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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아선호가 다다를 길은?(박갑천칼럼)

    한자의 「사내남」자는 「밭전」자 아래 「힘력역」자를 받쳐 놓고 있다.「밭에서 힘을 써야 할 존재」임을 뜻하는 회의문자로서 「설문」도 그렇게 풀이한다.부권이 움츠러들고 있는 오늘의 세태 속에서 사내들은 다만 「밭에 나가 힘쓰는 존재」임을 느끼게 되는 때가 많다.더구나 밭에 나가 힘을 쓰면서도 수확물은 여성에게 넘기는 시류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내 낳기를 희망하는 타성에서 못벗어나고 있으니 웬일인가.딸 가진 부모는 미국 효도관광 다녀와도 아들 가진 부모는 제주도 구경도 못한다는 말이 짝자그르해진 세상이다.흐름이 이런 것이건만 사람들은 고정관념의 틀에서 쉬이 못벗어난다.그래서 성별감정인가를 해가면서까지 사내아이만 골라서 낳으려 한다. 그 때문에 지금 남녀의 균형은 깨어져 간다.그 현상이 전국 국민학교 어린이들의 남녀 비율에 나타난다.그 비율은 여학생 1천명에 대해 남학생은 6학년 1천54명,5학년 1천61명,4학년 1천66명,3학년 1천76명,2학년 1천91명으로서 저학년일수록 남자가 많아짐을 알려준다.그결과 이젠 남녀의 짝꿍이 없는 「남학생만의 반」도 나오는 실정이다. 한국 사람들의 남아선호사상은 뿌리깊다.유교의 종법숭중제도에 빠져든 영향이라고 할 것이다.이에 대해 간정 이능화는 그의 「조선 여속고」에서 『세계에서 사속관념이 가장 강한 것이 우리 조선 사람』이라고 표현한다.씨받이로써라도 대를 이어가려했던 것이 아닌가. 그뿐이 아니다.초자연적인 존재에 빌어서까지 아들을 얻으려 한 노력은 참으로 처절했다 할 정도이다.산신령에게,사해의 용신)에게,명성높은 바위에게,칠성님께,혹은 부처님께 치성을 드렸던 풍습은 오늘에까지 이어진다.공자도 그렇게 치성을 드려서 낳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은연중에 작용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그 아버지 숙량흘과 그 어머니 안징재는 딸 아홉을 낳았으나 아들이 없었다.그래서 이구산에 기도하여 열번째로 얻은 아들이 공자였다. 중국의 시성 두보는 「생남악생녀호」(사내를 낳으면 나쁘고 계집애를 낳으면 좋다:병차행)라고 했다.병란많은 시대를 개탄한 노래이다.병란의 시대는 아니지만 「사내를 낳으면 나쁜 시대」로 흘러간다 싶어진다.무엇보다도 사내아이를 고르는 인위적 조작은 하늘을 두려워해야 할 바가 아닌가 한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1)

    ◎오욕의 역사/“내선일체” 표방… 일제지배 합리화/항일독립군을 비적단·불영단으로 비방/언론탄압 항의하자 “민중현혹” 일방매도/경성일보에 경영 예속… 1938년 「신보」로 개제 일제의 손아귀로 팔려 넘어간 대한매일신보는 독립된 한국을 상징하는 「대한」이라는 제호의 두글자는 이내 잘려버렸다.합방 이튿날인 1910년8월30일 매일신보로 개제됐던 것이다.그리고 총독부의 기관지로 전락하는 운명을 맞았다.이른바 「일선융화와 세도인심의 감화유도」를 앞세운 일제의 선전대변 기관지의 길을 걸어야했다. ○한글판 발행 중단 그러나 지령은 대한매일신보룰 그대로 계승했다.국한문판은 제1642호,한글판은 제939호부터 발행되었다.매일신보는 총독부 기관지가 되는 동시에 9월1일에는 대한제국정부의 기관지격이던 한양신문까지 합병했다.국한문판과 한글판 두가지 신문을 발행하는 유일한 신문으로 남게 된 매일신보는 1912년 3월1일 한글판 신문을 폐지하고 대신 국한문판 제3면을 한글전용으로 제작했다.이에따라 1907년 5월23일 대한매일신보란 제호로 창간에 가서 매일신보로 이어져온 한글판은 5년만에 사라져 버렸다.결국 국한문판만 존속할 수 있었다. 그나마 매일신보는 경영측면에서 독립된 기구로서의 성격을 잃고 만다.왜냐하면 일제가 창간한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에 흡수통합 되었기 때문이다.경성일보의 한 부서의 위치에 불과한 매일신보는 말하자면 경성일보에 예속되어 자매지 성격으로 발행된 셈이다. 이렇듯 초기에 예속기를 거친 매일신보는 1920년에 가서 편집국으로 승격된다. 그러나 매일신보의 「신」자가 「신」자로 바뀐 「매일신보」는 경성일보에서 분리,독립된 신문으로서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그 시기는 1938년 4월16일이다. 그러나 매신이 경일에서 독립되기는 했으나 경일은 매신의 주식 45%를 소유한 대주주로 남는다.여기에 총독부의 소유 주식을 포함하면 매신의 경일예속은 종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논조 또한 변함없이 총독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일제의 한반도 통치를 합리화 하는데 급급한 것이었다. 매일신(신)보는 일제의 입장에서 「시정의 부연철저,민의의창달,문화의 향상」등의 원칙에 따라 편집되었고 편집방향은 한 마디로 「내선일체」라 요약할 수 있다.이를 위해서 총독정치의 선전과 홍보를 중심으로 제작했으나 식민정책의 모순을 은폐·호도하기 위해 민간지의 논조를 반박하거나 비난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3·1운동의 불길이 아직 가시기도 전인 1919년 3월6일 「민주자결주의의 오해」라는 사설로 이른바 「각지의 소요사건」을 비방하고 이튿날에야 처음으로 이를 「소요사건」으로 보도한 일도 그 실례가 될 것이다.3월8일 「소위 독립운동」이라는 사설로 민족적인 독립운동을 비웃었던 예는 매신의 편집방향이 어떠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매신은 합방이래 1919년까지 국문신문으로는 줄곧 독점적 위치에 서 있었다.그러다 3·1민족봉기를 계기로 일제는 그간의 무단장치에서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나섰다.그 시기에 나온 신문이 조선일보·동아일보·시대일보등 몇몇 언론이다. 일제는 1920년 민간지의 발행을 허가한데 이어 같은 해 9월 몇몇 잡지를 허가했다.그러나 일제는 바로 폭압적인 언론탄압정책으로 돌아섰다.11월20일 월간 「신천지」를 필두로 하여 22일에는 「신생치」에 대해서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 관련자들이 여러명 구속 또는 기소되는 필화를 입어야했다.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휘두른 본격적인 사법권의 발동이었다. ○독립운동 비아냥 이와같은 강경탄압에 대해 언론계와 한국인 변호사들은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결의문을 채택한 이들은 일제의 언론탄압정책을 맹렬히 규탄하고 나섰다.그러나 매신은 이러한 민족진영의 움직임에 대해 「불온당으로 인□,필화사건에 관한 언론계및 재야법조유지의 결의를 견하고」라는 사설을 통해 일제의 언론탄압을 옹호하고 민족진영을 비난했다. 매신의 이러한 식민주의적 왜곡 논리는 식민통치의 선전에서 민족동화는 물론 사회·경제·문화·교육 그리고 풍습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적용됐다.우선 식민지 정책통치의 선전에서는 주로 일본제국주의의 한국침략을 합리화하고 통치의 모순을 은폐하는 것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식민통치의 성공을 미화시키는데 열을 올렸다.또 식민지 지배질서를 확립하고자 식민지 권력의 정점인 총독의 선전에 주력하면서 식민지 권력에의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기에 이른다.민족동화의 논리는 민족말살을 위한 것으로 한국과 일본을 순치의 관계로 설정하고 「병합」은 침략에 의한 지배가 아니고 과거 신라의 한반도 통일 내지는 일본내 분국의 통일과정과 같은 현상이라면서 침략사실을 완전하게 은폐,호도했다.그리고 동화의 선결과제로는 일본어 교육을 강조하고 일본어를 익히게 되면 10∼20년이면 완전한 동화가 이루어져 황국식민화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광의의 애국심」내지는 「광의적 단합」을 강조하기도 했다.이는 일본왕에 대한 충성논리로 직결되는 것이었다. 사회분야에서는 식민지 통치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식민지 사회의 재편에 역점을 두었다.식민지 사회의 재편은 수작자를 매개로 식민지 사회의 재편을 종용하는 것이었다.아울러 각계각층에 경고사설을 통해 식민지 통치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거듭 강조했다. 경제분야에서는 식민지 경제수탈을 위한 산업의 개량과 일본경제체제로의 예속화에 중점을 두는 논조를 폈다.특히 농업의 발달을 위해서는 농사개량과 토지개량이 기반되어야 한다는 논리에서 개량사업을 강조했다.한편 식민지 수탈의 기초작업인 토지조사사업을 소위 「근대화」라는 논리로 위장하면서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한국의 경제제도가 확립되었다고 선전했다. 문화면의 경우는 한국의 자주성과 전통적 문화를 단절시키기 위한 문화말살로 일관했다.무엇보다도 종교에 대한 탄압이 심했는데 그중에서도 유교와 기독교에 대한 통제가 집중되었다.이는 식민통치에 대한 이들 종교계의 거센 저항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때문에 매일신보는 종교와 국체의 일치를 주장하면서 식민지 통치에 위배되는 종교활동을 철저하게 배척한 것이다. 교육부문에서도 식민통치를 위한 논리는 예외가 아니어서 학교와 사회,가정에 이르기까지 「황국신민화」를 위한 식민지교육을 강조하면서 보통교육과 실업교육을 역설했다.한국인에게는 고등교육이 필요치않고 식민지통치에 필요한 정도의 보통교육과 실업교육만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 논리의 요지였다.매신은 이처럼 정치·사회·경제·문화등 각 방면에 이르기까지 일제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또 이를 선전하는데 앞장서는 불행한 세월을 맞아야했다. 매일신(신)보가 36년동안 수행했던 역할을 요약하면 곡필로 일관되었다.온갖 압력수단을 동원해 일제가 빼앗은 「대한매일신보」는 「대한」이라는 두 글자가 잘려나가면서 오욕의 수렁텅이로 빠져들어 갔던 것이다.국권도 오간데가 없었고,그 서릿발같던 「대한매일신보」의 기상도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동사 연구」(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지음)
  • 관혼상제대행업체 “성업”/결혼·장례절차서 묘지관리까지 맡아

    ◎서울에만 10곳이상 영업/“값싸고 시간절약”… 젊음고객에 인기 결혼과 장례절차를 대행해주는 신종용역업체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귀찮은 심부름이나 힘들고 궂은 일을 대신해 주던 데서 나아가 관혼상제의식에까지 대행용역업체들의 손길이 뻗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새로운 형태의 용역업체들이 성업하고 있는 것은 특히 젊은 계층이 우리의 전통의식절차를 잘 모를 뿐 아니라 복잡하고 까다롭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주종을 이룬 용역업체는 이른바 3D업종으로 불리는 집안 청소와 이사,관청민원,파출부,병간호등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업종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결혼식과 장례식절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서 대행해 주는 업체는 물론 묘지관리등 우리의 고유한 풍습까지 맡아 처리해 주는 업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결혼대행업체가 10여개,장례대행업체는 3개이상이 성업하고 있고 묘지관리대행업체도 여러개 문을 열고 고객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업체들은 귀찮고 까다로운 절차를 대행해줘 시간을 절약해 주는 데다가 비용도 비교적 저렴한 장점을 갖고 있어 바쁜 직장인들에게 인기높은 새 풍속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결혼대행업체에서는 청첩장인쇄와 예물 및 혼수구입을 맡아서 해주고 결혼식장예약과 드레스대여,피로연장소까지 알선해 주고있다. 최근에는 여기에서 나아가 신혼살림을 할 전세집을 구해 주거나 야외결혼식까지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토털결혼대행업체까지 생겨났다. 결혼대행업체에 결혼절차를 맡길 경우에 드는 비용은 업소와 서비스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결혼경비를 30%쯤은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업체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 또 장례대행업체도 단순히 전화상담만 해 주는 곳도 있지만 장의업체가 해오던 염습과 수의,관,장의차의 제공은 물론 묘지알선,사망신고,조문객접대,장례식뒤의 인사장보내기까지 도맡아 해주는 종합대행업체도 등장해 영업하고 있다. 이같은 종합장례대행업을 하는「S유통」은 수의와 관,의전용구등 60가지 장례품목의 가격을 낱개로 매겨 필요한 것만 구입할 수있도록 해,적은 비용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하고 있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70만원에서 90만원 정도로 일반 장의사를 통해 장례를 치를 경우 드는 비용의 절반정도이다. 비용이 이처럼 싸고 특히 최근에는 병원영안실이 폭리를 취하고 있는 사실까지 밝혀져 이 업체를 찾는 고객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영업을 시작한「S유통」대표 임순씨(45)는『한달에 우리업소를 찾는 손님이 20명 정도로 아직 많은 편은 아니지만 문의전화와 상담전화가 최근 크게 늘고 있다』면서 『이용한 고객은 값싸고 깨끗한 점에 매우 만족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 발렌타인 데이가 무엇이길래(박갑천칼럼)

    『직제학 김천령이 기유년의 진사시에 삼도부로써 첫째를 했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문장이었다.다만 고구려국 계통을 서술하면서 「주몽이 빛나는 공업을 열었고 동명이 그 조상의 업적을 이었다…」고 했는바 주몽이 고구려 시조로서 19년을 왕위에 있다가 죽었고 아들 유리왕이 즉위하면서 주몽을 동명성왕이라고 호로 하였으므로 주몽과 동명은 한사람이다.그런데 인용의 그릇됨이 이에 이르렀다.당시의 시관이 살피지 못해 뭉개지 않았고 사림이 전해가며 외면서도 알지 못한다.우리나라 사람의 본국 사적에의 자세하지 못함이 이와 같으니 가소롭다』(김정국의 「사재척언」). 『우리나라에는 문헌이 부족해서 명인)의 성명이 후세에 전해지지 못한 경우가 많다.안시성주를 두고 말하더라도…(중략)성주의 성명이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빠뜨려져 있으니 실로 애석하다.「월정만록」(월정만록:월정만필이라고도 함.조선 선조때의 문신 윤근수의 글)을 상고해 보면 「임진란 이후 명나라 장수·사졸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나왔는데 그중에 오종도란 사람이 있어 내게말하기를 안시성주의 성명은 양만춘이니 태종동정기에 보인다고 했다」는 대목이 있다.…(중략)아,안시성의 공렬은 우리 역사에 압두하고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실로 그 이름을 전송해야 마땅하겠건만 중국인들이 아는 성명을 우리나라에서는 망연히 알지 못한다.…(후략)(홍만종의 「순오지」상). 우리나라 사람들의 우리것에 대한 생각이 어떠하냐를 말해 주는 옛글 두편을 줄여서 옮겨보았다.이런 까닭으로 해서 우리의 역사를 중국이나 일본의 전적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사가 서거정이 「동인시화」(동인시화)에서 지적한바 있듯이 중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러기도 했고 기록에 대한 의식의 박약,잦은 병화등등에 연유한다 할 것이다.이러한 생각의 줄기를 잇고 있음인가,오늘에도 내것에 어둡고 내것이 업신여김을 받고 있는 사례들은 한둘이 아니다.일상의언어·문자 생활부터 그렇다. 이른바 「밸런타인 데이」라는 것도 그런 점에서 많이 불쾌하게 하는 것중의 하나이다.일부 서양나라에서의 풍습이 우리한테 들어와(그것도 일본을 통해)젊은 남녀들의 명절같이 되어오고 있는게 아닌가.상혼이 나서서 부추기는데 따라 엉덩춤을 춘 결과인데 올해 또한 백화점·호텔들이 대목을 볼양으로 법석대고 있다.문득 그리스신화에서의 헤르메스가 떠오른다.상업의 신이면서 도둑의 수호신이기도 한 올림포스 12신의 하나.그는 어째서 장사와 도둑을 함께 관장하게 되었던 것일까. YMCA등에 의해 밸런타인 데이 추방운동이 벌여져 오고 있다.올해는 또 정월 대보름을 부럼 선물하며 사랑 고백하는 날로 삼자는 움직임도 있었고.남의 것도 내것의 바탕위에 받아들이게 돼야겠다.
  • 선사시대서 조선까지 생활사 한눈에/국립민속박물관 17일 확장개관

    ◎4천3백여점 시대순 분류전시/경복궁 중앙박물관자리/입체음향·영상 등 특수기법 선보여 국립민속박물관이 경복궁안 동쪽에 있는 옛 국립중앙박물관 자리에서 17일 개관식을 갖고 문화부 직속기관으로 새롭게 문을 연다. 새 민속박물관은 1만2천8백40평의 부지에 연 건평이 4천4백54평으로 순수 전시면적만도 2천2백44평에 이른다.이 것은 옛 민속박물관 시절 부지 2천9백60평에 연 건평 1천2백63평,전시면적 6백24평이었던 것에 비해 3∼4배 이상 커진 것이다.이에따라 전시품도 2천4백여점에서 4천3백여점으로 크게 늘어나 내실있는 전시가 가능해졌다. 민속박물관의 전시관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야외전시장을 갖추었다.상설전시실은 다시 「한민족 생활사」를 담은 제1관과 「생활문화와 민속」을 담은 제2관,「한국인의 일생 및 사회제도」를 담은 제3관으로 나누어진다. 「한민족 생활사관」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한민족의 생활사를 시대순으로 배치해 이해를 돕도록 했다.선사시대의 각종 생활도구와 청동기시대의 생활상,고구려의 생활문화,백제의 제사유적,신라의 왕경도,가야의 야철공방,고려의 인쇄 및 청자문화,조선의 한글창제와 과학기술 등 주로 정신세계와 관련된 자료들이 복원 전시된다. 「생활문물과 생산민속관」은 생업자료 및 농경문화와 세시·수렵·어로·수공예를 비롯해 우리 전통사회의 의·식·주 생활을 엿볼수 있도록 꾸몄다.고대 에서부터 근래까지 쓰였던 각종 농기구와 정월 대보름놀이 등 농경 세시의례를 비롯해 각종 옷과 장신구,부엌 세간 및 세시음식과 일상음식,각종 가옥의 모형 등을 전시하게 된다.이 밖에 양반 사대부의 생활과 내면세계를 살펴볼수있는 안방과 사랑방,칠기와 화각공예품이 전시되며 옹기가마도 복원해 놓았다. 「한국인의 일생과 사회제도관」은 한국인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거치는 통과의례와 오락,사회제도 및 종교에 관한 것들을 담았다.득남을 비는 풍습과 선바위,서당,향교,관례 및 혼례,회갑연,상청과 제례상,사당,주막,굿청,각종 놀이모습이 전시된다.또 문방구류,악기,화폐와 교통·통신과 관련된 봉수대,조운선 등이 모형으로 재현된다. 이들 전시는 모두 디오라마,모형,입체음향과 영상매체를 이용한 특수 전시기법을 적극 활용해 관객들의 즐거움을 더하고 이해를 높이도록 했다.한편 중앙홀에서는 개관을 기념하는 「한국의 건축문화」특별전이 열린다.여기에는 신라의 안압지와 황룡사 9층탑,백제의 미륵사,고려의 다실,조선의 근정전,동십자각,사랑방 등의 모형이 포함됐다. 야외전시장에는 귀틀집과 원두막,솟대 등 생활문화가 원형의 크기로 들어섰다.이 밖에 영상실 및 2백52석 규모의 강당이 들어서 사회교육 기능을 담당하게 되며 기념품 판매대도 마련했다.
  • 올바른 세배법/남­왼손·여­오른손을 위로

    ◎무릎꿇을때 발등이 바닥에 닿아야/아랫사람이 먼저 덕담하는 것 금물 설날아침이면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의 세시풍속.가족·친지들간에 훈훈하고 정겨운 덕담이 오가는 설날을 맞아 세배드리기의 올바른 예법을 청년여성교육원 예절교육실 김복진실장으로부터 들어본다. 원래 우리나라의 예법은 가가례)로 지방·집안에 따라 다르지만 세배는 서울·경기지방의 풍속에 맞춰 평절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자의 경우 오른손이 위로 가도록 양손을 마주잡고 섰다 팔을 양옆으로 자연스럽게 늘어뜨린다.왼발을 발길이의 반정도 뒤로 살짝 빼면서 왼무릎을 꿇고 오른무릎을 세운다.손가락을 가지런히 붙인 상태에서 양손을 꽃잎모양으로 펴서 바닥에 대는 동시에 목이 옷깃에서 떨어지지 않을만큼(15도 정도)허리전체를 굽혀서 절한다.이때 팔꿈치를 구부리지 않아야 단정해 보인다.일어나서 양손을 잡고 가볍게 목례한 후 어른의 정면에서 비껴 앞에 양다리를 사선이 되도록 모아 앉는다.양장을 입었을 때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절한다. 남자는 왼손이 위로 오도록 두손을 마주잡고 섰다가 자연스럽게 손을 풀고 무릎 꿇고 앉는다.두손을 앞으로 뻗어 엎드렸을때 코정도에 오도록 왼손을 위로 하여 마주잡는다.몸을 일으키면서 두손을 자연스럽게 옆으로 풀고 일어나 목례한 후 다시 앉는다.남자들이 절할때 주의할 점은 무릎을 꿇었을때 발을 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발등이 바닥에 닿도록 눕혀야 엉덩이가 올라오지 않고 자연스런 자세가 된다. 세배가 끝난후 어른으로부터 덕담을 듣는다.덕담은 잘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으로 아랫사람이 절하면서 먼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든지 「건강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어린이들에게는 절값으로 세뱃돈을 주는데 아이의 나이에 맞게 적절하게 주어야 한다.부모들은 세뱃돈이 어린 자녀들에게 큰 액수인만큼 저축을 하거나 제대로 잘 사용하도록 지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아랫 사람이 윗사람으로부터 덕담을 듣거나 세뱃돈을 받았으면 반드시 「감사합니다」라고 답하고 공손한 자세로 물러선다. 가장 웃어른에게 세대별로 세배를 드린 다음 형제·동서 지간에 맞절을 올리고 어린 자녀들이 있는 경우 부부맞절을 하고 자녀들로부터 세배받는 것이 자녀교육에도 좋고 아름다운 우리 풍습이다.
  • 컴퓨터 운세풀이 이용자 급증/「토정비결」 등 SW 시중판매 늘고

    ◎건강정보 제공 PC통신도 인기 현대생활에서는 서서히 잊혀져가지만 설날을 전후로 온가족이 한데 모여 심심풀이삼아 토정비결로 한해의 운세를 점쳐보고 덕담을 나누는 것이 전래의 우리 풍습이었다. 최근 일반 가정에 개인용컴퓨터(PC)가 급속도로 보급됨에 따라 PC를 이용해 새해의 운세를 알아보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PC통신을 하는 곳에서는 자신의 생년월일 등을 넣으면 그날의 건강상태나 심리상태등을 알려주는 곳도 있지만 조선시대의 도학자 토정 이지함이 풍수신앙과 음양복술을 합쳐 만든 토정비결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소프트웨어등도 인기를 끈다. 국내 처음으로「토정비결」소프트웨어를 개발,판매하고 있는 보람소프트웨어 박길순사장은 『지난 89년에 첫 시판된 이후 하루 평균 4∼5개씩 한달에 1백20여개씩 판매돼 지금까지 3만개 정도가 판매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82년 삼성전자의 요청으로 1개월에 걸쳐 개발해 저작권을 이양,신세계백화점·삼성전자 등에서 회사의 고객서비스차원에서 보급되다가 89년 상품화됐다』고 설명한다.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토정비결에 관한 소프트웨어에는 토정비결·반짇고리·삼성전자의 알라딘홈백과와 알라딘매직컴퓨터에 포함돼 있는 것등. 보람소프트웨어에서 개발,판매하는 토정비결은 값이 5천5백원이며 토정비결·유명산·건강·낚시터·응급처치·꿈해몽 등이 담긴 홈소프트웨어인 반짇고리는 한국소프트웨어유통센터가 3만3천원에 판매한다.삼성전자의 알라딘홈백과에는 반짇고리처럼 하나의 항목으로 삽입돼 있으며 가격은 4만9천5백원이다.또 알라딘매직컴퓨터에는 번들(제품속에 프로그램이 심어져 있는 제품)형태로 돼있다. 이밖에 한국PC통신의 하이텔과 현대백화점 등에서도 토정비결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소프트웨어의 이용방법은 토정비결 프로그램의 경우 플로피디스크일때는 A:드라이브에서 DOS(운용체계)디스켓으로 부팅(컴퓨터가 실행되기 전까지의 준비과정)시킨후 드라이브 A:에 디스켓을 넣는다. 이어 A>상태에서 TOJUNG를 입력하고 실행(엔터)키를 치면 된다. 하드디스크는 C:드라이브로 부팅시킨후 드라이브를 A:으로 바꾼다.드라이브A:에서 디스켓을 넣어 A>상태가 되면 TOJUNG를 입력한후 엔터 키를 치면 프로그램이 실행된다.잠시후 나타나는 화면의 안내에 따라 보는 연도·생년월일 등의 순서로 입력하면 된다. 하이텔의 경우 초기 화면에서 61번 스포츠·오락을 선택하면 이 속에 포함돼 있다.
  • 서초1동 행정주사보 시정발전부문 수상 사공종옥씨(모범공무원)

    ◎구민 문화생활향상 전력 모범공무원 사공종옥씨(서울 서초구 서초1동사무소 행정주사보)는 90년 구의 문화공보실에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문학의밤·구민공예조각전등 대형문화행사 10여개를 기획해 구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또 구민들이 직접 문화예술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22개구 가운데 가장 먼저 「문화예술 구민회원제」를 운영,그동안 5백여명의 회원을 확보하는등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 이와함께 사공씨는 잊혀진 우리의 전통민속놀이를 발굴하는데 힘써 91년에는 우면동의 「우면두레」풍습을 주민들과 함께 찾아내 재현하기도했다. 나아가 그는 지역주민 80여명으로 「우면두레팀」을 구성, 구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정착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밖에도 사공씨는 지난해 5월 개최한 「친절봉사경연대회」에서 「서초구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로 연극대본을 직접 쓴데 이어 연출·감독까지 맡아 구를 알리고 민원행정을 친절하게 처리하느데 큰 기여를 했다. 75년 경북 영천군에서 면서기로 공직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늘 창의적인 자세로 제도개선및 문화생활향상에 노력해 동료공무원들의 모범이 되고있다.
  • 한인 하와이이민 오늘로 90주년(뉴스인사이드)

    ◎교민들,「조상숭모」 대행사/1903년 1백3명 첫 발/한국학 강연 등 연중개최 1월13일은 한국인의 미국 하와이 이민이 시작된지 9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날이다. 90년전인 1903년 바로 이날 선각자 1백3명이 신천지를 개척하기 위해 SS갤리호를 타고 호놀룰루항에 처음 도착했었다. 공식적으로 집단이민을 위한 한국인을 태운 첫배가 이날 도착한뒤 1905년까지 7천2백26명의 한국인들이 하와이로 이주해 말과 풍습·음식·기후 모든 것이 낯선 이국의 섬 하와이에서 사탕수수밭 노무자로 미국이민역사의 장을 열었다. 하와이 이민들은 조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됐을 때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제공했고 해방후에는 한국인들이 미국 본토로 진출하는 발판이 됐다. 이민4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회장 김창원)은 1월13일을 「조상숭모의 날」로 명명하고 상오 10시30분 호놀룰루 시청 광장에서 기념행사 개막식을 가진뒤 이민90주년을 기념하는 갖가지 행사를 1년내 펼치기로 했다.이민 90주년 행사일정은 다음과 같다. ▷1월◁ ▲이민90주년 행사 개막식=13일 ▲이민90주년기념만찬=15일 하오6시 쉐라톤 와이키키호텔 ▲호놀룰루심포니와 김영욱바이얼린협연=17일 하오7시30분 NBC홀 ▲한국무용의 밤=28일 하오8시 하와이대학내 케네디극장 ▲이민사진전시회=14∼29일 호놀룰루시청 ▷2월◁ ▲해외한민족 경제세미나=3∼7일 하와이 프린스호텔 ▲한국학강연=9일 ▷4월◁ ▲문화기념축제=21일 토머스광장 ▲바이올리니스트 장 사라와 호놀룰루심포니협연=4∼6일 ▲패션쇼=25일 힐튼하와이언빌리지 ▷5월◁ ▲한인골프토너먼트=5일 ▲한인미술협회 회원미술전=3∼18일 호놀룰루시청 ▷6월◁ ▲한국학강연=15일 ▲한국영화상영=25∼26일 ▷8월◁ ▲앙드레김 패션쇼=15일 ▷9월◁ ▲하와이한인대운동회=6일 ▲추석축제=11일 ▲한국학강의=21일 ▷10월◁ ▲호놀룰루심포니와 피아니스트 김병규협연=29일 ▷12월◁ ▲한국학강의=14일
  • 1993년의 지구촌 정세 본사 특파원들의 분석

    ◎미서 불어오는 신상업주의 바람/연해주 등 한­러합작개발 본격화/북경/시장경제 본격 적용,경쟁체제로/최두삼특파원 중국에서는 올해 국가경영의 대권이 혁명원로들의 손에서 혁명이후 세대로 넘어가게 된다.오는 3월 제8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구성된뒤 출범할 새 행정부에는 혁명원로들이 전혀 참여하지 않을 계획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그동안 정치일선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온 양상곤·진운·만리·송평·부일파·요의림·진기위등 혁명원로들이 지난해 10월의 제14차 당대회에서 당직을 그만둔데 이어 올봄의 전인대에서는 국가기관에서 맡아온 직책마저 벗어던지고 은퇴생활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이를 계기로 강택민 당총서기와 이붕총리를 정점으로 한 이른바 강·이체제는 원로들의 간섭없는 살림을 꾸려갈수 있게 된다.일부에서는 보수파로 분류되어온 이붕총리가 수족들이 모두 잘려나간 현 상황에서 총리직의 재신임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그러나 당내 제2인자인 그가 총리직을 계속 맡는게 당연하다는의견도 강력하다. 어쨌든 오는 봄철 새 행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중국 사회에는 새로운 활력이 일어날 것 같다.지난번 당대회때 채택된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본격적으로 적용되면서 경쟁체제에 불이 붙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새로운 자유경쟁시대가 막을 열게 된다.이와함께 그동안 잠자고 있던 중화인의 상혼도 다시 깨어날 것에 틀림없다. 그러나 서구 열강들의 압력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고되고 있어 외교적으로는 새로운 시련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껄끄러운 상대는 물론 인권문제를 트집잡고 있는 미국의 새대통령 빌 클린턴으로 여겨지고 있다. 여기에 영국의 젊은 정치가로 얼마전 홍콩 총독이 된 크리스 패튼이 홍콩의 민주화를 내세우며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중국의 새 지도층은 이같은 서방측의 움직임들이 대중국봉쇄정책으로 발전되지 않도록 되도록 정면대결을 회피하면서 주변국가들과의 유대강화에 주력해 나갈것에 틀림없다. ◎파리/사회당 총선거 패색,「동거」 불가피/박강문특파원 프랑스는 새해 정치분야에서 큰 변동을 맞게될 것이다.3월의 총선거에서 사회당이 참패하리라는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정치자금 불법조달,국립혈액원 오염혈액 공급사건등 스캔들과 인기 하락으로 고전해온 사회당과 미테랑 대통령에게는 시련의 한해가 될 수밖에 없다. 사회당은 총선에서 과반수 획득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92년 지방선거에서 급부상한 환경주의자 정당과의 연대를 꾀하고 있다. 그렇게 해도 과반수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좌파인 사회당의 대통령이 우파 야당에서 총리를 맞는 「동거」가 불가피하다.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전총리)이 이끄는 공화국연합과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대통령의 프랑스민주연합등 우파 두 야당은 총선에서 연합전선을 펼 것이며 사회당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두 우파 야당의 당수는 19 95년으로 연임 14년의 임기가 끝나는 미테랑대통령의 조기퇴진을 요구하면서 다음 대통령자리를 노리고 있다.따라서 미테랑대통령이 조기퇴진하든 어떻든 총선이 끝나자마자 다음 대통령선거에 대비하여 우파 단일후보 통합작업이 활발히 전개될 것이기도 하다. 미국과 유럽공동체 사이에 맺어진 농산물 협상안에 대해서는 총선때까지 미뤄보다가 결국 양보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그렇게되면 프랑스농민들의 격심한 반발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또한 예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프랑스는 유럽 통합 노력의 중심적 역할을 계속 수행하게될 것이다.그밖의 대외정책에도 별로 수정이 없을 것이며 한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고속전철 건설에 프랑스의 테제베(고속전철)가 채택된다면 두 나라 관계는 기술교류와 통상 부문에서 매우 긴밀해질 것임에 틀림없다. ◎모스크바/보혁대결속 아태국과 협력 강화/이기동특파원 러시아국민들도 우리같이 섣달 그믐날 밤은 잠을 자지 않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다.자정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영하 20도 안팎의 강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덮인 아파트단지 빈터나 시내공원등지로 몰려나가 새해소망을 이야기하며 서로 덕담을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러시아국민들에게 있어 93년 새해는 그렇게 희망찬 설계나 설레임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모든 게 너무 급변하고 불안정해 자기들이 어디를 향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또 한해를 맞는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이런 일반의 분위기와 관계없이 정부차원에서는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위한 굵직한 개혁작업들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옐친정부로서는 보수파와의 일대 격전을 치르는 어려움 속에서도 가격자유화,토지 및 국유기업사유화,군수공장의 민수전환을 위한 중장기 계획들을 보다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에 틀림없다.이와함께 92년 그 절정을 이루었던 인플레·생산하락·분배구조의 혼란등도 어느 정도 진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보혁대결의 어려움과 함께 남부 코카서스 지방을 비롯,중앙아시아 등지에서 계속되고 있는 공화국간·민족간의 분쟁들도 평화의 전기를 쉽게 찾기 힘들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다. 대외적으로는 당장 경제원조가 걸려있는 미국·유럽등 서방국가들과의 관계증진과 함께 한국·중국·일본등 아태지역국들과의 보다 실질적인 협조관계 강화도 적극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극동지역의 개발계획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한국·일본등의 이 지역진출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논의될 전망이다. 이런 여러 계획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국내정치의 안정이 필수적이다.그러나 국민들 사이에 팽배한 정치불신및 무관심과 이에 따른 사회전반의 무기력 증세를 치유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한 새해의 과제라는 것이 일반론이다. ◎베를린/유럽통합 부진·경제침체로 고민/유세진특파원 유럽인들에게 있어 93년은 희망의 해여야 했다.그러나 새해를 여는 콜 독일총리의 가슴속은 그리 밝지 못하다.기대했던 유럽통합은 부진하고 독일경제가 침체의 늪속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통일의 부담은 예상보다 훨씬커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독일경제로서도 93년까지 그 부담을 이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됐다.이 때문에 새해를 맞는 독일전체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세계가 새로운 경제전쟁 시기에 돌입했음을 증명하듯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미국간에 무역마찰의 파고가 높아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뚜렷한 블록화추세를 보이는 세계경제동향에 비춰볼때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유럽통합을 빨리 제 궤도에 올려놓는게 유럽으로선 시급한 과제다. 독일은 빠른 유럽통합의 실현을 위해 2단계 유럽통합을 보다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이를 위해선 프랑스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독일과 프랑스가 손을 잡아 클린턴의 새 미국에 대항하는 유럽의 주도세력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그러나 오는 3월 프랑스총선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를 지켜봐야 분명한 것을 알수 있다. 동구난민들에 대한 반발로 유럽각국이 극우주의 확산등 여러 사회문제에 직면한데서 알수 있듯이 유럽의 안정을 위해선 먼저 동구가 안정돼야 한다.그러나 동구의 어려움역시 93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경제부진이 가져온 자국이익우선주의로 서구로부터의 지원이 기대에 못미칠게 확실시되기 때문이다.시장주의경제를 자력으로 얼마나 접착시키느냐가 동구각국이 서구진영에 접근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각국간 이해관계의 상충으로 유럽통합 또한 목표보다 상당히 지연될 전망이다.몇몇나라들이 배제된 소규모 통합이 먼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93년은 유럽에 있어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힘든 협상의 한해가 될 전망이다.
  • 가야 철제유물 대량 출토/김해/대형철창·환두대도 등 1백40점

    경남 김해군 주촌면 양동리 가야고분(AD2세기말∼2세기초)에서 우리나라 출토품가운데 가장 큰 철창과 가장 오래된 둥근고리큰칼(환두대도)등 철제유물을 비롯 가야의 북방교류사실을 새롭게 밝히는 청동솥과 장신구등의 각종 유물이 대량발굴됐다. 이들 유물은 부산 동의대박물관(관장 임효택교수)팀이 28일 양동리고분군의 제235호 고분인 흙구덩널무덤(토광목곽분·길이 7백60㎝·너비 3백90㎝)발굴과정에 출토한 것으로 이번에 모두 1백40여점의 각종 유물이 수습되었다.이가운데 쇠자루가 붙은 대형 쇠투겁창(철모)은 길이가 2백27㎝로 우리나라 고대유적 발굴사상 가장 큰것으로 밝혀졌으며,둥근고리큰칼(1백20㎝)도 가야 최대유물이자 최고유물로 가려졌다. 특히 둥근큰고리칼은 지금까지 동검으로 상징되던 피장자의 신분적 상징물이 둥근큰고리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또 이 둥근큰고리칼은 한·일 두나라 출토품가운데서도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되어 피장자는 가야지역 지배자급으로 추정됐다. 이밖에 수정제 굽은옥(곡옥)이 대량 출토되었다.이는 종래의 유리제 둥근옥(환옥),대롱옥(관옥)중심에서 북방계 영향을 받아 취향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출토품 청동기인 구리솥(동복)역시 지금까지의 출토품가운데 가장 클뿐아니라 북방계 영향을 받은 유물로 평가되었다. 그리고 이번 발굴에서는 널방(묘실)을 불태우는 특수 장례흔적을 발견하는 동시에 30여점의 판장철부를 발견함으로써 지신에게 묘지대금을 쇠붙이로 지불하는 풍습이 존재했음을 확인했다.
  • TV3사,연말·연시 시청자 확보 “비상”

    ◎특집 다큐멘터리 경쟁 뜨겁다/심혈기울인 야심작 잇따라 방영/KBS­1/멸종위기에 처한 원앙의 일생 추적/MBC/국내 불법체류 외국인문제 파헤쳐/SBS/몽골 심층취재… 우리문화 원형 탐구 KBS·MBC·SBS등 방송3사의 특집다큐멘터리 경쟁이 뜨겁다. 연말연시 시청자 확보의 「비상령」이 떨어진 가운데 이들 TV3사가 새로 선보일 다큐멘터리 프로는 KBS­1TV 「멸종위기에 처한 원앙」(1월1·2일 하오8시),MBC­TV 「불법체류자」(1·2부 28·29일 하오 10시55분,3부 30일 하오11시20분),SBS­TV 「유목민의 땅­몽골을 가다」(26·27일 하오10시55분)등 모두 3편. 이중 KBS­1TV의 「멸종위기에 처한 원앙」은 KBS가 장기계획의 일환으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본격자연다큐멘터리.제1편 「19 92년 7월생 원앙」에서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와 천적의 멸실등으로 점차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는 원앙의 일생을 추적,아직 밝혀지지 않은 생태학적 특성을 규명하고 원앙의 생태와 민간속설과의 관계도 알아본다.또 원앙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조성을 위해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를 모색해본다.제2편 「잃어버린 둥지」에서는 환경변화로 제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새들의 보금자리를 중심으로 새 환경에 적응해가는 독특한 생존방식을 집중 소개한다.특히 블록담속에 둥지를 튼 박새,버스의 엔진룸에서 포란중인 딱새,가정집 서재의 형광등에 집을 지은 제비등의 기형적 생태와 원인등을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중점 조명한다. KBS제작팀은 민감한 원앙의 생태를 영상에 담기 위해 지난 5개월 동안 특수장비를 총동원,광릉 숲 홍천 양수리등지에서 현지촬영,다큐의 사실감을 높였다. MBC­TV 창사특집 3부작 「불법체류자」는 현재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불법체류 외국인의 문제를 심층 추적,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대처방안을 모색해보는 기획프로.제1부 「후세인과 아키노」에서는 「코리아에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흘러들어온 동남아 출신의 불법체류자들에게 한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또 제2부 「연변 아줌마의 우리 중국 우리 한국」에서는국내 친척들의 초청을 받아 가족단위로 입국,잡역부나 단순기능공 또는 식당에서 일하는 중국교포들의 실상을 알아보며 제3부 「코리안 드림」에서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조명해봄으로써 그들에 대한 정치 사회 문화적 대응방안을 찾아본다. 한편 SBS­TV가 마련한 「유목민의 땅­몽골을 가다」는 우리 방송사상 처음으로 몽골인의 참모습을 문화인류사적으로 추적한 다큐2부작.이 프로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몽골문화의 유적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동몽골지역을 집중 취재,한국문화의 원형을 밝히겠다는 야심작이다. 제1부 「할힝골 대초원의 수수께끼」에서는 고구려의 국경지역을 표시했던 조형물로 알려진 훈촐로(돌하루방)가 서있는 할힝골 대평원을 직접 가보며 고구려 초기의 무덤형태인 적석총군도 보여준다.또 고구려의 전설이 깊이 잠들어 있는 할힝골 이목민의 가정을 방문,3대가 함께 모여사는 그들의 생활풍습과 유목민의 특질등을 살펴본다.제2부 「울란바토르에 부는 바람」에서는 구소련의 붕괴와 몽골의 민주화를 거쳐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울란바토르시의 변모된 모습을 전해준다.그밖에 징기스칸이 칼을 갈고 10만대군을 숨겨놓은채 후일을 도모했다는 강가 호수와 몽골의 영산 신림복드도 카메라에 담아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 국립민속박물관/민족긍지 서린 서민문화메카로(국정탐방)

    ◎내년 2월 새 전시장 개관… 대대적 위상변화 모색/어떻게 달라지나/전래의 생활사 연구·자료기능 확충/보여주는 곳에서 체험적 공간으로 보통사람들의 문화 산실을 표방하는 국립민속박물관이 보통이상의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새로운 보금자리로의 이전 개관이 내년 2위로 바짝 다가오는 가운데 최근에는 직제개편에 따라 중앙박물관에서 분리,독립했다.바야흐로 명실상부하게 우리나라를 대표할수 있는 국제수준의 민속박물관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새로운 역사의 장을 펼치는 자리는 경복궁 동쪽 옛 국립중앙박물관 건물.모두 1백10억원을 들여 추진중인 건물 내부개조공사의 공정은 현재 1백% 가까이 이루어져 마무리 손질만을 남겨 놓고있다.옛청사에 보관되어있던 유물은 9월28일부터 신청사로 옮기기 시작해 지난달 24일에는 민속박물관답게 터주신에게 무사히 이사를 끝낸것을 감사하는 고사까지 지냈다. ○최근 직제도 개편 경복궁안 한쪽에 그것도 일제가 지어놓은 낡은 옛청사에서 위풍이 당당한 새청사로 옮긴 것이 외형상의 변화였다면 지난 10월29일 단행된 직제개편에 따라 문화부직속기관으로의 독립은 내용적인 변화였다고 할수있다. ○정신사 중심으로 직제개편에 따라 관장은 4급상당의 학예연구관에서 3급상당의 학예연구관으로 격상됐으며 조직도 관리과·전시과의 2개과에서 관리과·전시운영과·민속연구과등 3개과로 확대 개편됐다.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원이 25명에서 13명의 학예직을 포함한 47명으로 늘어남으로써 연구및 사회교육기능의 확대가 가능해진 것도 내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이종철관장은 『이제 민속박물관의 틀이 갖추어진 만큼 심부름의식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긴 장정을 시작할 것』이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민속박물관의 변신에 대한 시각은 대체로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첫번째는 지금의 변화가 오래뒤에야 제대로 평가받게될 보이지않는 커다란 치적이라고 반기는 쪽이다.그동안의 박물관정책이 고고미술박물관에만 치우쳤던데 비해 민속박물관의 이같은 위상변화는 물질사중심의 정책에서 정신사쪽으로 옮겨가는 증거로 받아 들여질수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민속박물관만이 가질수있는 전문성과 독창성이 발휘되어 비로소 정상적인 역할수행을 기대할수있는 조직적 정책적 기반이 완성됐다는 점도 높이 평가됐다.두번째는 이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민속박물관의 기능이 아직도 크게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시각이다.오늘날 정치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기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의 하나가 민속박물관이 활발히 기능을 수행하는 것임을 정부나 국민 모두가 아직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다소 불만스런 입장이다. 그러나 얼핏 편차가 큰 것처럼보이는 이 두 시각에서도 「민속박물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공통분모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이처럼 새 민속박물관이 수행할 역할에 대해서 누구나 큰 기대를 걸고있다. 이에따라 새 민속박물관은 민속에 대한 의미부터 국민들의 마음속에 새롭게 자리잡게 만든다는 것을 당면목표로 삼았다.역사가 대개 왕후장상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 역사의 행간에 민중의 슬기와근면 장엄함이 숨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찾는 것이 민속학이고 민속박물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새민속박물관을 고리타분한 고대문화의 창고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문화 생산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위해 새민속박물관은 유형적인 삶의 문화와 함께 정신적인 풍속을 지켜주는 산실로 가꾸기로 했다.이를테면 농경문화의 전시를 통해 「쌀이 생산되기까지는 여든여덟번 손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되면 「쌀이란 도저히 훔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울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민족대이동의 설날등 형태가 없는 체험적 문화적 공간까지 포용하는 방안까지 마련해 놓았다. ○미풍양속 등 발굴 이처럼 새민속박물관은 전시기능외에 연구와 자료관으로서의 역할이 크게 강화된다.이에따라 근·현대생활사를 체계적 종합적으로 조사 수집해 전산기록화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또 전통적 미풍양속을 계속적으로 발굴,재현하고 기록화해 영구보존할 방침이다. 이렇게 모아진 생활문화및 문화재에 관한 자료는 대학과 연구소 일반국민을위해 무한봉사 제공함으로써 국립민속박물관이 민족생활문화에 관한한 명실상부한 중심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 약사 ▲1946년 남산 왜성대자리에 국립민족박물관 개관. ▲1950년 전쟁으로 폐관. ▲1966년 경복궁내 수정전 자리에서 한국민속관으로 출범. ▲1973년 구민속박물관 건물로 이전. ▲1975년 한국민속박물관으로 확장 개관. ▲1979년 국민민속박물관으로 개칭,문화재 관리국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소속변경. ▲1992년5월28일신청사로사무실이전. ▲1992년10월2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문화부 직속기관으로 독립. ▲1993년2월 이전개관(예정) ◎무엇을 보여주나/선사∼조선시대 서민삶의 모습 재현/서당·회갑연·민속신앙 등 모형 전시/옥외엔 장승·귀틀집·물레방아 설치 문화부산하의 새국립민속박물관은 전시공간 및 연구인력이 늘어난 만큼 전시내용도 크게 확충된다.먼저 민속박물관은 구관의 2천9백60평에 비해 크게 늘어난 1만2천8백50평의 부지를 확보함에 따라 불가능하던 대규모 야외기획전시가 가능해졌다.옥내전시공간은 모두 2천2백24평으로 구관의 6백26평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어났다.옥내전시공간은 다시 주전시공간과 보조전시공간으로 나뉜다.주전시공간은 3관 15실의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가 가능한 특별전시실로 구분시켰다. 보조전시공간에는 국제민속전시실과 영상실을 겸한 강당,민속사랑방등이 포함됐다. 이처럼 전시공간이 확장됨에 따라 전시유물도 2천5백11점에서 4천3백23점으로 크게 늘어나게 된다. 민속박물관은 새 전시관을 ▲진실로 강한 민족문화의 환상적 지평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축적된 공간 구성 ▲삶의 현장이 살아 움직이는 마당으로 만듣다는 기본방향을 설정했다.이에따라 기존의 정적 폐쇄적 전시에서 탈피해 체험적 전시가 될수있도록 디오라마 파노라마 입체음향등 특수전시기법을 적극활용해 역동적 입체적 통시적인 전시가 되도록 했다. 이런 원칙아래 전시장은 한국문화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한민족생활사 ▲생활문물과 생산민속 ▲생애의례의 3영역으로 나뉘어 조명된다. 한민족생활사를 담은 전시1관은 선사시대에서부터조선시대까지의 생활사 측면을 역사적으로 다루도록 배려했다. 이 전시관에는 단군신화및 삼국건국신화와 함께 최근 발주된 부안격포제사유적을 재현하는등 한민족의 정신세계를 추적해보는데 중점을 두기도 했다.여기에는 또 가야의 기마인물과 야철공방이 모형으로 재현되고 발해유물이 전시되는 등 민족자존의 회복문제가 비중있게 다루어진다.전시2관은 생산민속과 생활문물로 꾸며진다.이곳에는 우리의 자연환경과 농경문화 생업 세시풍속 수공업 그리고 전통사회의 의·식·주생활을 선보일 계획이다. 생애의례를 주제로한 전시3관은 출생에서부터 상·제례 민간신앙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일생을 체계적으로 전시한다.이에따라 선바위에 아들을 비는 풍습에서부터 출산 의례 돌상 서당 향교 관례 및 혼례 회갑연 상청과 상복 제사와 고사 사당등을 모형으로 꾸민다.또 각 통과의례 사이사이에 아이들의 놀이모습과 과거시험장면 주막 놀이기구 문방구와 책 선유락 한약방 굿청등도 역시 모형으로 만들어져 전시된다. 이밖에 박물관 옥외에는 물레방아와 귀틀집 장승등으로 살아 숨쉬는 서민문화의 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게 될 개관기념전시는 아직 내용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다.박물관측은 현재 「잊혀져 가는 과거를 조명해주는 거울로서의 전시」계획을 구상중이다.또 「과거뿐 아니라 미래를 투영해 줄수있는 내용으로 가능하면 보고 느끼고 직접 만져볼수 있는 전시」라는 원칙을 세워놓고 4∼5개의 시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 것 알기」 교육현장 만들터”/“문화마당 넓히는 계기됐으면”/이수정 문화부장관(인터뷰) 이수정문화부장관은 내년 2월로 다가온 국립민속박물관의 이전 개관을 앞두고 요즘 1주일에 한 두번씩은 꼭 현장을 찾아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이장관은 이 작업이 『침체된 민속박물관의 기능을 정상화한다는 의미와 함께 문화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대로 된 문화공간」확보작업이 성과를 거둔 것이어서 더욱 뜻깊다』고 말한다. 『지금과 같이 높아진 국민들의 문화욕구는 경제 형편이 크게 나아지면서 현실화된 것입니다.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문화예술의 마당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 할 수 있습니다.민속박물관 이전은 그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장관은 그동안 문화공간 자체가 부족했었던데다 국가문화시설은 대부분 위치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남산의 국립극장이나 과천의 현대미술관의 경우 시민들이 쉽게 찾아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더 이상의 기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또 건립이 시급한 자연사박물관은 똑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되겠다는 제 소신이기도 합니다.미군이 떠날 용산기지는 이같은 기간문화시설이 들어설 서울의 마지막 공간인셈입니다.다행히 각 당의 대통령후보들이 모두 이러한 취지에 뜻을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반갑습니다』 이장관은 현재 또 하나의 「제대로 된 문화공간」을 확보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그것은 내년중 완공될 덕수궁 뒤편의 연극 전용극장이다. 『당초 이 땅은 영화진흥공사의 사옥 부지였습니다.그러나 극장을 이곳에 세우고 사옥은 홍릉에 짓도록 했습니다.문화공간은 시민에게 가까이 있어야하지만 사무실은 조금 멀어도 되지 않느냐고 설득했지요』 이장관은 이제 부족한대로 기본적인 문화시설은 어느정도 확보 되고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민속박물관의 이전 개관과 함께 대구와 부여박물관을 신축중이고 김해박물관이 가야유물 중심으로 탈바꿈한다.또 제주박물관도 신축중에 있다. 『그러나 어렵게 세워진 구민회관이나 문예회관이 아직은 문화공간이 아닌 예식장이나 안보교육장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그럼에도 폭발적으로 증가한 음악인과 극단등은 무대가 없어 아우성입니다.이제는 새롭게 확충된 문화시설을 국민들이 직접 문화를 접할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데도 신경을 써야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장관은 이를 위해 『국립민속박물관도 현재의 단순한 전시기능에서 연구기능위주로 탈바꿈시켜 국민교육을 위한 중추적인 국가기관으로 키워나가겠다』는 포부를 털어 놓았다.
  • 연하장 줄이기,자원절약이다(사설)

    연하장의 계절이다.크리스마스 카드와 함께 한두장씩 날아들기 시작했다.그래도 예년에 비하면 아직은 좀 덜한 편이다.아마도 선거가 겹쳐 미처 배달의 손이 거기 못미치기 때문인 것 같다.이 기회에 연하장 풍속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계절만 되면 카드와 연하장이 날마다 수북히 배달되어 쌓인다.거의는 뜯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넣게되는 것들이다.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과 기관에서 날아들어 열어볼 흥미가 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인쇄된 주소와 이름으로 성의도 정성도 없이 보내온 것이 역력해서 그렇게 버려도 조금도 가책을 받지 않는다. 이렇게,주고받음의 감흥도 예의도 탈색된 종이를 더 이상 주고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들게끔 되어버린 것이 연하장문화다. 성과가 없는 것에 그치고 말면 그래도 괜찮다.고급종이로 화려하게 인쇄한 내용물을,역시 고급 봉투에 넣어서 아무런 기능도 시키지 않은채 쓰레기통에 넣는 것으로 낭비되는 자원이 얼마인가.그뿐이 아니다.그것들이 만드는 쓰레기는 또 얼마나막대한가.이름이 새겨진 것을 그냥 버리기가 안돼서 분쇄기에 넣어 버리는 사람도 많다.이중삼중의 자원 낭비와 쓰레기 생산에만 기여한다. 이 「고급포장된 예비쓰레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우편체계는 또 얼마나 혼란을 빚는가.가뜩이나 선거유인물까지 겹쳐서 산더미 같은 우편물에 치여 우편행정은 제구실을 다하기가 어렵다.물론 일년내내 만나지 못했던 친구나 스승,어른이며 이웃들에게 연하장 한장이라도 보내서 서로의 안부를 간결하게 소통하는 본래의 뜻이 중요하기는 하다.그러나 지금 오가고 있는 카드나 연하장은 그런 「원래의 좋은 뜻」에 제대로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연하장 풍습을 바꾸는 것이 당연하다.생각해보면 연하장이나 카드는 사회가 매우 유장하던 시대의 산물이다.퍼스널컴퓨터나 팩시밀리 같은 마술적인 첨단 소통수단이 태어난 현대에는 다소 맞지않는 고전적 산물이다.현대적 기능의 신년인사 교류수단을 개발하고 시간과 자원이 너무 낭비되는 연하장문화는 이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연하장 안보내기 운동』을 제창한다.
  • 중·러시아 교포언론인,창간 47돌 본사방문/좌담

    ◎“서울신문 통해 고국소식 들었으면”/교류확대 통한 점진적 통일 바람직/조국발전상 감명… 판문점철조망에 눈물 “왈칵”/한민족거주지·조국기업 연결 무역공동체 필요/언론서 남북동질성회복 캠페인을 중국및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각공화국과의 수교를 계기로 이들 국가와 경제·문화등 각부문의 협력과 교류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동포들에 대한 관심이 어느때보다 크게 높아지고 있다.지금은 우리말과 풍습등 한민주으로서의 전통과 민족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교포 스스로의 노력과 우리정부의 아낌없는 지원도 요구되고 있는 때라 하겠다.이같은 상황에서 교포사회에서 우리말로 발행되는 신문과 우리말 방송은 타국땅에서 이민족들과 섞여 경쟁속에 살아가는 동포들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지난 1일 중국과 사할린 등지의 동포언론인 23명이 한국프레스센터초청으로 모국을 방문,20일동안 전국 주요산업체와 제주도 경주등을 돌아보고 조국의 발전상을 직접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다.서울신문사는 창간 47주년을맞아 이들 가운데 우리교포들이 많이 사는 중국 흑룡강성과 길림성,구소련의 사할린,카자흐스탄 알마아타등지 교포언론사 간부 5명을 초청,우리 산업계를 돌아본 소감과 한국과의 경제협력등에 과해 의견을 들어보는 좌담회를 마련했다.서울신문사는 앞으로 이들 교포언론사와 유대를 강화해서 상호 정보및 인적교류를 추진하고 현지교포를 상대로 신문보급망도 확충해 나갈 계획이다. □참석자 김충일 흑룡강 신문사 부사장 장정일 연변일보사 부총편집 김형직 중국 중앙방송국 주임기자겸 북경대학조선문화연구소 교수 겸 국제고려학회문화예술부회 위원장 양원식 알마아타 고려일보사 부주필 박해도 사할린 새고려신문사 정치부장 ◇김충일부사장=다른 분들은 모국에 두번째지만 저와 연변일보 장부총편집은 처음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 와서 보름동안 대전 엑스포박람회장과 울산 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수원 삼성전자등 여러곳을 둘러 보았습니다.중국에서도 모국 신문등을 통해 조국의 발전상을 알고 있었으나 실제 보도 듣고 나니까 감회가 새롭고 같은 겨레로서 무척 흡족한 마음입니다.서울도 발전상이 눈부셨지만 다른 도시와 농촌도 꼭 같이 잘 살아 기뻤습니다. ◇장정일부총편집=모국이 『아시아의 용으로 부상한것을 기쁘게 생각했었는데 산업시찰을 하며 그 동기가 무엇인지 짚어 보았습니다.그 하나는 모국의 경제체제가 사회주의국가와는 달리 시장경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열심히 일한 만큼 대가를 얻는 것이지요.다른 나라는 민족적 우수성이 있는데다 교육열이 높아서 과학기술을 그만큼 빨리 흡수한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김형직주임기자=무엇보다 한국의 경제발전전략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수출주도형의 전략이 그것이지요.다음으로는 「우리도 하면 된다」는 신념입니다.교육열이라는 기본 바탕위에 그런 신념이 용기를 북돋워 준것이 아니겠습니까.그런 배경에서 세계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60·70년대에 한국경제가 기회를 잘 포착한 것이지요.또 지정학적으로 열강들에 의해 쟁탈의 초점이 되었던 냉전시기에 주변세력들의 압박을 이겨내고 우리 국민들이 더 많은땀을 흘리며 경제발전을 이룩한점도 높이 사야할 것 같으며 이번에 그런 점을 더욱 실감했습니다. ◇장부총편집=중국에서는 14차 당대회를 계기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로 진입했습니다.한국의 시장경제를 보며 느낀 바는 중국도 빨리 체제를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좁은 땅과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이번 산업시찰에서 본 모국경제의 발전된 모습들,로봇을 이용한 산업기술과 수출을 기다리고 있는 엄청난 승용차와 트럭들에서 시장경제는 누구나 받아들여야할 경제발전의 길임을 느꼈습니다.○「88」후 조국 더욱 관심 ◇양원식부주필=카자흐스탄대통령이 얼마전 모스크바방송을 통해 연설을 하면서 경제발전의 모범국가로 한국을 예로 들었습니다.한국에는 자원도 크게 부족한데도 30년만에 대단한 발전을 이루었는데 우리도 본받아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그 방송을 듣고 한민주으로 대단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습니다.이번에 포항제철과 현대자동차등 대규모공장을 돌아보고 다시한번 실감했습니다. 더 놀란것은 기계화된 시설뿐만 아니라 깨끗하고 질서정연한 공장주변모습이었습니다.우리민족은 어느민족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으며 「나도 한민족의 후예」라는 자긍심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박해도정치부장=저는 지난해 2월부터 두달반동안 모 신문사초청으로 한국에 온 적이 있었고 이번이 두번째입니다.그때도 삼성전자와 기아자동차회사에 가보았었지만 이번에 더욱 폭넓게 발전상을 경험했습니다.저는 언론인으로서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이미 많이 알고 있었지만 88서울올림픽이후에 사할린교포들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많이 이해를 하게됐습니다. 섬이 도단위로 돼있고 경치도 빼어나 놀랐습니다. 사할린에는 3만7천명의 교포가 살고 있는데 내년에 대한항공(KAL)기 피격 10주년을 맞아 추락장소 근처에 추모비를 건립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장부총편집=한 중수교이후에 한국과 중국과의 교류와 협력이 크게 기대되고 있습니다.아직 교포사회에 한국기업이 본격 진출되고 있지는 않지만 동포들은 같은 민족으로서 다른나라보다 더 큰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사실 비행장도 없고 교통도 불편하지만 장기적으로 연변지역은 두만강삼각주지역에 위치해 이점이 많습니다.이웃 훈춘시가 중국의 4대 개방시의 하나로 지정되고 개발계획도 잇따라 나오고 있어 한국정부도 연변교포사회와의 기술협조와 자본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연길시에는 4개 경제개발특구가 정해져 있는데 그중 연길시목축장에 한국기업과 중국측이 중국돈 1억원을(원화1백30억원)을 합작 투자할 계획이 있기는 합니다.연변지역은 인건비가 무척 싼 것등 장점이 많아 이 기회에 한국정부의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립니다.해외교포의 위상이 높아지면 한국의 국력도 신장되고 남북통일로 앞당겨지지 않겠습니까. ○시장경제 전환 필요 ◇김부사장=흑룡강성교포들도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개방을 크게 환영하고 있습니다.그 개혁과 개방의 방법은 자본주의식 경영방식과 기술을 들여오는 것입다.이미 외국기업이 많이진출해 있습니다.외국과 합작투자한 기업은 5백여개 되는데 한국과 합작한 기업은 1백개정도입니다.그중에서도 50여개기업은 하얼빈에 몰려있어요.흑룡강과 송화강등 중국동북부지역의 3대 강으로 둘러싸인 3강평원 개발에 처음 진출하려한 나라는 일본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결국 발을 빼고 말았습니다.그뒤에 한국에서 여러 기업들이 합작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삼익악기로 피아노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합작투자기업들이 소형기업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70%정도가 작은 규모의 기업이며 큰 기업은 대개 산뚱(산동)반도에 들어가 있어요.앞으로 대규모 기업의 합작투자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김주임기자=한중수교후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개선되고 있습니다.특히 일본등과의 합작사업에 대해선 기술은 주지않고 알맹이만 빼가려 한다는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한국과의 합작사업에서는 기술도 배울수 있고 서로 주고 받는게 있다는 생각을 갖고있어 한국기업의 투자를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수교이전에는 실험적인 소액투자에 그치던 한국기업들도 이젠 본격적인 대규모 투자에 관심을 갖는듯 합니다.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좀더 국제적인 안목을 갖고 세계사의 흐름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중국만해도 유럽공동체(EC)의 본격출범등 세계적인 「구역선경제」(블록경제)시대에 맞서 피와 말이 통하는 민족경제란 형성에 안간힘을 쓰고있는 것입니다.이런 상황에서 우리민족도 중국의 연변과 독립국가연합(CIS)의 사할린및 카자흐스탄공화국등 한민족 집단거주지역들을 모국의 산업과 유기적으로 묶는 방안과 함께 무역공동체형성에 보다 구체적인 관심과 계획을 가져야 할때라고 생각합니다. ◇양부주필=「친정이 잘 살아야 시어머니 눈총이 덜하다」는 말이 있듯이 해외동포에게 모국은 여러의미에서 방패막이자 자기존재의 뿌리입니다.또 잘살고 단결된 해외동포들은 모국의 해외진출의 교두보이자 자산입니다.유럽전역에 미치는 강한 독일의 힘은 독일국경선밖 중북부유럽 이나라 저나라에 집단거주하고 있는 독일교포들의 영향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킬 필요는 없을것입니다.이런 의미에서 우리외교도 나라밖 동포들의 힘을 하나로 묶고 연결시킬수 있는데까지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비무장=양부주필께서도 언급하셨지만 지금 독립국가연합거주 한민족들은 동질성(Identity)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한예로 카자흐스탄내 10만 한인들중에 우리말을 쓸줄아는 사람들은 기껏 수십명에 불과합니다.물론 우리말을 들고 말할수 있는 사람들은 그보다는 조금 많다고는 하지만 모두 교포1·2세대에 국한돼있고 우리말을 할줄 아는 3세들은 전무한 실정입니다. ○기업 합작투자 희망 이대로 가다간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20년쯤뒤엔 외국어가 아닌 모국어로 우리말과 글을 할 줄아는 동포를 독립국가연합에선 한 사람도 찾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단순한 우려만은 아닐것입니다.현지에 한국어교육기관설립이나 3세교포자녀들을 대상으로한 보다 대규모의 우리말연수프로그램의 활용등 민족적인 차원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갈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보아야 할 때라고 느낌니다. ◇양부주필=모든종류의 교류가 그러하듯 오랜세월동안 절연돼 있던 모국과의 교류가 물론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것은 아닙니다.모국과 교류가 활발한 중국 연변등지에선 「남조선사람」들의 향락관광등이 문제가 된것으로 알고있지만 카자흐스탄등에서의 문제는 종교포교활동입니다.카자흐스탄공화국의 수도 알마아타에서만 한국에서 「원정」나온 개신교 교회가 15개나 됩니다.수백명의 한인들이 그곳을 나가기도 하지만 동포를 포함해 회교도가 대부분인 이곳 주민들과의 포교활동을 둘러싼 반목과 갈등은 점점 커가고 있습니다.너무 적극적이고 기독교우월주의적인 포교내용등은 자제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주임기자=교류의 부작용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모국을 다녀온 「중국내 조선족」들에겐 기쁨보다는 섭섭함이 더 강하게 남아있습니다.한마디로 이들 동포들은 모국에 가서 「인간적으로 무시당했다」고 말합니다.중국교포들로 인해 적잖은 불편이 있더라도 동포애의 따뜻한 눈으로 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교포사회에서는 한국은 선진국수준과는 차이가 큰데도 불구,너무 자만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눈길도 적지않다는 것을 이 기회에 일러드리고 싶습니다. ◇박부장=냉전붕괴이후 독립국가연합에서의 새로운 현상중 하나는 교포사회가 친남·친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물론 사할린지역만해도 북쪽의 국적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이 5백여명미만에 불과해 친북쪽 인사들이 크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교포사회에 관심을 ◇김부사장=이번 방문기간중 막상 판문점에서 철조망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전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동족상쟁과 그 오랜 적대관계,그 와중에서 우리는 모두 희생자란 생각도 들고…. 말할것도없이 통일은 우리민족의 최대 현안사업입니다.그러나 아무리 급한 사업이라도 교류확대와 동질성 강화를 통해서만 이뤄내야 합니다.또다시 동족끼리 피를 흘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김주임기자=저도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통일은 시급한 과제지만 독일의 예에서 보았듯이 그 비용과 부작용등을 생각할때 교류의 폭을 넓혀나가면서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그러하더라도 최근의 국제적인 추세를 볼때 10년내로 큰 전기가 오지않을까 하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양부주필=저도 동감입니다.쑥스러운 이야기지만 흔히 사회주의국가 국민들은 양떼에 비유됩니다.어려서부터 명령과 통제에만 익숙하고 자율적인 판단에 의한 행동은 미숙합니다.옛 동독국민들이 통일이후 자율경쟁체제에서 갖는 깊은 좌절감의 상당부분도 이것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이런 관점에서 상당한 정도이상의 교류성과와 동질감의 회복없는 상태에서의 통일은 남과 북 모두에게 힘겨운 짐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이런 측면에서 언론은 상대방의 비판에만 치우치지 말고 양측의 동질감찾기 캠페인같은 운동을 벌여나가면 어떨까 합니다. ◇김주임기자=물리적으로 세계의 지리개념은 좁아지고 있지만 민족과 지역공동체의 장벽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이런 역작용에 맞서 우리민족도 전세계에 퍼져있는 동질적인 「인적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산업및 외교정책에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내년에 출범하는 새로운 모국정부에 보다 치밀하고 적극적인 민족통합연결정책을 기대합니다. 끝으로 이번좌담회를 마련해준 서울신문에 감사드립니다.그리고 22일로 창립 47주년을 맞은 서울신문의 공익을 앞세우는 제작방향에 감명을 받은 바 많습니다. 앞으로 서울신문이 중국·구소련 각공화국등지에 살고있는 동포들에게 모국소식을 친절하고 정확하게 전해주는 전령역할을 알차게 해주길 기대합니다.
  • 농어촌의 미래 청소년이 가꾼다(사설)

    가장 어려울때 우리는 희망을 발견한다.농어촌이 피폐해지고 모두가 도시의 안락을 쫓아 떠나고 있는 때에도 그 안에서 끊임없이 살길을 개척하며 이웃에게 삶의 등불을 밝혀주려고 노력하는 젊은이들이 있어 우리로 하여금 감사하게 만든다. 서울신문이 제정한 농어촌 청소년상의 주인공들이 그들중 하나다.들인 노력에 비하면 소득도 상대적으로 도시보다 떨어지고 화려한 삶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초라한 느낌까지 지울수 없는 것이 농어촌의 삶이다.특히 젊은이들로서는 새록새록 다가오는 부박하고 들뜬 도회지문화와 그 풍습들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고달프게 일하느니보다는 적당히 즐기면서 일확천금의 기회도 흔해 보이는 그곳으로 탈출하고 싶은 충동에 끊임없이 시달릴 것이다. 그것에 휘말리지 않고 꿋꿋이 농어촌의 삶을 지켜가고 있는 그들은 4천만 모두가 고마워해야 할 국민이다.특히 우리가 그들의 공적을 보고 깨닫게 되는 것은 그들의 오늘이 결코 주먹구구식의 안일하고 낡은 방식으로는 이룩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다.어촌에서 일하는이들은 어획물의 선도관리에서 유통방식에 이르기까지 창의적인 방식을 개발하고 시설확대 및 기술교류 협동작업에 의한 효율극대화의 다양한 노력으로 오늘을 이루고 있다. 농촌은 농촌대로 기계화영농에서 판매유통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개혁하고 개발해야 한다.그런 노력을 협동정신으로 이뤄내서 동료와 이웃이 함께 난관을 타개해 나가도록 이끌고 있는 것이다.이런 젊은 인력들이 믿음직스런 것은 그들이 모두 미래의 지도자들이기 때문이다.과학적인 연구를 끊임없이 계속하고 해외정보에까지 연계하여 농촌의 살길을 탐구하고 있다.미래의 세계가 국제간에 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고 그런 가운데서 우리의 삶을 향상시켜야 하므로 영농영어도 그에 준해야 한다.그런 노력이 그들로 하여금 오늘의 수상을 맞게 한 것이다. 한사람의 농어촌 지도자가 탄생하면 주변의 농어민이 함께 어려움을 극복한다.오늘의 수상자들은 모두가 훌륭한 지도자들이다.그들의 리더십으로 해당 지역사회가 발전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그런 그들의 삶은 도시의 부박하고허망한 삶에 비하면 값지고 소중하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안다.오늘의 영광이 더욱 빛나는 결실을 이루는데 크게 이바지할 것을 확신하며 다시 한번 깊이 치하한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2)

    ◎출생비화/「1912년 4월15일」의 의문들/중학동차 임춘추는 14년생으로 회고/날짜도 음력·양력 밝히지 않은채 기술/태어난 곳도 만경대 아닌 대동군 칠골 김일성은 자기의 우상화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변경하고 날조한다. 1989년 동구의 사회주의국가들이 붕괴되고 난 이후 한국에 널리 알려진 사실 가운데 하나가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은 틀림없이 소련 연해주 하바로프스크 근교의 브야츠크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그러나 북한에서는 그가 「백두산 밀령」에서 태어났다고 선전하고 있다. ○우상화위해 변경 이로 미루어 보면 김일성 자신의 출생과 성장도 사실보다는 「우상화」위주로 변경되어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이번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나는 아버지 김형직의 맏아들로 망국 이태 후인 임자년(1912년)4월15일에 만경대에서 태어났다」고 하고 있다. 우선 김일성은 그 생일이 4월15일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음력인가 양력인가,음력을 양력으로 고친 것인가,아니면 전혀 다른 날짜인가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 북한에서 발간된 역사사전에는 김일성의 사촌동생인 김원주가 1927년 9월22일에 태어났다고 하면서 이 날짜가 음력 8월27일이라고 밝히고 있다.그런데 그보다 15세 먼저 난 김일성에 대해서는 일체 그러한 언급이 없다.이 점은 김형직이나 그의 동생 김철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그러나 봉건사회였던 조선왕조가 망한 직후 태어났다면 그것이 음력인가 양력인가 밝혀야 마땅하다.이런 점에서 그의 생일이란 날짜 자체를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 김일성이 정말로 1912년에 태어났는가 어떤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다카기(고목건부)란 일본의 원로신문기자가 있었다.그는 일본 매스컴에서 북한을 「북조선­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호칭하도록까지 한 철저한 친북한파였는데 나중에는 김일성의 어용 전기를 써주기 위해 평양에 가서 직접 취재하는 열성까지 보였다. 다카기는 김일성의 내력을 알기 위하여 당시 북한에서 부주석을 지낸 임춘추와 만난 일이 있었다.그는 1912년생이라는 임춘추로부터 은을 말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임춘추는… 육문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보았더니 나이는 그보다 두어 살 아래인데 김성주라는 학생이 있었다」 1912년 생인 임춘추가 다카기에게 김일성은 자기보다 두어살 아래라고 하였다면 그는 12년생이 아니라 14년생 정도로 된다.따라서 김일성이 1912년 생이라는 것도 상당한 의문을 남기게 되는 대목인 것이다.김일성은 사실은 1914년 생이면서 12년 생으로 행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김일성이 만경대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그냥 믿기는 힘들다. 김일성이 유일독재체제가 아직 미완성이던 1958년,북한의 역사학자 이나영은 「김일성 원수는 1912년 4월15일 평안남도 대동군 용산면 하리 칠골 빈농가에서 탄생하여 그후 고향인 만경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본명은 김성주)」라고 적었다.또 1961년에 나온 「조선근대혁명운동사」에서도 그렇게 쓰고 있다. 김일성이 태어난 해가 만약 1912년이라면 이해에 부친 김형직은 평양숭실중학교 2학년에 재학하고 있었다. 그는 만경대에서 편도 40리 길을 통학하고 있었다. 한편 김일성의 모친 강반석의 친정은 그 부친 강돈욱이 후에 장로가 될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그는 1906년 전에 살던 집을 헐고 새 집을 지었는데 현재 칠골에서 유적으로 보존되어 있는 이 집을 보면 그는 결코 빈농은 아니다.그는 또 하리교회와 창덕학교를 짓는데도 주동이 되었다. 한국의 풍습으로는 부인이 첫 아이를 낳을 때 친정에 가는 것은 보통 일이었다.부자집 친정에서 강반석이 첫번째 해산을 하더라도 그것 자체는 별로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대개 친정서 출산 그러나 김일성은 우상화를 위해서는 자기가 꼭 만경대에서 태어나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사실 자체를 왜곡한 모양이다.김일성의 이름 문제도 이번 회고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아버지는…내 이름도 나라의 기둥이 되라는 의미에서 성주라고 지어 주었다」 그러나 문헌기록을 보면 김일성은 김성주 이외에 김성주로도 김성주로도 표기되어 있다.또 김일성 자신은 그 어느 표기도 다 자신의 이름이라 하고 있다.예를 들면 김성주는 평양의 조선 혁명박물관에 걸려 있는 일제기록의 사진판에 보이며 김성주는 조선전사에 역시 사진판으로 인쇄되어 있는 것이다. 김성주가 본명이라고 추측되는 유력한 자료로는 해방직후 만경대에 직접 가서 취재한 한재덕이 남긴 글이 있다.거기에는 김일성 3형제를 김성주,김철주,김영주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①「세기와 더불어 1」14면 ②「김일성,조국에로의 길」고목건부저 1982년,일본,채류사간,26면 ③「조선민족해방투쟁사」리나영저,336면 ④평전 22·23면 ⑤「세기와 더불어 1」9면 ⑥「김일성장군개선기」74·75면
  • 「20세기문명」 종합정리/「인문」 7분야 55억 투입

    ◎서울대 내년 착수 다가오는 21세기를 맞아 지난 1세기동안의 지적·문화적 성과를 총정리하는 국내 인문사회과학 사상 최대규모의 연구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서울대 인문대(학장 소광희 철학과교수)는 29일 국내 인문학의 학문적 체계화와 연구활성화를 위한 「20세기 문명의 인문학적 연구」계획안을 교육부에 제출,이 사업에 필요한 55억여원의 연구비 지원승인을 요청했다. 서울대 인문대는 또 이 사업추진을 위해 전국 국공립및 사립대 인문학 전공교수 10명으로 「인문학연구협의회」를 빠른 시일안에 구성하기로 했다. 서울대 인문대는 내년부터 5년동안 단계적으로 이 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종교및 철학,문학및 예술,학술,과학및 기술,정치및 제도,문화및 풍습,매스컴등 7개분야에서 3백71개 과제를 선정,각 1천5백만원씩 총 55억6천5백만원의 연구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 결혼 등 관습 미시경제학적 규명/노벨경제학상 베커교수 업적

    ◎출산·교육 등 「최적행태이론」으로 설명/시카고학파… 「휴먼캐피털론」 발전시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개리 베커는 올해 62세로 미국 시카고대의 경제학과및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베커교수는 인간의 다양한 행태를 미시경제학적 분석방법을 통해 설명함으로써 경제학과 사회학을 접목,경제학자들에게 새로운 문제에 대처토록한 공로를 인정받았다.즉 그는 지난 81년 하버드대에서 출간한 자신의 저서 「가족논」에서 결혼이나 이혼,출산·자녀교육·사랑·질투등 종래의 학자들이 습관이나 비이성적인 감정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생각,사회학이나 인류학적 차원에서 접근했던 인간의 행태를 경제학의 기본명제인 「최적행태이론」을 원용해 분석해낸 장본인이다. 베커교수는 1930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포츠빌시에서 태어났으며 명문 프린스턴대를 거쳐 시카고대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또 하나의 업적으로는 노동시장의 차별화에 관한 신고전학파적인 분석을 통해 그보다 앞서 지난 7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던 슐츠의 「휴먼캐피털」(인적자본)이론을 더욱 발전시킨 점을 들수있다. 예컨대 인도의 출산율이 왜 높은가에 대해 과거에는 그 나라의 풍습이나 가치관으로만 설명했으나 그가 새롭게 펼친 이론의 핵심은 한 나라의 출산등은 자녀의 교육비나 자녀를 양육함으로써 나중에 돌아올 반대급부와 같은 경제적 비용함수 차원에서 설명될수 있다는 것이다(장세진인하대교수). 한은의 금융경제연구소 이광주박사(경제학)는 『베커교수는 조디·루카스 교수를 중심으로 한 시카고학파의 일원으로 순수경제이론들을 범죄·성차별·이익 집단간의 경쟁등 광범위한 사회현상에 응용해 광의의 정치경제학을 포괄적으로 다룬 학자』라고 소개했다. 주요 저서로는 「차별의 경제학」(시카고대·57년),「휴먼 캐피털」(콜럼비아대·64년),「경제이론」(71년),「인간행태의 경제학적 접근」(시카고대·76년),「가족논」(하버드대·81년)등이 있다. 시카고대는 지난해 로널드 코즈교수에 이어 2년연속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영예를 안았다.
  • 「범죄와의 전쟁」은 쉴 수 없다(사설)

    지난 90년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범죄줄이기를 노력해 왔다.생겨난 범죄를 단시일에 뿌리뽑기는 어렵다.그런 가운데서도 그 2년사이에 유흥업소가 압도적으로 줄었다는 사실은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그것은 범죄발생의 원인을 결정적으로 줄게 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내무부가 집계한 바에 의하면 한 사람당 술소비량이 월평균 25%가량이 줄었고 심야영업이나 변태영업을 하다가 적발된 유흥업소수는 21만8천개나 되는데 그중 1만1천개가 넘는 업소는 아예 폐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이런 영향으로 유흥업소 종사자의 수도 줄고 이용하는 고객도 줄어서 고객수는 90년에 비하면 48%가량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특히 음주풍습에 나타난 변화가 흥미있다.접객업소에서의 술소비량과 가정에서의 술소비량의 비율이 90년에만 해도 51%대 49%이던 것이 92년에 이르러서는 42% 대 58%로 역전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술집에서 흥청거리는 것을 줄이고 가정에 돌아가 즐기는 풍습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서서히 변화가 이뤄지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흥업소나 음주문화는 범죄의 발생·발전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다.오늘날의 우리 사회의 부끄럽고 고질적인 범죄인 인신매매범의 창궐도 유흥업소의 행태와 깊은 관계가 있다.퇴폐적인 술집들이 인신매매의 일차적인 수요처이고 음주문화의 퇴폐성이 그 범죄의 온상이다.범죄집단이 기생하는 곳은 퇴폐의 소굴이고 퇴폐한 문화가 범죄를 유발한다.서로가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는 것이 범죄와 퇴폐임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것도 없다. 정부가 비상한 각오로 벌여온 범죄와의 전쟁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는 했다지만 아직 충분한 것은 아니다.오히려 시민들의 불안은 가중되는 느낌이고 범죄의 질은 날로 지능화하거나 악질화하는 느낌이다.퇴폐업소만 해도 대상연령이 낮아지면서 온갖 새로운 형태가 개발되어 청소년층을 심각하게 침식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회를 맑고 살기좋은 곳으로 정화해가는 일은 정부가 지속적인 노력으로 이뤄가야할 일이지만 근원적으로는 사회가 스스로 자기 정화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효과를 거둘수 없다.나이어린 접대부를 공급하기 위해서 인신매매가 끊이지 않는 것은 그런 곳을 찾는 술꾼들이 공범한다는 뜻과 같다.그런 뜻에서 퇴폐는 만악의 근원이다.그것을 이용함으로써 스스로 타락하게 되고 그런 수요를 창출하여 많은 젊은 인력을 퇴폐로 부패하게 만들며 사회를 황폐하게 하여 인성을 집단으로 오염시킨다.건강하게 산업전선에 투입할 인력을 퇴폐산업에 물들게 하여 못쓰게 만드는 것도 퇴폐문화의 큰 폐해다. 무엇보다도 정당하게 일하며 사는 삶의 가치를 무의미하게 여기는 풍조를 만연시키는 것이 가장 나쁜 영향이다.전염병보다도 번식력이 빠르고 무서운 속도로 사회를 파괴한다.그러므로 퇴폐유흥업소는 훨씬 더 줄어들지 않으면 안된다.그러려면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우리에게는 아직도 너무 많은 퇴폐문화를 줄이기 위해서 전쟁에 버금가는 자기 정화의 노력을 우리 다함께 하지 않으면 안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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