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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칼럼] 서울대행진을 기다리며/김민희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서울대행진을 기다리며/김민희 도쿄특파원

    출생의 조건을 선택할 수 있다면 195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몇날 며칠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줄곧 해왔다. 리안 감독의 영화 ‘테이킹 우드스톡(2009)’ 때문이었다. 토익 점수나 통장 잔고 같은 현실적인 문제는 아랑곳없이 고고하게 평화와 사랑 같은 대의(大義)를 논하는 20대는 얼마나 낭만적인가. 어찌 됐든 반전평화운동이라는 것도 1950년대 미국의 풍요로움 위에서 꽃이 핀 것이니, 나이로 따져 88만원 세대의 맨 앞쯤에 있는 내 처지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달 22일 열린 ‘도쿄대행진’을 취재하며 이번에는 한국인으로서 일본이 부러웠다.<서울신문 9월 23일자 15면 참조> 도쿄의 심장이라는 신주쿠에 1000여명의 일본인이 모여 한목소리로 외친 것은 다름 아닌 ‘차별 없는 세상’이었다. 일본도 사회적 부조리와 갈등이 왜 없겠냐마는, 이날 모인 이들에게 그보다 더 심각하게 다가온 것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최근의 분위기였다. 과격 우익 단체의 혐한 시위가 기승을 부리는 통에 집회의 주제는 재일 한국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증오 발언)를 비판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들은 “재일 한국인, 여성, 성적 소수자,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는 일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대의를 위해 1963년 워싱턴 평화대행진을 본뜬 ‘도쿄대행진’에 참가한 것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시위를 접했지만 이런 종류의 시위는 처음이었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최근 10년간 서울에서 열린 집회의 대부분은 명확한 이해관계와 요구사항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굵직한 것만 나열해도 2002년 미군 장갑차 사건으로 불거진 반미 집회, 2004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 반대 집회,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 등이 그렇다. 이런 집회가 나쁘다고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보다 한 차원 높은 인권이나 평화를 위해 많은 사람이 집회를 벌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한때 한국 사회도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처럼 대의를 위해 떨쳐 나서던 시절이 있었다. 무수히 많은 이들의 희생을 통해 일궈낸 성취도 있다. 일본 사회운동가들이 부러워 마지않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그렇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국 사회는 구성원의 인권과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인색해졌다. 이 정도의 인권이라면 괜찮다는 사회적 합의가 생긴 것일까, 아니면 ‘먹고사니즘’, ‘우리끼리즘’에 경도돼 나나 내 가족의 안위와 관계가 없다면 다른 사람의 인권이나 전 세계의 평화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것일까. ‘도쿄대행진’과 단순히 비교하자면 서울 명동에 1000명의 인파가 모여 “차별은 하지 말자, 함께 살자”고 외치며 오직 평화만을 위해 집회를 연 적이 과연 있었던가. 한 나라의 ‘국격’을 재는 척도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 국격의 척도는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도 국적, 인종, 성별을 떠나 타인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인권 감수성이 있는 나라인지 여부다. 도쿄대행진을 보고 내 마음속에서 일본의 국격은 조금 올라갔다. 조만간 서울대행진이 조직돼 그 집회를 취재하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haru@seoul.co.kr
  • 결혼 앞둔 예비 부부, 대규모 결혼박람회 ‘웨딩앤 웨딩박람회’로 오세요

    결혼 앞둔 예비 부부, 대규모 결혼박람회 ‘웨딩앤 웨딩박람회’로 오세요

    편리한 결혼 준비의 길잡이, 제15회 웨딩앤 웨딩박람회(www.weddingnfair.com)가 국내 결혼박람회 가운데 최대 규모로 10월 12~13일 학여울역 SETEC에서 개최된다. 웨딩컨설팅 기업 ㈜웨딩앤아이엔씨가 주최·주관하는 이번 결혼박람회에는 스튜디오, 드레스, 헤어&메이크업, 예물, 한복&예복, 허니문, 폐백, 웨딩홀 등 150여 개에 달하는 관련 업체가 참가한다. 웨딩에 관한 모든 것이 한 자리에 총 망라된 만큼 일일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원스톱으로 결혼 준비를 할 수 있는 편리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참관객들은 각 업체 부스에서 상품을 점검하고 본인의 스타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예식을 위해 웨딩플래너와 상담도 가능하다. 예물 부스에서는 상담 받은 참관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다이아몬드를 선물하며 웨딩홀 부스에서는 추첨을 통해 특급호텔 1박 숙박권, 브런치권 등을 경품으로 제공한다. 웨딩앤아이엔씨에서 마련한 넉넉한 경품은 예비 부부의 마음을 풍요롭게 할 예정이다. 추첨을 통해 프라다, 루이비통 등 명품백을 제공하며 매 30분마다 최신형 벽걸이 드럼세탁기를 증정한다. 웨딩 패키지 계약을 하는 커플 선착순 100명에게는 필립스 소형가전 중 1종이 제공되며 계약자 전원에게 테디베어 인형, 신부수첩 등을 증정한다. 이 밖에도 업체 부스에서 스티커를 받아 빙고판 2줄을 완성한 참관객에게는 셀프 와인, 내추럴썬프로텍션 등을 선물하며 웨딩드레스&턱시도 무료 피팅, 기념 촬영이 가능한 포토존, 웨딩 메이크업 강좌 및 시연 등 참관객들이 직접 참가할 수 있는 행사도 이어진다. 웨딩박람회 관계자는 “결혼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업체와 이벤트를 구성해 예비 신랑 신부에게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거의 모든 부스에서 이벤트를 실시하는 만큼 많은 참관객들이 다양한 정보와 함께 사은품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15회 웨딩앤 웨딩박람회와 같은 기간, 동일한 장소에서 명품신혼여행박람회도 함께 개최된다. 몰디브, 푸켓, 보라카이, 하와이, 발리, 하와이부터 칸쿤, 유럽 등 거리가 먼 곳까지 각 지역별 전문가의 상담을 통해 예비 신혼부부가 허니문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한다. 또한 허니문 비용이 부담스러운 예비 부부를 위해 신혼여행 비용 10개월 무이자 이벤트도 실시한다. 코사무이 상품의 경우 매월 89,900원, 푸켓 상품의 경우는 매월 79,900원만 부담하면 낭만이 가득한 신혼여행을 만끽할 수 있다. 한편 ㈜웨딩앤아이엔씨는 2011년 ,2012년 2년 연속 가장 많은 고객이 이용한 국내 1위의 웨딩컨설팅기업으로 특히 지난해에는 2012년 약 7,500쌍의 웨딩을 진행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길섶에서] ‘경아’/문소영 논설위원

    “안아줘요, 꼭 안아줘요.” 소설가 최인호의 타계 소식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이장희의 “깊은 어둠 속~”으로 시작하는 ‘사랑의 노래(추워요)’라는 노래 속에서 코맹맹이 소리로 ‘경아’가 “추워요, 내가 추워요”와 같이 말하는 약간 우스운 대사들이었다. 어떤 맥락인지는 모르나, “경아, 이렇게 누운 것도 오랜만이군” 하는 신성일의 느끼한 대사도 기억났다. 1974년 최인호 원작의 영화 ‘별들의 고향’은 서울관객 46만여명을 동원한 ‘대박’ 영화였다. 이 영화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역시 젊은이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경아와, 경아의 코맹맹이 소리(성우 고은정), 신성일에 대한 기억은 시대를 초월한 이 OST 덕분이다. 호스티스 영화의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비판을 받는 ‘별들의 고향’은 산업화로 물질적인 풍요를 얻었으나 정치적·사회적으로 좌절한 1970년대 순진한 청년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최인호라는 한 소설가의 죽음으로 개발독재시대와 통기타, 생맥주, 본격적인 이농(離農)으로 양산된 호스티스들의 1970년대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듀!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문화마당] 책, 아날로그적 감성 속으로/이애경 작가

    [문화마당] 책, 아날로그적 감성 속으로/이애경 작가

    일본 도쿄 서부에 시모키타자와라는 동네가 있다. 아기자기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많고 후루기라고 불리는 구제 옷과 액세서리를 파는 상점들이 한 집 건너 하나씩 장사를 하고 있는 개성 넘치는 동네다. 역 출구를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 지역이 확연히 분위기가 다른데,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와 가로수길을 조합해 놓은 곳이라고 할까. 며칠 전 시모키타자와에 있는 한 북카페에 들르게 되었다.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서너 평 되는 작은 도서관인데 작가, 사진가, 문화예술가 등 스무 명의 지각 있는 지식인들이 뜻을 모아 토론과 문화 활동을 하기 위해 마련한 아지트다. 이곳에는 인종차별문제, 베트남전쟁, 공해문제 등이 중요시되던 1960~70년대의 대항문화(counter culture)에 관한 책들을 모아놓았는데, 당시 출간된 책들부터 현재 출간된 것까지 다양한 책들이 작은 공간의 세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조금 열린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니 열띤 토론을 하던 두 여인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학생으로 보이는 한 명은 2층 다락에서 열심히 골라놓은 책들을 읽고 있었다. 영업시간은 저녁 6시부터라 커피를 판매할 수는 없지만 책은 마음껏 읽어도 좋으니 구경하라고 하면서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다시 조곤조곤 말을 섞는 토론에 들어간다. 잠시 뒤 다락에 있던 청년이 내려와 다시 책을 고르기 위해 손가락으로 책 목록을 훑는다. 우리나라에 있는 북카페를 몇 번 가봤고, 북카페로 포장된 프랜차이즈 카페들도 가봤지만 책들은 카페의 분위기를 우아하고 클래식하게 만들어주는 장식품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언제나 안타까웠다.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책을 읽기보다는 노트북을 켜놓고 공부를 하거나 업무에 관계된 일을 한다. 우리나라 한 지자체에서는 시민들을 위해 야심차게 북카페를 만들었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정작 시민들에게는 외면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카페에 있던 운영인에게 물으니 이곳에는 책을 읽으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고, 새로운 출판 아이템을 찾아가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요새 일본 젊은이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고 스마트폰에 허비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참 큰일이라며 일본의 독서 풍토 변화를 심각한 투로 내게 전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눈에 비친 일본은 여전히 책을 읽고 있었다. 동네마다 소형서점이 살아 있고, 간다 지역의 중고서점가는 활기를 띠고 있으며,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서너 명씩은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가고, 책이 사라져 가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비교해볼 때 일본에는 아직도 책이 사람들 손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찰스 엘리엇은 ‘책은 가장 조용하고 변함없는 벗이자,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고 가장 현명한 상담자, 가장 인내심 있는 교사’라고 했다. 완연한 가을로 접어드는 요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친구 한 명을 만들면 어떨지. 책장에 꽂힌 지 몇 년이 넘은 베스트셀러도 좋고, 최근 친구에게서 추천 받은 책도 좋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차가운 액정이 아니라 손가락에 착 안기는 아날로그 종이의 향기와 감촉이니 말이다.
  • 이야기, 그 속에 ‘사람’이 있다

    이야기, 그 속에 ‘사람’이 있다

    “이야기라는 게 문장을 뽑아내는 시추기 같아요. 이야기에는 힘이 있으니까, 흘러가는 대로 문장이 나와요.”  소설가 성석제(53)는 천생 이야기꾼이다.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는 소설의 신(神)이 있어서 내가 그의 손가락에 쥐어진 펜이 된 느낌이 든 적도 있었다”고 말할 정도다. 이어지는 능청과 웃음, 풍자와 어처구니는 그의 이야기에 ‘성석제표’라는 뚜렷한 인장을 새긴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의 표현을 빌리면 “이야기를 흘려보내는 자기만의 물길”을 발견한 셈이다.  2008년 ‘지금 행복해’ 이후 5년 만에 펴낸 소설집 ‘이 인간이 정말’(문학동네) 역시 삶에 대한 풍요로운 재담을 들려준다. 책에 실린 8편의 단편에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법한, 그러나 사소하고 애매해서 문학의 시간만이 비로소 붙잡을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물들은 작은 접촉 사고 뒤에도 한몫 챙겨 보겠다는 심산으로 보험 회사에 거짓 전화를 걸고(‘론도’), 남의 글로 백일장에서 장원이 되고도 부상으로 나온 공책과 연필은 뻔뻔하게 챙겨간다(‘찬미(贊美)’). 표제작 ‘이 인간이 정말’은 맞선 장소에 나와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광설을 늘어놓는 백수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야기들은 물론 표면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느물스러운 중년 남자의 표정 뒤에는 뿌리 깊은 고독이 도사리고 있고, 소통은 부재하며, 경제적 욕망과 허영은 되풀이하여 충돌한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컸을 거예요. 세상 만물 가운데 결국은 사람.”  그러나 그는 다채로운 인간 군상을 그리면서도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고, 지금도 별로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에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 자체에 따라 그냥 춤추는 느낌”이며 “작은 이야기를 치밀하게 직조하는 것”이다. 그의 관심은 표면보다는 단면이고, 단면보다는 단면의 응력이며, 응력의 순간적 작용보다는 그것을 움직이는 바깥의 기제다. 그는 “호기심이야말로 소설의 근력”이라면서 “‘별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소설을 쓸 수 없다”고 덧붙인다.  “사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고, 하는 것이고, 들려주는 것이고, 듣는 것이죠. 여기 아무렇게나 앉아 있는 것 같지만 우리 몸의 피부가 중력에 대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이야기고요. 당연한 게 아니냐고 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게 왜 이렇지’라고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이야기할 거리는 엄청나게 많아져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적하려면 문학은 더 성찰적이고 분석적이고 흥미로워야 하죠.”  그는 이번 학기 10여년 만에 대학에서 소설 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조물주에게 세상을 창조하는 방법을 가르칠 수는 없다”면서 “소설이라는 게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꼴이지만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고 말해 주는 정도”라고 몸을 낮춘다. 1986년 문학사상에서 시 ‘유리 닦는 사람’으로 등단했고 1995년 문학동네에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시작했으니 글을 쓴 지는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가 “글쓰기의 비결은 원고료”라고 농담처럼 말할 때, 그의 말은 ‘글로 밥 벌어먹는 사람’의 윤리와 자존심을 슬쩍 드러낸다. “이야기는 솜사탕 같아서 부드럽게, 가볍게 써야 부풀어 오른다”는 그는 그동안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은 느려졌죠. 충분히 힘이 쌓이고 에너지가 응축될 때까지 더 많이 기다리고요. 마냥 내뿜는 식이 아니라 좀 신중해졌다고 할까요. 아이에서 어른이 됐다고 할까. 아니 어른까지는 아니고 아마 사춘기쯤 온 것 같네요(웃음).”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열린세상] 몸은 마음을 따른다/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열린세상] 몸은 마음을 따른다/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요즘 무릎이 아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뛰는 건 고사하고 걸을 때마다 무릎이 욱신거려 무척 힘들다. 올여름, 더위에 지쳐 축 늘어진 몸을 추슬러야겠다는 생각으로 헬스클럽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트레드밀 위를 천천히 걷는 것이 다였다. 그러다가 근육질의 몸을 자랑하는 젊은이를 보고서는 눈이 뒤집힌 것인지 나도 저런 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근 한 달 동안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죽으라 뛰었다. 상체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웨이트트레이닝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매끈한 근육질의 몸은 오간 데 없고 고장 난 무릎만 남았다. 9월 초에 학생들과 강원도로 2박 3일 답사를 가서도 무릎이 애를 먹였다. 근육질의 남성이 되려고 하다가 그리됐다는 말을 차마 제자들에게 할 수가 없었다. 속으로 끙끙 앓는데, 제자들은 선생님 괜찮으시냐고 자꾸 묻는다. 답사 첫날,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발 아래 보이는 민박집에서 자면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 소리에 잠을 설쳤다. 그런데 몸은 개운했다. 이튿날, 백담사에 들렀다가 하산 길에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내려왔다. 백담계곡을 끼고 두 시간 넘게 걷는 길이건만 무릎도 아프지 않고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만해마을에서 산 그림자를 끼고 잔 다음 날 아침, 숲의 알싸한 향기를 들이마시면서, 몸은 마음을 따른다는 것을 퍼뜩 깨달았다. 부끄러움이 확 일었다. 몸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강조해 오지 않았던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분필을 보여주면서 이게 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분필을 분필이라 하는 것은 문학적 상상력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삭막한 도심에서 자연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자작나무를 떠올릴 것이고, 광활한 우주를 지향하는 사람은 우주선을 떠올릴 것이라 말한다. 문학을 하려면 마음과 정신의 사려 깊은 시선이 눈과 귀의 기계적 반응보다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마음을 풍요롭게 가꾸는 것은 내팽개친 채 기계적인 몸의 날씬함과 우람함만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몸은 마음을 따른다는 생각이 들자,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이 갑자기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마음과 영혼의 순수함을 추구하는 문학 시간에 스마트폰 같은 기계 나부랭이를 만지느냐고 불호령을 내린 적이 있다. 그런 내가 요즘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지 못한다. 얼마 전, 지방에 갈 일이 있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을 켰다. 그런데 이 기계가 영 엉망이다. 나는 내 기억 속에 자리한 지도에 따라 운전을 했는데, 스마트폰은 자꾸만 경로를 이탈했다고 알려준다. 아마 새로 생긴 도로가 있어 지름길을 안내하는 모양인데, 나는 예전에 다니던 도로로 자꾸만 달린 것이다. 경로 이탈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혹시 내가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때, 최수철의 ‘내 정신의 그믐’이 떠올랐다. 인간을 기계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주인공이 자신의 순결한 마음과 욕망을 되찾고자 오지로 떠난다. 그 오지는 내비게이션에도 나타나지 않는 곳이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때 묻지 않은 마음과 욕망을 되찾아 새로 태어나고 다시 세상과 맞선다. 정보 사회에서 내비게이션 같은 기계에 길드는 한 결코 순수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없다는 것을 이 작품은 강조한다. 어느새 나도 정신이 그믐 상태가 된 기계 인간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이라는 시를 다시 읽는다. 일제강점기의 황폐한 현실을 거부한 채 백골이 되어 가는 자아가 하늘과 바람과 별이 있는 아름다운 혼의 고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학생들에게 이 시를 가르칠 때마다 시인의 고귀한 정신을 본받아 아름다운 혼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건만, 나는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린 채 몸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참으로 한심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의 뜻을 알아야 하는 지천명의 나이면 인생에서 가을 무렵일 텐데. 이쯤 되면 내 마음의 지도도 한 벌쯤 마련되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하늘의 뜻을 거역하고 ‘몸짱’에 미혹되었으니 무릎이 아플 수밖에. 무릎은 언제 좋아질는지.
  • [대한민국 지역브랜드 대상] 평가의 특징과 과제

    이번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성 확보였다. 이미지와 시장평가를 절반씩 반영했다. 잘 알려진 것과 무명에 가까운 것이 다양하게 섞일 수 있었던 이유다. 50%를 차지하는 이미지는 인지도 20%와 호감도 30%로 구성됐다. 시장평가에서 가장 손쉽게 정확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특산물이다. 명확한 시장가치 때문이다. 예컨대 횡성한우가 앞설 수 있는 것은 값이다. 다른 소고기와 비교하면 바로 나온다. 맛도 맛이지만 브랜드화 선두주자였던 덕도 있다. 쌀, 고추 등 농산물도 시장가치가 각각 달라 평가의 정확성을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살고 싶은 지역과 축제다. 이미지보다 외국인 방문객수와 교통망 등 실체를 확인하는 작업이 중요한 잣대이지만 시·군·구 데이터가 꼼꼼하지 않은 탓이다. 살고 싶은 지역은 공해, 교통 등을 크게 고려했다. 좀 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제시한 기준도 빌려와 적용했다. 얼마나 풍요로운가, 아름다운가, 편리한가이다. 자연이나 환경뿐 아니라 교육, 문화 등의 부분도 많이 반영했다. 서울지역 기초자치단체들이 강세를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캐나다, 일본, 영국 등은 해마다 살기 좋은 지역을 발표한다. 20년 훨씬 전부터다. 이종수 총괄위원장은 “살기 좋은 지역 선정은 국격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방문 후 실망하지 않게) 지역 이미지를 중시해 선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축제는 관람객 숫자가 주요 평가기준이지만 자치단체에서는 예사로 ‘뻥튀기’를 한다. 일일이 체크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이 위원장은 “실체를 정확히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엄격히 적용하겠다”고 다짐했다. 고희선(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축제 분과장은 “최대한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선정했으나 2차, 3차에서 평가대상이 좁혀지면 알맹이가 있는지, 결과물이 충실한지 직접 현장을 찾아 살피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바다의 죽음, 죽음의 바다

    바다의 죽음, 죽음의 바다

    [텅 빈 바다] 찰스 클로버 지음/이민아 옮김/펜타그램/452쪽/2만원 [플라스틱 바다] 찰스무어·커샌드라 필립스 지음/이지연 옮김/미지북스/470쪽/1만 8000원 위기에 처한 해양 생태계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파헤친 두 권의 책이 나왔다. 기업형 어업이 야기한 수산물 남획으로 멸종 위기종이 속출하고, 플랑크톤보다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양 먹이사슬을 교란하는 등 턱밑까지 다가온 바다의 재앙에 경고음을 울리는 현장 보고서다. 읽고 나면 식탁에 올라온 참치 캔 한 통과 물병 뚜껑 하나가 얼마나 바다를 위협하는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텅 빈 바다’는 영국의 환경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전 세계 바다에서 벌어지는 수산물 남획의 실태와 이로 인한 해양생태계 파괴의 실상을 치밀하게 취재해 낱낱이 고발한 탐사 르포다. 지금까지 해양생태계의 문제는 대부분 산업시설의 독성물질이나 핵폐기물 무단 방출 등 해양오염의 측면에서 다뤄졌을 뿐 남획에 관한 문제의식은 거의 제기되지 않았다. 구상부터 출간까지 13년이 걸린 이 책에서 저자는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알고 있던 남획의 폐해를 본격적으로 파헤친다. 저자가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취재한 남획의 실태는 실로 충격적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어항으로 꼽히는 뉴잉글랜드의 글로스터 항구는 한때 그물을 펼치면 갑판 위에 물고기 떼가 파도처럼 쏟아지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어획량 감소 탓에 도시 자체가 몰락했다. 세계에서 어종이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서아프리카 대륙붕의 어장은 선진국의 약탈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미지의 보고인 심해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몸에 좋은 ‘오메가3 지방산’을 얻기 위해 번식률이 매우 낮아 멸종 위험이 큰 물고기까지 마구 잡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원인은 인간의 탐욕이다. 대표적인 어업 방식인 트롤 어선들은 대형 그물들을 바다에 던져 주변 물고기를 싹쓸이한다. 현대 첨단기술로 무장한 기업형 어업이 횡행하면서 1950년대 해양에서 살았던 대어의 90%가 사라졌고, 세계의 어획량은 1988년부터 매년 77만t씩 감소해 왔다. 저자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양의 40배에 달하는 어류를 포획하고 있다”면서 “이대로 간다면 2048년쯤에는 어류 자원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경제적 이익에만 급급한 트롤 어선과 선주들뿐만 아니라 무능력한 과학자, 정보를 사실대로 공개하지 않고 국민을 우롱하는 정부기관, 선거 때마다 어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가난한 나라에서 자국 어선이 해적질과 다름없는 불법 어업을 저질러도 눈감아 주는 유럽 원양 대국들의 행태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또한 멸종위기 생선인 철갑상어나 참치 요리를 거리낌 없이 자랑하는 유명 요리사들과 생선을 먹을 줄만 알지 이런 사실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 소비자들도 풍요의 보고이던 바다를 쇠락하게 만든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2006년 영국에서 초판이 출간된 이 책은 루퍼트 머리 감독이 동명의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2009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책 말미에 보론으로 실린 그린피스 활동가 박지현씨의 글은 세계적인 원양어업 국가인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남획 실태를 돌아보게 한다. ‘플라스틱 바다’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해양오염을 다룬 책이다. 비슷한 종류의 책이 이미 여럿 나와 있어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저자가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를 최초로 발견해 플라스틱 해양오염 문제를 전 세계적으로 환기시킨 찰스 무어 선장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무어 선장은 1997년 북태평양을 항해하던 중 아름다운 수면 아래로 플라스틱 조각이 흩뿌려져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가 발견한 것은 훗날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라고 불리게 될, 한반도의 7배 크기에 달하는 지구상 가장 큰 쓰레기장이었다. 이 발견을 계기로 평범한 시민이던 무어 선장은 해양과학자이자 환경운동가로 변모한다. 그가 미국 각지의 환경운동가, 학자, 시민들과 함께 공동으로 연구한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실상은 충격을 넘어 공포로 다가온다. 1998년 처음으로 플라스틱 쓰레기양을 계량하기 위해 북태평양 한가운데서 무작위로 표본을 수집, 분석한 결과 플라스틱의 양은 플랑크톤보다 6배나 많았다. 10년 뒤인 2008년 조사에선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이 급증해 무려 46배에 달했다. 석유 추출물로 만든 플라스틱이 환경과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해양 플라스틱 오염은 앨버트로스와 바다거북 같은 동물들이 플라스틱을 즐겨 먹고, 바닷속 물고기들이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면서 해양 먹이사슬을 교란시키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해양 생물과 거의 비슷한 식습관을 가진 극지방의 이누이트족들에게서 화학물질 중독 증상이 나타나고 있는 현실은 해양 플라스틱 오염이 인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저자는 더 늦기 전에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를 모두 줄이는 방향으로 경제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커버스토리] 2030 공시생 늘자 원룸 품귀 vs 사시생 줄어들자 썰렁한 苦시촌

    [커버스토리] 2030 공시생 늘자 원룸 품귀 vs 사시생 줄어들자 썰렁한 苦시촌

    고시(高試) 하면 떠오르는 두 곳,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과 관악구 신림동은 국내 고시촌계의 양대 산맥이다. 7, 9급 국가공무원 및 경찰공무원 채용시험 등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노량진동에 밀집해 있다. 사법시험과 일명 ‘행정고시’(5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 채용시험) 합격을 바라는 수험생들은 신림동에 모여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고시촌의 명암이 뚜렷하게 엇갈리고 있다. 노량진 고시촌 주변은 갈수록 늘어나는 수험생들로 활기를 띠고 있지만 신림동 고시촌은 2017년 사법시험 폐지가 예정된 탓에 ‘사시생’이 감소하면서 과거의 명성을 점점 잃어 가고 있다. 신림동 주변 상권은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곳에 20년 가까이 머물러 있는 상인들은 격세지감을 토로한다. 한가위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20일 오후 2시 30분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뒤섞인 행렬이 역 계단을 뒤덮었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육교 너머로 유명 공무원 시험 학원이 눈에 들어왔다. 휴일이었지만 가벼운 반팔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가방을 멘 채 길을 걷는 수험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육교에서 동작경찰서가 위치한 길로 내려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니 각양각색의 수험생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노량진 고시촌의 명물로 자리 잡은 포장마차 컵밥집 중 세 군데가 문을 연 가운데 컵밥집 주변에는 서 있거나 앉은 자세로 컵밥을 먹는 수험생들이 가득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한 손에는 포장된 컵밥이 담긴 검은색 비닐봉지를, 다른 한 손에는 병 커피 두 개를 들고 이동하는 수험생도 있었다. 수험생 중 일부는 캐리어를 끌고 원룸과 고시원이 밀집한 노량진동 노량진로14길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휴학생 이모(26)씨는 2년 전부터 지방에서 국가직 9급 공무원 공채시험 직렬 중 검찰사무직 시험 과목을 공부하다가 지난달 말 노량진 고시촌으로 왔다. 현재는 노량진동의 한 공무원 시험 학원에 다닌다. 이씨는 “올해와 달리 다음 국가직 9급 공채 시험이 내년 4월에 실시될 예정이라 유명 강사 수업을 듣기 위해 노량진동에 원룸을 하나 얻었다”면서 “필수 과목, 특히 한국사 과목 수업은 한 반에 수험생 약 200명이 수강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노량진 고시촌 일대가 조용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직접 머물러 보니 주변에 PC방, 만화방, 노래방 등 수험생들을 유혹하는 시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이 많은 탓이었다. 이씨는 “학원 근처에 고깃집, 호프집 등 놀 곳이 많다”면서 “공부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 일부러 학원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언덕길에 있는 방을 구했다”고 전했다. 이씨처럼 시험일을 7개월 정도 앞두고 방을 구하러 부동산 공인중개소를 찾는 수험생 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 공인중개사 오모(59)씨는 “올 초 정부에서 경찰공무원을 2만명 증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한동안 원룸 품귀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면서 “이곳에서 중개업을 한 지금까지 2년 동안 20~30대 청년층 수험생 방문자 수가 계속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원룸 가격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지난해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을 받던 15㎡ 규모의 풀옵션 원룸이 올해는 월세가 5만원 더 올랐다. 오씨는 “공무원 시험 연령 제한이 폐지되면서 50대 장년층이 고시촌 방을 구하러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면서 “수요가 늘다 보니 기존 다가구 건물 내부를 리모델링해서 원룸으로 만드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날 노량진 고시촌을 서성이다가 신림동에 살면서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모형석(32·가명)씨를 만났다. 그는 현재 국가직 7,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모씨가 신림동 독서실에서 공부하지 않고 굳이 노량진까지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신림동 고시촌에 있는 독서실을 다니면서 우울증 증세까지 겪었어요. 알고 지내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칸막이가 놓여 있는 독서실 책상에서 2년 동안 공부하다 보니 답답하더라고요. 스트레스도 심했고요. 그렇다고 아는 사람이 많아서 노량진에 오는 건 아니에요. 이곳에 있는 학원의 개방된 자습실에 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요. 정신적으로 풍요롭다는 느낌도 들고요. 사람 냄새가 그립다 보니 여기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는 것 같습니다.” 모씨의 말은 신림동 고시촌의 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지난 23일 지하철 2호선 신림역 3번 출구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오후 2시쯤 ‘대학동(옛 신림9동) 고시촌 입구’ 정거장에 도착했다. 정거장 인근에는 과거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의 주된 모임 장소이자 다양한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비치해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서점 ‘그날이 오면’(1988년 개점)이 있었다. 서점을 운영하는 김동운 대표는 “비록 우리 서점에 고시용 수험서는 없었지만 예전만 하더라도 장시간 법전을 보다 잠깐 쉬는 차원에서 이곳을 방문해 책을 고르는 고시생도 더러 있었다”면서 “지금도 인근 서울대 학생들이 꾸준히 서점을 찾는 것과 비교한다면 이 주변의 고시생 수는 전보다 많이 줄었다. 그러면서 대학동 고시촌 풍경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이는 단순히 고시생 수 감소에서만 비롯된 일은 아니고 사회 운동에 앞장섰던 1980년대 말 당시 학생들이 갖던 문화와 지금의 학생들이 공유하는 문화가 달라진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경숙(66·여)씨는 대학동의 ‘녹두거리’에서 20년 가까이 빈대떡 장사를 해 오고 있다. 김 대표와 마찬가지로 전씨 역시 대학동의 변화를 곁에서 지켜본 ‘산증인’인 셈이다. “1990년대만 해도 식당에 들어오는 손님의 90%가 고시생이랑 서울대생이었어요. 특히 고시생이 많았죠. 게다가 1990년대 초 심야 영업 규제가 적용되던 시절 이곳 녹두거리 술집은 사실상 규제를 받지 않는 곳이었어요. 그렇다 보니 고시촌에 살지 않는 외부 사람들까지 야간에 모여드는 바람에 녹두거리 주변은 문전성시를 이뤘죠.”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로 고시생 수가 감소세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전씨의 이야기다. 대학동 고시촌의 변화는 사법시험 학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수험생은 “학원 강사들도 수업 중에 ‘예전보다 수강생 수가 확실히 많이 줄었다’고 얘기한다”면서 “사시생이 많았을 때는 반을 나눴었는데 지금은 합반을 할 정도”라고 전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건축·IT·음악… 쉽고 재밌는 다큐의 장

    건축·IT·음악… 쉽고 재밌는 다큐의 장

    사색의 계절 가을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찾아온다. 올해 10회째를 맞는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가 그것. 10월 18~25일 열리는 EIDF는 전 세계 23개국에서 출품된 54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고려대 KU시네마트랩, 건국대 KU시네마테크, 광화문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된다. 이 가운데 43편은 19~25일 EBS 채널에서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방송돼 안방에서도 볼 수 있다. ‘진실의 힘’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영화제의 특징은 전통적인 휴머니즘과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은 물론 음악, 건축, IT 등 다양하고 연성화된 소재를 다룬 팝 다큐가 많아 보다 쉽고 재미있게 다큐멘터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제 개막작은 에바 웨버 감독의 ‘블랙 아웃’이다. 전기가 부족한 서부 아프리카의 빈국 기니의 아이들이 낮에는 노동에 시달리고 밤에는 시험 공부를 하기 위해 공항이나 주유소, 부촌의 공원을 찾아다녀야 하는 가혹한 현실을 다룬 작품이다. 경쟁 부문인 페스티벌 초이스에는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많다. ‘구글 북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왼쪽)는 현재 1000만권의 책을 스캔해 인터넷상에 무너지지 않는 인터넷 도서관을 건설하고 있는 구글의 프로젝트를 통해 빅브러더의 출현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다큐멘터리다. ‘우리들의 닉슨’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백악관에서 물러난 닉슨 대통령의 최측근이 8㎜ 카메라로 닉슨의 일상을 촬영해 기존 언론에서 볼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이 밖에도 ‘게이트 키퍼’는 이스라엘의 3대 정보기관으로 꼽히는 신베트가 팔레스타인과의 대테러 전쟁의 실제 현장을 담은 자료와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전쟁의 뒷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월드 쇼케이스’ 부문에서는 최근 국제 뉴스 등을 통해 접한 사건들의 이면을 파헤치는 총 9편의 작품들이 초청됐다. 2011년 노르웨이 우토야 섬 총기난사 사건(‘우토야의 그날’), 아덴만의 소말리아 해적들(‘빼앗긴 바다:소말리아 해적 이야기’), 일본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쓰나미 후에 오는 것들’) 등이 대표적이다. ‘가족과 교육’ 부문에서는 알츠하이머로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아낸 ‘마리안과 팸’, ‘나의 어머니 그레텔’이 주요 작품이다. 올해 신설된 ‘도시와 건축’ 부문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모더니즘 건축 양식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 관한 ‘무에서 영원을 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상영되고 기술과 문명 섹션에서는 온라인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를 다룬 ‘위 약관에 동의합니다’와 9·11 테러 이후 유례없는 성장을 거듭한 이스라엘 군수 산업의 이면을 조명한 ‘세상에 없던 무기도 만들어 드립니다’가 눈에 띈다. 음악 다큐멘터리도 주목해 볼 만하다. 비틀스의 유일한 개인 비서이자 팬클럽 매니저였던 프레다 켈리가 들려주는 비틀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프레다, 그녀만이 알고 있는 비틀스’(오른쪽)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레오나르드 레텔 헴리히 특별전’도 준비됐다. 프레다 켈리는 EIDF의 초청으로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다. 헴리히는 ‘싱글 샷 시네마’라는 독특한 촬영기법을 선보이며 ‘태양의 눈’, ‘달의 형상’, ‘내 별자리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 3부작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감독이다. 특히 고려대와 연계한 이번 영화제에는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초빙해 국내 다큐 제작자와 영상 관련 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실무적인 제작과정을 강의하는 ‘EIDF 독 캠퍼스’도 열린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열린세상] 통상임금 논란과 삶의 질/강수돌 고려대 경영학 교수

    [열린세상] 통상임금 논란과 삶의 질/강수돌 고려대 경영학 교수

    대법원에서 통상임금 관련 심층 토론이 열렸다. 직접적으로는 갑을오토텍의 임금 및 퇴직금 관련 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판결하려는 시도다. 실은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때 대니얼 애커슨 GM 회장이 “한국GM의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요청함에 따라 핫이슈가 된 건이다. 현재 이 문제로 전국 130여 사업장이 소송 중이다. 기업 측은 이 소송이 총 38조원의 추가 부담(30만개 정도의 일자리 재원)을 지울 수 있다며 비용 부담론을 편다. 반면 노동계는 이미 대법원 판례가 있으며,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 문제를 풀고 노동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판례대로 하자고 한다. 논란이 뜨겁다. 원래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무 수당 등을 계산하는 기준으로, 기본급에다 ‘정기적·일률적’ 성격의 수당을 합친 것이다. 현 논란의 핵심은 과연 정기 상여금(보너스)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가다. 연장근로나 야간근로가 많은 한국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번 대법원 판결의 사회적 파장은 클 것이다. 사실 한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 검증받듯 미국을 방문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지만, 그 기회를 틈타 초국적 기업 대표가 일국 대통령에게 ‘민원’을 제기한 것도 기분 나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미 이 문제로 한국 사법부의 법리적 판단이 나왔는데도, 기업 이익 때문에 법마저 바꾸라는 주문 아닌가? 이건 통상적 내정간섭 이상이다. 자본이 국경을 넘어 민주주의나 노동법을 직접 건드리는 행위다. 그렇다면 실제로 한국GM(전 대우자동차)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흘러왔는가. 2002년에 한국GM은 연봉제를 시행하며 1년에 일곱 차례 지급하던 상여금을 인사평가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 ‘업적연봉’ 형태로 바꾸었다. 이로써 많은 수당들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됐다. 분노한 노동자 1025명은 2007년 3월 (임금채권 유효가 3년인 점을 감안) 2004년 3월부터 2007년 2월까지의 업적연봉 및 조사연구·조직관리수당, 가족수당 중 본인분, 귀성 휴가비, 개인연금보험료, 직장단체보험료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시간외 근로수당과 연월차수당을 다시 지급하라며 제소했다. 1심 재판부는 “업적연봉은 근로자의 근무성적에 따라 좌우돼 고정 임금이라 할 수 없어 통상임금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나머지 부분은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이에 노사 모두 항소한 상태에서 박 대통령의 방미와 GM 회장의 요구가 있었다. 그 뒤 7월 말 서울고등법원은 “업적연봉도 기본급과 마찬가지로 근무성적과 상관없이 결정되고, 최초 입사자에게도 지급되며, 연초에 정해진 업적연봉은 12개월로 나누어 지급될 뿐 고정돼 있으므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갑을오토텍 사건 해결을 위한 대법원 토론도 사실상 이 한국GM 건의 연장선이다. 최종 결정엔 사법부의 법리적 판단이 중요하겠지만, 필자가 강조하고픈 것은 노사정 모두 ‘삶의 질’ 차원에서 새로운 사고를 하자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인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걸맞지 않게 세계 최장의 노동을 한다. 여유롭게 식사할 시간이나 자녀들과 대화할 시간,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연극이나 영화를 보거나 좋은 교양 도서 몇 권이라도 볼 시간이 없다. 옆 사람이나 다른 회사를 팔꿈치로 밀쳐야 자기 생존이 보장되는 치열한 경쟁 속에 심신이 지친다. 3년이 가고 5년이 가도 삶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잘하면 잘할수록 “더 잘하라”는 말만 듣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창조’ 경제나 ‘품질’ 경영이 어렵다. “기술이 인문학과 결합해야 가슴 뛰게 하는 제품이 나온다”는 스티브 잡스의 말도 결국 인문학을 접할 삶의 여유 문제를 제기한다. 이제 발상을 전환하자. 하루 8시간 이하를 일하고도 생계 걱정 없는 세상, 늘어난 여가를 창의적으로 활용해 삶의 풍요를 느끼는 사회,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 차별 없이 공동체에 참여하는 미래, 바로 이게 희망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의 통상임금 논란도 단순한 월급봉투의 두께 문제가 아니라 온 사회가 삶의 질 차원에서 도약해야 할 시금석이 아닐까? 잡스 식으로 “나머지 인생을 장시간 노동으로 채우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꿔 놓을 혁신을 하고 싶습니까?”
  • [열린세상] 중국 서안의 삼성 반도체 공장/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중국 서안의 삼성 반도체 공장/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 주석 시진핑의 고향은 중국 서안이다. 내륙 북부에 위치한 서안은 진시황의 병마용으로 유명하지만 양귀비와 당태종의 애절한 사랑의 역사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것은 하늘을 전혀 볼 수 없을 정도로 공기 오염이 심해 호흡기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삼성반도체는 70억 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하며 공장을 짓고 있다. 올해 말 완공이 목표란다. 삼성이 반도체 공장을 세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삼성반도체 공장 건설을 둘러보면서 “이 공장이 건설돼 운영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의 전기가 필요합니까?”라고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약 200만 킬로와트의 전기가 필요합니다. 200만 킬로와트라면 한국 영광에 있는 기당 100만 킬로와트인 한국형 표준 원자로 약 3기가 무사히 가동돼야 한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원자로는 몇 달 동안 가동을 정지해 가며 정비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210만 킬로와트라면 최소한 기당 100만 킬로와트 원자로 3~4기가 필요한 것이다. 반도체 공정은 풍부한 전력이 없으면 안 된다. 그래서 빌 게이츠도 60만 킬로와트급 제4세대 원자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원자로는 23기. 그 가운데 현재 정지돼 있는 원자로가 6기다. 일본은 55기의 원자로 모두가 정지돼 있다. 두 나라 모두 정전대란을 막기 귀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이 전력 사정이 풍부한 서안을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다. 서안은 석탄이 풍부한 지역이라 전기 공급이 끊길 염려 없이 공장을 가동할 수 있고, 반도체는 무게가 가벼운 상품이라 내륙 도로 시스템이 아직 원활치 못한 육상 수송 인프라를 이용할 필요 없이 비행기로 상품을 수송하면 된다. 미국이 서부를 개척하며 오늘날의 풍요로운 미국이 됐듯이 중국도 서부 개척을 하며 중국의 경제발전은 물론 세계 경영과 민주적 자본주의의 기본을 배워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서안의 고민은 대기 오염이 너무 심해 폐질환을 비롯한 호흡기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병마용의 유물들이 수천년 동안 잘 보존된 배경에는 서안 지역은 황토 지역이었기 때문인데 그 반면에 흙먼지도 심각하다. 반도체 공장은 미세한 분진과 자그마한 진동도 용납되지 않는 시설이어야 하는데 분진 문제는 첨단 집진장치로 잘 해결된다고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공기 오염을 해결하지 않고는 안정된 생산 환경을 구축할 수 없다. 요즈음 한국 병원들이 국제 병원을 개원하면서 외국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서안은 한국의 높은 의료기술도 중국에 수출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의 정보기술(IT) 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우리의 사정은 낙관적이지 않다. 올여름도 위태위태한 전력 비상을 겨우 넘겼다. 전기를 더 많이 쓰는 겨울을 어떻게 날지 정부의 고민이 크다. 전기를 풍부하게 쓰지 못하는 산업체에 공장 가동 중단으로 인한 보조금마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한국의 전력 사정은 근본적인 대책으로 재설정돼야 한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태로 55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모두 중단하는 바람에 천연가스 수입으로 70조원 가까이 썼다. 한국의 1년 총예산을 약 340조원으로 계상하면 거의 20%에 해당하는 막대한 돈이다. 그래서 일본 아베 정권도 원자력을 다시 시작하려고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 석유나 천연가스와 같은 천연자원이 없고 돈마저 없으면 원자력 발전을 중단할 수 없다. 다행히 한국은 일본처럼 지진이 많지 않은 나라라는 지리적 혜택이 있다. 그런 만큼 원전 비리만 철저히 차단하고 안전성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한다면 원전을 통해 안정적으로 전력을 확보할 수 있는 나라다. 프랑스는 70% 이상의 전력을 원자력에 의존해도 끄떡없지 아니한가. 전력 생산의 약 80%를 석탄에 의존하고 있는 중국은 앞으로 약 100기의 원자로를 건설해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버텨 낼 수 있다. 원전 비리에 대한 수사가 어느 정도 종결돼 가고 있다. 원자력 업계는 그런 모습을 냉정한 눈으로 지켜보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거듭 태어나야 할 것이다.
  • ‘가을바다의 보물’ 여수 참문어 쫄깃한 유혹

    ‘가을바다의 보물’ 여수 참문어 쫄깃한 유혹

    1년 중 가장 풍요로운 달 9월. 추석을 앞둔 지금 들판도 바다도 말 그대로 풍년이다. 풍요로운 바다 한가운데 힘찬 기운을 품은 참문어가 있다. 동해안 문어와 달리 남해안 참문어는 몸집이 작고 단단해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타우린이 풍부해 해독작용과 피로회복에 특히 효력이 좋다. 12일 밤 7시 30분 방송되는 KBS 1TV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가을바다에서 찾은 보물 참문어를 소개한다.전남 여수의 돌산도 하면 사람들은 갓김치를 먼저 떠올리지만 신기마을에선 참문어에게 그 자리를 내줘야 한다. 돌이 많은 돌산도는 돌 틈에 숨어 사는 참문어에게 최고의 산란지다. 신기마을 사람의 3분의2가 참문어 잡이에 기대어 생활하고 있다. 그런 만큼 참문어 전국 생산량의 60%가 신기마을 앞바다에서 나온다. 참문어로 요리하는 음식도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신기마을에서는 내장과 문어 코를 된장에 볶아 푹 고아낸 먹장국이란 해장국이 있다. 여름엔 호박을 넣고, 겨울엔 시래기를 넣어 끓인다. 맛은 물론 항암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참문어는 버릴 것 하나 없는 바다의 보약인 셈이다. 여수의 문어 생산량은 연중 750t. 제주도와 여수 가운데 자리한 초도는 말린 피문어로 유명하다. 초도에선 가을이면 집집마다 햇볕에 바짝 말린 피문어로 넓은 앞마당이 채워지곤 한다. 초도 예미마을에서 50년째 참문어 잡이를 하는 김형대씨 집에서도 피문어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말린 피문어는 초도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재료로 육지에 비싼 가격에 팔리는 고마운 존재다. 남자들이 참문어를 잡아 오면 여자들은 산에 올라가 칡넝쿨을 뜯어 문어 머리에 끼워 모양을 내곤 했다. 겨울이면 연탄불에 구워 먹거나 구들장 밑에 두고 오래도록 말렸다. 어릴 적 부모님 몰래 구들장 밑 피문어를 훔쳐 먹다 혼나곤 했다는 막내아들 김민철씨. 피문어 구이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맛이다. 한국인들에게 문어의 의미는 각별하다. 8개의 다리로 복을 끌어들인다는 주술적 의미에서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에서는 이를 제사상과 혼례상에도 올린다. 문어 한 마리를 통째로 삶아 올리기도 하고 말린 피문어를 가위로 오려 문양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전라도 여수 대표 문어오리기 전문가 이경애씨는 가을이면 손이 바빠진다. 피를 맑게 한다는 피문어는 예부터 산모나 환자들이 먹는 죽의 재료로도 최고로 꼽혔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올 추석 상여금 94만 7000원

    직장인들에게 올 추석은 한층 풍요로워질 전망이다. 추석 상여금이 작년보다 소폭 증가하고 연휴도 늘어날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들이 후해진 까닭은 작년보다 추석경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531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3년 추석연휴 및 상여금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휴 일수는 평균 4.3일로 작년보다 0.2일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상여금을 지급하는 기업들은 1인당 평균 94만 7000원을 줄 계획이다. 이는 작년보다 4.3%(3만 9000원) 많다. 대기업이 120만 9000원으로 작년보다 4만 2000원, 중소기업은 85만 6000원으로 작년보다 3만 7000원 각각 늘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문학인의 라이벌 경쟁 한국 문학사의 밑거름”

    “문학인의 라이벌 경쟁 한국 문학사의 밑거름”

    문학평론가 김윤식(77) 서울대 명예교수가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그린비)을 펴냈다. 계간지 ‘문학과 문학’에 발표했던 글 22편 가운데 5편을 골라 실었다. 김 교수는 ‘문학 라이벌’ 간의 치열한 드잡이가 한국문학사를 풍요롭게 일군 밑거름이 됐음을 보여준다. 1966년 창간된 계간지 ‘창작과 비평’과 4년 뒤 나온 ‘문학과 지성’이 대표적인 예다. ‘68문학’ ‘산문시대’를 주도한 김현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주간을 맡은 ‘창작과 비평’이 나오자 이를 두려움과 부러움으로 지켜보며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인물이었다. ‘너희가 세계문학을 아느냐’는 ‘창작과 비평’의 외침에 김현은 ‘너희가 한국문학을 아느냐’고 맞받아쳤다. 김윤식은 “세계문학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의 수준은 백낙청이 당대 어느 지식인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한국문학에 대한 인식은 초라했고, 김현은 이런 약점을 주시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결국 김현은 1970년 ‘문학과 지성’으로 맞섰고 이런 쟁탈전으로 한국 문학사는 비로소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김 교수는 또 라이벌이었던 김현에 대한 ‘때늦은 변명’과 ‘찬사’를 동시에 늘어놓는다. 그는 김현이 집중적으로 비판의 화살을 쏜 과녁이 자신이었다고 시인한다. 김현은 그의 글쓰기를 가리켜 “그의 늘리기는 수수께끼의 놀라움이 없기 때문에 진부하고 지겹다”고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김 교수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김현의 비판을 통해 비로소 속으로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던 나의 참모습을 투명체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그는 김현의 열정적인 독서력에 탄복하며 “가히 문학대통령인 셈”이라고 추어올리는가 하면, 김현이 자신의 궤적을 집요하게 추적해 온 것은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서라벌예대 동급생인 라이벌 박상륭과 이문구는 스승인 김동리를 꼭짓점으로 하는 ‘샴쌍둥이’와도 같았다. 저자는 “서로 악종이라 부를 만큼 단짝이었던 두 수제자가 좀 더 악종이 되고자 전력을 기울였다. 그것은 스승 김동리를 초월하는 것이었다”고 짚어낸다. 박상륭은 ‘칠조어론’ 등을 통해 스승의 ‘자기 동네식 샤머니즘’을 ‘샤머니즘의 세계화’로, 이문구는 ‘관촌수필’을 통해 스승의 ‘지방성 샤머니즘’을 ‘지방성으로 더욱 특권화하기’로 나아갔다. 결국 스승을 배신하면서 스승을 빛낸 결과를 빚어냈다는 것이다. 이 밖에 국문학자 양주동과 조윤제, 시인 김수영과 평론가 이어령 간의 라이벌 의식도 다뤘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기고] 왜, 문화융성인가?/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기고] 왜, 문화융성인가?/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내란음모죄, 전·월세 대란, 원전 비리, 전직 대통령 추징금…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생길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박근혜 정부는 문화 융성을 국정 목표로 내세웠다. 문화를 융성시키겠다는 것은 알겠지만 왜 문화 융성이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여 국민적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인류는 1000여년 동안 암흑기를 보냈다. 신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믿었던 중세기에 인간은 수동적인 존재였기에 창의성이 없었던 것이다. 그 암흑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15세기에 일어난 르네상스, 즉 문예부흥 때문이었다. 르네상스의 불씨는 1463년 플라톤 전집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여 유럽 전역에서 플라톤 저서를 읽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플라톤 철학은 예술의 이론적 토대가 되어 회화, 건축, 조형 등에서 천재적인 예술가들을 탄생시키면서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웠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르네상스 문화에 열광했을까? 그것은 그 문화가 인간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머독이 문화예술의 특성을 사람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이라고 했듯이, 르네상스는 근대 사람들을 문화를 통해 만족시키며 그들에게 행복감을 주었다. 오늘날의 사회는 물질은 풍요로워졌지만 현대인들은 행복 불감증에 걸려버렸다. 그래서 국민의 행복을 되찾아주기 위해 정부에서 문화 융성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 융성의 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렇다. 예술인들이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된 것은 그곳에 예술인들을 아낌없이 지원해준 메디치 가문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의 시발점이 된 플라톤 전집의 번역도 메디치가의 후원으로 이루졌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예술인에 대한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문화 융성을 제대로 하려면 빈곤 속에 빠져 있는 예술인이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고 창작 활동에 몰두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예술인 속에는 1만여명에 달하는 장애예술인들이 장애와 예술이란 이중의 고통을 짊어진 채 누가 인정해 주지도 않는 창작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영국이 낳은 최고의 작가 셰익스피어는 지체장애인이었고, ‘실낙원’을 쓴 밀턴은 시각장애인이었으며, 악성 베토벤은 청각장애인이었다. 장애 속에서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창작을 해낸 것이다. 장애예술인의 능력은 이렇게 뛰어난데 오늘의 장애예술인들은 골칫덩어리 취급을 받고 있다. 장애예술인들이 마음 놓고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목이 쉬도록 부탁을 해도 돈줄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에서는 그것을 귀찮은 민원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는 예술의 가치를 인식하고 예술인을 조건 없이 지원해 주는 메디치 가문도 없는데 예술인들이 누구를 믿고 창작을 할지 가슴이 답답하지만, 그래도 정부가 문화 융성을 약속한 만큼 예술인의 창작 환경이 개선될 것이란 희망이 생긴다. 예술인들은 지금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예술인의 이런 열정이 문화 융성의 동력이 되어 국민행복이란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해 나갈 것이다.
  • 규슈에서 걷는 올레길

    규슈에서 걷는 올레길

    ‘집 대문에서 마을길까지 이어지는 아주 좁은 골목’을 뜻하는 올레. 제주의 올레길이 단순한 길이 아니듯이 규슈의 올레도 길 이상의 것을 담고 있었다. 규슈 올레란? 사단법인 제주 올레와 규슈 운수국, 규슈 관광추진기구가 협정을 맺어 규슈의 매력적인 걷는 길을 ‘규슈 올레’로 선정하였다. 현재 총 길이 106.4km에 이르는 8개의 코스가 운영되고 있다. 규슈 올레 걷기 TIP 길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파란색과 붉은색 리본, 나무 화살표, 간세(제주 조랑말을 형상화한 모양)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파란색과 붉은색 리본은 나뭇가지 등에, 나무 화살표는 길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데 파란색 화살표가 정방향, 붉은색 화살표는 역방향을 뜻한다. 출발과 도착 지점, 관광 명소에 배치되어 있는 간세를 만나면 머리가 향한 방향으로 나아가자. 숲의 정령이 함께하는 다케오 올레 코스 규슈 사가현에 위치한 다케오는 나지막한 산 속에 자리잡고 있다. 1,300년 이상 된 온천과 400년을 이어 온 도자기 공방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라 해서 지루할 것이라 생각하면 금물. 30대 후반의 히와타시 게이스케 시장이 부임하면서 공격적인 행정을 펼쳐 젊은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다케오 올레 코스는 다케오 온천역에서부터 시작된다. 후쿠오카 국제공항에서 JR로 1시간 1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다. 제8회 규슈역 도시락 대회에서 1등을 한 ‘사가규 스키야키 벤토’를 가방에 넣고 나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길의 끝에 온천이 있다는 희망에 발걸음도 가볍다. 평일 차분한 도시의 아스팔트 길을 따라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지막한 산의 입구에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산길이라고 하나 잘 정비되어 있어 발걸음이 무겁진 않다. 조금 힘이 든다 싶을 때마다 쉼터가 나와 주어 평화로운 다케오를 감상하며 땀을 식힐 수 있다. 대나무가 병풍이 되어 길을 안내해 주고, 시원한 바람에 조용히 몸을 흔들어 사각사각 소리를 더해 준다. 시원한 녹색에 눈이 편안해지고 대나무의 응원에 귀마저도 안락해진다. 물 한 모금이 필요할 때 즈음 기묘지 절이 나타난다. 친절하게도 한 아주머니께서 녹차를 대접해 주신다. 주위를 둘러보니 빨간 모자를 쓴 조그만 석상들이 가득하다. 세상에 태어나 보지 못한 애기들을 위해 석상을 세우고 추울까 봐 빨간 모자와 이불을 덮어 준 것이라고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도룡뇽과 반딧불 사가현 현립 우주과학관까지 내달렸다. A, B코스 분기점 푯말이 나타난다. 안내 팸플릿을 보니 A코스가 ‘상급자’를 위한 길이다. 마음 같아선 ‘일반’ 코스인 B코스로 유유히 걸어가고 싶지만 몸은 이미 A코스를 걷고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오기가 발동한 까닭이다. 조금 걷다 보니 필자의 선택을 환영하는 도룡뇽 한 마리가 나타났다. 맑은 물이 흘러야만 산다는 도룡뇽을 보니 청정지역이 분명하다. 평소보다 한숨한숨 깊게 들이쉬고 내쉰다. 길에 집중하려는 찰나 ‘반딧불의 못’이라는 작은 연못 하나가 눈앞에 펼쳐진다. 밤 늦게 다시 찾아와 반딧불이 그려내는 빛의 선을 눈에 담고 싶지만 일정상 그러하지 못함이 아쉽기만 하다. 아쉬움이 가시기도 전에 곧 바로 거대한 삼나무가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됨을 알려준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삼나무의 위용에 가던 길을 멈추고 그 끝을 바라본다. 삼나무의 높이만큼이나 다케오 코스도 태고의 코스로 접어든다. 삼나무 길 다음엔 본격적인 오르막 코스가 시작된다. 약 100m 정도를 거의 수직으로 오르게 되는데 상급자 코스의 클라이맥스다. 턱밑까지 숨이 차 오른 바로 그 순간, 다케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정상이 나타난다. 다케오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는 미후네야마를 왼편으로 작고 정겨운 도시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장마철로 접어드는 시즌이라 청명한 하늘을 볼 수는 없었지만 고된 산행 뒤 정상에서만 누릴 수 있는 시원한 바람과 멋진 풍경만으로도 올레길은 충분히 즐거워진다. 다케오 코스의 상급자 코스를 정복했다고 자만할 때쯤 다시 수직에 가까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제주 올레팀의 지적에 따라 다케오시는 편한 길을 새로 내어 둘러갈 수 있게 했고 로프도 설치해 두었다. 수령 3,000년의 녹나무 이제 다케오 코스의 정점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힘을 실어 본다. 다케오 시립도서관과 다케오 신사의 큰 녹나무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다케오 코스의 진수 중 하나다. 사전적 의미의 ‘길’로서만 평가하라면 감히 ‘최고’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좋은 길이란 비단 길로서의 조건뿐만 아니라 길 위에서 사람과 소통하고 역사와 문화에 흡수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케오 시민의 열망을 담아 일본 제1의 도서관으로 재탄생한 시립도서관과 3,000년의 역사를 가진 큰 녹나무를 볼 수 있는 이 코스는 감히 최고의 길이라 불릴 만하다. 다케오 시립도서관은 기존 도서관을 리모델링하여 시민의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일본 소프트웨어 렌탈 업체인 ‘츠타야’와 함께 도서관과 서점의 개념을 융합해 운영하고 있다. 하얀 패널의 책장에는 판매용 책들을, 검은 패널 책장에는 대여용 책들을 비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립 도서관 최초로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으니 올레꾼들에겐 흡족한 쉼터가 되어 줄 것이다. 다케오 신사로 들어서니 세월의 흔적이 짙게 밴 토리이鳥居가 굳건히 서 있다. 신사를 지나 녹나무를 대면하려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른쪽엔 대나무, 왼쪽엔 삼나무가 곧게 서 있다. 그 길 끝에 3,000여 년을 버텨 온 녹나무가 그 웅장함을 드러낸다. 일본인들에게 녹나무는 영험함이 서린 ‘신물’과 같은 존재다. 모두 한순간 말을 잊는다. 순간 여행객 중 한 명의 독백이 들려왔다. “비워야 견디는구나.” 다케오 시청을 지나 자리한 온천 마을에는 1,300년 동안 이어 온 유서 깊은 온천들이 가득하다. 온천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쿠라야마 공원에서 온천 마을을 내려다본다. 크게 힘들지 않은 길을 천천히 돌아나오면 다케오 올레길의 종착점인 다케오 온천 로몬이 나오는데 이 건물 안에 온천 박물관도 개방되어 있으니 과거 온천탕은 어땠는지 궁금하다면 들러 봄 직하다. 초원 너머 숲속으로 히라도 올레 코스 히라도는 규슈의 7개의 현 중 나가사키현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1,500년 전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상교역을 시작한 곳으로 ‘니시노미야코’ 즉, 서쪽의 도읍이라 불릴 만큼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번성하였다. 도시 곳곳에 네덜란드의 흔적이 고스란히 잘 보존되어 있어 올레를 걸으며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진홍색의 히라도 대교는 이 다리를 건너면 히라도가 시작되니 엄연히 히라도의 관문이라 하겠다. 희뿌연 하늘이 불안 불안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고 잘 정비된 마을을 빠져나와 사이쿄지 절을 지나 마을 이곳저곳을 걷다 보면 어느새 좁다란 숲길이 시작된다. 숲길이 끝났다 싶을 때 초록빛의 이끼가 비단처럼 깔린 길이 나타난다. 양탄자 위를 걷듯이 푹신푹신한 느낌에 절로 신이 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찍는 여행에서 걷는 여행으로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히라도 코스의 절정인 ‘가와치토우게’ 초원이 펼쳐진다. 언덕 위에서 보는 풍경이 궁금하여 한달음에 내달리고 싶지만 아직 걸어야 할 길이 10km 이상 남았다. 단시간 내 많은 것을 봐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래에서 목을 축인 후 언덕 위에 오르니 과연 절정이라 불릴 만한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를 건너 언덕을 타고 온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얼마나 서 있었을까. 한참을 앞서간 일행의 뒷모습이 손톱만하다. 서둘러 언덕을 내려와 다시 숲으로 몸을 숨긴다. 이 숲길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길이라고 하기엔 어설퍼 보인다. 몇몇 곳은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나무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고르다 보니 어느샌가 마을로 들어섰다. 잘 정비된 아카사카 야구장을 지나고 아스팔트길이 시작된다. 자연과 잘 어우러진 마을은 평온하기 그지없고 혹시나 꼬여 있는 리본을 누군가 보지 못할까 까치발로 고쳐 매는 올레꾼의 정성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멀리서만 보였던 자비에르 기념교회는 멀리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이 교회는 히라도에 가톨릭을 전한 프란시스코 자비에르를 기념하기 위해 1931년에 세워졌다. 교회를 지나 아름다운 담장을 두른 사원으로 향한다. 길만으로도 아름다운 이 사원길 끝에서 반드시 뒤를 돌아보자. 사원의 담장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사원과 자비에르 교회가 묘하게 겹쳐 보인다. 마을을 지나가다 보면 수령 400년 된 거대한 소철나무를 만나게 된다. 에도 시대 초기, 활발한 해외무역이 시작되는 시기에 뿌리를 내려 지금까지 히라도와 함께 성장한 상징적인 나무다. 어느새 히라도 올레길의 종착점인 우데유 아시유 족탕에 도착했다. 무료로 이용 가능하며 방석까지 준비되어 있다. 뜨거운 열기에 금세 피로가 녹아 버린다. 히라도의 역사와 사람냄새 나는 마을, 그리고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올레길이었지만 히라도 어디서나 보인다는 히라도의 상징 ‘히라도 성’이 코스에서 빠진 것은 못내 아쉬웠다. 아쉬워하는 필자를 위해 규슈 관광추진기구 측에서 이키스키섬에 함께 갈 것을 제안했다. 히라도섬과 이키스키섬을 잇는 이키스키 대교를 지나니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이 보이고 사오다와라 절벽 앞에는 기암괴석이 웅장한 위용을 드러낸다.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낸 장대한 예술 작품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바에 등대가 위치하고 있다. 80m의 오바에 절벽에 위치한 이 등대에서 바라보는 전망 또한 일품이다. 시간이 촉박하여 이키스키섬의 멋진 관광명소를 모두 가보진 못했지만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로 천천히 길을 걸으며 해풍을 느낄 수 있는 올레길이 어서 빨리 탄생하길 기대한다. 대자연과 역사 속을 거니는 아마쿠사 올레 코스 아마쿠사는 구마모토현 남서부에 위치해 있다. 아름다운 바다와 여러 개의 섬, 그 섬을 잇는 다양한 다리들, 그리고 이 모두를 감싸 안은 웅장한 산까지 아마쿠사는 대자연이 펼쳐놓은 작품이다. 온난한 기후를 살린 농업과 풍요로운 수산자원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도시다. 머금고 있던 빗물을 쏟아낼 것같이 흐린 날씨다. 구마모토현에 위치한 아마쿠사 올레로 향하는 길은 짧지 않았다. 하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수묵화 같은 절경에 연신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거무스름하고 비옥한 토양이 나오다가, 잘 정돈된 채소밭이 싱그럽게 스친다. 이윽고 고요한 바다가 펼쳐지고 이국적인 장면들이 쉼 없이 연출된다. 코스의 시작점인 치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왜가리 한 마리가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가 쏟아지고 시야가 어두워진다. 강과 바다가 교차하는 치쥬해안길을 따라 거친 돌을 밟아 나간다. 빗소리만이 가득한 길이 어느새 어두운 산 속을 향해 있다. 가파르진 않지만 만만하지도 않다. 우비 속이 뜨거워질 때 즈음 거대한 바위가 산 위에 박혀 있는 ‘센겐노모리다케’에 도착한다. 몸에서도 하얀 열기가, 산에서도 하얀 안개가 피어나고 있다. 현립 아마쿠사 청년의 집. 잘 정비된 캠핑장과 체육 시설이 눈에 띈다. 비를 피해 체육관에서 열심히 수업중인 아이들이 보인다. 수업에 방해될까 가던 길을 다시 재촉했다. 코스는 센간잔으로 이어진다. 아마쿠사 시마바라의 난이 일어났을 때 16세 소년이었던 아마쿠사 시로가 연회을 열고 술잔을 돌렸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아름다운 수국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센간잔에 도착했다. 쏟아지는 비 사이로 렌즈를 만져 보니 나름의 운치가 짙게 배여 나온다. 숲 속에 느긋이 자리잡은 마을들도 멋진 그림이 된다. 센간잔에서 내려와 거대한 돌들의 무덤에 다다른다. 거대한 돌덩이 사이를 간신히 빠져나와 숲길을 걷다 보면 어느샌가 ‘용의 족탕’이 반겨 준다. 아마쿠사 5호 다리를 감상하여 뜨거운 족탕에서 피로를 녹인다. 아마쿠사 코스는 11.1km라는 비교적 짧은 길이지만 편한 길은 아니다. 편하지 않았기에 고통을 느꼈고 고통이 있었기에 ‘내 다리도 꽤 쓸 만하구나’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김기현 취재협조 규슈운수국, 규슈관광추진기구 www.welcomekyushu.or.kr
  • 호텔따라 떠나는 그리스

    호텔따라 떠나는 그리스

    좋은 호텔은 좋은 여정을 만든다. 아테네와 펠로폰네소스반도의 이오니아해, 에게해에 자리한 좋은 호텔 세 군데를 소개한다. ●Athens 아테네 올림픽을 기억하는 신의 도시 ▶hotel 고대 도시의 품격을 품다 호텔 그랜드 브르타뉴Hotel Grande Bretagne 공항에서 아테네 시내로 접어드는 길은 혼잡하다. 얼키설키 얽힌 도로 위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노라면 신들의 도시 아테네에 대한 막연한 로망은 흐려지고 만다. 로망 이전에 아테네는, 전 세계에서도 매연으로 이름 높은 그리스 제일의 도시인 것이다. 호텔 그랜드 브르타뉴는 그런 아테네의 심장부에 자리하면서도 혼잡한 도심의 기운을 뒤로하고 당당하게 서 있다. 그랜드 브르타뉴가 문을 연 건 1874년. 140년이 넘는 세월은 호텔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은 현재에서 과거로 흘러 고대 도시 아테네로의 여정을 알린다. 로비의 와이파이 존을 찾아다니며 현실의 끈을 놓지 못하는 현대인은 그래서 그랜드 브르타뉴에서 초라해진다. 그랜드 브르타뉴가 세워진 이래 아테네에서는 두 번의 올림픽이 열렸다. 최초의 근대 올림픽인 1896년 아테네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그것이다. 그랜드 브르타뉴는 두 번의 올림픽 당시 모두 공식 호텔로 지정됐다. 전 세계에서 유례 없는 기록이다. 호텔의 유명세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소피아 로렌 등 왕족들과 할리우드 스타들의 방문도 한몫 했다. 그랜드 브르타뉴는 클래식과 디럭스 타입의 객실을 비롯해 7개 타입의 스위트 객실을 선보인다. 비교적 좁은 편인 낮은 등급의 객실이라도 고풍스럽기는 한결같다. 완벽한 조망을 바란다면 디럭스 스위트가 제격이다. 객실은 디럭스 타입과 동일하지만 아크로폴리스를 조망하는 넓은 발코니를 지녔다. 세세한 배려 또한 잊지 않았는데, 객실에는 각각 다른 5종류의 베개가 비치돼 있다. 부대시설로는 인도어 수영장과 아웃도어 수영장, 스파 등이 자리했다. 압권은 레스토랑이다. 멀리 아크로폴리스를 품은 ‘GB 루프 가든’의 풍경은 시간과 빛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곳에서는 한낮에는 태양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어두운 밤에는 조명으로 환하게 물든 아크로폴리스를 맞게 된다. GB 루프 가든에서의 식사는 맛을 음미하고 배를 채우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여행의 참맛을 되뇌게 하는 행복한 각성이다. 그랜드 브르타뉴에는 GB 루프 가든을 포함해 7개의 레스토랑이 자리했다. 찾아가기 아테네 국제공항에서 호텔까지는 차로 45분 정도 걸린다. 신타그마 광장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면 호텔까지 쉽게 닿을 수 있다. 시내에서 이동한다면 지하철 신타그마역을 이용해도 된다. 호텔의 위치는 호텔을 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 그런 의미에서 그랜드 브르타뉴는 백 점 만점에 백 점이다. 호텔은 국회의사당과 신타그마 광장 바로 옆에 자리했다. 신타그마 광장은 아테네의 트렌드와 미식 중심지인 에르무, 미트로폴레오스 거리와 이어진다. 아크로폴리스, 제우스 신전, 판아테나이코스 근대 올림픽 경기장 등 아테네의 굵직굵직한 볼거리 또한 차로 10분여 거리로 가깝다. 홈페이지 www.grandebretagne.g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h Drive 코린토스Corinth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 사이에는 코린토스 운하가 흐른다. ‘육지에 파 놓은 물길’이라는 운하의 뜻 그대로 코린토스 운하는 인공적으로 판 물길이다. 1881년에 시작된 공사는 1893년에 끝나 코린토스에서 살로니코스까지 700km 바닷길을 단 6.3km로 줄였다. 운하를 파려는 노력은 기원전부터 있어 왔지만 매번 여러 반대에 부딪쳤다. 신이 막아 놓은 것을 왜 파느냐는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고, 살로니코스에 비해 코린토스의 해수면이 높아 살로니코스가 잠기고 말 거라는 비과학적인 이유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술이었다. 67년, 네로 황제는 포로 6,000명을 동원해 공사에 착수했지만 그들은 모두 수장되고 만다. 이리저리 한눈에 담기는 코린토스 운하는 펠로폰네소스를 찾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지나는 길이다. 코린토스 운하만 스쳐 지나기 섭섭하다면 루트라키 해변이나 아크로코린트로 향하는 것도 괜찮다. 한적한 루트라키 해변에는 그리스 대중 음식점인 ‘타베르나’가 줄지어 서 있다. 입맛 당기는 해산물 요리는 시끌벅적하게 그리스 스타일로 즐겨야 그 맛이 배가 된다. 아크로코린트는 아크로폴리스의 3배 높이인 해발 575m에 세운 도시국가다. 코린토스와 살로니코스를 모두 굽어보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해 여러 차례 땅의 주인이 바뀌는 비극을 겪었다.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쌓았던 아크로코린트의 성벽은 길이가 4.6km, 두께가 무려 두께 7m에 달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0min Drive 아크로폴리스Acropolis 아크로폴리스는 폴리스의 높은 곳이라는 의미다. 각 폴리스에는 아크로폴리스가 존재하지만 오늘날 아크로폴리스는 흔히 아테네를 일컫는다. 아테네는 1,000여 개에 이르는 도시국가 중 하나인데, 대표적인 도시국가로는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등이 있다. 아크로폴리스로 향하기 전 여행자들은 으레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들른다. 이전에는 파르테논 신전 옆에 자그마하게 자리했지만 지금은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웅장하게 변모했다. 아크로폴리스의 변천사와 출토 유물 등의 전시물도 볼 만하지만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가 참여한 박물관 건물은 그 자체로도 유명하다. 아크로폴리스는 이름 그대로 높은 언덕에 자리했다. 박물관에서 나와 언덕까지는 걸어야 하고, 그 길 중간에는 음악당인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있다. 닫힌 문 사이로 일부 모습을 드러내는 음악당은 아크로폴리스에 입장한 후에야 제대로 된 반원형의 모습을 보여 준다. 불레의 문을 통과하면 양쪽으로 선 에레크테이온 신전과 파르테논 신전을 보게 된다. 에레크테이온 신전은 남쪽 벽의 여인 조각상 가리아티드로 유명하다. 파르테논은 아크로폴리스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도리아식 기둥의 황금 비율을 선사해 최고의 신전이라는 찬사를 받지만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늘 그래 온 것처럼 파르테논 신전은 공사 중이다. 입장료┃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5유로 아크로폴리스 전망대 12유로 ●Pylos 필로스 이오니아 해의 숨결 ▶hotel 상상 그 이상의 리조트 코스타 나바리노Costa Navarino 코스타 나바리노는 단순한 리조트가 아니다. 오랜 열정과 땀의 결실이다. 코스타 나바리노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는 1987년. 그리스의 해운 선주 바실리스는 펠로폰네소스 남서쪽에 자리한 메시니아 주의 땅을 일부 구입하며 코스타 나바리노의 서막을 올렸다. 코스타 나바리노가 첫 손님을 맞이한 해는 2010년. 23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리조트에는 1만6,000그루가 넘는 올리브 나무와 8,000그루가 넘는 과실수가 옮겨 심어졌다. 황량했던 황톳빛 땅은 나무가 우거진 푸른 땅으로 변모했다. 코스타 나바리노의 골프 코스는 일대를 더욱 푸르게 꾸민다. 2009년에 선보인 코스타 나바리노의 듄 코스는 푸르름의 결정판이다. 티박스에 서면 골프 코스와 조화를 이룬 바다와 강, 언덕의 푸르름이 한눈에 담긴다. 듄 코스는 US 마스터스 챔피언인 베른하르트 랑거와 골프 매니지먼트 회사인 트룬 골프가 설계했다. 듄 코스 외에 코스타 나바리노에는 2011년에 완성된 베이 코스가 하나 더 있다. 코스타 나바리노의 골프 코스가 특별한 이유는 코스타 나바리노는 골프 리조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름하며 내세우지 않은 시설조차 코스타 나바리노에서는 이리도 훌륭하다. 코스타 나바리노는 그 밖에도 즐길거리가 넘쳐난다. 수영장은 기본. 리조트 내에는 워터 슬라이드를 갖춘 아쿠아파크까지 자리했다. 정규 테니스 코트에 어린이 전용 테니스 코트까지 갖췄으니 기타 스포츠 시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오니아 해를 마주한 1km 길이의 해변이 자리했지만 리조트에 머물며 해변에 나갈 일은 흔치 않다. 코스타 나바리노의 건물은 돌로 된 성채를 연상케 하는 메시니아의 전통 양식을 따랐다. 건물들이 미로처럼 연결된 까닭에 무심코 길을 나섰다가는 헤매기 일쑤다. 리조트 지도는 필수. 리조트 내 시설은 상상을 초월한다. 코스타 나바리노에는 18곳에 달하는 레스토랑이 자리했다. 그리스 정통 요리에서 아시아 요리까지, 전 세계 맛 기행이 리조트 내에서 이뤄진다. 스시 등 아시아 요리를 선보이는 라운지 바인 ‘인비’와 야외극장과 인접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다 루이지’는 특히 인기다. 조식은 뷔페 레스토랑인 ‘모리아스’에서 진행된다. 코스타 나바리노에서 직접 만드는 신선한 요구르트와 다양한 종류의 꿀과 잼이 특징이다. 객실은 로마노스 리조트에 320개, 웨스틴 코스타 나바리노에 444개가 마련돼 있다. 모든 객실에는 리조트 시설과 바다가 조망되는 넓은 발코니가 딸려 있다. 일부 1층 객실은 전용 인피니티 수영장을 갖췄다. 찾아가기 아테테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2시간 45분 거리다. 아테네 공항에서 출발하는 리조트 전용 택시는 한 대에 280유로. 국내선을 이용, 칼라마타 공항에서 리조트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칼라마타 공항에서 48km 거리로 리조트 전용 택시는 한 대에 70유로다. 홈페이지 www.westincostanavarino.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3h 20min Drive 모넴바시아 Monemvasia 육지에서 섬이 됐다가 다시 육지와 연결된 모넴바시아. 필로스에서는 3시간, 칼라마타에서는 2시간 30분 거리다. 아테네에서 모넴바시아로 가려면 무려 5시간이 걸리지만 당일치기로 모넴바시아를 찾는 이들도 꽤 된다. 길에 버리는 시간조차 아깝지 않을 만한 가치가 모넴바시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넴바시아는 펠로폰네소스 남동쪽 라코니아 주에 우뚝 선 섬이다. 본디 반도에 속한 땅이었지만 375년의 대지진을 겪으며 섬으로 분리됐다. 이 섬은 수백 년이 지난 6세기, 다시 육지와 400m 둑으로 연결된다. 모넴바시아는 그리스어 ‘모네Mone’과 ‘엠바시Emvassi’가 합쳐진 말로 ‘하나의 입구’라는 뜻이다. 실제 모넴바시아로 들어가려면 단 하나의 입구를 지나야 한다. 그렇게 닿은 모넴바시아는 식물의 뿌리처럼 뻗은 고샅으로 이어진다. 입구의 고샅은 중앙 광장으로, 또다시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연결된다. 모넴바시아는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구분된다. 아랫마을을 굽어보며 선 윗마을은 옛 모습을 잃은 지 오래. 여행자들의 발길이 잦은 아랫마을에는 보수를 거친 800여 채의 옛집과 4곳의 교회가 남아 있다. 중앙 광장에서 바다 쪽 절벽을 굽어보면 절벽에 매달린 집들의 모양새에 모넴바시아는 역시 그리스 섬이구나 싶다. 그러다가 눈을 돌려 고샅을 훑으면 육지의 어디인가 싶기도 하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겠다고 얌전히 테이블 옆을 지키니 여행자들에게 길들여진 ‘섬 고양이’인가 싶다가도 다가서면 흠칫 놀라 몸을 낮춰 피하니 ‘육지 고양이’인가 싶다. 육지 혹은 섬. 풀리지 않는 숙제다. 모넴바시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고샅을 훑고 바다를 감상하고, 레스토랑과 카페,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는 일이 전부라면 전부다. 하루 이틀 더 묵어 간다 해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고샅을 품은 그 집, 바다를 안은 저 집의 정취가 모두 달라 며칠 머물며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모넴바시아는 그런 곳이다. 스페체스 섬은 자동차가 없는 곳이다. 천천히 오가는 마차가 이곳의 예스러운 정취를 더해 준다. ●Spetses 스페체스 오토바이가 넘실거리는 섬 ▶hotel 그리스 최초의 리조트 호텔 포세이도니온 그랜드 호텔The Poseidonion Grand Hotel 정기선이든 전셋배든 수상택시든, 스페체스로 향하는 배들은 크기와 형태를 막론하고 다피아 선착장Dapia Port으로 향한다. 멀리, 배에서 바라보는 스페체스는 늘 바라 온 그리스 섬이다. 에게해를 비추는 햇빛은 청록빛에 물들고, 바다로 쏟아질 듯 섬의 언덕에 다닥다닥 붙어 자리한 집들은 파스텔톤 황톳빛을 머금었다.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스페체스의 풍경은 또 다르다. 선착장에서 걸어서 1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포세이도니온 호텔이 떡 하니 자리하고 있어 스페체스의 전형과는 조금은 다른 스카이라인을 그려 낸다. 포세이도니온 호텔은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 연안의 휴양지인 코트다쥐르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아테네의 호텔 그랜드 브르타뉴와도 동일한 양식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리자면 ‘그리스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급히 지은, 외견만 고급스런 호텔이 아니라 제대로 정성을 들여 세운 품격 있는 본격적인 호텔이다.’ 비즈니스 개념의 호텔만이 존재했던 19세기. 포세이도니온은 그리스 최초의 리조트호텔로 1914년에 문을 열었다. 유럽 각국의 왕족들이 호텔을 다녀갔고 그들의 흔적은 호텔의 옛 장부에 생생하게 남았다. 숙박객들의 이름과 숙박료를 꼼꼼하게 적은 옛 장부는 로비 한 편을 장식하며 호텔의 역사를 말해 준다. 포세이도니온 호텔은 웅장하고 화려하다. 방과 거실을 분리한 듯한 형태의 로비는 고급스러운 소파와 테이블로 꾸몄다. 로비 천장은 화려한 샹들리에로 장식하고 층과 층은 나선형 계단으로 연결했다. 포세이도니온은 6층은 됨직한 3층 건물이다. 현대의 실용성만 놓고 본다면 형편없는 건물이겠지만 사치스럽기에 웅장하고 화려할 수 있었다. 다만 1914년에 머물렀다면 호텔은 낡아 버렸을 것이다. 호텔은 2004년부터 5년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시행해 2009년 6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타일, 벽돌 등의 자재는 기존의 것을 유지했기에 웅장하고 화려한 옛것과 깨끗하고 편리한 새것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포세이도니온 호텔은 히스토릭 윙Historic Wing과 포세이도니온 뉴 윙Poseidonion New Wing으로 구분된다. 각 건물에는 슈피리어, 디럭스, 스위트 등급의 객실이 자리한다. 정원, 바다의 조망에 따라 객실 등급은 또다시 세분화된다. 낮은 등급의 객실은 아담한 침실과 욕실이 있는 단출한 시설이지만 편안한 침대와 침구를 갖췄다. 반면 스위트 등급의 객실은 사치스러울 정도로 고급스럽다. 그중 전용 엘리베이터로 닿을 수 있는 로열스위트는 호텔에서도 단 하나뿐인 객실이다. 3개의 침실에는 각각 욕실이 딸려 있으며, 넓은 거실은 값비싼 가구로 채웠다. 압권은 에게 해를 끌어안은 발코니. ‘발코니의 넓이가 부의 기준’이라는 그리스의 문화를 몸소 깨닫게 하는 장소다. 포세이도니온 그랜드 호텔은 ‘베스트 클래식 부티크 호텔Best Classic Boutique Hotel In The World’ 등 2012년에만 호텔 어워드 3관왕을 차지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찾아가기 펠로폰네소스 아르골리스 주 남동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코스타 항에서 스페체스까지 가는 페리를 매일 4회 운항한다. 소요 시간은 15분. 운항 시간은 수시로 바뀌므로 호텔에 문의하는 게 좋다. 수상 택시는 코스타 항을 비롯해 포르토 헬리 등지에서도 이용 가능하다. 24시간 운항하지만 늦은 밤이나 새벽에 타려면 따로 문의해야 한다. 아테네에서 스페체스 섬으로 바로 간다면 피레에프스(피레우스) 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면 된다. 배의 종류에 따라 2시간 30분~3시간가량 소요된다. 홈페이지 www.poseidonion.com 유의사항 그리스의 2,000여 개의 섬 중 사람들이 살아가는 섬은 200여 개다. 그리스 섬 사람들은 연중 섬에 살지만 11~4월에 여행자들이 섬을 찾기는 힘들다. 이 시기에는 호텔은 물론 카페나 레스토랑 등 여행자 편의시설이 모두 문을 닫는다. 이유는 다름아닌 날씨 때문. 강수량이 집중되는 시기라 그리스의 찬란한 햇빛은 고사하고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진다. 포세이도니온 호텔 또한 같은 이유로 이 시기에 문을 닫는다. 1~10min Walk 스페체스Spetses 스페체스 섬에는 차가 없다. 호텔에서 짐을 나르는 데 사용하는 개조 트럭이 존재하지만 일상적으로 운행되는 차는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섬이라는 단어는 고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법. 자동차마저 사라져 버린 섬의 정적은 가보지 않고는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스페체스 섬의 실상은 정적과는 거리가 멀다. 섬은 차가 없는 대신 오토바이로 넘쳐난다. 10초에 한두 대의 오토바이는 반드시 보게 되니 하릴없이 섬을 왔다갔다 하는 이들이 있음이 분명하다. 여행자에게 오토바이를 빌려 주는 가게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오토바이를 타면 섬 구석구석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겠지만 작은 섬에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천천히 섬을 걷다 보면 섬의 풍경과 일상이 느리지만 여유롭게 눈에 담긴다. 조금 멀리 이동할 일이 있다면 마차를 타면 된다. 섬의 정취에 예스러운 정취를 더하는 아주 멋진 교통수단이다. 포세이도니온 호텔에서 걸어서 1분이면 다피아 선착장이고, 다피아 선착장 인근에는 스페체스 섬의 다운타운이 형성돼 있다. 말이 다운타운이지 걸어서 10분이면 훑을 만한 기념품 가게, 카페, 레스토랑 등이 모여 있다. 기념품 가게의 단골 메뉴는 마차, 집, 고양이 등 스페체스의 풍경이 새겨져 있는 마그네틱이다. 여기에 영어로 휘갈겨 적은 ‘스페체스’라는 글씨는 기념만 되지 않는다면 지워 버리고 싶을 정도로 조악하다. 신발, 의류, 모자,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도 많다. 무언가를 사고 말고를 떠나서 모든 가게들은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스페체스의 풍경에 녹아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은 점심이나 저녁 시간을 제외하면 한산하다. 스페체스의 ‘그리스’ 할아버지들은 한산한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나른한 그들의 일상은 여행자들에게 그리스를 말하는 풍경이 된다. 지금은 아니지만 17~18세기의 스페체스는 ‘부富’로 대변되는 섬이었다. 스페체스의 작은 섬에는 범선을 만드는 큰 조선소가 있었고 이곳에서는 화물과 대포를 모두 실을 수 있는 범선을 생산했다. 17세기 이전, 그리스는 해적으로 골머리를 앓았는데 이러한 범선이 생산되며 순조로운 무역이 가능해졌다. 스페체스 섬에 부를 가져다준 본거지는 올드하버다. 오늘날 제일 항구의 명예는 다피아 선착장에 내줬지만 당시 올드하버의 영화로운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올드하버에는 요트 등 개인 소유의 배들이 즐비하고, 인근에 자리한 부유한 선박 소유주들이 지은 호화로운 집들이 스페체스 특유의 풍경을 만든다.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 가옥은 그리스에서 가장 비싼 집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올드하버는 다피아 선착장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다. 다피아 선착장과 가까운 락사리나 부부리나Laksarina Bouboulina의 집도 스페체스 섬이 풍요로웠던 시절에 지어졌다. 부부리나는 1821년 투르크와 맞선 독립전쟁에 전 재산을 내어 놓고 독립군을 이끈 여걸이다. 그리스에서 그녀의 이름을 듣는 건 어렵지 않은 일. 유로를 쓰기 이전 그리스의 화폐인 드라크마에도, 거리 이름에도 부부리나는 살아 있다.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이 부부리나를 존경하는 그리스인들 덕분에 스페체스는 풍요로움과와 더불어 영광의 섬으로 불리게 됐다. 부부리나의 집은 1991년에 부부리나 박물관으로 선보였다. 집 안에 오래된 무기와 책, 도자기, 편지와 문서, 그림, 개인 소장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부부리나의 후손이 40분간 영어가이드 투어를 진행하며 6유로의 입장료는 옛 집을 유지, 보수하는 데에만 쓰인다고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h 15min 에피다브로스Epidaurus 에피다브로스는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병의 치유를 기원하던 장소다. 에피다브로스에 모인 환자들은 일상의 즐거움을 찾았고, 대규모 반원형 극장은 그렇게 탄생했다. 에피다브로스는 그리스, 로마의 오케스트라 극장 가운데 유일하게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기원전 4세기경에 지어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음향 시스템 또한 완벽하다. 에피다브로스의 무대에는 당시의 음향 시스템을 시험하고자 전 세계 여행자들이 줄을 선다. 소리를 치는 이들도, 노래를 부르는 이들도 있다. 객석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도 소리는 잘 들린다. 소리가 벽을 치고 증폭돼 울리는 것마냥 아주 잘 들린다. 에피다브로스의 반원형 극장은 1만4,0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입장료 6유로 1h 30min 나프플리온Nafplion 펠로폰네소스 반도 아르골리우스 주에 자리한 나프플리온. 투르크와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리스 임시정부가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나프플리온은 아테네와도 2시간 30분가량 거리로 가까워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다. 나프플리온을 기점으로 삼고, 에피다브로스를 함께 돌아보면 된다. 타운 홀이 자리한 신타그마 광장은 나프플리온 여정의 출발점이다. 여유가 된다면 나프플리온이 한눈에 조망되는 아크로 나프플리온과 팔라미디 성채에 올라 본다. 아크로 나프플리온의 언덕 아래로는 바다 혹은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이 여러 갈래로 펼쳐진다.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 있는 나프플리온의 골목은, 일상이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그런 일이 늘 그렇게 일어나는 것처럼 골목 사람들은 여유롭다. 나프플리온의 개들도 골목 개 행세를 한다. 원색의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프플리온의 골목에서는 여행자가 아닌 척, 그들의 생활에 녹아 들어 골목 사람처럼 굴고 싶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꽃보다 화려하게 치장한 기념품 가게에서 꺾이고 만다. 어느 관광지에나 있는 그저 그런 기념품이 아니라 꽤 괜찮은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몇 있어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골목을 벗어나 바다로 난 길로 향하면 바다 위에 떠 있는 성채가 보인다. 부르지 섬이다. 베네치아인들의 요새였던 곳으로 19세기에는 사형 집행인들이 은퇴 후 이곳에서 생활했다 한다. 글·사진 Travie writer 이진경 취재협조 터키항공 02-3789-7054 www.turkishairlines.com ▶travie info 항공 한국에서 그리스로 가는 직항은 없다. 터키항공을 이용해 인천, 이스탄불, 아테네를 연결하면 빠르고 편리하다. 인천과 이스탄불 구간은 매일 1회, 이스탄불과 그리스 구간은 매일 4회 운항된다. 시차 그리스가 한국보다 6시간 느리다. 화폐 유로를 사용한다. 2013년 7월 기준, 1유로는 1,477원. 전압 220V, 50HZ. 한국의 전기 제품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 [김일수 樂山樂水] 가을 문 앞에 이르러

    [김일수 樂山樂水] 가을 문 앞에 이르러

    무더위 때문에 무척 힘들었던 지난여름이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계절은 바뀐다. 풀벌레소리가 더 맑게 귓가에 울리고, 가끔 소슬바람도 옷깃을 스쳐간다. 한낮의 더운 바람 속에도 벌써 가을 정취가 묻어 나는 듯하다. 이처럼 긴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의 문턱을 마주하노라면 생각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구나 저 문을 넘어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면, 그 자연의 법칙으로부터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 그래서 새삼 변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피조물의 세계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간의 생각과 삶의 구석구석도 변하기 마련이다. 각자의 의식과 삶이 변하면 사회도 변할 수밖에 없다. 사회가 변하면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풍습, 제도 등도 변해야 한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생활세계는 항시 예측불가능과 불안전성, 갈등 같은 난제와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그 불안을 제거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시민사회는 오래전부터 법과 규약, 국가제도 등을 세우고 이를 유지·발전시켜 왔다. 문제는 무엇을 위해, 어느 방향으로, 또 어떻게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가이다. 바람직한 변화의 열매를 얻으려면 먼저 지금 우리가 어디쯤에 서 있는지,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보폭으로 걸어갈 것인지를 면밀히 살펴야만 한다. 변화의 목적은 오늘날의 문화코드로 읽자면 국민행복이다. 새삼스럽게 들릴지 몰라도 그것은 경제민주화처럼 이미 우리 헌법이 오래전부터 지향해 온 핵심가치이다. 변화의 방향은 자유와 안전의 조화이다. 더 많은 자유냐, 더 많은 안전이냐는 오늘날의 다양한 변화욕구를 담아낼 그릇이 될 수 없다. 국민행복은 자유라는 한쪽 날개와 안전이라는 다른 한쪽 날개를 펴고서야 제대로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보폭은 어느 시점을 출발선으로 삼고, 몇 단계 앞까지 전진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추상적 유토피안들은 대낮에 부엉이를 날려 보내려 하지만 저녁놀이 찾아 오기도 전에 낭패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 유토피안들은 저녁놀이 깃들 무렵에야 부엉이를 날려 보낸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한밤의 어둠을 뚫고 더욱 전진한다. 구체적 유토피안의 관점에서 보면 최근의 상법개정안이나 경제민주화 논의에는 현실의 여건에 비해 너무 일찍, 너무 멀리 날려 보낸 부분이 없지 않다. 사회생활은 이해관계만 얽혀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에선 가치관계도 중요한 몫을 한다. 몇 가지 윤리덕목만 가지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가정과 교육현장이 최근 들어 위기에 빠져 있다. 촘촘한 법망도 모자라 상시적인 감시망과 공권력의 개입을 필요로 하는 지경까지 왔다. 전통적인 밥상머리 교육이나 인성교육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미 보육시설에서부터 경쟁은 시작된다. 정작 중요한 가치를 읽어 버린 채 목적도 없이 방황하는 군상들은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공전국회, 촛불시위, 조세개혁 파동, 공직사회의 부패, 더 채우려는 파업, 전세대란, 구멍 뚫린 안전망, 높은 이혼율, 끊임없는 자살소식,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이산가족들의 한숨 등 셀 수 없는 사회의 막힌 담들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누리면서 우리는 정말 인간다운가? 가을의 문턱으로 다가서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집중적인 삶의 구각을 벗어 버렸으면 좋겠다. 인간은 결코 자기왕국에 갇혀 사는 고립된 개체가 아니다. 그는 관계 속의 존재이기에 자신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기대하듯, 자신도 타인을 위한 희생의 공간을 내놓아야 한다. 곤경에 처한 이웃들이 눈에 들어오도록 마음을 열고, 두 팔을 벌려 포용의 자리로 나왔으면 좋겠다. 스스로 도울 길 없는 불우한 이들의 이웃이 되어 주는 넉넉한 마음밭이 되었으면 좋겠다. 올가을의 문이 우리 모두에게 사랑의 온기를 채우고 나누는 새로운 마음가짐의 문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고려대 명예교수
  • [지상파 하이라이트]

    ■대한민국 행복발전소(KBS1 밤 7시 30분)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칼과 도마 위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족발 전문점의 썩은 나무 도마부터 삼계탕 전문점의 구정물에 담긴 칼 등 그동안 나왔던 충격적인 음식점 주방 현장을 살펴본다. 그리고 안전의 왕으로 선정되었던 음식점을 찾아가 방송 후 변화된 모습과 안전한 식당을 만드는 노하우를 들어본다. ■드라마 스페셜 엄마의 섬(KBS2 밤 11시 10분) 외딴 섬에 혼자 살고 있는 엄마(김용림). 어느덧 장성한 자식들은 뿔뿔이 흩어져 제각기 삶을 살고 있다. 엄마의 생일을 맞아 사남매의 장남 이한, 차남 이탁, 삼남 이찬, 그리고 막내 여동생 이숙까지 귀향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극한의 공포에 내몰리게 되는데…. ■라디오 스타(MBC 밤 11시 20분) ‘순정마초’ 편으로 ‘흑 악마’ 추성훈, 아시아인 최초 UFC 8승의 주인공 김동현, 전설의 FC 챔피언 울버린 배명호, 그리고 UFC 마니아 배우 신소율이 출연한다. 파이터들의 생리현상과 관련된 경기 에피소드와 억대로 뛰어오른 그들의 몸값까지 세세하게 밝힌다. 한편 그들의 사랑 이야기까지 공개되는 등 의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드라마 스페셜 주군의 태양(MBC 밤 10시) 태공실(공효진)과 강우(서인국)가 뮤지컬 데이트 중이라 생각하고 있는 주중원(소지섭)은 괜히 분하고 질투가 난다. 한편 기괴하게 생긴 인형이 승준(홍은택) 앞에 나타나고, 아이들 귀신이 붙은 정체 모를 공포 인형은 승준을 괴롭힌다. 감기 걸린 귀도(최정우)를 대신해 태공실이 주중원의 여비서로 나서게 된다. ■세계테마기행(EBS 밤 8시 50분) ‘7할이 산’이라 할 만큼 수많은 산으로 둘러싸인 중국 저장성. 그 산에서 고립됐으되 풍요로운 산중의 삶을 이어가는 이들을 만난다. 이곳 저장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단식 논은 험한 산악지형에서 오랜 기간 손수 일구고 가꿔온 그들만의 터전이다. 그 외에도 자연이 주는 선물로 독특한 문화를 이어가는 산 사람들을 만나본다. ■리얼대탐험(OBS 밤 9시 50분) 유럽 세계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치며 한때 세계를 장악했던 몽골의 칸, 칭기즈칸. 그의 죽음에 관련된 모든 정보는 미스터리 베일에 가려져 왔다. 그 무덤의 위치 또한 숨겨져 수백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에 내셔널지오그래픽 탐사대가 몽골 탐험대와 손잡고 그 무덤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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