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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풍 북상… 日 ‘방사능 대량유출’ 비상

    태풍 북상… 日 ‘방사능 대량유출’ 비상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에 태풍 비상령이 떨어졌다. 태풍 2호 ‘송다’가 일본 남부에서 북상하면서 30일 후쿠시마 원전 지역에 많은 비를 뿌릴 것이라는 기상 예보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호우를 동반한 태풍이 사고 원전을 강타할 경우 방사성 물질이 대량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태풍으로 인해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 쪽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강력한 태풍 2호가 29일 오전 일본 남부의 규슈지역에 상륙한 뒤 점차 북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많은 비를 뿌리고 있다. 태풍은 시간당 65㎞의 속도로 북상하고 있으며 태풍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은 30m, 순간 최대 풍속은 40m에 달하고 있다. 30일에는 서일본에서 동일본으로 이동해 번개를 수반한 폭우가 내릴 우려가 높다. 규슈지역인 가고시마현에서는 400㎜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지역인 도호쿠(동북부) 지역에도 80㎜ 의 강우량이 예상되면서 후쿠시마 원전은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는 사고 당시 수소 폭발 등으로 지붕이 날아가거나 벽이 무너진 상태여서 비와 바람에 노출돼 있는 상태다. 때문에 빗물에 쓸린 방사성 물질이 대량으로 바다에 흘러들 가능성이 높다. 원전 곳곳에 방사성 물질 오염수의 증가도 예상된다. 이에 도쿄전력은 29일 하루종일 각종 장비를 높은 곳으로 옮기는 한편 창고 등 각 건물 입구에 흙을 쌓는 등 침수에 대비했다. 각종 기자재가 태풍에 날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도 강화했다. 특히 이번 태풍이 우려스러운 점은 후쿠시마 원전이 태풍 피해를 받을 경우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태풍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바람이 불기 때문에 일본 지역에 상륙할 경우 방사성 물질을 한반도 쪽으로 실어나르는 동풍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상청은 태풍으로 인한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로 유입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이날 “태풍은 바람이 중심(태풍의 눈)으로 모이는 성질이 있고 일본을 거쳐 온다 해도 방사성 물질이 비에 녹아 한반도에 도달하는 양은 극히 적을 것”이라며 “일본에서 대기 배출량이 적어지고 있어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조선선비 ‘동경의 땅’에 당도하다

    “내가 그를 따라서 성에 들어서니 곧 상화의 집이었다. 높은 문은 우뚝 솟아 있고, 하얗게 칠한 담이 둘러 있었다. 당에 오르니 침상과 탁자가 많았는데, 붉은색 융단이 덮여 있었다. 마당의 섬돌은 모두 벽돌을 깔아 한 점의 흙도 없었으니 월중(越中)의 갑부인 것을 알게 되었다. 자리에 앉으니 상화가 나에게 집 안팎을 구경하자고 하였다. 담장이 둘러져 있고 이중벽이어서 사람의 마음과 눈을 놀라게 만든다. 정침(正寢)에 이르니 곧 동서에 있는 곁방에 은으로 만든 병을 벌여놓았는데, 몇 백개나 되는지 알 수 없었으며, 금수(錦繡)와 능라(綾羅) 같은 종류가 모두 이와 같았다.”(‘5월 5일 중국 선비의 집을 처음으로 방문하다’) 조선 후기 때 선비 최두찬이 지은 중국 강남(江南) 표류기 ‘승사록’의 한 대목이다. 최두찬은 1817년 5월 제주 대정현의 현감이 된 장인의 강권에 못 이겨 제주도까지 동행한다. 1년 동안 제주를 둘러 본 뒤 이듬해 귀향길에 오른 그는 도중에 풍랑을 만났고, 16일 동안 바다 위를 표류하다 우연히 중국의 강남 지역에 상륙하게 된다. 최두찬은 1818년 4월 8일~10월 2일, 표류부터 귀환까지의 일들을 매일매일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게 승사록이다. ‘승사록, 조선 선비의 중국 강남표류기’(박동욱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는 최두찬의 승사록을 알기 쉽게 풀어 쓴 중국견문기다. 제주도에 있을 때 지은 시편, 일행 50명과 함께 16일 동안 바다 위를 떠돌던 기억, 중국 닝보(寧波)에 닿은 뒤 보았던 풍속과 명승, 강남의 지식인과 문답한 필담, 가옥·의복·농사·무덤·배와 수레 이야기 등 최두찬의 시선에 포착된 당시 강남의 풍속과 풍경, 사람들의 이야기가 빼곡하게 담겼다. 당시 중국의 강남은 조선 사람들에게 동경과 미지의 땅이었다. 주원장이 금릉을 남경이라 개칭한 뒤 도읍으로 삼고, 이후 영락제가 북경으로 천도한 것이 1421년이었다. 명의 건국부터 북경 천도까지의 50여년 동안만 조선 선비들의 강남기행이 가능했다. 이 시기에 나온 기행물은 정몽주의 ‘강남기행시고’(江南紀行詩藁)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이후로는 공식적인 사행이 북경 인근을 벗어나 강남 땅을 밟는 경우가 없었다. 이런 까닭에 강남은 조선의 지식인에게 상상의 공간이었다. 최두찬은 강남에서 한 달 넘게 체류하며, 주로 저장성(浙江省) 지역의 풍물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아울러 한자(漢字)라는 공통 문자를 통해 강남의 선비들과 학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이들의 관심을 조선에 대한 호기심으로 확장시켰다. 2만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옛 도청 수문병 교대식 구경오세요”

    ‘경상감영’의 풍속이 재연된다. 경상감영은 조선시대 경상도를 관할하던 지방 행정의 중심으로 현재의 도청 격이다. 경북 상주에서 선조 34년인 1601년 대구로 이전했고, 이후 1910년까지 310년간 모두 253명의 관찰사가 근무했다. 대구시는 14일부터 10월 말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1시 30분부터 4시까지 중구 경상감영공원에서 경상감영 풍속 재연행사를 선보인다고 13일 밝혔다. 감영 정문 군사를 교대하는 수문병 교대의식을 비롯해 시각을 알리는 경점시보 의식, 감영 안팎을 순찰하는 순라군 활동, 군사들의 무예를 사열하던 교열의식 등이 펼쳐진다. 특히 수문병 교대의식에선 감영 군사와 취타대가 경상감영공원을 출발, 도심 동성로 일대를 한 바퀴 돈 뒤 정문으로 돌아와 의식을 마무리한다. 지역 명창의 판소리와 고전무용이 어우러진 민속 공연과 전통의상 입기 등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코너도 준비됐다. 또 월별로 성년식과 전통혼례, 과거제 재연 등 특색 있는 행사도 마련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관광객과 시민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목성 대적점’ 자세히 포착한 사진 공개

    ‘목성 대적점’ 자세히 포착한 사진 공개

    목성의 대적점(大赤點)을 보다 자세히 나타낸 우주사진이 최근 공개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Voyager 1)가 수집한 정보를 최근 다시 최신식 디지털 기술로 구현한 이미지를 공개했다. 특히 이 사진에는 진한색 타원형으로 나타난 ‘목성의 소용돌이’ 대적점이 보다 뚜렷하게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대적점은 17세기 천문학자들이 처음 발견한 이래 300년이 지난 지금껏 계속 존재하고 있는 소용돌이로, 최대 풍속이 시속 430만km에 달한다. 직경 2만4100여㎞인 이 폭풍은 지구 크기의 2배에 해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NASA는 “이 사진은 1979년 3월 4일 보이저 1호가 목성의 185만km 떨어진 지점에서 36분간 머물며 촬영 한 것”이라면서 “그 어떤 사진보다 대적점에서 벌어지는 복잡하고 다양한 대기의 움직임과 목성의 아름다움을 자세히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천문학계에 따르면 대적점이 이처럼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가스로 이루어진 목성의 특성 때문. 목성은 고체의 표면이 없기 때문에 지구처럼 태풍이 얼마 간 육지에 상륙한 뒤 에너지를 잃고 약해지는 현상이 일어날 수 없다. 사진=NASA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관광객 1000만 달성 릴레이 제언(4)] 관광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지창훈 대한항공 사장

    [관광객 1000만 달성 릴레이 제언(4)] 관광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지창훈 대한항공 사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외국인은 그야말로 이국인(異國人), 이방인(異邦人) 그 자체였다. 늘 낯설고 피하고 싶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도심 곳곳에서, 관광지에서, 그리고 비즈니스 현장에서 외국인은 우리 이웃으로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외래 관광객 1000만명 시대의 도래. 참으로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고 신이 절로 난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비약적인 발전상 가운데 한 가지를 꼽으라면 관광산업을 들곤 한다. 1968년에 외래 관광객 10만명을 돌파한 이래 2000년에 532만명, 2010년 880만명 등 어느 통계 수치보다 성장세가 가파르고 비약적이다. 이는 경제 발전과 함께 교통·통신·숙박시설과 같은 물적 관광 인프라를 갖추었고, 우리 국민과 관광업계, 정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나라 관광산업은 현재 안정적 성장 단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고도성장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관광산업의 체질 개선이 절실하다. 첫째, 우리만의 관광 콘텐츠를 최대한 많이 발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전국 방방곡곡에 수천년 전 선조들의 손길이 어려 있는 문화재들이 무수히 많고, 뚜렷한 사계절이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도 갖추고 있다. 서울만 하더라도 빌딩 숲 사이에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정원을 갖춘 고즈넉한 고궁이 있고,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산과 강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빼어난 자연환경도 갖췄다. 여기에 한국의 전통문화와 풍속을 경험할 수 있는 관광, 동계스포츠 체험 관광, 의료관광과 같은 차별화된 관광 콘텐츠를 갖춘다면 우리의 관광산업 경쟁력도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둘째, 인적·물적 관광 인프라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 우리 역사를 보면 ‘낯선 손님에게도 언제든지 사랑방을 내어주고 정성을 다해 모시는’ 친절 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외국인들은 우리의 친절 문화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외국어 구사 가능 시민이 증가하고 있는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친절 문화를 외국 관광객에게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아울러 실리 위주 관광객을 위한 중저가의 숙박시설은 물론 높아진 국격에 맞춰 고궁과 조화를 이루고 우리 고유문화와 잘 어우러진 고품격 호텔을 도심에 건립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정부 차원의 홍보활동을 더욱 강화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비자제도를 완화하고, 외국인 방문객이 많은 시설에는 통역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해 외국인들의 불편을 없애는 등 관광산업 육성 정책을 적극 시행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그동안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지만, 관광산업 분야는 아직도 성장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2010-2012 한국 방문의 해’를 계기로 ‘굴뚝 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인 관광산업을 도약시키기 위해 국민 모두와 기업, 정부가 힘을 합쳐서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고, 관광 인프라를 확대하고, 정책 지원을 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 美강타한 ‘지상에서 가장 빠른 바람’ 토네이도는

    美강타한 ‘지상에서 가장 빠른 바람’ 토네이도는

    앨라배마주 등 미국 중남부 지역을 덮친 토네이도가 엄청난 파괴력으로 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토네이도에 의한 사망자가 28일 오후(현지시간)까지 305명에 달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9일 204명이 숨지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앨라배마주를 찾아가 망연자실해 있는 주민들을 위로할 예정이다. 앨라배마주에서는 넘어진 나무가 송전선을 덮쳐 24만 5000가구에 전기공급이 끊겼다. 또 이 지역 브라운 페리 원자력 발전소의 전기 선로가 파손돼 가동이 중단되면서 비상 발전기로 원자로를 냉각하고 있다고 현지 당국이 전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지상에서 가장 빠른 바람’으로 알려진 토네이도의 발생 원인과 위력 등을 정리했다. ●토네이도는 무엇인가 바다나 평야에서 발생하는 깔때기 모양의 강력한 회오리바람이다. 성격이 다른 두개의 기단(공기 덩어리)이 만날 때 주로 발생한다. 토네이도는 물체를 튕겨 버리는 성질이 있으며내부 기압이 낮아 안에 들어간 물체를 위로 날려 버린다. ●왜 미 중남부에서 주로 발생하나 토네이도는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미 중남부에서 빈번히 만들어지는 것은 이 지역의 환경 조건 때문이다. 유희동 기상청 예보정책과장은 “(미 중남부 지역에는) 로키산맥에서 불어오는 차고 건조한 북서풍과 멕시코만에서 넘어오는 따뜻하고 습한 바람이 만나기 때문에 토네이도가 잘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토네이도의 위력은 토네이도의 크기와 위력은 천차만별이지만 일반적으로 초당 100~200m의 풍속을 나타내 태풍보다 빠르다. 보통 5~10㎞를 이동한 뒤 소멸하지만 300㎞까지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낸 토네이도는 1925년 3월 미주리주 등에서 발생한 것으로 747명이 숨졌다. 또 1974년 4월에는 모두 148개의 토네이도가 미 중부 등의 13개 주를 16시간 동안 덮쳐 330명이 죽고 5484명이 다쳤다. ●이번 토네이도가 강력해진 원인은 CNN 소속 기상학자인 션 모리스는 “이번 토네이도가 미국 역사상 가장 파괴력 있는 소용돌이로 기록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 국립 기상국 산하 폭풍예보센터가 비공식적으로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7일 하루 토네이도가 151개나 발생했다. 또 이달 들어 미국에서는 모두 900개 이상의 토네이도가 만들어졌다. 이에 대해 미국의 기상전문가인 댄 코틀로스키는 “동태평양 해역의 수온이 평년보다 0.5도 낮은 현상이 5개월 이상 지속되는 라니냐 현상이 폭풍우 활동을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씨줄날줄] 토네이도/박홍기 논설위원

    동화 ‘오즈의 마법사’의 배경은 미국 중부 캔자스주의 조용한 시골 농장이다. 어느 날 엄청난 회오리 바람은 주인공 도로시와 강아지 토토, 그리고 집을 통째로 휘감아 이상한 마법의 나라 오즈로 날려보낸다. 도로시와 오즈를 연결한 바람이 ‘토네이도’(tornado)다. 1939년 제작된 고전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역시 토네이도는 위협적이라기보다 무지개 너머 환상과 모험의 세계로 인도하는 낭만적인 매개체로 비춰졌다. 1996년 재난영화 ‘트위스터’는 토네이도의 가공할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캔자스주 아래 오클라호마주를 근거지로 몇분이라도 빨리 예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토네이도를 추적·연구하는 ‘스톰체이서’(stormchaser)를 다뤘다. 토네이도는 미국 중남부에서 주로 봄과 여름에 나타나고 있다. 연간 500~900개가 발생한다. 저기압 중심부를 향해 아주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반시계 방향의 강한 소용돌이 바람이다. 폭풍 가운데 가장 변덕스러운 데다 태풍과는 달리 수평방향보다 수직방향의 규모가 크다. 때문에 ‘이동성 선형풍(旋衡風)’이라고 일컫는다. 스페인어로 뇌우(雨)를 뜻하는 ‘트로나다’(tronada)가 어원이다. 토네이도 중심 부근의 순간 풍속은 초당 100~200m로 무시무시하다. 회오리 기둥의 지름은 대체로 200m 정도인데 3.2㎞나 되는 것도 있었다. 평균 속도는 시속 300~800㎞이다. 1931년 미네소타주에서는 117명을 실은 83t 객차를 휘감아 올렸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상상을 뛰어넘는 위력을 지녔다. 토네이도는 순간적인 엄청난 파괴력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 문희상 전 국회 부의장은 2007년 6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당시 정계개편과 관련해 순식간에 정치지형을 완전히 새로 짜는 ‘토네이도론’을 피력해 ‘토네이도 문’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미국 앨라배마·미시시피 등 6개주에 그제 37년 만에 가장 강력한 토네이도가 강타해 300명가량이 희생됐다. 앨라배마주에선 원자력발전소가 전력 공급 중단으로 가동을 멈추기도 했다. 피해지역은 쓰나미가 휩쓴 일본 후쿠시마·미야기·이와테현의 해안가 마을처럼 쑥대밭으로 변했다. 바람의 분노다. 피해지역엔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동일본 대지진에 이어 세계가 또다시 자연 재앙 앞에서 경악했다. 재난안전지대란 없다. 전세계가 함께 지구 환경을 지키며 재앙에 철저히 대비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해결책인 것 같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英 세기의 결혼식…손안에서

    英 세기의 결혼식…손안에서

    스마트폰의 등장이 고풍스러운 왕실 결혼식의 풍경도 180도 바꿔놓을 전망이다. 오는 29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열릴 윌리엄 왕자와 신부 케이트 미들턴의 웨딩 마치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3D 영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30년 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의 결혼식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새 풍속도다. 웨스트민스터 성당이 지난 1년 6개월 동안 개발한 3D 앱을 이번 주말 출시할 예정이라고 더타임스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광부의 손녀에서 로열패밀리’로 안드로이드폰, 아이폰, 아이패드 사용자들은 신부 미들턴이 성당에 발을 내딛고 제단에 오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다. 윌리엄 왕자 부부가 결혼증명서에 서명하는 장면 등 텔레비전 카메라가 금지된 구역까지 샅샅이 포착한다. 이 앱은 성당이 기록 보관용으로 만든 것으로, 왕실 신부들이 부케를 ‘무명용사의 비’에 올려놓게 된 전통 등 왕실 결혼식 역사와 사진, 주요 하객들의 프로필, 성당 내 명소에 대한 정보까지 두루 갖췄다. 세기의 결혼식은 각국 정상 50명을 포함한 1900명의 하객(각국 정상 50명 포함)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진다. 예식날 영국 전체 인구 3분의1이 런던에 운집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주요 TV방송이 생중계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20억명의 시청자가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9%가 윌리엄 왕자가 아버지 찰스 왕세자 대신 바로 왕위를 이어받았으면 좋겠다고 답한 데서 보듯 새 왕실 부부에 대한 인기도 치솟고 있다. ‘광부의 손녀’에서 ‘로열 패밀리’에 합류하게 된 케이트 미들턴에 대한 관심은 날로 뜨겁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미들턴은 전 세계 왕실 역사상 세 번째로 아름다운 여성에 올랐다. 데이트 웹사이트 ‘뷰티풀피플닷컴’이 12만 70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미들턴은 윌리엄 왕자의 어머니인 다이애나비를 4위로 밀어내고, 고(故)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 요르단 라이나 공주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세기의 결혼식에 등장할 드레스를 제작할 디자이너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다. 영국의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라 버튼이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데일리메일은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신부 미들턴이 직접 르네상스풍의 드레스를 디자인했다고 보도했다. 허핑턴포스트는 미들턴이 디자이너 소피 크랜튼의 의류 브랜드 ‘리베룰라’의 드레스를 이미 점찍었다고 보도, 해당 사이트가 다운되는 소동까지 일었다. ●‘세계의 연인’ 다이애나비 능가할까 다이애나비의 사파이어 약혼반지가 미들턴의 손에 끼워지던 순간부터 호사가들은 미들턴이 영국의 최대 이미지메이커였던 시어머니 다이애나비를 넘어설지 논란 중이다. 19살 어린 나이로 찰스 왕세자와 결혼한 다이애나비는 36살이던 1997년 파파라치에 쫓기다 연인과 함께 자동차 사고로 즉사했다. 미들턴의 전기 작가인 클라우디아 조지프는 “부모의 이혼을 겪은 다이애나비는 식장에 들어설 당시 상처받기 쉽고 불안한 캐릭터였으나, 광산 노동자 계급에 뿌리를 둔 케이트는 안정적인 가정에서 현대적인 교육을 받고 자라 성숙함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다이애나비와 달리 미디어에 휘둘리지 않는 당돌함도 지녔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테마로 본 공직사회] ② 유연 근무제 운영 실태와 과제

    [테마로 본 공직사회] ② 유연 근무제 운영 실태와 과제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은 공무원 사회를 대변해 온 상징어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 오랜 풍속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업무 효율 극대화를 위해 근무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공무원 유연 근무제’가 관가의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해 8월 제도가 본격 시행된 이후 중앙 행정부처를 중심으로 소리 없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테마로 공직사회 3회는 출장 문제를 다룬다. ●시행 4개월… 지방은 참여 저조 최근 행정안전부가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 전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유연 근무제 운영 실태 분석 결과(지난해 12월 말 기준)에 따르면, 중앙 부처 공무원 14만 5000명 가운데 3.8%인 5447명이 이 제도를 활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행안부 관계자는 “제도 도입 4개월여 만의 상황임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제도가 정착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근거리 출퇴근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유연 근무제의 활용 요구가 적은 지방 공무원들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이용률이 낮았다. 24만 3000명 가운데 0.2%인 525명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행 유연 근무제는 근무 형태·시간·장소에 따라 모두 7개 유형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주 15~35시간 근무하는 시간제 근무 ▲1일 8시간 근무하되 출근 시간을 자율 조정하는 시차 출퇴근제 ▲주 40시간을 근무하되 1일 근무 시간을 자율 조정하는 근무 시간 선택제 ▲주 40시간을 5일 미만 근무로 채우는 집약 근무제 ▲별도 계약에 따른 프로젝트를 완료하면 근무 시간이 인정되는 재량 근무제 등이다. 집, 스마트 워크센터 등 근무 장소가 아예 다른 재택근무제, 원격 근무제 등도 포함된다. ●국세청 시차 출퇴근 1108명 ‘최다’ 일선 공무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유연 근무제 형태는 단연 시차 출퇴근제였다. 전체 이용자 가운데 90.5%인 5409명이 ‘오전 9시 출근-오후 6시 퇴근’의 기존 근무 시간 대신 사정에 따라 출퇴근을 한두 시간 당기거나 늦추는 방식을 선택했다. 시행 초기여서 부처별 상황에 따라 이용률은 차이가 났다. 국세청이 1108명으로 이용자가 가장 많았다. 이어 지식경제부(536명), 해양경찰청(510명), 농림수산식품부(503명), 교육과학기술부(367명) 등의 순이었다. 국세청, 지경부 등은 소속 직원 수 자체가 많아 상대적으로 활용도가 더 높았으며, 농식품부 등은 부처 차원에서 적극 권장해 참여율이 높아진 경우다. 재택근무가 왕성하게 활용되는 곳도 있다. 대면 보고 대신 심사나 심판 업무가 많은 특허청의 경우 전체 심사관의 10%를 포함해 모두 90여명이 이를 신청했다. 최근 장관 지시로 본부 국별 1명, 소속 기관 규모별로 1~2명 이상 재택근무 원칙이 세워진 고용노동부도 64명이 집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통계 자료를 분석하거나 기획 단계의 업무 등을 위주로 재택근무가 이뤄지고 있으며, 앞으로 이용률은 점차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별 이용률을 비교하면 남성 공무원이 63.6%로, 36.4%를 차지한 여성의 비율을 크게 앞질렀다. 조사를 진행한 행안부 공효식 복무담당관은 “유연근무제는 여성 공무원들의 활용도가 압도적으로 높을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깬 결과”라면서 “7대3 정도인 전체 남녀 공무원 비율을 감안하면, 남녀가 고루 활용하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별도 분석은 없었으나 비공식적으로 해오던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퇴근 시간 변경 등을 남성 공무원이 상대적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연 근무 85%가 6급 이하, 기능직 유연 근무제에 따른 만족도는 전반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행안부가 유연 근무제 참여자 68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5.7%가 직무와 조직에 대한 만족도가 향상됐다고 답했다. 66.4%는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으며, 스스로 정한 시간 내에 업무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표 덕분에 67.1%는 업무 집중도도 좋아졌다고 응답했다. 여성가족부 여성인력개발과는 전체 구성원 8명 가운데 절반인 4명이 시차 출퇴근을 하고 있다. 유연 근무가 시작된 지난해 8월 이후 한동안 불편함이 없지는 않았다. 임영미 과장은 “시차 출퇴근자들의 출근에 맞춰 회의시간을 조정하고, 전날 퇴근 전에 미리 보고를 받아 놓는 등 업무 패턴의 변화는 불가피하다.”면서도 “관행적인 업무 틀을 벗어나 적응하고 나면 유연 근무자들의 업무 태도는 대부분 이전보다 오히려 적극성을 띠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출퇴근 시간 조절로 육아 문제 등의 스트레스 요인을 해결하는 만큼 업무 집중도는 높아지게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제도가 확산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무엇보다 5급 이상 관리자급의 이용도는 앞으로도 크게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들이다. 실제로 전체 유연 근무자 가운데 85.2%는 6급 이하와 기능직으로 집계됐다. 교과부의 한 사무관은 “맞벌이인 데다 아이가 어려 제도를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면서도 “직급 상관없이 취학 전 아동을 둔 맞벌이 부부에게는 반강제적으로 신청하게 하는 규정이 있지 않고서는 부하 직원들에게 먼저 퇴근하겠다는 말을 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아쉬워했다. ●제도 활용실적 업무평가 반영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까봐 내심 찜찜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에 행안부는 각 행정기관장이 유연 근무를 신청한 공무원의 보수나 승진, 근무 성적에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개정안을 마련하고 구체안을 보완해가기로 했다. 한경호 윤리복무관은 “제도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각 부처 업무 평가에 유연 근무제 활용 실적을 평가 지표로 반영했고, 내년부터는 지자체 합동평가 및 자체평가 등에도 이에 대한 평가 지표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음 달부터는 중앙부처, 지자체 복무운영 담당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유연 근무제에 대한 집중적인 홍보교육도 전개할 방침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한국서 한복 푸대접… 국격 논할 자격 없다”

    “한국서 한복 푸대접… 국격 논할 자격 없다”

    “자국 문화를 멸시하는 나라에서 국격을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한복의 중요성과 전통복식 예절을 학교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 국내 전통의상 신지식인 1호이자 전통한복기능장 1호인 한복 디자이너 백애현(52)씨는 “신라호텔의 한복 출입금지는 땅에 떨어져 있는 한복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의식주 중에서 한옥과 한식은 세계화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마당에 왜 한복만 천대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백씨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땅에 떨어진 한복의 위상을 말할 때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난 38년간 한복문화 선구자로 앞장서온 백씨를 14일 오후 서울 역삼동 백애현 한복연구소에서 만났다. 천시받는 한복에 대해 할 말이 많았는지 백씨는 2층 양옥건물인 연구소 대문 밖까지 나와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라호텔 사건을 듣고 기분이 어땠나. -뉴스를 보고 한동안 넋이 나갔다.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쫓겨나다니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한복 디자이너들은 좋은 자리에 갈 때는 일부러 한복을 입고 나간다. 우리 전통의상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정말 아름다운 옷이라고 칭찬하고 감탄했는데 이런 일은 정말 예상 밖이다. 만일 같은 일이 외국 호텔 체인에서 벌어졌다면 당장 우리나라에서 철수하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호텔 입장처럼 실제로 한복이 부피가 커서 옆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인가. -전혀 아니다. 옛날처럼 많이 퍼지는 항아리 치마도 아니고. 내가 매일 입고 생활해 봐서 안다. 비단으로 만든 소재고 해서 조심히 다뤄야 하는 등 불편함은 있을지 몰라도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이 대목에서 백씨는 일어나 입고 있던 검정색 모시 한복 치마를 펄럭이며 보여줬다). →국내에서 한복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 같은데, 직접 체감하는 한복의 위상은. -기본적으로 한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우리 전통의상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도 만연해 있다. 격식을 갖추는 호텔에서 트레이닝복을 금지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한복은 우리나라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최고의 격식을 갖춘 옷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국민들은 ‘한복은 나와는 상관없는 옷’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이 문제라고 보나. -우리 것을 지키고 소중하게 여기는 의식이 부족하다.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교과서에 쓰는 마당에 우리는 이미 우리가 갖고 있는 아름다운 문화재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일본의 기모노나 중국의 치파오, 베트남 아오자이 등은 아직도 많이들 입는다. 외국에 나가 보면 일식당이나 중식당 등에서는 자국 전통의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의상 역시 문화의 일종이고 알릴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결혼식 때나 형식적으로 입는 옷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에게 한복의 의미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한국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복을 입는다. 태어나자마자 입는 배냇저고리, 돌 때 입는 한복, 또 중요한 행사인 결혼식과 회갑잔치 때도 한복을 입는다. 마지막으로 죽으면서 관에 들어갈 때 역시 한복(수의)을 입는다. 한복은 우리 삶과 굉장히 밀접하다. →일본은 젊은이들이 단체로 기모노를 입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안 되는 이유가 뭔가. -일본 젊은이들은 성년식 때 단체로 기모노를 입고 이 옷에 맞는 예의범절을 배운다. 우리나라는 성년식날 한복 입으면 뉴스로 나온다. 너무 잘못된 문화다. 한복은 그 자체뿐만 아니라 입는 법, 입고 절하는 법 등 그에 맞는 예의범절이 있다. 이런 것을 어렸을 적부터 교육해야 하는데 등한시해 왔다. →거리감을 없애는데 교육이 중요하다는 뜻인가. -그렇다. 한복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자리잡게 하는 기본이 교육이다. 몇년 전 교육과학기술부에 찾아가 항의한 적이 있다. ‘어떻게 교육과정 안에 우리 전통의상에 대한 내용이 없을 수 있느냐. 한복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예절을 정규 교과과정에 넣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깃, 고름, 마고자 이런 단어도 생소해한다. 학교 교육에서 책임져야 한다.’ →38년간 한복 대중화에 힘쓰셨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한복 대중화와 보급을 위해 해 왔던 노력, 정부의 정책 등이 매번 연속성 없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안타까웠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한식당의 종업원들이 입을 수 있는 개량화된 한복을 개발해 손수 100벌을 만들어 전시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뒤로 끝이다. 정부 관계자나 사람들 모두 아름답다, 훌륭하다 말뿐이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1990년대 중반에 문화체육부에서 주관해 매월 첫째주 토요일을 ‘한복입는 날’로 지정했던 적도 있다. 이마저도 지금은 잘 시행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도 한복이 점점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아쉽다. 결혼식 예단을 준비하면서 가장 아깝고 후회되는 것이 한복을 맞추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국내 전통의상 연구기관의 현실은 어떤가. -연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실정이다. 재정지원도 열악하다. 특히 복식학과가 있는 대학이 별로 없다. 의상학과에서는 4년간 공부하고 졸업해도 한복을 한벌 제대로 짓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에서도 별 관심이 없다. 스스로 6년 동안 전국을 돌면서 한복과 수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책을 썼다. 책을 내고 나서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가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을 개인이 한다고 하더라. →한복은 오히려 외국에서 반응이 좋지 않은가. -2003년 뉴욕에서 한·미동맹 50주년을 기념하는 초대전을 했다. 당시에 김기창 화백의 ‘봉래산 장생도’, 김홍도·신윤복 화백의 풍속화 등을 그려 넣은 한복을 선보였는데 외국인들의 극찬을 받았다. 외국 사람들은 한복을 보면 감탄을 한다. 선이 곱고 저고리와 치마의 색 화합도 너무 아름답다고 한다. →오히려 국내에서 푸대접 받는 한복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일 중요한 것은 한복과 한복예절이 교과서에 들어가 어릴 적부터 한복에 대해 배워야 한다. 또 성년식 같은 때에 우리 전통의상을 입고 예절을 배우는 등의 행사가 정착돼야 한다. 이런 교육이나 행사를 어느 특정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글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외규장각 도서는 국보급… 세계기록유산 등재 가능”

    “외규장각 도서는 국보급… 세계기록유산 등재 가능”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죠. 이것조차 20년 동안 각계의 노력이 있어서 겨우 가능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더욱 지속적이고 더욱 끈질기게 반환 요구를 펼쳐야 합니다.” 지난 2월 문화재청장에서 물러난 이건무(64) 용인대 문화재대학원장은 오는 14일 한국에 들어오는 외규장각 도서를 ‘절반의 성공’으로 규정했다. 불과 두달 전까지 외규장각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룬 그다. 미진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 앞으로 해야 할 과제 등이 더욱 크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11일 서울 상도동 한 찻집에서 만난 이 원장은 “독도 문제에서 흔히 쓰이는 개념인 ‘실효적 지배’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외규장각 도서는 실질적으로 우리의 것이 명백하며, 병인양요 시기의 약탈품이라는 사실이 국제적으로도 분명한 만큼 우리가 잘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외규장각 도서는 국가와 국민 모두의 문화재라는 입장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연구자의 관점에서 학술 자료로만 접근한다면 우리가 국민적 열망 속에 이를 지켜 낼 수 있는 힘도 그만큼 약해집니다. 전문적 지식이 없더라도 누구나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무궁무진한 가치를 알리고 전시도 늘려야 합니다.” 이 원장과 함께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둘러싼 ‘쟁점’ 10가지를 짚어 봤다. ① Q. 외규장각 도서 가치는. A. 국보급 요즘으로 치자면 정부 영상기록물이나 마찬가지다. 세밀한 그림이 있고, 그에 대한 꼼꼼한 기록을 담아 놓았다. 조선 왕조의 우수한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정보 자료다. 예컨대 당시의 복식이나 왕릉 조성 과정·공법 등을 알 수 있다. 역사 속 어느 나라, 어떤 왕조에서도 볼 수 없는 소중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학문 연구자료로서의 가치는 물론, 그 자체가 이미 국보급 문화재이다. ② Q. 국보 지정은 가능한가. A. 어려울 듯 소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보로 지정하는 것은 내부적으로도 법적 논란이 일 수 있다. 프랑스와 외교적 논란도 예상된다. ③ Q. 그렇다면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A. 가능 개인적으로는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미 2007년 조선왕실의궤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지 않았나.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④ Q. 임대 조건은. A. 5년마다 갱신 우리 정부는 조건 없는 반환을 원했으나 아쉽게도 좌절됐다. 5년마다 임대 계약을 갱신하는 형식의 영구 임대다. 반환이 아닌 임대, 그것도 5년마다 프랑스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지라 자존심이 상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중요한 문화재를 일단 확보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각도로 반환 요구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⑤ Q. 대여를 반환으로 바꿀 가능성은. A. 끈질긴 노력 필요 독도의 영토 분쟁을 시도하는 일본에 맞서는 것은 1회적인 이벤트나, 또 다른 독도 개발 같은 것이 아니다.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높이는 방법은 다른 나라 국민들, 세계 지성에 독도의 역사, 현재 등을 정확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외규장각 도서도 마찬가지다. 외규장각 도서가 어떻게 프랑스로 가게 됐는지, 대한민국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문화재인지,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반환을 염원하는지 등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지속적이고 아주 끈질기게…. ⑥ Q.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 A. 좀 더 많은 국민이 볼 수 있게 이미 서울대 규장각 수장고에 조선왕실의궤가 많이 있다. 조선 왕실의 풍속, 행정, 건축, 미술 등 풍부한 학술적 가치를 담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는 더욱 많은 국민들이 직접 누리고, 감동하도록 하는 것이 최고의 활용이다. 이번에 돌아오는 외규장각 도서를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당연하다. 7월부터 중앙박물관에서 외규장각 도서 특별전이 열리는데 좀 더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전시해야 한다. ⑦ Q. 다른 문화재 ‘볼모론’ 진실은. A. 어불성설 2015년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외규장각 대신 우리의 다른 문화재가 볼모로 잡힌다는 얘기가 있는데 어불성설이다. 외규장각과 비슷한 가치의 다른 문화재와 바꾼다는 등가 교환설도 낭설이다. 2015~2016년 상징적으로 외규장각 도서 일부가 프랑스로 건너가 전시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와전된 것 같다. ⑧ Q. 문화재 해외 유출 실태는. A. 주먹구구식 파악 약 12만점 정도가 해외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솔직히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 실태 파악이다. 외국 박물관 수장고를 낱낱이 들여다보기 어려우니…. 유출 경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것도 난관이었다. 약탈 문화재인지, 합법적 거래를 통해 나간 것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막혔다. 예전에는 개인들이 선물로도 많이 줬으니까…. 변명하자면 문화재보호법이 만들어진 지 50년밖에 되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⑨ Q. 앞으로 대응 전략은. A. 투 트랙으로 다음 달 문화재청에 해외문화재 환수를 전담하는 부서가 신설될 예정이다. 내가 있을 때 예산 등을 확보했다. 그동안 기존 국제교류과 1.5명 정도가 담당하던 일을 전담 부서가 생김으로 해서 더욱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진행이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해외 문화재 환수재단’ 같은 것을 만들어 민간이 주도하되,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투 트랙(two track) 방식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10 Q. 외국은 유출 문화재 어떻게 다루나. A. 佛·伊는 돌려받아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에 빼앗긴 문화재를 모두 돌려받았다. 당시 1870년 보·불 전쟁 때 프러시아가 약탈한 것까지 소급해 반환받았다. 이율배반적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자국이 보유한 문화재를 해당 박물관에 ‘장기 대여’ 하는 것을 조건으로 지난해 1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 미국 각지의 박물관으로부터 총 96점의 문화재를 돌려받았다. 국력의 크기에 비례하는 측면도 있지만 당장은 민·관이 함께 힘을 모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절실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봄소풍 갈래? 아니 ‘방콕’할래!

    봄소풍 갈래? 아니 ‘방콕’할래!

    1일 오후 1시 서울 잠실동 롯데월드. 실내 놀이동산을 찾은 고현송(40·여)씨가 여섯 살 난 딸과 회전목마에 올랐다. 밖은 영상 13도,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쬔다. 산수유·개나리가 싱싱한 자태를 뽐내고, 사월의 나무꽃 목련엔 봉오리가 생겼다. 기자가 “날도 좋은데 왜 실내공원이세요.”라고 묻자, “걱정돼서요.”라는 답이 바로 나온다. “아이가 놀이공원 가자고 졸라서 오긴 왔는데 방사능 때문에 밖으로 나가기가….” 찜찜하고 걱정된다는 투다. 같은 시간 실외 놀이동산인 매직 아일랜드. 무엇과도 바꾸기 싫은 찬란한 봄날이지만 한산하다. 김태형 롯데월드 홍보팀 계장은 “방사성물질 검출 이후 입장객이 크게 줄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실내 놀이기구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방사능 공포가 봄철 풍속도를 바꿔놓고 있다. 동물원 소풍을 계획했던 유치원은 실내 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렸고, 눈부신 사월을 만끽하려던 등산객들은 속속 등산계획을 취소했다. 특히 방사능 공포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진 어린이들과 임신부들은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 등촌동의 E유치원은 최근 이달 둘째 주에 가기로 한 봄소풍 장소를 서오릉에서 ‘별난물건박물관’으로 바꿨다. 연일 유치원으로 걸려 오는 원생 부모들의 걱정전화 때문이다. 유치원 관계자는 “날씨가 좋아 야외에서 게임도 하고 맑은 공기도 쐬려고 장소를 골랐는데 방사능 때문에 학부모님들이 걱정을 많이 해서 실내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개포동의 K어린이집도 이달 둘째 주로 계획한 봄소풍을 2주 뒤로 미뤘다. 해마다 동물원으로 갔던 장소도 박물관이나 실내 놀이공원으로 바꿀 계획이다. 임신부들은 ‘먹는 것부터 숨쉬는 것까지’ 모두 걱정이다. 이달 말 출산 예정인 주부 최진숙(35)씨는 “예정 일이 얼마 안 남았는데 혹시나 밖에 나갔다가 방사성물질을 들이마실까봐 집에만 있다.”면서 “매스컴에서 생선이 위험하다길래 얼마 전부터 생선을 일절 안 먹고 있다.”고 말했다. 산부인과를 찾는 임신부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울 방배동 H산부인과 직원은 “하루 40~50명 내원하는데 방사능 얘기뿐”이라고 전했다. 주말에 예고된 비소식은 설상가상이다. 시민들은 “공기도 모자라 물까지 오염되면 방사능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라며 불안감을 나타냈다. 임신 8개월 차 주부 김은희(33)씨는 수돗물에 섞인 방사능을 우려해 먹는 물을 모두 사 먹는 생수로 바꿨다. 김씨는“일본 원전사고 이후에 가장 걱정되는 건 대기 노출보다도 물과 먹거리”라면서 “생수 중에서도 반드시 제주도에서 온 것만 사 마신다.”고 말했다. 서울 쌍문동 S유치원 관계자는 “방사능 때문에 원아들 건강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아직 교육청에서 아무 공문도 없고 해서 별다른 대책은 세우지 않고 있다.”고 걱정했다. 윤샘이나·김소라·김진아기자 sam@seoul.co.kr
  • 中건설중 원자로 ‘전세계 절반’…사고땐 한국 ‘방사능 직격탄’

    中건설중 원자로 ‘전세계 절반’…사고땐 한국 ‘방사능 직격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 및 방사능 누출 사고로 지구촌이 원전 공포에 휩싸인 가운데 무서운 속도로 건설되고 있는 중국 원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지리적 특성상 편서풍을 타고 한국과 일본으로 빠르게 방사능이 확산될 수 있다. 한반도에 직격탄이 되는 것이다. 이를 감안할 때 한·중·일 3국 간 협의채널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해 말 현재 7개 원전에서 13기의 원자로를 가동 중인 중국은 현재 10GW 수준인 원전 발전 용량을 2020년 86GW까지 높인다는 계획 아래 원전 건설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中 국무원, 34기 원자로 건설 계획 비준… 25기 이미 착공 20여개 원전의 34기 원자로 건설 계획에 대해 국무원이 비준을 마쳤고, 이 가운데 25기를 이미 착공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원자로 2기 가운데 하나는 중국에 세워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원전은 대부분 동남부 연안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이미 가동 중인 원전 모두 동부 연안에 세워졌고, 랴오닝성에서부터 산둥·장쑤·저장·푸젠·광둥·하이난성과 광시좡족자치구까지 빈틈없이 원전이 들어설 계획이다. 동부 연안은 인구가 밀집해 있는 데다 경제성장을 이끄는 핵심 지역이어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중국으로서는 치명적 상처를 입게 된다. 내륙의 지방정부들도 앞다퉈 원전 건설에 뛰어들고 있다. 장시, 후난, 후베이성에 이어 지난해 안후이, 쓰촨, 허베이성 등도 중앙정부에 원전 건설 비준을 신청했다. 낙후된 중서부를 동부 연안과 보조를 맞춰 발전시키려는 중앙정부의 ‘서부대개발’ 욕구와 맞물려 원전의 서진(西進)은 계속될 전망이다. ●사용후 핵연료봉도 골칫덩이 될 듯 2003년 후진타오 주석 체제 등장 이후 자주창신과 혁신을 강조해온 중국은 원전에서도 독자기술 확보에 매달리고 있다. 4세대 원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지금까지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도 과감하게 채택하고 있다. 서해를 가운데 놓고 군산과 마주 보는 산둥성 스다오완(石島灣)에 건설 중인 2기의 원자로가 대표적이다. 이 원자로는 핵연료봉을 사용하는 기존 원자로와 달리 흑연 보호막에 둘러싸인 당구공 모양의 핵연료 덩어리 수십만개를 사용한다. 자갈을 깔아 놓은 모양이라는 뜻에서 ‘페블베드 원자로’라고도 불린다. 냉각 방식도 냉각수를 사용하는 기존 원자로와 달리 헬륨가스를 사용하는 고온가스 냉각형이다. 중국은 이 원자로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몇 년 안에 같은 성격의 원자로 수십개를 건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용후 핵연료봉 문제도 골칫덩이로 부상할 전망이다. 원전이 연간 1GW의 발전용량을 생산해 내기 위해서는 핵연료봉 25~30t이 필요하다. 지금도 연간 최소 250t의 사용후 핵연료봉이 쏟아지고 있지만 2020년부터는 2400여t씩 쌓이게 된다. 엄청난 규모의 재처리 시설이 필요한 것은 물론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누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물론 완벽한 시공과 안전한 관리를 장담하고 있다. 중국광둥원자력발전그룹의 안전 부문 리징(李靖) 사장은 “중국의 원전 설계 기준은 매우 엄격하다.”면서 “중심 부분 최대 풍속이 초당 50m 이상인 초대형 태풍과 진도 8 이상의 지진이 동시에 덮쳐도 끄떡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실제 중국 정부는 1970년대 수십만명을 매몰시킨 탕산(唐山) 대지진을 우려해서인지 허베이성에는 아직 원전 건설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국 최대 원전인 광둥성 선전의 다야완(大亞灣) 원전에서 지난해 두 차례 방사능 누출 의혹이 제기되는 등 중국에서도 방사능 누출 사고가 민감한 주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中원전 안전한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CCTV 등 관영 언론들은 중국 내 원전의 안전실태를 집중 점검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일본 대지진 이후 신규 비준을 중지하고,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원전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에 착수했다. 일각에선 중국이 원전 건설과 관련해 ‘속도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3일 안에 방사능이 마치 황사가 몰아치듯 한반도를 덮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중국 내 원전의 안전실태에 대한 한·중 간 협의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이유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정병국 장관 국내·외 ‘현장 행정’

    정병국 장관 국내·외 ‘현장 행정’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취임 이후 달라진 문화부 풍속도 가운데 가장 앞세울 만한 것은 이른바 ‘대국민 업무보고회’다. 문화부 청사에서 갖는 천편일률적인 기존 업무보고 대신 현장에서 업계, 학계 등의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정부 정책을 설명하고, 정책 수용자들의 의견을 듣겠다는 정 장관의 뜻에 따라 이뤄졌다. 지난달 10일 콘텐츠 분야를 시작으로 예술·문화·미디어·저작권·관광·체육·도서관 정책 분야 보고회가 쉴 틈 없이 진행됐다. 정 장관의 이런 행보는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정치인 출신 장관의 이벤트성 행사가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정책 수용자들의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긍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보고회에서는 정책 담당자로서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다양한 발언들이 쏟아졌다. 이는 한편으로 그간 정책 담당자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데 다소 소홀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정 장관은 평소 지론인 ‘현장 행정’의 지평을 해외로까지 넓힌다. 호주와 네덜란드, 벨기에, 미국 등의 해외 문화 홍보원을 방문해 대륙별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한다. 이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도 병행할 생각이다. 정 장관은 “문화원은 해외 문화 홍보의 전초기지”라며 “전초 기지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모색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제주도, 마구잡이 올레길 개발 제동

    제주도가 무분별한 ‘올레길’ 개발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제주 올레길 열풍으로 제주 지역에서는 동네마다 앞다퉈 올레길을 개설하는가 하면 한라산 둘레길, 용천수길, 유배길 등 갖가지 올레길이 개설되고 있다. 이에 따라 도는 ‘올레길 친환경 관리 지침’을 마련, 자연과 생태계를 보호하면서 인공적인 공법과 재료 사용을 최소화하고 작고 편안하지만 수익도 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준은 경관과 생태환경을 살려 자연 속의 생명을 배려하고, 주민의 풍속을 존중하며, 역사·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것. 또 느림의 미학으로 자연 치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공정 여행의 원칙을 지키면서 토착 주민의 경제적 이익 증진에도 도움이 되도록 했다. 탐방로의 넓이와 높이, 안내 표지, 토양 침식 방지 시설물, 편의시설, 흙길 복원 방법 등에 관한 표준도 제시했다. 올레길을 통한 지역 활성화 방안으로는 제주 고유의 음식인 빙떡 만들기, 전통 뗏목인 테우 체험, 해녀 공연 등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도는 올레길을 개발하고자 할 때는 행정시 전담부서와 사전에 협의하도록 하고, 이를 지키지 않은 단체 등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도는 올레길 행정지원 실무진을 운영해 전문가와 탐방객, 주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개선 방안도 마련할 예정이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불안한 일본인들, 한국으로 몰린다

    불안한 일본인들, 한국으로 몰린다

    잇따른 지진과 방사능 공포에 지친 일본인들이 새로운 주거를 찾아 우리나라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일본에서 가까운 우리나라에 ‘안가’를 마련해 두고 싶다는 위기의식의 표출로 분석된다. 사태가 길어질 것을 대비해 생활 근거지를 보다 안전한 한국으로 옮기려는 사람들도 있다. 아예 귀화를 신청한 일본 거주 외국인들도 적지 않다. 27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 23일 부산 해운대구 중동 P부동산에 일본인 3명이 방문했다. 집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들 가운데 두명은 가구와 가전제품 등을 모두 갖춘 ‘풀 옵션’ 단기 임대주택을 원했다. 다른 한명은 아예 영구적으로 살기 위한 아파트를 찾았다. 이들 모두 원하는 집을 찾았고, 28일 임대차 및 매매계약서에 사인을 하기로 했다. 부산 좌동 G부동산도 최근 일본인 2명, 재일교포 3명으로부터 전셋집 계약 문의를 받았다. 이 가운데 일본인 한명이 해운대의 한 오피스텔을 1년 전세로 계약했다. 해운대의 한 공인중개사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물질 유출 사태 이후 한국에서 거주할 집을 찾는 일본인의 문의 전화가 늘고 있다.”면서 “부산이 일본과 가깝고 특히 해운대는 영화 등으로 일본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어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 지역 아파트들도 일본인과 재일교포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 도곡동 S부동산에는 최근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 기업가로부터 전화 한통이 걸려 왔다. 그는 “일본이 생각보다 위험하다. 전세든 매매든 다 좋으니 도곡동에 아파트를 빨리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서울 역삼동 W부동산에는 한국에 연고가 없는 한 재일교포가 한달 정도 살 집을 문의하기도 했다. 강남 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는 “하루에 3~4통가량 일본에서 상담 전화가 오고 있고, 대부분 호텔처럼 시설을 모두 갖춘 단기 월세를 찾고 있다.”면서 “특히 한국에 연고가 있는 재일교포의 문의 전화가 많다.”고 전했다. 아예 한국으로의 귀화나 국내 영주권을 취득하려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17일 일본 도쿄에 사는 한 파키스탄인은 한국 귀화 및 영주권 문제와 관련해 출입국행정업무 대행업체인 중앙행정사에 전화를 걸어 왔다. 그는 “한국인 부인과 함께 일본에서 하던 사업을 접고 인천에 정착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에서 10년 넘게 거주해 영주권을 얻은 A(48)씨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완전히 질려버렸다. 일본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중앙행정사에 상담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중앙행정사 관계자는 “지진 이후 하루 평균 상담건수가 평소 50여건에서 100여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면서 “일본의 추가 지진이 불안해 안전한 한국에서 거주하고 싶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김소라·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전·월세 직거래… 신혼집 공동명의 성행

    전·월세 직거래… 신혼집 공동명의 성행

    최악의 전·월세난이 새로운 풍속도를 낳고 있다. 웃돈을 요구하는 중개업소의 횡포에 맞서 온라인 커뮤니티와 생활정보지를 활용한 집주인·세입자 간 전·월세 직거래가 성행하고, 과거 남자 쪽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신혼집 마련에 예비 신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전세계약서 명의를 신랑·신부 공동이나 예비 신부 이름으로 돌리는 사례도 늘었다. 자칫 결혼이 파탄나더라도 억대의 전세금을 양측이 합리적으로 나눠 갖자는 취지에서다. 대학가의 일부 하숙집에선 아침·저녁 식사비를 ‘선택’에서 ‘필수’로 돌리면서 이를 포함한 하숙비가 최고 40만원가량 급등한 곳도 등장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부동산 직거래 온라인 커뮤니티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부동산 직거래’란 단어를 입력하면 20여개의 사이트가 검색된다. 한 직거래 커뮤니티 운영자인 김모씨는 “혹시 거래 도중 불거질 ‘사고’에 대비해 전·월세 물건의 근저당 및 가압류 살펴보는 법을 게시판에 올려놨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거래 증가세와 맞물려 ‘이중계약’ 등 사기행각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직거래는 아무래도 세입자가 안전장치 없이 위험에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급등한 전셋값은 결혼 풍속도도 바꿔 놓았다. 예비 신부인 최모씨는 “경기 용인의 전용면적 82㎡ 아파트를 1억 5000만원에 전세로 얻는 데 7000만원을 보탰다.”면서 “전세계약서를 내 명의로 돌려놨다.”고 말했다. 혼수와 예단 등의 비용을 줄여 전셋값에 보태려는 신혼부부들이 늘면서 웨딩컨설팅 업체들은 앞다퉈 거품을 뺀 상품을 내놓고 있다. 10년 전 가격으로 이바지 음식을 제공하거나, 무료로 한복을 빌려주는 이벤트는 물론 1인당 80만원대의 자유 배낭여행식 신혼여행도 등장했다. 일부 컨설팅사는 중개업소와 제휴, 전셋집을 찾아주는 서비스 도입을 검토 중이다. 직격탄을 맞은 곳은 대학가 하숙촌이다. 부산 출신의 복학생 정모(24)씨는 “흑석동과 상도동 일대에서 하숙집을 알아봤는데 보증금은 그대로인데 월세는 20만원가량 올랐다.”면서 “선택사항이던 아침·저녁 식사비 10만~20만원을 필수로 요구하는 곳도 있어 실제 하숙비가 40만원가량 오른 곳도 많다.”고 전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나홀로 식사族’ 증가… 1인 전용식당 오픈 줄이어

    ‘나홀로 식사族’ 증가… 1인 전용식당 오픈 줄이어

    7일 오후 5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인근의 A일본식 음식점. 입구에 들어서자 1인석과 커플석의 빈자리를 알려 주는 ‘공석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홀에는 테이블이 없다. 대신 정면 벽쪽에 커튼이 쳐진 4개의 ‘구역’이 보인다. 커튼을 걷고 들어가면 마치 독서실 책상처럼 생긴 1인용 식사 공간들이 드러난다. 이곳에 마련된 1인석은 11곳, 커플석도 6곳이 마련돼 있다. 폭 40~50㎝의 식사 공간 좌우에는 칸막이가 설치돼 옆 사람 얼굴을 볼 수 없다. 20~30대로 보이는 손님들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거나 스마트폰 등을 보며 라면 등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손님 이진희(25)씨는 “일반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 어색한데 이곳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돼 편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11시 지하철 9호선 노량진역 안에 위치한 B우동 전문점. 2009년 문을 연 이곳 역시 ‘1인 전용 식당’이다. 내부는 혼자 온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일반 식당이 마주 보는 2인용 좌석을 갖추고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의 테이블은 모두 손님 쪽 방향으로만 앉을 수 있는 바(BAR) 형태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덮밥 종류와 일본 라면, 우동 등이다. 식당 주인은 “점심 때는 대학생과 학원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저녁 때는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다.”면서 “손님들이 주문한 뒤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데까지 10여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혼자 음식점을 찾아 끼니를 해결하는 이른바 ‘나홀로 식사족(族)’이 늘고 있다. 이런 수요층을 붙잡기 위한 1인용 음식점이 속속 생겨나면서 새로운 요식업 풍속도로 자리 잡고 있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30대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강남과 신촌, 종로 등에서 1인용 음식점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남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혼자만의 식사 시간을 즐기려는 젊은 층과 직장인들이 주요 고객이다. 신촌에서 1인 전용 C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명재 점장은 “2009년 문을 열 당시 나홀로 손님이 10~20%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50% 가까이 비중이 높아졌다.”면서 “현재 평일 하루 매출이 120만~130만원인데 수요 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올여름쯤에는 150만~160만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나홀로 식사족이 늘어나는 이유는 1인 자녀와 싱글족 증가로 인한 개인주의의 심화, 경제적 부담 등이 꼽힌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형제 없이 성장한 아이들이 많은데, 이들이 성장해도 대인관계가 차단되는 경우가 많은 사회적 현실이 식사문화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여럿이 같이 식사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고, 게다가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데 따른 주목할 사회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최두희기자 dh0226@seoul.co.kr
  • “내년엔 아흔, 그래도 캔버스 앞에만 서면 가슴이 뛴다”

    “내년엔 아흔, 그래도 캔버스 앞에만 서면 가슴이 뛴다”

    “제사 지내려면 병풍이라도 있어야 했으니 동양화 쪽은 그래도 먹고살 만했는데 서양화는 참 어려웠어.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 간 이중섭(1956년 작고)은 국제극장 뒤에서 점심으로 만날 호떡을 얻어먹었지. 그땐 호떡이 제법 커서 한끼로 때울 만했거든. 가격은 생각 안 나는데,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어. 그런데 그 호떡 하나 사먹을 돈조차 없어 늘 쩔쩔맸지. 그러니 주인장이 불쌍해서 돈 조금만 받고도 주고, 공짜로도 주고 그랬어. 미안하고 고마웠던 이중섭이 할 줄 아는 거라곤 그림이니, 그림 하나를 정성껏 그려서 줬어. 주인장도 그걸 받기는 했는데 참 난감한 거야. 나중에 보니 그걸 장독 뚜껑으로 쓰고 있더라고. 유화물감이니까 기름기가 있어서 물기를 잘 막아주거든. 자존심이 무척 강했던 이중섭이지만 제 눈으로 그걸 보고도 아무 말 못했지. 그땐 시절이 그랬어.” “아깝네요. 그거 하나 잘 갖고 있었으면 지금 몇억원은 할 텐데.” “예술가의 삶이란 게 그런 거 같애. 내가 프랑스에서 살던 곳이 페뢰야. 빛이 좋아 화가들이 좋아하는 곳이지. 고흐가 살던 오베르하고 가까운 곳이기도 해. 언젠가 오베르에 갔더니 그곳 주민들이 이런 얘기를 해. 고흐가 권총자살하는 데 잘못 쐈대. 즉사한 게 아니라 한 3~4일 앓다가 죽은 거지. 장례가 골치 아팠어. 이름 없는 가난뱅이 화가인 데다, 그런 방식으로 죽었으니 다들 꺼림칙한 거지. 겨우겨우 이웃의 도움을 받아 장례를 치렀는데 이번엔 삯으로 줄 돈이 없는 거야. 그래서 그림 하나씩 가져가라 그랬대. 그런데 아무도 안 가져갔다는 거야. 그때 아무거나 하나 골라 집었어 봐…. 어휴.” 지난 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백영수(89) 화백을 만났다. 이중섭·김환기·장욱진·유영국·이규상 화백 등과 더불어 1950년대 신사실파 화폭을 개척한 대표적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신사실파는 일본을 통해 유입된 서구의 후기인상파적 화풍을 뛰어넘기 위해 이들이 결성한 단체다. 동인 중 유일한 생존 작가가 백 화백이다. 한국 근대미술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1977년 프랑스로 떠났다가 올 1월 34년 만에 영구귀국했다. 따뜻한 느낌의 ‘모자(母子) 시리즈’로 국내는 물론, 유럽 화단에도 상당히 이름이 알려져 있다. 롯데호텔에서 백 화백을 만난 것은 영구귀국 뒤 첫 전시가 롯데호텔 1층 롯데갤러리 재개관전이어서다. 롯데호텔 전신은 1956년 세워진 반도호텔이다. 이곳 1층의 반도화랑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갤러리다. 롯데갤러리 재개관을 맞아 백 화백을 비롯, 김종화(93), 권옥연(84), 황용엽(80), 윤명로(75) 등 원로 작가 다섯 명의 작품을 모았다. 백 화백은 ‘모자 시리즈’와 더불어 ‘여백 시리즈’를 내놓았다. 그런데 원로 작가들의 명성에 비해 호텔 로비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갤러리가 어째 좀 옹색해 보인다. 내걸린 작품 수도 그리 많지 않다. 백 화백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에이, 이것만 해도 엄청난 거지. 반도화랑은 더했어. 그 시절 화랑이란 게 일종의 기념품 가게였거든. 반도호텔 맞은편에 미국공보원이 있었고 옆에는 국립도서관이 있었지. 거기다 최고의 요지였던 명동이 곁에 있었고…. 그러다 보니 드나드는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이 사람들이 반도화랑에서 작품들을 사갔어. 이때 박수근(1965년 작고)이 그린 그림이 조선 풍속화야. 외국인 눈에 맞춘 거지. 덕분에 미군 부대 초상화가에서도 벗어났고….” 반도화랑에서 일을 배운 박명자(67) 회장이 나가서 살림 차린 곳이 바로 현대화랑(지금의 갤러리 현대)이다. 박수근 화백도 반도화랑 전시를 통해 화단에 본격 데뷔했다. “그땐 반도호텔이 9층인가 해서 주변에서 제일 높았어. 그림 그린답시고 몰려다니면서 명동에서 막걸리 한잔 마시고 9층 칵테일 바에서 분위기 내고 그랬지. 반도화랑을 열었던 이대원(2005년 작고)이 오며 가며 이런저런 일거리도 줬고….” 당시 서양화 위상은 볼품없었다는 게 백 화백의 회고다. 심지어 이념 장벽까지 있었다. 장욱진(1990년 작고) 화백은 땅과 황소를 벌겋게 그렸다고 기관원에게 끌려갔단다.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추궁당하던 시절, 이중삼중 생활고에 시달렸다. “나도 무지하게 일했어. 서울신문사 뒤에 코오롱 아케이드 있지? 그게 1969년에 지어졌는데 그 지하 아케이드 디자인을 내가 했어. 그것만 했겠어? 국립극장이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무대미술 작업도 내가 했지. 문예잡지나 시집 같은 책에다 삽화며 도안 그려넣는 일도 숱하게 했어. 그런데 그건 비교적 사정이 나은 거였어. 그나마 (작가) 이름값이 있으니 얻을 수 있는 일거리였거든. 이름 없는 작가들? 그냥 마냥 굶는 거지 뭐. 이중섭도 그렇게 굶어 죽은 거지.” 당시 작가들이 ‘괜찮은 일거리’로 꼽았던 것이 백화점 전시였다. 그런데 이것도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백화점 전시라는 게 지금처럼 멋지게 하지 않았어. 맨 꼭대기층에 전시해 두면 사람들이 내려오면서 보고 상품을 사라고 해둔 거지. 일종의 미끼 상품이야.” 그렇게 자존심에 상처 받아가면서도 뭐가 좋아 그렇게 그림에 매달렸을까. “그냥.” 허무한 답이다. 말이 이어진다. “하얀 캔버스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있으면 그냥 좋아. 이번엔 내가 또 뭘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막 설레. 얼마 전에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갔는데 마네 그림이 너무 좋은 거야. 여러 번 본 건 데도 너무 좋더라구. 나도 저렇게 멋진 거 하나 그리고 싶다, 이 생각밖에 안 들어.” 젊었을 때도 그 생각만으로 버텨냈다고 한다. “내 젊었을 때만 해도 샤갈, 미로, 피카소, 달리가 살아 있을 때였어. 수입된 유럽잡지를 통해 그 그림을 보면 너무 부러운거야. 나도 저런 작가가 되고야 말테다, 그 희망 하나로 버틴 거지.” 실은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단다. “좋아하는 일인 데다 늙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잖아. 마티스는 아흔 넘어 손에 힘이 떨어지니까 가위로 종이를 오려서 작품을 만들어냈어. 르누아르는 말년에 골다공증이 오니까 몸에다 붓을 묶어서 그림을 그렸어. 그걸 보면서 그림이란 게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구나, 하는 계산도 했지.” 그렇게 지켜온 게 바로 한국 현대미술이라는 자부심이 강하게 묻어나온다. 1977년 프랑스로 건너간 것은 파리의 한 화랑이 백 화백의 진가를 알아봤기 때문이다. 초대전으로 프랑스에 불러 들이더니 아예 주저앉혔다. 10년 넘는 활동기간 동안 큰 개인전만도 22차례, 이런저런 전시회까지 합치면 100회 넘게 전시를 열었다. ‘한국에서 건너온 뛰어난 화가’라는 명성이 쌓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1989년 교통사고를 당하더니 1994년 위암 선고까지 받았다. 한동안 붓을 놓을 수밖에. 몸을 추스린 뒤 더 이상 비행기를 타기 싫어 영구귀국을 결심했다. 원래 살던 경기 의정부 집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하지만 창작 의욕만큼은 왕성하다. 아직도 주머니에 종이와 연필을 넣고 다니면서 눈을 사로잡는 장면은 재빨리 스케치한다. “아직 더 그릴 수 있어. 언젠가 프랑스 한인회에서 경로잔치 같은 걸 해 주겠다길래 펄쩍 뛰었지. 아직도 하얀 캔버스 앞에만 서면 가슴이 뛰는데 무슨….” 속으로는 고민도 있다. “미술가란 남이 안 하는 모양이나 색깔을 찾아내야 하니 스케치를 계속 모아두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중에 작품으로) 뽑아내야지. 그리는 시간 자체보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더 필요해.” 오는 10월쯤 신작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백영수 화백이 걸어온 길 ▲1922년 경기 수원 출생 ▲1945년 일본 오사카미술학교 졸업 ▲1945년 전남 목포고등여학교 미술교사 ▲1947년 서울 화신백화점 개인전 ▲1952년 해군 종군화가 미술전 ▲1953년 신사실파전(국립미술관)▲1973년 국립현대미술관 60년전 ▲1977년 프랑스행 ▲1978년 소시에테 나쇼날 보졀 그랑파레(파리) ▲1981년 프랑스 주재 한국작가전(파리), 프랑스현대작가전(도쿄도미술관) ▲1983년 살롱 도톤느 그랑파레(파리) ▲1985년 AAM전(파리) ▲1986년 프랑스 작가 초대전(일본, LA), 국제현대미술전(모나코) ▲2007년 신사실파 60주년(서울) ▲2011년 영구 귀국
  • 13세기 유목민 통해 ‘삶의 원형’을 보다

    13세기 유목민 통해 ‘삶의 원형’을 보다

    “13세기 유목민의 삶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21세기 삶의 원형에 더욱 가까워집니다. 단순한 역사 속 영웅, 그것도 침략자로 일컬어지는 다른 나라의 영웅을 그려내는 역사소설인 것만은 아닌 이유죠.” 지난해 7월 몽골로 떠나 울란바토르 외곽에 허름한 방 한칸 구해 놓고 글을 쓰다 잠시 귀국한 소설가 김형수(52)를 지난 22일 서울 서교동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인터넷서점 예스24의 작가블로그(blog.yes24.com)에 장편소설 ‘조드’를 연재하고 있다. ‘조드’는 12~13세기 몽골 유목민의 삶이 담긴 대륙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칭기즈칸 이야기다. 그러나 숱한 칭기즈칸 이야기와는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 한다. ‘조드’는 초원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를 일컫는 몽골어다. 김형수는 1999년 이후 무려 열두 차례나 몽골을 다녀왔다. 몽골에 머무는 동안에는 툭 하면 차 빌려서 초원으로 취재 여행을 나갔다. 그렇게 취재한 유목민의 풍속과 삶이 소설로 들어왔고, 초원을 휘감아 도는 바람소리, 늑대의 심상까지 몽땅 담았다. 이것들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원시의 투박함을 닮은 대륙의 서사(敍事)가 되어 김형수 특유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체에 담겨 유장히 흘러간다. 그렇더라도 연재 초에 스스로 밝힌 것처럼 ‘침략자 미화’라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터. 그는 “13세기 칭기즈칸의 활약은 너무도 대단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서사에서 그를 단순한 정복자 또는 전쟁 영웅으로만 남겨둔 채 이야기를 풀어왔던 것은 그가 벌인 전쟁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했던 탓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설명. “칭기즈칸의 전쟁은 소통과 교류를 막고 있는 세상의 칸막이를 무너뜨려 자유롭게 소통하도록 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예컨대 일제의 침략 지배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부족민을 지구인으로 바꾸는 작업, 그 자체였던 겁니다.” 프랑스의 세계적 지성 자크 아탈리가 설파한 ‘디지털 유목민’의 원형은 이렇듯 700~800년 전 칭기즈칸의 사유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새삼 환기시킨다. 그는 “칭기즈칸이 침략자라는 오해는 소설을 다 읽으면 충분히 불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배시시 웃었다. ‘조드’를 읽다 보면 지구와 인간의 관계, 수천년에 걸쳐 나뉘어진 유목민과 농경민의 삶의 방식으로 사유가 연결된다. 그리고 어느새 인류의 시원(始原)까지 생각의 걸음이 닿는다. “네티즌들의 댓글마다 꼬박꼬박 답글 달며 우리 시대의 소통이라는 화두를 다시 한번 고민하고 있습니다. 답글도 작품을 쓰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는 매일 댓글 다는 스무명 남짓의 열혈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답한다. ‘반가워요. ○○님’라든가 ‘또 오셨네요. ◇◇님’ 같은 의례적 답글이 아니라 치열한 사유를 쉼없이 확장시키는 공간이자 방법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취재 일기’와 ‘작가 노트’까지 중간 중간 달린다. 고향의 기억을 자극하는 시편들까지 읽을 거리로 등장하니 ‘조드’는 그냥 연재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문학 종합선물세트’에 가깝다. 알려진 대로 그는 시인이며 소설가이고 문학평론가다. 그에 앞서 담론 생산자이기도 한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자주적 문예운동론’의 깃발을 치켜들었다. 지금의 30~40대 작가 가운데 한때나마 사실주의 문학을 접했다면 김형수의 자장(磁場) 언저리에서 글을 쓰고 배웠을 것이다. 김형수는 “올 5월 정도면 일단 초원을 통일하는 데까지 완성될 것 같다.”면서도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새로운 서사가 시작하는 연작 장편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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