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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단 45년… 북한의 생활상 어떻게 이질화됐나

    ◎다른 길로 달린 「남과 북」… “한핏줄의 이방인”/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한핏줄의 남북한은 하나의 역사,하나의 언어,그리고 공통된 생활관습 등을 지켜왔다. 그러나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분단의 길로 들어선 남과 북은 6ㆍ25전쟁이라는 민족최대의 비극을 겪으면서 분단이 고착화됐고 이 결과 전쟁후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삶의 모든면에서 이질화가 심화되어 왔다. 최근 동서독이 통독의 길로 나아가는등 세계의 냉전구조가 타파되면서 세계유일의 분단국이 되고만 한반도에도 냉전의 장벽을 허물어 뜨릴 수 있는 변혁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분단 45년,전쟁발발 40년이 지난 오늘 제각기 달려온 남과 북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됐고 이질화됐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언젠가는 맞이할 통일에 대비해 서로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삼고자 한다. ◎문화ㆍ예술/인간개조의 도구화… 순수예술 명맥 끊겨 지난해 우리는 두개의 서로 다른 경험을 했다. 그 하나는 비록 결렬되고 말았지만 북경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한 남북단일팀 구성논의에서 「아리랑」을 단가로 하자는데 양측이 비교적 손쉽게 합의,문화적 민족정서의 공유가능성을 확인한 일이다. 또 하나는 남북이산가족의 재회를 무산시킨 이른바 북한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와 「피바다」 공연여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실감했던 남과 북의 현저한 문화ㆍ예술관의 차이다. 이렇듯 남과 북의 문화ㆍ예술은 공감대를 같이하는 한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분단이후 45년간 서로다른 이념과 사회체제 속에서 이질화의 과정을 밟아옴으로써 오늘의 남과 북사이에는 엄청난 높이의 문화적 장벽이 가로놓이게 됐다. 한국의 문화정책이 이어령 문화부장관의 구상처럼 『후기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에 따른 세대간ㆍ계층간ㆍ지역간ㆍ성별간의 이질화와 갈등현상을 문화의 힘으로 치유』하는데 놓여져 있다면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주체사상과 3대혁명에 입각한 공산주의적 정치사회화의 수단적 목적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의 문화예술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기초하에 체제보위 및 최고통치자에 대한 우상화 및 공산주의적 인간개조를 위한철저한 도구로 기능함으로써 전통적 순수예술의 성격은 물론 대중예술과도 거리가 먼 주체예술ㆍ혁명예술ㆍ이데올로기예술로 변모돼 있다. 가령 북한가요 45년사에서 3대명곡으로 꼽히고 있는 「조선의 별」,「김일성장군의 노래」「동지애의 노래」 등이나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시작 「묘향산의 가을날에」,80년대 최고의 미술작품이라는 「강선의 저녁노을」 등은 모두가 김일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북한의 문화ㆍ예술의 성격을 대변해 주고 있다. ▲사상성이 좋고 ▲가사가 좋으며 ▲선율이 부드럽고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불후의 「혁명송가」라는 「조선의 별」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투쟁을 할때 그의 추종자들이 김일성을 흠모해 지었다는 노래이며,「동지애의 노래」는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촉구한 노래이다. 「강선의 저녁노을」은 남포시 강선제강소를 소재로 김일성을 찬양한 조선화이며 주체예술의 상징인 5대혁명가극의 하나인 「피바다」는 항일혁명투쟁을 주제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앞세운 목적극이다. 특히 6ㆍ25전쟁 전까지 순수예술과 목적예술간의 대립속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지 못한채 주로 소련에 의존해왔던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전쟁중 전쟁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의 전쟁영웅 형상화에 몰두,목적예술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전후복구와 「주체」의 슬로건 등장등 상황적 요청에 따라 문예정책은 사회주의 건설에 역점을 두는 새로운 전형을 형상화하는 한편 소련식 문화활동에서 탈피,김일성체제를 뒷받침하는 혁명전통확립과 주민들에 대한 공산주의 교양을 주제로 한 창작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또한 자연만을 노래하거나 예술지상주의 태도는 반혁명적이고 형식주의적인 문화예술이라는 인식하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당성ㆍ계급성ㆍ인민성의 구현이 모든 창작활동중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으로 대두됐다. 현재 북한에서는 이러한 문화예술의 원칙과 과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작가 미술가 영화인 연극인 무용가 사진가 등 모든 예술인들을 망라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란 조직이 결성돼 있으며 당은 이 조직을 통해 각 분야 종사자들에게 창작 및 공연활동계획서의 제출을 강요,▲혁명전통(30%) ▲전쟁(30%) ▲사회주의건설(20%) ▲조국통일(20%) 등 4개 주제별로 창작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의식구조/어휘마다 정치색… 전투ㆍ파괴적 성격 강조 『서울말은 남존여비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주아적 생활이 지배하는 말로서 오늘 남조선방송에서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아양을 떠는데 쓰이는 코맹맹이 소리를 그대로 쓰고 있으며,그것마저 고유한 우리말은 얼마 없고 영어 일본말 한자어가 반절이나 섞인 잡탕말이다. 우리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지인 평양말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오늘 평양말은 서울말보다 비할 바 없이 우월하다』 김일성이 1969년 평양말을 「문화어」로 삼은 이유를 설명한 교시의 내용으로 북한의 언어정책을 잘 보여준다. 김일성은 또 「표준말」이란 용어 대신 「문화어」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표준어라고 하면 마치도 서울말을 표준하는 것으로 그릇되게 이해될 수 있으므로 그대로 쓸 필요가 없다. 「문화어」란 말도 그리 좋은 것은 못되지만그래도 그렇게 고쳐쓰는 것이 낫다』 특히 북한은 「언어를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의 힘있는 무기」로 보는 언어관을 토대로 일찍부터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언어정책을 펴옴으로써 분단 45년이 지난 현재 남북한간에 벌어지고 있는 언어의 이질화는 단순한 언어 자체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간의 사고와 행동양식 및 의식구조의 이질화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실제 북한에서는 언어를 씩씩하고 힘있는 무기로 다듬는다는 명분하에 『미제의 각을 뜨자』『돌탕을 쳐 죽이자』는 등의 살벌하고 소름끼치는 말들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성격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않음을 감안할때,북한의 이같은 극단적인 언어관과 언어정책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는 북한주민자신을 공격적이고 전투적이며 파괴적인 성격으로 만드는 잠재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남북한간의 언어이질화에서 빚어지는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의 언어정책은 1949년에 단행된 한자폐지와 이에 따른 한글전용정책에서 시작된다. 문맹퇴치와 인민대중의 조속한 사상교육을 목표로 추진된 한자폐지는 결과적으로 한글전용화로 이어졌고 이결과 북한의 각급학교 교과서 문예작품 신문 및 대중매체에서 한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한자교육은 통일후 남한문헌을 읽기 위해 또한 고전연구를 위해 하나의 외국어처럼 전공과목으로서만 남게됐다. 한글전용에 이어 가로쓰기도 시행되었으나 한자어의 어원을 가진 낱말을 한글로만 표기,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말다듬기운동」이 새로 일어났다. 이에 따라 1954년 일제하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수정한 「조선어철자법」이 생겨났고 1966년에는 「조선말규범집」과 함께 「문화어」라는 새로운 개념의 어휘까지 등장했다. 문화어의 등장은 남북한간 언어이질화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되고 말았는데 그 성격은 서울말을 배격하고 평양말을 토대로 다듬은 그들의 공용어를 표준어로 삼는 데 있다. 한편 한자폐지와 한글전용,말다듬기운동의 결과 새로운 사전의 편찬이 불가피하게 됐는데 1968년 나온 「현대 조선말사전」의 경우 18만어휘가 수록됐던 「조선말사전」(61년)에 비해 어휘가 5만으로 크게 줄었다. 그 이유는 한자가 하나도 없고 옛말 사투리 고유명사 및 이른바 「퇴폐적 사상표현」등을 완전히 제외했기 때문. 또 어휘마다 정치성이 담겨져 있어 김일성의 인용구는 굵은 활자에 별표까지 달아놓았다. 현재 남북한의 언어는 발음의 차이,리듬의 차이,억양의 차이 등과 같은 음성학적인 차이를 비롯해 어휘ㆍ문법ㆍ의미ㆍ문체 및 맞춤범 등 언어전반에 걸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가장 심각한 차이는 어휘부문에서 나타난다. 예를들면 산책길→유보도 채소→남새 화장실→위생실 고기잡이→추어전 개고기→단고기 도시락→곽밥 레코드→소리판 대중가요→군중가요 투피스→동강옷 커튼→창문보 그룹→그루빠 소년단→삐오네르 주제→쩨마 등이다. ◎경제생활/「남농북공」무너져 GNP 남한의 12%/생필품 부족… 암시장 쌀값 배급의 18배 8ㆍ15해방 당시 남북한의 산업배치는 「남농북공」으로 일컬을 만큼 지역적 보완관계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남북분단으로 이같은 보완관계는 무너졌으며 설상가상으로 6ㆍ25가 남과 북 모두의 각종 산업시설을 파괴,경제활동의 토대조차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후 남과 북은 40여년간 천연자원 및 산업구조의 불균형이라는 악조건속에서 통합적 발전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분리적인 발전을 계속해왔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로 굳어진 한국과 북한은 각기 다른 경제질서를 형성ㆍ유지하면서 치열한 체제경쟁을 벌여왔고 이 결과 88년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액(GNP)의 차이는 한국이 북한에 비해 8배나 앞서는 비교우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착수한 이래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듭,개발도상국에서 일약 중진국의 일원으로 도약했다. 1960년 1백달러 미만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89년말 현재 5천달러에 육박해 있다. 반면 6ㆍ25로 인해 공업생산 수준이 1949년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출발했던 북한경제는 전후복구 3개년계획(1954∼56년)과 뒤이은 5개년계획(1957∼61년)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성장을 기록했으나 그후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70년대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비해 부분적인 비교우위내지는 형평을 유지해 왔으나 이후부터는 전분야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체제가 다른 북한의 국민총생산액등 각종 경제지표의 개념은 우리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국토통일원이 북한의 각종 선전자료를 검토ㆍ분석해 추정한 수치는 다음과 같다. 국민총생산액은 88년을 기준으로 2백6억달러로 우리의 1천6백92억달러에 비해 8분의 1 수준이며 1인당 GNP는 9백80달러(한국 4천40달러),자동차 생산능력은 연간 2만대(한국 1백70만대),TV보유율은 10%(한국 1백%),전화는 7%(한국 67%),냉장고는 6.5%(한국 79%) 등이다. 한편 북한주민의 의ㆍ식ㆍ주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평등한 방식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직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임금과 그 임금에 따른 불균형한 소비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임금은 당간부 및 고위직 군인의 급료가 상대적으로 높으며 사무직보다는 기술직이 높다. 또 경노동 보다중노동이,중노동 가운데도 위해노동종사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으며 85년부터는 「사회주의적 노동보수제」가 도입돼 동일직종이라도 숙련도나 생산성 등 노동의 질에 따라 급수를 달리하는 「차등임금제」가 실시되고 있다. 북한은 이같은 화폐소득의 차이를 완화하기 위해 보건ㆍ교육분야를 국가예산으로 충당하는 한편 대중소비물자의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사치품의 가격을 높게 매기고 있다. 이에 따라 쌀ㆍ채소ㆍ옷감ㆍ비누ㆍ치약 등 생필품의 경우 아주 싼값으로 공급되는데 가족수와 연령,직업에 따라 품목과 수량,종류가 정해진 구입카드에 의해 국영상점에서 구입한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먹는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 과제이듯이 국가에서 싼 값으로 공급하는 생필품의 배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주민들은 부족분을 구하기 위해 1㎏당 8전에 불과한 쌀을 「장마당」이라고 부르는 암시장에서 이 가격의 18배가 넘는 1㎏당 15원에 구입하려해도 어려운 실정이다. 주택은 협동적 소유로 행정당국에 의해 직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배분되며 그 보급율은 70% 안팎. 북한은 주택건축률이 경제발전을 대변하는 전시적 기능이 크고 남북한 사회비교의 중요한 징표가 된다는 점에서 70년대 이후 평양ㆍ남포ㆍ원산ㆍ함흥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현대식 고층아파트를 신축하는 한편 농촌의 문화주택을 2층 3가구용,3층 5가구용으로 다양화하고 문화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등 주거양식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북한은 지난 40년간 중공업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친 결과 주민들의 소비생활이 크게 압박을 받아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를 「경공업의 해」로 지정하는 등 최근 경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활풍습/“봉건잔재 없앤다” 관혼상제도 통제ㆍ규격화 북한은 우리민족의 전통적 예의범절에 대해 『봉건지배계급이 착취하는데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규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민족 고유의 예절이나 유교적 도덕관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와 당의 이익에 맞도록 변형되어 있다. 또 관혼상제를 포함한 전통적인 민속과 세시풍속 등도사회주의적 내용으로 변질됐다. 북한에서의 결혼은 『철저히 동지적이고 혁명적인 관계에 의해 이뤄지며 일생을 동지로서 당과 수령께 충성할 수 있는 정신적 풍모가 조건이 된다』고 정의되고 있다. 따라서 결혼연령도 노동과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남자 29세 여자 26세로 제한해 놓고 있으나 불만이 많아 80년대 이후에는 조혼추세가 묵인되고 있다. 배우자선택은 중매(60%)와 연애(40%)가 병행되고 있으나 최근 북한의 남녀대학생들은 서로 손을 잡기도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등 연애결혼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계층의 남녀가 만나는 채널은 연애보다는 부모 친척 등을 통한 중매가 지배적이다. 신랑감으로는 직업에 관계없이 평양거주총각이 최고의 배우자로 꼽히고 있으며 길흉을 가리는 결혼의 택일 풍습은 사라져 대개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치러진다. 회갑이나 생일,돌잔치는 50년대에는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와 식량절약이라는 명분으로 일체 금지되었으나 60년대 후반기부터 묵인되고 있다. 그러나 「60청춘 90회갑」이라는 구호아래 공식적인 회갑잔치는 거의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고위간부의 경우에만 김일성이 하사하는 일정한 규격의 회갑상을 받는다. 장지는 지정된 공동묘지만을 쓰도록 돼있다. 상복은 따로 만들어 입는 것이 없고 머리에 건을 쓰고 팔에는 검은 천을 두른다. 장례식과 매장은 도시의 경우 녹화사업소,편의협동조합 등이 맡아서 처리해 주며 직계존속이 사망했을 경우 상주에게는 3일간의 공식휴가와 장례보조금 10원,쌀 1말이 배급된다. 제사도 다른 풍습과 같이 6ㆍ25전까지는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았으나 휴전후부터 단속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기부터 추석에 성묘하는 것과 직계존속에 대한 탈상까지의 제사는 묵인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60년대 중반까지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김일성 교시에 따라 추석등 고유의 세시풍속을 공식명절에서 제외하고 김일성의 생일,김정일 생일,북한정권 창건일,노동당 창건일,사회주의 헌법제정일 등을 「사회주의 명절」로 지정,공휴일로 해왔으나 지난 88년부터 추석 음력설 단오 한식 등을명절로 부활시켰다. 또한 70년대까지만 해도 인민복,검은 통치마 차림이었던 주민들의 옷차림이 두드러지게 바뀌기 시작해 8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남자는 양복이나 잠바,여자는 양장이나 짧은 치마차림이 보편화됐으며 머리모양이 다양해지고 화장을 한 여자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초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이던 주민들의 부분적 여행자유화 조치가 전면 보류됨으로써 일반 주민들의 북한내 여행 및 휴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금강산ㆍ묘향산 등 유명관광지의 이용자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며 주민들의 경우 공장ㆍ직장별 단체관광 정도일 뿐 가족단위의 여행은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의 주요한 오락수단은 TV와 라디오이다. 또 최근 바둑협회가 새로 결성되고 실내 골프장이 생기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있으나 대중이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주민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놀이는 주패놀이로 불리는 서양식 카드놀이와 장기이다. 가정생활은 지난 80년 『셋은 양심이 없습니다. 둘은 많습니다. 하나가 좋습니다』라는 김정일의 지시이후 가족계획이 보편화되기 시작해 점차 대가족에서 핵가족 형태로 옮아가고 있다.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는 등 남녀평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으나 실제로는 가부장적 사회가 유지되고 있으며 여자들이 가정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남편들이 봉급을 타서 여자들에게 넘겨 주기는 우리와 마찬가지다. ◎언론ㆍ교육/비판기능은 무시… 선전ㆍ선동의 매체로 활용 최근 북한은 소련언론들의 잇따른 대북한 비난보도에 대응,소련의 평양주재 기자들에 대한 취재봉쇄조치를 취한데 이어 타스통신기자 1명을 추방함으로써 내외의 관심을 끌었었다. 특히 북한은 『우리 혁명을 지지하는 기사를 쓰라,그러면 당신들의 요청이 충족될 것』이라고 주장한데 반해 소련언론들은 북한언론들의 보도태도와 관련,「목적지향성」보도에만 집착할뿐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비난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북한과 소련의 언론관이 상이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현재 북한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노동당기관지인 「로동신문」과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을 비롯해 도단위 일간지 등 모두 30여종. 방송은 TV의 경우 「조선중앙TV」(평양TV)「만수대TV」「개성TV」 등 3개가 있고 라디오는 「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구국의 소리방송」「평양인민 FM방송」 등이 있다. 북한에 있어 언론이란 「김일성의 교시와 당의 정책을 해설ㆍ선전하며 그것을 철저히 비호ㆍ관철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일층 강화하여 인민들을 수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는데 복무해야 한다」는 정치사전(73년도판)의 규정처럼 정치선전도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또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사가 아닌 모범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로써 사람들을 교양해야 한다는 김일성의 교시(1960년 11월)에 따라 우리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되는 범죄나 비행ㆍ사고 등의 기사는 신문ㆍ방송 등 언론매체에 일체 실리지 않는다. 우리의 언론들이 사회의 비리ㆍ부조리 등을 파헤침으로써 비판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긍정적ㆍ모범적인 기사를 통해 사회를 계도하겠다는 언론관을 고집하고 있다. 또 북한의 언론은 자본주의언론이 중시하는 속보성보다는 매스미디어의 이념적 이용,즉 당의 정책적 선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정론성」과 「당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정론성이란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전ㆍ선동ㆍ조직ㆍ교육ㆍ동원에 필요한 요소들을 가미하여 「사실」을 각색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북한의 방송은 정무원직속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지도아래 운영되고 있는데 이 기구는 조직ㆍ편제상 정무원에 속해 있지만 당중앙위 선전선동부의 지시와 통제를 받고 있어 사실상 2원화 되어 있다. 북한의 새 학기는 우리와 달리 9월에 시작된다. 북한은 지난 75년부터 유치원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과정으로 된 「11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국민학교에 해당하는 인민학교의 취학연령은 만6세. 그러나 만4세부터 시작되는 2년과정의 유치원교육중 「높은반」부터 의무교육기간에 포함되므로 실질적인 의무교육은 만5세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11년제 의무교육기간에는 수업료는 물론 면제이며 교과서ㆍ교복ㆍ학용품이 무상 또는 일부 부담으로 지급된다. 16세부터 시작되는 고등교육단계로는 2∼3년 과정의 고등전문학교와 교원대학(3년),종합ㆍ단과ㆍ사범ㆍ공장대학(4∼6년) 등이 있다. 현재 북한에는 인민학교 5천여개,고등중학교 4천2백여개,전문학교 5백여개,대학 2백7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한은 80년중반부터 낙후된 과학기술을 진흥하기 위해 각 시도별로 「제1고등중학교」를 세우는 한편 기술계 대학의 수를 크게 늘리고 있다. 학생들은 또 「한가지 이상의 기술과 기능을 소유해야 한다」는 당의 방침에 따라 예능 또는 실업 등의 실기과목을 배우고 있으며 소년단이나 사로청 등의 조직에 의무적으로 가입,단체활동을 한다. 특히 의무노동이 중시돼 인민학교는 연간 2∼4주,고등중학교는 4∼8주,대학교는 12주정도씩 생산현장노동에 참여한다. 한편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것을 주체적,창조적으로 적용했다는 「주체사상」을 교육이념으로 삼고있다. 또 계급투쟁을 위해서는 「공산주의적 인간」이,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생산기술적 인간」이,전쟁승리를 위해서는 「체력이 튼튼한 인간」이 바람직하다는 「이상주의적인 인간상」때문에 정치사상교양 및 과학기술교육,그리고 국방체육이 북한교육내용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 미 캠브리지시 「한글문화원」(세계의 사회면)

    ◎“한국 제대로 알리기” 3년/설날잔치ㆍ코리아의 밤등 개최/회지 펴내고 각종 전시회 마련/교포지식인 7명이 모여 88년 설립 한국ㆍ한국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무지를 깨우쳐주고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대부분이 교포들인 1백여 회원들이 주머니를 털어 개설하고 있는 한글문화원이 미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시 주민들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문화소개를 위한 한글문화원이 젊은교포 지성인 7명에 의해 설립된 것은 지난 88년 7월. 현재 이 한글문화원은 김영숙(34) 김성군씨(29)부부가 주도하고 있다. 김영숙씨는 원장직을,김성군씨는 한글문화원에 회지 「우리」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데 교포들은 이들이 3년째 벌이고 있는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한국알리기 활동을 민간차원에서 할 수 있는 한국문화 소개활동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고 있으며 현지인들의 관심 또한 점차 높아지고 있다. 김영숙원장이 『미국에 있는 민간단체로서 교포와 미국인을 위해 종합적인 한국문화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이 단체가 3년째 벌이고 있는 행사는 다양하다. 연례적으로 ▲설날잔치 ▲한국문화캠프 ▲한국문화연수 ▲한글날잔치 ▲한국의밤 등의 행사를 마련해 오고 있으며,연중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는 ▲한국어강좌 ▲영어강좌 ▲학업적성검사 영어ㆍ수학 강좌 ▲어린이를 위한 한글문화교실 ▲한국요리강좌 ▲한글문화원 합창단 ▲어린이합창단 등이 있다. 그밖에 한국문화소개 사진전 같은 전시회도 열고,한국문화와 관련된 상담,교포들의 미국사회적응을 돕기 위한 상담활동도 하고 있어 한글문화원은 종합문화센터와 같은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김영숙씨는 79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육개발원에서 일하다가 80년 8월 미국 캠브리지시에 있는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 입학,86년 교육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교육학도. 그는 『하버드에 유학왔을 때 한국의 문화가 너무도 알려지지 않고 있어서 우선 놀랐고 속상했던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세월이 가면서 미국사회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일과 언어 풍습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는 교포를 돕는 일을맡을 상설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한 김씨는 뜻맞는 젊은 교포 전문인 7명과 함께 88년 4월부터 2주에 한번씩 모여 한국문화소개 활동을 하면서 이를 위한 단체구성을 의논했다. 그 결과 이 해 7월 한글문화원이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된 것. 법인으로 등록된 한글문화원은 회원 1백여명의 회비,그리고 대개 전문직 종사자인 회원들과 대학생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된다. 회원 가운데는 베이뱅크 하버드 트러스트(은행),쿨리지 뱅크 앤드 트러스트 컴퍼니(은행),아동복지기구(국제아동입양기관),뉴잉글랜드 한국노인회,웰즐리대학,석정태권도장,뉴잉글랜드 한인회 등의 단체회원도 들어 있다. 또한 빈센트 브랜트(터프츠대 한국학 교수),신디 베어드(전자회사 매니저),아치엡스(하버드대 학생처장),조항록(의사),피터 하인즈(조각가) 남세교 부부,인준식(뉴잉글랜드 실업인회장),데이비드 킬리안(성공회 신부),아그네스 김(의사),공병우(의사),백린(하버드 옌칭 도서관 사서),신태민(전언론인),윤내현(단국대 역사학교수),김창덕(전뉴잉글랜드 한인회 이사장),김은한(뉴잉글랜드 한국학교 이사장)등 각계의 명사 20여명이 한글문화원 고문을 맡아 뒤에서 밀어주고 있다. 김원장은 『지속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힘들었으나 이제 한글문화원 사업은 궤도에 올라있다』면서 『다만 자체 건물이 없어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이때문에 한글문화원은 자체건물 구입을 위한 모금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기금 총액 60만달러중 20만달러는 자체에서 마련할 계획이다. 나머지는 본국 정부와 기업체,그리고 뜻있는 이들의 지원을 받고 싶다고 김원장은 밝혔다. 한국문화원이 어학강습이나 전시회 등에 주로 많이 이용하는 건물은 캠브리지시의 복합문화예술회관이다. 그밖에는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장소를 빌려쓰고 있다. 한글문화원의 사무실은 김원장이 살고 있는 10평 정도되는 아파트(거실과 침실 1개)의 거실이다. 매킨토시 플러스 컴퓨터와 프린터ㆍ복사기ㆍ전화기ㆍ팩시밀리 기계가 놓인 이 방은 사람둘만 들어서도 꽉 찰 정도로 비좁다. 부군 김성군씨가 여기서 한영문 계간 회지 「우리」 발간,교재제작,각종 안내문 작성 등을 맡고 있다. 한글문화원 일 때문에 그는 서포크대학교 법과대학원을 2년동안 휴학하고 있는데 올 가을에는 복학할 예정이다. 한글문화원이란 이름은 한글타자기 개발자로 유명한 공병우박사가 88년 10월 서울에 세운 한글전용 및 한글기계화 연구단체인 한글문화원과 똑같은 데 이름이 같아진 것은 한글문화원 후원자의 한 사람인 공박사가 한글문화원이라는 이름이 좋다 하여 이를 그대로 땄기 때문이라고. 한글문화원의 주소는 P.O.Box 58,Cambridge,MA 02­140,U.S.A.이며 전화번호는 617­876­3540이다.
  • “위대한 몽골리안”… 칭기즈칸 복권운동 한창(깨어나는 몽고:2)

    ◎민족혼 “재점화”/민주화 바람 타고 “민족적 영웅” 추앙/“침략자”로 격하 70년만에 명예회복/배지ㆍ달력등 기념품 불티…묘찾기 작업 본격화 영하 15도에 매서운 한풍까지 심하게 몰아치던 4월1일 정오 울란바토르 시중심가에 자리한 야달트(승리) 극장앞. 약 5백명의 군중이 마이크 앞에서 외치는 연사들의 연설 내용을 듣고 있었다. ○행사장마다 추모행렬 군중이나 연사 모두가 추위에 아랑곳 않는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칭기즈칸은 우리 몽고민족의 위대한 영웅입니다. 2백만 몽고 인민공화국 국민은 물론 중국의 내몽고나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민족들은 이제 칭기즈칸의 정신밑에 하나로 뭉쳐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연사의 말이 끝나자 우뢰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또 다른 연사가 등장. 『늑대를 잡으려고 초원 한 곳에 불을 질렀으나 그 늑대는 다른 넓은 초원으로 달아 났습니다. 소련은 칭기즈칸 정신을 말살시키려고 그에 관한 책이나 사적을 없애고 한낱 전쟁 미치광이로만 선전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정신,몽고인의민족적 자긍심은 초원을 끝없이 달리는 늑대처럼 굳세고 힘차게 우리 가슴속에 살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칭기즈칸을 위해 만세를 부릅시다』 『칭기스칸 만세!』 『만세!』 ○“칭기즈칸 정신” 강조 곧이어 쇼열엘덴(발전하는 사회)이란 록그룹이 등장,칭기즈칸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자 군중들도 모두 따라 합창을 했다. 추운 날씨속에 계속된 이 집회는 「칭기즈칸 추모사업회」 발족을 위한 것이었다. 연단앞에 걸린 거대한 그의 초상화가 후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날 집회는 몽고의 저명작가 도초도르치를 비롯,시인ㆍ언론인ㆍ학자 등 지식인들이 주관했다. 흔히 외국인들이 「칭기즈칸」(Khan)이라고 부르는데 대해 몽고 사람들은 틀린 발음이며 「칭기즈한」(한)이 정확하다고 했다. 칭기즈는 몽고말로 강성하다라는 뜻이며 한은 왕ㆍ지배자를 가리킨다고 풀이했다. 요즘 몽고인들의 칭기즈칸 추모 열풍은 대단하다. 공산당 일당 독재를 폐기시킨 민주화가 민족혼을 불러일으켜 그들의 국민적 영웅인 칭기즈칸의 복권운동으로 점화된 것이다.○관련서적ㆍ사적 없애 추모사업회를 이끄는 작가 도초도르치는 『칭기즈칸의 대형 동상ㆍ기념탑등을 건립하고 그의 무덤을 찾아내 기념박물관을 세우겠다』고 말하고 있다. 울란바토르에 두 곳 뿐인 관광호텔과 단 하나의 외국인 백화점에선 칭기즈칸 배지ㆍ달력 등 그에 관한 기념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지난 1921년 몽고가 소련의 지원으로 공산혁명에 성공한 이후 칭기즈칸은 철저히 무시당해 왔다. 몽고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소련으로선 역사적으로 칭기즈칸에 대해 매우 굴욕적인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최초의 국가인 키예프러시아를 1240년 멸망시킨 것이 칭기즈칸의 아들 오고타이이며 이들 몽고 기병은 불과 일주일만의 맹공으로 모스크바를 함락시키고 킵차크한국을 세워 무려 2백40년 동안이나 러시아인들을 노예로 부렸던 것이다. 몽고의 지배로 러시아는 서구의 르네상스ㆍ종교개혁 등 근대화에 필요했던 시대의 흐름에서 완전히 격리된 채 정체의 역사를 밟을 수 밖에 없었다. 울란바토르의 몽고 국립역사박물관장 다바삼부는 『칭기즈칸을 극도로 혐오한 스탈린의 영향을 받아 몽고의 민족 영웅인 칭기즈칸이 지나치게 천대받아 왔다』면서 앞으로 그의 유물과 유적을 모으고 보관하는데 여생을 보내겠다고 강조했다. 이 역사 박물관에는 3층 맨구석에 칭기즈칸의 초상화 하나만 덩그러니 걸려 있을 뿐 더 이상 그에 관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동상ㆍ기념탑 건립계획 박물관 안내를 맡았던 튤스양에 따르면 몽고라는 표기도 현재 중국ㆍ한국ㆍ일본 등 한자권의 국가에서만 쓸 뿐 다른 곳에선 몽골(Mongolㆍ용감하다는 뜻)로 부른다고 했다. 몽고의 정식 국명도 몽골인민 공화국이다. 몽고란 명칭은 원래 한족 중심의 중국인들이 주변 이민족을 몽매한 야만인라고 경멸하는 뜻에서 붙인 것이라 했다. 또 몽골은 칭기즈칸이 속했던 부족 이름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테무친(철목진)으로 불렸던 그가 타타르,나이만 등 다른 부족을 평정,대초원에 제국을 건설함으로써 몽골이란 말이 국명으로 채택됐다는 것이다. ○초상하나만 덩그렇게 튤스양은 또 역사상 모스크바를 점령한 사람은 칭기즈칸과 나폴레옹 두 명 뿐이나 나폴레옹은 그나마 며칠 후 퇴각하면서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비교가 안된다며 칭기즈칸을 추켜세웠다. 아시아에서 유럽에 거쳐 대제국 건설의 기초를 다진 칭기즈칸은 1227년 여름 서하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현재 중국의 감숙성 진주 육반산에 갔다가 그해 9월 65세로 풍운 가득찬 생애를 마감했다. 그의 시신은 고향땅으로 옮겨져 울란바토르 동북쪽 케룰렌강 주변에 묻혀졌다고 한다. 때문에 최근 몽고에선 그의 묘를 찾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정확한 지점이 어디인가는 아직 어림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발간된 몽골리아지는 「칭기즈칸의 무덤은 어디인가?」란 제목의 기사에서 몽고인들이 과거 봉분의 풍습이 없었던 데다 후세 이민족이 시신을 훼손할 것을 우려,칭기즈칸의 묘지 소재를 비밀에 부쳤다고 밝히고 있다. 이 잡지는 당시 칭기즈칸이 묻힌 자리를 1천마리의 말이 밟아 흔적을 없앴으며 그자리에 풀이 무성하게 자랄 때까지 3년동안 몽고기병들이 파수를 보았다고 했다. 또 묘지 넓이는 직경이 30리에 이르고 귀중한 부장품이 엄청나게 많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칭기즈칸」 노래 유행 칭기즈칸의 아들과 동생들은 몽고대제국을 킵차크ㆍ오고타이ㆍ차가타이ㆍ일한국등으로 나눠 통치했으며 손자인 쿠빌라이는 원나라를 세워 북경을 수도로 삼았다. 그러나 이 방대한 대제국도 원의 멸망과 함께 붕괴되기 시작한다. 『용서해주세요 칭기즈칸/우리는 당신의 어두운 면만을 얘기했답니다/그러나 앞으로 우리는 당신을 민족최고의 영웅으로 받들겠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칭기즈칸 노래의 내용이다. 비록 소련의 입김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조국에서 조차 제국주의자ㆍ전쟁광으로 낙인 찍혀 멸시 당했던 칭기즈칸. ○낙후 몽고에 새 활력 그러나 초원을 휩쓸고 있는 민주개혁의 열풍으로 다시 몽고 국민들의 우상이 된 그가 공산주의로 찌들리고 낙후된 이 나라의 내일에 어떤 형태든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란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울란바토르=우홍제특파원〉
  • “아직도 자녀를 때리십니까”/황산성 변호사(서울시론)

    ◎「매질의 악습」은 악행만 조장할 뿐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개패듯이 때려 키운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장하여 사랑하는 아내를 동네북치듯 치고 공권력을 맡기면 폭력을 휘둘러댄다. 서구의 민주국가에서는 개를 때려도 동물 학대죄에 해당되니 그같은 법에 따르면 우리국민 모두가 전과자가 될 판이다. 헌법상 우리국민은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향유하는 존엄한 가치가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가정에서부터 이 위대한 선언을 파기하고 학교나 사회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자존심이 꺾이며 인권을 유린당하는 매질의 소굴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체벌은 최후의 수단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나보다도 성격이 밝고 명랑한 친구들이 암기력이 부족하여 점수가 나쁘다고 선생님에게서 뺨을 얻어맞고 손가락 사이에 연필깍지를 끼우는 고문당하는 모습이 가슴아파 선한 뜻으로 점수를 도왔다. 만약에 에디슨 아인슈타인 수준의 아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자란다면 부모와 선생님의 매질에 의해 요절하거나 불구가 되겠지. 최근 시험답안지에서 틀린 문제의 수에 따라서 혹독한 매질을 한 여선생님의 처벌행위가 사랑의 매로 미화되었고,판사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미국에서는 선생님이 학생을 체벌할 경우,어떤 행위에 대하여 처벌을 가한다는 사전예고와 처벌아닌 다른 수단을 다한 끝에 최후수단으로 선택되어야 하며 당사자의 변명을 듣고 다른 학생의 입회하에 가할 수 있다는 조건이 전제된다. 우리네 중고등학교에는 소위 대공분실이라는 체벌밀실이 있다고 하니 가히 개패듯 자식을 때려 키우는 야만인 사회임에 틀림없다. 이미 지난 올림픽 경기 때 권투시합에서 우리의 야만적 문화배경을 전세계에 과시한 적이 있다. 부모와 선생님의 혹독한 매질과 학대에 못이겨 지난 5년간 7백여명의 중고생이 자살하였고 모진 매질에 견디어 낸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여 약 15%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10년새 소년범죄 급증 죽지 않고,미치지 않고 살아남은 우리의 자녀들이 민주화를 주장하면서 돌과 화염병이 필수 휴대품이 되었다. 대학생들이 일으킨 동의대사건,각 대학 학원프락치사건 등에서 보듯 또래의 젊은이들을 죽이고 고문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이나 당황하는 모습을 엿볼 수가 없다. 숱한 주먹질,구둣발길질을 당하고도 그 정도는 고문이라고 호소하지도 않는다. 초ㆍ중ㆍ고생 성폭행에 대한 가해자의 55%가 고교생이라는 사실은 더 끔찍하다. 어머니를 매질하는 아버지를 칼로 방어하는 충동 역시 매질의 복습일 것이다. 1978년부터 최근 10년간 소년범죄의 수는 약 30% 증가하였고 특히 살인강도ㆍ집단폭력 등 강력범죄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얼마전 인천의 어느 전자오락실에서 국민학교 4ㆍ5학년생 4명이 고분고분 자기들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하여 국민학교 1학년생을 인근 공원으로 끌고가 집단구타하고 눈위에 방치하여 목숨을 잃게 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후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중고등학교 학생 3명이 날품팔이하는 아버지로부터 국민학교 졸업선물로 받은 용돈 8천원을 빼앗기 위해 또 집단구타하여 그 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학생들은 그렇게도 끔찍한 범행을 자행하고도 수사과정 중 자기네들끼리 낄낄거리며 장난치는 등 그들의 자세에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괴로움을 읽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매질은 자녀들에게 두려움과 불안감,기분나뿐 감정등으로 잠재의식 속에서 쌓여가며 마치 스펀지에 물이 스며드는 것과 같다고 한다. 오늘날 이같은 모든 악행의 표출은 매질의 악습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아이들을 얕보지 말고 과욕으로 채찍질하지 말았으면 한다. 아이들은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고 개성과 소질이 각기 다르므로 그가 가야할 길을 잘 지도하되 어른이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며 옳고 그른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잘 가르치면 된다. 잘못을 되풀이하면 매를 들 수가 있다. ○어른이 모범 보여야 그 경우에는 절대로 도구를 사용하여서는 안되며 오른손으로 때렸으면 왼손으로 안아주는 것이 사랑의 매질이다. 매질의 목적은 자녀들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기보다는 마음의 교정에 참뜻이 있기 때문에 상처를 주거나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 러시아 풍습 중 딸을 시집보내면서 장인이 사위에게 가죽채찍을 선물로 준다고한다. 그래서 길고 어두운 철권정치가 가능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서,그녀는 분명 아들을 매질이 아니라 사랑과 기도로써 양육하였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 외언내언

    최근 「1백만」이란 숫자가 몇가지 눈에 띈다. 첫째 우리나라 범죄 건수가 지난해 1백만건을 넘어섰다는 것. 둘째 대우그룹 김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발간 5개월 만에 1백만부를 돌파했다는 것. 셋째 서울의 자동차가 1백만대를 넘게 되었다는 것 등이다. ◆어휴 소리가 절로 나는 서울의 자동차 1백만대. 70년에 6만대 안팎이었던 일을 생각하면 엄청난 증가다. 더욱이 앞으로의 증가 현상에는 가속까지 붙는다. 그래서 94년쯤이면 2백만 대에 이르리라는 전망들. 지금도 밖에만 나가면 짜증이 나는 판인데 갈수록 심해지게 된 상황 아닌가. 자동차 무용론에 걷는 게 낫다는 말이 현실화하여 간다.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자면 1백만대 그 자체는 많은 숫자도 아니다. 서울보다 조금 더 인구가 많은 도쿄가 3백50만대요,파리는 3백80만대,뉴욕은 2백30만대라니 말이다. 그렇건만 서울이 「심각」한 것은 도로 체계가 잘못돼 있는 위에 도로율이 상대적으로 낮으면서 질서의식까지 모자라기 때문. 교통 체증에 따른 시간과 유류 손실액이 연간 2조3천억원이라 했는데 그 손실액에도 가속이 붙을 것 아닌가. ◆50년대부터 60년대초까지 서울 사는 사람들에게 「병」이 하나 있었다. 비록 셋방을 살망정 「식모」라는 이름의 가정부를 두었던 일. 그 「병」이 지금은 「자가용차」로 바뀌고 있다. 너도 나도 차를 사고 또 무슨 차냐로써 사회적 신분을 꼲으려는 풍습까지 곁들인다. 명절의 고향길에도 차를 끌고 가야 「얼굴」이 서는 걸로들 생각하게 되었고,교통정책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자동차문화」의 정립이 그에 못지않은 과제라 하겠다. ◆근자에 들어 지하철 이용률은 더욱 높아져 간다. 지상은 믿을수 없지만 지하는 믿을수 있다는 데서. 한데 거기에도 「지옥철」이란 별명이 붙었다. 지하철 전동차 구매 입찰이 또 유찰됐다는 소식은 그래서 서울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 변태 뿌리뽑는 계기 돼야(사설)

    8일부터 유흥업소의 심야영업이 단축되었다. 통금해제 이후 창궐해온 저질 심야유흥문화가 극에 이르렀고 그것이 사회병리에 끼치는 영향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취해진 일종의 고육책이다. 그 때문에 유흥업소및 그곳을 무대로 생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취업인들의 커다란 불만과 반발도 사고 있다. 그들이 반발하는 명분은 과소비나 향락사치는 심야영업과 직접 연관되는 일이 아니며 퇴폐범죄의 온상은 허가낸 업소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또 수많은 취업인구와 직간접으로 연계된 사람들의 생계가 문제되고 무엇보다도 「밤생활의 자유」를 침해받는 중대한 자유권의 상실을 지적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비교적 합리적인 값을 받는 일반 유흥업소의 심야영업이 규제되면 값비싼 고급호텔의 부대시설만 유리해진다. 서울의 경우 현재 허가받은 유흥업소는 1천5백여개소인데 이들이 전면 규제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무허가이거나 변태이게 마련이어서 행정지도가 가능한 업소에서는 범죄발생의 빈도도 훨씬 적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통칭 60만명에 이른다는 취업인구의 축소문제도 작은 일은 아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다. 오랫동안 「밤의 생활」을 규제받아 온 우리 사회에서는 「밤의 문화」가 성장하지 못했다. 오페라나 음악회 등의 공연문화는 모두가 「밤의 문화」다. 낮동안 건강한 일상을 생활하고 밤에 펼쳐지는 향기높은 예술을 향유하는 생활은 고급문화의 본고장의 생활풍습이다. 유럽만해도 밤10시가 되어야 본격적인 만찬들이 시작되고 밤무대는 저녁8시부터 시작되게 마련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공연시간을 늦춰 시작하기가 힘들다. 그 이유의 중요한 부분이 밤늦은 시간의 만찬풍속이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저런 사정들을 생각해보면 유흥업소의 영업시간 단축 정책은 사회발전의 후퇴를 초래할 염려가 적지 않다. 그렇기는 하지만 폭력과 퇴폐,타락으로 부패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 우리 사회를 감안해 볼 때 분별없이 확산되는 심야영업의 불건전 풍조를 방치해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택가까지 파고드는 유흥업소들,미성년자 출입을 묵인하며 청소년범죄의 장소로 제공되어 주는 변태업소행위,폭력의 무대가 되어 조직폭력을 뿌리깊게 하며 사회악을 확산시키는 토양구실을 적잖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혐의를 받지 않도록 큰 소리칠 수 있는 심야영업소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게다가 주택가가 밀집된 이웃에서 현란한 간판과 소요스런 음향을 전파하여 특히 분별없고 방황할 여건에 놓인 많은 청소년을 자극하여 유인하며 건전한 가정의 기풍까지 흔들리게 하는 요소들이 밤의 영업소들에게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심야의 한두시간을 절제함으로써 그런 분위기를 정화하려는 시도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행정지도가 가능한 허가업소보다 불법업소가 문제」라는 지적은 대단히 옳은 일이다. 법대로 단속하고 법대로 이행만 한다면 큰 문제는 예방된다. 특히 치안당국의 안일한 태도가 문제다. 고도한 기능개발로 민생치안 확립의 노력이 뒤따르지 못하고 다루기 쉬운 편법만을 생각한다면 심야영업단축 정책은 사회만 후퇴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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