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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시론] 해외 한국관계 자료의 수집

    몇년전 내가 관여하고 있는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는 한국에 왔던 미국 선교사들이 남긴 문서를 미국에서 마이크로필름으로 만들어 반입한 적이 있다.그 자료는 1884년부터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한 미국 북장로회가 한국 현지의선교사들과 수발한 문서로서 한국기독교사 연구에 대단히 필요한 자료들이었다. 그 문서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장로교역사협회’가 소장하고 있었는데,필자가 그곳을 방문,3만항목이 넘는 그 문서를 한국으로 반입하는 문제를 협의한 적이 있다.협의 과정에서 그 문서가 한국에 더 필요한 것이며 미국 교회사에서는 해외선교사 연구에 필요한 정도라는 것을 그들이 인정하였지만,그들은 더 필요한 곳에 무상으로 줄 의사가 없었다.그 협회의 규정은,연구목적으로 하루에 최대 40페이지를 복사할 수 있는데,그 방법으로 그곳에 있는 한국관계 문서를 모두 복사해 온다고 한다면,몇 년이 걸릴 지 알 수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그들이 요구하는대로 우리연구소가 수천달러의 마이크로필름제작비를 대고 그들이 마이크로필름을 제작,네거티브는그들이 갖고 포지티브 한 질은 우리가 갖는 조건으로 그 문서들을 가져올 수 있었다.그 마이크로필름을 한국으로 들여올 때 그것이 무슨 돈덩어리나 되는 것처럼,세관은비싼 관세를 매겼고,우리의 항의에 정부는 법이 그렇다는 대답만 되풀이하였다.지금도 마이크로필름 제작측은 네거티브를 계속 프린트하여 팔아먹고 있다.‘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갖는다’는 옛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해외에 산재한 한국관계 자료들은 대략 다음 몇가지로 구분된다.첫째는 강탈해간 것이다.여기에는,임진왜란때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가져간 것을 비롯하여 병인,신미양요때 프랑스와 미국이 약탈해간 것,한국전쟁때 외국에서우리 몰래 갖고 간 것 등을 들 수 있다.지금 교섭을 벌이고 있는 외규장각문서도 여기에 속한다.약탈된 문화재를 정당하게 돌려받기 위해서는 제3세계와 연대해 유엔을 움직이는 외교적인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로 19세기말 이래 한국에 주재한 외국공관이나 외교관들을 통해 수집해간 자료다.이것들은 대부분 해당 국가의 국가고문서관에 소장돼 있고,외교관이 개인적으로 수집한 경우,그와 친분이 있는 공공도서관이나 연구소에 기증,보관돼있다.아직도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러시아에 있는 한국관계 기록들은 거의 접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일본군 위안부 관계 자료들은 일본의 방위청문서고 등 그들의 정부기관에 비장되어 있다. 셋째 선교사 관계자료다,이들 자료들도 아직 반입되지 않은 것이 수두룩한데,이것들은 단순히 선교에 관계된 것일 뿐 아니라 당시 우리의 풍습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넷째는 상인과 기술자,개인여행자들이 남긴 자료들이다.여기에도 의외로 희귀한 자료들이 많다. 나라가 독립한지 어언 50여년이 지났다.나라경제도 상당한 수준으로 높아가,이제 정부적인 차원에서 해외에 산재한 우리의 문헌과 기록을 찾을 수 있는 여력을 가졌다.지금까지는 개인 연구자나 연구기관이 개별적인 관심의 차원에서 진행시켜 왔다.그러다보니 개인연구자들이 서로의 정보교환없이 각개로 뛰어들어 자료수집의 중복과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자료이용에 대한규정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국가에서는 한국인의 무질서한 경쟁이 자료이용 비용만 잔뜩 올려버리는 웃지 못할 결과를 가져왔다. 러시아와 중국의 경우가 특히 그러했다.이제 이러한 개인간의 경쟁적인 자료수집에서 오는 소모적인 낭비를 극복할 단계가 되었다.이를 위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종합적인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지금 정부의 기관 가운데는 해외의 한국관계 자료수집을 전담할 기구가 없는 것으로 안다.국사편찬위원회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와 같은 기구가 자체의 기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해외자료를 수집하는 역할을 일부 담당해 왔지만,그런 기관들이 해외 자료수집을 전담하는 기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차제에 정부의 지원과 전문가 그룹 주도하에 그 동안 각 기관·개인들의 해외자료수집 실태를 점검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 효율적으로 해외의 한국관계 자료를 반입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해양한국 장보고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1회)

    ‘기원후 48년 7월,가야땅인 김해의 망산도에 한 척의 배가 닿았다.붉은 돛에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서남쪽에서 다가온 배 안에서 여러 명의 신하들과함께 내려온 여인은 김수로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나는 본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인데 성은 허(許)씨요,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이렇게 해서 김수로왕과 바다를 건너온 출자(出自)가 불명인 공주는결혼했다.뱃사공들은 돌아가고 나머지는 모두 가야의 국민이 되었다.‘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기록되어 있는 사화이다. 가야국은 육지의 이주세력과 해양세력이 결합해 출발한 나라이다.그러면 허황옥 집단은 어디에 기반을 둔 세력이며,어떤 항로를 거쳐 가야땅까지 왔을까? 그리고 해양능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아유타국은 인도의 아요디아왕국이라는 설이 있다.허황옥과 관련한 문화적인 요소는 분명 남방적 분위기가 풍긴다.우리문화 전반에도 신화 신앙 장례 풍습 등 남방적인 요소가 많다. 인도에서 한국까지는 오늘날에도 너무나 먼 뱃길이다.하지만 자연조건을 고려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인도남부를 출발하여 말라카해협을 통과한다음에 남서풍을 이용하면 보르네오섬 북쪽을 지나 북상이 가능하다.더구나필리핀 북부부터는 쿠로시오(黑潮)가 북동진한다.따라서 이 해류와 봄철에부는 바람을 이용하면 동남아지역과 일본열도 혹은 한반도남부는 교섭이 가능하다. 한편 그들은 인도를 떠나 육로로 중국의 사천성을 경유한 다음 양자강 하구에서 황해남부 사단항로를 이용해 가야지역에 도착했다는 설도 있다(金秉模설).그 외에 요동에서 서해 연근해항해를 이용해 낙동강구를 찾아왔다는 설도 있다.가야는 이렇게 원양 항해능력을 갖춘 집단으로 출발했다.하지만 이미 건국할 당시부터 강력한 해군이 있었다.이주민인 석탈해가 김수로왕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자 주사(舟師) 오백척을 내어 쫓아버렸다. 동아지중해는 황해 뿐만 아니라 전역에 걸쳐 해양문화가 높은 수준으로 발달하였다.고대국가들은 농사를 짓고,교역을 하며,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대부분 강가나 바닷가에서 발달하였다.특히 바다로 둘러싸인 지역이나 혹은 바다를 둘러싼 지중해지역에선 더욱 그러하다.‘삼국지’의 ‘한전’(三國志韓傳)에 의하면 한강 이남에는 마한 진한 변한이 연맹체 아래 만여가에서 수백가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소국 79개가 있었다. 이 소국들의 상당한 숫자는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과 같은 큰강의 하류(津)나 바닷가포구(浦)에 있었다.유럽 지중해의 연안에 무수히 발달했던 ‘아테네’ ‘코린트’같은 일종의 해양폴리스같은 ‘나루국가’였던 것이다.이 소국들은 바다를 건너 중국지역은 물론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열도와도 활발히 교역을 하였다. 마찬가지로 일본열도에도 기원을 전후하여 규슈를 중심으로 100여개의 나라가 있었다.이들 소국은 점차 큰 나라로 통합돼 기원 3세기 무렵에는 30여개의 나라가 되었다.물론 이 소국들의 주체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야요이문화의 주민들이었다. 좁은 대한해협을 사이에 둔 이들 수십개의 소국들은 선단을 보유한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그것은 교역권의 쟁탈전이었고,농사짓는 토지가 아니라 안전하고 효율적인 뱃길,좋은 항구,우수한 선원을 확보하기 위한 해양력 경쟁이었다.소국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의미있고 현실적으로 강한 나라가 바로 가야의 전신인 구야한국(狗邪韓國)이다. ‘삼국지 왜인전’에는 대방에서 일본열도의 야마대국까지 가는 항로와 항해거리,경유하게 되는 소국의 위치와 규모가 기록되어 있다.그런데 바로 한반도의 마지막 깃점이 김해지역으로 추정되는 구야한국이었다.이곳은 경상도 전역을 훑어내려온 낙동강의 물길이 모여서 대한해협과 만나는 나루터이다. 동해안을 따라 내려온 세력과 남해안을 따라 동진하는 세력이 만나는 한반도 동남부의 끝단이다.전라도의 해안이나 제주도에서 해류를 타면 자연스럽게김해지역에 도착한다.대마도와 이끼섬을 중간에 두고 일본열도와 이어지는최단거리에 위치해 있다. 고대항해는 가능한 자기위치를 확인하면서 연근해 항해를 하고,되도록 짧은거리를 선호한다.때문에 당시 김해지역은 중국지역과 한반도,일본열도를 이어주는 동아지중해 최적의 중계지였고,교역선이나 사신선들이 반드시 경유할 수밖에 없는 국제항이었다.이곳에는 각지역의 사람들과 다양한 물건들이 매매되고,가공무역과 중계무역이 이뤄지고 있었다. 1991년∼92년 김해군 주촌면 양동리에서 동의대학교가 기원전 1세기부터 4세기에 걸치는 고분에 대한 발굴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엄청난 유물들이 발굴된 이 지역이 기록상의 구야한국으로 추정된다(林孝澤).특히 2세기말 수장급 묘로 추정되는 162호 토광목곽묘에서는 9개의 청동거울이 출토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2개는 중국제 한경(漢鏡)이고,나머지 7개는 중국경을 모방한 방제경(倣製鏡)이다. 일본열도에서 많이 발견됐던 이 방제경을 놓고 한일학자들은 그 원류와 만든 장소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주장했다.또 광형동모,옥,목걸이 등 두지역간 닮은 것들이 출토돼 해석이 분분하다.이와같은 현상은 경성대가 발굴한 근처 대성동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였다.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가야가 중국물건들을 수입했으며,한일 양 지역간에는 해상교류가 활발했고,기록처럼 핵심거점이 이곳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변진(변한)은 철을 돈처럼 쓰기도 하고,왜 낙랑대방 예 등에 수출했다(삼국지 한전).또 유사한 물건들을 사용한 규슈의 소국들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주민들이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김해지역은 소위 환황해 연근해항로의중요한 깃점이자 교역망의 중계항이고 물류체계의 핵심거점이었다.해양소국에서 출발한 가야는 대한해협의 양안을 지배하는 해양제국으로 발전한 것이다. * 남대문은 그래도 안전?‘남대문 이상무’ 국립 문화재연구소의 남대문에 대한 안전 진단 결과이다. 남대문은 국보 제1호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재.그러나 그 주변으로 수많은 차량이 오가며 매연을 내뿜고 땅 밑으로는 지하철이 다니는 등 대접이이만저만 소홀한 것이 아니었다.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차량 및 지하철 운행에 따른 진동 등으로 남대문이 훼손될 수도 있다며 안전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이러한 우려에 따라 문화재연구소는 97년 12월 남대문 하층 귀기둥 부분에1000분의 1㎜까지 측정할 수 있는 자동경사측정기 8대를 설치했다.24시간 상시 가동되는 자동경사측정기는 30분당 2분씩 5초간격으로 건물의 기울기를측정해 왔다.측정된 자료는 변환기를 거쳐 중앙제어장치에 저장되고 문화재연구소로도 보내진다. 문화재연구소는 이를 토대로 일간,월간,계절간 변화를 비교,구조물의 거동특성을 분석하고 변위경향 분석을 통한 구조물의 안전도를 점검했다. 자료분석결과 측정 센서별 진폭은 1∼4㎜이내로 거의 없었으며 변형은 하루 및 연간 단위 주기로 파형 곡선의 증감을 보였다. 연구소측은 “측정값이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은 남대문이 목조건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즉 나무로 된 이음새부분이 온도,습도 등의 영향으로 늘었다 줄었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연구소측은 또 “기울기가 주기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계절 또는 주위 환경의 변화 때문으로 구조 안정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남대문 보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내렸다. 그러나 문화재연구소 김봉건 미술공예연구실장은 “자동 경사측정기를 지난해 4월부터 본격 가동했기 때문에 계절별,연간 변화를 파악하려면 1년반 정도 더 운영해 봐야 한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한편 연구소측은 내년에는 동대문에도 자동경사측정기를 설치하기로 하고예산요청을 했다.동대문은 지하철 공사가 시행된 지난 83년과 84년에 측정했을 때 8㎜로 나타나 남대문보다 훨씬 컸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사후약방문’보다는 문화재 밑으로 지하철을 굴착하는 도시개발행위가 중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임태순기자 stslim@
  • 그림속으로 떠나는 몽골기행

    한국과 몽골의 문화를 한 눈에 비교해 볼 수 있는 풍물기행 성격의 이색전시가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상갈리 경기도박물관에서 펼쳐지고 있다.경기도박물관이 개관 3주년을 맞아 마련한 ‘초원의 대서사시-몽골유목문화대전’이 그것이다.몽골 유목민의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는 생활양식과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성은 새 천년을 준비하는 우리로서는 한번 되짚어 볼만한 점.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몽골의 사계를 배경으로 생활풍습을 상세히 보여주는 민족지적인 회화 ‘몽골의 하루’(샤라브 작)가 선보여 주목된다.몽골의 대표적인 그림인 ‘마유주 축제’와 혁명투사 수흐바아타르의 초상화를 그린샤라브(1869∼1939)는 몽골인의 생활을 미세한 터치로 그려온 작가.샤라브는 풍자적인 풍속묘사로 유명한 플랑드르의 화가 브뤼겔에 견주어 ‘몽골의 브뤼겔’이라고도 불린다.평면회화 외에 샤먼의 의례복과 무구(巫具),젖을 뿌리는데 쓰는 의례용 도구 ‘차찰’,마유주(馬乳酒)를 따를 때 사용하는 가죽용기 ‘후눅’,여성용 안장인 에메엘,점성용 만다라 등 다양한민속용품들도 나와 있어 몽골 민족의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고대 중국의 역사서 ‘한서(漢書)’는 유목민을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금수의 마음을 가진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그 이면에는 물론 유목민에대한 뿌리깊은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하지만 이번 전시를 보면 유목생활에따른 약탈은 생업의 일부일뿐 그들의 생활습속과 심성은 매우 정겹고 따뜻한 것임을 실감할 수 있다.8월22일까지.(0331)285-2011김종면기자
  • 유재주씨 장편역사소설 ‘공명의 선택’…제갈공명 삶 소설화

    유비에게 ‘천하삼분(天下三分)의 계(計)’를 바치고 천하통일을 도모한 촉나라의 재상 제갈공명(181∼234년).중국 삼국시대의 주역으로 한 시대를 경영한 그는 지혜의 상징이자 충신의 표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그의 삶은 그동안 소설과 평전 등을 통해 복원되고 또 재창조돼 왔다.1999년 천년의 끝자락에서 다시 만나는 제갈공명.그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중견 소설가 유재주(44)는 최근 펴낸 소설‘공명의 선택’(전3권,웅진출판)에서 제갈공명이라는 인물의 현재적 의미를 그의 철저한 준비성과 모험정신,휴머니즘에서 찾는다. 제갈공명의 준비성은 남달랐다.유비가 융중의 초려(草廬)를 찾았을 때 제갈공명은 출사(出仕) 뒤의 일을 계획하느라 집을 비웠던 것이 틀림없다는 게작가의 설명.심지어 제갈공명은 서촉을 여행하면서 남만족의 지리와 풍습,기후까지 철저하게 조사했으며,훗날 맹획에 대한 칠종칠금(七縱七擒)은 이러한사전조사와 준비에 의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제갈공명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정신의 화신이었다.작가는 “사마의가 조조라는 대기업을 선택하고,주유가 손권이라는 중소기업을선택할 때,제갈공명은 유비라는 구멍가게를 택해 대재벌로 성장시켰다”고말한다. 제갈공명은 또한 따뜻한 휴머니스트였다.제갈공명의 꿈은 인류의 평화였다. 전쟁은 하나의 방편으로 그것은 일생동안 그를 고뇌에 빠지게 한 딜레마였다. 제갈공명이 가능한 한 살생전을 피하고 화공(火攻)을 주로 편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제갈공명의 어린 시절부터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한 채 54세에 과로로 오장원에서 병사하기까지를 다룬다.인생의 기로에서 끊임없이 승부수를 던져야 했던 제갈공명의 내면을 그리는데 초점을 맞춘다. ‘공명의 선택’은 역사자료를 근거로 비교적 논리적으로 상황을 이끌어간다.그런 점에서 신화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경향이 짙었던 기존의 제갈공명 관련 소설들과는 좀 다르다. 구체적인 예로 제갈공명을 주요 등장인물로 다룬 나관중의 장회(章回)소설‘삼국지연의’와 비교해 볼 수 있다.작가는 ‘삼국지연의’와의 몇가지 차이점을 스스로 밝힌다.먼저 지적할 것은 ‘삼국지연의’에는 제갈공명의 어린 시절과 가족관계,성장과정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공명의 선택’에는 제갈공명이 태어나면서부터 유비를 만나기 직전까지의 행적이 소상히 그려져있다는 점이다. 호족 출신인 제갈공명은 여덟살 때 아버지 제갈규가 죽자 형주(호북성)에서숙부 제갈현의 보살핌 속에 자랐다. 후한 말의 전란을 피해 사관(仕官)하지않았지만 명성이 높아 와룡(臥龍)선생으로 불렸다.건안 12년 27세 때 그는마침내 위의 조조에게 쫓겨 형주에 와 있던 유비로부터 삼고초려의 예를 받고 초빙에 응했다. 제갈공명은 한(漢)왕조의 멸망이라는 어지러운 시대에 태어나 불우한 소년시절을 보냈지만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감연히 맞섰다.그 외유내강의 강인한 힘을 작가는 제갈공명이 한 시대를 경영한 지혜의 으뜸으로꼽는다. 작가는 제갈공명을 “하늘과 사람과 때를 알고 행동한 지식인”이라고 규정한다. 김종면기자 jmkim@
  • [대한광장] 끈질긴 부패의 역사

    맑고 깨끗한 세상의 건설은 한낱 이상에 불과한 일인가.세상이 언제까지 이처럼 썩고 병든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일차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부패 문제임은 국민모두가 공감하는 바다.그 동안 지겨울 정도로 부패척결이다,공직자 사정이다 하면서 기발한 수단과 방법을 죄다 동원해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오죽하면 전통적으로 상부상조의 문화적 향기가 스민 축의금이나 조의금까지 부패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 과장급 이상 공무원은 부조금을 받을 수 없게 하겠다는 정책 발상을 했겠는가.이를 감안한다면 우리사회의 도덕적 수준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는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부패의 뿌리는 그만큼 깊고 질긴 것이다. 실학자 다산선생은 자기가 살던 세상을 “온 세상이 부패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天下腐已久矣)라 하여 썩고 부패한 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라고 진단하였다.더구나 부패한 정도에 그치는 것이아니라 “썩고 문드러졌다”(腐爛)는 극단적 수사를 동원하여 당시 사회의 극심한 부패 실상을 아프게 고발하였다. 이는 부패가 이미 역사적이고 관행적인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고질화했다는뜻이다.언젠가 외국 잡지에서 한국을 포함한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는 부패가 ‘풍습적’(habitually)으로 행해진다고 쓴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 기사가 실감나게 다가왔는데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그러한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한심한 일이 아닌가. 옛날 중국 한(漢)나라때 일이다.궁녀 중에 왕소군(王昭君)이라는 천하절색이 있었다.얼굴도 미인이지만 품행까지 방정하여 황제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궁녀였건만 끝내는 북방 흉노족의 추장에게 팔려가는 기막힌 처지를 당한 비운의 주인공이다.당시 황제들은 화공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 다음,그것을 보고 마음에 드는 여인을 골라 총애하였다.황제의 사랑을 기다리는 궁녀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생긴 간택 방식이었다.그런데 못생긴 궁녀들은 자신을 예쁘게 그려 달라고화공에게 뇌물을 바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다.평소 미모에 자신이 있던 왕소군은 화공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화공은 그녀의 얼굴바탕은 예쁘게 그려주었지만 안면에 점을 찍어 곰보로 만들어 버렸다.이 때문에 왕소군은 추녀로 낙인 찍혀 흉노로 팔려갈 수밖에 없었다. 뇌물의 유무에 따라 결과가 사실과 달리 이처럼 현격하게 벌어지니 어떻게뇌물질이 끊어지겠는가.뇌물로 인하여 추녀도 미녀가 되고 미녀도 추녀가 되는 것이 한(漢)나라 때부터라면,2,0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뇌물의 역사(?)가 아니겠는가.자,그렇다면 그러한 효과를 지닌 뇌물의 역사를 누가,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을까.해결해야 할 난제 중의 난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동양의 현인들은 청빈(淸貧)한 삶을 그처럼 강조했고,청백리들을 왕조마다 예우했건만 뇌물은 없어지지 않았고,부정과 부패는 줄어들지 않았다. 다산은 부패한 세상의 교정을 위해서 두 가지 원칙을 제안했다.하나는 인간의 의식개혁이요,둘은 법과 제도의 개혁이다. 다산은 의식개혁을 위해 공직자의 청렴정신과 청백리 정신을 수없이 반복해 강조한 바 있다.이제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천 가능한 법제의 개혁을마련하여 부패방지의 기초를 세우고,공직자들이 국가에 정성을 바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자부심과 사명감을 심어줄 수 있는 실천적인 방안을 모색해야할 것이다.부패의 사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 나라,이제는 그 부패의 질긴 역사 고리를 끊을 때가 왔다.온 국민이 힘을 모으고 지혜를 짜내어 이번만은 반드시 이 작업을 성과 있게 만들어내자. [朴錫武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 단오절, 전통 민속행사 풍성

    단오절인 18일부터 옛정취가 물씬 배어나는 단오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여름철 다양한 부채를 전시하는 단오부채전(27일까지),단오때 한약을 달여먹던 풍습을 재현하는 단오탕재전(20일까지) 등이 열린다.특히 단오 당일인 18일에는 사상좌춤에서 미얄춤까지 7과장에 이르는봉산탈춤의 전과장이 10여년만에 공연된다. 또 단오때 부채를 선물받으면 그해 더위를 이긴다는 풍습을 살려 사군자 그림과 좌우명,가훈 등이 담긴 부채를 나눠주는 행사도 함께 열린다. 전통문화의 산실로 자리잡은 운현궁에서는 ‘국난극복을 단오와 함께’라는주제로 민요 등 전통예술 공연과 제기차기,널뛰기,민속음식 나누기 등 민속행사가 다양하게 선보인다. 최여경기자 kid@
  • [발언대] 꽃한송이 들고 국립묘지 참배 여유를

    해마다 현충일이면 어김없이 안내업무를 맡아 새벽부터 동작동 국립묘지에가곤 한다.며칠 전 현충일 당일에도 여전히 일찍부터 하얀 소복과 검은 양장을 한 유족들이 국립묘지를 찾아 그리움과 서러움을 달래고 있었다. 국립묘지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계시는 곳이다.수많은 묘비와위패들이 당시의 참상과 고통을 새삼 느끼게 한다.가슴이 뭉클해져 마음을진정하기 위해 묘지를 돌다보니 그 많은 묘비 앞에 언제 갖다놓았는지 꽃들이 놓여 있었다. 한 묘비 앞에는 초등학생이 크레파스로 그렸음직한 태극기가 꽂혀 있었다. 서투른 솜씨지만 정성스런 마음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바람에 넘어진 태극기를 바로세우면서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에 흐뭇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추모와 감사의 마음으로 경건하게 지내자고 정한기간이다.오늘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국난의 위기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덕택이다.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풍습과 마찬가지로 6월 중 한번만이라도 하루를 정해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가벼운 간식이나 도시락을 준비해 사랑하는 사람끼리 가까운 공원이나 산에 찾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국립묘지를 찾아 묘비에 꽃한송이와 술한잔을올려놓고 참배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멋지게 꾸며놓아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면 국립묘지는 그저 다른 묘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지금보다 더 암울하고 힘든 상황에서민족과 조국을 위해 온몸과 마음을 바쳐 희생하신 그 분들의 넋이 외롭지 않고 서글프지 않게 하는 것은 바로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몫이다. 진정한 호국보훈의 의미도 되새기고 애국심도 키워줄 뿐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도 깊어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더욱이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산 교육이 아닐까. 정란미[서울 남부보훈지청]
  • [박강문코너] 폭탄주 권하는 사회

    몰로토프 칵테일은 술이 아니라 폭탄이다.우리가 화염병이라고 부르는 이것으로 전시에는 탱크도 잡았다.폭탄주는 마시는 술인데,때로는 이것도 폭탄이다.법무부 장관과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일시에 물러나게 했을 만큼 위력이대단하다.몰로토프 칵테일에 댈 바 아니다. 우리나라에 폭탄주 마시기가 언제 생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군에서 시작돼 군사통치 시절에 일반 사회에 퍼진 것으로 보이지만,본디 서양 땅에서 들어왔을 것이다.미국 영화‘흐르는 강물처럼’을 보면 맥주 가득 부은 잔에 버번 위스키가 든 잔을 빠뜨려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미국 공군 조종사들이 흔히 폭탄주를 마셨다고 하는데 이들도 원조는 아니고 이보다 훨씬 앞서서 영국 탄광부와 뱃사람들이 시작했다는 말이 있다. 주머니 가벼운 서민이 적은 돈 들여 많이 취하려고,또는 심리적으로 쫓기는 공군 조종사가 빨리 취하려고 마셨을 폭탄주는,우리 술판의 술잔 돌리기와결합하면서 거의 토착 풍습처럼 되어 가고 있다.위스키가 없으면 소주로라도 심을 박아 잔을 돌려야 직성이 풀리는 부류가 꽤 많다. 폭탄주 술판을 보자.두 가지 술로 폭탄주를 만들고,그 잔을 돌리고,마신 사람은 빈 잔들이 딸랑딸랑 소리가 나도록 머리 위로 흔든다.의식(儀式)과도같다.개인을 집단에 함몰시키려는 의식이다.머리 잘 쓰는 술 제조업자들이폭탄주 완제품을 만들어내지 않는 이유를 알 만하다.술자리에서 즉석 혼합주를 만드는 것부터가 의식이기 때문이다. 뭐든지 우리 땅에 들어오면 대체로 제바닥보다 맹렬해지는데 폭탄주 풍속도 그렇다.술 강권하기와 겹쳐져 무자비한 폭력성까지 띤다.주량만큼 개인차가 큰 것이 드문데도 우리 사회의 폭탄주 돌리기는 개인차를 인정하지 않는다. 술이 약한 사람에게는 집단 가혹행위나 다를 바 없다.술이 센 호걸들의 호언과 과시가 질펀해지는 동안 술이 약한 사람은 초주검이 되어 간다. 폭탄주 하면 소설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소마’가 연상되는데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신세계에서는 인간 정서를 획일화하는 소마라는 약을 모든 사람이 먹어야 한다.소마는 근심과 불안,자아 성찰,창의적 사고,반항심,의심 등이의식 속에 자리잡을 틈을 없앤다.불평 없는 복종심만 남긴다.소마를 거부하는 것은 반역이다.주석에서 폭탄주 피하기는 반역처럼 어렵다. 사람 사귐에 술이 확실히 좋은 윤활제 구실을 하기는 하지만,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해지면 바른 것을 굽히고 맑은 것을 흐리기 쉽다.술은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양심의 갈등을 잊게도 한다.이래서 술이 선용되기도 하고 악용되기도 한다.불합리에 부딪혀 절망하고도 술이요,합리를 불합리로 덮어야하거나 덮고 싶을 때도 술이다. 일제강점기 때 나온 문학작품에‘술 권하는 사회’라는 것도 있었고‘취한들의 배’라는 것도 있었는데,여전히 이 사회는 술 권하는 사회고 취한들의배인 듯하다.술 접대를 전담하는 이른바‘술 상무’가 딴 나라에도 있는지모르겠다.깊은 밤 길거리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토악질하는 취한이 우리처럼 많은 나라가 달리 있는 것 같지 않다. 일찍이 먼 옛날 중국 임금이 처음 술을 맛보고는 술로 망하는 사람이 나오겠구나 걱정했다고 한다.‘십팔사략’(十八史略) 앞쪽 부분에 있는 기록인데 그 우려는 들어맞았다.취중 살인,취중 방화,취중 실언,취중 패싸움,취중 패륜이 얼마나 많은가. 술은 역사도 바꾼다.91년 8월 소련의 개혁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변방 별장에 휴가 가 있는 동안 수구세력이 모스크바에서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며칠만에 실패로 끝났다.‘실패한 쿠데타’의 한 원인이 술이었다.쿠데타 수뇌부 인물들이 독한 보드카 마시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는 후속 조치를 서두르지 않고 있다가 어이없이 무너졌다. 도덕적으로 존경받아야 할 검사들이 대낮에 폭탄주 마신 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이는 것을 우리는 최근 한 달 간격으로 연거푸 보았다.폭탄주 돌리기는 비인간적이며 부작용이 큰데도 속효성과 그에 따른 경제성을 찬양하는사람들이 쉽게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리무리 술에 취해 돌아가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폭탄주 관습은 이제 없애거나 수출하는 것이 좋다.
  • 서초구, 현대판 품앗이 제도 ‘LETS’ 운영

    서초구(구청장 趙南浩)가 현대적 의미의 품앗이 제도인 ‘렛츠(LETS)’를운영,각박한 도시생활에서도 인간미를 물씬 느끼게 해주고 있다. 지역교환거래시스템(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의 영어 머릿글자를 딴 렛츠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자원을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고그 댓가로 돈 대신 다른 사람의 기술과 자원을 받는 제도. 지난달 18일부터 운영에 들어간 이후 8일 현재 26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해있으며 회원간의 품앗이는 하루 4∼5건씩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구는 주민들이 렛츠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유를 렛츠 속에서 일하는 보람과 봉사하는 기쁨을 동시에 맛볼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회원들의 전공분야도 다양하다.컴퓨터 수리에서부터 자동차정비,일본어·중국어 등 어학,제빵기술,대리운전,회계상담,동물치료,침술,간병,건강 상담 및 진료,화훼재배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 골고루 분포돼 있다. 구는 회원들이 제공한 서비스를 측정하고 관리하기 위해 ‘푸른 서초’를상징하는 보이지 않는 통화 ‘GM(Green Money)’을 만들었다.회원 각각의 기술과 서비스 교환 실적을 컴퓨터로 데이타베이스화해 GM을 통해 회원끼리 필요한 서비스를 편리하게 교환할 수 있다. GM에 나타나는 회원의 실적은 서비스를 제공한 경우 플러스(+)로 표시되고제공받으면 마이너스(-)가 된다.플러스가 많을수록 서비스가 좋다는 것으로인정되지만 반대로 마이너스 적립이 많아지면 신뢰감이 떨어져 불량회원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따라서 회원들은 불량회원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기술과 자원이 ‘선택’받았을때 최선을 다해 서비스한다. 구 관계자는 “우리 고유의 생활풍습인 품앗이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탄생시켰다”면서 “렛츠를 통해 각박한 도시생활 속에서 인정이 넘치는 이웃간의 정을 느낄 수 있을 것”고 말했다. 최여경기자 kid@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姜基遠 여성특위 위원장

    얼마 전 터키의 한 여성 의원이 이슬람교식으로 ‘차도르’라고 부르는 스카프를 머리에 쓴 채 의회에 출석했다는 이유로 시민권을 박탈당했다는 외신 뉴스를 보았다. 터키는 이슬람교 국가이면서도 일찍이 건국의 지도자 케말파샤 때부터 획기적인 개혁조치를 많이 취해 환골탈태의 노력을 계속해온 현대적인 국가로 알고 있다. 이 구체적인 사건에 관하여는 자세한 내용을 더 알아 봐야겠지만 원래 개혁적인 정신으로 시작한 ‘차도르 벗기’정책이 이제 와서 혹시라도 개인의 자유의사에 의한 자기 몸 꾸미는 자유나 종교의 자유에 대한 표현을 제한하는식으로 운영되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여 착잡했다. 꼭 이 뉴스 때문이라기보다 평소부터 우려하는 것은 세계 각 나라에 엄존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인권 침해,인권 모독적 관행이다.여성 성기(性器)를거세 하는 풍습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고,어떤 나라에서는 여성의 지참금이 적다고 결혼했다가 쫓겨나는 여성이 한 해에 수천명이나 되며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따라 죽는 관습도있다.그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매우 후진적인 많은 나라에서 남성은 아이를 만들거나 담배나 피우며 빈둥거리고,여성은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의 경제적인 생존 관련 모든 노동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생활비 확보 책임까지 전담하고 있다. 아직도 여성에게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고,그 타당성 여부를 논의중인 나라도 있다.정도문제가 있긴 하지만 여성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인권침해 관행을 들자면 세계적으로 끝이 없다. 이와 같은 뉴스나 사례에 접할 때마다 몸 속에서 솟구치는 좌절과 동정과분노,동병상련식의 심정적 고통을 느낀다. 이는 나 혼자만의 경험은 아니리라고 확신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건 여성이 억압받고 상처받고 짓밟히고 신음하며 살아갈때 우리는 하나의 여성과 인간으로서 무심할 수 없고 편안할 수도,행복할 수도 없다. 이 고통의 원천을 없애지 않고는 우리 자신의 문제가 끝날 수가 없다는 점에서도 세계는 하나이고,작은 지구촌이라는 표현이 실감이 난다.
  • [외언내언] 새천년 맞이

    서양에서는 100년(센추리),1000년(밀레니엄)을 하나의 획을 긋는 해로 기념하지만 우리는 60년 단위로 세월을 나누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환갑(小周甲)을 지내는 풍습이나 300년을 중주갑,600년을 대주갑으로 기념하는 것이 그것이다.지난 94년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펼쳤던 것도 그런 전통에 따른 것이었다. 그래서 2000년 맞이 기념행사를 떠들썩하게 마련하려고 부산떠는 것을 못마땅하게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일본도 ‘천년왕국’ 개념의 기독교 문화 전통을 지닌 서양과 달리 밀레니엄을 독특한 시각으로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다. 새천년준비위원회가 19일 발표한 기념사업들은 ‘세계기준’의 새 천년 축제에 우리 전통적 정서를 담아내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새 천년의 꿈,두 손을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는 캐치프레이즈가 나타내고자 한상생(相生)의 원리,평화와 행복에 이르는 열두 대문 건립,고려가요의 용어를 사용한 새 즈믄(千)마을 조성,먼 앞날을 내다 본 선조들의 내리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매향(埋香·沈香)찾기 행사 등이 모두 그렇다. 이런 사업들이 지닌 상징성이 얼마나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구체화되느냐가 새 천년 맞이 기념행사의 성패를 가름할 것이다.전세계가 밀레니엄 맞이에호들갑스러운 것은 새로운 세기에 대한 기대감을 통해 발전적 변화를 창출하는 정신적 원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따라서 세계 각국은 몇년 전부터 나름의 사회적·국가적 비전을 세우고 국가 재창조 작업의 일환으로 기념행사들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게 새천년사업에 뛰어들었다.따라서 자칫하면 국가비전을 세우는 작업보다 행사를 위한 행사에 치우치거나 공허한 말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새천년기념사업을 번드르르하게 치르는 것보다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 모두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나누어 갖고 자세를 가다듬어 한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열두 대문을 100년에 걸쳐 세우겠다는 발상은 바람직하나 그계획 속에는 낭비적인 요소도 없지 않다.특히 평화공원을 별도로 조성해 그곳에 열두 대문을 세울필요는 없을 듯싶다.이미 조성된 통일동산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만하다.2002년 월드컵을 염두에 둔 계획이라 해도 통일동산은 월드컵 경기장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문제가 없고 오히려 20세기의마지막 분단국인 한국의 21세기 통일의지 또는 통일위업을 국내외에 과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부활절 특집]“예수의 부활생명 나눠 민족위기 극복”

    4일은 부활절이다.부활절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을 축하하는 날로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가 가장 중히 여기는 축일이다.부활절을 맞아 국제대학생선교회(C.C.C) 원로 디렉터인 김준곤(金俊坤·75)목사로 부터 부활절의 의미와 부활절을 맞는자세 등을 들어보았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인데 요즘 일반인에게는 물론 일부기독교인조차도 이를 관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없지 않은 것같습니다.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공적이면서도 증인과 증거를 내세울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믿는 자들은 결코 그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특히 예수님의 부활은 4가지 진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4가지 증명이란? 먼저 진리가 거짓에 승리한 것을 증명합니다.그리고 선이 악에 승리한 것을 입증하고 있고,사랑이 증오를 극복하고 승리한 것을 입증합니다.마지막으로 생명이 죽음에 승리한 것을증거하고 있습니다.때문에 부활을 단순히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특히 IMF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을 나누는 일입니다.이 부활생명이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역사할 때 우리 민족이 처한 총체적위기는 극복될 것입니다. ▒부활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부활은 더 이상 기독교인들에게만 의미있는 일이 아닙니다.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께서 다시 부활하신 것은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뜻이었습니다.사랑과 화해,희생,봉사,나눔,섬김의 메시지이지요.그리고 절망에서 소망을 볼수 있도록 해줬습니다.오늘날 세계가 봉착한 인종문제나 종교갈등,도덕적 타락은 물론 우리의 남북문제나 지역감정,노사,빈부,세대간,계층간 갈등문제 등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문제들은 이같은 예수님의 부활의 메시지속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가난하고 고통받는,소외된 자들이 부활의 축복을 받을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굶주리는 북녘동포들을 도와주고 우리사회에 만연된 문제를 풀기 위해 특히 믿는 자들이 불씨가 돼 이웃과 고통을 나누는 운동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또 살벌한 사회분위기를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분위기로 바꿔가야 할 것입니다.이를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자기 자신과의 관계,타인과의 관계,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그렇게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처한 신앙문제나 도덕적 타락,자연환경의 파괴문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아서 특별히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는 현재 남북통일의 강가,21세기의 강가에 서 있습니다.우리는 새로운천년을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맞이해서는 안됩니다.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믿는 자들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십자가의 신앙과 부활의 능력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21세기를후손들에게 존경받는 유산으로 남겨주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죠. 부활절을 맞아 예수님의 부활 메시지를 사랑과 화해와 도덕의 부활로 맞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김목사는 올해 초 3일동안 여의도에서 금식기도회를 개최,여기서 모아진 1억원의 헌금을 결식아동돕기에 쓰는 등 몸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오고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사우스웨스턴 침례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80년 복음화성회 대회장,84년 세계교회기도성회 준비위원장을 맡은 바 있으며 현재 기독교21세기운동 한국대표,한국대학생선교회 총재를 맡고 있다.저서로 ‘예수칼럼’ ‘영원한 생명언어’ ‘김준곤 문설집’(전6권)등이 있다. 朴燦 - 부활절 교리와 풍습 ‘부활’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지 3일째 되는 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며 그리스도가 이렇게 죽음을 정복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죄와 죽음·악마’를 물리친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활절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성탄절과 함께 그리스도교회의주요축일이다.영어이름 ‘Easter’의 기원은 정확히 알수 없으나 8세기 앵글로색슨족의 사제인 비드는 앵글로색슨족이 숭배하는 봄의 여신 ‘에오스터(Eostre)’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했다. 매년 날짜가 바뀌는 절기가 실린 교회력 전체가 부활절 날짜에 따르고 있어 한 해 예배를 위한 전례력도 부활절을 중심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부활절은그리스도교에서 1년중 가장 중심이 되는 절기이다. ▒부활절의 날짜 서방 그리스도인들은 춘분(3월21일경) 무렵이나 춘분 다음만월(滿月 부활절 달)이 지난 후 첫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한다.그러나 만월이 일요일인 경우 다음 일요일이 부활절이 된다.따라서 부활절은 대개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가 된다. 부활절 날짜를 산출하는 방법은 8세기까지 기독교 여러 분파에서 많은 논쟁을 거친 끝에 결정됐다.그러나 동방정교회에서는 다른 계산법을 따라 서방교회와 일치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1주나 4주,5주 후에 해당된다. ▒종교의식 부활절 전야예배는 2세기경 기독교 예배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할무렵 주일성찬에 앞서 성서를 읽고 ‘시편’을 노래하는 주말 전야예배에서비롯됐다.예배순서는 ‘새로운 불의 강복’ ‘부활절 촛불점화’ ‘성구봉독’ ‘세례반 강복’ ‘세례’ ‘부활절 미사’ 등으로 이루어진다. 새벽예배는 주로 개신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부활절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부활의 영광’을 보여준다는 믿음에서 시작됐다.미국 펜실베이니아베들레헴에서 시작된 새벽예배는 이제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 초교파적으로열리는데 TV와 라디오로 중계될 정도로 관심이 높다. ▒부활절의 관습 유럽인들의 고대의식과 상징 표현에서 전래된 것이 많지만그중에서도 새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계란나누기’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관습이다.‘계란나누기’는 십자군전쟁에서 유래했다.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부대로 출정한 남편을 가진 한 여인이 고향을 떠나 방황하던중 자신을 정착하게 해준 마을 이웃들의 따뜻한 정에 대한 감사표시로 계란을 삶아 줬는데 바로 그 날이 부활절 날이었다.그녀는 그 계란으로 전쟁에서 돌아와 자신을 찾아 헤매던 남편을 만나게 됐는데이후 매년 부활절이면 부부는 계란에 아름다운 그림과 글씨를 써서 사람들에게 선물했고이것이 부활절에 계란을 나누는 유래가 됐다고 한다. 朴燦- 부활절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1885년 부활절 아침,외국선교사들이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한국 개신교회는 일제하에서도 교파별,지역별 연합예배를 갖고 ‘민족의 부활’을위해 기도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부활절 연합예배는 1947년 조선기독교연합회가 서울남산에서 1만5,000명의 기독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것이 처음이다. 한국전쟁 중에는 피난지 부산에서 고통받는 민중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도록 역할을 했으나 4.19 혁명을 거치면서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1962년부터 10년동안은 정치적 상황과 연합예배에 대한 개신교내 교파간 입장 차이로 분열된 가운데 부활절 연합예배를 갖기도 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가맹교단과 비가맹교단이 각각 남산과 덕수궁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렸던 것. 70년대 유신체체하에서도 분열과 갈등을 겪었다.그러나 75년부터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보수와 진보교단이 연합하여 예배를 갖다 96년부터는 장충체육관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갖고 있다. 한편 지난 90년부터는 남북교회간에도 부활절 축하 메시지를 나누어 오고 있다. 朴燦- 개신교 오늘 138개지역 연합예배 4일은 기독교 최대의 경축일인 부활절이다.이날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난 날.20세기의마지막 부활절을 맞아 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등 기독교계 교단은 부활절 연합예배,예수부활 대축일 미사 등을 통해 부활의 기쁨과 함께 그리스도의 부활에 담긴 참뜻을 새겼다. 개신교는 오전 5시30분 서울 장충체육관을 비롯한 전국 138개 지역에서 예년과 같이 연합예배를 올렸다.부활절 연합예배는 수많은 교파와 교단으로 나뉘어 있는 개신교계가 이를 초월해 함께 하는 유일한 행사.올해는 예장통합과 합동,감리교 등을 비롯한 30여개 주요 교단들이 참여했다. 장충체육관에서는 이날 0시부터 철야기도회에 이어 오전 4시30분 목회자와신학생들을 중심으로 신앙간증과 찬양,기도회로 시작,5시30분부터 1만여명의 신자들이 함께 한 가운데연합예배가 거행됐다. 길자연(예장합동 총회장·왕성교회 당회장)부활절 연합예배 대회장의 사회로 시작된 연합예배는 강만원 기장 총회장의 기도와 김삼환 명성교회 담임목사의 설교,이경운 예장대신 총회장,김재룡 예성 총회장의 축도 순으로 이어졌다. 연합예배위원회는 이에 앞서 지난 3월27일부터 일주일동안 ‘남산 걷기대회’‘찬양 대축제’‘민족화합을 위한 한국교회 지도자 회개기도회’‘십자가 대행진’등 갖가지 축하행사를 펼쳐 부활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가톨릭도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각 교구별로 4일 정오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예수부활 대축일 미사’를 올린다.가톨릭은 부활절 일주일전부터 시작되는 성주간(Holy Week)의 전례에 따라 성(聖)목요일 성유축성 미사,성금요일주님 수난예식에 이어 토요일 오후 8시부터 9시30분까지 성토요일 부활 성야미사를 드렸다. 성공회도 4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의 대한성공회 대성당을 비롯한 전국의 150개 성당에서 ‘부활 대미사’를 올린다.성공회는 고난주간(성주간)동안 매일 예식을 올렸다.월화 수요일은 미사와 함께 기도,신앙강화에 힘쓰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성금요일에는 수난예식,토요일 오후 7시 중심예식인 부활밤 예절을 드렸다. 한편 기독교 신자들은 사순절에서 부활절까지 40여일동안 매일 정해진 시간 성경을 읽으며 자기근신의 시간,기도,묵상의 시간을 가졌다.기간중 특별금식과 단식을 하면서 이를 통해 모아진 헌금은 불우이웃을 위해 쓴다.성공회도 사순절 기간동안 금식을 권장하면서 신자들에게 미리 주어진 극기헌금함에 모인 동전등 헌금을 불우이웃과 북한동포돕기에 쓸 계획인데 지난해는 동전으로만 4,000여만원을 모았다고 밝혔다. 朴燦
  • 모모세 다다시 한국도멘회장이 밝힌 ‘日시장 공략법’

    ‘살아있는 정보를 활용하라.’ ‘기업간 협력을 강화하라.’ ‘규슈 등 한국과 가까운 지역을 우선 공략하라.’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따라 잡는 18가지 이유’,‘한국이 그래도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는 18가지 이유’의 저자인 일본 기업인 모모세 다다시한국도멘회장이 제시한 3가지 일본시장 공략법이다. 모모세 회장은 19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국능률협회 최고경영자 조찬회에 연사로 참석,이같이 밝혔다. 모모세 회장은 “한국 기업이 일본에 1만2,000∼1만3,000명의 주재원을 두고도 일본인들의 생활풍습과 소비성향 등 ‘살아있는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이 반도체,철강,자동차 등에서 일본보다 우수한 최신 생산설비를 갖추고도 이를 가격경쟁력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면서 “일부 제품은 일본제품보다 싼데도 팔리지 않는 것은 일본시장특성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 가전제품이 일본시장에서 통하지 않는 이유를 부실한 애프터서비스때문”이라면서“기업들이 공동으로 애프터서비스 거점을 마련하는 방안이 지나친 경쟁의식때문에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각 그룹 경제연구소도 그룹간 라이벌의식을 벗고 연구소끼리 지역별로 정보를 공유, 국가차원의 ‘싱크탱크’로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모모세 회장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규슈지방을 한국기업들이 우선 공략할 수 있는 유리한 시장으로 꼽았다. 그는 “규슈지방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지역”이라면서 “이 지역에 대한 무역확대 노력을 지속적으로 편다면 한국 경제권내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혜초 구법정신 음악으로 기린다

    문화관광부가 2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한 신라의 고승 혜초(慧超·704∼787)스님을 기리는 ‘혜초 기념음악회’가 오는 27일 오후 7시 국립중앙극장 대극장에서 열린다. 특히 이번 음악제에서는 창작 국악교성곡 ‘혜초’와 함께 작곡가 유승엽씨가 인도의 전통악기인 오카리나로 연주하는 ‘선(禪)음악’이 선보인다. 교성곡 ‘혜초’는 시인인 진각종 장지현정사의 시에 작곡가 김회경씨가 곡을 붙인 것으로 불교연합합창단과 국악관현악단에 의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1시간짜리 창작 국악교성곡.이번 공연에는 진각종 청룡사 묘각사 길상사 불광사와 인천 보명사 수원포교당,조계사청년회 합창단,그리고 서울대 성악과 남성합창단 등 300명의 합창단과 중앙국악관현악단이 협연한다.여기에는 도신스님과 국악인 최진숙씨,바리톤 유훈석씨가 솔로로 동참한다. 장정사의 시에는 지극한 불심과 굽힐줄 모르는 모험심과 탐험심을 지닌 혜초스님의 높은 기상과 불굴의 용기,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불법을 찾아 떠난그의 깊은 구법정신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한편 이번 음악제에서는 가수겸 작곡가인 유승엽씨 자신이 직접 작곡한 선음악 ‘혜초’를 인도 고대악기인 오카리나로 연주,그윽하면서도 신비한 선율로 관객들을 서역으로 인도한다. 혜초는 1,200백여년전 인도로 구법여행을 떠나 당시 인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정세와 생활풍습을 담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의 저자. 우리나라는 물론 프랑스,독일,일본 등 학자들도 그의 선구자적 자세와 불교사상가로서 위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朴燦
  • 日 ‘혼욕 데이트’ 유행(뉴스 인사이드)

    ◎가족혼욕 옛 풍습 대신/20­40대 커플위주 변모 【도쿄 黃性淇 특파원】 일본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 혼욕(混浴)이 하코네(箱根) 벳푸(別府) 등 유명 온천에서 다시 성행하고 있다. 불황으로 단체 온천여행객이 줄어들자 온천업계가 내놓은 고육지책이지만 반응은 폭발적이다. 목욕시설의 부족 등으로 가족이나 남녀노소가 한 욕탕에 들어갔던 과거의 혼욕 풍습과는 달리 지금의 혼욕은 커플 위주. 오붓한 시간을 온천에서 즐기려는 커플의 증가와 온천업계의 불황 타개 전략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특히 ‘혼욕 데이트’를 즐기려는 혼전의 20대 남녀에게 큰 인기다.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도쿄(東京) 근교의 관광지로 유명한 하코네에서 ‘혼욕’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시설을 바꾼 온천만 30곳. 욕탕 시설을 짧게 짧게 빌려주는 곳도 생겼다. 대기실에서 20∼40대 커플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진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 30분 단위인데도 2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않는 커플이 늘어나면서 욕탕 곳곳에 ‘성행위 금지’라는 경고문구까지붙여가며 ‘회전율’을 높이고 있다. 노천온천이 딸린 숙박업소 객실은 하룻밤에 1인당 3만5,000∼6만엔으로 30분짜리보다 훨씬 비싼 편. 그러나 상당수의 온천이 토요일은 내년 3월까지 예약이 꽉 차 있을 만큼 성황이다. 이들 온천에 예약이나 문의를 해오는 쪽은 놀랍게도 20대 초반의 여성이 대부분. 한 업자는 “예약은 물론 체크아웃때 돈을 지불하는 것도 20대 여성이 가장 많다”고 귀띔했다. 딸의 혼전 여행을 반대하는 부모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혼욕여행을 부추기는 데 한몫하고 있다. 지난해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부모들의 47.5%만이 자식들의 혼전 여행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욕 데이트를 했다는 한 여성(22)은 “모처럼 두 사람이 여행하면서 남녀탕으로 따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 재미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 사회 생활상(IMF시대의 자화상:6)

    ◎고스톱 열풍 꺾이고 火葬엔 긍정적/‘종교로 불안 해소’ 미약… 40%가 무종교/불교 25·기독교 22·천주교 11%順/점집 찾은 사람 34% “사회 어수선해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아래에서도 국민들의 믿음은 큰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종교를 믿는 사람의 대부분이 ‘97년 이전부터 신앙을 갖고 있었다’고 답해 종교를 통해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추세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올 들어 점(占)을 본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사회가 어수선해 점을 봤다’고 응답,점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 했음이 엿보였다. 또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전생(前生)의 존재를 믿었다. ◆국민 10명 중 4명이 무종교.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대한매일과 유니온조사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전국민 라이프스타일 조사결과 응답자의 39.8%가 ‘종교가 없다’고 답했다. 기존 종교 중 불교가 25.1%를 차지,가장 많았으며 기독교와 천주교가 각각 22.8%와 11.3%였다.불교는 50세 이상 여성 신자들이 많았으며 젊은층과 대재 이상,화이트칼라에서 무종교 응답률이 높았다. 종교인들은 한 주일에 평균 2시간15분을 종교활동에 할애하고 있었다. 1시간 이하가 39.5%로 가장 많았고 2∼3시간은 28.2%,4시간 이상도 20.9%나 됐다.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57%)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부정적 반응은 8.5%에 불과했다. ◆전생(前生)이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엇갈려. 최근 귀신이야기가 유행하는 것은 사회불안 탓=응답자의 53.6%가 전생을 믿고 있었다. ‘없다’는 의견은 45.6%였다. 남성보다는 여성이,노년층보다는 20대 젊은층이 전생을 더 많이 인정했다. 최근 방송이나 사회 일각에서 귀신이나 전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유행하는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65.6%가 ‘IMF 체제 이후 불안한 미래를 반영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 의견은 고학력,생활수준 중상층에서 높은 동의도를 보였다. ‘실제로 귀신이나 전생이 존재한다’는 의견도 19.8%에 달했다. ◆올해 점을 본적이 있는지,봤다면 이유는?=응답자의 16%가 올해 한 차례이상 점을 봤으며 이유는 ‘예전부터 봤기 때문’(38.2%),‘요즘 사회가 어수선해서’(34.7%),‘그냥 재미로’(25.9%) 순이었다. 50대 여성과 저학력층이 습관적으로 점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실직과 부도에 시달리는 40대에서 ‘불안’ 때문이라는 응답률이 높았다. 점에 대한 신뢰도에 대해 ‘믿지 않는다’(42.5%)가 ‘믿는다’(4%)를 압도했으나 ‘경우에 따라서 믿는다’가 53%를 차지해 점을 본 결과를 작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았다. ◎화투·포커 등 노름성 오락/“지난해 비해 빈도 줄었다” 80%/최근 한달내 경험 27%/85%가 “그냥 재미로” 한때 ‘망국병’으로까지 불렸던 고스톱이 거센 IMF 파고에 꼬리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화투와 포커 등 노름성 오락 횟수가 줄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여성과 종교인을 제외한 모든 계층이 여전히 고스톱을 치고 있었으며 특히 30대 대졸이상 남성들의 화두와 포커 빈도가 가장 높았다. ‘최근 한 달 이내에 화투나 포커를 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27.2%가 ‘했다’고 대답했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37.5%로 여성 16.8%의 두 배이상이었다. 교육수준별로는 대졸 이상이 32.2%로 중졸 이하 20%보다 높았다. 기·미혼은 물론,직업·소득·지역 등에 관계없이 전 계층에서 화투나 포커를 즐기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지난해에 비해 화투와 포커 등을 하는 빈도의 증감’을 묻는 질문에 대부분의 응답자(80.3%)가 ‘줄었다’고 답했다. IMF 체제 이후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30대 화이트칼라의 감소세가 두드러진 반면,경기침체 여파를 타고 있는 자영업자의 감소세는 완만했다. ‘화투나 포커를 하는 목적’에 대해 응답자의 85.3%가 ‘그냥 재미로’라고 답했다. ‘돈을 따 보려고’(6.5%)와 ‘시간이 남아서’(5%)는 소수에 그쳤다. ◎火葬 어떻게 생각하나/“국토 이용 측면에서 찬성” 70%/연령 높을수록 거부감/법제화엔 신중한 입장 崔종현 SK그룹회장 작고 이후 사회 지도층 일부에서 일고 있는 장례문화 개선운동에 대해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를 법제화하는 데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화장(火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0.5%가 ‘국토의 효율적 이용 측면에서 볼 때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17.9%는 ‘자식들의 결정사항’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고 ‘전통적인 장례 풍습인 매장(埋葬)을 따르겠다’는 의견은 11.9%였다. 연령이 높을수록 화장에 대한 거부감이 컸으며 30대의 동의도(74.1%)가 높았던 반면,20대는 유보적인 태도가 두드러졌다. 종교별 화장 동의도는 천주교가 75.5%로 가장 높았으며 기독교(71.7%),불교(67.4%) 순이었다. 지역별로 수원과 인천 등 수도권지역이 80%에 이르는 높은 동의도를 보였으나 울산지역은 60.2%에 불과했다. ‘화장의 법제화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응답자의 43.3%가 찬성했으나 25.2%가 반대했으며 ‘무어라 이야기할 수 없다’는 유보적 태도도 31.5%에 달했다. 남녀간의 의견 차가 없었던 반면,기혼이 미혼보다 10% 높은 찬성률을 보였다. 전통적으로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있는 불교도들의 동의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뜻밖이었다. ◎정부정책 높은 인지도/가정폭력 방지법 66% ‘동의’/심야영업 해제 64%가 ‘반대’/의료보험 통합 73% ‘찬성’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분야 정책에 대해 응답자들은 비교적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분야별로 찬반이 엇갈렸으며 특히 가정폭력방지법의 경우 성별에 따라 큰 의견 차이를 보였다. ‘가정내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사용했을 때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아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93.6%가 ‘안다’고 답해 높은 인지도를 보였다. 생활 및 교육수준이 높을수록,연령이 낮을수록 더했다. 그러나 ‘가정폭력의 법적 처벌’에 대해선 성별 및 연령에 따라 큰 견해차를 보였다. ‘가정내 폭력도 처벌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응답이 66.6%였으나 ‘가정내 폭력은 가정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대답도 30.2%에 달했다. ‘남의 가정사를 법적으로 비화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의견은 2.6%에 그쳤다. ‘가정폭력의 법적 처벌’에 대해 여자의 75%가 동의하고 있는 반면,남자는 58.3%에 불과했다. 특히 20대 여성 동의율은 84.6%였다. 남녀 모두연령이 높을수록 ‘가정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난 9월15일부터 심야영업 제한이 풀린 다방 제과점 호프집 등과 내년 3월부터 같은 혜택을 받는 룸살롱 나이트클럽 등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4.4%가 소비향락 문화 및 범죄발생 증가 우려를 이유로 ‘반대’,35.2%는 소비활성화를 이유로 ‘찬성’하는 등 의견이 엇갈렸다. 나이가 어릴수록 심야영업 해제에 긍정적인 반면 고연령일수록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지역의료보험조합과 의료보험관리공단을 통합,의료보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정부 정책에 대한 의견’에 대해 응답자의 47.5%는 ‘전국 어디에서나 의료보험 서비스를 받는다’는 이유로,25.7%는 ‘불필요한 인원을 줄이는 계기가 된다’는 이유를 들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반해 18.6%는 ‘보험료가 오른다’는 이유로,또 7.3%는 ‘직장조합이 지역조합의 적자를 메우게 된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
  • 한국인 개고기 먹는 풍습/주한 외국대사 77% 긍정(조약돌)

    ○…주한 외국대사들은 대부분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 풍습에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金洪信 의원(한나라당)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는 풍습에 대해 26개국 대사 가운데 4명이 찬성,12명은 관여하지 않는다,4명은 풍습을 존중한다는 등의 의견으로 응답자의 77%인 20명이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민속경연 대통령상 경산 ‘계정 들소리’

    16일 경남 밀양시 삼문 야외공연장에서 폐막된 제3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영예의 종합최우수상인 대통령상(상금 1,100만원)은 경북 경산의 민요인 ‘계정들소리’에 돌아갔다. 경산시 자인면에서 전해지는 이 민요는 지신밟기를 시작으로 망깨소리·모심기소리·방아타령 등 10가지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회에 출연한 팀으로서는 다소 인원이 적은 80명이 재현한 이 민요는 9세기쯤 왜구를 물리친 한 장군의 설화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 장군의 사당에서 제사를 올리던 풍습이 후대에 풍년을 기리는 농요로 발전한 것이다. 신찬균 심사위원장은 “구성과 의상 등이 원형 그대로이고 짜임새가 있어 선정했다”면서 “앞으로 대회참가와 수상만을 겨냥한 물량위주의 행사는 절대 수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우수상(국무총리상·상금 700만원)은 경남 의령 치실(칠곡)에서 전승돼온 민속놀이 ‘치실망깨다지기’가 차지했다. 부문별 우수상인 문화관광부장관상(상금 각 350만원)은 농악에서 대구의 ‘달성다사농악’,민속놀이에서 서울의 ‘경복궁지경닺이’와 대전의 ‘버드내보싸움놀이’,민요에서 전남의 ‘강진군동두레농요’,민속무용에서 부산의 ‘동래한량춤’등 5개팀이 받았다.
  • IMF시대 조촐한 추석 특집/공중파 방송사 요란한 프로 지양

    ◎KBS,귀향표정 생방송/MBC,상봉이산가족 사연/SBS,조선족 노인 초청/EBS,경제적 상차림 소개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조차 어색한 시대,IMF한파 속에서 맞는 추석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이런 때일수록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여유를 갖는 지혜가 필요한 법.이를 강조하듯 각 방송사의 추석특집 프로그램도 잔치 분위기보다는 절약형 차례준비나 공동체 정서 강조 등 차분하게 편성된 것이 많아 눈길을 끈다. 10월2일 밤 10시 방영하는 ‘KBS 리포트’는 빚 때문에 ‘보름달이 아닌 그믐달’로 전락한 농촌사회의 모습을 보고한다.2일과 5∼6일에는 ‘추석특집 KBS 네트워크 연결 6시 내고향’을 오후 6시에 각각 방송한다.서울역과 각지역을 중계차로 연결,귀향표정을 생방송으로 보여주고 어려운 이웃과 추석을 함께 보내는 훈훈한 인정도 담는다.5∼6일 오전 10시10분에는 ‘한가위 연속퀴즈쇼 고향 앞으로’를 마련,달라진 한가위풍습과 지역별 세시풍속을 패널들의 퀴즈풀이로 알아본다. MBC의 연중프로인 ‘이산가족 찾기­이제는 만나야한다’(30일 밤 11시)는 그동안 생사가 확인됐거나 상봉한 사연을 집중 소개한다.또 세대간 만남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실버쇼!오세요!’를 10월4일(시각 미정) 방송한다. 금혼식을 올린 노부부끼리의 퀴즈대결,혼자 사는 실버세대가 이성을 찾는 코너인 ‘실버 사랑방’등을 준비했다.6일 밤 9시 ‘가요스페셜­어제 그리고 오늘’에는 70년대 가요계 주역들이 나와 당시 이야기와 대중가요의 변천사를 회고하며 가요를 통한 세대간 벽허물기를 시도한다. SBS는 5일 오전 9시 ‘나의 가족 나의 아빠’를 내보낸다.다양한 사연을 소개하면서 시대의 고통을 앞장서서 헤쳐나가야 하는 아버지들의 시름을 달래주고 따뜻한 가족의 정을 느끼게 하는 자리가 될 듯하다.이에 앞서 3일 오후 7시에는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가,조선족들이 모여사는 중국 심양의 만융마을 노인 4명을 초청해 만든 ‘장수퀴즈’ 코너를 방송한다. ‘EBS 문화센터’는 ‘IMF시대,추석맞이 준비는 이렇게’편을 28일부터 5일간 오전 9시부터 30분씩 내보낸다.차례상 차리는 데 필요한 예산짜기에서 장보기,경제적 부담없이 차례를 지내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두루 소개한다.추석음식 만들기와 남은 음식 재활용법 등 알찬 볼거리도 제공한다.‘한가위특집 어린이 국악교실’(10월1일 오후 5시20분)에서는 한가위의 어원과 유래,풍습,여러가지 민속놀이를 알려준다.
  • 푸드뱅크/李啓弘 논설위원(外言內言)

    남은 음식물 나눠먹기 운동이 확산돼 가고 있다.구세군을 비롯한 일부 종교단체와 사회복지 시설이 관공서나 기업체의 구내식당,그리고 제과점과 결혼예식장 식당들과 연대해 먹다 남은 음식물을 거둬 경로당,고아원에 보내주고 있는 것이다. 당국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이러한 역할의 푸드뱅크(음식은행)는 시작 8개월만인 최근 전국망을 갖춰 4,600여건에 8억원이 넘는 액수의 음식물을 기탁 받았다고 한다.음식물은 대개 빵과 같은 간편식품과 결혼식장 식당이나 기업체 및 관공서 구내식당에서 당일 만든 음식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알다시피 음식을 나눠먹는 풍습은 우리네의 전통적인 미풍양속이었다.어려운 시대일수록 이런 미풍은 더 활발하게 살아났다.일제때나 6·25 동란직후 폐허한 나라 현실인데도 거지가 찾아오면 따뜻한 밥 한덩어리를 퍼주었고,이웃집 굴뚝에 연기가 안나면 그집 아이들을 불러다 밥을 먹인 것이 우리네 인심이었다.이때의 대표적인 걸인이 ‘품바’가 아니었나 싶다.품바는 끼니를 잇기 위해 밥동냥을 다녔지만 그들 또한 남은 음식은 역시 끼니를 잇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품바’ 타령은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이런 따뜻한 사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반세기동안 대중의 가슴속에 이타령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음식나눠먹기에는 전제돼야 할 것이 있다.가능하다면 음식이 남아돌지 않게 해야 한다.어느 관공서 구내식당의 경우,400인분의 식사를 준비했다가 300인분만 팔고 나머지를 고스란히 푸드뱅크에 넘긴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는 자랑이라기보다는 부끄러운 일이다. 주먹구구식의 계량으로 무턱대고 많이 만든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무모한 살림인가.낭비를 막자고 하는 운동이 도리어 낭비를 관성화시키고,또 음식나눠먹기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합리화시킨다는 것은 이 운동의 근본 취지를 대단히 잘못 알고 있는 것이리라.남은 것을 주기 때문에 함부로 취급해도 좋다는 것 또한 나눠먹기의 참뜻을 외면한 일이 될 것이다.먹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음식을 다룬다는 것은 진정한 나눔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은 음식물은 자칫 유통시간이 길수 있고,또 여러 음식이 섞일 수 있어 부패하기 십상이거나 개밥이 될 우려도 없지 않다.결혼식 피로연장의 종업원들을 보면 시간에 쫓긴 나머지 음식물을 쓰레기처럼 아무렇게나 다루는 경향이 있는데 이 음식이 어려운 이웃에 전달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식중독이라도 일으키면 안보낸 것만도 못하다.음식은 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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