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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딩숲속 달집 태우기

    빌딩숲속 달집 태우기

    정월대보름 밤에 강남 한복판에서 세시풍속인 ‘달집태우기’가 열린다. 어둑어둑한 강남대로 빌딩숲 퇴근길에서 논두렁에서나 활활 타오르는 달집을 구경하는 진풍경이 기대된다. 강남구는 21일 오후 5시30분 삼성동 코엑스 앞 광장에서 맹정주 구청장과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달집을 태운다. 달맞이 행사 이름은 ‘다라님, 다라님 소원성취’로 정했다. 달집은 대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짚·솔가지·땔감 등으로 덮고 달이 뜨는 동쪽에 문을 낸다. 달집 속에 짚으로 달을 만들어 걸고 실제 달이 뜰 때 풍물을 치면서 깨끗하게 태우면 한해를 평화롭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 참가자들은 새해 소원문도 달집과 함께 태우면서 소원을 빈다. 식전 행사로 ▲용이 승천하는 그림이 그려진 50m 한지에 주민들의 소원을 적는 ‘붓 드로잉쇼’ ▲윷점 보기 ▲있다/없다 퀴즈 등이 열린다. 또 가수 홍경민과 티아라,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이 출연해 즉석에서 흥을 돋울 예정이다. 가수 옥주현과 김창렬, 홍경민, 탤런트 안재환과 개그우먼 정선희 부부 등은 주민들의 행복을 비는 영상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또 참가 주민들은 왕(王)제기차기, 팽이치기, 투호던지기, 연날리기 등을 즐길 수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바다 기름유출 추적하는 최첨단 로봇 개발

    바다 기름유출 추적하는 최첨단 로봇 개발

    지금도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고 복구현장에 자원봉사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일본에서 최근 바다에 뜬 기름덩어리를 감시하는 최첨단 로봇이 개발됐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기름유출사고 현장에서 신속한 복구를 도와줄 로봇이 만들어져 보다 체계적으로 해양오염을 방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20일 보도했다. ‘SOTAB’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로봇은 해양에 유출된 기름을 감시·추적하는 ‘부류중유자동추적기’(浮流重油自動追従)로 기름이 새어나오는 탱크 주변에 일정 간격으로 떨어뜨려 기름의 종류와 위치를 추적한다. 또 SOTAB에는 기름의 끈끈한 정도를 분석하는 센서가 달려있어 어떤 종류의 기름이 유출됐는지 알려주며 주변에 기름이 없을 때는 부력을 스스로 조정해 바다 밑으로 가라 앉는다. 전체 길이 2.72m·직경 27cm·무게 110kg의 이 로봇은 바닷속에서도 화상센서를 이용해 해면을 촬영, 수집된 데이터를 토대로 기름이 탐지되는 곳을 찾아가 수면 위로 부상한다. 아울러 GPS·풍향계·풍속계·수온계 등도 탑재돼 실시간으로 수집한 데이터가 육상의 기지국으로 보내진다. SOTAB을 개발한 오사카(大阪)대학의 카토 나오미(加藤直三) 수중로봇공학 교수는 “로봇 무게를 30kg으로 줄이고 전지(電池)기능도 향상시킬 계획”이라며 “기름유출사고 현장에 유용히 쓰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아사히신문 온라인판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달집 태우며 풍년·풍어 빌어보세요

    달집 태우며 풍년·풍어 빌어보세요

    21일은 ‘휘영청∼달밝은’ 정월대보름이다. 이날 한해의 액운을 몰아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집단 놀이판이 펼쳐진다. 전국 대부분 행사장에서는 쥐불놀이, 줄다리기, 다리밟기, 고싸움, 탈놀이, 별신굿 등 행사들이 진행된다. 부럼깨물기, 더위팔기, 귀밝이술마시기 등은 개인적 기복 행사로 꼽힌다. ●전국적이고 특색 있는 행사 ‘해운대 달맞이·온천축제’는 21일 해운대해수욕장 일원에서 펼쳐진다. 민속축제 중 전국 최대로 친다. 예년에는 국내외 관광객 등 30여만명이 참여했다. 오전 10시30분 이전 행사장에선 부산민속연보존회가 주최하는 ‘국제연날리기대회’가 열린다. 올해는 진성여왕이 해운대 온천욕으로 피부병이 나았다는 데 착안한 진성여왕 피정행렬을 재현한다. ‘오륙귀범’도 재현된다. 오륙귀범은 어선들이 먼 바다에서 만선의 기쁨을 안은 채 오륙도를 지나 해운대로 돌아오는 모습을 일컫는 것으로 해운8경 중 하나이다. 오후 5시 해수욕장 백사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오후 6시에는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월령기원제와 달집 태우기가 진행된다. 경남 의령읍 의령천에서는 대형 달집을 태우며 액(厄)을 때운다.21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달집태우기 행사에는 참가자에게 귀밝이술도 무료로 제공된다. 20일 소금강으로 불리는 전남 영암 월출산에서는 국악과 대중가요가 만난다. 달집태우기 행사장인 서호정마을 청년회는 오곡 주먹밥과 대보름 나물음식을 관광객에게 나눠준다. 강원 강릉에서는 21일 (사)임영민속연구회가 단오문화관 앞 남대천 둔치에서 ‘2008 무자년 대보름 강릉망월제’를 연다. 오후 6시부터 열리는 망월제례는 어부식, 달집태우기, 소지올리기 등의 행사로 진행되며 오후 7시30분부터는 용물달기, 다리밟기, 모둠북 공연 등이 펼쳐진다. ●청도, 군민 화합·태안, 마을 평안 기원 경북 청도군은 대보름 행사를 지난해 말 군수 재선거 수사로 인해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주민화합 행사로 개최한다.21일 오후 3시 청도읍 청도천 둔치에서 청도군사암연합회 주관으로 ‘군민 화합과 안정을 위한 기원 법회’를 갖고 실추된 지역의 명예를 되찾고 자존심을 회복하는 데 앞장서자는 취지의 ’군민화합 결의문‘도 채택한다. 저녁에는 청도천 둔치에 지은 높이 18m, 지름 13m의 달집 태우기 행사가 준비됐다. 충남 태안 조개부르기제는 20일 고남면(안면도) 고남4리 자연부락인 옷점마을 바닷가에서 열린다. 이날 오후 4시부터 주민들이 나와 용왕제를 지내며 마을안녕과 풍어를 기원한다. 이어 풍물을 치며 조개를 부르는 행사가 이어진다. 저녁에는 모닥불을 피우고 종이를 태우면서 또다시 풍어를 빈다. 이평우(63) 이장은 “올해는 기름유출사고가 나 망가진 바다가 하루빨리 복원되기를 간절히 바랄 예정”이라고 말했다. 충남 금산군은 20일부터 21일까지 이틀간 달과 불, 바람을 주제로 한 ‘제16회 장동 달맞이축제’를 개최한다. 경기 수원시는 20일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화성 행궁앞 광장에서 수원문화원 주관으로 ‘대보름맞이 민속 한마당’을 개최한다. 시민은 물론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 여성, 유학생 등이 초청된다. 줄다리기, 달집 태우기 등 전통 놀이가 진행된다. 특설무대에서는 경기민요, 풍물, 경기도당굿, 각설이타령 등 전통예술 공연이 펼쳐진다.21일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칠보산 아래 금호동 호매실중 운동장에서 ‘칠보산 달집축제’를 연다. 동해시는 정월대보름 행사의 하나로 ‘2009 ANGVA 동해엑스포 성공기원’이라는 주제의 불꽃쇼를 연다. ●도심 곳곳에서도 축제 광주의 노대마을, 덕암마을, 충효동, 풍암골 신암마을 등에서는 20일 당산제와 장승제를 지낸다. 대구의 신천 둔치와 동화천변, 금호강 둔치를 비롯, 경남 의령의 의령천 등지에서도 달집태우기, 널뛰기 등 각종 세시풍속이 이어진다. 제주시 애월읍 새별오름(10만㎡)에서는 일시에 불을 놓고, 전주박물관과 울산의 태화강, 강릉의 남대천 둔치 등지에서도 정월대보름 축제가 열린다. 전국종합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7) 일 하다 먹는 ‘들밥’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7) 일 하다 먹는 ‘들밥’

    장정이 7명, 젖먹이 어린애가 한 명, 더벅머리 꼬마가 한 명, 그리고 젖을 먹이는 아낙이 한 명이다. 뙤약볕에서 일을 했는지 장정 다섯은 웃저고리를 벗고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큼지막한 밥사발을 들거나 앞에 놓고 먹고 있는데, 가난한 살림이라는 것은 절로 짐작이 간다. 김홍도 그림 ‘들밥’의 왼쪽을 보면 두 사내가 한창 밥을 먹고 있는데, 반찬 그릇은 오직 하나다. 그림 중앙의 사내는 아예 반찬 그릇조차 없다. 모든 밥은 아낙네의 앞에 놓인 보자기를 덮은 방구리에서 나온 것이다. 장정 일곱의 밥이 방구리 하나에서 나오다니, 좀 쓸쓸하다. 방구리는 한쪽이 열려 있는데, 조심스럽게 보면 그릇을 담은 것이 아니라, 단일한 품목의 물건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데, 내 눈에는 보리밥으로 보인다. 아닌가. 하기야 들밥에 무슨 음식의 종류가 있을까. 보리밥에 풋고추와 된장이면 족할 것이다. 하지만 빠질 수 없는 것이 막걸리가 아닌가. 그래서 새참은 동시에 ‘술참’이 된다. ●김 매는 노동뒤에 배불리 먹는 포만감 흔히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하지만, 사실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편안하고 쾌적한 사무실에서 깔끔한 복장으로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업무를 보고 월급을 받는 것과, 저 땅 속에서 비지땀을 흘려가며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석탄을 캐는 노동으로 대가를 받는 것이 선택사항이라면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양반들은 언필칭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곧 농민이 가장 고귀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식량은 인간의 필수적 생존조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농사가 가장 중요한 것일 뿐, 뙤약볕에 몸을 내맡기고 허리가 끊어져라 김을 매는 노동은 사실상 선택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실 농사일은 엄청난 중노동이다. 농업의 기계화가 이루어지기 전의 농사는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이 인간의 손끝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노동의 강도는 대단히 높고, 칼로리의 소모도 엄청난 것이다. 그 소모되는 칼로리를 공급하는 것이 들밥이고 새참이 것이다. 강희맹이란 분이 있는데, 한국한문학사에 꽤나 이름이 높은 분이다. 그 분의 저술에 ‘금양잡록(衿陽雜錄)’이란 책이 있는데, 농사일에 관한 책이다. 금양은 지금의 과천인데, 그는 한때 과천에서 씨를 뿌리고 채소를 가꾸고 나무를 심는 등 직접 농사일을 하여, 농사 제반에 대해 제법 알게 되었다. 강희맹은 먹물이었으니, 그는 또 먹물답게 거기서 얻은 지식을 ‘금양잡록’이란 책으로 엮는다. 책의 내용은 곡식의 종류, 농사짓는 법, 농민과의 대화 등등이지만, 뜻밖의 것도 있다.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때 노래를 부르는데 듣고 보니, 괜찮다. 그래서 한시로 옮긴다. 이것이 ‘농구(農謳)’ 14편이다. 말이 길었지만, 여기에 ‘들밥을 기다리며’란 시가 있는 것이다.(‘농구’는 모두 14수다. 그 중 여덟 번째 작품이 ‘들밥을 기다리며’이다). 작품을 읽어보자. 큰 며느리 절구질 서둘러 작은 며느리 부엌으로 들어가자 푸른 연기 모락모락 피어나고 주린 창자에선 우레 소리 울린다 들밥 기다릴 때는 호미 들 힘조차 안 남았네 남자들이 들에 나가서 김을 매고 있을 때 집안에서 부녀들은 들밥 준비에 바쁘다. 고된 노동을 하면서 오로지 들밥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한 끼 밥을 즐겁게 먹기 위해 오전의 노동을 견디고, 한 끼 저녁밥을 즐겁게 먹기 위해 오후의 노동을 감내한다. 농사일은 강도 높은 노동이다. 새벽에 나와서 허리를 꼬부리고 계속 일을 하다가 정오 때가 되면 뱃속에서는 우레 소리가 울리고 호미 들 힘조차 남지 않는다. 드디어 들밥이 오고, 배불리 먹는다. 그 다음은 ‘배를 두드리며’란 작품이 이어진다. 광주리 향기로운 보리밥 아욱국 달디 달아 숟갈에 매끄럽게 흐르네. 어른 젊은이 차례로 둘러앉아 왁자지껄 밥 먹는 소리 요란하다. 달게 포식하매 속이 든든하니 배를 북처럼 두드리고 그저 흡족할 뿐 어떤가, 힘든 노동 끝에 배불리 먹고 흡족해 하는 농민의 심정을 느낄 수 있으신지. 전근대 사회는 농업사회이니 당연히 농사에 관한 한시가 많이 남아 있다. 그런 한시 중에서 들밥을 내 가는 여성은 단골로 등장하는 제재다. 성종 때 관료로서 시인으로서 대제학 벼슬까지 했던 서거정의 ‘전가(田家)’란 시를 보자. 고사리나물을 반찬삼아 밥을 먹고 농담을 하며 웃음소리가 낭자하다. 봄비도 넉넉히 내렸다. 굳이 두레박으로 논물을 퍼 올리지 않아도 된다. 여유 있는 풍경이다. 한데 들밥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고려 말 시인인 안축이 삼척 죽서루를 읊은 8수의 한시 중 ‘밭이랑에 들밥을 내어가는 아낙네’란 시를 보자. 아낙은 들밥 차리느라 자기 밥도 아니 먹고 새벽부터 마음이 논밭에 가 있네 점심나절 밭이랑으로 걸음을 재촉하여 남편을 배불리 먹인 뒤 신이 나서 돌아오네. 남편은 꼭두새벽에 들로 나갔다. 한여름의 농사일은 너무나 고되다. 아내는 그 남편이 너무나 안쓰럽다. 그것을 생각하고 서둘러 밥을 지으며 정작 자신의 식사는 잊어버린다. 정오가 되어 서둘러 들로 나가 남편이 배 불리 먹는 것을 보고는 그제서야 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앞서 들었던 서거정의 시보다는 현실에 훨씬 더 가깝다. 김홍도의 그림도 그렇다. 김홍도의 그림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성의 표정을 보라. 자식에 대한 따스한 눈길을 느낄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무언가를 먹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먹이는 것은 인간의 생명의지를 충족시켜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남편 배불리면 굶어도 흐뭇한 아낙 그런데 이 시에 꼭 맞는 그림이 남아 있다. 역시 김홍도가 그린 ‘들밥 내가는 아낙네’라는 그림이다. 논에서 농부들이 김을 매고 있고, 그 아래에 아낙네가 머리에 밥을 담은 광주리를 이고 있다. 그 앞의 사내는 지게를 지고 있는데, 역시 먹을 것이 담겨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조선후기 가사체 농서인 ‘농가월령가’를 보자.‘농가월령가’는 월령이란 말대로 달마다 농사꾼이 해야 할 일을 열거한다.6월령의 점심 먹는 부분을 인용해 보자. 날 새면 호미 들고 긴긴 해 쉴 틈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 막히고 맥 빠진 듯 때마침 점심밥이 반갑고 신기하다 정자나무 그늘 밑에 앉을 자리 정한 뒤에 점심 그릇 열어 놓고 보리단술 먼저 먹세 반찬이야 있고 없고 주린 창자 채운 뒤에 맑은 바람 배부르니 낮잠이 맛있구나 농부야 근심 마라 수고하는 값이 있네 아마 이 부분은 김홍도의 그림과 흡사할 것이다. 점심밥의 내용물은 무엇인가.5월령을 보면,“보리밥 찬국에 고추장 상추쌈을, 식구들 헤아리니 넉넉히 준비하소”라고 했으니, 보리밥에 찬국에 고추장과 상추쌈이었던가 보다. 논문 실적이 개인 능력에 대한 야박한 평가가 된 요즘, 원고를 내놓으라는 독촉에 시달리며, 뜬금없이 다시 태어나면 들밥을 먹으며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근골을 움직여 나와 내 가족이 먹을 정도로만 수확을 얻는다면, 나머지 시간은 그냥 놀다가 늙어지면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그런 삶 말이다. 욕심이 너무 과한가. 한국의 농업이 무너지고, 수천㎞ 바다를 건너온 식량에 목을 매고 사는 이 시대를 생각하면 그런 생각 더욱 간절하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풍력·태양광으로 거듭난 ‘강원도의 힘’

    풍력·태양광으로 거듭난 ‘강원도의 힘’

    강원도가 풍력·태양광·지열·가축분뇨 등 자연을 활용한 ‘신·재생에너지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산지가 많은 자연환경 덕분에 전기 에너지를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고,‘청정 강원’의 이미지를 착실히 브랜드화해 나가고 있다.‘바람이 세고 햇빛이 강해’ 외면받던 자연환경이 지금은 되레 ‘강원도의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 외면하던 산바람, 이젠 ‘돈바람’으로 지난 13일 평창군 대관령면 삼양목장에 위치한 풍력발전단지.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젖소목장과 고랭지 채소밭이 전부였던 이곳은 요즘 1기당 높이가 100m에 달하는 초대형 풍력발전기들이 즐비한 전력생산지로 거듭났다. 풍력발전단지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연간 30여만명이나 된다. 상당히 쌀쌀한 날씨임에도 이날 친목계원들과 함께 삼양목장을 찾은 김모(47·서울 중랑구 면목동)씨는 ”영화에서만 보던 이런 시설물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면서 “1인당 7000원이나 하는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강원도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는 대표적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바로 바람을 활용한 풍력발전.2001년 대관령 삼양축산단지에 4기의 풍력단지가 처음 들어선 뒤 강원풍력발전이 2000㎾급 49기를 추가 설치하는 등 현재 강원 지역에서만 60여기의 풍력발전기가 날마다 터빈을 돌리고 있다. 강원 지역에 풍력발전기가 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강한 풍속 덕분에 높은 수익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대관령 풍속은 연평균 초속 6.7m, 태백시 매봉산은 초속 8.4m로 풍력발전 선진국인 덴마크의 연평균 풍속 초속 5.5m보다 빠르다. 이 때문에 2000㎾급 풍력발전기의 경우 1대당 하루 평균 1만 1500의 전기를 생산해 120만∼130만원 정도 수입을 올린다. 강원풍력발전 또한 49기의 풍력발전기에서 1년에 250억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어 7∼8년 정도면 투자비(1600억원 정도)를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태백시의 한 관계자는 “태백시 매봉산 풍력발전단지(8기)의 경우 올해 전력수입만 10억원 이상이 될 전망”이라며 “관광자원으로서의 잠재성도 갖춰 앞으로 태백시가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믿는다.”고 설명했다. ●태양광도 ‘대박’ 주역 춘천시 중앙로 강원도청 주차장에는 강원도의 산 형상을 본떠 만든 트러스트 구조물이 자리잡고 있다. 미려한 디자인으로 도심의 명물이 된 이 주차장 지붕이 바로 태양광발전시스템이다. 구름에 가렸던 해가 모습을 드러내며 주차장을 비추자 전력계 게이지가 빠른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지난해 8월 12억원을 들여 173W급 모듈 690장을 붙여 만든 이 시스템은 청사 조명을 위한 연간 175㎿h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강원도청 경제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이 주차장은 신재생에너지 메카로 발돋움하려는 강원도의 강한 의지를 상징한다.”고 귀띔했다. 태양광을 이용한 발전설비 추진 또한 풍력에 못지않다. 현재 강원도는 오는 4월부터 춘천시 송암동 붕어섬 32만 6820㎡ 부지에 10㎿짜리 대규모 태양광발전단지를 설치할 계획이다. 단일 규모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춘천시 가정용 전력의 3분의1 정도를 충당할 수 있다. 빛을 따라가며 태양광을 모으는 추적식 독립형 셀(1.3×1.9m)을 붕어 형태로 조성, 관광자원화할 복안도 갖고 있다. 강원도청 산업경제국 이상삼씨는 “태양광발전사업은 공해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는 사업으로 춘천이 신·재생에너지 생태도시로 발돋움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풀어야 할 숙제도 많아 강원도는 지열(地熱)을 이용한 냉난방사업뿐 아니라 버려지는 나무와 가축분뇨 등을 이용한 바이오 에너지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강원도는 2015년까지 7000억원을 들여 신·재생에너지 활용 비중을 2006년 3.1%에서 2010년 7.1%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세계 10위권의 풍력발전, 전국 1위의 대체에너지를 보유한 지자체로 발돋움한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는데 걸림돌도 적지 않다. 우선 무분별하게 설치된 풍력발전기가 백두대간의 허리를 끊어 자연경관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동부지방산림청 관계자는 “무차별적인 풍력발전기 설치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각 지자체들이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앞다퉈 뛰어들면서 정부 보조가 줄고 있다는 점도 강원도의 고민이다. 강원도 의회 이강덕 의원은 “자연환경과 지자체의 의지가 맞물려 국내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선도하고 있는 강원도에 대해 중앙정부가 격려는 못해줄망정 지원금을 삭감하는 것은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평창·강릉·춘천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신경림 누항 나들이] 영어만이 경쟁력인가

    [신경림 누항 나들이] 영어만이 경쟁력인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2010년부터 모든 영어수업은 영어로 진행하며 영어 이외의 과목도 영어로 하는 영어몰입교육은 올해부터 농어촌 고교에서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가, 여론이 나쁘니까 영어 몰입교육 계획을 발표한 적이 없다고 슬그머니 발뺌을 했다. 그러면서도 고교만 나와도 영어로 말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에 소요되는 사교육비를 없애겠다는 영어 공교육 강화에 대한 의욕을 보이면서, 청계천을 복구했듯 밀어붙이겠다고 천명했다. 청계천도 처음에는 반대여론이 많았지만 결국에는 전국민적 지지를 받게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영어에 의한 영어수업-영어몰입 교육, 그 다음에는 영어의 공용화로 수순은 이어지리라. 영어 사용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발상이지만, 정말로 영어만이 경쟁력이고 영어만이 국력일까. 일본에서도 19세기 말 영어나 그 밖의 서구어를 공용어로 사용해야만 일류국가가 될 수 있다는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의견이 있었으니, 정조 때의 실학자 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北學議 )’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우리나라는 지역적으로 중국과 가깝고 성음(聲音)이 대략 같으니, 온 나라 사람이 본국 말을 버린다 해도 불가할 것이 없다. 그러한 뒤에라야 오랑캐라는 말을 면할 것이며, 동쪽 수천리 땅이 스스로 하나의 주(周), 한(漢), 당(唐), 송(宋)의 풍속으로 될 것이니 어찌 크게 쾌한 일이 아닌가.”(한어편·漢語篇) 삶의 질이나 학문의 수준이 선진 중국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이런 말을 했겠지만, 이런 주장이 국민의 동의를 얻어 현실화됐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말은 물론 민족도 지금의 만주족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언어에 그 민족의 혼이 담겨 있다는 따위의 고리타분한 말을 반복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제 나라 말을 괄시하고 남의 나라 말에 매달리는 민족 치고 빛나는 역사를 만든 일이 세계사에는 없다. 또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문제가 우리가 영어를 영어 사용국 사람들처럼 못하는 데서 찾는다는 것도 제대로 된 진단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가 우리보다 더 잘 살아야 하고 영어몰입 교육을 하지 않는 프랑스나 독일이 학문적 후진국이어야 맞겠지만, 그런 말은 들어본 일이 없다. 영어몰입 교육은 영어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체능 과목부터 시작하겠다는 계획이었겠지만, 종국에는 국어, 국사도 몰입교육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국어, 국사를 외국의 국어, 국사로 배우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좀 과장하여 몰입교육이 대학의 불문학, 독문학, 러시아문학으로까지 확대되어 발자크, 괴테, 톨스토이를 영어로 강의한다고 생각해보자. 이것은 아예 희극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영어요 영어가 안 통하는 나라가 없는 세상에서, 영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외국어를 하나 하는 것은 그 나라 문화와 친숙해지는 것을 뜻하니, 영어를 하는 것은 곧 세계에서 가장 큰 문화를 하나 더 가지고 사는 것이 된다. 그러나 영어는 수단일 뿐 목적일 수는 없다. 영어를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이 있는 것이지 영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영어는 경쟁력을 가지기 위한 수단이지 경쟁력 그 자체는 아니라는 뜻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군대도 면제시켜주고 영어교육과정을 이수하기만 하면 교사 자격증이 없어도 영어교사로 채용한다는 둥 인수위가 남발하는 설익은 영어 만능주의적 발상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신뢰에 적잖이 금이 가게 만든다. 시인
  • 휴가때 민간 위장? ‘군인용 가발’ 열풍

    휴가때 민간 위장? ‘군인용 가발’ 열풍

    “여자친구가 군인 같지 않다며 너무 좋아해요. 친구들도 군대 가면 하나 마련해야겠다고 난리입니다.” 최근 휴가를 나온 육군 이모(21) 일병을 만난 친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짧은 머리’일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전혀 군인답지 않은 긴 머리로 약속장소에 나왔기 때문이다. 이씨는 휴가 첫날 ‘군인티’를 내지 않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에서 ‘군인용 가발’을 구입했다. 보기 좋다는 친구들의 촌평이 잊혀지지 않는다. ●가격 2만~3만원대… 인터넷 쇼핑몰 등서 인기 군인 가발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휴가 중에 머리가 짧고 어색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 군인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한 군인 가발이 이제는 병영의 신종 문화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최근 전역한 신모(24)씨는 “내무반에서 10명 가운데 4∼5명이 휴가 중에 가발을 쓸 정도로 인기가 많다.”면서 “각자 다른 스타일의 가발을 가지고 있고 휴가 나갈 때 서로 돌려쓰기도 한다.”라고 귀띔했다. 신씨는 “군인 가발은 이제 휴가 필수품”이라고 말했다. 수요가 폭주하면서 공급도 늘고 있다. 젊은층 패션의 중심인 서울 동대문시장과 남대문시장에는 ‘군인가발 팝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이고 휴가병을 끌어모으고 있다. 동대문시장에만 군인용 가발을 판매하는 가게가 10여곳이나 된다. 인터넷 쇼핑몰은 수를 헤아리지 못할 정도다. 가격도 2만∼3만원대로 저렴해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군인을 유혹하기 충분하다. 동대문 쇼핑몰에서 가발 가게를 운영하는 김영순(55·여)씨는 “지난해 8월쯤부터 군인들이 가발을 찾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하루 평균 15∼20명의 군인이 가발을 찾고 있다.”면서 “이제는 아예 군인용 가발을 전문적으로 만들어서 팔고 있는데 제품 종류만 20가지 정도 된다.”라고 소개했다. ●“민간인 행세 군인정신 약화 우려” 지적도 가발협회 고승연 이사는 “예전에 비해 부정적인 시선이 많이 누그러져 이젠 가발도 하나의 패션 액세서리로 자리잡았다.”면서 “다른 군인이 가발을 썼을 때 자연스럽게 보여 자기도 따라 쓰는 연쇄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 이사는 “군인을 상대로 가격이 싼 가발을 팔다 보니 중국에서 들여온 저가의 재료로 만든 가발이 판을 치고 있다.”면서 “탈모나 가려움증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예전에는 군인이 푸른 군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활보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요즘 군인은 민간인처럼 보이길 원한다.”면서 “군인 가발은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일각에서는 군인정신의 약화를 우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휴가 때 가발을 쓴다고 해서 군인복무 규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군의 위신과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군인답지 못하게 행동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신혜원기자 hyewon81@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6) 쌍겨리와 소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6) 쌍겨리와 소

    김홍도의 그림 ‘쌍겨리’다. 그림은 위쪽과 아래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먼저 위쪽을 보자. 남자 둘이 쇠스랑을 들고 일을 하고 있다. 쇠스랑은 주로 두엄을 쳐내고 퇴비를 긁어 올리는 데 사용하며, 드물게는 밭을 가는 데도 사용된다. 쇠스랑은 그림에서처럼 발이 세 개인 것이 일반적이고 이따금 둘인 것도 있다. 자루는 대개 참나무로 만들고 발은 당연히 쇠로 만든다. 그런데 이 그림의 농부 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두엄을 쳐내는지, 퇴비를 긁는지, 아니면 밭을 가는지 그림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지방마다 쟁기 끄는 소의 마릿수 달라 아래쪽의 사내는 소 두 마리로 쟁기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소 엉덩이에 똥이 묻은 것까지 자세하게 그렸으니, 어지간한 관찰력이다. 어쨌거나, 쟁기질이라니, 아마도 봄이리라. 흥미로운 것은, 쟁기를 끄는 소가 두 마리라는 것이다. 소 한 마리에 멍에를 지우는 것을 외겨리, 혹은 독겨리라 하고, 쌍멍에에 소 두 마리를 지우면 쌍겨리라 한다. 대개 논과 밭을 갈 때 땅이 평평하여 쉽게 흙을 팔 수 있으면 외겨리로 하지만, 화전 같은 경사지거나 흙이 단단하거나 돌이 많은 곳은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쌍겨리로 하는 것이다. 대개 쌍겨리는 땅을 깊이 갈기 위해 고안된 방법인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 귀양 가서 ‘탐진농가’란 시를 지었는데, 여기에 흥미롭게도 외겨리, 쌍겨리 이야기가 나온다(탐진은 강진의 옛이름이다). 모두 10수인데,7번째 작품을 보자. 게으른 습성은 정말이지 옥토에서 생기는 법 상농(上農)도 해가 중천인데 잠에 빠졌다가 느릅나무 그늘에서 술주정을 부리다 말고 느지막이 소 한 마리 몰고 마른밭을 가는구나 이 시에 주석이 붙어 있는데,“경기 지방의 마른밭은 소 두 마리로 간다.”라고 되어 있다. 곧 전라도 강진에서는 외겨리로 밭을 갈지만, 경기도에서는 쌍겨리로 갈았던 것이다. 우하영의 ‘천일록’은 지방에 따라서 쌍겨리로 밭을 가는지, 외겨리로 가는지를 밝히고 있다. 이에 의하면, 관동지방은 영서·영동을 막론하고 쌍겨리로, 황해도 봉산·재령·신천·안악 등도 쌍겨리, 경상도는 대개 쌍겨리로 하고, 남쪽 지방은 외겨리로, 전라도는 산간 지방은 쌍겨리, 평야 지대는 외겨리로 한다는 것이다(주강현,‘두레’). 혼자 소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소란 것이 농민이면 누구나 손쉽게 가질 수 있는 재산이 아니어서, 이웃과 함께 어울려 소 두 마리를 메기도 하였던 것이다. 위의 그림도 그런 사정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쌍겨리로 논밭을 갈면서 부르는 노래를 ‘쌍겨리소리’라 하는데, 경기도 가평의 쌍겨리소리를 들면 이렇다.“어져, 저 소야, 줄 잡아 당겨라. 이랴, 이랴. 먼저 나가지 말고, 두 마리가 잘 잡아 당겨라.” 물론 노래는 소리를 길게 뽑고 후렴구를 넣기도 하여 길게 늘어진다. ●농우 확보위해 도살 금했지만 ‘고려공사 사흘´ 농우는 농사를 짓는 데 필수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농민들에게 소가 언제나 넉넉하게 돌아갔던 것은 아니다. 성종 때 시인이자 관료였던 강희맹이 쓴 농서 ‘금양잡록(衿陽雜錄)’을 보면 농촌에 소가 아주 드물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동리에 100집이 있는데, 가축이 있는 집은 10집 남짓이고, 소는 한두 마리에 불과하다. 거기서 송아지를 제외하고 농사일을 맡길 만한 소는 겨우 몇 마리에 불과하다.100집의 밭을 몇 마리 소가 갈자 하니 힘이 부치기 마련이다.”라고 하고 있으니, 농사지을 소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 도둑떼까지 소를 잡아먹어 남은 소로는 경작이 불가능해 하는 수 없이 사람이 쟁기를 끄는데, 아홉 명이 쟁기를 끌어도 소 한 마리를 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농업사회인 조선조에는 소가 늘 부족했다. 소 전염병도 자주 돌았다. 예컨대 인조 15년,16년 두 해에는 소 전염병이 너무 심하여, 성균관에서 공자에게 올리는 봄 가을의 제사, 곧 석전 때도 제물로 소 대신 돼지를 쓰게 했으며, 현종 11년 전국의 소가 거의 다 죽어 사람이 대신 쟁기를 끌었다고 한다. 한데 소가 모자라는 가장 큰 이유는 쇠고기의 소비 때문이었다.‘세종실록’ 7년 2월4일조를 보면 국가에서는 농우의 확보를 위해 소의 도살을 금지하고 있다.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먹는 것은 백성의 근본이 되고 곡식은 소의 힘에서 나오므로 우리나라에서는 금살도감(禁殺都監)을 설치하였고, 중국에서는 쇠고기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령이 있으니, 이는 농사를 중히 여기고 민생을 후하게 하려는 것이다.” 조선조 500년 동안 지속된 세 가지 금령이 있는 바, 소나무의 벌채를 제한하는 송금(松禁), 술을 빚는 것을 금하는 주금(酒禁), 그리고 바로 소의 도살을 금하는 우금(牛禁)이 그것이었다. 조선 정부는 이처럼 소의 도살을 막았지만, 그것이 성공한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정책을 수립하는 지배층 자체가 쇠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계층이었기 때문이었다. ●소는 농가 최고 재산… 세금 못내면 끌고가기도 정조 때 박제가가 쓴 ‘북학의’에 의하면 당시 날마다 소 500마리를 도살한다 하였다. 서울에는 쇠고기를 파는 24개의 푸줏간이 있고, 지방 300여 고을 관아에서도 빠짐없이 쇠고기를 파는 푸줏간을 열고 있다 했으니, 실로 쇠고기의 소비량이 대단했던 것이다.‘정조실록’ 17년 9월11일조의 대사간 임제원이 올린 상소문을 보면, 이해 가을 작황을 보니 좋은 날씨로 인해 유례 없는 풍년이 들었는데도, 뜻밖에도 모내기도 못한 곳이 있다면서 그 이유로 농사지을 소의 부족을 들었다. 즉 소를 잡아먹는 일이 최근 너무 심해져 소가 부족해졌다는 것이다. 큰 도시에서 쇠고기를 파는 가게가 늘어서 있으며, 호서 지방과 호남 지방이 가장 쇠고기를 먹는 데 열중한 나머지 소 값이 올라 논밭을 가는 소가 모자라게 되고, 그 결과 사람이 대신 쟁기질을 하므로 모를 내지 못하는 곳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요컨대 소를 잡아먹는 것을 금하자는 것이었지만, 고려공사 사흘이라고 아무리 금령을 발동해도 고쳐지지가 않았다. 소는 농사를 짓거나 고기만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짐을 끄는 것도 소가 하는 중요한 노동이었다. 영조 때의 시인인 홍신유가 쓴 시에 ‘우거행(牛車行)’이란 작품이 있다.‘수레를 끄는 소에 대한 노래’란 뜻이다. 서울 한강 근처에 강을 통해 서울에 도착한 양곡이며, 땔나무를 도성 안으로 옮기는 수레를 끄는 소를 제재로 삼은 것이다. 이 작품의 소는 짐을 싣고 도성으로 들어가다가 큰 비로 생긴 웅덩이에 빠졌다가 천신만고 끝에 나오지만, 다시 좁은 비탈길에서 양반네 행차를 만나 놀란 나머지 진흙 구덩이에 빠져 버둥거리다 죽고 만다. 시인은 소를 가엽게 여겨 이렇게 말한다.“한 해 가고 두 해 가면/ 전신은 성한 데 없고/ 가죽은 마르고 살은 쫄아 붙어/ 영락없이 고사목처럼 되고 말지/ 그 소 마침내 푸주로 끌려와서/ 잡아먹히게 되는데/ 수레 끄는 소는 고기 맛이 없다고/ 말들 한다네/ 소의 힘 모두 빨고/ 마침내 그의 고기까지 먹으니/ 사람들 잔인하기/ 어찌 이와 같단 말가?”(임형택 편역,‘이조시대 서사시(상)’) 평생 노동력을 빼앗고, 죽으면 고기까지 먹으니, 인간처럼 잔인한 짐승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소는 농가의 최고 재산이었다. 조선시대 한시를 보면 세금을 내지 못한 농가에 아전들이 들이닥쳐 소를 끌고 가는 장면이 흔히 나온다. 아니,20세기에도 소는 대학생의 등록금이 아니었던가. 위 그림의 소를 부려 농사짓는 사람은 그나마 넉넉한 농민이었던가 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도심 설 잔치 풍성

    도심 설 잔치 풍성

    설 연휴 기간 중 서울남산국악당, 서울역사박물관 등에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4일 서울시에 따르면 남산골 한옥마을 안에 지난해 11월 새롭게 문을 연 서울남산국악당에서는 6∼8일 ‘설맞이 국악 특별공연’을 갖는다. ‘설날의 행복’을 주제로 한 이번 행사는 국립창극단 단원들의 ‘판소리-춘향가, 흥부가’와 고금성·강효주의 ‘경기민요-노랫가락’ 공연, 숙명여대 가야금연주단의 퓨전 국악연주로 꾸며진다. 모든 공연이 무료로 진행되며, 서울남산국악당 홈페이지(www.sngad.or.kr)에서 사전 예약을 하면 지정석을 확보할 수 있다. 공연장 주변과 로비에서는 전통미술품 전시, 소망등 만들기 등 부대행사가 열린다. 또 서울역사박물관은 7일 북청사자놀음 공연(오후 1시·4시)과 여러가지 민속 체험행사를 준비했다. 박물관 광장에서는 널뛰기, 제기차기, 팽이치기, 대형윷놀이, 투호던지기 등 전통놀이 체험마당이 열린다. 가훈을 써주고, 신년운세를 보는 코너도 마련했다. 또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에서는 6∼10일 사물놀이, 판소리 공연을 비롯해 종이 쥐 만들기, 신년운세 보기, 한복 입고 사진 찍기, 차례상 차림 등 설 세시풍속으로 구성한 설날 큰잔치 행사를 갖는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5) 목욕터 풍경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5) 목욕터 풍경

    신윤복의 그림 ‘목욕하는 여인들’. 단옷날 여성의 목욕 장면을 그린 것이다. 왼쪽 아래에 젊은 여인 넷이 시냇물에 몸을 씻고 있다. 네 사람 모두 윗도리를 벗었고, 그 중 맨 왼쪽에 서 있는 여인이 치마를 걷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속옷도 아마 입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고, 씻으러 나온 것이 아닌가. ●조선시대 여성 목욕 장면 담은 유일한 그림 오른쪽 위에는 붉은 치마와 노란 저고리로 한껏 멋을 낸 젊은 여인이 그네를 뛰고 있고, 그 옆의 여성은 참으로 거창한 크기의 어여머리를 풀어 매만지고 있다. 두 여자의 옷은 고급스럽다. 저고리의 끝동, 깃, 곁마기, 고름을 모두 자주색으로 하면 삼회장이라 하여 가장 잘 차려입은 것으로 치는데, 그네를 타는 여자와 어여머리를 만지고 있는 여성은 모두 삼회장이다. 다만 맨 오른쪽의 여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흰 저고리를 입고 있는데,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다. 오른쪽 아래의 보퉁이를 이고 오는 여자는 짚신을 신고 행주치마를 두른 것을 보건대 입성이 초라할 뿐만 아니라, 남들 노는 데 심부름이나 하고 있으니, 계집종임이 분명하다. 이고 온 보퉁이에 술병 모가지가 비쭉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옆에 보이는 물건 역시 안주를 담은 찬합일 것이다. 요컨대 단옷날 시내로 나와 목욕하는 여성들(기생으로 짐작된다)이 마시고 먹을 술과 안주를 날라 오고 있는 참이다. 이 그림은 놀랍도록 충격적이다. 조선조 500년에 걸쳐 유사한 그림은 없다. 그 충격의 이유는 여성의 나신을 드러내 놓고 있다는 것이다. 흰 피부에 진홍의 젖꼭지와 입술은 너무나도 선명하다. 특히 여성의 유방을 보라. 인터넷이 온갖 영상을 퍼 나르는 시대에 여성의 나신은 그다지 별스럽지 않다. 하지만 때는 유가의 도덕이 시퍼런 조선시대다. 어찌 충격이 아닐 수 있겠는가. 여성의 젖가슴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이다. 그것은 성의 두 가지 기능과 관계된다. 인간에게 있어 성은 쾌락이면서 생식이다. 여성의 가슴 역시 그것에 대응한다. 가슴은 성적 쾌락의 도구, 곧 성기일 수도 있고, 또한 자식을 기르는 수유의 도구이기도 하다. 수유의 도구는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과거 여성들이 공개된 공간에서 자신의 가슴을 열어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을 보고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것은 모성의 가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퉁이를 진 여성의 젖가슴을 보라. 이 젖가슴은 신기하게도 성적 상상을 유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목욕하는 여성의 분홍빛 유두와 흰 가슴은 성적 쾌락을 상상케 한다. 저 숨어서 훔쳐보는 젊은 까까머리 스님들의 시선도 분명 성적 쾌락을 향해 있다. 이 그림이 또한 희한한 것은 여성의 조선시대의 목욕 장면을 형상화한 유일한 시각자료라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회화는 인간의 구체적 일상을 담은 그림이 참으로 희소하거니와, 이 그림 외에는 목욕이라는 재제가 등장하는 그림은 없다. 게다가 목욕 자체에 대한 문헌의 언급도 희소하다. 과거 기록에서 목욕은 온천과 관련하여 주로 등장한다. 눈병으로 고통을 겪었던 세종과 심한 피부병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세조는 자주 온천을 찾았다. 따라서 이들의 온천행과 관련된 목욕이란 어휘가 더러 등장한다.30년도 더 된 예전의 일이다. 나는 창덕궁에 갔을 때 궁궐 안에 있는 목욕탕을 보았는데, 그것은 신식이었다. 과거 사람들은 어떻게 몸 전체를 씻었던 것일까. 제사를 지내기 전에 목욕재계하라는 말이 허다하게 나오지만, 나는 정작 그 ‘목욕’재계가 이루어지는 공간과 방법, 도구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세종실록’ 7년 7월19일조를 보면, 세종은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습진과 같은 피부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는 보고를 듣고 선공감에 명하여 욕통(浴桶)을 만들어 지급하게 한다. 이 욕통이란 것이 조선시대의 목욕문화의 핵심일 것이다. 지금처럼 대중탕이나 혹은 집안에 따로 욕실을 만들지 않고, 욕통을 만들어 적당한 공간에 비치하고 물을 데워서 목욕을 하는 것이 목욕문화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것조차 일반적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보편적이었을 것 같지는 않다. 인구의 대부분이 소작농이거나 극히 적은 농토를 소유한 자작농이었으니, 삶의 수준이란 것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판에 집집마다 욕통을 갖추어 놓고 물을 데워 목욕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20세기에 들어와서도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에는, 단독주택에 욕통을 비치할 공간을 거의 마련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린다면, 조선시대의 목욕문화를 대개 짐작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자신의 몸을 어떻게 청결히 했을까 하는 것은 더욱 궁금한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도 아무런 문헌적 해답은 없다. 상상하건대 아마도 부엌 바닥에 물을 데워놓고 아무도 없는 한밤중에 몸을 씻지 않았을까. ●개울에서 목욕하는 것은 오랜 전통 다만 여성이 비교적 자유롭게 몸을 씻을 수 있는 곳은, 개울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을 선택한다. 하기야 늘 그렇듯이 남성의 관음증은 여기서도 멈추지 않아, 훔쳐보는 사람(스님 둘)이 있기 마련이지만. 개울에서 목욕을 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다.1123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 서긍은 이렇게 말한다. 옛날의 역사책에 고려에 대해 실어놓은 기록에 의하면, 그 풍속이 모두 다 깨끗하다 하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고려 사람들은 늘 중국 사람들이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 그러므로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반드시 먼저 목욕을 한 뒤 집을 나선다. 또 여름에는 날마다 두 번 목욕을 하는데, 거개 시내에서 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내외를 하지 않고 의관을 모두 벗어 언덕에 던져두고 물가를 따라 벌거벗되 괴이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위쪽 부분이다. 고려 사람은 청결하고 중국인이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는 말을 중국인 스스로 하다니 말이다. 서긍의 말에 의하면, 고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목욕부터 하고 외출을 하고, 여름에 하루 두 번 목욕을 한다 하니, 조선과는 사뭇 다른 풍습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여름철 시내에서 목욕을 하되, 남자 여자가 내외를 하지 않고 나신을 드러내고 목욕을 했다는 것이다. 이 기록을 믿는다면, 고려시대에는 남녀의 분별이 없이 옷을 언덕에 벗어놓고 몸을 씻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위의 엿보는 선비도 이런 유구한 전통을 이어받았는지 모를 일이다. 각설하고, 이렇듯 자유롭던 개울가의 풍경이 바뀐 것은 조선조가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조선조는 알다시피 양반-남성 국가다. 양반-남성의 국가는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을 분할,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양반-남성은 ‘소학’의 규정대로 여성의 역할을 조리와 의복에 제한했다. 조리와 의복 마련은 조선에서도 여성이 맡아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고려와 달라진 것이 있었다. 조선의 국가이데올로기 성리학은 남성과 여성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여성을 오직 가정 내부에 유폐할 것을 요구했다. 여성은 밖으로 나다니지 말아라. 여성은 뜰 밖에 나와서도 안 된다. 이것이 양반-남성의 요구였다. ●감추라 하면 더욱 드러내고 싶은 인간의 본능 ‘고려도경’의 언급처럼 고려사회는 시냇가라는 동일한 공간에서 남자와 여자가 옷을 벗고 목욕을 하는 것을 허락했다면, 조선사회에서는 그와는 정반대의 길로 치달았다. 몸을 가려라. 이것이 여성에 대한 주문이었다. 사대부가의 여성이 외출할 때면 장옷과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렸고, 처녀의 경우 비단보자기를 씌워서 업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럴 형편이 되지 않으면 할 수 없지만, 만약 형편이 된다면, 남성의 시선으로부터 여성의 신체를 완벽하게 차단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것이 도덕의 명령이었다. 하지만 감춘 것은 더욱 보고 싶은 법이고, 감추라 하면 더욱 드러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양반-남성의 도덕은 여자의 몸을 죄의 근원처럼 여겼다. 과연 그런가. 여성의 몸이 죄의 근원이라면 모든 인간은 죄의 근원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보다 더 큰 거짓이 어디 있겠는가. 혜원은 바로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기고] 안전하게 설을 보내는 법/박길상 한국산업안전공단 이사장

    [기고] 안전하게 설을 보내는 법/박길상 한국산업안전공단 이사장

    며칠 후면 민족고유의 명절인 설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설이지만 고향을 찾고 가족을 만난다는 사실에 언제나 설렌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명절의 풍속도 많이 바뀌고 있다. 연휴를 맞아 일상을 잠시 접고 고향을 방문하는 민족 대이동의 풍경과 차례상을 준비하는 재래시장의 분주한 모습은 언론의 단골기사가 되고 있다.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모습과 인터넷을 통해 제수음식을 준비하는 일도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몇 해 전부터는 명절 전후 스트레스와 관련한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단골로 등장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례와 방안이 화두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과 함께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안전과 건강이다.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하여 부모님을 뵙고, 친지를 만난다는 즐거움과 급한 마음에 자칫 안전을 소홀히 한다면 즐거워야 할 명절은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이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정부에서 발표한 설 연휴 종합안전대책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설 연휴기간 동안 화재 등 재난사고가 하루평균 108건이 발생했고, 교통사고 등 인명피해는 매일 5∼6명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절 연휴기간에는 들뜬 마음으로 고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 교통사고 발생의 위험성이 평소보다 높다. 또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화기를 사용하다 발생하는 화재사고도 여느 때보다 많다. 이러한 사고와 위험은 설 연휴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 늘 공존하고 있다. 최근에 발생한 유조선 기름 유출사고나 이천의 냉동창고 화재사고도 안전의 원칙과 기본을 지켰더라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사고였다. 짧은 순간 발생한 사고로 인한 후유증이 삶의 터전을 잃은 서해안 어민들의 가슴속에, 그리고 화재로 목숨을 잃은 근로자의 가족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아픔으로 남게 됐다. 이번 설에는 국가산업단지 입주업체의 14.1%가 설 연휴 기간 중에도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라고 한다. 설비의 특성상 24시간 가동이 불가피하거나 생산공정이나 납기 준수 등을 위해 생산라인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이 철저한 안전실천 노력이다.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주변의 위험요소를 살펴보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예방대책을 사전에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는 연휴기간 동안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24시간 위험상황실을 전국에서 운영한다. 또한 각종 안전관련 기관에서도 만약의 사고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고 후의 그 어떤 대처보다도 생활속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범국민적인 안전수칙 실천이 중요하다. 설 연휴 오가는 도로에서, 영화관이나 스키장 등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노력이 필요하다. 설을 맞아 국민 모두 기본과 원칙을 중시하고 매사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 마음을 가다듬어야겠다. 설날의 어원에 대한 여러 견해 중에 ‘삼가다(謹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로 보는 견해가 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설날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설의 어원에 관한 다양한 견해 중에서 위험과 사고가 잠재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의미있게 와닿는 해석이라 생각한다. 이번 설이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한해를 보낼 수 있도록 매사에 삼가고 조심하는 안전의 원칙을 가슴깊이 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박길상 한국산업안전공단 이사장
  • [강유정의 영화in] ‘라듸오 데이즈’ 리뷰

    [강유정의 영화in] ‘라듸오 데이즈’ 리뷰

    하기호 감독의 ‘라듸오 데이즈´는 그때 그 시절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하는 작품이다. 때는 1930년, 이준 열사, 안중근 의사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의 위업도 있었지만 아방가르드 예술인 이해경(이상)이 다방 제비를 열어 기생 금홍과 밤낮없이 허무에 빠져들던 시기이기도 하고, 모던 보이 박태원이 하릴없이 종일 종로를 거닐며 시간을 탕진하던 때이기도 하다. 어쩌면 당시, 번화가인 종로나 화신 백화점을 걷는 시민들에게는 ‘모던 껄´과 ‘모던 뽀이´의 행색이나 풍속도가 더 흥미로운 ‘현재´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1930년대는 바다 건너에서 들어온 새로운 문물과 문명이 이 땅에 자리잡기 시작했던 과도기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영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 세련된 원피스를 입고 있는 모던 걸이 6폭 한복 치마를 곱게 다려 입은 여성과 함께 길을 걸어가던 시기. 일본을 거쳐 수입된 재즈와 임방울의 쑥대머리가 함께 울려 퍼지던 경성 거리.‘라듸오 데이즈´의 시작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라듸오 데이즈´는 전통과 신문물의 혼합과정보다는 ‘라디오´라는 신기한 문명의 도입에 주목한다. 닭울음을 전파에 싣기 위해 진짜 닭을 울리는 첫 장면은 이를 잘 보여준다. 영화는 어떻게 하면 라디오 방송의 묘미를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연출자의 시선을 따라간다. 출연자들의 돌발 상황에 대처하고, 불가능한 인연으로 맺어진 멜로드라마로 최루성 인기를 얻어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라듸오 데이즈´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방송의 심리와 구조를 패러디한 작품에 가까워 보인다. ‘라듸오 데이즈´는 1930년대 풍경보다는 방송의 생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시청자 게시판 역할을 대신한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나 ‘다시 보기´나 ‘불법 다운 로드´를 연상케 하는 재방송 상인들의 풍경이 그렇다. 드라마의 맥락과 무관하게 조미료 광고를 넣는 PPL 장면도 1930년대보다는 현재의 상황을 더 잘 보여준다. 문제는 ‘라디오 데이즈´의 한계 역시 이 감각 속에 있다는 점이다. ‘라듸오 데이즈´는 최초의 방송이 이랬을 것 같다는 추측 위에서 시작한다. 알려진 자료가 없는 만큼 2000년대 우리가 듣고 경험하는 라디오 방송으로부터 상상은 연역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1930년대다운 질감은 사라지고 없다. 방송의 생리는 입체적인데 1930년대 풍경은 사진관에 놓인 인공 세트처럼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1930년대를 재현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주말 아침 TV에서 볼 수 있는 재현 프로그램 수준을 아슬아슬하게 넘고 있다.‘웰컴 투 동막골´과 유사한 마지막 불꽃 놀이 장면이 따뜻한 감동보다는 어색한 봉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에 이어 두번째로 선보인 ‘라듸오 데이즈´의 경성, 하지만 이 삐걱거림을 비판할 수만은 없다. 심리적 거리감과 무게를 덜고 다시 보는 일제 강점기, 그 시도만으로도 격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1930년대를 조명하는 새로운 각주로서 이미, 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밤의로의 여행/연진희·채세진 옮김

    밤의로의 여행/연진희·채세진 옮김

    우리의 일부다. 어떤 이에게는 불안과 고독의 시간이다. 또 어떤 이에게는 노동에서 해방된 자유의 시간이자 관능적 쾌락과 여흥의 시간이다. 하루의 걱정을 밀쳐둘 수 있는 시간이며,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는 미개척지인지도 모른다. 이건 ‘밤’이다. 캐나다의 시인이자 에세이 작가인 크리스토프 듀드니의 밤에 관한 단상이다. 그가 쓴 ‘밤으로의 여행’(연진희·채세진 옮김, 예원미디어 펴냄)은 드물게 만나는 ‘밤의 인류문화사’이다. 인류역사를 통해 문학으로, 그림으로 끝없이 노래됐으면서도 밤 그 자체에 의미를 둔 시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낮의 그림자, 낮과 낮 사이에 끼인 어둠의 시간. 하루 24시간의 중심축을 떠받치며 엄존함에도 밤은 개념적 적자(嫡子)로 대접받지 못했다. ●밤의 기원에 대한 신화·과학적 정의도 밤의 모든 것을 파악한 백과전서를 선언한 책은, 그 언어적 유래로 운을 떼는 치밀함을 보인다. 숱한 단어들이 변천의 역사를 겪어왔어도 영어의 ‘night’만큼은 모양을 바꾼 적 없는 은근한 세를 부려왔다. 밤을 여성으로 인격화하며 찬미한 수많은 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기도 한다. 밤의 기원에 대한 신화·과학적 정의가 빠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낮을 준비하는 관념적 인식의 대상이던 밤이, 신비함으로 무장한 상상과 창조의 시간으로 실체적 가치를 얻어가는 과정에는 정보가 풍성하다. 밤의 시간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다양한 주제의 지적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일몰에서부터 다음날 일출까지 밤의 12시간을 한 시간 단위로 쪼개 모두 12개의 주제가 다른 장(章)으로 책을 꾸몄다. 예컨대 고즈넉이 아름다운 ‘밤의 자연’을 짚는 3장에서는 19세기 미국의 박물학자이자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저 유명한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 홀로 지내며 소로가 밤낚시를 즐겼던 여름밤 풍경은 그대로 밤의 찬사이다. 소로가 저서 ‘월든’에 쓴 그림같은 기록의 일부가 인용됐다. ●순서없이 펼쳐 읽어도 무리없어 낭만적 고찰에만 그치지 않는다. 밤을 “광학적 사막”(빛이 사하라의 물만큼이나 희소한 공간)이라 규정하고, 밤 사냥에서 최고의 입지를 얻는 야행성 동물들에게는 어둠이 오히려 빛이 되는 역설을 일깨운다. 야간투시경을 가진 연쇄살인범이 활약하는 영화 ‘양들의 침묵’, 안구가 유난히 발달해 먹이를 보려면 머리를 돌려야 하는 안경원숭이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지식정보들이 종횡무진 지면을 활강한다. 순서없이 마음 가는 대로 펼쳐 읽어도 무리없는 건 그 덕분이다. 천문학·일몰·북극광·오로라 등 자연현상, 생물학, 생리학, 병리학, 의학, 예술, 과학기술, 신화, 어원학 등 다방면에서 밤의 지표들을 뒤져냈다. 우주가 캄캄한 이유에서부터 부엉이와 박쥐가 어둠 속에서 먹이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기술, 저녁 노을의 녹색섬광과 청색섬광의 정체, 도시의 야광이 암에 영향을 미칠지의 여부, 심지어는 코르티잔 나이트클럽 풍속에까지 관심의 촉수가 닿았다. ●잠과 꿈, 해몽과 불면증 이야기도 밤과 필연적 관계를 나눈 잠과 꿈, 해몽과 불면증 이야기는 특히 흥미롭다. 마을 주민이 통째로 불면증을 앓는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간의 고독’, 프로이트와 융의 학설을 인용하거나 때로는 저자가 수면연구소를 직접 찾아가 현장성을 부각시켰다. 고질적 불면증 환자였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비롯해 마르셀 프루스트, 샬롯 브론테, 버지니아 울프, 마크 트웨인 등 자신들의 복잡한 내면을 작품에 투영시킨 ‘올빼미 작가족’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글감이다. 저자의 광범한 지적 스펙트럼에 힘입어 밤은 복권돼 간다.500쪽이나 되는 긴 ‘탐구서’를 쉼없이 채워낸 작가의 오지랖과 재담이 무엇보다 놀랍다. 뒤집어, 방대한 지식정보들을 백화점 식으로 나열한 글쓰기에서 깊이읽기의 아쉬움을 느낄 독자도 있을 듯하다.1만 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스피닝 글러브-우주탐험(존 커크우드 글, 이주혜 옮김, 대교베텔스만 펴냄) 조립식 미니 천구를 통해 우주를 볼 수 있는 3D 별자리 가이드북. 행성, 은하, 별자리 등 우주에 관한 정보들이 총망라됐다. 초등 고학년 이상.2만 4000원.●도착(숀 탠 그림, 사계절 펴냄) 고국을 떠나 낯선 나라에 정착해야 하는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린, 글 없는 그림책. 모두 841장의 무채색 사진들이 이주민 가족의 슬픔과 희망을 감동적으로 전해 준다. 초등생.1만 9600원.●아기 아기 우리 아기(토박이 기획, 정지윤 등 그림, 보리 펴냄) 유아들을 일과 놀이, 살림과 자연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세밀화 그림책 시리즈. 곤충, 농기구 등 우리 자연과 풍속을 소재로 다뤘다.4세까지. 각권 5500원.●보리가 싹트기 위해서는 씨앗이 죽지 않으면 안된다(뮈리엘 맹고 지음, 카르멘 세고비아 그림, 베틀북 펴냄) 죽음의 의미를 일깨우는 철학동화. 죽음이 사라진 세상을 보여 줌으로써 죽음의 참가치를 느끼게 한다. 초등 중학년.7000원.●잭의 미스터리 파일-사라진 내 모습을 찾아라(댄 그린버그 글, 잭 데이비스 그림, 박수현 옮김) 주인공 잭은 복제인간 등 상상 속의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길 바라는 열살배기 평범한 남자 아이. 열린 사고 덕분에 특별해지는 아이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동화. 초등생.8000원.●너는 나의 달콤한 ㅁㅁ(이민혜 글, 오정택 그림, 문학동네 펴냄) 13세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연애담, 가정사, 학교생활 등을 각자의 시선에 따라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유머 있게 풀었다.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사건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넓은 관점을 갖게 만드는 성장동화. 초등 고학년 이상.9800원.●글자 줍는 개미(마테오 테르자기 글, 마르코 쥐르혀 그림, 미래아이 펴냄) 세상에 필요한 것은 무력이 아니라 ‘생각의 힘’이라고 귀띔하는 그림책. 초등 저학년까지.8500원.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 빨래터의 여자와 남자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 빨래터의 여자와 남자

    김홍도의 그림 ‘빨래터’다. 아낙네 몇이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그림 왼쪽의 어린아이가 딸린 여성은 머리를 풀어헤쳐 감은 뒤 다시 땋고 있다. 앞에는 빗이 놓여 있다. 재미있는 것은, 어린아이다. 아랫도리를 홀랑 벗고 있는데 이놈은 심심한 것인지 배가 고픈 것인지 엄마 젖을 만지고 있다. 그 아래의 여성은 긴 빨래를 비틀어 짜면서 건져내고 있다. 그 오른쪽에 방망이질 하는 여성 둘이 무슨 이야기인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빨래터는 온갖 수다가 난무하는 곳이 아닌가. 시누이 험담인가, 동서 험담인가, 아들 자랑인가, 건너 마을의 아무개 남편의 이야기인가. 우물과 빨래터는 여성들 고유의 일터이자, 수다판이다. ●여성의 일터이자 은밀한 이야기 나누는 곳 빨래는 밥짓기와 함께 여성노동에 속한다. 아니, 속하는 것이 아니라, 빨래와 밥짓기는 여성을 여성으로 규정하는, 좀 더 어렵게 말해 여성성을 규정하는 본질적 노동이다. 곧 밥과 빨래란 가사노동은 곧 여성이란 말과 등치된다. 밥짓기와 빨래가 언제부터 여성 노동으로 규정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 가부장제 사회가 성립하고부터가 아니었을까.1123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옷을 빨고 비단이나 베를 희게 말리는 것은 모두 부녀자의 일이다. 비록 밤낮으로 부지런히 일해도 감히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물을 파고 물을 긷는 것은 대개 시내 가까운 곳에 한다. 우물 위에는 두레박을 걸어 함지박에 물을 긷는다. 함지박은 배의 모양과 같다. 빨래는 오래 전부터 여성의 노동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고려나 조선이나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조선의 여성은 고려의 여성에 비해 훨씬 부자유하였다. 지난 호에 말한 바와 같이 조선의 양반-남성들은, 여성의 외출을 금했다. 하지만 고려조의 여성은, 남편의 승진과 출세를 도모하기 위해 엽관운동을 하러 남편의 상관을 찾아가는 일도 가능했고, 굿을 하기 위해 신당을 찾거나, 불공을 올리기 위해 절을 찾을 수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구경거리가 생겼을 때도 당연히 떳떳하게 외출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조선조가 들어서면서 여성의 외출은 금지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외출이 완전히 봉쇄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금지의 원칙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활동의 의지를 축소시켰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남아 있는 여성의 합법적 탈출로, 곧 해방구는 우물과 빨래터였다. 그것은 힘든 노동의 공간이었으나 한편으로는 동네의 소식을 주고받고 은밀한 험담을 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그곳은 성적 담화가 가능한 해방의 공간이었다. 단원의 그림 오른쪽 위의 갓을 쓰고 쥘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양반, 이 양반의 자세는 분명 성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 사내의 포즈는 지난 호에서 소를 타고 길을 가던 여인의 얼굴을 훔쳐보던 그 사내의 포즈와 같다. 부채를 넘어서 보내는 눈길의 속내는 곧 남성의 성욕인 것이다. 빨래터 그림은 이것 말고 더 있다. 아래쪽의 그림은 신윤복의 그림 ‘빨래터의 사내’다. 개울가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 흰 천을 펼치는 할미, 그리고 목욕을 마쳤는지 젖은 어여머리를 땋고 있는 젊은 여성이 있다. 이 젊은 여성은 저고리 아래 가슴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의 젊고 늘씬한 몸매의 사내를 보라.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반이 분명하다. 이 사내의 눈길은 젊은 여성의 가슴에 꽂혀 있다. 우물가가 남성과 여성이 접촉하는 성적 공간인 것처럼 빨래터 역시 성적인 공간이다. 고려가요 ‘제위보’를 들어 우물가의 성적 접촉의 실례를 확인해 보자.‘고려사’에는 국문가사는 없어지고 이제현이 한시로 번역한 것이 남아 있는데, 이 노래의 사연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어떤 아낙이 죄를 지어 제위보에서 노역살이를 하던 중 남자에게 손을 잡혔는데, 씻을 방도가 없어 노래를 지어 자신을 원망했다. 이제현이 한시로 그 노래를 풀어 옮겼다. 빨래터 시냇가 수양버들 아래서 손을 잡고 자기 마음 말하던 흰 말 탄 그 사람 처마에 석 달 비가 내린다 해도 손 끝에 남은 향기 어찌 차마 씻을 수 있으리. 아낙이 지은 죄의 구체적 내용이야 알 길이 없지만, 아마도 애정에 관계된 것이 아니었을까. 어느 날 자신과 관계하던 남자가 빨래터에서 일을 하던 여자를 찾아왔다. 여자의 손을 잡고 사랑한다는 말을 털어놓는다. 남자는 이내 떠난다. 손끝에 남자의 체취가 남아 있다. 석 달 비가 쏟아진다 해도 씻을 수가 없다. 여자는 남자를 따라갈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이처럼 빨래터는 남자와 여자의 성적 신호가 오가는 그런 공간이었던 것이다. ●황진이는 빨래터에서 만난 남녀의 작품 ‘제위보’는 이별을 노래한 것이지만, 빨래터에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17세기 초 이덕형이 쓴 ‘송도기이’란 책은 개성에 관계된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거기에 황진이가 태어난 내력을 밝힌 부분이 있다. 이 이야기는 이덕형이 공무로 개성에 머무를 때 채록한 것이기에 당시 개성에 유포되어 있던 이야기다. 황진이의 어머니는 이름이 현금인데,18살에 병부교 다리 밑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 훤칠한 대장부 하나가 다리 위에서 나타나 현금을 보고 웃기도 하고 손으로 가리키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잘생긴 사내라, 현금의 마음도 적잖이 쏠리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사내는 갑자기 사라졌고, 빨래하던 아낙들도 모두 흩어졌다. 인적이 끊어지자 그 사내가 다시 나타나 기둥에 기대어 노래를 한 곡 뽑는다. 노래가 끝나자 사내는 현금에게 물을 한 잔 달랜다. 현금이 냉큼 물을 떠 주었더니, 반쯤 마시고 돌려주면서 마셔보라고 하였다. 현금이 마시자 물이 아닌 술이었다. 말하자면 마술을 동원한 ‘작업’이었던 바, 현금은 거기에 넘어가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황진이는 빨래터에서 만난 두 남녀의 작품이었다. 우물가에서 만나 왕비가 되었던 그런 이야기는 빨래터에도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은 빨래터에서 만난 여성과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은 고려의 두 번째 왕이 된다. 왕건은 태봉의 궁예의 장수로서 903년 수군을 이끌고 후백제 땅인 나주를 공격한다. 목포에 배를 정박시키고 있는데, 멀리 오색 구름이 서린 동네가 보인다. 찾아가 보니, 어떤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다. 즉시 ‘신원조회’를 해 보니, 처녀의 할아버지는 부돈, 아버지는 다련군이란 사람이었다. 다련군이 사간 벼슬을 지낸 연위란 사람의 딸 덕교와 혼인해서 낳은 딸이 바로 이 처녀다. 뭐 이렇게 말해 보아야 감이 잡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요약하자면, 그 여자는 그 지방 호족의 딸이었다. 보니, 인물이 괜찮다. 무슨 말로 수작을 걸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여자와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시집 안 간 처녀를 건드려 놓고 왕건은 여자의 출신 성분이 낮다 하여, 임신을 원하지 않았다. 해서 돗자리에다 사정을 한다. 그런데 이 처녀의 행동이 놀랍다. 여자는 전날 밤 용이 자신의 뱃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용은 곧 왕이 아닌가. 여자는 이불에 흘린 정액을 쓸어 넣었다. 일종의 인공수정인 셈인데, 어쨌거나 임신이 되었고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혜종이다. 혜종은 특이하게도 얼굴에 돗자리 무늬가 있었다. 원래 왕건이 사정한 곳이 돗자리였으니, 말이 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혜종을 ‘돗자리 대왕’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한다. 빨래터는 용흥사란 절이 되었다. 용흥은 용이 나타났다는 뜻이다.‘고려사’는 혜종이 용의 아들답게 늘 물을 잠자리에 뿌리고, 큰 병에 물을 담아 팔꿈치를 씻었다고 전한다. ●남성이 성적 욕망 따라 여성 관찰하던 곳 이제 빨래터가 단지 옷을 세탁하는 공간만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빨래터는 남성이 자신의 성적 욕망이 시키는 바에 따라 여러 여성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었으며, 또 여성은 자신의 나신 일부를 슬쩍 남자들에게 보일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단원과 혜원의 빨래터 그림에 남자가 등장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KBS “소재 신중히 선택하겠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KBS의 선정성을 언급한 데 대해 KBS측이 “해당 프로그램은 전체적으로 불건전한 사회현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맥락이었지만, 일부 부적절한 내용이 포함된 것은 인정한다.”면서 “앞으로 소재 선정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당선인은 23일 한나라당 원내대표단과의 만찬 자리에서 “오늘 아침 KBS에서 주부 탈선에 대한 프로그램을 방영했는데, 한 여성이 ‘애인이 아무리 못났어도 내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기분이 든다.’고 인터뷰하더라.”면서 “어떻게 이런 내용이 공영방송에서 나올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날 오전 6시부터 방송된 KBS 2TV ‘생방송 세상의 아침’ 2부의 한 코너인 ‘이슈&피플’에서는 ‘위기의 주부들!-애인 만들기 백태’라는 제목으로 평범한 주부들의 외도와 불륜을 다뤘다.주부들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카페나 나이트클럽은 물론 주변의 소개, 컴퓨터 채팅, 각종 동호회 등을 통해 불륜의 덫에 빠지는 과정과 문제점 등을 상세히 내보냈다. 이에 대해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김일환 KBS 책임 프로듀서는 “해당 코너는 일반적인 사회현상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취지다. 나이트클럽 내 한 여성의 인터뷰 내용 등은 이를 설명하기 위한 보조수단이었다.”면서 “그 장면만 떼놓고 본다면 선정적일 수 있으나,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맥락을 놓고 본다면 ‘불건전한 풍속이 옳지 못하니 건강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당선인이 아침 시간대에 시청자들이 보기에 너무 어둡고 부적절한 내용이라고 지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보기에 따라서는 그런 지적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점은 인정하고 앞으로 소재 선정에 보다 신중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공영방송은 방송의 저질화를 막고 공공성을 견지해야 하는 등 상업방송과 존재방식 자체가 다른데, 요즘은 드라마와 교양프로그램 등을 가릴 것 없이 시청률을 놓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상업방송과 경쟁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전에도 여러 차례 문제가 되었지만 개선되지 않는 상황인 만큼 당선인의 KBS 선정성에 대한 지적은 앞으로 KBS 2TV 민영화 등을 포함한 방송정책 전반에 대한 변화를 암시하는 발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 우물가의 사랑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 우물가의 사랑

    김홍도의 그림 ‘우물가’다. 길 가던 사내는 더운 날씨에 목이 무척 말랐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양태가 작지 않은 갓을 등 뒤에 매단 것으로 보아, 아주 상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웬일인가. 아무리 더워도 그렇지 가슴을 풀어헤치고 물 긷는 젊은 아낙에게 물을 달라니 말이다. 게다가 가슴에는 검은 털이 무성하다. 가슴 털은 성적 기호다. 남성의 떡 벌어진 가슴, 그리고 무성한 털이 성적 기호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성적 분위기 맴도는 우물가 두레박을 건네고 줄을 잡고 있는 젊은 아낙을 보라. 상사람이 분명하다. 하지만 참으로 곱지 않은가. 내 생각에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로 보인다. 아낙은 수줍어 얼굴을 돌려 사내의 털북숭이 가슴을 보지 않고 두레박만 건넨다. 젊은 아낙 아래쪽의 머리를 위로 틀어 묶은 중년의 아낙 역시 외면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물 속 두레박만 보고 있을 뿐이다. 단원은 우물가에서 남자와 여자가 은밀하게 성적 기호를 주고받는 장면을 작은 화폭에 담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그림은 신윤복의 ‘우물가의 고민’이다. 그림 위쪽에 둥근 달이 떠 있다. 밤이다. 달이 걸린 나무를 보시라. 붉은 꽃이 피어 있다. 식물에 대해 무지한 나는 저 꽃이 앵두꽃인지, 복사꽃인지 모른다. 아시는 분은 가르쳐 주시기 바란다. 그림 아래쪽에는 젊은 여자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 여자는 우물가에 앉아 두레박 줄을 잡고 있고, 서 있는 여자는 오른손을 턱에 괴고 고민에 빠진 눈치다. 무언가 심각한 사건이 있다. 고민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림은 모든 것을 말하지 않지만, 찾아볼 수 있는 데까지는 찾아보자. 두 여자는 양반집 여자가 아니다. 옷차림을 보라. 둘 다 행주치마를 두르고 있다. 똬리를 머리에 얹고 있는 여자는 흰 민짜 저고리를 입었다. 왼쪽 여인은 녹색 저고리이기는 하지만, 저고리 고름만 자주색일 뿐 다른 장식이 전혀 없다. 또 신은 모두 신이다. 초라한 복색으로 보아 두 여인이 양반집 여자가 아님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두 상사람 여인네는 왜 고민에 잠겨 있는 것인가. 우물이 있는 장소를 보자. 그림 오른쪽 상단에 기와를 얹은 작은 문이 있다.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은 아니다. 큰 양반 가문은 건물이 크고 복잡하며 중간에 무수히 작은 문들이 있다. 이 문 역시 그런 문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담장이다. 담장이 허물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묵은 양반가로 생각되는데, 그 담장에 사내가 하나 서 있다. 사내가 쓰고 있는 양반만이 쓰는 사방관으로 보아, 이 사내는 이 집의 주인 양반일 것이다. 그런데 이 사내는 훔쳐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꼿꼿이 서서 두 여자를 정시하고 있다. 다만 이 사내의 표정은 음침하다. 주인 양반이 왜 밤중에 집안 여자들이 우물가에 모여 하는 이야기를 엿듣고 있단 말인가. 두 여자는 왜 물을 긷다 말고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가, 또 서 있는 여자는 왜 턱까지 괴고 심각한 표정으로 있는가. 그림은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지만, 이 남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는 혜원이 그림 속에 담은 생각이 무엇인가 늘 궁금하였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없으면 상상이다. 담 넘어 서 있는 양반이 서서 고민에 빠져 있는 젊은 여인을 건드렸고, 첩으로 들이려 하자, 그 사실을 여인은 동무에게 털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임신을 시켰든지. 이 그림은 바로 그 고민상담의 장면이라는 것이다. 양반은 이런 이유로 서 있는 여성에게 무슨 제안을 하였고, 그 여성에게 하회를 기다리는 중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이런 해석이라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꼭 그렇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고민에 빠진 여성과 돌담 밖의 남자 사이에 어떤 성적인 관계가 있었다고 추리하는 것은 그리 근거 없지는 않을 것이다. ●유래 오래된 ‘우물과 성의 결합´ 이제까지 본 단원과 혜원 두 그림 모두 우물이 중요한 제재고, 그 우물가에는 성적인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한데 우물은 원래 성적인 것이다. 물이 솟아오르는, 깊고 어두운 곳, 어딘가 ‘여성’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게다가 우물은 여성들의 공간이다. 우물과 성적인 결합의 연관은 역사적으로 그 유래가 퍽 오래된 것이다. 고려가요 ‘쌍화점’은 우물과 성의 결합을 노래한다. 드레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 우물의 용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우물 밖에 나며들면 하면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그 잔 곳같이 울창한 곳이 없다. 드레우물의 ‘드레’가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다. 한데 용두레우물이란 말이 있다. 만주의 지명 용정(龍井)을 풀면 곧 용드레우물이 된다고 한다. 용드레는 용두레일 것이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 긴 나무 속을 파서 만드는 물 푸는 도구가 용드레다. 아마도 드레는 용두레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드레는 또 ‘두레박’의 ‘두레’와 같을 것이다. 어쨌거나 물을 푸는 도구임은 분명하다. 여자가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우물로 갔더니, 우물에 사는 용이 여자의 손목을 쥔다. 이후의 구체적인 과정은 생략하자. 여자는 용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남에게 알려질까 걱정이다. 본 사람, 아니 본 물건은 두레박 밖에 없다. 그래서 하는 말인즉 밖으로 소문이 나면 너 두레박이 한 것이라 말하겠다. 뭐, 이런 뜻이다. 그 뒤의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그 잔 곳같이 울창한 곳이 없다.’는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우물의 용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모른다. 하지만 우물과 용은 긴밀한 관계가 있음은 사실이다.‘삼국사기’를 보면,‘자비마립간’ 4년(461) 여름 4월에 ‘용이 금성 우물 속에서 나타났다.’ 하였고,‘소지마립간’ 22(500)년 여름 4월에 ‘폭풍이 불어 나무를 뽑았으며 용이 금성의 우물에 나타났고, 서울에 누른 빛깔의 안개가 사방에 꽉 끼었다.’ 하였다. 이것은 어떤 자연현상을 두고 용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자연현상을 추리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는 매일반이다.‘삼국사기’의 기록이야 1000년 하고도 5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아주 옛 것이지만, 지금과 가까운 조선시대에도 이런 황당한 일이 있었다. 태종 18년(1418) 수군 첨절제사 윤하는 경기도 교동현 수영(水營)의 우물에 황룡이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수영 앞에 우물이 있는데, 수군이 물을 길러 갔더니, 허리가 기둥만 한 누런 색 용이 우물에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다. 분명 무엇을 보기는 본 모양인데, 그것이 과연 어떤 자연현상인지는 알 길이 없다. ●우물가에서 ‘용´을 만난 신덕왕후 우물 용을 이야기 하다가 말이 옆으로 샜다. 어쨌거나 우물은 용과 관련이 있고,‘쌍화점’의 여인은 우물의 용과 성관계를 맺는다. 한데 우물의 용은 아니지만, 용과 다름없는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다. 태조 이성계의 이야기다. 이성계의 젊은 시절, 사냥을 나갔다가 목이 말랐다. 돌아보니 우물이 있다. 해서 물 길러 온 젊은 아가씨에게 물을 청했더니, 달고 시원한 물을 한 바가지 떠 준다. 급한 마음에 입에 쏟아 부으려 하는데, 웬걸 물에 버드나무 잎이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잎사귀를 불면서 마실 수밖에. 목을 축인 다음 물었다. 왜 버드나무 잎을 띄웠느냐고? 답인즉 한창 목이 마를 때 물을 급하게 마시면 체한다고, 그러니 잎사귀를 불면서 천천히 마시라는 뜻이었단다. 얼마나 슬기로운가. 그제사 얼굴을 보니, 인물도 곱다. 당연지사 둘은 짝을 지었다. 이 여인이 바로 신덕왕후 강씨(康氏)다. 이성계는 뒷날 강씨의 소생인 방번과 방석을 사랑하여 왕위에 올리고자 했지만, 태종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그건 뒷날 이야기고, 이성계는 용상에 올랐으니, 강씨의 입장에서는 우물가에서 용을 만난 셈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입에 가끔 올리는 대중가요에 ‘앵두나무 처녀’란 노래가 있다.“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로 시작되는 노래 말이다. 우물가에서 처녀들은 서울에 관한 말만 듣고 모두 물동이와 호미자루를 던지고 서울로 달아난다.2절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동네의 총각도 역시 신부감이 달아난 서울로 달아나 버린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우물가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신호가 오가는 곳이다. 우물도 사라진 지금 그럴 일은 없어졌지만 말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풍류(風流), 바람과 물이 전하는 말

    풍류(風流), 바람과 물이 전하는 말

    설이 다가온다. 우리 민족은 또 다시 대이동을 시작한다. 길 위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먼 길이지만 부모님이 계시는 내 고향집에 들어설 때, 그리고 반가운 고향의 친구들을 만날 때 우리는 더없이 행복하다. 우선 들판에 들어서면 들을 지난 바람이 마치 여인네가 귓속말하듯 속삭인다. 어서와. 왜 이제 오는 거야?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우리가 어린 시절 뛰어놀던 동네 어귀의 당나무도 그윽한 표정으로 반가워하며 말한다. 잘 왔어. 보고 싶고 그리웠어…. 마치 우리가 찾아주지 않아 외로움의 나날을 보냈다는 듯이. 어디 그뿐인가. 얼어붙은 시내 역시 어서 와 얼음을 지치지 않겠냐고 끌어당긴다.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도,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나무의 감들도 신난다, 신난다 하고 외친다. 마을 어귀에 장승과 솟대라도 서 있다면 그 반가움은 절정에 이른다. 도시의 삶에 찌들은 우리의 꿈을 정화시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쯤 하늘의 구름도 미소 짓고, 동네 뒷산도 응석 부리듯 달려나온다. 그렇게 고향을 찾는 우리를 모두 반갑게 맞는다. 어머니가 달려나와 포옹해주듯이. 그때 우리의 마음은 더없이 행복하다. 그리고 축복을 느낀다. 축복! 그렇다, 우리는 귀향에서 더없는 신의 은총을 느끼는 것이다. 축복을 한자로 풀면 신에게 복을 빈다는 말이다. 영어로는 흔히 blessing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blessing은 생명의 피를 묻히거나 흘려 신성하게 한다는 말이다. 고대에 동물을 희생제물로 바쳐 제단을 신성하게 한 데서 유래한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서양의 어휘 중에 축복과 관계된 또 다른 단어로 celebration이 있다. 이 말은 오늘날에는 주로 찬양, 칭찬, 축제의식 등의 의미로 사용되지만, 그것의 어원인 라틴어 celebratus은 ‘자주 가다, 빈번히 가다, 종종 방문하다, ~에 늘 출입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celebration에는 우리가 어떤 장소에 자주 가거나 방문할 때, 그 장소는 물론 거기에 속한 사람, 동물, 식물 등과의 관계가 더욱더 깊어진다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축복은 먼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깝고 친밀한 관계, 길들여진 관계에서 온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난 음식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건 그 때문이다. 같은 보름달이라도 고향에서 보는 것이 더 정겨운 건 그 때문이다. 어렸을 적에 자주 가던 집과 동네와 숲들이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다주는 건 그 때문이다. 어릴 적 동무들이 그리도 반가운 건 그 때문이다. 따라서 바쁜 도시생활 속에서도 우리가 굳이 시골의 고향을 찾는 것은 단순히 부모님을 뵙기 위해, 동네 친척들을 만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어린 시절에 맡던 고향의 산과 들과 하늘과 냇가의 냄새와 향기를 맡기 위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외치는 그리움의 소리를 듣기 위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고향의 산과 들과 하늘과 강이 바로 나의 젖줄이었음을, 나를 키운 어머니였음을, 내 마음을 자라게 한 스승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곳이야말로 내가 나서 자란 곳임을, 그리고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곳임을, 아니 영원히 그 숨결에 잠들고 싶은 곳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널뛰기 ㅣ김준근ㅣ 기산풍속도첩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서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는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싶어 집을 떠난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금화 세 닢을 주며 말한다. “이걸로 양들을 사거라. 그리고 양을 몰고 다니며 세상을 마음껏 돌아다니거라. 우리가 사는 성이 가장 소중하고, 우리 마을 여자들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될 때까지….” 그 길로 산티아고는 세상의 보물을 찾아 집을 떠난다. 그리고 평생을 떠돌며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그는 깨닫는다. 자기 고향 마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물이라는 것을, 축복이라는 것을, 신의 은총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태어난 곳에 가서 죽기를 원한다. 원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여우도 죽을 때는 제가 태어난 곳을 향해 머리를 둔다고 하지 않던가. 나바호족 여인 매 윌슨 초는 강제 이주를 당해 정든 고향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애절한 시를 남겼다. 내가 사는 곳은 나의 희망과 염원이 있는 곳이다 내가 사는 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다 내가 사는 곳은 사후 나의 모든 것이 남아 있는 곳이다 내가 사는 곳은 내가 땅을 알 듯, 땅이 나를 아는 곳이다 하지만 새로운 땅은 내가 그를 알지 못하듯, 그 또한 나를 알지 못할 것이다 고향을 떠나는 순간 이방인으로, 나그네로 살 수밖에 없음을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축복의 근원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에게 축복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것은 우리의 고향과 가족만이 아니다. 우리가 쓰는 고향의 구수한 말과 사투리 또한 우리를 더없이 행복하게 한다. 아코마족 시인인 시몬 오르티즈는 인디언들이 그들의 언어를 잃어버리면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마을에서 자라면서 비가 축복이고, 선물이고, 상징이라는 것을 배웠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땅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나의 부족의 삶에 대해 이야기와 노래를 통해서 배웠다. 또 계절의 변화와 식물이 나고, 성장하고, 결실을 맺는 과정을 옥수수밭에서 배웠다. 자라면서 나는 땅의 존재를 느끼기 시작했고,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돌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삶이 계속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다. 저녁식사 후 아버지는 북을 치며 노래를 하셨고, 우리 아이들은 비와 사냥과 땅과 사람에 대한 주제에 맞춰 춤을 추었다. 우리의 언어에는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언어를 버리고 우리의 영혼을 노래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모국어―아코마족의 언어―에 그의 삶과 영혼이 담겨 있음을, 그것을 잃어버리고서는 삶은 더없이 공허한 것임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안다. 어머니 품에서 배운 우리의 말 속에는 어머니의 사랑과 우리의 꿈과 희망, 그리고 고향의 흙내음과 새소리, 바람소리가 담겨 있음을. 밤하늘의 별빛과 조상들의 뭇 이야기들이 우리 몸의 세포처럼 숨 쉬고 있음을.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말한다.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전체성이 결핍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오직 영혼을 통해서만 전체성을 획득할 수 있는데, 그 영혼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체성이란 나와 네가 결합된 것이다.” 나의 전체성에는 나의 고향 마을과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그곳의 하늘과 땅과 식물과 동물, 산과 강, 해와 달과 별 그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그 전체성을 회복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신의 은총이요, 축복인 것이다. 명절은 바로 그 축복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의례이다. 설에 고향에 가면 그 축복을 느껴보라. 부드러운 숨결로, 다정한 눈길로, 따스한 손길로, 무엇보다 갈급한 영혼으로 냄새를 맡아보라. 그리고 그 축복을 노래하라. 서정록_ 검은호수라는 인디언 이름을 가진 고대사 연구자입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 김지하 시인 등을 따라 한살림운동에 참여하기도 했고, 현재는 동북아를 중심으로 한 고대의 샤마니즘, 인디언의 문화와 정신세계 등에 심취해 있습니다. 듣기에 관한 세상의 모든 지혜를 담은 책 <잃어버린 지혜, 듣기>를 펴냈습니다. 2008년 1월
  • 중세를 여행하는 사람들/오정환 옮김

    2005년 중세사람들의 생활과 내면을 추적한 ‘중세유럽산책’을 펴낸 일본의 중세 사학자 아베 긴야가 이번엔 중세 서민 풍속사에 주목했다. 세계사 연표에 오르내리는 권력자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학 논의에서 늘상 괄호 밖 존재였던 서민들을 통해 중세를 새롭게 이해했다.‘중세를 여행하는 사람들’(오정환 옮김, 한길사 펴냄)이 그 산물이다. ‘중세 통(通)‘인 저자의 명성은 그대로 책의 신뢰로 이어진다. 중세 서양의 풍속자료를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는 데다 중세 서민층을 ‘정착’과 ‘이동’이라는 상반된 삶의 방식으로 나누어 재편한 시도가 새롭다. 중세 민중을 정착계층과 이동계층의 두 개 층위로 구분해 파악한 것이다. 이를테면 농민, 목욕탕 주인, 제분업자, 빵집 주인은 정착자의 세계에 속했고 집시, 거지, 직공 등은 방랑자의 부류에 들었다. 민중으로 뭉뚱그려져 있었으되 실상 전혀 다른 유형의 삶을 살았던 그들의 세계를 되짚는 과정에서 독자는 역사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관점을 체험하게도 된다. 성직자와 기사들의 그늘에 가려 존재감을 잃었던 중세 민초들의 삶이 그림처럼 생생히 재현됐다. 관리가 닭을 조세로 징수하러 농가를 방문했다가도 임산부가 있는 집에는 닭의 몸뚱이를 던져주고 갔다거나 나무껍질을 함부로 벗긴 자의 창자를 꺼내 나무에 감아둔 풍속 등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정보이다. 통행에 필요한 중세의 토목공사와 통행로에 만들어진 여인숙, 목로주점 등의 풍경을 상상하며 중세의 숨겨진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 페트라르카, 에라스무스 등 인문주의자들의 기록을 비롯해 쉼없이 인용되는 인문학적 사료들로 풍요로운 책읽기가 보장된다.1만 3000원. 특히 독일 중세사에 밝은 지은이는 그림형제의 독일설화집에서 중세의 또다른 면모를 발견하기도 했다.‘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양억관 옮김, 한길사 펴냄)를 함께 펴냈다. 설화집의 작은 모티프에서 출발해 중세 어린이들의 생활상을 그려낸, 역시 독특한 접근방식의 저작이다.1만 2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책꽂이]

    ●탐라문견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정운경 지음, 정민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18세기 우연히 제주에 머물렀던 지식인 정운경이 낯선 땅 제주의 문화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관찰한 기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온 표류민들의 기록을 특히 주목할 만하다.1만 3000원.●사랑에 빠진 세계사(치우커핑 지음, 유수경 옮김, 두리미디어 펴냄) 한 시대를 풍미한 역사적 인물과 예술가들의 사랑, 고대에서 근·현대까지 세계 각국의 사랑과 성 풍속을 에피소드별로 모았다.1만 2000원.●조선이 버린 여인들(손경희 지음, 글항아리 펴냄)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세종에서 성종까지의 기록에 등장한 하층민 여성 33인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왕비, 후궁, 기생이 아니라 가려져 있던 조선사회 하층민 여성 이야기란 점이 새롭다.1만 3000원.●천 개의 얼굴 천 개의 영혼(일리야 레핀 외 지음, 이현숙 옮김, 써네스트 펴냄) 19세기 러시아 회화의 거장 일리야 레핀의 걸작 100여편에 대한 해설. 작가의 생애, 창작활동, 예술관을 담았다.2만원.●차티스트 운동, 좌절한 혁명에서 실현된 역사로(김택현 지음, 책세상 펴냄) 선거법 개정 운동으로 인식되고 있는 차티스트 운동의 역사적 진행과정과 배경을 조명했다. 대표적 차티스트 지도자인 퍼거스 오코너, 윌리엄 러벳의 활동도 되짚었다.1만 2000원.●보헤미안의 파리(에릭 메이슬 지음, 노지양 옮김, 북노마드 펴냄) 예술의 도시 파리를 단순한 관광지로서가 아닌, 창조적 작업을 하는 장소로 활용하라고 제안하는 여행기. 파리의 어디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 창조적일지 친절히 귀띔한다.1만 2000원.●그래도 희망입니다(문규현 글, 홍성담 그림, 현암사 펴냄) 문규현 신부가 이해와 용서, 사랑을 주제로 쓴 25편의 짧은 글 모음. 홍성담 화백이 글에 걸맞은 따뜻한 그림을 그렸다.8500원.●문화재청 사람들의 문화유산 이야기(강신태 등 지음, 눌와 펴냄) 현직 문화재청 직원 23명이 알려지지 않은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들을 엮었다. 업무나 개성에 따라 문화재를 바라보는 현장의 시각들도 다양하다.1만 5000원.●마음 사전(김소연 지음, 마음산책 펴냄)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과 연관된 낱말 300여개로 복잡한 감정의 실체를 더듬었다. 행복과 기쁨은 어떻게 다를까. 시인이 간추린 다양한 마음의 빛깔들에 무릎을 치게 된다.1만 2000원.●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이유진 지음, 이매진 펴냄) 태양광, 풍력, 바이오가스, 유채기름 등으로 에너지 자립을 실현해가는 국내외 현장들을 방문했다. 녹색연합 에너지·기후변화 팀장인 저자가 석유고갈 시대의 대안을 모색했다.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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