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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으스스한 유령의 ‘귀여운 쇼’/테마파크들 핼러윈 이벤트 풍성

    고대 켈트인들의 겨울맞이 풍습에서 유래한 핼러윈데이(10월31일)를 맞아 테마파크들이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한다. 서울랜드(02-504-0011)는 11월2일까지 모험의 나라에서 여고귀신,간호사귀신 등 으스스하지만 익살스러운 모양의 캐릭터들이 관람객들과 함께하는 깜짝 이벤트를 벌인다.또 통나무 무대에서 핼러윈 호러 시네마 상영,핼러윈 의상 입고 사진찍기,오페라의 유령 테마곡 연주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롯데월드(02-411-2000)는 31일까지 새로 개발한 10여종의 핼러윈 캐릭터들이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한다.박쥐옷을 입은 로티로리,귀여운 악마로 분장한 모리스,개구쟁이 호박귀신 화이트베어,키다리 해골 등이 광장에 나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고 사진을 함께 찍으며 축제를 즐긴다. 에버랜드(031-320-2000)에선 11월2일까지 타악 퍼포먼스 그룹 도깨비스톰이 매주 공휴일 저녁 글로벌스테이지에서 핼러윈데이를 테마로 공연을 펼치며,오전 11시와 오후 4시 정문 글로벌페어에서는 호박귀신,도깨비,해골,유령 등의 캐릭터들이 퍼레이드를 벌인다. 63빌딩(02-789-5663)에선 29일부터 11월2일까지 매일 오후 2시30분 다이버들이 해골귀신과 마녀 등으로 분장하고 수족관에 들어가 바다거북·가오리 등 수조 안의 해양생물들과 함께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핼러윈축제 분위기를 돋운다. 임창용기자
  • 상여꾼 이끄는 구슬픈 선소리 50년/‘쌍상여 호상놀이’ 전수자 이재경 씨

    ‘천지 만물 중에 인간만큼 귀한 게 또 있을까.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것을…’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던가.그러나 태어남이 그렇듯 죽음 또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하랴.그래서인지 예부터 배우자의 장례 기일에 눈을 감는 이를 축복받은 삶의 상징으로 그렸다.두 개의 상여가 나란히 이승의 문을 나가게 되는 것을,호상(好喪) 가운데 호상이라 했다.“당신과 한 날 한 시에 죽고 싶다.”는 말 속엔 인위적으로 그럴 수 없는 인간의 소망이 담겨 있는지 모른다. ●이승의 마지막 입맞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는 지금도 두 개의 상여가 함께 나가는 ‘쌍상여 호상놀이’의 명맥이 살아 숨쉬고 있다.암사동의 옛 지명인 바위절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 놀이를 이어가고 있는 이재경(李載慶·74·서울시 무형문화재 10호)옹.그는 “1954년부터 상여꾼을 이끄는 선소리를 시작했으니 벌써 50년이야.”라고 운을 뗐다. 19세 때인 48년 선소리를 배웠다.기골이 장대한 데다 상여를 뒤따르는 농악대에서도 호적(胡笛)을 잘 분다고 소문 날 정도로 음악성이 꽤 깊었던 터라 ‘지휘자’격인 선소리꾼으로 일찌감치 발탁됐다. 그는 “출상(出喪) 때 두 개의 상여가 이리저리 밀리는가 하면 급기야 머리를 마주 하고 입을 맞댄다.”면서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으니 땅 속에 묻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키스나 한번 하고 떠나자는 게지.”라고 쌍상여 행진에 얽힌 사연들을 풀어나갔다. 지금 이옹을 포함해 ‘바위절마을 호상놀이 보존회’ 회원은 150여명에 이른다.모두가 이곳에서 형님,아우로 지내온 사람들이다. 4대째 이 동네에서 사는 문경수(文慶洙·63)씨는 69년엔 지금의 강동구 강일동에서 송파구 오금동까지 10여㎞를 산 넘고,물 건너 장지(葬地)까지 간 경험도 있다고 떠올린다.그만큼 버거운 일이다. ●“저승 보냄이 쉽나?” 아무리 실제가 아니라 옛 풍습을 재연하는 것이지만 행사 진행에 참가한 ‘가짜 상주’들은 정말로 핏줄을 여읜 듯 구슬프디 구슬픈 곡(哭)으로 구경꾼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다. 출상,상여놀이,노제,외나무다리건너기,징검다리건너기,달구질로 구성된 호상놀이 재연행사는 2시간여 걸린다.이 가운데서도 압권은 단연 외나무,징검다리,논두렁 등 장애물을 건너가는 장면이 첫 손에 꼽힌다.각각 폭이 330㎝,370㎝나 되는 크고 작은 두 개의 상여가 장지로 가는 길에 논두렁,징검다리 등 70∼90㎝밖에 안되는 매우 비좁은 장소를 건널 때는 아슬아슬하면서도 절묘한 장면으로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상여꾼들의 균형감각이 없다면 쓰라린 낭패감을 맛보기 십상이다.그러나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이옹은 행여 상여가 물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망자를 욕되게 하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운다고 설명했다.이러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옛날엔 마을 사람이 죽으면 그날부터 장례일까지 오일장이면 닷새,삼일장이면 사흘을 꼬박 상여 연습에 힘을 쏟았다고 기억을 더듬었다.어떤 땐 상여꾼들끼리 발이 안 맞아 밤을 지새우는 일도 잦았다고 했다.이럴 때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막걸리와 김치였다. ●이 한몸 가면 그뿐 요즘 확산되고 있는 납골·산골,화장 등 새로운 장묘문화에 대해 묻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상여로 떠올려지는매장 찬성론자의 태도와는 반대였다.이옹은 “땅이 좁아지고 후세의 인식이 달라졌으니 (변화는)당연한 것”이라면서 “내가 죽으면 그만인데…”라고 짧은 한숨과 함께 말꼬리를 흐렸다. “죽은 이가 마지막 가는 길에서라도 서러움을 떨쳐내고 기분좋게 해주기 위해 될수록 화려한 모습을 나타내야 하며 이렇게 하려면 복잡한 예식이 되는 것이야.장례는 마음의 문제야.결국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남은 사람들이 아옹다옹하지 않고 화목하게 살자는 단합의 마당이라 할 수 있지.” 그는 “가끔 바위절 호상놀이를 두고 절차가 틀렸다고 다른 지역인이 따지는 일도 있지만,얼마나 진심으로 망자에 대한 애석함을 표시하느냐가 훨씬 중요하지 절차가 그렇게 중요하겠느냐.”고 말한다. 선소리꾼은 걸음의 완급을 판단해 적절히 구령을 넣어야 한다.선소리 마디마디에 율동을 넣어 발걸음 속도를 조절한다는 것이다.“군대식으로 ‘뒤로 돌아 갓’이란 구령이 있는데,지휘관이 빠르기를 알맞게 하지 못하면 오합지졸을 만드는 게 아니냐.”라고 예를 들었다.그래서 선소리엔 적당한 ‘애드리브'(ad lib)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젊은이들이 어려워 해 전수자가 끊길까 우려된다.”며 기능보전에 대한 정부 등의 대책을 아쉬워했다.그는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통과의례인 장례절차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은 갖고 있기는 한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송한수기자 onekor@
  • 토실토실한 밤 ‘천연영양제’

    햇밤이 한창이다.소담스럽게 벌어진 밤송이 속의 알밤은 짙은 갈색에 매끈한 윤기가 도는 만큼이나 영양도 옹골차다.이를 뒷받침하듯 ‘밤 세톨만 먹으면 보약이 따로 없다.’는 옛말도 전해온다. 밤에는 단백질,지방,탄수화물,무기질,비타민 등 5대 영양소가 함유돼 ‘완전 식품’으로 분류해도 손색이 없다.곡물이 부족하던 옛날엔 구황식품의 역할을 했지만 관혼상제 등의 의례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동의보감에는 “밤은 기를 도와주고 장과 위를 든든하게 하며,신기(腎氣)를 보하고 배고프지 않게 한다.”고 한다. 밤은 기름(유지) 함량이 적고 전분의 함량이 많아 삶거나 구워 먹으면 날것으로 먹을 때보다 소화가 더 잘 된다.이런 까닭으로 빵이나 과자 등의 원료로도 널리 사용된다. ●5대영양소·비타민·무기질 골고루 밤의 딱딱한 겉껍질과 부드러운 보늬(속껍질)를 벗기면 노란색을 띤 속살이 나온다.노란색을 띠는 것은 베타카로틴이라는 색소 때문이다.베타카로틴은 체내에 흡수되면 비타민A로 바뀐다.생밤 100g에 있는 베타카로틴은 45㎍(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그램)이다.베타카로틴은 피부를 부드럽고 윤기있게 해주며 노화를 늦춰 준다.면역력을 높여 세균과 바이러스로부터 몸을 보호해 감기 예방에도 효과를 나타낸다. 모든 영양소를 비교적 골고루 함유한 밤은 ‘천연 영양제’라고도 한다.밤 100g에는 탄수화물이 35.8g,단백질이 3.2g,지방·칼슘·비타민 등도 풍부한 편이어서 인체 발육 및 성장 촉진에 좋다. 밤에는 특히 견과류(껍질이 딱딱한 과실) 가운데 유일하게 비타민C가 들어있다.생밤 100g에 12㎎이 있다.비타민C는 피부미용·피로회복·감기예방 등에 효험이 있다.또 비타민C는 알코올 산화를 도와주는 까닭에 생밤은 술안주로도 좋다. ●노화 늦추고 면역력도 높여 밤의 비타민B1 함유량은 쌀보다 4배나 많다.생밤 100g에 0.25㎎이 들어있다.밤을 수시로 먹게 되면 타액(침)을 많이 분비하게 하고 소화대사를 촉진해 식욕을 돋워준다.비타민B1은 체내에서 저장량이 적으므로 날마다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밤에는 무기질 가운데 칼륨이 풍부한 편이다.생밤 100g에573㎎이 들어있다.나트륨과 함께 세포액의 침투압을 조절하는 칼륨은 심장과 근육 기능을 조절한다.부족하면 지각력이 둔해지고 반사작용도 떨어진다. 밤의 당분은 질이 좋다.소화를 촉진해 위장 기능을 강화하는 효소가 있다.배탈이 나거나 설사가 심할 때 군밤을 잘 씹어 먹으면 낫는 수도 있다. 밤은 생활 속에서 구급약 역할을 한다.차멀미가 심할 때 생밤을 씹어먹으면 증상이 가라앉으며,칼과 같은 날카로운 도구로 상처를 입거나 피부병,혹은 벌레에게 물렸을 경우에는 생밤을 씹어서 상처에 붙이면 해독 작용을 한다.밤에는 지혈 성분과 함께 독소를 완화시켜주는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해독·지혈작용 ‘구급약' 역할도 하지만 좋은 밤에도 유의할 점은 있다.전분이 많다는 것이다.즉 열량이 생밤 100g당 162㎉에 이를 정도로 높아 군살이 찌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감기나 풍습으로 오는 외감병,비만,산후 조리 중 변비가 심한 경우 밤을 삼가는 게 좋다고 한다. 좋은 밤은 알이 굵고 껍질이 깨끗하며 윤택이 난다.밤을 손으로 눌러봐 단단한것을 고르는 게 좋다.손으로 눌러 들어가는 것은 너무 말랐거나 썩은 밤일 수 있다.벌레 먹은 밤도 피하는 게 상책이다. ■ 도움말 김선창 임업연구원 특용수과장,안승춘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 회장 이기철기자 chuli@ 수프… 구이… 탕 영양식으로 ‘만점' 밤은 날로 먹어도 맛있다.하지만 삶거나 구워도 맛있다.길거리에서 파는 군밤 한봉지도 밤의 간식으로 괜찮겠지만 밤요리를 다양하게 시도해 보자. 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영양식으로 많이 개발돼 있다. 밤수프 양파(½개)와 셀러리(1개) 껍질을 벗기고,얇게 썰어서 버터에 살짝 볶아둔다. 껍질을 벗긴 밤(250g)도 얇게 썰어 둔 다음,육수(4컵)를 부어 뚜껑을 덮고 뭉근한 불에서 약 40분간 끓인다. 끓는 육수에 밤·양파·셀러리를 넣어 익혀 믹서에 간 다음 고운 체에 거른다.이를 다시 한번 끓이면서 크림(4큰술)과 버터(1½큰술)를 넣고 소금·흰후추로 간을 맞추면 된다.크루톤(식빵을 구워 가로·세로 1㎝ 정도로 자른 것)을 띄우면 더욱 좋다. 밤·베이컨말이 구이 중간 크기의밤(20톨) 겉껍질을 벗긴다.물을 팔팔 끓여 소금(1작은술)과 밤을 넣어 2∼3분가량 끓이면 밤의 보늬가 잘 벗겨진다. 베이컨 1장에 껍질을 벗겨 삶아낸 밤 한톨을 놓고 돌돌 말아 풀어지지 않도록 이쑤시개 등의 꼬지로 고정한다.섭씨 180도로 달군 오븐에 베이컨으로 감싼 밤을 담고 15∼20분간 익혀내면 된다.굽는 동안 지저분해진 꼬지를 새것으로 바꿔 예쁘게 장식해도 좋다. 밤구이 밤(600g)을 삶아 껍질을 벗겨 냄비에 담고 밤이 잠길 정도의 물을 부어 설탕(2큰술)·소금(1큰술)을 넣어 약한 불에서 끓인다.밤이 익어 잘 무르면 밤 6톨만 남기고 설탕과 계핏가루(1작은술)·바닐라 향료(¼작은술)를 넣고 잘 섞어 찧은 다음 굵은 체에 내려 접시에 담아 둔다. 달걀(2개) 흰자에 설탕에 넣고 거품을 내린 다음 체에 거른 밤을 담은 접시위에 올려 섭씨 220도의 오븐에 2분간 굽는다.그 다음 남겨둔 밤 6톨을 위에 얹어 장식한다. 밤탕 중국식으로 해보자.밤(30톨)를 보늬까지 말끔히 벗겨 놓는다.팬에 식용유(3큰술)를 두르고 뜨거워지면 껍질 벗긴 밤을 넣고볶아 밤이 다 익으면 설탕(2큰술)·물엿(3큰술)을 넣고 끓인다.밤 한톨을 들어보아 끈적끈적한 실이 20∼30㎝가량 생기면 다 익은 것이다.쟁반에 기름을 얇게 발라 쏟아부어 하나씩 떼어 식히면 된다.
  • [CEO 칼럼] 기업의 하모니

    최근 말레이시아 거래선의 사장으로부터 조그마한 선물을 받았다.친분이 있는 사람과 감사의 정을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특히 다른 나라 사람으로부터 받는 선물은 작더라도 기쁨이 남다르다. 포장을 열어 보니 평범한 CD가 한장이 있었다.선물을 확인하기 위해 플레이어에 넣은 뒤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CD에는 거래선 사장이 직접 부른 애창곡들이 잔뜩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에서는 명절에 무(無)알코올 파티를 열고 서로의 노래 실력을 뽐내는 독특한 풍습을 갖고 있다.이렇게 자신들의 친근한 마음을 선물로 받으니 기억에 오래 남아 좋은 것 같다.누구나 알고 있는 올드 팝으로 이어진 그의 애창곡을 들으면서 필자는 전세계가 노래로 하나되어 있음을 피부로 느꼈다. 영국의 BBC는 지난해 말 세계 애창곡 조사 작업의 하나로 아시아 지도자들의 애창곡을 조사했다.메가와티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프랭크 시내트라의 ‘My Way’,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은 카펜터스의 ‘I Have You’를 선택했다고 한다. 한 국가의 수반이나 평범한 사람들이 애창곡을 노래할 수 있는 환경에는 이른바 ‘가라오케’라는 전자식 노래반주기가 있다. 가라오케는 1976년 일본 오사카의 한 주점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발명한 기계다.당시 어느 음식점 사장의 노래 반주를 녹음해 준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노래방 기계 발명으로 벌어들인 그의 수입은 9년전 시세로 연간 100억엔 정도였다고 하니 참신한 아이디어와 발빠르게 제품화한 일본인들의 비즈니스 본능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많은 국가들이 가라오케의 상품화에 성공하면서 공급 과잉과 제품 마진의 저하로 가라오케는 급격한 하향 곡선을 그렸다.그러나 이를 만회한 것은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현재 세계 노래방의 ‘2세대’를 이끌어 가고 있다.최근 한국에서 수출하는 제품들은 마이크 형태의 기기를 비롯한 다양한 기능과 인터넷의 연동성을 앞세워 전세계에서 한국 기술의 우수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물론 생산되는 노래방 기기의 대부분은 모두 중소기업 제품들이다. 세계 비즈니스의 추세는 ‘스피드’다.누가빨리 시장 선점에 나서느냐,아니면 업그레이드에 성공하느냐가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다.사회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이에 비례해서 소비자의 욕구 만족 기간도 더욱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다.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비즈니스 형태가 유력하다.이 가운데 핵심상품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비자의 욕구에 빨리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우수 중소기업의 몫이라는 판단이다.특히 IT(정보기술)제품에 있어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여기에 우수한 제품을 발굴하고 적재 적소에 해외로 수출하는 역할은 종합상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중소기업과 종합상사간의 상호 역할 분담관계가 잘 맞추어진다면 어떤 악기로 연주한 것보다 더 훌륭하고 아름다운 ‘송 비즈니스(Song Business)’가 될 것이다. 이 태 용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 오늘의 결혼문화 (상)혼수·예단의 갈등

    미혼 남녀 한 쌍이 가정을 꾸리는데 필요한 결혼비용이 평균 9000만원이라 한다.이 엄청난 액수에 대해 “평균일 뿐,그 이상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9000만원 중 약 6000만원은 주택자금이고,혼수에 무려 결혼비용의 20%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주택자금은 물론 혼수까지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는 미혼 남녀는 결혼준비 중 적잖은 갈등을 겪는데,갈등은 ‘예물과 예단’에서 시작된다.사랑해서 결혼한다지만,결혼날짜가 잡히면 ‘갈등’이 사랑의 기쁨을 환치한다.그래서 결혼준비중 헤어지는 커플도 드물지 않다.‘돈으로 사랑을 완성한다.’는 오늘의 결혼문화를 2회에 걸쳐 살펴본다. #1.14일,강남의 최고급 한복가게 딸의 혼수를 장만하기 위해 나왔다는 김선혜(56·서울 광진구 구의동)씨는 “막상 딸을 결혼시키려니 사돈댁에 하나라도 더 해드리고 싶다.딸이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다.”고 말했다.김 씨는 “뭣 때문에 내가 이렇게 비싼 것을 해가느냐?”고 화를 내는 딸 정선우(28)씨를 “결혼생활 해본 엄마말을 들으라.”고 설득한 끝에 무려 1000만원을 지출했다.‘요즘엔 시아버지 한복은 잘 안하는 편이 아니냐?’고 물으니 “그래도 드리면 좋아하실 거다.”고 김씨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2.19일,남산의 H호텔 한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의 살롱 쇼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결혼시즌을 앞두고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만큼 여느 외국의 살롱쇼처럼 객석의 면면들이 화려했다. 마침 기존의 웨딩드레스에선 좀체 볼 수 없는 모피를 곁들인 웨딩드레스가 선을 보이자 나란히 앉은 어머니와 딸들의 눈빛이 반짝였다.눈에 띄는 손님은 20대 청년들,나란히 앉아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었다.쇼가 끝난 후,한 청년에게 물으니 “12월 결혼을 앞두고 내 신부가 입으면 좋을 드레스를 고르러 왔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사람들에게서는 ‘한번 뿐인’ 결혼에 비용을 아낄 필요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같아 보였다. ●‘돈’으로 사랑을 완성한다? 한 예비신부는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말을 “사랑이 아니라 돈이 있어야 결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속물이 곧어른”이라는 말로 들린다고 했다. 결혼이 낭만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란 각성은 엉뚱하게도 ‘돈이 행복을 보장한다.’는 왜곡된 결혼관으로 연결되는 추세다.결혼을 앞둔 여성,딸을 둔 50∼60대 여성들은 한결같이 ‘이런 잘못된 결혼문화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그러나 문제에 대한 인식과 달리 이들에게는 ‘통념’을 깰 용기가 부족하단다.“남들이 하는만큼은 해야죠.능력있다면 더 하는 것이고…” 10월에 결혼을 앞둔 직장인 박미란(28)씨는 고민이 많다.“이렇게 어려운 일인줄 몰랐어요.마치 제가 돈으로 팔고사는 상품같아요.아니면 무슨 결함이 있어서 이를 감추려고 돈을 들이는 것도 같고.우리는 예단비를 1000만원이나 보냈는데 시댁에서는 딱 200만원만 보내니 저희 어머니는 섭섭해 하시고,주위에서도 모두들 ‘그런 법은 없다.’고들 난리에요.” 그러나 박 씨는 자신이 유별난 케이스는 아니라고 말했다.혼수준비를 하면서 대부분 갈등을 겪고,파혼 위기까지 가기도 하고,또 결혼 이후에도 적잖은 앙금이 남는 것을 봤단다. 시댁의 과다한 혼수요구를 다 맞출 수 없어서 고민끝에 결국 파혼했다는 정여진(29)씨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아직도 아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아들이 신부집에서 많이 받으면 자기 집안의 자산이 늘어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에요.무식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겉으론 교양있는 대부분의 중산층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이들 젊은 여성들을 괴롭히는 것은 늘 문제가 된 호화혼수 뿐 아니라 최근 ‘결혼시장’에서 상식화된 ‘예단비’때문이다. 대개 결혼에 앞서 신부는 시댁어른들에게 혼수를 장만해 보내게 마련이다.은수저와 고급 반상기,침구세트는 기본이라는데 최근 여기에 예단비가 포함됐다.액수는 보통 500만원에서 1000만원선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부 부유층은 1억원도 넘게 쓴다는 말도 오간다. 옛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께 신부가 직접 지은 옷을 한벌씩 보내며 ‘인사’하던 풍습이 산업화 과정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도록 현금화한 것은 당연한 일.그러나 오늘날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여자쪽에서 돈을 보내면 그 반정도를 돌려주는 ‘이상한’ 신풍속이다. 예단비 액수 책정도 만만찮은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사람들마다 생각이 달라 이 과정에 대부분 갈등을 겪는다는 것이다.정작 정신은 사라지고,물질만 남아 갈등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이런 갈등은 결코 의사나 판·검사 사위를 맞기 위한 졸부들에게서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결혼이 있는 곳은 어디든 혼수와 예단비라 불리는 ‘돈’으로 인한 갈등이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예단비는 ‘필요악’인가 결혼이야기를 꺼내면 ‘700만원을 보냈는데 단 300만원밖에 못 받았다.’,‘1000만원을 보냈는데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2500만원 중 불과 500만원만 돌아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7000만원의 예단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도대체 어디에 쓰라는 거냐?”고 물었다는 시어머니 이야기도 있고,“맏동서가 워낙 잘해서 니가 웬만큼 하지 않으면 시집와서 힘들 것이다.’고 말한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에피소드도 있다.게다가 “차라리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시는 시어머니가 고마웠다.”고 이야기하는 여성들도 있다. 돈만 있으면,예단비만 많이 보내면 행복이 확실하게 보장될까. 이정기(59·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씨는 아들 부부가 모두 의사로 연애결혼을 했다.그런데 결혼후 한참이나 마음이 찜찜했다.“부모들끼리 만나서 받지도 말고,주지도 말자고 약속했어요.우리는 똑같은 의사니까.그래놓고선 사돈이 1000만원을 넣어서 보낸 겁니다.그런데 돈이란게 참 이상한 것이더군요.아마 핸드백 선물을 받았다면 달랐겠지만 현금봉투를 받고 보니 영 기분이 언짢아요.그러려면 제대로 격식차려서 할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고….돈이 많고 적고가 아니라 돈을 주고 받는다는 것 자체가 감정을 상하게하는데 왜들 그런 일을 하는 지 모르겠어요.” 금전이 오가는 결혼,주는 쪽도 받는 쪽도 기분이 찜찜한 것은 마찬가지라고들 말한다.“다들 그렇게 한다.”는 ‘상식’을 뛰어넘어 결정하니 행복한 결혼이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작년 2월에 결혼한 이호선(31)씨는 ‘왔다갔다 하는’번거로운 예단비를 없앴는데 주변으로부터 “시집살이 꽤나 할거다.”라는 걱정을 들어야만 했다.“저희 시부모님께서는 아예 돈을 보내지말 것을 다짐하셨어요.그래서 선물로 성의를 표했는데,정작 다른 사람들이 ‘두고봐라.후회할 일이 있을 것이다.’고 겁을 줬어요.그래서 돈을 보내야 할 것은 아닌가 흔들리기도 했지만,지금 생각해도 안보낸 것은 잘한 일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선 한짝이라도 정성이면 된다.”고 아름다운 말로 결혼준비를 시작한다.그러나 정작 ‘버선 한짝’에는 섭섭해하는 이중성에 시달린다. 이는 혼수와 예단 등 조건이 사람을 앞서는 중매결혼이 아닌 연애결혼에서도 똑같이 작용한다. 김진숙(54)씨는 “연애결혼해도 갈등은 마찬가지”라고 각박해져가는 세태에 혀를 내둘렀다.“10여년 전만 해도 ‘연애하면 괜한 허례허식을 안 찾는다.’고들 말했는데 이젠 그것도 아닌 것 같다.남자들이 변했다.부모욕심이라고만 말할 수만도 없다.혼자 벌어서는 집장만이 쉽지 않은 현실도 문제지만 청년들이 독립적이지 않고,처가가 좀 있는 집안이길 원하는가 하면 처가에 바라는 것도 노골적이다.”며 딸애 결혼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예전의 인기는 누리지 못한다지만 아직도 ‘사’자 붙은 신랑감들 사이에는 누군가가 받은 특별한 대접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사실이다.김영진(31)씨는 약혼자에게 예단비를 2000만원 하겠다고 말했다가 “겨우 2000만원 밖에 안해?”라는 대꾸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신랑감은 대학 친구인데,그가 공인회계사가 됐다고 내게 뭔가를 바라지는 않을줄 알았다.주위에서 많이 받는 것을 봐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라지만 기분은 묘하다.”고 말했다. ●정신적 혼수가 더 중요해 그나마 불행중 다행은 혼수나 예단비와 행복이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혼수가 화려할수록,예단비가 많을수록 생색내고 싶고,적게 보낼 수밖에 없을 때에는 괜히 주눅들게 마련이지만 사랑하는 남녀에게까지 시장논리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혼수와 예단비가 무려 2억원이나 됐지만 결혼 3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는 김수지(가명·33)씨는 “무리해서라도 행복을 ‘사려고’ 한 내가 바보였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결혼할 때에는 남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 흔들렸다.더 많이 보낼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혼수의 속성을 결혼전에만 알았더라도 현명하게 대처했을 것이고,그 결혼의 늪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고 때늦은 후회를 했다. 듀오의 커플매니저 송민정씨는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대부분 나보다 학력도 외모도 경제력도 나은 사람들을 원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같다.”라고 말하며 “조건을 지나치게 따지는 사람일수록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조언했다. 혼례절차를 가르치는 신세계문화센터 강사 권명득씨는 “물질이 절대로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오히려 예단비가 많을수록 갈등도 많고,혼인의 실패도 많을 수밖에 없다.그래서 60%는 정신적인 혼수를 하고,40%정도를 물질로 인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가르친다.”며 이 시대의 결혼풍속이 달라지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남주 기자 hhj@
  • 쪽빛 하늘아래 아득한 옛 향기 나는 안동으로 간다

    농암 종택 긍구당의 새벽 태풍이 한바탕 난리를 피운 탓인가.청명한 하늘을 이고 성큼 다가선 가을이 오히려 야속하다.가을은 옛 것이 그리워지는 계절.가을 하늘의 쪽빛만큼이나 깊은 연륜이 느껴지는 곳,경북 안동을 찾았다. 초가을 새벽.문풍지 틈새로 새어드는 바람의 한기에 잠을 깬다.콧 속에 스며드는 새벽 바람이 상쾌하다.문을 열어젖히자 마자 쏟아져 들어오는 나무와 풀 내음.누마루 건너 마주보이는 절벽 밑으로 낙동강 상류 물줄기가 세차게 흐른다. 경북 안동시 농암 종택 긍구당의 새벽은 이렇게 시작된다.도산면 가송리 남청량산 자락의 일명 올미재에 자리잡은 이곳은 국문으로 쓰여진 강호 문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농암(籠岩) 이현보(李賢輔)의 종택.농암 종택은 본래 인근 분천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마을과 함께 수몰됐다가 최근 안동시에 의해 가송리에 복원됐다. 사당,안채,사랑채,문간채의 ‘튼ㅁ자’ 구조의 본채와 긍구당,명노당 등 별당으로 구성돼 있었다.다행스럽게도 수몰 당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긍구당(肯構堂)과 사당은다른 곳에 급하게 옮겨졌다가 종택이 복원되면서 제자리를 찾았다.긍구당은 농암이 태어난 건물로 농암 종택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안채엔 농암 선생의 종손인 이성원(51)씨 부부가 산다.문학 박사인 이씨는 강호문학연구소란 이름를 내걸고 조선시대의 강호 문학을 연구하는 한편,부인을 도와 전통 민박도 한다. 안채 마루에 차려진 아침밥상이 정갈하다.밥상 앞에서 이씨는 안동댐 건설로 인한 수몰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농암의 농암가와 어부가,도산의 도산십이곡의 무대가 바로 이 일대였지요.낙동강 상류 물줄기가 산자락을 한번 돌 때마다 하회마을과 같은 전통마을이 하나씩 있었어요.모두 아홉개 곡(曲)이 있었는데 댐 건설로 여섯개 곡이 물에 잠겨버렸습니다.” 퇴계 체취 그윽한 도산서원 종택에서 안동과 봉화로 이어지는 35번 국도까지는 험한 비포장길.길 오른쪽으로 절벽과 어우러진 강변 풍광이 절경이다.특히 청량산 남쪽 암벽 아래 자리잡은 고산정(孤山亭) 일대의 경치가 뛰어나다.고산정은 퇴계 이황의 제자인 금난수가 지은 정자로,퇴계를비롯한 수많은 선비들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정자 건너편 구릉지엔 마침 메밀꽃까지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운치를 더한다. 35번 국도를 타고 안동 시내쪽으로 10분만 가면 도산서원이 있다.이곳은 ‘해동 주자’로 일컬어지는 퇴계가 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퇴계 사후 제자들과 유림에서 그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사액서원(賜額書院·왕이 편액을 내린 서원)인 도산서원을 세웠다. 퇴계가 유생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유생들이 숙식을 하던 농운정사,선생 사후 서원을 세우면서 지은 전교당(典敎堂),책을 찍어내던 장판각 등 20여채의 건물이 있다.이중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는 선생 생전에 지은 가장 오래된 건물.고색창연한 기둥과 툇마루,댓돌 등엔 퇴계의 체취가 그대로 배어있는 듯 하다. 서원 설립 당시 전교당에 걸린 ‘陶山書院’(도산서원) 편액에 담긴 이야기가 재미 있다.이 편액은 당대의 명필 한석봉이 선조의 명을 받아 썼다.한데 도산서원 편액이라는 것을 알면 한석봉이 놀라 붓이 떨릴까봐,선조는 미리 얘기하지 않고 ‘院’‘書’‘山’‘陶’를 거꾸로 불러 한자씩 쓰게 했다.마지막 ‘陶’자를 쓰면서 도산서원 편액임을 깨달은 석봉은 정말 붓이 떨려 도자만 삐뚤게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공자가 임한 곳? 퇴계태실 서원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언덕을 하나 넘어가면 퇴계 종택이다.1920년대 선생의 13대손인 이하정이 옛 종택의 규모대로 지었다.정면 6칸,측면 5칸 ‘ㅁ’자 형태인데 총 34칸으로 이루어져 있다.종택엔 종손 이동은옹,차종손 이근필씨가 산다. 이근필(70)씨는 방문객들이 오면 대청마루에 마주 앉아 평소 퇴계 선생이 강조하시던 말씀을 들려준다.그중 특히 요즘 사람들이 새길 만한 말씀은 평소 붓글씨로 써 놓았다가 봉투에 넣어 일일이 선물한다.봉투를 건네는 그의 표정엔 날로 부박해져만 가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려 있다. 종택을 나와 35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5분 정도 가니 퇴계선생이 태어난 퇴계태실이 나온다.단종 2년(1454) 조부 이계양이 세운 집이다.‘ㅁ’자형 본채의 중앙 돌출된 방에서 선생이 태어났다고 한다.퇴계 선생의 어머니 박씨 부인은 ‘공자가 대문 안으로 들어오시는 태몽'을 꾼 뒤 퇴계를 낳았다고 한다.그래서 대문 이름도 ‘성림문’(聖臨門)이라고 지었다고 한다.태실 앞의 좁지만 말끔하게 비질된 마당에 서니 어릴적 선생이 아장아장 걸으며 놀던 모습이 눈 앞에 어른거리는 듯하다. 안동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가이드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빠져 34번국도를 타고 안동 시내로 진입해야 한다.시내에서 봉화로 이어지는 35번 국도로 갈아타고 30분쯤 북쪽으로 달리면 오른쪽으로 도산서원,퇴계 종택,왼쪽으로 퇴계 태실이 나온다.퇴계 태실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5분 정도 더 가면 오른쪽으로 농암종택 진입로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있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02-446-8000)에서 안동터미널(054-8298)까지 30분 간격으로,기차는 청량리역에서 안동역(054-856-7788)까지 하루 8회 출발한다. ●숙박 안동에선 잠자리도 전통 체험의 한 코스.지은 지 수백년된 고택에서 하룻밤 묵으며 전통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최근복원한 도산면 가송리의 농암 종택(054-843-1202),임동면 수곡리의 수애당(054-822-6661),임동면 박곡리의 지례예술촌(054-822-2590)이 전통 민박을 운영하는 대표적 고택들이다.농암종택은 낙동강 상류를,지례예술촌과 수애당은 임하호를 끼고 있어 모두 주변 풍광이 뛰어나다. 숙박료는 방 크기에 따라 3만∼8만원.아침식사 5000원. ●2003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오는 26일부터 10월 5일 사이에 안동을 방문하면 탈춤의 진수를 맛보고 다양한 이벤트 행사도 즐길 수 있다. 낙동강변 축제장 및 하회마을 일대에서 열리는 이번 페스티벌에선 하회별신굿탈놀이와 봉산탈춤,강령탈춤 등 한국의 대표적 탈춤과 함께 이탈리아,독일,몽골,태국,일본 등 10개 외국 단체가 참여해 신명나는 탈춤판을 벌일 예정. 축제 관람을 위해 10월 3∼5일 서울(청량리역)에서 매일 오전 8시 10분 안동행 축제 관광열차가 출발한다.요금은 3만7300원.강변 축제장과 시내,하회마을을 연결하는 셔틀버스도 운영된다. 문의 안동시 문화체육관광과(054-851-6393),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추진위원회(054-851-6398). 식후경 헛제삿밥과 간고등어는 안동의 대표적 전통 음식.헛제삿밥은 제사후 제사음식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던 풍습에서 나왔다.평상시 제사는 올리지 않지만 제사 음식과 같은 재료를 마련하여 비빔밥을 만들어먹는다고 해 헛제삿밥이라고 한다. 숙주나물,무나물 등 대여섯가지 나물을 대접에 깔고 밥을 넣어 비벼먹는다.어물이나 육류,산적에 탕국이 곁들여진다.안동댐 인근 월영교 맞은 편의 ‘까치구멍집’(054-821-1056),‘민속음식의 집’(054-821-2944)이 잘하기로 소문나 있다.메뉴는 헛제삿밥(5000원)과 양반상(1만원) 두가지.양반상엔 헛제삿밥에 탕평채,쇠고기 산적,조기구이,안동식혜 등이 추가된다. 안동에서 간고등어가 유명해진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동해에서 잡힌 고등어를 염장해 지고 오는 24시간 동안 적당히 숙성됐기 때문이라는 설,생고등어를 지고오다가 안동 인근에 이르면 선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때 염장해 먹으면 최고의 맛이 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민속음식의 집과 나란히 붙어 있는 ‘양반밥상집’(054-855-9900)이 간고등어 전문집으로 유명하다.구이정식과 조림정식은 각각 6000원,구이와 조림이 함께 나오는 구이조림정식은 1만원이다.
  • 명절모습 바꾸는 사람들 / “차례 꼭 큰집에서 지내야 하나요”

    명절증후군이란 ‘특별하고,유별난’ 여성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명절을 앞두고 감기와 몸살이 겹치기도 하고,두통에 우울해지기도 한다.명절연휴 동안 이어지는 부엌일에 대한 부담은 물론 철저한 남녀불평등이 명절문화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명절풍습은 그전보다 간소화됐고,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많이 달라졌다.“추석에는 남자들이 설거지하는 거래.”라고 말하며 팔을 걷어붙이는 남자들도 늘고 있고,전통을 고집하셨던 어르신들도 요즘엔 “성현도 시속(時俗)을 따르라 했다.”며 앞장서서 명절문화를 바꿔가기도 한다. ‘함께 웃는 명절’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됐다.다만 그 실천방법이 문제다.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은방희 회장은 “평등하고 즐거운 명절문화는 건강한 가정과도 직결된다.남성의 의식변화와 함께 여성들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명절문화를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명절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할까.곳곳에서 시작된 명절개혁을 몇 가족을 통해 알아본다. ●상경하는 형, 차례준비하는 동생 심종철(40·경남은행 대치지점 과장)씨 가족은 올 추석은 서울에서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마산의 큰형 가족이 서울로 올라오고,서울의 작은형 가족과 함께 차례를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손님처럼 내려가기만 하다가 이렇게 직접 차례준비를 하니까 기분이 다릅니다.더욱이 우리가 시골로 내려가면 아내의 경우 서울의 친정은 마음뿐 명절에는 아예 갈 수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오후에는 처가에도 인사드리러 갈 겁니다.”심씨는 오랜만에 아내에게 빚을 갚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심씨의 부인 오숙희(38·서울 강동구 둔촌동)씨에게 “시골가는 것보다 차례준비가 더 힘들지 않겠느냐.”고 묻자,손사래를 쳤다.“천만에요.늘 형님이 모두 준비하신 것이 미안했는데 오랜만에 형님 가족들을 제가 대접한다는 생각이에요.물론 조상님 대접도 그렇고요.”심씨는 아내와 형수 구영숙(39·서울 송파구 가락동)씨와 함께 오랜만에 슈퍼나들이를 했다. “큰형님이 많이 변하셨어요.그전에는 당연히 맏형 책임이고,도리라고 생각하시더니 오히려 ‘내려오는 길이 막히니 우리가 서울가는 게 동생들을 배려하는 것이 되겠다.’고 생각을 바꾸셨어요.저도 오랜만에 아들 노릇,동생 노릇하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3형제가 만나니 서울인근 나들이 계획도 짜야겠다는 그는 “14시간씩 걸리는 자동차를 타는 스트레스가 없어지니 어린 시절의 명절처럼 설렌다.”고 말했다. ●시아버지는 제기 닦고 남편은 메밀전 부쳐 권희은(29·전남 여수시 문수동)씨는 강원도 인제까지 12시간을 달려가는 명절 나들이가 떠들썩한 분위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는 늘 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남자들이야 ‘고향에 온 보람’을 한아름 안고 흐뭇하게 떠나지만 여자들은 빨리 집에 가서 누울 생각만 하게 마련이잖아요.” 그러나 특별한 이벤트인 ‘롤링 노트(rolling note)’를 제안한 뒤 명절이 기다려진다.“대학시절 MT 가서 선배가 후배에게,후배가 선배에게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썼던 롤링페이퍼에서 벤치마킹했어요.아버님 노트부터 제 딸아이 것까지 8권을 마련해서 온가족이 이야기를 남기기로 했어요.첫해에 남자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저는 아버님과 아주버님,남편의 노트에 명절 음식장만에 함께 참여해줄 것을 호소했지요.그러자 다음 명절부터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최근에는 남편형제가 메밀전을 부치는가 하면 뒷짐을 지고 있던 시아버지가 제기를 닦으면서,“그럼,힘들 때는 서로 도와야지.”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달라졌다고 한다.롤링 노트는 서로 격려와 사랑을 듬뿍 담은 이 집안의 보물로 자리매김했다. 결혼 9년차의 안미숙(40·부산 사상구 감전2동)씨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치는 명절’이 아니라 손꼽아 기다려지는 명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의식이 바뀌어야 하지만, 여성들의 의식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충남 논산의 시댁에 갈 때는 평소 부산에서 생선 값이 쌀 때 미리 준비해 둔 것을 갖고 갑니다.그리고 음식은 조금씩만 준비하고,일할 때도 속으로는 힘들지만 꾹꾹 참고 하다가 결국 화내고 마는 악순환대신 ‘도련님,저것 좀 갖다주세요.’‘아버님,이건 어떻게 하나요?’라고 식구들을 동참시켜요.참,남자들이 얼마나 꼼꼼하게 일하는지 아세요? ‘감히 어른에게…’이런 생각을 하는 여성이라면 명절증후군,평생 못 벗어나요.” 생각만 바꾸면 명절이야말로 가족의 화목을 다지는 가장 좋은 계기가 된다고 안씨는 자신했다. 젊은 세대들만 명절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주부경력 30년이 넘었건만 명절이면 아직도 가벼운 두통이 느껴진다는 이홍화(60·서울 동대문구 청량리2동)씨는 지난해부터 명절마다 두 며느리 중 한 사람은 친정나들이를 하는 ‘명절 개혁’을 했다. “큰며느리는 전업주부고,둘째는 직장을 다녀요.그런데 동서가 있는데도 명절에 자신만 일하니 큰며느리가 기분이 좋았을리 없지요.게다가 재작년 추석 저녁에 전을 부치던 큰며느리가 둘째네가 오자 일어서다 그만 뜨거운 프라이팬에 손을 데게 됐어요.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며느리는 울음을 터뜨렸고,가족들 마음이 모두 편치 않았어요.가만히 생각해보니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키웠을 외동딸을 심성이 무던하다는 것만 믿고 제가 너무 많은 일을 시킨 것은 아닌가 자책도 들었고,그렇다고 직장에서 일하다 허둥지둥 달려온 작은애를 야단칠 일도 아니고….결국 명절이 달라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이씨는 명절준비 합리화대책을 세웠고,작년 설날에는 큰아들 가족을 일찌감치 처갓집에 보낸 후 장보기부터 둘째네와 함께 시작했다.물론 음식양도 반만 준비했고,‘여자들’이 일하는 대신 ‘가족’이 함께 일하니 한결 쉬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옥상에서 가족이 함께 달맞이 행사도 하고 손주들에게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려고 합니다.아이들의 명절 추억이란 것이 고작 손님들로부터 용돈받은 것이라는 일기를 본 후 추억을 만들어주는 할머니가 되기로 했어요.” ●아들마다 돌아가며 제사 모시기도 올 가을에 딸이 결혼한다는 송재원(53·경기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씨는 형제가 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시는 것이 귀성전쟁에서 벗어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새벽 3시에 출발할 때는 아침에 시댁에 도착해서 큰동서를 도와 음식장만할 계획이었지요.하지만 아침도 굶고,점심도 굶으면서 16시간을 길에서시달린 뒤 저녁 어둑어둑해서야 도착했죠.우린 우리대로 짜증이 났고 맏동서는 거드는 손 하나없이 음식을 만드느라 늘 힘이 들었죠.”처음에는 제사는 맏이의 의무이자 권리라는 유교적 관습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지만 지방마다,가정마다 풍습이 다른 만큼 얼마든지 개선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단다.그래서 추석 차례는 며칠 앞서서 지내고,설날은 양력 1월1일에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바꿨다. “그래도 반드시 장남의 집에서 제사를 모셔야 한다는 생각만은 벗기가 어려웠어요.그런데 아버님께서 ‘어디서 지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정성이 들어가면 되지.’라고 결론을 내려주셔서,아들마다 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시게 됐어요.망자(亡者)는 음식냄새 따라 온다는 말이 있기도 하고,또 음식장만을 소홀히 하는 게 싫어서 모두 모여서 음식을 장만하는데 이젠 손이 척척 맞아요.어느 한 사람에게만 책임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조상님이 원하는 방식일까 싶어요.”‘상놈 명절지내듯 한다.’고 비웃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염려하면서,송씨는 “옛것을 그대로만 지켜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개선해서 지속시킬 수 있는 미풍양속도 그나마 사라지고 말지도 몰라요.”라고 기성 세대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1년에 7번이나 제사를 모시느라 제례와 명절맞이 준비로 젊음을 다 보냈다는 권정순(58·강원도 횡성군 횡성읍)씨는 3년 전부터 제례 풍습을 완전히 바꿨다. “저희 집안에서는 반드시 약주와 송화와 삼색다식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왔어요.그런데 제가 절편과 육류 등 제수를 대폭 줄였고,몇 가지씩 담던 김치도 나박김치 하나로 줄였어요.또 모든 일은 당번제로 했지요.제사에 참가하는 사람이 어른 아이 모두 41명인데 설거지 당번을 젊은 층에서 아들,딸,며느리를 구분하지 않고 3년에 한 번씩 하도록 했고,향을 사르는 것도 나이순으로 위에서 아래로 남녀차별없이 하는 등 현대화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지요.그대신 추석에는 송편을 빚고,설날 전에는 만두를 함께 빚는데 아무리 바빠도 모두들 참석하려고 멀리에서 달려옵니다.” 그는 “간소하게 하려고 했던 당초 계획과 달리 먼 친척들까지 참여하게 돼 모이는 숫자가 더 늘어난다.”고 말하면서도 “제수는 줄어도 정성과 기쁨은 오히려 두 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허남주기자 hhj@
  • 첫 남북교류 극장용 애니 ‘왕후 심청’ / 南도 보고 北도 보고

    “하,고것….참 흥미롭습네다” 2001년초 넬슨 신(한국명 신능균·64) 감독이 ‘왕후 심청’의 작업을 위해 스크립트의 일부를 가지고 북한 평양에 있는 조선 4·26아동영화 촬영소(SEK)에 처음 찾아갔을 때 북측의 반응은 사뭇 부정적이었다.모험물 성격 등으로 민족 고유의 원전을 너무 심하게 바꿔놓았다는 것.그러나 신 감독의 설명을 들은 북측은 머지않아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영화의 마무리 단계인 지금 북측은 “신회장 선생 덕에 많이 변했습네다.”라고 말한다. ●한국 최초의 남북 교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온다. 심청전을 디즈니 영화 풍으로 만든 ‘왕후 심청’은 6년간 총제작비 65억원이 투입된 대작.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축제인 안시페스티벌 경쟁부문 특별상 수상,최초의 동양계 할리우드 애니메이터인 신 감독의 지휘 등 다양한 이유로 주목받은 작품이다.그러나 무엇보다 관심을 모은 것은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북한에 프로덕션을 두고 모든 원화·동화·음악 작업을 전량 북한에 수주,제작했다는 점이다. ‘왕후 심청’의 시작은 지난98년 중순 애니메이션 제작사 코아필름(대표 넬슨 신) 내에 전담기획팀이 만들어졌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그러나 진정한 출발은 97년 안시페스티벌에서 신 감독이 북한의 SEK 부스를 만났을 때 느꼈던 충격에서 비롯된다.원래 사실주의에 치우친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애니메이션에 딱딱함과 답답함을 느껴왔던 신감독은 당시 SEK의 기술 수준을 보고 ‘북한 OEM 제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하나의 뿌리” 2000년 말까지 신 감독은 ‘신씨 소장본 판소리 심청가’를 기준으로 자료와 스크립트,캐릭터 디자인 등을 준비하면서 북측에 가능성을 줄곧 타진했다.원래 고향이 황해도인 신 감독의 개인적인 이유도 주요동기 중 하나였다.그러나 무엇보다 “남북이 하나의 뿌리임을 확인시켜주는 공통의 문화유산으로 같이 작업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컸다.북측의 저렴한 인건비에 비해 월등히 높은 작화 수준 등 경영자로서의 계산은 그 다음이었다.2001년 1월 마침내 북한 SEK와의 제작 계약이 체결되자 신 감독은 그전까지 2여년동안 한국에서 만들었던 수천장의 원화·컨셉트 배경 등을 폐기했다.작품전체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제작비에 대한 걱정없이 표현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그려라.”는,경영자답지 않은 주문을 북측에 했다.그러자 처음에는 공동작업에 어색해하던 북측도 차츰 자체적으로 조선시대의 풍습과 복식 자료를 수집해 활용하는 등 제작에 열정을 보이게 됐다. ●“남북 동시 개봉 때 양쪽의 민족 지도자들이 동시 관람해주었으면” 북한에서의 45만장에 달하는 원화·동화 작업은 최근 모두 완료된 상태.OST도 북한의 ‘평양 영화 및 방송 음악단’소속 작곡가 선동환씨가 작곡,가수 김윤미씨가 불렀다.북한 발음이 남한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줄 것을 염려해 가수만 바꿔 다시 녹음하는 것을 고려중이라고 한다.미국의 코아필름 스튜디오에서의 편집·더빙 작업만을 남겨두고 있다.신 감독은 “새해초 남북한 동시 개봉을 추진중인데 북측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면서 “동시개봉하는 날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각각 서울과 평양에서 관람한다면 아주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는 바람을 밝혔다.당국의 행정·재정 지원없이 사비와 열정만으로 6년간 남북의 연결사업에 매달려온 노장 감독의 말이 예사롭지가 않다. 채수범기자 lokavid@
  • 기고 / 우면산은 생명산이다

    우면산은 ‘생명의 산’이다.우리나라 건국의 상징이 백두산이고 서울의 중심산이 남산이라면,우면산은 우리 남부서울의 중심임에 틀림없다. 생명경시 풍조가 어디서부터 나오고 있는가를 한 번 되새겨 봐야 한다.자연은 말이 없다.다만 괴로워할 뿐이다.자연이 우리를 보호해 왔듯이 이제는 개발이익에 앞서 우리가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 우면산의 남쪽 기슭은 청동기시대 유적인 지석묘가 있어 이 지역이 오래 전부터 우리 조상들의 생명의 터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산 속의 여러 계곡에는 옹달샘이 끊임없이 솟아 산을 찾는 이들에게 신선하고 달콤한 약수를 제공한다.또한 사계절 변함없이 우리를 반기는 우면산이 아닌가? 특히 한여름철 나무 그늘에 앉아 호흡하면서 이 세상 우주만물의 생성과 변화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오묘함과 신비함을 저절로 느끼게 하며,하나뿐인 이 지구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자연을 보존하며 환경을 정화할 수 있을까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우면산이 아닌가? 레윈은 그의 저서에서 환경과 인간의 행동에 대한 모델을 B=f(E·P) 즉,행동(B)은 환경(E)과 인간·개인(P)의 상호작용 결과(f)라고 정의하고 있다.이는 신토불이(身土不二) 라는 것도 그렇게 해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우리(身)는 우면산(土)과 나누어(不二) 생각할 수 없다. 삼국지에 위나라의 조조가 지친 병사들에게 그들의 고향에서 가져온 흙을 물에 타 먹게 해 병사들의 원기를 회복시켰다는 내용이 있다.우리 옛 풍습에도 감기에는 황토로 환(丸)을 만들어 불에 태워 먹이고,각기병에는 병자가 태어난 고향의 흙을 먹였다고 전해진다. 흙은 살아있기에 많은 일을 한다.새싹을 키우며 물을 저장하고 땅에 떨어져 묻히는 온갖 유기물을 식물뿐만 아니라 모든 토양생물이 먹기 좋게 분해하여 생태계의 연속성을 유지한다.오염된 물과 온갖 물질들이 흙을 통과함으로써 걸러지고 정화되는 것이다. 우면산을 생명산이라 함은 바로 생물이 살기 좋은 살아있는 흙과 나무와 물과 고귀한 조류 등이 있으며 우리의 발자취가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우리의 명산인 우면산을 살려내야 한다.그래야만 경기도와 남부서울 사람들이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순간의 개발을 영원의 생명과 바꾸어서는 안 된다.소수인의 이익에 우리 후손의 유산을 빼앗겨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자연자원 및 문화유산을 개발 우선,또는 심한 경우 투기의 대상으로 인식한 나머지 무분별한 개발과 함께 심각한 훼손이 이루어지고 있다.이로 인하여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 서글픈 심정이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시민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통해 환경의 가치를 현실적으로 지켜갈 수 있는 시민운동의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이런 자격을 구비한 시민운동의 전형이 바로 내셔널트러스트(NT)운동이다. 영국은 1895년부터 시작해 회원 250만명이 전원지역 보호 등 NT운동을 하고 있다.일본은 1964년 풍치보존회에서 시작해 지역의 자연을 보존하는 풀뿌리 NT운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염되기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물이 우리나라의 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좋은 물,나무,흙이 있는 우면산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존했으면 한다.하루속히 우면산을 아름답게 보존하는 그 날이 NT운동을 통해 앞당겨질 수 있었으면 한다. 꿈과 희망이 끝이 없고 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우리의 꿈나무 청소년들에게 우면산을 자연 그대로 물려주자.일시적 이득을 위해 사는 삶은 영원한 손실로 끝나게 된다. 우리의 자존심 우면산! 지킬수록 소중해지지 않을까? 오 치 선 명지대 교육대학원장
  • ‘천하절경’ 中 후난성 장자제 답사/신선놀던 무릉도원 예로구나

    |장자제(중국) 글·사진 임창용특파원| ‘人生不到張家界,百歲豈能稱老翁(인생부도장가계 백세기능칭노옹)?’ 장자제(張家界)에 가면 가이드로부터 귀가 아플 정도로 자주 듣는 말이다.사람이 태어나서 장자제에 가보지 않았다면,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란 뜻.워낙 과장된 수식어구가 많은 곳이 중국이기는 하나 장자제의 절경을 경험한 이들은 대체로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중국의 최고 경승지중 하나로 꼽히는 후난(湖南)성 서북부의 장자제.한고조 유방을 도와 천하를 평정한 책사 장량이 후일 토사구팽 당해 이곳에 숨어들었다가 원주민들에게 성씨를 부여하고 문자를 가르쳐주고 농사법을 전수한데서 마을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의 실제 무대인 이곳엔 수백미터 높이의 암석 봉우리군과 협곡,호수 등이 어우러져 찾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무릉원 경치구로 명명된 장자제는 지난 82년 개방된 이후 현재도 개발이 한창 진행중이다.장자제의 중심인 위엔자제(元家界)와톈즈산(天子山),바오펑후(寶峯湖)를 돌아보았다. ●톈즈산 무릉원(武陵源) 시내 중심의 호텔에서 버스로 10여분쯤 가니 톈즈산 입구다.이곳에선 보통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른다.시간이 넉넉하다면 천천히 걷는 산행을 즐겨도 되지만 3박4일 둘러보아도 모자란다는 장자제 절경을 많이 보려면 시간을 아낄 수밖에 없다.장장 5㎞에 달하는 케이블카 탑승료는 편도 60위안 정도.케이블카는 제법 빠른 속도로 암석 봉우리군 위를,때로는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연상케 하는 협곡을 따라 올라간다.마치 거대한 수석 전시장 위를 지나가는 느낌.발아래 보이는 수백미터 협곡 바닥을 보다가 아찔함 때문에 이내 고개를 드는 사람이 많다.케이블카에서 내리니 해발 1250m 정상이다.동·남·서쪽 방면 모두 암봉이 숲을 이루어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그 사이로 깊은 협곡이 뻗어 있어 마치 천군만마가 포효하며 달려오는 듯하다.무릉원의 수많은 봉우리중에서도 걸출함을 뽐내는 것이 어필봉과 선녀봉.어필봉(御筆峯)은 각기 높이가 다른 세개의 암석 봉우리가 꼭 붓을 붓통에 거꾸로 꽂아놓은 것 같고,선녀봉(仙女峯)은 선녀가 꽃바구니를 들고 꽃을 뿌리는 모양을 닮았다. ●위안자제 지난해부터 일반에 공개된 코스로 장자제 풍광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텐즈산 관람후 순환버스를 타고 20분쯤 가니 위안자제 입구다.이곳은 거대한 협곡의 중간쯤에 위치한 돌산의 정상 가장자리를 따라 관람로를 냈는데,한 바퀴 돌면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오게 된다.관람로 바로 옆 수백미터 아래로 보이는 협곡이 장관이다.쇠파이프로 안전망을 쳐놓았지만 도무지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수직 절벽이 가파르고 높다. 관람로 중간중간 노점상이나 사진사 등이 진을 치고 있다.우리돈 1000원을 내면 생수 2병을 준다.장자제 절경을 담은 사진집도 2000∼3000원에 파는데,잘 흥정하면 1000원에도 살 수 있다.위안자제 관람후엔 케이블카 대신 327m 높이의 전망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위쪽 3분의2 부분은 암벽에 붙여서,나머지 아랫 부분은 암석 속으로 설치돼 있다.승강기 창 밖으로 보이는 풍광이 기막히게 아름다운데,불과 몇분만에 내려오는 게 영 야속하기만하다.탑승료는 상행 53위안,하행 43위안. ●바오펑후 무릉원 시내에서 버스로 10여분쯤 가면 쑤오시(索溪)협곡 입구다.협곡을 따라 올라가다가 왼쪽으로 길을 꺾어 가파른 계단을 300여개쯤 올라가니 무릉원의 수경(水景)중 최고라는 바오펑후로 이어진다.협곡 입구에서부터 가마꾼들의 호객행위가 극성이다.우리돈으로 1만원을 내라고 하는데,덥석 탔다가는 낭패보기 일쑤다.2인1조인 가마꾼들은 중간에 가마꾼 1인당 1만원이라느니,날씨가 너무 더워 돈을 더내야 한다느니 해서 원래의 요금보다 2∼3배를 챙기기 때문이다. 바오펑후는 계곡을 막아 생긴 인공호수.최고 수심은 72m,길이가 2.5㎞나 되지만 댐 길이는 수십미터에 불과하다.그만큼 협곡이 좁고 높다는 의미다.마침 안개에 싸인 호수는 신비스럽기까지 하다.갖가지 모양의 암봉과 절벽이 병풍처럼 호수를 감싸고 있고,수면 중간중간 솟아있는 암봉 위엔 푸른 소나무들이 운치를 더한다. 호수 감상은 전기배터리를 쓰는 무공해 유람선을 타고 한다.오염을 막기 위한 중국정부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호수 군데군데 세워져 있는 배에선 유람선이 지나갈 때 마다 전통복장을 차려입은 투자(土家)족 처녀나 총각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운다.투자족은 장자제시에 사는 20여 소수민족중 하나로,시의 총 인구 150만명중 60%를 차지한다.노래와 춤을 잘 하지 못하면 시집을 못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무를 좋아하고,빨래 방망이질,다듬이질 등의 풍습이 우리민족과 비슷하다. sdargon@ 가이드/ 한국관광객 몰려 원화도 받아요 ●가는 길 정기항로는 직항편이 없다.따라서 베이징이나 상하이,청두 등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장자제로 들어갈 수 있다.베이징,상하이에서 국내선 사정이 여의치 못해 당일로 장자제로 들어가기는 어렵다.보통 하루 묵으며 시내관광을 하고 다음날 들어간다.청두에선 장자제행 비행기가 많아 당일 장자제로 들어갈 수 있다.1시간 소요.아시아나항공 및 중국항공이 주 4회 인천∼청두 코스를 운항한다. 일부 여행사가 운영하는 전세기를 이용하면 창사를 경유해 바로 장자제로 들어갈 수 있어 시간을크게 절약할 수 있다. ●환율 및 시차 1위안 160원 정도.요즘은 한국 관광객이 몰리면서 장자제 일원 대부분의 상점에서 한국돈을 받고 있다.굳이 환전하지 않아도 된다.오히려 달러화는 잘 받지 않거나 돈가치를 턱없이 낮게 계산하므로 주의해야 한다.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늦다. ●먹거리 및 쇼핑 특별히 입맛을 당기는 먹거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대부분의 음식이 기름기가 많아 몇끼 먹으면 질리기 쉽다.그나마 투자족이 즐겨먹는 돼지고기 요리는 먹을 만하다.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여두었다가 야채와 함께 훈제하는데,쫄깃한 고기맛과 야채향이 어우러져 제법 입맛을 돋운다.장자제 시내 또는 무릉원 숙박단지 인근 야시장에서 먹는 돼지고기 꼬치구이 맛도 괜찮은 편.1000원어치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과일이 싸고 싱싱하다.특히 복숭아가 먹을 만하다.주먹만한 게 한국돈으로 150원 정도.한 입만 베어물어도 단물이 입에 흥건히 고인다. ●호텔 장자제 시내에 5성급은 없고 4성 ,3성급 호텔 4곳이 있다.상룡국제주점,장자제국제대주점 등이 규모가 크고시설도 깨끗한 편.게시된 요금은 매우 비싸지만 의미가 없다.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3만∼4만원부터 10만원 이상까지 요금 차이가 많이 난다. ●여행상품 우림여행사가 전세기(중국 남방항공)를 이용해 창사를 경유해 바로 장자제로 들어가는 상품을 운영중이다.장자제엔 국내공항만 있어 창사에서 입국수속을 받은 뒤 같은 비행기에 다시 올라 장자제로 들어간다. 바오펑후∼텐즈산∼위엔자제∼황룽둥(동굴 이름)을 둘러보는 3박4일(매주 일요일 출발) 패키지는 49만9000원,창사의 동정호 및 악양루 관람이 추가되는 4박5일(수요일 출발) 상품은 69만9000원이다.(02)771-8366.
  • 책 /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펴냄 ●무시당한 서민들의 삶과 문화 되살려 전작 ‘조선 사람들,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를 통해 풍속사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 부산대 강명관 교수(한문학과)가 이번엔 한층 다양한 스펙트럼의 조선 이면사를 이야기감으로 삼았다.최근 펴낸 ‘조선의 뒷골목 풍경’(도서출판 푸른역사)은 존재했으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사,너무 일상적이고 사소해서 이내 묻혀버린 역사,그리고 지배중심의 역사에 의해 무시당한 서민들의 삶과 문화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책에는 주변부 인생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녹아 있다.탕자,왈자,깡패,기생,도적 등 소외된 민중에는 애정을 보이는 반면 근엄과 엄숙으로 치장된 양반과 주류사회에 대해서는 더없이 냉철한 시선을 던진다. 저자는 먼저 조선 후기 사회와 도박의 관계를 검토한다.도박으로는 투전·골패·쌍륙이 인기 있었다.그 중에서도 특히 투전은 조선 후기는 물론 19세기 말 화투가 들어오기 전까지 도박계의 패자로 군림했다.그것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는 것이었다.중인에 의해 수입되고 중간계급을 중심으로 유행한 투전이 시정의 오락에 머물렀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투전은 수입된 지 100년도 채 못 돼 양반층에까지 전면적으로 파고들었다.‘열하일기’에 연암 박지원이 밤에 역관·비장배(裨將輩)와 투전판을 벌여 돈을 딴 뒤 득의연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그 상징적인 사례다.삼한갑족의 양반 명문가 자손인 연암이 투전이라니! 그런가하면 우의정까지 오른 조선 영조 때 문신 원인손은 투전계 최고의 타자(打子,투전 고수)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오죽하면 다산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재상·명사들과 승지 및 옥당 관원들도 이것으로 소일하니 다른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소나 돼지치는 자들의 놀이가 조정에까지 밀려 올라왔으니 역시 한심한 일이다.”라고 한탄했을까.당시 투전의 유행은 어전에서도 거론될 정도로 조선사회의 거대한 사회문제였다. ●오락을 넘어선 투전·골패등 도박 성행 저자는 “한국의 역사학은 성에 관한 담론을 배제하지만,성이야말로 한국사를 이해하는 데매우 중요한 코드”라고 말한다.예컨대 열녀담론은 도덕적 담론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남성이 여성의 성을 독점하기 위해 마련한 책략이라는 것.그런 맥락에서 저자는 축첩제와 기생제도를 근간으로 성에 탐닉한 양반 남성들이 여인들의 억울한 섹스 스캔들을 정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한다.조선시대 성추문의 주인공이라면 단연 사족(士族) 출신 감동과 어우동이다.40여명의 남자와 간통했다는 감동과 ‘희대의 음녀’ 어우동.성적 억압이 강고했던 중세사회에서 성적 자유를 구가한 이들은 근대를 선취한 선구자적 인물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여기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들을 단지 이질적이고 돌출적인 존재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저자는 어우동을 사형에 처한다는 판정을 내린 성종이 세 명의 왕비와 열 명의 후궁을 거느린 것은 아이러니가 아니냐고 반문한다.나아가 조선은 일부일처제를 넘어 남성의 성욕을 충족시켜주는 수단으로 축첩제와 기녀제,심지어는 간통까지 제도화된 나라라는 ‘도발적인’ 견해를 편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마이너리티의 조선사다.조선시대 이방인들의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된,특수집단 거주지 반촌(泮村)은 완전한 의미의 소수자 공간이다.성균관 유학생들의 하숙촌으로 소의 도살을 독점했던 반촌 사람들은 그들만의 언어와 풍습,삶의 방식을 고집했다.저자에 따르면 반촌민의 도살은 오래전부터 성균관 유생들의 식사에 쇠고기를 제공했던 관습과 무관하지 않다.반촌민들에게 소의 도살을 허락한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성균관 유생들의 쇠고기 식사 습관은 율곡 이이가 생명에 대한 배려 등의 이유로 평생 쇠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큰 대조를 이룬다. ●‘축첩·기녀제도' 남성 성욕 충족시킨 수단 20세기 들어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시행되자 성균관은 옛 위상을 잃고,반촌도 해체의 길을 걸었다.반촌 사람들에게 가해진 사회적 차별 또한 점차 사라졌다.이제 반촌 사람들은 역사 속에 잊혀진 존재가 됐다.하지만 저자는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지금도 돈과 권력,학벌,출신지에 따라 인간을 차별하는 세태는 여전하다고 씁쓸해한다. 그런 만큼 저자는우리 역사를 묵묵히 일궈온 무명씨들의 삶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열심이다.민중의(民衆醫) 조광일·백광현·피재길,백범의 탈옥공작을 벌인 불한당 괴수 김 진사,최고의 대리시험 전문가 유광억,반촌 사람들 교화에 뛰어든 안광수,최고의 판소리꾼 모흥갑,유흥계를 누빈 거문고 명인 이원영,조직폭력배 검계(劍契)를 일망타진한 포도대장 장붕익,검계의 일원이었던 집주름 표철주….이 책에서는 형형색색의 조선 비주류들이 역사의 전면으로 걸어나온다. 1만 4500원 김종면기자 jmkim@
  • [中서부 대개발 현장을 가다](2)다시 열리는 비단길

    시안 둔황 오일만특파원|산시(陝西)성의 성도(省都) 시안(西安)은 한(漢)·당(唐) 등 1180여년 13개 왕조의 국도(國都)였다. 중국 대륙의 정중앙에 위치한 시안은 예부터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거점인 동시에 실크로드의 출발점이기도 했다.고대 중국은 실크로드를 개척해 동서 교류를 촉진했고 적극적인 서역(西域) 경영으로 한·당이 세계 대제국으로 발돋움하는 물적 기반을 마련했다. 1000여년이 흘러 시안∼란저우(蘭州)∼둔황(敦煌)∼우루무치로 이어지는 고대 실크로드는 서부대개발과 더불어 이제 새로운 중흥기를 맞았다. 중국 정부가 서부대개발의 ‘교두보’로서 시안에 대한 본격적인 개발을 선언했기 때문에 고대 실크로드는 어떤 의미에서 현대적 복원이 시작된 셈이다.지난 99년 6월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이 “새 천년의 역사적 기회를 맞아 서부지역의 개발을 가속화하자.”고 서부대개발을 공식 선언한 장소가 바로 시안이다. ●고대와 현대의 퓨전도시 시안 시안은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秦)나라의 고대 유적과 한·당의 수도 창안(長安)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36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속에서 시안 함양공항에서 자동차로 1시간을 달려야 시내가 나온다.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높이 12m,총길이 12㎞의 장방형 성벽이 고풍스러운 자태를 드러낸 위로 첨단 빌딩들이 어울려 신구의 조화가 이채롭다. 중국 대륙의 정중앙답게 전국을 관통하는 9개의 국도와 주요 철로,항공로도 시안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하루에 대략 10만대 이상의 각종 차량이 시안을 거쳐간다는 것이 시 관계자의 전언이다.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온통 공사판이다.서부대개발의 일환으로 지난해 시안∼난징(南京)을 잇는 1500㎞의 시난철도 등 3∼4개의 대형 프로젝트들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교통의 요충지로서의 장점을 더욱 개발해 서북부 최대 경제도시로 발전하겠다는 야심찬 구상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시안은 교통개발에 만족하지 않는다.지난 10여년 동안 첨단기술 개발을 발판으로 ‘IT혁명’의 기치를 들었다. 시내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30분 정도 이동하면 시안이 자랑하는 첨단기술산업개발구가 자리잡고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 개발구에 4991개의 기업이 활동 중이고 외자기업은 541개에 달한다. 연 30%의 성장률을 자랑하는 이곳의 지난해 공업총생산액은 330억위안(약 5조원).소프트웨어와 위성·항공기 관련 국방 정밀산업이 유명하다. 자오훙(趙紅專) 첨단기술개발구 부주임은 “시안에만 40∼50개의 대학이 있을 정도로 풍부한 고급인력과 유리한 지리적 이점을 갖춘 곳”이라며 “외자기업에 최대한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지난 3월 시안 경제대표단을 이끌고 서울을 방문했던 리잔수(栗戰書) 중국 산시성 부당서기 겸 시안시 당서기는 “시안시는 인프라 구축을 위해 120억위안(15억달러)을 투입했고 앞으로도 외자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경제개발구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시안의 투자 유치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리 당서기를 단장으로 30여명의 투자유치단이 올 3월 도쿄와 서울을 거쳐 지난 7월초 독일 프랑스 핀란드 등 유럽 7개국을 순방했다. 지난 6월 말에는 상하이(上海)·항저우(杭州)·원저우(溫州)) 등 연안 경제지구를 방문,중국 기업들을 상대로도 투자를 호소했다. ●산시성의 자원 개발 시안을 성도로 둔 산시성은 에너지 자원의 보고다.특히 석탄자원은 매장량과 탄질 면에서 중국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서전동송(西電東送·서부의 전기를 동부로 보내는 프로젝트)의 핵심 기지가 됐다.향후 10년 내에 500만㎾급 화력발전소 3∼4개를 건설할 계획이다.시안에서 북쪽으로 600㎞ 떨어진 위린(楡林) 근처의 진제(錦界)발전소가 지난해 착공됐다. 금속자원으로는 몰리브덴이 중국에서 가장 많이 매장돼 있다.이외에 진령산맥을 중심으로 금광이 많이 산재해 있어 최근 성(省) 정부는 호주와 합작,연간 10t의 금광을 채굴 중이다. 대한광업진흥공사 권태호(權泰浩·46) 시안사무소장은 “산시성 북부 전체에 석탄 자원이 매장돼 있어 서전동송의 핵심 기지”라고 설명했다.특히 시안에서 북쪽으로 600㎞ 떨어진 위린 에너지화공기지가 중심지다.. 대한광업진흥공사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모색하고 있으며 올 하반기에 채색 원료인 희토(稀土) 생산 사업에 1억위안(150억원) 규모를 투자할 계획이다. ●관광자원의 보고 간쑤성 시안을 떠나 간쑤(甘肅)성으로 들어가면 대지의 색깔이 달라진다.초록색은 점차 엷은 갈색으로 변하고 어느 순간 자갈밭 사막이 펼쳐진다.본격적인 실크로드에 들어선 것이다. 고대 실크로드는 톈수이(天水)로부터 시작되며 친안(秦安),란저우(蘭州),주취안(酒泉),자루관(嘉褥關),위먼관(玉門關),둔황(敦煌) 등 풍부한 문화 유적지가 도처에 깔려 있다. 이 비단길을 따라가면 석굴문화,채도문화,간서문화 등이 관광객들의 눈을 부시게 한다.둔황시 관계자는 “선조가 남겨준 유산은 이용하지 않으면 그 귀중한 가치를 잃은 것과 똑같다.”며 간쑤성의 살 길이 관광자원 개발임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간쑤성은 성도 란저우를 비롯해 둔황·자루관·톈수이 등 8개 주요 관광도시 재건작업에 착수했다.고대 실크로드의 주요 도시를 잇는 룽하이(龍海)선을 복선으로 건설,보다 많은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복안이다.란저우에서부터 하서주랑을 따라 1200㎞의철도를 전면적으로 건설할 계획이다. 둔황시 서쪽 외곽에 자리잡은 관광경제개발구는 올해 1억위안(150억원)의 자금을 관광 기초시설 건설에 투자했다.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인 웨야취안(月牙泉) 기초시설 건설 등 15개 프로젝트가 국가투자 계획에 들어갔다.유네스코 문화유적으로 지정된 막고굴과 대상들의 주요 이동로였던 밍사산(鳴沙山) 등이 주요 대상이다. oilman@ ■신장성의 소수민족들 |우루무치 오일만특파원|둔황에서 우등열차로 12시간을 달려가면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의 구도(區都) 우루무치(烏魯木齊)가 나온다. 우루무치는 톈산(天山)산맥 북쪽 기슭 해발 915m의 고지에 있으며 ‘투쟁’이란 뜻을 갖고 있다.일찍이 중가르부와 후이족(回族)이 격렬한 싸움을 벌인 곳이라고 전해진다. 서역 특히 신장의 소수민족들은 서구적인 외모에서부터 생활풍습,언어까지 중원의 한족과 확연히 구별된다.주로 12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고 위구르족과 카자흐족,후이족,몽골족,키르키스족,타지크족 등이 주요 구성원이다. 서역은 민족의 흥망이 계속된곳으로 시대가 변함에 따라 지배민족도 달라졌다.기원 전에는 아리아인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9세기 키르키스족에 쫓겨 내려온 위구르인들이 톈산산맥의 남부와 동부에 정착을 하면서 위구르인들이 신장의 지배 민족이 됐다. 위구르족의 인구는 720여만명으로 중국에서 4번째로,신장 최대의 소수 민족이다.신장 전역에 퍼져 있다. 종교는 이슬람교이며 돼지고기는 엄격히 금지되나 술에 대해서는 아랍민족들보다 덜 엄격하다.우루무치는 49% 정도가 위구르족이나 자동차로 3시간 거리의 투루판(吐魯番))의 경우 90%가 위구르족이다. 위구르는 ‘연합’ 또는 ‘단결’이란 뜻으로 민족 기원은 BC 3세기 북아시아 터키계 유목민족이 조상이다.10세기쯤 전파된 이슬람교에 의해 불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했다.17세기 이후 중원의 청왕조 영향 아래 놓이게 됐다. 20세기 들어 독립혁명운동을 전개했지만 1949년 인민해방군의 우루무치 진주로 무산됐다.지난 97년 신장내 카스 등에서 산발적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나 중앙정부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표면적으로는 평온한 상태로 들어간 상태다.현재 과거와 같은 적극적인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으며 중국 정부는 적극적인 동화정책을 펴고 있다. ■신장성 발전계획위 런춘메이 부처장 |우루무치 오일만특파원|지난 99년부터 시작된 서부대개발 열풍은 중국의 서부 오지인 신장(新疆)성에까지 거세게 불고 있다.신장성 발전계획위원회 런춘메이(任春梅) 부처장을 만나 경제개발 등 서부대개발이 미친 영향을 들어봤다. 서부대개발 이후 신장성의 경제현황은 어떠한가. -석유와 천연가스를 상하이(上海) 등 동부 연안지역으로 보내는 서기동수(西氣東輸)의 핵심지역이다. 파이프라인의 총연장은 4200㎞로 서울∼부산 고속도로(425㎞)의 10배에 달한다.신장 3대 분지에 퍼져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은 전국의 28.9%와 32.5%로 중국 최대다.석탄 매장량은 2조 2000억t으로 중국 전체의 40.6%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대외개방이 끊임없이 확대돼 지난해 수출입 무역총액이 25억위안(3750억원)에 달했다.전년보다 41.7%가 늘었다.이곳에 들여온 금융자금은 대부분 기초시설 건설에 이용되고 있다.농업,수리,석유화공,교통,에너지,문화교육,위생 등에 사용됐고 100여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신장의 경제환경 가운데 우수한 점은. -신장에는 양호한 투자 우대정책과 투자환경이 있다.최근 들어 투자 환경 개선에 총력을 다해 여러가지 외자 투자 우대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시장과 자원을 최대로 개방해 유동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신장은 40여개 소수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으나 주요 민족은 12개 민족이다. 신장이 갖고 있는 어려움은. -신장은 아직도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다.아직까지 건설자금이 부족하며 인적 자원도 날로 확대되는 개발 목표에 비해 부족하다.향후 서부대개발 과정에서 국내외자금,기술,인재와 경험있는 관리를 많이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신장이 중점을 두고 있는 서부대개발 사업은. -수자원 이용과 교통,에너지 등 기초 인프라 사업은 물론 경제구조를 적극적으로 조정해 특색있는 경제와 산업을 발전시킬 것이다.특히 우루무치와 톈산(天山) 이북의 경제구역을 중점으로 발전시켜 경제발전의견인차로 삼을 것이다.
  • 새만화

    ●꼬꼬댁 만화를 동화로 각색해,원작 만화가가 직접 삽화를 넣은 ‘행복한 만화동화’ 시리즈 첫 번째 작품.한국전쟁 후 혼란기를 소녀의 눈을 통해 바라보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두호의 동명만화가 원작.이두호 원작·그림,연진희 꾸밈,행복한 만화가게 펴냄,8000원. ●Yellow submarine 애니메이션 스토리 보드 형식인 ‘그놈과 그년의 대화’ 등 만화가 최민호의 독특한 만화어법을 엿볼 수 있는 단편 7개를 묶었다.최민호 글·그림,새만화책 펴냄,9500원. ●그땐 그랬지 검정고무신,돌담,곰방대 등 작가가 자랐던 농촌 마을과 풍습을 배경으로 한 작품.조양호 글·그림,새만화책 펴냄,9500원.
  • 이런 책 어때요 / 도둑의 문화사

    와타나베 마사미 지음 송현아 옮김 / 이마고 펴냄 불을 훔친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부터 마릴린 먼로의 팬티를 훔친 소매치기까지 다양한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는 도둑질을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조망.로캉볼·네즈미코조 등 문학작품의 주인공으로 억눌린 대중의 불만을 해소시켜주며 인기를 얻었던 의적들,스스로에게 계급을 부여해 사회의 일원으로 수용되고자 했던 영국의 소매치기들,훔치는 농작물에 신성을 부여해 도둑질을 정당화한 일본의 농촌풍습 등을 통해 도둑질이 인류의 역사와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핀다.‘훔치다’라는 뜻을 지닌 350개의 영어동사도 소개해 눈길을 끈다.1만 3000원.
  • “31년만에 이룬 사랑 너무 행복해요”/ 베트남인과 지난해 10월 결혼 북한여성 이영희씨 현지인터뷰

    “행복합네다.”국경을 넘은 31년 간의 사랑의 드라마 끝에 지난해 12월 베트남인과 결혼에 성공한 최초의 북한여성 이영희(55)씨는 베트남 생활에 어려움이 많지만 그래도 행복감을 맛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1971년 북한에 온 베트남 유학생 팜응옥카잉(당시 23세)과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편지로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다 지난해 북한을 방문한 천득렁 베트남 주석의 간곡한 부탁을 북한이 받아들이면서 31년만에 사랑의 결실을 본 순애보의 주인공.이씨가 지난 4개월 동안의 ‘베트남 시집살이’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나. -베트남어를 하지 못하다 보니 주로 집에서 소일을 하고 지낸다.집에는 우리 부부 외에도 80세된 시아버지와 장애인인 시누이 등 모두 4식구가 함께 생활을 한다.현재 사는 곳은 수도 하노이시의 타이공이라는 지역이다.가끔 한인회도서실 등에 나가 소설책을 빌려보기도 한다.얼마 전 하노이시내를 돌아다니다 한국식당 입구에 ‘함흥냉면 개시’라는 선전문구를 보고 고향생각이 나 운적도 있다. 경제적으로는 어떤가. -넉넉한 편은 아니다.공무원인 남편의 월급이 미화로 100달러 이하다.빠듯한 월급을 쪼개 생활을 하다보니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50세가 넘어 결혼을 했고 아직 어리둥절하지만 행복한 편이다.언어와 풍습이 다르지만 두 사람의 사랑만은 젊은이 못지 않다.내가 좋아 한 결혼인데,후회는 전혀 없다. 북한에는 가족이 있는지. -3살 때 아버지와 친척들이 모두 월남을 하고 북한에는 어머니와 나 그리고 여동생 등 3명이 살았다.어머니와 여동생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여동생의 핏줄인 조카들이 현재 함흥에 살고 있다.지금까지 서신교환을 하고 있다. 혹시 한국을 방문하고 싶은 의사가 있는지. -(남편이 대신 대답) 그동안 여러 사람들로부터 과분한 격려를 들었다.하지만 한국 방문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더구나 아내는 북한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 연합
  • 답십리 고미술상가,반짇고리·등잔에서 토기·민화까지...정겨운 옛날로 ‘문화여행’

    고미술 ‘도깨비시장’을 아시나요? 동대문구 답십리 고미술상가.종로구 인사동 예술거리가 호화로운 데다 값비싼 물건들을 다뤄 선뜻 다가서기 힘든 곳이라면,이곳은 고풍스러운 멋에다 아기자기한 맛까지 더한다.단돈 1000원짜리 반짇고리에서부터 옛날 등잔,떡살,항아리,문짝까지 생활용품들이 주류를 이룬다.‘타임머신’을 타고 우리네 옛 풍습을 엿보는 문화여행은 자녀 교육이나 색다른 집안 꾸미기에 두루 좋다. ‘전통소품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고미술상가에서 설명까지 곁들여 들으면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집안,카페 인테리어를 하거나 전통 한식집을 꾸밀 때 필요한 물건과 연극·영화에 쓰이는 소품 등 없는 게 없다. ‘석물 백화점’도 일본 등 외국관광객에게 인기다.특히 집안에 정원을 꾸미는 데 쓰이는 물확이 많이 팔린다.물을 담아 떡잎식물인 부레옥잠을 키우거나,작은 물레방아나 인공분수를 곁들이고 금붕어를 넣어 기를 수 있다. 도자기류는 청자·백자 등 신라·가야·고구려·백제시대 토기까지 다양하다.고려인의 남녀 일상복,조선시대 혼례복,춤복,패랭이,왕이 별세했을 때 쓰는 백사모도 있다.바느질 그릇,반상기,관복함,제기접시 등 그야말로 ‘옛 문화 백화점’이다. 고서화 전문점도 흥미롭다.농사짓는 아낙과 일하는 농촌사람들을 그린 농경도,경치좋은 산과 들,호수를 그린 풍경화,풍속화….70∼80년 된 민화가 많으며 1000만원을 호가하는 고가품도 있다.또 눈길을 끄는 가게는 만화·영화에 관한 것들을 총망라한 곳으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 ‘자유부인’ 등 인기 영화와,‘로버트 태권 브이’ 시리즈와 ‘마루치 아라치’ 등 만화영화 필름을 비롯해 수천가지를 헤아린다. 가게 주인들 가운데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해 이제는 조상의 숨결을 못잊어 떠날 수 없게 된 경우가 많다.점포는 오전 9시∼오후 7시 문을 열고 일요일에는 대부분 쉰다. 고미술상가 옆에는 ‘철물거리’가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철물,전기재료,건축자재류,청소용품을 취급하는 110여개의 상점이 몰려 있고,물건 값은 시중가격의 절반 정도다. 1500여개의 점포가 밀집한 자동차부품상가도 이웃에 있다.소형 승용차에서 화물차,중장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량의 부품을 시중보다 30∼40%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
  • 영등포구 ‘뿌리찾기’ 나섰다...향토자료 발굴·역사관 건립

    영등포구(구청장 김용일)가 옛 모습과 향토자료 발굴,역사관 건립 등 ‘뿌리찾기’에 본격 나섰다.주민들의 가슴에 화려했던 영등포의 명성을 새겨 자부심을 느끼게 하려는 뜻에서다. 영등포는 과거 강동·송파구와 강남 일부를 제외한 한강 이남지역 대부분을 포함했던 남서울의 중심지였다.역사와 전통을 자랑했지만 1960년대 이후 분구(分區) 과정에서 옛 모습과 자료가 거의 보관되지 않아 번듯한 문화재 하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역 역사·향토자료를 체계적으로 발굴·관리하기 위해 그동안 잊혀졌거나 공개되지 않은 것,또는 새로운 지역문화의 뿌리찾기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오는 11월까지 3단계로 나눠 본격적인 역사 찾기에 나설 방침이다. 우선 오는 6월까지 1단계로 새주소부여사업 등 업무추진 과정에서 알게 된 역사적 사실이나,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유래를 중점 발굴한다.주민들과 관내 교육·언론기관,우체국 등 공공기관에서 소장중인 영등포의 옛 생활상이나 거리풍경을 담은 사진,유물,전래풍습,구전설화,별미음식 등 자료 수집에도 나선다. 2단계(7∼9월)에서는 그동안 수집·발굴된 자료가 역사성이 있는 유물 또는 자료로 판단되면 소장자로부터 기증 받거나 적극 매입해 관련학회의 고증을 추진한다.이어 11월까지 영등포문화예술회관에 역사관을 설립,고증된 자료를 전시할 예정이다. 조덕현기자 hyoun@
  • [열린세상] 우리 사회의 좌 우

    한해에 한번,이맘때면 신문에 반드시 소개되는 ‘눈요기 기사’하나가 있다.아슬아슬하게 벗어붙인 무희들의 뇌쇄적 몸짓을 담은 전송 사진들이다.이 사진은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그 유명한 ‘삼바 축제’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북반구에서 발행되는 신문들로서는 어쩌면 이 뉴스가 봄소식을 알리는 전령이다. 축제는,그리스도교 신자인 국민들이 고행과 극기의 계절인 사순(四旬)시기로 들어가기 전에 마음 놓고 한판 크게 즐기는 그리스도교 나라들만의 전통적인 풍습이다.올해는 사순시기 시작이 3월9일이다. 올 삼바 축제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만성적인 정치-경제 불안에 시달려온 브라질 국민들에게 좀더 특별하게 다가왔을 듯싶다.브라질 헌정사상 최초로 ‘좌파’ 대통령이 등장해서 국민들,특히 가난에 허덕이는 계층을 상대로 희망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빈민 출신으로 노동운동가였던 전형적인 비주류 정치인의 이름이다.올 1월1일 거행된 취임식에서 그는 1000만 개의 일자리와 함께 “내가 임기를끝낼 때 모든 브라질 국민이 세끼 밥을 제대로 먹게 하겠다.”는 인상적인 공약을 했다. 삼바 축제의 야한 사진을 관례대로 지면에 담아낸 우리 신문들은,같은 날 지면에 서울에서 벌어진 ‘찢어진 3·1절’ 사진도 보도했다. 삼바 춤과 서울의 3·1절은 상관관계가 없다.같은 날 신문에 보도되었다는 우연이 있을 뿐이다.그러나 이런 관점 한 가지는 가능하다.좌파인 룰라 대통령이 집권한 브라질,그곳에서 벌어진 삼바 축제의 사진에선 좌도 우도,그 비슷한 것도 찾을 수 없다.그저 선정적이다.반면 비주류 출신이라는 점에서 룰라와 닮은꼴이지만 좌파로부터는 ‘우파’로,우파로부터는 ‘좌파’로 비판받기도 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맞이한 서울,그곳에서 벌어진 3·1절 행사에는 좌우가 있었다는 사실이다.각각의 외침은 각박하고 첨예하다.다시 찢어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프다. 84주년 3·1절인 1일 서울에서는 4개의 서로 다른 집회가 열렸다.우선 시청 앞의 ‘반핵 반김 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와 여의도 공원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금식기도회’.합해서 10만 군중을 모았다는 이 두 집회는 우리 사회 보수우파 세력의 결집이라는 점이 주목거리다. 광화문에서는 ‘3·1 민족자주 반전평화 실현 촛불대행진’이,워커힐 호텔에서는 ‘남북종교인 3·1 민족대회’가 각각 개최됐다. 동시 모임만으로는 이념적으로 양극을 드러낸 모양이 됐다.지역으로 찢고 세대로 나누고 계층으로 쪼개던 사회가 드디어 이념의 분열상마저 보이기 시작했다는 우려와 탄식이 나올 법하다.동시집회는 해방공간의 치열했던 좌우 대결 이래의 사변인 듯이 보이고,반공궐기는 70년대의 그것들을 돌이키게 한다.역사의 퇴영(退)이다. 노무현 정부의 등장이 우리 사회의 이념적 좌표를 묻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좌냐,우냐,색깔이 뭐냐.마치 사회 전체의 이념축이 한 쪽으로 크게 기운 듯이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군중대회를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진행하고 애국가와 미국국가를 차례로 부르며 ‘반미반대’로 구국하고 금식하고 기도하는,낡은 책갈피 속에서 보았음직한 장면들도 그런 현상의 하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좌파가 갑자기 늘어난 것이 아니라 잠재해 있던 다양한 생각들이 마구 표출되는 ‘이념의 커밍 아웃’ 사태를 맞이하고 있을 뿐이라는 진단은 옳다.이념,또는 왼쪽 콤플렉스는 근거 없다.‘좌’인 것이 문제가 아니다. 북한과 화해협력을 추구하고 동시에 미국과 대등한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적 당위,우리의 소명이다.지혜가 필요하다. 정 달 영 assisi61@hanmail.net
  • 中 신장 위구르 지진 이모저모/ 인구밀집지 강타… 인명피해 커 학교붕괴… 학생들 수업중 희생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외신|24일 중국 북서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사상자가 1300여명에 이른다고 신화 등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지난 1949년 이후 이 지역에서 발생한 최대의 지진 피해이다. 중국 정부는 구조대책반을 구성하고 군 의료대를 현지로 급파하는 등 기민한 대응에 나섰다.후진타오(胡錦濤) 당 총서기와 주룽지(朱鎔基) 총리 등 당 지도부는 사건 직후 자스시 당위원회로 전화를 걸어 “음용수와 주택,난방문제 등을 최우선으로 해결,피해를 최소화하라고 지시했다.”고 관영 CCTV가 전했다. ●50여년만에 최악의 지진 피해 지진은 이날 오전 10시3분(한국시간 오전 11시3분) 베이징(北京)에서 2900㎞ 떨어진 신장 커션(喀什)지구 자스(伽師)현,바추(巴楚)현 등에서 발생해 일대의 가옥 1000여채와 학교가 무너졌다. 지진 피해는 진앙지인 자스와 바추를 비롯해 아라건(阿拉根) 등의 지역에서 심했다.특히 학교 건물이 지진으로 무너지는 바람에 수업 중이던 학생들이 대부분 희생됐다. 가까스로 지붕이 무너지기 직전 가족과함께 집 밖으로 대피한,바추현에서 정미소를 운영한다는 주밍첸은 마을 주민 1000명 중 1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신장 지진국은 진앙지가 북위 38.95도,동경 77.2도라고 밝히고,지진 피해지역은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피해규모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희생자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베이징의 중앙 지진국과 위구르 자치구 지진국 관계자도 “리히터 규모 5.0의 여진이 발생하는 등 지각이 불안정해 사망자 수가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국경 부근에 위치한 자스시 일대는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이 주로 거주하는 지진 빈발지역이다. ●여진·추위로 피해주민들 삼중고 “혼돈 그 자체이다.주변의 집들이 대부분 무너졌고,전기도 끊겼다.난방이 되지 않아 추위에 떨고 있다.” 외신을 타고 전해진 현지 상황이다.이번 지진은 인구가 밀집한 바추현을 강타,인명피해가 컸다. 특히 지진이 발생한 오전 10시쯤 주민들 대부분은 아침 식사를 하거나 아직 잠자리에 있어 피해가더욱 컸다.중국은 전역이 동일시간대에 해당되지만 중국 북서쪽에 위치한 신장 위구르 자치지역의 일출시간은 베이징보다 훨씬 늦다.베이징보다 수시간 늦게 하루가 시작된다.피해지역 주민들은 여진이 일어날까봐 영하 10도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떨고 있다. 한편 주민들이 대부분 회교도들로,시신을 수습한 유가족들은 사망 당일 장례를 치르는 위구르지방의 풍습에 따라 구조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서둘러 장례식을 치르고 시신을 매장하는 모습이 더러 눈에 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oilman@
  • [길섶에서] 미역국

    생일 아침에 일어나면 윗목에 흰밥과 미역국,깨끗한 물이 놓인 상차림을 볼 수 있었다.정물화처럼 고즈넉히 놓여 있는 품이 꽤 일찍부터 그 자리에 차려져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이 새벽에 누가 다녀간 것일까. 그 상이 ‘삼신상’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주관하는 삼신할머니께 올리는 상.정성을 받으신 삼신할머니는 아이가 탈없이,건강하게 자라도록 보살펴 주셨으리라. 우리나라 산모들은 출산 후 미역국을 먹는다.이것도 삼신상과 관계가 있다.아이를 낳은 후 3일,7일,14일,21일 되는 날 삼신상을 차려놓고 무병성장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고 이때 미역국은 산모가 먹었다. 미역국은 산모의 피를 맑게 해주고 유즙 분비를 돕는 효능이 있다. 그러고 보면 생일날 미역국은 아이보다 엄마를 위한 차림이었던 셈이다. “얘야,네 껍닥 왔다.껍닥 봐라.” 출산을 한 산모를 껍닥(껍데기)이라 부르며 환한 미소로 손주를 어르시던 옛 어른이 그립다. 신연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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