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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 차린 베이비부머 아직 눈 높은 에코부머

    정신 차린 베이비부머 아직 눈 높은 에코부머

    부모 세대는 은퇴를 앞두고 퍼뜩 정신을 차렸지만 자식 세대는 아직 남의 일인 모양이다. 베이비부머(1955~63년생)의 은퇴 준비는 개선됐지만 베이비부머의 자식 세대인 에코부머(1979~92년생)의 은퇴 준비는 뒷걸음쳤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은 ‘2014 은퇴준비격차’가 13% 포인트로 2년 전 18% 포인트보다 5% 포인트 개선됐다고 14일 밝혔다. ●은퇴 앞둔 부모들 기대소득 낮춰 은퇴준비격차란 은퇴 이후 원하는 소득과 실제 은퇴 소득의 차이를 나타내는 지수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이 2008년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노년·은퇴설계지원센터에 의뢰해 개발한 것으로, 2년마다 발표하고 있다. 숫자가 클수록 은퇴 준비가 덜 돼 있다는 의미다. 연령대별로 보면 50대의 은퇴준비격차가 9% 포인트로 2년 전 20% 포인트에 비해 11% 포인트나 줄었다. 40대도 4% 포인트(13% 포인트→9% 포인트) 줄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연금 가입 등 은퇴 이후 소득 준비가 실제로 나아진 요인도 있지만 ‘눈높이’가 낮아진 요인도 작용한 것이다. 조사를 총괄한 최순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은퇴 시기가 다가오면서 베이비부머들이 은퇴 후 원하는 소득을 현실에 맞게 큰 폭으로 낮춘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풍요 누린 자녀들은 고소득 기대 은퇴 이후 기대 소득과 은퇴 직전 실제 소득 간 격차인 목표소득대체율의 경우 50대는 최근 2년 새 59%에서 51%, 40대는 58%에서 54%로 줄었다. 은퇴 자산의 준비 정도를 나타내는 은퇴소득대체율도 50대는 3% 포인트(39%→42%) 높아졌다. 반면 에코 세대인 30대는 은퇴준비격차가 2% 포인트(10% 포인트→12% 포인트) 되레 높아졌다. 20대는 5% 포인트(14% 포인트→9% 포인트) 줄었지만 목표소득대체율은 20대(48%→53%)와 30대(56%→57%) 모두 높아졌다. 최 교수는 “청년층 실업난의 영향으로 은퇴 직전 소득이 줄어들어 목표소득대체율이 높아진 측면도 있지만 에코부머는 베이비부머보다 풍요로움을 경험한 세대라 은퇴 후 좀 더 높은 소득을 예상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은퇴 후 생활비 年 4560만원 추산 물가 등을 감안할 때 우리 국민의 은퇴 후 생활비는 연간 4560만원 정도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국민연금, 사적 연금 등을 포함한 은퇴 후 예상 소득은 연간 3479만원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필요치보다 1000만원가량 부족한 셈이다. 예상 은퇴 소득은 은퇴 직전 소득의 4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권고치(60~70%)를 크게 밑돌았다. 조사는 가구주가 20~59세인 2인 이상 도시 근로자 가구를 대상으로 했다. 60세에 은퇴하고 기대 여명까지 부부가 모두 살아 있다고 가정했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국내여행 | 금빛 따라 서산 아리랑 타고 정선

    국내여행 | 금빛 따라 서산 아리랑 타고 정선

    보이는 것은 일렁이는 금빛물결이었고 들리는 것은 구슬픈 아리랑 노랫가락이었다. 기차를 타고 서산과 정선을 오고 가는 길은 더할 나위 없이 넉넉했다. ●서산에 다시 가야 할 이유 서해금빛열차 G-트레인 금빛물결이 일렁이는 서해안을 따라 기차를 타고 훑어 내려갔다. 단언컨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가장 뜨끈뜨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열차가 G-트레인이다. 따뜻한 온돌마루에 오도카니 앉아 사색에 잠기자니 혼자 온 것이 외롭다. 1량 전체가 온돌마루실로 구성된 G-트레인에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삼삼오오 모인 이들로 그득했다. 혼자 온 것을 다시금 후회하며 조용히 족욕기에 발을 담근다. 온몸에 긴장이 풀리고 노곤해진다. 차창을 마주보고 앉아 있으니 휙휙 재빨리 지나가는 모든 것들처럼 시간도 빠르게 흘렀다. G-트레인은 아산, 예산, 홍성, 보령, 서천, 군산, 익산 등 서해안의 보석 같은 도시 7곳에 정차한다.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충북 서산에 가기로 결정했는데 아쉽게도 서산에는 기차역이 없다. 홍성역에서 내려 서산까지 30여 분을 차로 달려야만 하지만 여기는 충청도가 아니던가. 안으로 길게 포구가 나 있는 내포지방에 속하는 서산은 높은 산이 없고 넓은 들이 있어서 큰 자연재해가 거의 없단다. 속설에는 1년 농사를 지으면 3년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물산이 풍부한 곳이라는데 거기에 바다까지 끼고 있으니 여유롭고 풍요롭다. 그러니 가는 길마저 푸근하고 느긋하기만 하다. 서산에 도착해 가장 먼저 간월암에 간 것을 후회했다. 볼 간看, 달 월月. 간월담은 의미 그대로 석양이 비추고 달이 떠오를 때 가장 아름다운 바위섬이다.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바다 위에 떠오른 달을 보고 득도했다는 유래가 있을 정도니 대낮에 방문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좋은 것도 있었다. 간월도 옆에 떨어져 자리한 작은 바위섬인 간월암. 썰물 시간에 맞춰 간 덕에 간월암으로 향하는 짧은 길이 열리고 간월사에 닿을 수 있었다. ‘고즈넉하다’라는 말을 진정으로 쓸 수 있는 작은 사찰이다.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인해 암자는 완전 폐쇄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절은 1941년 만공스님이 중창하신 것이다. 본디 바닷가 근처에 있는 사찰들은 용왕전만 두고 산신전은 없는 것이 특징. 하지만 이곳은 금북정맥의 끝자락에서 그 기운을 받았다고 하여 산신전도 함께 두고 있다. 절을 중심으로 360도 바다를 조망할 수 있으니 가장 너른 바다를 품고 있는 절이다. 절 마당 가운데는 250년의 세월을 보낸 사철나무가 오롯이 서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그보다 더 나이가 많다는 탱자나무가 오가는 이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서산의 여유로운 시간에 갇혀 잠시 넋을 놓았더니 밀물이 드리워지고 말았다. 간월암만큼 아쉬운 곳은 또 있었다. 마음을 열고 가는 절 ‘개심사’다. 마음은 열었는데 꽃길은 열리지 않았다. 개심사에 완연한 봄이 찾아오면 흐드러지게 핀 왕벚꽃과 산매화가 산길을 수놓는단다. 더군다나 개심사는 전국에서 가장 벚꽃이 늦게 피는 곳(4월 말~5월 초)으로 벚꽃놀이를 놓친 이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 이곳을 너무 일찍 찾은 아쉬움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청벚꽃 때문이다. 어떤 이는 새하얀 꽃잎에 은은한 연둣빛이 물든 청벚꽃이 탐스럽게 피어나면 사람들의 마음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의 마음을 흔들 정도로 아름답다고 칭송했다. 점점 다가오는 봄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설레었다. 조만간 서산을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must go 교황님도 다녀가신 해미읍성 서산의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에 남은 세 개의 읍성 중 하나로 성의 높이는 5m, 둘레 1,800m에 넓이만 약 20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신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국내 최대의 천주교 성지이기도 하다. 1866년 천주교 박해가 한반도를 휩쓸 때 약 1,000여 명의 신도들을 모아 해미읍성 안의 회화나무에 줄줄이 메어 놓고 고초를 가해 날마다 곡소리로 가득 찼다고.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장 먼저 옥사한 신도 두 명을 시복했다.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문1길 36-1 041-660-2540 바닷내음 듬뿍 서산동부시장 비린내가 반가운 곳, 서산 최대의 수산시장 서산동부시장이다. 날마다 싱싱한 각종 해산물로 가득한데 젓갈이나 밑반찬 등을 판매하는 곳도 여럿이다. 아직도 옛 건물의 모습을 간직한 골목길도 눈에 띈다. 크고 높은 천장 대신 판자로 지붕을 가리고 있는데 1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다. 고장이 난 물건을 뚝딱뚝딱 고쳐 주는 만물상 아저씨도, 둔한 날을 갈아 주는 칼잡이 할아버지도 그리고 마른 감태에 참기름을 발라 구워 주는 할머니도 왠지 친숙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인심도 후하고 가격도 착한 시장의 간식거리를 맛보는 재미도 반드시 누릴 것. 충청남도 서산시 시장3길 5-6 041-665-5478 ●이야기는 깊은 산골에 울려 퍼져 정선아리랑열차 A-트레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그 애절한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600여 년 전 고려가 망할 당시 충절을 다짐했던 충신들의 비통한 심정과 여인네의 한이 묻어 있는 ‘정선 아리랑’이다. 기차에서 아리랑이라니 귀를 의심하면서도 정선으로 가는 길에 이만하면 센스 넘치는 배경음악이라며 내심 흡족했다. 그러나 사실 정선 아리랑은 낯설었다. 귀에 익은 아리랑 후렴구 몇 소절을 제외하고는 전부 생소했는데 정선 아리랑의 노랫말이 자그마치 8,000여 수나 된다는 사실에 위로가 됐다. 지역적인 특수성도 한몫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정선. 우뚝 솟은 태백산맥이 너무 높아 외부와의 단절이 심했기 때문에 구전 민요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구절만이 어렴풋이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추전역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은 역, 해발 약 660m에 위치한 자미원역이다. 하나, 두울, 세엣… 이 역에서부터 정확히 일곱 개의 터널을 지나니 왼쪽 차창 너머로 대머리 민둥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을이면 황금빛 억새의 향연이 펼쳐지는 민둥산은 아직 녹지 않은 눈을 입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굽이굽이 어깨를 포개고 있는 산골짜기가 아찔하게 펼쳐져 있다. 그만큼 높은 지대를 달리고 있다는 의미다. 그 경관을 좀 더 느긋하게 담으라는 듯 열차는 서행하기 시작한다. 시원한 공기를 들이켜 볼까 창문을 열었다. 아직은 다소 차가운 기운에 몸이 부르르 떨렸지만 공기는 확실히 달고 맑다. 청량한 강원의 바람을 가득 실은 열차는 어느새 정선에 닿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정선에서 중요한 숫자는 2와 7이다. 정선은 아직도 5일장이 열리는 곳으로 정선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 ‘정선장터’는 매달 2와 7이 들어간 날, 장이 선다. 평소에는 한산하던 장터가 5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각종 산나물과 생필품을 들고 나온 노점상들이 복닥복닥 800m 가량 길게 늘어서 있다. 서리를 맞은 콩 ‘서리태’와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는 ‘황기’, 향긋한 도라지 등 고랭지 정선에서 자란 건강한 농작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부터 논이 적은 정선에서 가난한 이들의 주린 배를 채워 준 것은 곡식보다는 나물이었다. 그중에서도 곤드레 나물이 으뜸이었다. 한 번 씨를 뿌리면 한 번 뜯어 먹을 수 있는 곤드레 나물이 정선에서만큼은 세 번의 풍요를 베풀었단다. 정선이 품고 있는 건강한 땅의 기운을 받고 자란 곤드레 나물은 1m까지 자라는 만큼 영양분을 골고루 담고 있다. 특히 면역력을 증진시키고 항암 효과에 탁월하다는 사포닌 성분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나물이지만 약초의 역할을 한다고. 곤드레 나물 대신 쌉싸름한 흙내음을 품은 더덕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시장 한 켠 좁은 공간에서 커다란 고무대야에 한가득 쌓은 더덕을 다듬는 아지매로부터 더덕 몇 뿌리 더 얻는 것으로 가격 흥정을 대신했다. must go 아리랑의 현대판 아리랑극 <메나리> 연극 <메나리>는 정선 아리랑을 토대로 전통과 역사 그리고 동화 같은 장면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꼭꼭 담았다. 정선에 발을 디딘 사람이라면 아리랑의 메아리를 마을 곳곳에서 들을 수 있지만 메나리 아리랑극에서 듣는 노래의 색은 다채롭다. 장면장면에 따라 때로는 구슬프게, 때로는 사랑스럽게 표현해 내는 전통극의 현대판 뮤지컬이다. 참고로 메나리는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등 일부 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로 대표적인 메나리토리로는 ‘아라리’, ‘산유화가’, ‘어산요’ 등이 있다. 강원 정선군 정선읍 봉양리 267 033-560-2567 www.jeongseon.go.kr 정선아리랑 상품권 5,000원 신비한 다섯 가지 이야기 화암동굴 화암동굴은 크게 다섯 개의 테마로 나뉘어 있다. 1922년부터 1945년까지 약 22년간 강원도 지역의 생계를 책임졌던 천포광산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재현한 역사의 장을 지나면 365개의 계단을 따라 수직으로 90m를 내려간다. 다리가 꽤나 후들거리지만 동양 최대의 유석폭포와 석순, 석주가 가득한 천연 종유굴을 마주하면 켜켜이 쌓인 세월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금광 캐는 도깨비들이 안내하는 동화의 나라와 금의 역사와 종류, 제련 과정 등 금에 대한 모든 것을 모은 전시도 만나 볼 수 있다.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화암동굴길 12-8 033-562-7062 www.jsimc.or.kr 성인 5,000원 청소년 3,500원, 어린이 2,000원 ●철길 따라 달라진 여행지도 2013년 중부내륙관광열차 O·V-트레인을 시작으로 남도해양열차 S-트레인, 평화열차 DMZ 트레인 그리고 지난 1, 2월에는 정선아리랑열차 A-트레인과 서해금빛열차 G-트레인이 차례대로 개통했다. 마침내 코레일이 야심차게 준비한 ‘대한민국 5대 철도관광벨트’가 완성된 것. 이제 달라진 관광지도를 펼쳐 볼 시간이다. 평화열차 DMZ-트레인 서울에서 원산元山까지 223.7km를 잇던 경원선은 분단과 함께 허리가 끊겼다. 이후 용산에서 신탄리역까지만 운행하다가 2012년 11월에 백마고지역이 신설됐고 지난 2014년 백마고지역에서 평강까지 31km가량 운행 구간이 조금 더 늘어났다. 분단 역사의 현장으로 되돌아가는 타임머신 열차 DMZ-트레인은 전쟁이 남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화합과 평화를 싣고 달린다. 총 3량의 열차에는 철도와 전쟁·생태 사진을 전시한 갤러리도 있고 카페에서는 군용건빵과 주먹밥 등을 판매한다. 1일 1회 왕복 운행 중이다. DMZ-트레인 Pass 서울역-도라산역(경의선) 1만6,000원, 서울역-백마고지역(경원선) 2만3,000원(성인 기준) 서해금빛열차 G-트레인 지난 2월5일, 서해금빛열차 G-트레인이 운행을 시작했다. 용산을 출발한 열차는 예산·홍성·보령·서천·군산·익산 등 서해의 주요 7개 도시를 거치며 1일 1회 왕복 운행한다. 열차 내에는 3~6명 수용 가능한 온돌마루실 9개가 마련되어 있으며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신인 개그맨들이 출동해 신나는 공연도 펼친다.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며 따뜻한 족욕을 즐길 수 있는 족욕 카페도 매력적. 취향에 따라 습식·건식 족욕을 선택할 수 있다. 용산 출발 예산 1만5,900원, 홍성 1만7,900원, 군산 2만5,300원, 익산 2만7,400원(성인 기준) 남도해양열차 S-트레인 S-트레인의 ‘S’는 ‘South’의 약자로 남도해양관광열차임을 짐작케 한다. 그밖에도 바다Sea, 느림Slow 그리고 구불구불한 경전선과 남해안을 상징한다. 코스는 크게 두 가지다. 1코스는 부산에서 진영·마산·하동·순천·벌교·보성 등을 잇고 2코스는 서울역을 출발해 서대전·전주·남원·곡성·순천·여수EXPO를 1일 1회 왕복 운행한다. 열차는 힐링실, 가족실, 카페실 등 각종 테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 전통 차를 ‘좌식’으로 즐길 수 있는 다례실도 마련해 즐거움을 더했다. 서울 출발 전주 2만5,200원, 여수EXPO 2만9,300원, 부산 출발 순천 1만9,500원, 보성 2만3,600원 (성인 기준) 정선아리랑열차 A-트레인 우리나라 열차 가운데 지역 명칭을 사용한 것은 정선아리랑열차가 최초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민둥산·정선·아우라지역을 1일 1회 왕복 운행한다. 매주 화·수요일은 운휴지만 정선 5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특별운행하고 있으니 참고할 것. A-트레인은 넓은 전망창을 설치해 깨끗하고 맑은 강원의 청정자연을 감상할 수 있으며 창문을 여닫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레일바이크 코스와 정선 5일장 코스 그리고 이 둘을 함께 엮은 1박2일 코스 등 다양한 연계 여행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청량리 출발 민둥산 2만4,000원, 정선 2만6,100원, 아우라지 2만7,600원 A-트레인 Pass 4만8,000원(성인 기준) 중부내륙관광열차 O·V-트레인 코레일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철도관광벨트 중 가장 먼저 탄생한 열차다. O-트레인은 중부 내륙 3도인 강원·충북·경북 257.2km를 동그랗게 잇는 순환열차. 서울역을 출발한 열차는 제천역에서 시계 방향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나뉘어 1일 4회 순환 운행 중이다. 총 4량으로 구성된 열차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담은 인테리어로 장식했다. V-트레인은 영동선 분천·비동·양원·승부·철암역 27.7km를 V자로 잇고 1일 3회 왕복 운행한다. O-트레인과 V-트레인이 개통되면서 작은 시골역에 불과했던 경북 봉화의 분천역 근처에는 식당가와 마을 장터가 생겨나고 산타마을까지 조성되는 등 조용했던 간이역들이 활기를 되찾았다. O-트레인 Pass 1일권 5만4,700원, 2일권 6만6,100원, 3일권 7만7,500원 V-트레인 분천-철암 8,400원, 영주-철암 1만1,700원(성인 기준) 글·사진 손고은 기자 취재협조 코레일 www.korail.com
  • 수수한 옛것에 덤덤함 더하니 은은한 새것이

    수수한 옛것에 덤덤함 더하니 은은한 새것이

    우리 전통 공예의 아름다움과 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디자인의 본고장 밀라노에서 빛을 발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주관하는 ‘한국공예의 법고창신(法古創新) 2015’ 전시회가 이탈리아 밀라노의 트리엔날레 디자인 전시관에서 14일(현지시간) 막을 올린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이번 전시에는 ‘수수, 덤덤, 은은’이라는 주제로 한국 전통 공예의 문화적 가치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 192점(6개 분야, 공예장인 23인의 작품)이 출품됐다. 공식 개막에 하루 앞서 13일 오후 열린 언론 공개설명회에서 현지 언론인들과 비평가들은 조용하고 기품 있는 한국의 독특한 전통 미감과 다양한 기법으로 현대적 감각을 살린 작품들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올해로 세 번째 전시… 공예장인 23인의 192점 선보여 디자인 평론가 비페 피네시는 전시도록에서 “전시된 작품들은 오랜 시간에 거쳐 축적된 재질에 대한 완벽한 이해, 수공예 과정에 대한 높은 완성도를 통해 과거의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추출해 냈다”며 “전통이야말로 풍요로운 내일을 밝힐 등불이 된다는 것을 완벽하게 보여 준다”고 평했다. 최정철 KCDF 원장은 “더욱 다양하고 풍성한 작품들을 통해 한국 공예에 담긴 꾸밈없이 소박한 자연미와 절제된 아름다움을 선보이게 돼 자랑스럽다”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의 의미를 그대로 살린 작품들을 통해 세계인이 공감하고 아끼는 한국 디자인의 미래를 찾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의 예술감독을 맡은 ‘박여숙 화랑’의 박여숙 대표는 “이번 전시가 우리 공예문화와 장인, 작가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나아가 국제무대 진출을 도울 수 있는 발판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화려하지 않지만 절제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한국의 미, 꾸밈이 없이 소박한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정신성,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성이 뛰어난 한국의 문화적 가치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라며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적 기법에서 현재를 표현하고 미래를 제시하고자 노력한 장인과 작가들의 시간과 기다림의 미학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별했다”고 소개했다. 이탈리아 최초의 디자인 전문 전시관인 트리엔날레의 2층에 마련된 187㎡ 규모의 전시공간은 한지로 만든 방패연을 이용한 천장 장식으로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자연 소재의 물성을 살리면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우리 전통 공예의 철학을 계승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장인과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공간을 풍성하게 장식했다. ●“과거를 통해 새로움 추출… 전통은 내일 밝힐 등불” 극찬 금속공예 분야에는 이용구 장인의 주전자와 노구솥, 김수영 장인의 안성유기, 전통 공예의 현대화를 도와주는 ‘예올 프로젝트’를 통해 조기상 디자이너와 김수영 장인이 협업한 옻칠유기, 이경노 장인의 은입사화로와 사각합이 출품됐다. 도자공예 분야에서는 도예가 박성욱의 덤벙분청입호와 탑들, 백자도판에 조선의 명품 청화백자와 철화백자를 평면화해 작가 고유의 기법으로 제작한 이승희의 도판작업이 선보였다. 이수종의 철화분청 항아리들, 이세용의 백자 이중합, 노경조의 분청귀얄합 등 중견 도예가들도 합류했다. 옹기장 이현배의 키다리 곤쟁이 항아리, 옹기장 안시성의 사각병 등이 질박한 아름다움을 추가했다. 지공예 분야에서는 이영순 작가의 지승항아리와 오제환 연장의 방패연을 통해 우리나라 천연 소재인 한지가 갖는 아름다운 물성을 보여 준다. 섬유 분야에서 김현희·이소라 작가의 조각보와 누비장 김해자의 복식을 통해 수수하고 정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죽공예 분야에선 염장 조대용의 대나무발이 선보였다. 칠공예 분야에서는 김설 작가의 건칠그릇, 양유전 장인의 채화칠 발우, 최영근 작가의 칠화, 정상길 작가가 뼈대를 깎고 박강용 장인이 칠을 입힌 발우, 최상훈 장인의 나전합 등이 소개됐다. 14일 오후 개막식 행사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김창회 작가는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이덕무가 밀랍으로 매화꽃을 만들어 다기 옆에 놓고 감상했던 윤회매를 고증을 통해 재현해 출품했다. 오는 19일까지 계속되는 밀라노 디자인위크는 54회를 맞는 밀라노가구박람회를 중심으로 밀라노 전역에서 펼쳐지는 세계 최고의 디자인 경연장이다. 가구 외에 패션, 전자, 자동차, 통신 등과 관련된 세계적 기업과 각국 전시관이 운영되며 한국은 디자인위크 기간에 맞춰 한국 전통 공예의 문화적 가치와 현대적 의미를 조명하고 미래를 찾는다는 취지에서 2013년부터 ‘한국공예의 법고창신’전으로 열어 유럽 디자인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아 왔다. 밀라노(이탈리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건강레시피] 적당한 탄수화물로 체중·건강 잡자

    저당질 식사란 탄수화물 섭취를 하루 100g 이하(밥 2분의1공기, 작은 감자 1개)로 제한하는 방법입니다. 탄수화물을 제한하면 체지방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케톤증이 유발되고 소변량이 늘어나 체액이 손실되면서 짧은 기간에 체중이 많이 줄어듭니다. 많은 연구 결과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저지방 식사요법에 비해 초기 체중 감량 효과가 두드러지고, 허리둘레 감소, 혈압 강하, 혈당 및 중성지방 등 대사 지표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탄수화물을 적게 먹으면 지방 섭취를 제한하는 것보다 식사 내용 면에서 풍요롭고, 식사 제한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덜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여성의 경우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일수록 복부비만과 고중성지방혈증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 당질 섭취에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 몸에 다른 대사 변화를 일으켜 동맥경화증 발생 위험이 있다는 연구도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또 탄수화물 섭취는 제한하되 지방과 단백질을 많이 먹으면 신장기능이 손상되고, 칼슘 손실에 따른 골절, 대장암 및 우울증 등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탄수화물 섭취를 아예 제한하기보다 우리의 식사패턴에 알맞게 적당량을 먹는 게 좋습니다. ■도움말 식품의약품안전처
  • [글로벌 시대] 리콴유 전 총리의 세계관/정해문 전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전 주그리스·태국 대사

    [글로벌 시대] 리콴유 전 총리의 세계관/정해문 전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전 주그리스·태국 대사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91세를 일기로 지난달 타계했다. 그의 아들 리셴룽 총리는 국장 추도사를 통해 “싱가포르는 캄캄한 한 주를 보내고 있다. 여태껏 우리 모두를 인도해 온 불빛이 마침내 꺼졌다”고 국부의 서거를 애도했다. 그는 1959년 자치정부 시절부터 작고 직전까지 싱가포르를 밝혀 준 횃불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전 세계를 비춘 지혜와 통찰력의 성화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역사의 진정한 거인이라고 칭송했으며 시진핑 주석은 그를 중국의 ‘라오펑유’(朋友·오랜 친구)라고 추모했다. 리 전 총리는 2013년 발간된 그의 마지막 역저 ‘한 사람의 세계관’에서 중국의 민주화 문제에 대해 이렇게 설파하고 있다. 5000년 동안 중국인들은 중앙이 강력할 때만 나라가 안전하다고 믿어 왔다. 중앙이 취약하다는 것은 혼돈과 혼란을 의미한다. 강력한 중앙은 평화롭고 번영하는 나라를 가져온다. 모든 중국인들이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일부 서방세계에서는 중국이 서방의 전통에 따라 민주주의가 되기를 원하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리 전 총리는 동일한 저서에서 1986년 덩샤오핑 최고지도자가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 싱가포르가 어떻게 중국 최고지도자에게 개방 경제의 혜택을 확신시켜 줄 수 있었는지 술회하고 있다. 덩샤오핑은 어떻게 부존자원 없는 조그마한 섬이 외국 투자, 경영, 기술 및 시장을 유치함으로써 인민들이 양질의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가를 면밀히 관찰했다. 그는 중국 경제의 개방 필요성을 확신하고 귀국하자마자 싱가포르 모델을 원용해 6개 특별경제구역을 출범시켰다. 그의 싱가포르 방문은 중국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순간이자 전환점이었다. 같은 저서에서 그는 미·중 관계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양자 관계이며, 양 거인 간의 평화와 협력은 아시아에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며, 양국 간 충돌은 양국이 핵무기 보유국임을 감안하면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내다봤다. 미국으로서는 군사기술 향상 노력을 늦추지 않으면서 중국의 국제사회 통합을 도와주고 중국이 국제질서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하도록 지원해야 하며 그러면 중국은 글로벌 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준수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전 총리는 상기 저서에서 북한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기술하고 있다. 북한은 돌아오지 못할 지점을 이미 지났으며, 중국이 북한 지도자들을 중국의 상하이·광저우 및 선전 등 중국 개혁·개방 중심 도시를 보여 주면서 권력을 놓치지 않고 점진적 개방을 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설득했음에도 북한은 중국과는 판이한 다른 길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개인 숭배에 의해 봉합돼 있으며 숭배 인물이 붕괴하면 나라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 전 총리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전략가이자 사상가였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지도자들이 그의 통찰력과 비전을 높이 사서 그의 조언을 구했다. 그는 1976년부터 거의 매년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자를 모두 만났다. 1962년부터 미국을 방문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워싱턴 방문은 일종의 국가적 이벤트였다. 미국 대통령과의 대화는 거의 자동적이었다. 그의 통찰력은 우리 후대에 유산으로 넘겨졌다. 그가 행동으로 실천한 국가경영 철학, 특히 양질의 교육, 효율성, 책임성, 투명성, 반부패 등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소중한 가치다.
  • [新 국토기행] 제주 서귀포

    [新 국토기행] 제주 서귀포

    감귤과 올레길의 고장, 우리나라 최남단 항구 도시인 서귀포시는 아름다운 화산섬 제주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다. 연평균 17~18도의 따뜻한 기온, 그림 같이 펼쳐진 서귀포 칠십리 해안, 천재화가 이중섭의 예술혼이 살아 있는 곳. 서귀포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문화가 넘쳐 난다. 전국에 걷기 열풍을 몰고 왔던 제주 올레길이 처음 시작한 곳도 서귀포다. 사시사철 올레꾼들의 꼬닥꼬닥 발자국 소리가 이어지고 들판을 가득 메운 노란 감귤밭은 서귀포의 풍요를 말해 준다. 요즘 서귀포에는 중국인들로 넘쳐 난다. 중문관광단지 면세점에는 중국인 쇼핑 관광객이 줄을 잇고 올레길에도 중국어 소리가 왁자지껄 들린다. 과거 남제주군에 속했던 서귀포시는 서귀포항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1981년 자치시로 승격했다가 2006년 7월 고도의 자치권을 가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남제주군과 통합해 행정시로 바뀌었다. 서호동에는 제주 혁신도시가 들어섰고 서귀포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중산간 이곳저곳에는 중국자본의 대규모 휴양단지 건설사업이 한창이다. [볼거리] ●외돌개~월평포구로 이어진 올레 7코스… 중국 관광객도 북적 제주의 올레길 가운데 올레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서귀포 7코스다. 외돌개를 출발해 법환포구를 거쳐 월평포구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해안올레는 사시사철 올레꾼들이 넘쳐 난다. 올레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자연생태길인 ‘수봉로’가 유명하다. 7코스 개척 시기인 2007년 12월, 올레지기인 김수봉이 염소가 다니던 길에 직접 삽과 곡괭이만으로 계단과 길을 만들어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한 길이다. 2009년 2월에는 그동안 너무 험해 갈 수 없었던 두머니물~서건도 해안 구간을 일일이 손으로 돌을 고르는 작업 끝에 새로운 바닷길로 만들어 이어, ‘일강정 바당올레’로 이름 지었다. 7코스는 14.2㎞로 4~5시간이 걸린다. 올레꾼들이 7코스에만 몰리는 바람에 호젓한 올레길의 멋은 사라져 가고 있지만 올레길 앞에 펼쳐지는 푸른 서귀포 앞바다의 풍광은 장관이다. 최근에는 중국인들도 즐겨 찾는 올레길이다. ●천재화가의 예술혼 살아 있는 ‘이중섭 미술관’ 이중섭(1916~1956)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 후퇴 때 고향인 평남 평원군을 떠나 부산에 잠시 머물다가 서귀포로 피란을 왔다. 서귀포 앞바다 섶섬이 보이는 초가집 한 평 남짓한 셋방에서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1년여 고달픈 피란살이를 하다 그해 12월 이중섭은 서귀포를 떠났다. 서귀포는 이중섭과의 짧았지만 소중한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97년 그가 살았던 옛 삼일극장 일대를 ‘이중섭거리’로 이름 짓고 이중섭이 세 들어 살던 초가집을 복원했다. 2002년 11월에는 그가 피란살이를 했던 초가집 바로 옆에 이중섭미술관을 세웠다. 2012년 11월에는 일본에 거주 중인 이중섭의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94·한국명 이남덕)가 서귀포를 직접 찾아와 이중섭의 유품인 팔레트를 기증했다. 야마모토는 이중섭으로부터 사랑의 징표로 받았던 팔레트를 70여년간 고이 간직하다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서귀포시민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았다. ●추사체·세한도 남긴 초가집 복원… 역사의 흔적 쫓는 ‘추사 유배길’ 올레길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속살을 보여 준다면 유배길은 유배 문화에 빠져 볼 수 있는 역사의 길이다. 조선시대 제주 섬은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500년 동안 200여명이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제주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걸작 세한도를 남겼다. 추사 유배 1길은 대정읍 인성리 추사 유배지를 중심으로 추사기념관, 정난주 마리아 묘, 대정향교를 거쳐 다시 추사 유배지로 돌아오는 8㎞의 순환코스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제주추사관은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한 추사 김정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관이다. 그의 걸작 세한도를 본떠 지어졌다. 추사가 머물렀던 , 강도순의 제주 초가집은 복원돼 있다. 추사 김정희는 이곳 한 평 남짓한 비좁은 방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세한도를 그렸다. 추사 2길에선 추사의 한시, 편지, 차 등을 통해 추사의 인연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추사 유배지에서 시작해 오설록 녹차밭까지 이어지는 8㎞의 코스로 3시간이 소요된다. 추사 3길인 사색의 길에선 산방산과 안덕계곡을 따라 제주의 바다, 오름, 계곡의 풍광을 느낄 수 있다. 대정향교에서 시작, 산방산을 거쳐 안덕계곡까지 이어지는 10㎞에 4시간 정도 걸린다. ●서귀포서 한라산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등산로 ‘돈내코 탐방로’ 돈내코 탐방로는 서귀포에서 한라산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등산로다. 돈내코 유원지 상류에 있는 탐방안내소(해발 500m)를 출발해 평궤대피소(해발 1450m)를 지나 한라산 남벽 분기점(해발 1600m)까지 이어지는 7㎞ 탐방로다. 편도 3시간 30분 소요된다. 평궤에서 남벽 분기점까지는 거의 평탄 지형으로 한라산 백록담 화구벽의 웅장한 자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돈내코 탐방로는 동백나무, 사스레피나무 등 상록 활엽수림과 단풍나무, 서어나무 등 낙엽 활엽수림과 구상나무, 시로미 등 한대수림이 수직적으로 분포, 기후변화에 따른 식물 변화상을 관찰할 수 있다. 평궤에서 남벽 분기점 일대는 한라산 백록담의 현무암이 넓게 분포해 있고 소규모의 용암 동굴과 한라산 백록담 조면암의 라바돔(용암 언덕)을 가장 멋있게 조망할 수 있다. 윗세오름과 연결된 남벽 순환로를 따라가면 어리목과 영실로 하산도 가능하다. ●제주 전통 배 ‘태우’ 형상화한 새연교… 화려한 조명에 야간 관광명소 서귀포항 바로 앞 작은 새섬은 본래 썰물 때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지만 2009년 9월 새연교가 놓이면서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서귀포항과 새섬을 연결하는 길이 169m, 높이 45m 새연교는 제주의 전통 배인 ‘태우’를 형상화했다. 새연교를 건너 새섬을 한 바퀴 도는 1.2㎞ 산책로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서귀포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라는 의미를 담은 새연교는 일출부터 밤 10시까지 개방한다. 새연교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외줄 케이블 형식을 도입한 사장교로, 바람과 돛을 형상화한 주탑에 화려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시설까지 갖춰 야간에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야간 관광명소로 인기가 높다. ●민물·바닷물의 어울림 ‘쇠소깍’… 깊은 수심·기암괴석·소나무숲 조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인 쇠소깍은 하효동과 남원읍 하례리 사이를 흐르는 효돈천 하구로 제주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해 바닷물과 만나 깊은 웅덩이를 형성한 곳이다.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의 연못’이라는 뜻의 ‘쇠소’에 마지막을 의미하는 ‘깍’이 더해진 제주 방언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어울리는 빛깔은 유난히 푸르고 맑다. 깊은 속을 그대로 비추는 계곡 바위 틈으로 썰물 때면 솟아오르는 지하수의 신기한 경관도 바라볼 수 있다. 쇠소깍은 서귀포 칠십리에 숨은 비경 중 하나로 깊은 수심과 용암으로 이뤄진 기암괴석과 소나무숲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쇠소깍이 위치한 하효동은 한라산 남쪽 앞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감귤의 주산지로 유명한데 마을 곳곳에서 향긋한 감귤 냄새가 난다. ●제주 368개 오름 중 최고 ‘따라비오름’… 가을엔 은빛 억새물결 장관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따라비오름(기생화산)은 말굽 형태로 터진 3개의 분화구를 중심에 두고 좌우 2곳의 말굽형 분화구가 쌍으로 맞물려 3개의 원형분화구와 6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화산 폭발 시 용암이 오름의 아름다운 능선을 창조해 제주의 368개 오름 가운데 ‘오름의 여왕’으로 불린다. 북쪽에 새끼오름, 동쪽에 모지오름과 장자오름이 있어 가장 격이라 해 ‘딸 애비’라고 불리던 게 ‘따래비’로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높이 342m, 둘레 2633m인 따라비오름은 해마다 가을이면 억새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해 질 녘 가을 햇빛에 출렁이는 은빛 억새 물결은 장관이다. 인근의 갑마장길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갑마장길은 조선시대 궁중에 진상하는 최고급 말인 갑마를 사육했던 국영목장인 갑마장에 나 있는 길로 광활한 초원과 억새밭, 따라비오름 등에 걸쳐 있다. 제주 조랑말의 생태와 목동인 말테우리의 삶, 제주마와 관련된 유물 등 100여점이 전시된 조랑말 박물관도 볼거리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먹거리] ●제주 여름 대표 음식 ‘자리물회’ 제주에서는 서귀포 보목리 앞바다에서 잡은 자리돔을 최고로 쳐 준다. 자리돔을 뼈째로 썰어 채소와 함께 토장 등으로 양념한 후 시원한 물을 부어 먹는 자리물회는 제주 여름 음식의 대명사다. 자리돔은 보리가 익을 무렵인 5월이 가장 맛있다. 자리물회는 자리돔의 비늘을 긁어내고 머리와 지느러미 내장을 제거하고 썰어서 식초를 약간 뿌려 둔다. 상추, 깻잎 등의 채소들은 잘게 썰고 오이는 채를 썬다. 토장과 다진 마늘 등 양념을 넣고 무친 후 찬물을 부어 먹는데 제피나무의 잎을 약간 넣으면 향도 좋고 비린내도 가신다. 자리돔에 있는 양질의 단백질과 신선한 채소가 가진 각종 비타민을 동시에 섭취할 수 있어 무더위로 잃어버린 입맛을 돋우는 데 뛰어나다. 자리돔은 바로 소금에 절여서 젓으로 담그기도 하고, 구이로 먹기도 한다. ●겨울 제주의 진미 ‘방어회’ 방어는 전갱이과에 딸린 바닷물고기로 몸길이는 1m쯤이고, 몸 색깔은 등 쪽이 회색을 띤 푸른색이며, 배 쪽은 은백색이다. 주둥이에서 꼬리지느러미까지 세로로 그어진 노란 줄이 있다. 최남단 마라도 인근 바다에서 잡아 올린 방어를 최고로 친다. 마라도 바다는 물살이 세기로 유명해 이곳에서 사는 방어는 몸집이 크고 살이 단단하다. 방어회는 겨울철 제주의 진미다. 뱃살에 기름이 잔뜩 오른 방어는 참치가 부럽지 않다. 간장이나 초장, 쌈 된장과도 모두 잘 어울리며 제주 사람들은 신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기름진 방어와 신 김치는 궁합이 잘 맞는다. 회를 뜬 방어 머리를 구워 낸 머리 구이와 방어뼈를 넣고 끓인 방어 김치찌개도 별미다. 해마다 겨울이면 모슬포항에서 방어잡이 방어축제가 열린다. 무게에 따라 2㎏ 내외는 소방어, 4㎏ 이하는 중방어, 5㎏ 이상은 대방어로 쳐준다. 대방어일수록 회 맛이 더 뛰어나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문재인 교섭단체 대표연설, ‘경제’만 99번 언급… “정치가 곧 경제”

    문재인 교섭단체 대표연설, ‘경제’만 99번 언급… “정치가 곧 경제”

    문재인 교섭단체 대표연설, ‘경제’ 99번 언급… “정치가 곧 경제” 문재인 교섭단체 대표연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9일 첫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의 화두는 단연 ‘경제’였다. 문 대표는 ‘경제’라는 단어를 99번 사용하며 “새경제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거듭 주장했다. 문 대표는 이날 오전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같이 밝히며 ”’새경제’는 공정한 경제 생태계를 기반으로 하고, 성장 방법론으로는 소득주도성장을 추구하며, 사람 중심의 경제 철학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해나가는 경제”라고 설명했다. 연설 제목도 ‘대한민국 경제 크게 보고, 크게 바꿔야 한다’고 정했고, 연설을 통해 ‘경제’라는 단어를 99번, ‘소득’ 56번, ‘성장’ 43번 등을 사용했다. 문 대표는 “정치가 곧 경제”라며 “국민 모두에게 소득이 골고루 돌아가는 소득주도성장이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또 “‘새정치민주연합’의 ‘새정치’가 ‘새경제’”라며 “‘새정치민주연합’은 ‘새경제민주연합’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표는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한 부자감세 7년 결과, 재벌 대기업 금고만 채우고 국민의 지갑은 텅 비었다”며 “대기업규제 완화 결과, 골목상권은 다 무너진 반면 대기업 사내 유보금은 540조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정책으로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며 “경제성장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가 온 것 아닌가” 반문했다. 문 대표는 또 “성장 없는 풍요와 경제정의를 생각할 수 없지만 성장으로 이룬 소득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며 “부채 주도가 아닌 소득 주도 성장으로 대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소득 불평등, 조세 불평등을 바꿔 서민을 살리고 중산층을 확대해야 한다”며 “소득 주도 성장만이 내수 활성화를 통해 서민과 중산층을 보호하고 새로운 성장의 활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또 “청년 실업률은 11.1%로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이고, 노인 자살률·노인 빈곤률은 OECD 1위인데 복지지출은 OECD 꼴찌이다. 가계부채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심각한 상태”라며 “이렇게 가다간 IMF 국가부도 사태보다 더 큰 ‘국민부도시대’가 올까 걱정”이라고 했다. 문 대표는 “국가가 위기에 놓였는데도 정부는 여전히 불공정하고 정직하지 못하다”며 “불공정한 소득이 사회를 양극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 재분배 정책을 통한 분배 개선 효과는 OECD 전체에서 칠레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라며 “지난 정부에서부터 지금까지 대대적인 부자감세를 한 것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또 연말정산 사태에 대해서는 “541만명에게 세금을 환급하게 된 황당한 잘못을 하고도 누구 한 사람 책임지는 사람, 사과하는 사람이 없다”며 “공정하지 못한 시장, 공정하지 못한 분배, 공정하지 못한 세금의 배후에 공정하지 못한 정부가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 대표는 또 “2년 전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복지, 사회 대통합을 약속했다”며 “그러나 돌아온 것은 서민경제 파탄과 국민 분열의 연속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배신당한 2년이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새경제로의 대전환을 제시하면서 “성장에서도 유능한 진보가 되는 것이 새정치연합의 목표”라고 했다. 그는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하기도 했다. 문 대표는 새경제의 성장 전략인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장 양극화 해결 ▲자영업 종사자 대책 마련 ▲전월세 상한제 등 국민 생활비 감소 정책 마련 ▲법인세 정상화 등 공정한 세금제도 마련 등을 들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데스크 시각] 리콴유한테 진짜 배워야 할 것/박상숙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리콴유한테 진짜 배워야 할 것/박상숙 국제부 차장

    초등학생 때 엄마 손에 이끌려 난생 처음 청와대에 가 봤다. 흰 천으로 뒤덮인 대형 천막 안에는 대통령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수많은 조문객으로 붐비는 빈소 바닥에 앉아 땅과 가슴을 치며 통곡하던 할머니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날의 기억이 얼마 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장례식을 보며 떠올랐다. 폭우 속에서 몸부림치며 오열하는 싱가포르 국민을 보면서다. 국부(國父)를 떠나보내는 당연한 감정의 표출이겠지만 묘하게 권위주의 시대의 모습과 오버랩됐다. 외국에 사는 싱가포르인들도 동포를 비슷한 정서를 품고 봤나 보다. 싱가포르 출신의 한 BBC방송 기자는 자국민의 격한 반응이 이방인들에게 당혹스러울 수 있다며, 리 전 총리에 대한 ‘애증’을 언급했다. 리콴유 치하 풍요로운 삶과 자유를 맞바꾼 싱가포르인들이 ‘배부른 돼지’처럼 보일까 고민한 듯하다. 자원 없는 가난한 나라를 1인당 국내총생산(GDP) 5만 달러가 넘는 경제부국으로 만든 리콴유는 자주 ‘아시아의 히틀러’로 폄하됐다. 사회통합을 명분으로 언론을 규제하고 정적을 탄압했으며, 껌 씹고 침 뱉는 것부터 결혼·출산 등 사생활까지 간섭하고 관리해서다. ‘아시아의 용’이란 칭송과 함께 ‘사형제가 있는 디즈니랜드’라는 조롱도 뒤따랐다. 한국에서도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성장을 앞세우는 쪽은 경제발전을 이끈 그의 통치 스타일만을 부각한다. 반대쪽에선 자유를 억압해 민주주의를 퇴행시켰다며 깎아내리기에 바쁘다. 하지만 양쪽 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리콴유가 부패에 물들지 않았으며, 정부를 놀랄 정도로 청렴하게 운영했다는 것이다. 31년간 총리를 지냈고,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한 ‘실세’이지만 단 한 번의 스캔들도 없었다. ‘돈’과 ‘여자’에 관해 그가 완벽하다는 사실은 반대파도 인정한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법칙(!)에 예외도 있다는 걸 입증한 최초의 권력자가 아닐까 싶다. 자타가 공인하듯 리콴유 리더십의 비결은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에 있다. 국민의 잘못을 매로 다스리고, 마약범을 사형하는 등 인정사정없는 독불장군이었지만 무엇보다 자신에게 더 많은 채찍질을 가했다. 가난하진 않았지만 검소한 삶을 영위했다. 이웃집 손해를 우려해 사저마저 “죽은 뒤 허물라”는 유언은 유명하다. 리콴유는 2010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한 일이 다 옳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한 모든 일은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통치 방식에 대한 외부의 손가락질에 한 점의 사심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4·29 재보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에선 당리당략을 버리고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선전에 한창이다. 하지만 여야 모두 제살을 깎겠다며 공언한 정치 개혁, 정당 혁신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자기 밥그릇은 손도 못 대게 하면서 공무원연금이나 노동 부문 개혁을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가와 국민을 최우선으로 한다면서 정작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한 자가당착적 리더십으로는 만사휴의(萬事休矣)다. 재정난을 핑계로 무상급식을 폐지한 뒤 해외 출장에서 골프 치는 도지사, 부동산 투기 등 온갖 의혹에도 서슬 퍼런 부정부패 척결을 선언한 총리와 같은 공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리콴유처럼 자신의 처신부터 추상처럼 다잡는 일이다. alex@seoul.co.kr
  •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39)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39)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서기 2540년, 지금부터 525년이 지난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세상의 질병이 극복되고, 노화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아 피부와 장기는 항상 젊음을 유지한다. 길어진 수명으로 죽음도 축제처럼 인식된다. 잡다한 감정들은 알약 하나를 삼키는 순간 사라진다. 누구나 풍요롭고 주어진 능력에 따라 일을 하며 여가를 즐길 수 있다. 가족을 부양한다는 의무감도 없다. 고독과 절망도 없는 사회. 이것은 천재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1894~1963)가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제시한 미래의 모습이다. 우리는 흔히 미래사회에 대해 막연히 낙관적인 전망을 한다. 과학기술 문명의 양양한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생긴 이상향 즉 유토피아가 이룩된 사회를 꿈꾼다. 헉슬리가 1932년에 쓴 미래사회에 대한 이 소설은 20세기 소설 가운데 가장 현실감 있고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가 위에서 제시한 미래의 모습은 언뜻 보기엔 모든 질병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 유토피아로 보인다. 그런데 그는 왜 작품의 서두에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였을까. “… 유토피아는 실현가능하다. 그러나 지식인과 교양인은 유토피아를 회피하며, 불완전하지만 자유로운 비유토피아 사회로 돌아가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생각할 것이다. ” - 니콜라이 베르자예프 -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우선 작품 제목의 의미부터 명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제목은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유래되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제목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작품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철저히 반어적인 어법으로 쓴 제목은 템페스트에서 주인공 미란다가 외친 말인데, 미란다는 아버지와 함께 12년 동안 섬에 갇혀 살았다. 그녀는 조난당한 나폴리 왕자 퍼디난드를 만나면서 사랑에 빠진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갈등을 풀고 밀라노로 떠나면서 미란다는 외친다. “이 멋진 새로운 세계여.” 이 말은 문명사회의 실상과 어두움을 모른 채 그저 환상과 호기심만으로 가득 찬 미란다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말로 멋진 신세계의 주인공 존의 상황과 부합한다. 헉슬리는 작품의 제목에서 미래 문명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헉슬리가 보여주는 미래 문명사회의 모습을 작품 속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1908년 포드사의 T모델 자동차가 세계 최초의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생산되어 미국 소비사회가 개막된 지 632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사회는 더이상 모태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험용 병에서 인공 수정되어 부화기로 옮겨지는데 이때 5가지 계급 중 알파와 베타를 제외하고 하위 계급인 감마, 델타, 엡실론 계급은 ‘보카노프스키법’에 따라 처리된다. 성장 억제 조치를 받은 하위계급은 수백만의 일란성 쌍생아로 태어나 불평 없이 일할 수 있는 조건으로 최적화된다. 생후 8개월 된 아기들은 신파블로프식 조건반사와 수면교육을 통해 의식이 주입된다. ‘만인은 만인의 공유물’로 가족 간의 유대나 끈끈한 의무감은 없다. ‘소마’를 먹으면 감정처리까지 완벽하게 해결되는 행복한 세상이다. 하지만 그곳에도 버나드와 헬름홀츠같이 개인적 자각을 가지고 이런 문명에 회의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한편 문명세계와 대조되는 뉴멕시코 야만인 보호구역에 사는 존 세비지는 문명사회에서 우연히 이탈한 린다에게서 태어나 셰익스피어와 종교와 신, 죽음이 가지는 자연적이고 은밀한 가치관을 체화하면서 자랐다. 존은 버나드에 의해 문명사회로 오게 된다. 문명인 레니나의 아름다움과 문명사회에 대한 동경으로 “오오, 멋진 신세계여!”라고 외치며 기뻐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문명사회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경악한다. 극도로 안정되어 보이는 이 문명사회는 ‘공유, 균등, 안정‘이라는 표어 아래 전제주의로 획일화된 사회였으며, 보카노프스키법으로 처리되어 대량 복제된 엡실론 하위 계급의 노예화로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은 이미 상실된 곳이었다. 모든 신체의 감정과 영혼까지 제거된 사회를 보고 구토하는 존에게 총통은 문명사회에 대해 설명해 준다. 여기서는 더이상 예술과 과학, 종교는 필요 없다. 그것은 안정을 위해 지불해야 할 희생일 뿐이다. 대신 대중에게 촉감영화같이 말초적이고 단순한 유쾌함만을 주입한다. 한때 허용했던 무제한의 과학발전과 진리탐구는 비탈저폭탄으로 인한 9년 전쟁으로 사라지고 대량생산과 보편적 행복과 안정을 위해 대중들에게 통제되었다. 인간의 노령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면서 종교에서도 독립할 수 있게 되었다. 심신의 안정과 위안은 의약품으로 가능하다.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 기독교 정신을 터득하는 것이 소마의 본질이다. 이러한 문명사회의 실체를 알게 된 존은 더이상 머물기를 거부하며 불편해질 권리를 요구한다. 신을 원하고,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하며 죄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존에게 총통은 “그렇다면 자네는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를 요구하겠지?”라고 되묻는다. 존은 더이상 문명사회의 조롱과 괄시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우리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과연 나는 이런 편리한 문명사회를 거부할 수 있을까? 존이 선택한 불행해질 권리는 과연 합리적인 대안일까?’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헉슬리가 보여준 미래문명 세계는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오는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헉슬리가 상상한 미래가 상당 부분 이미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서 기계문명의 극한적인 발달과 과학적 성과 앞에 노예로 전락한 인간과 존엄성의 상실이라는 비극을 묘사하고자 하였다. 헉슬리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기계문명의 위협이 심각하고 전쟁과 과학을 결부시켰을 때 어떠한 파괴적인 결과가 나타나는가를 직접 체험했으며 1920~30년대 전체주의적 독재정권이 근대과학의 성과를 마음대로 이용할 때 초래한 비극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헉슬리가 제안한 기계문명과 인간가치 보존에 대한 양자택일의 방법은 어딘지 모르게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헉슬리는 인간의 가치를 보존하려면 원시사회의 불편을 감수하라는 결론과 함께 야만의 추악함과 불완전성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존이 문명세계와 야만세계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채 죽음을 선택하는 결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를 발표한 지 27년이 흐른 뒤 ‘다시 가본 멋진 신세계’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보완한다. 그는 자신의 예언보다 더 빨리 인구과잉과 과잉조직화, 독재체제의 선전, 화학적 약물로 인한 중독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자유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고, 개인의 독창성과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자유와 관용, 자비심을 강조했다. 또한 비유토피아의 미래를 우려했던 그는 말년에 ‘아일랜드’를 통해 현대 문명과 암울한 미래의 긍정적 대안으로 동서양의 조화로운 균형과 융합이 이루어진 유토피아를 제시하였다. 멋진 신세계에서 보여준 미완성의 유토피아를 이 책을 통해 실현한 것이다. 헉슬리는 서양 과학기술의 발달과 인간의 오만함으로 미래인류의 파멸을 예고하였지만 그 대안으로 인간성의 회복과 동양정신 등 포용의 철학을 제시하였다. 중용을 통해 조화와 질서로 나아가야 하며 동양적 가치관과 신비주의적 정신세계에 대해 일깨우고 있다. 문명의 질주를 통제하기 힘든 요즘, 물질만능주의와 무한경쟁 속에서 정의와 도덕이 근본적으로 와해되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 유토피아는 멋진 신세계에서 나오는 미래 문명사회처럼 안정을 위해 과학적 기계문명으로 재단된 획일적인 사회가 아니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지켜지는 사회, 다양한 사유와 진리추구가 보장되는 사회, 개인의 선택이 사회적 정의와 공존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사회가 아닐까.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자연과 동행하며 마음의 평온 얻어요”

    “자연과 동행하며 마음의 평온 얻어요”

    “자연과 동행하는 삶은 인생을 풍요롭게 합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그러면서도 자연과 숲 속에서 꿈과 삶의 지혜를 찾는 명사 3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신원섭 산림청장과 혜민 스님, 산악인 박정헌씨는 2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나를 꿈꾸게 하는 숲’이라는 주제로 3인 3색 토크 콘서트를 진행했다. 신 청장은 산림복지 전문가, 박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히말라야 거벽 등반가이며, 혜민 스님은 베스트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날 토크 콘서트는 산림청이 제70회 식목일을 앞두고 소나무재선충병이나 산불 등으로 소중한 자산인 숲과 나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높이고 숲 사랑의 소중함과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혜민 스님은 ‘자연과 동행,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화두로 일상생활에 지친 현대인이 자연과 동행할 때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다고 설파했다. 특히 숲과 나무, 맑은 자연 속에서 인간이 함께 동행하는 삶의 모습을 소개하며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권했다. 박씨는 ‘백두대간 그리고 우리산 이야기’를 주제로 산과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깨달음과 가치를 얘기했다. 백두대간 종주를 통해 만난 아름다운 우리 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청장은 산림에 대한 보호와 가치를 담은 ‘신원섭의 꿈’을 주제삼아 경험을 토대로 체득한 숲의 가치를 얘기하고 산림과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사회의 방향을 제시했다. KT 유스트림을 통해 생중계된 이날 콘서트에는 온라인 신청자와 대학생 등 200여명이 참여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포토 에세이] 모두가 부처인 땅, 모든 걸 나누는 땅

    [포토 에세이] 모두가 부처인 땅, 모든 걸 나누는 땅

    ‘치유의 트레킹’ 코스로 알려지기 시작한 무공해의 땅 라오스. 본 기자는 지난해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가라앉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한국보도사진전 뉴스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수상자를 대상으로 한 단기 연수프로그램으로 라오스를 다녀왔다. 라오스는 GNP 131위의 빈민국이다. 기후만으론 3~4모작도 가능하지만 용수 시설이 부족해 1모작만 한다. 전기도 없이 고산에서 화전민으로 생활을 하는 소수민족들의 수는 정확히 파악도 안 되고 있다. 남북을 잇는 도로는 오로지 하나뿐이어서 내비게이션이 필요 없는 나라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1960~70년대에서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모습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공중 화장실은 돈을 내야 사용할 수 있으며 통행료를 내는 다리도 많다. 사람들의 정서도 한국의 과거와 비슷하다. 파스는 라오스의 만병통치약이다. 우리나라의 빨간약이라 불리는 소독약이 그랬듯이 파스를 배가 아프면 배에 붙이고 머리가 아프면 머리에 붙인다. 하지만 라오스는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이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다. 거리를 지나면 음식을 같이 먹자고 손짓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으며 사진을 찍어도 밝게 웃어 준다.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마음이 풍요로운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 90%가 믿는 불교문화가 한몫한다. 란쌍 왕국이 라오스 전역을 통일하면서 14세기 파응움(Fa Ngum) 왕은 불교를 국교로 채택했다. 라오스인들의 불교신앙은 그들의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으며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 승려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새벽 6시가 되면 신도들에게 음식을 공양받는 탁밧(한국어 탁발) 수행을 한다. 승려들은 음식을 가려서 받지 않는다. 공양받은 음식은 부처의 가르침을 지키고자 동물들에게 나눠 주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먹고 부처님에게도 바친다. 라오스의 여성들은 공덕을 쌓고자 매일 아침 승려에게 보시를 베푼다. 라오스 남성은 평생에 한 번 짧은 기간이라도 승려가 되어야 하는데, 전통적으로 우기의 약 3개월 동안 사원에 머물며 승려 생활을 하지만 최근에는 기간이 단축되고 있다. 구름도 머물다 가는 라오스, 뒤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숨가쁜 현대인의 현실에서 벗어나 때묻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 속에서 행복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면 꼭 한번 머물러 보기를 권한다. 글 사진 라오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朴대통령 “호남경제 대도약 기회”

    朴대통령 “호남경제 대도약 기회”

    박근혜 대통령은 1일 광주 송정역에서 열린 호남고속철도 개통식에서 “호남고속철은 25조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와 함께 전북, 광주 등 지역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중심으로 활발한 인적 교류와 기업 이전을 촉진하게 될 것”이라면서 “기업도시, 혁신도시, 산업단지 등과 연계해 호남경제가 커다란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광주는 인천공항과 3시간 이내로 연결되면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수혜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돼 서해안 시대 국제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박 대통령은 “호남고속철 개통은 호남 주민은 물론 우리 국민의 생활과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며 “더 많은 국민이 호남 지역을 찾아 아름다운 자연과 맛있는 음식, 전통문화유산을 함께 누리고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하미드 말레이시아 육상대중교통위원장과 함께 호남 KTX를 시승했다.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와 연결하는 220억 달러 규모의 고속철도 사업을 올해 말 발주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계기로 나집나작 말레이시아 총리,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각각 정상회담을 하고 고속철도 사업 참여를 요청했었다. 앞서 박 대통령은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5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준비상황 보고회’에 참석, 대회 준비상황을 보고받고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을 당부했다. 박 대통령의 광주 방문은 지난 1월 27일 광주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 이후 두 달여 만이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新국토기행] 울산 울주

    [新국토기행] 울산 울주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울산 간절곶. 울산 울주는 선사시대의 숨결을 간직한 반구대 암각화를 비롯해 영남알프스, 외고산 옹기마을, 등억온천, 스포츠파크, 온산국가산업단지 등 문화유적·산·바다·산업이 공존하는 곳이다. 고래 신화부터 첨단 요트까지 접할 수 있는 울주는 산악등반과 해양 레포츠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관광지다. 언양·봉계 한우 불고기와 싱싱한 활어회가 전국 미식가의 입맛을 유혹하는 울산 울주. 볼거리 ●세계 최고 신석기시대 문화유산 ‘반구대 암각화’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시대의 사냥과 어로 등 생활상을 바위에 새긴 그림이다. 세계 최고의 신석기시대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1995년 6월 23일 국보로 지정됐다. 댐이 만들어진 이후 평소 수면 아래 잠겨 있지만, 물이 마르면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 면에는 고래·개·늑대·호랑이·사슴·멧돼지·곰·토끼·여우·거북·물고기·사람 등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배와 어부의 모습, 사냥하는 광경 등이 새겨져 있다. 당시 반구대 지역은 사냥과 어로의 풍요를 빌고, 그들에 대한 위령을 기원하는 주술과 제의를 하던 성스러운 장소로 추정된다.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시대 만들어졌다는 설과 청동기시대 작품이란 설 등이 있다. 암각화는 표현 양식과 내용 등을 고려할 때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 인류 최초의 포경(고래잡이) 유적으로 평가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암각화로 가는 길목이나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트레킹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빼어난 절경 때문에 드라마 ‘메이퀸’이 촬영되기도 했다. 반구대 암각화와 인근 천전리 각석의 실물 모형을 전시한 암각화 박물관도 들어서 시민과 관광객을 맞고 있다. 인근의 천전리 각석도 볼만하다. 청동기시대 조각인 마름모조각, 중첩동그라미, 우렁무늬, 물결무늬 등 기하학적 문양을 만날 수 있다. 천전리 일대에서는 200여개의 공룡발자국 화석도 발견됐다. ●수십만명 발길 붙잡는 산악관광 1번지 ‘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는 신불산, 가지산, 운문산, 천황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7개의 봉우리로 연결된 산악지역이다. 신불산 억새평원과 별빛야영장 등을 찾는 관광객들이 해마다 수십만명에 이른다. KTX 개통 이후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하늘, 억새, 운무, 전망, 경관 등을 테마로 한 5개 코스로 개발된 억새길은 전국 최고의 트레킹 코스다. 특히 하늘억새길(29.7㎞)은 고산평원에 형성된 은빛 억새, 기암괴석, 희귀 동식물 습지구역, 고산지 철쭉군락 등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등산객들의 피로를 씻어 주는 파래소 폭포는 영남알프스의 오아시스로 통한다. 15m 높이에서 떨어지는 시원한 폭포수와 하얀 물보라, 산 그림자 등이 일품이다. 소의 둘레가 100m나 돼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해발 1068m의 간월산에서 발원해 등억리를 지나는 작괘천. 울산 12경의 하나로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물을 쉼 없이 뿜어낸다. 넓은 면적의 바위가 오랜 세월의 물살에 깎여 움푹 파인 형상이 마치 술잔을 걸어 둔 것과 같다(酌掛)고 해 작괘천으로 불린다. 고려 충신 정몽주의 글 읽던 자리도 있다. 인근에는 수온 29~33도의 알칼리성 중조천인 등억온천(22만평)이 있다. 온천수는 마실 수 있는 광천수로서도 손색이 없고, 피부염과 신경통, 소화기 질환, 기관지염, 고혈압, 피부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에는 등억온천지구와 신불산 정상을 연결하는 케이블카(로프웨이) 설치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울산시는 스위스, 중국, 뉴질랜드, 일본 등과도 산악관광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석남사’ 등 신라 시대 유적지 숨결 석남사는 신라 헌덕왕 16년(824년) 도의국사가 창건했다. 1957년 비구니 인홍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이후 현재에 이르렀다. 비구니들을 위한 수도장, 대웅전, 극락전 등 30여동의 건물로 이뤄졌고, 대한 불교 조계종 산하 80여개의 선원 중 문경 봉암사와 더불어 종립 특별 선원으로 알려졌다. 석남사는 한겨울 눈이 내려 사찰을 하얗게 만들 때 가지산과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울산 시민들에게는 늘 열려 있는 휴식처 역할을 한다. 또 치산서원지는 신라 충신 박제상과 그의 부인을 기리기 위한 사당 터였다. 박제상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후예로 내물왕 8년(363) 양주 충효동에서 태어났다. 박제상은 눌지왕 즉위 후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던 두 왕제를 구출하려고 먼저 고구려에 가 있던 복호를 구출해 귀국시켰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도 구출했다. 박제상의 부인은 두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일본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었다고 알려졌다. 부인의 몸은 돌로 변해 망부석이 되고, 영혼이 새가 돼 날아가 숨은 곳을 은을암이라 부른다. ●전국 최고·최초 일출 명소 ‘간절곶’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일출 명소 간절곶. 매년 해맞이 행사를 비롯해 연간 수십만명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과 동해안의 아름다운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2006년 12월 높이 5m, 무게 7t 규모로 세워진 소망우체통은 간절곶 명물로 자리를 잡았다. 소망우체통은 관광객이 내부에 비치된 엽서를 작성하면 이를 수취인에게 보낼 수 있어 한 해의 소망 메시지를 기록하는 등 매력적인 추억을 함께 전할 수 있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 간절곶에는 2010년 10월 방영한 드라마 ‘욕망의 불꽃’과 2012년 8월 방영한 ‘메이퀸’의 드라마 세트가 있다. 현재 드라마 세트장은 2012년 7월부터 레스토랑과 포토스튜디오로 사용되고 있다. 인근에는 울산해양박물관과 서생포왜성, 간절곶해올제(특산품 판매장), 진하해수욕장 등이 있다. 진하해수욕장은 물이 맑고 깨끗해 해마다 피서객들이 몰려든다. 요트와 윈드서핑, 바나나보트 등 다양한 해양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해수욕장 옆에는 거북등 모양의 작은 섬 명선도가 있다. 2~4월에는 명선도 바닷길이 열려 일명 ‘모세의 기적’도 체험할 수 있다. 체험·먹거리 ●요트 등 해양 레포츠·스포츠 요람 백사장이 넓은 진하해수욕장 일대는 해양 스포츠·레포츠의 요람으로 불린다. 진하해수욕장은 파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1㎞ 구간(너비 40m)에 달하는 넓은 백사장이 조성됐다. 맑고 깨끗한 수질에 바람도 불어 윈드서핑, 요트, 바나나보트, 카이트서핑, 제트스키 등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전국해양스포츠제전을 비롯해 진하 국제프로윈드서핑선수협의회(PWA) 세계윈드서핑대회, 세계여자비치발리볼대회, 바다핀수영대회, 해양스포츠체험교실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다. 해수욕장 인근에는 간절곶 스포츠파크가 조성돼 인기다. 주경기장은 천연 잔디 축구장 1개(7140㎡)와 400m 8레인, 투포환, 투해머, 투원반, 멀리·세단뛰기, 장대높이뛰기 등 육상경기를 치를 수 있는 종합운동장이다. 본부석 좌우와 맞은편에는 총 3000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스탠드가 설치돼 각종 규모의 체육대회와 주민 단합대회 등을 개최하기에 적합하다. ●살아 숨 쉬는 그릇 ‘옹기’ 외고산 옹기마을은 국내 최대의 민속 옹기마을이다. 외고산(고산리) 일대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30여 가구가 근근이 살아가는 어려운 마을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인근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이 옹기를 사용하면서 옹기 수요도 점차 늘어났다. 이 시기 옹기를 배우려는 사람과 각지의 도공들이 몰려와 마을은 급속히 성장했다. 이때 외고산 옹기는 남창역을 통해 서울 수도권으로 보내지거나 미국 등 해외에도 많이 수출됐다. 마을이 번창하자 1970년대 고산리에서 외고산으로 분동해 주민 수도 200여 가구가 넘었다. 그 후 산업화로 플라스틱 용기가 생기면서 옹기 수요는 점차 줄어들었다. 이 마을 창시자인 허덕만(옹기장인)씨가 작고한 뒤 제자들이 공장을 일으켜 현재 한국 최고의 옹기마을을 만들었다. ●육즙 풍부한 언양 한우불고기 언양 한우불고기는 60년 전통을 자랑한다. 언양 한우불고기는 일반 양념 불고기(일명 육수 불고기)와 달리 양념을 조금만 사용해 고기 고유의 맛을 최대한 살린 게 특징이다. 언양 특산물인 소고기를 얇게 썰어 양념한 뒤 석쇠에 구워 먹는다. 일반 양념 불고기와 달리 양념 맛이 적은 반면, 특유의 육질과 고소함이 느껴진다. 얇게 썰어 양념한 고기는 불판에 굽지 않고 석쇠에 바로 굽는다. 이런 점으로 보면 얇게 저며 잔칼질로 자근자근 연하게 다진 뒤 양념에 재워 굽는 너비아니에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언양 한우불고기는 칼로 저미는 대신 얇게 썬 뒤 최소의 양념만을 사용해 고기 자체의 맛을 살린다. 그러려면 질 좋은 고기를 사용해야 한다. 언양은 예부터 한우로 유명한 곳이다.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 상류의 깨끗한 물이 있고 풍부하고 드넓은 초지가 많아 소를 키우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이런 영향으로 언양에는 큰 우시장이 생겨났고 도축장과 푸줏간도 들어섰다. 언양 한우불고기가 유명해진 것은 1960년대부터다. 1960년대 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했던 근로자들이 언양의 고기 맛을 알리면서 전국적으로 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한우불고기가 유명해지자 고깃집이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속속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금 언양읍 불고기특구(불고기단지)에는 30여개의 전문 음식점이 있다. ●산채비빔밥과 싱싱한 활어 영남알프스 일대는 신불산과 가지산에서 직접 캔 나물들로 만든 산채비빔밥이 유명하다. 시금치, 콩나물, 고사리, 도라지, 버섯, 애호박 등 각종 나물에 고추장을 넣어 만든 영양만점의 음식이다. 나물 아래에 참기름을 따로 뿌려 비빔밥의 고소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또 동해의 깊은 수심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을 그 자리에서 먹는 활어회 맛은 일품이다. 겨울부터 초봄까지 대게도 많이 잡혀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서생면 간절곶 일대는 가족과 연인들의 맛 여행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자연산 활어회는 다른 곳에서 흔하게 접할 수 없는 풍경이다. 간절곶 일대는 믿고 먹어도 좋을 맛집이 많다. 어민들이 직접 잡아 내놓은 자연산 활어회는 씹는 맛이 일품이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곽태헌 칼럼] 이젠 운 좋은 ‘586세대’가 양보해야 한다

    [곽태헌 칼럼] 이젠 운 좋은 ‘586세대’가 양보해야 한다

    1990년대 들어 ‘386세대’라는 조어(造語)가 나왔다. 30대, 대학 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을 종합한 게 ‘386세대’다. 어원(語源)은 당시 성능이 좋았던 386급 컴퓨터다. 종전의 286급 컴퓨터에 비해 기능이 훨씬 뛰어났던 386급 컴퓨터와 같은 자랑할 만한 좋은 별칭이다. ‘386세대’가 제대로 업그레이드됐는지를 논할 생각은 없다. 세월이 지나면서 30대가 40대가 되고, 50대가 됐다. ‘486세대’를 거쳐 ‘586세대’가 되면서 요즘에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86세대’로도 불린다. 기자도 여기에 포함되지만, 이 세대는 운이 참 좋다. 입시 지옥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쉽게 들어갔다. 1980년 7월30일 전두환 정권은 느닷없이 과외와 본고사를 없애고, 예비고사와 내신성적으로만 대학에 들어가는 내용의 ‘교육개혁안’을 내놓았다. 당시 모든 언론이 찍소리를 할 수 없었던 군사정권이었으니 가능했다. 대학 정원도 늘리고 여기에 덧붙여 졸업정원제라고 해서 30%를 더 뽑게 했다. 대학에 들어와서 데모하지 말고, 공부를 하도록 하려는 꼼수가 깔려 있었지만 어쨌든 입학의 문은 활짝 열린 셈이다. 1981학년도 4년제 대학 입학정원은 18만 7050명으로 전년보다 7만 350명 늘어났다. 졸업정원제 첫해인 그해에는 원서접수에 제한이 없어 허수(虛數) 지원이 많았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치러진 면접에는 한 곳만 선택해야 했으니, 서울대 법대를 비롯해 곳곳이 미달이었다. 1984년에는 30%를 더 뽑을 수 있도록 된 것을 대학 자율로 하도록 바뀌었고, 1988년에는 졸업정원제는 완전 폐지됐다. ‘86세대’는 직장도 골라서 갔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3저(달러·유가·금리) 호황을 타고 이들이 졸업할 1980년대 말에는 취업도 쉬운 편이었다. 요즘 웬만한 기업의 경쟁률은 100대1이 넘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1980년대 말, 상경계 출신들은 투자금융·종합금융·리스·증권·투자신탁 등 당시 잘나가는 금융회사를 골라서 가기 바빴다. 상경계 출신들은 요즘 인기가 있는 시중은행은 안중에도 없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져 여기저기서 구조조정을 했지만 입사 경력 10년을 넘지 않았던 ‘86세대’들은 이 위기도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갔다. 보통 기업에서는 고참 위주로 구조조정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운 좋은 ‘86세대’는 국회의원들의 도움까지 받았다. 재작년 국회 본회의에서는 직원이 300명 이상인 기업의 경우 2016년부터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법을 통과시켰다. 고비마다, 외부의 도움을 받으며 넘어가니,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다. 기업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보통 55~58세가 정년이던 곳에서는 1958~61년생도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는 ‘86세대’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이 사랑하는 우리의 아들과 딸을 위해 양보할 때가 됐다. 요즘 20대는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이다, 과외다 하면서 힘들게 살아왔다. 부모 세대보다 입시를 위한 공부는 더 많이 힘들게 했지만,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훨씬 어려워졌다. 어렵게 들어간 학교를 졸업해도 갈 곳은 없다. 지난 2월 청년(15~29세) 실업률은 11.1%로 1999년 7월 이후 최고치였다. 취업하는 게 본인과 가족에 가장 큰 축복인 상황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일자리를 늘리는 것과는 정반대인 주문을 해왔다. 배당을 늘리라고 압박하고, 임금을 올리라고 압박한 게 최 부총리다. 배당을 늘리고 임금을 올리면 기업의 여윳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배당 압박을 할 게 아니라, 고용 압박을 해야 한다. 임금을 올리라고 할 게 아니라, 임금을 동결해서라도 채용을 늘리라고 압박하는 게 맞다. 정책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다 정치권, 정부, 재벌을 믿을 수 없다면 기성세대들이라도 나서야 한다.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고, 임금동결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희망을 잃어가는, 꿈을 잃어가고 있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기성세대가 양보해야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으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단군 이래 최고라는 지금 누리고 있는 물질적인 풍요를 우리의 아들, 딸이 더이상 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 [옴부즈맨 칼럼] 껍데기는 가라/정형근 정원여중 교사

    [옴부즈맨 칼럼] 껍데기는 가라/정형근 정원여중 교사

    몇 년 전 서울시교육청에서 진행한 논술대회의 논술문을 채점한 적이 있다. 논제는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풍요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내면적 만족으로부터 오는 것인가’였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것은 1000편이 넘는 논술문 중에서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보장해 준다’는 식으로 쓴 학생이 채 10명이 되지 않았던 점이다. 다음날 나는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손을 들어 보라고 했다.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 행복은 물질적 풍요가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내가 당시 받았던 충격은 답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대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답변과 솔직한 대화에서 드러난 답변이 정반대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적은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점수를 얻어 상을 받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글을 꾸역꾸역 써 냈던 것이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그 누구도 지침을 내리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9퍼센트의 학생들은 채점자들이 그 답을 원할 것이라 예상하고 그리 썼던 것이다. 자신의 생각보다는 채점자가 또는 남이 자신의 글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던 것이다. 서울신문의 3월 기획기사 ‘신평판사회’를 읽으면서 불현듯 예전의 그 일이 떠올랐다. 기사의 분석처럼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꽤 많은 사람들이 알맹이가 아닌 껍데기를 붙잡고 살고 있다. 내면적 만족을 추구하는 삶이 아닌 남의 눈에 그럴듯하게 보이는 학벌, 인맥, 직업 등 외면적 ‘껍데기’를 숭배하는 사회가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서울신문의 기획 기사는 허울과 허식의 껍데기를 벗고 진심과 열정이 인정받는 ‘알맹이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번 기획 기사를 보면서 올해 들어 서울신문이 대한민국의 현실을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신평판사회’ 기획 시리즈가 연초의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처럼 좀 더 심층적으로 다루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 ‘공무원 연금’, ‘미대사 습격 사건’, ‘대통령의 해외 순방’ 등 워낙 굵직굵직한 사회적 이슈가 많아서 그런지 이번 기획 기사가 한두어 차례 건너뛴 것도 아쉽다. 더불어 이 기획 기사를 3월이 아닌 중고등학교 입시철이 가까운 10월이나 11월에 내보냈다면 보다 반향이 컸을 것이다. 이제 4월이다. 시인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에서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외쳤다. 이 시에서 시인은 민족의 단결을 방해하는 것을 ‘껍데기’로 표현했다. 문학작품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껍데기’는 ‘알맹이’가 드러나지 못하게 방해하고, ‘알맹이’가 아니면서 ‘알맹이’인 척하는 허울과 기만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의 외침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직도 이 시대의 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껍데기를 붙잡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껍데기가 아무리 건강에 좋고 맛이 있어도 고깃집에 고기를 먹으러 가지 껍데기를 먹으러 가지는 않는다. 껍데기는 껍데기일 뿐 껍데기가 알맹이가 될 수는 없다. 이제는 껍데기를 벗겨 내고 알맹이를 붙잡아야 한다. 나는 그것이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임을 믿는다.
  • 음원 공개·재창작 독려… 서태지 ‘공유 혁신’을 말하다

    음원 공개·재창작 독려… 서태지 ‘공유 혁신’을 말하다

    지난해 9집 앨범 ‘크리스말로윈’을 발표한 서태지는 특별한 콘테스트를 개최했다.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의 스템파일(곡을 구성하는 보컬 및 악기 각각의 음원)을 모두 공개해 이를 활용한 2차 창작물을 겨루는 리믹스 콘테스트를 개최한 것이다. 아티스트 고유의 특허인 음원을 공개하고 2차 창작까지 독려한다는 것, 그리고 그 주체가 ‘신비주의’의 대표 주자였던 서태지라는 사실은 음악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26일 밤 10시 KBS 1TV에서 방송되는 ‘명견만리’는 음악의 공유와 재창작이라는 새로운 장을 연 서태지를 만난다. 입시 위주의 공교육, 통일, 물질만능주의 등을 노래하며 시대를 고민했던 서태지는 이제 ‘공유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그는 리믹스 콘테스트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겪은 고민들을 털어놓는다. 서태지는 “스템파일을 공개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기회의 장을 모두 놓쳤을 것”이라면서 “내가 어렸을 때도 이런 파일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제 시대가 변한 것”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스템파일 리믹스 콘테스트에서 서태지의 ‘크리스말로윈’은 300여개의 ‘크리스말로윈’으로 재탄생했다. 서태지가 공개한 음원 소스에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더해지며 풍요로운 창작의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은 공개와 공유를 통해 혁신을 이룩했다. 세계는 공개와 공유가 만들어 내는 참여의 장인 ‘플랫폼’에 주목하고 있다. 이날 방송에서는 서태지가 직접 출연해 그가 생각하는 개방적 혁신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자본에 사로잡힌 경제적 인간 해답은 사라진 사회성에 있다

    자본에 사로잡힌 경제적 인간 해답은 사라진 사회성에 있다

    한국사회는 2001년 1월 ‘부자 되세요’라는 말과 함께 뉴밀레니엄을 맞았다. 한 카드회사의 광고는 선풍적 인기를 끌며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렸고, 개인들은 실제로 부자가 되겠다는 욕망과 의지를 불태웠다. 불가능에 가까운 꿈을 꾸다가 아픔과 상처가 너무 커졌음을 문득 깨닫기까지 십수년이 필요했다. 이제는 대신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위로를 받거나, 혹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며 혼자 잘 성찰하고 반성하라는 주문을 받는다. 인문학 공부 열풍은 그렇게 불었다. 물질적 가치만을 좇아 아등바등 살기보다 내적으로, 정신적으로 더욱 풍요로울 수 있음을 배우려고 책을 보고, 인문학 대중강의를 쫓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역시 뭔가가 허전하다. 지난 23일 서울신문 회의실에서 만난 김윤태(51)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10년 남짓 동안 벌어진, 서로 상반돼 보이는 두 가지 현상을 관통하는 것이 있다고 했다. 모두 ‘경제적 인간’이 득세하고, ‘사회적 인간’이 몰락한 사회적 흐름의 반영이라는 점이다. 그가 최근 펴낸 ‘사회적 인간의 몰락’(이학사)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인문학 공부도 그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 또는 상품이 되어서 소비되어지거나 개인이 사회에서 도피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던 것에 대한 반성이 개인적 차원의 심리 치유 등으로 바뀌는 모습일 수 있지요.” 물론 김 교수가 인문학 공부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문학이 대중화되는 것 자체는 긍정적인 일”이라면서 “다만 삶을 성찰하는 것과 동시에 그것이 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재구성하려는 노력과 연결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학 공부 속 노력과 마찬가지로 사회를 이해하는 안목을 키우고, 우리가 각기 다른 사안으로 보는 것들이 사실은 원인과 결과로 연결돼 있음을 상상해 내는 힘이 바로 사회학의 기본”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얘기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학적 상상력’은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1916~1962)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지, 사회가 어떻게 개인에 영향을 미치는지, 사회를 움직이는 힘과 논리는 무엇인지, 문제가 있다면 사회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등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는 “1980년대 민주화라는 외형적 성취 이후 경제지표는 올라갔다. 하지만 자살, 실업률, 이혼율, 교육비, 주거비 등 사회문제를 나타내는 각종 지표는 오히려 하락했다”면서 “분명한 사회적 문제조차도 개인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사회적 관계 속에서 풀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시민들의 각성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용산참사와 쌍용차사태, 정부의 불법적 선거개입, 사회적네트워크시스템(SNS)의 무단 열람 등 개인들이 폭력적인 공권력 앞에 무기력함과 염증을 느끼던 즈음 터진 세월호 참사는 국가의 무능함을 절감케 했다. 김 교수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며, 각종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정하고 약자를 보호해야 할 국가 본연의 역할은 방치한 반면, 기업의 이익은 적극적으로 옹호했음을 시민들이 확인했다”면서 “국가의 이중성과 함께, 누구를 위한 국가인지 여실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대학 강단에서 늘 만나는 젊은 세대들이 경쟁, 효율성, 개인, 물질 등 어른들이 구축해 놓은, 개인을 고립시키는 사회에서 헤매며 ‘경제적 인간’의 모습을 보여줄 때도 실망하기보다 늘 연민과 미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얘기하는 대안 역시 분명하다. 책 속의 구절을 옮긴다. “사회적 인간의 몰락은 엄청난 바보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혜와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를 바보로 만드는 사악한 어둠의 세력과 맞서 행동해야 한다.(중략) 사회적 무관심이 냉소주의와 방관을 만든다면 민주주의는 사라질 것이다. 정치참여와 민주주의가 없다면 사회적 인간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320~321쪽)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글로벌 시대] 성장과 생산성의 신화에서 벗어나라/정지훈 경희사이버대 모바일 융합학과 교수

    [글로벌 시대] 성장과 생산성의 신화에서 벗어나라/정지훈 경희사이버대 모바일 융합학과 교수

    자본주의에서 생산성만큼이나 중요하게 취급되는 용어도 없는 듯하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정말 다양한 연구와 방법론이 나왔고, 기업에서도 어떻게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무수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시간은 곧 돈이었고, 직원들을 최대한 쥐어짜서 조금이라도 생산성을 높이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기업경영의 불문율이었다. 따지고 보면, 좌우 이데올로기의 분화도 기업의 이윤동기를 최대한 보호하는 시장의 기능을 극대화하려는 경향과 생산성을 위해 희생되는 수많은 노동자들에 대한 권익보호와 인간소외 현상에 대한 반발에 의해 태동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난 15일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상승률에 대한 분석결과를 한국금융연구원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근로자 1인당 노동생산량은 2007년에 비해 12.2% 증가했지만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은 고작 4.3% 증가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노동으로 받는 임금이 생산노동량의 3분의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에 의한 생산성이 좋아졌지만 그것이 임금으로 돌아가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생산성에 대한 집착이 오늘날의 풍요로움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보다 적은 사람들이 보다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산출량을 만들어 냈기에 여력이라는 것이 생겼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인류역사의 과거 어느 때보다 풍성한 물질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생산성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여러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개개인에 대한 생산성이 증가할 때 시장과 경제가 같은 속도로 증가한다면 일자리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경제의 시스템은 성장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국가가 성장전략을 선택해서 과소비가 될 정도로 풍요로운 삶과 일자리가 유지되는 평화로운 수십년을 보냈다. 최근 이런 평화체제가 붕괴될 조짐이 명확해지고 있다. 현재 나타나는 실질임금의 감소와 실업률의 증가는 경제규모가 더이상 성장할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하면서 생산성의 증가가 결코 미덕만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생산성의 증가와 성장 패러다임의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과도한 생산성으로 지구 자원에 대한 소모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서, 지구의 재생능력이 지나치게 훼손되기 시작했다. ‘성장’과 ‘생산성’이라는 사이좋은 커플이 더이상 쌍끌이로 우리 사회를 낙원으로 끌고 가는 마차가 아님이 명확해진 것이다. 생산성과 성장에 집착하기보다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그것이 우리의 사회에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사회적 가치가 생산된다면 이를 통해 사람들은 헌신을 위한 노동을 하게 되며, 의미를 이해하고 보다 참을성이 많아진다. 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 및 철학을 바꾸지 않고는 어떠한 정책을 들이밀더라도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상품의 풍요로움 속에서 생산된 물품들을 탐욕스럽게 가져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던 ‘슈퍼마켓 경제’ 속에 너무나 오랫동안 빠져서 살았다. 그렇지만,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는 인간을 이해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과거보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거대한 생산성과 성장을 바탕으로 하는 소비자 중심의 과소비 사회가 종말을 맞이하려고 한다. 우리의 미래는 이와 같은 거시적인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급격한 사회변화에 대한 과도한 충격을 흡수하면서, 미래사회로의 이전을 흔들림 없이 꾸준히 추진하는 것에 달려 있다.
  •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히말라야 산맥 북서부에 위치한 라다크(Ladakh)는 현재 인도의 잠무 카슈미르 주(州)에 속한다. 어느 쪽을 둘러봐도 눈 덮인 높다란 산봉우리와 광활한 고원뿐인 이곳은 고도 1만 피트(3000m)의 척박한 땅이다. ‘산길의 땅’이라는 뜻을 지닌 티베트 어 ‘라 다그스’(La Dags)에서 라다크라는 이름이 파생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곳은 사용하는 언어뿐 아니라 예술과 건축, 의술, 음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티베트의 영향이 드러나고 있어 ‘리틀 티베트’라고 불리기도 한다. 북부 인도의 몽족과 파키스탄 길기트의 다드족 그리고 티베트에서 이주한 몽골족의 후손들이 현재 라다크의 주민을 이루고 있다. 스웨덴의 언어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1975년에 영국 런던에 있는 ‘동양-아프리카 연구소’의 일원으로 처음 이곳에 왔다. 라다크의 언어와 민담들을 수집하고 분석하면서 몇 년을 머무는 동안 그녀는 라다크 사람들이 보여주는 자연친화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의 방식 그리고 여유롭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에 감명을 받는다. 그러다가 인도가 라다크를 개방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유입된 서구 문화에 의해 라다크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정신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지켜보며 소모를 전제로 하는 개발의 폐해를 알리기 위해 사회운동가로 변모한다. 1991년 나온 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전통에 관하여’에서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어려움 없이 살아가던 라다크 사람들의 전통적인 생활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2부 ‘변화에 관하여’에서는 라다크의 수도 레가 인도 정부의 개방정책에 따라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과정을 통해 외국 관광객들과 함께 들어온 서구 문화가 라다크의 전통 사회를 어떻게 붕괴시켰는지를 담고 있다. 3부 ‘미래를 향하여’에서는 16년간 라다크에 머물면서 이러한 과정을 지켜본 호지가 생태 친화적이면서 공동체적 삶에 기반을 둔 전통 라다크 사회의 회복을 위해 설립한 ‘라다크 프로젝트’와 ‘에콜로지 및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ISEC)라는 국제기구의 구체적인 활동 상황을 소개한다. 호지는 라다크에 오기 전까지는 진보라는 것에 대해 큰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공원을 가로질러 새 도로가 생겨나고 길모퉁이 가게 대신 현대식 대형 마트가 들어서며 철제와 유리로 된 고층 건물이 세워지는 것이 발전이고 진보라고 생각했다. 인류는 본질적으로 이기적 심성을 가지고 있어서 생존을 위한 경쟁은 당연한 것이며 서로 돕는 사회라는 것은 유토피아적 꿈에 불과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라다크에 머물며 그녀는 자신이 가진 생각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이 기술 개발을 진화론적 변화의 한 부분으로 보고 있다는 데서 시작된다. 그들은 인류가 직립 보행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처럼 현대에 와서 원자폭탄을 만들고 생명공학을 태동시킨 것 또한 진화의 한 과정이라고 여긴다. 그 결과 자신들 고유의 원칙과 가치관을 따르며 사는 전통적 문화권의 사람들에 비해 첨단 과학 기술의 혜택을 받고 사는 서구 사회가 훨씬 더 많이 진화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각은 글로벌 경제화 또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하나의 획일화된 개발 모델 속으로 사람들을 잡아 이끄는 동력이 된다. 동시에 지구온난화, 독성 물질로 인한 오염, 실업, 빈곤, 인간 소외와 같은 부작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호지가 처음 라다크를 찾았을 때 라다크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기들의 사회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스스로를 부유하다고 생각했다. 외부인의 눈으로 볼 때 라다크는 황무지나 다름없는 곳이었지만 그들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균형 있게 살아가는 전통을 발전시켰고, 아주 적은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 내는 것이 검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배어 있었고 한 사람의 이익이 다른 사람에게 손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협동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시간에 대한 개념도 아주 여유로워서 삶의 속도 또한 느슨했으며 정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서구 관광객들이 라다크를 찾기 시작하면서 아름답던 공동체는 깨지고 풍요롭게 살던 마을이 갑자기 가난해지고 빈곤해진다.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시설과 각종 편의 시설이 들어서면서 단지 며칠을 머물기 위해 그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이 라다크의 한 가족이 일 년 동안 쓸 수 있는 돈을 한 번에 쓰고 떠나는 것을 보며 라다크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게 된다. 이곳에 가난이란 없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불과 몇 년 만에 “우린 너무 가난하니 우리를 도와주세요” 하고 말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사람의 가치보다 돈의 가치가 우위에 서게 되고 그들의 터전은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로 더럽혀진다. 이제 그들은 이웃과의 공존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더 급급해졌다. 호지는 라다크 사람들의 이러한 변화가 단지 그들의 욕심과 무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거대 기업과 세계화에 눈먼 강대국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이 함께 기반을 두고 있는 땅과 전통에 대한 이해 없이 오직 이윤 추구만을 목표로 하는 개발 정책 외에 더 나은 삶을 위한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기술에 의존하는 서구 현대 문화가 유입된 이상 라다크가 예전 사회로 돌아가기란 이제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개발이라는 것이 꼭 파괴를 전제로 해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볼 수밖에 없다. 호지는 중앙 집권적이고 자본과 에너지가 집약되는 거대 기업 중심의 경제 개발은 필연적으로 물질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와 함께 노동력 착취, 상대적 빈곤감, 계층 간 갈등, 생태계 파괴,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를 불러오기 때문에 개발에 대한 다른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것은 지역 중심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자연친화적 경제의 재건이다. 거주지 인근 지역의 토산품을 구매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하며 쓰레기를 재활용하고 공동 육아에 참가하며 지역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들이 모두 대안이 될 수 있다. 호지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무조건 기술문명을 거부하고 전통 사회로 회귀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미래’라는 역설적인 제목에서 보듯, 오래된 라다크의 문화 속에 우리 인류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모습이 있다는 것이 정말로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우리가 라다크의 전통 사회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자립정신, 검약정신, 사회적 조화, 환경적 지속성 그리고 내면적인 풍요로움 같은 것들이다. 이미 지나간 ‘오래된’ 것에 우리가 찾는 ‘미래’가 있다.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닛산의 구원투수 ‘인피니티 Q70’ 시승기

    닛산의 구원투수 ‘인피니티 Q70’ 시승기

    지난해 인피티니는 한국 시장에서 ‘풍요 속 빈곤’을 느꼈다. 11개월간 2354대가 팔린 Q50 디젤이 이른바 대박을 터뜨린 덕에 브랜드의 전년 대비 총판매량이 148%나 증가했지만 특정 모델에 대한 쏠림 현상은 피할 수 없었다. 심지어 Q50을 제외한 다른 모델 판매는 423대에 불과했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투입된 차가 Q50의 맏형인 Q70이다. 지난 10일 제주 서귀포시에서 한라산 성판암과 해안로 등을 거쳐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133㎞ 구간에서 Q70 디젤 모델을 시승했다. 먼저 디자인은 개인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지만 외관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게 아깝지 않다. 치타가 지면을 박차고 나가는 모습을 표현했다는 외관은 “나 좀 달리거든” 하는 모양새다. 공기저항계수(Cd)가 동급 최저인 0.27이라는 점에서 단지 멋을 위한 디자인만은 아니라고 한다. 동양적 옻칠 기법으로 포인트를 준 실내 인테리어는 군더더기 없이 고급스럽고 깔끔하다. 시승 코스는 가혹했다. 가파른 한라산 중턱 성판암까지는 오르막과 내리막에 거칠고 꼬불꼬불한 길들이 이어진다. 오전까지 내린 눈으로 노면은 얼어 있었고 삼다도라는 이름답게 바람은 사나웠다. 하지만 운전하는 내내 차 안은 바깥 사정과는 달리 평온했다. 거친 노면과 굴곡이 심한 도로에서 서스펜션이 제 역할을 해 주는 덕에 정숙하고 편안한 감을 유지했다. 살얼음처럼 얼어붙은 노면의 곡선 구간에서도 좌우 쏠림이 적어 속도를 높여도 불안감 없이 빠져나올 수 있게 했다. 닛산 측은 개량된 서스펜션에다 승차감을 위해 앞뒤 무게를 52대48의 비율로 맞춘 게 악조건에서도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맏형의 진가는 직선 주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속페달에 힘을 가하자 육중한 차체는 인피니티 특유의 엔진음을 내며 묵직하지만 민첩하게 달려 나갔다. 독일차 디젤과 비교하면 예상보다 초반 반응이 다소 더디고 실내 소음 역시 적지 않은 게 아쉬운 점이다. 시승한 3.0디젤 모델은 6기통 터보엔진에 7단 변속기를 탑재해 최고출력 238마력, 최대토크 56.1kg·m를 발휘한다. 국내 연비는 11.7km/ℓ로 가격은 6220만원이다. 제주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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