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풍습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 화산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 태안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 영끌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 터널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786
  • 현대판 왕조(외언내언)

    왕조시대에 왕이나 왕후가 승하하면 국상이라 하여 온국민이 소복을 하고 백립을 쓰며 방방곡곡에 빈소를 차리고 곡반을 편성해서 곡을 하게 했다.19 19년 고종이 승하했을 때는 시민들이 철시하고 대한문앞에서 통곡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임금이 하늘이요,어버이이던 왕조시대의 풍습이었다. 김일성이 죽은 뒤 평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애도의 모습은 우리의 상식을 초월한 「광기」그자체인 것 같다.만수대 언덕위의 김일성동상 앞에는 수만명의 주민들이 몰려와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며 오열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심지어 머리를 땅바닥에 찧어대기도 하며 실신하는 사람까지 있다 한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주민들이 비탄에 빠져 2∼3개월동안 우울증세를 보이다가 집단히스테리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반세기에 걸친 1인독재와 광적인 우상화가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결과일 것이다.정신분석학에서는 「독재자에 대한 우상화는 성인의 이성을 마비시켜 유아의 수준에 머무르게 한다」고 주장한다.북한주민들에게 「살아 있는 신」이었던 김일성의 죽음은 「모든 것의 상실」을 의미할지도 모른다.북한주민들의 통곡과 오열은 49년 동안 폐쇄사회에서 이데올로기에 의해 순치된 가엾은 인간상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북한전역에 세워진 김일성의 동상은 2천여개.그 동상마다 기묘한 애도행렬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조선시대의 국상때보다 훨씬 요란한 애도장면을 보면서 북한은 역시 「김일성왕조」였음을 실감하게 된다.그는 왕이 누린 것보다 훨씬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오지 않았는가.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시킨 것도 그렇다.20세기 어느 국가,어느 체제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세자를 책봉하고 부왕이 죽으면 세자가 등극하는 왕조시대와 다를 바가 없다.김일성의 죽음은 김일성왕조의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 서점가/북한관련 책 불티/「북한인명사전」 폭발적 인기

    ◎“김일성 사망후 남북관계 어떻게 변할까” 독자 궁금증 반영/귀순자 수기·방문자가 본 생활상도 많이 팔려 김일성 북한주석의 사망으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또 남북 통일은 언제쯤 가능할 것인다. 「김주석 사망」소식이 전해진 9일 하오부터 종로와 광화문·을지로 등 대형 서점가에는 북한관련 서적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가장 먼저 관심이 모아진 책은 「북한인명사전」(서울신문사간).이 책에는 북한의 전·현직 요인은 물론 신진 엘리트와 당성이 투철한 청년·학생에 이르기까지 1만5천명의 인적사항이 올 봄의 경력까지 사진과 함께 망라되어 있다.이에따라 김일성 사후 북한의 권력구조를 점쳐볼 수 있는 장례위원 명단이 발표되자마자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냐」며 정부 관련 부처와 대기업 대학과 연구소는 물론 실향민에 이르기까지 서점가에는 이 책을 좀 구할 수 있겠느냐는 문의가 잇따랐다. 그 다음 독자들의 관심은 주로 ▲북한 체제의 실상과 통일전망등을 밝힌 사회과학서 ▲북한주민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귀순자및 북한방문자들의 기록에 쏠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3월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탈퇴를 선언,남북한간에 긴장이 고조된 뒤론 관련도서가 많이 나와 남북관계를 다룬 책들은 어느때보다도 풍족한 상태이다. 지난해와 올해 나온 책 가운데 북한의 실상을 포괄적으로 다룬 책으로는「북한의 민족생활 풍습」(주강현 지음·대동 간),「신 북한지리지」(배기찬,다나),「북한 조감」(내외통신사 발행),「북한총람 1983∼1993」(북한연구소 발행)등이 우선 꼽힌다. 이 가운데「…민족생활 풍습」은 분단이후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북한주민의 의식주를 비롯한 생활상의 변화를 정리해 남북한 주민생활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보여줬다. 이에 비해「북한총람…」은 지난 10년동안 정치·경제·외교·법제등 각 분야의 변화를 수록한 백과사전식 자료집이다. 「신 북한지리지」는 행정구역의 변천을 중심으로 각지역별 특성을 덧붙였으며,「북한 조감」은「북한상식집」이란 부제에서 보이듯 북한의 실태를 부문별로 짧고 쉽게 정리했다. 이 도서들은 북한사회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하는 동시에 자료집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한편 북한주민들의 사는 모습을 그린 귀순자들의 수기로는 ▲시베리아벌목장에서 탈출한 장기홍씨의「울음보가 터진 남자 1∼2」(성심도서 간) ▲대학생인 전철우씨가 북한의 청소년 실태를 주로 다룬「평양 놀새 서울 오렌지」(자유시대사)등이 인기가 높다. 또 소설가 황석영씨의「사람이 살고 있었네」(시와사회사),홍정자씨의「내가 만난 북녘 사람들」(살림터)은 다른 체제에서 성장한 사람들 눈에 비친 북한의 실상을 보여준다. 다만 귀순자나 북한방문자가 쓴 책들은 한면의 진실을 밝히고 있지만 또다른 면에서는 왜곡상을 보일 수도 있다는 평을 듣는다. 이밖에 백낙청 서울대교수가 쓴「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창작과비평사),기사연통일연구원에서 엮은「분단 50년의 구조와 현실」(민중사)등의 도서는 분단현실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하는방안을 제시한 책으로 손꼽힌다.
  • 멕시코에 미문화 침투 가속/NAFTA 출범으로 생활양식 큰 변화

    ◎침실·욕실·부엌 개조… 영어 자주 써 고민 판초·솜브레로(챙넓은 멕시코모자)하면 제일 먼저 멕시코가 떠오른다. 이같은 전통적인 멕시코의 이미지는 최근 멕시코인의 생활양식이 급격히 미국화함에 따라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나프타가 본격 출범한 뒤 멕시코에는 미국문화의 침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에 미국문화가 들어온 것이 어제 오늘일은 아니지만 이제 멕시코인들의 침대·욕실·부엌등 생활 깊숙한 곳까지 미국적인 냄새가 배어난다. 변화의 조짐은 미텍사스에서 두 시간거리인 멕시코국경 몬테레이시 청소년들에게서 특히 두드러진다.이곳 틴에이저들은 미국 청소년들처럼 야구모자를 즐겨 쓰며 나이키등 스포츠화를 선호한다.주말에 상점가를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미국아이들과 같다.이들은 또 미패스트푸드 체인점 「맥도날드」나 「버거킹」에서 햄버거나 핫도그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는 등 점차 미국식 입맛에 길들여지고 있다. 이와함께 달러화는 이곳 어디에서든지 환영을 받으며 미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드라이브 스루」(자동차를 탄 채 쇼핑하는 것)도 성행하고 있다. 몬테레이시 기업들의 근무시간은 상오 9시에서 하오 5시까지로 이것은 「나인 투 파이브」로 유명한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 아직 수도 멕시코시티의 기업들은 점심시간이 3시간이 넘을 정도로 길지만 몬테레이시 기업들의 점심시간은 미국처럼 매우 짧다.패스트푸드점이 인기를 끄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 몬테레이시에서는 멕시코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미식축구와 야구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바에서는 주말마다 미식축구를 보여줘 손님을 끈다. 또 이곳 어린이들은 할로윈데이(만성절)에 유령복장을 하고 이웃집을 찾아가 어른들을 놀래주고 과자를 얻어먹는 미국풍습도 따라 하고 있다. 미국화의 영향은 언어에서도 나타난다.멕시코인들이 일상대화에서 영어를 쓰는 것은 더 이상 낯선일이 아니다.「오케이」는 이미 흔하게 쓰이며 작별인사를 할때는 「바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몬테레이시가 속해있는 누에보 레온주 사회개발장관 구스타보 알아르콘은 이같은 멕시코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멕시코의 국제화는 필연적인 과정이다.미국식 생활양식과 문화로의 동화는 멕시코사회의 겉으로 드러난 변화에 불과하기 때문에 멕시코가 외래문화에 완전히 잠식당할 위험은 없다』고 강변한다. 햄버거·피자·야구모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피상적 변화일 뿐이라는 것. 알아르콘은 『가족·종교에 대한 멕시코의 전통적 가치기준은 전혀 변한 것이 없다.오히려 우리는 이같은 변화를 통해 국가적 주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국제적 안목을 키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게 될것』이라고 희망을 피력한다.
  • 경조 인플레(외언내언)

    결혼한 신혼부부에게 살림살이 한가지씩 들고가 축하해주는 영국의 샤워파티(Shower Party)를 몇번 참석해 볼 수 있었다.서양부엌에서 두루 쓰이는 속깊은 손잡이냄비서부터 접시·수저·빗자루까지 새가정이 금세 사는 데 불편없을만큼 꼭 필요한 부엌집기·청소도구들이 결혼선물이었다. 전에는 집들이할 때 가져가던 풍습이 요즈음은 영국의 조그마한 도시서도 행동속도가 빨라져 결혼식후 피로연장에 선물을 들고 가곤 한다.필자가 참석했던 결혼식이 조그만 대학촌의 경우라 그런지 식은 저녁무렵에 했고 조촐한 식후파티에서 웃고 떠들고 춤추며 선물뜯어 공개하느라 즐거운 분위기였다.음식은 샌드위치와 한입음식,그리고 음료수 정도.축의금은 없었다. 우리도 그전에는 잔치때 깨를 가져가기도 하고 참기름·명주등 집에서 장만한 것 한두가지를 보탰다.상례는 다른 부주 못하면 팥죽이라도 쑤어다 주어 지금도 「팥죽들어오는 것만 센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정부산하 연구기관이 국민최저생계비계측을 위한 예비조사를 한 결과 저소득·중류·상위계층모두 경조비를 생계비항목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생활비에서 매달 나가고 부담이 크기 때문에 생계비에 넣어 세금감면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것.중산층과 상위층은 부담이 월소득의 20%나 되는 달이 많았다. 경조비액수는 얼마가 적정선일까 하는 물음에 봉급생활자들이 1만원이면 부담이 안될 것이라는 대답을 많이 했다.최근 중앙선관위도 예비후보의 경조비상한선을 2만원으로 정해 단속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지만 요즘 가정의례개정법률 시행을 앞두고 일부 답례품제조업소나 백화점들이 2만원대를 유망품으로 선정,사전제작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경조비인플레요인이 아닐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 푸슈킨시 낭송에 모스크바대생 환호(김 대통령 방북여로)

    ◎“한·러 개혁 동반… 21세기 아태 이끌자”/“해국풍습 간직 감명” 위민지원 다짐 김영삼대통령은 모스크바 출발을 하루 앞둔 3일(이하 현지시간) 모스크바주재 한국특파원들과 조찬간담회를 가진뒤 모스크바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러시아 각계 인사들과 잇따라 만나는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모스크바 교민리셉션◁ ○…김대통령과 부인 손명순여사는 이날 하오 모스크바에서의 사실상 마지막 일정으로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현지 교민들을 위한 리셉션에 참석. 약1백80명의 교민들이 참석한 리셉션장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행사장을 돌며 참석인사들과 인사를 나눈뒤 헤드테이블에 앉아 동석자들과 잠시 환담. 이어 정흥식연방하원의원(43)이 교민들을 대표해 김대통령의 러시아방문을 환영한다고 인사.정의원은 러시아이름이 「정 유리 미하일로비치」로 사할린 출신이며 현재 지역구는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 연설에서 김대통령은 지난 89년과 90년 소련방문 때는 외교관계가 없어 어려움이 많았고 교민들도 마음대로 만날 수 없었다고 소개하고 『오늘 민주국가로 다시 태어난 러시아의 국빈으로 이곳에 오게되어 참으로 감회가 깊다』고 소감을 피력. 김대통령은 또 『교포사회가 여러가지 역경에도 불구하고 100년이 넘는 동안 한국의 문화와 풍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하고 『대한민국이 여러분의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이라고 교포사회에 대한 지원을 다짐. ▷공식환송식◁ ○…김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4시30분 크렘린궁을 방문,옐친대통령내외의 공식환송을 받고 모스크바에서의 공식일정을 마무리. 김대통령내외는 승용차편으로 팡파르가 울리는 가운데 크렘린궁에 도착해 현관에서 쉐브첸코 러시아의전장의 영접을 받고 환송식이 열린 게오르기예프스키홀에 입장. 홀 중앙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옐친대통령내외는 김대통령내외가 들어오자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으며 양국정상들은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 이어 양국국가가 연주됐고 김대통령내외는 쉐브첸코의전장의 소개로 러시아측환영인사들과,옐친대령내외는 신두병의전장의 소개로 우리측 수행원들과 작별인사.15분동안의 공식환송식이 끝나자 양국정상내외는 홀 입구에서 악수로 아쉬운 작별인사를 교환. ○…김대통령은 이날 공식환송식 참석직후 다닐로프수도원을 방문,러시아정교의 알렉세이대주교와 20여분동안 환담. 김대통령은 이어 수행원 숙소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옛소련의 대표적 반체제인사인 사하로프박사의 미망인 일레나 보네르여사를 접견. ▷한·러경제인오찬◁ ○…김대통령은 이날 낮 러시아의회와 정부및 경제계지도자와 양국 기업인등 80여명을 메트로폴호텔로 초치,오찬을 나누며 미래지향적 경제협력관계를 강조. 김대통령은 이날 「한·러 경제협력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라는 제목의 오찬사에서 『양국이 정치·사회뿐 아니라 경제분야에서 추구하고 있는 변화와 개혁은 냉전종식과 UR타결이후 새로이 형성되고 있는 국제질서속에서 공동번영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역설. 김대통령은 『양국은 90년 수교이후 교역과 투자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경제협력형태도 과학기술협력,자원협력,건설협력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면서 『그러나우리는 결코 이 정도 결과에 만족해서는 안되며 한차원 높은 협력을 위해 노력하자』고 강조. 김대통령은 두나라 경협에 대해 『바로 눈앞에 있는 조그만 이익보다는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보다 큰 이익을 중시해야 한다』면서 『21세기를 내다보면서 인내를 갖고 당면과제를 하나 하나 풀어갈때 비로소 경제협력이 결실을 볼수 있다』고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계를 강조. ▷모스크바대 학위수여식◁ ○…모스크바대학에서 이날 낮 명예정치학박사학위를 수여받은 김대통령은 학위수여를 기념하는 「새로운 문명을 향하여 자신과 용기를」이란 제목의 연설을 통해 『양국 청년들이 우정과 협력을 통해 유러시아협력의 아름다운 가교를 건설해달라』고 소망. 사도브치총장으로부터 소개를 받고 단상에 오른 김대통령은 『한국국민들은 톨스토이의 인도주의에 감명받고 있고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통해 러시아 국민과 예술적 영감을 함께 나누고 있다』고 러시아 문화 칭송으로 연설을 시작. 김대통령은 『본인이 어려울때마다 러시아의 위대한 국민시인 푸시킨의 시를 낭송했다』면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마라.성내지 마라.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옴을 믿어라』라는 싯구를 인용하면서 이날 연설을 마쳐 학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연설을 마친 김대통령은 대학측이 마련한 리셉션장에서 대학관계자들과 잠시 환담. 사도브니치총장은 『김대통령의 방문은 모스크바대학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라고 환영의사를 표현. ▷모스크바시장접견◁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숙소인 영빈관에서 유리 루시코프 모스크바시장을 접견.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방문동안 모스크바 시민들이 보여준 환대에 감사의 뜻을 표시. 김대통령은 『역사와 문화의 도시인 모스크바를 방문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느낌을 받지만 세번째 방문인 이번에는 특히 모스크바 거리 곳곳에 넘쳐있는 생동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러시아와 신한국은 앞으로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인사. 루시코프시장은 『모스크바에 대한 김대통령의 각별한 애정에 감사한다』면서 『김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두나라의 우의와 신뢰를 깊게 하는 전기를 마련했다』고 답례. 루시코프시장은 모스크바시는 물론 연방정치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친옐친계 실력자로 매년 모스크바강에서 펼쳐지는 겨울수영에도 빠짐없이 참가한다고. 김대통령은 이어 노벨물리학 수상자로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산하 일반물리연구소장인 알렉산드르 프로코예프박사를 접견하고 양국의 과학기술발전과 협력문제에 관해 환담. 알렉산드르 프로코예프박사는 올해 78세로 60년대말 레이저 분야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했으며 한국과의 과학기술협력문제에 적극적인 세계물리학계의 거물. ◎한국어학습 둘러보며 격려 ▷손여사 한국학교방문◁ ○…대통령부인 손명순여사는 이날 상오 모스크바시내에 있는 한국학교를 방문,모스크바 주재원 자녀들의 유치원 및 국민학교수업을 살펴보고 학생들을 격려. 손여사는 김석규주러시아대사 부인과 함께 한국학교에 도착,이문직교장 등 교사들의 환영인사를 받고 방명록에 「밝고 맑고 아름답게」라고 서명한 뒤 요리실습과 글짓기학습을 받고 있는 1,3,4학년 수업을 참관. 한편 손여사는 이날 낮 숙소인 영빈관에서 우리 대사관 직원부인들과 점심을 함께 한데 이어 하오에는 옐친대통령의 부인 라이나여사의 안내로 모스크바의 한 아파트단지에 있는 탁아소를 방문.
  • 타슈켄트(외언내언)

    『조선사람으는 김치랑 밥이랑 먹을 째비지.빵만 먹고 어찌 살갔음』우즈베크공화국에 사는 한인들은 그렇게 말한다.그렇다고 그들이 교민 1세들만도 아니다.50·60대의 그곳서 태어난 2세들도 그렇게 말한다.「째비」란 말이 많이 나와서 무슨 말인가고 물었더니 「조선사람으가」어째서 조선말도 모르느냐고 오히려 핀잔만 줄뿐 딱히 설명도 못한다. 억양이나 사투리로 보아 1930년대의 함경도언어쯤 되는 말투를 그들은 쓰고있다.그시절의 우리말과 생활풍습 그대로 타임캡슐 속에 칩거해 있다가 방금 튀어나온 사람들같은 한인들이 우즈베크공화국에만 20여만명이 살고 있다. 거의가 30년대 말께 소련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원동 연해주로부터 옮겨온 후예들이다.열사의 중앙아시아땅에 내버리듯 던져졌지만 지혜롭고 억척스럽게 살아남아 오늘을 보게된 우리의 동포들이다.아마도 그들을 여전히 그렇게 「조선사람」이게 한 힘이 오늘의 그들을 있게 했을 것이다.우수하고 지혜로워서 『잘 사는 소수민족』으로 존중받으며 살고있다. 소연방에 합쳐져 70여년이 되었지만 결코 러시아에 동화되기를 원치 않았던 민족의식이 강한 이 나라는 소련해체후 제일 먼저 독립을 하고 언어부터 우즈베크어를 공식언어로 바꿨다.타슈켄트만 해도 민족주의 회귀로 소수민족에게 가혹하게 구는 분위기가 고개를 들고 있는 도시다.그러면서도 한국처럼 신생국이면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당찬 나라에 대해서는 배우고 지원받을 것이 많다고 생각되어 손짓하는 나라다. 그 수도 타슈켄트를 오늘 대한민국의 김영삼대통령이 방문한다.최상의 국빈대접을 받으며 찾아온 조국의 대통령이 그곳 동포들에게는 참으로 자랑스럽고 소중할 것이다.그 먼 이역에까지 조국을 옮겨다 보여주는 대통령에게 오랜 세월 한맺혔던 그곳 한인동포들은 느끼는 것이 많을 것이다.대통령의 방문이 큰 위로와 고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미국제」 가족·우리가정(송정숙칼럼)

    수절도 못했지만 재클린은 현직 대통령의 추도사를 헌정받으며 전대통령 영부인으로 미국국립묘지에 묻혔다.역대 어느 대통령부인보다 많은 국민의 칭송속에서 「영원의 불」밑에 누운 것이다.이로써 알링턴묘지에는 케네디대통령 가정이 하나 이뤄졌다.대통령부부와 사산한 딸,생후 사흘만에 잃은 아들을 자녀로 손색없는 가족이다. 진작에 미국국민들은 가임여성으로 백악관에 들어온 재클린과 케네디대통령에게 이런 가족모형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그러므로 중도에 좌절한 케네디 대통령가의 비극이 더욱 한스러웠을 것이다.재클린이 죽자 오래 홀로 누워있던,그들이 사랑하던 케네디에게 그 부인을 돌려주는 일에 온국민이 그토록 관심을 보인 것인지도 모른다. 케네디시대 이후 미국인들의 가족모습은 옛날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별로 없게 되었다.원로 ㄱ시인은 지난 70년대초에 미국에 초빙교수로 다녀온 적이 있다.그때 부부끼리 친교를 나눴던 교수들이 있었다.10여년만인 80년대에 ㄱ시인은 그곳엘 들러 옛친지들을 한자리에 모아보았다.그랬더니 5쌍중한쌍도 그대로 부부를 유지하고 있지 않았다.비교적 안정되고 다소 보수적인 교수사회도 그런 것이 미국이다. 내가 아는 한 시어머니가 최근에 미국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내외를 보러갔다.아들도 며느리도 대단히 우수하다고 자랑하던 분이다.그런 그분이 의외로 예정을 당겨 일찍 돌아왔다. 『며느리는 다리를 척 꼬고 앉아 책을 보고 아들아이가 커피를 끓여바치더라.아침도 아들이 토스트굽고 우유랑 채소랑 식탁에 차리면 며느리는 먹기만하고 설거지도 아들이 하더라.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그꼴 못보겠더라』는 것이 연유였다.논문을 먼저 끝낸 아들이 며느리를 그렇게 돕기로 약속했다지만 시어머니로서는 도저히 참고 보아 줄수 없었던 것이다. 최근 한 여자대학에서는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을 놓고 사제간에 지상논쟁이 벌어졌다.이 책은 외국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며느리들에게 적어보낸 시어머니의 요리법편지를 모아 책으로 엮은 것으로 이 대학에서 출판했다.이에 대해 여성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비판을 했다.『이 책은 「여성이 곧 음식담당자이고 요리가 곧 여성」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여성의 억압구조를 강화시켰다』는 주장이다.그런 책을 여성의 자존심을 지켜나가야 할 대학이 가장 보수적인 제목으로 낸것이 실망스럽다는 것이다.굳이 낸다면 책이름이라도 「자녀에게 주는 요리책」이었어야 했다는 것.지난해에 나온 이 책은 40일만에 5만권을 팔았다. 대표적인 갈등의 상징인 고부간이 요리법을 전수해가며 화평하게 지내는 미덕도 크게 평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만큼 요즘 여성들은 자아가 강하다.혼수니 지참금따위 시대착오적인 풍습이 사회를 퇴영시키는 한편으로 이처럼 진보적이고 맹랑한 여성들이 기성세대의 의표를 황당하게 찌르기도 한다.이들모두가 우리의 가족을 구성할 핵심세력이다.그들은 특수한 일부도 아니다. 현직 국민학교 선생님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도 있다.요즈음 도시주변의 어려운 동네에는 의외로 편부가정이 많다고 한다.대개 엄마가 달아난 가정이다.그런데 이런 가정은 편모가정의 아이들보다 문제가 훨씬 심각하고 지도할 방법도 없다.무엇보다 거칠고 희망이나 따뜻함 같은 것이 먹혀들지 않고 도무지 어째볼 수가 없다.이런 난감한 어린이가 날로 늘어난다고 한다.최근 그런가정의 아버지가 아이를 학대했던 일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일도 있었다.이런 현상은 여성의 자아가 강해지며 생긴 부작용같은 것이다. 몇년전 미국서 화제가 됐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라는 영화는 편부가 아이를 키우며 헤어진 아내와 법정싸움을 벌이는 것이었다.『부자가 저녁을 함께 지어먹으며 인생을 이야기하는 안락하고 평화로운 생활의 의미를 당신들이 알기나 하느냐』고 절규하는 부성애가 일품이다.아마도 그무렵이 그나라에서 편부가정이 한창 사회문제가 됐던 시기였을 것이다.최근 것으로는 「메이드인 아메리카」라는 영화도 있다.자아가 강한 흑인 여성이 정자은행에서 『좋은 종자』를 주문해다가 시험관수정을 하여 잉태하고 딸을 낳아 길렀다.머리가 기막히게 좋게 태어난 그 딸이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를 미국식 코미디로 처리한 영화다.그러면서도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 혈연으로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그러나 가족이란 인간에게 최후의 구원일 수밖에 없다는 것 등을 소란스런 미국식문화속에 보석처럼 묻어놓고 있는 영화다.이런「미제가족」과 유사한 가족은 이제 어디서나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가족구조가 변해가는 것은 지구촌 어디서나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공하한 도덕론으로는 대응이 어렵게 되었다.금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가정의 해」다.전통적 구호만으로는 별효과를 기대할수 없을 것이다.인간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현실은 어떤지,미래의 가족은 어떻게 예측되고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를 탐색하고 규명해야 할것이다.오늘처럼 절망스럽게 타락해가는 인성을 구하는 것은 결국 가정의 역할임을 생각해서도 우리의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그러나 절대로 서로 떠넘기기식이 아닌 방법이어야 한다.
  • 아주진출 한국기업/현지문화·풍습 익혀야

    ◎성심여대서 「아시아속의 한국…」 심포지엄/인간적 유대로 노사갈등 풀어야/국내 외국노동자 인권보호대책도 촉구 『한국기업의 진출은 분명히 우리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베트남의 번영을 이룩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추가 수당없이 하루 12시간 노동을 하거나 제품에 하자를 냈다해서 노동자에게 체형을 가하는 등의 몇몇 사례는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성심여대(총장 김재순)개교 30주년 기념행사로 부천 성심여대에서 열린 제15차 아시아학생회의(22∼30일)중 「아시아 속의 한국,한국속의 아시아」주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베트남 호치민대 학생들의 발표 내용이다. 이번 회의의 백미는 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베트남 등의 우리나라 기업이 많이 진출하고 있는 국가의 대학생들이 한국기업의 활동과 한국기업에 대한 주민의식 실태등을 보고한 25일의 심포지엄. 최근 불법취업 외국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및 인권침해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고 또 값싼 노동력에 기초,아시아 각국에 우리 기업의 진출이 발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 이루어져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들 국가의 대학생들은 한결같이 한국기업의 진출이 실업률 구제등 경제적 성장을 이룩하는 자국의 번영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했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단순한 기업이윤을 넘어선 현지 주민들의 문화와 생활습관의 이해를 통한 인간적 관계가 시급하다고 보고했다. 「베트남내 한국인의 존재에 대한 고찰」주제발표를 한 베트남 호치민 대학 학생들은 『관광 사업등의 목적으로 베트남을 방문하는 한국인 수는 하루평균 30명,1년 평균 1만명 정도이며 한국기업은 외국투자 순위 4위로 베트남 경제에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이와함께 한국인 고용주와 베트남 고용인 사이에 갈등으로 인한 파업등 현지 사례보고도 뒤따랐다. 한편 우리나라 학생들은 네팔·필리핀등의 외국노동자들의 직접 인터뷰를 통한 실태 보고에서 『1차로 취업에 필요한 비자서류를 구해준다는 한국인 브로커들에게 돈을 뜯기면서부터 이들의 고통은 시작된다.약속 월급의 반밖에 못받고,압축기 공장에서 손가락을 잘리고도 수술직후 작업장에 투입되며 도산후 체불임금을 받지 못하는등 노동착취와 인권침해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정부와 기업에 대해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이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는 근본적이고 철저한 정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아시아대학생회의는 지난 83년 카톨릭학교인 대만 보인대학의 대니얼 로스 신부에 의해 상호 이해와 교류를 목적으로 첫 회의를 개최했다.
  • 전방후원분/원통형토기/일본 전유물아니다/일아사히신문보도를 반박한다

    ◎백제초기의 몽촌토성서도 출토/원통형토기/양자강문화 영향받은 복합묘제/전방후원분 일본 「조일신문」은 지난 20일자 1면 머리기사를 통해 광주시 광산구 명화동 전방후원분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이 전방후원분에서 원통형토기까지 추정하는데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고분유적과 토기는 과연 일본의 전유물인가. 그러나 고대문화전파의 루트로 보아 문화역류현상은 있을 수 없다는 반론도 강하다. 서울신문은 고고학적 자료를 근거로 일본쪽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서울대 임효재교수(고고학)의 글을 싣는다. 국립광주박물관이 발굴하는 광주시 명화동 전방후원분을 찾은 것은 지난 5월이었다.발굴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30m 높이 야산에 있는 전방후원분의 전체 모습이 확연히 눈에 들어 왔다.14m 정도되는 전방부분과 직경18m정도의 원분이 연결된 모양,그리고 그 내부구조및 축조상태가 너무나 뚜렷이 나타나 있다.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알려진바 없었던 일본고유의 고분 형식 그대로의 모습이다. 넓적한 전방부분과 뒷부분 원분이 일직선상으로 연결되었다.이 연결된 경사면에는 50㎝정도의 간격을 두고 일렬로 세워 배치해 놓은 12개의 원통형토기의 모습이 흐트러지지 않은 채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그 높이는 50㎝ 정도이고 지름은 32㎝ 정도 크기의 것인데 땅을 15㎝정도 파고 그안에 똑바로 세워 놓았다.방형과 원분을 연결하는 곡선을 따라 일렬로 배치해 놓은 상태였다.자세히 보니,토기의 표면을 도구로 두둘겨서 격자모양의 자국이 보였다.그리고 승문의 흔적도 나타났다.그것은 백제토기의 전통에 따라 만든 것이 분명하였다.토기중간 부분에는 구멍을 뚫어 장식적 효과를 노렸다. 시신을 넣은 횡혈식석실 바닥면에서는 제사용으로 쓴 토기류가 널려있었다.이 역시 6세기 중엽께의 백제식토기양식을 따르고 있다. 일본도처에서 보이는 3세기말과 4세기초에서 7세기에 걸친 지배자의 묘인 거대한 전방후원분보다는 소규모의 것이지만 그 외형 모습이나 그 내부및 주변에 원통형모양의 토기를 배치한 것 등은 일본 것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유사했다. 그러나 고분 축조에 있어서 명화동 것은 일본과는 달리 전방부와 원분을 따로 축조하지 않고 일시에 축조한 것이나 원통형토기의 바탕질및 토기 문양등은 백제 고유의 수법을 따르고 있다.따라서 일본주민이 그대로 이주해 왔다는 주장은 생각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먼저 뚜렷한 외부구조,그리고 반출유물로 보아 전방후원분의 일본고유설은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1980년대 중반이후의 이와 유사한 것이 수십기 발견되었으나 이번처럼 정밀한 발굴조사에 따른 고분의 구조나 유물등이 확실히 제시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또한 그 기원론을 폭넓은 시야에서 탐구하지 않으면 안될 계기가 마련되었다 하겠다. 이 형식의 고분이 일본이외에 광주지역에서 처럼 나타나고 그 반출되는 원통형토기가 훨씬 북쪽인 서울 몽촌토성에서도 여러개 발굴된 적이 있다.그 연대도 적어도 4세기이전에 속하는 것들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몽촌토성 원형토기는 바탕흙에는 1∼2㎜크기의 모래가 섞인 연질의 회백색토기로 그 중간부분에는 삼각형모양의 구멍장식이 3렬로 뚫려 있다. 광주명화동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두가지 모두 원통형토기 범주에 속하는 것은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명화동발굴에서 나타난 고분의 축조형식,원통형토기의 반출 등에서 일본과 유사하다는 한가지 예만 들어 일본 고유의 장법이라거나 일본주민들이 남한으로 이주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보다 넓은 자료의 축적 위에서 객관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것이다. 1980년 중반이후 이제까지 전남에서만 발견된 전방후원분의 수가 수십기에 달하고 그중에 아직 정식발굴되지 않은 이른 시기의 것도 많이 남아있다. 최근 전남대 임영진교수가 시굴조사한 함평군 월야면 예덕리 만가촌에 있는 9기의 고분중에도 3∼4세기의 경질토기가 출토되는 전방후원분이 혼재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 기회에 전남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 입석부락에서 지난 91년 발굴된 전방후원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비록 이 전방후원분은 출토유물의 성격으로 미루어 4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나 이 지역의 전통적 묘제와 무관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발견된다.선사시대의 지석묘로부터 원분과 방형분이 이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따라서 황해를 건너온 양자강문화요소들이 시종면을 중심으로 새로운 형식으로 발전된 것이고,또 그러한 문화의 흐름속에서 전방후원분이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이를테면 방형분과 원분이 자연스럽게 복합,하나의 독특한 묘제를 형성한 것이 전방후원분이 아닌가 한다. 이렇듯 일본이외의 지역에서 관련자료가 늘어나는 추세에 있으므로 전방후원분을 둘러싼 여러가지 문제는 동아시아지역을 넓게 보면서,또한 당시 풍미하였던 후장풍습및 천원지방사상과 관련하여 심도있게 연구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 거의 연애결혼… 신랑집서 예식(“살양말 신어보는게 꿈”:하)

    ◎재봉틀이 호화혼수… 폐백풍습은 사라져/신혼여행 안가고 바로 시댁에 살림 차려/여성 흰색블라우스·주름치마·중국제허리띠 유행 내가 북한을 떠나 오면서 챙긴 짐속에는 91년 회상유치원 교양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지어 입은 까만색 양장이 한벌 있다. 내 월급의 4배가 넘는 4백원이란 거금을 주고 감을 떠다 지어 입은 것으로 최근까지도 고상한 멋이 있다하여 유행하던 옷이다.겨울마다 즐겨 입어 애착이 갔지만 중국에서 우리를 도와준 김선생집에 두고 왔다.서울에 가져왔어도 입기에는 좀 어색하겠지만 언젠가 찾아 입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양선 긴치마 인기 북한여성들 사이에도 옷과 머리의 유행이 있다.내가 살던 함흥에서는 겨울철엔 까만색 한복과 양장이 인기였다.양장치마로는 주름치마를 많이 입는다.요즘에는 흰색블라우스에 주름치마를 입고 그위에 중국제 허리띠를 매는 바람이 처녀들 사이에 한바탕 불고 있다. 허리띠는 천으로 만들어져 입으면 주름이 생기기때문에 집에서 고무줄을 넣어 사용한다.값은 한개 35원으로 큰 맘 먹지 않으면 사기 힘들다. 「헛가다」라고 서양식 추세(유행)를 좇아가는 젊은이들이 있는데 남자는 헐렁헐렁한 옷을 입고 여자는 평양처녀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긴치마를 입는다. 처녀들의 머리모양은 나처럼 생머리로 길러 묶거나 머리띠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처녀 「헛가다」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파마를 하는 등 별스럽게 하기도 한다. 북한에서 여성들이 여름에 살양말(스타킹)을 신기 시작한 것은 지난 89년 임수경언니가 평양을 다녀간 이후부터였는데 그때 우리 친구들은 모여서 『더워 죽갔는데 양말은 무슨 양말』이냐며 비아냥 거렸었다. 우리는 임수경언니를 두고 『남조선에서 자랐는데 어떻게 저리 키 크고 얼굴도 좋고 지식도 높나』하면서 남한사회 현실에 대해 그동안 들어온 것이 거짓이 아닌가 하고 수근대기도 했다. 어쨌든 그후 한 켤레 20∼40원하는 중국제 살양말을 멋내기 좋아하는 처녀언니들은 몇달치 월급에서 뗀 돈으로 사 신었는데 나한테는 그림의 떡이었다. 북한에서는 중매결혼은 거의 없고 연애결혼이 대부분이다.여자나이 21세가되면 결혼을 신중하게 생각한다.여자나이 22세이면 금값,23세 은값,24세는 동값 처녀로 부른다.25세가 넘어가면 늙은처녀로 분류돼 중매가 오가도 신랑쪽에서 『그만 두자』하는게 보통이다.남자는 25∼27세에 결혼한다. 처녀들 사이에서는 「군당지도원」을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는다.군당지도원이란 군대를 갔다 왔는가,당원인가,지식이 있는가,도덕적으로 깨끗한가,돈이 있는가를 뜻하는 말이다.전문학교나 대학을 나오면 「지식이 있다」고 본다. 북한에도 사람사는 사회인만큼 고부간 갈등도 있고 올케·시누이 사이가 나쁜 경우가 많다.이 때문에 생긴 은어가 「벼룩이 닷되」,「염소」등이다. 「벼룩이 닷되」라는 말은 시누이 한명을 뜻하는데 『그집에 벼룩이 닷되 있는가?』고 물어 『10되 있소』하면 시누이가 두명 있다는 뜻이 된다. 「염소」는 시아버지를 지칭하는 말이다.처녀들은 신랑이 「군당지도원」이면서 집안에 「벼룩이 닷되」와 「염소」가 없는 곳으로 시집가는 친구를 가장 부러워한다.남자들이 원하는 배우자는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보다 판매원,접대원,유치원이나 탁아소·교양원등 자격증을 가진 생활력 있는 여성이다. ○25살 넘으면 노처녀 대체로 결혼식날 신부집은 울고 신랑집은 웃는다.결혼식은 신랑이 신부집으로 와서 잔칫상을 받고 부모와 사진을 찍은뒤 신부를 데리고 시댁으로 가는 형식으로 치러진다.신부는 친정을 떠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고 딸을 보내는 친정엄마도 운다.북한에서는 신부가 울어야 교양이 있다고 한다. 2년전만 해도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갈때는 승용차를 타고 갔으나 지금은 차도 없고 기름도 부족해 가까운 처갓집은 걸어서,먼 곳은 화물차를 타고 가 데려온다.오는 길에 김일성 동상에 들러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도 중요한 절차에 속한다. 신랑집에 도착하면 문앞에서 기다리던 시부모에게 허리숙여 인사하고 친지들과 함께 차려진 상에 앉아 사진을 찍는다.전에는 동네사람들과도 함께 사진을 찍었으나 2∼3년전 김정일로부터 결혼식을 검소하게 하라는 방침이 내려지면서 친지들만 상에 앉는다.폐백은 드리지 않는다. 결혼식장 분위기는 상당히흥겹다.녹음기에서 보천보 전자악단의 「도시 처녀 시집와요」「축복하라」「축배를 들자」등의 경음악이 흘러 나오면 모두 일어나 덩실덩실 춤도 추고 돌아가며 노래도 부른다.신랑신부가 결혼식날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는 결혼잔치를 다룬 영화 「나의 사랑,나의 행복」과 「반갑습니다」「통일무지개」등이다. 신혼여행은 가지 않고 바로 시댁에 신방을 차린다.주택사정이 나빠 신혼부부들은 집이 나올때까지 시부모,시동생들과 한집에서 산다. 집이 좁아 결혼하자마자 별거하는 신혼부부도 있다.나와 함께 회상유치원에서 교양원으로 근무하던 김정애언니는 지난 3월초 보위부에 근무하는 청년과 결혼했으나 남편과 떨어져 살고있다.토요일 저녁에만 동흥산구역에 있는 시댁으로 가야 하는 주말부부다.신랑이 맏아들이지만 방 두칸 집에 시부모,먼저 결혼한 둘째 내외,시누이 3명이 모여 살기때문이다. 시내에서 50리 되는 길을 걸어서 다니느라 무척 힘들지만 시동생부부를 나가라 할 수 없어 집이 배당될 때까지는 참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화물차 타고시가로 우리는 지난해까지 아파트에서 살다가 텃밭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윗방,아랫방,부엌,세면실로 된 집이었는데 겨울에는 탄을 때도 윗방까지 온기가 안가 다섯식구 모두 아랫방에서 줄줄이 누워 잤다. 혼수로는 사발,그릇,수저10벌정도와 양동이등을 사가고 시아버지에게는 양복감을,시어머니에게는 양장감이나 스웨터를 사간다.시동생들에게는 양말이나 스프링(런닝셔츠) 학생셔츠를 준다.일반인들에게 가장 고급스런 혼수는 마선(재봉틀)인데 국산은 없고 3천원짜리 중국제가 장마당에서 판매된다.워낙 비싸 마련해가는 사람이 드물다.냉동고(냉장고)나 세탁기등 가전품도 마찬가지다. ○남존여비사상 강해 신랑이 신부에게 해주는 것은 삐아스라고 부르는 분크림(파운데이션)과 입술연지 눈썹연필등 화장품과 머리수건,봄·가을용 양장감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해 아들을 볼때까지 자식을 줄줄이 낳는 사람도 있다.그래서 둘째딸은 개딸이라 부르기도 한다.늙은이(북한서는 보통 노인들을 이렇게 부른다)들이 아들부부에게 계속 출산을 요구하는반면 요즘 젊은부부들은 둘만 낳고 말려는 경향이 강하다. 아이를 낳으면 미역국을 먹고 금줄은 달지 않는다. 「남존여비」사상도 강하다.서울에 와서 새세대 남자들이 설거지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북한의 남자들은 자기 양말짝 하나도 빨지 않는다. 하지만 집안의 경제권한은 일정치 않다.여자가 세면 여자가 갖고 남자가 세면 남자가 돈관리를 한다. 이혼하는 부부도 종종 있다.배우자가 「바람재」(바람둥이)이거나 성격문제,고부갈등 등이 이혼사유가 된다.예전에는 재판을 걸면 대부분 이혼이 성립됐지만 최근에는 당에서 『웬만하면 마음을 맞춰서 계속 살라』고 권하기도 한다.
  • 어른되는 날(외언내언)

    고고학자들이 고대 이집트 유적에서 만고불변의 진리를 찾았다.『요즘 젊은이는 이해할수 없다』는 명문을 읽어낸 것이다. 이해할수 없는 젊은이들이 기성세대가 되기를 수없이 반복한 것이 인류역사건만 이 진리는 지금도 유효하다.요즘 젊은이들은 「신세대」를 넘어 「X세대」로 불리는 것이다.「X세대」의 X란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라는 뜻으로 수학방정식의 X에서 유래한 것.지난해 미국의 한 광고 전문지가 특집제목으로 이 용어를 사용한 후 한국에도 재빨리 도입됐다. 이 세대의 특징은 그 이름만큼 모호하다.구속이나 관념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기 뜻대로 행동한다는 점에서 어디로 튈지 알수 없는 럭비공에 비유되기도 하고 컬러TV를 보며 자란 비디오 세대라 하여 「호모 비디오쿠스」로 불리기도 한다.다양성,폐쇄성,극도의 이기주의도 이들의 특성으로 꼽힌다.기성세대는 이 세대의 특징적 모습으로 무엇보다 「피터팬 증후군」「마마보이 증후군」을 찾아 내기도 한다. 어제가 「성년의 날」이었다.권리와 책임을 지닌 어른으로서 인정받는 만 20세가 되는 이들을 축하하는 날이었다.올해 성년이 된 이들은 전체인구의 2%인 88만여명.물론 「X세대」에 속한다. 「X세대」의 「성년의 날」을 지켜본 기성세대들은 성년식의 옛풍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동서를 막론하고 옛날에는 어른으로 대접받기 위해 힘든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다.원시사회에서는 등짝 뚫고 새끼줄 꿰기,할례,발치,문신등 가혹한 의식이 행해졌고 조선시대만 해도 가파른 벼랑틈 뛰어 넘기,외줄 그네타기,무거운 돌 들기등을 해야만 장가 갈 자격을 얻고 품을 팔더라도 반품에서 온품을 받을수 있었다. 오늘의 성년식은 대학입시와 군복무라고도 하지만 결혼을 하고도 부모의 보호를 받고자 하는 「X세대」,권리만 알고 책임을 모르는 그들이 성인답게 되려면 어떤 고행이 필요한지 부모세대가 생각해 볼 일이다.
  • 위자료 물게된 며느리 구박(사설)

    지참금 핑계로 며느리를 구박하고 마침내 파경에 이르게한 시어머니에게 아들과 함께 위자료를 물라는 판결이 나왔다.온당한 판결인 듯하다. 도대체가 며느리에게 「지참금」이라는 것을 요구하는 이상한 풍습이 언제부터 우리에게 생겼는지 모르겠다.좀 모자란 규수를 마지못해 맞을 때 그 벌충으로 논문서나 밭문서가 딸려오게 한다든가 혼수를 바리바리 싣고 오게 하는 일은 있었다지만 멀쩡한 신부가 시어머니 명에 따라 지참금을 싸들고 시집오는 일은 우리에게 없던 「짓」이다.이 이상한 풍습을 계속 악화시키는 혐의는 시어머니들에게 있다. 폴 케네디라고 하는 미국학자가 한국을 평가하면서 여성들의 높은 교육수준을 지적한 일이 있다.여성의 교육수준은 한 국가가 발전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선거에서 독자적 판단을 하고,가정경제의 주체로 바른 소비생활을 하며,자녀교육을 올바로 이끌고,민주사회를 성숙시키는 모든 일에 여성의 교육수준은 영향을 미치므로 그것이 사회를 성장변모시키는 직접적 역량이 된다는 것이다.그러기에 여성교육수준이높은 한국은 성장잠재력이 아주 많은 나라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런 한국의 여성들이 망국적인 혼인 풍습을 만들어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특히 혼수문제로 갈등을 빚는 집안의 대개가 교육수준이 높은 편이라는 사실은 더욱 한심스런 일이다.며느리는 가족으로 오는 것이지 인질로 오는 사람이 아니다.이렇게 시작한 고부간이라면 심각한 갈등은 처음부터 잉태된다.혼수따위로 평생동안 응어리를 짓게 되고 말게 뻔하다. 오늘날과 같은 국적불명의 혼인풍습들이 양산된 것은 직업적인 중매인이 활동하고부터이다.그런 것에 놀아난다는 점에서는 신부쪽의 잘못도 적지않다.결혼을 허울좋은 조건만으로만 챙기려다가 이상한 풍습에 말려들어 곤욕을 치르는 것이다.자신도 곤욕을 치르고 그런 풍습이 자리를 잡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그런 이상한 결혼은 처음부터 거부해야 한다.스스로 파경을 맞고 법정투쟁같은 시련으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는 뜻에서는,비록 판결에는 이기더라도 여성 역시 심한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물질만을 위주로 하는 사고를 벗어나 인성을 깊이 성찰하고 사람 사는 도리나 품위를 중요하게 여기는,삶의 철학을 지니고 있었더라면 이런 선택은 안할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해괴하고 별난 풍습을 고치기 위해서는 이땅의 시어머니들이 달라져야 한다.또 혼수로 좌우되는 신랑감이란 결코 제대로 된 남편감이 아니다.반드시 후회시킬 사람이다. 사회분위기가 바로잡혀 혼인에 얽힌 이상한 짓들이 고쳐지기 위해서는 법의 선도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이번을 계기로 사회기풍이 조금이라도 건전하게 바로잡히기를 기대한다.
  • 근로자의 날에 생각한다/김치선(일요일 아침에)

    역사적으로 고대 로마에서는 플로라(Flora)화신에 대한 제일로 5월1일을 기념했다.그후 중세에 이르러 영국을 위시한 유럽국가들은 5월1일이 되면 꽃밭에 나가 춤을 추고 그 마을에서 최고의 미녀를 뽑아 MayQueen(5월의 여왕)의 화관을 씌우는 풍습이 있었다.그러한 메이 퀸을 뽑는 풍습은 아직도 전세계적으로 특히 대학가에서 유행하고 있다. 5월1일을 근로축제일로 정하고 노동의 신성함을 기념하게 된 역사는 약4백년전 1521년5월1일 이탈리아의 루카스시의 면사를 짜는 직공들이 집단적으로 근로조건의 향상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인 때부터 시작한다.그후 1886년 5월1일 미국 전역의 노동자들이 1일 8시간 노동시간제를 요구하면서 총파업을 감행하였고,그후부터 매년 5월1일이 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의 신성함을 선언하고 노동자의 지위를 고양시키자는 기념적인 축일로 거행되고 있다. 1914년 미국 연방노동법(Clayton Act)전문은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선언과 아울러 노동자의 단결권을 독점법(Sherman Act;1890년)의 적용에서 제외됨을 규정하여 당시의 이 법은 「노동자의 대자유헌장」이라는 호평까지 들은 바 있다.뿐만 아니라 세계 제1차대전(1919년)이 끝난뒤의 국제연맹과 세계 제2차대전이 끝난 뒤의 국제연합은 세계적으로 임금노동자들의 권익보호와 단결의 자유와,그리고 노동조건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를 설치하고 국제협약(ILO Convention)을 통한 노동보호정책을 수행해오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5월1일을 노동절로 지키고 있다.미국과 캐나다는 비교적 농업노동자들이 많은 나라로서 가을에 농사가 끝난 후에 9월 첫째 월요일을 노동절(LaborDay)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매년 5월1일을 노동절 또는 메이데이로 기념하고 있는데,제2차대전 이후 미소양대국가의 냉전이 격화되고 국제사회는 동과 서로 양분되어 이념적인 갈등이 심화되었다.특히 정치·경제및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민주자유주의체제와 공산주의체제로 양분되면서 매년 5월1일이 오면 노동자들이 시위를 통해서힘의 지배(Ruleof Force)를 과시하게 되자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국가들은 5월1일을 법의 날로 정하고 법의 지배(Ruleof Law)를 기념하고 법치주의의 체제적인 우위를 선전하여 힘의 지배에 대항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1964년 3월10일을 근로자의 날로 법정화하고,미국과 캐나다와 같이 5월1일을 법의 날로 정하여 기념해오고 있다.물론 그 전에는 5월1일을 노동절로 정하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그날을 노동절로 기념하여 근로자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행사들을 계속해왔다. 금년 5월1일부터 근로자의 날을 기념하게 된 것을 우리 모든 국민이 환영하고 기뻐해야 할 역사적인 일이라 믿는다.그러나 우리는 근로자의 날의 역사적인 참의의와 개념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먼저 노동절은 노동자의 날인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노동은 신성한 것이고,노동의 기여 없이는 산업사회가 유지될 수 없으며,건강한 노동의 참여가 없이는 기업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절대적인 논리를 망각해서는 안되겠다.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또는 국외적으로 5월1일을 근로자의날로 기념하는 많은 행사가 있겠지만,요컨대 이날은 근로자의 날인 까닭에 근로자들이 원하는 것,근로자들이 기대하는 것,그리고 근로자들에게 기쁨과 소망과 행복을 느낄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다음 이날의 기념은 근로자 자신들이 주체가 되고 자주성을 가지고 미리 그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여 그 기념행사를 통하여 그들의 만족감과 보람을 맛볼수 있어야 하겠다.이날에는 우리사회의 모든 문화적 및 복지시설을 총동원하여 근로하는 국민,그리고 근로자의 가족들을 위로해주고 보살펴 줄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의 신성성은 객관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여기에는 무엇보다도 근로자 자신들의 의식적 개혁이 우선되어야 한다.진정으로,그리고 실질적으로 근로자의 경제적 및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에는 근로자들에 대한 꾸준한 각성및 훈련과 연구와 교육이 요청된다.근로자의 날 하루에만 기념에 그치지 말고 간단없는 노동교육의 실시를 촉구한다.
  • 하노이거리 노점상들로 장사진(생동하는 베트남:상)

    올해부터 한국은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탈바꿈했다.유니세프(유엔아동구호기금)한국위원회가 올해 1월1일을 기해 출범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치가 변한 것이다.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첫 지원대상국으로 베트남 선정하고 베트남방문단을 최근 파견했다.방문단의 일원으로 베트남을 다녀온 임영숙서울신문논설위원의 방문기를 싣는다. ◎농촌개발사업 한창… 양어장 겸용의 화장실 분리/흙바닥 교실·「베니어판 공책」에도 교육열기 후끈 베트남에서 우리는 대책없는 가난과 남누를 보게 될것으로 생각했다.19세기말부터 시작된 프랑스로부터의 기나긴 독립투쟁에 이어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10년 전쟁을 치르고 다시 캄보디아와 전쟁을 벌였다가 지난 89년에야 전쟁없는 평화를 맛보게 된 나라,개방과 개혁을 표방하는 「도이 모이」(쇄신)정책에 따라 시장경제가 도입되고 최근 외국자본이 물밀듯 들어가고 있다지만 아직도 연평균 국민소득 2백달러 수준의 세계 최빈국 10개국중 하나가 베트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트남은 우리의 50∼60년대를 연상시킬 만큼 가난하긴 해도 남루하지는 않았으며 5모작까지 벼를 재배할수 있는 축복받은 자연(베트남은 세계 제3위의 쌀 수출국이다)과 강인하고 부지런한 국민성으로 인해 오히려 풍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세계 최빈국중 하나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베트남방문단의 첫 방문지였던 하노이 교외의 농촌마을은 우루과이 라운드 파동을 겪고 있는 한국의 농촌보다 훨씬 여유있게 보일 정도였다.이 마을은 하노이에서 12㎞정도 떨어진곳에 위치한 두륭군 순흥리.지난 80년대부터 시작된 농촌개발사업의 시범마을로 베트남의 연평균 국민소득보다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곳이다.베트남의 농촌개발사업은 우리의 새마을운동과 같은 것으로 현재 14개리에서 실시되고 있는데 앞으로 전국적으로 확산시킨다는 것이 베트남정부의 계획이다. 집집마다 과수원이 있어 태국 원산의 과일 홍시엔나무가 무성하고 그레이프프루트 장미꽃등 이른바 경제수목의 묘목이 심겨 있다.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홍시엔 나무 밑에는 사람의 머리털과돼지털등이 뿌려져 있는데 열매맛을 좋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또한 대부분의 집에서 닭 돼지 개등의 가축을 기르고 양어장이 있는 집도 보인다. 베트남의 농촌에 있는 연못은 물고기를 기르는 양어장이자 화장실로서 물고기들이 사람의 배설물을 먹으며 자란다.그러나 이 마을에는 농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진듯한 콘크리트 구조물의 화장실이 골목길에 따로 있었다. 전쟁영웅 출신이라는 이 마을 이장집에서는 마침 마을회의가 열리고 있었다.참석한 10여명의 마을 원로들은 대체로 준수한 외모와 품위를 지니고 있다.한반도 전체의 약 1.5배가 되는 면적에 남북간의 길이가 우리나라의 함경북도 나진에서 제주도를 잇는 정도인 1천5백㎞에 이르는 국토를 지닌 베트남에서는 사람들의 외모도 남북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듯싶다. 베트남에는 『임금님의 권세도 마을 입구에서 멈춘다』는 속담이 있을만큼 지방자치의 전통이 강하고 유교적 가족주의가 뿌리 깊어 공산주의 사회인데도 마을 원로들이 공동체 현안을 자치적으로 해결해 왔다고 한다.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인 이장집의 중앙에는 조상을 모시는 제단이 있고 제단 양옆으로 평상이 놓여 있다.왼쪽 평상옆에 손님을 위한 응접세트가 있어 그곳에서 마을회의가 열리고 있었다.평상이 바로 침실역할을 하여 방이 되는 셈인데 제단으로 공간의 구분이 이루어질뿐 벽이 없는 점이 특이하다.베트남 농촌의 가옥구조는 기본적으로 이런 형식이라고 한다. 중국의 북동쪽에 자리잡아 「동이」,서남쪽에 위치해서 「남만」으로 불리며 오만한 중국인들로부터 똑같이 오랑캐 취급을 받아온 한국과 베트남은 역사 문화 풍습등 여러면에서 유사점이 많다.우연하게도 두나라 다 삼국시대와 이씨왕조를 거쳤고 한자로 과거시험을 보았다.베트남 말 역시 한자를 뿌리로 하고 있어 「동서남북」을 「동 떠이 남 박」으로 읽는등 한자에서 파생된 비슷한 발음의 말들을 두나라 말에서 쉽게 찾을수 있다.근대에 들어서는 일본의 잔혹한 지배를 받는 경험을 공유하며 똑같이 냉전의 희생양으로서 남북분단과 동족상쟁의 비극을 겪는다.그러면서도 끈질긴 노력으로 한쪽은 통일을이루어내고 또 한쪽은 경제발전을 이루어 낸다. ○대로에 이발소 차려 통일은 됐으나 가난한 베트남은 지금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그 노력은 거의 폭발적인 힘으로 하노이 거리에서 분출되고 있었다.지난 90년 사유재산이 인정된 후 나타난 현상이라는데 『저렇게 모두 장사에 나서면 물건은 누가 살까』싶을 만큼 거리에 장사꾼들이 많다.길가에 좌판을 벌여놓고 돼지고기도 팔고 옷감도 팔고 주로 플라스틱과 양은 제품인 그릇도 판다.어엿한 가게도 안쪽은 텅 비워 놓고 집밖에 물건을 진열해 놓았다.물건이 많지 않은 탓이기도 하겠지만 가능한한 눈길을 많이 끌기 위해서다.심지어 빵 두개를 달랑 조그만 진열대 위에 올려 놓고 파는 사람도 있으며 자동차가 달리는 큰길가에 의자를 놓고 이발소를 차린 경우도 보인다. 하노이 시외로 나가 보아도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경제활동을 위해 이동중이다.시내버스가 없는 하노이의 주요교통수단은 자전거와 오토바이와 시클러(자전거로 미는 인력거)다.그러나 시골길에선 시클러가 보이지 않고 대신 물소 두 마리가 이끄는 짐수레가 보인다.그런데 물소가 끄는 짐수레는 물론이고 자전거와 오토바이도 뒷바퀴 양쪽에 짐을 가득 담은 광주리를 매단채 달린다.이런 활력이 가난한 베트남을 남루하게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베트남은 53개의 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가난한 성 가운데 하나라는 화빈성에서도 베트남의 여유를 볼수 있었다.하노이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화빈성은 산간지역으로 소수민족이 많이 산다.성인민위원회는 유니세프 방문단 일행을 위해 소수민족공연을 마련해 주었고 그 공연이 바로 베트남의 문화적 다양성과 풍부함을 보여주었다.베트남의 소수민족은 53개 종족으로 중국의 소수민족보다 2개종족이 적을 뿐이다.전체인구의 12%에 이르는 이 소수민족들의 춤이나 음악·의상의 다양함은 베트남문화를 살찌우기에 충분했다. 또한 화빈성에는 베트남 최대의 수력발전소가 지금 건설중에 있다.베트남 전국에 필요한 전력의 60%를 공급하게 될 이 발전소 건설의 자재는 한국의 현대건설이 공급하고 있다.수력발전소 건설은 거대한 댐을 만들어 냈고 2만여명의 주민이 이주해야 했다.그 결과 고립된 산간마을에는 다학급학교를 세우는 지혜로움도 베트남은 지니고 있었는데 화빈성 다박군 솜머리학교는 불과 16명의 학생을 위한 것이었다. ○“자전거위의 호랑이” 우리의 남다른 교육열이 오늘의 경제발전을 이룬 원동력이라고 하지만 베트남은 한국보다 더욱 어린이와 교육을 위한 투자에 열성인 듯싶다.전국단위의 어린이보호위원회를 구성하고 장관급을 위원장으로 앉혀 정부 주요부처와 같은 기능을 하도록 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베트남밖에 없다.또한 베트남은 「어린이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을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비준한 나라다.경제발전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도 정부예산의 40%를 교육 보건등 사회복지에 사용하고 있다.베트남은 미래를 위해 투자할 줄 아는 나라인 것이다. 우리가 지난 30년 사이에 이루어낸 경제발전을 베트남은 10∼15년 사이에 달성해 낼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그래서 베트남은 「자전거 위의 호랑이」로 불린다.그 가능성에 우리는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지금 일어서는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도 할 수 있다.그래야만 한국은 진정한 국제화를 이룰수 있으며 내일의 우리 살길도 거기서 배울수 있게 된다.그런점에서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첫번째 지원국으로 베트남을 선정한 것은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된다. 솜머리의 수몰지역 주민들은 우리일행을 신기한듯 구경하다가 눈길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었다.흑치의 한 할머니(베트남 여성들은 치아건강을 위해 이빨을 검게 물들였는데 지금은 사라져가는 풍습이라고 한다)는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끌고가 차를 대접하고 그들의 주식인 카사바(감자와 비슷함)를 듬뿍 싸주었다.또한 솜머리학교 어린이들은 우리 일행을 배 타는곳까지 배웅하고 파파야 열매를 한개씩 선물했다.비록 그들이 연평균소득 30달러의 가난속에 있고 대나무로 얼기설기 지은 초가지붕 흙바닥의 간이학교에서 공책도 없이 합판에 분필로 글씨를 써가며 공부하고 있을지라도 마음은 그렇게 풍요로웠다.
  • 새 제작방식 여는 KBS(국제화 앞서간다:25)

    ◎「가족」 시리즈 10개국 합작… 방송문화 교류/우리의 가부장제·입시 등 해외 “전파”/각국 문화특성·의식 다채롭게 소개/환경물·만화영화 합작도 추진… 방송기술 교환도 「인터내셔널 프로그램 컨소시엄­가족시리즈」. 한국방송공사(KBS)가 호주 캐나다 일본 등 10개국과 공동으로 제작한 다큐드라마 「가족」의 공식 명칭이다.이른바 「다자간 프로그램 공동제작」이란 제작 방식에 따른 것이다. KBS는 급변하는 방송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올해부터 다자간 제작에 적극 참여키로 전략을 세웠다. ○예산 절감 효과도 다른 나라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면서 선진방송 제작 기술의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고 최신 국제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다자간 제작방식은 여러 나라의 방송사들이 한가지의 주제 아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으로 시청자들 역시 한가지 주제에 대해 다양한 감각으로 해석된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 국제화·개방화 시대에 걸맞는 최적의 제작방식인 셈이다. 각국 방송사는일정한 포맷에 따라 프로를 제작한 뒤 외국에서의 방영을 위해 타임 코드가 기록된 대본(영어)을 다른 참가국들과 교환하게 된다. 참여 방송사는 1개만 제작하고도 다른 참여국에서 만든 프로를 모두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예산 절감의 효과가 있고 국제 시장에 공동으로 배포,판매 이익도 나누어 갖는다. 「가족」제작에는 한국의 KBS외에 코디네이트를 맡은 호주의 「필름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의 「TV 온타리오」,폴란드의 「폴리쉬 네트워크」,브라질의 「TV컬츄라」,일본 「NHK」,뉴질랜드의 「TVNZ」,홍콩의 「RTHK」,인도 「CEC」,러시아 「소비텔렉스포트」등이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간간이 있어 왔던 몇몇 외국 방송사와의 합작드라마와는 규모나 방식이 전혀 다른 매머드 프로젝트이다. ○호·가서 공동주최 유엔이 정한 「세계 가정의 해」에 맞춰 호주와 캐나다가 공동주최한 것으로 단순히 가정사의 애환을 담는 휴먼물의 성격이 아니라 이를 통해 각국의 문화적 특수성을 소개하고 공통의 의식을 교환하자는 기획의도를 가지고 있다. KBS는 지난 해 6월부터 제작협의를 가져 김덕기PD의 연출로 최근 55분짜리 국내분 제작을 마쳤다.전북 정주시에 사는 이강철씨(49) 가족을 통해 한국인의 가족애,전통적인 가부장제의 변화모습,한국의 대학입시문제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있다. KBS는 「가족」외에도 독일 등 유럽 전지역 방송국들과 함께 「희망을 가질 권리」(The Right To Hope)란 프로의 공동제작을 협의중이다. 이 프로는 예술 문화 환경문제를 다루는 10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총 50부가 제작될 예정이다. 최근에는 호주 브리즈번TV로부터 아·태 지역국가 어린이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게 될 「어린이 세계 매거진」의 제작에 참여해 달라는 제의를 받고 긍정적으로 검토 중에 있다. ○「공자전」 제작논의 어린이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생활환경·얼굴색·환경·문화 속의 어린이들을 보면서 국제화의 감각을 배우고 세계인으로서의 자질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각 아이템의 길이는 4∼5분으로 각국 어린이들의 취미·축제·학교생활·자연 생활 등을 보여주게 된다. KBS는 또 일본 NHK,대만PTV와 함께 어린이들에게 동양의 근본사상을 일깨워 주는 만화영화 「공자전」도 공동제작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중이다. ◎대외협력부 차명희부장/“「우리모습 알리기」도 개방화 과제”/수준높은 외국프로 통해 국제감각 수용 한국방송공사의 방송 관련 국제교류 전반에 관한 창구 역할을 하는 KBS대외협력부의 차명희부장은 KBS가 공영방송이란 것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며 일을 한다.방송교류는 제작활동을 알리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사회등 전반을 외국에 알리는데 방송이 가장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방송 매체의 영향력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될만큼 위력적입니다.우리를 이해시키는 가장 빠른 지름길도 그 나라 방송에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을 방송하도록 하는 것입니다.우리 문화와 풍습,한국인들의 참모습을 이해하고 있다면 한국의 위상도 높아지고 따라서 우리 상품도 훨씬 가깝게 느낄 것입니다』 국제화·개방화 시대의 국가경쟁력은 한국을 충분히,그리고 올바르게 세계 각국에알리는데서 출발한다는 것이 차부장의 평소 생각이다. 지난 1월초 러시아 오스탄키노방송을 통해 KBS가 제작한 8부작 역사드라마 「원효대사」를 방송하고,중국 연변에 「TV유치원」을 정기적으로 방송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추진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외협력부의 업무도 초기 ABU(아시아·태평양 방송연맹) 회의참가 등 공식적인 대외 교류와 국제 협력에만 치중했던 것에서 벗어나 프로그램 교류,방송인력 교류,국제프로그램 경연대회 참여,다자간 프로그램 공동제작등 실무적인 차원으로 바뀌고 있다. 차부장은 『프로그램 교류나 시작 단계인 다자간 공동제작 등을 통해 우리 방송인들이 선진 외국의 방송제작 노하우를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청자들도 제대로 만들어진 수준 높은 외국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안방에서 국제감각을 익힐 수 있다』면서 『우리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동시에 쉽게 선진 외국을 배울 수 있도록 국제교류의 질과 방향을 전환할 필요성을 절감한다』고 덧붙였다. KBS에 대외협력부가 생긴지 3년째.국제화의 흐름속에 가장 바빠진 부서가 됐지만 이제서야 제 몫을 하는 것 같다고 한다.
  • 미국에도 효도바람이(뉴욕에서/임춘웅칼럼)

    우리나라에 나와살고있는 외국사람들,특히 미국사람들에게 한국의 좋은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대체로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풍습이라고 대답한다. 서로 떨어져 살다가도 명절이되면 부모를 찾아 인사드리고 한집에 살더라도새해 첫날이되면 잘차려 입고 부모에게 세배하는 풍속이 여간 신기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한집에 사는것도 그들에겐 이색적인 모습이 아닐수 없다. 그중에서도 자식들이 모여 부모의 회갑잔치(요즘에는 부모들이 사양을 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지만)를 차려드리는 관습엔 매료되는 경우가 흔하다.그래서 한국에서 꽤 살았다 싶은 외국인 가운데는 고국에 사는 부모를 모셔다 한국식으로 회갑잔치를 열어드리는 예가 적지않다.서울의 이름께나 있는 사진관이면 커다란 키에 사모관대 차림을한 서양노신랑과 족두리를 비스듬이 올려놓은 백인노신부의 어색한 모습을 찍은 사진한장 걸어놓지 않은 집이 없을정도가 돼있는 까닭이다. 서양사람들이 우리의 그런 풍습에 유독 관심을 갖는 것은 우선 그들 사회엔 없는 이색적인 풍경인 때문이다.그리고 그들은 그런 우리양속을 통해 자신들과 부모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기때문이라고 말한다. 서양사람들은 왜 우리와 같은 풍습을 갖고있지 않은것일까.그들이 자식을 낳아 길러 자립할수 있으면 내보내는 자연의 법칙에 보다 충실하게 사는것이라고 말할수도 있을것이다.그러나 무엇보다 그렇게된 큰 이유는 자식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수 있는 사회보장제도가 발전해있는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자식을 따라 미국에 이민온 한국의 많은 노부부들이 자식과 함께 살려하지 않고 나가살려고 하는 추세에서도 알수있다.미국정부에서 주는 보조금만 갖고도 노부부가 살수있기 때문이다.그러니까 자식이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는 측면보다 부모가 자식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측면이 더 크다고 할수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미국인의 가치관을 조사한것을 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와있다.1천2백명의 성인을 대상으로한 이 조사에서 「부모에대한 공경」을 최대의 덕목으로 여기는 응답자의 비율이 전체의 47%에 이르고있다.이는 같은 조사기관이 지난 89년 실시한 조사결과에서보다 9%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자녀를 존중하는것」을 최고 덕목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43%,「가정이 대부분의 기본적인 가치를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곳」이라고 믿는 사람은 84%나 되고있다.가정의 가치와 관련된 이런 수치는 모두 수년래 5∼10%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미국에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여러가지 연구가 시도되고 있다.그러나 우선은 「더좋은 집과 더좋은 물건을 갖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람들의 비율이 같은기간 36%에서 26%로 현저히 떨어진데서 볼수있듯이 미국에 물질주의가 쇠퇴해가고 있음을 알수있다.고도의 물질주의,개인주의에서 오는 사회적 병폐에대한 반성의 흐름이라 할수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물질주의,그 개인주의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고 있다.
  • 산불(외언내언)

    걱정했던대로 올봄에도 산불이 크게 번지고 있다.지난 일요일(27일)강원도를 비롯,부산 경남북 전남등 전국에 걸쳐 산불이 나서 90㏊가 넘는 임야가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등산객이 많은 일요일에 산불은 자주 발생하는데 지난 일요일은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모처럼 화창한 날씨여서 산을 찾은 사람이 특히 많았다.그들이 부주의하게 버린 불씨가 산불을 일으킨것이다. 해방후 꾸준히 펼쳐 온 치산녹화사업의 결과 우리 산하도 이제 산림이 울창하다.지난 가을 떨어진 낙엽이 융단처럼 부드럽게 깔리고 새싹이 돋기전의 나뭇가지가 서로 어깨를 비비고 있는 산자락에 작은 불씨가 떨어지면 불길은 금방 번진다. 더욱이 「여우불」이라 불리는 봄 불은 활활 타면서도 여우가 둔갑한듯 불꽃이 보이지 않고 번져 나간다.한식을 냉절 또는 숙식이라고 하여 묘제에 더운 음식을 차리지 않는 우리 풍습은 그런 여우불을 경계한 선인들의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우불이 무서운줄 모르는 사람들이 산에서 담배를 피우고 버너를 피운다.지정된 장소가 아닌 산에서의 취사는 금지돼 있는데도 바로 금지팻말 아래서 버너를 피우고 밥을 한다,고기를 굽는다 법석을 떠는 낯 두꺼운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산불 취약지구의 입산금지를 확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산불은 30∼40년의 노력의 결과를 하룻밤에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지난 일요일의 산불에서도 30년생 소나무가 몇만 그루 잿더미화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평생 목재사용량은 31㎥로 50년생 소나무 91그루에 해당한다.우리 국민들이 목재를 자급하기 위해서는 일생동안 누구나 최소한 1백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하는것이다.아무리 열심히 나무를 심어도 산불이 나면 목재의 자급자족은 어려운 일이 된다.
  • “경조비 없어져야” 32%/서울·신도시 9백명 설문조사

    ◎“꼭 필요할때만 하자” 60%/“연 60만원이상 지출” 최다 계절에 상관없이 날아오는 결혼 청첩장과 상가방문에 지출되는 경조사비의 과다 지출로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한국부인회가 서울과 신도시 거주자 및 공무원·기업체 임직원등 9백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했던 「경조사 비용지출에 관한 설문조사」결과로 경조사비의 지출로 부담감을 느끼냐는 질문에 70%가 다소 부담이 된다,20%가 부담이 매우 크다고 응답해 90%이상이 경조사비로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조사대상의 35%를 차지했던 연간 총수입 1천5백만원 이상의 고소득층이나 7백만원 이하의 저소득층(12%)양쪽 모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지출되는 경조비의 총금액은 60만원 이상이 제일 많아 26%를 차지했으며 다음은 30만∼40만원이 18%,20만∼30만원과 20만원 정도가 각 15%,40만∼50만원선이 14%순으로 집계됐다.부담을 느끼면서도 많이 지출하는 이유로는 47%가 상부상조하는 풍습이라서,25%는 자신이 경조사를 당했을때에 대비해서이며 체면유지를 위해서 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16%,남들이 하니까 한다도 10%나 됐다. 주위사람들의 경조사에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는 이런 풍습에대해 매우 좋은 풍습으로 계속 지켜져야 한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5%에 불과한반면 60%가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였고 18%는 좋은 의미가 퇴색되어버린 만큼 없어져야 한다,14%가 불필요한 관습이라고 응답,32%는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경조사비와는 무관하나 연말연시나 중추절에 부모나 친척 직장상사 은인을 찾아뵐때도 36%가 5만원 이상,26%가 3만∼5만원을 들인다고 응답했는데 이런데에서도 58%가 다소 부담을 느끼며 11%는 부담이 크다고 대답한데비해 부담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31%에 불과,마음에도 없는 체면치레의 인사가 너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 티베트 서쪽끝 피앙·동가지역/대규모 불교석굴유적 발견

    ◎벽화·고대문자 등 「돈황」 버금/실크로드 주요거점 추정… 역사 바뀔수도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티베트지역은 라마불교가 융성한 곳으로 수많은 불교유적이 널려 있는 곳이다. 이 티베트의 서쪽 끝 「피앙」과 「동가」지역 뒷산에서 2년전 새로 발견된 대규모 불교석굴유적이 티베트,더 나아가 아시아 불교문화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풍부한 유적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중국불교사학계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 서안의 진시황릉처럼 아주 우연하게 발견된 이들 유적은 해발고도가 4천m나 돼 지금까지 발견된 석굴유적으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티베트의 성도인 라사로부터 2천여㎞ 떨어진 곳으로 차로 1주일이나 걸리고 도중에 해발 5천∼6천m의 고지대를 넘어야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발견 2년이 지났지만 본격적인 탐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들 유적은 중국문헌등에 단 한줄도 언급이 없는 곳이어서 50년전 티베트지역을 답사한 이탈리아나 최근 이지역을 조사한 중국의 학술탐험대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곳이다. 뒤늦게 발견된 만큼 보존상태도 양호하다.특히 티베트인들은 사원을 중창할 때마다 원본위에 개칠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곳 유적들은 후세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은 것으로 조사돼 제작당시의 면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이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석굴의 구조는 주로 정사각형의 바닥에 돔형 천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천장 중심에는 만다라를,주위에는 불상과 보살상,불교설화와 석가모니의 수행등 고사를 그린 벽화를 배치해 돈황석굴과 비슷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채색벽화에 등장하는 동물그림에는 간다라미술,불교고사는 인도예술의 영향을 짙게 받은 듯하다.하늘을 날아오르는 인물은 갈색피부에 털이 많이 그려져 있어 남방계 사람인 것이 완연하다.다양한 문화가 녹아 있는 것이다. 특히 비파와 비슷한 악기를 연주하는 마두인체상은 현대의 로큰롤 연주자 못지 않게 경쾌하게 그려져 있어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또 석가모니생애도나 불교고사도에는 고대티베트문자가 빽빽하게 씌어있고불탑아래에서는 다량의 불교경전도 발견되고 있어 문자사료가 해독되면 석굴의 축조시기나 당시의 사회 문화상에 대해 자세한 내용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사천대학의 곽외교수는 『석굴유적을 살펴 본 결과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티베트 서쪽끝인 이곳도 실크로드의 주요거점이었던 듯하다』고 말한다. 중국 중앙미술학원의 불교미술사학자인 김유낙교수는 『처음 사천대학의 보고를 받았을 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면서 『풍부한 문자기록,후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채 생생하게 보존돼 있는 벽화등등 돈황못지 않은 세계적인 유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
  • 세계사밖의세계사/역사교육자협의회엮음(화제의 책)

    ◎중동·아프리카의 역사·문화 소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동과 아프리카를 「세계문명의 발상지」로 기억하기 보다는 웬지 미개하고 비합리적인 문화를 가진 지역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터반과 차도르,또는 나체에 가까운 복장이 그렇고 일부다처제의 풍습,끊이지 않는 종교·인종간의 분쟁등이 그같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지역 주민들은 농경과 철기문화를 전세계에 퍼뜨리는등 인류문명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현재 그들이 보여주는 「야만적」문화에도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갖고 있다. 이 책은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역사·문화등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100문 100답」이라는 읽기 쉬운 형태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19세기이후 이 지역의 역사흐름이 강조됐다. 채정자 옮김 비안 6천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