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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2)안의현감(安義縣監) 연암 박지원의 행정론

    경남 함양군 안의면 안의초등학교 교정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비석 하나가 서 있다.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 선생에 관한 역사와 선생께서 활동하셨던 18세기 영조 정조시대의 조선 지성사와 사회사의 한 단면까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사적비(事蹟碑)다.위대한 문학가로서의 면모와 탁월한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함께 느낄 수 있으며,특히 안의현감이라는 지방의 한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행정관 시절의 흥미로운 일화들은 정치와 권력의 남용으로 고통받는 이 시대를 향하여 무언의 꾸짖음을 던지고 있다. 오늘은 산 좋고 물 좋은 지리산 아래 함양 안의면의 오월 녹음을 주우며 그 푸르고 향그러운 색깔 속에 살아있는 한 지성의 인간과 세상을 향한 말씀을 들으려 길을 떠난다. 연암 박지원 선생을 두고 칭송하는 글귀는 매우 많다.‘그의 문장은 천마(天馬)가 하늘을 나는 것 같아 굴레를 씌우지 않았건만 자연스럽게도 법도에 다 들어맞는다.그러므로 그의 문장은 문장 가운데 으뜸이라 할 만하며,뒷 사람들이 배워서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글과 ‘영국에 셰익스피어가,독일에 괴테가,중국에 소동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는 글이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이같은 선생은 흔히 ‘양반전’‘허생전’ 등 부패한 사회상과 타락한 양반 사회를 풍자적 기법으로 통렬하게 비판한 소설가로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선생의 나이 44세 때 청나라 여행을 계기로 국내 보수파들의 극렬한 비난을 무릅쓰면서 쓴 ‘열하일기’는 당시 문단에 충격을 던진 놀라운 문체로서 선생의 글이 단순히 글 재주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인간의 삶을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고 가기 위한 위대한 통찰력과 상상력이 결합된 신선함의 상징이었다.여기에서 선생은 행정가 혹은 정치가로서의 안목과 구체적 능력을 암시하기도 했다. ●나이 50에 임금분부로 마지못해 벼슬길 이렇듯 천하 제일가는 문장가로 널리 알려진 선생이었지만 한사코 과거시험을 거쳐 벼슬길에 나아가는 일은 극력 회피했다.주위의 권유가 하도 잦고 간곡하여 몇 차례 과거시험장에 나간 적이 있었다.그러나 답안지를 작성한 뒤에는 이름을 적지 않았고,글 대신 그림을 그려 놓거나 엉뚱한 시편들을 대신 적기도 했는데,이 때 선생이 지은 글은 곧잘 큰 유행이 되기도 했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감탄과 아쉬움을 함께 자아내기도 했다.심지어 임금의 명령으로 과거시험장에 억지로 나간 적도 여러번 있었지만 모두 이름을 적지 않았다.벼슬이나 권세가 깊은 학문과 향기 짙은 문학세계를 해칠 수 있다는 선생의 청정한 지조,혼탁하고 광분한 지성사를 꾸짖어 바로잡을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세상에 나아가면 더욱 세상을 어지럽힐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직과 청빈을 집안의 가훈으로 이어받은 선생 또한 몹시 가난하게 살았다.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마치 독서하는 군자처럼 살았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떴는데,선생이 나이 50세 때 임금의 거듭된 분부를 차마 뿌리치지 못해 음관(蔭官)으로 벼슬길에 나간지 반 년도 못 된 때였다.아내를 여읜 지 얼마 안되어 다시 맡며느리의 상을 당한 뒤로는 끼니 챙겨 줄 사람도 없이 19년여를 혼자 살았다.그 고적하고 불편한 생애의 후반에 이르러서야 선생의 학문과 행정가로서의 세계가 더욱 깊고 넓게 완성될 수 있었다. 선생이 참으로 엉뚱하게도 경상도 안의현감이라는 지방 목민관으로 부임한 것은 1792년 1월이었다.1796년 봄에 서울로 돌아갈 때까지 5년 동안 안의현감을 지내면서 남긴 업적은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직자와 정치가들에게 변함없는 교훈이자 반드시 닮아야 할 목표로 남아 있다.53세에 안의현감으로 부임한 선생 앞에 맨 먼저 던져진 과제는 아전들의 오래된 폐단이었는데,공금횡령과 현감을 속이고 우롱하는 행동이었다.다른 하나는 공금횡령을 부추기는 주변의 권유와 부정부패를 일삼아야만 출세할 수 있다는 공공연한 현실이었다. ●군량미 향곡 9000섬 야금야금 도둑질 지방관청의 실무 담당자들인 아전은 모두 그 지방 출신자들인데다 오래도록 아전으로 지낸 터여서 관내의 모든 일을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거기에 비해 서울에서 임명되어 오는 현감의 임기는 정해져 있지 않아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었다.따라서 현감은 짧은 임기 동안에 안의지역에 관한 일들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떠나는 일이 흔했다.이같은 사정을 알고 있는 아전들이 고의적으로 현감의 임기를 되도록 짧게 만들기 위한 수작을 부리는 폐습이 뿌리 깊었다.부임하는 현감으로 하여금 안의 지역의 행정 업무에는 아예 손도 못대게 하기 위해 교활한 함정을 파서 빠뜨렸다.아전 상호간의 비리를 적은 투서를 익명으로 현감에게 보내는 것이었다.투서자가 익명이기 때문에 투서에 적힌 당사자를 소환하여 조사하면 으레 시치미를 잡아 떼면서 누명을 덮어 썼다고 항변했다.이같은 투서사건을 조사하느라 시일을 보내다보면 현감 본연의 업무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그러는 사이에 현감이 무능하다거나 죄없는 아전들을 잡아들여 족치면서 뇌물을 요구한다는 투서가 서울로 보내졌다.결국 현감은 서울로 불려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겨갔다. 아전들의 이같은 행동은 자신들이 저지른 공금횡령 사실을 은폐시키기 위한 계획적인 짓이었다.아전들이 저지르는 공금횡령의 대표적인 사례는 군량미로 책정된 곡식인 향곡(餉穀)을 도둑질하는 것이었다.각 고을에서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인 대동미 중에서 일부는 서울로 올려보내고 나머지는 여러 가지 용도에 대비하기 위해 지방관청에다 보관해 두고 있었는데,이 곡식을 아전들이 야금야금 도둑질하여 선생이 안의현감으로 부임했을 때는 무려 6만여 휘(열 다섯 말이나 스무 말을 일컫는 수량의 단위)나 되었다.10말을 한 섬으로 치면 무려 9000섬이나 되는 엄청난 곡식이었다.아전들의 고질적인 횡령으로 국가와 지방관청은 늘 재정부족으로 허덕였다.선생은 특유의 직관과 지혜로서 아전들의 농간을 혁파하고 그들이 훔쳐 낸 공금을 모두 환수했다.그 과정에서 어느 한 사람도 죄를 묻거나 궁지에 몰아 넣지 않고 깊이 뉘우치면서 기쁜 마음으로 죄를 갚도록 함으로써 안의 사람들로부터 커다란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선생은 과오를 저지른 아전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도록 다양한 교훈과 모범을 보였다.선생의 정직함과 청빈함이 아전들에게 교훈이 되었다.앞서 간 수많은 현감들의 탐욕과 위선이 아전들을 공금횡령으로 밀어 넣은 것이라고 선생은 말했다.오늘날의 저 많은 국가 공직자들과 지도자들이 다시 살펴봐야 할 두렵고 또 두려운 역사적 교훈이자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기 위한 철학이다.이렇게 채워진 곡식을 두고 서울의 중앙관청 고관들로부터 나눠 갖자는 유혹이 있었다.어차피 없어도 좋은 것이므로 나눠갖자는 제의였다.또한 늘그막에 가난 때문에 지방 수령 노릇을 하니까 적당히 챙기면 가난은 면할 수 있으리라는 중앙의 벼슬아치들이 예사로 주고받는 말은 선생으로 하여금 더욱 청빈하게 만들었다.빈번한 흉년 때마다 굶주리는 백성들을 도울 때 선생이 한결같이 정성을 쏟은 것은 얻어 먹는 사람의 인권과 명예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또한 부득이 아랫사람에게 곤장을 쳐야 할 경우에는 곤장질이 끝난 후 반드시 사람을 보내 맞은 곳을 주물러 멍을 풀게 했다. ●죄 묻거나 궁지에 몰지않아 모두 감복 “고을 원 노릇은 좋은 일이지만 사람을 매로 다스리는 일만큼은 몹시 괴롭고 싫다.”고 했다. 선생은 지방관청 행정가가 가장 공력을 많이 들여야 할 것으로 몇 가지를 꼽아 실천했다.가난한 사람을 돕되 가난의 원인을 해결해 주는 것,상업과 농업의 중요성만큼 장사하고 농사 짓는 사람의 인권과 명예를 존중해 주는 것,농민들의 노동력을 능률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청나라에서 실시하는 여러 가지 농기계를 제작하여 보급하는 것,지역민들이 자신들의 고장에 대한 긍지를 갖고 살도록 하기 위해 지역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들을 꼽았다. 선생의 이같은 위업은 조선 후기 타락한 양반 관료들의 부패와 탐학의 만연으로 가려져 있었지만,오늘 다시 선생의 청렴과 결백한 행정가로서의 삶은 우리 시대를 향해 또 한 번 꾸짖는다.너는 왜 공무원이 되었느냐고. 선생은 부인과 함께 황해도 장단구 송서면 대현리에 묻히셨는데,지금 누가 그 무덤의 풀을 베고 술잔을 올리는지 알 길이 없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2)안의현감(安義縣監) 연암 박지원의 행정론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2)안의현감(安義縣監) 연암 박지원의 행정론

    경남 함양군 안의면 안의초등학교 교정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비석 하나가 서 있다.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 선생에 관한 역사와 선생께서 활동하셨던 18세기 영조 정조시대의 조선 지성사와 사회사의 한 단면까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사적비(事蹟碑)다.위대한 문학가로서의 면모와 탁월한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함께 느낄 수 있으며,특히 안의현감이라는 지방의 한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행정관 시절의 흥미로운 일화들은 정치와 권력의 남용으로 고통받는 이 시대를 향하여 무언의 꾸짖음을 던지고 있다. 오늘은 산 좋고 물 좋은 지리산 아래 함양 안의면의 오월 녹음을 주우며 그 푸르고 향그러운 색깔 속에 살아있는 한 지성의 인간과 세상을 향한 말씀을 들으려 길을 떠난다. 연암 박지원 선생을 두고 칭송하는 글귀는 매우 많다.‘그의 문장은 천마(天馬)가 하늘을 나는 것 같아 굴레를 씌우지 않았건만 자연스럽게도 법도에 다 들어맞는다.그러므로 그의 문장은 문장 가운데 으뜸이라 할 만하며,뒷 사람들이 배워서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글과 ‘영국에 셰익스피어가,독일에 괴테가,중국에 소동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는 글이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이같은 선생은 흔히 ‘양반전’‘허생전’ 등 부패한 사회상과 타락한 양반 사회를 풍자적 기법으로 통렬하게 비판한 소설가로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선생의 나이 44세 때 청나라 여행을 계기로 국내 보수파들의 극렬한 비난을 무릅쓰면서 쓴 ‘열하일기’는 당시 문단에 충격을 던진 놀라운 문체로서 선생의 글이 단순히 글 재주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인간의 삶을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고 가기 위한 위대한 통찰력과 상상력이 결합된 신선함의 상징이었다.여기에서 선생은 행정가 혹은 정치가로서의 안목과 구체적 능력을 암시하기도 했다. ●나이 50에 임금분부로 마지못해 벼슬길 이렇듯 천하 제일가는 문장가로 널리 알려진 선생이었지만 한사코 과거시험을 거쳐 벼슬길에 나아가는 일은 극력 회피했다.주위의 권유가 하도 잦고 간곡하여 몇 차례 과거시험장에 나간 적이 있었다.그러나 답안지를 작성한 뒤에는 이름을 적지 않았고,글 대신 그림을 그려 놓거나 엉뚱한 시편들을 대신 적기도 했는데,이 때 선생이 지은 글은 곧잘 큰 유행이 되기도 했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감탄과 아쉬움을 함께 자아내기도 했다.심지어 임금의 명령으로 과거시험장에 억지로 나간 적도 여러번 있었지만 모두 이름을 적지 않았다.벼슬이나 권세가 깊은 학문과 향기 짙은 문학세계를 해칠 수 있다는 선생의 청정한 지조,혼탁하고 광분한 지성사를 꾸짖어 바로잡을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세상에 나아가면 더욱 세상을 어지럽힐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직과 청빈을 집안의 가훈으로 이어받은 선생 또한 몹시 가난하게 살았다.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마치 독서하는 군자처럼 살았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떴는데,선생이 나이 50세 때 임금의 거듭된 분부를 차마 뿌리치지 못해 음관(蔭官)으로 벼슬길에 나간지 반 년도 못 된 때였다.아내를 여읜 지 얼마 안되어 다시 맡며느리의 상을 당한 뒤로는 끼니 챙겨 줄 사람도 없이 19년여를 혼자 살았다.그 고적하고 불편한 생애의 후반에 이르러서야 선생의 학문과 행정가로서의 세계가 더욱 깊고 넓게 완성될 수 있었다. 선생이 참으로 엉뚱하게도 경상도 안의현감이라는 지방 목민관으로 부임한 것은 1792년 1월이었다.1796년 봄에 서울로 돌아갈 때까지 5년 동안 안의현감을 지내면서 남긴 업적은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직자와 정치가들에게 변함없는 교훈이자 반드시 닮아야 할 목표로 남아 있다.53세에 안의현감으로 부임한 선생 앞에 맨 먼저 던져진 과제는 아전들의 오래된 폐단이었는데,공금횡령과 현감을 속이고 우롱하는 행동이었다.다른 하나는 공금횡령을 부추기는 주변의 권유와 부정부패를 일삼아야만 출세할 수 있다는 공공연한 현실이었다. ●군량미 향곡 9000섬 야금야금 도둑질 지방관청의 실무 담당자들인 아전은 모두 그 지방 출신자들인데다 오래도록 아전으로 지낸 터여서 관내의 모든 일을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거기에 비해 서울에서 임명되어 오는 현감의 임기는 정해져 있지 않아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었다.따라서 현감은 짧은 임기 동안에 안의지역에 관한 일들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떠나는 일이 흔했다.이같은 사정을 알고 있는 아전들이 고의적으로 현감의 임기를 되도록 짧게 만들기 위한 수작을 부리는 폐습이 뿌리 깊었다.부임하는 현감으로 하여금 안의 지역의 행정 업무에는 아예 손도 못대게 하기 위해 교활한 함정을 파서 빠뜨렸다.아전 상호간의 비리를 적은 투서를 익명으로 현감에게 보내는 것이었다.투서자가 익명이기 때문에 투서에 적힌 당사자를 소환하여 조사하면 으레 시치미를 잡아 떼면서 누명을 덮어 썼다고 항변했다.이같은 투서사건을 조사하느라 시일을 보내다보면 현감 본연의 업무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그러는 사이에 현감이 무능하다거나 죄없는 아전들을 잡아들여 족치면서 뇌물을 요구한다는 투서가 서울로 보내졌다.결국 현감은 서울로 불려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겨갔다. 아전들의 이같은 행동은 자신들이 저지른 공금횡령 사실을 은폐시키기 위한 계획적인 짓이었다.아전들이 저지르는 공금횡령의 대표적인 사례는 군량미로 책정된 곡식인 향곡(餉穀)을 도둑질하는 것이었다.각 고을에서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인 대동미 중에서 일부는 서울로 올려보내고 나머지는 여러 가지 용도에 대비하기 위해 지방관청에다 보관해 두고 있었는데,이 곡식을 아전들이 야금야금 도둑질하여 선생이 안의현감으로 부임했을 때는 무려 6만여 휘(열 다섯 말이나 스무 말을 일컫는 수량의 단위)나 되었다.10말을 한 섬으로 치면 무려 9000섬이나 되는 엄청난 곡식이었다.아전들의 고질적인 횡령으로 국가와 지방관청은 늘 재정부족으로 허덕였다.선생은 특유의 직관과 지혜로서 아전들의 농간을 혁파하고 그들이 훔쳐 낸 공금을 모두 환수했다.그 과정에서 어느 한 사람도 죄를 묻거나 궁지에 몰아 넣지 않고 깊이 뉘우치면서 기쁜 마음으로 죄를 갚도록 함으로써 안의 사람들로부터 커다란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선생은 과오를 저지른 아전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도록 다양한 교훈과 모범을 보였다.선생의 정직함과 청빈함이 아전들에게 교훈이 되었다.앞서 간 수많은 현감들의 탐욕과 위선이 아전들을 공금횡령으로 밀어 넣은 것이라고 선생은 말했다.오늘날의 저 많은 국가 공직자들과 지도자들이 다시 살펴봐야 할 두렵고 또 두려운 역사적 교훈이자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기 위한 철학이다.이렇게 채워진 곡식을 두고 서울의 중앙관청 고관들로부터 나눠 갖자는 유혹이 있었다.어차피 없어도 좋은 것이므로 나눠갖자는 제의였다.또한 늘그막에 가난 때문에 지방 수령 노릇을 하니까 적당히 챙기면 가난은 면할 수 있으리라는 중앙의 벼슬아치들이 예사로 주고받는 말은 선생으로 하여금 더욱 청빈하게 만들었다.빈번한 흉년 때마다 굶주리는 백성들을 도울 때 선생이 한결같이 정성을 쏟은 것은 얻어 먹는 사람의 인권과 명예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또한 부득이 아랫사람에게 곤장을 쳐야 할 경우에는 곤장질이 끝난 후 반드시 사람을 보내 맞은 곳을 주물러 멍을 풀게 했다. ●죄 묻거나 궁지에 몰지않아 모두 감복 “고을 원 노릇은 좋은 일이지만 사람을 매로 다스리는 일만큼은 몹시 괴롭고 싫다.”고 했다. 선생은 지방관청 행정가가 가장 공력을 많이 들여야 할 것으로 몇 가지를 꼽아 실천했다.가난한 사람을 돕되 가난의 원인을 해결해 주는 것,상업과 농업의 중요성만큼 장사하고 농사 짓는 사람의 인권과 명예를 존중해 주는 것,농민들의 노동력을 능률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청나라에서 실시하는 여러 가지 농기계를 제작하여 보급하는 것,지역민들이 자신들의 고장에 대한 긍지를 갖고 살도록 하기 위해 지역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들을 꼽았다. 선생의 이같은 위업은 조선 후기 타락한 양반 관료들의 부패와 탐학의 만연으로 가려져 있었지만,오늘 다시 선생의 청렴과 결백한 행정가로서의 삶은 우리 시대를 향해 또 한 번 꾸짖는다.너는 왜 공무원이 되었느냐고. 선생은 부인과 함께 황해도 장단구 송서면 대현리에 묻히셨는데,지금 누가 그 무덤의 풀을 베고 술잔을 올리는지 알 길이 없다.
  • [이경기의 스크린1인치]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최근 미국영화연구소(AFI)와 영국의 영화 전문 월간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는 ‘대부’(1972년)의 주인공 갱스터 보스 돈 코를레오네를 ‘영화 사상 최고의 캐릭터’로 선정했다.그 유명한 말론 브랜도가 소화했던 배역이다. ‘살아 있는 연기’ ‘혼(魂)이 서려 있는 열연’ 등의 칭송은 연기자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찬사다. 러시아 출신 배우,제작자,연극 이론가인 콘스탄틴 스타니슬라브스키가 창안한 ‘메소드 연기’ 또는 ‘스타니슬라브스키 시스템’은 오늘날 할리우드 배우들의 필수 연기 훈련 방법이다. ‘메소드’는 배우가 자신의 유·무형의 경험을 담아 그 역할에 몰두하거나 아니면 감정적인 공감을 갖고 있지 않았을 경우에는 실생활에 뛰어드는 직접 체험을 통해 주어진 배역과 연기자가 혼연일체의 시도를 하는 연기 개발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대부’의 말론 브랜도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그는 이탈리아에서 건너와 뉴욕 마피아 보스로 성공하는 돈 코를레오네의 배역을 위해 전직 갱스터 조직원에게 그 집단에서 풍겨 오는 정서를 설명받는다든가 아니면 보스의 체취를 풍기기 위해 입에 구슬을 물고 보조개 부분을 부풀려 올려 느릿느릿하고 축 늘어진 대사법을 시도했다. 이로써 돈 코를레오네역을 지켜본 관객들은 그 배역을 통해 실제 마피아 보스들의 태도와 분위기는 ‘저런 것이구나!’라는 공감을 얻게 된다.이런 캐릭터는 이후 마피아 보스의 전형으로 고착화됐다.메소드 연기의 진가는 바로 이것이다. 스타니슬라브스키가 창안한 메소드 연기는 본산지 소련을 거쳐 1920년대 뉴욕으로 전해졌고 1947년 리 스트라스버그가 ‘액터스 스튜디오’를 개설해 불세출의 프로 연기자들을 대거 배출해 낸다.1950년대 반항아의 대명사 제임스 딘을 비롯해 알 파치노,더스틴 호프먼,로버트 드 니로,폴 뉴먼,앤서니 퀸 등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개성 스타들은 모두 이 학교 출신 연기자들이다. 더스틴 호프먼의 경우는 흡사 자신의 처지를 보여주듯 왜소한 체격과 볼품없는 외모 때문에 탤런트로서 별다른 배역을 맡지 못하자 여장 남자로 돌변해 서서히 브라운관의 스타로 부상하게 된다는 연기 세계 풍자극 ‘투시’(1982년)에서 완벽한 여자로 변신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로버트 드 니로는 ‘분노의 주먹’(1980년)에서 세계 미들급 챔피언 제이크 라 모타의 일대기를 묘사하기 위해 실제 권투 도장에서 6개월 이상 훈련을 받고 초콜릿 등으로 체중을 30㎏ 이상 불려 배역을 소화해 냈다는 일화를 남겼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2002년)에서 2차 대전 당시 폴란드 유태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우 스필만역을 맡은 애드리언 브로디는 몇 개월 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은 끝에 실제 인물이 출연한 듯한 실감나는 피아노 연주 실력을 과시했다.이 영화 오프닝 장면에서는 밖에서 폭격이 이뤄지는 가운데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태연하게 피아노 치는 장면을 보여줄 때 손가락 장면에 이어 곧바로 카메라가 틸트 업(Tilt-Up:물체 하단 모습에 이어 곧바로 상단을 보여주는 촬영 기법)됐다.이 장면이 대역을 쓰지 않고 배우가 실제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라는 것을 엿보게 해주었다. 이처럼 맡은 배역에 배우가 몰입돼 실감나는 연기를 보여 주어 관객들의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가는 방식이 ‘메소드 연기’의 진가라고 할 수 있다.˝
  • 인터넷 뉴스사이트 인기

    딱딱하고 엄숙한 기존의 뉴스와 차별을 둔 재미있는 인터넷 뉴스 사이트들이 호응을 얻고 있다. 뉴스에 유머와 위트를 가미,통렬하게 비판하는가 하면 네티즌의 이슈를 빠르게 파악해 진행하기 때문에 기존 언론사의 사이트 방문자 수를 위협하고 있다.지난 4·15 총선때 방송사에 고정물을 제공할 정도로 탄탄한 콘텐츠를 자랑하는 시사 풍자사이트 미디어몹(www.mediamob.co.kr)은 품격을 갖춘 패러디로 승부,인터넷 뉴스 사이트에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미디어몹은 “사실에 기초한 감성의 전달이 기존 미디어의 엄숙주의를 타파한다.”며 다소 감정적으로 치우친 패러디와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도깨비뉴스(www.dkbnews.com)와 e런뉴스(www.erunnews.com),뉴스툰(www.newstoon.net) 등도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다.도깨비뉴스는 인터넷에 떠도는 소식들을 발빠르게 전하는 신속성을 인정받고 있다.네티즌이 스스로 접한 소식,예컨대 ‘뚱보 왕조연 사진’ 등 소위 ‘인터넷 특종’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거의 모든 뉴스가 네티즌의 관심사로 채워진 e런뉴스는 최단기간에 방문자수 ‘100만명 돌파’를 목표로 삼고 있다.지난달 중순 정식으로 문을 연 ‘e런뉴스’는 한달만에 하루 페이지뷰 60만,방문자수 4만명을 기록했다.e런뉴스 관계자는 “비록 기존 뉴스에 비해 가볍고 사소해 보이지만 네티즌의 입맛에 맞춘 기사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자랑했다. 채수범기자 lokavid@˝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9)한국의 찻그릇 - 우동진의 백자 찻사발

    백자는 청자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그릇이자 조선시대의 유교이념이 투영된 세계적 미술품이다.중국의 당·송 시대에서 비롯된 백자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고려 중엽 이후부터였다.불교사상을 상징한 청자시대의 화려하고 우아한 멋이 백자의 단아함과 고결함을 껴안게 되면서 고려시대라는 정신사를 아름답게 장식했다.주로 중국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귀국하는 길에 선물용으로 사오거나 중국 정부의 예물로 들여오기 시작하다가 고려백자라는 이름의 흉내낸 그릇이 제작된 적도 있었지만,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게 된 것은 조선시대 들어서부터였다. 특히 순백자 예찬론자였던 세종대왕의 고급 문화정책에 힘입어 경기도 여주,이천,광주에 관요(官窯)가 세워졌고,조선의 왕실,귀족,양반 관료들만의 전유물인 고급 백자가 엄격한 체제와 관리 아래서 생산되었다.조선시대 민중들은 이같은 백자를 사용할 수 없었다.그릇은 곧 신분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백자시대였지만 정작 차문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찻사발은 그리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다.차문화가 불교문화의 핵심인 헌공다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불교사상을 배척하는 것을 조선의 정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지배자들이 차문화를 숭상하기 어려웠던 탓이다.차 대신 술이 지배한 시대가 조선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조선시대는 차 대신 술이 지배 그런 중에도 아주 적은 양의 찻그릇들이 제작되어 사용된 사실은 있었다.찻사발도 마찬가지였다.백자 찻사발은 백자 특유의 차갑고 엄격한 선과 색깔을 아름다움의 핵심으로 삼았다.날카롭다고 볼 수 있는 찻사발의 전이 지닌 얇고 경직된 선,단조롭고 정형화된 굽,허리와 중배에서 전으로 이어지는 차가운 선,조선 선비의 이상향을 상징하는 절개와 무욕의 흰 색깔로 된 찻사발은 매우 적은 양만이 전해지고 있다.백자는 민중들과의 신분 차별을 뜻하기도 해서 역사적인 의미로나 미학적 접근에서 난해하고 제한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현대사회에 와서도 백자를 빚는 이들이나 사용하는 이들의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보여진다. 경남 양산시 웅상읍 매곡리 매곡요(梅谷窯) 주인 우동진(46)씨가 최근 발표한 백자를 주제로 한 찻사발의 재해석은 백자에 관한 우리의 통념을 크게 변화시켜 줄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그의 작업장으로 찾아가 작품 세계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문:기본적으로는 백자의 미학적 토대를 유지하면서도 민중적 정서와 체취를 느끼도록 시도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떻게 이같은 발상이 가능했을까요? 우동진:찻사발에 대한 관심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특히 최근 들어 도자작가나 차인들에게 크게 회자되고 있는 정호(井戶) 찻사발의 장점과 아름다움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백자에다 정호를 응용하고 싶어지더군요. 문:언제부터 도자기를 빚게 되었지요? 우동진:27세 때부터였습니다.처음엔 산어도자에 관심이 있었지요.타일,전기애자를 생산하는 일을 해 보고 싶었는데 이 분야는 기술과 자본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더군요.흙의 문제도 있었고요.생활도자기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흙을 만지게 되었습니다.벌써 20년째가 됩니다. 문:가마의 불은 어떤 재료를 주로 사용합니까? 우동진:석유가마,가스가마를 거쳐서 현재의 장작가마로 밟아왔습니다.이 가마는 스승이신 천한봉 선생께서 터를 잡고 지어주신 것입니다.가마가 곧 저의 스승인 셈입니다. 문:대학 학부에서는 도자공예를 공부하고,대학원에서는 도예디자인과 광물학 두 과정을 공부했거나 현재 공부하고 있는데,학문이 도자 실기에 도움이 됩니까? ●흙의 성질 알고 그릇 만들면 희열 우동진:굳이 찻그릇을 만드는데 석사 박사 학위가 필요한 조건이라고는 말하기 어렵겠지요.다만 제가 광물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흙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도자기는 한마디로 흙의 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우리나라 곳곳에 도자소가 산재했다는 점,선조들이 흙의 분석에 철저했다는 점 등은 우리나라 지층 구조가 다양했기 때문이라 봅니다.흙의 맛과 멋을 제대로 알고,흙의 성질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를 알고 그릇을 만들면 훨씬 자유롭고 깊은 정신적 희열을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흙의 성격은 복합적인 화학적 구성 요소를 지니고 있는데,구성 요소마다 못된 놈 좋은 놈들의 상호작용이 존재하지요.그 작용이 조화인데,이를 잘 이해해야만 흙의 질서를 배울 수 있거든요.따라서 도자기를 만든다는 것이 그냥 그릇을 만들어 돈을 받고 팔아서 먹고 사는 경우와 먹고는 살되 흙의 질서를 배워 나도 흙이 되려고 하는 경우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제딴에는 후자에 속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문:백자 찻사발 세계를 들여다보면 박지원 선생의 양반전을 떠올리게 됩니다.조선의 양반제도가 지닌 모순과 폐해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꾸짖는 양반전의 통쾌함이 우 선생의 백자 찻사발에서도 감지된다는 말입니다.갓 쓰고 도포 입은 양반이 무논에서 쟁기질하는 것 같은 묘한 맛과 함께,조선시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백자를 민중들의 정서에 맞도록 재구성한 것은 확실히 놀라운 실험정신의 소산으로 보입니다.그런 것을 의식했을까요? ●양반제 폐해 신랄하게 풍자해 통쾌 우동진:꼭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다만 우리 시대의 삶과 정신을 담을 수 있는 백자라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줄곧 해왔습니다.임진왜란으로 한국 도자역사 500년을 일본에 빼앗겼지만 우리에게 미래는 무궁합니다.미래의 세대가 21세기 한국의 도자 역사를 물을 때 대답해 줄 최소한의 몇 마디라도 준비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도자기 만드는 이들이 실험정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재료도 부족하지 않으냐는 지적을 많이 합니다만 저는 그 지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상업적인 도자 제작 판매에 매달려서 남의 우수한 창작품을 베끼기하는 이들이 없지 않지만,그렇지 않은 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은 하나 하나가 다 도전정신의 산물이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문:우 선생께서는 평소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요. 우동진:남 욕하고 허물을 들추지 말자는 것이지요.작가로서 이름 얻는 수단만 좇을 게 아니라 내가 할 몫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최선을 다하다 흙이 되자는 것입니다. 문:우리나라 찻사발의 문제점이 뭐라고 보십니까? 우동진:찻사발 만드는 작가들이 먹고 사는 일에 너무 급급하다 보니 실험정신과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실험정신은 도자 교육과정에서 강조되어야 옳은데 이를 소홀히 하면 미래로 향하는 작가의 발목이 현실 안주라는 마귀에게 붙들리게 됩니다.완벽함이란 존재할 수 없지요.부족함을 드러낼 줄 아는 것이 실험정신이고,아름다움 아니겠습니까?˝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9)한국의 찻그릇 - 우동진의 백자 찻사발

    백자는 청자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그릇이자 조선시대의 유교이념이 투영된 세계적 미술품이다.중국의 당·송 시대에서 비롯된 백자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고려 중엽 이후부터였다.불교사상을 상징한 청자시대의 화려하고 우아한 멋이 백자의 단아함과 고결함을 껴안게 되면서 고려시대라는 정신사를 아름답게 장식했다.주로 중국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귀국하는 길에 선물용으로 사오거나 중국 정부의 예물로 들여오기 시작하다가 고려백자라는 이름의 흉내낸 그릇이 제작된 적도 있었지만,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게 된 것은 조선시대 들어서부터였다. 특히 순백자 예찬론자였던 세종대왕의 고급 문화정책에 힘입어 경기도 여주,이천,광주에 관요(官窯)가 세워졌고,조선의 왕실,귀족,양반 관료들만의 전유물인 고급 백자가 엄격한 체제와 관리 아래서 생산되었다.조선시대 민중들은 이같은 백자를 사용할 수 없었다.그릇은 곧 신분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백자시대였지만 정작 차문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찻사발은 그리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다.차문화가 불교문화의 핵심인 헌공다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불교사상을 배척하는 것을 조선의 정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지배자들이 차문화를 숭상하기 어려웠던 탓이다.차 대신 술이 지배한 시대가 조선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조선시대는 차 대신 술이 지배 그런 중에도 아주 적은 양의 찻그릇들이 제작되어 사용된 사실은 있었다.찻사발도 마찬가지였다.백자 찻사발은 백자 특유의 차갑고 엄격한 선과 색깔을 아름다움의 핵심으로 삼았다.날카롭다고 볼 수 있는 찻사발의 전이 지닌 얇고 경직된 선,단조롭고 정형화된 굽,허리와 중배에서 전으로 이어지는 차가운 선,조선 선비의 이상향을 상징하는 절개와 무욕의 흰 색깔로 된 찻사발은 매우 적은 양만이 전해지고 있다.백자는 민중들과의 신분 차별을 뜻하기도 해서 역사적인 의미로나 미학적 접근에서 난해하고 제한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현대사회에 와서도 백자를 빚는 이들이나 사용하는 이들의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보여진다. 경남 양산시 웅상읍 매곡리 매곡요(梅谷窯) 주인 우동진(46)씨가 최근 발표한 백자를 주제로 한 찻사발의 재해석은 백자에 관한 우리의 통념을 크게 변화시켜 줄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그의 작업장으로 찾아가 작품 세계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문:기본적으로는 백자의 미학적 토대를 유지하면서도 민중적 정서와 체취를 느끼도록 시도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떻게 이같은 발상이 가능했을까요? 우동진:찻사발에 대한 관심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특히 최근 들어 도자작가나 차인들에게 크게 회자되고 있는 정호(井戶) 찻사발의 장점과 아름다움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백자에다 정호를 응용하고 싶어지더군요. 문:언제부터 도자기를 빚게 되었지요? 우동진:27세 때부터였습니다.처음엔 산어도자에 관심이 있었지요.타일,전기애자를 생산하는 일을 해 보고 싶었는데 이 분야는 기술과 자본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더군요.흙의 문제도 있었고요.생활도자기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흙을 만지게 되었습니다.벌써 20년째가 됩니다. 문:가마의 불은 어떤 재료를 주로 사용합니까? 우동진:석유가마,가스가마를 거쳐서 현재의 장작가마로 밟아왔습니다.이 가마는 스승이신 천한봉 선생께서 터를 잡고 지어주신 것입니다.가마가 곧 저의 스승인 셈입니다. 문:대학 학부에서는 도자공예를 공부하고,대학원에서는 도예디자인과 광물학 두 과정을 공부했거나 현재 공부하고 있는데,학문이 도자 실기에 도움이 됩니까? ●흙의 성질 알고 그릇 만들면 희열 우동진:굳이 찻그릇을 만드는데 석사 박사 학위가 필요한 조건이라고는 말하기 어렵겠지요.다만 제가 광물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흙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도자기는 한마디로 흙의 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우리나라 곳곳에 도자소가 산재했다는 점,선조들이 흙의 분석에 철저했다는 점 등은 우리나라 지층 구조가 다양했기 때문이라 봅니다.흙의 맛과 멋을 제대로 알고,흙의 성질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를 알고 그릇을 만들면 훨씬 자유롭고 깊은 정신적 희열을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흙의 성격은 복합적인 화학적 구성 요소를 지니고 있는데,구성 요소마다 못된 놈 좋은 놈들의 상호작용이 존재하지요.그 작용이 조화인데,이를 잘 이해해야만 흙의 질서를 배울 수 있거든요.따라서 도자기를 만든다는 것이 그냥 그릇을 만들어 돈을 받고 팔아서 먹고 사는 경우와 먹고는 살되 흙의 질서를 배워 나도 흙이 되려고 하는 경우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제딴에는 후자에 속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문:백자 찻사발 세계를 들여다보면 박지원 선생의 양반전을 떠올리게 됩니다.조선의 양반제도가 지닌 모순과 폐해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꾸짖는 양반전의 통쾌함이 우 선생의 백자 찻사발에서도 감지된다는 말입니다.갓 쓰고 도포 입은 양반이 무논에서 쟁기질하는 것 같은 묘한 맛과 함께,조선시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백자를 민중들의 정서에 맞도록 재구성한 것은 확실히 놀라운 실험정신의 소산으로 보입니다.그런 것을 의식했을까요? ●양반제 폐해 신랄하게 풍자해 통쾌 우동진:꼭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다만 우리 시대의 삶과 정신을 담을 수 있는 백자라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줄곧 해왔습니다.임진왜란으로 한국 도자역사 500년을 일본에 빼앗겼지만 우리에게 미래는 무궁합니다.미래의 세대가 21세기 한국의 도자 역사를 물을 때 대답해 줄 최소한의 몇 마디라도 준비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도자기 만드는 이들이 실험정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재료도 부족하지 않으냐는 지적을 많이 합니다만 저는 그 지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상업적인 도자 제작 판매에 매달려서 남의 우수한 창작품을 베끼기하는 이들이 없지 않지만,그렇지 않은 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은 하나 하나가 다 도전정신의 산물이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문:우 선생께서는 평소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요. 우동진:남 욕하고 허물을 들추지 말자는 것이지요.작가로서 이름 얻는 수단만 좇을 게 아니라 내가 할 몫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최선을 다하다 흙이 되자는 것입니다. 문:우리나라 찻사발의 문제점이 뭐라고 보십니까? 우동진:찻사발 만드는 작가들이 먹고 사는 일에 너무 급급하다 보니 실험정신과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실험정신은 도자 교육과정에서 강조되어야 옳은데 이를 소홀히 하면 미래로 향하는 작가의 발목이 현실 안주라는 마귀에게 붙들리게 됩니다.완벽함이란 존재할 수 없지요.부족함을 드러낼 줄 아는 것이 실험정신이고,아름다움 아니겠습니까?
  • 원재길 작품집 ‘달밤에 몰래 만나다’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실의 모순을 날카롭게 그려온 작가 원재길이 세번째 작품집 ‘달밤에 몰래 만나다’(문학동네 펴냄)를 냈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써온 12편의 단편을 모은 이 소설집은 작가 특유의 환상성의 세계가 돋보인다.어머니가 죽은 뒤 틈만 나면 잠에 빠지는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한잠순 여사 약전(略傳)’이나 외뿔 솟은 염소,눈이 하나 뿐인 송아지,다리가 셋인 개,귀가 세 개인 토끼 등이 나오는 등산로를 배경으로 비정상과 정상의 구분을 무너뜨리려 시도한 표제작 등 대개의 작품이 환상적이고 몽환적이다. 이런 우화적 세계는 역설적으로 현실의 불합리와 질곡을 신랄하게 꼬집는 효과를 거둔다.그를 통해 작가는 일상 생활 곳곳에 만연한 정상-비정상의 구분에 도사린 폭력성을 부각시키는데 성공한다.앉은뱅이 부부의 난쟁이 딸과 친하게 지낸다고 놀리는 친구의 인형을 뺏은 기억을 지닌 주인공이 30년 뒤 아파트 뒷산에서 그녀와 재회하면서 화해하는 과정을 다룬 표제작.여기에 미모나 재능 모든 면에서 뛰어나 동네 사람들의 오해와 질시를 받다가 마침내 마을에서 사라져가는 여주인공의 사연을 다룬 ‘꽃바람’ 등은 다수의 기준으로 차별을 합리화하는 현실을 풍자한다. 작가는 이런 냉혹한 현실 논리와 직접 맞닥뜨리지는 않는다.환상과 알레고리를 이용해 주인공들을 동물로 변신(‘방충망’‘선인장’)시키거나 마술 등의 방법으로 현실 속에서 상처받고 작아져 가는 사람들을 달래준다(‘바다사자들은 어디로 갔을까’).작가의 이런 작품세계에 대해 평론가 오태호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 때문에 사회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의 상처와 고통을 들쳐낸다.”고 설명한다. 이종수기자˝
  • [이경기의 스크린1인치]시네마가 외로워 신화를 찾네

    ‘환상을 소재로 한 영화 매체는 그리스 로마의 신화적 전설에서 무궁무진한 창작 소재를 얻고 있다.’ 2004년 여름 흥행 시장에서 가장 높은 기대작으로 주목 받고 있는 영화 ‘트로이’의 볼프강 피터젠 감독이 밝힌 그리스·로마 신화의 효용론이다.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숙적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와 불륜에 빠지자 이에 분노한 메넬라오스가 친형 아가멤논에게 복수극을 부탁한다.이에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간의 10여년에 걸친 지루한 전쟁이 펼쳐진다는 것이 극의 주된 줄거리. 문학,음악,연극 심지어 법률 체계에서 사용되는 전문용어중 상당 수가 그리스·로마 전설에서 유래됐다.특히 앞서 피터젠 감독의 주장을 입증하려는 듯이 영화계는 제목,주인공 이름,스토리 등에 그리스 신화 내용을 차용하고 있다. 70년대 재앙 영화 붐을 주도했던 ‘포세이돈 어드벤처’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제목으로 활용해 호화 유람선을 건조했다고 오만에 빠진 인간을 폭풍우 한방으로 응징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앨버트 브룩스 감독의 할리우드 풍자극 ‘뮤즈’에서는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이 시와 노래의 여신 뮤즈로 분해 슬럼프에 빠진 시나리오 작가가 다시 재기할 수 있는 자극을 제공한다. 고대 음악가 오르페우스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자 비탄에 빠져 스스로 죽음을 택해 아내가 있는 저승을 찾아가 구슬픈 노래를 불러 주변의 모든 사물을 감동 시켰다.이 사연은 장 콕도의 ‘오르페’(1949년),마르셀 카뮤 감독의 ‘흑인 오르페’(1959년) 등으로 극화됐다. 미녀의 상징이자 멜레아그로스의 아내로 유명세를 얻었던 클레오파트라를 비롯해 머리카락에 뱀이 달려 있고 멧돼지 몸체에 혐오스런 외모를 갖고 있는 추악한 괴물의 대명사 메두사,바다에서 표류하는 오디세우스를 구출해 준 나우시카,악한 행동을 자행하는 자들에게 무자비한 징벌을 내리는 복수의 신 네메시스,나일강의 신의 딸로 에파포스와 결혼했다는 멤피스,바다의 신 네레우스의 딸보다 더욱 아름답다고 했다가 큰 곤욕을 당하는 카시오페이아 왕비의 딸 안드로메다,호메로스가 아름답다고 칭송해 마지 않았던 트로이왕 프리아모스의 딸 카산드라 등은 공포,추리,애니메이션,SF,전쟁 영화 제목에서 단골로 언급되고 있는 신화속 인물들이다. 극중 주역의 이름도 그리스 신화를 원전으로 해서 작명된 사례가 다수 있다.‘닥터 지바고’에서 지바고의 가슴에 첫사랑의 연인으로 각인되고 있는 ‘라라’는 티베리스 강의 신의 딸.그녀가 메르쿠리우스와 결혼에 낳은 딸 라라스는 로마인들에게는 가정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전해진다. 톨스토이 원작의 ‘안나 카레니나’를 비롯해 로맨스 소설의 단골 히로인 이름으로 언급되고 있는 ‘안나’는 카르타고 여왕 디도의 자매.로마의 민중들이 귀족들의 수탈을 피해 성스런 산으로 은둔했을 때 이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 노파가 안나로 알려졌다.이때문인지 ‘안나’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여자 주인공은 통상 어렵거나 곤궁에 처해진 남자 주인공에게 안락함을 제공하는 역할을 단골로 맡고 있다. ‘트로이’의 시나리오 작가 데이비드 베니오프는 ‘모험과 영웅을 동경하는 현대인들의 심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수많은 영웅들 이야기인 그리스·로마 신화는 앞으로도 다채로운 장르에서 활용될 것’이라는 진단을 제시했다.˝
  • 손학규 경기지사 연극무대 선다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경기도립극단이 무대에 올리는 러시아 작가 고골리의 희극 ‘검찰관’에 비중있는 조연인 하인역으로 연극무대에 선다. 손 지사의 연극 출연은 경기고와 서울대 재학시절 연극반 활동을 한 손 지사의 경력을 알고 있는 몇몇 연극인들의 추천으로 이뤄졌다.검찰관은 자신을 비밀 검찰관으로 오인한 지방탐관오리를 골탕 먹인다는 내용의 풍자극으로 손 지사가 맡은 하인역은 검찰관으로부터 주로 욕설을 듣는 역이다.손 지사는 오는 15일과 22일 오후 7시30분 수원 경기도문예회관 공연과 다음달 12일 의정부 공연 등에 출연할 예정이다. 수원연합
  • “安風자금 안기부 돈 맞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열린우리당 김덕규 의원은 이른바 안풍(安風)사건으로 불리는 안기부 예산 유용사건과 관련,6일 “안풍자금의 출처는 당연히 안기부 자금”이라고 확인했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국가정보원(안기부의 후신)의 예산 및 직무를 심의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기자에게 “국정원과 법무부가 지난 2001년 안풍사건과 관련,한나라당에 대해 국고환수 소송을 낸 행위 자체가 안풍자금이 안기부 자금이라는 것을 명백히 입증하는 것”이라며 “안풍자금이 국고가 아닌 김영삼(YS) 전 대통령 개인의 돈이라면,국고환수소송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정보원 고위관계자는 앞서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에 유입된 1000억원대의 자금은 안기부가 불용액과 이자를 모아 조성한 비자금”이라고 밝혀,‘안풍자금은 YS비자금’이라는 강삼재 의원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 안기부는 1년 예산을 한 번에 받아 한국은행에 예치하라는 규정을 무시하고,시중은행에 적금으로 예치하거나,수익률이 높은 양도성 예금증서(CD)를 구매해 이자소득을 추구하는 식으로 관리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동안 우리 당에서는 ‘안풍자금은 YS비자금’이라는 강 의원의 법정 진술만 믿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라니 난감하다.”고 당혹스러워했다. 전광삼 김상연기자 carlos@˝
  • “영화 ‘효자동 이발사’ 박前대통령 왜곡 우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지지하는 네티즌이 5일 오전 11시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영화관 앞에서 “영화 ‘효자동 이발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돌려 눈길을 끌었다. 윤모(37·사업·강남구 압구정동)씨 등 네티즌 2명은 이 영화의 주인공 송강호씨의 가면을 쓰고 A4용지 14장에 이르는 장문의 유인물을 관객들에게 나눠줬다.유인물에는 영화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이발사 박수웅씨가 2001년 10월 모 시사 월간지와 인터뷰한 기사 전문과 인터넷 사이트에 오른 ‘효자동 이발사는 실화다.’라는 네티즌의 글이 실려 있었다. 윤씨는 “박 전 대통령을 잘 모르는 10,20대 젊은이들이 영화를 보고 역사와 풍자를 혼동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윤씨는 “젊은이들이 서민적이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박 대통령을 제대로 알고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날 개봉된 ‘효자동이발사’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절대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이발사가 된 주인공과 그의 가족이 겪는 사건을 그린 휴먼코미디 영화다. 유지혜기자 wisepen@˝
  • ‘安風자금’ 진실게임 새 국면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5일 한나라당의 ‘안풍(安風))자금’에 대해 안기부 예산 유용이라고 시인함에 따라 실체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최근 검찰이 한나라당사에 대한 가압류 승인심사를 요청해 놓은 상황에서 안풍자금의 실체를 둘러싼 ‘진실게임’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당장 한나라당의 반발 강도가 주목된다. 진실게임은 강삼재 의원이 지난 2월 항소심에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으로부터 지난 1995년과 1996년 청와대 집무실에서 받았다.”는 폭탄선언을 하면서 촉발됐다. 그러나 ‘공범’ 관계인 김기섭 전 운영차장은 강 의원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그는 “강삼재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을 직접 만나 자금을 전달했으며,출처는 안기부 예산”이라고 밝혔다.김영삼 전 대통령도 최근 재판부에 보낸 사유서를 통해 “돈을 준 일이 없다.”고 강 의원 주장을 부인했다. 그런 가운데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강 의원이 CD(양도성 예금증서)가 출·입금된 장부를 토대로 문제의 자금이 정치자금,대선 잉여금이라고 주장하지만,이 돈은 분명히 안기부 자금”이라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이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안기부 예산유용’이라고 시인한 이유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낳고 있다. 한나라당사 가압류를 통해 얻게 되는 실익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한나라당사 평가액은 400억∼450억원선.그러나 건물 건설대금 미납액으로 50억원,한나라당 당직자 퇴직금 비용으로 230억원 등을 빼고나면 국고에 환수할 수 있는 금액은 70억원 안팎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위관계자는 이런 점을 의식해 “지난해 10월 말부터 법무부로부터 한나라당 재산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하라는 요청을 4차례나 받았다.”면서 “최근 한나라당이 천안연수원을 국가에 신탁했고,당사 매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가압류 승인절차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安風자금’ 진실게임 새 국면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5일 한나라당의 ‘안풍(安風))자금’에 대해 안기부 예산 유용이라고 시인함에 따라 실체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최근 검찰이 한나라당사에 대한 가압류 승인심사를 요청해 놓은 상황에서 안풍자금의 실체를 둘러싼 ‘진실게임’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당장 한나라당의 반발 강도가 주목된다. 진실게임은 강삼재 의원이 지난 2월 항소심에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으로부터 지난 1995년과 1996년 청와대 집무실에서 받았다.”는 폭탄선언을 하면서 촉발됐다. 그러나 ‘공범’ 관계인 김기섭 전 운영차장은 강 의원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그는 “강삼재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을 직접 만나 자금을 전달했으며,출처는 안기부 예산”이라고 밝혔다.김영삼 전 대통령도 최근 재판부에 보낸 사유서를 통해 “돈을 준 일이 없다.”고 강 의원 주장을 부인했다. 그런 가운데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강 의원이 CD(양도성 예금증서)가 출·입금된 장부를 토대로 문제의 자금이 정치자금,대선 잉여금이라고 주장하지만,이 돈은 분명히 안기부 자금”이라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이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안기부 예산유용’이라고 시인한 이유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낳고 있다. 한나라당사 가압류를 통해 얻게 되는 실익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한나라당사 평가액은 400억∼450억원선.그러나 건물 건설대금 미납액으로 50억원,한나라당 당직자 퇴직금 비용으로 230억원 등을 빼고나면 국고에 환수할 수 있는 금액은 70억원 안팎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위관계자는 이런 점을 의식해 “지난해 10월 말부터 법무부로부터 한나라당 재산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하라는 요청을 4차례나 받았다.”면서 “최근 한나라당이 천안연수원을 국가에 신탁했고,당사 매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가압류 승인절차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安風자금은 안기부 비자금”

    국가정보원 고위관계자는 5일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에 유입된 1000억원대의 자금은 안기부가 불용액과 이자를 모아 조성한 비자금이었다.”고 밝혀 ‘안풍(安風)자금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강삼재 의원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이같은 주장은 안풍자금의 실체에 대한 논란을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과거 안기부는 1년 예산을 한번에 받아 한국은행에 예치하라는 규정을 무시하고,시중은행에 적금으로 예치하거나,수익률이 높은 CD(양도성 예금증서)를 구매해 이자소득을 추구하는 식으로 관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안기부는 그간 집행하고 남은 예산을 반납하지 않고,자체적으로 영수증 처리해 왔다.”고 말해 안기부의 예산 유용을 통한 불법자금 조성 부분도 시인했다.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과거 안기부 자금의 운영방식과 비자금 조성 경위 등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최근까지 국정원이 안풍자금의 실체와 관련,“재판이 진행 중인데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침묵해온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강 의원이 안기부 차명계좌 잔고내역서에 나타난 운영자금의 대거유입과 빈번한 CD구입 등을 근거로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은 과거 안기부 예산의 운영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이어 “안풍자금은 김기섭 전 운영차장이 안기부가 10년 가까이 남은 예산과 이자소득 등으로 조성한 1000억원대의 비자금을 ‘주인없는 돈’으로 판단,신한국당에 제공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안풍자금이 안기부 자금임을 분명하게 하는 과정에서 남은 예산을 반납하지 않거나,이자소득을 추구하는 등 조직의 치부가 드러난 것에 대해서는 “과거의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그는 “현재로서는 국고 유용에 대해 한나라당과 강삼재 의원,김 전 차장으로부터 환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유용된 국고를 환수조치하지 않는다면 이는 직무유기이자 혈세낭비”라고 주장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安風자금은 안기부 비자금”

    국가정보원 고위관계자는 5일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에 유입된 1000억원대의 자금은 안기부가 불용액과 이자를 모아 조성한 비자금이었다.”고 밝혀 ‘안풍(安風)자금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강삼재 의원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이같은 주장은 안풍자금의 실체에 대한 논란을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과거 안기부는 1년 예산을 한번에 받아 한국은행에 예치하라는 규정을 무시하고,시중은행에 적금으로 예치하거나,수익률이 높은 CD(양도성 예금증서)를 구매해 이자소득을 추구하는 식으로 관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안기부는 그간 집행하고 남은 예산을 반납하지 않고,자체적으로 영수증 처리해 왔다.”고 말해 안기부의 예산 유용을 통한 불법자금 조성 부분도 시인했다.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과거 안기부 자금의 운영방식과 비자금 조성 경위 등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최근까지 국정원이 안풍자금의 실체와 관련,“재판이 진행 중인데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침묵해온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강 의원이 안기부 차명계좌 잔고내역서에 나타난 운영자금의 대거유입과 빈번한 CD구입 등을 근거로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은 과거 안기부 예산의 운영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이어 “안풍자금은 김기섭 전 운영차장이 안기부가 10년 가까이 남은 예산과 이자소득 등으로 조성한 1000억원대의 비자금을 ‘주인없는 돈’으로 판단,신한국당에 제공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안풍자금이 안기부 자금임을 분명하게 하는 과정에서 남은 예산을 반납하지 않거나,이자소득을 추구하는 등 조직의 치부가 드러난 것에 대해서는 “과거의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그는 “현재로서는 국고 유용에 대해 한나라당과 강삼재 의원,김 전 차장으로부터 환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유용된 국고를 환수조치하지 않는다면 이는 직무유기이자 혈세낭비”라고 주장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20일까지 ‘김주호­세상 들여다 보기’ 展

    조각가 김주호(55)는 거친 화강석이나 두꺼운 철판,폐가에서 구한 나무,질구이(테라코타) 등을 재료로 인물상을 만들어내는 작가다.그의 인물조각에는 유머가 살아 있다.하지만 장난기 섞인 것처럼 보이는 그 인물상들에는 작가의 비판적인 시선이 배어 있다. 7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열리는 ‘김주호­세상 들여다보기’전에서는 해학적인 모습과 동작,표정을 지닌 흥미로운 인물상들을 만날 수 있다.익살스럽게 과장된 표정은 프랑스 혁명기의 국민의회 의원들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화가 도미에의 캐리커처 조각을 떠올리게 한다.이번에 선보이는 신작 ‘새로운 우상’은 횃불과 독립선언서를 든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을 패러디한 작품으로,세계를 지배하려 드는 미국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겼다. 김주호의 인물조각은 모두 1m 내외로 작달막하다.매우 단순한 형태로 인체의 균형을 무시한다.“학교에서 가르치는 이상적인 인체비례의 그리스 조각이나 거대하고 위압적인 공공기념물엔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는 게 작가의 말.대신 그는 우리의 장승이나 탈,마애불 같은 전통조각에 등장하는 인물의 단순한 형태와 생동감 있는 표정에서 현대적인 조형미를 발견했다. 그런 만큼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한결 친근하게 다가온다.이번 전시에는 드로잉도 10여점 나온다.‘금단증세 자가진단 관찰도’는 골초인 작가가 금연을 시작한 뒤 나타나는 금단증상을 도표로 나타낸 것으로,조각 ‘금단증세­눈알이 돈다’와 하나의 쌍을 이루는 작품이다.작가에게 드로잉은 입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예술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매체다.(02)720-1524.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일요영화]

    ●뉴욕의 왕(EBS 오후 2시)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뒤 고향 런던으로 돌아온 채플린이 1957년 만든 마지막 작품.매카시즘으로 고초를 겪었던 그가 쓴소리와 풍자로 매카시즘을 꼬집었지만 커다란 호응을 얻지 못했다.당시 런던 시사회에서 반응이 신통치 않자 채플린은 “이 영화는 정치적이지 않다.내 영화중 가장 반체제적인 영화다.”라고 항변했다고 한다. 유럽의 작은 나라 에스트로비아에서 민중의 봉기로 퇴위 당한 샤도프 왕은 왕실의 보물과 재산을 들고 뉴욕으로 도망쳐 온다.그러나 수상이 그의 돈을 모두 들고 도망치는 바람에 빈털터리 신세가 된다.탤런트 앤은 샤도프 왕을 TV에 출연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그녀에게 반한 왕은 앤과 함께 파티장에 간다.앤은 왕의 모습을 몰래 찍어 방송에 내보내고 샤도프 왕은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된다.어느날,왕은 우연히 호텔 앞에서 한 천재소년을 만난다.그는 소년의 부모가 억울하게 공산주의자로 몰린 사정을 듣게 된다.그러던 중 소년이 그의 방에서 발각되면서 샤도프 왕 또한 공산주의자로 몰리게 되는데…. ●에린 브로코비치(KBS2 오후 11시10분) 수질 오염을 초래한 대기업과 법정 소송을 벌였던 실존 인물 에린 브로코비치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에린 브로코비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줄리아 로버츠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에린 브로코비치 본인이 웨이트리스로 특별 출연했다. 이혼녀 에린은 직장도 없이 아이 셋을 어렵게 키우는 무일푼 여성.자신의 교통사고를 담당한 변호사 에드를 졸라 에린은 그의 법률회사에 취직한다.서류 정리 도중,대기업 PG&E사의 오염물질 방출로 힝클리 마을 주민들이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검찰, 한나라黨舍 가압류 추진

    지난 95∼96년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예산이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과 민자당에 선거자금으로 불법지원된 이른바 ‘안풍(安風)’ 사건과 관련,검찰이 현재 매각이 추진 중인 한나라당사에 대해 조만간 가압류 신청을 제기할 방침이다.한나라당 내에서 ‘재창당론’이 본격 거론된데 따른 것이다.이와 함께 모두 1197억원의 불법자금을 국고로 환수하기 위해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고검 관계자는 29일 “한나라당이 해산되고 새로운 정당이 생길 경우 안풍자금의 국고환수 소송에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국가정보원과 협의를 거쳐 당사 매각 이전에 가압류를 신청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이어 “그러나 한나라당 천안 연수원은 국민에게 헌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가압류 조치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검찰의 이같은 조치는 한나라당의 재창당 논의를 전해들은 법무부가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대비책을 마련할 것”을 긴급 지시한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민사소송을 통한 국고환수도 검토되고 있다.정부 관계자는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이 구 안기부 돈을 끌어다 쓴 게 확실한 만큼 국고 환수조치하는 게 마땅하다.”면서 “한나라당 여의도당사에 대한 조치와 별도로 지난 2001년에 이어 민사소송을 다시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지난 2001년 1월부터 시작된 안풍사건 재판과정에서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이 강삼재 전 신한국당 사무총장에게 모두 1197억원을 준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재판과정에서 1197억원중 856억원이 국고로 인정된 만큼 국정원이 최소 856억원을 한나라당으로부터 받아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관계당국은 한나라당이 법적 해산절차를 거칠 경우 그 후신정당에 대해선 가압류 소송을 제기할 수 없고 당사자에게만 추징이 가능한 점을 감안,한나라당외에 강삼재·김기섭씨도 소송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곽태헌 김재천기자 tiger@˝
  • 강길원 교수 정년퇴임展

    강길원 공주대 교수가 5월3일부터 8일까지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갤러리 1전시실에서 개인전을 연다. 강길원의 작품세계는 크게 네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후기 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인물화를 주로 그린 1960년대,풍경 그림을 통해 현실을 풍자한 1970년대,상징주의적 화풍의 1980년대,그리고 199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는 ‘순수 풍경시대’가 그것이다. 이번 정년퇴임 기념전엔 ‘가을찬가’‘청송의 여름’‘대둔산의 추경’‘변산의 해변’ 등 자연의 사계를 노래한 35점이 출품된다.풍경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던 1970년대 ‘만능’ 같은 작품과는 구분되는 보다 순도 높은 자연,즉 풍경 그 자체로서의 자연을 담았다.작가는 자연을 눈에 보이는 대로 모사하지 않는다.강조와 생략을 통해 일필휘지로 단숨에 그리는 편이다.자연은 작가 특유의 눈으로 재창조된다.그런 만큼 강길원의 풍경화는 한층 자연의 순수함과 힘을 느끼게 한다.그러나 강길원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역원근법을 시도하는 다시점(多視點) 회화란 점이다.(02)2000-9737.˝
  • [화제의 사이트] 풀빵닷컴(www.pullbbang.com)

    ‘패러디의 진수를 맛보고 싶으세요?’ 지난달 17일 문을 연 뒤 한달 만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패러디 사이트 ‘풀빵닷컴(www.pullbbang.com)’이 화제가 되고 있다.패러디계의 1인자로 평가돼온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의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했다. 풀빵닷컴이 첫 작품으로 선보인 ‘실미도’의 패러디 작품인 ‘설마도’는 단숨에 각종 포털 검색순위 1위에 올랐다.러닝타임 3분에 이르는 ‘블록버스터급’ 패러디 동영상으로 박빙의 승부 끝에 ‘도’만 나오지 않는다면 이기는 가족간의 윷놀이를 풍자했다.마침내 윷은 공중에 던져지고,동영상은 ‘설마…도?’라는 자막으로 끝난다. 또다른 대표작은 탤런트 최성국의 사진을 합성한 ‘∼속으로’.광고 사진과 최성국을 합성한 ‘광고속으로’,정치 현실을 풍자한 ‘국회속으로’ 등이 제작됐고,네티즌들이 직접 만든 합성사진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최근에는 인기그룹 ‘MC THE MAX’의 ‘사랑의 시’를 얼굴없는 엽기 가수 박분자가 개사해서 부른 ‘휴지의 시’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휴지가 없는 화장실에서의 코믹한 상황을 처절한 목소리로 진지하게 불렀다.풀빵닷컴이 자체 제작한 이 노래는 공개 첫날,조회수 8만회를 넘어서는 등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박분자는 20대 초반의 여성으로 모 벨소리 업체에서 컬러링 가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신원은 1급 비밀이다. 풀빵닷컴의 전문 패러디물을 제작하는 5인방은 모두가 탄탄한 실력을 자랑하는 소문난 재주꾼들이다.김도영(27),나성환(24),차세정(24),마세영(24),김성대(28)씨 등 온라인 유머·카툰 작가,캐릭터·그래픽 디자이너 출신들이다.이동언(33) 기획팀장은 “전략적으로 동영상 위주의 패러디를 만들 계획이며,전문 패러디 작가들을 통해 작품성을 갖춘 전문 패러디물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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