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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여성결혼이민자 인턴채용

    경남도는 전국 처음으로 여성 결혼이민자를 올해 계약직 행정인턴으로 채용해 다문화가족 지원업무를 맡긴다고 4일 밝혔다. 이달에 모집공고를 한 뒤 다음달 12명을 뽑는다. 합격자들은 도 여성정책과, 경남다문화가족지원센터, 김해·마산을 비롯한 10개 시·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에 배치한다. 이들은 10개월간 계약직 행정인턴으로 근무하면서 담당 지역의 여성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한국어 기초 교육을 한다. 또 생활풍습과 음식 등 한국생활의 어려움을 상담하며 결혼이민자들이 빨리 한국 사회에 적응하도록 도와준다. 여성결혼이민자가 일상생활 중 민원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수 있도록 통역 등의 지원도 해준다. 도 관계자는 “여성결혼이민자의 인턴 채용이 결혼이민자의 경제적 자립과 일자리 창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궁·절 뒷간에 무슨 일이… 여자도 서서 일을 봤다?

    정랑(淨廊)·동사(東司)·서각(西閣)·북수간(北水間)·통시. 모두 한 장소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들이다. 어디를 지칭하는 말일까. 이런 표현이라면 퍼뜩 떠오른다. 칙간(厠間)·해우소(解憂所)·통숫간·변소·매화틀. 하나같이 ‘똥을 누다’란 뜻의 순 우리말 표현인 ‘뒤를 보는’ 장소, 곧 뒷간을 이르는 말들이다. 점잖은 우리 겨레의 성품이 반영된 때문인지, 부르는 이름이 많기도 하다. 최근 ‘뒤를 보는 장소’마저 훌륭한 연구주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책이 나왔다. ‘뒷간’(김광언 지음·기파랑 펴냄)이다. 뒷간의 어원과 역사부터 지역별 특징, 절집과 궁궐의 뒷간, 그리고 관련 속담에 이르기까지, 뒷간의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사라졌거나 사라져 가는 우리 풍습과 도구, 음식, 그리고 주거 형태 등을 재조명할 ‘한 권에 담은 우리생활’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국립민속박물관장 출신의 민속학자인 저자는 산간 너와집 뒷간을 비롯해 경남과 제주도에 남아 있는 돼지 뒷간, 선암사·송광사·내소사·개심사 등 명찰들의 뒷간, 궁궐 뒷간 등을 샅샅이 추적했다. 특히 선암사 뒷간의 바닥 사진을 찍기 위해 ‘뒤를 보던’ 사람에게 들킬까 봐 숨죽이며 뒷간 바닥에서 기다리던 일화도 나온다. 이렇게 저자가 직접 찍은 250여장의 사진들은 흙벽에 둥근 볏집으로 지붕을 얹은 농가의 뒷간과 깔끔하고 고졸한 상류층 뒷간 등 다양한 형태의 우리나라 뒷간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책 후반부에는 각 나라의 똥·오줌의 민속과 누는 자세, 방법 등에 대해서도 민망할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했다. 흔히 남자는 서서, 여자는 앉아서 오줌을 누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몽골, 네팔, 방글라데시, 인도, 이집트, 이란 등지의 남자는 앉아서, 일본 간사이(關西)지역 등의 여성들은 19세기까지 서서 일을 보았단다. 또 ‘쥐구멍에 오줌을 누면 생식기가 붓는다.’는 등 대·소변과 관련된 속담편에서는 선조들의 해학과 재치에 박장대소가 절로 나온다. 저자는 이처럼 생활 풍속을 조사하는 가운데 얻게 된 풍수에 관한 자료를 모아 시리즈 두 번째 책인 ‘바람·물·땅의 이치’를 동시에 출간했다. 각 1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코뚜레를 달고 사는 사람들

    코뚜레를 달고 사는 사람들

    2009년 소띠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크고 작은 일들도 많았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코뚜레를 끼우고 있다는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됐었고, 앞으로도 계속 코뚜레를 할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사람이 코뚜레를 한다는 것이 생소하지만 이미 수만명의 사람들이 코뚜레를 소장하고 있으며 수시로 코뚜레를 한다는 것이다. 이 많은 사람들이 코뚜레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날 풍습으로 소의 코뚜레를 대문이나 방문 위에 걸어 놓으면 잡귀를 쫒아준다는 속설이 있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부적이 유효기간이 있는 반면 코뚜레는 영구적으로 효험이 있는 부적으로 알려져 서민들에게는 사랑 받는 부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요즘 사람들이 코뚜레를 하는 이유가 잡귀를 쫒기 위해서인가?  코뚜레를 사용하는 박관용씨(서울 34세)의 경우는 비염 때문에 코가 막혀 코뚜레를 사용하고 있다. 코뚜레를 쓰면 숨쉬기가 편해지고 콧물도 멈추며 재채기까지 멎는 신기한 효과를 보기 때문에 알레르기비염이 심한 박씨는 코뚜레를 애지중지하고 있다. 코뚜레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는 황청풍씨(아이디얼 대표)는 “코뚜레는 실제 코를 뚫는 것이 아니라 코 끝에 있는 소료혈이라는 혈점을 지압하는 기구”라고 설명했다. 마치 코에 피어싱을 한 것 같은 모양 때문에 사람들이 코뚜레라는 별칭이 붙은 것이다. ●‘소료혈’을 지압하면 무엇이 좋은가?  소료혈은 코의 중심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혈자리로써 알러지성 비염치료, 집중력 강화, 코막힘 해소, 감기 치료 뿐만 아니라 불면해소, 음주 후 각성, 졸음방지, 감기예방 등과 같은 다양한 효과가 있다.이 소료혈을 뚫어주면 막힌 코의 기혈순환을 촉진하여 코의 건강을 회복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위치와 모양 때문에 침을 놓기도 곤란하고 뜸을 뜨는 혈자리도 아니다. 맛사지를 해도 코끝이 빨개져버려 자주 할 수도 없다. 그러다보니 중요한 혈자리임에도 임상에서는 소홀히 다뤄지고 잘 쓰이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코뚜레 즉, 바이오코클링(www.cocling.com)은 중요하면서도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소료혈’에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이다. 이 혈자리는 겉으로 드러난 혈자리가 아니라 코끝의 연골 사이에 숨어있다. 그래서 이 코클링의 접근은 코의 안쪽에서 지압을 할 수 있게 한 것.  약한 힘으로도 충분한 자극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용자는 통증이나 이물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효과를 경험하고 있다. ●코뚜레의 새로운 진화  소료혈을 지압해 코의 기혈 순환을 촉진하는 기능에서 코 안쪽을 넓혀 주는기능을 추가하여 즉각적으로 숨쉬기가 편하게 해주는 스페셜 제품(일명 코만세)이 출시 되어 사용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모 한의원에서 판매하는 108만원짜리 비강확장기를 사용해봤다는 이00씨는 착용감과 효과면에서 훨씬 더 좋았다며 가격도 저렴하고 효과도 좋아 주변사람에게도 많이 알리고 싶은 제품이라고 말했다.  실제 기자가 써 본 느낌도 보기보다 착용감이 편안하고 코로 들어오는 공기의 양이 증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비염 환자들이라면 도움이 많이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코뚜레가 잡귀를 쫒는 다는 속설이 있는 것처럼 이 바이오코클링이 비염환자들의 불편과 고통을 덜어 주기를 기대해본다.  도움말 : 바이오 코클링 (www.biococling.com) 황청풍 대표  출처 : 바이오 코클링  본 콘텐츠는 해당기관의 보도자료임을 밝혀드립니다.  
  • 85년 함께 산 中부부 기네스북 등재

    85년 간 한 이불을 덮고 잔 중국인 부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한 부부로 인정을 받아 세계 기네스북 개정판에 등재될 예정이다. 8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해로한 주인공은 리우 푸번(95)과 부인 스 지휘(100). 베이징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사람은 각각 10살, 15살이었던 1924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리우는 “일찍 결혼하는 당시 마을의 풍습 때문에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아내가 5살이 더 많아서 엄마처럼 나와 가족을 보살펴줬다.”고 말했다. 부부는 슬하에 자식 6명을 뒀으나 그중 4명은 배고픔과 질병으로 죽었을 정도로 지독한 가난을 안고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둘의 금실이 놀라울 정도로 좋다고 입을 모았다. 해로의 비결을 묻자 남편인 리우는 “언제나 ‘부인이 무조건 옳다.’는 황금 법칙을 마음에 새기고 불필요한 말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인인 스 역시 “어린 나이에 결혼했기 때문에 좋은 남편이 되는 방법을 리우에게 계속 가르쳐 줬다.”면서 “힘들 때마다 남편이 항상 따뜻하게 감싸줘 싸울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80년 간 부부의 연을 맺은 영국인 부부 퍼시 애로스미스(105)와 부인 플로런스(100)이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됐으나 발간 2주 만에 플로런스가 사망해 이 자리는 비어져 있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울광장] 인사동다워야 할 이유/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인사동다워야 할 이유/김성호 논설위원

    뉴욕 센트럴파크와 42번가 브로드웨이, 파리 샹젤리제와 몽마르트르, 베이징 톈안먼광장과 왕푸징(王府井), 도쿄 신주쿠(新宿)와 하라주쿠(原宿)….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을 찾는 이라면 한 번쯤 보고 싶어 하고 발길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거리 명소들이다. 이렇게 보란듯이 이름을 알려 사람들이 찾아들게 할 만한 한국의 거리가 있다면 어떤 곳일까. 한국의 ‘문화지구 1호’ 서울 인사동이라면 그 반열에 올릴 수 있을까. 인총이 몰리는 명소라면 이름에 걸맞은 가치들이 있을 터.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인사동의 가치는 한국문화의 전통과 숨결일 것이다. 인사동이 어떤 땅인가. 조선 정궐에 가깝다 하여 내로라하는 세도가며 명인들이 자리잡아 살았고 그에 따른 문화와 풍습들이 옹골차게 배어든 곳이다. 조선시대 중부 관인방의 인(仁)자와 지명인 대사동의 사(寺)자를 엮어 이름 지어진 인사동이다. 오래도록 탑동, 사동, 탑사동이란 이름이 통용된 건 원각사에 딸린 석탑이 유명했기 때문이고 지금도 비슷한 이름의 상호며 건물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이름과 명성은 사람과 사건을 불러오게 마련. 조선조 최대의 철학가 이이, ‘사동대감’이라 불렸던 문신 김병학은 지금도 회자되곤 한다. 장안의 부호와 총독부 관리들이 즐겨 찾았고 3·1독립선언의 현장이기도 하다. 한신대 전신인 조선신학교가 개교한 승동교회는 일제치하 전국으로 번진 학생운동의 발상지였으니 인사동은 분명 보통 땅은 아니다. 일제 말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골동품 상가는 아무래도 인사동 정체성의 으뜸이다. 살아 있는 노상박물관의 별명답게 200여개의 골동품, 전통공예상이 즐비했고 고미술품을 감정하는 한국미술협회가 이곳에서 태어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수도 한복판에 이만큼 한국의 가치를 담았던 역사적 공간이 또 있을까마는 인사동의 모습은 영 딴판이 되어가고 있다. 하루 5000명, 한 해 170만명이 방문한다니 연간 외국인 관광객의 25%가 찾는 셈이다. 이같은 숫자의 성황 속에 가치 변질이 급속 진행되고 있어 안타깝다. 문화지구로 지정된 2002년 기준으로 골동품점은 33%, 필방·지업사는 21%가 준 데 비해 술집은 80%, 음식점은 35%가 늘어났다고 한다. 먹거리, 잡상품을 팔려는 호객이며 목소리의 홍수는 여느 유흥가와 다르지 않다. 인사동 변질의 아픔은 10년 전 이미 겪은 바여서 안타까움이 더 크다. 인사동길 복판, 이른바 ‘전통 12가게’가 개발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해 인사전통문화보존회 등이 보존운동에 나섰던 것이다. 종로구가 호응했고 서울시가 문예진흥법에 따라 2002년 지정한 게 문화지구이다. 빼어난 전통과 가치의 자랑이 아닌, 홍수처럼 밀려드는 싸구려 상점과 먹거리 장사들을 제어하기 위한 태생의 아픔을 갖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인사동의 값싼 상업화는 악의 개선이 아닌, 전철의 답습으로밖에 볼 수 없다. 가치의 상실은 현실의 쇠퇴와 몰락을 불러옴을 역사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대로라면 외국인이 더 이상 찾을 가치가 없는, 이름뿐인 인사동의 함몰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한국 ‘문화지구 1호’ 명예(?)의 손상이고 그것은 곧 한국전통의 큰 훼손이다. 우리가 스스로 지켜내지 못할 소중한 가치를 그 어느 외국인이 찾아낼까. 다행히 서울시는 최근 인사동 새 정비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문화지구 1호의 박탈을 보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4회 농협문화복지대상] 개인 7명·단체 3곳 9일 시상

    전통 농촌문화를 계승하고 효(孝)를 실천하는 우수농가를 발굴하기 위한 농협문화복지대상(주최 농협문화복지재단)이 올해 4회째를 맞았다. 농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흙과 함께 살아가는 농민들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잊혀가는 미풍양속을 보존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상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3단계에 걸친 정밀한 심사 작업을 거쳤다. 지역농협의 추천을 받아 농협 지역본부의 예비심사를 거친 뒤 농협 중앙회와 재단 담당자들이 현지 실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관련 학계 등 외부인사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본심사를 통해 ▲최우수농가 ▲농업발전 ▲농촌문화 ▲농촌복지의 4개 부문에 걸쳐 개인(상금 2000만원) 7명, 단체(상금 3000만원) 3곳의 수상자를 선정했다. 시상식은 9일 오전 11시 서울 충정로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열린다. 임일영 유대근기자 argus@seoul.co.kr ■최우수농가 임병길씨 - 고당도 ‘야미방울토마토’ 생산 공로 세도 토마토연합회장 임병길(53)씨는 자체 상표인 ‘야미방울토마토’로 부여 토마토 농가의 수익을 올리고 지역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또 임씨와 아내 양재분(54)씨는 팔순 노모에 대한 극진한 효성으로 부여군과 대한노인회 등에서 상을 받는 등 지역사회의 모범이 되는 점도 심사과정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80년대 초 토마토 재배에 뛰어든 임씨는 여러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고품질의 토마토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익혔다. 하지만 양질의 농산물을 생산하고도 규모가 작은 탓에 위탁상에 헐값으로 출하하는 게 현실이었다. 임씨는 지역 농가들과 작목반(작목별·지역별로 5인 이상으로 구성해 공동생산 및 공동출하로 소득을 높이기 위해 농협이 주관해 만든 조직)을 조직해 공동출하로 물류비를 줄이는 동시에 ‘규모의 경제’를 이뤄 협상 경쟁력도 끌어올렸다. 소비자가 원하는 당도 높은 방울토마토를 생산하려고 세도면의 토질에 맞는 재배법을 연구했다. 특히 친환경 농업에 일찌감치 눈을 떠 미생물배양기를 이용, 흙을 살리는 것은 물론 균형 잡힌 영양을 갖춘 토마토를 생산했다. 연 2회 부여군 농업기술센터에 토양성분 분석을 의뢰하고, 분기마다 부여농업기술센터 방문교육을 받는 등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자체개발한 상표인 ‘야미’를 특허 출원해 부여 방울토마토의 위상을 높였다. ■최우수농가 서귀석씨 - 단맛 일품인 ‘동진감자’ 만든 주역 서귀석(67)씨는 알이 굵고 단맛이 일품인 부안 동진감자를 만든 주역이다. 간척지를 개간해 농가소득을 올리고 지역사회에 재배기술을 전파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치매를 앓던 노모가 2004년 세상을 떠날때까지 정성을 다해 모셨다. 서울에 살던 아들 부부까지 귀농해 3대가 농촌을 지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새로운 소득작목을 찾던 서씨는 1986년 부안에서는 처음으로 7곳의 농가와 함께 9개 동의 연합작목반을 만들었다. 살아남으려면 조직화가 절실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씨가 사는 부안군 동전리 일대는 간척지를 개간한 땅에 벼농사로 생계를 잇던 곳이다. 잘사는 법에 골몰하던 서씨는 농업기술센터와 함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서해안 해풍과 알칼리성 토양이 어우러져 당도가 높고 알이 굵은 감자를 재배했다. 쪘을때 속이 포근포근하고 단맛이 일품인 것은 물론, 겨울철에 노는 땅을 이용하는 데다 물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더 맛있는 감자를 생산하려고 농협에서 생산하는 왕겨 숯과 왕겨 액을 이용했다. 친환경 감자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작목반이 만들어진 지 23년이 흐른 현재 70곳의 농가와 925개동으로 규모가 커진 것은 물론, 연간 4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서씨는 또한 마을의 청장년 모임을 결성해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모시고 무료로 이·미용 봉사를 하는 한편, 수시로 마을회관에서 음식을 장만해 대접하기도 한다. ■최우수농가 이채철씨 - 3대가 한집에… 선진 농업기술 도입 주도 이채철(48)씨는 경북 경주시 외동읍 방어리에서 친환경 농업을 하는 평범한 농촌 가장이다. 이씨가 이번에 최우수농가 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은 것은 3대가 한 집에 살면서 전통의 미풍양속을 계승하는 동시에 선진 농업기술의 도입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딸만 낳은 큰어머니와 대를 잇기 위해 온 친어머니를 동시에 모시며 지극정성으로 효(孝)를 실천했다. 친어머니보다 몸이 불편한 큰어머니를 더 먼저 생각했고, 배다른 형제 간에 우애를 깊이 다져 다양한 갈등 요인에도 불구하고 어느 집보다 화목한 가정을 이뤄냈다. 이씨는 과수농사와 쌀농사, 부추농사를 하면서 한우 18마리를 키우고 있다. 뛰어난 추진력으로 작목반의 불모지였던 외동농협에 8개의 쌀 작목반과 배 작목반을 정착시켰다. 이씨가 재배하는 벼와 쌀은 친환경 인증을 받았으며 부추는 농약은 물론이고 비료조차 쓰지 않는다. 자신이 운영하는 아리아 쌀작목반에 우렁이 농법을 정착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방어리의 전체 쌀 농가가 농협과 전량 친환경 계약재배를 하고 있다. 부인 남명숙(46)씨도 방어리부녀회 총무를 맡아 직접 생산한 쌀로 강정공장을 설립, 전통 수작업으로 강정을 만들어 농촌 일감 늘리기에 기여하고 있다. 남씨의 노력으로 명절 때 강정바구니 500개와 배 1500상자를 한꺼번에 자매결연 기업에 판매하는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농업발전 여상규씨 - 친환경·무농약 새송이 버섯 재배 여상규(49)씨는 ‘새송이 박사’로 불린다. 친환경·무농약 재배기술을 통해 우리 농업의 수출 활로를 개척한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경북 김천 조마면 대방리에서 대규모 버섯 재배단지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상주대 농대를 졸업한 뒤 1985년 영지버섯을 시작으로 버섯농사에 뛰어들었다. 끊임없는 기술 개발로 2005년 친환경 농산물 인증을 얻었고 경북 친환경농업인연합회로부터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영지·느타리·팽이 버섯을 거쳐 2000년 새송이 버섯 재배에 눈을 돌린 여씨는 첫해에 버섯 종균 분양에 성공, 2002년부터 지금까지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과 농협 하나로마트에 최고의 가격으로 출하하고 있다. 2006년 백산 새송이 공동선별작목반을 조직해 버섯 농가의 소득 향상을 이끌었다. 농산물 수입검역이 까다로운 호주, 캐나다, 미국에도 수출하고 있다. 2007년 미국식품의약청(FDA)으로부터 안전성을 인정받은 뒤 본격적인 수출 물꼬가 트여 지금까지 130만달러(약 15억원)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현재 여씨의 새송이 재배 기술을 탐내는 곳은 중국. 그동안 중국 푸순(撫順)현 등지의 정부 관계자들이 여러 차례 여씨의 농장을 방문해 새송이 버섯 농장을 자국 내에 설립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여씨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력이 유출되지 않을 안전장치가 마련될 경우 거대 시장인 중국에 진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농업발전 조규식씨 - 천마 영농기술 개발·상품화 성공 조규식(54)씨는 천마(天麻)의 재배와 가공, 유통에 관한 한 독보적인 인물이다. 혁신적인 재배기술을 개발해 전북 무주군 안성면을 전국 최대의 천마 주산지로 만들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꾸준히 새로운 천마 영농기술을 개발하고, 거듭되는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는 열정으로 천마의 상품화에 성공했다. 조씨의 노력 덕에 중국산 인삼의 대량 수입으로 타격을 입고 실의에 빠졌던 안성지역 농가들은 천마 산업을 통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조씨는 140여명의 작목반원을 이끌고 안성지역 곳곳을 현장 답사하며 토양 검사 및 배수, 일조시간 등이 맞는 적합한 토지들을 찾아냈다. 주변농가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주느라 정작 자신의 천마 재배는 맨 나중에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갖은 노력 끝에 ‘속성밀식 다수확 재배’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천마는 2000년 이전에는 식품으로 쓸 수 없는 규제품목이었지만 꾸준히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민원을 제기해 사용 허가를 얻어냈다. 작목반원과 공동으로 가공공장을 설립한 뒤 천마를 솥에서 찌지 않고 증기압으로 찌는 공법을 고안했다. 2007년 천마축제 개최를 주도했고 지난해에는 천마가 무주군의 식품클러스터 사업으로 선정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TV 광고, 소책자, 팸플릿, 홈페이지 등을 통해 천마를 홍보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농촌문화 양주농악보존회 - 양주농악의 발굴과 원형 전승 양주농악 보존회(대표 황상복)는 농촌에서 모심기와 김매기 등을 할 때 농기(農旗)를 앞세우면서 농악에 맞춰 일터로 나가는 형식의 ‘양주농악’(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6호)을 보존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보존회는 광무 7년(1903년) 농상공부(농업·상업 등에 대한 업무를 처리하던 관청)로부터 농기를 하사받으면서부터 본격적인 농악놀이 보존·발전 활동을 벌여왔다. 63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양주농악 보존회는 회원 중 90%가 경기 양주시 농협 조합원으로 생업인 농업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종사해 왔다. 힘든 농악의 옛 모습과 가락을 100년 넘게 원형 그대로 지켜오면서 경기도 민속 예술 경연축제 등 각종 대회에 참가해 6차례 수상한 경력도 있다. 또 매년 양주농악 정기 공연회를 열어 지역주민들과 어울림의 자리를 만들어 왔다. 이 밖에 지역 대학 공연과 방송 프로그램 출연 등을 통해 농악놀이, 장기작두 등 민속문화를 알려왔다. 2006년부터는 매년 8주간 수업을 열어 중·고등학생 및 일반인에게 양주농악 놀이를 가르쳐왔다. 지금까지 1700여명이 양주농악 보존회로부터 전통 놀이문화를 전승받았다. 또 관내 모든 경로잔치 행사에 무료로 참여해 지역 노인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했다. 양주농악 보존회는 인터넷 문화가 주류인 현시점에 농촌 문화를 전수, 계승시켜 우리 농악의 명맥을 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농촌문화 횡성태기문화제委 - 횡성지역의 전통문화 계승 발전 횡성태기 문화제위원회(대표 홍성익)는 강원도 횡성 지역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1977년 9월 처음으로 제1회 강원도 태백문화제에 참여해 농악과 미나리타령 공연으로 입상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한국농민요대회 등에 참가해 이름을 알렸다. 회다지소리 공연 등을 통해 제2회 강원도 민속예술경연대회 최우수 도지사상, 제2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최우수 대통령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울 국립극장과 서울 예술의 전당 등에서도 횡성 회다지소리 공연을 벌여 강원지역 향토문화를 널리 전파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1984년 횡성 회다지소리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됐다. 또 강원도 횡성군 정금마을은 도에서 지정한 회다지 소리 전승마을로 뽑혔다. 횡성태기문화제위원회는 ‘태기문화제’를 올해까지 23차례 개최했다. 80명의 회원들은 육례 놀이, 두레 농요, 연자방아 소리 등의 공연에서 관객들의 열띤 반응을 얻었다. 문화제에서는 민속놀이 체험, 만장 전시 및 쓰기, 장례문화 사진전, 사후세계 체험장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횡성태기 문화제위원회는 이 밖에 횡성 한우축제 등 지역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향토문화공연을 벌여 군민들의 애향심을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한 것을 인정받았다. ■농촌문화 김군천씨 - 제주 김녕·만장굴 개척·보존 한평생 김군천(87)씨는 1962년부터 현재까지 김녕굴(천연기념물 제98호)과 만장굴(세계자연유산)을 개척하고 보존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특히 만장굴을 세계에 널리 알려 제주도 관광산업을 일으키는 데 선구자 역할을 한 점이 높게 평가됐다. 김녕중학교 서무주임으로 일하던 김씨는 1961년 김녕의 천연동굴들이 황폐화하는 현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사재를 들여 동굴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힘을 보태 진입로를 닦고 나무를 심어 김녕사굴과 만장굴을 개발했다. 1968년 한국동굴협회의 답사가 이뤄지고 나서 만장굴은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자칫 오랫동안 묻힐 뻔했던 세계적인 천연동굴의 존재를 학계에 알린 주인공이다. 또한 제주도의 지역전설과 생활풍습을 소재로 한 민속놀이 연출가로도 명망을 쌓았다. 1973년 제주에서 열린 한라문화제에 ‘사굴처녀제’의 각본 및 연출을 맡아 금상을 받은 게 시작이었다. 이후 ‘멸치 후리는 노래’ ‘김녕리 서낭굿놀이’ 등 다수 작품을 연출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민속학자도, 연출가도 아니었지만 오로지 끊임없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올해에도 ‘성세깃 당풍어 기원걸궁’이란 작품으로 자신이 설립한 김녕노인대 학생들과 졸업생으로 팀을 만들어 출연했다. ■농촌복지 권경희씨 - 30년간 농촌지역 복지사업 앞장 강원도 농업기술원 권경희(50) 생활지원과장은 30년 동안 농업기술원에서 일하면서 남다른 사명감과 창의력으로 농업 및 농촌 복지사업을 해온 성과를 인정받았다. 권씨는 1979년 횡성군 농촌지도소의 생활지도사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지금까지 농촌생활 지원사업에 헌신했다.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포럼 등을 통해 전문지식을 습득해 농민들에게 정확하고 신속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으로 지역사회에 자리매김했다. 또 농민에 대한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홍보 전략의 중요성을 인식해 농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매체에 적극적으로 알려나갔다. 특히 농촌 고령화에 대해 10년 전부터 남다른 문제의식을 느끼고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2004년 ‘강원도 농촌지역 노인의 실태와 정책지원 방안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전문성을 인정받아 농민들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연간 30여 차례나 출강하는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2001년 농림부, 2007년 국무총리실에서 우수공무원으로 표창을 받았다. 지난 4월에는 한사랑농촌문화재단에서 농촌지도봉사 부문 수상을 하기도 했다. 업무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똑소리 나는 살림꾼이다. 고령의 시부모를 모시는 종갓집 맏며느리의 본분을 다하는 것은 물론 이웃들의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해결사’로도 인정받고 있다. ■농촌복지 한경농협봉사단 - 노인봉사·보육시설 후원 한경농협 농촌사랑 자원봉사단(단장 김순연)은 산간지역인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농민들의 복지를 위해 애써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2005년 30여명의 자원봉사자로 발족한 한경농협 농촌사랑 자원봉사단은 지역 내 복지타운과 연계해 노인 무료이동목욕봉사, 경로식당 운영 등 자원 봉사활동을 벌여왔다. 또 농림수산식품부가 추진하는 ‘취약농가인력사업’에 참여해 65세 이상 고령자들이 거주하는 농가를 방문, 청소 및 밑반찬 마련 등 가사도우미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자원봉사단은 매년 설, 추석을 맞아 보육시설 아동들과 지역 내 이주여성, 독거노인 등에게 쌀과 생필품도 전달해왔다. 김장철에는 우리 농산물로 직접 담근 김치를 불우이웃들과 함께 나눴다. 자원봉사자들은 봉사에 필요한 교육을 받으며 사랑나눔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도 해왔다. 2005년에는 자원봉사자 18명이 간호인 교육을 수료한 뒤 지역 내 노인 돌봄 활동을 벌였다. 또 복지타운 내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한방 진료도 벌였다. 동지팥죽 나눔행사 등 지역민들과 정을 나누는 이벤트도 정기적으로 개최해 왔다. 이와 같이 자원봉사단은 농촌문화 퇴조,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으로 소득이 급감하면서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는 농촌의 복지문화 개선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 남태평양 원주민, ‘식인’ 당한 후손에 사과

    남태평양 원주민, ‘식인’ 당한 후손에 사과

    “고조부를 ‘먹은’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식인 풍습이 있던 남태평양 원주민들이 170년 전 해친 영국 선교사의 후손들에게 공개적으로 용서를 구했다. 원주민들의 사과를 받은 사람은 현재 영국 햄프셔주에 사는 찰스 밀너 윌리암스(65). 남태평양 군도에서 활동해 ‘태평양의 사도’로 알려진 선교사 존 윌리암스의 고손자(高孫子)다. 존 윌리암스 선교사는 1839년, 동료인 제임스 해리스와 에로망고섬에 갔다가 살해됐다. 앞서 상륙한 다른 배의 선원들이 섬주민들을 해친 것에 보복을 당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식인 풍습이 있던 당시 에로망고섬 원주민들은 후에 찾은 영국 해군에게 “그들을 모두 먹었다.”고 밝혔다. 존 윌리암스 선교사의 순교 170주년을 기념해 그의 후손들을 만난 원주민들은 손을 잡기도 전에 머리를 숙이며 과거 일을 사과했다. 밀너 윌리암스와 그의 가족들 17명 역시 그들을 일으켜 세우며 용서의 뜻을 보였다. 현재 에로망고섬이 속한 바누아투공화국의 롤루 아빌 대통령은 “에로몽고섬 주민들에겐 꼭 필요했던 자리”라고 현장을 보도한 BBC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에로몽고섬 사람들을 ‘선교사를 죽인 집단’으로 봐왔다.”며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바누아투 국회의원이자 인류학자인 랄프 레젠바누는 “미안하다는 말은 교류의 시작일 뿐”이라며 “상호 교류를 통해 화해의 움직임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사진=BBC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글로벌 시대] 해외동포 단상/조환복 주 멕시코 대사

    [글로벌 시대] 해외동포 단상/조환복 주 멕시코 대사

    내 나라가 아닌 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자신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해외로 이주한다는 것은 보통 힘든 결정이 아니다. 그래서 해외에 있는 우리 동포 어느 누구 하나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다. 외국에서 많은 분들이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있지만 한국에 있었더라면 당하지 않아도 될 많은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특히 경제적인 여유를 갖고 투자 이민을 온 사람들이 아니라면 대부분 힘든 정착 과정을 거친다. 이민 가정이 경험하는 문제점들은 지리적 풍토나 기후상의 문제보다는 상이한 언어와 문화에 대한 적응상의 어려움이 더 크다. 그래서 요즈음 세계화시대에 해외이민은 물리적으로 다른 국가로 이주한다는 의미와 함께 상이한 사회제도 및 생활양식으로 이전한다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성공적인 이민 생활이 되려면 경제적 측면 못지 않게 새로운 문화권에 대한 적응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 이민 1세대는 의사소통상의 어려움과 문화이식 과정에 대한 소극적인 참여로 인해 모국과 이민국 사이에서 경계민족이 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한국에서 가졌던 생활양식과 가치관에 별다른 변화가 없어 일단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모국 지향성이 매우 강하다. 1세대 이민자 중에는 일부 선진국 거주 동포들을 제외하고는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귀소의식이 강하다. 특히 1990년대 들어 한국의 높은 경제발전은 모국으로의 역이민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가져왔다. 이민 1세대는 미지의 세계에서 씨를 뿌리고 2세대는 그 씨를 알뜰히 가꾸고 3세대는 본격적으로 거두어들인다고 한다. 우리 민족은 타민족에 비해 짧은 이민 역사를 가졌다. 전체적으로 보아 우리 동포사회는 현재 터전을 일구는 단계이다. 그러나 한 세대 정도만 지나면 한인 후손 세대의 총체적 역량은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2008년 현재 이민자들이 주축이 된 재외동포 규모는 전 세계 169개국에 700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중국, 인도, 이스라엘, 네덜란드, 이탈리아 다음으로 많은 규모라고 한다. 이는 한반도 인구의 약 10%이며, 전 세계에 우리 동포가 없는 나라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한 인구는 8000만명이 안 되는 가운데 인구 성장이 정체되어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반면 재외동포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 동포사회는 유대인 못지않게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언어와 문화, 풍습을 지켜 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강하다. 또한 한인 특유의 성실성과 교육열에 더해 모국에 대한 애국심이 강하다. 과거 재외동포에 대해 우리는 선망의 대상이자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라는 이중적인 인식을 가진 바 있다. 세계화 시대인 지금 우리 모두는 어디에 살고 있든지 한인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재외동포는 민족의 커다란 자산이다. 지난날 우리의 경제 발전 초기과정에서 재외동포, 특히 재일동포 경제인이 기여한 공헌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넣기 위해 한반도 밖에 있는 700만 해외 동포의 역량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이제 우리 민족의 공간적 경계도 한반도에 국한했던 시각에서 벗어나 전 세계 한민족 공동체로 더 넓게 바라보아야 한다. 21세기 들어 탈(脫) 국민국가 현상이 강화되면서 민족에 대한 국가적 경계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 앞으로 한 나라의 국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 해외 동포의 규모와 그들의 모국에 대한 기여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재외동포가 국가 발전의 중요한 요소이며 민족의 자산이라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재외동포와 같은 해외 인적자원의 유무형 자산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조환복 주 멕시코 대사
  • 1500년전 그녀는 8등신 미인

    1500년전 그녀는 8등신 미인

    1500년 전 여인이 내미는 손은 작았다. 153.5㎝, 오늘날 또래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키에 54.6㎝(21.5인치)라는 가는 허리를 가진 여인은 완연한 16세 소녀의 모습. 단정한 자주색 저고리에 분홍빛 긴 치마, 가르마를 탄 머리는 뒤를 묶어 올렸고, 몸에 걸친 액세서리라고는 왼쪽 귀에만 걸린 하트 모양 금동귀걸이가 다였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가 25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한 경남 창녕 송현동 고분 순장(殉葬) 유골의 인체 복원 모형은 ‘고대 순장 인골 복원연구사업’의 최종 결과물이다. 연구소는 지난 2007년 나온 순장 유골 중 골격이 거의 완벽하게 남은 유골 1조를 복제해 고대 한국인의 모습을 재현해 냈다. 1500년 만에 되살아난 순장 여인은 단아한 모습의 ‘8등신 미인’이었다. 키는 작지만 얼굴 크기 역시 작아 전체 비율이 ‘8등신’에 가까우며, 턱뼈가 짧아 얼굴은 넓은 편이었지만 목이 길었고, 운동량이 많아 몸에는 군살도 없었다. 이 모형은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 관련 분야의 학제간 융합의 결실로도 꼽힌다. 본래 유골의 길이는 135㎝, 여기에 법의학 산출 공식에 따라 다시 수치를 산출하고 피부와 머리카락을 입힌 것이 지금의 키다. 얼굴도 법의학 방법에 따라 두개골에 맞춰 복원됐고, 근육 등 살집은 체질 통계에 따라 그 나이대의 평균 두께만큼 물렁 조직을 입혔다. 거기다 당시 풍습에 따라 의복과 머리 모양까지 고증해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인체 복원이 되도록 했다. 모형 제작은 조각가와 영화 특수 분장 팀의 손을 거쳤다. 김봉건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국내에서 신체 일부가 아닌 전체를 실물 크기로 복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앞으로도 유물에 대한 단순설명이 아니라 당시 생활상을 재구성할 수 있는 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인골 복원모형은 29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로비에 전시된다. 새달 1~6일에는 출토지인 창녕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후 수습된 출토 유물과 함께 다시 전시회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발 못 크게하는 중국 최후의 ‘전족’ 마을

    중국 최후의 전족마을이 현지 언론에 소개돼 관심을 모았다. ’전족’은 천으로 여성의 발을 묶어 작고 뾰족하게 만드는 것으로, 10세기 초부터 약 1000년간 지속된 풍습 중 하나다. 5세 전후로 시작하는 이 풍습은 여자아이의 발을 붕대로 단단히 감아 성장을 막고 형태를 변형시키며, 이 과정을 거치면 발 크기는 10~15㎝를 넘지 않는다. 전족은 발을 묶어서 뼈를 부러뜨리거나 근육을 파괴하기 때문에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어서, 전족을 행할 당시에는 중국 각지에서 어린 아이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전족을 하지 않으면 훌륭한 혼인자리를 마련할 수 없다는 풍습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전족을 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청나라 말기, 전족폐지운동이 일어나면서 이 같은 풍습은 점차 사라졌지만 전족은 아편 등과 함께 중국의 악습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런 전족이 마지막으로 실존하는 곳은 중국 남부의 윈난성이다. 류이(六一)촌에는 전족 할머니가 20여 명 정도 살고 있는데, 78세의 왕 할머니도 이중 한명이다. 5살 때 전족을 시작한 탓에 할머니의 발은 이웃집 할머니와 확연히 다르다. 세치 크기로 작게 오므라든 발이 꼭 연꽃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세치 금련’(金蓮)이라 부르는 전족은 할머니에게 한 평생 고통을 가져다 줬다. 전족이 성행할 당시에는 전족만을 위한 신발이 많이 생산됐지만, 현재는 쉽게 구할 수 없어 대부분은 직접 만들어 신는다. 왕 할머니도 예외는 아닌지라 직접 발의 크기를 재고, 천을 재단하고, 수를 놓아 신발을 만들어 신는다. 하지만 할머니의 발은 예쁜 신발과 정 반대로 험한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류이촌에 사는 전족여성은 300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10분의 1까지 줄어들었다. ‘최후의 전족마을’로 알려진 류이촌은 네티즌들로부터 큰 관심을 모았으며, 전족으로 고통받은 여성들을 위로한다는 내용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데스크 시각] 레비 스트로스와 韓-阿 포럼/이종수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레비 스트로스와 韓-阿 포럼/이종수 국제부 차장

    세계적 석학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가 지난 1일 타계했다. 인류학에 구조조의를 접목한 그가 학자로서 보여준 가장 큰 미덕은 서구인 중심의 인식론에 조종을 울린 것이다. 그의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저서가 ‘슬픈 열대’다. 제목이 시사하듯 서구인이 황폐하게 만든 ‘열대’를 현장조사한 ‘슬픈’ 심정이 곳곳에 묻어난다. 레비 스트로스는 거미, 나무뿌리 등을 먹고, 벌거벗고 생활하는 브라질 원주민에게서 서구인들 못지않은 합리성을 발견했다. 또 야만스럽게만 여기던 식인 풍습에서는 조상들 몸의 일부를 먹으면서 망자의 덕을 얻고, 적의 살점을 먹어 그 힘을 중화시키려는 주술적 의미를 캐냈다. 이 과정을 통해 레비 스트로스는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던 서구인의 편협성과 원주민 사회에 대한 야만적 선입관을 꼬집었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생애 마지막 강의에서 이런 레비 스트로스의 학문 세계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정리했다. 레비 스트로스의 삶을 돌이켜보는 것은 그의 준엄한 경고가 현재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에 독버섯처럼 존재하는 인종차별을 비롯, 우리가 다문화가족에 갖고 있는 편견 등은 그의 교훈이 절실한 이유를 방증한다. 오는 24일부터 이틀 동안 열리는 한-아프리카 포럼도 레비 스트로스의 의미를 생각케 한다. 2006년에 이어 두 번째 열리는 이 포럼에는 장 핑 아프리카연합(AU) 집행위원장을 비롯, 아프리카 14개국 각료급 대표단이 참가한다. 의제는 아프리카 개발을 위한 한국의 이니셔티브와 공동번영, 천년개발목표 달성을 위한 협력 그리고 녹색성장 파트너십 등이다. 현재 아프리카와 포럼을 운영하는 국가는 한국만이 아니다. 일본을 비롯, 중국 인도 터키는 포럼 준비 과정과 결과를 중심으로 AU와 협력을 다져왔다. 이란, 호주도 AU와 파트너십 설정을 추진 중이다. 이런 열기 띤 경쟁은 아프리카의 잠재력과 관련이 있다. 아프리카의 석유 매장량은 2005년 기준 1143억배럴로 세계 매장량의 10%에 이른다. 또 다이아몬드 생산량 8780만캐럿(세계 48.5%), 코발트 2만3800t(44.7%), 망간 3710t(38.2%) 등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또 아프리카에 속한 나라는 53개로 유엔 회원국의 30%를 차지하는 표밭이다. 이에 눈독을 들인 국가들이 일찌감치 아프리카로 몰렸다. 일본은 1993년부터 5년마다 아프리카개발회의(TIC AD)를 열고 있다. 중국도 2000년부터 3년마다 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특히 2006년을 ‘아프리카 해’로 선언한 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등 지도부가 아프리카 16개국을 방문하면서 대규모 원조를 내세워 에너지 개발권을 얻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미국도 중동 이외의 새 석유 공급처 확보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그에 견주면 한국은 아주 늦다. 후발주자로서 더 큰 효과를 거두려면 무상원조나 프로젝트 사업 외에 인식론적 단절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프리카를 단순히 계몽이나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관습을 야만스럽게 보지 않는 열린 시각이 전제될 때 한(韓)-아(阿) 포럼 혹은 아프리카 진출이 성공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1차 한-아 포럼은 서로의 이해를 늘리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2차 포럼의 주요 목적도 파트너십 구축과 호혜적 협력 틀 수립이다. 여기에 머물지 말고 아프리카를 보는 더 열린 눈을 가져야 한다. 약간 낭만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포럼을 준비하거나 참석하는 이들에게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일독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종수 국제부 차장 vielee@seoul.co.kr
  • [길섶에서] 김장의 추억/오일만 논설위원

    어릴 적 겨울철 풍속도 가운데 하나가 김장 담그기였다. 지금처럼 김치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일종의 연례행사였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집에 모여 떠들썩하게 김장을 담그던 기억이 선하다. 잔심부름하다가 얻어먹는 ‘겉절이’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런 공동체적 풍습은 단절화된 아파트 문화가 도입되면서 점차 사라지는 옛 모습이 됐다. 엊그제 모처럼 옛날로 돌아가 떠들썩한 김장 담그기를 했다. 올해 처음으로 시도한 주말농장에서 100포기 가까운 배추를 수확하게 됐다. 당초 장인어른이 심심풀이로 시작했던 배추농사가 제법 결실을 보게 되자 처갓집에 총동원령이 떨어진 것이다. 텃밭에서 배추를 뽑아 소금에 절이고 무채를 버무려 김칫소를 집어넣는 일련의 작업이 공동으로 이뤄졌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김장 김치를 먹으며 품평회가 열렸다. 시장 배추와 달리 농약 없이 기른 무공해 배추라 맛이 좋다는 평이다. 나름 고생했던 배추 농사가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땀 흘리는 만큼 보람을 얻는 흙의 철학을 주말농장에서 배운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12일 TV 하이라이트]

    ●현장르포 동행(KBS1 오후 11시30분) 인천 서구의 어느 빌라. 넓은 세상에 믿고 의지할 데라곤 서로밖에 없는 봉관, 진관, 시온 삼형제가 살고 있다. 올해 3월, 아빠가 간경화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덩그러니 남겨진 삼형제. 형제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아빠와 이혼 뒤 집을 떠난 엄마를 찾는 일이다. 과연, 삼형제는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노래를 위한 원칙을 고집하는 이은미. 노래는 나의 운명, 무대는 나의 힘이라 말하는 이은미를 만난다. 국내에서 라이브 공연을 가장 많이 했지만 무대에 서기 전 심하게 긴장하는 이유, 그녀가 일부러 목소리를 변화시킨 사연, 힘들었던 공백기를 거치고 무대에 다시 서기까지의 히스토리를 들어본다. ●사주후愛(MBC 오후 6시50분) 술만 마시면 인사불성이 되어 버리는 남편을 감당할 수 없다는 아내와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몰라주고 술 마시는 것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남편. 동거생활 포함 4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점점 악화되어 가기만 하는 부부관계. 그들은 왜 이렇게 다른 입장에 서게 된 것일까?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0분) 강원도 평창의 한 야산에 자리 잡은 문제의 무덤. 무덤 하나를 두고 벌어진 믿지 못할 사건. 무덤은 분명 하나인데, 주인이 무려 세 명. 서로 자신의 조상 묘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결국 파묘를 하기로 한 세 집안. 하나의 무덤을 둘러싼 세 집안의 신경전, 과연 무덤의 주인은 누구일까. ●세계테마기행(EBS 오후 8시50분) 수만년의 역사를 지닌 선사시대 유물인 고부스탄의 암각화와, 세계의 비경으로 꼽히는 진흙화산. 카스피해 해안에서 탈리쉬인들의 오랜 전통과 풍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라카란. 169세로 생을 마감한 세계 최장수자가 살았던 장수마을, 레릭. 불의 땅 아제르바이잔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한다. ●전설의 시대(OBS 오후 11시) 1960년대 세상을 놀라게 한 천재소년 김웅용. 당시 그는 4세에 아이큐는 무려 210이었다. 생후 6개월 때 자연교과서를 읽었고, 5세에 대학교 그리고 8세에 미 항공우주국 NASA에 초청 받아 13살에 열물리학, 핵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과연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 1500년전 가야 ‘순장 인골’ 미스터리 풀렸다

    1500년전 가야 ‘순장 인골’ 미스터리 풀렸다

    2007년 12월 경남 창녕 송현동에 있는 한 고분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골 네 구가 발견됐다. 남녀 두 쌍이 한 무덤에서 나왔으나 발굴팀은 신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이미 도굴꾼들이 다녀간 뒤였기 때문이었다. 무덤 주인 자리에는 관조차 없을 정도로 훼손돼 있었다. 남아 있는 인골도 여인으로 추정되는 한 인골을 빼고는 팔다리의 뼈만 남아 있었다. ●학제간 융합연구의 개가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유골마저 도굴꾼들에게 짓밟힌 이들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고고학 법의학 해부학 유전학 화학 물리학 등 국내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처럼 힘을 합쳤다. 이들 인골은 애초 법의학적인 방법으로 수습돼 컴퓨터 단층촬영과 3차원 정밀스캔, DNA 분석 등 각종 최첨단 검사를 거쳤다. 그 결과 이들은 1500년 전 함께 순장됐다는 사실 등 인골에 얽힌 미스터리가 어느 정도 풀렸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사인이 중독 또는 질식사였다는 것. 넷 중 여자 인골은 사랑니도 채 자라지 않은 키 152㎝의 16세 소녀였는데, 목이 졸리거나 독약을 먹고 죽어 주인과 함께 순장됐다. 당시의 사회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넓은 얼굴에 팔이 짧은 이 소녀는 정강이와 종아리뼈의 상태를 볼 때 무릎을 많이 꿇는 생활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머리뼈와 치아 상태에서는 평소 빈혈과 충치를 앓았음을 알 수 있고, 출산 경험은 없었다. 소녀의 신분은 6세기 가야지방에 살았던 시녀였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 이른바 학제간 융합으로 밝혀낸 쾌거였다. ●잡곡보다 쌀·콩·고기 많이 먹어 함께 무덤 속에 누워 있던 다른 인골들은 팔다리 뼈 정도만 남아 있어 자세한 사정은 알기가 어렵지만 잡곡보다는 쌀·보리·콩·고기 등을 많이 먹어 영양 상태는 양호했다. 두 남자는 DNA 분석결과 외가쪽이 같은 혈통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는 더 있다. 남자 한 명은 엄지·새끼를 뺀 나머지 발가락마다 뼈마디가 하나씩 더 발견됐다. 이성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처음에는 기형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사슴뼈로 판명됐다.”고 전했다. 사슴뼈가 왜 거기서 나왔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전례도, 알려진 풍습도 없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 등이 실시한 ‘고대 순장인골 복원연구사업’의 성과다. 7일 전북대에서 열리는 제33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본인 장례식에 나타나 “이 시신은 누구?”

    본인 장례식에 나타나 “이 시신은 누구?”

     브라질의 59세 남성이 지난 2일 아침(이하 현지시간) 남부 파라나 주의 산토 안토니오 다 플라티나 마을에서 열린 장례식에 나타나자 가족들이 놀라 자빠졌다.다름 아닌 본인 장례식이었기 때문.  벽돌공 아드미르 호르헤 곤칼베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4일 영국 BBC가 현지 일간 ‘오 글로보’를 인용한 데 따르면 1일 밤 마을 근처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시신은 신원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친구들과 럼에 견줄만한 독주 ‘핑가’를 나눠 마신 뒤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숨진 것이 틀림없다고 친구들은 짐작했다.  여조카 로사 삼파이우와 어머니,두 삼촌은 “아니지,아니지.” 했지만 이모와 네 명의 친구가 부득부득 맞다고 확인해 장례식을 치르게 된 것.원래 사망 다음날 장례를 치르는 게 브라질 풍습인 데다 이날은 죽은 자를 경배하기 위해 묘지를 찾는 피나도스 휴일이어서 관례를 좇아 다음 날 장례를 치르는 게 됐다.  로사는 “우리가 도대체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장례식을 진행하는 것 말고요.”라고 혀를 끌끌 찼다.이어 “그의 어머니는 관 속의 시신을 살펴보더니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보고 또 봐도 자기 자식인 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얼마 안 있어 시신이 장례식에 걸어나온 것처럼 나타났다.살았다 싶더라.”고 말했다.  곤칼베스는 밤새 트럭 정류소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다 자신의 장례가 치러진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 살아있음을 알렸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엉뚱한 시신은 그가 술 마실 때의 옷차림과 너무 비슷했다고 한 경찰관은 확인해줬다.  경찰 대변인은 2일 오후에 시신의 신원을 정확히 확인해 다른 주의 묘지에 안장됐으며 신원을 밝힐 수 없음을 양지해달라는 당부를 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종로구, 한옥 홈스테이 운영자 모집

    서울 종로구는 이달 말까지 지역 한옥 소유자를 대상으로 ‘한옥 홈스테이’ 운영자를 모집한다.신청자격은 ▲종로구에 실제 거주하고 한옥에 적합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외국인에게 제공할 수 있는 독립 침실 구비 ▲조식 제공이 가능 ▲이용자의 불편이 없도록 욕실이나 샤워시설 등 편의시설을 갖추어진 곳 ▲의사소통을 위해 한 가지 이상의 외국어 구사가 가능하고 ▲인종이나 종교, 외국문화에 편견이 없는 사람 등이다.홈스테이를 통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호텔이나 기존 숙박시설과 달리 한국의 가정을 방문해 그 가정의 일원으로 생활할 수 있다. 외국인은 머무르는 동안 한국의 풍습·생활습관·살아있는 한국어를 습득하고, 호스트 가정은 홈스테이를 통해 다양한 나라의 환경과 문화를 공유할 수 있다. 홈스테이는 인종과 국경을 초월해 우정을 맺는 시민 참여형 국제화프로그램이기도 하다.종로구는 관광 활성화를 위한 홈스테이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를 순수 관광객 유치에 두고 단계적으로 진행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먼저 올해 안에 홈스테이 운영자 모집 기준과 지원 범위에 관련된 조례를 제정해 호스트를 모집하고, 홈스테이 운영자 교육을 실시한다. 또 역사·문화·관광 홈페이지 고도화 사업과 연계해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내년에 시범 실시하기로 했다.또 종로구는 외부기관과 호스트 가정을 연결해 주고 홈스테이 사례집 발간과 수요기관 홍보 등을 통해 홈스테이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홈스테이 사업 위탁운영을 전면 실시한다는 방침이다.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영친왕 입던 옷 등 333점 중요민속자료 지정 예고

    영친왕 입던 옷 등 333점 중요민속자료 지정 예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1897~1970년)이 입었던 옷이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2일 ‘영친왕 일가 복식 및 장신구류(英親王 一家 服飾 및 裝身具類)’를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유물은 궁중의 의례 복식과 평상복, 또 이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장식품을 포함해 총 333점에 이른다. 영친왕이 직접 착용했던 곤룡포와 옥대, 탕건, 익선관(翼善冠) 등을 비롯해 영친왕비와 왕세손이 착용한 의복·장신구도 모두 포함됐다. 이와 더불어 ‘변수 묘 출토 유물(邊脩 墓 出土 遺物)’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됐다. 15세기 변수(1447~1524년)의 묘에서 출토된 묘지(墓誌), 명기(明器) 등 다양한 부장품은 당시 상·장례 풍습 연구 및 생활상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자료다. 한편 문화재청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53호 ‘나주 박경중 가옥’을 중요민속자료 ‘나주 남파고택(州 南派古宅)’으로 승격 지정 예고했다. ‘나주 남파고택’은 조선시대 후기(1884년)에 남파 박재규(1857~1931년)가 건립하고 1910년대와 1930년대 개축한 건물로 남도 지방 상류주택의 구조가 잘 나타나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조선 장례풍속 유물 8000점 전시

    서울역사박물관은 4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조선시대 한양(서울) 사람들의 장례 풍속을 보여주는 ‘은평 발굴, 그 특별한 이야기’ 전을 개최한다. 이 전시회는 은평뉴타운 조성 과정에서 나온 유물 8000여점으로 마련됐다. 전시회는 총 5개 마당으로 ▲첫째 마당(옛 은평을 향하다)에선 은평의 역사와 무덤이 많은 이유를 알아보고, ▲둘째 마당(옛 서울사람을 만나다)은 이말산에 남아 있는 비석으로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살펴본다. 사람 뼈를 통해 과거 서울 사람들이 앓았던 질병도 추적해 본다. ▲셋째 마당(예법과 풍습을 돌아보다)은 한 서울 사람의 죽음에서 매장까지 과정을 추적하며, 발굴된 유물을 통해 조선시대 장례를 알아본다. ▲넷째 마당(발굴현장을 찾다)은 발굴 성과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유물과 모형이 전시된다. ▲다섯째 마당은 무덤 이외에 절터와 가마터 등의 유적이 전시된다. 한강문화재연구원과 중앙문화재연구원은 2005년부터 지난 7월까지 은평뉴타운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시대~근대 무덤 5000기와 통일신라시대 가마터 등을 발굴했다. 분청사기어문매병, 백자명기세트, 유리제 구슬 등 유물 총 8000여점이 출토됐다. 북한산 서쪽 자락에 있는 은평뉴타운 지역은 조선시대 개경에서 한양으로 들어서는 경계이자 도성과 서북지방을 잇는 서북대로의 출발점이다. 전시회 개막식은 3일 오후 3시 개최되며 일반관람은 4일부터 시작된다.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오후 9시, 주말 오전 10~오후 6시. 관람료는 19~64세 700원, 그 외에는 무료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부산 영어마을 글로벌빌리지 만족도 A학점

    지난 7월 문을 연 도심형 영어마을인 부산글로벌빌리지가 순항하고 있다. 부산시는 부산글로벌빌리지가 원어민과의 자유로운 대화와 실제상황을 체험하는 살아있는 영어교육 등으로 학생과 학부모 등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며 참가희망자도 점차 늘고 있다고 22일 밝혔다. 시에 따르면 개원 후 현재까지 정규과정(8028명), 여름방학캠프(1076명), 일일체험(813명), 방과 후 교실 및 영·유아과정(324명) 등 총 1만 241명이 참가했다. 또 최근 정규과정 및 방학캠프 참가자 7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참가자의 90%가 프로그램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수업이 영어학습에 도움이 되고, 원어민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고 답한 학생은 88%, 체험시설과 수업재미에 대해서도 90% 이상이 만족하는 등 영어마을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에는 저소득 취약계층 꿈나무 500여명을 무료로 영어캠프에 참여하도록 하는 등 계층 간의 영어격차를 없애고, 공무원 글로벌전담요원 양성과정, 외국인 한글반 개설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더 많은 시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부산글로벌빌리지는 청소년과 시민들의 영어권 문화체험 및 영어소통능력 향상 등을 위해 부산시와 시 교육청 등이 320억원을 들여 서면의 옛 개성중 부지에 조성했다. 유럽풍의 이국적 분위기의 체험학습 동에는 공항과 지하철, 출입국심사대, 쇼핑센터, 병원 등 다양한 실제상황을 경험하면서 영어를 배우고 구사할 수 있는 50여종의 체험시설과 영어권 국가의 문화와 풍습을 소개하는 문화원을 갖추고 있다. 또 교육청에서 직영하는 전국 최초의 영어도서관이 운영되고 있어 부산글로벌빌리지가 명실상부한 영어교육의 메카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도심형 영어마을인 부산글로벌빌리지는 청소년과 시민들의 영어노출기회를 확대하고, 현장중심의 살아있는 영어교육으로 일선 학교에서 벌이는 영어 공교육을 보완해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57인 선현들의 묘비명으로 본 성찰과 지혜

    57인 선현들의 묘비명으로 본 성찰과 지혜

    “나는 젊어서는 성실하다가 장성해서는 근심이 많았고 늙어서는 어둑어둑하므로, 시원을 따져보고 끝에서 처음으로 되돌려 몸뚱이와 함께 변화해 없어지지 않을 것을 찾아본다 해도, 끝내 그림자와 음향처럼 방불한 것을 찾을 수가 없다. 게다가 80년 세월을 죄다 낭비해 버린 탓에, 뻔뻔하게 붓을 잡고 편석(片石)을 빌려서 문장으로 꾸미면서, 휑하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모르고 있다니, 아무래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조선 후기 농업백과전서 ‘임원경제지’의 편찬자인 서유구(1764~1845년)는 죽기 전 남긴 자찬 묘표(무덤 앞에 쓸 묘표에 스스로 글을 적는 것)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오비거사생광자표(五費居士生壙自表)’란 제목 그대로 서유구는 이 글에서 자신이 인생에서 낭비한 다섯 가지를 정리했다. 그러면서 손자 태순에게 이르기를, “내가 죽은 뒤에는 우람한 비를 세우지 말고, 그저 작은 비석에 ‘오비거사 달성 서 아무개 묘’라고 써준다면 족하다.”고 당부했다. 해박한 학식으로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80년 세월을 죄다 낭비해 버렸다.”고 자책하는 대목에선 자신을 평가하는 선비의 서릿발처럼 엄정한 잣대가 느껴진다. ●옛 선비들은 생전에 묘표·만장 등 만들어 우리 조상들은 살아 생전 자신의 무덤을 만들고, 스스로 묘지(墓誌)와 묘표(墓表), 묘비명, 만장(輓章)을 짓는 풍습이 있었다. 중국 후한 시대에 비롯된 이 풍습은 고려 때 김훤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많은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살아있을 때 죽음과 대면하는 연습을 하며 나약해지거나 게을러진 내면을 추스르고, 남은 인생을 진실되게 살고자 마음을 다잡았던 것이리라. 고려대 심경호 한문학과 교수가 지은 ‘내면기행’(이가서 펴냄)은 김훤부터 일제강점기 이건승까지 역사속 인물 57명의 묘비명을 통해 그들이 추구한 삶과 가치관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현대인 ‘웰다잉’시대에 참고할 만해 퇴계 이황(1501~1570년)은 4언 22구의 글을 지어 자신의 묘비에 쓰도록 했다. “태어나 크게 어리석었고, 자라서는 병치레가 많았다. 중간엔 배운 것이 얼마나 되었나, 늘그막엔 왜 외람되이 작록을 받았나?(중략) 시름 가운데 즐거움 있고, 즐거움속에 시름 있도다.” 허균과 동문수학한 금각(1569~1586년)은 폐결핵으로 18세에 세상을 떴는데 숨지기 직전 “뜻은 원대하지만 명이 짧으니 운명이로다.”란 간결하면서 강렬한 묘지를 남겼고, 조선 인조때 문신 이준(1560~1635년)은 “어찌 감히 게으르랴, 죽은 뒤에나 그만두리라.”며 쉼없는 정진을 후손에게 독려했다. 조선 전기 시인 남효온(1454~1492년)은 “다섯 딸은 애비 찾아 울부짖고, 아들은 하늘 부르며 통고하며 종 아이는 와서 막걸리를 올리고, 승려는 와서 명복을 비네”라며 장례식 풍경을 상상한 시를 남겼다. 이어 “다만 한스럽기는 세상 살았을 적, 끔찍하게 여섯 액운이 모였던 일”이라며 용모가 추해 여색을 가까이 못한 것 등을 들었다. 책에 따르면 선인들은 죽음에 대처하면서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자신의 본래성을 추구했다. 웰다잉 프로그램의 하나로 묘비명을 써 보는 현대인들이 늘어나는 요즘, 옛 사람들의 묘비에서 성찰과 지혜를 찾아볼 일이다. 2만 3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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