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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日 ‘런치메이트 증후군’과 내셔널리즘/임상빈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열린세상] 日 ‘런치메이트 증후군’과 내셔널리즘/임상빈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지난해 도쿄대·와세다대 등 일부 대학 화장실에 ‘화장실에서 식사를 하지 말라.’는 쪽지가 붙은 일이 종종 눈에 띄었다고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대학 교수가 학생을 대상으로 화장실에서 밥을 먹은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사실이었다.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예’라고 대답했다. 일본 사회에 하나의 충격을 던진 사건이다. 일본의 도하 신문 방송에 보도된 내용이다.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 이유는 ‘혼자 식사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다.’, ‘외톨이라는 인상을 주기 싫다.’는 것이었다. 다소 황당하고 엉뚱한 대답이다. 혼자 점심 먹는 걸 공포로 여기는 심리를 정신과 의사인 마치자와 시즈오는 ‘런치메이트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언론은 “친구와의 관계에 집착하는 게 화장실 식사 현상과 관련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키이스 페라지의 저서 ‘혼자 밥 먹지 마라’라는 책을 읽어 보라고 권했다. 이 책은 성공적인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원한다면 혼자 식사하는 버릇을 절대 피해야 한다는 조언을 담고 있다. 독자들은 하필이면 왜 화장실일까라는 의문을 가질지 모른다. 일본인이 생각하는 화장실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 전통적인 변소를 ‘가와야’(厠)라고 했다. 또 변소를 ‘가와야노가미’(厠の神), 신이 머무르는 장소 로 여겼다. 임신부가 변소를 깨끗이 해야 예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이나 ‘셋징(雪隱·변소) 마이리(參り)’도 그런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셋징 마이리는 아이가 태어난 지 3일과 7일째 되는 날 아이를 안고 변소에 가는 풍습이다. 때문에 일본인에게 화장실에서 하는 식사는 결코 불결한 행위가 아닐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실 식사는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하나의 예임을 부정할 수 없다. 겉과 속이 다른 행동 양식, 즉 혼네(本音·속)와 다테마에(建前·겉)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친구와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일본인의 혼네라면, ‘홀로 식사하는 상황’은 다테마에가 아닐까. 일본인의 행동 기준은 ‘내’가 아니라 ‘남’인 경우가 많다. 이미 고전이 된 ‘국화와 칼’에서 루스 베네딕트는 이를 ‘수치’의 문화라고 규정했다. 베네딕트는 “신 앞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서양 사람(죄의 문화)과 달리 일본 사람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애쓴다.”고 말했다. 놀라운 통찰력이다. 일본학자 센켄은 일본인 자신을 더욱 가혹하게 평가했다. “남 앞에서는 수치를 의식하지만 남이 보지 않으면 무슨 짓도 가능하다.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는 빈약한 역사의식으로 이어졌다.”고 통렬하게 자기반성을 하고 있다. 위기의 상황에서 내재된 본성이 드러나는 것은 개인이든, 회사든, 국가든 마찬가지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후의 일본 정부가 이웃나라에 보여준 일련의 행태는 센켄의 자기반성과 거리가 먼 듯하다. 남을 의식조차 하지 않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허용 기준치의 100배가 넘는 방사능 오염 물을 바다에 방출했다. 인접국인 우리 나라엔 한마디 사전 양해도 구하지 않았다. 수많은 이웃 국가들이 일본의 아픔을 함께하겠다며 구호물자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경제대국 일본의 자존심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웃 나라들의 온정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일례로 태국이 쌀을 지원하겠다고 하자 “재고가 300만t이나 있다.”며 거절했다. 더욱이 난국 속에서도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중학교 교과서 수를 대폭 늘려 검정을 통과시켰다. 일부 교과서는 외무성 홈페이지를 그대로 옮겨놓다시피 했다. 동아시아 공생공영을 위한 일본의 역할을 자임했던 민주당이 태평양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라는 상황에서 결정한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일본 정부의 인식이 사방이 가로막혀 있는 화장실과 같은 밀폐된 공간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 언론이 화장실 식사에 대해 ‘성공하기 위해선 홀로 식사하는 버릇을 피하라.’고 했던 충고는 정작 일본 정부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존중받기 위해서는 일본식 내셔널리즘을 버려야 한다.”는 충고 말이다.
  • “충무공 전사 직후 초분 매장 안했다”

    “충무공 전사 직후 초분 매장 안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벼슬 때문에 84일 만에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전사 직후엔 남해 고금도에 초분 형태로 매장된 게 아니라 안치만 됐다가 충남 아산으로 시신이 옮겨졌다고 봅니다.” 홍순승 충남도교육청 장학관은 18일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의 이순신연구논총에 실린 논문 ‘이순신 장례과정 연구’에서 “충무공은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뒤 남해 고금도에 안치됐다가 고향인 아산으로 운구돼 84일 만인 이듬해 2월 11일 금성산에 안장됐다.”고 주장했다. 홍 장학관은 “충무공은 전사 직후 선조가 우의정 벼슬을 내려 당상관에 올랐지만, 전사 당시의 벼슬만으로도 ‘4품 이상은 3개월 후 치르도록 한다’는 경국대전의 법도대로 장례가 치러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벼슬 있는 사람의 당시 장례풍습에는 가묘를 쓰지 않는다며 고금도에 가빈(家殯)을 차려 충무공 시신을 안치했을 뿐 초분에 임시 매장했다가 아산으로 운구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또 충무공이 1604년 좌의정에 추서, 선무공신 칭호를 받자 후손들이 “첫 장례가 전란 직후여서 제대로 예우를 갖추지 못한 채 치러졌다.”고 조정에 이장을 상소해 16년 뒤 어라산으로 크게 확장, 이장하면서 성역화 과정을 걸었다고 설명했다. 충무공은 1793년 영의정까지 올라 묘역에 상석·향로석·장명 등이 설치됐고, 정조가 친필로 신도비까지 세우면서 격이 한껏 높아졌다. 홍 장학관은 “명확한 근거와 자료 없이 초분 매장 등을 주장하는 설이 난무해 당시 법도에 따라 충무공의 장례 과정을 추정했다.”고 말했다. 아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5000년 전 게이가 커밍아웃? 그 근거는…

    5000년 전 게이가 커밍아웃? 그 근거는…

    고대 여성의 무덤에서만 보이던 특징이 한 남성의 무덤에서 발견됨으로서 5000년 전에도 동성애자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연구에 나선 고고학자들이 5000년 전 원시인의 것으로 추측되는 무덤의 특징을 살펴본 결과 지금까지 알려진 성별에 따른 매장법과 다른점을 발견했다. 체코에서 발견된 이 무덤은 BC 2900~2500 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 시기에 남자가 숨을 거두면 머리를 서쪽으로 둔 채 몸을 오른쪽을 향하게 두고 매장하는 것이 풍습이었다. 여성은 반대로 동쪽을 향해 머리를 두고 몸을 왼쪽을 향하게 눕힌 뒤 매장했다. 또 남자가 숨지면 대부분 돌이나 망치 등 무기들을, 여자가 숨지면 액세서리나 주방용품 등을 함께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하지만 체코에서 발견된 이 무덤 속 남성은 머리를 서쪽으로 둔 반면 몸은 왼쪽을 향해 눕혀진 상태였다. 특히 단 하나의 무기도 발견되지 않은 대신 주방에서 쓰는 주전자만 함께 출토된 점이 학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고고학자들은 당시 사람들이 장례풍습을 매우 중시한 점을 미뤄, 이 같은 매장품들과 몸이 향하는 방향이 단순한 실수가 아닐 것이라고 주장한다. 연구를 이끈 카밀라 레미소바 베시노바 박사는 “이번에 출토된 유골의 주인은 남다른 성적 성향을 가졌을 것”이라면서 “호모섹슈얼이거나 트랜스베스테이트, 즉 이성 특히 여성의 복장을 좋아하는 복장 도착자 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베트남 출신 도티란앵씨 동대문구 초교에서 교육

    베트남 출신 도티란앵씨 동대문구 초교에서 교육

    “다문화가족 아이들에게도 당찬 포부가 있습니다. 또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똑같이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갖가지 차별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장벽을 허물려고 교사로 나서게 됐습니다.” 2006년 10세 연상의 한국인 회사원과 결혼해 다섯살배기 딸아이를 둔 베트남 출신 도티란앵(26)씨는 “우라와 같은 다문화가족에 대한 이해를 돕겠다는 뜻을 품고 초등학교 강단에 오르게 됐다.”며 29일 이같이 밝혔다. ●휘봉·배봉·전곡초 등 3개교서 수업 동대문구는 30일부터 지역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다문화 이해교육을 실시한다. 현재 구에는 200여명의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초·중학교에 재학 중이다. 교육 대상은 배봉·전곡· 휘봉초교 등 3개교 27개반이다. 도티란앵씨는 2008년부터 1년에 5~7차례 회기동에 자리한 동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다문화가족을 상대로 베트남어와 문화·음식·민족을 소개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그는 “피부색 때문에 말도 느리다는 등 왕따시켜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통에 마음고생을 하는 부모가 많다.”며 “다른 나라의 풍습, 습관, 예의범절을 배우는 시간을 통해 어느 나라 아이든 생각하는 방식이나 살아가는 방식이 같다는 걸 인식시켜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 중 한명이 이방인일지 모르지만 자식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지닌 엄연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한국생활 중 가장 힘든 점은 언어보다 자녀교육인 것 같다.”며 “다섯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학습지를 가르치는 등 한국 엄마들의 교육열을 따라잡느라 요즘 힘들다.”고 혀를 내둘렀다. 도티란앵씨는 30일 휘봉초등학교 2학년 3반을 시작으로 베트남에 대한 이해교육을 담당한다. 도티란앵씨 외에도 일본 출신 고바야시 후지에, 중국교포 3세인 김순옥씨가 함께 참여한다. 이들은 이달 초부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강의에 필요한 교육과정 이수, 강의자료 수집 등 유익하고 즐거운 교육을 위해 준비해 왔다. 지난해에는 베트남, 중국, 일본, 필리핀인 4명이 50여 차례에 걸쳐 찾아가는 다문화교육을 해 호응을 얻었다. ●“한국엄마 교육열 따라가기 힘들어” 유덕열 구청장은 “앞으로도 다문화 사회구조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우리의 자녀가 서로 아끼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통해 다문화가족과 한 이웃이 되어 더불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2006년 문을 연 동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한국어교육, 이중언어교실, 언어발달 지원사업, 취·창업 지원, 방문교육, 통·번역 서비스 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선보여 다문화가족의 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열린세상] 오코노기 교수의 마지막 강의/장제국 동서대 부총장

    [열린세상] 오코노기 교수의 마지막 강의/장제국 동서대 부총장

    일본의 한반도 문제 권위자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의 정년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강의가 지난 18일 게이오 대학에서 있었다. 필자도 제자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400여명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재학생뿐만 아니라 일본의 내로라하는 한반도문제 전문가, 도쿄 주재 한국 특파원들을 비롯한 한·일 양국 주요 언론인, 그리고 졸업생 등이 시종 진지한 표정으로 교수의 마지막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선생은 차분한 목소리로 한국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 한국과의 인연, 그리고 그간의 연구 성과 등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마치 현대한국정치사 강의를 듣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선생은 격동의 한국정치를 잘 설명하고 있었다. 선생의 인생진로가 한반도와 얽히게 된 계기는 학부생 때 한국에 대해 연구해 보라는 지도교수의 조언 때문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1960년대) 군사독재정권하에 있던 빈곤한 한국에 대해 일본사회는 극도의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그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한국을 공부해서 뭐하느냐.’는 만류가 대세를 이루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회의론이 그의 한반도 연구에 대한 의지를 꺾지 못했고, 그는 일본인 한국교환유학생 1호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강의가 무르익어 갈수록 오코노기 선생이 명성을 누리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당장 인기가 없고 미래도 없어 보이는 한국에 대해 연구하겠다고 하는 ‘인생을 건 결단’이 있었다는 점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개인적 결단에 대해 국가가 그냥 내팽개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각종 연구지원이 잇따랐고, 그러한 지원이 한국전쟁과 관련한 1차자료 수집을 위한 장기간의 미국 워싱턴 체류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가 인생에 있어서 ‘아무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했다. 이는 외로운 결단을 한 연구자에 대한 사회적 ‘보상 시스템’이 존재함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사실 일본에서는 비인기 분야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활성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홋카이도 대학의 슬라브 연구소에서는 국경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매년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연구원들이 걸어서 답사하며 변경 지역의 문화, 언어, 역사, 풍습 등을 이 잡듯이 조사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철저한 국경연구가 영토분쟁 시 체계적인 논리를 펼 수 있는 밑거름을 제공함은 물론이다. 과연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비인기 분야의 연구자들이 발이나 붙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잘나가는 분야에만 온통 쏠리는 우리네 연구 풍토가 한국판 ‘오코노기’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해 끊임없는 열정을 보여 왔다는 점이다. 선생은 한국의 대표적 학자들은 물론, 정계와 관계의 주요 인물들과 광범위한 인맥을 쌓아 왔다. 이들과의 지속적인 의견 교환을 통하여 생각을 정리 분석하여 수많은 논문을 내놓았다. 선생의 취재 수첩은 깨알 같은 정보로 가득하다. 세 번째는 대학교수로서 그는 오직 한 길만 걸었다는 점이다. 조금만 학문적 업적이 쌓이고 명성을 얻으면 정계에 진출해 버리는 일부 우리 학계의 현실과는 달리 선생은 오직 자신의 영역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것이다. 선생은 강의 말미에 자신의 지도교수가 일러준, 대학교수로서 가져야 할 교육·연구·대학행정·사회공헌·후진양성이라는 5가지 덕목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는 소위 잘나가는 ‘유명’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로서의 모습을 한번도 흩트린 적이 없었음을 필자는 기억한다. 필자의 서툰 일본어로 작성된 학기말 논문을 선생은 언제나 손수 빨간색 펜으로 빼곡히 수정해 돌려주었는데, 이에 긴장하고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는 앞으로의 한·일관계는 일본이 한국 통일과정에 얼마나 공헌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말을 뒤로하고 90분 강의를 마무리했다. 한반도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선생의 한·일관계 처방인 것이다. 오코노기 선생의 건승과 퇴직 후에도 보다 왕성한 연구 활동을 이어 나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씨줄날줄] 공귀족/이춘규 논설위원

    과거 우리의 명절은 사계절 농사 주기와 관계가 깊었다. 농사일을 시작하는 음력 1월 1일은 설날이고, 수확기인 8월 15일은 추석이었다. 우리네 조상들은 설날에는 전해 가을 수확한 곡식으로, 추석 때는 햅쌀과 햇과일로 상을 차려 조상들에게 제사 지내고, 일가친척들이 모여 앉아 덕담을 주고 받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설날 마을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집단 세배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명절 풍습은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도시화로 크게 변했다.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 놀이를 하던 단오·칠석 등 명절은 빠르게 쇠퇴했다. 설과 추석이 되면 고향을 떠났던 많은 사람들이 기차·버스를 타고 고향을 찾았다. 기차 객차는 물론 기관차 빈 곳, 짐칸도 사람들이 빽빽이 타고 이동했다. 사고도 많아 1960년 1월 서울역 압사사고로 31명이 숨졌고, 1975년 9월에는 용산역 참사로 4명이 숨졌다. 명절은 기쁨이자 고통이었다. 명절은 보통 며느리들에게 아픔이다. 살림이 빠듯한 어머니들의 명절 고통은 심하다. 한동안 며느리, 어머니의 명절 고통이 조명을 받았다. 최근 들어서는 말은 못하고 삭이는 아버지, 특히 장남들의 명절 고통이 부각되고 있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하기 꺼려하는 부인이나 형제들의 누적된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장남의 고통이 심각하다는 것. 남북 이산가족이나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실업자들의 명절 고통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터. 보통 일본인들의 명절나기도 힘겹다. 일본에서는 연말연시와 어린이날 전후, 오봉(추석) 연휴 때 대이동을 한다. 철도·비행기·버스가 임시 증편된다. 평소보다 요금은 비싸지만 고향 가는 귀성전쟁은 연례행사다. 취직빙하기를 맞은 청년 미취업자나 미혼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인터넷에는 며느리들의 명절 스트레스 하소연이 넘친다. 미국·유럽에서도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휴가 때 귀성전쟁이 만만찮다. 중국에서는 춘제(설) 귀성을 두려워하는 공귀족(恐歸族)이 늘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열차표 구하기, 부모 선물, 친척 세뱃돈 등이 부담스럽다. 맞선을 보라는 부모 독촉까지 겹치면 물심양면의 부담이 가중된다. 중국언론 인터넷여론조사에 따르면 ‘왜 귀성하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젊은이 44%가 ‘비용 과다’를 꼽았다. 대졸자 월급 1~2개월 분인 4000위안(약 68만원) 안팎 귀성비용은 공포란다. 명절이 원수 같다던 어른들의 말씀처럼 명절 고통은 만국공통인가 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미고사쯤은 아내 나라 말로 들려주세요”

    “미고사쯤은 아내 나라 말로 들려주세요”

    “다 같이 따라해 보세요. 미, 고, 사.” 지난 18일 오후 4시, 서울 신정동 양천문화회관 1층에서 열린 ‘국제결혼 안내 프로그램’에 참석한 150여명의 한국인 남편들이 한목소리로 ‘미고사’를 외쳤다. 김나영 양천외국인근로자센터 강사는 “‘미고사’는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의 줄임말이에요. 이런 말쯤은 아내나라 말로 꼭 할 줄 아셔야 해요.”라면서 “아내들이 미고사를 모국어로 들으면 타국생활의 설움이 눈 녹듯 녹아내릴 거예요.” ●외국인 아내 맞는 한국인 이수 의무화 지난해 7월 부산에서 스무 살 베트남 신부 탓티황옥이 정신병력을 가진 남편에게 맞아 죽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 이번에 서울출입국관리소에서 주최한 ‘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은 정부가 내놓은 대책 가운데 하나다. ‘남편들의 아내 나라에 대한 문화와 풍습 이해도를 높여 보다 원만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지난해 10월 6일 처음 실시된 이래 한달에 두 번씩 열려 벌써 8회째다. 3시간 동안 해당 나라의 가정문화 등을 상세히 소개한다. 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이수하지 않으면 사실상 비자 발급이 안 되도록 해 외국인 아내를 맞는 한국인 남편들이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참가자도 많다. 서울·경기지역 참가 인원이 첫회 때 121명을 제외하고 줄곧 150명을 넘었다. 150여명의 한국인 남편들이 참가한 이날도 일부 참가자들은 “바쁜데 이런 곳엘 왜 불러.”라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모두들 아내가 살았던 나라 소식에 귀를 세우고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서툰 글씨로 열심히 강의 내용을 메모를 하는 50대 남편도 보였다. ●“몰랐던 부분 많았다는 걸 느껴” 캄보디아 출신 여성(23)과 결혼한 위동현(38)씨는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좋은 가정을 꾸리기 위해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지만, 캄보디아 신부는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 숙여 인사한다. 앞으로 아내에게 하루에 꼭 한번은 그 나라 방식으로 인사하겠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베트남 아내를 맞은 송성환(40)씨도 “다 아는 얘기겠지 하고 왔는데 막상 와 보니 내가 몰랐던 부분이 많은 걸 느꼈다.”고 말했다. 파주 다문화센터장 정순옥 수녀는 “‘국제결혼 안내 프로그램’은 언어·문화 차이로 갈등을 빚기 쉬운 다문화 가정에서 남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교육과정”이라면서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글 사진 김양진·김진아기자 ky0295@seoul.co.kr
  • 현대重 사장 부인 선박 명명식 스폰서로

    현대重 사장 부인 선박 명명식 스폰서로

    세계 1위 조선소 최고경영자(CEO)의 부인이 선박의 이름을 짓는 명명식의 스폰서로 나섰다. 현대중공업은 14일 울산 본사에서 일신해운사의 9000t급 철강재운반선(2379호) 명명식을 가졌다. 명명식은 중세 초 북유럽 바이킹족이 선박을 새로 건조한 뒤 배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던 풍습에서 유래해 지금까지 선주 부인이나 딸 등 선주사의 고위 관계자가 스폰서를 맡아 온 것이 관례였다. 이재성 사장의 부인 윤영분(사진 왼쪽 두번째) 여사가 선박 스폰서로 나선 것은 현대중공업이 최고 품질의 선박을 건조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발주처인 일신해운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그동안 선주사 부인을 비롯한 고위 여성뿐 아니라 현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생산직 여사원, 노조위원장 부인, 3세 꼬마 등 이색 스폰서가 명명식에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윤 여사는 지난해 6월에도 스폰서로 나서 독일 하파크로이드사의 8600TEU급 컨테이너선을 소피아 익스프레스(SOFIA EXPRESS)호로 명명한 바 있다. 윤 여사에 의해 일신 폴라리스 로얄(ILSHIN POLARIS ROYAL)호로 이름붙은 선박은 길이 136.37m, 폭 26.6m, 높이 12.25m 규모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中 남부 먀오족은 고구려 후예다”

    “中 남부 먀오족은 고구려 후예다”

    중국이 동이족 수장으로 꼽히는 치우(蚩尤)를 중화 3대 시조로 모시는 것은 만주 등 동북지방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여기에는 남부 산악지역에 살고 있는 먀오(苗)족 문제도 있다. 인구가 1000만명에 이르러 중국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다섯 번째로 크다는 먀오족은 자신들의 조상으로 치우를 내세운다. 그런데 먀오족이 치우의 후손이 아니라 패망한 고구려 유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김인희 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전임연구원이 지난 10여년간 중국 남부지역을 현지답사한 결과를 총정리한 ‘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푸른역사 펴냄)에 담긴 주장이다. 김 연구원은 “역사상 최초의 ‘코리안 디아스포라(Diaspora)가 먀오족”이라고 주장한다. 디아스포라는 이산(離散), 흔히 국가 소멸 뒤 세계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을 뜻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재일교포나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카레이스키 등을 지칭한다. 김 연구원의 주장은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 등 중국 측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 장수 이적은 평양성을 함락한 뒤 668년 보장왕과 함께 20만명의 유민들을 끌고 귀국했고, 이듬해인 669년 이들을 남쪽 공한지(空閑地)에 배치했다. 고구려 핵심 지배층을 고구려 본토와 머나먼 곳에 살게 해서 재기 의욕을 끊고, 포로들을 투입해 변경지역을 개발하려는 의도였다. 중국 문헌에 먀오족에 대한 기록이 일절 없다가 10세기 이후 송나라 시대 때부터 갑자기 “고구려와 풍속이 닮았다.”면서 언급되는 까닭은 이때서야 중국 남부에 자리잡은 먀오족을 중국인들이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먀오족이 고구려 유민이라는 증거로 우선 전통 바지 ‘궁고’를 든다. 고대 복식을 보면 중국 남방지역은 무덥고 습하기 때문에 대개 엉덩이와 허벅다리 뒤쪽을 그대로 노출하는 개방형 바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먀오족만 유일하게 바지 위에다 또 한번 큰 천을 덧대는 방식의 바지, 궁고를 입고 있다. 이는 고대 흉노족 복식이나 고구려 벽화에서 발견되는 복식과 비슷하다. 종아리 부근은 바짝 조이고, 엉덩이와 허벅지 부분은 통을 크게 넓힌 뒤 그 위에다 바지 천 하나를 덧씌워 두르다 보니 엉덩이 부분은 뾰족하게 솟아나도록 한 모양새다. 이는 추운 곳에서 말을 타야 하는 북방 유목민의 전형적인 복장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는 형사취수(兄死娶嫂) 문화, 장례 전에 집안에 시신을 모셔 두는 풍습, 동명왕 신화처럼 아시아 동북부의 대표적 설화인 난생신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 등 다양한 근거를 든다. 결정적으로 먀오족은 옷에다 조상에 대한 옛 기억을 그려 뒀다. 이는 인디언 이러쿼이족 출신 미국 학자 폴라 언더우드(1932~2000)가 ‘몽골리안 일만년의 역사’라는 책을 남긴 것과 비슷하다. 문자가 없던 인디언들은 옛 조상들의 대이주 행렬을 장대한 구전 서사시로 남겨 뒀고, 언더우드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적 얘기’라고 들어왔던 이 서사시를 기록으로 남겼다. 먀오족 옷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여자들의 주름치마에 두 개의 강을, 웃옷 뒤편에는 큰 성을 그려 뒀다. 구전설화에 따르면 이들은 추운 곳에서 적에게 패배해 노란 물과 맑은 물을 건너 남쪽으로 왔다. 이게 바로 황하와 장강을 뜻한다는 것이다. 또 조상들이 머물렀던 곳을 잊지 않기 위해 고향에 두고 온 옛 성을 그려뒀다. 이 성의 문양은 장방형인데, 고대 성곽에서 장방형으로 지었던 성은 고구려 성이 가장 대표적이다. 재미있는 점은 서부 먀오족과 달리 동부 먀오족에게서는 ‘큰 강’에 대한 얘기 대신 ‘동쪽의 해 뜨는 바닷가’ 얘기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를 고구려 패망 뒤 만주 일대에서 남쪽으로 끌려온 이들은 서부 먀오족, 고구려 평양성에서 바다 건너 끌려왔던 이들은 동부 먀오족이라고 해석한다. 동부 먀오족이 서부 먀오족보다 더 반항적이고 남방문화와 비교적 덜 섞여 든 이유와도 연결된다. 한마디로 평양성에 거주했던 고구려의 핵심 지배층이었던 까닭에 서부 먀오족에 비해 문화 자존심이 유달리 강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고구려가 아니라 치우를 조상으로 내세웠을까. 이는 만주족 청나라를 붕괴시키고 한족 중심의 근대국가를 성립시키려 했던 반청 운동가들의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먀오족을 이민족으로 정벌했던 고구려로 보기보다, 한때 다투었던 형제인 치우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이 편했다는 것이다. 문자가 없어 옛 조상에 대한 희미한 기억만 갖고 있는 먀오족 역시 중국과는 조상이 다르다는 민족 자주성 차원에서 이를 받아들였다는 해석이다. 실제 저자는 먀오족의 조상이 치우라는 주장을 주로 한족 학자들이 내놓는 반면, 먀오족 스스로는 치우에 대해 그다지 알지 못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이는 동북공정이 최근 들어와 시작된 것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1950년대부터 이미 시작됐다는 학계 일부 주장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마오쩌둥이 꿈꾼 것은 공산주의 정권이 아니라 한족 패권 정부였다는 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北 폐쇄성은 변화 두려워하는 한민족 전통”

    주한 중국 외교관이 북한의 폐쇄성에 대해 “명·청 시대에 조공을 바치며 변화를 두려워한 한국(조선)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남북한을 싸잡아 비하한 사실이 4일 공개된 위키리크스의 미국 외교전문을 통해 드러났다. 강석주 북한 내각 부총리에 대해서는 ‘무역적자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로 평가했다. ● 청 융화 前대사 “北 화폐개혁 경솔” 스페인 신문 ‘엘 파이스’가 위키리크스로부터 건네받아 공개한 2009년 12월 24일 자 주한 미국대사관 외교전문에 따르면 청융화(程永華) 당시 주한 중국 대사는 2009년 12월 21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와 가진 만찬에서 한달 전 단행된 북한의 화폐개혁에 대해 “경제 통제를 강화하려는 ‘경솔한 시도’”라고 평가절하했다. 청 대사는 “북한이 중국의 개혁노선을 따랐으면 지금 더 잘살게 됐을 것”이라면서 “북한에는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 같은 인물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청 대사는 2009년 중국이 북한과 핵문제에 대해 논의했고, 북한의 행동 중 일부는 분명히 중국의 국익에 반한다는 점을 주기적으로 경고했다고 소개했다. ● “강석주 무역적자 개념도 이해 못해” 이 자리에 배석한 천하이 주한 중국대사관 정무참사관은 “북한의 폐쇄성이 한국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청나라가 명나라를 대체한 지 100년이 지날 때까지 한국은 명나라 왕실에 조공을 보내고 명나라의 풍습과 전통을 고수했다.”면서 “작은 나라인 한국은 ‘변화에 굴복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공포 때문에 급격히 변하는 환경에 대응할 때 움츠러든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이 현대 경제학과 무역 원칙에 대해 초보적인 수준의 이해력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천 참사관은 우다웨이 중국 6자회담 수석대표와 북한 대미외교의 실무 사령탑인 강석주 내각 부총리 사이의 대화를 스티븐스 대사에게 소개한 뒤 “북한 당국자 중 누구보다도 서방 경제에 많이 노출된 강석주 부총리가 무역적자의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천 참사관은 중국 외교부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을 ‘북한에서 유학하거나 근무한 시니어그룹’, ‘중국에서 한국어와 한국학으로 학위를 딴 중견 간부 그룹’, ‘한국에서 전문성을 쌓은 신흥 주니어 그룹’으로 나눈 뒤 “중국 외교부 내 한국 전문가 그룹에서 북한에서 공부한 시니어들조차 북한보다는 일이 더 실질적이고 다이내믹하며, 삶의 질이 나은 남한에서 근무하기를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크리스마스 ‘부상자 200명’ 만신창이 된 아르헨티나

    크리스마스 ‘부상자 200명’ 만신창이 된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가 성탄절을 맞아 만신창이(?)가 됐다. 24-25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전국에서 폭죽놀이, 샴페인마개 사고 등으로 최소한 200명 이상이 부상했다. 폭죽사고로 부상자가 쏟아져 상처뿐인 성탄절이 되기 일쑤다. 성탄절이 지난 후에는 폭죽사고로 얼마나 다쳤는가가 주요 이슈로 보도되곤 한다. 올해 다친 사람이 가장 많이 나온 곳은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도시에선 폭죽사고로 최소한 80명이 부상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장 큰 안과전문병원 산타 루시아에는 눈을 다친 사람 50여 명이 줄줄이 응급실로 들어섰다. 폭죽이 눈 주변에서 터지거나 샴페인 마개가 눈으로 튀어 다친 사람들이었다. 이 가운데 8명은 긴급수술을 받아야 했다. 화상을 입은 사람도 속출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화상전문병원에는 크고작은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실려왔다. 병원 관계자는 “3단 폭죽이 어깨에서 터지면서 큰 화상을 입어 피부이식수술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에선 성탄절과 매년 첫 날(1월1일) 0시를 기해 전 국민이 일제히 폭죽을 쏘아 올리는 풍습이 있다. 총기소유가 자유로워 일부는 하늘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길이나 옥상에서 유탄을 맞고 사망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분위기 띄워주는 ‘묘약’ 크리스마스 케이크 ‘달콤한 맛의 열전’

    분위기 띄워주는 ‘묘약’ 크리스마스 케이크 ‘달콤한 맛의 열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살리는 건 와인보다 케이크가 아닐까.어떤 모임에서든 촛불 하나 꽂힌 케이크가 등장하면 묘하게 마음이 설렌다. 케이크는 오래전부터 가족, 친구, 연인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워 주는 ‘묘약’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를 겨냥해 제과점과 커피·아이스크림 전문점은 물론 편의점까지 다양한 케이크를 쏟아내며 ‘달콤한 열전’을 벌이고 있다. ● 겨울에 더 어울리는 아이스크림 케이크 배스킨라빈스는 지난달 13종의 새로운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선보이며 일찌감치 크리스마스 특수 챙기기에 나섰다. 산타 모자에 별 선글라스를 낀 깜찍한 곰이 스키를 타는 ‘씽씽 스타 베어’(2만 3000원)는 인기 상품. 피스타치오아몬드, 체리주빌레, 초콜릿무스 세 가지 맛으로 돼 있어 맛도 놓치지 않았다. 여세를 몰아 이달엔 케이크 10종을 더 추가했다. 그 가운데 귀여운 산타가 선물상자를 들고 돔 위에 서 있는 ‘로맨틱 러브 돔’(2만원)은 분위기를 띄우려는 연인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요거트,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두 가지 맛으로, 산뜻하고 부드러워 여성들이 좋아할 만하다. 하겐다즈의 주력 상품은 ‘하트 오브 해피니스’(3만 3000원). 딸기와 마카다미아 너트 아이스크림 두 가지 맛이 어우러져 부드럽고 달콤해 이름처럼 행복감을 선사한다. 19일까지 예약 주문하면 2011년 하겐다즈 플래너 및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볼을 증정한다. 쫀득한 맛이 특징인 아이스크림 젤라또를 활용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나왔다. 크라운-해태제과가 운영하는 ‘빨라쪼’는 ‘산타의 선물상자’(2만 5000원), ‘달콤한 유혹’(2만 4000원), ‘화이트 크리스마스(2만 4000원) 등 3종을 출시하고 10일부터 21일까지 예약 주문하면 10% 할인해준다. ●이야기로 사로잡아라 SPC그룹이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 파스쿠찌와 도넛 브랜드 던킨 도너츠는 맛과 함께 이야기도 판다. 파스쿠찌는 지난해에 이어 동화 ‘피노키오’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케이크 4종을 선보였다. ‘스노우 딸기 케이크’, ‘초코산타 스플레’ ‘엔젤 티라미스’ ‘파네토네 베로나’ 등의 제품에는 착한 마음을 가진 피노키오가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생애 첫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는 이야기를 담아 감성을 더했다. 각각 2만 3000~2만 8000원. 던킨도너츠는 루돌프 사슴이 되고 싶은 귀여운 곰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지붕에 초콜릿 생크림이 올려진 귀여운 ‘루돌프 베어 하우스’(2만 1000원), 깜찍한 루돌프 곰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해피 루돌프 베어’(20,000원) 등을 비롯해 15종의 케이크가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편의점·레스토랑도 남다른 맛 급할 때 찾기 쉬웠지만 2% 부족했던 집 근처 편의점 케이크의 품질도 높아졌다. 편의점 GS25는 올해 처음으로 떡 케이크(2만 2000원)를 선보였다. 국내산 찹쌀에 백년초, 연, 호박 등의 천연 재료와 초콜릿이 들어간 총 4가지 맛으로 구성돼 있다. 조각 케이크 형식으로 만들어져 칼로 자를 필요 없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레스토랑 ‘나무와 벽돌-구르메’(02-747-6425)는 장인의 손길로 빚은 11종의 케이크를 준비해 놓고 있다. 15일 선보일 제품 가운데 굵은 장작 위에 깜찍한 눈사람이 서 있는 ‘뷔슈 드 노엘’(3만 2000~3만 8000원)이 눈길을 끈다. 칠면조와 함께 연말연시 프랑스인들의 식탁에 빠지지 않는 케이크라고. 과거 벽난로에 굵은 장작으로 불을 지피며 이 케이크를 먹었던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부인 16명·자식 76명 둔 89세 페루노인

    페루에서 가장 부인과 자손이 많은 노인이 언론에 소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페루 남서부 아마존 지방의 피차리라는 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 부족장 아마도르 바르보사. 올해 89세 된 그는 지금까지 부인 16명과 결혼해 자녀 76명을 낳아 직계자손이 가장 많은 남자로 최근 현지 언론에 소개됐다. 바르보사가 첫 혼인을 한 건 10대 후반이다. 18세에 첫 아들을 얻었다.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는 부족의 풍습에 따라 이후 15명의 부인을 얻으면서 아들 43명과 딸 33명이 줄줄이 태어났다. 이 중 세상을 떠나 가슴에 묻은 아들과 딸은 17명, 나머지 59명은 건강하게 살아 있다. 막내는 올해 12살. 막내는 손자들과 같은 학교에 다닌다. 워낙 자식이 많은 데다 손자까지 태어나다 보니 가족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90세를 목전에 둔 그가 일일이 이름을 기억하기 힘들 정도다. 그는 인터뷰에서 “아들과 딸이 많아 이름을 혼동하는 일이 많다.”며 “손자는 얼굴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부족장으로서 그가 지방에서 큰 존경을 받고 있다.”며 “한때 시장이나 주지사로 나서 달라는 정치권의 제안을 받았지만 거부하고 주민들을 친자식처럼 챙기며 사랑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脫지역화 늘어 경제활성화 기대”

    “脫지역화 늘어 경제활성화 기대”

    “시속 300㎞의 고속철도를 구상한 것은 미래를 내다본 혜안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현용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은 경부고속철도 전 구간 개통을 맞아 소회를 밝혔다. 그는 “40년 전 경부고속도로가 산업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면 경부고속철도는 국민의 생활공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대역사(大役事)가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조 이사장은 2002년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부이사장으로 철도와 인연을 맺은 후 2004년 1단계 개통과 2단계 개통 현장을 지켜본 한국 고속철도 역사의 산증인이 됐다. 경부고속철도 개통을 우리나라의 철도 기술력, 친환경 시공과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한 단계 올리는 계기로 평가했다. 20.3㎞로 국내 최장 터널인 금정터널을 비롯해 원효터널, 언양고가, 복안터널 등을 일일이 열거했다. 조 이사장은 “이곳을 지날 때면 공사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진다.”면서 “‘도롱뇽 소송’으로 잘 알려진 원효터널은 6개월간 공사가 중지돼 휴일 없는 밤샘작업으로 공기를 만회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속철도 개통으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에 들어오면서 탈 지역화가 확대될 것”이라며 “지역 간 사회·문화·풍습 등 생활의 변화와 함께 물류비용 절감 등 경제활성화도 기대된다.”고 주장했다. 조 이사장은 고속철도·고속화철도를 통한 철도망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2014년 ‘X’축에 이어 ‘ㅁ’자형 철도망이 완료되면 전국 주요 거점 도시를 90분에 연결, 하나의 도시권이 형성되게 된다. 조 이사장은 “경부고속철도는 교통 SOC를 도로에서 철도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면서 “내부적으로 사업역량을 높이는 한편 해외 사업 진출 분야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헉! 소포 안에 미라가?” 볼리비아, 밀반출 적발

    잉카문명 때의 것으로 보이는 미라를 소포로 부치려던 여자가 경찰에 잡혔다. 남미 볼리비아의 경찰이 해외로 나가는 소포의 내용을 검사하다 미라를 발견, 압수하고 소포를 부친 여자를 체포했다고 현지 언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진공 포장된 미라는 프랑스 꽁삐에니으로 보내질 예정이었다. 볼리비아 경찰 관계자는 “유난히 덩치가 큰 소포가 있어 내용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뜻밖에 미라가 나왔다.”고 말했다. 체포된 사람은 페루 출신 여성이다. 그는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도시 데사과데로에서 한 페루남자가 소포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면서 “내용물을 모르고 소포를 부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볼리비아 문화유산보호청 관계자는 “발견된 미라의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면서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는 정밀검사를 해야 알 수 있겠지만 잉카문명 때의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남미에서 발견되는 미라 중에는 잉카문명 때의 것이 단연 많다. 사회 엘리트 가족이 죽으면 미라화하는 잉카문명 때의 풍습 때문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장식용 유골 사고 보니 3000달러짜리 ‘진짜’

    장식용 유골 사고 보니 3000달러짜리 ‘진짜’

    오는 31일 할로윈데이를 앞두고 세계 각국이 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부부 한 쌍이 이날 쓸 액세서리를 구매했다가 ‘진짜 유골’을 만나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국 언론인 폭스 보도에 따르면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사는 이 부부는 인근 동네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에서 8달러를 지불하고 유골 모형을 구입했다. 이들은 할로윈에 쓸 요량으로 이 유골 세트를 구입했지만 집에 와서 자세히 본 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산 것은 모형이 아닌 진짜 유골이었던 것. 온라인에서 이를 구매한 미첼 플레처 부부는 “집에와서 자세히 본 후에야 ‘진짜’임을 알아챘다.”면서 “너무 놀라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것은 의과대학의 해부학 수업에 자주 쓰이는 유골인 것으로 추측되며 이러한 해부학용 유골의 가격은 3000달러 정도라고 밝혔다. 이 사건을 조사 중인 한 경찰은 “대퇴골 쪽에서 일련번호 하나를 찾았다.”면서 “현재 인근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빠져나간 유골이 없는지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플로리다 주 법규상 개인이 유골을 판매할 수 없게 되어 이를 구매한 플레처 부부는 조사가 끝난 뒤에도 이를 돌려받을 수 없게 됐다. 이 커플은 “경찰이 돌려준다 해도 갖고 싶지 않다.”면서 “끔찍한 경험”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한편 서양의 할로윈데이에는 죽은 자의 영혼이 산 자에게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귀신이나 도깨비 분장을 하고 집안을 차갑게 만드는 풍습이 이어져 오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한·중·일 춘화 어떻게 다를까

    한·중·일 춘화 어떻게 다를까

    남들 눈에 띌까 몰래 숨어서 보던 춘화(春畵)가 ‘에로틱 아트’의 타이틀을 걸고 당당히 박물관에 입성했다. 서울 평창동 화정박물관은 특별전 ‘러스트’(LUST)에서 18~19세기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3국과 근대 유럽의 춘화, 도자생활용품 등 다양한 에로틱 아트 작품 114점을 선보이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에 관한 욕망과 호기심을 담은 그림들은 끊임없이 제작·유통돼 왔지만 춘화를 전시와 학술의 대상으로 접근한 건 매우 이례적인 시도이다. 박물관은 나라별 특징이 비교적 잘 드러난 작품들을 골라서 전시함으로써 각국의 춘화가 지닌 차이점을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게 했다. 가령 한국실에 전시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사시장춘(四時長春)’은 은유적이고 해학적인 방식으로 성적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댓돌에 흐트러진 두 켤레의 신발, 닫힌 문앞에서 상을 들고 어찌할 바 모르는 어린 여종의 모습은 방안의 상황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게 한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춘화에는 남성이 여성의 발을 만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전족의 풍습과 더불어 발에 대한 중국 남성들의 성적 환상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과 중국에 비해 일본의 춘화는 좀 더 노골적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남녀의 대담한 포즈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강렬한 색채, 세밀한 배경묘사 등도 특징적이다. 김옥진 화정박물관 책임연구원은 “당시의 성문화뿐만 아니라 생활상 등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19일까지, 만19세이상 관람가. 5000원. (02)2075-011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베트남 추석 ‘쭝투’쇠러…꿈만 같아요”

    “베트남 추석 ‘쭝투’쇠러…꿈만 같아요”

    “고향 베트남에서 추석인 ‘쭝투(中秋·음력 8월15일)’를 쇠게 돼 꿈만 같습니다. 한국인 사위와 손자를 끌어안고 기뻐하실 친정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19일 경기 파주시 교하읍에서 한국인 남편과 함께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베트남 이주여성 뜨란티노 곡란(30)은 하루 종일 설렌 가슴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한국으로 시집온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 가족들과 명절을 보낼 수 있기 때문. 남편 김두영(55)씨는 “그동안 아내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텐데 적응을 잘해 줘 너무 고마웠다.”면서 “이번엔 아내 고향에서 명절을 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20일 남편, 아들 경민(6)군과 함께 고향인 베트남 남부 지역 롱안주의 와칸마을로 떠난다. 2004년 한국으로 건너온 곡란은 추석 때만 되면 고향 생각이 간절했다. 베트남인들도 한국의 한가위와 비슷한 명절 쭝투를 쇤다. 잉어, 꽃 모양의 떡을 선물하고 차례를 지낸 뒤 음식을 나눠 먹는 풍습이 있다. ●“아내 적응 잘해줘 너무 고마워” 그러나 그녀는 그동안 추석과 설날 등 명절 연휴 때면 시댁 챙기기에 바빴다. 남편과 아들, 시동생 한 명이 전부인 단출한 시댁이지만, 차례상을 마련하고 성묘하느라 고향 방문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지금껏 세 차례 고향에 다녀왔지만 명절에 온 가족이 함께 가는 것은 처음이다. 그녀는 “이번 추석엔 대가족이 모여 왁자지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녀는 육남매 가운데 넷째로, 친정 가족이 모두 모이면 30명이 넘는다. 세 식구가 단출하게 보냈던 한국에서의 명절과 달리 이번 추석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고향의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줄 선물을 한아름 준비했다. 조카들에게 줄 운동화와 초코파이,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한국 김과 햄, 남동생에게 줄 특별선물인 노트북까지 선물을 다 챙기고 보니 두 개의 상자가 가득 찼다. 그녀는 “우리 부모님이 고령인 데다 형제들이 다같이 모일 기회가 추석 때밖에 없어서 꼭 방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초코파이·노트북 등 가득 챙겨 그녀는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한국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녀는 “처음엔 동네 사람들도 내가 베트남에서 왔다며 무조건 이방인으로 여겼다.”면서 “6년이 흐른 지금은 나를 외국인 이민 여성이 아닌 한국인 이웃사촌으로 대하는 게 가슴으로 느껴진다.”며 미소 지었다. 주말마다 파주 시내에서 열리는 장터에 나가 직접 재배한 베트남 채소를 파는 등 지역사회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한다. 그녀는 “주변에 사는 베트남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도 내가 파는 채소를 구경하고 물건도 많이 사 간다.”고 말했다. 남편 김씨는 “항상 밝고 명랑한 아내의 성격 때문인지 이제는 동네 사람들이 아내를 많이 좋아한다.”면서 “먼 곳으로 시집와서 씩씩하게 살고 있는 아내를 위해 고향을 방문해 뜻깊은 명절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글 사진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조선불교통사 첫 한글 완역

    조선불교통사 첫 한글 완역

    한국 불교 최고의 명저로 꼽히는 ‘조선불교통사’가 92년 만에 한글로 완역됐다. ‘조선불교통사’는 순도(順道)가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처음으로 불교를 전한 이후 1916년까지 1544년에 이르는 한국불교사를 총집결한 역사의 보고이자 불교의 진수를 담고 있는 교리서이며, 한국 전통사찰의 내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학술사의 역작이다. ‘조선불교통사’는 한문으로 쓰여 있어 한글 세대가 충분히 활용하기에 어려움이 많아 그동안 부분적으로만 번역되거나 발췌 인용되는 데 그쳤다. 최근 펴낸 ‘역주 조선불교통사’(동국대 출판부)는 상편 2권, 중편 1권, 하편 3권과 원문교감본 개정판 1권, 색인집 1권 등 모두 8권으로 이뤄졌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인 법산 스님을 연구책임자로 한 역주편찬위원회는 김진무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교수, 조계종 문화부장 효탄 스님 등 10명의 연구자들로 구성해 난해한 금석문과 방대한 불교문헌자료를 번역하고 주석, 해제 연구를 기울여 8년만에 결실을 이뤘다. 법산 스님은 “‘조선불교통사’는 한국불교 최초의 종합역사서이자 불교 백과전서라고 볼 수 있으며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까지의 불교역사를 통사적으로 아우르는 유일한 책”이라면서 ”이제야 완역된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불교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도 소중하게 활용될 원자료가 될 것”이라고 완역의 의의를 설명했다. 특히 완역본은 원문의 전거가 확실한 경우 사서와 문집·사적기·행장·발문·금석문 등 출전과 대조했고, 원저자 이능화가 책을 낼 당시 인쇄 제작과정에서 발생한 오탈자를 1000곳 이상 바로잡아 원문개정판 교감본을 만들었다. 이것 역시 학술적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되고 있다. 또 하편에 있는 ‘이백품제’는 문화콘텐츠의 보물창고로 활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불교의 사상, 문화, 예술, 인물, 사적 등 203개 항목에 대해 재미난 소설처럼 읽을 수 있도록 기록돼 있다. 포항 오어사에 얽힌 이야기며, 이제마의 사상의학에 대한 뒷얘기 등 민간에 전래되거나 사서에 언급된 사찰들의 연기 설화, 승려와 관련된 기담(奇談), 각종 민속과 풍습, 제도 등이 다양하게 수록돼 있어 영화, 드라마, 소설, 연극 등 문화콘텐츠의 풍성한 1차 자료로서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동국대 출판부 측은 불교계와 학계를 위한 전집이 나온 만큼 조만간 일반인들을 위해 ‘한권으로 보는 조선불교통사’(가칭)를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집 40만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유럽 최초의 인류, 사람 뇌 먹었다”

    80만 년 전 유럽에 정착한 인류의 화석에서 동족을 잡아먹은 흔적이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연구진은 영양을 섭취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다른 부족을 제압하려고 식인을 했을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스페인 부르고스에 있는 인류진화 국립연구센터의 버뮤데즈 드 카스트로 박사는 “스페인에 있는 동굴에서 동물들의 뼈와 함께 목이 잘리거나 외부 충격을 받고 부서진 흔적이 보이는 두개골 화석 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들소, 사슴, 야생 양 등 동물 뼈 사이에서 어린 아이와 어른 등 최소 11명의 훼손된 유골의 흔적이 발견됐는데, 연구진은 이러한 정황이 초기 인류의 카니발리즘(인육을 먹는 풍습)의 단서가 된다고 주장했다. 카스트로 박사는 “80만년 전 초기 인류들이 동족의 골수나 장기를 꺼내 먹은 카니발리즘의 흔적이 엿보인다.”면서 “영양을 섭취하거나 다른 부족들을 살해하려는 목적 혹은 종교적으로 이용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카니발리즘의 다양한 이유 가운데서도 연구진은 다른 부족과의 경쟁에서 동족 살해 및 식인이 비롯됐을 가능성을 가장 높게 점치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과 한 인터뷰에서 연구진은 “동굴로 둘러싸인 이 지역은 먹을 것이 풍부하기 때문에 굳이 식인을 할 필요가 없었다. 또, 희생자들의 뼈가 다른 동물의 뼈와 함께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으로 미뤄 주술적 이유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힘 없는 아이들이 주로 희생된 것으로 보아 다른 부족의 어린이들을 납치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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