 “현 정권은 고위층 마나님들이 운명을 쥔 안방공화국”이라고논평했다. [기타] 정치권에 신진 인사를 기용하려는 여권 구상이 알려지면서 한동안 ‘젊은 피’가 화두가 됐다.자민련 김용환(金龍煥)의원은 “늙은 피는 안전하지만 젊은 피는 에이즈에 감염될 우려가 있다”며 검증 논쟁에 불을 붙였다. 한나라당 장광근 부대변인은 “젊은 피를 수혈하기 전에 혈액형 검사부터 해야 한다”며 정체성 시비를 불렀다. 서경원(徐敬元)전 의원은 ‘DJ의 1만달러 수수’ 재수사 도중 “북한에서받은 돈은 공작금이 아닌 통일운동자금”이라고 말해 정가를 긴장시켰다. 후반기에는 국민회의 국창근(鞠^^根)의원이 한나라당 김영선(金映宣)의원에게 “싸가지 없는 X”이라고 폭언을 퍼붓었다가 설화를 톡톡히 치렀다. 박찬구기자 ckpark@
  • [연극 리뷰] ‘여우와 사랑을’

    네온 불빛 휘황한 대학로 번화가 중심에 섬처럼 웅크리고 있는 극단 목화의아룽구지소극장.요즘 이곳에는 우리 땅에서 사라진 ‘여우’를 만나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지난 5월 극단 목화가 이곳에 둥지를 튼 기념으로 시작한 ‘오태석연극제2’의 마지막 작품 ‘여우와 사랑을’(오태석 작·연출)의 관객들이다. 서울에서 돈벌어 고향인 용정에 아담한 불고기 집을 차리는 게 소원인 연변처녀들.이들은 ‘책임자 오라버니’인 사기꾼 서경수가 시키는대로 ‘윤동주사상 실천 선양회’를 사칭해 돈벌이에 나선다. 극악스런 서울살이의 규범을그대로 따르기로 한 이들은 백화점 수입 재고품 판매상술에 합세하고, 한국에서 멸종된 여우를 발견하는 이에게 500만원을 준다는 뉴스에 만주산 여우를 수입해 팔아넘길 계획을 짠다.그러나 수입동물 거래처인 사모님이 갑작스레 살해되고 체류기간 만기일이 다가오자 급기야 장기매매업자로까지 나서게된다. 극은 동포애를 믿고 조국을 찾은 연변처녀들의 힘겹고 슬픈 서울살이를 통해물신주의와 부패, 무의식적환경파괴에 빠져든 황폐한 우리 사회를 통렬히풍자한다.수입품을 더 팔아먹기위해 ‘국산품 애용행사’를 악용하는 악덕기업,2천500만원짜리 애완견을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모님,귀순용사와 연변동포에 냉담한 사회,여우가 살 수 없을 정도로 파헤쳐진 자연환경 등은 제3자인 이들의 눈과 입을 통해 섬뜩할 만큼 객관적으로 형상화된다. 주제는 무겁지만 객석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오태석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생략과 비약,기상천외한 연극적 유희들이 질펀하게 어우러져 좀체 생각할 짬을 주지 않는다.96년 예술의전당 공연당시 조상건 정진각 정원중 등 목화의 고참 연기자들이 능수능란하게 해냈던 배역을 물려받은 젊은 배우들의연기도 생동감 넘치게 무대를 채운다.마지막 장면에서 연변처녀들은 우여곡절끝에 서울에 도착한 만주산 여우를 세관원 몰래 야산에 풀어놓는다.오태석은 20세기가 가기전 한국의 산에서 멸종된 여우처럼 어느샌가 까마득히 사라질지 모르는 따뜻한 인간미와 정서의 회복을 되새기고 싶었던 모양이다.2000년1월30일까지.(02)745-3966. 이순녀기자 coral@
  • “애들은 안돼!”성인만화 웹진 등장

    인터넷에 성인만화를 연재하는 새로운 형태의 만화전문 웹진이 탄생했다. 학산문화사와 나우누리가 지난 10일부터 운영 중인 ‘코믹콜’(http:///anhwa.nownuri.net/comicall)은 19세 미만 접속불가를 선언한 성인 전용 사이트.나우누리 가입자에게만 문이 열린다. 성인만의 열린 성 담론과 IMF시대를 살아가는 애환,촌철살인의 패러디와 풍자 등을 버무려 성인만화의 새 장을 열어간다는 계획이다. 참여 작가와 작품들은 국내 성인만화의 간판스타로 지목받는 한희작이 평범한 오피스걸을 주인공으로 질펀한 성농담을 늘어놓는 ‘어허머나’를 비롯,배금택의 ‘패설 2001’,단란주점 삐끼들의 세기말 서울살이를 그린 김민기와 황재모의 ‘EDPS’ 등이다. 또 성풍자 해학극인 이로마의 ‘방강쇠 타령’,이재석의 ‘사건과 실화’,김종한이 세계명작 동화와 소설을 통렬하게 뒤집어보는 내용의 ‘텍사스’,남자 미용실 보조원의 청춘도전기인 홍용하의 ‘헤어누드’ 등이 연재된다. 또 6개월이내 주간으로 전환할 계획이며 분량이 쌓이면 서점 판매용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이어서 ‘인터넷 연재-단행본 출간’이라는 새로운 출판 형태를 선보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나우누리는 이외에도 만화전문 사이트 ‘우심만보’(우리 심심한데 만화나 볼까·http:///anhwa.nownuri.net)도 함께 선보이는데 이 사이트에는 이미 출간된 출판 만화를 모아 놓은 ‘블루존’,만 19세 이상 성인만을 대상으로 한 ‘레드존’,신인작가 발굴 코너인 ‘화이트존’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레드존은 고덴샤와 가이낙스 등 일본 메이저 출판사의 만화도 내년 상반기부터 소개할 계획이다.우심만보는 누구에게나 문이 활짝 열려 있으며 하루 1,000∼1,500원이면 이용할 수 있다.
  • 1999년 12월 화두는 ‘세기말’이냐 ‘해피 엔드’냐

    20세기의 끝자락,두 편의 한국영화가 겨울 극장가를 이끈다.12월 극장가의이슈는 단연 11일 동시에 개봉되는 ‘세기말’(감독 송능한)과 ‘해피 엔드’(감독 정지우).‘세기말’이 1999년 서울 하늘 아래서 방황하는 인간군상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만화경 같은 영화라면,‘해피 엔드’는 치정에얽힌 삼각관계 속에서 서로 다른 해피 엔드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풍의 멜로다. ‘세기말’은 ‘모라토리엄(지불 불능상태)’‘무도덕’‘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Y2K’ 등 네 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첫째 장에선 생계를 위해마음에도 없는 멜로드라마를 써야 하는 시나리오 작가 두섭(김갑수)의 자괴감을,둘째 장에선 천민 부르주아 천(이호재)과 자포자기적인 쾌락에 빠진 여대생 소령(이재은)의 원조교제를 그린다.셋째 장은 극단적인 허무주의자인대학강사 상우(차승원)가 자신이 그토록 저주하던 속물적 삶에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마지막 장은 시나리오 작가가 다시 등장해 세기말의 혼돈 대신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난다. 데뷔작 ‘넘버3’를 통해 한국 사회 저변의 삼류정신을 신랄하게 풍자했던 송능한 감독(40)은 이 영화에선 세기말을 화두로 위트 넘치는 독설의 미학을펼친다.“아줌마들은 20세기의 마지막 천민”이라고 몰아 세우는가하면,불륜의 사랑을 ‘에로틱한 우정’이라 강변하기도 한다.미국 감독 로버트 알트먼의 시나리오 작법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송감독은 한 인물의 행동을 좇기 보다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주제에 접근해간다. ‘세기말’에는 각 장마다 10여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로 하여금 각자 별도 지도도 길도 없는 시대, 시계(視界)제로의 암울한 현실을 이야기하도록 한다.그 세기말의 풍경이 아무리 우울해도 감독은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사는 게 다 상처”라고 생각하는 자기과시형 속물 상우도 결국 “모든 걸 잃었지만 내 삶은 무거워졌다”고 고백한다.“집을 두채 가진 자 성을 잃고 두 여자를 가진 자 영혼을 잃는다”는 프랑스 속담처럼‘세기말’의상우는 불륜의 죄값으로 정신적인 죽음을 맞는다. 영화‘해피 엔드’는 여기서한걸음 나아가 불륜이 육신의 죽음까지 부르는치정극의 양상을 띤다. 실직 가장 민기(최민식)는 자식과 아내에 충실한 이시대의 평균적인 남편이다.그는 남편 대신 돈을 벌어 오는 어린이 영어학원원장인 아내 보라(전도연)의 구박을 견디며 나른한 일상을 꾸려간다.그러던어느날 아내가 대학동창인 일범(주진모)과 나누는 질펀한 사랑을 감지한다. 세 사람의 관계는 애정과 집착,살의로 뒤엉키고 이내 파국으로 치닫는다.오쟁이진 남편은 마침내 불나방 같은 아내를 잔인하게 죽임으로써 주체할 길없는 분노를 삭인다.‘해피 엔드’는 불륜에 대해 어떤 경계선을 긋거나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려 하지 않는다.가부장적 질서가 흔들리고,남녀 성역할의구분이 모호해지고, 실업으로 인한 가족의 해체가 진행되고 있는 여기, 우리시대의 자화상을 불륜의 사회학을 통해 보여줄 뿐이다. ‘해피 엔드’는 정지우 감독(31)의 16㎜단편 ‘생강’처럼 배우 중심의 영화다.그런 만큼 배우의 연기력이 중요하다.‘해피 엔드’는 그런 점에서 일단 ‘성공’이다.날 것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전도연의 농염한 정사연기는 특히 섹스신의 전범으로 꼽힐 만하다.영화 ‘내 마음의 풍금’의 수줍은 처녀 홍연에서 벌거벗은 욕망에 몸을 맡기는 불륜주부 보라로 변신한 전도연은 이제 나름의 연기관을 논해도 좋을 만큼 여물었다. 김종면기자 jmkim@
  • [20세기 문명기행] 10. 이념에서 공동체로

    이념의 세기(世紀)가 저물고 있다.지난 100년 동안 지구촌은 좌우 이념투쟁의 발흥과 조락(凋落)을 응시하며 한세기의 끄트머리까지 달려왔다. 이념적 양극주의의 빈자리에는 민족과 자본,정치적 다원주의 등이 잽싸게들어 앉고 있다.21세기의 여명(黎明)이 다양한 질서의 혼재를 잉태하고 있는 셈이다. ■이념에서 생존으로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석학(碩學)인 움베르토 에코는 “21세기를 앞두고 지구상의 50억 인구가 50억개의 이데올로기적인 여과장치를 갖게 됐다”며 세기말 지구촌의 실상을 풍자했다.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트로츠키가 “만약 태양이 부르조아만을 위해서 타는 것이라면 태양을 꺼버리겠다”고 호언한 점을 상기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20세기가 좌·우대립을 구심력 삼아 굴러간 ‘이념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다양한 공동체의 원심력이 쉴새 없이 작동하는 ‘생존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생존의 논리는 이미 세기말 지구촌 곳곳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화두(話頭)가 민족이다.억압받던 민족들이 옛 소련과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래 전 일이 아니다.캐나다,우크라이나,영연방 등도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과거 민속학의 용어로만 통하던 작은 민족들이 정치적 담화에서 중요한 용어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스페인계 역사학자 페르난데스 아메스토는 “세기의 길목에서 항상 더 큰 연방속으로 끌어들이는 괴물의 정치가 작은 실체들을 배가시키는아메바의 정치와 공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지역제일주의,자주독립주의,미니 민족주의를 담론으로 삼는 ‘민족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21세기 국제질서의 다양성은 문명사회 주도권 이동방식의 변천도 예고한다. 20세기까지 세계 문명의 주도권은 중국에서 지중해로,다시 유럽에서 대서양을 거쳐 태평양까지 옮기는 등 지역간 이동의 속성이 짙었다.그러나 역사학자들은 “미래의 주도권은 세계적인 엘리트나 수백만 개의 변복조(變複調)모뎀을 통해 특정지역을 벗어나 세계 문화를 만들어내는 몇몇 대가의 손으로넘어갈 지도 모른다”고 내다본다. 20세기의 패러다임이 좌우의 양날개에서 시소게임을 하던 이차방정식이었다면 다음 세기 공동체의 생존 해법은 다양한 변수가 혼재한 고차방정식에 숨어 있다는 분석이다. ■대안의 모색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몰락 직후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본주의의 승리”라며 ‘역사의 종언(終焉)’을 선언했다.그러나 공산주의의 붕괴가 더욱 활발한 정치철학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독일의 철학자 카를 오토 아펠이 이념대립을 초월한 지구촌에 다양한 사회적기구와 회의,국제기구를 통한 합리적 담론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도같은 맥락이다. 시장주의 경제에 의한 질서의 재편도 지구촌의 경계선을 구획할 주요 기준이다.과거 공산주의 진영에 속했던 헝가리 폴란드 체코의 ‘중부 유럽 모델’이 한 사례다.이들은 지난 10년 동안 민주주의 제도를 정상궤도에 올려 놓으면서 경제의 사유화,증권시장 도입,세계 금융시장 편입을 차례로 마쳤다. 북대서양조약기구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 가입까지 앞두고 있다. 유럽에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혼합한 ‘제3의 길’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주목된다. 한반도는 어떤가.고려대 임혁백(任爀伯)교수의 제안에서 대안의 단초를 얻을 수 있다.그는 “새로운 세기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다원적 민주주의,역동적 시장경제,창조적 지식정보국가,협력적 공동체사회,아시아 중추국가 등의 비전을 구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지속적 경제개혁과 평화적 민족통합,문화적 다원주의 등이 구체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찬구기자 ckpark@ * 냉전종식후 민족·종교분쟁 표면화 동서 냉전의 종식은 그동안 재 속에 파묻혀 있던 민족간 분쟁·갈등의 불씨를 지구촌 곳곳에서 타오르게 했다.보스니아,체첸,코소보,쿠르드,동티모로,르완다 사태 등이 20세기 마지막 문턱에서 전세계의 관심을 끈 대표적인 민족 분쟁들이다. 94년 4월 소수민족인 후투족 출신의 부룬디 대통령의 비행기 폭발사고로 촉발된 르완다 사태는 불과 3개월 동안 750만명의 인구 가운데 100만명이 사망하는 보복극이 이어졌다. 4,000여년 동안 국가없이 떠돌던 ‘중동의 집시’ 쿠르드족 문제도 20세기의 화약고다.쿠르드족은 74년 압둘라 오잘란을 중심으로 쿠르드노동당(PKK)을 결성,치열한 반(反)터키 독립투쟁을 벌였다.84년 이후 본격 무장투쟁을전개,3만명 이상의 희생자와 30만명의 난민이 발생해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다.쿠르드인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아직 독립국가 건설 전망은 그리 밝지않다. 냉전 종식과 소련의 해체는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사태로 상징되는 ‘발칸의 비극’을 낳았다.보스니아 사태는 유고연방 해체와 이에따른 이슬람·크로아티계 연합세력-세르비아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3년 8개월동안 20만명의 희생자를 냈다. 이어 98년 2월 알바니아계 강경파인 코소보 해방군(KLA)의 본격적인 무장독립투쟁으로 시작된 코소보 사태도 세르비야계의 알바니아계에 대한 ‘인종청소’로 번지면서 급기야 미국과 나토의 개입으로 번지는 ‘국제전’의 양상으로 번졌다. 체첸사태는 소련 연방 해체에 따른 산물이다.스탈린의 중앙집권화를 부르짖으며 강제이주 정책을 단행,민족 분쟁의 불씨를 키워나갔다.94년 발생한 체첸사태는 현재까지 3만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여전히 ‘진행형’이다. 23년간 인도네시아 압제에 신음했던 동티모르의 독립투쟁도 70만명 인구 가운데 20만명이 학살된 인류사의 재앙이었다.최근 유엔평화군의 개입으로 동티모르의 독립이 가시화되었다. 이외에도 필리핀의 모로족,스페인의 바스크족,중국의 티벳족 등 열거하기어려울 정도의 많은 종족·민족·종교 분쟁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여,21세기 지구촌의 화해와 통합의 물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오일만기자 oilman@
  • 시사풍자 사이버 캐릭터‘나잘난 박사’서울대서 강연

    SBS-TV에서 시사풍자 앵커로 활동중인 가상인물(애니메이션 캐릭터) 경제학박사‘나잘난’씨가 서울대에서 강연회를 갖는다. 서울대 공과대 전기공학부와 컴퓨터공학과는 30일 “나잘난 박사를 초청,오는 2일 오후 5시 신공학관 108호실에서 50분 동안 ‘사이버 캐릭터 산업과 21세기 전망’을 주제로 사이버 강연회를 갖는다”고 밝혔다. 강의는 컴퓨터와 연결된 대형 투사기(빔 프로젝터)에 나잘난 박사의 모습을 투사시켜 실시간으로 움직이게 하면서 성우의 목소리를 곁들이는 방식으로약 5분간 진행된다.나잘난 박사는 ‘모션 캡처(동작정보 생성기술)’라는 특수장비로 성우의 몸과 연결돼 성우의 움직임과 똑같은 몸짓을 하게 된다.나잘난 박사는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등 간단한 토론도 하게 된다. 나머지 45분 동안에는 나잘난 박사를 만든 ㈜오콘 김일호(金一鎬·31)사장이 가상현실 구현기술과 모션캡쳐 기술,3차원 캐릭터 애니메이션 기술 등을소개하고 21세기 캐릭터 산업의 전망에 대해 설명한다. 전영우기자 ywchun@
  • 마크 트웨인 톰소여시리즈 마지막편 국내 첫 출간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그가 ‘톰 소여의 모험’으로 대성공을 거둠으로서,‘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썼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그런데 완결편에 해당하는 ‘톰 소여 해외로가다’라는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 ‘톰 소여 해외로 가다’가 ‘톰 소여의 아프리카 모험’(문학세계사)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는 최인자가 번역한 것으로,국내에서는 첫 출간이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도 발표 당시에는 그리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고 한다.트웨인이 경영하던 ‘웹스터&컴퍼니’출판사가 1894년 4월18일 이 책을 펴냈으나,바로 같은 날 출판사가 파산했기 때문이다. 당초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속편으로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영국·독일 등을 배경으로 작품을 쓰려고 했다.그러나 ‘톰소여 해외로 가다’는 ‘아프리카편’이 시작이자 끝이 됐다.국내에서 ‘톰소여의 아프리카 모험’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일리는 있는 셈이다. ‘톰 소여…’가 작은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였다면 ‘허클베리 핀…’은 미시시피강을 따라 좀 더 넓은 미국남부를 배경으로 했다.‘…아프리카 모험’에 이르면 무대는 열기구를 타고 날아간 사하라사막으로 넓혀진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톰과 허클베리 핀은 더더욱 풍자적이고 익살스러움으로미지의 세계에 대해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고,검둥이 짐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솔직하고 꾸밈없는 시선으로 위선과 거짓을 꼬집는다. 서동철기자
  • ‘신문만평만화의 바람직한 방향’ 세미나

    “편집국의 간섭 뿐만이 아니라 자기검열로부터도 벗어나야 합니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지역감정을 일으키는 만평작가들을 퇴출합시다” 전국 일간지 시사만평만화가들이 지난 19∼20일 대전 유성 홍인호텔에서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언론개혁시민연대가 마련한 ‘신문만평만화의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토론회에서 이들은 스스로를 비판하는 등 격의없이 의견을나눴다. 발제에 나선 손상익 한국만화문화연구원장은 “대부분의 만평작가들이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과중한 업무로부터 벗어나 여유있는 창작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김종배 ‘미디어오늘’ 편집부장은 “우리 시사만평만화는 단순화를 뛰어넘은 평이함과 무리한 연결,정치집착적과장,빈곤한 표정묘사 등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시사만화에 대한 언론계의 깊이있는 대처방안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벌어진 토론에서 강원대 전규찬(신방과) 교수는 “시사만평만화가 단시 풍자물로만 전락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작가로서 균형성을 잃지 않고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세종대 한창완(영상만화학과) 교수는 “대중문화의 다양성을 고려해 신세대적 실험정신을 갖춘 시사만평작가들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각 지방을 대표해 참석한 시사만평만화가들도 목소리를 높였다.전남매일신문 정광숙 화백은 “호남지역의 화백으로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 “특히 지방의 만평작가들은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도록 개인역량을키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매일신문(대구소재) 김경수 화백은 “지역정서를 항상 느껴야 하는 상황에서 중심잡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면서 “만평작가들에 대한 모니터팀과 독자들의 끊임없는 지적이 있어야 한다”라고말했다. 전남일보 오금택 화백은 “언론이 보수적이고 자사이기주의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만평만 바뀐다는 것은 무리”라면서 “언론개혁이 선행되어야 만평의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대한매일 백무현 화백은 “왜곡된 만평과 만평작가에 대해 노동조합,언론단체 등에서 강하게 항의하고 비판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권미혁 간사는 “대부분의 시사만평만화에서 여성은 부정적이고 주변적인 인물로 묘사된다”면서 “여성들의 정치참여 등활동적이고 긍정적인 모습들이 실려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김삼웅 칼럼] 이 나라가 뉘 나라인데

    두 시골 선비가 현의 성문 앞에 와서‘신명정(申明亭)’의 ‘신(申)’자를보았다.한 사람이 말했다.“유(由)자다”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갑(甲)자다”그러자 옆 사람 하나가 말했다.“자네는 머리 하나를 더 달았고, 저 이는 다리 하나를 더 달았다.보아 하니 역시 전(田)자다.” 부분만을 보고 자기만이 옳다고 고집 부리는 것을 풍자한 ‘정선아소(精選雅笑)’에 나온 이야기다.우리 국정조사와 청문회 꼴이다. 뭇 동물이 근심과 절망감에서 회의를 마치고 퇴장하려는 순간에 가장자리에서 아주 명랑한 어조로 “저는 아무 걱정이 없어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모두들 놀라 돌아보니 하루살이였다.내일이면 지구의 종말이라는 소식에 대책회의가 열린 마당에서 일어난 소극으로 요즘 학생들 사이에 나도는 ‘썰렁한’이야기다.‘내일’을 모르는 우리 하루살이 정치인들을 풍자한다. 옛날 제나라 환공이 들에 유람을 나갔는데,망한 나라의 옛 성터인 곽국(郭國)의 폐허를 보고 촌부에게 물었다.“이곳은 곽국의 폐허입니다”환공이 말했다.“곽국의 성이 어찌하여 폐허가 되었는가?”촌부가 말했다.“곽국은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했기 때문입니다”환공이 물었다.“선을 좋아하고악을 미워하는 것은 잘한 일인데, 그것 때문에 폐허가 되었다니 무슨 말인가?”촌부가 답했다.“선을 좋아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악을 미워했으나 제거하지 못했습니다.그런 까닭에 폐허가 된 것입니다.” ‘신서(新書):잡사’의 ‘곽국의 성터(郭國之墟)’에 나온 고 사다. “선을 좋아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악을 미워했으나 제거하지 못했다”는 대목이 정곡을 찌른다. 바다에 오적(烏賊)이라는 고기가 있다. 이놈은 먹물을 뿜고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데,남이 자기를 볼까 걱정하여 먹물을 뿜어 자기를 숨겼다. 바닷새가 이를 보고는 이상하게 여기다 그 안에 고기가 숨어 있음을 알아 채고는 고기를 잡아 냈다.아, 아! 헛되이 몸을 숨겨 안전을 구할 줄 알았지만, 흔적을 없애 의심받지 않게 할줄은 몰랐던 고로 들키고 말았다. 오적어설(烏賊魚說)’에 나오는 우화다.옷사건,파업유도사건,정형근의원 폭로사건,서경원 전의원 고문사건,DJ 1만달러 수수 조작사건 등을 지켜보면서‘인간 오적 물고기’들을 생각한다. 하루살이에게 얼음이야기를 하지말고, 우물 안 개구리에게 산불 이야기를하지말라 했다.‘갈대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자 (葦管窺天)’와는 더불어 담론하지 말라 일렀다.옛 선사(禪師)의 게송(偈頌) 한 토막. 不知明日之鷄 但知今日之卵 내일의 닭을 모르고 오늘 달걀만 아는가. 솔개가 참새를 쫓자 참새가 스님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그러자 스님은 손으로 참새를 쥐고 말했다.“아미타불, 내 오늘 고기 한덩어리 먹게 되었구나. ”참새는 눈을 감고 꼼짝하지 않았다. 스님은 참새가 죽은 줄 알고 손을 폈고 참새는 즉시 날라갔다.그러자 스님은 말했다.“아미타불,내 오늘 너를 방생했노라.” 간지와 교활과 언어의 유희를 통해 양비론을 펴는 이성(理性)의 약탈자들,소잡아 먹는 권력에는 침묵·방조하고 계란 깨뜨리는 권력에는 이성을 잃은지식인들의 양면성을 고발하는 우화다. 어떤 사람이 큰 기러기가 하늘에서 나는 것을 보고 활을 당겨 쏘려고 하다가 말했다.“잡으면 삶아 먹어야지” 그 아우가 다투어 말했다.“고기는 삶아 먹는 것이 마땅하나 날아다니는 기러기는 구워먹는 것이 마땅해요”형제는 다툼을 그치지 않다가 고을 수령을 찾아가서 판정을 청했다.수령 왈 “기러기를 반으로 갈라 각각 굽고 삶으라”고 했다. 잠시후 기러기를 찾으니 이미 하늘 높이 멀리 날아갔다. 〔'응해록(應諧錄)'〕 여야의 진흙밭싸움,특검의 내분,정치인들의 ‘아니면 말고’식의 끝없는 폭로, 표류하는 국회,‘기러기’는 저만치 날아가는 데 끝모르는 쟁론으로 20세기를 보내는가.“이 나라가 뉘 나라인데.” 주필
  • 이문구 자전적 단편 ‘소리나는 쪽으로 ‘

    70∼80년대 민주화 운동에 관한 한 소설가 이문구는 문단의 ‘대표선수’에해당한다. 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를 만들어 간사를 맡았다.84년 창간한 ‘실천문학’은 자실의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그는 89년까지 이 계간지를 이끌었다. 그가 그 시기 자신의 모습을 회고한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보다’는 글을썼다. 그의 대표 중단편을 모은 ‘관촌수필’(나남출판)의 서문을 대신한 것이다.분량은 거의 단편소설에 가깝다.‘작가수업에서 민주화 시대까지’라는부제를 단 이 글은 나아가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내용도 문학평론가 김인환의 지적처럼 ‘의도적인 풍자와 해학을 삽입하고인물의 행동을 상식 이하의 어리석은 짓으로 묘사하여 인물을 골계화함으로서 미적 거리를 유지하는’ 이문구 문학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1987년 6월10일,위궤양을 앓고 있던 그는 공복의 통증이 견딜 수 없어,최루탄이 턱밑에서 터지는 데도 지하도의 간이음식점으로내려가 김밥을 샀다. 결국 ‘수만 군중속에서스티로폼 도시락을 들고 김밥을 먹고 돌아다니는 놈은,실천문학사 발행인 하나 뿐’이었다는 것이다. 한번은 한 작가의 장남이 월간지에 취직하여 ‘통일염원 40년’이라는 원고를 청탁했다.“바쁜신 줄 알지만…”이라는 간곡한 요청에도 “바빠서가 아니구,여태 통일을 염원해본 적이 한번두 없어서 그려는겨.통일이 되면 좋겠다는 거지,통일을 염원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거여”라며 “필자를 바꾸면 되잖여”라고 일갈했다는 것이다. 그는 1988년 신문의 사회면에서 자신의 이름이 이른바 운동권의 명망가들과나란히 들어있는 것을 보고, 남의 이름에 곁다리가 되지않도록 돌보자고 다짐했다고 한다.자신의 이름이 왜 문화면에 오르내리지 못하고,사회면 귀퉁이에 구색용으로 들어있는지 가슴이 메이더라는 얘기다. 그는 이처럼 “매사에 뒷걸음치기에나 부지런하던 겁쟁이가,징그러운 박씨유신시대에 감히 문인들과 꾸민 투쟁단체에서 별스럽지않은 일거리나마 맡아할 수 있었던 것은,문단의 선후배들의 애정과 그들의 불같은 정의감 덕분”이라면서도 “그러나 생리적 이유도 없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누구라도 청각장애자가 아니라면 소리나는 쪽을 돌아보게 마련인데,하물며 들리는 소리의 태반이 비명,신음,한숨이었던 어둠의 시대에는 자신도 남들처럼소리나는 쪽을 먼저 돌아보는 생리구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동철기자
  • 아이 눈높이로 본 아이들 세상/시인 권영상·박예자씨 동시집

    아이들이 동시를 잊고 있다.대중가요에 익숙해진 탓에 동시나 동요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현직 교사와 전직 교사로 아이들의 심리를 잘 알고있는 권영상시인과 박예자씨는 동시·동요를 이같은 아이들에게 ‘되돌려 주기’위해 두 권의 시집을 펴냈다.권시인의 ‘월화수목금토일별요일’(김성옥 그림,재미마주)과 박예자시인의 ‘혼날까봐 쓴 일기’(이한중그림,아동문예).아이들의 눈높이에맞춘 시집이어서 눈길을 끈다. 착한 아이가 되라고 강조하기 보다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피터팬처럼 훨훨날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꿈을 살려준다.학교가기 싫은 아이,수업시간에 다른상상만 하는 아이 등과 함께 엉뚱한 어른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또 일기쓰기 싫어하는 보통아이들의 심정을 대변하기도 한다. 권시인이 쓴 시 ‘말로만’은 어른들을 풍자하고 아이의 스트레스를 풀어준다.이 시에서 선생님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해요/나는 여러분의 말을다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어요’라고 말한다.‘순진하게’ 이 말을 믿고 어린 학생이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자 그 선생님은 ‘그깟 일로 선생님을 찾아와!/그깟 일로 조퇴를 해!/돌아가 공부나 하렴’이라고 꾸중을 내린다. 박씨의 ‘혼날까봐 쓴 일기’에 들어있는 ‘장호의 일기’는 ‘은행잎 한잎 떨어진다/단풍잎 한 잎 떨어진다/은행잎이 두 잎 떨어진다/단풍잎이 두잎 떨어진다’고 날마다 무성의하게 일기를 쓰는 아이에게 ‘야! 장호야,넌참 좋겠다.가을이 다 갈 때까지 일기 쓸 걱정없겠다’고 선생님이 부드럽게타이른다.아이들의 일기쓰기 싫어하는 마음을 읽어내고,교사와 어린이의 공감대를 형성시켜 준다. 권시인은 “아이들이 동시를 외면하는 것이 안타까워 ‘아이의 눈높이’에서 시를 쓰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이 시집들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아이들의 숨통을 틔우는 역할은 충분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 허남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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