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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분한 설연휴… 귀경길도 순조/대형사건·사고 격감

    ◎조용한 명절보내기 자리잡아/고속도 소통 예상밖 원활/“교통체증 피하자”… 조기 귀경객 는 탓 조용하고 차분한 설연휴였다.사건·사고도 예년에 비해 적었으며 명절연휴때마다 되풀이 되던 귀성·귀경길의 극심한 교통난도 없었다.연휴 마지막날인 24일 고속도로가 밤늦게 다소 붐볐지만 연휴 3일동안 평일보다 특별히 체증이 심한 편은 아니었다. 고속도로의 경우 경부고속도로 남이∼청주구간,영동고속도로 양지∼용인구간등 일부구간이 한때 부분적으로 정체현상을 빚기도 했으나 나머지구간은 대부분 정상소통됐다. 한국도로공사는 연휴기간동안 모두 45만5천여대가 서울을 빠져나가 이 가운데 30만8백여대가 설날인 23일까지 서울로 돌아왔다면서 지난해보다 설날연휴기간이 하루 짧았으나 확장공사중인 경부고속도로구간을 귀성·귀경길에 신축적으로 운영하고 일부기업체의 경우 25일까지 휴무하는 기업도 많아 귀경행렬이 분산돼 차량소통이 원활했던 것같다고 분석했다. 또 신정과 설이 나뉘어져 귀성인파가 분산됐고 극심한 교통정체를 피해 서둘러서울로 올라오는 새로운 풍속도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이와함께 많은 시민들이 신정과 설연휴중 한번만 귀성하고 나머지 연휴때는 가족과 함께 근교에 나들이가거나 휴식을 취하는 새로운 생활패턴도 혼잡을 덜어 주었다. 서울시와 서울경찰청은 이날 예비군수송버스 50대,경찰버스 85대를 동원,서울역·청량리역·영등포역등지에 배치해 밤늦게 귀가하는 귀경객들의 편의를 도왔으며 지하철과 좌석버스도 25일 상오2시까지 연장운행해 밤늦게 도착한 귀경객들을 귀가시켰다. 내무부는 이번 연휴기간중 전국에서 모두 1백90건의 화재가 발생,7명이 숨지고 4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모두 4억4천9백여만원의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잠정집계했다. 한편 설날인 23일 각 가정에서는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낸뒤 가족들과 오순도순 모여앉아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대부분의 상가들이 철시한 가운데 도심을 지나는 차량도 적어 한산한 모습을 보였으나 벽제·망우리등 시립묘지에는 이른 아침부터 성묘객들의 발길이이어졌다. 성묘를 마친 시민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경복궁·창경궁등 고궁과 서울대공원등 유원지를 찾아 설날 연휴를 즐겼으며 시내 극장가에도 젊은층들이 몰려 입장권을 구하려는 청소년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 올바른 세배법/남­왼손·여­오른손을 위로

    ◎무릎꿇을때 발등이 바닥에 닿아야/아랫사람이 먼저 덕담하는 것 금물 설날아침이면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의 세시풍속.가족·친지들간에 훈훈하고 정겨운 덕담이 오가는 설날을 맞아 세배드리기의 올바른 예법을 청년여성교육원 예절교육실 김복진실장으로부터 들어본다. 원래 우리나라의 예법은 가가례)로 지방·집안에 따라 다르지만 세배는 서울·경기지방의 풍속에 맞춰 평절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자의 경우 오른손이 위로 가도록 양손을 마주잡고 섰다 팔을 양옆으로 자연스럽게 늘어뜨린다.왼발을 발길이의 반정도 뒤로 살짝 빼면서 왼무릎을 꿇고 오른무릎을 세운다.손가락을 가지런히 붙인 상태에서 양손을 꽃잎모양으로 펴서 바닥에 대는 동시에 목이 옷깃에서 떨어지지 않을만큼(15도 정도)허리전체를 굽혀서 절한다.이때 팔꿈치를 구부리지 않아야 단정해 보인다.일어나서 양손을 잡고 가볍게 목례한 후 어른의 정면에서 비껴 앞에 양다리를 사선이 되도록 모아 앉는다.양장을 입었을 때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절한다. 남자는 왼손이 위로 오도록 두손을 마주잡고 섰다가 자연스럽게 손을 풀고 무릎 꿇고 앉는다.두손을 앞으로 뻗어 엎드렸을때 코정도에 오도록 왼손을 위로 하여 마주잡는다.몸을 일으키면서 두손을 자연스럽게 옆으로 풀고 일어나 목례한 후 다시 앉는다.남자들이 절할때 주의할 점은 무릎을 꿇었을때 발을 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발등이 바닥에 닿도록 눕혀야 엉덩이가 올라오지 않고 자연스런 자세가 된다. 세배가 끝난후 어른으로부터 덕담을 듣는다.덕담은 잘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으로 아랫사람이 절하면서 먼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든지 「건강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어린이들에게는 절값으로 세뱃돈을 주는데 아이의 나이에 맞게 적절하게 주어야 한다.부모들은 세뱃돈이 어린 자녀들에게 큰 액수인만큼 저축을 하거나 제대로 잘 사용하도록 지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아랫 사람이 윗사람으로부터 덕담을 듣거나 세뱃돈을 받았으면 반드시 「감사합니다」라고 답하고 공손한 자세로 물러선다. 가장 웃어른에게 세대별로 세배를 드린 다음 형제·동서 지간에 맞절을 올리고 어린 자녀들이 있는 경우 부부맞절을 하고 자녀들로부터 세배받는 것이 자녀교육에도 좋고 아름다운 우리 풍습이다.
  • 21세기 한국의 문을 여는 “이어령과의 대화”:11

    ◎병풍원리/탈경계­탈구축개념의 미래는/「벽속의 고립」 서구문명 한계에/초가식 「열린 자아」가 대안으로/바슐라르 표현대로 서양 문화는/서방이 벽면으로 싸인 지하실형/병풍속서 태어나 병풍속서 죽는 한국인 정서공간은 매우 신축적 □황규호문화부장=선생님께서 올림픽 개폐회식을 기획하셨을 때 그 주제를 「벽을 넘어서」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철의 정막이 무너지고 하였지요.오늘은 그 벽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기를 전망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어령전문화부장관=서구문화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벽의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도시든 개인의 삶이든 모든 것이 두꺼운 벽을 기본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지요.가령 도시국가라는 것은 완전히 성벽안에 세운 도시지요.성벽밖에는 한데지요.유럽은 섬이 아닌 대륙인데도 일찍부터 고층화가 이루어진 것은 성벽이라는 제한된 구획속에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커지려면 옆으로 퍼지지 못하고 위로 치솟아 올라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동서양의 성곽 달라 □동양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성벽으로 나라와 도시를 둘러친 것 말입니다.중국의 만리장성이 그렇구요. ■물론이지요.한자로 나라국자를 써보세요.국은 사각형의 구자로 싸여 있지 않습니까.그것이 바로 성곽이지요.그런데 자세히 비교해 보면 중국이나 한국의 경우에는 성밖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마을이 있고 자연의 숲이나 냇가에서 사람들이 퍼져 살지요.즉 성안과 성밖의 구획은 있어도 사람이 사는 곳으로 별 차이가 없습니다.그러나 서양의 도시국가 형태는 성밖과 성안은 인간의 공간과 인외경의 자연 공간으로 대립적 관계로 파악되었지요. □서양의 벽은 아주 뚜껍다는 것이군요.나라의 성만이 아니라 개인집의 벽도…. ■그래요.왜 우리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지 않아요.얼마나 벽이 허술하면 말이 이렇게 밖으로 다 새어나갑니까.그런데 서양의 속담에는 「벽에는 귀가 있다」고 하지요.벽이 아무리 두꺼워도 사람의 비밀이야기는 샌다는 뜻입니다.실제로 서양집은 적조식으로 돌이나 벽돌로 벽을 쌓아 만든 것이아닙니까.그러나 한국집은 가구식이라고 하여 기둥을 세워놓고 집을 지은 비내력벽으로 되어 있습니다.그래서 벽은 기둥과 기둥의 공간을 바른 것이지 가옥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그렇군요.전통적인 한옥은 벽을 터도 무너지지 않지만 양옥집은 벽을 부수면 집 자체가 무너지고 말지요. ■그래서 첨성대같은 건축물이 가구적 한국의 건축양식으로 볼때 아주 예외적인 것에 속한다고 하지 않아요.첨성대는 기둥을 세우지 않고 돌을 쌓아 말하자면 벽을 쌓아올린 내력벽건축물이기 때문에 서구의 것과 같다고 할수 있어요. □결국 서양사람이 두꺼운 벽을 원했다는 것은 그만큼 고립적이고 개인의 자아중심적인 문화를 지향하고 있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씀이시군요. ■내 말이라고 하기 보다는 서양사람 자신들이 자기네들의 문화적 특성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요.바슐라르같은 사람은 서양문화를 지하실적 문화라고 부르고 있는데 지하실은 사면이 벽이 아닙니까.그런데 지하에다 판 것이어서 그 벽은 땅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서 절대로 허물수 없는 두께를 갖는 벽이라는 것이지요.서구에서는 문화예술도 정치도 온갖 음모와 형별도 이 지하실속에서 이루어 졌다는 겁니다.나치에 항거한 레지스탕스도 지하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지요.반대로 나치의 온갖 만행­고문같은 것이 바로 또 이 지하실에서 감행되었지요.사르트르의 그 유명한 단편 벽을 보시면 이 벽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또 상징적으로 그러져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물에는 지하실이라는 것이 없군요. ■지하실 대신 개구멍이 있었지요.(웃음)담벽을 뚫는 것 그것이 개구멍이고 이 개구멍을 통해서 궁궐과 사가의 내통이 가능했고 이도령은 춘향과의 사랑을 가능케 한 것이지요.서양의 역사가 벽을 쌓는 이 지하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우리의 역사는 거꾸로 벽을 뚫는 개구멍에서 비사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좋겠지요.농담이 아니라 옛날 시조를 보십시오.「십년을 경영하여 초로삼간지어내니 반은 청풍이요 반은 명월이로다.산천을들일 곳이 없으니 둘러치고 보리라」라는 시조에서 보듯 바람이 맘대로 들락 날락하고 달빛이 새어 들어오니 이집 벽이 어느 정도겠습니까. ○궁궐­사가 내밀통로 □산천은 들일 곳이 없으니 둘러치고 보리라고 한 것을 보면 담벽도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그 종장을 특히 주목해서 읽어야 됩니다.둘러치고 보리라라고 하였는데 거기에서 우리가 연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병풍이 아닙니까.이 병풍이야 말로 동양 특히 한국인의 마음과 의식의 지평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상징물이라고 할수 있지요.병풍이야말로 가장 가볍고 가변적이고 상황에 따라 신축성있게 적응하는 이 지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벽이지요.필요할때 펴면 벽이 되어 공간을 분할하고 또 필요가 없을 때는 접어서 개켜 버리면 형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콘크리트 벽같으면 야단나지요.한번 허물거나 또 쌓으려면 대 공사를 해야 하지요.그런데 서양에는 병풍과 같은 것이 없었나요. ■스크린이라하여 간단히 접어 세우는 나무판때기의 가리개가 있긴 하지요.그러나 병풍과는 개념이 다릅니다.병풍과 같이 신축성 있는 벽이 생긴 것은 천재적인 발명가로 알려진 백민스터 프라에 의해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실현되지요.우리가 왜 아코데온 벽이라고 부르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병풍은 중국이 기원이고 일본에서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기는 해도 미국의 동양학자 맥쿤의 증언대로 이 지상에서 병풍을 가장 생활화 하고 현재에도 많이 쓰고 있는 민족은 단연 한국이라고 증언하고 있어요.생각해 보세요.우리가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난 곳이 어디예요.병풍속이 아닙니까.그러다가 돌날이 되면 또 병풍을 둘러치고 돌상을 받지요.서양식으로 결혼을 해도 폐백을 드릴때만은 화조 병풍이 있어야되지요.환갑연이 돌아오면 또 병풍을 둘러치고 잔치상을 받습니다.그러다가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날 때에도 병풍이 그 시신을 가려주지요.죽고 난뒤에도 병풍과의 인연을 끊지 못합니다.젯상을 받을 때 돌아가신 혼백들을 감싸주는 것이 바로 병풍이 아닙니까.이렇게 한국인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생의 장면들을 병풍으로 장식하고 죽고난뒤에까지도 병풍에 의존하게 됩니다.이렇게 쉽게 만들고 허무는 그 공간의 경계선처럼 한국인의 자아는 말하자면 「나와 너」「나와 세계」의 그 관계는 매우 신축성이 있습니다 ○군중속의 고독 낳아 □근대적인 자아란 콘크리트 벽처럼 두껍고 튼튼한 것이 아닙니까.그리고 거기에서 프라이버시가 생겨나고요. ■병풍식 자아는 타아와의 경계선이 애매하고 가변적인 것이어서 항상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있지요.쉽게 나와 너의 공간이 하나가 되기도 하고 또 분리되기도 합니다.서구식 관점에서 보면,그리고 산업사회의 풍토로 보면 근대적 자아가 결여된 것처럼 보입니다.우리가 예사로 남의 프라이버시에 개입하기도 하고 침해하기도 하는 것은 우리의 자아가 병풍식이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지요.아주 대조적인 것은 무엇인가 슬픈일이나 괴로운 일이 생기면 우리는 하소연을 하고 넋두리 같은 것을 하게 됩니다.남과 함께 자신의 고통을 나누려고 하지요.그러나 서양영화같은 장면에서 가장 많이 볼수 있는 장면은 우리와는 반대로 「I just want to be left alone」이라는 대사입니다.「날 좀 혼자 있게 해줘」즉 남과 세계를 향해 두꺼운 벽을 쌓고 그 안에 혼자 들어가 앉아야 마음이 가라앉고 생각이 정리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막같은 사회,혼자서 지하실벽을 응시하고 있는 거꾸로 찍힌 활자의 고독,군중속의 고독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이지요.영국의 경우 가옥수는 많은 데도 주택난이 심한 것은 혼자서 집 한채를 차지하고 사는 독신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극단적인 자아중심적 세계관은 무인도적 존재를 낳게 됩니다.그래서 근대 산업사회에서는 누구나 로빈슨 크루소가 되는 것입니다.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표류기가 우리나라의 소설에는 없지요. ■무인도의 발견·무인도에의 표류­그것이 근대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 혼자 표류했지만 그 속에서 농업과 산업을 이룩합니다.혼자의 힘으로 문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나중에는 프라이데이라는 노예까지도 두게 됩니다.이 소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단순한 표류기가 아니라 로빈슨은 근대시민사회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로빈슨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인류가 걸어온 문명의 역정을 그 무인도에서 재현하고 발전시킨 것입니다.이 개인의 힘,그 창조력과 자유에 토대를 둔 사회가 바로 근대 시민사회라고 하겠지요. 개척민이 만든 미국의 역사는 바로 로빈슨이 이룩한 그 표류도의 역사를 확대시킨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우리가 표류기 없는 문학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은 절대 자아가 없는 문화속에서 살아온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남북 분단으로 우리는 할 수 없이 이산 가족이 되었고 그 슬픔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지만 서양사람들은 스스로 이산가족이 되어 홀로서기를 합니다.가장 미국인다운 미국인의 원형이라는 마운틴 맨이 그렇습니다.깊은 산속에 들어가 혼자서 몇달이고 움막속에서 생활하면서 비바를 잡아 모피를 팔아 생활하는 사람들이지요.그리고 문학을 보아도 마크트웨인의 헉크핀의 모험에서 시작하여 멜빌의 백경,그리고 헤밍웨이의 여러 소설들은 모두가 가정에서 도망쳐 나오는 남자들의 이야기들이지요.그런데 이 두꺼운 자아의 지하실 벽들이 서서히 무너져 내려 앉는 소리와 그 서사극의 종말을 우리는 서구의 새로운 소설철학 그리고 실제의 현실속에서 목격하게 됩니다.이른바 「보더레스」(경계선없는)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국경없는 시대 도래 □보더레스라는 말은 주로 경제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말이지요.기술 자본 상품등 다국적 기업이나 자유무역 등으로 오늘날의 기업이나 산업은 국경이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가령 미국제 자동차라고 하지만 그 엔진은 멕시코에서 만들고 부품은 일본에서 그리고 차체와 디자인은 이탈리아가 맡는 식으로 말입니다.과연 그것은 미국제라고 할수가 있는지 의심이 갑니다.그러나 그것은 경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인간의 자아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타자의 경계가 불투명합니다.경계침범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지요.인간관계만이 아니라 사물도 그래요.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사물들의 윤곽이란 것도 결코 그렇게 딱딱하고 분명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곤충을 잡아먹는 식물이 존재하는 한 동물과 식물의 경계선이라는 것도 확실치가 않습니다.우체통을 보십시오.우체통은 폐쇄된 공간이 아닙니까.그러나 우체통에다 편지를 넣으면 넓고 먼 세계로 그 편지가 운반됩니다.우체통은 폐쇄공간이 아니라 열려져 있는 넓은 공간이기도 한 것입니다.안과 밖이라는 개념도 그래요.호주머니를 흔히 내부공간이라고 믿고 있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세요.외부가 안으로 침범해 들어온 것이 바로 호주머니가 아닙니까.호주머니 속은 「안」이 아니라 「밖」의 것이 들어와 있는 것이지요. 이 탈구축의 이론을 통해서 우리는 서구 근대문명의 허구와 한계를 볼 수가 있습니다.그리고 이때 떠오르는 것은 병풍 같은 자아속에 잠재된 미래의 가능성입니다. □이야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다음에 다시 계속하기로 하고 이 자리에 병풍을 두르도록 하지요.
  • 처연해지는 섣달 그믐께(박갑천칼럼)

    금동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그 다음 생전의 대원군으로 되돌아가 『우­위­! 내일 모레면 섣달 그믐이라는 대목이었다』로 이어져 간다. 그는 취중에도 『모레가 그믐이라,떡쌀이나 있나?』고 자문한다.『몰려올 빚쟁이도 피할 겸 부인에게 맹세도 한 체면상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 과세의 준비를 좀 해가지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될 날이다』.시대는 흘렀지만 오늘(20일)이 바로 대원군이 취중에 대목 걱정을 했던 그 날.모레 22일이 섣달 그믐날(물론 음력)이 아닌가. 권문 팽경장의 집 사랑에서 수모를 당한 끝에 대제학 김병학으로부터 뜻밖의 후대를 받게 되는 대원군.그 당시와 지금과는 섣달 그믐께의 의미하며 풍속도도 많이 달라졌다.특별한 경우 말고는 떡쌀 걱정을 하는 집안이 얼마나 되겠는가.그렇기는 하지만 연날리기 등 지켜져 내려오던 갖가지 민속은 많이 스러졌다.조상 생각하는 마음의 비중이 예 같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그래도 온 국토가 들썩이는 「민족의 대이동」은 그 생각의 가닥을잇는 섭새김질이라고 할 것이다. 예나 이제나 달라질 수 없는 것은 처연해지는 마음들 아닐는지.내일 모레가 지나면 나이테를 하나 더 얹게 된다는 생각과 품속으로 파고드는 계절의 한기가 사람들을 감상(감상)에 젖어들게 한다는 것이 사실이다. 보통 사람도 그런 터에 한을 품고 전국을 유랑하던 시인 김삿갓(김립)의 감회는 더욱더 남달랐다고 할 것이다.어느 해였던가.그도 섣달 그믐날 밤에 고향을 생각했다.그러면서 「고향생각」이라는 칠언율시를 읊고 있다.­『서행하여 이미 지난 열두 고을/이곳에서 떠나기 섭섭하여 머물러 있네/눈비 속의 고향을 한밤중 나그네는 생각하노니/산하그것부터가 천추의 여로(역려)아니던가/비분강개하여 역사상 위업을 말하지들 말라/영웅호걸도 백발 앞에선 탄성을 발했나니/여관방 외로운 등불 아래 한 해를 보내면서/꿈속에서나마 잠시 고향땅 구경해 볼거나』(원문 생략:김삿갓 연구가 김응수번역).귀밑머리 하얘져서의 세밑이었던 듯하다. 마루·방·외양간·부엌에 하다못해 측간(변소)에까지 등불을 켜놓고서 닭이 울 때까지 자지 못했던 섣달 그믐날 밤.이미 머리털과 수염이 하얗던 외할아버지는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하셨다.자지 않으려고 하다가 깜박 잠이 들어 버렸고 흔들어 깨워서 일어나 거울을 보았더니 눈썹이 할아버지 수염보다 더 세어 있어서 울었던 일이 어제런듯 새롭다.쌀가루를 묻혔던 때문이다.눈썹까지 세지는 않았지만 하얘진 머리칼로 또 한번의 섣달 그믐을 맞는다.그 섣달 그믐날 밤이 「내일 모레」다.
  • 선사∼명대 중국인의 성풍속도 묘사(화제의 책)

    ◎「중국 성풍속사」 동양학 전문학자로 명성 높은 네덜란드태생의 직업외교관 RH반 훌릭이 쓴 선사시대부터 명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인의 성풍속도를 그려 냈다. 이미 「고대중국의 성생활」이라는 저서를 낸바 있는 지은이가 보다 폭넓은 역사적 시각과 사회학적 방향에서 성과 미술,문학,경제를 살펴봤다. 역사맥락의 순서에 따라 대체로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제1부의 경우 선사시대와 서주,동주시대를,2부는 진∼육조시대는 성과 도교및 가정생활에 중점을 두었다.3부는 제국의 전성기인 수·당·송대를 성교본및 고급매춘,궁정의 성관계,전족의 습관,매춘,신유학이 성관계에 미친 영향등을 서술했다.4부는 원·명시대의 성관계를 라마교,미술·문학속에서 찾았다. RH반 훌럭지음 장원철옮김 까치펴냄 7천5백원.
  • 관·민합심「강진 병영면사」펴내/고대∼조선시대 해상교역·군사 요충지

    ◎산재한 성터·유적 발굴,옛 긍지 되살려/“지방자치단체서 향토문화뿌리찾기 뜻깊은 일”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은 지명에서 알수 있듯이 조선5백년동안 호남지역의 군수권을 통괄하던 병마절도사의 잔지가 위치한 군사요충지였다.우리 주위에는 이처럼 역사속에 뿌리를 내린 향토문화의 현장이 곳곳에 산재돼 있다. 최근 이같은 병영면의 향토사를 담은 「강진군마을사­병영면편」이 강진군과 병영면 그리고 강진문화원의 공동작업끝에 발간됐다.향토문화뿌리찾기가 활발한 요즘 이같은 면단위사를 지방자치단체에서 펴낸 것은 뜻있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강진군 병영면은 마한­백제­통일신라­고려­조선에 이르는 역사적 변천을 거쳐 오늘날 12개 법정리에 22개 자연마을을 이루고 있는 해상교역과 군사요충지로 유명한 지방이다.여말선초에 걸쳐 왜구의 피해가 극심했던 이 지역보호를 위해 1417년(태종17년) 광산현에 있던 병마절도사의 영이 옮겨와 이후 전라도군수권을 통괄하는 사령부로 당시 50여 군·현의 병권을 장악했던 곳이다.병영성터,공적비군,남장대,북장대등 당시의 유적이 지금도 남아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또 이곳은 을묘왜변(1555년),임진왜란(1592년),정유재란(1597년),동학난(1894년)등 국난을 당할 때마다 화를 입은 호남지방의 수난의 고장이기도 했다. 「병영마을사」는 이같은 병영면의 연혁과 지리적 환경,문화적 성격,자료편을 모은 총설편과 12개 마을의 각사 그리고 이 지역 출신인사들의 글을 모은 병영면예찬,병영면에 내려오는 마을문서등 모두 4백35쪽으로 짜여졌다.특히 이 책은 강진군과 병영면등 자치단체가 지원하고 강진군문화원과 민간에서 운영하는 탐진향토문화연구회가 발간의 주축이 되어 만든 관민합동작품이라는데 의미가 있다.자료수집과 탐문작업에 마을주민 모두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참여한 점 또한 남다르다. 이번 작업을 통해 군사요충지로서의 병영면이 갖고 있는 모습뿐아니라 효자와 열녀를 장려하는 전래풍속,인품·학식·덕망있는 사람을 동수장으로 모셔 중요 일을 결정한 동수장제도,수십년동안의 마을품앗이역사를 기록한 진세봉상책등 타지역에서는 보기힘든 습속을 찾아내는 성과도 거뒀다. 김갑현병영면장은 발간사에서 『우리 고장의 자랑스런 역사에도 불구하고 유적과 전설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지를 않아 안타까웠다』면서 『이번 마을사발간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야 할 숙원인 병영성복원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 킹조지섬 세종기지 월동대원들의 신년맞이

    ◎“여기는 남극… 붉은 해가 솟는다”/전원이 지원자… “과학첨병” 자부심/살인강풍속 기상­해양조사 한창/중순 대전엑스포에 화상전화기 연결계획 『올 일년동안 세종기지의 시설을 신부처럼 정성껏 보살피겠습니다』 남위62도13분·서경58도45분.한반도에서 지구정반대쪽인 남극대륙 남단 킹조지섬에 위치한 대한민국 남극과학기지인 세종기지. 이국만리 얼음의 땅 남극에서 한국인의 개척정신은 새해를 맞아 활화산처럼 타오른다. 지난해 11월21일에 결혼,보름동안 신혼의 단꿈에 젖다 월동대원으로 온 김흥수씨(30·발전기관리 및 시설운용담당)는 이역만리 남극에서 계유년(계유년)새해를 맞는 비장한 각오를 다짐했다. 남극기지 6차월동대원은 모두 12명.지난 16일 서울을 떠나 9일만인 25일 세종기지에 도착했다. 고국에선 연말연시의 들뜸과 아쉬움이 교차하고 있지만 세종기지에는 긴장감만이 감돈다. 사람과 문명으로부터 단절돼 한해를 보내야 한다는 절대고독,익숙지 않은 극지생활,언제 어디서 생명을 위협할지 모르는 강풍과 칼날같은 강추위…. 이들 한국인 개척자들은 새해 새아침 대서양상공 인마세트 인공위성을 통한 본사와의 3차례에 걸친 국제전화로 『여보세요,여기는 남극세종기지입니다.대한민국국토의 최전방 개척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겠습니다』라고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학자·기상전문가·통신기술자·기계설비기사·의사·조리사 등으로 구성된 월동대는 올 12월말까지 꼬박 3백65일동안 세종기지의 운영과 남극의 자원연구 및 과학데이터 수집 등을 하게 된다. 요즘 남극은 「여름」이다. 여름이라 해도 평균기온이 영하 2∼4도로 우리나라 겨울날씨와 맞먹는다.해는 하루 4시간정도 떠있다.평균기온이 영하 24.4도,체감온도가 영하 40∼50도나 되는 겨울과 비교하면 확실히 여름이다. 이들을 월동대라고 부르게 된 것은 3월까지 이어지는 짧은 여름에 겨울 날 준비를 하고 4월부터 시작되는 긴 겨울에 대부분의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88년2월 기지준공직후 1차 월동대로 1년간 남극근무를 하고 이번이 두번째인 6차 월동대장 김동엽박사(42·한국해양연구소 책임연구원)는 『재난 등 만약의 사태가 발생해도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막막함이 제1의 스트레스』라며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심한 바람과 눈보라,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변덕스런 기후변화』라고 말했다. 외부활동이 불가능한 초속20m의 바람은 하루에도 몇차례씩 불어온다.밖에 나와 있으면 실종위험 등이 우려되는 초속40m의 강풍도 자주 분다.때문에 7백13평에 연구동·거주동·본관·발전기동 등 11개 건물은 모두 밧줄로 튼튼하게 연결돼 있다. 구랍 28일 상오에도 세종기지 부두에서 하역작업을 하다 갑자기 불어온 초속30m의 바람에 전 대원들이 대피하기도 했다. 강풍을 동반한 시계(시계)제로의 눈보라가 불어 닥치면 막사 안에서 1주일,길면 보름동안 갇혀 지내야 한다. 이 때문에 외부활동은 반드시 2명이상이 함께 해야하고 6㎞밖에 나갈때는 무전기와 비상식량을 휴대해야 한다. 그러나 남극의 혹한과 악천후도 대원들의 사기와 의욕을 꺾지는 못한다. 대원중 4명은 남극경험이 있고 대원 모두가 지원자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해양자원연구를 맡은 표세진씨(34·한국해양연구소 선임연구원)는 『우리가 있음으로 해서 남극대륙의 기득권·연고권을 주장할수 있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낀다.한민족의 긍지와 기백으로 최선을 다할 각오이며 새해를 맞아 고국과 동포에게 축복과 영광이 있기를 기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말을 확인이라도 하듯 안승용통신담당은 서울서 가져온 화상전화기시스템을 1월 중순까지 대덕의 EXPO박람회장과 연결,작동시키겠다고 전했다. 기상청에서 파견된 남영만씨(34)는 고공 3백㎞의 대기상태를 조사·연구하는 고층대기조사간섭계등 첨단장비를 이용,벌써부터 기상변화연구자료수집과 데이터베이스작업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90년 4월 월동대에 근무한바 있는 조리사 백영식씨(57)는 『식량보급이 1년에 한번뿐이어서 신선한 야채를 먹을수 있는 기간은 1년에 고작 2달정도』라며 『이번에는 힘들더라도 작은 온실을 만들어 콩나물말고도 준비해온 상추·쑥갓·배추씨를 뿌려 대원들에게 야채맛을 보여주겠다』고 새해를 맞는 순박한 포부를 털어놓았다.
  • 「새 서울」의 청사진/서울시의 「정도6백년」 기념사업(국정탐방)

    ◎화합·융성의 통일수도 가꾼다/열림 등 4주제로 전통과 미래 융합/남산골 전통공방·박물관 등 건립 서울시는 요즈음 서울6백년 기념사업을 성공적으로 펼치기 위해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는 냉전체제를 극복하고 민족의 화합과 융성을 일구는 통일시대의 수도로서의 기틀을 마련하고 동북아의 거점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다. 그러나 지금 서울은 근대사의 역경과 지난 한세대동안 숨가쁜 성장을 겪어오면서 고도로서의 뿌리와 대도시로서의 문화적 향기를 잃어가고 있고 성숙된 시민의식과 「서울 고향」의식을 일구어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은 21세기로 향하는 문턱에서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은 절호의 기회를 한번 놓쳤다. 88서울올림픽이 그것이다. ○모든 행정력을 집중 여러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국론분열로 민족적 저력을 한데 모으는데 실패한 정치권의 잘못이 크다.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는 그릇된 길로 접어든 정치의 영향을 받아 뒷걸음질만 거듭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그 힘을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일본과 큰 대조를 이룬다. 일본은 이를 계기로 선진사회의 구성원임을 확실하게 증명했고 뒤이어 1970년 개최된 만국박람회를 통해 국제사회에 완전히 동참했다. 그만큼 일본은 올림픽을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은 반면 우리는 유사이래 가장 성대한 올림픽을 치르고도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 이를 경험한 서울시는 조선 태조 이성주가 1394년 한양을 도읍지로 결정(8월13일)하고 환도(10월28일)한지 6백년이 되는 1994년을 앞두고 서울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서울,새로운 탄생」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수립한 「서울600년기념사업」이다. 이 사업은 역사도시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위한 「다시보는 서울」과 인간도시로의 새로운 탄생을 노린 「새로나는 서울」,문화도시로와 세계도시로의 새로운 탄생을 위한 「신명나는 서울」,「열려 있는 서울」등 4가지 주제별로 시민 스스로 하는 「시민사업」과 서울 6백년을 경축하는 「기념사업,21세기를 준비하는 「계기사업」등 3가지유형으로 모두 12개의 사업군,41개 세부사업을 이루고 있다. 이 12개의 사업군은 서로 유기적으로 얽히고 체계화해 상승적인 효과를 내도록 했다.즉 ▲회고와 반성을 바탕으로 ▲주변부터 정돈하면서 ▲미래를 설계하고 ▲잔치를 통해 서로의 결속을 다지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미래를 위한 설계를 실행에 옮김으로써 새롭게 태어나자는 것이다. ○대부분 내년에 시작 이 사업들 가운데 서울가까이 운동과 남산 제모습가꾸기 등 일부는 이미 시작된 것도 있으나 대부분 대전엑스포가 열리는 내년에 시작해 95년까지 3년동안 펼쳐진다. 사업의 계획은 서울시에서 공청회 등을 거쳐 입안한 시안을 바탕으로 지난 6월15일 발족한 각계 53인의 시민위원회(위원장 김원용·70)에서 종합적으로 심의,재검토해 10월27일 확정했다. 당초 경축문화예술행사 중심으로 접근되었으나 시민위원회 등의 심의과정을 통해 도시발전의 실질적인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실천적인 사업으로 꾸몄다. 주요사업으로는 서울 6백년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의 근세사와 생활풍속사,자연지리,도서·지도 등 각종 자료를 망라한 서울 6백년전이 내년부터 94년까지 열린다. 또 자연제와 역사제,시민축제,도시예술제 등의 대동제가 94년에 한강·서울거리·북악산·남산·관악산 등에서 펼쳐진다. 서울과 세계도시들을 잇는 서울∼세계도시축제와 서울의 자연경관과 공간구조의 골격을 이루는 육경축과 한강 수경축의 만남을 상징하는 서울랜드마크도 만들어진다. 뿌리를 되찾기 위해 시립박물관 건립과 남산골 전통공방촌및 역사탐방로등을 만들고 서울의 성장사를 증명하는 「서울학 사료탐사」를 통해 흩어져 있는 사진·문서·지도 등 각종 시사자료를 체계적으로 조사·수집·목록화하고 특히 일제강점기의 자료를 일본 등에서 집중 수집한다. 서울의 자연과 역사·지리·문화·환경·도시계획 등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서울총서와 문화지도·영상 등의 서울미디어도 만들 계획이다. 서울을 인간도시·시민도시로 만들기 위한 사업도 다양하게 전개된다. 우선 여의도광장을 친밀한 공간으로 재구성해 서울의 명소인 시민의 마당으로 재탄생시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 콘크리트광장지하에 공공주차장과 문화 편익시설을 갖춰 광장이용을 활성화하고 단절된 동서지역및 한강공원을 연결한다. ○여의도광장 재구성 이어 21세기 준공목표로 시청사건립계획을 구체화하고 지난달 14년동안 서울시민의 쓰레기받이로서의 역할을 다한 난지도를 생태공원 등으로 가꾼다. 서울시는 특히 미래서울의 중심적 핵이 될 시청사 건립과 텔레포트 및 국제컨벤션센터 건설,그리고 여의도 지하권개발을 역점사업으로 선정,광범한 여론수렴과 전문가들에 의한 철저한 연구·검토를 거쳐 추진하기로 했다. 도시문화를 꽃피우기 위한 사업으로는 문화창달의 지원기구인 서울문화센터를 건립하고 지역과 기업문화의 육성·개발을 목표로 한 서울문화경진 등이 준비되어 있다. 서울시는 미래서울의 모습을 시민 모두가 같이 그려보자는 취지로 광범위한 계층의 참여를 바라고 있다. 이는 자기 집을 개조하는데 주인이 참여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는 논지이며 생일 잔칫날 자기집 짓는 문제를 온 식구가 같이 의논하는 것만큼 신나는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외국수도의 축제/시청사신축 등 르네상스 추구/도쿄 4백년/EC통합 대비… 정보기능 강화/파리 2백년/건축전 등 열어 도시미관 개선/베를린 7백50년 역사는 흐른다. 역사는 중요한 계기를 맞아 발전을 한다. 오는 94년은 서울의 정도 6백년을 맞는 해이다.사람으로 치면 10번째 희갑을 맞는 셈이다. 서울시는 6백년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얼굴인 서울이 재도약을 할수 있는 각종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외국의 도시도 최근들어 「생일」을 맞아 대대적인 르네상스를 꾀하고 있다. 도쿄 4백년,프랑스 혁명 2백년,몬트리올 3백50년,베를린 7백50년 행사등이 도시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있는지를 알아본다. ▷도쿄4백년◁ 지난 90년 에도(강호)에 도읍을 정한지 4백년을 맞아 89년부터 96년까지 3단계로 도쿄 르네상스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1단계(89∼90년)는 각종 4백주년 기념사업을 폈고 2단계(91∼93년)는 도쿄 예술문화회관 건립,시청사 신축등의 사업을,3단계(94∼96년)는 도쿄세계도시 박람회 개최등을 계획하고있다. 이같은 사업은 경제대국의 수도에 걸맞는 세계 초일류도시로 만드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때문에 도쿄 심포지엄·에도도쿄자유대학·자치구의 문화행사등을 통해 문화사업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또 최첨단 정보단지(Teleport)를 조성,동북아의 중심도시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한다는 계획이다. ▷파리◁ 프랑스 혁명 1백주년을 기념해 1889년 세계적인 에펠탑을 건립한바 있다. 이제 2백주년을 계기로 유럽공동체(EC)가 통합될 경우 EC의 수도가 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파리는 89년 신개선문을 만드는등 세계적 문화의 중심이라는 점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경쟁도시인 런던·베를린등과 차별화시키고 있다. 아울러 첨단정보기능등을 강화하고 있다. ▷베를린 7백50년◁ 베를린은 동서독 통합전인 87년 7백50년을 맞아 상대적으로 취약한 건축물을 보강하기 위해 대대적인 국제 건축전을 열어 도시미관을 개선했다. 또 파리를 의식,연극·영화행사·학술회의를 개최하는등 정치·문화적으로 유럽의 중심도시로 자리잡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몬트리올 3백50년◁ 캐나다의 몬트리올은 올해 3백50주년을 맞아 주체성있는 문화사업과 이민사회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를테면 「몬트리올 독창성에 관한 심포지엄」·미국음악 잔치·샹송축제·국제영화제등을 통해 미국과 유럽문화로부터 문화적 독립을 추구하고 있다. ◎“살맛나는 환경조성 계기로”/새 도시 향한 「문화혁명」 준비/사업실무총책임자 강홍빈 시정연구관(인터뷰) 서울시청에는 항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방이 있다. 또 그 방에는 웬만한 대학교수의 연구실같은 책들로 가득차 있다. 시청내의 「이방지대」인 그 방의 주인은 강홍빈시정연구관(2급). 올해 47세인 그는 바로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서울 6백년사업」의 실무 총책임자이다. 강연구관은 『6백년사업은 서울을 시민들이 애착과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새롭게 탄생시키자는 것』이라며 6백년 사업의 구상을 털어놓았다. 일제치하·급속한 경제성장등을 겪으면서 단절된 6백년의 뿌리를 찾고 이와 함께 앞날에 대한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방향이라는 얘기다. 강연구관은 또 『민족문화의 얼굴을 가진 서울을 만들고 국제화시대에 발맞춰 세계성을 가진 국제도시로 만들어 21세기의 동북아,나아가 세계의 중심도시로 견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도시의 문화와 환경을 사람의 몸과 마음에 비유했다.조직적인 문화와 일상적인 환경이 조화를 이뤄야 「사람 사는 맛」이 날텐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도시계획은 곧 종합예술」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강연구관은 『「문화혁명」을 통해 서울을 새롭게 꾸미겠다』고 기염을 토했다.그는 문화야말로 새로운 이미지 사업이고 이미지를 통해 경제의 활력을 북돋울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디자인을 통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관광사업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독립기념관·올림픽공원 조성을 맡기도 했던 그는 미국 하버드대 석사,MIT공대 박사출신으로 3공말기 신수도행정 건설에 깊숙히 참여하기도 했다. 특히 MIT공대에서 「예술·건축·환경학 박사 1호」인 그는 「강박사」로 더 유명하다. 주택공사 산하 주택연구소장으로 재직하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이었던 박세직씨의 추천으로 지난 90년 6월 서울시로 옮긴 강연구관은 『월급도 연구실도 절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일하는 재미로 더 즐겁다』고 말했다. 강연구관은 『6백년 사업은 「무엇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할까」라는 것』이라며 『따라서 시민이 한마음이 돼 참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 「도이모이」 6년… 곳곳 개방물결(변화하는 베트남:1)

    ◎작년 사유재산 인정뒤 생활상 급변/노출 심한 아오자이의상 다시 유행/퇴폐문화 부활 조짐… 대도시 러브호텔 성업 공산화 17년,베트남의 현주소는 어디인가.베트남은 지난 86년 12월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쇄신이란 뜻의 「도이모이」를 새로운 정책으로 채택,경제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또 6년여가 흐른 지금 「도이모이」의 성과는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그러나 우리의 60년대초를 연상케하는 베트남이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으나 자본및 기술,경험의 절대부족과 개혁·개방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는 사회주의체제신봉자들의 반동적 노력때문에 결코 순탄치만은 않다.베트남의 변화된 모습과 앞으로의 개혁방향등을 시리즈로 싣는다. 베트남의 개방과 개혁을 향한 노력은 곳곳에서 드러난다.남부와 북부,도시와 농촌 어디를 돌아봐도 「도이 모이」의 물결이 넘친다.다만 75년 공산통일 이전 자본주의를 경험한 적이 있는 호치민시(구 사이공)를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과 프랑스에서 독립한이래 줄곧 공산정권 치하에 있었던 북부지역간에 변화의 속도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지난 4월 베트남 정부가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재산의 상속및 증여,인도를 허용한 뒤부터 개방과 개혁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곳에 진출한 우리 상사원들의 설명이다. 우선 개혁과 개방의 모습은 젊은이들의 옷차림에서부터 감지할 수 있다. 하노이시 번화가 호안 킴가 옆에 있는 호수 근처를 거니는 젊은 남녀들의 T셔츠 가운데는 성조기와 붉은 바탕에 금색의 별이 새겨진 베트남 국기가 나란히 인쇄된 것도 있다.이런 T셔츠는 심지어 사회주의 신봉자였던 국부 호치민의 묘소가 있는 바딘광장 근처 기념품가게에도 버젓이 걸려 있다. 또 하노이 최대시장인 초 동 슈안시장에는 질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청바지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노출이 심하다고 해서 금지됐던 베트남 여자들의 전통 의상 아오자이가 허용된 것도 「도이 모이」가 시행된 뒤부터이다. 그러나 아오자이는 이제 여염집 여인네의 일상 옷차림에서부터스튜어디스의 제복,학생들의 교복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여자들의 의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정작 69년에 죽은 호치민이 소스라쳐 벌떡 일어날 일은 젊은이들의 성풍속도이다. 하노이와 호치민같은 대도시에는 미니호텔이라는 우리로 치면 남녀에게 섹스장소를 제공하는 러브 호텔이 성업중이다.두 사람이 겨우 누울 만한 크기의 미니 호텔은 손님이 없는 시간에 방을 빌려주고 「과외돈」을 챙기려는 종업원들에 의해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다.개방과 개혁은 한편으로 자본주의라는 퇴폐의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쿠바수상 카스트로가 지난 77년 베트남전 승리를 기념해 지어주었다는 하노이 탕 로이(승리라는 뜻)호텔에는 마사지걸이 있는 사우나도 있다.마사지걸 중에는 간호원과 공무원도 있다는 것이 삼성지사 곽세호 과장의 귀띔이다. 호치민시에서 가장 크고 역사가 1백년이 된다는 벤 탄 시장 입구에는 여자들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손톱·발톱을 다듬어주는 이른바 노상 뷰티숍이 눈길을 끈다.우리나라의 구두닦는 곳처럼 얕은 의자에는 비교적 부유해 보이는 중년여자들이 줄지어 앉아 있고 그 앞에는 쪼그려 앉아 이들의 손톱·발톱을 다듬는 손놀림이 분주했다. 호치민시에는 이미 영어로 된 대형 입간판이 즐비하고 호치민시에 비해 한산하기 짝이 없는 하노이에도 「SHOP」「CAFE」등 영어로 된 간판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있다. 공산화전 미군장교클럽으로 쓰였던 호치민시 렉스호텔옆 극장에는 앞으로 상영될 외국영화 포스터가 걸려 있고 대여섯평 남짓한 공간에 겨우 엉덩이를 걸칠만한 의자를 설치하고 TV로 비디오를 보여주는 비디오숍에도 미국영화가 태반이다.
  • 서해갑문∼과일군간 수로공사 추진(북한 이모저모)

    ◎총208㎞ 2단계로 나눠 ○…북한은 지난 5월 서해갑문∼은률∼과일군간 기본수로(1백4㎞)를 완공한데 이어 최근 2단계 공사를 추진하고 있다고 21일 중앙방송이 보도. 서해갑문∼은율∼과일군간 수로공사는 지난해 10월 김일성이 과일군 과수원 관개공사 지시에 따라 착공했는데 서해갑문의 물을 남포시 와우도 구역에서부터 끌어 은율군의 서해리·철산리·도포리등을 거쳐 과일군 일대의 과수원에관개용수로 공급하는 총 연장수로 2백8㎞(기본수로 1백4㎞)의 방대한 공사라고 중앙방송은 전했다. 북한은 우선 기본수로공사를 추진해 지난 5월4일 완공,통수식을 가진데 이어 최근에는 2단계로 은율군과 과일군의 각 지역에 관개용수를 공급하는 지선수로공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21일 현재까지 토량공사와 26㎞구간의 수로파기 공사를 완료했다고 중앙방송이 보도. ◎김정숙 찬양작품 7백여편 쏟아져/24일 출생 75주 맞아 ○…북한은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출생 75주(12·24)를 맞아 김정숙을 찬양하는 7백여편의 문학예술작품과 다수의 미술작품들을 창작,발표했다고 중앙방송이 23일 보도. 북한의 조선문학창작사에서는 단편소설 「크나 큰 사랑」「한주일」,서정서사시 「폭풍속에 피는 꽃」,서사시 「새싹이 움틀 때」,동시 「오산덕」등을 발표했으며 군문예창작실과 사회안전부 창작실에서도 시 「빛나는 고향」등의 작품을 내놓았다고 이 방송은 전언. 이밖에도 전국의 예술단체·선전대들을 비롯,공장·기업소·협동농장 근로자들과 군부대내의 아마추어 창작가들이 수없이 많은 작품들을 창작했는데 이들은 주로 김정숙의 ▲반일애국사상 ▲김일성에 대한 충실성 ▲후대교육사업등을 소개한 것들이라고 이 방송은 소개.
  • 「노래하는 나무」 등 30종 선정/간행물윤리위,청소년위한 책 발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위원장 이원홍)는 겨울방학기간동안 청소년들이 읽을만한 「좋은 책」30종을 선정,발표했다. 이번에 선정된 도서는 서양미술의 정신및 구조와 기법등 서양화감상의 기본지식을 실례를 들어 설명한 오광수의 「서양화감상법」등 국내저작물 19종과 외국번역도서 11종등 모두 30종이다. 문학 예술 종교 철학 경제 역사 과학 교양 아동등 9가지 분야별로 뽑은 이들 권장 도서는 선정일기준으로 1년이내에 발행된 국내도서로서 간행물윤리위가 출판계·학계등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서평위원회에서 엄선한 것이다.(목록참고) 제목 저자 출판사 노래하는 나무 김후란 자유문학사 보고싶은 어머니 이종수 청조사 한줌의 흙 차임포톡 영림카디널 한 꽃송이 정현종 문학과 지성 어머니에게 사랑을 앙투안 생텍쥐페리 서연 국적이 많은 여인 정수잔나 보성사 시인의 죽음 다이호우잉 지리산 유럽사회­풍속산책 이광주 까치 소설 바그너 장루슬로 세광음악출판사 서양화 감상법 오광수 대원사 히말라야의 새 루디야드키플링 불일출판사 종교와 상징 이은봉 세계일보 삶과 그 보람 김태길 철학과 현실 철학,어떻게 할 것인가 모리스엥겔 문예출판사 책을 위한 책 앨런와츠 장원 경제학 산책 홍기현·조영달 김영사 재미있는 인류 이야기 리처드리키 예문당 누가 컴퓨터를 두려워하랴 이광형 동아일보사 물리나라 여행기 요시프페레취 나라사랑 재미있는 물리실험이야기(1,2)가리펠시타민 팬더북 비눗방울 이야기 홍창표 미래사 한글세대를 위한 한자교육 김형중 밀알 한국인의 상징 세계구미래 교보문고 치앙마이 김병호 매일경제 꿈을 위한 서곡 채찬석 어문각 재미있는 날씨 이야기1 조석준 해냄 어린이 식물도감 김태정 예림당 빛을 남긴 사람들(1∼3) 김정아·임영란·노혜봉신구미디어 하늘나라 아리랑 이종구 고려원미디어 인간 로켓티어 피터데이비드 남도
  • 영조의 그림솜씨/박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굄돌)

    역사를 통해서 보면 통치자의 성향이 그 문화의 성격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알렉산더나 칭기즈칸 같이 세계를 정복한 영웅들이나 아쇼카나 진시황 같이 제국을 통일한 무단적인 인물들이 나라를 다스릴 때는 상무호법정신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어 자연히 학문과 예술은 그에 종속되는 비운을 맞았었고 당태종이나 당현종 및 조선의 세종대왕이나 영조대왕 같이 학문과 예술을 숭상한 통치자가 다스릴 때는 문운이 크게 일어 획기적인 문화발전이 이루어 졌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그래서 이런 현군의 치세하에서는 학문과 예술분야에서 역사상 최고 업적을 남겨 서성이니 화성이니 시성이니 하는 칭호를 얻는 이들이 많이 배출되게 마련이다. 소위 초당삼대가라 불리는 구양순,우세남,저수양 같은 대서예가들은 당태종이 길러낸 이들이고 그림에서 남북종화의 시조로 추앙되는 왕유와 이사훈및 시선 이태백,시성 두보는 당현종 성세에 배출된 인물들이다.세종대왕 시대에도 시서화금기 오절로 꼽히던 안평대군 이용을 비롯하여 화원화풍의시조인 현동자 안견과 사대부화풍의 시조인 인재 강희안 등 허다한 예술가들을 배출한다. 이런 대예술가들을 배출하던 당시의 군주들은 그 자신이 학예를 숭상하는 천품을 타고나 이미 학문과 예술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어 그 기량이 대가의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 상례이다.당태종이 서예의 대가이었다든가 당현종이 시서에 능하였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우리 세종대왕이 송설체 글씨에 능하고 난죽을 잘쳤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그렇다면 조선 고유색 짙은 진경문화를 주도하여 시성으로 불러야 할 진경시의 대가 차천 이병연(1671∼1751)과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화성 겸재 정선(1676∼1759)을 길러낸 영조대왕(1694∼1776)도 필연 학예의 천품을 타고난 대예술가이었으리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과연 그렇다.이미 왕자시절에 그의 산수인물도는 부왕인 숙종대왕의 극찬을 받을 만큼 가경에 이르러 숙종어제의 제화시가 남아있을 정도이데 겸재의 동문 후배인 동포 김시민(1681∼1747)이 남긴 제사에서 보면 영조는 산수인물 뿐만 아니라 난초 국화 매화 등을즉석에서 휘호하여 도자기의 밑그림으로 쓰게할 만큼 대단한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그런 임금이었기에 시성 차천과 화성 겸재 및 풍속화의 시조 관아재 조영우(1686∼1761)등을 길러 내었을 터인데 사실 왕자시절에 이들과 같은 동네에 살면서 이들의 영향을 받아 그 천품을 함양해 간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그 동네는 지금의 청와대 부근이니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해당한다.
  • 복거일 장편 파란달아래(이달의 소설)

    ◎문학속에 과학지식 접목한 SF소설/분단상황 작품통해 극복,통일로 결실 역사의 흐름이 만들어져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과학기술의 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시대에나 자못 커다란 것이었음에 예외가 없거니와,최근에 와서는 그 비중이 과거보다 더욱더 증대되고 있음을 또한 부정할 수 없다.그렇다면 역사의 흐름 속에 놓여 있는 인간의 운명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하는 소설가가 이러한 과학기술의 영역을 자신의 문학공간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뜻있는 창조의 원천으로 삼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다.이처럼 바람직한 작업의 실천이라는 과제에 도전하여 탁월한 성과를 거둔 실례들을 우리는 외국의 수많은 일급 SF소설에서 인상깊게 목도한 바 있다. 사태가 이쯤까지 진전되고 보면,이제 그 다음으로 제기되는 과제는 우리 나라의 작가에 의하여 훌륭한 SF소설이 창작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이러한 과제에 실제로 부응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한 사람의 작가가 좋은 SF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소설가로서의 일반적인 역량을 훌륭하게 구비하고 있으면서 과학기술의 영역에 대하여도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이런 두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기란 결코 쉬운 노릇이 아닌 것이다.문제는 또한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SF소설의 전통이 확립되어 다수의 걸작을 생산한 바 있기 때문에 한국의 어떤 작가가 위의 두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고서 모처럼 회심의 역작을 써낸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나온 외국소설의 아류작으로 그칠 위험이 다분한 것이다. 그러나 매우 다행스럽게도 오늘의 한국 문단은 위와 같은 여러가지 난점을 모두 극복해낸 한 사람의 훌륭한 SF작가를 가지고 있다.복거일이 바로 그다.그는 지난해 말 그 첫부분 세 권을 출간했던 대작 「역사 속의 나그네」에서 성공적인 SF소설의 범례를 선보인 바 있거니와 이번에 새로 나온 장편 「파란 달 아래」를 통하여 그의 재능이 얼마나 탁월한 것인지를 다시한번 입증해준 것이다.이 두 작품 모두에서 복거일은 뛰어난 소설가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일반적인역량과 과학기술의 영역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겸비하고 그 양자를 적절히 결합시킨 존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그러면 앞에서 내가 지적했던 또한가지 난점,즉 아무리 좋은 SF소설도 이미 나온 외국소설의 아류작으로 그치기 쉽다는 난점을 어떻게 극복되었는가? 「역사 속의 나그네」에서는 16세기 조선사회의 일상적인 풍속을 정밀하게 재현하는 작업에 의하여 그리고 「파란 달 아래」에서는 오늘의 한국이 안고 있는 분단극복의 과제를 깊이있게 파고들어가는 작업에 의하여 극복되었다.결국 복거일은 두 작품 모두에서 「한국」만이 특유하게 지니고 있는 어떤 측면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는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아류작으로 떨어질 위험을 멋있게 이겨낸 것이다.
  • 동지날 양이 꿈틀댄 뜻은(박갑천칼럼)

    빙허 현진건(빙하 현진건)의 단편 가운데 「운수 좋은 날」이 있다.우리 단편소설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평가되는 1920년대 작품이다.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듯하더니 눈은 아니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는 허두로 보아 요맘때의 이상기후였던 것인지 모른다.『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동안 돈구경도 못한』인력거꾼 김첨지는 이날 생각지도 못한 큰돈을 번다.첫번째에 삼십전,두번째에 오십전,세번째에는 놀랍게도 일원오십전 하는 식으로.그는 선술집에 들러 몇잔 걸친 다음 병석의 아내가 먹고 싶어하던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으로 간다.그렇게나 운수 좋은 날에 아내는 죽어있었다. 그렇다면 운수 좋은 날은 바로 운수 사나운 날이 아니었던가.빙허가 말하고자 한 것은 이같은 인생살이의 기묘한 엇결이었다.생각해 보자면 운수 좋은 일이 바로 운수 사나운 일이기도 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 기미를 모르는지라 나타난 현상만을 놓고 일희일비한다는 뜻.그러기에 옛사람도 경계하지 않았던가.­『꽃은 반만 핀것을 보고 술은 조금취토록 마시면 이 가운데 가취(개취)가 있다.만약 꽃이 활짝 피고 술이 흠씬 취함에 이르면 문득 악경을 이루나니 「가득찬 곳에 있는 이」(이영만자)는 마땅히 생각할지니라』고.(홍자성의 「채근담」) 여느해보다 일찍 들어서 올해는 21일이 동지였다.팥죽 쑤어 먹고 이를 뿌려 잡귀 쫓는 풍속이었지만 한편 이날을 「일양래복」(일양래복:양이 다시 옴)이라 일컬었던 점에 깊은 뜻이 담긴다.춥기 시작하는 무렵에 동지는 들었고 사실은 동지가 지난 다음인 이듬해의 1월 중순쯤이라야 그 겨울의 진짜 추위는 닥치는게 아니던가.그런데 진짜 추위가 시작되기도 전인 동지에 양이 싹튼다고 했으니 음은 그 때부터 기세가 꺾여 간다는 뜻이다. 도산서원에서도 이런 논의가 있었던 듯하다.어느 동짓날 김취려가 스승 퇴계에게 묻는다.『오늘은 일양이 처음으로 움직이는 날로써 곧 천지가 물을 생하는 처음이니 모든 초목 뿌리의 생기가 움직이는 것입니까』하고.이에 스승은 『…그 가지는 마르고 여위어 생기가 나타나지 않으나 그 싹이 터서 자랄수 있는 이치는오늘에 이미 움직이는 것이다』고 대답한다.그러면서 『…그뿐 아니라 선의 싹이 맹동함도 양이 돌아오는 날이니라.다만 사람들이 욕심때문에 그 기운을 넓히고 채우는 공을 이루지 못하니…슬픈 일이다』고 덧붙인다. 세상의 길흉화복이 이것이다.운수있는 날의 길속에 흉이 깃들이고 한겨울 동지의 음속에서 양은 꿈틀댄다.그러므로 한때의 길에 너무 가즈럽게 굴 일도 아니고 한때의 음에 너무 직수굿해 있을 일 또한 아니다.어떻게 겸허하고 어떻게 극복해내느냐 하는 슬기가 중요할 뿐이다.
  • 화 여객기 폭발 90명 사망/2백50명 부상… 악천후속 구조작업

    ◎포르투갈 파로공항 【리스본 로이터 AFP 연합】 승무원 13명과 승객 2백73명등 총 3백40명을 태운 암스테르담발 네덜란드 DC­10 전세 여객기 1대가 21일 아침 악천후속에서 포르투갈남부 파로공항에 착륙도중 불길에 휩싸이면서 폭발해 80∼90명이 숨지고 2백50명가량이 부상한 것으로 공항 당국이 밝혔다. 포르투갈의 루사(LUSA)통신은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해 네덜란드 전세기회사 마르틴에어소속의 이 여객기가 암스테르담을 출발,이날 아침 8시30분(한국시간 하오4시30분)경 폭우와 강한 역풍속에서 파로공항에 착륙하던중 폭발했다고 보도했다. 현지 TSF 라디오의 한 기자는 사고현장에서 인명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는 소방대원들이 사고 여객기 잔해속에서 50구이상의 시체를 끌어냈으며 생후 6개월가량된 아기를 구출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전하고 그러나 폭우가 계속되고 있어 인명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항관계자들은 사고기가 이날 악전후속에서 두번째 착륙을 시도하던중 추락한 것이라고 밝히고 사고기가 착륙하는 순간 엔진하나가 활주로에 닿아 불꽃이 일면서 사고기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고 사고 상황을 설명했다. 사고 직후 수십대의 소방차와 앰뷸런스가 현장으로 달려갔으며 공항당국은 부상자 구조를 원활히 하기 위해 공항을 폐쇄했다.
  • 영호남 지역감정 둔화 뚜렷/28일간의 유세대장정 결산/기자방담

    ◎사람 동원보다 「찾아다니기」 새 바람/막판 폭로전 등 구태답습에 아쉬움/TV유세·광고 등장 영상정치시대 도래/2김1정,연설 1백회 이상… 건강과시/후보부인들도 시장돌며 득표경쟁 14대 대권고지를 향한 열띤 선거운동이 17일로 마감된다.각 후보들은 지난달 20일 선거공고이래 28일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이제 18일의 유권자심판을 기다리고 있다.이번 대선전은 막판까지 김권공방과 흑색선전·폭로 등으로 혼탁한 양상이 계속됐다.그러나 지난 87년 대선때보다 관권개입 및 지역감정이나 폭력사태 등은 크게 줄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대선투표일을 하루 앞두고 이번 선거전의 특징 및 쟁점,유세결산 등을 취재기자방담으로 정리해본다. ­이번 대선전의 특징적인 양상은 중립내각의 출범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입니다.중립내각의 출범은 선거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선거막판에 「부산기관장모임」파문으로 흠집이 생기는 했지만 관권개입은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민자당 당직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이겨도 기적,져도 기적」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이겨도 기적」이라는 표현은 과거 여당의 선거는 거의가 관권위주였는데 이번에는 관권이 전혀 움직이지 않아 선거운동을 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져도 기적」이라는 말은 이번 선거를 영·호남 대결구도로 볼때 도저히 질수 없는 「게임」이라는 의미입니다.영남의 유권자가 호남보다 4백90만여명이나 많거든요. ­과거 여당은 「조직」선거,야당은 「바람」선거를 했습니다만 관권개입이 사라지면서 제1당인 민자당도 선전전으로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상당히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민주·국민당도 선전전에 신경을 쓰면서도 「조직」선거를 했다고 봐야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각종 직능단체에 대한 공략입니다.과거 야당은 직능단체는 거의 손을 대지 못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민주·국민당이 먼저 직능단체에 손을 뻗치기도 했습니다.특히 종교계 공략은 치열했습니다.각 후보가 경쟁이라도 하듯 종교지도자등을 만나 지지를 부탁했지요.그때문에 종교계가 4분5열됐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크게 보면 이번 선거는 우리나라정치사상 처음으로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구도에서 벗어나 경제정책등 유권자들의 피부에 와닿는 현실문제들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된 선거였습니다.김영삼후보의 「한국병치유」공약이나 정주영후보의 「경제대통령론」이 대표적인 예입니다.그만큼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반증입니다. ○관권개입 사라져 ­지난 총선에서 처음 등장한 헬기유세는 앞으로 보편화될 것 같습니다.연예인및 치어걸의 등장도 새로운 유세 풍속도로 자리를 잡았습니다.연예인의 등장은 유권자들을 유세장으로 끌어모으려는 고육책이었지요.과거처럼 유권자들을 동원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대형 멀티비전과 컴퓨터통신,무선팩시밀리,자동응답전화를 통한 득표활동도 이번에 처음 선을 보였습니다.컴퓨터 통신은 각 정당이 컴퓨터회사에 자신들의 홍보내용을 전달,그 회사가 컴퓨터단말기를 가진 가입자들에게 그 내용을 서비스하는 방식이지요. ­이번 선거의 또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TV유세와 광고가 등장,본격적인 「영상정치시대」가 열렸다는 것입니다.TV유세와 방송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앞으로는 후보가 유권자와 얼굴을 직접 맞대는 유세는 지양하고 전파매체를 이용한 선거전을 계속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후보들간의 TV토론이 무산된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각 당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성사되지 못했지만 다음 선거에서는 꼭 TV토론을 해야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번 선거가 공명정대한 선거로 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데에는 대체적으로 공감을 하는 것 같습니다.지난 87년 대선에 비하면 정말 깨끗한 선거라고 할만 합니다.그때는 1노3김이 유권자들을 끌어 모으는데 전력을 다했고 금품도 엄청나게 뿌려졌었지요.이번에도 선거막판에 「동원」이라는 구태가 드러나기도 했지만 후보가 유권자들을 찾아다니는 「소매상 유세」가 주류를 이뤘습니다. ○공명성 높이 평가 ­유세장 동원은 주로 국민당이 문제가 됐는데 유세장에 출석표가 나돌아 청중을 동원했음이 입증되기도 했지요. ­선거막판 「부산기관장모임」은 오점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현승종총리 내각이 즉각 참석자들을 해임조치한 것은 평가할만 합니다.민자·민주·국민당은 이 사건이 선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주요정당의 후보들은 유세기간중 각각 1백회가 넘는 유세를 했습니다. 후보들이 차안에서 도시락을 먹거나 유세장 인근 시장등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운 것도 바쁜 유세일정때문이었습니다. ○하루 12곳서 유세 ­후보들의 건강은 기자는 물론 수행원들도 놀랄 정도였습니다.김영삼·김대중후보는 60대 중·후반,정주영후보는 70대후반 아닙니까.그런데도 하루 4∼5차례의 유세를 거뜬히 해치우고 잠도 하루 4∼5시간밖에 자지 않으면서 강행군을 했지요. ­유세가 끝난 지금도 후보들은 별로 지친 기색이 없습니다.목이 약간씩 쉬거나 부었을 뿐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고 주치의들이 진단했습니다. ­김영삼후보의 경우 지난 12일에는 대구등에서 12차례의 유세를 가져 하루 최다유세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유세기간동안 다닌 거리를 따지면 2만5천∼3만㎞정도입니다. ­후보들도 바쁜 일정을 보냈지만 지원유세반도 열심이었지요.민자당에서는 김종필대표와 정원식선대위원장,「대발이 아버지」로 잘 알려진 이순재의원등이 후보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 득표활동을 벌였습니다. ­민주당은 이기택선대위원장과 노무현 전의원 이해찬·홍사덕의원등이,국민당에서는 김동길선대위원장과 정주일·최영한의원등이 유권자들의 관심을 끄는데 한몫을 했습니다. ­후보부인들의 활약도 두드러졌습니다.김영삼후보의 부인 손명순여사는 선거초반 전국 사찰을 방문,신도들을 대상으로 지지분위기를 유도한뒤 선거중반부터는 하루에 4∼5곳의 시장에 들러 주부·상인들과 맨투맨식 선거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김대중후보의 부인 이희호여사는 여성운동경력을 바탕으로 전문여성층과 기독교모임등에 참석해 내조를 했고 정주영후보는 며느리들이 시장과 번화가지역등을 분담해 득표활동을 전개하는등 「대식구」의 면모를 과시했지요. ○TV토론에 미련 ­이번 선거의 이슈는 금권선거,색깔론,선거막판의 폭로전등이었습니다. ­국민당은 선거초반 상승세를 타다가 정부당국의 금권선거수사로 한풀 꺾였지요.대천 보령 유세장의 「스트립쇼」사건도 국민당의 상승세를 주춤하게 했습니다. ­민자당이 민주당과 「전국연합」과의 「정책연합」을 문제삼아 「색깔론」을 제기하자 민주당은 김영삼후보의 「변신」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번 선거는 초반에 유권자들이 차분한 반응을 보이자 각 후보들이 오히려 초조한 기색이었다는 평입니다.지역감정도 거의 사라졌고 청중동원도 어렵자 유세막판은 폭로전으로 흐르는 모습이었습니다. ­폭로전과 흑색선전은 이번 선거 최대의 문제점이 아닌가 합니다.이번 선거가 끝나면 공청회등을 열어 여론을 수렴한뒤 흑색선전을 막을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언론매체들도 반성을 해야 할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언론관계학자들은 언론이 각 후보들의 정책대결을 유도하기보다는 자극적인 표현을 보도하는데 치중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새한국당의 이종찬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한 것도 짚어봐야지요.국민당은 이의원의 가세로 수도권등에서 20∼30대 젊은층의 「바람」이 일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여론조사상으로는 정후보보다는 박찬종후보의 지지도가 상승세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양김,자극 자제 ­김대중후보나 김영삼후보 모두 취약지역인 영남과 호남지역유세에서도 상당한 호응을 얻었습니다.김대중후보는 자신의 지지기반이 호남유세를 단하루에,그것도 실내체육관에서 갖는등 지역감정에 불을 붙이지 않으려는 노력을 보였습니다. ­국민당의 정주영후보는 금권선거시비를 불러일으키기는 했지만 유권자입장에서 보면 관심을 끈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선거운동기간중 모의투표가 성행했는데 이는 정후보가 대선전에 뛰어들어 2강1약의 3파전으로 전개되면서 선거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지역감정이 완화됐지만 그것이 표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민주당은 전남지역의 경우 90%이상의 몰표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역감정은 많이 완화됐습니다.영호남 어느 곳에서도 87년과 같이 후보들이 곤경을 당하는 사태는 없었습니다 ­이제 유세도 거의 끝나고 유권자들의 심판만이 남았습니다.지금까지 각 후보진영의 많은 공방이 있었지만 유권자들은 과연 어느 후보가 우리나라를 이끌 미래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가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특히 막판의 금권과 흑색선전등에 현혹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 세밑 화랑가 3가지 이색전 눈길

    ◎프랑스 사진의 어제와 오늘전/압구정동­유토피아/디스토피아전/이시대,우리의 건축전/19C이후 독특한 사진미학 소개/「프랑스」/TV 등 대중매체 활용 문명비판/「압구정」/건축의 문화적 한계성극복 탐색/「이시대」 평소 접하기 힘든 색다른 전시회 3가지가 연말 화랑가를 장식,문화애호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랑스 사진의 어제와 오늘전」(12∼30일),갤러리아미술관의 「압구정동­유토피아/디스토피아전」(12∼30일),동숭동 인공갤러리에서 열리는 「이 시대,우리의 건축전」(12∼24일). 순수미술에서 소외돼있는 사진과 건축,그리고 한가지 장르를 꼬집기 힘든 여러 장르를 혼합전으로 구성한 이들 세 전시는 상업성이 앞선 화랑문화에 염증난 관객들에게는 청량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프랑스문화원이 공동 주최한 「프랑스 사진의 어제와 오늘전」은 세계사진사의 초기인 19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의 초상화 풍경 누드 의상 삽화 및 건축사진 등을 망라했다.마네에서 보들레르에 이르는유명예술가와 명사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은 최초의 사진가 펠릭스 나다르의 작품부터 70년대 파리의 컬러사진에 이르기까지 사진작가 13명의 작품 2백20점이 소개되고 있다. 작가들은 피카소와 막스 에른스트,이브 몽탕이나 에디트 피아프와 같은 화려한 연예계의 스타들을 독특한 사진미학으로 화면위에 생생하게 떠올렸다.또 파리의 옛모습,히피축제,대중오락의 장면들이 즐겁게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이 전시는 시대변천에 따라 흑백에서 천연색으로 변화돼가는 빛과 색의 절묘한 관계,그리고 한 문명의 이기가 어떻게 사람과 기계의 눈을 결합해 오묘한 영상을 낳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서울 압구정동거리 중심부에 있는 갤러리아미술관에서 열린 「압구정동­유토피아/디스토피아전」은 흔히 「욕망의 해방구」로 불리는 압구정동의 문화풍속도를 조명하고 있다.화가 사진작가 건축가 평론가 시인 비디오아티스트 디자이너등 여러분야 예술인들이 함께 준비한 이 행사는 새로운 개념의 다장르의 문화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형태를 취했다. 흥미위주의 시각이나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주목돼온 압구정동문화를 본격적 문화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자리로 다양한 방식의 전시작 1백여점이 소개되고 있다.김복진 김환영 박불똥 서숙진 신지철등 화가와 건축가 정기용,디자이너 박혜준등 12명이 출품한 이 작품들은 대부분 TV와 광고등의 대중매체를 메시지 전달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압구정동문화를 문명비판적 시각에서 조망하고 있는 이들은 물질로서의 미술품이나 권위와 신화에 의존하는 미술개념을 철저히 거부한다.이들은 곧 일반대중의 문화적 욕구가 상업적 이미지와 일반대중 매체로 채워지고 있음을 압구정동의 문화해부를 통해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동숭동의 분위기있는 전시공간인 인공갤러리를 장식하고 있는 「이 시대,우리의 건축전」은 국내 건축인들의 모임인 「4·3그룹」의 회원전이다.지난90년 결성된 「4·3그룹」은 3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14명의 건축가들이 20세기 마지막 10년의 한국현대건축을 주목하기 위해 모인 젊고 건강한 건축인그룹.출신학교와 지역에 대한 편견이나 구분없이 우리시대의 문화와 건축,사회상황에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시도하기위해 모인 이들은 매달 세미나를 갖고 토론으로 건축의 문화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탐색해 왔다.그룹결성이후 회원들의 첫 작품발표 자리가 되는 이번 전시는 「한국의 건축가가 규방의 건축에서 벗어나 현대건축의 그 어떤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석」한 중요한 기점으로 삼겠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9)

    ◎유년시절:7/20일 머무른 중강진 혁명사적지로/“단오씨름판서 일본아이 뉘어” 자랑/독립운동가 비밀연락원으로 자처/임강이주시기 1919년 5월 아닌 6월이후 김형직은 일제기록에 의하면 3·1운동때 평북 중강진에서 활약하였다.따라서 그는 3·1운동때보다 훨씬 이전에 이 중강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는 3·1운동 후에는 일제의 감시를 받게 되어 5월에 대안인 임강으로 이주하였다. 이런 기록을 보면 김형직 일가는 북한이 지금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1919년 초가을에 만경대에서 중강진으로 간 것이 아니고 3·1운동 이후에 갔다.그런데 임강으로 떠난 달이 5월이라는 것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5월 도강설 모순 「무지개 비낀 만경봉」에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1)씨름­김일성은 임강에 있었던 어느날 부친의 혁명사업을 돕기 위해 연락임무를 받고 나루터를 건너 중강진으로 나왔다.이날은 바로 5월 단오날이었다. 명절날이어서 중강진에서는 씨름판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때마침 조선아이들과 일본아이들이 씨름하고 있었다.김일성은 조선아이들이 지고 모욕당하는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어서 씨름판에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몸집도 큰 일본아이를 조선식 씨름으로 이겼다.일본아이가 이 씨름은 일본식이 아니라고 트집을 잡자 그는 너희들은 너희식대로 하고 조선사람인 나는 조선식으로 하는데 무엇이 잘못이냐 하고 또다시 덤벼드는 일본아이를 보기 좋게 넘겨버렸다… 이 책에서는 김일성이 씨름판에 든것을 1920년의 단오날이라 하고 있다.당시 그는 임강에 있었는데 일부러 「연락임무」를 띠고 중강진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5월 단오는 우리 세시풍속에 있어서는 추석·정초에 못지않는 3대명절의 하나다.부모는 자식을 슬하에 두고 집근처에서 놀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필자는 이렇게 추측하며 「감일성평전」에서 김형직 일가는 음력 5월의 단오날에는 중강진에 있었고 그후에 임강으로 이사했다고 기술하였다. 필자의 이러한 추측은 적중하였다.「세기와 더불어」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를 도와 망도봐주고 여인숙에 찾아오는 독립운동자들의 시중도 해주고 중상·중덕 등지를 다니면서 비밀연락도 하였다. 중강진 인상 가운데서 잊혀지지 않는 것은 나보다 몸집이 더 큰 일본아이와 씨름을 하며 그 아이를 배지기로 넘어뜨리던 일이다.나는 그때 조선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일본아이가 있으면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일제타도에 집중 객주집 주인은 후환이 두려워서 걱정했지만 아버지는… 내 배짱을 지지해 주었다」 김일성은 여기서 일본아이와 씨름한 것은 김형직이 중강진 여인숙에 있었을 시기였다고 하고 있다.결국 임강에 넘어간 후 맞이한 단오가 아니라 1919년의 단오날 일이었던 것이다. 1919년 음력 5월5일은 양력으로는 6월2일이 된다.김형직 일가는 중강진에서는 여인숙에 살면서 적어도 양력 6월초순까지 이곳에 체재하였다.일본 관헌 기록에서 5월에 김형직이 임강으로 넘어갔다는 것은 음력 5월의 오기였다. 김일성의 중강진 시기란 여인숙에서 20일정도 살던 시기이므로 그가 한 일이라고는 별로 없었을 것인데 현재 중강진은 김일성의 혁명적 사적 투성이다. 이상의 「일화」들을 보면 김일성은 만7세이면서 벌써 자수성가한 혁명가처럼 되어 있다.모든 이야기가 「일제 타도」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어떤지는 둘째 문제이다. 이상 지금까지 어린시절에 관한 북한의 김일성전기 서술내용을 소개하였다.그 내용은 그의 어린시절의 사실을 사실대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정권의 교양방침에 따라 그 어린시절 이야기를 「창작」하고 있는 것이 거의 전부이다. ○정권에 의한 창작 북한 어린이들을 김일성의 의도대로 어떻게 사상개조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김일성 어린시절 설화는 한국에서 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이야기」로 북한 어린이들은 김일성부자에게 「충성」을 바치게 되고 그들에게 반대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투쟁」하는 심성을 키우게 된다.그들의 「투쟁대상」은 「왜놈」이나 일본군국주의자뿐아니라 미제국주의자,「남조선괴뢰놈들」그리고 「보수반동」과 「종파놈」에게까지 확대되어 있는 것이다. ①「무지개 비낀만경대」148면 이하 ②평전 36면 ③「세기와 더불어 1」55면
  • 국립민속박물관/민족긍지 서린 서민문화메카로(국정탐방)

    ◎내년 2월 새 전시장 개관… 대대적 위상변화 모색/어떻게 달라지나/전래의 생활사 연구·자료기능 확충/보여주는 곳에서 체험적 공간으로 보통사람들의 문화 산실을 표방하는 국립민속박물관이 보통이상의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새로운 보금자리로의 이전 개관이 내년 2위로 바짝 다가오는 가운데 최근에는 직제개편에 따라 중앙박물관에서 분리,독립했다.바야흐로 명실상부하게 우리나라를 대표할수 있는 국제수준의 민속박물관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새로운 역사의 장을 펼치는 자리는 경복궁 동쪽 옛 국립중앙박물관 건물.모두 1백10억원을 들여 추진중인 건물 내부개조공사의 공정은 현재 1백% 가까이 이루어져 마무리 손질만을 남겨 놓고있다.옛청사에 보관되어있던 유물은 9월28일부터 신청사로 옮기기 시작해 지난달 24일에는 민속박물관답게 터주신에게 무사히 이사를 끝낸것을 감사하는 고사까지 지냈다. ○최근 직제도 개편 경복궁안 한쪽에 그것도 일제가 지어놓은 낡은 옛청사에서 위풍이 당당한 새청사로 옮긴 것이 외형상의 변화였다면 지난 10월29일 단행된 직제개편에 따라 문화부직속기관으로의 독립은 내용적인 변화였다고 할수있다. ○정신사 중심으로 직제개편에 따라 관장은 4급상당의 학예연구관에서 3급상당의 학예연구관으로 격상됐으며 조직도 관리과·전시과의 2개과에서 관리과·전시운영과·민속연구과등 3개과로 확대 개편됐다.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원이 25명에서 13명의 학예직을 포함한 47명으로 늘어남으로써 연구및 사회교육기능의 확대가 가능해진 것도 내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이종철관장은 『이제 민속박물관의 틀이 갖추어진 만큼 심부름의식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긴 장정을 시작할 것』이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민속박물관의 변신에 대한 시각은 대체로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첫번째는 지금의 변화가 오래뒤에야 제대로 평가받게될 보이지않는 커다란 치적이라고 반기는 쪽이다.그동안의 박물관정책이 고고미술박물관에만 치우쳤던데 비해 민속박물관의 이같은 위상변화는 물질사중심의 정책에서 정신사쪽으로 옮겨가는 증거로 받아 들여질수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민속박물관만이 가질수있는 전문성과 독창성이 발휘되어 비로소 정상적인 역할수행을 기대할수있는 조직적 정책적 기반이 완성됐다는 점도 높이 평가됐다.두번째는 이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민속박물관의 기능이 아직도 크게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시각이다.오늘날 정치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기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의 하나가 민속박물관이 활발히 기능을 수행하는 것임을 정부나 국민 모두가 아직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다소 불만스런 입장이다. 그러나 얼핏 편차가 큰 것처럼보이는 이 두 시각에서도 「민속박물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공통분모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이처럼 새 민속박물관이 수행할 역할에 대해서 누구나 큰 기대를 걸고있다. 이에따라 새 민속박물관은 민속에 대한 의미부터 국민들의 마음속에 새롭게 자리잡게 만든다는 것을 당면목표로 삼았다.역사가 대개 왕후장상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 역사의 행간에 민중의 슬기와근면 장엄함이 숨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찾는 것이 민속학이고 민속박물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새민속박물관을 고리타분한 고대문화의 창고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문화 생산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위해 새민속박물관은 유형적인 삶의 문화와 함께 정신적인 풍속을 지켜주는 산실로 가꾸기로 했다.이를테면 농경문화의 전시를 통해 「쌀이 생산되기까지는 여든여덟번 손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되면 「쌀이란 도저히 훔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울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민족대이동의 설날등 형태가 없는 체험적 문화적 공간까지 포용하는 방안까지 마련해 놓았다. ○미풍양속 등 발굴 이처럼 새민속박물관은 전시기능외에 연구와 자료관으로서의 역할이 크게 강화된다.이에따라 근·현대생활사를 체계적 종합적으로 조사 수집해 전산기록화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또 전통적 미풍양속을 계속적으로 발굴,재현하고 기록화해 영구보존할 방침이다. 이렇게 모아진 생활문화및 문화재에 관한 자료는 대학과 연구소 일반국민을위해 무한봉사 제공함으로써 국립민속박물관이 민족생활문화에 관한한 명실상부한 중심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 약사 ▲1946년 남산 왜성대자리에 국립민족박물관 개관. ▲1950년 전쟁으로 폐관. ▲1966년 경복궁내 수정전 자리에서 한국민속관으로 출범. ▲1973년 구민속박물관 건물로 이전. ▲1975년 한국민속박물관으로 확장 개관. ▲1979년 국민민속박물관으로 개칭,문화재 관리국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소속변경. ▲1992년5월28일신청사로사무실이전. ▲1992년10월2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문화부 직속기관으로 독립. ▲1993년2월 이전개관(예정) ◎무엇을 보여주나/선사∼조선시대 서민삶의 모습 재현/서당·회갑연·민속신앙 등 모형 전시/옥외엔 장승·귀틀집·물레방아 설치 문화부산하의 새국립민속박물관은 전시공간 및 연구인력이 늘어난 만큼 전시내용도 크게 확충된다.먼저 민속박물관은 구관의 2천9백60평에 비해 크게 늘어난 1만2천8백50평의 부지를 확보함에 따라 불가능하던 대규모 야외기획전시가 가능해졌다.옥내전시공간은 모두 2천2백24평으로 구관의 6백26평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어났다.옥내전시공간은 다시 주전시공간과 보조전시공간으로 나뉜다.주전시공간은 3관 15실의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가 가능한 특별전시실로 구분시켰다. 보조전시공간에는 국제민속전시실과 영상실을 겸한 강당,민속사랑방등이 포함됐다. 이처럼 전시공간이 확장됨에 따라 전시유물도 2천5백11점에서 4천3백23점으로 크게 늘어나게 된다. 민속박물관은 새 전시관을 ▲진실로 강한 민족문화의 환상적 지평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축적된 공간 구성 ▲삶의 현장이 살아 움직이는 마당으로 만듣다는 기본방향을 설정했다.이에따라 기존의 정적 폐쇄적 전시에서 탈피해 체험적 전시가 될수있도록 디오라마 파노라마 입체음향등 특수전시기법을 적극활용해 역동적 입체적 통시적인 전시가 되도록 했다. 이런 원칙아래 전시장은 한국문화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한민족생활사 ▲생활문물과 생산민속 ▲생애의례의 3영역으로 나뉘어 조명된다. 한민족생활사를 담은 전시1관은 선사시대에서부터조선시대까지의 생활사 측면을 역사적으로 다루도록 배려했다. 이 전시관에는 단군신화및 삼국건국신화와 함께 최근 발주된 부안격포제사유적을 재현하는등 한민족의 정신세계를 추적해보는데 중점을 두기도 했다.여기에는 또 가야의 기마인물과 야철공방이 모형으로 재현되고 발해유물이 전시되는 등 민족자존의 회복문제가 비중있게 다루어진다.전시2관은 생산민속과 생활문물로 꾸며진다.이곳에는 우리의 자연환경과 농경문화 생업 세시풍속 수공업 그리고 전통사회의 의·식·주생활을 선보일 계획이다. 생애의례를 주제로한 전시3관은 출생에서부터 상·제례 민간신앙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일생을 체계적으로 전시한다.이에따라 선바위에 아들을 비는 풍습에서부터 출산 의례 돌상 서당 향교 관례 및 혼례 회갑연 상청과 상복 제사와 고사 사당등을 모형으로 꾸민다.또 각 통과의례 사이사이에 아이들의 놀이모습과 과거시험장면 주막 놀이기구 문방구와 책 선유락 한약방 굿청등도 역시 모형으로 만들어져 전시된다. 이밖에 박물관 옥외에는 물레방아와 귀틀집 장승등으로 살아 숨쉬는 서민문화의 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게 될 개관기념전시는 아직 내용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다.박물관측은 현재 「잊혀져 가는 과거를 조명해주는 거울로서의 전시」계획을 구상중이다.또 「과거뿐 아니라 미래를 투영해 줄수있는 내용으로 가능하면 보고 느끼고 직접 만져볼수 있는 전시」라는 원칙을 세워놓고 4∼5개의 시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 것 알기」 교육현장 만들터”/“문화마당 넓히는 계기됐으면”/이수정 문화부장관(인터뷰) 이수정문화부장관은 내년 2월로 다가온 국립민속박물관의 이전 개관을 앞두고 요즘 1주일에 한 두번씩은 꼭 현장을 찾아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이장관은 이 작업이 『침체된 민속박물관의 기능을 정상화한다는 의미와 함께 문화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대로 된 문화공간」확보작업이 성과를 거둔 것이어서 더욱 뜻깊다』고 말한다. 『지금과 같이 높아진 국민들의 문화욕구는 경제 형편이 크게 나아지면서 현실화된 것입니다.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문화예술의 마당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 할 수 있습니다.민속박물관 이전은 그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장관은 그동안 문화공간 자체가 부족했었던데다 국가문화시설은 대부분 위치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남산의 국립극장이나 과천의 현대미술관의 경우 시민들이 쉽게 찾아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더 이상의 기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또 건립이 시급한 자연사박물관은 똑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되겠다는 제 소신이기도 합니다.미군이 떠날 용산기지는 이같은 기간문화시설이 들어설 서울의 마지막 공간인셈입니다.다행히 각 당의 대통령후보들이 모두 이러한 취지에 뜻을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반갑습니다』 이장관은 현재 또 하나의 「제대로 된 문화공간」을 확보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그것은 내년중 완공될 덕수궁 뒤편의 연극 전용극장이다. 『당초 이 땅은 영화진흥공사의 사옥 부지였습니다.그러나 극장을 이곳에 세우고 사옥은 홍릉에 짓도록 했습니다.문화공간은 시민에게 가까이 있어야하지만 사무실은 조금 멀어도 되지 않느냐고 설득했지요』 이장관은 이제 부족한대로 기본적인 문화시설은 어느정도 확보 되고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민속박물관의 이전 개관과 함께 대구와 부여박물관을 신축중이고 김해박물관이 가야유물 중심으로 탈바꿈한다.또 제주박물관도 신축중에 있다. 『그러나 어렵게 세워진 구민회관이나 문예회관이 아직은 문화공간이 아닌 예식장이나 안보교육장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그럼에도 폭발적으로 증가한 음악인과 극단등은 무대가 없어 아우성입니다.이제는 새롭게 확충된 문화시설을 국민들이 직접 문화를 접할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데도 신경을 써야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장관은 이를 위해 『국립민속박물관도 현재의 단순한 전시기능에서 연구기능위주로 탈바꿈시켜 국민교육을 위한 중추적인 국가기관으로 키워나가겠다』는 포부를 털어 놓았다.
  • 연하장 줄이기,자원절약이다(사설)

    연하장의 계절이다.크리스마스 카드와 함께 한두장씩 날아들기 시작했다.그래도 예년에 비하면 아직은 좀 덜한 편이다.아마도 선거가 겹쳐 미처 배달의 손이 거기 못미치기 때문인 것 같다.이 기회에 연하장 풍속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계절만 되면 카드와 연하장이 날마다 수북히 배달되어 쌓인다.거의는 뜯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넣게되는 것들이다.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과 기관에서 날아들어 열어볼 흥미가 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인쇄된 주소와 이름으로 성의도 정성도 없이 보내온 것이 역력해서 그렇게 버려도 조금도 가책을 받지 않는다. 이렇게,주고받음의 감흥도 예의도 탈색된 종이를 더 이상 주고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들게끔 되어버린 것이 연하장문화다. 성과가 없는 것에 그치고 말면 그래도 괜찮다.고급종이로 화려하게 인쇄한 내용물을,역시 고급 봉투에 넣어서 아무런 기능도 시키지 않은채 쓰레기통에 넣는 것으로 낭비되는 자원이 얼마인가.그뿐이 아니다.그것들이 만드는 쓰레기는 또 얼마나막대한가.이름이 새겨진 것을 그냥 버리기가 안돼서 분쇄기에 넣어 버리는 사람도 많다.이중삼중의 자원 낭비와 쓰레기 생산에만 기여한다. 이 「고급포장된 예비쓰레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우편체계는 또 얼마나 혼란을 빚는가.가뜩이나 선거유인물까지 겹쳐서 산더미 같은 우편물에 치여 우편행정은 제구실을 다하기가 어렵다.물론 일년내내 만나지 못했던 친구나 스승,어른이며 이웃들에게 연하장 한장이라도 보내서 서로의 안부를 간결하게 소통하는 본래의 뜻이 중요하기는 하다.그러나 지금 오가고 있는 카드나 연하장은 그런 「원래의 좋은 뜻」에 제대로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연하장 풍습을 바꾸는 것이 당연하다.생각해보면 연하장이나 카드는 사회가 매우 유장하던 시대의 산물이다.퍼스널컴퓨터나 팩시밀리 같은 마술적인 첨단 소통수단이 태어난 현대에는 다소 맞지않는 고전적 산물이다.현대적 기능의 신년인사 교류수단을 개발하고 시간과 자원이 너무 낭비되는 연하장문화는 이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연하장 안보내기 운동』을 제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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