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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캠브리지시 「한글문화원」(세계의 사회면)

    ◎“한국 제대로 알리기” 3년/설날잔치ㆍ코리아의 밤등 개최/회지 펴내고 각종 전시회 마련/교포지식인 7명이 모여 88년 설립 한국ㆍ한국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무지를 깨우쳐주고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대부분이 교포들인 1백여 회원들이 주머니를 털어 개설하고 있는 한글문화원이 미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시 주민들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문화소개를 위한 한글문화원이 젊은교포 지성인 7명에 의해 설립된 것은 지난 88년 7월. 현재 이 한글문화원은 김영숙(34) 김성군씨(29)부부가 주도하고 있다. 김영숙씨는 원장직을,김성군씨는 한글문화원에 회지 「우리」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데 교포들은 이들이 3년째 벌이고 있는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한국알리기 활동을 민간차원에서 할 수 있는 한국문화 소개활동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고 있으며 현지인들의 관심 또한 점차 높아지고 있다. 김영숙원장이 『미국에 있는 민간단체로서 교포와 미국인을 위해 종합적인 한국문화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이 단체가 3년째 벌이고 있는 행사는 다양하다. 연례적으로 ▲설날잔치 ▲한국문화캠프 ▲한국문화연수 ▲한글날잔치 ▲한국의밤 등의 행사를 마련해 오고 있으며,연중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는 ▲한국어강좌 ▲영어강좌 ▲학업적성검사 영어ㆍ수학 강좌 ▲어린이를 위한 한글문화교실 ▲한국요리강좌 ▲한글문화원 합창단 ▲어린이합창단 등이 있다. 그밖에 한국문화소개 사진전 같은 전시회도 열고,한국문화와 관련된 상담,교포들의 미국사회적응을 돕기 위한 상담활동도 하고 있어 한글문화원은 종합문화센터와 같은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김영숙씨는 79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육개발원에서 일하다가 80년 8월 미국 캠브리지시에 있는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 입학,86년 교육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교육학도. 그는 『하버드에 유학왔을 때 한국의 문화가 너무도 알려지지 않고 있어서 우선 놀랐고 속상했던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세월이 가면서 미국사회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일과 언어 풍습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는 교포를 돕는 일을맡을 상설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한 김씨는 뜻맞는 젊은 교포 전문인 7명과 함께 88년 4월부터 2주에 한번씩 모여 한국문화소개 활동을 하면서 이를 위한 단체구성을 의논했다. 그 결과 이 해 7월 한글문화원이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된 것. 법인으로 등록된 한글문화원은 회원 1백여명의 회비,그리고 대개 전문직 종사자인 회원들과 대학생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된다. 회원 가운데는 베이뱅크 하버드 트러스트(은행),쿨리지 뱅크 앤드 트러스트 컴퍼니(은행),아동복지기구(국제아동입양기관),뉴잉글랜드 한국노인회,웰즐리대학,석정태권도장,뉴잉글랜드 한인회 등의 단체회원도 들어 있다. 또한 빈센트 브랜트(터프츠대 한국학 교수),신디 베어드(전자회사 매니저),아치엡스(하버드대 학생처장),조항록(의사),피터 하인즈(조각가) 남세교 부부,인준식(뉴잉글랜드 실업인회장),데이비드 킬리안(성공회 신부),아그네스 김(의사),공병우(의사),백린(하버드 옌칭 도서관 사서),신태민(전언론인),윤내현(단국대 역사학교수),김창덕(전뉴잉글랜드 한인회 이사장),김은한(뉴잉글랜드 한국학교 이사장)등 각계의 명사 20여명이 한글문화원 고문을 맡아 뒤에서 밀어주고 있다. 김원장은 『지속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힘들었으나 이제 한글문화원 사업은 궤도에 올라있다』면서 『다만 자체 건물이 없어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이때문에 한글문화원은 자체건물 구입을 위한 모금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기금 총액 60만달러중 20만달러는 자체에서 마련할 계획이다. 나머지는 본국 정부와 기업체,그리고 뜻있는 이들의 지원을 받고 싶다고 김원장은 밝혔다. 한국문화원이 어학강습이나 전시회 등에 주로 많이 이용하는 건물은 캠브리지시의 복합문화예술회관이다. 그밖에는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장소를 빌려쓰고 있다. 한글문화원의 사무실은 김원장이 살고 있는 10평 정도되는 아파트(거실과 침실 1개)의 거실이다. 매킨토시 플러스 컴퓨터와 프린터ㆍ복사기ㆍ전화기ㆍ팩시밀리 기계가 놓인 이 방은 사람둘만 들어서도 꽉 찰 정도로 비좁다. 부군 김성군씨가 여기서 한영문 계간 회지 「우리」 발간,교재제작,각종 안내문 작성 등을 맡고 있다. 한글문화원 일 때문에 그는 서포크대학교 법과대학원을 2년동안 휴학하고 있는데 올 가을에는 복학할 예정이다. 한글문화원이란 이름은 한글타자기 개발자로 유명한 공병우박사가 88년 10월 서울에 세운 한글전용 및 한글기계화 연구단체인 한글문화원과 똑같은 데 이름이 같아진 것은 한글문화원 후원자의 한 사람인 공박사가 한글문화원이라는 이름이 좋다 하여 이를 그대로 땄기 때문이라고. 한글문화원의 주소는 P.O.Box 58,Cambridge,MA 02­140,U.S.A.이며 전화번호는 617­876­3540이다.
  • “위대한 몽골리안”… 칭기즈칸 복권운동 한창(깨어나는 몽고:2)

    ◎민족혼 “재점화”/민주화 바람 타고 “민족적 영웅” 추앙/“침략자”로 격하 70년만에 명예회복/배지ㆍ달력등 기념품 불티…묘찾기 작업 본격화 영하 15도에 매서운 한풍까지 심하게 몰아치던 4월1일 정오 울란바토르 시중심가에 자리한 야달트(승리) 극장앞. 약 5백명의 군중이 마이크 앞에서 외치는 연사들의 연설 내용을 듣고 있었다. ○행사장마다 추모행렬 군중이나 연사 모두가 추위에 아랑곳 않는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칭기즈칸은 우리 몽고민족의 위대한 영웅입니다. 2백만 몽고 인민공화국 국민은 물론 중국의 내몽고나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민족들은 이제 칭기즈칸의 정신밑에 하나로 뭉쳐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연사의 말이 끝나자 우뢰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또 다른 연사가 등장. 『늑대를 잡으려고 초원 한 곳에 불을 질렀으나 그 늑대는 다른 넓은 초원으로 달아 났습니다. 소련은 칭기즈칸 정신을 말살시키려고 그에 관한 책이나 사적을 없애고 한낱 전쟁 미치광이로만 선전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정신,몽고인의민족적 자긍심은 초원을 끝없이 달리는 늑대처럼 굳세고 힘차게 우리 가슴속에 살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칭기즈칸을 위해 만세를 부릅시다』 『칭기스칸 만세!』 『만세!』 ○“칭기즈칸 정신” 강조 곧이어 쇼열엘덴(발전하는 사회)이란 록그룹이 등장,칭기즈칸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자 군중들도 모두 따라 합창을 했다. 추운 날씨속에 계속된 이 집회는 「칭기즈칸 추모사업회」 발족을 위한 것이었다. 연단앞에 걸린 거대한 그의 초상화가 후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날 집회는 몽고의 저명작가 도초도르치를 비롯,시인ㆍ언론인ㆍ학자 등 지식인들이 주관했다. 흔히 외국인들이 「칭기즈칸」(Khan)이라고 부르는데 대해 몽고 사람들은 틀린 발음이며 「칭기즈한」(한)이 정확하다고 했다. 칭기즈는 몽고말로 강성하다라는 뜻이며 한은 왕ㆍ지배자를 가리킨다고 풀이했다. 요즘 몽고인들의 칭기즈칸 추모 열풍은 대단하다. 공산당 일당 독재를 폐기시킨 민주화가 민족혼을 불러일으켜 그들의 국민적 영웅인 칭기즈칸의 복권운동으로 점화된 것이다.○관련서적ㆍ사적 없애 추모사업회를 이끄는 작가 도초도르치는 『칭기즈칸의 대형 동상ㆍ기념탑등을 건립하고 그의 무덤을 찾아내 기념박물관을 세우겠다』고 말하고 있다. 울란바토르에 두 곳 뿐인 관광호텔과 단 하나의 외국인 백화점에선 칭기즈칸 배지ㆍ달력 등 그에 관한 기념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지난 1921년 몽고가 소련의 지원으로 공산혁명에 성공한 이후 칭기즈칸은 철저히 무시당해 왔다. 몽고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소련으로선 역사적으로 칭기즈칸에 대해 매우 굴욕적인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최초의 국가인 키예프러시아를 1240년 멸망시킨 것이 칭기즈칸의 아들 오고타이이며 이들 몽고 기병은 불과 일주일만의 맹공으로 모스크바를 함락시키고 킵차크한국을 세워 무려 2백40년 동안이나 러시아인들을 노예로 부렸던 것이다. 몽고의 지배로 러시아는 서구의 르네상스ㆍ종교개혁 등 근대화에 필요했던 시대의 흐름에서 완전히 격리된 채 정체의 역사를 밟을 수 밖에 없었다. 울란바토르의 몽고 국립역사박물관장 다바삼부는 『칭기즈칸을 극도로 혐오한 스탈린의 영향을 받아 몽고의 민족 영웅인 칭기즈칸이 지나치게 천대받아 왔다』면서 앞으로 그의 유물과 유적을 모으고 보관하는데 여생을 보내겠다고 강조했다. 이 역사 박물관에는 3층 맨구석에 칭기즈칸의 초상화 하나만 덩그러니 걸려 있을 뿐 더 이상 그에 관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동상ㆍ기념탑 건립계획 박물관 안내를 맡았던 튤스양에 따르면 몽고라는 표기도 현재 중국ㆍ한국ㆍ일본 등 한자권의 국가에서만 쓸 뿐 다른 곳에선 몽골(Mongolㆍ용감하다는 뜻)로 부른다고 했다. 몽고의 정식 국명도 몽골인민 공화국이다. 몽고란 명칭은 원래 한족 중심의 중국인들이 주변 이민족을 몽매한 야만인라고 경멸하는 뜻에서 붙인 것이라 했다. 또 몽골은 칭기즈칸이 속했던 부족 이름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테무친(철목진)으로 불렸던 그가 타타르,나이만 등 다른 부족을 평정,대초원에 제국을 건설함으로써 몽골이란 말이 국명으로 채택됐다는 것이다. ○초상하나만 덩그렇게 튤스양은 또 역사상 모스크바를 점령한 사람은 칭기즈칸과 나폴레옹 두 명 뿐이나 나폴레옹은 그나마 며칠 후 퇴각하면서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비교가 안된다며 칭기즈칸을 추켜세웠다. 아시아에서 유럽에 거쳐 대제국 건설의 기초를 다진 칭기즈칸은 1227년 여름 서하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현재 중국의 감숙성 진주 육반산에 갔다가 그해 9월 65세로 풍운 가득찬 생애를 마감했다. 그의 시신은 고향땅으로 옮겨져 울란바토르 동북쪽 케룰렌강 주변에 묻혀졌다고 한다. 때문에 최근 몽고에선 그의 묘를 찾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정확한 지점이 어디인가는 아직 어림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발간된 몽골리아지는 「칭기즈칸의 무덤은 어디인가?」란 제목의 기사에서 몽고인들이 과거 봉분의 풍습이 없었던 데다 후세 이민족이 시신을 훼손할 것을 우려,칭기즈칸의 묘지 소재를 비밀에 부쳤다고 밝히고 있다. 이 잡지는 당시 칭기즈칸이 묻힌 자리를 1천마리의 말이 밟아 흔적을 없앴으며 그자리에 풀이 무성하게 자랄 때까지 3년동안 몽고기병들이 파수를 보았다고 했다. 또 묘지 넓이는 직경이 30리에 이르고 귀중한 부장품이 엄청나게 많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칭기즈칸」 노래 유행 칭기즈칸의 아들과 동생들은 몽고대제국을 킵차크ㆍ오고타이ㆍ차가타이ㆍ일한국등으로 나눠 통치했으며 손자인 쿠빌라이는 원나라를 세워 북경을 수도로 삼았다. 그러나 이 방대한 대제국도 원의 멸망과 함께 붕괴되기 시작한다. 『용서해주세요 칭기즈칸/우리는 당신의 어두운 면만을 얘기했답니다/그러나 앞으로 우리는 당신을 민족최고의 영웅으로 받들겠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칭기즈칸 노래의 내용이다. 비록 소련의 입김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조국에서 조차 제국주의자ㆍ전쟁광으로 낙인 찍혀 멸시 당했던 칭기즈칸. ○낙후 몽고에 새 활력 그러나 초원을 휩쓸고 있는 민주개혁의 열풍으로 다시 몽고 국민들의 우상이 된 그가 공산주의로 찌들리고 낙후된 이 나라의 내일에 어떤 형태든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란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울란바토르=우홍제특파원〉
  • “아직도 자녀를 때리십니까”/황산성 변호사(서울시론)

    ◎「매질의 악습」은 악행만 조장할 뿐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개패듯이 때려 키운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장하여 사랑하는 아내를 동네북치듯 치고 공권력을 맡기면 폭력을 휘둘러댄다. 서구의 민주국가에서는 개를 때려도 동물 학대죄에 해당되니 그같은 법에 따르면 우리국민 모두가 전과자가 될 판이다. 헌법상 우리국민은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향유하는 존엄한 가치가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가정에서부터 이 위대한 선언을 파기하고 학교나 사회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자존심이 꺾이며 인권을 유린당하는 매질의 소굴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체벌은 최후의 수단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나보다도 성격이 밝고 명랑한 친구들이 암기력이 부족하여 점수가 나쁘다고 선생님에게서 뺨을 얻어맞고 손가락 사이에 연필깍지를 끼우는 고문당하는 모습이 가슴아파 선한 뜻으로 점수를 도왔다. 만약에 에디슨 아인슈타인 수준의 아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자란다면 부모와 선생님의 매질에 의해 요절하거나 불구가 되겠지. 최근 시험답안지에서 틀린 문제의 수에 따라서 혹독한 매질을 한 여선생님의 처벌행위가 사랑의 매로 미화되었고,판사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미국에서는 선생님이 학생을 체벌할 경우,어떤 행위에 대하여 처벌을 가한다는 사전예고와 처벌아닌 다른 수단을 다한 끝에 최후수단으로 선택되어야 하며 당사자의 변명을 듣고 다른 학생의 입회하에 가할 수 있다는 조건이 전제된다. 우리네 중고등학교에는 소위 대공분실이라는 체벌밀실이 있다고 하니 가히 개패듯 자식을 때려 키우는 야만인 사회임에 틀림없다. 이미 지난 올림픽 경기 때 권투시합에서 우리의 야만적 문화배경을 전세계에 과시한 적이 있다. 부모와 선생님의 혹독한 매질과 학대에 못이겨 지난 5년간 7백여명의 중고생이 자살하였고 모진 매질에 견디어 낸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여 약 15%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10년새 소년범죄 급증 죽지 않고,미치지 않고 살아남은 우리의 자녀들이 민주화를 주장하면서 돌과 화염병이 필수 휴대품이 되었다. 대학생들이 일으킨 동의대사건,각 대학 학원프락치사건 등에서 보듯 또래의 젊은이들을 죽이고 고문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이나 당황하는 모습을 엿볼 수가 없다. 숱한 주먹질,구둣발길질을 당하고도 그 정도는 고문이라고 호소하지도 않는다. 초ㆍ중ㆍ고생 성폭행에 대한 가해자의 55%가 고교생이라는 사실은 더 끔찍하다. 어머니를 매질하는 아버지를 칼로 방어하는 충동 역시 매질의 복습일 것이다. 1978년부터 최근 10년간 소년범죄의 수는 약 30% 증가하였고 특히 살인강도ㆍ집단폭력 등 강력범죄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얼마전 인천의 어느 전자오락실에서 국민학교 4ㆍ5학년생 4명이 고분고분 자기들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하여 국민학교 1학년생을 인근 공원으로 끌고가 집단구타하고 눈위에 방치하여 목숨을 잃게 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후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중고등학교 학생 3명이 날품팔이하는 아버지로부터 국민학교 졸업선물로 받은 용돈 8천원을 빼앗기 위해 또 집단구타하여 그 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학생들은 그렇게도 끔찍한 범행을 자행하고도 수사과정 중 자기네들끼리 낄낄거리며 장난치는 등 그들의 자세에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괴로움을 읽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매질은 자녀들에게 두려움과 불안감,기분나뿐 감정등으로 잠재의식 속에서 쌓여가며 마치 스펀지에 물이 스며드는 것과 같다고 한다. 오늘날 이같은 모든 악행의 표출은 매질의 악습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아이들을 얕보지 말고 과욕으로 채찍질하지 말았으면 한다. 아이들은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고 개성과 소질이 각기 다르므로 그가 가야할 길을 잘 지도하되 어른이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며 옳고 그른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잘 가르치면 된다. 잘못을 되풀이하면 매를 들 수가 있다. ○어른이 모범 보여야 그 경우에는 절대로 도구를 사용하여서는 안되며 오른손으로 때렸으면 왼손으로 안아주는 것이 사랑의 매질이다. 매질의 목적은 자녀들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기보다는 마음의 교정에 참뜻이 있기 때문에 상처를 주거나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 러시아 풍습 중 딸을 시집보내면서 장인이 사위에게 가죽채찍을 선물로 준다고한다. 그래서 길고 어두운 철권정치가 가능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서,그녀는 분명 아들을 매질이 아니라 사랑과 기도로써 양육하였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 외언내언

    최근 「1백만」이란 숫자가 몇가지 눈에 띈다. 첫째 우리나라 범죄 건수가 지난해 1백만건을 넘어섰다는 것. 둘째 대우그룹 김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발간 5개월 만에 1백만부를 돌파했다는 것. 셋째 서울의 자동차가 1백만대를 넘게 되었다는 것 등이다. ◆어휴 소리가 절로 나는 서울의 자동차 1백만대. 70년에 6만대 안팎이었던 일을 생각하면 엄청난 증가다. 더욱이 앞으로의 증가 현상에는 가속까지 붙는다. 그래서 94년쯤이면 2백만 대에 이르리라는 전망들. 지금도 밖에만 나가면 짜증이 나는 판인데 갈수록 심해지게 된 상황 아닌가. 자동차 무용론에 걷는 게 낫다는 말이 현실화하여 간다.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자면 1백만대 그 자체는 많은 숫자도 아니다. 서울보다 조금 더 인구가 많은 도쿄가 3백50만대요,파리는 3백80만대,뉴욕은 2백30만대라니 말이다. 그렇건만 서울이 「심각」한 것은 도로 체계가 잘못돼 있는 위에 도로율이 상대적으로 낮으면서 질서의식까지 모자라기 때문. 교통 체증에 따른 시간과 유류 손실액이 연간 2조3천억원이라 했는데 그 손실액에도 가속이 붙을 것 아닌가. ◆50년대부터 60년대초까지 서울 사는 사람들에게 「병」이 하나 있었다. 비록 셋방을 살망정 「식모」라는 이름의 가정부를 두었던 일. 그 「병」이 지금은 「자가용차」로 바뀌고 있다. 너도 나도 차를 사고 또 무슨 차냐로써 사회적 신분을 꼲으려는 풍습까지 곁들인다. 명절의 고향길에도 차를 끌고 가야 「얼굴」이 서는 걸로들 생각하게 되었고,교통정책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자동차문화」의 정립이 그에 못지않은 과제라 하겠다. ◆근자에 들어 지하철 이용률은 더욱 높아져 간다. 지상은 믿을수 없지만 지하는 믿을수 있다는 데서. 한데 거기에도 「지옥철」이란 별명이 붙었다. 지하철 전동차 구매 입찰이 또 유찰됐다는 소식은 그래서 서울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 변태 뿌리뽑는 계기 돼야(사설)

    8일부터 유흥업소의 심야영업이 단축되었다. 통금해제 이후 창궐해온 저질 심야유흥문화가 극에 이르렀고 그것이 사회병리에 끼치는 영향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취해진 일종의 고육책이다. 그 때문에 유흥업소및 그곳을 무대로 생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취업인들의 커다란 불만과 반발도 사고 있다. 그들이 반발하는 명분은 과소비나 향락사치는 심야영업과 직접 연관되는 일이 아니며 퇴폐범죄의 온상은 허가낸 업소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또 수많은 취업인구와 직간접으로 연계된 사람들의 생계가 문제되고 무엇보다도 「밤생활의 자유」를 침해받는 중대한 자유권의 상실을 지적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비교적 합리적인 값을 받는 일반 유흥업소의 심야영업이 규제되면 값비싼 고급호텔의 부대시설만 유리해진다. 서울의 경우 현재 허가받은 유흥업소는 1천5백여개소인데 이들이 전면 규제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무허가이거나 변태이게 마련이어서 행정지도가 가능한 업소에서는 범죄발생의 빈도도 훨씬 적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통칭 60만명에 이른다는 취업인구의 축소문제도 작은 일은 아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다. 오랫동안 「밤의 생활」을 규제받아 온 우리 사회에서는 「밤의 문화」가 성장하지 못했다. 오페라나 음악회 등의 공연문화는 모두가 「밤의 문화」다. 낮동안 건강한 일상을 생활하고 밤에 펼쳐지는 향기높은 예술을 향유하는 생활은 고급문화의 본고장의 생활풍습이다. 유럽만해도 밤10시가 되어야 본격적인 만찬들이 시작되고 밤무대는 저녁8시부터 시작되게 마련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공연시간을 늦춰 시작하기가 힘들다. 그 이유의 중요한 부분이 밤늦은 시간의 만찬풍속이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저런 사정들을 생각해보면 유흥업소의 영업시간 단축 정책은 사회발전의 후퇴를 초래할 염려가 적지 않다. 그렇기는 하지만 폭력과 퇴폐,타락으로 부패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 우리 사회를 감안해 볼 때 분별없이 확산되는 심야영업의 불건전 풍조를 방치해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택가까지 파고드는 유흥업소들,미성년자 출입을 묵인하며 청소년범죄의 장소로 제공되어 주는 변태업소행위,폭력의 무대가 되어 조직폭력을 뿌리깊게 하며 사회악을 확산시키는 토양구실을 적잖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혐의를 받지 않도록 큰 소리칠 수 있는 심야영업소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게다가 주택가가 밀집된 이웃에서 현란한 간판과 소요스런 음향을 전파하여 특히 분별없고 방황할 여건에 놓인 많은 청소년을 자극하여 유인하며 건전한 가정의 기풍까지 흔들리게 하는 요소들이 밤의 영업소들에게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심야의 한두시간을 절제함으로써 그런 분위기를 정화하려는 시도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행정지도가 가능한 허가업소보다 불법업소가 문제」라는 지적은 대단히 옳은 일이다. 법대로 단속하고 법대로 이행만 한다면 큰 문제는 예방된다. 특히 치안당국의 안일한 태도가 문제다. 고도한 기능개발로 민생치안 확립의 노력이 뒤따르지 못하고 다루기 쉬운 편법만을 생각한다면 심야영업단축 정책은 사회만 후퇴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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