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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찬 따뜻한 사회] 국민 행복지수를 만들자

    [최종찬 따뜻한 사회] 국민 행복지수를 만들자

    국정운용의 우선순위와 각종 통계, 지표는 상호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제 성장을 중시하면 그와 관련된 통계가 많이 개발된다. 경제 성장 관련 통계나 지표가 많으면 국민적 관심사가 높아져 그 분야의 정책우선순위가 높아진다. 예컨대 사회적 신뢰나 사회적 유동성(social mobility)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의미 있는 통계나 지표가 정기적으로 생산되지 않으면 문제가 개선되는지 악화되는지 알 도리가 없어 관련 정책에 대한 관심도 낮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 국가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지표는 국내총생산(GDP)과 1인당 GDP라고 생각된다. 이는 국가와 국민의 경제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클수록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볼 수 있다. GDP관련 통계는 많이 개발됐다. 따라서 GDP가 낮으면 왜 낮아졌는지, 적정 GDP 증가율은 어느 수준인지 등 많은 분석과 연구가 이뤄진다. GDP는 경제력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이지만 GDP 증가 자체가 행복은 아니다. 그동안 경제는 괄목하게 성장하였으나 행복도 그에 상응하게 늘어난 것은 아니다. 실제 우리생활은 과거보다 물질적으로 엄청나게 발전하였다. 오늘날 중산층 생활수준은 중세의 제왕들보다 낫다. 17∼18세기 제왕이라 하더라도 오늘날의 냉난방 시설·수세식 화장실·냉장고와 같은 시설을 갖지 못했고, 페니실린만 맞으면 나을 병도 못 고치고 죽었으며, 비행기로 외국 여행도 못했다.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빈곤한 상태에서는 행복을 못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 단계를 벗어나면 행복은 물질적인 성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인 형평성, 남을 배려하는 문화 등 많은 비물질적인 요소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세계 각국의 행복지수를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경제적으로 빈곤한 방글라데시나 부탄 같은 나라의 행복지수가 높은 반면, 부유한 국가 중에서 행복도가 낮은 나라도 많다. 우리나라도 소득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행복의 마이너스 척도인 자살률, 이혼율은 과거보다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이제부터는 국민의 행복을 국정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행복을 중시하면 국정운영도 현재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안전, 환경, 여가 등 삶의 질적 개선에 대한 관심이 증대할 것이다. 소득분배나, 사회적 양극화 개선에 관한 정책의 우선순위가 높아질 것이다. 현재는 이렇다 할 국민행복지수가 없으므로 소득분배 개선보다는 경제성장률을 중시한다. 소득분배 악화는 지표화가 미흡해 당장 눈에 안 띄지만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은 정부 치적 홍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민행복지수가 개발되어 형평성에 관심이 높아지면 정부는 현재보다 소득분배에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국민의 행복을 국정 우선순위에 두려면 우선 국민의 행복상태를 알아야 한다. 행복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정의도 다르고 계량화하기도 어렵다. 현재도 행복과 관련된 지표가 없지 않다. 도시근로자 가계소득분포, 평균수명, 자살률, 이혼율 등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표를 심층분석하여 종합적으로 국민의 행복상태를 알려주는 지표는 없다. 따라서 국민들이 과거보다 행복해졌는지 불행해졌는지 알지 못한다. 물론 국민행복지수 개발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정부가 국민의 행복 상태에 대한 관심을 덜 기울여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국제적으로 행복지수 개발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5월 2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당신의 더 나은 삶 지수’(Your Better Life Index)라는 일종의 행복지수를 공개했다. OECD는 삶의 질을 측정하기 위해 주택, 소득, 일자리, 공동체, 환경, 생활 만족도, 일과 여가의 조화 등 11개 기준을 선정했다. 이를 기초로 각국이 스스로 지수를 완성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센 교수와 스티글리츠 교수에게 국민행복지수 개발을 요청한 바 있다. 국민행복지수를 적극 개발하여 국민의 궁극적 욕구인 행복에 대해 정부와 사회의 관심이 증대되기를 기대한다.
  • [열린세상] 조약문의 반란/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명예교수

    [열린세상] 조약문의 반란/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명예교수

    오늘 우리 사회에서 국제화가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이 국제화에 대한 열망은 해가 갈수록 강화되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 단계 더 높아졌다. 우리나라가 살 길은 모든 국민이 영어를 얼마나 잘 구사하느냐에 달려 있는 듯 교육정책도 영어교육의 강화에 집중되었고, 영어 몰입교육이 논의되었다. 유치원 단계에서부터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어린아이들에게 특별 과외를 받게 하는 부모들마저 등장했다. 중·고등학교는 영어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배정하기 위해 여러 가지 편법을 구사하기도 했다. 대학입시에서 영어가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대학의 경우에도 수업에서 차지하는 영어강의 비율에 따라 그 수준을 평가했다. 물론 영어교육의 강화론은 비단 어제오늘 제시된 것만은 아니다. 사실 해방 직후 미 군정이 영어를 우리나라의 공용어로 선언한 이후부터 줄곧 영어교육이 강조되어 왔다. 해방공간에서 출세를 지향하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영어를 배워야 했고, 미국 유학이 입신의 지름길로 작용했다. 미국 유학생 출신 교육관리들은 유학 초기에 겪었던 언어 불통의 한을 국내에 돌아와서 풀고자 한 듯했다. 그래서 그들은 영어 교육을 그렇게 강조했음이 틀림없지만, 국민의 대부분은 일상생활과 생업에서 영어와는 무관하게 살고 있었다. 그래도 영어는 학교교육에서 계속 강조되다가 국제화의 붐을 타고 더욱 치성하게 되었다. 영어 교육의 강조는 당연한 결과로서 다른 과목의 희생을 뒤따르게 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국어 교육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한국사를 비롯한 역사 교육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더욱 축소되어 갔다. 그리하여 한국사가 이번 정권 초기에 급조된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는 급기야 선택과목으로 전락하는 길을 걸었다. 국어나 국사 과목은 영어 수업이라는 성역을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 대신에 수업 시수를 확보하기 위해 이웃 학과와 다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어 교육의 강화 덕분에 영어를 기차게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분들이 앞장서서 외국과의 조약을 추진했고, 영어로 된 조약문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국민에게 제시해 주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단이 발생했다. 지난번 유럽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조약문의 번역과정에서 207건의 오류가 생겼다 하여 외교통상부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아마도 외교부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는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조약에 관여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은 불행히도 자신의 모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듯하다. 그리고 외국어의 번역이 언어만 알아서 되는 일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까지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함을 잊은 듯하다. 그들은 제도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올바른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거나, 아니면 아예 국내에서 교육을 받지 않은 ‘빼어난’ 사람들일는지도 모른다. 길지 않은 하나의 조약문에서 200여 군데나 틀린 곳이 있다 한다면,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온 잘못된 우리 교육정책의 필연적 결과이다. 제 나라의 말과 역사를 무시한 그 잘못된 정책에 대해 조약문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 조약문은 자신의 몸을 던진 반란을 통해서 국어와 국사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아직도 이 반란을 단순한 실수로만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국제화시대에 영어교육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모든 국민에게 다같이 강조할 필요는 없다. 그들의 일상적 삶을 풍요롭게 이끌어갈 과목들에 더욱 많은 수업 시수가 배정되어야 한다. 인도나 필리핀이 가난한 까닭은 영어를 못해서가 아니지 않은가? 이번에 일어난 조약문의 반란은 자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의사를 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교육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한국사 교육의 필수화는 당연한 일이었다.
  • [도심속 허파를 찾아서] (3) 대구수목원 & 울산대공원

    [도심속 허파를 찾아서] (3) 대구수목원 & 울산대공원

    2002년 4월과 5월에 나란히 개장한 울산대공원과 대구수목원은 지역의 ‘명소’가 됐다. 도시숲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는 롤모델이다. 울산대공원은 기업이 숲을 조성해 지역민에게 돌려줌으로써 기업과 지역 간 ‘상생’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공해의 도시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도록 해준 도시숲에 대한 시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대구수목원은 쓰레기 매립장이라는 기피시설을 ‘명소’로 탈바꿈시켰다. 숲이 조성된 지 9년, 수목이 울창한 푸른 도심공원을 시민의 품에 안겨준 ‘선견지명’(先見之明)’이 놀라울 뿐이다. ■대구수목원 - 매립장 ‘과거’는 잊어줘 “환자의 아픔과 이웃의 기쁨을 더불어 나눌 수 있는 넉넉한 그늘이고 싶다.” 대구수목원에 세워진 표지석의 글은 수목원이 지향하는 바를 담고 있다. 수목원 부지는 1986년부터 1990년까지 사용된 쓰레기 매립장으로 410만t의 쓰레기가 묻힌 곳이다. 다양한 식물원과 울창해진 수목원 곳곳에 있는, 가스를 빼는 배출구가 아니라면 과거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기피시설인 쓰레기 매립장이라는 이유로 10년간 방치된 이곳에 수목원을 조성키로 한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지하철 공사장에서 나온 150㎥의 흙을 위에 덮는 등 복토 높이만 18m에 달한다. 이곳에 1750종 45만 그루의 목본류와 초본류를 심었다. 침출수나 가스는 9년 만에 정상수준이 됐다. 놀라운 숲의 복원력을 보여준다. 국비 42억여원을 포함해 총 사업비 103억원이 투입됐지만 수목원이 현재 모습으로 완성된 데는 시민의 참여와 정성이 있었다. 총 21개로 구성된 수목원 중 분재원(400여점)과 선인장 온실(2000여 그루)은 시민 기증으로 꾸며졌다. 흙길과 산책로 주변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심은 나무로 울창하다. 최근 수목원에는 어이없는 고민이 생겼다. 나무가 너무 많아 생장에 지장이 생긴 것. 결국 단체 식재한 기관과 협회 등에 양해를 구해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내고 있다. 수목원을 찾는 시민들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산림청과 공동사업으로 인접한 천수산 국유림(13.7㏊)에 산책로도 조성했다. 지난해 대구수목원을 찾은 방문객은 172만명으로 설계 당시(45만명)의 3.8배에 달했다. 10월 수목원에서 키운 국화를 전시할 때에는 하루 평균 8만명이 방문한다. 화장실 물이 부족할 정도다. 대구수목원은 졸업앨범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견학코스가 됐다. 도시숲을 계획하고 있는 지자체의 방문이 잇따르고 있다. 요양객이 많다는 것도 눈에 띈다. 일주일에 5회 정도 수목원을 찾는다는 신진영(45·여)씨는 “수목원이 조성된다는 소식을 듣고 대곡동에 있는 아파트를 분양받았다.”면서 “집 가까이에 아름다운 숲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대구수목원은 원칙을 고수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장하고 있지만 아침 운동을 원하는 ‘얼리 버드’의 민원에 개장 시간을 오전 5시로 앞당긴 것이 유일한 변화다. 휴지통이 없고 자전거나 운동기구 반입은 여전히 불허다. 초기엔 불만이 많았지만 이젠 완전하게 정착됐다. 김희천 대구수목원관리사무소장은 “수목원은 식물이 우선이기에 야간에는 가로등도 켜지 않는다.”면서 “원칙이 무너지면 수목원이 아니라 공원이 된다.”고 강조했다. 대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울산대공원 - 공단에 ‘사람꽃’ 피었네 시설 정비와 청소 등을 위해 시설이 문을 닫는 월요일 오후지만 울산대공원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울산대공원은 연중무휴, 24시간 개방한다. 동문~정문~남문을 둘러보는 데 최소 3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풍부한 녹지와 쉼터, 풍부한 자연환경과 시설을 갖춘 ‘도심공원’을 컨셉트로 설계됐다. 서남공원과 삼호산을 연결하는 울산의 허파이자 울산에 도시숲 붐을 일으킨 주역으로서 도시의 품격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울산대공원은 기존 산림과 경관은 최대한 유지하면서 수용된 임야 등을 활용해 ‘용의 형상’으로 시설물을 배치했다. 랜드마크인 풍차가 있는 풍요의 못과 호랑이발 테라스는 격동저수지를 친환경적으로 단장,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나비식물원과 노인들을 위한 파크골프장, 수영장, 어린이동물농장 등 89개의 다양한 시설물이 있다. 울산대공원은 오는 6월 3일부터 12일까지 장미축제가 열린다. 국내 최대인 장미원에는 94품종, 1만 7000여그루에서 울산시 인구를 보여주는 110만여 송이가 만개한다. 6회째지만 입소문이 퍼져 전국에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지난해는 일평균 25만명이 방문했다. 울산시는 2009년부터 축제를 무료로 전환해 호응을 얻고 있다. 2002년 1차 개장에 이어 2006년 2차 개장한 울산대공원은 164㏊에 달한다. 총 사업비 1552억원 중 1020억원을 SK가 부담했다. SK가 울산에 엄청난 돈을 들여 도시숲을 조성한 것은 고 최종현 회장의 뜻과 울산시의 구상이 일맥상통했다. 여기에 이익을 지역에 환원 시키 고자 하는 임직원들의 의지, 환경과 안전에 대한 기업의 책임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SK에너지 장지욱 과장은 “월드컵을 앞두고 1차 개장한 후 시민 의견을 수렴해 2차 조성에 반영했다.”면서 “대공원은 SK가 울산의 향토기업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심전심이랄까? SK가 외국계 투자회사와 경영권 분쟁을 벌인 2004년 울산 시민들이 주식을 매입하며 향토 기업 지키기에 나섰다. 도시숲을 매개로 기업과 지자체가 ‘상생’을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울산대공원은 2009년 세계조경가 협회가 선정한 아시아태평양지역 조경계획부분 대상을 수상했다. 대공원이 위치한 울산시 남구 옥동은 공단 인접 지역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주거 최적지로 부상했다. 고영명 울산시 녹지공원과장은 “대공원은 시민들에게 정주(定住)의식을 심어준 울산의 자존심”이라며 “SK가 투자 의사를 밝혔을 때 대학과 병원 등 다양한 요구가 있었지만 도시숲을 조성한 것은 미래를 위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울산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韓·中작가 정지아·한사오궁의 ‘유쾌한 문학 대담’

    韓·中작가 정지아·한사오궁의 ‘유쾌한 문학 대담’

    첫 만남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상대방의 작품을 전혀 읽지 않았다.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로 잘 알려진 소설가 정지아(46)의 몇몇 작품은 영문으로 번역됐지만 중국 소설가 한사오궁(韓少功·58)에게는 낯설었고, 국내에 번역 출간된 한사오궁의 수필집 ‘산남수북’(山南水北), 장편소설 ‘마교사전’(馬橋詞典) 등 몇 작품 역시 정지아의 독서 편력에 해당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맞춘 듯 서로 꼭 들어맞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낮고 겸손한 시선이 하나였고, 생명을 경외하는 열정도 마찬가지였다. 상업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작가의 물질적 곤궁함 또한 다르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에서 눅진한 흙냄새 풍기는 농사꾼이자 치열하게 원고지 붙잡고 씨름하는 작가라는 사실이 언어의 다름, 경계의 차이를 넘어 둘을 스스럼없이 만나게 했다. 정지아, 한사오궁이 26일 서울 종로1가 대산문화재단 회의실에서 만났다. ‘세계화 속의 삶과 글쓰기’를 주제로 지난 24일 개막한 서울국제문학포럼이 계기가 됐다. 1시간 30분에 걸친 둘의 대화는 유쾌했고, 진지했다. 과학기술로 상징되는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에 대한 선험적, 지성적, 비판적 통찰이 질문으로, 대답으로 오갔다. 둘은 통역을 제쳐 두고 만나자마자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정지아는 “부모님이 모두 남한 사회가 반대하는 이념을 가진 사회주의자였고, 그런 이야기들은 남한에서는 금기시된다.”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던 이들이 변화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의 신념은 지금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등을 작품에서 주로 다뤘다.”고 말을 건넸다. 한사오궁은 “오오, 그런가. 그러면 당신은 어떤가.”라고 슬쩍 되물었다. 정지아는 “사실대로 말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아마 내가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눙치더니 이내 “사회주의자는 아니다.”라고 말을 고쳤다. 이쯤에서부터 통역이 끼어들었다. 대화의 속도는 조금 더뎌졌지만, 더욱 깊어지고 묵직해졌다. 한사오궁은 “중국에서도 1980년대 이전 이데올로기 분쟁이 있었지만 이제는 돈을 버는 좌파와 우파, 돈을 벌지 못하는 좌파와 우파로 나뉠 뿐”이라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다 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이데올로기”라고 말했다. 정지아는 “기존의 이념을 뛰어넘어 세상이 시장과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붙잡혀 있다는 말씀이지요?”라고 말을 받은 뒤 “한 선생님은 돈을 버는 좌파인가요?”라고 한 걸음 더 내쳤다. 그는 “100만~200만권씩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야 돈을 벌겠지만 나는 그저 10만~20만권 팔리는 정도”라면서 “그나마 중국 출판 시장이 크니까 겨우 살아가게는 한다.”고 받았다. 엄살에 가깝다. 그는 200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예기사 작위를 받고, 2007년 루쉰문학상을 받은 저명한 작가다. 현재 하이난성작가협회 주석이며 모옌(莫言), 위화(余華) 등과 함께 중국 문단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힌다. 그는 이 대목이 대화에 언급되자 손가락으로 ‘×자’를 만들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믿지 말라. 노벨문학상은 올림픽처럼 계량해서 점수나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쨌든 이 또한 엄살에 가깝다. ●시골생활 예찬론자끼리 만나다 정지아는 “한 선생님의 포럼 발제문 ‘수요와 욕구’를 읽고 탐욕에 대한 경계 등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면서 “10여 년 전에 시골에 내려가서 사신다고 하는데 저도 최근 시골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어떤 연유로 시골로 내려가셨나. 고향인가.”라는 한사오궁의 질문에 정지아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시골의 풍경이 핏줄기 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도시에서는 여러 욕망들을 버리기 쉽지 않았는데, 시골에서 흙 만지며 야채 키우다 보면 그런 것들이 절로 사라진다. 쾌적하고 평화롭다.”고 답했다. 한사오궁은 “맑은 날 열심히 농사짓고, 비오는 날 책 읽는 것이 가장 좋은 생활이라고 했다(청경우독·晴耕雨讀). 손과 발, 머리를 모두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자본주의, 특히 도시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과 사회의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고 맞장구쳤다. 한사오궁의 수필집 ‘산남수북’은 루쉰문학상 수상 작품이며 ‘중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평까지 얻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배경이 된 후난(湖南)성 바시동(八溪洞)은 문화대혁명 시절 그가 청년 지식인으로 하방을 간 곳으로 11년 전부터 그곳에서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지내며 농사짓는 곳이다. 한사오궁은 바시동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불렀다. ●작가로서 실존적 고민을 나누다 정지아는 “근대문학의 위기, 시장의 변화 등으로 작가들이 괴로운 시절이다. 이런 시대에 작가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고민스럽다.”고 내밀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한사오궁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나도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어떡하겠나. 계속 밀고 나가고, 그리고 기다리는 수밖에. 그리스 신화를 보면 끊임없이 돌을 굴렸다가 떨어진 돌을 다시 굴리기를 반복해야 하는 시시포스가 있지 않나. 사람의 인생도 똑같다. 작가의 인생은 더더욱 그러하다.”고 말했다. ‘교과서 중심으로 복습 철저’와 같은 식의 모범답안이지만 정지아는 진지하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끝없이 써야만 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라는 말씀이네요. 그러고 보니 그동안 고향 인구가 계속 줄어들다가 2년 전부터 미미하지만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해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부유한 삶이 행복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아요. 희망은 살아있는 것이지요. 문학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한사오궁은 “맞다. 나빠도 그 범위 안에서 나빠지고, 좋아도 그 범위 안에서 좋아진다. 욕망도 절망도 경계해야 한다.”면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더라도 그 과정은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위로하며 서로 희망을 나눴다. 정지아는 우직하게 사실주의 기법을 틀어쥐며 작품 활동을 하는, 문단에 몇 남지 않은 작가다. ‘빨치산의 딸’뿐 아니라 ‘행복’, ‘봄빛’, ‘숙자 언니’ 등 자본주의사회에 남은 사회주의자들의 모습과 내면을 핍진하게 풀어가는 작품을 주로 썼다. 리얼리스트 정지아 역시 사회주의자들 못지않게 외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사오궁은 “정 선생의 작품이 중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다니 아쉽긴 하지만 영어로 된 책을 찾아 읽어 보겠다.”면서 “다음에 중국 오시면 꼭 연락해 달라. 내가 직접 마중나가고 또 직접 기른 토마토와 야채도 맛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지아가 활짝 웃으며 “혹시 노벨문학상 받은 뒤에도 여전히 유효한 약속인가.”라고 묻자 한사오궁은 “노벨문학상보다 직접 가꾼 토마토가 더 중요하다.”고 맞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한사오궁은 정말 토마토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정지아는 각자 직접 가꾼 고추와 토마토를 나누자고 했다. 땅 일구는 이들은 보통의 도시 사람보다 조금은 더 욕망을 무화하는 능력이 탁월함을 두 작가가 보여 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사오궁은… 한사오궁은 중국 후난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의 대표적 문예지 ‘줘자’(作家)로 등단했다. ‘뿌리 찾기’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심근문학(尋根文學)의 대표 주자로서 현대 중국문학의 거장이다. 작품 속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반성과 재인식을 바탕으로 소재와 형식 등 중국의 전통을 재현하려 한다. ‘아빠, 아빠, 아빠’(爸爸爸), ‘유혹’(誘惑), ‘빈 성’(空城), ‘열렬한 책읽기’ 등의 작품이 있다. 하이난(海南)성 작가협회 주석이지만 후난성 바시동에서 살며 가을걷이가 마무리돼야 하이난다오로 돌아갈 정도로 시골 생활에 흠뻑 빠져 있다. 첫 중국인 노벨문학상 수상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200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오싱젠(高興建)은 중국 출신 프랑스인이다. ■ 정지아는… 정지아는 전남 구례가 고향이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왔다. 빨치산이었던 부모님의 실제 삶을 그려낸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1990년 실천문학에서 펴내며 등단했다. 소설은 출간 직후 판매금지됐다. 작가 자신도 3년 가까이 수배 생활을 하는 등 혹독한 필화사건을 겪었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고욤나무’가 당선돼 안정적으로 ‘제도권’에 진입했다. 가족사적인 배경이 그러하듯 비극적인 현대사의 중심과 주변에서 역사를 직조했던 개인들의 상처와 희망, 불안 등을 주되게 다루고 있다.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오늘의소설상 등을 받았다. 올 초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 ‘연세(年貰) 200만원’에 집을 얻고 낮에는 밭 가꾸고 저녁에는 글쓰는 단출하고 정갈한 삶을 시작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 (32)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 (32)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

    봄볕 짙어지면 농부는 한 해 농사를 위해 논밭으로 나선다. 싹 틔운 볍씨를 가지런히 세운 모판을 경운기에 잔뜩 싣고 논으로 향하던 농부는 마을 어귀의 나무 앞에 잠시 멈춰 선다. 올해 농사가 잘될지를 가늠하기 위해 농부는 환하게 꽃 피운 이팝나무를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띠운다. 나무에 꽃이 잘 피어나면 풍년이 든다는 오래된 믿음에 기댄 미소다. 쌀밥처럼 온 가지 위에 하얀 꽃을 수북이 피워 올린 이팝나무를 바라보다가 덜커덕거리는 경운기 엔진을 끄고 농부는 뒷주머니에서 전화번호가 적힌 꼬깃꼬깃한 종잇장을 꺼내든다. 농부는 흙 묻은 손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이팝나무의 오월 꽃 소식을 먼 도시로 전한다. ●농부가 전해주는 이팝나무 화신 전남 순천시 승주읍 평중리 평지마을 농부 이순옥(69)씨가 전화로 전해 준 이팝나무의 개화 소식을 받고는 부리나케 평중리 이팝나무를 찾아 나섰다. 바로 건너 마을인 낙안면에서 나고 자란 시인 최인서(36)씨가 고향길 나무 답사에 동행했다. 이팝나무는 오월에 보름 남짓 동안 넉넉하게 꽃을 피우는 느긋한 나무이거늘, 절정의 개화 순간을 맞추어 찾아보는 건 그리 수월한 일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농부의 화신(花信)은 언제나 고마울 수밖에 없다. 농부 이씨를 처음 만난 건 4년 전 늦은 봄이다. 답사 날짜가 예년의 개화 시기보다 조금 늦었다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평지마을을 찾았다. 아직 여름이라 할 수 없는 봄날이었지만, 나무는 이미 낙화를 마친 뒤였다. 낙심한 표정으로 나무 앞에 서 있다가, 마침 논을 갈러 나온 이씨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꽃잎 떨어진 게 아쉽다.”고 하자, 그는 선뜻 “다음부터는 꽃 피어나면 소식 전해 줄 테니, 전화받고 오라.”며 내 전화번호를 물었다. 냉큼 전화번호를 적은 수첩 한 장을 찢어 농부의 주머니에 접어 넣어준 게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뒤로 농부가 이끌어 주는 평지마을 이팝나무 답사는 늘 행복한 길이 될 수 있었다. 올해의 평중리 이팝나무도 농부의 꽃 소식 따라 한 해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농촌의 봄을 찬란하게 노래하고 있었다. 20m 넘게 자라는 큰 나무 가운데 이만큼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나무는 흔치 않다. 벚꽃이 아름답다지만 절정의 순간이 짧아 아슬아슬한 것과 달리, 이팝나무는 벚꽃만큼 화려한 꽃을 그보다 훨씬 오래 피우는 넉넉한 나무여서 좋다. 마침 나무 앞을 지나는 이홍수(75)노인에게 ‘올해는 꽃이 예쁘게 피었으니 풍년이 들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산들바람에 실려온 꽃 향기로 흥에 겨워진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팝나무에 꽃이 잘 피는 마을은 흉년도 피해간다고 대거리했다. ●보드랍고 환한 숨결을 가진 나무 “나무마다 제 빛깔에 맞는 숨결이 있는가 봐요. 이 이팝나무의 숨결은 유난히 보드랍고 환하지 않아요? 마을 노인도 이 나무의 부드럽고 넉넉한 숨결을 닮은 듯해요.” 노인이 지나가자 동행한 시인 최인서(36)씨가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최 시인은 노인이 남긴 이야기에 남도 농부 특유의 넉넉함이 담겼다고 했다. 이 마을이라고 해서 딱히 쪼들릴 때가 없었던 건 아니겠지만, 언제나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게 이팝나무꽃의 풍요를 닮았다고 덧붙였다. 최 시인은 세상의 모든 나무를 대지에 우뚝 선 “햇빛과 비와 바람의 집 한 채”(‘나무와 나’에서)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시(詩)에서처럼 시인은 고향에 돌아와 오랫동안 쌓인 도시 생활의 객수를 달래려는 듯 평안한 몸짓으로 나무 줄기부터 나뭇가지와 나뭇잎, 그리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잎 한 장까지 놓치지 않고 차곡차곡 마음 깊은 곳에 담아냈다. 400살 정도로 짐작되는 평중리 이팝나무는 키가 18m나 되는 큰 나무로, 땅에서 솟아오른 줄기가 둘로 나뉘어 자랐다. 두 개의 줄기 중 하나는 곧게 서고, 다른 하나는 중심에서 약간 벗어나는 듯 비스듬히 오르다 다시 곧게 섰다. 비스듬히 솟은 줄기가 중간 너머쯤에서 오래전에 부러진 것은 아쉽지만,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깨뜨리지는 않았다. 미추(美醜)에 대한 느낌과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평중리 이팝나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듯하다. 이팝나무 중에서 가장 먼저 1962년에 천연기념물(제36호)로 지정한 것도 그래서일 거다. 너른 들이 훤히 내다보이는 이팝나무 그늘에 정성껏 세운 정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것도 평중리 이팝나무의 운치를 더해 준다. 농촌 마을에 어울리는 이팝나무와 정자의 풍경은 평화와 풍요를 갖춘 우리네 농촌의 전형적 풍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대풍(大豊)을 예감할 만큼 꽃이 활짝 피어났을 때의 광경이라니. 해마다 이 즈음이면 손가락 꼽아가며 농부가 보내 올 꽃소식을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농촌의 풍경을 살갑게 하는 나무 오랜만에 고향 땅에 와서 햇빛과 바람의 집을 찾은 듯, 시인은 만개한 이팝나무꽃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오래도록 나무 앞을 떠나지 못했다. 다시 도시로 돌아가야 할 시인은 고향 이팝나무꽃의 은은한 향기를 마음 깊은 곳에 고이 담아 두려는 듯 마냥 경건한 눈길로 나무를 어루만졌다. 시인의 날숨과 나무의 들숨이 하나 되는 풍경을 행복한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마을 안쪽에서 털털거리는 경운기 엔진 소리가 들려 왔다. 순간 나무와 시인이 고요하게 나누던 낮은 숨결이 흐트러지고, 농촌의 정겨운 일상이 나무 곁에 스며들었다. 경운기를 이끌고 나오는 농부의 얼굴에는 이팝나무꽃 을 닮은 순백의 빛이 찬란하게 반짝였다. 바로 내게 봄마다 꽃 소식을 전해주는 농부 이순옥씨였다. 농부의 경운기가 살짝 멈춘 이팝나무 아래로 달려가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었다. 활짝 피어난 이팝나무꽃 아래에서 환하게 반기는 이씨의 밝은 표정에 이팝나무꽃 향기가 살포시 배어 나왔다. 글 사진 순천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전남 순천시 승주읍 평중리 634. 호남고속국도 승주 나들목으로 나가자마자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600m 가면 도로가 둘로 나뉜다. 왼쪽 길은 새로 낸 도로이고, 오른쪽은 평중마을로 이어지는 옛 도로다. 오른쪽 도로 270m 전방에 이팝나무와 작은 정자가 보인다. 나무 앞 길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안쪽에는 자동차를 세울 공간이 넉넉지 않으니 정류장 근처에 자동차를 세우고 나무에 다가가는 게 좋다. ‘평중리 35번지’라고 한 문화재청의 천연기념물 자료는 틀렸으니 주의해야 한다.
  • 한국현대사학회 출범…초대 학회장 권희영 교수

    한국현대사학회 출범…초대 학회장 권희영 교수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술모임인 한국현대사학회가 20일 오후 1시 30분 서울교대 에듀윌센터에서 창립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초대 학회장에 선임된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창립 대회사에서 “우리가 누리는 물적 풍요와 다원적 시민사회는 그네들(우리 할아버지와 부모 세대)의 피와 땀이 씨앗이 되어 거둔 결실”이라면서 “그럼에도 우리 지식사회의 한국현대사 연구는 이런 성취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현대사학회는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제대로 조명하자는 취지에서 ‘한국의 현대사학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이날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김학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보정석좌교수는 ‘한국현대사학의 과제’라는 기조강연에서 한국현대사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일차 사료 발굴에 주력 ▲한국현대사에 대한 세계사적 안목에서의 접근 ▲일차 사료에 대한 교차 점검 ▲정치적·이념적 편향으로부터의 역사해석 왜곡에서 벗어나기 등 네 가지를 제시했다. 김명섭 연세대 교수는 ‘한국현대사 인식의 새로운 진보를 위한 성찰’이라는 논문에서 “반공주의라는 인식틀에 맞서서 현대사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했던 노력은 역설적으로 ‘반반공’이라는 새로운 인식틀을 만들어냈다.”면서 “냉전시기 반공이 절대적 기준이 된 반공주의가 학문을 억압했다면 도그마가 된 ‘반반공’ 역시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른바 진보 좌파 진영이 북한의 3대 세습독재나 정치범수용소의 참상에 대해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김일성에 대한 한국 지성계의 인식적 궤적은 반공주의와 반반공주의를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연상시킨다.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 경력을 직시하되 그것이 공산주의에 입각한 것이었다는 점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문화마당] 밴드음악의 부활을 기대한다/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마당] 밴드음악의 부활을 기대한다/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가수의 노래를 TV에서 보는 것과 공연장에서 대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축구 경기를 TV 중계로 보는 것과 경기장에 가서 보는 것과의 차이로 설명한다면 좀 이해가 쉬울 것이다. TV 중계는 공을 드리블하는 선수 중심으로 화면을 잡는다. 선수들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TV를 통해서는 결코 볼 수 없다.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역동적인 부딪침을 볼 수 없으니 오밀조밀한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간파하기는 어렵다. 결국 그 열광적인 분위기를 체험하기 힘들다. 라이브 공연도 마찬가지다. TV를 통한 가요 프로그램 시청은 어쩔 수 없이 가창자 중심으로 클로즈업된다. 가수의 표정과 가창력 이외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연주자들의 격정적인 연주도 필요 없게 된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유심히 보면 무대 위의 연주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반주 음악으로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그나마 몇개 남지 않은 라이브 프로그램에서 라이브로 연주하는 사운드를 고집하는 시청자들은 음악을 듣는 귀가 그만큼 상향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나는 가수다’를 현장에서 볼 수 없느냐는 부탁을 많이 받는다. TV에서 느껴지는 감동을 현장에서 느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 감동은 가창자를 빛나게 하는 편곡과 연주력이 뒷받침하고 있어서다. ‘나는 가수다’ 진행 방식에 대한 지적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수다’를 애청하는 시청자들의 생각은 내로라하는 가창자들이 그간 자신들이 애창해 왔던 히트곡을 또 다른 방식의 편곡으로 절창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우러짐에서 오는 감동은 형언하기 어렵다. 가창과 연주가 어우러졌을 때의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아이돌 그룹이 시장을 잠식하던 때가 엊그제였다. 장르의 다양성이 토착되었다고 단언할 수 없는 과도기지만 이러한 기성 가수들의 음악 향연이 시장의 또 다른 돌파구를 뚫을 수 있는 초석이 되어야 한다. 아이돌 그룹 시장이 득세하던 음악 시장은 신인 발굴 프로그램과 기성 가수들이 주축이 된 음악 프로그램으로 그 기류가 바뀌어가고 있다. 그래도 못내 아쉬운 건 록 중심의 밴드 음악이 여전히 뒷전이라는 점이었다. 1980~90년대 융성했던 밴드 음악이 2000년대 이후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비주얼 중심의 장르 편향을 조성한 미디어의 상업성도 한몫 했다. 밴드 음악이 사랑을 받지 못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출중한 연주자들의 배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밴드 음악이 활황이었을 때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연주자들이 배출되었다. 그것은 음악산업적으로 큰 힘이 되었던, 부정할 수 없는 역사다. 그러한 밴드 음악에 대한 아쉬움들이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되었다. 다음 달 초 한 공중파 TV에서 아마추어 밴드들의 대축제가 벌어진다. 그간 우리 대중음악사에 유례가 없었던 대규모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서바이벌 TOP 밴드’가 가세함으로써 장르 간의 균형을 더욱 갖추게 되었다. 밴드의 음악적 열정과 진정성을 기치로 내건 이 프로그램은 보컬 위주의 음악 트렌드를 바꾸겠다는 야심찬 기획으로 음악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음악 코치제를 채택한 ‘서바이벌 TOP 밴드’는 백두산, 신대철, 정원영, 체리필터 등이 가세하고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전태관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음악의 열정을 담은 리얼리티 음악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자부했다. 이제 음악시장은 새로운 전환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외형적으로는 장르 간의 다양성이 담보되는 추세다. 자리를 잡았다고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음악을 듣는 대중의 입장에서는 더욱 풍요로운 선택권을 가지게 된 셈이다. 이를 통해 우리 대중음악 수용자의 음악듣기도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간 만끽하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을 통해 음악을 듣는 즐거움의 나래를 마음껏 펼친다면 우리 음악 시장의 미래도 새로운 출구가 열릴 것이다. 그것이 기대가 아니라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
  • 최창식 중구청장 “명품도시 중구 도약의 원년 만들 것”

    최창식 중구청장 “명품도시 중구 도약의 원년 만들 것”

    “올해를 ‘명품 도시’ 도약의 원년으로 삼겠습니다.” 17일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린 중구청장 취임식에서 최창식 구청장은 “품격 있는 도시, 살고 싶은 중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주민 3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 구청장은 ▲권역별로 특화된 미래 도시 ▲찾아가서 나누는 맞춤 복지 ▲인재를 키워내는 바른 교육 ▲풍요롭고 활기찬 지역경제 ▲세계로 열려 있는 문화 관광 ▲구민과 함께하는 참여 행정 등 6대 구정 운영 계획을 밝혔다. 그는 먼저 “지역별 여건과 잠재력에 따라 관광, 패션·디자인, 애니메이션, 디지털 인쇄 등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의 허브로 육성하겠다.”면서 “남산 고도 제한 완화와 청소차 차고지 이전, 역세권 고밀 복합 개발, 약수 고가차도 철거 등 주민 숙원 사업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남대문·동대문 등 전통 시장을 야시장, 액세서리, 건어물 등으로 특성화해 국제적 관광 명소로 발전시키겠다.”고 덧붙였다. 교육 정책과 관련해서는 “명문 학교를 집중 지원·육성하고, 방과 후 학교의 강사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 학업 능력을 끌어올리고 사교육비 부담도 덜겠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원효대사의 화쟁(和諍·모든 대립적인 이론과 논쟁을 화합으로 바꾸려는 불교 철학) 사상을 기본으로 구정을 운영하겠다.”면서 “잦은 선거 등으로 갈라진 민심을 통합하고 화합하기 위해 애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구민들과 토요일마다 정기적으로 만나 소통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중구 발전을 위해 다양하고 전문적인 의견을 나누고 수렴하는 ‘미래 중구 100인 포럼’도 꾸리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취임식 뒤 충무아트홀 1층 컨벤션센터에서 주민들과 취임 축하 떡 케이크 절단식을 갖고 중구의 발전을 거듭 다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中 전통문학 소재로 명맥” “韓 문학적 풍요는 허상”

    ‘전통 가치의 붕괴, 문학 형식의 파괴’ ‘근대문학의 위기’라는 홍역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겪고 있는 한국과 중국의 시인, 소설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1~12일 ‘전통과 현대, 디지털 시대의 문학’을 주제로 중국 시안(西安)에서 열린 제5차 한·중 작가회의에 참석한 소설가 자핑와(賈平凹), 장웨이(張煒), 시인 옌안(閻安) 등 중국 작가 40여명과 소설가 김주영, 성석제, 은희경, 시인 김기택, 장석남 등 한국 작가 24명은 서로의 시와 소설을 낭독하고, 문학의 길을 걷는 즐거움과 힘겨움을 나눴다. 특히 이들은 중국문학과 한국문학이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문학의 위기’라는 화두를 놓고 열띤 논의를 진행했다. 소설가 자핑와는 “변화의 시기 작가의 사명은 오로지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한국과 중국 두 나라 작가들이 각자 문학의 동질성과 상이성을 분명히 확인할 때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문제를 극복하는 데 방법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지적했다. 특히 중국 문단에서는 기존 전통 문학의 성과와 가치, 의의가 부정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큰 데 반해 한국 문단에서는 상업적인 문학의 범람으로 부풀려진 외형을 더욱 경계하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기조발제에 나선 문학평론가인 양러성(楊樂生·48) 시베이대(西北大) 문과대 교수는 “중국의 현대 문학이 소설의 이념뿐 아니라 창작 기법까지 서양 소설의 영향을 받으면서 전통문학과 단절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면서도 “중국의 전통문학은 형식은 바뀌었을지언정 그 주제와 소재는 현대문학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고 말했다. ‘사기’ ‘수호지’ ‘묵자’ ‘장자’ ‘유림외사’(儒林外史) 등이 품고 있는 무궁무진한 서사는 마오둔(茅盾), 자핑와, 모옌(莫言) 등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오생근(65) 서울대 불문과 교수는 “한창 얘기하다가 이제는 수면 아래 가라앉아 버린 듯한 ‘문학의 위기’라는 문제의식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양국 작가들이 실증적으로 검토해 볼 때”라고 말을 뗐다. 오 교수는 “문학의 양적 팽창과 상업적 문학 풍토의 과잉이 문학정신의 실종을 낳고 궁극적으로 문학을 죽음의 상태로 몰고 간다고 볼 수 있다.”면서 “모든 문학적 풍요로움은 허상에 불과하며 대중의 감상성과 속악한 취향에 영합하는 현실을 부정할 때 비로소 문학의 제 역할찾기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안(중국)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1) 평창 운교리 천연기념물 밤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1) 평창 운교리 천연기념물 밤나무

    세상살이에는 변해야 할 것이 있는 만큼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세월 따라 빠르게 변하는 사람살이가 있는가 하면, 예나 제나 제 모습을 잃지 않는 자연이 있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사람이 있다. 대개 10년쯤이면 사람이 살던 집의 풍경이 바뀌거나 그 안에 살던 사람이 달라진다. 그러나 수백 년을 꼼짝 않고 살아온 나무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그 무상한 변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은 제 살림을 꾸려간다. 혹시 사람살이를 풍요롭게 도와주는 나무라면 그의 깊은 나뭇결에 동화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살가운 감동이 담기기도 한다. “이 나무 앞에서 태어나고 자랐지요. 시집 가서 잠깐 동안 재 너머 마을에서 살다가 다시 돌아왔으니까, 오십 년 넘게 저 나무에 기대어 살아온 거나 다름없어요. 그동안 나무는 많이 컸겠지만, 내가 보기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토종 밤나무로서는 가장 큰 나무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의 아름다운 산골마을 운교리. 지방도로변 한적한 식당 ‘들림집’의 주인 최정자(54)씨는 밤나무 쪽으로 창문이 난 방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때 ‘밤나무집’으로 더 잘 알려졌던 이 집은 마방(馬房)이었다.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의 요지인 이곳은 조선시대에 운교역창(雲橋驛倉)이 있었다. 당시 최씨의 집은 말을 이끌고 지나던 상인이나 나그네가 하룻밤 쉬어 가는 주막이자 말들이 쉬는 곳이었다. 집의 뒷동산에 우뚝 서 있는 밤나무는 생김새만으로도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큼 크고 우아한 자태로 자란 나무여서, 한눈에도 오래 보존해야 할 자연문화재로 여겨지는 나무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밤나무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식당 집 뒷동산 밤나무’로만 이야기했다. 십년 전 처음 이 나무를 찾아보았을 때만 해도 나무 곁에는 최씨 내외가 버섯을 키우기 위해 쌓아둔 원목들이 즐비하게 쌓여 있었고, 나무 뿌리 부분은 비좁은 돌 축대로 갑갑하게 막혀 있었다. 나름대로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방책이었지만, 오히려 나무의 생육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안타까운 상태였다. 이 밤나무가 차츰 세상에 알려지면서 마침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2008년 겨울이다. 우리 토종 밤나무로서는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라는 가치가 인정된 것이다. 최근 나무 뿌리를 답답하게 하던 돌축대를 허물고, 땅을 고른 뒤, 주변을 깔끔하게 정비했다. 천연기념물로서 대접이 달라진 것이다. 최씨는 가문의 자랑인 나무를 나라에서 잘 지켜 주게 돼 마음이 든든하다고 한다. ●조선시대부터 ‘영명자’라고 알려진 나무 운교리 밤나무의 키는 14m가 넘고, 뿌리 부분에서 잰 밑동의 둘레는 6m가 넘는다. 키나 줄기보다 굉장한 것은 사방으로 넓게 펼친 가지들이다. 동서로는 25m를 훌쩍 넘었고, 동산의 경사면을 타고 있는 남북 방향으로는 20m를 넘었다. 이 정도면 나라 안의 밤나무 가운데 운교리 밤나무의 규모와 견줄 나무가 없다. 밤나무는 감나무만큼 우리네 시골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나무 자체를 보기 위해 키우는 느티나무나 소나무와는 다르다. 대개의 경우 밤나무는 오로지 열매를 얻기 위해 키운다. “그네를 세 개씩이나 맸어요. 어린 아이들 타기 좋게 낮은 가지에 하나를 매고, 다른 두 개는 좀 커서 어른들이 뛸 수 있는 그네를 맸지요. 사철 내내 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밤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가지에 그네를 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밤송이의 가시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들기 어려워서다.최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같은 크기와 나이의 밤나무가 네 그루나 더 있었다고 한다. 모두가 큰 나무였는데, 밤 송이가 바닥에 깔리면 옆의 밭에서 일하기가 어려워 다른 나무들은 모두 베어내고 그 중 가장 잘 생긴 지금의 나무 한 그루만 남겨 놓았다고 한다. “밤송이가 무성하게 달리는 가을에도 사람들이 모였지요. 밤이 많이 열려서 식구들이 필요한 만큼 먹어도 넉넉하게 남아서, 집안 어른들은 아무나 주워 가도록 했어요.” 세종실록지리지에 평창을 밤의 특산지로 기록했을 만큼 인근에서 자라는 밤나무는 질 좋은 밤을 생산하기로 유명했다. 밤골, 밤고개라는 땅이름이 남아 있는 것도 이를 증거한다. 그 가운데에도 특히 운교리 밤나무는 맛 좋은 밤을 맺는 나무로 이름이 나 있었다. ‘영명자’(榮鳴玆)라는 특별한 별명으로 이 나무를 부른 것은 조선시대 때 마방이 있던 시절부터였다고 한다. 이름 난 밤나무인 만큼 찾아오는 손님은 사람뿐이 아니다. 그 중에 가장 부지런한 건 청설모다. 밤이 맺힐 즈음이면, 이른 아침부터 나무를 찾아와 찍찍거리는 청설모 소리에 잠이 깰 지경이라고 한다. ●오래도록 변치 말아야 할 자연 문화재 사람들의 뜻에 맞춰 열매를 많이 맺으며 젊은 시절을 보낸 밤나무는 생장 에너지를 일찍 소진해 수명을 오래 유지하기가 어렵다. 대개의 다른 유실수와 마찬가지 이치다. 하지만 운교리 밤나무는 37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된 밤나무다. “우리 나무가 오래도록 잘 지켜졌으면 좋겠어요. 나 혼자 돌보기에는 너무 크고 좋은 나무잖아요. 또 내 집이 앞을 가려서 나무 풍경을 해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무를 더 잘 보이게 하고, 잘 보존할 수만 있다면 평생 살아온 집이지만 내놓을 수 있어요. 나는 이 마을을 못 떠나요.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 밤나무가 바라다보이는 이 근처로 옮겨 가서 나무를 바라보며 살 겁니다.” 최정자씨의 이야기에는 태어나서 50년 동안 스스로의 삶을 지켜온 한 그루의 나무가 변함없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게 담겼다. 오래도록 변하지 말아야 할 나무를 위해 필경 또 다른 변화를 거치게 마련인 사람이 한 걸음 물러서겠다는 이야기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앞에 살아온 ‘아낌없이 주는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살이의 지혜다. 글 사진 평창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강원 평창군 방림면 운교리 36-2. 영동고속국도의 새말나들목으로 나가서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6㎞를 조금 더 가면 안흥 면사무소와 찐빵마을이 나온다. 여기에서 1㎞ 남짓 가면 안흥초등학교 앞의 삼거리에 닿는다. 평창 방면으로 가는 오른쪽의 산길을 타고 16㎞쯤 가야 평창 운교리에 이른다.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지는 한적한 산길 도로 왼편으로 ‘들림집’이라는 식당이 나온다. 나무는 식당 뒷동산에 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0) 남해 난곡사 느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0) 남해 난곡사 느티나무

    봄바람에 실려 온 편지 한 장 달랑 들고 먼 길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이 마치 조상 모시듯 정성으로 보호하는 나무’라며 할아버지 댁이 있는 시골의 정자나무를 소개한 제자의 편지다. ‘송글송글’이라는 유쾌한 이름의 여(女)제자는 편지에서 “마을 사람들은 농사가 잘될지 아닐지까지도 나무를 보고 짐작한다.”며 나무가 농사를 비롯한 모든 살림을 관장하는 큰 어른 같은 대상이라고 했다. 송양은 여러 각도에서 손수 촬영한 사진까지 첨부했다. 나무가 있는 곳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 은진 송씨 집성촌인 경남 남해군 난음리 난음마을이다. ●女제자가 보낸 편지 속의 느티나무 송양이 편지에서 그려낸 것처럼 느티나무는 마을 앞의 너른 논을 거느리는 듯한 마을 수호목의 융융한 위용을 가졌다. 나무의 풍광을 더 근사하게 하는 건 나무 곁에 서 있는 ‘난곡사’라는 한 채의 아담한 사당 건물이다. 난곡사는 고려 후기에 성리학의 체계를 완성한 유학자 백이정(1247∼1323)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지역 유림들이 세운 사당이다. 난곡사와 느티나무, 그리고 그 앞으로 넓게 펼쳐진 들녘은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난음마을이 정신과 물질 모두의 풍요를 누리는 아름다운 마을임을 짐작게 한다. 송양은 편지에 마을 사람들이 “느티나무의 잎이 예쁘게 잘 돋아나면 풍년이 들고, 잎이 잘 나지 않으면 흉년이 들 것”을 예측한다고 썼다. 오랜 경험을 통해 이뤄진 믿음이겠지만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느티나무에 잎이 나는 계절은 농사를 시작하는 때다. 곡물의 씨앗이 뿌리를 내려야 하는 이 즈음의 날씨는 한 해 농사를 쥐락펴락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느티나무의 잎이 무성하게 돋아난다는 건 곡식의 씨앗이 뿌리를 튼튼하게 내릴 수 있을 만큼 날씨가 좋다는 이야기다. 풍년을 예감할 수 있는 기미다. 그래서 이 같은 이야기는 난음마을뿐 아니라 큰 나무가 서 있는 농촌 마을에서라면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내내 나무를 바라보며 그 그늘 아래서 산다고 해도 되지요. 농사일이 바빠지면 모두 저 나무 앞에 모여들지요. 한여름에는 나무 그늘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선답니다.” 마침 느티나무 앞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노인이 나무 전체에 푸른 잎이 골고루 돋아나는 느티나무를, 풍년을 예감하듯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젊은 시절 대처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사는 송동우(77) 노인이다. ●마을 생활의 중심인 정자나무 농사일과는 무관했을 송양도 마을을 생각할 때마다 맨 먼저 나무가 떠오른다고 했다. “어릴 때 할아버지 댁에만 가면 사촌 형제들과 나무 곁에 나와서 놀았어요. 나무에 기대어 숨바꼭질도 하고 기어오르기도 했지요.” 마을 어귀는 사람들의 모든 들고 남이 스쳐 지나는 곳이다. 나무는 아침저녁으로 들녘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마을을 찾아온 어린 아이까지 긴 세월 내내 모두를 품어 안았다. 느티나무보다 ‘정자나무’로 더 많이 불리는 나무는 얼핏 보아도 난음마을의 중심이자 가장 상쾌한 쉼터임을 알 수 있다. 크고 듬직해서만이 아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 놓은 평상은 여느 마을의 평상과 달리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담겼다. 무성하게 펼친 느티나무 가지를 지붕 삼아 공 들여 지은 정자다. 평상 앞에는 은진 송씨의 조상인 우암 송시열의 흉상이 자존심처럼 꼿꼿하게 세웠다. 얼핏 보아도 이 자리가 마을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 “대전 인근에 살던 조상들이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곳곳을 다니다가 여기까지 내려온 거죠. 이곳에 터를 잡은 게 700년은 됩니다.” 송 노인은 느티나무가 마을이 처음 이뤄졌을 때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나무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군청에서 세운 보호수 표석에는 나무를 650살로 표시했지만 실제 나이는 그보다 더 오래됐다는 이야기다. 700년이라는 긴 세월은 나무 밑동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정성껏 충전재로 메운 커다란 구멍이 나무가 지내 온 긴 세월의 풍상을 짐작하게 한다. 더 안타까운 건 나무 줄기의 윗부분이 부러졌다는 것이다. 하릴없이 나무는 더 이상 키를 키우지 못하고 옆으로만 널찍하게 가지를 펼쳤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담겨 편지에서 송양은 “할아버지는 옛날에 이 나무의 뿌리를 타고 개울을 건너서 이웃 마을로 마실 다녔다고 하셨다.”고 썼다. 물론 송양의 할아버지가 타고 넘었다는 나무 뿌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여느 느티나무 못지않게 큰 나무를 놓고 누구라도 보탤 수 있는 말이지 싶다. 옛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나무는 무척 크다. 가지는 사방으로 20m쯤 펼쳐져 있고 키는 19m, 가슴 높이에서 잰 줄기 둘레는 6m나 된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나무는 실제 크기보다 더 커 보인다. 700살 된 느티나무 곁에 200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는 까닭이다. 마치 한 뿌리에서 솟아나온 것처럼 붙어서 자라는 두 그루는 한 그루의 풍성한 나무처럼 보인다. 두 그루의 나무가 가까이에서 자라는 게 생육에 좋을 리 없다. 그러나 700년의 삶이 지어 낸 넉넉한 품은 젊은 나무를 너그러이 품어 안았다. 두 그루가 전혀 다툼 없이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를 이뤘다. 나무를 한참 바라보자니 송양의 편지에 담긴 속뜻이 살아 오르는 듯하다.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마다 맨 앞자리에 떠오르는 나무의 존재감을 되새기면서 송양은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를 짚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가슴에 품은 젊은 여제자의 편지에서 느티나무 잎새의 연초록 향기가 알싸하게 차올랐다. 글 사진 남해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우리사회 소통점수 평균 41.8점 ‘낙제’

    우리나라 국민들이 생각하는 ‘소통 점수’는 낙제점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임장관실은 지난 2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성인남녀 1000여명씩 모두 2000여명을 대상으로 사회 현안 및 가치관에 대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들이 매긴 우리 사회의 소통관계 평균점수가 100점 만점에 41.8점에 불과하다고 4일 밝혔다. 정부와 국민 사이의 소통 점수는 46.5점, 국회와 국민 사이의 소통 점수는 37.1점에 불과했다. 특히 우리나라 사회지도층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65.2%나 됐다.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 4분이었다.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건강(48.9%)과 가족의 행복(33.9%)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풍요가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한 경우는 8.1%에 그쳤다. 지금 자신이 행복하다는 응답은 82.7%로 매우 높게 나왔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가는 데 만족한다는 응답도 78.3%나 됐다. 응답자 가운데 가장 많은 43.0%는 양육비 부담이 저출산의 원인이라고 답했다. 저출산·고령화 관련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86.6%였지만, 이를 위해 추가로 세금을 거둬야 한다는 응답자는 20.9%에 그쳐 조세 부담에 대한 거부감을 보였다. 양성평등과 관련해 남성이 우월한 사회라는 응답이 48.8%나 됐다. 하지만 남성이 가사를 전담하는 데 공감한다는 의견도 69.4%로 매우 높게 나왔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코난·케로로… 어린이 친구 몰려온다

    코난·케로로… 어린이 친구 몰려온다

    어린이날이다. 10일까지 징검다리 연휴도 이어진다. 나들이를 가기에는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거나 일터를 떠날 수 없는 부모들도 있다. 인파에 밀려다니는 놀이공원이 최상의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 케이블방송에서는 5~10일 연휴에 ‘방콕’할 수밖에 없는 꼬마 시청자를 겨냥한 특집 프로그램을 가득 마련했다. 애니메이션채널 투니버스는 인기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5~9일 오전 9시에 편성한 ‘미니 방학’ 특집을 마련했다. 5일에는 지난해 극장가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명탐정코난 극장판:천공의 난파선’이 방송된다. 명쾌한 추리와 액션으로 사건을 해결했던 코난이 살인 박테리아를 앞세운 테러조직 ‘붉은 샴고양이’, 영원한 라이벌인 ‘괴도 키드’와 삼각대결을 펼친다. 6일에는 프랑스 개봉 당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제치고 3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가족영화 ‘꼬마 니꼴라’가 찾아온다. 50년간 전 세계 1800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7일에는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며 힘을 키워가는 ‘아쿠아쿠’와 맞서는 케로로와 소대원들의 피할 수 없는 싸움을 그린 ‘케로로 극장판: 기적의 사차원섬’이, 8일에는 어린 시절 엄마를 여읜 하루카가 엄마의 유품을 찾기 위해 펼치는 모험담을 담은 ‘잃어버린 마법의 섬’이 방송된다. 9일에는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 ‘마음이’가 부모에게 버림받은 소년과 순수한 우정을 나누는 영화 ‘마음이’가 전파를 탄다. 애니메이션 전문채널 애니맥스는 5일 ‘포켓몬스터DP 극장판 시리즈’ 중 ‘신들의 싸움 시리즈’로 불리는 ‘디아루가vs펄기아vs다크라이’ ‘기라티나와 하늘의 꽃다발 쉐이미’ ‘아르세우스 초극의 시공으로’ 등 세 편을 모두 방송한다. 시간을 지배하는 디아루가와 공간을 지배하는 펄기아의 화려한 전투 장면이 일품인 ‘디아루가vs펄기아vs다크라이’는 오전 8시에 방송된다. 지난해 12월 극장에서 개봉된 ’포켓몬스터DP 시리즈’의 최신작 ‘아르세우스 초극의 시공으로’는 오전 9시 30분에 방영된다. 풍요로운 마을 미케나에 전해 오는 아르세우스에 관한 전설을 중심으로 신들의 전투를 잠재울 비밀이 그려진다. 밤 11시에 방영되는 ‘기라티나와 하늘의 꽃다발 쉐이미’는 스토리 전개상 ‘디아루가vs펄기아vs다크라이’와 이어진다. 디아루가와 기라티나의 다툼 속에서 현실세계와 반전세계 모두를 구하기 위해 지우와 비밀의 포켓몬 쉐이미가 함께하는 모험이 펼쳐진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뽕똘’

    이용철의 영화만화경]‘뽕똘’

     지난해 말 전북독립영화제에 들렀다가 ‘어이그, 저 귓것’이란 영화를 보았다. 제목부터 신기했다. 궁금해 물어보니 제주도 사투리로 ‘어휴 저 바보 같은 녀석’을 뜻한다고 했다. 사투리가 너무 심해 한글 자막이 없으면 알아듣기가 힘든 영화지만, 향토적 특징들은 ‘어이그, 저 귀것’의 재미를 오히려 배가시킨다. 노는 아저씨 세 명이 좌충우돌하면서 보내는 이야기가 너무 웃겨서 연신 배를 움켜쥐게 된다.  그런데 그냥 재미있기만 했다면 오멸(감독)이란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을 게다. ‘어이그, 저 귓것’은 소소한 웃음 곁으로 가슴 뭉클한 순간을 터뜨릴 줄 아는 영화다. 제주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인 만큼 ‘지역영화’로서의 가치도 적지 않다. 게다가 믿을 수 없는 사실 몇 가지를 전해 들었다. ‘어이그, 저 귓것’의 제작비는 고작 800만원. 오멸이 몇 달 만에 500만원으로 두 번째 장편 ‘뽕똘’(사진)을 내놓았다는 거다(오멸은 현재 세 번째 장편 ‘이어도’를 끝낸 상태다).  6일 폐막하는 전주영화제에서 ‘뽕똘’을 보았다. 뽕똘은 제주 모슬포에 사는 백수건달이다. 그는 ‘똥파리’에 감명을 받아 감독과 배우로 거듭나기로 한다. 제작비는커녕 카메라나 각본도 없으면서 영화를 찍겠다는 그를 보면 기가 찬다. 그는 폐허가 된 건물의 모퉁이에 임시 사무실을 차려 배우 오디션을 연다.  오디션이라고 해 봐야 참가자는 감독 본인을 포함해 달랑 세 명에 불과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셋 다 오디션에 합격하고, 휴식 차 서울에서 내려온 남자와 지능이 의심스러운 동네 처녀와 뽕똘은 영화 제작을 개시한다. ‘뽕똘’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뽕똘’은 ‘어이그, 저 귓것’과 느슨하게 연결된 영화다. 중심 인물이 다시 등장하고(당연히 같은 배우가 연기한다), 전편에서 음악에 매달렸던 인물이 갑자기 영화 쪽으로 관심을 돌리며, 산간 마을의 이야기와 바닷가 동네의 이야기가 대구를 형성한다. 오멸은 주변의 평범한 것에서 낯설고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도록 하는 귀한 재주를 지녔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은 물론 평소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을 통해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생기발랄한 이야기를 보여 주고 들려준다.  만약 ‘한량영화’라는 게 있다면 그 장르에서 오멸은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다. 나는 오멸의 영화에서 프랑스의 알랭 기로디와 뤼크 뮐레, 일본의 나카에 유지가 만든 영화의 여유, 행복, 에너지, 웃음의 전복성을 함께 느낀다. 생산과 효율을 미덕으로 삼는 시대에 오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전혀 풍요롭지 않은 인물들이 뿜어내는 풍요의 기운이 실로 대단해서 탁 트인 정서를 제공한다. 낙원이라고 두둔하진 않겠지만, 도시의 삶이 잃어버린 가치를 일정 부분 회복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전편에서 비 맞으며 돌아오는 인물의 뒷모습이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면, ‘뽕똘’에선 삼방산 전설을 아날로그 판타지로 꾸민 장면이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멸 영화의 내용보다 형식에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영화의 엄숙주의와 중압감에서 벗어난 자유분방한 태도,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드라마, 궁핍함이 꽃피운 아름다움, 신선한 슬랩스틱 연기 등은 피곤에 찌든 기성 영화를 해방시킨다. 개봉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영화평론가
  • 강북구 “소질계발 장학재단 연내 발족”

    강북구 “소질계발 장학재단 연내 발족”

    “교육의 본질은 인성 계발, 즉 소질을 찾는 것입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2일 꿈나무 키움 장학재단을 연내 발족시키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기존 재단이 단순히 학업우수생을 발굴하는 것이라면 이는 음악, 체육, 미술 등의 분야에서 재능이 탁월한 인재를 키운다는 점에서 다르다. 소질을 갖고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포기하는 유아·청소년들의 꿈을 이뤄 준다는 계획이다. 최근 장학재단 운영 및 지원조례를 제정·공포해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정상 운영을 위한 기본재산을 50억원으로 잡았다. 구는 매년 1억~2억원 이상 지속적으로 예산을 출연한다. 박 구청장 자신도 월급 일부를 기부할 예정이다. 그만큼 재단에 거는 기대가 크다. 상반기에 발기인 및 추진준비위원회를 만든다. 향후 공정한 수혜 대상자 선정을 위해 학자들로 소질심사위원회도 구성한다. 그는 “후원은 걱정하지 않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면서 “혜택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커서 성공하면 그 혜택을 돌려줄 것이라 믿는다. 바로 피드백”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유치원생을 둔 학부모들을 만난다. 올가을 어머니독서클럽을 발족하기 위해서다. “소질 계발의 첫걸음은 책 읽기라고 봐요. 어머니들이 먼저 책을 읽으면 아이들도 따라하지 않겠어요. 유소년 때부터 자기주도학습을 체질화하는 거죠. 두고 보세요. 명문사립고 유치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게 독서클럽일 것입니다.” 어머니독서클럽이 발족되면 작가와의 대화, 토론회, 독서지도인사 초청 강연, 작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그는 또 독서클럽의 활성화를 위한 하드웨어를 구축했다. 우선 10억여원을 들여 유비쿼터스(U) 도서관 시스템을 마련, 30만 장서를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했다. U도서관은 개별적으로 운영되는 공공도서관을 통합해 주거지와 가까운 도서관이나 지하철역 등에서 전체 도서관의 소장자료를 검색·대출·반납할 수 있는 24시간 무인 시스템이다. 독서동아리 홈페이지도 만들었다. 도서 정보와 독서감상문을 서로 공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강북문화정보센터 홈페이지와 연계, 지역도서관 도서 검색도 가능하다. 박 구청장은 “아이들에게 김소월을 읽고 삼국지를 읽는 습성을 길러 준다면 노년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주민들에게 물음을 던진다고 했다. “여러분은 어떤 자녀를 원하십니까.”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성북 아리랑 축제’ 개막

    ‘성북 아리랑 축제’ 개막

    성북구가 2일 조선시대 때 누에치기의 풍요를 기원하며 왕비가 집전했던 선잠제향(先蠶祭享)을 재현하는 행사를 시작으로 ‘2011 성북 아리랑 축제’에 들어갔다. 선잠은 누에치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신(神)이고, 제향은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이날 선잠제향에선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선잠단지에 이르는 약 800m 구간에서 취타대가 함께하는 왕비와 공주의 웅장한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2011 성북아리랑축제는 이날 선잠제향 외에 ▲3일 성북구민의 날 기념식과 책 읽는 도시 선포식, 구민 체육대회 및 장기자랑(월곡 인조잔디축구장) ▲4일부터 28일까지 북페스티벌(지역 도서관) ▲11일부터 6월 3일까지 찾아가는 예술무대 행복공감(구청 잔디마당, 성북천 바람마당 등) ▲22일 제4회 성북다문화음식축제(성북동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로 한 달여간 계속된다. 920-3048.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읽기] (5) ‘북학의’ 박제가

    [고전 인물로 다시읽기] (5) ‘북학의’ 박제가

    박제가(그림·1750~1805)는 ‘서얼’로 태어났다. 조선시대 서얼은 신분상의 제약과 차별 때문에 실력을 갖추어도 기량과 경륜을 펼치기 어려웠다. “우리를 믿지 않고 소인이라 하니, 무한한 마음속 계책 누구에게 말해 볼까?”라는 고민은 박제가에겐 숙명적인 것이었다. 박제가는 양반이면서 양반이 아닌, 경계인으로서 그 ‘존재성’에 대해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박제가는 사회적 차별에 굴하지 않았다. “고독하고 고매한 사람만을 골라서 남달리 친하게 사귀고, 권세 많고 부유한 사람은 일부러 더 멀리하며”(정유각집 ‘소전’편) 차라리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패기와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시대와 불화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당대의 사람들이 지당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인습에 저항했다. ‘아교로 붙이고 옻칠을 한 눈꺼풀’을 떼어내고 천하를 응시하여 ‘심지를 열고 이목을 넓히라.’고 외쳤다. ●이덕무 “답습한 시는 가짜 시다” 박제가는 출세에 연연하지 않았다. 대신 당대 최고의 지성들과 나누는 우정의 향연 속에서 학문을 배우고 시와 글씨와 그림을 연마했다. 박제가에게 친구는 ‘기운을 나누지 않은 동기요, 한 집에 살지 않는 부부’였다. ‘나와는 둘이면서 하나인’ 이덕무, 박지원, 홍대용, 유득공, 이서구, 서상수, 유금, 백동수와 같은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고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런 친구들이 있어 박제가는 세상의 시와는 다른 시를 거침없이 쓸 수 있었다. “세대마다 시가 있고 사람마다 시가 있는 법이어서 시는 서로 답습할 수 없다네. 답습한 것은 가짜 시라네.”라고 채찍질한 이덕무와 같은 친구가 그의 곁에 있었다. 1700수가 넘는 시 작품엔 박제가와 이 멘토들의 우정의 숨결이 함께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박제가는 고군분투했다. 틀에 박히고 고루하고 진부한 시와 문장을 혐오하며 나만의 글쓰기를 찾아 나섰다. 당시 선비들은 두보의 시를 최고로 여겨 배웠고, 다음은 당나라 시, 그 다음은 송나라·금나라·원나라·명나라 시를 배웠다. 박제가가 보기에 전범에 매달리는 글쓰기는 남이 한 말의 찌꺼기나 줍는 행태에 불과했다. 자기 시대의 현장을, 자기의 말로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시요 문장이었다. 역설적으로 나만의 글쓰기를 개척하는 것이 진정 고인의 글쓰기에 다가가는 길이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는 것이 모두 시다. 사계절의 변화와 온갖 만물의 웅성거리는 소리, 그 몸짓과 빛깔, 그리고 음절은 그들 나름대로 존재하고 있다.”(‘형암선생시집서’·炯菴先生詩集序) 지금-여기 살아 있는 만물 각각의 미묘한 움직임과 그 지극한 경지를 포착하는 것. 이것이 시의 출발이다. 사물에 대한 미세하고도 예리한 관찰은 시인에게는 절대적인 지상과제였다. 그랬기 때문에 당대의 문장을 순정한 문체로 되돌리겠다는 정조의 강력한 의지에 부응하여 반성문을 제출하면서도, ‘자송문’(自訟文)에 어울리지 않게 반성은 하지 않고 항변에 열을 올렸다. “소금이 짜지 않고, 매실이 시지 않고, 겨자가 맵지 않고, 찻잎이 쓰지 않음을 책망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그런데 만약 소금, 매실, 겨자, 찻잎을 책망하여 너희들은 왜 기장이나 좁쌀과 같지 않으냐고 한다든지, 국과 포를 꾸짖어 너희는 왜 제사상 앞에 가지 않느냐고 한다면 그들이 뒤집어 쓴 죄는 실정을 모르는 것입니다.”(‘비옥희음송인’·比屋希音頌引)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은 다양한 맛의 문장! 이것은 박제가가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글쓰기의 보루였다. 이는 당대의 복고, 혹은 의고문에 저항하는 방식이었으며, 더 나아가 만물의 보편 원리나 질서를 따르는 당대 성리학의 이념을 무용하게 만드는 길이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을 동일하게 만드는, 오직 하나의 방식만을 강요하는 그 시대 ‘권력’에 맞서는 방법이었다. ●청나라 선진 문물 도입이 부국강병의 길 박제가는 29세 때인 1778년 사은사 채제공의 종사관 자격으로 중국에 가게 된다. 곳곳에서 맞닥뜨린 청나라의 문명은 실로 눈이 부실만큼 풍요롭고 세련되고 화려했다. 청나라는 더 이상 오랑캐의 나라가 아니었다. 게다가 기균·이조원·반정균·옹방강·나빙·이정원 등 청나라의 학술부흥운동을 주도한, 명망 있는 지식인들이 일개 조선의 선비와 흉금을 터놓고 학문을 논하자, 그들의 자유로움과 벽 없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박제가는 패러다임을 완벽하게 전환한다. 가난한 조선, 비문명국 조선의 갈 길은 북벌이 아니라 북학이라고. 진정한 오랑캐가 누구인지 먼저 분간하고 우리 안에 있는 진짜 오랑캐를 물리치기 위해 청나라를 힘써 배워야 한다고. 박제가는 ‘가난’을 싫어했다. 권력에 아부하기 싫어 ‘차라리’ 가난하게 산 것이지 가난을 편안하게 여긴 것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 장인 이관원이 검소하게 살라고 말하자 이렇게 대꾸했다. “침향목과 단목으로 저를 조각하고 색실로 저를 수놓아 열 겹으로 싸서 간직하여 길이 후세에 전해 사람마다 보게 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집에서 소쿠리 밥에 표주박 물을 마시며 해진 솜옷을 입고 살면서도 좋고 나쁜 것을 알지 못하는 듯 지내는 것이 어찌 본마음이겠습니까?” 박제가에게 ‘안빈낙도’는 자신을 속이는 말이었다. 명분에 매이지 않고 욕망에 솔직했던 박제가. 청나라에 다녀온 이후 그는 확신했다. 조선의 빈곤 타파와 갑갑한 습속의 개혁은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워야만 가능함을. 이 때문에 연행을 다녀온 직후 ‘북학의’를 저술한다. 이 책에는 청나라의 수레, 기와, 벽돌, 수차, 화폐, 종이, 의복, 문화예술 등을 적극적으로 배워 조선을 부강한 문명국으로 이끌고 싶다는 박제가의 패기가 넘쳐난다. “꽃에서 자란 벌레는 그 날개나 더듬이조차도 향기가 나지만 똥구덩이에서 자란 벌레는 구물거리며 더러운 것이 많은 법이다. 사물도 본래가 이러하거니와 사람이야 당연히 그러하다. 빛나고 화려한 여건에서 성장한 사람은 먼지 구덕의 누추한 처지에서 헤어나지 못한 자들과는 반드시 다른 점이 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우리나라 백성의 더듬이와 날개에서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북학의’) 가난하고, 학문은 고루하고, 견문은 좁고, 문화는 촌스럽기 짝이 없는 조선. 박제가는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조선이 풍요롭고 세련된 문명 세계가 되기를, 조선 백성의 더듬이와 날개에서 문화의 향기가 넘쳐나기를. 박제가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는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 문화적으로도 향기 나는 사회다. 재화의 유통이 활발하고, 사치가 가능하며, 문화적 수준도 상당한 사회. 박제가는 문화예술과 사치품에 관해 논할 때 도덕주의적 관념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예술의 아름다움과 사치스러움은 재화와 물품을 마르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 순간 조선의 선비 박제가는 소박하고 질박한 생활을 표상했던 유학적 가치와 완전히 결별한다. 박제가는 더 나아간다. 조선이 빠르게 청나라에 맞서는 문명국이 되려면 언문이 일치되는 중국어(북경어)를 사용하잔다. 영어공용론에 맞먹는 상상력이다. 중국어를 제2의 국어로 사용하자는 제안은 실로 급진적이다. 그에게는 조선 땅이 너무 좁았으며 조선의 현실이 너무 답답했다. 문명세계를 향한 박제가의 욕망은 중국어공용론으로 거리낌 없이 내달린다. 이런 정황상 북벌을 절대 이념으로 수호했던 당대 선비들이 이 열혈 북학자에게 당괴(唐魁) 혹은 당벽(唐癖)이라는 비방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으리라. ●너무 조숙한 세계주의자… ‘나’를 둘러싼 사회와 세계는 늘 살아 움직이고 변화한다. 어떤 고정된 틀에 얽매여 변화를 보지 못하고 인습적 규범에 갇혀 있다면 그건 진흙 소상을 모방하는 일과 같을 것이다. 박제가는 그 단단한 습속의 벽과 온몸으로 맞서 싸웠다. 비겁하지 않게 직설과 독설로 맞섰다. 그러나 박제가는 지나치게 조숙한 문명주의자요, 세계주의자였다. 북학파 중에 가장 급진적이었고 가장 앞서 나아갔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문명세계를 향해 돌진했다. 어쩌면 조선의 ‘현재’와 ‘새로운’ 문명 사이를 조율할 수 있는 천리안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를 비호해주던 정조의 죽음 직후 박제가는 대비 김씨와 노론의 영수 심환지를 비방하는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를 당한다. 그는 외롭게 고투했다. 그가 희망한 바, “1000년 뒤에도 1000만명의 사람들과 다른 한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 길진숙 수유+너머 강원 연구원
  • [발언대] 친환경 식탁으로 시작하는 ‘맛있는 기적’ /김현숙 청강문화산업대학 에코라이프스쿨 교수

    [발언대] 친환경 식탁으로 시작하는 ‘맛있는 기적’ /김현숙 청강문화산업대학 에코라이프스쿨 교수

    전 세계 어디에서도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공통적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환경 친화적인 먹거리,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식량생산 확보는 국가의 안보와도 맞먹는 최첨단 전략산업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럼 안전한 먹거리와 참살이를 위해 바로 시작할 실천방안은 무엇일까. ‘푸드 마일리지 운동’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식품 수송에 의한 환경부하량 파악에 필요한 지표를 푸드 마일리지라고 한다. 즉, 생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까지 수송량(t)에 이동거리(㎞)를 곱한 수치를 말한다. 1994년 영국의 환경운동가 팀 랭이 처음 주장했는데, 음식재료의 이동거리를 줄여 에너지 소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각 나라에서 활발하게 실천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100마일 다이어트 운동’, 즉 100마일 안에서 생산되는 식품만 먹자는 운동이 활발하다. 그 거리 안에서 밀이 생산되지 않아 빵을 먹지 못하게 되자, 자연스레 다이어트 효과까지 생겨 ‘다이어트 운동’이라는 별명도 붙여졌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지산지소 (地産地消) 운동’, 즉 그 지역에서 난 식재를 그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뜻의 ‘지산지소’ 운동이 활발하고, 미국에서는 ‘로컬푸드 운동’이 활발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살림이 ‘가까운 먹거리 운동’을 펼치고 있다. 착한 밥상, 건강한 식생활을 중심으로 한 친환경적 참살이, 에코라이프의 실천으로 맛있는 기적을 이루어 나간다면, 우리의 삶이 나날이 행복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지난 30여년간 우리나라는 앞만 보고 ‘빨리빨리’ 정신과 ‘다이내믹 코리아’를 외치며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어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공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었고, 한강의 기적과 IT 강국의 브랜드 파워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숨 고르고 진정한 성공스토리, 인간다운 삶의 질을 높이는 ‘맛있는 기적’을 이루어야 할 때이다.
  • ‘구두쇠’ 400억원 복권 당첨자 4년 후 결국…

    ‘구두쇠’ 400억원 복권 당첨자 4년 후 결국…

    캐나다 토론토에서 가장 많은 복권당첨금 수혜자로 알려진 한 남성이 복권에 당첨된 뒤에도 구두쇠처럼 살다 최근 심장마비로 숨진 사실이 알려졌다. 캐나다 일간지 토론토선의 10일자 보도에 따르면 그라함 갤리뉴(57)라는 이름의 남성은 2007년 3700만 캐나다 달러, 우리 돈으로 42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복권에 당첨됐다. 복권에 당첨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전과는 다른 풍요로운 소비를 시작하는 반면, 그는 낡은 임대 아파트에서 환경이 약간 개선된 곳으로 이사만 했을 뿐 여전히 구두쇠 같은 삶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복권당첨으로 인해 대박 부자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로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쓸쓸했다. 그가 사망했을 당시 장례식을 맡은 업체의 관계자는 “신고를 받고 장례식을 치렀지만 가족이나 친구 어느 누구도 오지 않은 이상한 장례식이었다.” 면서 “심지어 사망소식을 알릴 곳이 없어 난처했다.”고 전했다. 갤리뉴가 사망한 현재까지 누가 재산을 관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지만, 그의 생활을 미루어 봤을 때 거액의 유산이 잠자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병이 있던 관계로 일부 금액을 병원비로 사용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가 인근 병원에 기부를 했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거의 유일한 친구로 알려진 톰 베일리는 “그는 평소 자신의 가족이나 어떤 사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말하기 꺼려했다.”면서 “함께 살던 여자가 있긴 했지만 소식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한 남성이 거액의 복권당첨금에도 불구하고 쓸쓸하게 인생을 마감했다.”며 “그의 남은 재산의 향방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책꽂이]

    ●스마트 리더, 핵카톤하라(김영한·김영안 지음, 북클래스 펴냄) 핵카톤은 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다. 서로의 아이디어를 해킹하듯 교환하며 마라톤하듯 협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구글을 위협하고 있는 페이스북에서 채택하는 기업 지배 문화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우리 핵카톤하자!”고 말한 뒤 몇 시간이건 며칠이건 편안하게 의견을 교환하며 결론을 도출한다. 책은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CEO 마크 저커버그의 리더십 핵심 등을 꼼꼼히 소개하고 있다. 1만 3800원.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부키 펴냄) 건축가 17명이 말하는 자신의 삶과 일, 즐거움, 뿌듯함 등을 담고 있다. ‘제1호 기적의 도서관’인 순천어린이도서관을 지은 정기용, 세계 최고층 건물인 말레이시아 KLCC 쌍둥이 빌딩을 완공한 김종훈 등 우리 세대 뛰어난 건축가들의 활약상이 우선 눈에 띈다. 하지만 우리가 피상적으로만 느꼈던 건축이라는 일이 펼쳐내고 있는 철학적 배경과 그 결과물들을 따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피디, 기자, 의사, 디자이너, 요리사, 만화가 등에 이은 부키의 전문직 리포트 시리즈 중 하나다. 9500원. ●세계사 속의 미스터리(기류 미사오 지음, 박은희 옮김, 삼양미디어 펴냄) 역사를 흥밋거리로만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고 학문의 틀 안에만 고정시켜 놓는 것도 너무 거리를 멀게 만든다. 투탕카멘 묘, 히틀러, 네로, 마릴린 먼로, 클레오파트라를 비롯해 소설 속 모티프를 준 ‘철가면’ 등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며 역사 인물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과 그 빈틈 사이를 들여다보고 있다. 제목에는 ‘미스터리’라는 호기심 가득한 표현을 붙였지만, 실은 학자들의 오랜 연구 과제이자 대중들의 관심이 절묘히 만나는 지점들이다. 1만 5000원. ●웰빙 파인더(톰 래스·짐 하터 지음, 성기홍 옮김, 위너스북 펴냄) 어떤 숭고한 이념·철학도, 신성의 가치를 믿는 종교도, 복잡한 숫자 속의 경제·경영학도 모두 개인과 집단의 행복 추구로 환원된다. 책은 소득과 건강 외에도 우리의 행복을 결정짓는 요소들을 밝히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즐기고 좋아하는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지, 내가 속한 지역과 조직에 참여하고 있는지 등의 중요성을 따진다. 어느 것 하나에 쏠리지 않고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삶이 풍요로울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미 갤럽연구소가 작성한 행복 보고서다. 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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