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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속학자 주강현씨 「우리문화의 수수께끼」 출간

    ◎주눅든 우리문화를 위한 향변/금줄의 의미·여성 배꼽노출 기피 이유 등 다뤄/“서구우월주의적 편견·자기비하 버리자” 일침 금줄 없이 병원에서 태어난 세대가 금줄문화가 무엇인지 알까.배꼽티를 입는 세대가 조선시대 여인네가 가슴은 훤하게 드러내도 배꼽만은 가린 이유를 알 수 있을까.서구문화의 홍수속에 우리 문화,우리 것에 대한 정체성이 날로 흐려져가고 있는 요즘,숨겨진 우리 문화의 원형을 더듬는 전통문화독본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민속학자 주강현씨(42)가 민족문화의 현장을 골골샅샅 누비며 쓴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한겨레신문사 출판부 펴냄). 「씌어지지 않은 문화」의 진실을 통해 우리 문화의 전체상을 조망하고 있는 이 책은 우리 문화가 지난 한세기동안 지나치게 서풍에 주눅들어왔음을 고백한다.한 예로 우리가 개고기를 먹는 풍습은 세계 음식문화사적 견지에서 보면 결코 흠잡힐 일이 아닌데도 괜히 자격지심을 갖는다는 것.원숭이 골,송아지 태반,말고기 내장,심지어 곤충을 즐겨 먹는 민족도 많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매미를 즐겨 먹었다는 일화까지 일러주고 있는 저자는 서구우월주의의 관점에서 재단한 「문명과 야만」이란 한갓 부질없는 편견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이렇듯 저자는 「문화의 신토불이론」을 내세운다.하지만 「우리 것은 모두 아름답다」는 식의 눈먼 쇼비니즘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21세기 새로운 문화파동의 바람이 예고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모두 「문화의 테러리스트」가 되어야 한다.우리 문화에 대한 근거 없는 자존심 세우기도,불필요한 자기비하도 모두 테러의 대상이다.있는 그대로 자기 것을 갈고 지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이 책은 우리 민족의 의식과 생활속에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 문화현상 15가지를 엄선,마치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아기가 태어났음을 뭇사람에게 알리는 첫신호로,혹은 신성구역임을 표시하는 징표로 사용된 금줄.벼농사지역에서는 새끼줄,짚이 귀한 섬에서는 칡덩굴,유목문화권에서는 말총 등 그 재질은 다양했지만 왼쪽으로 꼬는 것만은 철칙이었다.왜 하필 비일상적인 왼새끼여야만 할까.『왼새끼속에는 부정을 막아주는 금기와 신성성이 깃들여 있다.잡신이 혹 침범해도 왼새끼의 「도발적 시위」에 혼비백산한다.이로써 제의공간은 순결성을 지키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배꼽문화의 역설」을 다룬 글 또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구한말 외국인이 찍은 사진을 보면 저고리와 치마말기 사이로 가슴을 드러낸 서민여성의 모습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그러나 배꼽노출은 어떠한 경우에도 상상하기 힘들었다.배꼽이 드러나는 유일한 놀이인 양주별산대 애사당놀이에서도 여성역할은 정작 남성이 대신했다.새 생명의 상징 혹은 「혁세사상의 그릇」으로서의 배꼽이 다분히 신성불가침이었던 데 비해 「다산의 상징」으로서의 젖가슴노출은 차라리 예사로운 일이었던 것이다. 이밖에 우리민족의 흰옷선호사상과 관련,『고려가 몽골족에 망하면서 조의를 표하기 위해 흰옷을 입기 시작했다』(도리야마 기이치)거나 『흰옷은 조선민족이 겪은 고통이 한으로 맺혀진 것이다』(야나기 무네요시)는 식의 일제 식민주의자의 가당찮은 주장을 비교문화사적 접근을 통해 반박하고 있는 저자의 역사감각도 주목할 만하다.〈김종면 기자〉
  • 건강한 장수는 건강한 치아에서(박갑천 칼럼)

    홍순호치,명모호치라고 했다.빨간 입술에 하얀 이,맑은 눈망울에 하얀 이라는 뜻.그건 건강의 상징이면서 미인의 조건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얀 이 얘기를 꺼내고 보니 고대중국의 기서 「산해경」의 검은 이나라(흑치국)가 생각난다.해경 해외동경편과 대황동경편에 보이는데 이가 옻처럼 검다고 적어놓았다.이와함께 덩달아 떠오르는 것이 일본의「오하구로」(□치흑).이를 까맣게 물들이는 풍습이었다.상고시대에는 상류사회 부인들 사이에서만 유행했는데 헤이안(평안)시대로 오면 상류사회 남성도 본뜬다.그게 차츰 서민사회로 번져난다.무로마치(실정)시대에는 9살여성이 성년된 표시로 했고 17세기이후 기혼여성의 표상으로 되면서 근세까지 이어져 내렸다.까닭이야 있었다해도 섬뜩한 느낌 주지 않았을까. 백제의 장군에 흑치상지가 있다.검은 이와 관계가 있었던 것일까.그러나 을지문덕의 「을지」가 토박이말 「울치­울기」의 한자표기였던 것과 같이 「흑치」 또한 「검치­금치」의 한자표기 아니었을까 짚어본다.신라3대왕 유리이사금얘기도 이와 관계된다.유리가 덕망높은 석탈해(나중에 4대왕이 됨)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을때 사양하던 탈해는 『성스럽고 슬기로운 사람은 이가 많다하니 알아보고 정합시다』 한다.두사람이 떡을 씹었는데 유리의 잇금(치리)이 많은지라 그를 임금으로 받든다는 것이 「삼국사기」의 기록이다.그러나 이는 「임금을 잇는다」는 뜻의 「닛검­잇검­잇금」이라는 토박이말을 한자로 표기하면서(니사금·니질금·치사금·치질금)만들어낸 설화였다고 봄이 옳을 듯하다. 구강보건주간(6월9일∼15일)을 앞두고 서울시 치과의사회가 각계의 건치인들을 뽑았다.거기에는 브라운관으로 낯이 익은 연예인·체육인도 들어있어 흥미를 끌게 한다.내려오는 말 그대로 건강한 이를 가진 사람은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하다.그뿐인가.이가 지나치게 흰건 돌계집(석여)상이라는 말이 있긴해도 앵도같은 입술속의 백옥같은 이가 여성의 매력점으로 된다는것은 사실이다.그옛날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이 젊은 여성선교사 아폴로니아의 이를 깡그리 뽑아죽였던 것은 그의 예쁜이를 시새워서였던 것일까.그렇게 순교한 아폴로니아는 지금껏 이의 성자로 받들리고 있다. 건강한 이를 지니기 위해서는 그만큼 관리를 잘해야한다.깨끗이하면서 먹는것 마시는 것에도 마음쓸 일이다.건강한 이가 건강한 장수의 바탕임을 느껴야겠다.〈칼럼니스트〉
  • 일본 양정의 3가지 비결/최택만 논설위원(경제평론)

    일본은 쌀의 효율적인 수급조절과 합리적인 가격제도 및 「주곡지키기」의지가 양정의 기둥을 형성하고 있었다.일본 식량청은 쌀이 남아돌자 올해 쌀재배면적을 줄이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쌀값 안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수입된 쌀은 공업용으로만 쓰겠다는 정책의지를 견지하고 있었다. 지난주 일본 식량청과 농촌을 방문한 필자는 일본정부의 양정을 보고 들으면서 부러운 느낌이 들었다.일본은 연간 쌀소비량이 지난 63년 1천3백41만t을 피크로 하여 감소하기 시작,지난 95년에는 1천40만t으로 줄었다.1인당 쌀소비량으로 환산하면 63년 1백18㎏에서 95년에는 69㎏으로 감소했다. 반면에 쌀생산량은 단수증가로 인해 67년부터 3년연속 1천4백만t의 높은 수준을 기록했고 95년에는 쌀감산정책에도 불구하고 1천75만t을 생산,잠재적 생산력이 소비량을 상회하고 있다.일본은 10a당 생산량이 65년에 4백㎏을 돌파했고 95년에는 5백㎏으로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일본의 경우 쌀소비량은 급격히 감소한 반면 생산량은 크게 늘자 지난 71년부터 쌀생산조정대책을 실시했다.일본은 71년부터 75년까지 5개년동안 쌀농사전환대책을 추진,쌀재배를 다른 작물재배로 바꾸는 전환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그 후에도 쌀자급에 중점을 둔 논종합이용대책(76­77년),구조개선을 내용으로 하는 논이용재편대책(78­86년 3기로 나누어 실시)등 쌀생산에 관한 중단기대책을 수립하여 쌀의 수급을 조정해 왔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시작된 다음해인 지난 87년부터 92년까지는 벼농사의 생산성향상·윤작농법의 확립·계획생산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논농업확립대책」을 수립,본격적으로 쌀감산정책을 추진했다.쌀농사의 다른 작물로 전환은 행정당국과 농업단체가 협의하여 결정하고 휴경지에 대한 보상을 실시하는 등 강력한 감산시책을 추진했다. 또 정책당국은 쌀감산정책과 쌀가격안정대책을 병행해서 추진했다.즉 생산과 가격을 한 고리로 엮은 양정은 일본농업의 미래를 받치고 있는 양대비결이 되고 있다.이 나라는 지난 94년 주요식량수급과 가격의 안정에 관한 법률(신식량법)을 제정,쌀수급 조절과 가격안정을 위한 법적장치를 완벽하게 마련했다.이른바 쌀의 「계획생산」개념을 도입하는 한편 과거 50여년동안 시장수급과는 관련이 없이 정부수매가격에 의해서 결정되던 쌀가격정책을 자유시장기능을 가미한 정책으로 전환했다. 일본이 세계무역기구가 정식 출범하기 바로 한해전에 식량관리법을 폐지하고 신식량법을 만든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이보다 앞서 지난 89년에 우루과이라운드타결에 대비,정부와 긴밀히 협조하면서 쌀유통을 전담하는 법인의 설립작업에 착수한 것은 더욱더 관심을 갖게 한다. 일본은 재단법인 자주유통미가격형성센터를 90년 설립,종래 시중에서 유통되던 자주유통미를 이 기구를 통해 유통되게끔 하고 있다.이 센터는 미곡협회,전국농업협동조합,전국주식집하협동조합,전국식량사업협동조합,전미상연협동조합 등 쌀관련 단체가 출자하여 설립된 일본 특유의 유통조직으로 가격의 안정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센터는 농민이 생산한 자주유통미를 입찰에 부쳐 경락시키고 있다.이 센터의 경락가격은현재 전체 쌀값을 좌우하는 지표가 되고 있다.또 이 센터는 가격의 상하한 진폭을 만들어 그범위내에서 가격이 형성되도록 하는 등 쌀값안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특기할만한 일이다.가격진폭은 전년도 평균가격을 기준으로 하여 ±10%의 범위내에서 입찰이 행해지도록 하고 있다.엄밀히 말하면 일본정부는 이 센터를 이용하여 쌀가격을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양정의 또하나 비결은 식량당국과국민이 어떻게 해서든지 자국의 쌀농사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이다.일본식량청 다가하시 마사유기(고교정항) 청장은 『쌀은 일본의 풍습과 문화 및 일본인의 정신과 감정이 복합적으로 혼합되어있어 단순히 경제적 관점만으로 볼 수가 없다』고 밝혔다. 다가하시 청장은 『일본인은 외국쌀을 도입하는 것을 일본쌀의 신선미를 침범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민감정과 국제협약을 조화시켜 행정을 처리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3년전 흉작으로 인해 외국쌀 2백60만t을 수입했으나 소비자들이 맛이 없다고 해 판매에어려움이 많았고 작년과 올해 초 캘리포니아 쌀 등 42만t을 수입했으나 판매되지 않아 창고에 보관중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은 식량정책당국의 미래지향적인 양정과 국민의 감성이 한데 어울려 주곡인 쌀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그런데 우리나라는 과연 쌀을 자급할 수가 있는 것인지, 또 우루과이라운드협정에 의해 매년 일정량을 수입할 수밖에 없는 외국 쌀에 대해 국민들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일란 다하여라”(박갑천 칼럼)

    옛날에는 시묘풍습이 있었다.어버이가 돌아가면 상주가 묘서쪽에 여막을 짓고 3년동안 모셨던 일이다.윤국형의「문소만록」에는 고려말 정몽주가 한이후 조선조로 와서도 효심 깊은 사람들이 본받았다고 써놓고 있다.시묘하는 효성에는 호랑이가 감동한다는 설화도 적잖다.상주와 친구가 돼주면서 등에 태워 심부름도 가고 기운 잃지않게 산짐승을 잡아다 바치기도 한다. 설사 시묘는 않더라도 부모상을 당하면 3년동안 검소하게 살아야 했다.먹는 것도 죽 뿐이니 애통함과 영양부족으로 죽는 경우도 생겼다.유몽인의 「어우야담」에 그런 얘기들이 적혀있다.영의정을 지낸 홍섬도 그런사람.그는 어머니가 아흔이 되자 돌아갈날에 대비하여 미리부터 먹는 것이 가년스러워졌다.3년상을 치르자 이내 죽는다. 유극신도 그렇게 죽고 필자 유몽인의 생질인 최은도 어머니 여의고서 비실비실 죽는다.그걸 해망쩍다고 탓할 일이겠는가.그래서 정승지낸 정광필이『우리집은 효자를 원치 않노라』고 말함으로써 성현한테 죄를 지었다는 비난도 일었던 모양이다.하지만 이 얘기를 소개하는 유몽인은 『부모된자 이 말이 없지못하리라』면서 정광필을 편들어주고 있다. 「지나친형식」이라는 시비가 따를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효의시절이 있었다.이색도 그의「목은집」에서 휴가(상을 치르게하면서 조정이 주는 말미)가 끝나자마자 바로 『공무를 보았다』고 자탄하고 있는데 하물며 오늘날 부모상 때문에 공무를 오랫동안 젖혀둘수 있겠는가.다만 시묘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까닭은 효의 정신이 희미해져 있는 오늘을 되돌아 보자는데 그뜻이 있을 뿐이다.공원묘지의 어버이 누운자리를 묻고선 가보지 않았다는 얘기도 듣는 세태 아닌가. 「효경」에는 오형의 종류는 3천가지이지만 그죄에 있어서는 불효보다 더 큰게 없다고 써놓고 있다.「부모은중경」은 그「큰죄」에 대한 징벌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아비무간지옥에서 무쇠뱀과 구리개에 의해 받는 고통등등….그건 믿거나 말거나로 친다더라도 효를 그렇게 공리적 눈길로 볼일은 물론 아니다. 8일은 어버이날.카네이션 달아드리는 날이 아니라 3백65일이 이날 같아야 한다는 뜻을 갖는 날이다.『어버이 살아신제 섬길일란 다하여라/지나간후면 애닯다 어이하리/평생에 고쳐 못할일이 이뿐인가 하노라』­송강정철〈칼럼니스트〉
  • 음주살인(외언내언)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경구가 있다.술이 사람을 마시는 단계는 인사불성,억제력의 상실,필름의 단절로 이어진다.대취한 다음날 술이 깬 뒤 가물가물한 기억속에 만용과 망언에 대한 술꾼들의 후회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공자는 예기에서 「술과 음식은 기쁨을 함께 하는 것」이고 「노인을 봉양하며 병을 낫게 하는 것」이라고 예찬하고 있다.술의 효능을 설명한 말이다.그러나 술이 사람을 마실 지경에 이르면 패가망신의 도구가 된다해서 선인들은 경계해마지 않았다. 대학 입학시즌이 되면 죽음을 부른 대학가의 음주풍속이 보도되곤 한다.얼마전 대전에서 신입생환영회에 참석했다가 선배들의 강요로 과음한 학생이 목숨을 잃었는데 보름만에 이번에는 인천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했다.동아리모임에서 소주 2병을 마시고 신입생이 숨진 것이다.귀중한 인명을 빼앗아가는 신입생환영회의 「술먹이기 풍습」은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냉면그릇에 2홉들이 소주 2병을 가득 부어 신입생들에게 강제로 돌린다.이른바 「사발식」이라는 거다.상대방의 주량에 상관없이,여학생에 대한 예외도 없는 무차별 방식이다.젊은이다운 낭만도 멋도 없는 사생결단의 드라이한 음주문화다.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볼 수 있었던 하이델베르그대학생의 낭만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시정이나 낭만은 커녕 살인예비의 음모를 꾸미는 것처럼 살벌하다.이 해괴한 풍속이 어디에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황폐한 신세대의 내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신입생 술먹이기」는 가혹행위이며 일종의 괴롭힘이다.거기에는 문화적 전통성도,지성적인 어떤 의미도 함축되어 있지 않다.일제군대의 신고식따위가 되살아난 것이 아닌가 싶다.어떻든 그것의 폭력성과 야만성은 대학가에 어울리지 않는 반지성적 행패다.자유와 방종을 전매특허로 내세우는 신세대들이 과음·폭음을 남성다움의 호기로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그것은 호기가 아니라 무지한 치기에 불과하다.〈반영환 논설고문〉
  • 임석재 민속동요/장욱진·방혜자 그림(화제의 책)

    ◎민속학 태두가 평생 수집한 동요 3백여 수 한국 민속학의 태두인 임석재옹(93)이 평생 수집한 동요 3백여수를 묶은 전집.전래동요가 대부분이지만 50년대 이후 만든 것도 여럿 들어 있다.80년대초 발간했던 내용중 빠진 것과 새로 발굴한 것을 이번에 추가했다. 마치 할아버지·할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처럼 정겨운데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사투리의 맛깔스러움이 그대로 살아 있다.더욱이 사라져 가는 우리 풍습과 옛이야기를 담아 자라는 세대에게 교육적 효과도 클 것으로 보인다.설·추석·대보름·단오 등 절기에 따른 풍습과 모내기·보리타작·절구질 등 농어촌 사회의 생활상이 생생하다. 희망찬 미래를 노래한 「날이 샜다」,농촌을 배경으로 일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씨를 뿌리자」,자연의 변화·아름다움을 노래한 「봄아 어서 오너라」,힘든 가을걷이가 끝난 뒤 내년을 기약하는 노래를 모은 「봄비가 오면」 등 네권으로 구성됐다. 삽화를 그린 고 장욱진화백이나 프랑스에서 활약하는 방혜자씨는 모두 한국화단이 자랑하는 대가들.어린이가 그린듯한 간결한 그림이 동요집 분위기에 잘 어울릴뿐 아니라 그 자체가 감상거리가 되고 있다. 고려원미디어 각권 5천원.
  • 전북 순창 남계리 돌장승(한국인의 얼굴:66)

    ◎연지·곤지 찍고 수줍은듯 내민 혀/넓다란 눈두덩에 타원형 눈동자는 독특 전북 순창은 교통의 요지로 평야지대에 자리잡은 고을이었다.그래서 농업생산의 중요한 터전이 되었지만 지정학적으로는 도읍지에서 먼 변방이었다.또 거기서 흙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은 노동의 고뇌를 곱씹는 가운데 보다 나은 삶을 고대했다.그들은 우선 자신들 삶의 터전이 축복받는 땅이기를 갈구했는지 모른다. 오늘날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에 남아있는 돌장승에서 그런 사연을 읽을 수 있다.이 돌장승은 순창읍에서 남원으로 가는 도로로부터 1백여m 떨어진 둑에 서 있지만 본래의 자리는 옛 길가였다.순창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을이 평야지대에 자리한 탓에 북방이 허해서 기가 흐트러진다는 생각을 했다.그래서 허한 곳을 막아주는 비보의 필요성을 느낀 사람들은 동쪽과 북쪽에 돌장승을 세웠다.그러니까 동쪽의 장승이 남계리 돌장승인 것이다. 이 돌장승은 선돌(입석)모양의 자연석을 곧추세운 형상을 했다.돋을새김으로 돌 표면에 얼굴과 손을 만들었다.키는 1백75㎝나 되어 꽤 큰 편이나 새김글씨가 없어서 언제적 장승인지는 알 길이 없다.그저 허한 곳을 막아주는 비보장승 정도로 이해할 뿐 애력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래도 값어치가 높게 인정되어 이웃 충신리 돌장승에 바로 이어 국가가 중요민속자료 102호로 지정하는 등 제대로 대접을 받고있다. 이마에 제법 크게 릴리프한 동그라미 백호가 인상적이다.불교요소가 습합한 돌장승은 확실하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이름은 구전하지 않았다.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더러 돌장승에서 미륵신앙을 곁들이는 것으로 보아 이 돌장승 역시 미륵신앙의 요소가 깔려있을 것이다.자고 깨면 고된 농사일이 기다릴 뿐 어떤 신분상승을 기대할 수 없었던 평야지대의 농민들.장차 세상 땅에 내려올 것이라고 믿은 미래불 미륵의 하생은 그들의 희망이자 염원이기도 했다. 이 돌장승은 백호 말고도 양쪽 볼에도 돋을새김한 큰 점이 있다.여인이 마치 연지를 찍은 것처럼 보였다.양볼의 점을 연지로 본다면 이마의 점은 곤지로 여겨도 좋을 것이다.오늘날도 더러 치르는 전통혼례 때 신부화장에 나타나는 연지곤지를 찍은 것 같은 희한한 얼굴이다.하기야 고구려 벽화무덤인 평북 용강 쌍영총채색 그림에도 연지화장한 여인들이 등장한다.그러고 보면 조선시대 돌장승에 연지 흔적이 보인다고 해서 깜짝놀랄 일은 아니다. 눈두덩은 아예 넓고 길게 자리를 잡아놓고 약간 튀어나오게 돋을새김했다.그리고 나서 눈두덩 안에 오목새김으로 타원형 선을 그었다.타원형의 선각이 눈동자다.이 장승의 눈은 양볼의 점과 더불어 다른 지역 대부분의 장승과 구분되는 독특한 표현양식인 것이다.돌장승은 혀를 날름 내밀었다.턱은 둥근 선을 둘러 표시하고 그 밑에 주름 두 개를 더 잡았다.손가락 다섯 개가 분명한 추상적인 손,엉뚱한 자리에 부호처럼 새긴 발바닥은 매력적이다. 옛날에는 정월대보름날 장승고사를 지냈다.요즘은 고사풍습도 사라져버려 거저 허한 구석을 막아주고 있다.
  • 「함값 이라니」(외언내언)

    「함값」이라는 것이 신혼여행중인 신부를 투신사시키고 말았다.이미 살림을 하던,임신 6개월이나 된 「신부」가 너무 성급하게 군 것같아 그 행동 자체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죽했으면 그랬겠는가.남편의 당찮은 추궁에 억장이 무너져 충동적으로 몸을 던졌을지도 모르겠다.어렵사리 결혼식을 올린 가난한 신부에게 50만원이요 60만원이요 하는 「함값」은 강도를 만난 것만큼 어처구니없고 암담한 일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함값」풍속이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하는 일이다.본디 함이란 신랑의 사주단자를 색시집에 보내면서 청홍상의 치마 한감씩을 신부를 위해 상자안에 함께 넣어 보내던 것이었다.그 함을 지고가는 사람은 대개 신랑집 「아랫것」이거나 그에 준하는 사람이다.심부름꾼이기는 하지만 새로 맞는 시댁서 오는 사절의 하나이므로 신부집에서는 그 함진아비에게 노자를 조금 찔러준다. 이런 인심을 더 자극하기 위해 함진아비들은 티를 낸다.얼굴에 환칠을 하고 한둘이 어울려 『함사려!』를 외치며 실랑이를 벌이는 척하면어려운 사돈집 아랫사람에게 인심을 잃지않기 위해 좀 후하게 대접한다.그것이 전부였다.신분제도가 없어진 오늘에 이르러서는 신랑친구들이 그걸 대신하게 됐다. 그런 전통 풍속이므로 지나친 돈을 요구하거나 우려먹는 짓 따위는 도무지 말이 안된다.「함값」만이 아니라 요즈음에는 신부 친구들은 「부케값」이라는 것을 뜯어내 먹고 즐긴다고 한다.그 밖에도 동서고금이 엉터리로 배합된 해괴한 것들이 결혼식에 얽혀있다.미풍양속과는 전혀 무관한 별별 이상한 짓들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개는 상혼이 개입된 매우 음험한 음모의 결과이게 마련이다.현명한 젊은이들만이 이것을 고칠수 있다.국적도 없고 풍습도 아닌 넌센스코미디 같은 이런 일에서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언제 누구의 신부가 죽어나갈지 알수 없는 일이다.정떨어진다.
  • 대보름 주제(외언내언)

    음력 정월대보름은 우리 민속놀이가 한꺼번에 몰려 있는 날이다.한해의 첫번째 맞는 보름날이라 풍요와 생산의 상징인 만월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상원일이라 불린 대보름 민속으로는 달맞이,다리밟기,달집태우기,부녀자의 강강술래가 있다.다리밟기는 1년내내 다리병을 앓지 않는 것으로,달집태우기는 묵은 해의 액땜으로 여겨졌다.대보름밤에 아이들은 논둑에 쥐불을 놓고 불씨를 그릇에 담아 돌리는 쥐불놀이에 신이 난다. 겨우내 날리던 연도 대보름날에 멀리 날려보낸다.연과 함께 액운도 날려보내는 것이다.그런가 하면 동네 장정은 마을끼리 패를 나눠 석전놀이를 벌이기도 했다.돌에 맞아 얼굴이 깨지는 부상을 당하기도 하지만 농경민족의 상무적 기상을 계승하기 위해 장려되었다.이날 오곡밥에 나물을 먹는데 오곡밥은 타성의 세집 밥을 먹어야 그해 운이 튼다고 해서 여러집을 다니며 아홉번을 먹었다.산제나 동신제를 지내는 것도 바로 이날.축제를 통해 마을의 단합과 일체감을 다져나간 것이다. 4일은 정월 대보름이다.쥐불놀이나 오곡밥은 전해지고 있지만 다리밟기나 달집태우기,석전놀이등은 사라진 지 오래다.생활양식의 변천에 따른 변화일 것이다.그래도 지방에 따라 대보름의 옛 풍습을 되살려 대보름축제를 이어온 곳이 적지 않다.그런데 올해는 총선을 앞두고 통합선거법에 따라 대보름축제가 규제되고 있다고 한다.「선거에 영향을 주는 행사」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인천 동구청에서 6년동안 계속돼온 「화도진축제」가 선관위로부터 취소압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이란 제지에 상관없이 동구청은 4일 화도진공원에서 행사를 강행할 태세다.수원에서도 시·군 문화단체에서 예정한 대보름 민속놀이 한마당이 역시 선관위 지시로 전면중단되었다.대표적 민속놀이인 연날리기대회도 무산되었다. 대보름 민속놀이행사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사」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해석이다.선거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민중의 민속놀이까지 중단시켜서 되겠는가.
  • 기업의 국가위상 제고 노력(사설)

    국내 재계를 총망라하고 있는 경제단체협의회가 해외진출기업의 행동강령이라는 다소 생소한 기업규범을 채택하고 나섰다.국내에서 가끔은 기업윤리를 강조한 강령이나 선언문이 있었으나 해외진출기업에 관한 것은 처음이다.해외 진출한 우리기업이 현지에서 어떻게 기업활동을 하고 있고 또 그로 인해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는가를 보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행동강령은 산업안전·근로자교육훈련·환경보호·현지사회와의 융화등 해외에 진출한 기업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하고 있다.말하자면 이런 기본적 규범이 해외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오히려 체벌이나 욕설등 현지근로자에 대한 비인격적 처우등으로 집단행동을 유발,해당기업은 물론 국가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사례가 적지않은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우리기업이 해외현지에서 받고 있는 좋지 못한 평가의 대부분은 현지 사회풍습이나 전통에 대한 이해의 부족,또는 현지근로자의 기업근로에 대한 인식부족 등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그러나 해외진출기업은단순한 공장의 진출 못지않게 국가이미지를 제고시키는 역할을 생각해야 한다. 현재 1백7개국에 5천건이상의 해외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들의 대다수는 개도국의 값싼 인력만을 찾아나선 영세기업이다. 아무래도 기업윤리의식이나 환경·산업안정·근로자처우 등에서 규모 있는 기업에 미칠 리가 없다.따라서 경제단체협의회는 이왕 행동강령은 채택했으니 이의 실효성을 위해서라도 진출기업이 공동으로 현지 근로자 내지는 사회와 융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지원해주는 계획도 마련하기를 권고한다.노동과 무역을 연계시키는 블루라운드의 대두가 아니더라도 삶의 질에 대한 욕구는 국내나 개발도상국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현지 근로자에 대한 특별한 대우가 아니라 기본인권의 존중이 기업진출의 성패를 가름하면서 국가이미지도 제고시킬 수 있는 것이다.
  • 만남(외언내언)

    설을 고향에서 쇠기 위해 도시를 떠났던 2천8백만명의 인구가 다시 일터가 있는 도회지로 돌아왔다.탈서울의 자동차만 약 80만대,서울로 돌아오는 차량행렬이 오늘 새벽까지 꼬리를 이었다.서울과 도시로 되돌아가는 길도 밀리기는 마찬가지.그러나 고향을 찾은 사람들은 그다지 짜증스러워하지 않는다.가족과 친척들과의 풋풋하고 정겨운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명절때면 언제나 고향을 왕래하는 길이 힘들고 붐비지만 우리는 그걸 마다하지 않는다.사회가 점점 고도산업화 쪽으로 바뀌고 핵가족시대가 보편화하고 있음에도 설과 추석때 귀성객은 줄어들지 않는다.거기에는 인간의 본성인 귀소본능도 작용하겠지만 부모님과 친척들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가족들과의 만남은 어떤 고통과 희생을 치르고라도 이루어야 할 가치를 지닌다. 외지에 나가있던 사람들이 섣달 그믐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우리의 풍습이다.오랜 농경사회가 빚어낸 미풍양속이다.돈벌이를 위해 객지로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린이들의 설렘은 제야의 시골에서 흔히 볼수 있는 풍경이다.부모님과 아내,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기다림은 또 얼마나 절절한 것인가. 그런 기다림 끝에 가족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가족들의 끈끈한 사랑과 가정의 소중함을 확인하게 된다.가족공동체의 화목과 단란,나아가서 문중의 혈연성도 재확인하게 된다.우리 민족의 가족사랑과 혈연성이 유달리 강한 것은 이같은 전통문화의 영향탓이다. 문명비평가 토인비도 만년에 우리의 대가족제도를 예찬한 일이 있다.「인간이 만들어낸 최상의 제도」라고.설 연휴에 한 TV에 출연한 벨기에여성이 곡성시댁에서 겪은 「설쇠기」풍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많은 친척들이 모이니 음식준비에 무척 힘은 들었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풍습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사회의 산업화가 아무리 심화되어도 가족의 만남을 기다리는 마음들이 있는한 명절 귀향길은 여전히 꼬리를 이을 것이다.
  • 입춘/반영환논설고문(외언내언)

    오늘은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옛날에는 한해가 시작되는 첫날로,농사가 시작되는 날로 여겼다.음력으로 24절기 가운데 첫번째가 바로 입춘이다.그래서 입춘 전날밤에는 절기의 마지막 밤이라 해서 콩을 방과 문에 뿌려 역신을 쫓았다.눈밑에서 자란 싱싱한 나물을 캐서 양념에 무쳐먹는 풍습도 있었다. 입춘을 맞기까지는 꽁꽁 언 겨울속에 긴 기다림을 거쳐야 한다.얼음 밑을 뚫고 흐르는 개울물과 눈 속에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는 매화가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바람이 눈을 몰아 산창에 부딪치니/찬 기운 새어들어 잠든 매화를 침노한다/아무리 얼우려 한들 봄뜻이야 앗을소냐」(안민영의 시조) 입춘에는 덕담 같은 글씨를 써서 대문이나 기둥·문설주에 내다 붙였다.입춘 축 또는 춘련이라 부른다.「입춘대길 건양다경」은 가장 널리 쓰이던 입춘축.「소지황금출 소문만복래」(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웃는 집안에 만복이 들어온다)는 서민의 잔잔한 생활철학이 담겨져 있다.그러나 현대인은 붓을 들어볼 서예솜씨도,마땅히 축을 붙여볼 만한 공간도 없으니 풍속이 사라질 수밖에. 입춘이 지나면 바람 끝은 차가워도 햇볕은 조금씩 따뜻해진다고 한다.긴 겨울을 벗어나는 계절의 더딘 몸짓이다. 눈 밑으로 새 순이 돋고 찬 바람속에 동백꽃이 피어나는 것은 어김없는 계절의 약속이다.그래서 사람은 혹한 속에서 봄이 가까이 왔음을 깨닫고 기다리는 것이다.대춘의 마음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워 영하 10도가 넘는 날이 며칠씩이나 계속되었다.한강도 꽁꽁 얼어붙었고 얼음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도 부쩍 늘었다.옛날에는 한강이 얼면 우마차가 얼음 위로 다니곤 했다. 입춘이 지났다고 추위가 금방 물러가는 것은 아니다.설날 추위나 정월 대보름 추위도 있다.입춘 뒤 추위를 『입춘축을 거꾸로 붙였다』고 말했다.올해 첫절기가 시작되는 입춘이 되었으니 이제 겨울먼지를 털어내고 상큼한 봄을 준비하자.
  • 위장결혼(외언내언)

    고대의 결혼풍습에 약탈혼이라는 게 있다.신부가 모자라던 시절 신랑이 친구와 작당하여 이웃마을 처녀를 납치해오는 방법이다.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양가댁 과수를 홑이불에 싸서 둘러메고 달아나던 보쌈풍습이 있었다.개가가 여의치 않던 시절,「과부 업어가기」는 수절의 인습을 허무는 인간다움이 깔려 있는 것이다. 요즘엔 어떤 목적을 위해 가짜로 결혼식을 올리는 위장결혼이라는 게 생겨났다.합법적 입국이나 취업을 위해 엉뚱하게 악용된 위장결혼은 60∼70년대 미국이민이나 일본취업용으로 성행했었다.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는 교포와 서류상 부부가 돼 출국한 뒤 현지에서 이혼절차를 밟는다.돈벌이를 위해 일본인과 위장결혼,일본에 입국했다가 이혼을 안해주고 매달 돈만 울거내는 사기꾼에게 시달리는 여성도 많았다. 농촌 총각이 신부기근으로 장가를 못들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었을 때 중국 교포처녀와 우리 농촌 총각의 짝짓기가 성행했었다.외국산 신부를 수입하기보다는 같은 동포 사이의 짝짓기가 훨씬 자연스러운 결합이 아닌가.몇년전까지만 해도 현지 교민회와 농협등 국내단체의 주선으로 「맞선여행」이 성황을 이루었고 그렇게 맺어진 부부가 우리 농촌을 지키며 잘 살고들 있다. 그이후 교포처녀의 사기결혼이 속출하기 시작했다.93년 무렵부터 결혼해 국적을 취득한 뒤 패물등을 챙겨 잠적하거나 3∼4개월만에 일자리를 찾아 가출하는 신부가 늘었다.심지어는 유부녀가 처녀를 가장,시집오는 경우까지 생겼다.가엾은 농촌 총각을 울리던 사기극이었다. 이제는 중국 교포여성에게 위장결혼을 알선,거액을 챙기는 회사까지 등장했다.이들은 내국인 독신자를 모집해 중국으로 데리고 가 결혼식을 올리고 귀국해 초청장을 보내주는 수법을 썼다.그 대가로 1인당 5백만∼7백만원을 받았다니 교포여성의 출혈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 전에는 위장결혼을 미국·일본에 수출했는데 이젠 중국에서 수입하는 꼴이 돼버렸다.이것도 세태의 변화인가.
  • 아테너서 애틀랜타까지/올림픽 100돌 성화 타오른다

    ◎1896년 첫 대회… 13개국 311명 참가/31년 LA­상업주의 적중 “대성공”… 선수촌 처음 등장/72년 뮌헨­아랍테러단 「이」 숙소 기습… 선수 9명 사망/88년 서울­개도국서 첫 개최… 159국 참가 “화합구현” 아테네에서 애틀랜타까지 1백년.오는 7월19일 미국 남부도시 애틀랜타에서 개막되는 제26회 올림픽을 계기로 근대올림픽이 1백주년을 맞는다.「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쿠베르탱남작의 올림픽부활운동이 열매를 맺으면서 1896년 고대올림픽의 발상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13개국 3백11명의 선수들이 제1회 대회를 연지 한 세기가 흐른 것이다.그동안 올림픽은 질적·양적으로 수많은 변천을 거쳤다.그 과정을 간추려보고 올림픽의 의의 및 앞으로의 과제 등을 살펴본다. ▷약사◁ 기원 3천여년전 그리스 제우스신전 근처 계곡에 있는 올림피아에서는 4년마다 한차례씩 헤라클레스 축제를 기념하는 경기가 열렸다.달리기 멀리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그리고 레슬링이었다.이 행사는 아테네 스파르타 마케도니아의 끊임없는 전쟁속에서도 10세기 이상지속되었다. 기록된 최초의 올림픽경기는 기원전 776년으로 서기 394년에 이르기까지 1천2백년 이상 이어졌다.그러나 그리스를 정복하고 있던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정신에 어긋나는 이교도 의식이라며 올림픽을 폐지시켜 이후 근대올림픽이 부활되기까지 15세기 동안 자취를 감춘다. 1880년대 들어 쿠베르탱남작이 부활운동을 펼치면서 드디어 1896년 첫 대회를 열기에 이르렀다.모두 10개 종목에 44개 금메달이 걸린 이 대회에서는 미국이 1위를 차지했고 그리스와 영국이 그 뒤를 이었다. ○16·40·44년대회 취소 이후 미국 세인트루이스,런던,스웨덴 스톡홀름 대회를 거친 올림픽은 1916년 베를린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개최국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취소되고 만다.이때부터 올림픽의 정치오염이 본격화된다. 제7회 대회는 1920년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열렸는데 1차대전동안 벨기에 사람들이 겪었던 슬픔을 달래주는 대회였다.반면 패전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불가리아 터키는 참가가 허용되지 않았다. 다시 파리와 암스테르담을 거친 올림픽은 32년 유럽대륙을 떠나 미국 LA로 옮겨간다.이 대회는 미국의 상업주의가 적중해 대성공을 거뒀다.처음으로 선수촌이 등장했고 거의 매일 6만명 이상의 관중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4년 뒤 히틀러의 나치에 의해 올림픽은 나치의 들러리 역할로 전락했다.독일 베를린대회 주변에는 나치의 숨막히는 분위기가 감돌았고 결국은 40년 대회와 44년 대회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되고 만다. 52년 헬싱키대회에는 볼셰비키혁명 이래 수십년동안 올림픽을 인정치 않던 소련이 마침내 대선수단을 이끌고 등장,동·서냉전시대에서의 미국·소련 초강대국 대결을 시작한다. 이후 92년 바르셀로나 대회 때까지 11차례의 올림픽에서 미국은 4차례,소련은 7차례 1위를 차지했다. 올림픽은 56년 호주 멜버른에서 개최돼 다시 한번 대륙간 이동을 했고 64년 일본 도쿄로 넘어갔다.도쿄대회는 패전국 일본의 부흥을 꾀하는 기폭제가 됐다. 68년 멕시코대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아프리카국가들의 보이콧위협,학생시위,시상식에서의 흑인시위 등 정치오염이 심각했다.시위폭동으로 2백60여명이 사망했다. ○올림픽정신 상처입어 72년 뮌헨대회에서는 9월5일 아침,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올림픽정신이 영원한 상처를 입었다.아랍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숙소를 기습,선수 9명과 테러리스트 2명,경찰 1명이 사망했고 올림픽은 34시간 중단됐으며 메인스타디움에서는 추모식이 열렸다.이때부터 올림픽의 슬픈 역사가 거듭된다. 76년 몬트리올대회는 뉴질랜드럭비팀의 남아공 여행을 꼬투리잡은 아프리카국가들의 보이콧으로 얼룩졌고 80년 모스크바 대회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는 64개 서방국가들의 불참으로 반쪽대회로 전락했다. 84년 LA대회 역시 소련등 동구권의 보복불참으로 반쪽대회였다.한국은 이 대회에서 종합10위를 차지한 뒤 88년 서울대회 4위,92년 바르셀로나대회 7위 등으로 기염을 토해 올림픽강국으로 떠오른다. 서울올림픽은 「한강의 기적」을 온세상에 자랑하면서 상처투성이의 올림픽을 되살려 놓았다.동·서 양진영 1백59개국이 참가해 「화합올림픽」을 구현했고 그동안 선진국이 독점했던 올림픽개최를 처음으로 개발도상국에서 대성공으로 마무리했다.단일민족 북한의 불참이 「옥의 티」였다. 서울대회는 초강대국 소련과 스포츠강국 동독의 올림픽 고별무대였다.이후 지구상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나 독일통일이 이뤄지고 소련이 붕괴됐으며 동구권 전체가 몰락했다. ○소련·동독의 고별무대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옛 소련 국가들은 EUN이라는 어정쩡한 단일팀으로 참가했다.동독은 참가대상에 존재하지 않았다.EUN은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해 소련붕괴의 긴 여운을 남겼다. 애틀랜타 올림픽은 경쟁상대를 잃은,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의 안마당이 될 것이다. 근대 올림픽이 19세기에서 21세기로 3세기를 옮겨가는 길목인 2000년 대회를 놓고는 중국 북경과 호주 시드니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여 시드니로 돌아갔다.12억의 중국인들은 그들이 「천하의 중심」,즉 「중화민족」임을 과시할 절호의 기회를 놓쳐 땅을 쳤으며 2백5년전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호주땅을 밟은 곳이기도 한 시드니는 흥분의 도가니를 이뤘다. ◎의의·과제/세계평화·국제친선 구현 “이바지”/인간능력 한계 넓히는데도 도움/정치오염·상업주의 극복이 과제 올림픽헌장은 첫 머리에 올림픽의 본질과 목적을 내세우고 있다.즉 ▲육체적·도덕적 자질의 향상 ▲세계평화의 추구 ▲국제친선 등이 골자이다.올림픽은 1백년의 역사를 누리면서 이같은 올림픽정신을 구현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인종과 언어와 풍습·국적·민족·문화를 뛰어넘는 인류의 대제전으로 발전했다.인간 능력의 한계를 넓히는데에도 공헌을 해 인류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올림픽정신이 퇴색하고 있다.정치오염과 상업주의가 스포츠정신을 퇴색시키고 있다.금메달은 「돈방석」과 직결되고 있으며 대회 행사 자체도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해 치러진다. TV독점중계는 올림픽을 TV의 「시녀」로 전락시켰으며 공식후원업체의 횡포 역시 심각하다. 아마추어리즘도 프로페셔널리즘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테니스 축구 농구를 시발로 프로선수들의 출전은 현대올림픽이 종착을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뿐만아니라 옛 소련·동독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과 중국,그리고 일부 권위주의국가에서 보여준 국가관리체육정책은 자본주의의 프로페셔널리즘 못지 않게 올림픽을 오염시켰다. 약물복용의 폐해 또한 심각하다.근육강화제 흥분제 진정제 호르몬제 등의 복용은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추구하는 올림픽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과 각국 스포츠지도자들의 「스포츠귀족화」 역시 올림픽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일반대중의 평등을 추구하는 올림픽에서 이들은 이미 스포츠 특권층으로서 상당한 부와 권력을 향유해 올림픽의 이질감을 부추기고 있다. 과대망상에 가까운 민족주의·국가주의 역시 장애요인이다. 전문가들은 21세기에는 다시 한번 「올림픽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세계로 가는길 국경은 없다/유희근 지음(화제의 책)

    ◎우리가 배워야 할 각국의 문화풍토 소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한수 아래로 접어보게 되는 말레이시아.그러나 이 나라는 팁과 목욕비,안마비까지 크레디트 카드로 계산하게 돼 있는,우리보다 한수 앞선 정보화사회다. 이 책은 우리를 분발하게 하는 이같은 제도와 풍습을 통해 세계각국의 이모저모를 소개하고 있다.그간 많은 해외 기행문이 주로 풍물소개에 치우친 것과는 달리 산업구조,행정체계,문화풍토까지 훑으며 타산지석의 교훈을 구한다는 점이 특징. 이에 따라 우리와 지리적,문화적으로 인접한 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이 우선적으로 조명된다.호텔 종업원,택시운전사를 포함,전국민이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철저한 생활보장으로 공무원의 청렴을 보장하는 싱가포르는 잘 알려진 대로 아시아의 대표적 선진사회. 이밖에 상업건물 하나도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랑으로 짓는 스페인,전문기술 하나만 있으면 대학졸업장이 부럽지 않은 패션의 나라 이탈리아,21세기 과학선진기지를 꿈꾸는 프랑스 취재기를 담았다.지은이는 현재 MBC 보도제작국 부국장이다.고려원 6천5백원.
  • 대흥구 중국 심양(세계속 한인촌 탐방:3)

    ◎황무지를 옥토로… 딴 농촌의 3배 소득/5천여명 정착… 우리말·전통풍습 그대로 간직/된장국·김치 담그기 등 가르쳐 중국인을 조선화/「새마을 공장」 4백여곳 유치… 산업화 앞장도 중국 북동부 3개 성의 심장격인 심양.요령성의 성도이자 우리에겐 봉천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1시간가량 달리다보면 「대흥구육성」이란 큰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초·중학교 우리말 수업 추수가 끝난 텅 빈 논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이 보신탕집 간판으로부터 2차선 찻길을 따라 조선음식점 1백여개가 줄지여 들어서 있다.심양∼대련 사이 고속도로가 곁에 있는 이곳은 심양시 우홍구의 「대흥향」.찻길 따라 음식점과 상점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시 교외의 농촌이다.1만5천여명의 주민 가운데 3분의 1인 5천여명이 조선족인 우리동포 자치지역이다.명칭은 「대흥 조선족자치향」. 『20년대초까지 논은 찾아볼 수 없는 황무지였다.물이 부족해 농사가 어려웠고 극소수 밭농사를 지을 수 있는 지역이 있을 뿐이었다.그런 황무지를 송화강의 지류인 훈하를끌어들여 물길을 낸 뒤 논농사를 시작,궁핍에서 벗어나게 한 게 바로 조선족이었다』고 48년말부터 30여년동안 이곳 공산당간부로 일해온 지역지도자 이성일·67·전당서기)씨는 회고한다.길지 않은 이민역사와 한족에 비해 적은 인구에도 불구,조선족자치지역이 된 것은 『조선족 손으로 이곳을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19세기말∼20세기초 가난과 일제침략을 피해 고향을 등진 사람이 모여 이룬 이곳은 우리말과 생활풍습을 고스란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아이의 백일잔치,노친네의 환갑은 물론 전통양식을 보존한 제사풍습 등등.설날이면 이웃집에 세배다니고 농사일과 궂은 일이 있으면 몰려가 품앗이를 하는 등의 끈끈한 유대의식도 변치 않았다.순 우리말로만 수업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이곳 조선족은 절대로 한족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행여 자식이 한족과 결혼하려 하면 필사적으로 말리는 것도 다른 지역에 사는 동포와는 약간 다른 풍습이다. ○연변 등 외지동포 이주 오히려 중국인을 「조선화」시켰다.노인등 어른에 대한 깍듯한 예절,논농사를 모르는 이들에게 쌀재배법을 전파시켰고 적잖은 이 지역 중국인이 김치를 담그고 된장국을 끓여먹는다는 데서도 대흥 조선족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가옥도 이웃 사이에 담장이 따로 없는 개방형 농가다.아이를 조선식 포대기에 들쳐업고 다니는 새색시.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치마저고리에 면사포를 쓰는 동·서혼합 결혼식.집안에 들어서면 구들방이 보이고 크고 검은 무쇠가마솥이 눈에 띄는 곳.안타까운 것이라면 국가규정 때문에 전통적인 무덤(토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문화혁명후 토장이 금지돼 화장한 뒤 죽은 이의 유골을 황해로 흐르는 훈하에 뿌리는 전통이 생겼다.죽어서라도 고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1910년말부터 평안도에서 일가친지 모두가 이주해온 황성출(65·전대흥향 공업책임자)씨는 『처음 이주자들은 몇년만 있다 고향으로 가겠다는 생각이었지만 1917년 오강소학교란 조선학교를,20년엔 기독교 예배당를 세우며 차차 정착하게 됐다』고 말했다.그러나 30년대초까지도 추수때면 한족 지주등에게빚갚고 나면 빗자루 하나만 남는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전했다.허일벽(72·전대흥향 정부농업조리)씨는 한때 1만여명 가까운 조선족이 모여 살기도 했지만 해방직후와 59∼60년 대약진운동의 실패여파로 상당수 북한으로 이주해갔다고 설명한다. 연변지역등의 조선족마을이 최근 도시이주등으로 급속히 붕괴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은 지난해 역시 연변과 흑룡강성등 외지에서 이주해온 동포 가구로 1백호가량 늘었다.이곳 인구는 5천명정도지만 심양시 서탑지역,동릉구 혼하찬지역과 함께 10만 심양지역 조선족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해마다 9월초면 열리는 조선민속·운동절에 약 5만명 대부분이 가족별로 참가한다. 한·중 두 나라의 급격한 관계발전을 타고 이곳도 한국행 열풍엔 예외가 없다.4살때 평안도에서 왔다는 흥성촌의 김응석(69)씨의 세 아들중 두명은 한국에서 3년 넘게 일하고 있다.비자등 법규에 대해 알지 못하는 김씨는 『아이들이 한국에서 돈 많이 번다』며 자랑한다.김씨집은 산업화이전의 초가집이고 부엌엔 무쇠가마솥이 걸려 있다.해질녘에 불쑥 들른 취재진에게 『저녁은 꼭 먹고 가야 한다』며 붙드는 것이 이제는 사라진 우리의 옛 정서를 느끼게 한다. 한집 건너 김미영(33)씨 집 역시 남편이 지난해부터 한국서 일하고 있다.농토는 연변에서 온 조선동포에게 맡겨 임대수입을 받는다는 김씨는 남편을 보러 꼭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공단인접한 교통요지 개혁개방이 진전되면서 대흥향은 농공산업단지로 탈바꿈하려는 안간힘으로 한창이다.동북 최대공업단지 철서공단에 접해 있고 북경∼장춘∼하얼빈을 잇는 교통요지인 점도 산업화를 향한 행보를 재촉한다.우리 새마을공장격인 향진기업은 모두 4백6곳.지난해 공업생산은 4억위안(5천만달러)으로 농업생산액 1억위안을 앞섰다.피혁·의복·방직·장식재료등을 중심으로 외자기업의 유입이 늘고 있다.정명수 향정부 판공실주임은 『지난 91년부터 올해까지 외자기업의 총투자액은 7백60만달러』라며 『총생산액으로 볼 때 외자기업의 비중이 지난해 공업생산의 절반가량인 2억위안에서 올해는 2억8천만위안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밝은 전망을 소개했다. ○종업원지주제 첫 실시 이곳의 월 평균소득은 여타 농촌지역보다 3배가량 높은 7백∼8백위안정도.한 관계자는 한국 가서 일하고 부치는 노무소득·관광객안내비등을 합치면 실제소득은 훨씬 많다고 귀띔한다.향 행정책임자인 김재만 향장은 심양 조선족제1중학(고교과정)과 심양 정법대를 나온 35살의 청년이란 것도 이곳의 활력과 미래를 상징한다.김향장은 투자유치가 자신의 주임무이며 한국기업의 투자를 주민과 함께 기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최근 한국의 삼우금속과 합자로 총자본금 11억규모 심양 흥우금속제품공사설립을 계약했다고 설명한다.중국 공무원하면 경직된 행정관리가 연상되지만 김씨는 자칭타칭 「세일즈맨」임을 자랑으로 여긴다. 김향장은 『대흥향은 내년부터 중국 최초로 기업고정재산의 30%한도내에서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하는 기업개혁실험에 들어간다』며 밝은 대흥향의 미래를 자랑삼아 밝혔다.전통적으로 북한의 영향이 강하던 이곳에서 이들은 이제 한국의 존재는 우리민족의 자랑이라고 말한다.이들은한국을 모델삼아 공업화된 농촌속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경제발전의 꿈에 부풀어 있다. ◎장승균/“조선족은 문화수준 높아”/동북부 지역 벼농사 전파… 개발 한몫 중국 조선족은 역사적으로 항일전쟁 및 해방전쟁(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훌륭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특히 중국 동북부지역을 개간,수도작문화,즉 벼농사를 전파시켜 경제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했다. 조선족은 또 교육을 중시,문화수준이 높고 노래와 춤등 예술성이 풍부하며 호방하면서도 엄격히 예절을 지키는 민족으로 정평이 나 있다. 조선족은 60년대까지 대부분 농민이었으나 개혁개방후 각 방면으로의 진출,계층분화현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연변지역등 농촌에 모여 살던 조선족의 도시이주가 최근 늘면서 일부 집성촌의 해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북경상주 조선족은 현재 1만여명에 달하고 임시거주등의 인구까지 따지면 모두 3만여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조선족의 전체인구는 공식통계로는 1백92만3천여명으로 집계돼 있지만 조사연도(90년)와 전중국의 인구증가률 1.4%보다 낮은 1%가량의 인구증가율을 고려할 때 2백만명가량으로 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조선족의 한국방문 및 장기체류는 상대방 국가의 법률만 준수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한국정부가 민족연관성을 배경으로 조선족에 대해 특혜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게 중국정부의 방침이다.
  • 우즈베키스탄공 타슈켄트(세계속 한인촌 탐방:2)

    ◎30년대 연해주서 이주… 8만여명 정착/근면은 타민족 본보기… 80%가 농업 종사 옛소련 땅의 한인최대밀집지역인 우즈베키스탄공화국의 타슈켄트주에 있는 한 목화농장.초로의 황 스타니슬라브씨(53)가 이곳 치르치크구역내의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목화수확반의 작업을 일일이 지켜보며 독려하고 있었다.다른 한쪽 켠에서도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인을 비롯해 10여종족으로 구성된 종업원들이 그의 감독하에 목화송이를 거둬들이느라 여념이 없다. 불과 2년전까지만해도 황씨는 국영기업에 가까운 콜호스의 농장장에 불과했다.하지만 이제 그는 회장님이라 불린다.우즈베키스탄정부의 민영화방침에 따라 국영농장(콜호스)이던 이 목화밭이 주식회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영농장 회장이 한인 황회장의 오늘은 아버지 황만금씨(74)의 후광이 컸다.아버지 황씨는 지난 30년간 이 목화농장을 옛소련지역 최고의 콜호스로 이끈 장본인이다.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 빈농가에서 태어난 아버지 황씨는 지난 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선친과 함께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곳에 내던져졌다.타슈켄트 교외 사막 허허벌판에 던져진 이들 부자는 10년동안 막노동과 농업전선을 전전했다.그러던 1947년,특유의 한인기질인 성실성과 총명함이 돋보여 황만금씨는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 콜호스의 관리위원장에 선출됐다.지금의 목화농장 관리위원장으로 뽑힌 것은 53년.이후 30년간 그는 이 농장을 옛소련의 모델농장으로 끌어올렸다.목화재배에 과학영농기법을 도입,다른 지역 콜호스 생산량의 최고 10배까지 달성하기도 했다.58년 노동영웅칭호를 시작으로 그는 3번의 레닌훈장과 10월혁명훈장,소련인민위원회 계관칭호 등 더이상 받을 상이 없을 정도로 모든 상을 휩쓸었다. 이곳에 사는 문 피요트르씨(64)는 『그는 어려울수록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을 발휘한 콜호스의 상징이자 한국인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웠다.황씨의 바통은 90년대초반 아들이 이어 받았다.그가 아버지의 농업철학을 계승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비닐하우스 재배기법을 우즈베키스탄에 도입한 장본인이라는 점이 발탁의이유였다. 황회장의 경영능력도 아버지 못지않다.이른바 새 콜호스건설에 신사고를 일으킨 아버지에 이어 그는 요즘 토지의 유상분배와 인센티브제의 도입,컴퓨터농정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황회장은 『일을 시켜보면 역시 한인들은 우수한 민족』이라면서 『한때 도시로 빠져나갔던 한인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고 있어 기대가 크다』고 했다. 이러한 역유입은 나름의 배경이 있다.주 요인은 바로 언어문제.한인들 가운데는 소련시절 공용어인 러시아어는 하면서도 현지어인 우즈벡어는 제대로 구사할줄 모르는 이가 많다.그런데 올해부터 우즈벡정부가 우즈벡어를 공용어로 채택,우즈벡어를 모르면 공공기관 취업을 금지하는 정책을 펴고있기 때문이다.이에따라 대도시에서의 공공기관 취업이 힘들어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한인들은 22만 2천여명.이중 8만 9천여명이 타슈켄트주에 살고 있다.타슈켄트주에 거주하는 한인들 가운데 60%가 농업에,나머지가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었다.그러던 것이 최근들어 농업종사자수가 80%이상으로 다시 늘어났다.따라서 최근들어 한인들 사이에는 우즈벡어를 배우려는 노력이 한창이다.특히 40대이하 청년층가운데는 우즈벡어를 배우는 부담때문에 우리말을 배우지 못해 우리 말을 할줄 아는 교포가 전체의 3%도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유명 변호사도 배출 이런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현지인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한국인이 많다.김 블라디미르씨(62)도 그가운데 한사람이다.타슈켄트시에서 80㎞ 떨어진 타슈켄트주 아쿠르간 마을.마을 전부라야 2백50호정도밖에 되지않는 아담한 전원마을에 위치한 김씨의 주택에는 하루종일 이웃주민들의 발길이 북적거린다.취직문제에서부터 한인지위에 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교포「민원인」들의 발길이다.남의 집을 빈손으로 찾지못하는 한인들의 기질탓인지 이들은 과일을 담은 비닐백같은 선물꾸러미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교포들이 이처럼 그의 집을 찾는 것은 김씨부자가 우즈베키스탄 변호사동맹의 소문난 변호사이기 때문이다.아들 보로니야씨(38)도 변호사다.김씨는 다민족으로 이뤄진 타슈켄트사회에서 동포들의 억울한 일들을대변,사건해결사 혹은 인권변호사로 지내오기가 올해로 꼭 40년째다.그 역시 37년 극동의 연해주지역에 살다 삼촌과 함께 카자흐스탄땅에 버려졌다.아버지는 일본스파이라는 누명과 함께 시베리아로 끌려갔다.삼촌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그는 7살때 우즈베키스탄의 한 고아원에 들어갔다.고아원을 전전하며 대학을 졸업한 해인 55년.시민권도 없던 그는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변호사자격을 따냈다. ○조선인 자치지역 건의 그는 지난 89년 고르바초프대통령때 『연해주를 조선인자치지역으로 돌려달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이 문제는 당시 상무위원회에 보고돼 대통령에 직접 전달됐으나 고르비가 『기다려보라』는 답신을 한뒤 얼마되지 않아 실각해 문제제기에 그치기도 했다. 지난 90년때의 일.당시 우즈베키스탄인과 투르크메니스탄인사이에 종족갈등이 폭력사태에까지 이르자 우즈벡공화국정부는 「24시간안에 모든 소수민족은 우즈벡을 떠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투르크메니스탄인 등 다른 소수민족들은 대거 국경을 넘어갔다.하지만 한인들만은 모두 마을을 고스란히 지켰다.『연해주에 이어 또다시 조선사람들의 일터를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간곡한 그의 청원이 큰 작용을 했다는 후문이다. 비록 타슈켄트의 한인들이 언어에는 어려움을 겪고있지만 문화·풍습은 나름대로 보존해가고 있다.우즈벡인의 70%가 이슬람교도로 이슬람식 일상풍속의 영향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것은 1%의 한인소수민족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그런데도 이곳 한인들은 주로 「고려인문화센터」를 중심으로 문화·풍습을 보존해 나가고 있다.현재 우즈벡공화국내에 24곳의 한인문화센터가 있다.이곳에서는 우리말을 가르치거나 우리 전통예술보존을 위한 전시회활동 등도 벌이고 있다.한인들의 춤과 가락을 계승하고 있는 고려악단·청춘가무단·금붕어아동무용단·한인합창단 등 예술단체만도 20여개소나 된다.이곳 한인들의 최대 명절은 역시 추석.우즈벡인들이나 한인마을에 함께 사는 다른 소수민족들도 아예 이날을 자기들의 명절로 인식할 정도다. 황씨의 목화농장에 살고 있는 30대의한 교포주부는 『설날이나 명절때 한인들은 구역별로 모여 음식을 차리고 잔치를 벌인다』면서 『결혼식과 돌·환갑잔치도 빼놓을 수 없는 한인들의 유대의식의 장』이라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명절에 한복을 입는 것,윷놀이 등은 잘 알지못한다고 했다. ◎라술로프 카리드라슬로비치 대통령 자문위원장/“한민족은 역사와 전통을 중시”/개인보다 남을 생각하는 지혜 돋보여 무려 1백40여민족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인들은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특출난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우즈베키스탄민족을 포함해 가장 훌륭한 민족이 한인이다.특유의 부지런함과 화합하며 사는 법,개인보다는 집단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지혜롭게 보인다. 한민족은 역사와 교육·전통을 중요시 여기는 민족이다.한인들은 특히 언어와 종교,기질 등이 틀리지만 다른 민족과 쉽게 잘 화합해왔다.소수민족가운데 우즈베키스탄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민족도 한인들이다.소련에서 독립한 뒤 우즈베키스탄에는 명절이 많이 생기게 됐는데 한인의 추석명절을 다른 민족이 본받아 함께 쇠기도 한다. 한민족은 이곳에서 예술분야에서도 단연 다른 민족들을 압도한다.최근 타슈켄트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 유명화가 초대전에 20명의 우즈베키스탄화가가 초대됐는데 놀랍게도 이 가운데 18명이 한인들이었다.우즈베키스탄이 독립된 뒤 각국에 파견하는 경제·문화사절단도 때때로 거의 한인으로 채워지기도 한다.그러한 한인들의 단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 월스트리트저널 「떡값」 오보 정정 보도

    ◎“한국 관리들 「돈 안받기」 잘 지킨다”/“과거의 명절풍습 추측보도한건 유감”/문민정부 개혁 평가 기획물 함께 실어 『한국의 각료들은 재벌들로 부터 「떡값」을 받는다』고 보도했던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신문이 우리정부의 강경대처 움직임에 밀려 27일자에 정정기사를 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 신문을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키로 했던 당초 방침을 거두어 들이기로 했다. 주무부서인 공보처의 유세준 차관은 이날 이같은 사실을 발표하며 『해외 유수 언론이 한국문제에 대한 오보로 정정기사를 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월 스트리트 저널이 「정정 및 부연」란에 실은 기사의 내용은 이렇다. 『한국정부 대변인의 서한에 따르면 김영삼 대통령은 국민에게 약속한대로 기업인들로 부터 한푼도 받지않고 있으며 각료 전원도 김대통령의 확고한 결의를 충실히 준수해 오고 있다. 일전에 본보는 명절때 떡값을 주고받는 한국사회의 전통으로 미루어 볼때 기업체는 올해 각료들과 관리들에게 금품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한다고보도했다.동 기사는 한국각료들과 관리들이 실제로 그러한 떡값을 받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본보의 의도는 그러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런 추측을 자아낸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같은 날짜 1면 오른쪽 머리에 「한국에서 영웅으로 떠오른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이례적인 대형 박스기사를 김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실었다.작성자는 지난 21일자에 문제기사를 썼던 한국특파원 스티브 글랜이다.그는 이 기사에서 『한국인들은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이 폭로될 수 있도록 주요개혁을 한 것은 30년만의 첫 민선지도자인 김대통령이라고 공을 돌리고 있다』고 한주일전의 오보를 만회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그는 이어 『정치가와 재계지도자들이 줄줄이 검찰의 준엄한 신문을 받게되자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는 새로운 정치세대에게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고 문민정부 개혁의 결과를 평가했다. 이 두 건의 기사는 윌 스트리트 저널이 우리정부에 내민 「패키지 타협안」인 셈이다.유차관은 이에 대해 『정정·사과의 뜻으로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밝혔다.법적대응은 오보임을 밝히기 위한 것인만큼 그에 상응하는 「실리」를 얻은 마당에 고소방침을 철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느냐는 설명이었다.
  • “집중력 떨어진다” 난방 중지요청/수능시험 이모저모

    ◎양손 장애… 눈물겨운 「발가락 시험」도/서울대 법대 졸업 40대도 응시 “눈길”/하이텔 매시간 정답·출제경향 게시 현행 대학입시 제도로는 마지막으로 22일 실시된 96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은 「입시한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포근한 날씨속에 순조롭게 치러졌다. ○…이날 여의도중학교에서 시험을 친 장수정(여·22·삼육재활학교 3년)양은 양손의 사용이 불가능해 학교측에서 특별히 마련해준 가로 세로 각각 1m 크기의 스티로폴 깔판에서 오른발로 답안을 작성했으며 타자기로 답안을 작성한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인 권성민(18·서울 우신고 3년)군은 타자기 소리에 다른 수험생이 시험에 방해될 것을 우려한 학교측의 배려로 양호실에서 혼자 시험을 치기도. ○…춘천 원주 강릉 등 도내 5개지역 27개 고사장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제히 치러진 강원지역은 예년과 달리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2도∼영상 4도로 비교적 포근한 날씨를 보이자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안도. 입시한파에 대비,도교육청은 아침 일찍부터 난방을 실시했으나 일부 고사장 수험생들이 실내온도가 높아 집중력이 떨어진다며 난방을 중지해줄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난로를 치우기도. ○‥인창고 등 5개 고교생이 시험을 친 서울 아현중학교에는 입실시간인 상오 8시30분이 임박하자 경찰순찰차와 구청 노점상 단속차,오토바이 등을 타고 수험생들이 황급히 도착하는 「턱걸이 입실」의 해프닝을 연출. 택시를 잡지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인종진(19·인창고졸)군은 구청 단속차를 타고 상오 8시25분쯤 간신히 도착했으며 같은 시각에 인근 환일고로 가야할 남학생 1명이 아현중학교로 잘못 도착하자 학교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포경찰서 소속 순찰차가 기동력을 발휘,환일고로 데려다 주기도. ○…제18지구 9시험장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중학교에는 동이 트기 훨씬 전인 상오 6시쯤부터 일부 학교 학생들이 학생회와 서클 단위로 몰려나와 선배 수험생이 시험장으로 들어갈 때마다 응원가와 구호를 외치며 사기를 북돋아주기도. 그러나 입시철이면 고사장 정문과 담장을 수놓던 「합격엿 붙이기」 풍습은 눈에 띄게 줄어들어 달라진 신세대 풍속도를 반영. ○…하이텔(HITEL)은 이날 교육전문 케이블 TV인 두산슈퍼네트워크와 공동으로 「96 수능시험정답발표」라는 방을 개설해 매시간 시험이 끝난뒤 수능시험과목별 정답 및 출제경향,지원가능대학안내 등을 내보내 정보화시대의 역량을 십분 발휘. ○…이날 1교시 언어영역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은 대부분 예상보다 문제가 어려웠다고 평가. 한성과학고 최우석(17)군은 『모의고사에 비해 지문이 길고 내용도 교과서에 수록돼있지 않은 것들이 많이 나와 어려운 편이었다』면서 『특히 듣기문제가 까다로와 모의고사에 비해 5문제 정도 더 틀린 것같다』고 소감을 피력. ○…지난 77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춘천고 출신의 정모씨(43)도 이날 대학졸업 18년만에 모교에서 수능시험을 치렀다.한의대 진학을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수능시험을 준비해온 정씨는 입시공부를 한지 오래된데다 희망학과의 합격선도 높아 걱정이지만 최선을 다해 가족의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다짐. 또 지난 6월 실시된 고졸 검정고시에서 전국 최연소로 합격한오신석(13)군은 부족한 공부를 더해 내년에 도전하겠다며 결시. ○…한편 수능시험 출제교수 63명과 관리요원 54명,경찰 7명 등 1백70명은 이날 하오 31일만에 「격리장소」에서 풀려나 오랜만에 해방감을 만끽. 김대행(53·서울대교수·국어교육)출제위원장 등 출제요원들은 지난달 23일 서울시내 한강호텔에 입소,이날까지 일체의 외부접촉이 금지된 채 생활해 왔다.이들이 문제출제를 위해 활용한 교과서와 참고서는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3천1백여권으로 라면상자 75개,2.5t트럭 2대분량을 초과. 국립교육평가원측은 『보안유지를 위해 1층 유리창 모두를 창호지로 도배하고 객실창문은 물론 계단통로 철장에도 자물쇠를 채웠으며 지난 8일 격려차 방문한 박영식 교육부장관도 소지품 검사를 받았다』고 소개.
  • 선진 민주시민의 덕목은 무엇인가/김태길(서울신문 50돌 특집)

    ◎더불어 사는 지혜 모으자/남의 권익·환경을 먼저 생각할때 갈등 사라진다 「적자생존」은 생물의 세계를 지배하는 만고불변의 기본원칙이다.인간의 경우도 예외일 수는 없으며 환경적응에 성공하는 개인과 집단은 번영하는 반면에 이에 실패하는 자는 멸망의 길을 밟게 마련이다.생물계의 적자생존.이것은 매우 엄숙하고 잔인한 현상이다. 인간 이외의 다른 생물에게는 자연환경이 그들의 적응을 요청하는 환경의 거의 전부다.그러나 인간에게는 사회환경이라는 또 하나의 부담이 있으며,인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이 사회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느냐 하는 것이 삶의 과정에서 개인과 집단이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렵고 중대한 문제다.인간의 미묘한 의식구조와 복잡한 신뢰구조가 인간 자신에게 어려운 문제를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한국은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문제가 많은 시기에 처해 있다.이 어려운 문제의 대부분은 국내와 국제의 사회환경에서 유래하는 문제다.과학기술의 놀라운 발달로 지구가 날로 좁아지는 가운데 집단과 집단,개인과 개인,또는집단과 개인 사이에 이해관계가 폭넓게 얽히게 되어 넓은 의미의 사회환경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적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넓은 의미의 사회환경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다사다난하다는 것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삶의 문제가 그만치 어려워졌음을 의미하며 우리의 조상이 숭상하던 전통·윤리의 덕목만으로는 이 시대를 성공적으로 살아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덕목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이 장차 해결해야 할 복잡다난한 문제상황을 요약해서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우리의 기본적 공동과제 가운데서 큰 것 몇가지만 우선 꼽아보기로 하자.첫째로 우리나라는 민주적 사회질서의 확립이라는 기본목표도 아직 달성 못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민주사회란 본래 개인주의에 입각한 사회이기는 하나 이기주의를 초월한 높은 수준의 인간상을 전제로 할 때 실현이 가능하다.쉽게 말해서 「나」라는 개인의 자유와 권익을 존중하듯이 「남」의 자유와 권익도 한결같이 존중하는 사람만이 민주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그러나오늘의 우리 한국에서는 내 생각에만 골몰하고 남의 생각은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둘째로 우리 민족은 남북의 통일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로 우리 민족은 이 한반도 위에 하나의 국가를 세우고 1천3백년 가까운 역사를 형성해왔다.강대국의 무책임한 흥정에 의하여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된 지 반세기에 이르거니와 언어와 풍습,민족정서,그리고 경제적 여건과 국제적 관계등을 고려할 때 우리의 국토는 마땅히 통일되어야 한다.그러나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만족스러운 통일을 저해하는 여러가지 장애요인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셋째로 우리는 「세계화」라는 말로 상징되는 국제적 개방과 무한경쟁의 거센 물결을 타고 넘어야 한다.통신과 교통수단의 놀라운 발달로 세계가 날로 좁아져가는 가운데 국제교류가 빈번해지고 국제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추세를 보인다.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한국은 한편으로 우리의 자주성을 지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초국가시대에 적합한 개방된 자세로 인류번영에 이바지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세가지 과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동일한 덕목이 두세가지 과제의 달성을 위해서 공통으로 요구될 경우가 많다.이제 내면적으로 연걸되어 있는 세가지 과제를 염두에 두고 21세기를 내다보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주요덕목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기로 한다. 첫째로 강조해야 할 덕목은 공정성이다.인간이란 대체로 자기중심적 성향을 가지고 있거니와,특히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의 경우는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에 집착하기 쉽다.각 개인의 자애심이 강한 것이다.자애심은 매우 자연스러운 심정이기는 하나 각자가 자신의 편의와 이익만을 추구하고 타인의 존재를 안중에 두지 않을 경우에는 사회는 질서를 잃고 혼란에 빠지게 되어 모든 사람이 결국 불이익을 받게 된다.이기주의의 역리현상이다.이러한 모순을 막기 위해서는 나와 남을 다같이 위하는 공정성의 덕목을 함양해야 한다. 공정성 덕목의 바탕이 되는 것은 합리적 사고다.나의 권익이 소중하다면 남의 권익도 소중하다고 보는 것이사회에 맞는 생각이며,사회에 맞도록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자연히 공정성을 중요시하게 된다.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서로가 모두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나와 남의 권익을 공정하게 존중함으로써 긴 안목으로 볼 때 모두가 뜻을 이루는 편이 사리에 합당하다.그러므로 공정성의 덕목은 당장의 이익보다도 긴 안목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사려깊음과도 일맥 상통한다. 둘째로 강조해야 할 덕목은 근면과 절약이다.남북의 통일을 원만하게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경제력을 비축해야 하며,이 목표를 위해서는 근면과 절약이 필수적이다.세계화시대의 치열한 국제경쟁에 견디기 위해서도 창의성과 아울러 근면과 절약의 미덕이 발휘되어야 한다.뿐만아니라 근면과 절약은 많은 자원과 깨끗한 자연이 보존된 지구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도 지극히 소중한 미덕이다. 셋째로 강조되어야 할 덕목은 넓은 의미의 「사랑」­인간과 자연에 대한 폭넓은 사랑이다.현대문명의 근본적 문제점은 소유와 향락이 대표하는 외면적 가치가 생명과 예술 또는 학문이 대표하는 내면적 가치를 압도하는 뒤바뀐 가치풍토에 있다.그리고 이 그릇된 가치풍토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의 결핍을 수반하였다.외면적 가치의 숭상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의 결핍을 초래한 것인지,사랑의 결핍이 외면적 가치의 숭상을 초래한 것인지 그 인과의 선후를 밝히기는 어려우나 이 두가지 현상은 표리의 관계를 이루고 현대문명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긴 안목으로 볼 때 나 자신에 대한 올바른 사랑의 길이기도 하다.나를 희생하고 남을 위한다는 가르침은 현대인에게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그러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결국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기도 하다는 인식에 도달할 때,사람은 아무 마음의 갈등도 없이 그 길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 전통·윤리가 숭상한 대부분의 덕목을 그 안에 포섭할 수 있다.다행히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가득하다면 우리는 조상이 숭상하던 주요덕목들을 현대상황에맞도록 재해석하여 실천에 옮길 수 있을 것이다.예컨대 여러 전통론자가 거듭 강조하는 효도 인간에 대한 폭넓은 사랑속에 포섭되어 살아나게 될 것이다.인간에 대한 폭넓은 사랑을 가진 사람이 제 부모를 소홀히 여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인간에 대한 폭넓은 사랑 없이 제 부모만 생각하는 속 좁은 효는 가족적 이기주의에 빠져서 현대적 민주사회에 역행할 염려가 있다.그러나 인간에 대한 폭넓은 사랑을 바탕에 둔 효사상은 현대의 민주시민을 위해서도 매우 소중한 덕목이 될 것이다. □약력 ▲75세,아호 우송 ▲현 학술원회원(윤리학)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철학문화연구소 이사장 ▲한국방송공사 이사장 ▲수필문우회장 ▲우산육영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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