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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德談

    세초(歲初)다.만나는 사람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소원성취 하십시오”하며 새해인사를 나눈다.이른바 덕담이다. 딱히 언제부터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먼 옛날부터 우리민족은 해가 바뀌는 정초에 덕담을 나누는 세시풍속을 갖고 있다.그야말로 미풍양속이다.서양이라고 신년인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처럼 구체적이고 상대에 따라 다른인사법을 가진 나라는 흔치 않다. 우리는 나이가 어지간한 어른에게는 “부디 오래오래 사십시오”라고 하고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금년에는 꼭 쾌차하십시오”라고 인사한다.대학입시를 앞둔 손아래 학생에게는 “좋은 대학에 가야지”라고 인사한다. 우리의 이런 세시풍습은 언령관념(言靈觀念)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견해가지배적이다.우리는 예부터 말에는 신비스런 힘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말로서 그렇다고 하게 되면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지는 신령함이 말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원시종교에서 보는 점복(占卜)사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유독 시작에 큰 의미를 두는 민족이다.이른아침에는 나쁜 말을 삼갈 뿐 아니라 듣고 싶어하지도 않는다.좋지 않은 일을 하지도 당하지도 않으려 한다.“아침부터 재수없게” 따위의 관념이다.이런 생각은 아침 뿐 아니라 정초에도 마찬가지다.“정초부터 무슨 꼴이람” 같은 게 그런 것이다. 우리사회 전래의 풍습도 그렇거니와 하물며 나라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환세(換歲)에 범부도 삼가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경위야 어떻든 잘된 일이 아니다. 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 총재권한대행의 말 한마디가 정초부터 정가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이 대행은 구랍 31일 KBS 라디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민련과 호흡이 맞지 않아 도대체 일을 할 수가 없다.연합공천도어렵다”고 한 말이 사단이 됐다. 이에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명예총재가 1일 있었던 자민련 단배식에 참석하러 당사에 들렀다가 이 문제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이에 따라 당차원에서 성명을 내는 등 양당간에 얼굴을 붉히는 일이 벌어졌다. 이대행은 자민련을 자극하려는 뜻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하고 개인적으로는사과까지 한 모양이지만 엎질러진 말을 다시 주워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에는 최근들어 합당문제,선거구제 문제로 그렇지 않아도 좋지만은 않은 관계다.더구나 총선을 앞둔 미묘한 때에 당을 대표하는 사람이 연초부터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아무래도 신중치 못했다는 인상을 지울 길 없다. 임춘웅 논설위원
  • 장편역사동화 ‘고려소년 부들이’

    동화는 ‘꿈과 환상’만을 담고 있어야 하는가.최근 나온 장편역사동화 ‘고려소년 부들이’는 이를 부정해 관심을 끈다.이 동화책은 ‘꿈과 환상’을 제시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비현실적인 관점을 입력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삼성문화재단·문학사상사 공동주관 2,000만원 고료 99삼성문학상 장편동화부문 수상작’이란 큼직한 상을 받은 만큼 시대의 정서와 문학적 향기를 씨줄 날줄 삼아 잘 엮었다. 시대는 구한말.서간도(만주)의 한인촌에 살던 고아소년 부들이는 마적단의횡포를 목격한 후 생전에 아버지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땅,조선으로 갈 결심을 한다.가까스로 조선사람들이 살던 고려문에 도달한 그는 괴팍한홍삼장수 곰보영감을 만나 평양 솔내마을로 온다.그해 봄,지달해 영감(실존인물-아버지 지택주와 함께 제너럴 셔먼호에 승선했던 사람)을 통해 척화비(1871년)와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년)을 듣게 된다. 당시 고을수령은 돈을 주고 벼슬을 샀던 사람으로 백성들에게 얼토당토 않은 죄를 뒤집어 씌워 은과 홍삼을 빼앗고 있었다.부들이는 서양인 의사 홀(실존인물-윌리엄 홀,캐나다인 의사.청일전쟁후 과로 등으로 사망)부부를 만나게 된다.곧 청일전쟁(1894년)이 발발,평양은 전쟁터가 되지만 부들이의 재치로 솔내마을은 위기를 넘긴다는 내용이다. 중국땅에 살고 있는 ‘조선족’이 간도지방으로 이주했던 동포의 후예라는점,동학혁명과 서양문물이 들어오던 당시 상황 등을 동화 속에 녹여 상상의동화와 차별된다.구한말의 시대상을 부들이를 통해 ‘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잊혀져가는 풍습도 보여준다.액막이를 위해 놋요강을 사다놓던 것을 비롯해 담장이 반듯해야 재물이 밖으로 안나간다던 선조들의 생각,보릿고개때 가난한 사람이 이웃 마당에 비질을 해놓거나 나물을 뜯어 갖다놓으면 그 사람에게 양식과 된장을 나눠주던 이웃사랑 등도 살려냈다.또 자식을 많이 나은 여인이 인삼씨나 목화씨를 뿌리는 풍숩에서 ‘씨앗각시’라는 말이 나왔다는얘기도 재미있다. 작가 안주영씨는 “멋진 한국을 만들려면 역사를 알아야한다.선조들이 살아온 나날을 더듬어가면 지혜가 쏟아져 나온다”고 말한다.‘잊어버린 과거를되살려 올바른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동화’라는 심사평을 얻은이 동화는 어린이에게 새로운 동화세계를 보여준다. 허남주기자 yukyung@
  • [지구촌 밀레니엄 준비] 태국/IMF 극복 도약대 마련 잰걸음

    새 천년을 한달 앞둔 태국은 축제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드높다.태국 국민은 새 천년의 첫해를 맞는다는 벅찬 기대감과 함께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받고 있는 푸미폰 국왕의 72회 탄신일이 5일이기 때문이다. 태국에서 개최되는 올해의 민관 모든 행사는 국왕 생신을 축하하고 국왕의업적을 칭송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본다.국왕의 탄신축제를새 천년의 ‘가교’로 이어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대표적인 행사의 하나가 지난 11월4일 있은 52척의 왕실 소속 곤돌라의 ‘강상(江上)대행진’이었다.우리의 한강에 해당하는 방콕의 차오프라야강을따라 국왕과 신하들이 종교적 신화에 나오는 일곱 머리의 ‘나가(뱀)’ 등각종 상징 문양으로 장식된 곤돌라를 타고 새벽 사원으로 항진하는 모습은가히 장관이었다. 밀레니엄축제로는 새 천년 첫날에 방콕의 차오프라야강에서 ‘차오프라야­왕들의 강’이란 주제로 수상공연이 펼쳐진다.관객들은 배를 타고 이 무대에서 저 무대로 계속 이동하면서 태국의 역사,문화유산,전통생활 풍습 등을 재현한 공연을 관람하게 된다.라마 9세 즉 푸미폰 국왕의 일생 및 그간 재임기간 중의 치적과 생애의 하이라이트가 대형 스크린에 투사되면서 공연은 최고조에 이른다.태국 통합의 구심점인 국왕의 만수무강을 빌고 새 천년에는 더욱 활기차게 태국이 발전·번영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푸미폰 국왕 72회 탄신 축하공연을 가졌다.국립문화센터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린 현대극단의 뮤지컬 ‘해상왕 장보고’다.태국 왕실과 전통에 대한 우리 국민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표시했다.태국민의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훌륭한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태국은 푸미폰 국왕의 72회 생신 축하행사를 단순한 일회성 행사로서만 아니라 새로운 천년을 향한 굳건한 기반을 세우는 사회 인프라시설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 국왕 탄신일인 5일에는 방콕 중심의 23㎞ 구간을 통과하는 지상 전철인 ‘스카이 트레인’이 운행을 개시하게 되고,현재 건설공사가 진행중인 지하철도 2002년에는 방콕에서 운행될 예정이다.이러한 대중교통수단의 확충으로개인 승용차 운행이 줄어들면서 교통체증이 완화될 것이고 차량 배기가스에의한 매연도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교통 지옥 방콕의 오명을 벗을날도 멀지 않았다고 본다. 태국 정부가 그렇다고 축제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97년 7월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인도네시아,한국 등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야기시킨 도화선이었던 태국 경제는 이제 완연한 회복의 징후를 보이고있다.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국영기업의 민영화,외국 투자유치 촉진 등 제반 개혁조치를 통해 아직 우리나라 수준에는 못미치지만 금년도 수출증가율 6%,경제성장률 4%로 예상되는 탄탄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태국 정부는 경제위기의 교훈을 바탕으로 새 천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도약을 위한 체제정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정치적으로도 97년 10월 공포된신헌법에 따라 선거개혁,인권 강화,부정부패 방지 등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실현하기 위한 제도개혁이 이루어지고 있음이 고무적이다. 김국진 주태국 대사
  • “기독교 상·장례는 신학적 오류”

    기독교인들은 상·제례에서 절차와 용어의 상당부분을 전통유교 의식을 따르고 있으면서 그것이 서양 기독교 의례인줄 착각하는 등 신학적 오류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오세종 암사감리교회 담임목사는 지난 17일 대한불교 조계종 불교어산작법학교가 마련한 ‘한국종교의 사생관과 상장예법’에서 ‘한국개신교의 영혼관과 장례절차’를 발제하고 이같이 주장했다. 오목사가 지적한 한국 기독교계의 신학적 오류는 상·장례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드러난다.오목사는 이같은 유형으로 임종한 시신을 거둘 때 쓰는 나무판자를 기독교인들도 재래적인 용어인 칠성판(七星板)이라고 부르며 시신을 가릴 때 병풍을 사용하는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입관하고 난뒤 시신앞에 병풍이나 흰 휘장을 친 다음 그 앞에 작은 상을 놓고 그위에 고인의사진을 중심해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거나 꽃을 꽂는 것도 그중 하나.작은상을 놓고 사진을 놓는 것은 유교의 상례에서 혼백(魂帛)을 대신하는 유교적습속으로 서양에는 그런 의식이 없다는 것. 입관이 끝난뒤상복을 입는 의식도 유교적 성복(成服)절차의 유습과 절차가 같다.산소에 시신을 매장하고 돌아와서 유교는 우제(虞祭)를 지내는데 한국기독교인들도 장례 당일 집으로 돌아와 예배를 드리는 풍습이 있다는 것.또유교의례에는 삼우제(三虞祭)가 있는데 한국 기독교인들도 장례후 3일째 되는날 산에 가는 습속이 있으며 많은 기독교인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삼우제’라는 말을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목사는 “한국 기독교 상·장례의식은 외형적 의례의 절차에 있어 임종에서부터 추도식에 이르기까지 서양 기독교 의식 절차보다 재래 유교적 절차와 유사한 점이 많다”면서 “이는 그 의례속에 있는 사상·신학적인 부분이이해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앞으로 의례신학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김성호기자
  • 사목연구회 ‘대희년 심포지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국사목연구소(소장 김종수)가 2000년 대희년(大禧年)을 앞두고 최근 개최한 ‘한국천주교회사에 대한 대희년 심포지엄’에서교회의 역사적 과오를 참회하고 반성하는 토론회를 가져 주목을 끌었다. 발제자들은 대표적인 잘못으로 ▲18세기 말 서양선박 요청사건 ▲제사금지에 따른 갈등 ▲민족 고유의 정서와 문화 무시 ▲민족운동에 대한 소극적 태도 ▲신사참배 허용 등을 꼽았다. 원주교구 교회사연구소의 여진천 신부는 “1796년과 1801년 천주교회 지도자들이 서양 선박과 병력을 요청하는 서한을 중국 베이징의 주교에게 보낸것은 서양 배와 군대가 오면 천주교에 대한 금령(禁令)이 풀려 선교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면서 “그러나 이는 신유박해(辛酉迫害)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또 인천가톨릭대의 최기복 교수는 “18세기 교황청의 제사금지 조처는 천주교를 패륜의 사교(邪敎)로 낙인 찍히게 했고 복음의 토착화를 더디게 하는장애로 작용했다”며 교회의 잘못을 인정했다. 가톨릭대 장동하 교수는 “개항기 선교사들이 민족 고유의 문화와 풍습 등을 야만시함에 따라 유교적 전통을 고수하는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산 것은물론 지식인들의 반외세감정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전남대 윤선자 교수는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천주교회가 민족운동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행태를 문제를 삼았고,한신대 강인철 교수도 “교회가 신사참배를 허용하고 태평양전쟁 참전을 독려한 것은 반민족적·반가톨릭적인 과오였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천주교 전래기에 교회와 사회가 충돌했던 것은 대부분교회가 당시의 민족사적 요구나 보편적인 가치를 외면한 채 맹목적인 신앙의 논리만을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성호기자
  • 죽음으로 껴안는 치열한 삶…유금호 신작장편 ‘내사랑 風葬’

    중견작가 유금호의 신작 장편 ‘내사랑 풍장(風葬)’(개미 출판사)은 요즘인기있는 젊은 작가군의 작품들 처럼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어두웠던 한 시대를 배경으로 죽음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젊은이들의 고통스러운 정체성찾기와 연결시킨 만큼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오히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오랫만에 괜찮은 소설을 한편읽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유금호는 1964년 대한매일의 전신인 서울신문 신춘문예에‘하늘을 색칠하라’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뒤 줄곧 예술가의 본질적 자유를 치열하게 추구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특히 작품의 중심축을 이루는‘죽음’은 문학적 모티브로서 뿐 아니라, 학문적으로 파고 드는 대상이기도 하다. 목포대 국문과 교수인 그는 ‘한국현대소설에 나타난 죽음의 연구’등의 연구서를 낸 적도 있다. 작가는 죽음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죽음을 바라보게 되면 정반대로 삶에대한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출생에서,관습,관계,제도,상황,심지어 육체 혹은 섹스에 이르기까지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는인식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소설은 시베리아에 사는 축치족의 장례풍습을 담은 TV다큐멘터리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것으로 시작한다.이어 사람이 죽으면 바위산으로 시신을 옮긴뒤 잘게 토막내 독수리들이 쉽게 먹도록하는 티베트의 조장(鳥葬) 등의 장례풍습을 시인 ‘윤’의 목소리로 소개한다.먼저 죽음에 대한 고정관념을 덜어내겠다는 의도가 읽혀진다. 그러고 나면 문학을 공부하는 대학 조교인 ‘나’가 겪는 갖가지 죽음의 양상이 펼쳐진다.분신자살한 운동권 학생과 화가인 그 누이의 자살,나이든 아버지가 병약해져서 결국 죽음에 이르는 과정,바다에 빠져죽은 어머니에 대한기억,그리고 젊은이를 최고의 신 테즈카틀리포카로 추대하고, 그가 건강할때 심장을 바쳐 진짜 신의 노쇠를 막는 아즈텍의 톡스카틀 축제….작가는“소설가는 무엇이든 쓸 수 있지만,결국 자기가 쓸 수 있는 세계만을 쓰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이 작품도 6·25 때 둑길에 널브러져 있던이웃 아저씨의 주검에 대한 기억과 학교선생으로서 지켜봐야 했던 제자의 분신, 친구와 가족들과의 예고없는 이별,그리고 세상을 떠난 친구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했던 안데스,돈황,페루 등지로의 여행경험 등이 응축된 결과라는 것이다. 서동철기자
  • SBS ‘출발 모닝와이드’ 김치이야기 12편 방송

    찬바람이 소매깃을 파고들기 시작하면 소금으로 숨죽인 배추와 무를 시뻘건양념에 버무려 김치를 담아내면서 월동준비를 시작한 것이 우리네 풍습.하지만 세상이 바뀌어 이같은 고유한 김장 풍속도가 공장 김치에,나아가 일본 기무치에 야금야금 자리를 내줘왔다. SBS-TV ‘출발 모닝와이드’는 김장철을 맞아 김치의 역사와 현주소를 점검하고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김치를 먹일것을 제안하는 ‘윤동혁 피디의 김치를 아십니까-그 열두가지 이야기’를 1일부터 24일까지 매주 월·화·수요일 오전8시에 10분씩 내보낸다. ‘김치,일본 열도 완전 정복’을 비롯해 △모멸과 영광의 역사△김치와 기무치-그 도전과 응전△김치의 핵-고추의 신비△김치가 보약이다△한국인은 왜김치를 먹어야 하나△30년만에 뒤바뀐 3000년 식문화△하와이 김치 열풍△하와이의 김치 인생 3대△김치는 고부가 관광상품이다△한국 김치,세계를 휘어잡으려면△김치 사랑,이웃 사랑 등 12편이다.
  • [화제의 책]

    ■ 정운영교수가 던지는 사회비판·반성 시평집 논객으로 정평이 난 경기대 정운영 교수가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사회에 던지는 비판과 반성의 시평집이다. 최근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을 모아 엮었다.국제통화기금(IMF) 개입부터올 상반기까지 우리 사회의 어지럽고 참담했던 실상을 수기 형식으로 적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비판하면서 침몰 위기에 빠진한국경제의 실상과 정치현실을 질타하는 등 특유의 ‘삐딱하게 세상 바라보기’를 시도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지만 밑바닥에는 경제학자의 시선이 깔려 있다. ■ 소수민족의 독특한 삶·언어 소개한 문화기행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소수민족의 독특한 삶과 언어를 컬러 사진과함께 묶은 문화 기행. 저자인 관동대 연호택 교수는 지구촌 오지의 소수민족 풍습을 연구하기 위해 지구촌 곳곳을 직접 다녀왔다. 연 교수는 파키스탄의 장수마을 ‘훈자’에서부터 뉴질랜드의 ‘마오라족’에 이르기까지 12개국의 오지마을을 답사했다. 연 교수는문명인의 ‘그릇된 오만’으로 무시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고유한 문화와 풍습을 간직한 채 자신만만하게 지내고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는 “깊숙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다”고 밝힌다. ■ 학교교육의 붕괴현장 생생히 묘사 ‘수업 종소리가 고문받으러 가라는 소리로 들린다는 고교생들,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라 쩔쩔매는 교사들…’.학교 교육의 붕괴현장을 선입견없이 내시경으로 들여다 보듯 살펴본다. 다소 충격적인 이 책은 이른바 문제아로 찍힌 학생들,친구들에게 소외된 학생들을 위해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저자는 그러나 청소년들의 자생력을 믿으며 이 자생력이 학생과 교사,나아가 학교 전체를 구원해줄 진실한 ‘학교종’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여성신문에 ‘지금 교실에선’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1년간 연재된교육에세이를 묶은 것이다.인기방송 드라마 ‘학교’에서도 이 에세이를 소재로 활용했었다. [정기홍기자]
  • 日영화 이마무라감독 ‘나라야마 부시코’ 국내 개봉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죽게 마련이다.그것은 낡은 옷을 갈아 입듯 자연스런 일이다.슬퍼할 일도 아쉬워할 일도 아니다.그러나 그 죽음에 이르는 길이강제에 의한 것일 때도 과연 의연할 수 있을까. 일본을 대표하는 현역 감독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74)의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는 나이든탓에 산 채로 산에 내버려지는 죽음조차 자연의 이법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신비한 분위기의 영화다. ‘나라야마’는 일흔이 되는 노인들을 생매장했다는 일본의 전설적인 산,또 ‘부시코’는 노래(ballad)를 뜻한다.제목이 암시하듯 ‘나라야마 부시코’는 중세 일본에 있었던 ‘기로(耆老)풍습’을 소재로 삼는다.일본판 고려장이야기인 셈이다. 영화의 배경은 가난에 찌든 산간마을,대자연의 풍광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이곳의 겨울은 굶주림의 지옥이다.겨우내 태어난 사내 아이들은 이웃 논바닥에 버려지고,여자 아이는 한줌의 소금과 맞바꿔진다.그리고 70세의 노인은 나라야마로 가야 한다.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감독은 이영화에서 주인공 오린(사카모토 스미코)을 어떠한 광풍에도 높지 않는 들풀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노인으로 그린다.오린은 자신이 죽을만큼 쇠약해졌음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 돌절구에 자신의 이를 으깬다.핏물이 뚝뚝 떨어지지만 오린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감돈다.마침내 오린은 아들다츠헤이(오가타 켄)의 등에 업혀 나라야마 꼭대기에 이르고,평상심 속에 오린은 죽음을 맞는다. 널려진 해골 더미 위로 까마귀떼가 날고,기적처럼 내려 쌓이는 눈은 세상의부질없는 인연을 덮어버린다. 이 영화가 더없이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그중 하나가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그려진다는 점이다.사랑의 행위를 나누는 남녀와 뱀의 교미장면이 나란히 비쳐지는가하면,도둑질한 가족이 생매장되자 집안의 업구렁이가 슬그머니 도망친다.인간과 동물의 삶이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짜여져 있다. 그래선지 영화는 곳곳에서 범신론적인 냄새를 풍긴다.이마무라 감독 영화의형식상 특징은 다큐멘터리 지향성이다.이 영화 역시 한편의 자연다큐멘터리로 읽힌다.쇼맨십 없는 정공법의 연출이 영화에 힘을 얹어준다. ‘나라야마 부시코’는 ‘하나비’‘카게무샤’‘우나기’에 이어 네번째로 국내에 개봉(30일)되는 일본영화다.지난 83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받은 이 영화는 퍽이나 관념적이고 철학적이다.하지만 ‘설화적인’ 드라마의 줄거리와 비범한 영상미를 좇다보면 120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1951년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으로 일하며 감각을 익힌 이마무라는 58년‘빼앗긴 욕망’으로 데뷔,60년대 일본의 뉴 웨이브를 이끈 전후 1세대 감독이다.그는 ‘나라야마 부시코’로 구로사와 아키라 이후 나락으로 치닫던 일본 영화를 단숨에 절정으로 끌어 올렸다.97년엔 ‘우나기’로 다시 한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 노병은 죽지않음을 보여줬다. 김종면기자 jm
  • 4회 부산국제영화제 14-23일 열려

    20세기 마지막 해를 장식할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4일부터 23일까지 열흘간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아시아 최대의 영화축제답게 올 부산영화제에는 국제 영화계의 거물감독들이 대거 참석한다.‘책상서랍 속의 동화’로 ’99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거머쥔 장이모 감독은 유현목 감독·원로배우 황정순씨와 함께 핸드프린팅행사를 펼친다.또 데즈카 오사무의 아들로 ‘백치’를 감독한 데즈카 마코토,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딸로 ‘처녀자살소동’을 만든 소피아 코폴라,‘쥐잡이’를 선보이는 영국의 여성감독 린 램지,‘컵’을 출품한 부탄의승려감독 키엔체 노르부 등이 부산을 찾을 예정이다. 올해 부산영화제의 차림표는 어느해보다도 풍성하다.수영만 야외상영장과남포동 일대 극장가에 풀어놓을 영화는 54개국 211편.압바스 키아로스타미·장이모·리트윅 가탁 같은 거장들의 신작이 있는가 하면,프루트 챈·장위엔·부르노 뒤몽 등 주목받는 신진감독들의 작품도 고루 섞여 있다.개·폐막작으로는 한국의 ‘박하사탕’(감독 이창동)과 중국 장이모감독의 ‘책상서랍속의 동화’가 상영된다. 영화의 바다에서 견져올릴 월척급 작품들로는 어떤것들이 있을까. ■개막작?박하사탕 무기력의 극한에 이른 한 중년 사내의 개인사를 통해 얼룩진 한국사를 추체험.‘초록 물고기’로 한국사회의 폐부를 드러내 보인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에서 새로운 형식으로 현대사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간다. ■ 폐막작?책상서랍 속의 동화 중국 5세대와 6세대 감독을 아우르며 새로운 리얼리즘미학을 선보이고 있는 장이모 감독의 신작. 열세살 난 대리교사의 이야기를통해 중국 시골의 교육현장을 들여다 봤다.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영화에서 볼 수 있는 천진난만함이 스며있는 맑은 영화. ■ 아시아영화?쌍생아 ‘일본의 데이비드 린치’‘사이버 펑크의 귀재’로 불리는 쓰카모토 신야 작품.에도가와 람포의 동명소설을 영상에 옮겼다.서로 다른 운명의길을 걷던 쌍둥이가 한 여인을 축으로 다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뤘다.‘철남’‘동경의 주먹’‘총알발레’ 등에서 감독이 보여준 기괴한 이미지가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살아 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그리고 삶은계속된다’‘올리브 나무 사이로’ 등 ‘이란 북부 3부작’으로 잘 알려진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영화.이란 접경지역 쿠르드 마을의 독특한 장례의식을 매개로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기록영화에 가까운 담백함이 키아로스타미 영화의 특징.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 6,000만원짜리 초저예산 영화 ‘메이드인 홍콩’에 이어 프루트 챈 감독이 만든 홍콩반환 3부작의 두번째 작품.중국 반환막? 생계수단을 잃어버린 직업군인들이 은행털이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춤 춤과 팬터마임,연극이 혼합된 인도의 전통예술인 카타칼리의 대가 쿤히쿠탄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인도 영화.감독은 샤지 카룬.1930년대인도 남부의 케랄라를 배경으로 삼았다. ?구름에 가린 별 사티야지트 레이·므리날 센과 함께 인도영화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리트윅 가탁 감독 작품.벵갈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풍습 등을 탐구했다.오늘날 인도영화의 새로운 세대인 마니카울·쿠마르 샤하니·아두르고파라크리슈나 같은 감독들은 모두 그의 제자다. ?황토지‘사람과 대지’ 사이의 관계를 살핀 중국 5세대 감독 첸 카이거의대표작.1939년,팔로군의 한 병사가 민요를 수집하기 위해 가난한 마을 산시성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지평선이 화면 상단 3분의 2까지 올라오는 특이한구도가 눈길을 끈다. ?라쇼몽 ‘일본 영화계의 천황’ 구로사와 아키라의 출세작.195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일본영화로서 본격적으로 해외에 알려진 첫 작품.숲속에서 일어난 사무라이 살인사건을 여러 인물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풀어간다.진실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형이상학적 물음을 던지는 영화. ?오발탄 지난 56년 ‘교차로’로 데뷔한 유현목 감독의 대표작.한국전쟁 직후 폐허가 된 서울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한 가족을 통해 당시 한국사회 문제를 다뤘다.리얼리즘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모던한 방식으로 현실을 드러내고있다는 평. ■유럽영화?내 어머니의 모든 것 스페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열네번째 작품.간호사 마누엘라는 사고로 죽은 아들이 남긴 노트 속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글을 읽는다.그리고 성전환으로 여성이 된 남편을 찾으러바르셀로나로 떠난다.양성애와 동성애에 대한 분방한 묘사,초현실적인 발상,그로테스크한 유머 등이 그의 영화의 특징. ?8월말,9월초 불치병을 앓던 친구의 죽음으로 변화해가는 주변 사람들의 삶을 통해 프랑스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죽음의 풍속도를 그렸다.감독은 90년대 프랑스 영화계를 대표하는 올리비에 아사야스.그는 홍콩 여배우 장만옥과 결혼,화제를 낳기도 했다. ■애니메이션?모노노케 공주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대부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개발지와원시림이 공존하던 일본의 무로마치 시대를 배경으로 인간과 자연,그리고 환경파괴 문제를 다뤘다.97년 일본 개봉 당시 1,2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화제작이다. 한편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영화의 입장료는 1편에 4,000원(개·폐막식 8,000원).입장권 예매는 부산은행 전국 지점망과 서울의 서울극장·시네코아·중앙시네마 등에서 실시하며,인터넷 홈페이지(www.piff.org)로도할 수 있다. 김종면기자 jmkim@
  • [외언내언] 酒稅率 조정

    정부와 여당이 소주세율을 현행 35%에서 80%로 인상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내년부터 소주값이 크게 오를 전망이다.많은 국민들이 마시는 소주는 고려후기 몽고에서 전래된 것으로 전해진다.페르시아를 정복한 칭기즈칸의 몽고군이알코올 증류법을 배워와 술을 만들어 마시다 고려를 침략할 때(1274년)가져온 것이다.몽고군이 주둔했던 제주도에서는 소주를 노주(露酒·밑술을 고아서 이슬같이 받아낸 술이란 뜻)라고 불렀다.아랍어로는 알코올을 아라그(Arag)라고 발음하고 해방 전까지 개성에서는 소주를 아락주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려 때는 사찰이 여행자의 숙박지로 이용되었을 뿐 아니라 술을 판매하는풍습이 있어 사찰을 중심으로 다양한 술들이 개발되면서 술로 인한 폐해가심하자 고려 현종(1140년) 때는 사찰에서 술을 빚고 마시는 것을 금지한 일도 있다. 이번에 소주값 인상원인이 된 위스키(양주)는 19세기 조선조 말에 외국과교역이 이뤄지면서 도입되었다.위스키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거의 1세기가 지난 지금 소주와 양주를 놓고 통상분쟁이 일어나주세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유럽연합(EU)과 미국이 지난 97년 한국이 소주 세율 35%,위스키 세율은 100%로 차등 적용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국이 패소함으로써 세율을 동일하게 조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이에 따라 정부와 여당은 소주와 위스키 세율을 똑같이 80%로 결정한 것이다. 그동안 주세조정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이유가 나왔다.정부는 ‘고도주 고세율’원칙에 따라 소주세율을 올려야 한다고 밝혔다.조세연구원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심으로써 야기되는 각종 사회적 비용을 감안해서 도수가높은 술에 대해서 높은 세율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했다.정부가 ‘고도주 고세율’원칙을 지키려면 소주 세율을 올리면서 저도주인 맥주 세율을 소주 세율보다 낮게 책정했어야 사리에 맞다.그런데 맥주 세율은 현행 130%에서 내년부터 10% 포인트씩 내려 2002년 100%가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2002년에 가서도 맥주 세율이 소주 세율보다 높다는 것은 ‘고도주 고세율’원칙에 맞지않는다. 또 술로 인한 폐해를 감안해서 소주 세율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설득력이 약하다.정부는 WTO 판정에 따라 소주 세율과 위스키 세율을 같게해야하기 때문에 세율인상이 불가피하고 이로 인해 소주값이 오르게 됐다며국민들에게 설득하는 것이 궁색하지 않은 설득방법이 아닐까. 최택만 논설위원
  • 「APEC·오세아니아 정상외교」이모저모

    [오클랜드 양승현특파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참석차 뉴질랜드를 방문중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2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이번 방문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한·미·일 정상회담을 가진 뒤 APEC 정상회의 공식일정을 시작했다.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도 각국 정상부인들과 양털깎기 대회를 관람하는 등 공식활동에 들어갔다. -3국 정상회담 김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일본총리간의 3국 정상회담은 이날 클린턴 대통령의 숙소인 스탬퍼드호텔에서 예정보다 15분 늦은 오전 9시부터 시작돼 50여분동안 진행됐다. 클린턴대통령이 북한 미사일과 동티모르 사태 등의 의제를 설명한 뒤 본회담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취재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는 바람에 회담에서논의할 내용을 모두발언 형식으로 15분 동안 밝힌 뒤 비공개회담에 들어갔다. 3국 정상은 삼각형으로 배치된 좌석에 앉아 회담을 가졌으며,각국의 헤드테이블에는 정상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외교부장관과 외교안보수석 등 3명이 앉고,뒷줄에 다른 공식수행원이 자리했다. 회담장에는 오부치총리가 가장 먼저 도착,미국측이 마련한 대기실로 들어섰으며 이어 도착한 김대통령은 오부치총리와 반갑게 두손을 꼭 잡으며 각별한 우의를 표시하고 잠시 환담을 나눈 뒤 회담장으로 함께 입장했다. 회담이 끝난 뒤 김대통령은 회담장에서 클린턴 대통령 및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10여분 동안 개인적인 담소를 나눴다. 클린턴대통령은 김대통령에게 “오늘 여러 말씀을 해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한국의 경제회복을 축하하고 더 안정적인 회복을 이루길 기대한다”고 인사했다. 이에 김대통령은 “힐러리여사의 상원의원 선거운동은 어떻게 돼 가느냐”고 물었으며 클린턴대통령은 “잘되고 있다”고 화답했다. 김대통령은 또 “따님이 같이 오셨던데 잘 지내느냐”고 물었고,클린턴대통령은 “장모님이 같이 오셔서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올브라이트장관은 “김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집에 놓고 존경스러운 마음을갖고 있다”며 “오늘 회담에서 좋은 제안을 해주셔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공식환영식 김대통령은 한·미·일 정상회담이 끝난뒤 칼튼호텔에서 열린APEC 공식환영식에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참석한 다른 정상들과 환영식장으로 들어가 원주민인 마오리족 원로로부터 전통환영 풍습을 듣고 마오리족 할머니와 코를 맞대고 인사하는 전통풍습을 직접 실연했다. 이희호 여사 이날 오전 각국 정상부인들과 함께 콘월공원내 소렌토정원에서 양치기 및 양털깎기대회를 관람한 뒤 직접 어린 양들에게 젖을 먹이기도했다. 이여사는 이어 오라케이마래 공회당으로 이동,오클랜드 지역 초기 정착모습을 보고 20여분동안 설명을 들었다.이여사는 이 곳에서 마오리식 전통공연을 보고 원주민 문화의 소중함을 역설했다. 현지보도 11일자 뉴질랜드 헤럴드지(紙)는 김대통령과의 서면 회견기사를‘구습 일소에 나선 김대통령’이란 제목으로 크게 다뤘으며 ‘자유시장 선도자 비전 확고’란 별도 박스기사도 게재해 뉴질랜드 현지의 김대통령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반영했다. 김대통령은 회견에서 재벌개혁과 관련,“재벌에게 개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정부와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재벌들은 정부의재벌 개혁이 진지하고 일관성있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오래지 않아 재벌들은 경쟁력있고 건전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yangbak@
  • 춤·노래로 풀어낸 견우직녀 애틋한 사랑

    견우직녀가 일년에 단한번 만난다는 칠석.견우와 직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지만 이를 우리 노래와 공연양식으로 연결한 예는 흔치 않다. 국립국악원이 올해의 칠석날인 17일 오후8시 국악원 야외무대 별맞이터에서‘미리내 견우별의 사랑여정’을 펼쳐보인다.견우직녀 설화에 담긴 애틋한이야기와 풍습을 창작 판소리와 창작춤,시조 창,거문고 합주 등으로 풀어내는 그야말로 우리네 ‘소리의 향연’이다. 칠석맞이 굿을 재현한 ‘칠석별굿’으로 시작하는 공연은 시조창‘직녀’(김광섭·조일하노래)와 가야금독주‘은하수’(황의종곡), 창작무용‘별밤’(김영희안무)으로 이어진다.아울러 지금은 거의 사라진 토박이노래‘칠석요’를남도민요로 재구성해 최초로 무대에 올린다. 견우직녀의 애틋한 전설을 담은 창작판소리 ‘견우전’이 부부명창 김일구·김영자의 호흡으로 초연되며,지난 5월 거문고 역사축제에서 선보인 창작음악 ‘미리내’도 다시 관객의 박수를 기다린다. 칠석,사랑,별에 얽힌 조선시대의 한시와 오늘날의 현대시를 중견 작곡가들에게 위촉해 만든 창작 노래 공연도 눈여겨 볼만한 레퍼토리.‘칠석’(이병석시)‘칠석부’(김인후) ‘별들의 말’(황금찬) ‘견우직녀별을 보며’(권근)‘견우의 노래’(서정주)‘사랑사리’(성찬경)등 6곡이 그것이다. 모두 국립국악원 단원들의 국악 실내악 연주에 맞춰 소개되는데 우리 전통음악어법으로 표현되는 새 창작 노래가 어떤 반응을 얻을지,기대를 모은다. 김성호기자 kimus@
  • 沿海州의 카레이스키(중)-고려인의 생활상

    “고려인이 손대면 안되는 것이 없습니다” 지난 17일 스파스크군의 고려인촌에서 만난 한 러시아 주민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고려인을 칭찬했다. 이 지역에서는 토양과 기후가 맞지 않아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박과 토마토가 나지 않았다.그러나 지난 겨울 이곳으로 이주해 온 고려인들이 올 여름수박 등의 과일을 수확했다는 것이다.과일과 야채는 중국산이 있었지만 맛이 없었다.이곳에서 양파와 참외를 처음 수확한 것도 고려인이다.감자 밖에 없던 이곳에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선물한 고려인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다른 일화도 소개했다.한 고려인이 배추를 수확해 시장에 팔러 나갔다.그러나 러시아인들은 전에 다니던 야채가게만 찾았다.그러자 이 고려인은 손님들에게 “이 배추와 중국배추를 사다가 며칠 놓아두면 어떤 것이 좋은지 알게될 것”이라고 말했다.과연 중국배추는 이틀만에 썩기 시작했다.비료를 많이쓴 탓이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고려인들의 배추는 날개돋친 듯 팔렸다. 농사에 관한한 고려인은 연해주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강제 이주된 뒤 척박한 중앙아시아의 언 땅에 씨를 뿌려 벼를 수확한 것은 기적으로평가받는다.연해주 정부도 영농기술과 성실함을 높이 사 고려인들을 환영한다. 하지만 고려인의 생활은 아직 넉넉한 편은 못된다.중앙아시아에서 풍족한재산을 모으지 못한 이들은 집값 등 평균 4,000달러나 되는 이주비를 감당하느라 여유가 없다.하루하루 근근이 연명하는 사람도 많다.이들은 90년대 초독립국가연합의 형성으로 민족차별이 심할 때 무작정 건너온 사람들이다.재산을 몰수당한 사람도 적지 않다.일부는 러시아 정부가 내준 군용막사에서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민족 동질감을 지켜가려는 그들의 노력은 눈물겹다.농활대 학생들은 이날 밤 ‘고려인 위안 행사’를 열었다.이 자리에서 ‘아리랑 민속무용단’의 6∼13세 어린이들이 보여준 무용은 고려인과 러시아인의 심금을 울렸다.무용단은 김 발레리아(39·여)씨가 95년 어렵게 만든 것이다.90년 연해주로 온 김씨는 “민속과 풍습,고려인의 얼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그는“중앙아시아에는 민속무용단이 많았는데 당시 연해주에는 하나도 없었다”면서 “고려인은 물론 러시아인들도 우리 춤을 아주 좋아한다”고 전했다.최근에는 ‘고려인 기업가 연합회’ 등에서 지원을 받고 있다. ‘라즈돌노예’에서는 ‘고려인 중심센터’를 중심으로 실질적인 문화자치주를 만드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지난해 말에는 고려인들의 소식지인 월간 ‘원동신문’이 어렵사리 만들어졌다.기자가 만난 고려인들은 한결같이 한글을 배울 수 있는 책이나 비디오테이프를 보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우리말과 글을 잃은 사람들.그러나 ‘한핏줄’이라는 의식은 분명 살아있었다. 연해주 이지운기자 jj@
  • [해양한국 장보고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1회)

    ‘기원후 48년 7월,가야땅인 김해의 망산도에 한 척의 배가 닿았다.붉은 돛에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서남쪽에서 다가온 배 안에서 여러 명의 신하들과함께 내려온 여인은 김수로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나는 본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인데 성은 허(許)씨요,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이렇게 해서 김수로왕과 바다를 건너온 출자(出自)가 불명인 공주는결혼했다.뱃사공들은 돌아가고 나머지는 모두 가야의 국민이 되었다.‘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기록되어 있는 사화이다. 가야국은 육지의 이주세력과 해양세력이 결합해 출발한 나라이다.그러면 허황옥 집단은 어디에 기반을 둔 세력이며,어떤 항로를 거쳐 가야땅까지 왔을까? 그리고 해양능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아유타국은 인도의 아요디아왕국이라는 설이 있다.허황옥과 관련한 문화적인 요소는 분명 남방적 분위기가 풍긴다.우리문화 전반에도 신화 신앙 장례 풍습 등 남방적인 요소가 많다. 인도에서 한국까지는 오늘날에도 너무나 먼 뱃길이다.하지만 자연조건을 고려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인도남부를 출발하여 말라카해협을 통과한다음에 남서풍을 이용하면 보르네오섬 북쪽을 지나 북상이 가능하다.더구나필리핀 북부부터는 쿠로시오(黑潮)가 북동진한다.따라서 이 해류와 봄철에부는 바람을 이용하면 동남아지역과 일본열도 혹은 한반도남부는 교섭이 가능하다. 한편 그들은 인도를 떠나 육로로 중국의 사천성을 경유한 다음 양자강 하구에서 황해남부 사단항로를 이용해 가야지역에 도착했다는 설도 있다(金秉模설).그 외에 요동에서 서해 연근해항해를 이용해 낙동강구를 찾아왔다는 설도 있다.가야는 이렇게 원양 항해능력을 갖춘 집단으로 출발했다.하지만 이미 건국할 당시부터 강력한 해군이 있었다.이주민인 석탈해가 김수로왕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자 주사(舟師) 오백척을 내어 쫓아버렸다. 동아지중해는 황해 뿐만 아니라 전역에 걸쳐 해양문화가 높은 수준으로 발달하였다.고대국가들은 농사를 짓고,교역을 하며,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대부분 강가나 바닷가에서 발달하였다.특히 바다로 둘러싸인 지역이나 혹은 바다를 둘러싼 지중해지역에선 더욱 그러하다.‘삼국지’의 ‘한전’(三國志韓傳)에 의하면 한강 이남에는 마한 진한 변한이 연맹체 아래 만여가에서 수백가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소국 79개가 있었다. 이 소국들의 상당한 숫자는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과 같은 큰강의 하류(津)나 바닷가포구(浦)에 있었다.유럽 지중해의 연안에 무수히 발달했던 ‘아테네’ ‘코린트’같은 일종의 해양폴리스같은 ‘나루국가’였던 것이다.이 소국들은 바다를 건너 중국지역은 물론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열도와도 활발히 교역을 하였다. 마찬가지로 일본열도에도 기원을 전후하여 규슈를 중심으로 100여개의 나라가 있었다.이들 소국은 점차 큰 나라로 통합돼 기원 3세기 무렵에는 30여개의 나라가 되었다.물론 이 소국들의 주체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야요이문화의 주민들이었다. 좁은 대한해협을 사이에 둔 이들 수십개의 소국들은 선단을 보유한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그것은 교역권의 쟁탈전이었고,농사짓는 토지가 아니라 안전하고 효율적인 뱃길,좋은 항구,우수한 선원을 확보하기 위한 해양력 경쟁이었다.소국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의미있고 현실적으로 강한 나라가 바로 가야의 전신인 구야한국(狗邪韓國)이다. ‘삼국지 왜인전’에는 대방에서 일본열도의 야마대국까지 가는 항로와 항해거리,경유하게 되는 소국의 위치와 규모가 기록되어 있다.그런데 바로 한반도의 마지막 깃점이 김해지역으로 추정되는 구야한국이었다.이곳은 경상도 전역을 훑어내려온 낙동강의 물길이 모여서 대한해협과 만나는 나루터이다. 동해안을 따라 내려온 세력과 남해안을 따라 동진하는 세력이 만나는 한반도 동남부의 끝단이다.전라도의 해안이나 제주도에서 해류를 타면 자연스럽게김해지역에 도착한다.대마도와 이끼섬을 중간에 두고 일본열도와 이어지는최단거리에 위치해 있다. 고대항해는 가능한 자기위치를 확인하면서 연근해 항해를 하고,되도록 짧은거리를 선호한다.때문에 당시 김해지역은 중국지역과 한반도,일본열도를 이어주는 동아지중해 최적의 중계지였고,교역선이나 사신선들이 반드시 경유할 수밖에 없는 국제항이었다.이곳에는 각지역의 사람들과 다양한 물건들이 매매되고,가공무역과 중계무역이 이뤄지고 있었다. 1991년∼92년 김해군 주촌면 양동리에서 동의대학교가 기원전 1세기부터 4세기에 걸치는 고분에 대한 발굴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엄청난 유물들이 발굴된 이 지역이 기록상의 구야한국으로 추정된다(林孝澤).특히 2세기말 수장급 묘로 추정되는 162호 토광목곽묘에서는 9개의 청동거울이 출토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2개는 중국제 한경(漢鏡)이고,나머지 7개는 중국경을 모방한 방제경(倣製鏡)이다. 일본열도에서 많이 발견됐던 이 방제경을 놓고 한일학자들은 그 원류와 만든 장소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주장했다.또 광형동모,옥,목걸이 등 두지역간 닮은 것들이 출토돼 해석이 분분하다.이와같은 현상은 경성대가 발굴한 근처 대성동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였다.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가야가 중국물건들을 수입했으며,한일 양 지역간에는 해상교류가 활발했고,기록처럼 핵심거점이 이곳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변진(변한)은 철을 돈처럼 쓰기도 하고,왜 낙랑대방 예 등에 수출했다(삼국지 한전).또 유사한 물건들을 사용한 규슈의 소국들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주민들이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김해지역은 소위 환황해 연근해항로의중요한 깃점이자 교역망의 중계항이고 물류체계의 핵심거점이었다.해양소국에서 출발한 가야는 대한해협의 양안을 지배하는 해양제국으로 발전한 것이다. * 남대문은 그래도 안전?‘남대문 이상무’ 국립 문화재연구소의 남대문에 대한 안전 진단 결과이다. 남대문은 국보 제1호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재.그러나 그 주변으로 수많은 차량이 오가며 매연을 내뿜고 땅 밑으로는 지하철이 다니는 등 대접이이만저만 소홀한 것이 아니었다.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차량 및 지하철 운행에 따른 진동 등으로 남대문이 훼손될 수도 있다며 안전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이러한 우려에 따라 문화재연구소는 97년 12월 남대문 하층 귀기둥 부분에1000분의 1㎜까지 측정할 수 있는 자동경사측정기 8대를 설치했다.24시간 상시 가동되는 자동경사측정기는 30분당 2분씩 5초간격으로 건물의 기울기를측정해 왔다.측정된 자료는 변환기를 거쳐 중앙제어장치에 저장되고 문화재연구소로도 보내진다. 문화재연구소는 이를 토대로 일간,월간,계절간 변화를 비교,구조물의 거동특성을 분석하고 변위경향 분석을 통한 구조물의 안전도를 점검했다. 자료분석결과 측정 센서별 진폭은 1∼4㎜이내로 거의 없었으며 변형은 하루 및 연간 단위 주기로 파형 곡선의 증감을 보였다. 연구소측은 “측정값이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은 남대문이 목조건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즉 나무로 된 이음새부분이 온도,습도 등의 영향으로 늘었다 줄었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연구소측은 또 “기울기가 주기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계절 또는 주위 환경의 변화 때문으로 구조 안정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남대문 보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내렸다. 그러나 문화재연구소 김봉건 미술공예연구실장은 “자동 경사측정기를 지난해 4월부터 본격 가동했기 때문에 계절별,연간 변화를 파악하려면 1년반 정도 더 운영해 봐야 한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한편 연구소측은 내년에는 동대문에도 자동경사측정기를 설치하기로 하고예산요청을 했다.동대문은 지하철 공사가 시행된 지난 83년과 84년에 측정했을 때 8㎜로 나타나 남대문보다 훨씬 컸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사후약방문’보다는 문화재 밑으로 지하철을 굴착하는 도시개발행위가 중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임태순기자 stslim@
  • [대한시론] 해외 한국관계 자료의 수집

    몇년전 내가 관여하고 있는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는 한국에 왔던 미국 선교사들이 남긴 문서를 미국에서 마이크로필름으로 만들어 반입한 적이 있다.그 자료는 1884년부터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한 미국 북장로회가 한국 현지의선교사들과 수발한 문서로서 한국기독교사 연구에 대단히 필요한 자료들이었다. 그 문서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장로교역사협회’가 소장하고 있었는데,필자가 그곳을 방문,3만항목이 넘는 그 문서를 한국으로 반입하는 문제를 협의한 적이 있다.협의 과정에서 그 문서가 한국에 더 필요한 것이며 미국 교회사에서는 해외선교사 연구에 필요한 정도라는 것을 그들이 인정하였지만,그들은 더 필요한 곳에 무상으로 줄 의사가 없었다.그 협회의 규정은,연구목적으로 하루에 최대 40페이지를 복사할 수 있는데,그 방법으로 그곳에 있는 한국관계 문서를 모두 복사해 온다고 한다면,몇 년이 걸릴 지 알 수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그들이 요구하는대로 우리연구소가 수천달러의 마이크로필름제작비를 대고 그들이 마이크로필름을 제작,네거티브는그들이 갖고 포지티브 한 질은 우리가 갖는 조건으로 그 문서들을 가져올 수 있었다.그 마이크로필름을 한국으로 들여올 때 그것이 무슨 돈덩어리나 되는 것처럼,세관은비싼 관세를 매겼고,우리의 항의에 정부는 법이 그렇다는 대답만 되풀이하였다.지금도 마이크로필름 제작측은 네거티브를 계속 프린트하여 팔아먹고 있다.‘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갖는다’는 옛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해외에 산재한 한국관계 자료들은 대략 다음 몇가지로 구분된다.첫째는 강탈해간 것이다.여기에는,임진왜란때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가져간 것을 비롯하여 병인,신미양요때 프랑스와 미국이 약탈해간 것,한국전쟁때 외국에서우리 몰래 갖고 간 것 등을 들 수 있다.지금 교섭을 벌이고 있는 외규장각문서도 여기에 속한다.약탈된 문화재를 정당하게 돌려받기 위해서는 제3세계와 연대해 유엔을 움직이는 외교적인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로 19세기말 이래 한국에 주재한 외국공관이나 외교관들을 통해 수집해간 자료다.이것들은 대부분 해당 국가의 국가고문서관에 소장돼 있고,외교관이 개인적으로 수집한 경우,그와 친분이 있는 공공도서관이나 연구소에 기증,보관돼있다.아직도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러시아에 있는 한국관계 기록들은 거의 접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일본군 위안부 관계 자료들은 일본의 방위청문서고 등 그들의 정부기관에 비장되어 있다. 셋째 선교사 관계자료다,이들 자료들도 아직 반입되지 않은 것이 수두룩한데,이것들은 단순히 선교에 관계된 것일 뿐 아니라 당시 우리의 풍습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넷째는 상인과 기술자,개인여행자들이 남긴 자료들이다.여기에도 의외로 희귀한 자료들이 많다. 나라가 독립한지 어언 50여년이 지났다.나라경제도 상당한 수준으로 높아가,이제 정부적인 차원에서 해외에 산재한 우리의 문헌과 기록을 찾을 수 있는 여력을 가졌다.지금까지는 개인 연구자나 연구기관이 개별적인 관심의 차원에서 진행시켜 왔다.그러다보니 개인연구자들이 서로의 정보교환없이 각개로 뛰어들어 자료수집의 중복과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자료이용에 대한규정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국가에서는 한국인의 무질서한 경쟁이 자료이용 비용만 잔뜩 올려버리는 웃지 못할 결과를 가져왔다. 러시아와 중국의 경우가 특히 그러했다.이제 이러한 개인간의 경쟁적인 자료수집에서 오는 소모적인 낭비를 극복할 단계가 되었다.이를 위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종합적인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지금 정부의 기관 가운데는 해외의 한국관계 자료수집을 전담할 기구가 없는 것으로 안다.국사편찬위원회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와 같은 기구가 자체의 기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해외자료를 수집하는 역할을 일부 담당해 왔지만,그런 기관들이 해외 자료수집을 전담하는 기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차제에 정부의 지원과 전문가 그룹 주도하에 그 동안 각 기관·개인들의 해외자료수집 실태를 점검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 효율적으로 해외의 한국관계 자료를 반입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그림속으로 떠나는 몽골기행

    한국과 몽골의 문화를 한 눈에 비교해 볼 수 있는 풍물기행 성격의 이색전시가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상갈리 경기도박물관에서 펼쳐지고 있다.경기도박물관이 개관 3주년을 맞아 마련한 ‘초원의 대서사시-몽골유목문화대전’이 그것이다.몽골 유목민의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는 생활양식과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성은 새 천년을 준비하는 우리로서는 한번 되짚어 볼만한 점.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몽골의 사계를 배경으로 생활풍습을 상세히 보여주는 민족지적인 회화 ‘몽골의 하루’(샤라브 작)가 선보여 주목된다.몽골의 대표적인 그림인 ‘마유주 축제’와 혁명투사 수흐바아타르의 초상화를 그린샤라브(1869∼1939)는 몽골인의 생활을 미세한 터치로 그려온 작가.샤라브는 풍자적인 풍속묘사로 유명한 플랑드르의 화가 브뤼겔에 견주어 ‘몽골의 브뤼겔’이라고도 불린다.평면회화 외에 샤먼의 의례복과 무구(巫具),젖을 뿌리는데 쓰는 의례용 도구 ‘차찰’,마유주(馬乳酒)를 따를 때 사용하는 가죽용기 ‘후눅’,여성용 안장인 에메엘,점성용 만다라 등 다양한민속용품들도 나와 있어 몽골 민족의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고대 중국의 역사서 ‘한서(漢書)’는 유목민을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금수의 마음을 가진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그 이면에는 물론 유목민에대한 뿌리깊은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하지만 이번 전시를 보면 유목생활에따른 약탈은 생업의 일부일뿐 그들의 생활습속과 심성은 매우 정겹고 따뜻한 것임을 실감할 수 있다.8월22일까지.(0331)285-2011김종면기자
  • 유재주씨 장편역사소설 ‘공명의 선택’…제갈공명 삶 소설화

    유비에게 ‘천하삼분(天下三分)의 계(計)’를 바치고 천하통일을 도모한 촉나라의 재상 제갈공명(181∼234년).중국 삼국시대의 주역으로 한 시대를 경영한 그는 지혜의 상징이자 충신의 표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그의 삶은 그동안 소설과 평전 등을 통해 복원되고 또 재창조돼 왔다.1999년 천년의 끝자락에서 다시 만나는 제갈공명.그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중견 소설가 유재주(44)는 최근 펴낸 소설‘공명의 선택’(전3권,웅진출판)에서 제갈공명이라는 인물의 현재적 의미를 그의 철저한 준비성과 모험정신,휴머니즘에서 찾는다. 제갈공명의 준비성은 남달랐다.유비가 융중의 초려(草廬)를 찾았을 때 제갈공명은 출사(出仕) 뒤의 일을 계획하느라 집을 비웠던 것이 틀림없다는 게작가의 설명.심지어 제갈공명은 서촉을 여행하면서 남만족의 지리와 풍습,기후까지 철저하게 조사했으며,훗날 맹획에 대한 칠종칠금(七縱七擒)은 이러한사전조사와 준비에 의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제갈공명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정신의 화신이었다.작가는 “사마의가 조조라는 대기업을 선택하고,주유가 손권이라는 중소기업을선택할 때,제갈공명은 유비라는 구멍가게를 택해 대재벌로 성장시켰다”고말한다. 제갈공명은 또한 따뜻한 휴머니스트였다.제갈공명의 꿈은 인류의 평화였다. 전쟁은 하나의 방편으로 그것은 일생동안 그를 고뇌에 빠지게 한 딜레마였다. 제갈공명이 가능한 한 살생전을 피하고 화공(火攻)을 주로 편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제갈공명의 어린 시절부터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한 채 54세에 과로로 오장원에서 병사하기까지를 다룬다.인생의 기로에서 끊임없이 승부수를 던져야 했던 제갈공명의 내면을 그리는데 초점을 맞춘다. ‘공명의 선택’은 역사자료를 근거로 비교적 논리적으로 상황을 이끌어간다.그런 점에서 신화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경향이 짙었던 기존의 제갈공명 관련 소설들과는 좀 다르다. 구체적인 예로 제갈공명을 주요 등장인물로 다룬 나관중의 장회(章回)소설‘삼국지연의’와 비교해 볼 수 있다.작가는 ‘삼국지연의’와의 몇가지 차이점을 스스로 밝힌다.먼저 지적할 것은 ‘삼국지연의’에는 제갈공명의 어린 시절과 가족관계,성장과정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공명의 선택’에는 제갈공명이 태어나면서부터 유비를 만나기 직전까지의 행적이 소상히 그려져있다는 점이다. 호족 출신인 제갈공명은 여덟살 때 아버지 제갈규가 죽자 형주(호북성)에서숙부 제갈현의 보살핌 속에 자랐다. 후한 말의 전란을 피해 사관(仕官)하지않았지만 명성이 높아 와룡(臥龍)선생으로 불렸다.건안 12년 27세 때 그는마침내 위의 조조에게 쫓겨 형주에 와 있던 유비로부터 삼고초려의 예를 받고 초빙에 응했다. 제갈공명은 한(漢)왕조의 멸망이라는 어지러운 시대에 태어나 불우한 소년시절을 보냈지만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감연히 맞섰다.그 외유내강의 강인한 힘을 작가는 제갈공명이 한 시대를 경영한 지혜의 으뜸으로꼽는다. 작가는 제갈공명을 “하늘과 사람과 때를 알고 행동한 지식인”이라고 규정한다. 김종면기자 jmkim@
  • [대한광장] 끈질긴 부패의 역사

    맑고 깨끗한 세상의 건설은 한낱 이상에 불과한 일인가.세상이 언제까지 이처럼 썩고 병든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일차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부패 문제임은 국민모두가 공감하는 바다.그 동안 지겨울 정도로 부패척결이다,공직자 사정이다 하면서 기발한 수단과 방법을 죄다 동원해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오죽하면 전통적으로 상부상조의 문화적 향기가 스민 축의금이나 조의금까지 부패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 과장급 이상 공무원은 부조금을 받을 수 없게 하겠다는 정책 발상을 했겠는가.이를 감안한다면 우리사회의 도덕적 수준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는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부패의 뿌리는 그만큼 깊고 질긴 것이다. 실학자 다산선생은 자기가 살던 세상을 “온 세상이 부패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天下腐已久矣)라 하여 썩고 부패한 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라고 진단하였다.더구나 부패한 정도에 그치는 것이아니라 “썩고 문드러졌다”(腐爛)는 극단적 수사를 동원하여 당시 사회의 극심한 부패 실상을 아프게 고발하였다. 이는 부패가 이미 역사적이고 관행적인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고질화했다는뜻이다.언젠가 외국 잡지에서 한국을 포함한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는 부패가 ‘풍습적’(habitually)으로 행해진다고 쓴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 기사가 실감나게 다가왔는데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그러한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한심한 일이 아닌가. 옛날 중국 한(漢)나라때 일이다.궁녀 중에 왕소군(王昭君)이라는 천하절색이 있었다.얼굴도 미인이지만 품행까지 방정하여 황제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궁녀였건만 끝내는 북방 흉노족의 추장에게 팔려가는 기막힌 처지를 당한 비운의 주인공이다.당시 황제들은 화공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 다음,그것을 보고 마음에 드는 여인을 골라 총애하였다.황제의 사랑을 기다리는 궁녀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생긴 간택 방식이었다.그런데 못생긴 궁녀들은 자신을 예쁘게 그려 달라고화공에게 뇌물을 바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다.평소 미모에 자신이 있던 왕소군은 화공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화공은 그녀의 얼굴바탕은 예쁘게 그려주었지만 안면에 점을 찍어 곰보로 만들어 버렸다.이 때문에 왕소군은 추녀로 낙인 찍혀 흉노로 팔려갈 수밖에 없었다. 뇌물의 유무에 따라 결과가 사실과 달리 이처럼 현격하게 벌어지니 어떻게뇌물질이 끊어지겠는가.뇌물로 인하여 추녀도 미녀가 되고 미녀도 추녀가 되는 것이 한(漢)나라 때부터라면,2,0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뇌물의 역사(?)가 아니겠는가.자,그렇다면 그러한 효과를 지닌 뇌물의 역사를 누가,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을까.해결해야 할 난제 중의 난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동양의 현인들은 청빈(淸貧)한 삶을 그처럼 강조했고,청백리들을 왕조마다 예우했건만 뇌물은 없어지지 않았고,부정과 부패는 줄어들지 않았다. 다산은 부패한 세상의 교정을 위해서 두 가지 원칙을 제안했다.하나는 인간의 의식개혁이요,둘은 법과 제도의 개혁이다. 다산은 의식개혁을 위해 공직자의 청렴정신과 청백리 정신을 수없이 반복해 강조한 바 있다.이제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천 가능한 법제의 개혁을마련하여 부패방지의 기초를 세우고,공직자들이 국가에 정성을 바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자부심과 사명감을 심어줄 수 있는 실천적인 방안을 모색해야할 것이다.부패의 사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 나라,이제는 그 부패의 질긴 역사 고리를 끊을 때가 왔다.온 국민이 힘을 모으고 지혜를 짜내어 이번만은 반드시 이 작업을 성과 있게 만들어내자. [朴錫武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 단오절, 전통 민속행사 풍성

    단오절인 18일부터 옛정취가 물씬 배어나는 단오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여름철 다양한 부채를 전시하는 단오부채전(27일까지),단오때 한약을 달여먹던 풍습을 재현하는 단오탕재전(20일까지) 등이 열린다.특히 단오 당일인 18일에는 사상좌춤에서 미얄춤까지 7과장에 이르는봉산탈춤의 전과장이 10여년만에 공연된다. 또 단오때 부채를 선물받으면 그해 더위를 이긴다는 풍습을 살려 사군자 그림과 좌우명,가훈 등이 담긴 부채를 나눠주는 행사도 함께 열린다. 전통문화의 산실로 자리잡은 운현궁에서는 ‘국난극복을 단오와 함께’라는주제로 민요 등 전통예술 공연과 제기차기,널뛰기,민속음식 나누기 등 민속행사가 다양하게 선보인다. 최여경기자 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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