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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51)-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조광조를 비롯하여 8인의 죄수에게 내린 중종의 전지는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근래 너희들이 벌인 조정에서의 처사는 과격하여 과오를 범하게 되었으니 조정 일에 잘못한 일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이번 일에 과인이 어찌 마음이 편안하겠는가.또한 조정의 대신들 역시 어찌 달리 사사로운 마음이 있겠는가.너희들로 하여금 이에 이르도록 한 것은 과인이 밝지 못하여 능히 미리 대처하지 못한 탓이다.너희들의 죄는 만약 형률(刑律)로서만 다스린다면 단순히 귀양보내는 것만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너희들에게도 사사로운 마음이 없었고 단지 나라를 위하려고 한 나머지 과격함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니,말감으로서 죄를 확정한 것이며,만약 보통의 죄수라면 이런 교지는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너희들이 오래 시종으로 있었으니 과인인들 너희들의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이번에 나랏일을 그르친 죄를 형률로 다스리는 것이니 그렇게 알고 유배를 떠나도록 하라.” 8인의 죄수들은 무릎을 꿇고 군주의 교지를 들었다. 말감(末減).가장 가벼운 형량으로 고쳐 죄를 확정하였다는 중종의 교지를 듣는 순간 조광조의 눈에서는 눈물이 굴러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김정은 마지막으로 8명의 유배지를 확정하여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조광조는 능주에,김정은 금산(錦山)에,김구는 개령(開寧)에,김식은 선산(善山)에,박세희는 상주(尙州)에,박훈은 성주(星州)에,윤자임은 온양(溫陽)에,기준은 아산(牙山)으로 각자의 유배형에 처한다.” 묵묵히 듣고 있던 김식이 쓴웃음을 지으며 울고 있는 조광조를 향해 말하였다. “대감,마침내 우리들이 이매가 되고 말았소이다.” 이매(魅)는 ‘산도깨비’를 가리키는 말로 숲 속에 사는 이상한 기운으로 생기는 괴물이었다.사람의 얼굴을 하고 짐승의 몸을 한 네발 가진 도깨비를 말하는데,사람을 해치는 온갖 도깨비나 귀신을 가리키는 ‘이매망량’의 준말인 것이다.예부터 중국에서는 이 산도깨비인 이매를 막기 위해서는 이들을 각각 사이(四夷)의 먼 변방으로 쫓아내야만 가능하다는 풍습이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그것을 빗대어 김식이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여 자조하였던 것이다. “대감,우리가 마침내 산도깨비가 되고 말았소이다그려.” 김식이 말하였던 대로 괴수 중의 괴수인 조광조는 가장 먼 능주로 유배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각각 그 죄상에 따라 한양에서 가까운 거리로 나뉘어져 안치되는 것이다.이렇듯 각각 먼 변방으로 쫓아내야만 조정이 안정된다고 교지를 내렸으니 이는 자신들을 사람을 홀리는 산도깨비,즉 이매로 취급하는 처사가 아닐 것인가 하고 김식이 비꼬아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김식의 태도와는 달리 조광조는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신들이 비록 떠나갑니다만 어찌 신들이 주상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신들의 처사가 너무 과격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중종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정치를 펼쳐보려고 과격할 만큼 열과 성의를 다하였던 조광조 일파의 신진세력들은 끈질기고 조직적인 훈구세력들의 반격으로 마침내 산도깨비로 몰려 변방으로 쫓겨 가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소위 기묘사화의 전말인 것이다. 이때가 중종 14년,1519년 11월 17일 아침이었다.˝
  • 儒林(51)-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51)-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조광조를 비롯하여 8인의 죄수에게 내린 중종의 전지는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근래 너희들이 벌인 조정에서의 처사는 과격하여 과오를 범하게 되었으니 조정 일에 잘못한 일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이번 일에 과인이 어찌 마음이 편안하겠는가.또한 조정의 대신들 역시 어찌 달리 사사로운 마음이 있겠는가.너희들로 하여금 이에 이르도록 한 것은 과인이 밝지 못하여 능히 미리 대처하지 못한 탓이다.너희들의 죄는 만약 형률(刑律)로서만 다스린다면 단순히 귀양보내는 것만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너희들에게도 사사로운 마음이 없었고 단지 나라를 위하려고 한 나머지 과격함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니,말감으로서 죄를 확정한 것이며,만약 보통의 죄수라면 이런 교지는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너희들이 오래 시종으로 있었으니 과인인들 너희들의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이번에 나랏일을 그르친 죄를 형률로 다스리는 것이니 그렇게 알고 유배를 떠나도록 하라.” 8인의 죄수들은 무릎을 꿇고 군주의 교지를 들었다. 말감(末減).가장 가벼운 형량으로 고쳐 죄를 확정하였다는 중종의 교지를 듣는 순간 조광조의 눈에서는 눈물이 굴러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김정은 마지막으로 8명의 유배지를 확정하여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조광조는 능주에,김정은 금산(錦山)에,김구는 개령(開寧)에,김식은 선산(善山)에,박세희는 상주(尙州)에,박훈은 성주(星州)에,윤자임은 온양(溫陽)에,기준은 아산(牙山)으로 각자의 유배형에 처한다.” 묵묵히 듣고 있던 김식이 쓴웃음을 지으며 울고 있는 조광조를 향해 말하였다. “대감,마침내 우리들이 이매가 되고 말았소이다.” 이매(魅)는 ‘산도깨비’를 가리키는 말로 숲 속에 사는 이상한 기운으로 생기는 괴물이었다.사람의 얼굴을 하고 짐승의 몸을 한 네발 가진 도깨비를 말하는데,사람을 해치는 온갖 도깨비나 귀신을 가리키는 ‘이매망량’의 준말인 것이다.예부터 중국에서는 이 산도깨비인 이매를 막기 위해서는 이들을 각각 사이(四夷)의 먼 변방으로 쫓아내야만 가능하다는 풍습이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그것을 빗대어 김식이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여 자조하였던 것이다. “대감,우리가 마침내 산도깨비가 되고 말았소이다그려.” 김식이 말하였던 대로 괴수 중의 괴수인 조광조는 가장 먼 능주로 유배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각각 그 죄상에 따라 한양에서 가까운 거리로 나뉘어져 안치되는 것이다.이렇듯 각각 먼 변방으로 쫓아내야만 조정이 안정된다고 교지를 내렸으니 이는 자신들을 사람을 홀리는 산도깨비,즉 이매로 취급하는 처사가 아닐 것인가 하고 김식이 비꼬아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김식의 태도와는 달리 조광조는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신들이 비록 떠나갑니다만 어찌 신들이 주상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신들의 처사가 너무 과격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중종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정치를 펼쳐보려고 과격할 만큼 열과 성의를 다하였던 조광조 일파의 신진세력들은 끈질기고 조직적인 훈구세력들의 반격으로 마침내 산도깨비로 몰려 변방으로 쫓겨 가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소위 기묘사화의 전말인 것이다. 이때가 중종 14년,1519년 11월 17일 아침이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1)한국의 찻그릇 문화-서영기의 ‘마애불꽃병’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1)한국의 찻그릇 문화-서영기의 ‘마애불꽃병’

    차살림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일보다 이 행위를 통하여 느끼려는 생명성과 정신적 양식과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이다.역사성과 심성이 포함된 문화와 풍속이 담겨 있어야 차살림이 된다는 뜻이다.그래서 차문화는 차를 통해 시대마다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체온과 사상,풍습이 모두 포함된 것이라 할 수 있다.우리나라 차문화에서 꽃과 꽃병은 찻그릇들이 그러하듯 역사성,예술성과 함께 종교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꽃은 생명의 잉태,태어남,성장과 노쇠,죽음으로 이어지는 순환과 영속의 비밀을 침묵으로 말하는 상징물이다.이때 꽃병은 꽃의 거처이며,대지이며,시간이며 공간이다.존재의 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최근 ‘마애불꽃병’이라는 매우 독특한 도예작품을 발표하여 디자인과 역사성이 매우 잘 결합된 새로운 도자문화의 방향을 제시한 서영기(경기대 디자인 공예학부 도자전공·44)교수의 장작가마를 찾아갔다.그의 집이자 작업장인 죽연요(竹淵窯)는 충북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 44번지의 산중턱에 있었는데,그가 손수 지은 통나무와 황토를 이용한 집은 아늑했다. 문 : 선생께서는 요즈음 흙과 불로써 한국인의 오랜 생활신앙의 모태였던 산과 바위를 도예 작업으로 형상화하는 특이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마애불이 새겨진 산의 바위 절벽을 꽃병으로 형상화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투실하면서도 정감어린 형태와 따스한 색감을 지닌 화강암의 암석미(岩石美)를 도자예술로 재해석하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이런 작업을 하게 된 동기가 있었겠지요? ●화강암의 암석미 도예로 재해석 徐 : 제가 살고 있는 이 동네는 44년 전에 저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저의 선대들도 이곳이 고향입니다.단양은 단양팔경으로도 유명하지요.특히 사인암(舍人岩)을 비롯하여 하선암(下仙岩),중선 상선암,도담삼봉(嶋潭三峰) 등은 모두 기암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는 장관들이지요.이처럼 단양은 기암괴석들이 빼어난 풍광을 이루고 있습니다.그래서 어릴 적부터 그런 바위산,절벽들을 보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의 심성에도 단양의 풍광들이 배어들었지 않나 싶습니다. 특별하게 마애불을 의식하여 시도하지는 않았어요.이른바 전통 장작가마를 이용하여 도자기 작업을 하다 보니 전통이란 것의 의미를 생각할 수밖에 없지요.전통을 저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힘의 본질과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변하지 않는 것은 없지요. 시대마다 특징이 있지 않습니까? 그 특징이 변화인데 도예작가는 그 시대의 특징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아야 하고,그것은 작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새롭다는 것이 변화 아니겠어요? 그 변화 가운데 저는 마애불과 기암 절벽이 지닌 민간 신앙,이를테면 높은 산이나 깎아지른 절벽 아래서 촛불을 켜놓고 향을 피우면서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거나 치성을 드리는 모습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아주 흔한 풍경이거든요.그래서 흙으로 그 형상들을 빚어보았지요.바위 질감이 느껴지는 천연 유약을 선택하여 입히고 가마 안에 넣었지요. 뜻밖에 괜찮은 느낌의 작품들이 탄생되더군요.그때부터 서산마애불을 비롯하여 전국 여러곳의 마애불들을 시간나는 대로 찾아다니기도 했지요.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차츰 이쪽 작업을 많이 하게 된 것뿐입니다. ●시대의 특징을 창작의 원천 삼아야 문 : 작품들 중에는 흡사 관세음보살도에서 볼 수 있는 감로수병(甘露水甁) 모양을 닮은 꽃병이 기암절벽을 업고 있는 듯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있더군요.실제로 관음신앙에 어떤 관심을 갖고 계신가요? 徐 : 그렇습니다. 문 : ‘마애불꽃병’ 연작들을 보고 있다 보면 선생께서는 흙에 관한 나름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데,실제로 도자기 작업에서 흙의 비중은 절대적이기도 하지요. 흙을 도자기의 근본 재료로 삼는 문제 외에 흙이 지닌 다양한 성질과 자원으로서의 가치 등에 대한 선생의 견해는 어떤 것입니까? 徐 : 도자기에서 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겠지요.첫째는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측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과 제한된 특수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는 흙으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다양한 조형과 주제의식을 표현하기 위하여는 주로 점토질이 풍부한 흙을 쓰지요.부드럽고 유연성이 있으면서 찰기가 좋은 것들이지요. 제한된 특수 목적에 사용되는 흙은 보통 지역에 따라 내화도(耐火度) 정도에 맞는 그릇을 만들 때 제기되는 문제지요.예를 들면 찻사발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알갱이가 굵고 내화도가 높은 소백산맥 이남 남해안 지방의 흙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흙의 성질을 잘 파악하여 특성이 강화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흙을 조합하여 작가마다의 개성있는 흙으로 바꾸어내어 사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물론 훌륭한 도예작가는 그만의 독특한 흙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만 합니다.그런데 우리나라는 지난 세기 일제 때 일본인들이 좋은 흙 대부분을 일본으로 실어간 뒤로 사실상 질 좋은 흙이 고갈된 상태라고 말합니다.틀린 주장이 아니라고 봅니다. ●일제때 좋은 흙 대부분 약탈 당해 문 : 선생께서 도예에 입문하게 된 무슨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습니까? 徐 : 계기라기보다는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제가 태어나 자란 이곳은 조선시대를 통하여 좋은 백토(白土) 산지여서 국가에서 운영하는 관요(官窯)가 있었고,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민요(民窯)가 번창했던 도자기 골이지요.지금도 유명한 도자기 생산단지가 들어서 있지 않습니까. 저의 숙부님께서 사기장이었지요.그러다 보니 온 집안 사람들이 모두 그릇 만드는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지요.저는 어릴 적부터 흙을 주무르며 도자기 문화에 흠뻑 젖어서 자랐지요.20세 전후하여 숙부님한테서 본격적으로 도자기 만드는 일을 배우게 되었고,5년 동안의 수습을 마치고 독립했지만 실패만 맛보았지요.어리석다고 느꼈어요.다시 배우기 위해 김응한 선생의 제자가 되었지요.13년 동안 열심히 배웠습니다.그러니까 꼬박 20년 동안을 전통 도자기 배우는 데 보낸 셈입니다.그런 후에야 비로소 저 나름의 독자적인 작업을 시작하여 ‘죽연요’라는 이름을 내걸게 되었습니다. 문 : 흙을 알아보기,흙을 반죽하여 꼬막밀기와 꼬막뜨기,물레질,유약개발,불때기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것 없는 전 과정을 꼼꼼하게 배우고 다져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이 20년이라 하셨는데,전통 가마에서 불의 중요성은 특히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요즘 차인들이 다양한 색깔의 변화를 중시하는 경향이거든요.디지털 시대의 문화와 찻그릇의 색깔 관계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徐 : 다양한 색채를 입힌 그릇을 선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일본이나 서구 사회에서는 색채의 다양성을 해결하기 위하여 인위적인 도안을 하고 색깔마다 개별적인 작업을 하지요.한국의 전통가마는 불의 성질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색채의 조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도자예술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요변(窯變)이라 하지요.가마 안에서 산소량의 정도에 따라 여러 가지 색깔로 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환원불,중성불,산화불 등으로 분류하는데,이것은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합니다.다만 오랜 경험이 가장 중요하며 다소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만.저의 경우 10여년 정도 불을 지피다보니 저절로 터득되더군요. 예를 들면 가마의 첫째 칸은 환원불로서는 가장 성공률이 높은데 바닥에 숯불이 많이 쌓이기 때문이지요.아무튼 색깔은 유약도 중요하지만 불의 상태가 더욱 중요하고,이 중요성은 오랜 경험과 치밀한 분석이 있어야만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불의 성질 이용해 색채의 조화 만들어 문 : 전통의 문제와 함께 요즘 크게 논의되는 것이 모방과 복제에 따른 부작용인 것 같은데,이 점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徐 : 도자기에서 전통이란 작가의 피속에 흐르는 정신이겠지요.전통 그 자체가 그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피를 몸에 지닌 작가가 그만의 생각으로 다양하게 작품을 만드는 것이지요.좋은 전통은 곧 품격 높은 다양성을 더욱 활성화시키는 것이겠지요. 전통 문화를 흔히 틀속에 가두어 놓고 획일화한 것으로 보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모방은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 작업입니다.배우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지요.하지만 작가가 된 뒤에도 모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복제하는 것은 작가 자신의 죽음일 따름입니다. 문 : 찻사발에 대한 선생의 생각을 말씀해 주시지요. 徐 : 절제된 아름다움이 함축된 형태와 어딘지 모르게 좀 모자라고 비어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찻사발을 만들고 싶습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1)한국의 찻그릇 문화-서영기의 ‘마애불꽃병’

    차살림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일보다 이 행위를 통하여 느끼려는 생명성과 정신적 양식과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이다.역사성과 심성이 포함된 문화와 풍속이 담겨 있어야 차살림이 된다는 뜻이다.그래서 차문화는 차를 통해 시대마다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체온과 사상,풍습이 모두 포함된 것이라 할 수 있다.우리나라 차문화에서 꽃과 꽃병은 찻그릇들이 그러하듯 역사성,예술성과 함께 종교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꽃은 생명의 잉태,태어남,성장과 노쇠,죽음으로 이어지는 순환과 영속의 비밀을 침묵으로 말하는 상징물이다.이때 꽃병은 꽃의 거처이며,대지이며,시간이며 공간이다.존재의 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최근 ‘마애불꽃병’이라는 매우 독특한 도예작품을 발표하여 디자인과 역사성이 매우 잘 결합된 새로운 도자문화의 방향을 제시한 서영기(경기대 디자인 공예학부 도자전공·44)교수의 장작가마를 찾아갔다.그의 집이자 작업장인 죽연요(竹淵窯)는 충북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 44번지의 산중턱에 있었는데,그가 손수 지은 통나무와 황토를 이용한 집은 아늑했다. 문 : 선생께서는 요즈음 흙과 불로써 한국인의 오랜 생활신앙의 모태였던 산과 바위를 도예 작업으로 형상화하는 특이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마애불이 새겨진 산의 바위 절벽을 꽃병으로 형상화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투실하면서도 정감어린 형태와 따스한 색감을 지닌 화강암의 암석미(岩石美)를 도자예술로 재해석하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이런 작업을 하게 된 동기가 있었겠지요? ●화강암의 암석미 도예로 재해석 徐 : 제가 살고 있는 이 동네는 44년 전에 저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저의 선대들도 이곳이 고향입니다.단양은 단양팔경으로도 유명하지요.특히 사인암(舍人岩)을 비롯하여 하선암(下仙岩),중선 상선암,도담삼봉(嶋潭三峰) 등은 모두 기암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는 장관들이지요.이처럼 단양은 기암괴석들이 빼어난 풍광을 이루고 있습니다.그래서 어릴 적부터 그런 바위산,절벽들을 보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의 심성에도 단양의 풍광들이 배어들었지 않나 싶습니다. 특별하게 마애불을 의식하여 시도하지는 않았어요.이른바 전통 장작가마를 이용하여 도자기 작업을 하다 보니 전통이란 것의 의미를 생각할 수밖에 없지요.전통을 저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힘의 본질과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변하지 않는 것은 없지요. 시대마다 특징이 있지 않습니까? 그 특징이 변화인데 도예작가는 그 시대의 특징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아야 하고,그것은 작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새롭다는 것이 변화 아니겠어요? 그 변화 가운데 저는 마애불과 기암 절벽이 지닌 민간 신앙,이를테면 높은 산이나 깎아지른 절벽 아래서 촛불을 켜놓고 향을 피우면서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거나 치성을 드리는 모습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아주 흔한 풍경이거든요.그래서 흙으로 그 형상들을 빚어보았지요.바위 질감이 느껴지는 천연 유약을 선택하여 입히고 가마 안에 넣었지요. 뜻밖에 괜찮은 느낌의 작품들이 탄생되더군요.그때부터 서산마애불을 비롯하여 전국 여러곳의 마애불들을 시간나는 대로 찾아다니기도 했지요.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차츰 이쪽 작업을 많이 하게 된 것뿐입니다. ●시대의 특징을 창작의 원천 삼아야 문 : 작품들 중에는 흡사 관세음보살도에서 볼 수 있는 감로수병(甘露水甁) 모양을 닮은 꽃병이 기암절벽을 업고 있는 듯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있더군요.실제로 관음신앙에 어떤 관심을 갖고 계신가요? 徐 : 그렇습니다. 문 : ‘마애불꽃병’ 연작들을 보고 있다 보면 선생께서는 흙에 관한 나름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데,실제로 도자기 작업에서 흙의 비중은 절대적이기도 하지요. 흙을 도자기의 근본 재료로 삼는 문제 외에 흙이 지닌 다양한 성질과 자원으로서의 가치 등에 대한 선생의 견해는 어떤 것입니까? 徐 : 도자기에서 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겠지요.첫째는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측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과 제한된 특수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는 흙으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다양한 조형과 주제의식을 표현하기 위하여는 주로 점토질이 풍부한 흙을 쓰지요.부드럽고 유연성이 있으면서 찰기가 좋은 것들이지요. 제한된 특수 목적에 사용되는 흙은 보통 지역에 따라 내화도(耐火度) 정도에 맞는 그릇을 만들 때 제기되는 문제지요.예를 들면 찻사발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알갱이가 굵고 내화도가 높은 소백산맥 이남 남해안 지방의 흙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흙의 성질을 잘 파악하여 특성이 강화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흙을 조합하여 작가마다의 개성있는 흙으로 바꾸어내어 사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물론 훌륭한 도예작가는 그만의 독특한 흙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만 합니다.그런데 우리나라는 지난 세기 일제 때 일본인들이 좋은 흙 대부분을 일본으로 실어간 뒤로 사실상 질 좋은 흙이 고갈된 상태라고 말합니다.틀린 주장이 아니라고 봅니다. ●일제때 좋은 흙 대부분 약탈 당해 문 : 선생께서 도예에 입문하게 된 무슨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습니까? 徐 : 계기라기보다는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제가 태어나 자란 이곳은 조선시대를 통하여 좋은 백토(白土) 산지여서 국가에서 운영하는 관요(官窯)가 있었고,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민요(民窯)가 번창했던 도자기 골이지요.지금도 유명한 도자기 생산단지가 들어서 있지 않습니까. 저의 숙부님께서 사기장이었지요.그러다 보니 온 집안 사람들이 모두 그릇 만드는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지요.저는 어릴 적부터 흙을 주무르며 도자기 문화에 흠뻑 젖어서 자랐지요.20세 전후하여 숙부님한테서 본격적으로 도자기 만드는 일을 배우게 되었고,5년 동안의 수습을 마치고 독립했지만 실패만 맛보았지요.어리석다고 느꼈어요.다시 배우기 위해 김응한 선생의 제자가 되었지요.13년 동안 열심히 배웠습니다.그러니까 꼬박 20년 동안을 전통 도자기 배우는 데 보낸 셈입니다.그런 후에야 비로소 저 나름의 독자적인 작업을 시작하여 ‘죽연요’라는 이름을 내걸게 되었습니다. 문 : 흙을 알아보기,흙을 반죽하여 꼬막밀기와 꼬막뜨기,물레질,유약개발,불때기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것 없는 전 과정을 꼼꼼하게 배우고 다져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이 20년이라 하셨는데,전통 가마에서 불의 중요성은 특히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요즘 차인들이 다양한 색깔의 변화를 중시하는 경향이거든요.디지털 시대의 문화와 찻그릇의 색깔 관계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徐 : 다양한 색채를 입힌 그릇을 선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일본이나 서구 사회에서는 색채의 다양성을 해결하기 위하여 인위적인 도안을 하고 색깔마다 개별적인 작업을 하지요.한국의 전통가마는 불의 성질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색채의 조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도자예술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요변(窯變)이라 하지요.가마 안에서 산소량의 정도에 따라 여러 가지 색깔로 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환원불,중성불,산화불 등으로 분류하는데,이것은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합니다.다만 오랜 경험이 가장 중요하며 다소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만.저의 경우 10여년 정도 불을 지피다보니 저절로 터득되더군요. 예를 들면 가마의 첫째 칸은 환원불로서는 가장 성공률이 높은데 바닥에 숯불이 많이 쌓이기 때문이지요.아무튼 색깔은 유약도 중요하지만 불의 상태가 더욱 중요하고,이 중요성은 오랜 경험과 치밀한 분석이 있어야만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불의 성질 이용해 색채의 조화 만들어 문 : 전통의 문제와 함께 요즘 크게 논의되는 것이 모방과 복제에 따른 부작용인 것 같은데,이 점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徐 : 도자기에서 전통이란 작가의 피속에 흐르는 정신이겠지요.전통 그 자체가 그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피를 몸에 지닌 작가가 그만의 생각으로 다양하게 작품을 만드는 것이지요.좋은 전통은 곧 품격 높은 다양성을 더욱 활성화시키는 것이겠지요. 전통 문화를 흔히 틀속에 가두어 놓고 획일화한 것으로 보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모방은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 작업입니다.배우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지요.하지만 작가가 된 뒤에도 모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복제하는 것은 작가 자신의 죽음일 따름입니다. 문 : 찻사발에 대한 선생의 생각을 말씀해 주시지요. 徐 : 절제된 아름다움이 함축된 형태와 어딘지 모르게 좀 모자라고 비어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찻사발을 만들고 싶습니다.˝
  • 요리조리 맛있는 세계여행/최향랑 글·그림

    요리하는 엄마 옆에서 뭐든지 따라하려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읽히면 좋을 책이다.요리법이나 영양 위주의 기존 어린이 요리책과 달리,요리 자체보다는 음식에 담긴 세계 각국의 독특한 문화와 풍습을 함께 전하는 것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 일요일 오후,아빠가 소파에서 잠든 사이 엄마와 예린이는 인형만큼 작아져서 세계 여러 나라로 신기한 음식여행을 떠난다.처음 발길이 멈춘 곳은 ‘마파두부’를 해놓고 손자를 기다리는 중국 쓰촨성의 한 할머니네.할머니는 마파두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그리고 한국의 자장면과 베이징의 자장면이 어떻게 다른지 등을 친절하게 알려준다.그리고 만리장성과 경극 등 중국의 유적과 예술에 대해서도 얘기해준다.엄마와 예린이는터키와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 등으로 여행을 하며 외국 음식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맛본다.독특한 색감의 풍부한 그림들과 함께 엄마와 아이가 책에 소개된 음식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자세한 요리법도 실려있다.6세 이상.1만 3000원. 이순녀기자 coral@˝
  • [김영희 이혼클리닉] ‘국제결혼’ 부모님 설득 어렵네요

    미국계 은행에 다니는 29세 청년입니다.아버지는 대기업 간부로 일하시고,어머니는 명품가게를 운영하며 여동생도 있습니다.2년째 사귀고 있는 미국 여성과 결혼하고 싶은데 어머니 반대가 완강합니다.아버지는 침묵으로 일관하시고요.설득할 방법이 없을까요? -정승국 정승국씨.인터넷에 올라온 사연을 접하고,제 경우와 똑같아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외아들인 승국씨가 미국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다 했을 때,어머니가 받았을 정신적 충격(?)을 저는 이해합니다.세상이 많이 변했어도 한국인 의식 속에 잠재하는 유교사상과 단일민족 선호사상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가 쉽지 않아서,아직도 국제결혼은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6년 전,제 아들도 미국 여성과 국제결혼을 했습니다.10여년 동안 미국에서 살다온 저도 아들이 국제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눈 앞이 캄캄했습니다.국제결혼은 절대 안 된다는 부모 뜻에 철석같이 동의를 해 왔던 아들이 어느 날 “어머니,이제까지 불효해 본 적 없었는데….”라며 결혼 말을 꺼내더군요.‘하늘이 내려준 효자’라고 칭송받던 아들이,부모가 받을 충격 같은 건 염두에도 없는 것 같아 “저 녀석 내 아들 맞아?”라고 했습니다. 침묵으로 2년을 보낸 어느 날,나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해 봤습니다.아들이 사랑하는 여성과 헤어져 가슴 아파 운다면,차마 못 할 짓이다 싶었습니다.결혼을 승낙키로 마음을 정하고 아들을 만났더니 “우리 헤어지기로 했어요.제겐 어머니가 더 소중합니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그 말을 듣는 순간 아들을 향한 제 사랑보다,아들이 제게 준 사랑이,훨씬 깊다는 것을 깨닫고 가슴이 미어졌습니다.“결혼 승낙하러 왔다.축하한다.”이 한마디로,그동안 우리집안에 자욱했던 안개가 일시에 걷혔습니다.“감사합니다.둘이서 더 많이 노력해서 평생 효도하겠습니다.”아들과 며느리는 우리 부부 앞에 무릎을 꿇고 울었습니다. 지금 미국 며느리는 집안 식구들 모두가 감탄할 만큼 잘 하고 있습니다.우리 부부가 그곳을 방문할 때면,인삼차에 잣을 띄워 두 손으로 공손히 대접하고,김치찌개,고추장 불고기,시금치나물을 만들어 내놓습니다.국제결혼에 대한 제 인식이 잘못됐었다는 것을,살아가면서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승국씨.미국 여성에게 외아들을 결혼시키고 싶지 않는 부모 마음,당연한 것입니다.문화와 풍습,언어와 생활습관이 전혀 달라서 한국 사람이 갖고 있는 ‘정’과,여자들끼리만 통할 수 있는 ‘공감대’를 외국 며느리와는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저도 했었으니까요.하지만 사람 마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똑같더군요. 승국씨.두 사람은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제 경우와 다를 수 있습니다.부모님께서 결혼 승낙을 하신다해도,결혼 전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승국씨는 영어를,결혼할 아가씨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할 것이며,한국인의 풍습과 예절도 익혀둬야만 문화적 갈등으로 오는 오해를 겪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인들끼리 결혼을 해도 살다보면 이러쿵저러쿵 탈이 많은데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해 온 두 사람의 결혼은,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아둬야 할 것입니다.뜨거운 마음만 앞세우지 말고,앞으로 생길 수도 있을 문제점을 잘 생각해 보고 충분한 대화를 나누길 바랍니다. 서두르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어머니를 설득하되,가족들의 협조를 구하세요.외할머니께서는 찬성하신다니 측면 지원을 받으시고,여동생의 협조도 구해야겠지요.또한 중립을 지키고 계시는 아버지를 두 사람이 밖에서 자주 만나 뵙고,신뢰받을 수 있는 행동을 보여드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을 십분 이용해 보세요.두 사람의 진실된 사랑과 노력의 자세가 보일 때,어머니께서도 생각을 달리 하실 수 있을 겁니다.‘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어머님을 자극하지 말고,변함없는 극진한 자식사랑을 보여드리세요.‘사랑의 여신’은 당신 편이 될 겁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김영희 이혼클리닉] ‘국제결혼’ 부모님 설득 어렵네요

    미국계 은행에 다니는 29세 청년입니다.아버지는 대기업 간부로 일하시고,어머니는 명품가게를 운영하며 여동생도 있습니다.2년째 사귀고 있는 미국 여성과 결혼하고 싶은데 어머니 반대가 완강합니다.아버지는 침묵으로 일관하시고요.설득할 방법이 없을까요? -정승국 정승국씨.인터넷에 올라온 사연을 접하고,제 경우와 똑같아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외아들인 승국씨가 미국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다 했을 때,어머니가 받았을 정신적 충격(?)을 저는 이해합니다.세상이 많이 변했어도 한국인 의식 속에 잠재하는 유교사상과 단일민족 선호사상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가 쉽지 않아서,아직도 국제결혼은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6년 전,제 아들도 미국 여성과 국제결혼을 했습니다.10여년 동안 미국에서 살다온 저도 아들이 국제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눈 앞이 캄캄했습니다.국제결혼은 절대 안 된다는 부모 뜻에 철석같이 동의를 해 왔던 아들이 어느 날 “어머니,이제까지 불효해 본 적 없었는데….”라며 결혼 말을 꺼내더군요.‘하늘이 내려준 효자’라고 칭송받던 아들이,부모가 받을 충격 같은 건 염두에도 없는 것 같아 “저 녀석 내 아들 맞아?”라고 했습니다. 침묵으로 2년을 보낸 어느 날,나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해 봤습니다.아들이 사랑하는 여성과 헤어져 가슴 아파 운다면,차마 못 할 짓이다 싶었습니다.결혼을 승낙키로 마음을 정하고 아들을 만났더니 “우리 헤어지기로 했어요.제겐 어머니가 더 소중합니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그 말을 듣는 순간 아들을 향한 제 사랑보다,아들이 제게 준 사랑이,훨씬 깊다는 것을 깨닫고 가슴이 미어졌습니다.“결혼 승낙하러 왔다.축하한다.”이 한마디로,그동안 우리집안에 자욱했던 안개가 일시에 걷혔습니다.“감사합니다.둘이서 더 많이 노력해서 평생 효도하겠습니다.”아들과 며느리는 우리 부부 앞에 무릎을 꿇고 울었습니다. 지금 미국 며느리는 집안 식구들 모두가 감탄할 만큼 잘 하고 있습니다.우리 부부가 그곳을 방문할 때면,인삼차에 잣을 띄워 두 손으로 공손히 대접하고,김치찌개,고추장 불고기,시금치나물을 만들어 내놓습니다.국제결혼에 대한 제 인식이 잘못됐었다는 것을,살아가면서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승국씨.미국 여성에게 외아들을 결혼시키고 싶지 않는 부모 마음,당연한 것입니다.문화와 풍습,언어와 생활습관이 전혀 달라서 한국 사람이 갖고 있는 ‘정’과,여자들끼리만 통할 수 있는 ‘공감대’를 외국 며느리와는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저도 했었으니까요.하지만 사람 마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똑같더군요. 승국씨.두 사람은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제 경우와 다를 수 있습니다.부모님께서 결혼 승낙을 하신다해도,결혼 전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승국씨는 영어를,결혼할 아가씨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할 것이며,한국인의 풍습과 예절도 익혀둬야만 문화적 갈등으로 오는 오해를 겪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인들끼리 결혼을 해도 살다보면 이러쿵저러쿵 탈이 많은데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해 온 두 사람의 결혼은,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아둬야 할 것입니다.뜨거운 마음만 앞세우지 말고,앞으로 생길 수도 있을 문제점을 잘 생각해 보고 충분한 대화를 나누길 바랍니다. 서두르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어머니를 설득하되,가족들의 협조를 구하세요.외할머니께서는 찬성하신다니 측면 지원을 받으시고,여동생의 협조도 구해야겠지요.또한 중립을 지키고 계시는 아버지를 두 사람이 밖에서 자주 만나 뵙고,신뢰받을 수 있는 행동을 보여드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을 십분 이용해 보세요.두 사람의 진실된 사랑과 노력의 자세가 보일 때,어머니께서도 생각을 달리 하실 수 있을 겁니다.‘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어머님을 자극하지 말고,변함없는 극진한 자식사랑을 보여드리세요.‘사랑의 여신’은 당신 편이 될 겁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여자가 본 여자] (상)일상에서

    “쯧쯧,여자들이란….” 남성들의 이 말 속에는 비하와 비난이 그득하다.여성들도 말한다.“저 여자,왜 저래?”,“저 여자 정말 (꼴보기)싫어!”.이는 남자들이 “저 남자 싫다.”라고 비난하지 않는 것과 대비된다.왜 여자가 싫을까.남성들이야 자신과 달라 이해할 수 없어서 경원시할 수도 있다고해도,여성이 여성이란 사실을 콕 찍어 비난하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다. 물론 여성들도 여성을 전혀 이해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여자 팔자가 다 그렇지.”라는 여성 비하를 담았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일상에서,직장에서 여성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여성들 사이를 흐르는 거리감의 정체를 상,하로 나눠 해부해 본다. ‘시샘이나 하는 소인’이란 여성에 대한 편견은 유교에 뿌리하고 있는 것같다.칠거지악·씨받이·남아선호 등 여성을 억압하는 갖가지 풍습은 결국 이 땅의 여성들을 무능하게 만들었다.늘 약자는 강자의 논리에 휘둘리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여성의 적은 여성’이란 지극히 남성적인 시각으로 본 편견의 말을 거리낌없이 여성들은 차용하면서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을 보고 건너편 여성을 경멸한다. ●고부 갈등은 삼각 관계인가 여자가 싫은,싫을 수밖에 없는 연결고리는 고부 갈등이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다.’는 시어머니의 ‘심술’.이는 결혼생활을 ‘매운 시집살이’로 바꿔놓는다.20대 여성들이 모이면 주제는 ‘시집 흉’이고,30대는 ‘과외’라든가. 결혼을 하고나면 “나도 친정에서는 귀한 딸이었다.”는 넋두리가 연습이라도 한 양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은 바로 며느리로서 받게 되는 불평등 때문이다.그 불평등은 남성인 남편보다는 여성인 시어머니로부터 시작되게 마련이다. 김성자(68·서울 도봉구 수유6동)씨는 호된 시집살이를 이야기하면 지금도 어젯일인 양 넋두리가 나온다.“가난한 집안의 큰딸이라 7살부터 어머니를 도와 부엌일도 하고,동생도 키워 웬만한 고생엔 이골이 났지.그래도 17살에 시집 가서는 시어머니의 구박 때문에 못 살겠지 뭐야.이혼이나 가출은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고 몇 차례나 아이를 들춰업고 목 맬 생각을 했는지 몰라요.그때마다 아이의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살았지.새벽같이 일어나 일해도 내 입에 들어가는 보리밥 한덩이를 아까워하는 시어머니를 내가 45년이나 모셨어.돌아가시면서는 그래도 ‘미안하다.’고 말씀해주시더만.나는 시집와서 웃음을 아예 잃어 버렸어요.요즘같은 세상이었으면,나…안 살았어.” ‘시어머니 노릇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는 김씨,그러나 그의 며느리 윤자혜(47)씨도 시어머니는 여전히 어렵다.“시할머니가 시어머니에게 유난했던 것은 저도 알아요.그래서 나는 우리 시어머니가 안됐고,잘 해드리고 싶어요.하지만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세요.‘무거운 것,아비에게 들게 하지 마라.’는 등 아들을 남편마냥 섬기시지요.나는 아들을 내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킬 생각이에요.그게 마음대로 될지….” 고부 갈등은 여전히 부부 갈등의 중요한 요소이자,이혼의 중요 변수가 되고 있다.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상담소의 이혼통계 가운데 가장 많은 이혼 사유가 되는 6호 사유(민법 제840조 6호)를 보면,고부갈등은 4.1%정도이지만 여기에 시가와의 갈등(2.6%),생활양식차이(0.9%),혼수시비(0.2%),마마보이(0.1%) 등을 합치면 8%에 이르는 내용들이 시가와 연결돼 있다.여기서도 시어머니로 대표되는 시가와의 갈등관계가 부부갈등의 중요한 원인임을 확인하게 된다.”고 일러줬다.한 남성을 사이에 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가히 ‘삼각 관계’라 할 만하다. ●남자가 되고 싶어 프로이트에 따르면 3∼5세의 여자 아이들은 자신에게는 오빠나 아버지가 갖고 있는 성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남성을 부러워 하는 한편 자신에게 남성 성기를 주지 않은 어머니를 원망한다고 한다.그래서 딸은 아버지에게 애정을 품고 어머니를 경쟁자로 인식하여 반감을 갖는 경향이 생긴다는데,이를 ‘엘렉트라 콤플렉스’라 한다. 정신분석학자 이론의 틀에 우리를 가둘 필요는 없겠다.그러나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겪는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느낀 여성은 자신만은 여성이 처한 부당한 현실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이기심을 갖게 되는 것만은 사실이다.“나는 여자로 살기 싫어.”라는 외침과 “여자가 싫다.”는 말은 어쩌면 동의어인지도 모른다. 폭력 가정에서 자랐던 김순진(가명·42)씨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다.어머니를 늘 구박했던 폭군 아버지를 보면서 자란 김씨.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먼저 떠오른단다.“아버지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엄마가 불쌍하기도 했고….그러나 내 속마음은 아버지보다 엄마가 더 싫었어요.고교시절까지 사회적으로 문제없는 아버지가 유독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만은 이렇게 이상하게 된 것은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어머니 탓이란 생각을 했고,어머니의 태도가 못마땅했어요.지나고 보니 폭력에 의해 어머니는 판단 능력을 잃었던 것인데….그래서 난 내가 여자인 것도 싫었고,아버지를 닮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요.”그는 결혼생활이 10년이 넘으면서,이제야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자신은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해도 남편의 가부장적인 태도 때문에 상처받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남편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던 지난 시대의 내 어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사셨을지 조금은 알겠어요.” 사춘기의 딸들이 어머니의 잘못을 조목조목 짚어낼 때면,어머니들은 말했다.“너도 살아봐라.”.어머니의 말씀처럼 ‘(결혼해서)살아본’ 딸들은 이제사 여성의 지난했던 삶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이해란 ‘여자의,어머니의 희생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했다.’는 것 일뿐,여성에 대한 자부심이나 애정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더욱이 성숙해졌다고 지난 시대의 여성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요즘의 딸들은 어머니와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경제력을 갖지 못한 채 살았던 어머니의 딸들은 “절대로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반면 일하는 어머니 때문에 사랑을 듬뿍 받지 못하고 자랐다고 생각하는 딸들은 “어머니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다.그래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선택하기보다 ‘어머니와 다른’ 삶을 택한다.반항하듯. 이혜정(4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씨는 결혼 후 병치레가 심한 아이를 위해 교사생활을 접었다.“아플 때,엄마가 내 곁에 없었던 외로움을 알기 때문에 아무런 미련없이 직장을 떠났어요.엄마로서의 역할이 가장 크다는 생각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겁니다.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제 행동은 어머니에 대한 반발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열심히 사신 내 어머니에 대해 왜 나는 긍지를 가질 수 없었을까,이제 돌이켜 보면 내 겉은 여자이지만 속은 남자인 채 살아온 것 같아요.”이씨는 중2 딸이 “나는 직장을 가진 멋진 엄마가 더 좋은데 1등만 했다는 엄마가 왜 직장도 없느냐?”고 물으며,자신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한단다.“내 삶이 ‘전면 부인’해야 할 만큼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딸에게 보여주는 것,그것이 딸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동서,따지고 보면 남인데… 결혼한 여성들이 겪는 갈등 중 하나는 동서와의 갈등이다.어떤 의미에서는 시누이와 올케의 관계보다 더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부유한 집 출신으로 결혼할 때 시어머니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동서가 시집온 후 시어머니로부터 적잖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김진숙(38·서울 서초구 서초동)씨,그는 “‘동서’가 가족이냐.”고 물었다. “솔직하게 동서는 남이지 않아요? 전통 사회에서야 시집가면 친정 식구와는 모두 떨어졌고,한 울타리에서 설움받는 존재였던 동서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것일 뿐,현대 사회에서 동서지간을 가족으로 묶는 것은 우스운 것이죠.그러니 이 정도 떨어져서 서로 좋게 지내면 되는 것이지,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곤란한 것 같아요.” 4남매의 장남과 결혼해 동생들을 모두 결혼시킨 정유선(51·경기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씨는 아직도 큰아들네에서 얻어서 동생들에게 주려고 애쓰는 시어머니의 행동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고 했다.“남편이 어렵게 자랐지만,사회에 나와 빨리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그리 어려움 없이 우리는 집사고,재산불리고 살았어요.그래서 동생들에게도 잘 하려는 남편 마음에 맞춰 왔어요.하지만 이젠 동생들도 40대에 들어서면서 자리잡았는데도 여전히 시어머니는 내게 ‘뜯어서’ 동생들에게 갖다주는 게 낙이죠.그러면서 늘 나더러 욕심 많다고 흉보고….나 이렇게 말하면 나쁘지요? 하지만 제 속마음이에요.” 부모에게는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는 ‘자식’이지만,엄연히 며느리에게는 ‘남’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여성들은 알고 있다.다만 입에 올리면 나빠지기 때문에 쉽게 말하지 못할 뿐.이 역시 철저하게 남성 중심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물론 동서와 친자매 이상 가깝게 지낸다는 여성들도 있긴 했지만,이들도 ‘새로 만난 친구’정도라는 개념일 뿐,그것을 가부장적인 시각으로 규정하는 것에는 부정의 뜻을 밝혔다. ●남성의 눈으로 보면 “여자는 참 이상해” ‘공자가 죽은’ 이 시대에 여전히 우리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고스란히 신봉하고 있다.남성들의 시각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비판하지만,정작 여성들의 시각 역시 남성의 시각과 다르지 않다.철저하게 남성의 눈으로 여성을 바라본다. 이에 대해 여성학자 박혜란씨는 명쾌한 답을 한다.“내가 여성학을 배운 39살 이전에는 내 주위에는 온통 ‘이상한 여자’투성이었다.그러나 내가 여성을 알고,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여성들은 온통 당당하고,겸손하고,자신만만하면서도 결코 오만하지 않은 여성들이었다.그 여성들을 알게 된 것이 행복하다.여성들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남성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성을 보기 때문에 그런 편견이 생기는 것이다.” 허남주기자 hhj@˝
  • [월드이슈-흔들리는 전통결혼문화] 同性결혼·동거커플 갈수록 늘어

    결혼의 의미와 형식은 각 민족과 국가의 역사와 함께 변화해왔지만,최근 들어서는 동성애가 지구촌 결혼제도의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또 ‘죽은 자와의 결혼’ 등 극단적인 형태의 결혼도 일부 국가에서는 제도화된 풍습이 되어가고 있다. ●동성애가 헌법개정 이슈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헌법 개정을 주창하면서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이 문제가 정치·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보수와 진보층간에 찬반의견이 엇갈리지만, ▲동성간의 결혼은 반대하되 ▲‘시민결합(civil union)’ 등의 형태로 이들의 법적 권익은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는 분위기다. 동성애자 커플말고도 미국의 결혼문화가 변화한다는 사실은 통계적으로 나타난다.USA투데이가 26일 인구조사국 통계를 인용,보도한 데 따르면 미국 성인 남녀 가운데 59%만이 결혼을 했고 24%는 한번도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10%는 이혼,그리고 나머지 7%는 미망인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같은 결혼 통계는 지난 1970년 결혼비율이 72%였던 것에 비하면 13% 정도 줄어든 것이다.이 때문에 부시 대통령은 15억 달러를 들여 결혼을 장려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결혼보다는 실용적인 동거” 결혼을 장려하는 미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동거를 인정하고,이를 법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일반화되어 있다. 또 유럽국가들이 결혼하지 않은 커플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동성애자 부부에게도 어느 정도 법적 혜택을 부여하고자 하는 ‘배려’에서 출발했거나,그같은 부수적 목적을 갖고 있다. 동성애 커플의 결혼을 허용한 첫번째 나라는 실용주의 국가인 네덜란드로 2001년 법을 바꿔 4쌍의 게이 커플에게 결혼을 허용했다.같은해 독일이, 2년뒤 벨기에도 동성애 커플의 정식 결혼을 허용했다.스웨덴은 지난해 10월 처음 동성애 커플의 자녀 입양을 인정했다. 영국 정부도 동성애자 커플에게 상속,연금 등의 권리를 부여하는 ‘시민결합’의 입법을 추진중이다.독일에서도 ‘비결혼 커플’에 대한 법률에 따라 동성애자 부부도 한쪽의 성(姓)을 따를 수 있고,주택 마련 때 차별받지 않는 등의 권리를 갖고 있다.독일에서는 6000명이 비결혼 커플에 등록돼있다. 프랑스에서는 꼭 동성애자가 아니더라도 동거문화가 널리 퍼져 있으며 정부도 시민결합협약(PACS·Pacte Civil de Solidarite)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을 보호한다.올해 현재 13만 3890명이 협약에 가입돼 있다. 8년째 PACS를 유지하고 있는 나탈리 라미레즈(28·여·기자)와 디야리 안타르(31·남·교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결혼 대신 동거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나탈리의 프랑스인 부모와 디야리의 알제리인 부모가 만날 기회가 없었고 ▲두사람의 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확신이 없으며 ▲자녀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협약 가입에 따라 교사인 디야리는 정기순환 근무에서 제외돼 나탈리가 일하는 마르세유 지역에서 계속 정착할 수 있었다.또 3년이 지나면서 두사람은 재산권을 공동으로 갖게 됐으며,결혼한 부부와 마찬가지로 세금 혜택도 받았다.만일 두사람이 어떤 이유로든 관계를 청산하고 싶다면 3개월전에 관청에 협약해지를 통보만 하면 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것이 사회적 추세다.다만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가정의 파트너’란 프로그램에 등록한다.노르웨이에만 이런 커플이 1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노르웨이 의회는 상속권 부여 등 이들의 권익을 크게 신장해주기 위한 법안을 검토중이다. 최근 들어서는 가족중심의 사회인 이탈리아에서도 동거를 인정하는 쪽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의회에 사상처음으로 결혼하지 않은 커플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법안이 제안됐다.이탈리아는 그동안 동성애자의 권리를 인정하는데는 질색을 해왔다.그러나 결혼하지 않은 커플을 인정하는 법안이 만들어지면 이탈리아에서도 동성애자 부부를 법적으로 인정할 여지가 생긴다. 유럽의 영향으로 캐나다 정부는 동성애자의 결혼을 인정하는 정책을 추진키로 하고 이를 위한 법률적 기반을 갖춰 나가기로 결정했다.이에 앞서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한 법원이 동성애 남성들의 결혼을 합법화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보수적인 남미와 아시아의 변화 가톨릭의 보수적 결혼관이 절대우위인 남미에서도 동성애자에 대한 법적 지위를 인정해주자는 입법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칠레 의원들은 지난해 6월 게이 및 레즈비언 등 동성애자 커플에게도 법적 지위를 부여해 연금과 재산상속 등의 사회제도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이에 앞서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의회는 2002년 12월 남미에서 처음으로 동성애자에 대해 유사한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동성애자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최근 들어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선언하는 ‘커밍아웃’은 있지만 아직 이들의 결합을 결혼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조성돼 있지 않다. ●유엔도 동성애 파트너 인정 나라별로 동성애 커플의 결혼과 관련한 갖가지 움직임이 나타나자 유엔은 지난달 “직원들이 소속한 국가의 법률에 따라 해당자의 동성 파트너를 가족으로 인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이에 따라 동성간 결혼을 인정하는 국가 출신 유엔 직원의 동성 파트너는 수당,의료보험 등 직원 가족으로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도운기자 dawn@˝
  • 인도음식 제대로 즐기기

    직장이나 가정에서 줄곧 먹어온 그렇고 그런 먹거리에 적잖이 물려 “뭐 좀 색다른 아이템 없나.”싶을 때 찾아가 정중하고 깔끔하게,그러면서도 가격 부담없이 인도의 향기에 취할 수 있는 곳.서울 명동성당 앞 YWCA빌딩 1층의 정통 인도요리 전문점 타지(Taj)가 그런 곳이다. 산이 좋아 인도,네팔 등을 벗삼아 지내온 산악인 오송호(52)씨가 지난 2000년 작정하고 차렸다.인도 기행문 등을 읽고 인도 하면 ‘미개’나 ‘빈곤’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우주선을 쏘아 올리면서도 마이크가 고장나 총리가 연설을 포기해야 하는 인도’의 깊이를 느끼며 편견을 바로 잡으시라. 타지는 160평이 넘는 홀에 단체모임이 가능한 룸 등 150석의 좌석을 갖추고 있으며,인도풍의 널찍한 실내 분위기는 웬만한 호텔 레스토랑 못지 않다.그뿐이 아니다.이곳은 주방장을 비롯,조리를 맡은 6명이 모두 인도인이며,모든 원재료도 주인이 직접 인도에서 조달,인도보다 더 인도스러운 음식을 제공한다. 퓨전을 빙자한 무국적 음식 대신 오리지널 인도식을 고집하는 이곳에서는 9000원이면 달군 화덕에서 익혀내는 인도빵 ‘난’과 새우,양파,시금치를 갈아 넣어 독특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2종의 카레소스를 점심메뉴로 맛볼 수 있다.여기에 직접 만든 인도식 요구르트와 부드러운 토마토 수프를 곁들이면 ‘제법 괜찮은 오찬’으로 손색이 없다. 점심과 달리 저녁에 제공되는 세트메뉴에는 노린내가 전혀 없고 부드러운 양고기 요리가 포함돼 있다.인도 현지의 풍습에 따라 점심,저녁의 모든 식사 메뉴는 채식주의자용과 비채식주의자용으로 구분돼 있다.언제 가도 번잡스러움을 느끼지 않으며,눈치보지 않고 오랫동안 담소를 나눌 수 있다는 점도 매력.소설가 박완서씨와 이경자씨,가야금의 대가 황병기씨와 탤런트 감우성과 가수패닉, 인접한 명동성당 관계자들이 즐겨 찾는다. 심재억기자 jeshim@ ˝
  • [儒林속 한자이야기] (7)

    유림에 유언비어(流言蜚語)가 나온다.流(흐를 류)는 두 세줄기의 물(水)과 거꾸로 놓인 아이(子)로 구성되었으며,‘흐르다’라는 뜻은 요사(夭死:일찍 죽음)한 어린 아이를 물에 흘려 버리던 고대(古代) 황하강 유역의 풍습에서 나왔다. 蜚(떡풍뎅이 비)語는 ‘떡풍뎅이와 같이 날아다니는 말’이라는 주장과 ‘蜚는 飛(날 비)자를 빌려 쓴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나,공통점은 ‘날아다니는 말’이라는 뜻이다.따라서 유언비어는 ‘흐르고 날아다니는 근거없는 소문’인데,유언비어(流言飛語)로 잘못 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날아다니는 작은 곤충류(蚊 모기 문,蜂 벌 봉),기어다니는 지렁이와 뱀 종류(蚓 지렁이 인, 살무사 훼),갑각류(蛤 조개 합,蝦 새우 하,蟹 게 해) 등에는 대부분 자가 들어가는데,이 경우 앞의 한자들과 같이 자를 제외한 부분이 그 한자의 음이 된다. 말(소문)이란 무족지언 비우천리(無足之言 飛于千里:발없는 말이 천리를 날아간다),또는 언비천리(言飛千里:말이 천리를 날아간다)라고 하듯이 빠르게 전파된다.그 영향은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일화처럼 온 사회와 나라를 흔드는 경우도 있다. 송(宋)나라에 정(丁)씨 집안이 있었는데,집에 우물이 없어 하인(下人)들이 먼 곳까지 가서 물을 길어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그래서 집 근처에 우물을 파서 하인들을 편하게 해 주었는데,그 우물을 파는 과정에서 시체 한 구가 나왔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고,이것을 왕(王)도 듣게 되었다.그래서 왕명으로 진상조사를 하였는데 결국 헛소문으로 밝혀졌다. 오늘날과 같이 전달 매체가 발달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데 ‘삼인성시호(三人成市虎),즉 시장에 호랑이가 없음이 분명한데도 세사람이 호랑이를 보았다고 하면 결국 사람들은 호랑이가 있다고 믿게 된다.’는 말처럼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기도 한다. 논어(論語)에 도청도설(道聽塗說,道 길 도,聽 들을 청,塗 길 도,說 말씀 설)이라는 말이 나온다.이는 ‘길거리에서 들은 좋은 말(道聽)을 마음에 간직하여 자기 수양의 양식으로 삼지 않고 길거리에서 바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塗說) 것은 스스로 덕을 버리는 것과 같다.그러니 좋은 말은 마음에 간직하고 자기 것으로 해야 덕을 쌓을 수 있다.’라고 한 공자의 말에서 유래되었는데,‘길거리에 떠돌아 다니는 뜬 소문’을 의미하기도 한다. 소문에 대해서는 마이동풍(馬耳東風)격으로 무감각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마이동풍이란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이백(李白)이 왕십이(王十二)라는 친구가 불우한 심정을 호소한 시에 대해 ‘지금 세상은 투계(鬪鷄:당나라 시대에 왕후 귀족들이 즐겼다는 닭싸움)에 뛰어난 자가 천자(天子)의 사랑을 받고,오랑캐의 침입을 막아 공을 세운 자가 대우를 받는데,그대나 나와 같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흉내 낼 수도 없으니,북쪽 창가에 기대어 앉아 시(詩)나 짓네.그러나 그 작품이 아무리 걸작이라도 지금 세상에서는 한 잔의 물 값도 되지 않네.그뿐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은 이를 듣고 모두 머리를 흔드니 동풍(東風)이 말의 귀(馬耳)를 스치는 것과 같네.’라고 답한 시에서 유래되었다. 이로써 마이동풍은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흘려 보내는 것 또는 아무리 가르쳐 줘도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아무리 가르쳐 줘도 알아 듣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 속담에서는 우이독경(牛耳讀經),즉 ‘소귀에 경 읽기’라고 한다. 박교선 교육부 연구사˝
  • [종하랑 선영이의 배낭메고 60개국] ③캄보디아 전통결혼식

    캄보디아 씨엠립 외곽 마을에서 열리는 결혼식을 운좋게 구경하게 됐다.이곳 결혼식은 특이하게도 해가 뜨기 전 이른 아침에 시작돼 다음날까지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예식장은 따로 없고,마을회관이나 그에 준하는 장소가 하객들 집합장소가 된다.신랑측 친구,가족,친지,동네 주민들로 구성된 하객들은 신부집으로 가져갈 작은 선물들을 준비하고 기다린다. 신랑과 들러리가 도착하면 기념사진을 찍고 다같이 긴 행렬로 줄지어 신부의 집으로 향한다.전통의상을 입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앞장서고 그 뒤로 신랑과 들러리,그리고 하객들이 뒤따르는데 이들은 모두 성의껏 마련한 선물들을 쟁반에 받쳐 들고간다. 그런데 선물들이 뜻밖이다.과일이나 양파 같은 야채부터,연유 통조림,털 뽑아 잡은 통닭 한마리,꽃,돼지머리 등으로 소박하면서도 우리가 보기에는 귀여운 것들이다.하객행렬이 신부집까지 이어지면 신부가족이 하객들을 맞이하고,선물을 전달하면 그 날의 행사는 끝난다.신랑,신부는 신부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날 12시쯤 결혼행렬에 참석했던 하객들이 다시 신부집으로 모이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잔치가 시작된다.함께 먹고 노래하고 춤추고 저녁 늦게까지 놀다가 잔치가 끝나면 돈을 봉투에 담아 잔치비용을 나누어 부담한다. 결혼식에 참석한 한 젊은 여성은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며 한국의 결혼풍습에 대해 궁금해했다.예식장에서 한두시간만에 치른다고 하니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그래도 결혼식이 끝난 후 대부분 신혼여행을 간다는 말에는 무척 부러워한다.캄보디아에서는 신혼여행을 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간혹 부자들은 결혼식 잔치가 끝나고 프놈펜(캄보디아의 수도)으로 며칠간 여행을 가기도 하는데 서민들한테는 꿈같은 일이라고.우리가 해외로 갔던 신혼여행이 이곳 사람들에겐 굉장히 큰 일이구나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캄보디아에서는 결혼할 때 혼수나 집을 마련하는 대신 신랑이 신부의 부모에게 지참금을 주고 신부네 집에서 살게 된다.가정형편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미화 2000달러 정도의 지참금을 결혼자금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부잣집 딸과 결혼을 할 경우는 3000달러 정도를 준비해야 한다.캄보디아 1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에 못 미치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남자는 결혼을 하기위해 허리가 휘어지도록 돈을 벌지만,일단 남녀가 결혼을 하면 그때부터는 가정의 생계를 많은 부분 여자들이 책임진다고 한다.이 부분에서 박군이 몹시 부러워한다.한국 남자들이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고달프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고 또 조금은 고소하기도 하다.지금은 많이 바뀌긴 했지만 기존 한국 남자들의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한 결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캄보디아에는 아직 많은 부분 전근대적인 생활 모습이 남아있지만 결혼만큼은 중매결혼이나 정략결혼이 거의 없고 대부분 연애결혼을 한다.남녀가 데이트를 하고 서로 마음에 들면 여자를 남자네 집에 데려가 부모에게 인사시키고,남자쪽 부모가 결혼하려는 여자의 부모를 찾아가 청혼을 하게 된다.여자쪽 부모가 결혼승낙을 하면 양가 부모가 좋은 날로 결혼 날짜를 잡고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캄보디아건 한국이건 결혼은 모든 사람의 인생에 중요한 선택이고 순간인 것 같다.야채나 통조림을 정성껏 예쁜 접시에 담아 둘의 행복을 축복해주고,밤새 축제를 열며 다함께 즐거워하는 이곳 사람들의 결혼식은 내가 지금껏 본 결혼식중 가장 예쁜 것으로 기억될 것 같다. ●신세대운전사 추온 레잇 추온 레잇(23)은 ‘툭툭 택시’를 모는 운전기사다.툭툭은 일반 자가용 택시와 달리 오토바이에 마차를 연결해 손님을 태우는 캄보디아의 대표적 운송수단.흙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면서도 마스크는 절대 안하는,한창 패션에 민감한 캄보디아 신세대 젊은이 레잇을 만났다. 캄보디아의 결혼 적령기는. -가정형편에 따라 모두 달라요.돈이 없으면 결혼도 자연히 늦어지죠.저도 결혼 지참금 마련을 위해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어요.따로 저축은 안하고 버는 대로 엄마에게 갖다주죠.살림에 조금씩 보태고,나머지는 지참금을 위해 모으세요. 일과후나 휴일에는 주로 어떤일을 하는지. -친구들과 얘기하는 시간이 많아요.함께 맥주를 마실 때도 있고 그냥 휴대전화로 얘기할 때도 있고요.전 휴대전화로 친구들과 얘기하는 걸 아주 좋아해요.그리고 가끔은 시내에 있는 나이트클럽에 가요.춤은 썩 좋아하지 않지만 사람들 구경하는 게 재미있거든요.씨엠립에는 극장도 하나 있는데 전 잘 안 가요.가끔 코미디 영화를 보러 가긴 하지만 주로 울고 짜는 캄보디아 영화들을 상영하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아요. 캄보디아에서 운전하는 게 쉬워 보이지 않던데. -사실 좀 위험하죠.자가용은 90% 이상이 일본 중고차라서 핸들이 오른쪽에 있고,또 버스는 90% 이상이 한국에서 온 차들이라 핸들이 왼쪽에 있어요.앞 차를 추월할 때 조금 불편하긴 해도 우리는 그게 익숙한데 외국인들은 다들 이상한가봐요.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나요. -툭툭을 몰기 전에는 집안 농사를 도왔는데 지금 하는 일이 돈도 더 많이 벌리고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어 재미있어요.빨리 돈을 벌어서 자가용을 사는 것이 제 꿈이자 모든 툭툭 운전사들의 희망이지요.˝
  • 차례모시기 ‘종교 갈등’ 조상님들 좋아 할까요?

    명절은 분명 오랜만에 가족이 만나는 기쁜 날이지만,오히려 쌓여 있던 가족들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날이기도 하다.부모·형제간의 해묵은 갈등 때문에 명절이 괴롭다는 가족이 많다.“이제부터 나는 절 안한다.”고 선언하는 동생 부부가 있는가 하면,복잡한 명절 문화가 싫다며 “왜 차례를 지내야 하느냐?”“부모님이야 마음으로 추모하면 되지.음식을 차리는 게 무슨 의미냐?”며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형제들도 있다.“명절이나 제삿날에라도 만나야 형제들간에 우애가 생기지.”라고 말씀하셨던 돌아가신 부모님의 예측은 이미 어긋난 것 같다.이를 ‘명절증후군’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2004년 설날,차례상을 앞에 두고 차례와 가족의 현주소를 알아보자. ●명절은 괴로워 결혼 18년된 김성덕(45·회사원)씨는 명절이 괴롭다.“장남이라 의무는 많은데 회사원인 제 봉급으로는 사람노릇이 힘들어요.더구나 자수성가한 두살 아래 동생이 부모님께 척척 큰돈을 내놓을 때면 더 괴롭죠.그러니 저나 아내나 명절이면 서로 예민해져서 싸우게 됩니다.”특히 지난 추석,김씨는 동생으로부터 “큰형이 부모님을 서울로 모셔오는 게 도리가 아니겠냐.”는 채근을 받은 터라 설날에 동생을 만날 일이 솔직하게 말해서 부담스럽다. 게다가 제사 준비에 바쁜 아내와 달리 동생 부부들은 여전히 ‘손님’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내에게도 미안하다.“제가 장손인데 제사를 거부하겠어요? 제사는 살아있는 후손이 조상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고,아름다운 풍습이고….그러나 도시 생활에서 이는 너무 번거로워요.부모님 돌아가시면 뭔가 변화가 있어야할 것같아요.” 이정희(가명·28)씨는 ‘음식을 차리는 제사 방식을 바꾸자.’고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가 이혼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저와 시어머니가 함께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어요.시아버지 돌아가신 지 5년 됐는데 추도 예배를 드리자는 것에 저희 시어머니는 합의하셨지요.그런데 남편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제사 안 지내려면 이혼하자는 겁니다.” 형제간 우의가 두텁다는 김철휘(54·서울 마포구 서교동)씨는 차례나 제사 때마다 형제가 멀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제동생 내외는 제사에 절을 올리지 않고 저희가 절할 때,서 있습니다.종교의 자유는 인정합니다.제수씨도 전날부터 와서 열심히 부침개를 부치고 차례 준비를 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습니다.하지만 절을 할 때면 두 사람이 서있다는 사실이 늘 부담스럽긴 합니다.때로는 형제간에 큰 벽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몸이 아픈 부인 때문에 3년 전부터 절에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는 김석구(53·경기 성남시 분당구)씨도 괴롭긴 마찬가지.“가족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요.연세드신 숙부님이 언짢아하시는 것이야 이해되지만,동생들조차 ‘형은 여자에게 잡혀산다.’고들 말하니 섭섭합니다.그렇게 제사가 중요하다면 동생이 제사 못 지낼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왜 제사 문제만은 아직도 봉건적인가요?” ●제사도 ‘우리 집 스타일’로 그래서 형제가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는 가정도 늘고 있고,제사 음식을 각자 자신의 집에서 준비해오는 등 갖가지 지혜로 현대식으로 형제간의 우애도 다지는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도 늘고있다.3형제 중 막내인 정진호(43·서울 도봉구 수유4동)씨는 이번 설날엔 자신의 집에서 차례를 모실 차례라 했다.“일단 부담스럽지 않고,오랜만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저희 집에 오신다는 생각을 하면 기쁘기도 하고,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종교 문제에 관한 한 말하기 곤란해 묵혀 두고,문제를 키우는 가족들은 명절이 괴롭다.그러나 서로 조금씩만 이해하고 양보한다면 그리 큰 문제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진효순(62·부산 해운대구 우1동)씨는 며느리를 위한 음식을 따로 준비하는 시어머니다.“나는 불교 믿고,며느리는 교회다니는데 서로 종교가 다르면 어때요? 다 좋은 마음 공부인데.난 며느리가 제사준비를 열심히 해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요.”며느리 정희수(32·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씨는 그런 시어머니가 고맙단다.“흔히 종교적인 갈등을 이야기하잖아요.그런데 교회 다니는 저를 위해 시어머니께서는 제사상에 올리지 않은 음식을 따로 준비해두세요.서로 이해하기 나름아니겠어요?” 곽현숙(54·경기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씨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동서가 절은하지 않지만,제사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말했다.“사람이란 생각이 다 다르게 마련인데,조상 숭배 방법이 다르다고 사이가 나빠지면 조상님인들 좋아할까요? 전 제사상에 올렸던 음식을 싸가지고 가는 동서가 예쁘기만 해요.그것이면 됐잖아요?” ●“나 죽으면 제사 지내지마” 제사의 변화를 가늠케하는 것은 정작 열심히 제사를 지내는 사람일수록 “나 죽으면 제삿밥 안 얻어먹겠다.”고 공언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권영진(56·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씨는 전통을 철저하게 지키며 시아버지의 제사와 차례는 옛날식으로 켜켜이 제수를 쌓을 정도다.하지만 그는 며느리에게 제사만은 전해주지 않을 예정이다.“나는 시아버지께 사랑도 많이 받았어요.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지만,제사를 올릴 때마다 남편이 찬찬하게 읽어내리는 ‘축문’을 들으면 시아버지가 생각나서 콧날이 시큰해집니다.그러나 이젠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제사는 제 대(代)에서 그만 끝내려고 해요.시어머니가 절에 다니시니 절에서 제사를 지내도 좋을 테고….제주변의 부인들 중에는 우리 대까지만 제사를 지낼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허남주기자 hhj@
  • ‘정월대보름’ 제주서 불놀이 어때요

    2004 정월대보름 들불축제가 ‘지구촌 가족의 무사안녕과 풍년기원,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주제로 오는 30∼31일 북제주군 서부관광도로변 새별오름에서 펼쳐진다. 제주에는 예로부터 가축방목을 위해 해묵은 풀과 해충을 없앨 목적으로 마을별로 매년 겨울들판에 불을 놓았던 ‘들불놓기’란 풍습이 전해내려왔다.들불축제는 이런 옛 목축문화와 제주 고유의 전통민속을 접목시킨 것이다.올해로 8회째를 맞는 축제에서는 10만여평의 오름(기생화산) 하나를 다 태운다. 축제 첫날엔 오전 10시부터 풍물놀이,전통민요·민속공연,부싯돌 불씨 만들기,개막선언,성화탑 점화,풍년기원제 등이 다양하게 진행된다.둘째날에는 합동전통혼례,듬돌들기,윷놀이,밭갈이 농경문화 시연,오름 오르기,줄다리기,불깡통 돌리기,달집점화,오름 불놓기 등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북제주군 자매도시인 중국 라이저우(來州)시 중화무교학교의 전통무술극과 미국 샌타로자시 소노마카운티 댄스센터 공연단의 치어리더 댄스,일본 센다이(仙臺)시 요사코이 민속무용단의 전통무용도 두 차례씩 선보인다. 외국인들이 참여하는 민속노래자랑과 자매도시 참가단 전원이 참여하는 횃불 및 달집점화 등도 있다. 올해는 다른 해와 달리 관광객 참여행사가 많은 게 특징이다.부대행사로는 청소년 댄스경연,한·중 서예·그림전시회,사진콘테스트,구워먹기 마당,어린이 그림그리기대회 등이 마련된다. 향토음식점과 민속시장 등도 열려 메밀국수와 몸국 등 제주의 토속음식을 제공한다. 북제주군은 축제에 참가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는 28일까지 ‘사이버 소원기원띠 태우기’ 신청을 받아 31일 오후 6시50분부터 소각장면을 군 홈페이지를 통해 동영상으로 서비스 할 계획이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산자와 죽은자의 만남 祭 禮

    국립문화재연구소 지음 전통 유교사회에서 가족은 조상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집안 대소사가 있으면 후손들은 먼저 사당에 모신 조상에게 고했다.조상은 후손과 함께 살아갈 뿐 아니라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여겨졌다.조상의 혼을 위로하는 제례의식도 그래서 생겨났다.제례를 통해 산 자와 죽은 자는 하나가 됐고,조상을 매개로 가족과 문중은 결속을 다졌다.그러나 가족의 해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오늘날 전통 제례는 그 의미가 바랜 채 얼마간은 ‘부담스러운’ 의무로 변질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전통문화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추진해온 ‘전통 기ㆍ예능 조사연구 프로젝트’의 하나로 선보인 ‘종가의 제례와 음식’(전3권,김영사 펴냄)은 한국의 전통 봉제사(奉祭祀) 풍습을 통해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의 참모습을 일깨워준다.조선시대 가문 중에서 그 조상이 공자를 모신 문묘에 배향되거나 제왕가의 사당인 종묘에 공신으로 오른 종가를 대상으로 삼았다.책에는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지내는 전국 30여개 종가 가운데 다섯곳이 소개된다.의성김씨 학봉 김성일 종가(1권),서흥김씨 한훤당 김굉필 종가,반남박씨 서계 박세당 종가(2권),월성손씨 양민공 손소 종가ㆍ청주한씨 서평부원군 한준겸 종가(3권)가 그것이다.불천위란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에 대해 신주를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모신 채 제사를 지내도록 한 신위를 일컫는 말.신주를 매안(埋安)하지 않고 계속 봉사한다고 해 부조묘(不廟)라고도 불린다. 요즘은 일반 가정에서 사당이 사라져버려 사당 참배 제사나 속절(俗節) 제사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설날과 추석차례 정도만 민족의 가장 큰 명절 차례로 남아 있다.그렇지만 유교문화의 마지막 보루인 종가,그 중에서도 몇몇 명문 종가에서는 나름의 엄격한 제사 풍습을 지켜오고 있다.‘제사는 가가례(家家禮)’라는 말이 있듯이 제례 풍습은 각양각색이다.집집마다 제물의 내용이나 진설 방법이 다르다.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학봉 김성일은 서애 유성룡,한강 정구와 함께 퇴계 문하의 세 인물로 꼽히는 성리학자다.안동의 학봉 종가는 북어·고등어·방어·상어·조기·쇠고기·닭 등을 전혀 조리하지 않은 날것으로 올린다.‘예기’의 법도에 따른 것이다.세배도 신년 세배보다 섣달 그믐날 밤에 하는 묵은세배,즉 묵세배를 진짜 세배로 친다.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한훤당 김굉필 종가는 이와 또 다르다.성균관 대성전에 조선시대 인물로서 첫 자리에 배향된 ‘유학의 조종(祖宗)’이 바로 한훤당이다.대구 달성군에 있는 한훤당 종가에서는 모든 음식을 익혀서 쓴다.이곳에서는 10여년 전만 해도 붕어구이를 올렸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나오는 토산물인 붕어를 이용한 붕어구이는 제사음식으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제물이 됐다. 한훤당 종가에서는 제사 절차를 문서로 적은 홀기(笏記)없이 제례를 올리는 점이 눈에 띈다.전문가들은 이런 제례 방식은 규범보다는 관행을 앞세우는 가야문화권의 영향이라고 말한다.명문 종가에서는 보통 ‘주자가례’를 비롯한 예서들을 토대로 홀기를 만들고,창홀을 하면서 의례를 진행한다. 목민관의 모범을 보여준 조선초 문신 양민공 손소 종가의 제사풍습은 어떨까.경주 양동마을 손소 종가의 제사음식은 경주라는 문화적·지역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다른 지역과 달리 대나무꼬치를 많이 사용해 음식을 만드는데,이는 경주가 대나무 산지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같은 경상북도이면서도 안동지역은 고등어를 제사음식으로 사용하는 데 반해 경주 지역에서는 고등어를 제상에 올리지 않는다.경주지역은 해산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흔한 생선에 대해선 배타적이라는 것이다.갈치·삼치·꽁치·멸치 등 ‘치’자가 붙은 생선에 대한 금기는 손소 종가 내지 양동마을의 독특한 풍습이다. 종가의 전통은 종손과 종부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그러나 대부분의 종부들은 70∼80대 고령에 접어들어 전통 제례와 음식의 맥이 끊어져가고 있는 실정이다.2년간에 걸친 문헌연구와 현장조사 끝에 내놓은 이 시리즈는 우리의 소중한 전통 제례의식을 뒤늦게나마 복원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270여 점의 원색도판이 ‘종가문화’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준다.각권 1만9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주말매거진 We/세상에 이런 일이-해외

    마이클 잭슨의 ‘진실게임' 지난달 아동 성추행 혐의로 정식 기소돼 미국 연예계에서 작년 한해 가장 스타일을 구긴 스타로 꼽힌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의 시련이 올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그가 미 캘리포니아주 경찰과 ‘2중 진실게임’을 펼치고 있기 때문. 그는 지난 연말 CBS방송의 ‘60분’에 나와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한편 자신을 체포했던 경찰의 가혹행위를 비난하고 나선 바 있다. 잭슨은 인터뷰에서 “어린이와 자는 게 잘못인가.”라고 반문한 뒤 “설령 잤다고 해도 나는 어린이에게 성적인 짓을 하지 않는다.”며 “어린이를 해치느니 차라리 내 손목을 자르겠다.”고 강하게 항변했다.이어 지난달 체포 당시 수갑이 채워질 때 받은 어깨 부상으로 “줄곧 고통을 겪고 있다.”며 샌타바버라 카운티 경찰국의 잔혹행위를 비난했다.그는 또 “전체 입건 과정이 나의 자존심을 짓밟으려는 의도였다.”고 말했다. 이에 주 경찰국은 잭슨은 예의와 원칙에 따라 다뤄졌다며 “그의 변호사와 경호원이 주경찰국의 대우에 감사를 표시할 정도였다.”고 반박했다. 잭슨은 10년 전부터 꾸준히 미성년자 성추행에 대한 의혹을 받아왔으나 재력과 명성을 이용해 번번이 위기를 넘겨왔다.따라서 잭슨이 사건의 본질을 흐리기 위해 ‘꼼수’를 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잭슨은 이달 16일 법정에 출두해 재판부로부터 신문을 받는다. 박상숙기자 alex@ 몸길이 14.85m 무게 447㎏ ‘덩치' |자카르타 연합|인도네시아 주민이 몸길이가 14.85m,무게 447㎏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뱀’(비단구렁이)을 잡았다고 인도네시아 일간지 ‘리퍼블리카’가 최근 보도했다. 이것이 사실로 확인되면 지금까지 잡힌 뱀 가운데 사상최대로 기록된다.‘리퍼블리카’는 이날 상자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뱀 사진 2장을 싣고 현지 주민들의 말을 빌려 세계에서 가장 큰 뱀이 잡혔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진에는 이 뱀의 크기를 알 수 있도록 줄자 등 비교가 되는 물건을 곁에 놓지 않아 주민의 주장이 사실임을 단정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 신문은 자바섬의 쿠루그세우 지역 동물원으로 옮겨진 이 뱀을 보기 위해 수백명의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현재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가장 긴 뱀은 9.75m이며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뱀은 미국 일리노이주 거니에서 잡힌 미얀마 비단구렁이로 182.76㎏이다.리퍼블리카는 이 뱀이 한 달에 3∼4마리의 개를 먹는다고 전했다.동남아 습지와 정글에 서식하는 비단구렁이는 가장 큰 종(種)의 뱀으로 양과 같은 큰 동물도 한번에 먹어치우며 사람도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해 첫날 겨울바다 풍덩~ ‘새해 첫날엔 겨울바다에 풍덩’ 2004년의 첫날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 슈브닝겐 해변.이날 아름다운 북해의 바닷가는 이색적인 새해맞이를 즐기려는 인파로 발 디딜 틈 없는 북새통을 이뤘다. 영하의 날씨에 살을 에는 칼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키니와 삼각팬티 수영복 차림으로 나온 7500여명은 주저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겨울바다에 몸을 담그는 것은 한 해를 건강하게 보내려는 네덜란드인들의 오래된 풍습.이 때문에 암스테르담에서 57㎞가량 떨어진 도시 헤이그의 해변 슈브닝겐은매년 1월1일이면 한여름 휴가 때만큼이나 성황을 이룬다. 프랑스와 벨기에 등에서도 신년벽두에 이런 풍경이 목격된다.지난 1일 유럽 곳곳에선 겨울바다에 몸을 담그는 것만으론 부족해 아예 수영대회를 연 곳도 많았다.대서양 건너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코니아일랜드에서도 새해맞이 북극곰 수영대회가 열려 수백명의 시민들이 바다를 가르며 헤엄을 쳤다. 새해 첫날 산과 바다를 찾아 해돋이를 보며 소원을 비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곳곳에서 새해맞이 수영대회가 열리고 있다. 다음달 1일에는 부산 해운대 바닷가에서 제17회 북극곰수영대회도 예정돼 있다.새해를 맞아 몸과 마음의 때를 차가운 바닷물에 씻어버리려는 것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기 때문일까. 황장석기자 surono@ 음식 못씹어 먹는 코끼리에 틀니를 |방콕 연합|세계 최초로 ‘틀니 낀 코끼리’가 태국에서 나올 것 같다. 최근 방콕의 영자지 네이션에 따르면 태국의 푸라추압 키리칸주(州)의 국립 동물연구센터는 나이가 많아 치아가 모두 빠진 암코끼리에게 틀니를 해줄 예정이다. 이 연구센터의 수의사 솜삭 짓니욤씨는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한 관광지 칸차나부리의 ‘코끼리 쇼 센터’에서 고령으로 은퇴한 암코끼리에게 틀니를 해 넣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치아가 모두 빠진 이 암코끼리는 음식을 씹어먹지 못해 정맥주사를 통한 급식으로 근근이 연명하는 처지라고 솜삭씨는 설명했다.그는 결국 이 암코끼리에게 틀니를 해주기로 결정했다며 틀니 제작에는 2주가량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 [녹색공간] 삶과 죽음의 공존

    얼마 전,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을 그대로 안방에 모셔둔 채 6개월을 함께 살았던 중학생의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이 사건을 통해 사람들은 이웃간의 왕래가 없는 세태를 한탄하기도 하고,소년의 심리상태를 분석하기도 했으며,결국은 따뜻한 인정을 모아 소년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줌으로써 함께 사는 이웃의 역할을 다하기도 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준 충격을 그리 간단히 분석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그렇다고 이 사건이 주는 정서적 떨림을 그대로 가라앉히기에는 주검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이 너무 예민하다. 썩어 들어가는 어머니의 주검 곁에서 일상을 살았을 소년에게 죽음이란 떠나감이나 이별이 아니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살아내야 할 일상의 짐이 조금 더 무거워졌음을 의미했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그렇게 그는 썩어가는 주검 곁에서 죽음과 함께 반년의 삶을 푹푹 삶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의 행동이 기이하게 여겨지는 것은,우리가 그러한 행동을 담아낼 문화적 규범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것이다.그러나 이 세상에는 주검과 함께 살아가는 전통을 가진 문화도 많다.함께하는 방식도,부모의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보살피는 유교적 전통에서부터,죽은 이의 시신이 새나 짐승의 밥이 되도록 함으로써 영원한 자연의 순환에 들도록 하는 장례 풍습,유명인의 시신을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교회에 보관하는 유럽 기독교의 전통,그리고 심지어는 죽은 이의 살을 먹음으로써 그 영혼이 후손의 몸속에서 부활한다고 믿는 식인풍습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다양하다.이처럼 대부분의 전통문화에서는 죽음을 우리의 삶과 매우 가까운 곳에 두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죽음을 가능한 한 삶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려고 한다.공동묘지는 깊은 산 속에 있어야만 하고,화장장이 들어설 예정인 곳에서는 연일 반대 시위가 끊이지 않으며,죽은 사람의 모습은 TV 화면에서도 모자이크 처리되어 일상과 격리된다.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라도 임종이 가까워지면 집으로 돌아와 가족의 품에서 인생을 정리하던 모습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가 없다.집에서 요양하던 환자라도 조금이라도 상태가 나빠지면 병원으로 달려가게 마련이고,거기서 온갖 기계에 매달린 채 죽음과의 전투를 치르다가 최후를 맞는 것이 당연시된다.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연장이 아니라 공포의 상징,극복해야할 대상,심지어는 무찔러야 할 적으로까지 여겨진다. 이처럼 죽음을 적대시하는 태도는 삶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낳는다.그래서 삶과 죽음은 연속이 아니라 화해할 수 없는 양 극단이 되어버린다.죽음의 시점을 뒤로 미루는 각종 의학기술이 발전하고,심지어는 영원히 살기 위해 유전자가 동일한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이제 삶은 질이 아니라 양으로 평가된다.그리하여 더 많은 삶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진다.생명은 곧 투쟁에서 쟁취한 전리품의 양으로 평가되며,죽음은 이 투쟁에서의 패배일 뿐이다.원래 하나였던 생명이 이제는 너와 나의 생명으로 분열되고,나의 삶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삶을 희생시키기도 한다. 이와 같은 생명의 황폐화 현상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철저히 부정하고 지나치게 삶에 집착한 결과다.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는 것을 생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또 우리는 모두 예외 없이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보다 능동적으로 그 죽음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그러기 위해 먼저 죽음에 덧씌워진 음습한 이미지를 털어내고 그것과 친해지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본래 생명이란 삶과 죽음의 절묘한 조화가 아니었던가. 강 신 익 인제대 의대교수 의철학
  • [먹고 사는 이야기]팥죽의 건강학

    밤이 가장 긴 동지가 돌아왔다.예로부터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 풍습이 전해온다.동지 팥죽은 반드시 대문이나 헛간에 뿌린 뒤 이웃끼리 서로 나누어 먹었다.동지 팥죽은 그렇듯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었다.붉은 색이 잡귀를 쫓아주는 벽사축귀의 음식이자 잔병을 없애주는 중요한 겨울철 별식이었다.그러다보니 웬만한 집에서는 두말 정도 들어가는 큰 가마솥인 두말두기로 팥죽을 쑤어서 두고두고 먹을 정도였다. 영양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우리 조상들이 팥죽을 벽사축귀의 음식으로 치켜세우며 겨울철에 집중적으로 먹도록 유도한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단백질 함량이 40%에 달하는 콩과 달리,팥은 단백질이 21%로 적다.대신 전분이 56% 정도를 차지한다.전분이 많다 보니 무더운 날씨에는 쉽게 상하고,그러니 여름철보다는 겨울철에 더 어울릴 수밖에 없다. 팥의 단백질에는 쌀에 부족한 리신이라는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또 트립토판도 많이 들어있어서 쌀과 함께 먹으면 단백질의 보강 효과가 나타난다.게다가 쌀밥을 주로 먹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부족하기 쉬운 티아민이 풍부하니,영양학적으로 매우 우수한 곡물로 평가되고 있다. 팥에 들어있는 사포닌은 영양소는 아니지만 항산화 및 항콜레스테롤 효능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생리 활성물질로 대두되고 있다.팥에는 식이섬유소도 4%정도 들어있어서 대장 기능을 활발하게 하여 변비와 대장암을 막아준다.콜레스테롤이 대장에서 흡수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고지혈증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우리 조상들이 팥죽을 절기식으로 올려놓은 것은 단지 잡귀를 쫓고,잔병을 막아주기 때문만은 아니다.비탈진 산간지대 어디에서나 쉽게 재배할 수 있다는 특성도 고려됐다.팥은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하기 때문에 재배가 쉽고 생육기간이 짧아 윤작도 가능하다.일품만 팔면 얼마든지 수확할 수 있는 곡물로 건조와 저장까지 간편해 기근 시절에 매우 유용한 식량이었다.춘삼월의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쌀은 물론 보리도 최대한 아껴야만 했던 우리 조상들로서는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팥이 겨울철 음식으로는 더 없이 훌륭한 대안이었다.그래서 귀신쫓는 음식으로까지 치켜세우며 팥 소비 확대를 유도했다는 얘기다. 팥죽은 수분함량이 많아 과식의 염려가 없다.열량도 한 그릇에 200㎉ 정도에 불과해 다이어트 음식으로는 그만이다.연말 각종 모임에 찌든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고칼로리 음식으로 늘어난 허리 사이즈를 줄이는데 더 없이 좋은 음식이다. 팥죽은 땅 속에 묻어둔 항아리에서 얼음을 깨고 꺼내 큼직하게 썰어낸 동치미와 먹는 게 일품이다.또 동치미에는 전분 소화를 돕는 아밀라아제가 풍부하니 팥죽을 소화시키는데는 제격이다. 임경숙 수원대 교수 식품영양학과
  • [먹고 사는 이야기] ‘대장금’표 비만

    집집마다 ‘살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난리다.배불뚝이 아빠는 그래도 양반이다.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어린이 비만은 가정의 범주를 넘어 사회 문제로 등장했다.학교에서까지 비만 문제에 신경을 써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은 비만이 인류 건강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지만,배곯는 일이 많았던 30∼40년 전만 해도 비만 자체가 극히 드물었거니와 비만을 걱정해야할 이유도 없었다.선사시대 이래,인류는 끊임없이 찾아드는 기근에 시달렸다.그러다보니 기아로 인류가 도태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체지방 축적은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였다. 또 비만이 부와 건강,풍요와 모성의 상징으로 숭배되던 시대도 있었다.지금도 케냐에서는 뚱뚱한 신부를 선호한다.나이지리아에서는 결혼을 앞둔 처녀의 체중을 불리기 위해 집안에 가두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비만이 건강문제로 부각된 것은 식량 증산으로 기아가 퇴치되면서부터다.고지혈증 당뇨병 고혈압등과 같이 비만의 폐해가 입증된 이후 인류는 비만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급기야 1996년 스페인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유럽비만학회는 비만,그 자체를 적극적으로 치료하여야 할 질병으로 규정했다. 비만은 폭식이나 과식에 의해 주로 발생한다.서울의 한 비만전문 외과의원에 따르면 체중이 100㎏을 넘는 고도 비만자의 경우,평소 식사량은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으나,사나흘에 한번씩 보통사람의 10배 이상 먹어 치우는 폭식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이 정도의 폭식은 보통사람에서 쉽게 관찰되지 않는다. 과식은 어떠할까.일상생활에서 잠시 방심하면 과식하기 쉽다.배가 부른데도 불구하고 한 숟가락 정도 밥이 남으면 대부분은 그냥 먹어치운다.이런 식으로 끼니마다 한 숟가락씩 더 먹으면 어떻게 될까?밥 한 숟가락은 20g,약 30㎉의 칼로리를 가지고 있다.하루 세번 한 숟가락씩 더 먹으면 90㎉,한달이면 2700㎉를 초과 섭취하게 된다.이 에너지를 체지방으로 환산하면 300g,체내 대사에 쓰이고 200g만 저장된다고 하자.실제 체중계에서 200g은 눈금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오차범위라 방심하기 십상이다.그러나 1년간 지속되면 2.4㎏,10년간 누적되면 24㎏의 체지방이 축적된다. 즉 방심하고 먹는 비스켓 한 조각,밥 한 숟가락 등이 바로 과식이며,이러한 무의식적인 과식이 비만을 초래하게 된다. 요즘 TV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이다.다양한 식재료와 정성어린 조리법으로 차려지는 궁중 음식의 진수는 보기에도 매혹적이어서 밤참을 당기게 한다.그 유혹에 넘어가서 ‘대장금표 비만’에 걸리게 되었다는 하소연이 심심찮게 들린다.비만에는 참는 것이 약이다.허리 둘레 1인치는 단 일주일간의 밤참만으로도 늘어나지만,원위치로 돌아가는데는 적어도 두 달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임경숙 수원대 교수 식품영양학과
  • [씨줄날줄] 이단아

    단순한 구성과 뻔한 줄거리가 약점이기도 하고 강점이기도 한 서부영화엔 소나 말에 낙인찍는 장면이 곧잘 등장한다.주인을 표시하려고 말못하는 짐승에게 ‘중화상’을 입히는 것이다.잔인한 느낌이지만 낙인 문화는 유목 사회엔 공통적인 것으로,제주도의 낙인 풍습도 몽골로부터 전해져 왔다고 한다. 낙인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선 정치 사회적 의미로 넓혀져 사용되고 있지만 영어권에서는 ‘매버릭(maverick)’이라는 단어를 가져왔다.웹스터 인터넷 사전을 보면 ‘이단아’라고 번역되는 매버릭의 어원이 19세기 중엽 미국의 목장주였던 새뮤얼 어거스터스 매버릭일 거라고 한다.매버릭이 송아지에 낙인을 찍지 않고 둔 데서 낙인찍지 않은 동물,이단아라는 단어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전 총리인 리콴유 선임장관이 최근 매버릭의 중요성을 강조,화제다.리 선임장관은 1인당 국민소득 400달러 수준에 폭동과 파업, 방화가 난무하던 싱가포르를 40년만에 3만달러 수준의 선진국으로 끌어올렸지만 이 과정에서 법과 규율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말하자면 국민을 모두 ‘범생이’(모범생)로 만들려 해 온 것이다.바로 그 리 선임장관이 지난 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글로벌 브랜드 포럼’에서 자신의 독단을 인정하면서 이단아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700여명의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리 선임장관은 “싱가포르를 건설하는 데 한가지 놓친 것은 사회를 앞으로 이끌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이단아의 중요성이었다.”면서 “나는 시작할 때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여러분도 팀플레이어와 이단아 모두를 필요로 한다.”고 덧붙였다. 리 장관의 ‘변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1994년 김대중 당시 아태재단 이사장과 논쟁을 벌이면서 아시아적 가치를 강조했지만 이날 포럼에서는 미국과 일본을 비교해 달라는 베트남 참석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일본은 팀워크가 뛰어났어도 미국의 창의성을 이기지 못했다.미국이 황금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창의성 덕분”이라고 말해 특정한 가치나 주장에 매이지 않는 사고의 유연성을 보여주었다. 울림이 큰 노정치가의 말에 반응이 없을 리 없다.우리나라는 어떤가? 이단아가 너무 많은가.아니면 아직 더 필요한가.우리사회의 매버릭들은 오히려 상대방에 정치적 낙인을 쉽게 찍지는 않는지.두루두루 비교하면서 아전인수격이 안 되게 각자 판단해 보길 바란다. 강석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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