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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맥섬유/섬유디자인 SW 개발(한국경제 여기에 길이 있다)

    ◎독일 기술 울린 ‘미니벤처’/외제기계 1시간 공정 30초만에 끝내 □한맥의 성공 비결 ·작다­직원 30여명 변화대처 순발력.시장도 디자인 한곳으로 특화 ·높다­관련시장 정보수집 ‘멀리보기’.인터넷 등 통해 시장파악·홍보 ·깊다­한지역 집중공략 한우물 파기.수출시장 문화·역사도 꿰뚫어 ‘섬유’하면 사양산업으로 인식하는 게 보통이다. 노동집약적 특성때문에 한때 업계에서조차 한물 간 산업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사양산업도 첨단기술과 접목시키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서울 구로동의 150평짜리 아파트형 공장에 직원 30명이 일하는 미니 벤처기업 (주)한맥섬유(대표이사 崔在爀·35)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89년 디자인 소프트웨어 전문회사인 미국 CDI사의 한국총판으로 출발,자동차 설계,가구,완구,인쇄 등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 소프트웨어에 손을 댔다. 본격적으로 섬유디자인 소프트웨어에 뛰어든 것은 95년 (주)한맥섬유로 재출발하면서 부터다. 崔사장은 “섬유업계의 30년 노하우에 첨단 컴퓨터 응용기술을 접목시킨다면 틀림없이 국내 섬유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창업 이후 회사는 기술개발에 사운(社運)을 걸었다. 그 결과 마침내 지난해에는 수입에만 의존하던 레이저필름출력기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2억원 가까이 되던 수입단가를 3분의 1로 낮췄고,그 공로로 ‘IR52 장영실상’과 국산신기술인증마크(KT마크)를 수상했다. 앞서 95년에는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을 응용,기존 제도공정보다 10배나 생산성이 높은 소프트웨어도 개발했다. 이 기술은 그해 미국시장에 진출,5만달러짜리 독일산 최첨단 컴퓨터시스템을 자랑하던 한 섬유회사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이 고가의 장비로 1시간 이상 걸리던 작업을 불과 30초만에 끝내버린 것이다. 그 자리에서 기술도입 계약이 이뤄졌음은 물론이다. 한맥섬유의 기술력은 96년 중소섬유업체 기술경진대회 통상산업부장관상,97년 장영실상,98년 멀티미디어 기술대상 국무총리상 수상 등에서 잘 입증된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창사 첫해인 95년 15만달러에 그쳤던 수출액은 지난해 40만달러로 2.7배 증가했고,IMF체제에 들어선 올해에도 고속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 수출액은 많지 않지만 뛰어난 기술력이 바탕이 돼 있어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맥섬유의 성장은 물론 기술개발이 핵심요소지만 이외에도 몇가지 판매전략이 뒷받침되고 있다. 첫째는 특화된 시장을 노렸다는 점이다. 崔씨는 패턴디자인,제도 제판,프린팅 등 섬유생산의 여러 공정 가운데 제도 한 곳을 파고들었다. 일본에서 사용되는 디자인 물량의 90% 이상을 국내에서 제도한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둘째는 “고객이 요구하기 전에 그가 원하는 것을 먼저 파악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崔사장은 제도의 전 공정을 손으로 직접 해보면서 프로그램 개발에 필요한 요소들을 찾았다. 셋째 비결은 한 우물 파기. 崔씨는 세계 여러시장을 직접 답사하며 역사와 풍습,기후,우리와의 관계 등을 면밀히 파악했다. 세계의 각종 전시회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이를 통해 적절한 수출시장이 발견되면 한눈을 팔지 않고 해당 지역을 집중 공략하는 전략을 폈다. 崔사장은 “세계적 경기침체 속에서도 우리가 파고들 틈새시장은 얼마든지 있다”며 “인터넷을 이용한 자료수집과 시장파악,홍보활동이 이런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 움직이는 서예 독특한 아름다움

    ‘움직이는 서예전’. 서예가 유경식씨의 서(書)예술 이벤트 ‘유경식의 열린 서예전’이 경기도 성남시 분당 중앙공원에서 열린다(20일까지). 서예는 벽에 걸어 놓고 글의 내용이나 글씨의 조형성 등을 감상하는 정적인 예술이다. 그러나 이처럼 야외로 끌고 나와 관객들이 직접 만지면서 감상하도록 한 것은 이번이 국내 처음. 서예의 이벤트화,장식이 아닌 기치(旗幟)로서 서예,움직이는 서예로의 연출,민족 고유의 풍습의 순수예술로 환골탈태 등을 위해 마련됐다. 유씨의 예술철학에 맞게 한글의 모음이나 자음과 닮은 갖가지 형상을 깃발로 내건 이번 설치전은 한마디로 그리예술의 극적인 퍼레이드다. 장례식에 사용하는 만장(輓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0346)716­6104
  • 가족 납골묘 전시장 개장/첫날 30여명 즉석 예약

    ◎복합사각·원·탑형 등 다양/최대 40기까지 안장 가능/“직접보면 인식 달라질것” ‘가족 납골(納骨)묘’ 전시장이 4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서울 서초동 논노빌딩 3층에 개설된 전시장에는 8가지 형태의 가족 납골묘 축소모형과 실물이 전시됐다. 화강석으로 만든 ‘복합사각형’을 비롯,원형·계단식·탑형 등은 비석과 받침대까지 갖춰져 있어 겉보기에는 일반묘와 다를 바 없다. 납골묘에는 시신 대신 화장한 뒤 남는 뼛가루를 담은 정사각형 모양의 봉분함을 안장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한 평 반 크기의 납골묘에는 24∼40기의 가족 봉분함이 들어간다. 40기의 봉분함을 넣을 수 있는 가족 납골묘는 묘역까지 포함해 6평밖에 차지 하지 않아 묘터를 줄일 수 있는 게 최대 장점이다. 할아버지,아버지,아들 등 직계가족과 친지들까지 모시면 후손들이 함께 모여 제사를 지낼 수 있어 유대를 돈독하게 할 수도 있다. 개장 첫날 150여명이 전시장을 찾은 데 이어 30여명은 즉석에서 예약했다. 최근 화장을 한 故 崔鍾賢 SK그룹회장과 서울시와 시민단체 등이 펼치고 있는 ‘화장(火葬)유언 남기기’ 운동도 납골묘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 것 같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시장을 운영하는 조양장례토탈서비스(주)의 全昌玉 사장(49)은 “화장을 꺼리는 풍습 때문에 지금까지는 납골묘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지만 전시장에 와서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장담했다.(02)579­6307.
  • 음식쓰레기/鄭信模 논설위원(外言內言)

    우리 나라에는 먹는 일에 관한 속담이 꽤 많다. 얼른 생각해도 “금강산도 식후경”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 “코 아래 진상” 등이 떠오른다. “이 새 저 새 해도 먹새가 으뜸” “입이 서울”이란 말도 있다. 사전에는 재미있는 속담들이 더 많을 것이다. 먹기 위해 산다는 주장처럼 한결같이 먹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수천년 동안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농경사회에서 살았으면서도 언제나 먹을 것이 모자랐던 까닭에 이런 속담들이 나온 것이 아닐까. 우리 나라가 먹는 걱정에서 벗어난 것은 기껏해야 20여년 정도. 그 전에는 해마다 봄철이면 춘궁기(春窮期),보릿고개,절량(絶糧)농가라는 말이 연례행사처럼 신문 지면을 장식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음식문화에서는 질보다 양을 중시했던 것 같다. 이는 지금까지 미풍양속처럼 이어져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야 훌륭한 대접이 되는 풍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진수성찬(珍羞盛饌)과 산해진미(山海珍味)처럼 제법 어려운 단어도 중학생쯤 되면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선호도 역시 컸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러나 먹는 걱정이 사라진 요즘은 음식을 너무 헤프게 여기는 풍조가 역력하다. 과거를 너무 빨리 잊어버렸거나 천박한 졸부(猝富)근성 탓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필요한 식량의 70%를 해외에서 수입한다. 연간 음식물에 쓰는 비용은 22조원이고 이 중 약 8조원은 쓰레기로 사라진다. 서울신문은 이런 낭비를 줄이기 위해 지난 해부터 음식물 쓰레기 50% 줄이기 운동을 펴오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아직도 더 줄일 여지는 많다. 서울시는 지난 해 대규모 식품접객업소,백화점,집단급식소 등 1만여개를 감량의무 사업장으로 정해 음식쓰레기를 자체 또는 전문업체에 위탁해 비료나 사료로 처리토록 한 이후 23%의 감량성과를 거뒀다고 29일 밝혔다. 그러나 감량의무를 지키는 않는 업체도 아직 25%나 된다고 한다. 서울시는 오는 8월 하순부터 각 구청별 조례에 따라 감량의무를 지키지 않는 업소에는 1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릴 계획이다. 쌀 한 톨,밥알 하나를 귀중하고알뜰하게 여기던 선조들이 이런 일을 법으로 강제하는 후손들을 본다면 무어라고 하실까. 더구나 산더미 같은 외채를 짊어지고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에서.
  • 가족과 떠나는 미술·박물관 휴가

    ◎마이크로 월드전 등 볼만한 전시회 5선 여름방학을 맞아 각 박물관과 미술관이 청소년을 동반한 가족나들이 객을 위해 다양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IMF시대 온가족이 휴가 삼아 가볼만한 전시회들을 소개한다. ◇중국문화대전­63앵콜전 29일부터 9월6일까지 여의도 63빌딩 별관 1층 특별전시장 및 옥외전시장에서 열린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5천년 중국문화를 한눈에 볼수 있다. 지난 1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려 4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수준높은 전시. 진시황 동마차,병마용,갑골문,월왕구천검 등 시대별 핵심작 500점과 함께 중국의 기인과 예인이 보여주는 갖가지 이벤트가 마련된다. 초등학생 4천원,중고생 6천원,일반 8천원. ◇볼 수 없던 세계,마이크로 월드전 오는 8월6일까지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열린다.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진기한 마이크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사진전시회이다. 인체,생활,자연,시간,빛 등을 주제로 1천여점의 마이크로 세계 사진과 동영상이 관람객을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5,200배로 확대한 혀,날아가는 총알을 찍은 사진,산호초처럼 생긴 남성호르몬,이탈리아 토리노성당의 성수의(聖壽衣)등이 특히 눈길을 끈다. 유치원생 4천원,초중고생 6천원,성인 8천원. ◇400년만의 귀향­일본속에 꽃피운 심수관가 도예전 8월10일까지 광화문 일민미술관(구동아일보)에서 열린다.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끌려가 조선도예를 전해주고 ‘사쓰마야키’라는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를 일구어낸 초대 심당길로 부터 14대 심수관에 이르기까지 제작된 140여점이 선보인다. 주요작품으로 조선의 흙과 유약에 불만 일본의 것을 빌렸다는 초대 심당길의 ‘불만 빌린 그릇’(원명:히바카리다완),8대 심당원의 ‘사자승 관음상’,14대 심수관의 ‘금칠보설륜문대화병’등이 있다.청소년 2천원,일반 3천원. ◇우리 호랑이 특별전 8월1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호랑이해를 맞아 조상들이 남긴 호랑이 관련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회. 조선시대 ‘산신도’를 비롯,단원 김홍도 임희지 합작의 ‘죽하맹호도’,호랑이무늬 방망이,호랑이가 그려진 ‘청화백자철화송호문필통’,목제 호랑이상,영천 은해사의 ‘산신탱’,승주 선암사의 ‘목조 산신상’등 200점 전시되고 있다. 초중고생 무료,대학생 300원,일반 900원. ◇우리네 여름이야기 특별전 8월31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다. 옛 선인들의 여름나기 풍습과 생활의 지혜를 엿볼수 있는 전시회다. 여름의 대표적인 놀이인 천렵을 묘사한 풍속화를 비롯,시원한 그늘에서 부채질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겸제 정선의 ‘유음납량도(柳陰納凉圖)’,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탁족도(濁足圖)’등 현대인들이 쉽게 볼수 없는 여름관련 옛그림과 고문헌을 모았다. 이밖에 죽부인만들기,화문석짜기,감물들이기 등 여름용품 제작과정을 보여주고 입장객에게 부채를 나눠준다. 또 31일에는 입장하는 어린이들에게 봉숭아물을 들여주며 단오 유두 음식인 유두국수 등 각종 여름음식도 제공한다. 초중고생 무료,성인 700원.
  • 난세에는 영웅이 탄생한다/동서양 영웅 다룬책 줄줄이

    ◎역경 이겨낸 당당한 이야기/몽골 칭기즈칸·클레오파트라·중국 진시황제 어지러운 때일수록 사람들은 ‘영웅’을 필요로 한다.사회 전반의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불안심리가 카리스마에 기대게 만드는 것일까.요즘 서점가에는 동서양 역사의 영웅들을 다룬 책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칭기스칸은 살아 있다’(신현덕 지음,강),‘천년영웅 칭기즈칸’(이재운 지음,해냄),‘클레오파트라’(조지 마가렛 지음,,미래M&B),‘진시황제’(김성한 지음,조선일보사) 등이 그런 책들이다. 우선 관심을 끄는 인물은 몽골제국의 창시자인 칭기즈칸.미 워싱턴포스트는 95년 지난 1,000년동안 가장 위대한 역사적 인물로 칭기즈칸을 선정했다. 또 일본에서는 공무원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칭기즈칸을 꼽고,그의 조직관리법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조의 중화사상이 여전히 남아 있어 칭기즈칸이나 누르하치 같은 유목영웅들을 한낱 오랑캐로만 여기려는 경향이 있다. 역사·문화에세이 성격을 띤 ‘칭기스칸은…’과 대하역사소설 ‘천년영웅…’은오늘의 시각에서 칭기즈칸을 조명한다.‘칭기스칸은…’을 쓴 신현덕씨(세계일보 생활부장)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몽골 국립사회과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몽골문제 전문가다.그런 강점을 살려 이 책에서는 칭기즈칸 이야기 못지않게 몽골인의 여러 생활풍습도 낱낱이 살핀다. 칭기즈칸은 몽골인들의 자부심의 원천이며 마음의 지주다.그것은 그가 단순히 10만 병사로 전세계를 제패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칭기즈칸은 군인과 군사 요충지는 철저하게 파괴했지만 비전투적인 민간인들에게는 위해를 하지 않았다.이 책은 칭기즈칸의 지도자로서의 인간적 덕목에 주목한다. 이와 관련,지은이는 “칭기즈칸은 심지어 일반 병사들까지 ‘너’라고 불렀을 정도로 백성과 친밀함을 유지했다”고 설명한다. “몽골군이 지나간 뒤에는 먼지만 남는다”는 말이 있다.그들의 잔인함을 강조한 말이다.모두 8권 중 세 권이 출간된 ‘천년영웅…’은 13세기 몽골 초원을 달렸던 ‘인간태풍’ 칭기즈칸의 야수성을 그린다.하지만 이 소설이 정작 강조하는 것은칭기즈칸의 세계경영 지혜와 불요불굴 정신이다. 미국 여성작가 마가렛 조지의 ‘클레오파트’는 ‘이시스의 딸’‘파라오의 사랑’‘동방의 진주’‘악티움의 노을’‘하데스의 눈물’등 5부로 된 전기소설.17세에 왕위에 올라 39세의 젊은 나이로 죽기까지 로마라는 초강대국의 그늘 아래서 이집트의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 역정을 그렸다.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타고난 미모로 좌지우지한 천하의 요녀(妖女)다” 이런 세간의 평가는 과연 적절한가.이 소설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이같은 의문을 갖게 된다.작가는 우리가 클레오파트라에 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클레오파트라의 적들이 쏟아낸 비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키케로,베르길리우스,호라티우스 같은 대문호들이 클레오파트라의 정적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바비도’의 작가 김성한이 엮어낸 ‘진시황제’(전3권)는 진시황의 아버지인 장양왕과 진시황,그리고 그의 아들 호해 3대에 걸친 권력쟁탈 과정을 그린 역사소설이다.이 작품 역시 폭군으로만 인식됐던 진시황제를 이상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야심만만한 통치자로 재조명하고 있다.이 책에서 영웅이란 ‘억지’를 쓰고 그 억지를 관철할 수 있는 인물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하는 지금,결코 선인(善人)이라고 할 수 없는 이 영웅들의 이야기에 왜 눈길이 가는 것일까.그것은 이 시대가 역경을 뚫고 피나는 노력으로 당당히 일어선 진정한 영웅정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 서울지방노동위 金松子 위원장/여성 첫 1급공무원 승진

    ◎29년 외길 억척 아줌마/69년 6급 출발… 성차별에 노동청 근무 자원/“고용평등 다루는 남성독점 자리 차지 감회” “내가 1급(관리관)으로 승진하면 대한민국 여성문제의 절반이 해결된다”고 호언하던 金松子 노동부 근로여성국장(58)이 마침내 1급 자리에 올랐다. 그것도 남성 전유물로 여겨졌던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이다. “여성 직업공무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1급까지 승진했다는 사실보다는 남녀고용평등법을 주관하는 국장으로 건국 50년만에 남성의 몫으로 여겨졌던 자리를 쟁취했다는 데 더 벅찬 감격을 느낍니다” ‘노동부 공무원의 어머니’‘25만 여성 공무원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金위원장은 모든 노동부 공무원들이 인정하는 ‘보스’다. 업무 추진력은 물론 술과 담배에서도 남성 공무원에게 뒤지지 않는다. 87년 근로여성과장 때에는 매일 술을 사면서 남녀고용평등법이 입법화되도록 앞장섰는가 하면,산재보험국장 때에는 3개월만에 관련 법령을 모두 통합하면서 산재업무를 노동부에서 근로복지공단으로 이관시키는 돌파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金위원장은 또 국내 여성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되는 ‘전화교환원 김영희씨 정년 연장투쟁’이 대법원에서 승소하기까지 배후에서 맹활약을 하기도 했다. 90년에 도입된 육아휴직제도도 그의 작품이다. 새 정책을 추진할 때나,예산문제가 맞부딪히면 金위원장은 항상 “내가 앞장 설 테니 당신들은 측면지원하라”고 주변사람들에게 말한다. 金위원장이 이처럼 투쟁하듯 공직생활을 한 것은 지난 69년 6급(주사) 공무원에 합격한 뒤 첫 발령지인 총무처에서 7급(주사보)인 남성 공무원 뒷자리로 책상을 배정한 데서 비롯됐다. 자존심이 상해 6개월만에 여성 근로자문제를 담당하는 노동청으로 자원해서 옮겼다. 남성 공무원들에게 지지 않으려는 金위원장의 억척스러움은 동갑내기이자 함께 6급으로 공직에 발을 내디뎠던 남편 柳京得씨(명지대 국제대학원장)의 인생항로도 바꿔 놓았다. 金위원장이 먼저 사무관으로 승진하자 柳원장이 사표를 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판정·심판사건이든 근로자의 아픔을 모성애로 감싸되 공정성과 합리성을 잃지 않겠습니다” 金위원장은 특히 여성근로자들이 가부장 중심의 풍습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면 반드시 바로 잡겠다고 다짐했다. 金위원장은 자신이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한계선을 돌파한 만큼 앞으로 후배 여성 공무원들은 보다 쉽게 고위직으로 승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여성 투사 공무원’은 자신이 마지막이기를 기원했다. 金위원장은 경북 칠곡 출신으로 고려대 법대와 서울대 대학원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1남1녀를 두었다.
  • 한국 제주 역사·문화 뿌리학/김인호 지음(화제의 책)

    ◎여정론·배일풍습 등 제주문화 고찰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민족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연구서.‘제주도의 무속서사시’ 등의 저서를 낸 원로사학자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제주도의 민속,제주 여정론(女丁論),제주인의 주거계통 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제주도의 민속에서 주목되는 것은 아침해를 향해 자기 소원을 말하고 세번 절을 하는 배일풍습(拜日風習).이러한 풍습은 멀리 기원전의 흉노나 오환(烏丸)·선비(鮮卑)족 등에도 보이며,13세기의 칭기즈 칸도 아침에 떠오르는해님에 배례했다고 전해진다. 제주 여인을 뜻하는 여정(女丁)이라는 말은 제주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단어다.여정은 제주에서는 예청 또는 녜청으로 불린다. 지은이는 이 제주 여정의 상징으로 장편 무속서사시 ‘세경본풀이’에 나오는여주인공 자충비를 꼽는다. 자충비는 백마를 타고 적진으로 나가 적을 무찌르고 개선하는 무녀(巫女)로,북방 기마민족의 여인상과 직결된다는 게 지은이의 설명.제주 여정과 관련해 또 한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부이부대(負而不戴),곧 물건을 등에 지되 머리에는 잘 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주 가옥의 뿌리와 관련해 특기할 만한 것은 제주도에는 반수혈식 주거,즉 움집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제주도에는 지형의 특질상 바위거처(rock shelter)가 곳곳에 발달돼 있어 육지식 움집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하권은 연말까지 나올 예정이다.우용출판사 2만5,000원.
  • 미성년자·60세 이상 귀화 필기시험 면제(법령공포)

    법무부는 귀화적격심사에서 부부 가운데 1인과 미성년자,60세 이상인 사람,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법무부장관이 인정하는 특별사유가 있는 사람은 필기시험을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적법 시행규칙 제정령을 12일 공포했다. 필기시험은 역사와 정치 문화 국어 풍습에 대한 이해 등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을 심사하고,면접에서는 국어능력 및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세 등을 심사한다. 귀화허가의 요건이 되는 국내 거주기간은 외국인이 적법하게 입국하여 외국인등록을 마치고 국내에서 계속 체류한 기간으로 하되,체류기간이 끝나기 전에 재입국허가를 받고 출국한 뒤 허가기간안에 재입국했을 때는 계속 국내에 체류한 것으로 본다.
  •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한화 金 회장 사보통해 임직원 분발 촉구 金昇淵 한화그룹 회장이 6월호 사보에서 임·직원들에게 호통을 쳤다.창의력과 순발력이 부족하다고 분발을 촉구했다.“알토란 같은 회사를 팔아 빚을 갚는게 구조조정이냐”고 정부의 기업정리 방침을 비판하며 진정한 구조조정은 ‘의식개혁’이라고 강조했다.‘회사 차례대로 팔고 정리하는 것이 구조조조정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중 골자를 요약한다.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하라=한화종합화학의 수맥돗자리는 상품이 없어서 못파는데 뒤늦게 공장을 풀가동하다 후발 업체에게 추월당했다.더욱이 그룹 유통망인 갤러리아 백화점은 상품을 제대로 진열하지도 않았다. ■전략적 판단력을 갖춰라=한화정보통신은 개인휴대통신(PCS) 시장이 포화상태라고 분석했으면서도 PCS폰 개발에 적잖은 투자를 해 신제품을 만들고 있다.앞뒤가 맞지 않는다.외식사업의 다른 경쟁업체들은 주요기관과 병원,심지어는 고등학교까지 파고 들며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는데 한화국토개발은 초보단계다.IMF 시대에 콘도사업이 좋은지 외식사업이 잘될 지를 판단해야 한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다=죽을 각오를 하면 살고(必死則生) 어설프게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生則死).콘도와 골프장 공사판을 벌여놓고 분양이 안되니 매각이라도 하자는 식의 무책임한 발상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정리해고는 없다=서구식 정리해고는 우리나라의 전통과 풍습,정서에 맞지 않는다.인건비는 줄일 수 있지만 부작용과 후유증은 더 크다.다만 경쟁력 없는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고용조정은 불가피하다.
  • 거품 걷힌 공직사회 경조비

    ◎직급별 상한액 설정­화환 대신 장관 깃발/똑같이 분담… 과단위로로 한 봉투에 넣기도 공무원들의 경조비 봉투가 얄팍해졌다. 너나 가릴 것 없이 보통 2만∼3만원이다.체면 차림에서 실리 위주로 바뀌고 있다.IMF시대를 맞아 ‘거품’을 걷어내자는 의식이 퍼진 탓이다.고통받는 실업자를 위해 봉급의 10%씩을 갹출하기도 한다. 경제 부처의 한 국장은 29일 “이전에는 경조비로 5만원 정도를 봉투에 넣었다”면서 “이제는 3만원으로 줄였다”고 말했다.그래도 한달에 평균 20만원이 든다고 덧붙였다. 한 사무관은 “절약 풍조가 자연스럽게 퍼져 2만원이 정가로 굳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조사 때 직원들이 과(課)단위로 똑같이 돈을 모아 한 봉투에 넣어 전달하는 풍습도 생겨났다. 그러나 아직도 고위 공무원들의 경조사비 부담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좀처럼 공개되기 어려운 고충과 관련,한 경제부처 장관은 최근 사석에서 “경조사 비용을 줄여야 한다”면서 “공무원 사회도 이번 기회에 절약하는 풍조를 뿌리내려야 한다”고 토로했다.한달 판공비로도 이 비용을 대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과거 정권시 일부 부처에서 직급별로 합리적인 금액을 정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가이드 라인’을 정해도 이런 저런 이유로 지켜지지 않았다. 다만 일부 부처에서 경조금과 별도로 화환 대신 축하 또는 애도의 뜻을 담은 장관 깃발을 보내는 사례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올 초에는 서울시 공무원들이 총대를 맸다.경조비 상한액을 1∼3급 실·국장 3만원,4급 과장급 이하는 2만원으로 정해 실시하고 있다.민원인으로부터 금품을 받는 부조리의 한 요인을 막자는 뜻도 있다.서울지방경찰청도 치안감·경무관은 3만원,총경 2만원,경정 이하 1만원으로 정해 4만 경찰에 권고하고 있다. 많은 공무원들은 자율적인 결의가 모든 부처로 확산돼 알뜰 살림과 경제살리기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 개고기 먹는 문화와 동물의 권리/金箕洙 加메모리얼대 교수(기고)

    서양에서 살다 보면 곤혹스런 경우가 종종 있다.한국에서 흔히 ‘동물애호가’라 부르는 동물권리론자들이 한국인을 곱지 않은 눈매로 보기 때문이다.개 먹는 풍습 때문이다.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면 대뜸 “당신도 개를 먹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이런 경험이 어찌 나 하나에 그치랴.그러니 개 먹는 문화의 시각에서 정답을 한번 궁리해 보자. 비위가 약한 나는 개를 안 먹는다.개는 커녕 돼지도 안 먹는다.그러나 “나는 한국인이지만 개는 안 먹는다”는 말이 선뜻 안 나온다.아무래도 비겁하다는 생각 때문이다.그래서 역공으로 개 먹는 것이 어째서 나쁜가고 반문한다.소나 돼지는 먹으면서 개만은 먹지 말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고대부터 식용 동물로 사실 개는 인류가 일찍부터 식용으로 쓰던 동물 가운데 하나다.은허(殷墟)의 고고학적 발굴보고서를 보면 주거지에서 으레 개뼈로 그득한 독이 나온다.은대에 개를 일상적으로 먹었다는 증거다.또 은대에 생겨난 한자에는 먹는것과 관련된 글자에 흔히 개견(犬)자가 들어있다.그릇기(器)자는 개 한 마리를 사람 넷이 둘러싼 모습이고,향연의 향(饗)에는 본래 밥식(食)자 대신 개견자가 들어있었고,싫어할염(厭)자는 개고기를 잔뜩 먹어 실증난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이처럼 오랜 역사의 식용동물을 이제 와서 먹지 말라니 될 말인가. 그러나 이런 역사적 증거가 강력한 반론의 근거는 되지 못한다.은허의 주거지와는 달리 유목생활을 하던 백인의 주거지에서는 개뼈가 무더기로 나오지 않는다.중동의 농경문명을 꽃피운 수메르인의 주거지에서도 마찬가지다.개를 식용으로 쓰고 안 쓰고는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하겠다.그러니 남이 안 먹는 것을 너희만 먹어야 할 이유가 뭐냐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아마도 강력한 반론은 바로 이 질문을 뒤집어서 마련할 수 있지않을까 한다.자기 문화에서 개를 안 먹는다 해서 어찌 개 먹는 남의 문화를 나무랄 수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역시 설득력이 충분하지 못하다.왜냐 하면 일반적으로 소나 돼지는 잡아먹을 목적으로 기르지만 개는 그러지 않는데,잡아먹기 위해 기른 것을 잡아먹는 경우가 개처럼 매일 품고 지내는 동물을 잡아먹는 경우와 어찌 같다고 보이랴.게다가 개는 유난히 주인을 따르고 주인에게 충직하다.그런 것을 어찌 잡아먹어도 좋다 하랴.그러나 말만 잘하면 여기에 대해서도 변명할 여지는 있다.한국인 가운데는 아무리 복날이라 해도 자기 집 개를 선뜻 잡아 잔치를 벌일 사람은 흔치않다.게다가 요즘은 개도 소나 돼지처럼 식용으로 사육한다.그리고 개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개의 주인에 대한 충직함이란 먹을 것과 주인이 원하는 행동을 결합한 조건반사적 반응에 불과함을 안다. ○문화상대주의의 옹호론 그러니 결국 개 먹는 문화에 대한 비난을 막아낼 길은 없지 않다고 하겠다.그러나 길러서 잡아먹는 ‘방법’을 트집잡으면 변명할 길이 막힌다.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기쁨을 구별할 줄 안다.고통을 느끼면 낑낑거리고 기쁨을 느끼면 꼬리를 흔든다.그리고 지나치게 먹으면 비만증에 시달리고 고혈압이나 당뇨도 생긴다.이런 동물을 식용으로 기르기 위해 좁은 우리에 가둬놓고 목에 쇠줄을 매는 행위나,급속비만을 강요하는 행위,그리고 고기맛을 내기 위해 때려 죽이거나 불태워 죽이는 행위는 아무래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개를 길러 잡아먹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런 짓을 안 해도 된다. 활동의 자유를 크게 제한하지 않고도 사육할 수 있을 것이고,때리거나 불태우지 않고도 간단하게 목숨을 빼앗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것은 잔혹한 행위라 할 수밖에 없다.(개의 목젖을 자르거나 불알을 까는 서양인도 잔혹하기는 마찬가지다.) ○잔혹 행위 피하는 지혜를 그런데 잔혹한 행위는 비인간적이다.동물권리론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결코 개나 다른 동물을 ‘사람을’ 대하듯 대하라는 뜻은 아니다.오히려그것을 ‘사람이’ 대하듯 대하라는 뜻이다.이것을 동물의 처지에서 보면 동물한테도 잔혹한 대접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 된다.따지고 보면 인권론의 본질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내 이익의 추구로 남이 겪게 될 고통을 이해하고 그것을 예방하려는 것이 인권론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내 입맛에 취해서­아니면 내 몸보신에 몰두해서­개나 다른 동물이 당하는 고통에 무감각한 분한테서 남의 고통에 대한 이해를 쉽사리 기대할 수 있을까. 올여름 보신탕집을 찾을 때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 전관예우 비리/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權寧海 전 안기부장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던 중 자해소동을 일으킨 사건은 지나친 전관예우(前官禮遇)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전직 안기부장이라는 신분을 감안해 수사의 ABC도 무시한 채 소지품 검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데다 감시마저 소홀히 해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다른 공직사회나 일반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관행이 있다.현직을 떠난 선배나 동료를 존경하고 각별한 정으로 대접하는 이런 풍습은 우리만이 간직하고 있는 미풍양속(美風良俗)이라 할 수도 있겠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화(禍)가 되는 법.법조계의 그릇된 전관예우는 바로 온갖 부조리의 뿌리가 되고 있으니 이를 제거하지 않고는 법조계의 정화를 기대하기 어렵다.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의정부 법조계 비리사건도 알고보면 바로 이 전관예우 때문이었다.어떻게 한 변호사가 1년에 200여건의 사건을 맡을 수 있단 말인가.변론을 성실하게 하지 못했을 것은 물론,서류검토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과다한 수임건수다.불성실 변론에 과다 수임료 착복,사건브로커 고용,판·검사에 뇌물 제공 등 근절해야할 법조계 비리는 모두 여기서 비롯된다. 그래서 법조계 주변에서는 판·검사 출신으로 변호사 개업한 지 1∼2년이내에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수십억원을 벌지 못하면 바보라는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현직에서 갓 물러나 개업하면 그만큼 함께 근무했던 동료 판·검사들이 사건을 유리하게 처리해줘 많은 사건을 맡을 수 있고 돈도 많이 벌수 있다는 얘기다.여기에는 아는 사람을 조금라도 잘 봐 준다는 우리사회 특유의 온정주의(溫情主義) 외에 판·검사·변호사들의 특권의식과 우월주의가 함께 내재돼 있어 문제가 한층 복잡해진다.그들은 일반인들과는 무언가 다른 신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그러나 이와 같은 선민의식은 그들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사명(使命)을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다짐으로 승화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불행하게도 현실은 이와 같지 않으니 문제다. 법무부는 8일 법조 비리의 핵심인 전관예우 관행 방지를 포함,법조브로커 근절을 위한 법적 대책,비리 법조인의 변호사개업 제한 등 3가지 주제를 놓고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고 한다.여기서 수렴된 의견을 취합해 새로운 변호사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도 갖고 있다.화급한 당면 과제인 법조비리 척결을 위해 가장 적합한 결론을 내려주기 바란다.
  • 황제의 침소와 수라상(秘錄 南柯夢:7)

    ◎고종 심한 불면증… 궁중 낮밤 뒤바뀌어 혼란/정오께 일어나 12첩 반상 아침 수라/관리들도 맞춰 낮에 잠자고 밤에 등청/함녕전 대청전화로 신하들에 국정 지시/재판 앞둔 중죄인 석방령… 판사 항의 사직 정환덕(鄭煥悳)이 상경하여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 동부승지(同副承旨) 윤명구(尹鳴九)를 찾아 갔다.윤명구는 정환덕이 역학에 밝다는 소리를 듣고 대궐에 보낼 생각으로 전화과장(電話課長) 이재찬(李在纘)을 소개하여 주었다.당시 이재찬은 고종 황제를 직접 모시고 있던 최측근자였기 때문이다.전화과장이 황제의 최측근자라면 이상하게 생각될지 모르나 그때는 요즘의 청와대비서실장과도 같은 자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897년에 처음 전화소가 설치되었는데 당시로서는 궁내부소관이요,황제의 직속기관이었다.그래서 전화선이 황제의 거소인 덕수궁을 중심으로 정부 각 부처에 연결되어 있었다. ○‘만능 요술단지’ 대청전화 덕수궁에서는 고종 황제가 기거하는 함녕전(咸寧殿) 대청마루에 전화기가 놓여 있었다.황제는 언제든지 필요할 때 이 대청마루 전화를 들어 정부 각부처에 지시를 하였다.그러니 이 대청마루 전화가 한번 울리면 국가대사가다 결정되는 만능의 요술단지와도 같았다.그래서 사람들은 이 전화를 일러 대청전화(大廳電話)라 했다. 이재찬은 정환덕을 데리고 대한문을 통해 덕수궁 안으로 들어섰다.함녕전은 대한문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으나 처음 대궐안에 들어온 정환덕으로서는 어디가 어디인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이윽고 황제 앞에 엎드렸는데,이재찬이 황제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방금 온 천하가 어지럽고 소란합니다.열강들이 서로 잘났다고 하면서 시기하고 의심하는가 하면 변괴마저 백출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안정과 위태함이 어찌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또 백성이 도탄에 빠져 어쩔줄 모르고 있으니 황상폐하께서는 높은 베개에 편안히 주무시지 못하는 줄로 압니다.이것이 신(臣)이 밤낮으로 걱정하는 바입니다.여기 한 사람이 있는데 소년시절부터 태을노인(太乙老人)에게 수학하여 국가의 흥망과 인생의 길흉화복에 통달하여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이와같이 위태하고 어려운 때를 당하였으니 급히 이 사람을 가까이 두시어 자문하시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온데 성상의 의사는 어떠하겠습니까.감히 아뢰옵니다.” 고종 황제는 갑신정변이 일어난 1882년부터 18년동안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심한 불면증에 걸려 있었다.밤에는 11시까지 눈을 뜨고 있다가 잠시 1시간쯤 눈을 붙였다가 다시 일어나 새벽까지 정사를 보았다.이윽고 날이 새면 그때서야 비로소 침소로 들었으며 일어나는 것은 대낮인 12시였다.이때 아침을 들었으니 아침이 아니라 점심이었다. “지난 갑신변란으로부터 지금까지 황상폐하 부자(父子)분은 촛불을 밝히고 밤을 지새게 되어 밤의 침소는 완전히 폐지되어 버렸다.이 때문에 대청에서 당번을 서는 내시와 상궁,시녀는 눈을 붙이지 못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했다.황상폐하 부자분이 새벽에 침소에 들어간 후에야 각자 자기의 처소로 돌아가 잠을 자고 상감 부자분이 침소로 드신 뒤에는 서로 서로 들어가 당번을 섰다.황상폐하와 세자가 침소에서 나오시는 시간은 매일 낮 12시 전후 가량이니 백관(百官)의 조회는 하지 않아도 저절로 끝나버린다.이 때문에 서울에서는 때는 바야흐로 ‘긴 긴 밤이 대낮과 같은 세상이다(長夜如晝之世)’는 말이 유행하였다.” 그러니 모든 정부 관리들은 낮에는 자고 저녁에는 등청하여 업무를 보게 되었다.마치 밤일하는 사람들처럼 남들은 다 잠들었는데,벼슬아치들은 덕수궁에서 걸려오는 전화소리만 기다렸다. 대청전화는 법원(平理院) 판사들에게도 난데없이 걸려왔다.내일 판결하기로 되어 있는 사형수를 풀어주라는 분부전화인 경우도 있었다.이것은 분명 위법이었으나 황제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 십중팔구 순종하게 마련이었다.그러나 주정기(朱定基)라는 판사는 그렇지 않았다.아무리 대청전화라고 하나 모두가 고종 황제의 전화가 아닌 가짜 전화인 때도 많아 하루는 크게 화가 났다. 주판사는 가위를 들어 전화선을 끊고는 황제에게 사표를 냈다.주판사는 그뒤 변호사로 개업했는데,세상 사람들이 그를 가장 깨끗한 법조인으로 칭송하였다는 것이다. ○床 3개에 진수성찬 아무튼 황제 부자께서는 대낮에 기상하여수라상(水刺床)을 받았다.임금님 식사는 과연 어떠했을까. “정오쯤 침소를 나와 수라를 드시니 비록 아침밥이라 하나 곧 점심밥인 셈이다.수라상을 엿보니 반찬의 가지수가 12첩이었다.은으로 된 반이며 상과 그릇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떠한 반찬은 주척(周尺·약 20㎝쯤인 자의 하나)으로 1척5촌가량이나 돼 반 위에 높이 배치,진열하였다.해물은 사이 사이에 섞어 두었는데 혼자 다 드실 수 없을 정도였다.또 곁에는 대모갑(玳瑁甲·바다거북의 등과 배를 싸고 있는 껍질)으로 만든 상이 하나 있었는데 상 위에는 붉은 팥밥이 한 그릇 있었고 기타 각종의 과일이 한결같이 높게 배열되어 있었다.모두 신선이 사는 궁전에서나 먹을 수 있는 과일 맛이었고 인간세상의 물건이 아닌 것 같이 보였다.그러나 젓가락이 가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아 끄적거리다가 상을 물려 공사청(公事廳·임금의 명을 전하는 내시의 근무소)의 당번을 서는 내시에게 내어주었다.이것은 조상 대대로 전해내려온 관례라 하는데 자세히 알지는 못하겠다.” 수라상이란 임금과 왕비가 평상시에먹는 밥상을 말한다.수라상은 대궐의 소주방(부엌)에서 주방 상궁이 차려 바치게 되어 있는데,상이 하나가 아닌 셋이다.즉 대원반,곁반,책상반 등이 그것이다.수라상에는 기본 음식인 밥(흰밥과 팥밥),국,김치,장,조치,찜,전골 이외에 열두가지 반찬이 올려지는 12첩 반상이 원칙이었다.임금이 수라를 들기 전에 기미상궁이 먼저 기미(맛)를 보고 수저를 물에 헹군 뒤 행주에 닦아 바친다.그러고 나서 임금이 수라를 드는데,식사가 끝날 때까지 세명의 궁녀가 일렬횡대로 양수거지하고 앉아 지켜보아야 했다.그밖에는 아무도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는데 정환덕은 우연히 이 광경을 훔쳐보고 놀랐다. 때는 흉년이라 시골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그런 때에 임금의 수라상을 보니 격세지감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음식을 먹다가 아랫것들에게 물려주는 습관은 본시 대궐 풍습이었는데,차차 민간에 번져 나가 마침내 국속(國俗)처럼 되었으리라는 것을 ‘남가몽’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 美 콜로라도州 메사 베르데(세계 문화유산 순례:67)

    ◎1,500년전 절벽위에 세운 ‘인디언 도시’/4,000개 공동주택·종교시설 23곳… 관개설비까지/전성기때 7,000명 거주… 암굴주거지 600곳 압권 【메사 베르데(美 콜로라도주)〓金在暎 특파원】 사막같은 황야에선 뭐니뭐니 해도 녹색이 가장 그리운 색이다.‘녹색의 대지(臺地)’란 뜻의 지명 ‘메사베르데’에는 불모의 땅에 지친 백인 개척자들이 불현듯 눈앞에 나타난 녹색 고원에 대고 지른 반가운 환호성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백인들은 시적(詩的)인 땅이름만 남기고 금방 자리를 떠버렸다.반면 이곳의 원주민 인디언들은 이름 대신 800년의 손때가 절인 삶과 문명의 유산을 남겼다.백인들은 메사 베르데의 녹색을 눈에서 사막의 잔상을 씻어내는 청량제 쯤으로 여긴 셈이나 인디언들은 이 녹색 대지에다 사막의 살아있는 저쪽 피안(彼岸)을 세웠던 것이다. 미 콜로라도주 남서부 밑바닥에 소재한 메사 베르데 인디언 유적은 콜로라도,뉴멕시코,아리조나,유타 등 4개주 접경지역에 펼쳐졌던 아나사지(Anasazi)문명에 속한다.미국의 인디언 문화는 크게 태평양 연안,대분지,대초원,남서부 사막,동부 수목지 등 5개로 대별하며 남서부 문화 가운데 아나사지 문명은 부족의 명맥이 끊겼음에도 특히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1888년 카우보이가 발견 반 불모지의 사막성 땅에 불쑥 솟아오른 암석대지인 ‘메사’는 몸체가 암석 절벽이고 위 봉우리는 평평한 고원으로 산 아닌 산이다.뉴멕시코,아리조나주에서 콜로라도주로 북상하는 도중에 많이 만나며 그중 뉴멕시코 북서쪽 끝 산 후안 분지에 많다.인디언 영화에 흔히 나오는 이 메사들은 특징은 막철분을 으깨 바른 것 같이 생생한 주황색 빛의 절벽인데 주변의 사막성 황무지와 어울려 위협적으로 보인다. 메사 베르데는 콜로라도주를 움켜쥔 록키산맥의 끝자락으로 조금만 더 북상하면 4천m 고봉들이 곳곳에 솟아있다.메사 베르데란 이름은 1600년대 중·남아메리카에서 북상해온 스페인 정복자들이 선사했다.메사의 치렁치렁한 녹색 뒷머리를 보고 영탄조를 발한 이들도 막상 북쪽의 전면을 보고는 이 고원에 오르는 것을 단념했다.해발 2천m의 고지대지에서 그대로800m 단층애를 이룬 메사 전면이 너무 가파라서 그 안엔 탐험하더라도 어떤 유적이나 고대사회가 있을 성 싶지 않았던 것이다. 소나무,전나무 등의 녹색 잎이 물결치고 있는 메사 베르데는 거대한 산악지형이다.북에서 남으로 기울어진 이 지형은 십여개의 가파른 협곡 사이 몇곳에 평평한 메사가 놓여 있다.면적은 서울 2배가 넘는다.1888년 12월,잃어버린 소를 찾아 메사를 헤매던 2명의 카우보이들에 의해 1300년 이후 600년동안 잠자고 있던 아나사지 인디언 유적이 발견됐다. 그러나 드넓은 메사에서 인디언의 삶터는 아주 조그만 부분에 불과했다.입구에서 10㎞는 족히 들어간 다음에 첫 흔적이 있고 35㎞는 더 가야 샤핀 메사의 주 근거지가 나온다.푸에블로 인디안의 메사 베르데 유적은 서기 500년부터 800년 동안 줄기차게 이어진 것으로 석기,역사기록 전무의 선사적 특징은 변동이 없으되 주거지 유형의 변화가 일목요연하게 잡혀진다.물을 담을 만큼 촘촘한 바구니를 유카 실로 엮었던 초기에는 지하에 방을 내고 나무잎과 흙으로 지붕을 인 움집에서살았다. 토기를 굽기 시작한 800년 무렵부터의 중기는 지상 가옥으로 변하면서 마을이 이뤄지고 집을 잇대어 짓는 단체구조로 발전했다.메사 베르데의 토기는 흰 바탕에 검은 무늬의 특이한 배합으로 눈길을 끈다.1100년부터는 진흙으로 겉마감한 ‘아파트형’ 아도비 흙집에 단체로 거주하는데 크게는 50개의 방이 갖춰져 있다. ○사다리 타고 창문 통해 출입 메사 대지의 대대적인 개간과 관개시설,공동주택,종교적 공동시설 등은 메사 베르데 문화의 절정기를 말해준다.전성기 때는 인구가 7천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그러나 유적 측면에서는 단연 말기에 지어진 암굴(岩窟) 공동주택이 압권이다.메사 안에는 4천개소의 유적이 파악되고 있는데 그중 고원 밑 노천굴에 세워진 주거지만 600개에 달한다.굴의 벽을 천정,바닥 등으로 활용하는 암굴주거 시설은 대부분 방 수가 5개 이하지만 제일 큰 ‘클리프 팰리스(절벽궁전)’는 217개의 방에 종교적 의식이 거행되던 원형의 반지하실인 ‘키바’(Kiva)가 23개나 있다.바닥을 몇개의 테라스로 층을 나눴으며방도 다층구조를 가졌다.인디언 풍습대로 방은 1평 남짓 작은 것으로 창문과 나무 사다리로 출입했다. 롱 하우스는 방이 150개,스푸르스 하우스는 114개에 달하며 가파른 소다 협곡을 마주하고 있는 35개 방의 발코니 하우스는 10미터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메사 베르데의 전체면적은 211㎢로 190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이 유적은 80년대 들어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적인 문화유적으로 보존되고 있다. ◎여행 가이드/콜로라도 산맥 끝자락 4개주 교차점에 위치 메사 베르데는 콜로라도,뉴멕시코,아리조나,유타주 등 콜로라도산맥 하단부 4개주가 직각으로 만나는 교차점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아리조나주 북부 그랜드캐년에서 연방국도 160번을 타고 350㎞ 북동쪽에 있으며 뉴멕시코 앨버커키에서는 300㎞,콜로라도 덴버에서는 550㎞ 떨어져 있다. 인근에 콜로라도주 남동부의 상당히 큰 도시인 코르테즈와 두랑고가 있다.
  • 동서문화의 북방 통로(중앙아시아를 가다:15)

    ◎고구려,만리장성 북로 이용 서역과 교류/외교사절·통신 등 비밀 유지 위해/비단기 요충지 중원 피해 왕래/서역선 만리장성 남로 따라 고구려로 청동기 이전부터 유라시아 대륙에는 민족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그이동 통로는 한대 이후에는 비단길이라고 부른 고대 상업유통로였다.교역 상품들은 멀리 한국에서 영국까지 유통되었다.그러나 몽골제국 시대를 제외하고는 이 교역품들은 한번에 비단길의 끝에서 끝까지 간 것이 아니었다.여러 번 되팔리면서 여러 차례의 단거리 운송 끝에 유라시아 대륙의 끝까지 전해졌던 것이다.그 주 통로가 두말 할 필요없이 중앙아시아였다. 그리고 무역은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었다.이때문에 중앙아시아의 고대 및 중세 도시는 타지역과 비교할 수 없는 굉장한 부를 누릴 수 있었다.지역적부를 차지하기 위하여 중앙아시아에 세계사적 대정복전쟁들이 일어났던 것도 그 지역의 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알렉산더 대왕,한나라,이란의 사산 왕조,당나라,티베트 왕조,위구르 왕조,몽골제국,또 청나라가 각각 중앙아시아의 비단길을 장악하려는 전쟁을 일으켰다.그러나 역사적으로 제국의 관심을 샀던 비단길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열강국 ‘비단길 장악’ 전쟁 청나라가 동투르크스탄 곧 신강성을 점령할 즈음,유럽의 열강이 해양을 통해 직접 중국으로 들어왔다.따라서 비단길은 급격하게 고립되고 그 기능이 상실되었다.이어 19세기에는 러시아가 서투르크스탄을 정복하면서 동서교류의 통로인 비단길은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일정구간의 물품유통은 당연히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나 오아시스를 거쳐서 이동되었을 것이다.그러니까 서역에서 온 상품들은 신강성에서 하서주장을 따라 난주를 지나 서안에 이르러 집하되었다.이 상품들 가운데 얼마가 고구려까지 전달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남북조시대는 많은 소국들이 중원에 난립한 때다.그 상품들이 중원을 지나자면 여러 번 통관세를 내는 번거로움을 치르고 나서야 고구려의 영토인 만주와 한반도에 전달되었을 것이다.이익을 위한 순수 상품의 유통일 경우에는 그런 과정을 밟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이익을 위한순수상품이 아닌 경우에도 반드시 중원을 거쳐서 고구려에 왔을까 하는 의문이 간다.예컨대 고구려와 돌궐 칸 사이의 외교사절이나 중요한 통신같은 경우는 오히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중원을 피해서 서역에 갈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고구려에서 전교할 것을 이미 결정하고 전교행을 떠난 서역의 스님들 역시 그렇다.도중에 중원을 관광하기를 원하지 않는 한,중원을 우회할 수 있는 통로를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어떤 이유에서든지 서안에서 낙양과 북경을 거쳐 요동에 이르는 통로,곧 만리장성 남로를 피하여 고구려에 오는 길을 택한 동서교류가 있었던 것이다. 이를 가장 잘 웅변해 주는 사건이 양무제때의 삼론종의 조사 승랑이었다.승랑은 원래 도사였기 때문에 저술을 남기지 않아 결국 송나라때의 ‘송고승전’에 빠졌다.그러나 그의 손자벌 제자인 가상 대사 길장이 그가 지은 ‘대승현론’과 ‘삼론현의’에서 다음과 같이 거듭거듭 강조한다.승랑은 요동에서 온 고구려 승려로서,양나라 무제때에 화남의 섭산으로 내려왔다.그가 가르친 공사상의 핵심이 진속합명중도인데,이는 대승불교의 공사상을 가장 온전하게 전하는 논리로서 길장 자신은 물론이고 삼론종의 사상적 근거를 이룬다.이러한 주장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공사상은 대승불교의 사상적 근거이기 때문에 삼론종은 중국에 대승불교를 건설하는 이론적 초석의 역할을 했다.다시 말해서 삼론종은 당나라의 대승불교를 유도한 안내자였다.이처럼 중요한 삼론종의 조사가 승랑이었다는 사실을 길장이 주장하는 것이다.그런데 승랑은 이미 요동에서 명성을 쌓고,화남으로 내려왔던 것이다.그리하여 양무제가 그를 모시려 해도,이를 뿌리치고 승랑은 산간에서 공사상의 진정한 뜻을 제자들에게 전하여 삼론종의 논학을 일으켰다.그리하여 공사상은 극동의 불교문화를 변화시키는 효시의 역사적 역할을 감당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승랑만큼 큰 역사적 역할을 했던 한국 사상가가 또 있었던가.우리는 어째서 그를 잊고 있는 것인가.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중원의 불교문화를 전환시킬 만큼 큰 힘을지닌 승랑과 같은 사상가는 결코 본인 당대에 나타날 수 없다.그만한 인물이 나타나기 위해서는,그를 성장시킬 수 있었던 불교 사찰이나 문화센터가 있어야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다.그런데 요동의 불교문화센터는 중원의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랑은 요동에서 성장했다.이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미 투르크의 오르혼비문과 사마르칸트의 고구려 사신도를 거론하면서 고구려는 한문이나 한문문헌지식과 관계없이 멀리는 로마의 사절들과도 교섭했다는 사실을 앞에서 이야기했다.이런 맥락에서 승랑이 성장했던 요동의 불교문화센터는 중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요동으로 들어온 서역의 승려들에 의하여 용수의 중관론이 전해졌을 것이라는 상정이 가능하다.고구려에서 중원을거치지 않고 투르크의 세계,곧 서역으로 직접 이어지는 통로는 두 길이 가능하다. ○고구려 벽화에 서역인 등장 하나는 신강성까지 와서 고비사막을 직접 건너는 이른바 만리장성 북로이다.다른 하나는 신강성도 거치지 않고 천산북쪽 현재의 카자흐스탄의 대초원을 가로질러 알타이산맥과 바이칼호수 사이의 계곡을 타고 몽골로 들어와 만주로 닿는 대스텝 통로이다.아마도 신강성의 동투르크스탄과는 장성북로가 더욱 편리했을 것이고,서투르크스탄의 서쪽 중앙아시아까지 가는 데는 스텝통로가 더 유리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북방방통로를 통해서 고구려인들은 서역인들과 직접 교섭을 했기 때문에 고구려 벽화에는 코가 큰 서역인들과 씨름도 하고 격기도 하는 풍습을 그릴 수 있었다.그 뿐 아니라 신라인들은 위구르조각과 같은 서역과의 문화교류의 흔적들을 남겼다.이제는 서역과의 교섭사를 개방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 모닥불/백석 지음(화제의 책)

    ◎월북후 작품까지 역은 백석 시전집 최근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백석 시인의 시전집.첫시집 ‘사슴’에 실린 시 뿐만 아니라 분단이후 북에서 발표된 시들을 발굴,보완했으며 북한에서 발간된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에 실린 작품까지 망라했다.시인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평안북도 정주 태생이다.동향인 시인 김소월과는 오산고보 선후배사이로 백석은 선배시인 소월의 문학세계를 흠모했다.소월이 관서지방 특유의 정서를 민요적 틀에 실어 표현했다면 백석은 소월보다 더 짙게 마천령 서쪽 지역인 평안도 주민들의 일반적인 정서를 특이한 문체로 담아낸 시인이다.백석은 지난 88년 납·월북작가에 대한 해금조치가 있기 전까지는 ‘잊혀진 시인’이었다.백석문학의 특징은 상실되어가는 고향 의식의 회복과 이를 통한 제국주의 문화의 극복,전통문화유산에 대한 따뜻한 긍정,특유의 방언주의와 북방정서등으로 요약된다.특히 그는 구개음화가 되지 않은 구어체를 그대로 시어로 사용해 시적현장감을 살린다.백석의 시에서는 또한 민속적 상상력이 만개한다.그의 시에는 치성을 드리는 것에서부터 백중날 호미를 씻는 풍습에 이르기까지 전근대 시대의 민중들의 삶 속에 전해 내려오는 갖가지 습속들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이러한 백석 시의 민속적 세계는 결코 우연적인 것이나 이국취향이 아니다.그것은 근대인의 절실한 내면적 목소리에서 나온 것이다.한편 이번 시전집에는 270여개에 이르는 백석 특유의 향토성 짙은 시어들에 대한 풀이가 실렸다.된비(소나기),엄지(짐승의 어미),구신간시렁(걸립귀신을 모셔놓은 시렁),동말래이(산꼭대기),자즌닭(자주 우는 새벽닭),석박디(물김치),나주볕(저녁 햇살),들망(후릿그물) 등이 그 예이다.이동순 엮음 솔 9천원.
  • 정월 대보름 전통음식 만드는 법

    ◎절식 나누며 액막고 운빌고…/오곡밥엔 붉은팥·찰수수·기장쌀이 필수/약식은 찹쌀 먼저 찐뒤 밤·대추넣고 중탕 생활시계가 양력에 맞춰지면서 정월대보름은 ‘한다리 건너’명절이 된지 오래.올해는 IMF 혹한까지 겹쳐 더욱 챙길 여유가 없다. 하지만 예로부터 대보름은 가득찬 달의 기운을 빌어 액막이를 기원하는 제일.어려울 때일수록 대보름 음식을 나눠먹으며 한해의 운을 기원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배울 때다.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833­1623)의 도움말로 대보름 오곡밥과 약식 만드는 법을 알아본다. ◇오곡밥 △재료=쌀2컵,찹쌀1컵,붉은팥1/2컵,찰수수1/2컵,콩1/2컵,밤1컵, 기장쌀1/2컵,소금1작은술. △짓는법=①붉은팥을 삶아 건진 뒤 팥 삶은 물을 밥물로 쓴다 ②수수는 물에 담가 떫은 맛을 우려낸뒤 뽀얗게 벗겨 건진다 ③기장쌀은 씻어 건져놓고 콩은 미지근한 물에 불려둔다 ④찹쌀도 씻어 건져놓고 밤은 껍질벗겨 큰 것은 2등분해 냉수에 담근다 ⑤솥에 쌀과 위 재료들을 넣고 팥 삶은 물에 소금탄물을 합친 밥 물을 붓고 밥을 짓는다.비율은쌀·잡곡 1:밥물 0.8. ◇약식 △재료=찹쌀5컵,설탕1컵,밤200g,대추100g,실백(잣)30g,간장1/4컵,계피가루1작은술,후추1/2작은술,참기름2와1/2큰술. △만드는법=①찹쌀은 깨끗이 씻어 소금 푼 물에 2시간정도 담가둔다 ②불린 찹쌀을 찜통에서 50분정도 찐다.중간에 물을 2∼3번 내 려줄 것 ③밤은 껍질 벗겨 이등분하고 대추는 씨를 제거한뒤 적당한 크기로 썰어둔다 ④팬에 설탕을 넣고 중간정도의 갈색이 될 때까지 젓지않고 녹여 쪄놓은 찹쌀에 고루 혼합해 놓는다 ⑤설탕녹인 팬에 물 1/2컵을 붓고 밤·대추를 넣어 조린뒤④의 찹쌀에 혼합하고 실백·간장·후추·계피가루·참기름 등도 넣어 버무린다 ⑥⑤를 찜통에서 중탕하거나 200도C 되는 오븐에서 30분정도 구워낸다. ◎대보름 음식 무슨뜻 담겼나/묵은 나물 더위쫓고 복쌈은 풍년 기원/귀밝이 술 희소식·부럼은 부스럼 퇴치 대보름 음식엔 단순히 먹고마시는 걸 넘어 한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바람이 담겨있다.전해져오는 대보름절식의 의미를 살펴본다. 1.오곡밥=다섯가지 곡식을 섞어 지은 밥으로 약식이 보편화한 것.상원(대보름)엔 세집 이상에서 밥을 먹어야 그해 운이 좋다하여 이웃끼리 오곡밥을 나눠먹는 풍습이 있다.‘오곡반 백가반(오곡반 백가반;오곡밥은 백집이 나눠먹는다)’이란 말도 있다. 2.귀밝이술=상원 아침 술을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1년내내 좋은 소식만 듣는다고 웃어른이 데우지 않은 청주 한잔을 나눠마시게 했다. 3.묵은나물=가을에 말려둔 묵은 나물을 삶아 무치거나 기름에 볶아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습속이 있다.시래기·박나물·가지고지·고비·도라지·석이·표고·무·숙주·콩나물·오가리 등 9가지. 4.부럼=대보름날 새벽에 날밤·호두·은행·잣·땅콩 등 부럼을 깨문다.▲종기와 부스럼 예방▲부럼 깨무는 큰 소리로 잡귀쫓기▲깨무는 자극으로 치아를 튼튼하게 하기 등이 목적. 5.복쌈=참취나물·배추잎·김 등으로 밥을 싸서 먹는 것.풍년을 기원하는 풍습. 6.팥죽=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먹고 이를 문에 끼얹어 제사도 지냈다.붉은 색이 악귀를 쫓는다고 믿었기 때문.
  • 북한의 음력설 평범한 휴일에 불과

    북한에서 음력설은 민족고유의 명절이라는 명목으로 지난 89년에 부활됐으나 평범한 휴무일로 지켜지고 있다.친척들끼리 차례를 지낸다거나 세배와 덕담을 주고받는 등 전래의 풍습은 찾아보기 힘들다.간소하게나마 차례상을 차리는 추석 때는 그런대로 명절 기분이 나지만 음력설은 일요일과 다를 바 없다. 북한 주민들은 음력설날 직장에 나가지 않는다.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생일 등의 공휴일과는 달리 휴무일일 뿐이다.휴무일은 쉰 날 다음에 오는 일요일에 근무하도록 돼 있어 올해의 경우 28일 설날은 쉬는 대신 29,30일,31일은 물론 일요일인 2월1일에도 정상 근무해야 한다.북한에서는 음력설보다는 양력설이 더 큰 명절로 굳어져 왔다.2중과세가 공산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이에따라 주민들은 세배 등 전래의 설풍습을 양력설인 1월1일에 치르고 있다.
  • 설 논쟁/임춘웅 논설위원(외언내언)

    대통령직 인수위가 내년부터 음력설(구정) 3일 연휴제를 다시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또다시 설 논쟁이 일고있다.해묵은 논쟁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오늘의 경제위기가 일은 않고 흥청대는 결과가 아니냐는 반성과 겹쳐 공휴일 줄이기 차원에서 다시 이중과세의 폐해론이 나오고 있다.총무처가 94년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68.2%가 “이중과세의 폐단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어차피 또 한번 이 문제에 대한 시정 내지 개선 논의는 불가피하게 됐다. 어떻게 고칠 것인가 하는 데는 백인백색이다.그러나 지금 다시논쟁이 재개된 배경이 현 제도의 개선에 있으므로 고치긴 고쳐야겠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다.개선방향은 시대의 변화와 미래사회를 염두에 두고 고쳐져야 할 것이다. 양력을 쓰면서 음력설을 지키자면 이중과세 폐해는 고쳐질 수 없다.음력이 오랜세월 쓰여온 게 사실이지만 우리는 지금 조금도 이상없이양력을 쓰고있다.양력을 이상없이 쓰면서 설날만은 음력으로 하자든가 이중으로 하자는 논리는 설득력이 약하다. 일본은 일찍부터 전통적으로 지키던 음력 세시풍습을 모두 양력화하고 있다.설은 물론 우리의 추석 같은 것도 양력 8월15일로 지키는 식이다.일본 방식이 옳은 것만도 아니고 지금 당장 설날과 추석을 없앨 수도 없는 일이다. 우선 인수위가 검토하고 있다는 설날을 하루만 쉬기로 하면 어떤가.‘민족의 대이동’같은 혼란도 없을 것이고 공휴일 수를 줄이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그렇게 되면 하루쉬는 음력설날은 거주지에서 제사 모시는 날로 자연스럽게 변하게 될 것이다.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추석도 양력으로 적절한 날을 잡아 지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양력 8월15일은 추석의 분위기나 절기와 맞지 않을 것이므로 추석이 가장 많이 드는 양력 어느날을 잡아 지내면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사회에 휴가제가 정착되지않은 데서 비롯되고있다.휴가가 없다시피해 설과 추석이 휴가화 되는 것이다.17일인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논의도 좀더 살펴야 한다.공휴일 수만 외국과 비교했지 토요일 일을 하는 우리의 실정을 무시한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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